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28. 입주 D-10.

 

2015년 9월 1일, photo by myself



사월말쯤부터 집터를 보니 설계를 하니 하며 기초다지기를 시작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네달이 꽉 차서 지나버렸다. 


그리고 이제 불과 열흘만 있으면 완전히-물론 100% 완전하진 않겠지만서도-지어진 집으로 이사. 카운트다운이다.


엉성하게나마 내렸던 비들 덕분에 식재후 시들시들하던 잔디들은 힘차게 쭉쭉 배치기중이고.


건물의 전면은 이제 에어콘 실외기도 달리고 현관문짝도 얼핏 보이는 게 좀 사람 사는 집 모양새다.


요새 실내에서 꼬물꼬물 일어났던 일들은, 바닥재 깔고 벽지 바르고 에어콘 설치하고 실측을 통해 각종 가구와 


싱크대들이 짜여지고 매립형 조명같은 것들도 설치하고. 


그리고 여전히 진행중인 것들은 포인트가 될 만한 주요 조명을 뭘 쓸지 아직 고민중이라거나, 화장실 아이템들이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거나,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이 완공되지 않았다는.


물론 이외에도 멧돼지니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의 침투를 막기 위해 정원 바깥으로 펜스를 빙 둘러쳐야 한다거나


정원 한곁에 나무정자는 놓아야 한다거나, 감나무 같은 유실수들을 몇그루 멋지게 심어야 한다는 등의 일들도


남았지만 그건 일단 입주하고 나서 차차 해결해 나가기로.



아, 차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로망은 반영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자동차 손세차에 편리하도록 마당에 수돗가를 


설치한다는 건 그래도 입주 전에 해결될 수 있을 듯.


자,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버전 0.95 정도의 느낌으로 러브하우스. 다다다다~ 다다다다~


주먹돌을 얼기설기 얹어 만든 기둥을 지나 굵은 구멍들이 박력있게 송송거리는 현무암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드디어 현관문이 생겼다. 도어락까지 설치된 현관문이라 이제 이 집은 내부와 외부를 구별할 줄 아는 몸이 되었다. 


그리고 문을 열면 훨씬 말끔해진 배전반. 얼마전까지만 해도 온갖 전선들이 토네이도의 잔해처럼 얽혀있었는데.


부엌. 어두운 암녹빛의 대리석 바닥 위에 새하얀 맞춤형 부엌 가구들. 


벽지가 말끔하게 발린, 문틀과 창틀과 슬라이드도어까지 다 끼워진 실내공간. 전등 스위치까지도 제자리.


세탁실 공간. 타일까지 다 붙여지고 나니까 이제 뭐 여긴 완성이다.


거실. 한쪽면은 거의 아무런 장애물없는 통유리창. 살짝 엿보이는 집앞 개울과 시멘트다리.


그리고 집의 포인트중에 포인트. 나무계단. 1층과 2층으로 오르내리는 나무 계단인데, 아직은 미완성.


그래서 이 나무판들이 어떻게 지탱될지, 난간은 정말 설치하지 않을 건지 등등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다리 너머에서 문득 바라본 집.


그리고, 아마도 입주가 끝나기 전엔 어찌됐건 마무리될 거 같은 현관 대문. 저 두꺼운 콘크리트 파이프의 외벽을


뭔가로 둘러서 꾸밀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어떤 모양새가 될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어쨌든, D-10. 




*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24. 완성된 외관 + 내부 인테리어 작업

 

2015년 8월 15일, photo by myself

 

이제 외관은 완성. 두면에 걸쳐서 현무암으로 씌우고, 나머지 두면은 노출콘크리트 면을 그대로 정리하는 걸로 마무리.


현관의 장식들도 완성이 되었고, 현관 기둥과 2층 테라스 기둥 역시 주먹돌들을 촘촘히 쌓아올리는 작업이 완료.


그래서 간단히 살펴보자면, 마을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대문에서 꺽어서 주차. 지금은 거실 바닥돌로 쓰일 대리석들이나


정원석들이 놓여 있는 저곳이 주차장이 될 예정이다.


집 바로 앞의 개울과 자그마한 다리 앞에서 바라본 풍경. 커다란 통유리가 끼워진 곳이 거실. 그리고 다소 밋밋해보일


수 있었던 2층 외벽에는 황동색 장식들이 간결하게 부착되어 전체적으로 어두운 잿빛의 분위기를 달래준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의 풍경. 전원주택 예닐곱채가 모여있는 마을의 초입인지라 시야가 탁 트였다. 


그리고 노출콘크리트와 현무암 외벽이 만나는 지점. 저쪽에 구멍 송송한 곳이 2층 테라스, 그리고 노출 콘크리트


벽면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거실 통유리로는 임시로 설치된 실내 계단이 그대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노출콘크리트 벽면이 한면을 그대로 차지한 건물 뒷켠. 이쪽은 자그마한 텃밭이 되어 감나무 같은 유실수


몇그루와 블루베리나무가 심길 예정이다. 회색빛 벽면에 짙푸른 색의 철제문이 꽤나 잘 어울릴 듯.


2층 테라스의 기둥 작업. 저기 테라스에는 푹신하고 커다란 쿠션 몇개를 던져 놓고 널찍한 테이블 하나 깔아놓고


밤새 술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둬도 좋겠다. 


그리고 마을 안쪽에서 본 건물의 외관. 제법 들쭉날쭉한 외관이 심심하지 않은 데다가 현무암과 노출콘크리트의 


투톤 배합이 그럴 듯하게 잘 섞인 거 같다. 


나름 동네에서도 소문이 나서, 심지어 부동산 사장님들이 소문을 듣고는 '대체 어떻게 건물을 짓고 있는 거냐'며


직접 찾아볼 정도라고. 현장에서 챙기고 계신 아버지한테도 몇몇 사람들이 비슷하게 집을 지어달라고 요청이 들어올


정도이니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비슷한 전원주택과는 확연히 차별화하는 데 성공한 듯 하다.


이제 완성된 현관 기둥. 완성된 모습을 보니 애초 상상했던 것보다 좀더 나은 거 같다. 틈새에 벌레가 낀다거나 


거미줄 따위가 낄 걱정은 미리부터 차단, 빈틈없이 벌레방지 조치를 취해놨다고.


창문 설치가 완료되었고 그중에서도 2층 내방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참...힐링되기엔 딱 좋은 초록초록한 풍경이다.


그리고 2층의 동생방. 이제 외관이 완성되었으니 실내를 챙길 차례. 벽지라거나 바닥이라거나 조명이라거나.


테라스 풍경. 2층 테라스는 뭔가 좀 하렘같은 분위기가 되었음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인데, 글쎄 어떻게 될지.


(내 집이 아니라 부모님 집이니 뭐, 전권은 그분들에게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여전히 엉성하게 이어붙인 임시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다.


1층 풍경. 안방과 옷방이 될 예정인 곳의 모습이다.


그리고, 1층과 2층을 잇게 될 실내 나무 계단이 지탱하게 된 받침 그 날것의 모습. 이제부턴 굉장히 지지부진해 보일 수


있는 실내의 디테일들을 잡아나가게 될 거다. 벽지, 바닥재, 조명, 실내계단, 그리고 실내가구 등등.






*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23. 현관 데코레이션 

 

2015년 7월, photo by father



아무래도 외부 골격이 서고 나서는 이미지로 보건대 조금은 지지부진한 실내 작업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현관


입구에 이렇게 돌들을 활용해서 올록볼록한 뭔가를 만들어두는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랄까. 나름 아버지가 엄청


공을 들여서 만든 입구의 이미지다. 직접 돌들을 하나하나 붙이면서 작품이라 칭하실 정도니깐.


이렇게 저마다 높낮이를 달리하는 주먹돌들을 하나씩 직접 붙이면서 뭘 표현하고 싶으셨던 건지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그리고 현관 기둥. 그야말로 주먹돌들을 얼기설기 엮어 붙여놓는 걸로 컨셉을 잡았는데, 이런 건 역시 여러개가


한꺼번에 모여있어야 뭔가 그림이 나타나지 두어개 모인 걸로는 왠지 어설퍼 보인다.



이정도 쌓이니까 그래도 뭔가 그럴듯한 느낌을 자아내기 시작.




그리고 외벽의 아시바들을 제거해낸 건물의 외양이 비로소 나타난게 7월. 건물을 짓기 시작한지 3개월만이다.


이제 거의 끝까지 올라간 현관 기둥의 주먹돌들도 보인다.


그리고 잔디밭이 될 정원을 한참 지나서 마을 길가에 인접한 곳의 대문 입구. 양쪽으로 서게 될 두개의 돌쩌귀.



그 두개의 파이프를 기둥 삼아 세워지게 될 세쪽자리 대문, 그리고 쭉 외곽을 둘러치게 될 울타리의 시멘트 토대가 슬쩍


보인다. 


*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22. 외장 현무암 및 단열재 부착작업

 

2015년 6월 27일, photo by myself



외견상으로 보기엔 한달이 지났지만 그다지 크게 변한 모습이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지적사항


대부분이 반영된 데다가 내부 단열재가 전부 부착 완료된 상황, 그리고 외벽의 절반에 가까운 영역을 현무암으로


감싸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모습이다.



예년에 비해 오뉴월에 비가 많이 오기도 했어서 조금 진척속도가 늦어진 감도 있다지만 햇볕은 모른척 쨍쨍이다.


가운데 굵은 경계를 기준으로 왼쪽은 현무암으로 치장할 거고, 오른쪽은 노출콘크리트를 광낼 예정이다.


오래된 건물 리뉴얼하듯이 현무암을 외벽에 덧씌우는 작업. 현무암도 붙이고 끝이 아니라 방수도료를 바른다거나


광택을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좀더 이쁘게 다듬을 거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주 보다보니까 그대로 냅둬도 되겠다 싶은 이층 테라스의 구멍 뽕뽕 외벽.


거실의 큰 통유리창은 지난 어머니 지시사항에 따라 더 커졌다. 


현무암으로 감싸는 작업은 일층을 지나 한창 이층에서 진행 중.


그리고 정원에 놓일 현무암 재질의 포석. 큼지막한 판석이 놓이고 그 틈새로 잔디가 푸릇푸릇 자라면 꽤 괜찮겠다.


이 돌들은 현관에 경사로로 깔릴 거라고.




대여섯 채의 전원주택이 모여들어 바야흐로 조그마한 마을이 형성되고 있는, 그 깊숙한 안쪽에서 내다본 우리집.


마을의 초입에 위치한 데다가 오가는 사람들의 입소문이 타기 시작해서 슬슬 구경하러 오는 외지인이나 주변마을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대체 어떤 모양의 전원주택을 짓는 거냐는 궁금증을 만족시켜 줄 만한 답이면 좋겠는데.



두툼한 단열재를 대어 엄청나게 두꺼워진 외벽. 이제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엔 덜 추운 집에서 지낼 수 있겠구나.


건물 내부에 깔려야 할 복잡한 배선들. 현관 입구에 일단 저렇게 데굴데굴 뭉쳐있는 상황이다.


거실의 통유리는 참 시원해 보이는 게 볼수록 맘에 든다.



천장에도 두텁한 단열재가 시공됐고, 조명을 내려뜨릴 전선인지 뭔지가 또아리를 틀고 얌전하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계단의 위치도. 경사를 맞춰서 벽을 따라 그려진 파란선대로 나무계단이 올라갈 예정.


계단에 쓰일 나무들이 옆에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그리고 이층 테라스.



갈수록 바깥 풍경은 초록초록해지는구나. 서울의 희뿌옇고 뿌연 색감에 지친 눈이 쉬기에 딱 좋다.


마음에 드는 공간 중 하나. 이층 복도. 왼쪽으로 동생방, 오른쪽으로 내방. 그리고 위로는 채광창.


그러고 보면 건물 외벽만 섰다고 건물이 지어진 건 아니다. 내부에 단열재를 채우고, 바닥재를 깔아야 하고,


거기에 벽지를 바르던 페인팅을 하던 내벽을 치장해야 하고, 가구니 싱크대니 하는 인테리어를 챙겨야 하고.






협재 해수욕장, 그야말로 제주도 관광의 성수기이던 8월 언젠가쯤이어서 그랬는지 해변가엔 온통 쓰레기가

검정 현무암돌바닥을 가리울 지경이었지만 나름의 운치는 여전했다. 홀로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반백 아저씨의

살짝 굽은 뒷 등덜미가 바닷바람에 조금 도닥여지는 거 같기도 하고.

해수욕장 앞으로 이어진 마을은 온통 구멍숭숭한 현무암 돌담으로 집집이 구획되어 있었는데, 그 엉성한 돌담에

하나 더 얹어진 돌멩이인 양 엉성하게 끼어 있는 새파랑 우편함이 웃겨서 사진 한장.

바다에 연한 시멘트 방조제. 하루방을 저런 식으로 표현해 놓으니까 무슨 모아이의 석상 같기도 하고, 표정도

뭔가 굉장히 엄하거나 화난 듯 하기도 한데다가 서로 등 돌리고 있으니 영락없이 싸우고 삐친 모습이다.



바다 색깔이 진짜로 이뻤는데, 사진엔 채 반의 반도 담지 못한 거 같다. 동남아의 유수한 신혼여행지 앞바다라며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여기에 펼쳐져 있었는데.


먼 바다에서 둘둘이 짝지어선 서로 마주보며 데이트 중인 어선들.

그리고 현무암질 용암이 질질 흐르다간 바다를 만나 쩍쩍 갈라지며 급격히 식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해변가.


해녀상. 튜브를 한팔에 꿰고 있는 다소 현대적인 매무새의 해녀도 있었고, 저고리 고름을 곱게 맨 채 등짐을 지고

있는 해녀도 있었고. 그리고 그녀들 너머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내려앉기 전에 바닷물에 발톱부터 담군 타이밍, 사람들이 슬슬 바다 밖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산굼부리. 벌써 두번째 찾는 이곳은 분화구만 유독 뚜렷한 지형과 바람소리를 그려내는 억새밭이 만들어내는

호젓하고도 기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저번에 왔었을 때는 억새가 온통 누렇게 물든 계절이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이제나 그제나 제주도의 변덕스런 날씨 덕에 꾸물거리는 하늘은 변함없었던 거다.

제주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주차장이 어디든 넓찍하니 잘 마련되어 있단 것. 게다가 주차요금을 별도로

받지도 않는다. 산굼부리 주차장은 현무암으로 잘 조성된 너른 마당인데다가, 주차장에서 산굼부리

매표소로 가는 길도 운치있게 잘 정비되어 있어서 늘 기억에 남는다.

산굼부리 들어서는 입구. 매표소를 지나 걸어들어가면 현무암으로 이쁘게 지어올려진 관리사무소가 덩굴을

온통 칭칭 휘감은 채 버티고 있고, 이끼가 보들보들하게 돋아난 나무들에도 무슨 목걸이처럼 덩굴이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 깔린 붉은 화산석이 비를 맞아 더욱 선연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멍이 뚫린 화산석은 어떻게 생긴 걸까. 옆의 설명을 참고하니 어찌 생긴 건지는 알겠지만 그

신비로움이 덜어지진 않는다.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내린 용암이 나무를 감싼채 굳어버렸단 거다. 그렇게

용암은 단단하게 굳어가고, 나무는 그대로 까맣게 숯이 되도록 타버렸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버리곤 저렇게 빈 구멍의 흔적만 남기게 된다는.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용암수형석.


산굼부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여지없이 한번 주춤하는 거 같다. 길이 무려 세갈래나 되는 거다.

제법 경사진 계단으로 오르는 첫째길, 좀더 완만한 두번째 길, 그리고 아예 평탄하게 이어지는 셋째길까지.

첫째둘째길은 결국 산굼부리 정상으로 오르는 같은 길, 셋째길은 억새밭을 좀더 에둘러가는 길, 결국 같다. 


산굼부리, '굼부리'는 화산의 분화구를 이르는 제주도말이라고 한다. 한라산이 불쑥 솟아오르던 즈음에 함께

생겨났다는 산굼부리가 제주도의 수많은 기생화산, 그들의 분화구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이유는 여기

분화구가 솟아난 산세에 비해 유독 커다랗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높이 치솟지도 않았는데 분화구의

크기가 크다 보니, 평지 한복판이 움푹 파인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올라가는 길도 이렇게 완만하고,

곳곳에 제주도식으로 돌담을 두른 무덤들도 자리를 잡았다.
 

금세 도착한 산굼부리의 분화구 둘레. '추락주의'라는 경고문구가 보여주듯 아래쪽으로는 깍아지른 듯한

가파른 사면이 분화구 아래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깊고 큰 화구가 남을 수 있었던 건 여기 분화구가

폭발할 때 주로 가스만 새어나오고 다른 용암이라거나 화산재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분화구 주변이 높아지지 않은 거기도 하고, 분화구가 그대로 움푹 패인 채 남아있는 거고.

알고 보니 이 분화구, 백록담보다도 크고 깊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도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있었다면 좀더 멋지지 않았을까, 싶도록 분화구 아랫쪽은 온통 초록빛일색이다.

식물의 생태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분화구 사면에 따라 받는 일사량과 일조시간, 기온에 따라 다른 식생이

살고 있다며 온대, 난대성 식물과 각종 희귀한 식물이 산다는 사실에 좀더 많이 감탄했겠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헤에, 그런갑다 할 뿐이다. (사실 아래까지 내려가서 직접 확인할 수도 없거니와)

산굼부리 분화구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다 보면, 그렇게 높진 않다지만 나름의 언덕 위에서 산굼부리 주변

풍경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시선이 산굼부리 안쪽, 바깥쪽으로 번갈아 움직이는 거다. 깊은 구멍 속에

초록빛이 연못처럼 고여있는 산굼부리 안쪽 사면, 그리고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 산굼부리 바깥 사면과

그너머 듬성듬성한 다른 기생화산들.

일단은 다시 원점, 세갈래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돌아내려와서 다른 두길을 걷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기념품점 현무암 지붕이 온통 말라죽은 이끼 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저게 정말 이끼가 덕지덕지

붙었다가 죽어서 남은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색깔의 식물이 덮인 건지는 모르겠다.

두번째길로 돌아서 다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사람들의 소원이 뾰족뾰족 봉우리들을 만들고 있었다. 붉고 검은

화산석들이 제각기의 까칠한 모양새를 감내하며 어떻게든 바닥을 받치고 위로 서고, 또다시 바닥이 되어

중심을 잡고 윗자리를 마련하고.

둘째길로 들어서서 세번째길로 돌아나오는 길, 온통 억새밭이 장관이었다. 바람소리가 문득 까먹었다는 듯이

윙윙 울릴 즈음이면 억새들은 제들끼리 사각거리며 바람의 잔영을 새기기에 바빴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점점 다가오거나 멀어지고 있다는 게 억새밭의 움직임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질리지도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세번째 길까지. 산굼부리의 길들을 샅샅이 걸어보고 내려가는 길, 여태 꾸물거리며 겨우겨우 참는다 싶더니

그 길에서야 울음이 터졌다. 굵은 빗방울이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저 신민아를 닮은 아가씨가

입고 있는 우의와 쓰고 있는 우산을 사러 매점으로 달려야 했다.



제주도에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가장 멀게 느껴지는 곳은 어디일까. 좌우로 길쭉하게 생긴 제주도의

모양새를 보자면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바로 접근가능한 서귀포는 차라리 가깝다고 말해야 할 거

같고, 동쪽의 성산이니 섭지코지쪽도 딱히 멀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가장 먼 곳은 아무래도 마라도,

가파도로 향하는 배가 뜨는 모슬포쪽 아닐까. 제주도 서남쪽, 올레길 10코스가 있는 곳이다.

화순에서부터 시작하는 올레길 10코스, 제주도의 변덕스런 날씨 탓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드문드문 빗발이 날리는 날씨였지만, 멀찍이 커다란 바윗덩이같은 산방산이 흔들림없이

섰다. 궂은 날씨에도 밭에 나와 일하고 계신 분은 이제 신경쓰지 않을 그 풍경, 산방산을

오른쪽에 끼고 계속 제주도 남서해안길을 따라 걷는 게 10코스의 매력이다.

젖은 날개를 쉬러 잠시 꽃들에 내려앉은 배추흰나비들. 금방이라도 쏴아 비가 쏟아부어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다 보니까,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빗물에 씻겨서 거의 형광색에

가깝도록 강렬하고 선명하게 빛깔을 내뿜는 꽃들 옆에 쪼그리곤 이리저리 구경.


제주도에 출장으로도 오고, 여행으로도 오고, 혼자도 오고, 가족이랑도 오고, 어떻든 올 때마다

주변에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돌 많고 여자 많고 바람 많다니 조심하라는. 바람 구멍 숭숭난

깜장 현무암 돌담 옆을 우르르 걷는 여자들의 그림이 그럼 제주도의 단적인 이미지일까.

여자들 대신 보이는 건 농사일이나 장사일로 고단하신 어르신들이다. 제주도의 지역소주는

한라산, 그렇지만 맥주는 뭍이나 여기나 똑같다. 카스, 하이트, 맥스..관련 법규정이 워낙

대량생산이 가능한 대기업 위주로, 빡빡하게 되어있어 그렇다던데 지역 맥주를 만드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제주도의 맑은 물로 빚은 맥주라면.

화순 금모래해변가로 바싹 내려가는 길에서부터 본격 올레길 시작. 음..그치만 사실 길에 시작이

어디 있고 끝이 어디 있나. 올레길로 구간구간 끊겨있긴 하지만, 어디서고 올레길에 들어서서

또다시 어디서고 내키는대로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랄까. 올레길이 불어온 걷기열풍이니

'자기를 찾는 도보여행'이니 따위의 말의 성찬에 걸맞는 사용법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파도에 씻긴 어두운 암갈색의 바윗덩이 해변.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듯한 해변가에 셀수없이

들이치고 빠져나갔을 물결무늬가 그대로 새겨진 기암괴석들. 짙은 안개인지 구름이 끼어 정상부

절반쯤이 뚝 잘려나간 산방산이 계속 눈앞이다.


날이 잔뜩 찌푸린 거 치고는 잔잔한 바다다, 싶었는데 어느결에 조그마한 복어 한마리를 뱉었다.

점점이 흰 알맹이가 박힌 검정모래사장 위에 뉘인 하얀 배의 복어새끼, 그 거무스름한 등판에도

점점이 하얀 얼룩이 박혀있었다.

화순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 끝나고 슬쩍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을 따랐다. 짙고 검은 바위들을

질식시킬 듯이 빼곡히 들어찬 녹색 풀떼기들이 검고 딱딱하고 까칠한 그것들을 바다로, 바다로

밀어내는 것만 같다. 녹색생명과 암석생명간의 전면전이랄까.

문득 언덕길 아래로 한뼘만한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삼면이 까만 바위로 둘러쳐진 채, 자동차 두어대만

대면 꽉 찰 것 같은 공간에 제주도에서는 보기 힘들것 같은 황금빛 모래가 곱게 쌓여있는 비밀의 공간.

아까는 뾰족뾰족, 파도에 벼려진 칼날같은 바윗덩이들 사이로 걷는 게 곧 길이더니, 이번엔

파도에 씻겨서 둥글둥글해진 해변가 올레길이다. 뾰족하고 동글하고, 그걸 모두 파도 핑계로만

돌리는 건 얼마나 비겁한가. 나는 잘하는데 상대가, 다른 사람들이, 세상이 잘 못한다는 말은

대개 핑계이기 마련. 내 단단함과 심지를 먼저 살필 일이다.

'썩은 동앗줄', 누군가의 배를 항구에 비끄러매었을, 혹은 누군가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었을,

아니면 하다못해 그물망이라도 잡아놓고 있었을 그런 나이롱끈이 깡충하게 짧아진 채 해안가

모래톱 위에서 가늘고 야윈 몸을 뒤채고 있었다.

딱딱한 바위판, 두터운 각질처럼 해변가를 덮고 있는 길은 군데군데 여린 곳이 파이고 깨어져

물이 제법 깊은 곳도 있고 얕은 곳도 있고, 곳곳이 웅덩이였다. 테이블처럼 깍아지른 바위판에

파도가 밀려오니 철썩철썩 극적으로 하얗게 부서져내리기도 하고.

용머리 해안으로 접어드는 길. 올레길 표지가 언제 저렇게 쌈빡하게 바뀌었을까. 해안을 따라 걷던

좁은 길이 확 트이며 숲사이로 이어지는 즈음, 흙바닥은 톱밥이 깔린 듯 폭신폭신.

'산방연대'가 뭔가 했다. 산방산에 있는 연대, 그러니까 연기를 피워올리는 봉화대를 말하는 거다.

조선시대에 변경 최일선에 설치한 시설물로, 둘레에는 참호를 파고 대 위에는 각종 병기와 생필품을

간수하는 창고 역할도 했다고 한다. 저렇게 말끔하게 잘 보존이 되어있나 했더니, 최근에 보수한

거라고. 안에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워올려야 할 곳에는 잡초만 듬성듬성. 조선시대라면 평화로운

때로구나, 하겠지만 이미 봉화대는 퇴역한지 오래, 평화와는 거리가 먼 삼엄한 시절이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표류한 곳이 바로 여기란다. 용머리해안.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간직한 곳이라 하여 중국의 누군가 와서 이곳에 칼을 꼽았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했다. 칼을 꼽자 천지를 진동하는 비명소리가 번졌다던가. 하멜은

그런 전설이 서린 이곳에 처음 당도했을 때 저런 풍경을 봤을 거다. 그러고 보면, 올레길 10코스를

걷는단 건 당시 하멜이 봤던 풍경을 따라 걷는 길은 아닐까. 조난당하고, 근처를 배회하고, 혹은

조선의 병사들에게 압송되거나 민간인들에게 길안내를 받거나. 그렇게 걸었던 길 아닐까.

하멜 동상과 하멜이 타고온 범선이 놓인 한 옆에는 네덜란드문화체험관이 조그맣게 서있었다.

네덜란드의 나막신들을 직접 신어볼 수도 있고, (좀 뜬금없지만) 히딩크 생가나 캐리커쳐도 있고,

풍차니 튤립이니 모양을 딴 장식품들도 전시되어 있고. 풍차의 날개를 돌려 운수를 보라더니

'좋은 사람을 만나니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라'랜다.

산방산자락을 끼고 계속 가는 길, 올레길이 설마 산방산 위까지 올라가나 했는데 그런 건 아니고

우회하는 길이라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검푸르딩딩한 바다가 잔뜩 찌푸린채 빗발을 날리는

하늘이랑 섞여들어버렸다. 그나마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표지하는 건 길게 늘어진 섬하나.


파도에 씻기고 쓸려서 오랜 옛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모습이 되어 있는 해안가 바위들, 녹조류가

이끼처럼 온통 돋아난 모습이 신기하다. 암석의 때로 격하고 때로 부드러운 굴곡이 리드미컬한

가운데 부드러운 녹색 이끼가 빼곡하니 융단처럼 내려앉아 더욱 보드라운 느낌을 던져준다.

검정 모래사장 위에 떠밀려온 미역 비스무레한 해초류 동가리. 쪼글쪼글한 잎새 모양이 변기

청소하는 솔 같기도 하고. 굉장히 탱글탱글하고 두툼하니,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해안에 바로 붙어서 걷는 길은 이제 좀 뜸하려나, 해안도로의 아스팔트 위로 올라섰다. 오래지않아

나타난 조그만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는, 잠시 길가 벤치에 앉아 쉬는 중에 발견한

누군가의 호루라기.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던 이 곳이 마라도 잠수함타는 곳이라던가. 어느

부산한 가이드가 흘리고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멀리 형제섬이 보이는 바닷가. 바닷물이 들고 남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섬의 크기나 갯수가

달라진다는 형제섬을 흘낏거리며 걷는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려진 사람들의 소원도 만나고,

무슨 십장생도의 영지버섯처럼 자라난 풀떼기들도 만나고, 형제섬 앞으로 달리는 유람선도 만나고.

좀 가다 보니 나타나는 송악산 자락. 송악산은 제주도의 오름(기생화산) 중 남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인데, 제일 먼저 마주한 건 산자락에 뽕뽕 뚫린 구멍들. 일제시대에 여기에

대공포 요새를 만들었다나, 굴을 파고 포들을 숨겨놓았다 한다. 일반인의 접근은 통제된 채

그저 먼 발치에서만 볼 수 있는 뽕뽕뽕 구멍들.

그리고 송악산 중턱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 가만히 네다리로 버티고 선 채 잠을 자는 듯

미동도 않는 말이 있는가 하면, 사이좋게 서로 몸을 바싹 붙인 채 풀도 뜯고 꼬리를 휘둘러

파리도 쫓는 (아마도) 부모자식간의 말 두마리도 있었다. 그리고 올레길 10코스 처음부터

우릴 따라 내달려온 저 말모양의 표지판도.


송악산 정상, 성산일출봉만은 못하지만 그만큼 거대하게 푸욱 꺼진 분화구는 한눈에 채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고개를 휘휘 돌려야 크레이터의 끝에서 끝까지, 그리고 위에서 아래까지 시선으로

거칠게나마 훑어볼 수 있었던 것. 그 풀떼기들과 돌무더기들의 거친 질감과 거리감을 담기엔

카메라가 너무 가까웠다. 가뜩이나 황량한 풍경, 불쑥 코앞에 닥친 거대한 크레이터 때문에 더욱

막막해지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올레길이 만들어진지도 이제 꽤 되었나. 파랑 페인트로 그려진 화살표가 놓인 돌이 쪼개지고 그 틈으로

풀씨가 새어들어가선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화살표를 뚝 끊어먹었다. 애초 돌부터 쪼개져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화살표를 따른 오솔길 옆으로 말들이 슬몃슬몃 숨어있는 풍경이

희끄무레한 안개에 휘감겨 있었다.


아까까지는 돌무더기가 거칠거칠하거나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지는 해변가를 걸어서 힘들다 싶더니

어느결에 오르락내리락거리는 호젓한 산길 위로 걷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저 좁은 길 위로

폭탄처럼 투하되어 있는 말똥들의 향연이라니. 한발 한발, 지뢰를 밟을지도 모른다는 텐션 가득한

순간들. 그 덕에 주변 풍경을 여유롭게 보기보다는 발끝만 바라봐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빗물에

씻긴 풀꽃들이라거나 나무를 칭칭 감은 채 하얗게 변색된 덩굴 따위, 눈에 콕콕 박혔다.

말들이 돌아다니는 걸 막으려 했나보다. 제법 넓은 길이 나타났다 했더니, 어느 틈에 저런 울타리가

길 앞을 가로막았다. 숲까지도 길게 이어져있는 엉성한 울타리, 사람들은 저 옆에 한번 꺽여있는

좁은 창구로 이동해야 한다. 말을 막고 사람은 걸러내는 그런 신기한 울타리.

그렇게 울타리를 넘고 나니 또다른 말들이 나타났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뒷배경이 모두

날아가버린 어느 언덕 위에, 미끄럼틀처럼 고개를 드리우고 풀을 뜯는 어미말 옆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이방인들을 경계하는 망아지 한마리. 아니 근데, 말에 접근하지

말라면서 어떻게 올레길 표지는 말 옆에 저리도 바싹 묶어둘 수가 있나 말이다.

그리고 또다시 나타난 말들, 그보다 먼저 눈에 띈 건 푹 꺼진 땅에 구축된 콘크리트 구조물.

말들이 느긋하게 늘어져서 풀을 우물거리는 정경은 분명 평화로워야 함에도 왠지 모를

서늘함과 살벌함이 느껴지는 건 저 구조물 때문이었다. 뭔고 하니, 일제시대 이 근처에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방공포진지였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자 군사시설을 부랴부랴 확충하던 시기 건축하던 것으로 5기 중

하나는 미처 완공도 못한 상태였다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군사시설이 조선이 해방되는 순간을

그대로 멈춘 채 증거하는 셈이다.

흡사 정글 트레킹을 하는 기분. 어느덧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는 가방과 옷을 흠뻑 적시곤

삶의 무게를 한껏 더해주었고, 물방울을 머금어 축축 처진 잎사귀들이 시야를 가리고 길을

감추기에 이르렀다. 날이 맑았다면 온통 새까맣게 타버리고 목도 금방 말라버리고, 여러모로

그것도 쉽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끈덕진 가랑비도 쉽진 않단 말이다. 온통 희뿌옇게

'밥안개'가 내려앉은 제주도의 시골 풍경, 대충 16킬로미터에 이르는 올레길 10코스가 끝물에

다다른 참이어서, 조금 더 비를 맞으며 걷기로 했다.


예기치 않게 눈앞에 저런 시멘트 구조물이 나타나서 조금 놀랬다. 그리고 조금 지나 나타난 텅빈

주차장과 단발 비행기의 앙상한 얼개까지. 사람 하나 얼씬대지 않는 곳에 이런 것들이라니. 더욱

을씨년스럽고 추적추적 청승맞은 느낌이다. 알고보니 그 '알뜨르 비행장'과 관련된 시설들,

시멘트 구조물은 비행기 격납고, 주차장은 인근 양민학살장과 비행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

아직도 남아있는 청보리밭이 조금. 청보리축제는 이미 3,4월에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밭이 조금 남아있었던 거 같다. 상큼하고 건강한 보릿대가 위로 뻗어올라가면서

초록빛을 쭉쭉 짜올리다가 급기야 가늘고 보드라운 붓털같은 끄트머리에서 팡, 공기중으로

퍼뜨려 버리는 느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저 보리밭 위로 연두빛 구름이 곱게 뭉쳐있을 것만

같은데, 바람이 슬슬 일렁이며 초록빛 기운을 온통 흐트려버렸다.

그렇게 10코스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빗발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흙길엔 온통 물구덩이가

패여서 발이 푹푹 빠지는 열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10코스를 첨부터 끝까지 걷는데

5시간에서 6시간내외로 걸린다고 보면 될 듯.


아마도 청보리가 가득 차 있던 밭이 아니었을까. 양쪽으로 시꺼먼 흙, 굉장히 비옥해 보이는

흙이 잘 다독거려진 채 빗발을 흔적없이 빨아들였다. 그 사이로 난 곧고도 좁은 길 하나가

하모해수욕장, 모슬포항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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