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진 플리트비체의 저녁, 마트에서 사온 30도짜리 하트모양 라키야를 한 병 까고 치즈와 먹으며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치즈도 다 먹어치우고 라키야도 거의 다 마셔버린 즈음, 술도 깰 겸 밤풍경도 구경할 겸 민박집 밖으로 나왔다. 주홍 불빛이 반짝반짝.

 

 

불빛조차 전부 꺼져버린 민박집들 처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눈발은 바닥을 뒤덮다못해 벽면까지 새하얗게 칠해버렸다.

 

 

처음 플리트비체에 내렸을 때의 버스정류장까지 슬쩍 걸어가본 길, 낮에 미처 보지 못했던 십자가상이 그림자를 길게 뉘였다.

 

조금 더 걷다가, 아무래도 너무 캄캄하고 사람 하나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더해 축축해진 신발 덕에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술기운도 다 깨버린 참이라 그냥, 내일 아침이 맑게 개길 기대하며 숙소로 컴백.

 

 

그리고 눈뜬 다음날 아침, 정말 새파랗게 개인 하늘이 간밤에 푸지게 내린 눈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챙겨준 아침을 먹고, 간밤의 밤마실을 어디까지 갔었는지 이야기 좀 하다가, 오늘은 정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이쁠 거라며, 가까운 2번 입구는 여전히 막혀 있을 거고 1번 입구 쪽에서 짐 맡겨두고 돌아보길 권해주신다. 더구나 태워주시겠다고.

 

 

밥을 먹고 들뜬 마음으로 짐을 다시 챙겨 민박집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 참. 아저씨는 집 근처의 눈들을 쓸고 차를 준비중이다.

 

 

황금빛으로 마른 잎사귀에 새하얀 눈이 얹히니까 그게 또 그렇게 이뻐 보인다.

 

한쪽에 주차해놨던 차들은 온통 초밥처럼 두툼한 눈에 덮여버려서, 주인아저씨 차는 무사하려나 걱정도 살짝 헀지만,

 

아저씨의 차는 벤츠 SLK, 눈을 슥슥 쓸어내고는 4WD모드로 1번 입구까지 경쾌한 드라이빙. 눈이 얼어붙은 빙판길에서도 문제없더란.

 

 

서울의 어느 동네를 걷다가 문득 발견한 신기한 탈것. 귀엽기도 하고, 뭔가 엉성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확 땡기는 바람에 요모조모 살피게 되어버렸다. 보니깐 MTV 위에 알루미늄 샷시로

틀을 짜서는 투명 아크릴로 씌워버린 것. 그리고 나름 박스와 장판 등속으로 샷시와 MTV의

연결부를 최대한 부드럽게 이어붙이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런 DIY(do-it-yourself) MTV라니.

원래 MTV 자체가 귀엽기도 하지만, 이렇게 각진 형태의 틀을 얹고 나니까 조그마한

소형차 같기도 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전혀 운행에 문제가 없겠다 싶기도 하고.

딱 한명이 맞춤하게 들어가서 운전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셈이니까 안락하겠다 싶기도.

앞면 유리창-아크릴판-에 붙어있는 '국가유공자'란 딱지가 나름 자부심넘치는 유일한

데코라지만, 이런 식의 플러스 알파 튜닝은 처음 보는 거 같다.

뒤로 한번 돌아갔다가 푸핫, 터져버렸다. 저 앙증맞고 새빨간 짐가방은 또 뭐란 말이냐.

그렇지만 새삼 이 신기한 탈것을 손수 제작하신 분의 섬세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정말

실용적으로, 불편함에 대한 많은 고민과 연구끝에 만드셨겠구나 싶은 탈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철저한 관건장치까지. 문을 안전하게 닫을 수 있는 걸쇠도 모자라서 자물통을 채울 수

있도록 단단하게 짜맞춰져 있는 이 샷시라니.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도 저렇게 닫아걸 수 있는

걸쇠가 마련되어 있는지는 잘 안 보였지만, 설마, 저 정도로 꼼꼼하게 만든 분이 안에 탑승해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나 미비함을 캐치못했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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