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늦은 봄, 도망치듯 한국을 빠져나와 마주했던 뉴욕의 하늘.

"렌즈의 메마름을 피해 비구름을 그려보다.." 누군가 찍어준 내 흐릿한 모습.

이유없이 우울하고 정신없이 센치했던 그때였지만, 돌이켜 보면 하늘이 마냥 잿빛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맨하탄의 스무디바에서 일주일에 닷새씩 하루종일 당근을 까고 레몬을 까고 레모네이드를 만들면서도,

온갖 야채와 과일박스를 실은 커다란 카트가 울부짖는 굉음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32번가를 종횡하면서도,

심지어는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에서 변태에 희롱당하고 고속도로에선 과속으로 딱지가 떼이면서도,


재미있었다.


최소한 그때처럼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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