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3, 지리산 둘레길(윤성의)-



* 2016. 7. 13(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9.9km))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지리산 둘레길입니다. 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 전남, 경남을 아우르며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 장거리 도보길로 현재 22코스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얼마 예능 프로그램에 그중 3코스가 소개되고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긴 했지만, 굳건하게 버틴 지리산 자락 아래 많은 마을길과 샛길들이 여전히 보석처럼 숨어있는 곳입니다. 저는 틈이 때마다 조금씩 아껴먹듯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요, 오늘은 1코스와 2코스를 중심으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중간에 있는 행정마을에서 맞는 아침. 예보대로 종일 비가 모양인지 꽤나 꾸물꾸물한 날씨였습니다.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습니다. 마을의 포장도로를 금세 벗어나 밟기 시작한 흙길,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부슬비에 젖었습니다.

검고 부드러운 흙바닥에 두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피어오르는 냄새, 흙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요. 어쩌면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황금연휴를 맞아서 불쑥 잡은 지리산행에 흔쾌히 함께 군대 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을 함께 타박타박 쌓아오며 용케 잘도 뭉쳐 다녔던 같습니다.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고즈넉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민가로 접어들면 사람 사는 풍경이 소소하게 펼쳐집니다. 골목길에 버티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선명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파스텔톤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시멘트 벽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았습니다. 색이 바랜 오래된 간판과 자전거들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 나간다거나 정복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가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천리행군이나 국토대장정도 아니구요. 그보다 중요한 , 어느 장소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오감을 온통 활짝 열어둔 , 발바닥에 밟히는 흙과 나뭇가지들을 온전히 느끼는 , 바로 그게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운봉읍에서 금계까지 이어지는 10km여의 구간은 마을의 수호장승으로부터 시작.


 

함께 걸었던 군대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동안 참 잘도 지내는게, 이리저리 갈린 길에서도 용케 잘 뭉쳐다녔다.


  

 

 

모내기를 위한 모판을 무논 위에 둥둥 띄워놓고. 모판을 실제로 본 건 꽤나 오랜만인데, 이렇게나 빽빽했던가,


그리고 이렇게나 싱그럽도록 연둣빛이었던가 싶다.


뭔가 일을 하시다 잠시 쉬시는 농부아저씨. 논두렁에 멋진 포즈로 딱 버티고 서서는 대지와 산을 바라보는.


 

둘레길 옆으로는 염소젖 짜는 체험도 해볼 수 있다는 조그마한 염소농장도 있고.


이런 아름드리 나무들도 쉬이 눈에 띄는 시골길이다.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 옆에는 나무의 자연스런 곡선을 그대로 살려서 지은 정자도 있고.

 

잠시 길을 잘못 든 통에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로변에서 걸어야 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논두렁 태우는 연기와 냄새가 훈훈한 시골의 봄길을 걷는 건 꽤나 유쾌한 경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그리고 솟대들이 온통 삐죽거리며 솟은 곳은 어느 마을의 입구.

 

 

 봄의 빛깔은 누가 뭐래도 연두연두. 그리고 저렇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벽돌빛의 배경이라면 더 좋다.


 

이제 슬슬 금계마을에 도착, 길이 민가로 접어들었고 이렇게 사람사는 풍경들이 나타난다.

 

골목길에 딱 버티고 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귀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참 좋고.



 

 

 

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라는 지리산자락 바래봉,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5월초 황금연휴에  남원 운봉읍의 민박집을

 

잡았더니 여기를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신 거다. 부녀회장님이시기도 한 민박집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철쭉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도 구경하고, 떡과 막걸리도 얼콰하니 얻어먹고.

 

시골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는 건 역시 하늘 높이 떠올라있는 애드벌룬과 만국기.

 

그리고 한마리를 통으로 굽고 있는 지리산 흑돼지 바베큐, 막걸리 안주로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에 몇걸음 걷기도

 

전에 모든 걸 다 이루어냈다는 느낌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로 조금 올라가는 약간의 경사길에도 헥헥거리며 발걸음을 질질 끌고 말았던 것.

 

사실 철쭉이 그다지 이쁘다는 생각도 안 했었고, 무리지어 피어봐야 얼마나 볼만하랴 싶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 한 굽이를 지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온통 진분홍빛의 울긋불긋한 철쭉, 철쭉.

 

 

이렇게 지천으로 흐드러진 철쭉은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 할 만큼 빼곡하게 피어나서, 사람 하나 끼어 들어가

 

사진 찍을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앞에서 어떻게든

 

포즈를 잡아보느라 애쓰는 중이었고.

 

 

 

 

사실 바래봉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도 있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고는 했는데 일단

 

막걸리가 올라와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고, 또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터라 중턱까지만 피었지 위는 아직 멀었단

 

이야기를 듣고 지레 힘이 빠져서 그냥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내려오는 참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잘 꾸며놨다. 조경도 잘 해놨고 오밀조밀하니 걸어서 한바퀴 돌아볼 만하다.

 

 

 

그렇게 한참을 사방의 갈래길로 쏘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조금 취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하산. 본격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2코스를 시작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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