#나는단순하게살기로했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미니멀리즘 #대지진 #일본

저자가 말하는 단순한 삶을 설명하는 글과 논리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도무지 사기만 하고 버리지는 않는, 청소나 정리 따위 하지 않고 쟁여두기만 하는 창고형 인간이라니, 이런 인간형이 흔할까 싶어서 공감도 떨어진다. 선이니 미니멀리즘같은 단어로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잡스와 마더테레사와 간디를 운운하고 인간 정신과 역사를 들어 정신사납게 쓰고 있는데, 결국 '미니멀하게 말하자면' 내가 파악한 키워드는 두 가지다. 디지탈로의 이동(digitalization), 그리고 우선순위 정하기(prioritization).

일본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했던 기똥찬 발명품, 호이포이캡슐. 집이던 차던 수십톤의 물이던 전부 조그마한 캡슐 안에 집어넣었다가 꺼냈다가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었더랬다. 아마 그걸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게 디지털로의 이동 아닐까. 무게도 부피도 없어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든 꺼내어 보고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컨텐츠의 물성. 저자가 말하는 지독히 단순화된 '물건구매-만족-익숙해짐-싫증'의 무한루프가 실제로 존재하며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가 제안하는 미니멀한 삶에서조차 이 루프는 사실 끊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체 그가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어 남겼다며 예찬해 마지않는 애플의 고성능 컴퓨터/스마트폰 속 데이터는 얼마나 빠르게 소비되고 쌓이고 있을까. 현실세계의 물건들을 처분하고 사진파일로 옮겨둔 그 디지털 세계, 씨디와 책 대신 인터넷 속 온갖 컨텐츠와 정보로 갈음하는 그 세계 속에서 그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부질없다거나 기만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주변정리의 차원에서, 무한욕구의 궤도에서 탈출해 보다 자족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는 나름 의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깐. 우선순위를 정하고 핵심이 아닌 것들을 지워내보자는, 너무도 담백하고 당연한 이야기라서 김이 좀 빠지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같이 극단적인, '지저분한 방 출신의' 인간 말고 좀더 평균적인 인간을 들어 말해보자면, 평소 하듯 오래되었거나 낡았거나 안 쓰는 물건은 버리던 팔던 하자는 거다. 그렇게 물건들이 들고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것들, 그런 것들은 꼭 필요한 것들이니 잘 챙기고, 나머지는 그보다 덜 중요한 것들이니 과감하게 덜어내어 버리던 혹은 마음만 덜어내던 그러자는 거다. 뻔하다고? 어디 이런 류의 책이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 하던가.

결론적으로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짊어지기엔, 저자가 펼치는 철학은 그다지 근본적이거나 철저하지 못하며 차라리 극단적인 버전의 집정리 스킬에 가깝다. 그런데 외려 내 흥미를 끈 건 이 부분이었다. 아날로그 물건들의 디지털로의 피난, 그건 저자가 의식한 것 이상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후과인지도 모른다. 대지진이 터지고 방사능이 만연해도 아날로그 세상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이들이 준비하는 신천지 디지털로의 노마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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