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항구들이 숫자를 복창하기 시작하는 시작점, 페리빌딩. 여기에서부터 항구들이 홀수숫자로

 

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져서는 피어39를 지나 피어47까지 뻗어나가는 거다.

 

 앞에는 온갖 잡화를 취급하는 마켓이 열려서 청과물이나 수산물을 팔기도 하는데, 왠지 이 아저씨와 마네킹은

 

제페토 아저씨와 피노키오같은 느낌이어서 슬쩍 한 방.

 

 

 그리고 페리빌딩에서부터 차도 건너편에는 뭐랄까, 잔뜩 용틀임중인 조형물이 하나.

 

 멀찍이 베이브리지의 높은 끄트머리에서 늘어지는 강철줄들이 머리카락처럼 보인다.

 

 깃발을 쇠사슬로 묶은 채 굳센 부리로 지탱하고 있는 어느 난폭해 보이는 새 한 마리.

 

 

 베이 브리지로 향해 해변을 걷던 참에 툭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막힌 산책로. 거기에 그려진 미국의 해경 선박.

 

 

베이브릿지 아래로, 언뜻 보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잠깐 돌아본 사이에 휙 사라지곤 하는 요트가 한척.

 

막힌 산책로 끝에서 낚시줄을 드리운 아저씨 한 분. 슬쩍 다가가 가방을 보니 여즉 허탕인가부다.

 

베이브릿지도 심심하지 않고 꽤 이쁜 다리라고 생각하는데, 워낙 유명하고 그럴듯한 금문교가 옆에 있는 탓에 묻힌 거 같다.

 

아니면 온통 밋밋하고 재미없는 시멘트덩어리 다리들만 가득한 서울에서 온 내게만 특색있어 보이는지도.

 

 

페리빌딩과 유명한 시계탑. 완공된지 몇 년되지 않아 발생한 20세기 초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때 시계가 멈췄다던가.

 

 

안전망 그림자가 만들어낸 촘촘한 그물망에 꼼짝없이 엉켜버린 뱅글거리는 의자 두개.

 

 

 

여긴 원래 뭐가 있었길래 이렇게 기둥만 하릴없이 녹슬고 낡아가는 걸까. 가끔 갈매기들만 몸을 의지하는 한뼘남짓한 쉼터.

 

 

이녀석들은 샌프란시스코 동쪽의 거대한 활 앞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 같은 녀석들이다. 거북이와 불가사리, 문어들.

 

 

누가 설치한 작품인지 맥락은 전혀 모르겠지만, 맘대로 상상해보자면 그런 거 아닐까,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쫓겨난

 

천사 한 녀석,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라면 큐피드라 부를법한 꼬맹이 하나가 징징거리면서 어머니 치마폭같은 오로라 뒤로

 

숨겠다며 북쪽으로 날아가다가 문득 여러가지 사건으로 활과 화살을 떨어뜨리는 거다. 하늘에서 추락한 활이 그대로 박힌 곳.

 

이런 스토리, 잘만하면 뭐 하나 뚝딱뚝딱 만들어지겠다 싶은데 글쎄.

 

해변가 어느 닫힌 산책로 끝에 누군가 의자를 가져다 놨나보다. 앉아서 쉬기 참 좋겠는 게,

 

삼면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가 바람도 시원하겠다 햇살도 따땃하겠다.

 

오랜 시간 해풍과 파도에 시달렸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잔금이 쭉쭉 번지다 못해 덩어리로 콘크리트가 떨어져나가겠지.

 

아마도 해상 안전이나 보안과 관련된 시설인 듯, 철조망과 나팔꽃으로 보호받고 있는 시설물.

 

 

그리고 깜놀! 베이브릿지의 남쪽 끄트머리에 파이어폭스 사옥이 있었다니. 몇몇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음 모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탑..이랄까.

 

파이어폭스를 개발해낸 개발자들과 설립자들의 이름이 온통 빼곡하게 세워져있는 기념비라는 게 차라리 맞는 표현이겠다.

 

 

 

하루종일 새파랗게 날이 선 하늘이더니, 해가 어둑어둑 내려설 무렵의 하늘이 너무나도 이뻤던. 9월초의 샌프란시스코.

 

카메라를 쥐고 피어39의 뷰포인트를 찾아 걷고 있는데 마치 태풍이라도 치는 듯 휘몰아치는 구름이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전, 피어39로 걸어가는 길에 멀찍이 보이던 알카트라즈 섬.

 

 

그리고 큰 배를 바다로 내려보내는 도크, 그 너머로 스물스물 붉게 달아오를 준비가 된 샌프란의 하늘.

 

여기도 왠지 쌍쌍의 자물쇠들이 철조망에 굳게 매달려 있다. 열쇠는 아마도 바다로 던져버렸을까.

 

이런 하늘 빛깔, 술렁거림을 맛볼 수 있었다는 건 그야말로 이번 샌프란 출장 겸 여행의 백미.

 

 

 

해가 완전 바닷속으로 잠기고 나서야 샌프란시스코 항구의 불빛들이 둥싯둥싯 떠오르기 시작한다.

 

피어39의 레스토랑들과 샵들, 노점들까지도 불야성을 이루던 찰나지간의 매직 아워.

 

피어39의 한가운데를 버티고 선 메리고라운드. 그렇게 크진 않지만 짭조름한 바닷내와 더불어 흥취를 북돋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피어39의 끄트머리, 마치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에서처럼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헬륨가스 들이찬 풍선처럼 둥실.

 

 

매직아워도 잠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피어39에 남은 거라곤 물색모르고 여전히 들떠있는 공기와 몇몇 알전구들.

 

 

 

느닷없이 도시가 술렁거렸다. 잠시만 방심하면 어디서고 빽빽, 소리를 내며 시뻘겋게 내달리는 소방차가 튀어나오긴 하는 도시라지만

 

조금은 다른 종류의 술렁거림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사실은 유니온 스퀘어에서 이미 한번 조우했던, 익숙한 그의 실루엣과 푸근한 똥배였다. 그때는 미처 마음을 다잡지 못해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놓쳤던 것 뿐, 유니온 스퀘어에서 피셔맨스워프까지 사십분을 걸으며 아쉬워하던 참이라 이번엔 영락없었다. 찰칵.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의 속도에 맞추어 카메라를 움직이는, 나름 패닝까지 시도해가며 찰칵.

 

무지하게 시원할 거 같다. 그 와중에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썼지만, 사실 저렇게 입고 타다가 사고가 나면 아후 정말.

 

어디가 어떻게 까지거나 찢어지던 무지하게 아플 거 같다.

 

시선을 온통 살색 충만한 아저씨한테 뺐겼다가 재미난 자전거들을 몇 대 흘려보낸 뒤, 정신을 가다듬고 끊이지 않는 행렬을 훑었다.

 

키보다도 훨씬 높은 자전거, 그것도 스트라이다와 같은 삼각 형태의 자전거가 몇 대 지나가길래 그 중 하나를 캡쳐.

 

 

 

샌프란시스코의 북쪽끝에 위치한 항구지역, 피셔맨스 워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점, 시간당 8달러였던가에

 

일단 세시간을 약정하고 빌려서는 저멀리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붉은 금문교를 향해 출발.

 

금문교 반대쪽을 찍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대여점 아저씨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문제는 금문교로 향하는 길에 계속 밟히던 풍경들. 오른쪽으로 끼고 향하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는 악명높은 수용소

 

알카트라즈섬 내부의 건물과 시설물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이리저리 휘영청 종횡하는 부두 시설들이 보여주는 리드미컬한 곡선들과 시퍼런 바닷물 역시.

 

 

 

중간에 잠시 녹색빛 가득한 공원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하고.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는 공원 투어가 있을 정도로 공원이 많다고.

 

 수백척의 요트가 대규모 공용주차장의 차들처럼 빽빽히 열맞춰 주차되어 있는 정박장을 지나고.

 

 

 어느새 이만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야외전시물들이 놓인 새초록 잔디밭 너머로는 붉은 금문교가, 앞으로는 개장수 아저씨가.

 

 

자전거 전용도로의 방향을 일러주는 표지판, 바닷바람에 지친 듯한 피로한 낯빛이 맘에 들었다. 

 

 돌아보면 생각보다 먼 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문교까지 닿는 길이 제법 오르막과 내리막이 랜덤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런 사진찍기 딱 좋은 명당들을 마주치는 재미. 그리고 조금씩 금문교가 육박해들어오는 생생한 실감까지.

 

 

 

 시간대에 따라 금문교 위의 통행로를 자전거에 교차해서 오픈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표지판이 이만치 닳았을만큼 오랜 룰인 듯.

 

 

그리고 사진찍기 좋겠다 싶은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바글거리는 사람들. 저 꼬맹이들은 무슨 수학여행이라도 나온 듯 시끌벅적.

 

 바야흐로 금문교 진입 직전. 360도로 크게 회전하는 길 중턱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는 금문교와 함께 한 장.

 

 다리 양쪽으로 나 있는 인도 겸 자전거 도로는 생각보다 좁아서인지,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온갖 규정들이 입구부터 빼곡했다.

 

 

 금문교를 건너다가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풍경. 꽤나 멀어 보이는 게, 자전거로 쉬지 않고 달려도 삼십분은 걸리겠다.

 

 조금 땡겨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No U Turn. 자전거나 보행자를 위한 표지판은 아니고 실은 자동차들 보라는 표지라지만 왠지. 뭔가 계시를 받는 느낌.

 

 굉장히 고풍스럽고 우아한 금문교의 준공기념패랄까나. 청동덩어리를 양각한 듯한 모양새하며 그 클래식한 글씨체까지.

 

 

 

 뭐라더라, 선진시민은 우측통행이라던 어느 정부의 강변과는 상관없이 좌측통행을 하되 대체로 내키는 대로 보행중인 미국시민들.

 

 

 금문교 저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의 군집이 바로 소살리토. 시간만 괜찮으면 저기까지 내달려도 좋을 듯 해서 고민고민하던 중.

 

보통은 저기까지 내달리고는 페리에 자전거째 싣고 피셔맨스워프로 돌아오는 코스를 많이들 탄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금문교 건너편에 도착. 이쪽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인 왕궁, 그 거대한 정사각형 형태의 성벽 외곽으로 한바퀴를 돌고 나니 이제는 안으로 돌아다녀볼 차례.

 

 

 

반질거리는 대리석 바닥은 근 이천년 가까이 숱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쓸려 광택에 광택을 더했음이 틀림없고, 온통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들의 위로는 그 오랜 세월의 현현인 것처럼 두텁고 육중한 벽돌들이 벽을 이루고 공간을 쌓았다.

 

 

 

두터운 외벽과 내벽 사이의 공간, 이 빈 틈새로 수백년이 지난 폐허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거처를 구하고, 그렇게 잊혀졌던 곳이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스플릿과 이 왕궁이 주목을 받은 건 1차 세계대전 시기 항구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라고.

 

 

여전히 골목은 말그대로 미로와 같고, 곳곳에서 막다른 길 앞에 나를 멈춰세우지만, 그렇게 잠시 잦아든 발걸음 앞에 놓인 게

 

이런 비감하면서도 다정한 풍경이라면. 저런 대리석 받침은 대체 몇백년을 이곳에 버티고 있던 걸까. 누가 저리로 옮겨놨을까.

 

 

빼곡히 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과 골목 사이를 뱅글뱅글 감아나가다 보면 그래도 곳곳에서 확 숨이 트이는 광장들을 만나게 된다.

 

동상 너머로 온통 벽을 지탱하기 위한 조임쇠들이 벽면 곳곳에 박혀 있는 오랜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저건 무슨 행정관청이었으려나.

 

 

 

 

광장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골목들을 따라 둥둥 흘러나온 사람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건물들과 대리석에 눈이 부신다.

 

 

 

 

 

 

태국 꼬싸멧 지도, 반페에서 배타고 삼십분이면 꼬싸멧의 나단페리항에 도착한다.

 

주로 동쪽 해안에 숙소가 몰려있지만 북쪽에도, 또 서쪽에도 리조트나 숙소가 있다.

 

반페의 누안팁 부두에서 받은 안내문. 가격과 행선지가 나와있다.

 

그리고 기타 정보.

 

문제가 되었던 지점, 방콕 에까마이에서 아침5시부터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더니 실제로 에까마이 동부터미널에서

 

받은 일정표는 아침 7시부터 첫차가 있었다. 역시 여행다니면서 가이드북을 100% 믿어선 안 될 일.

 

꼬싸멧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입장료가 별도로 부과된다. 인당 200바트.

 

그리고 티켓, 반페의 누안팁 항구에서 꼬싸멧의 나단 항구까지 오가는 티켓이다.

 

이건 방콕의 에까마이 동부버스터미널에서 반페까지 오가는 버스 티켓. (왕복으로 미리 구매하면 더 싸다.)

 

그리고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에까마이 동부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올 때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낸 톨게이트 영수증.

 

구간별 요금이 차등지급될 테고, 그 구간을 식별하는 방법으로 저렇게 티켓 테두리에 구멍을 뚫어서 몇번에서 몇번 구간까지

 

고속도로를 운행했는지 확인하는 듯 했다. 디지털화되지는 않은 상태지만 나름 부족할 것 없는 아날로그의 감성.

 

 

 

태국 꼬싸멧의 북부해안, 포장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거나 아예 헐벗은 비포장도로길을 짐가방 돌돌거리며 걷는 참이다.

 

적당히 따끈한 햇살, 그리고 오른켠에 계속 따라오는 맑은 청록빛의 바다 덕에 마냥 기분좋게 걷던 길.

 

드문드문 뭉텅이 져 있는 건물들엔 이미 휴양이 한참이다. 휴양지의 로망 해먹을 매달고 까무룩 잠든 사람 아래선

 

서늘한 시멘트 바닥에 최대한 몸을 밀착한 채 널부러진 백구 한마리가 동반 수면중이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제단이랄까 자그마한 불당이랄까. 이번 여행동안 다치지 않고 즐겁기를 빌어본다.

 

당장은 묵기로 한 리조트까지 짐가방을 무사히 끌고 가는 게 급선무.

 

 

곳곳에서 느껴지는 아늑하고 살짝 럭셔리한 리조트의 느낌들. 꼬싸멧의 동쪽 해안은 저렴한 숙소가 몰려있고

 

서쪽 해안은 고급 리조트가 하나 있다더니 북쪽은 이제 슬슬 뭐가 생기는 참인 듯 하다.

 

 

 

중간중간, 저런 데서 늘어지게 앉아서 커피 한잔이던 맥주 한잔 하면 딱 좋겠다 싶은 레스토랑 겸 바들이 보이고.

 

 

싱싱하게 피어오른 붉은 꽃이 더없이 화려하다 싶은가 하면, 돌돌 말뚝을 감고 올라선 푸른 잎사귀는 그야말로 남국 스타일.

 

 

어느 허름한 가옥 앞에 붙어있던 팔괘거울. 무협지에서나 혹은 강시와 영환도사가 등장할 법한 영화에서 보일 듯한 아이템.

 

조그마한 섬에서 움직이는 방법은 용달차처럼 생긴 택시인 '썽태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오토바이를 빌릴 수 있다.

 

300바트에 약 11,000원(2013. 2월 기준)이니까 보통 하루에 300바트하는 스쿠터는 대여료가 꽤 싸다. 그리고 재미있다.

 

 

곳곳에 있는 부두들, 그리고 자그맣게 펼쳐져 있어 마치 개인 모래사장같은 해변들.

 

꽃잎들이 겹겹이 포개져서 붉은 하트를 만들었다.

 

 

방갈로나 리조트라는 이름이 붙은 숙소들은 으레 이런 시원한 그늘막을 마련해두고 사람들을 뒹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오토바이 주차장 옆에 있던 자그마한 경비 초소..랄까나 사무소랄까나. 누런 선풍기 날개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숙소. 삼십분 동안 휘적휘적 걸으며 사진찍으며 온 거 치곤 꽤 금방 와버린 느낌이다.

 

애초 가이드북도 없이 그냥 꼬싸멧까지 오는 길, 그리고 이 곳만 아고다 통해서 예약했으니 이제부터 휴양.

 

 

 

 

태국 중부지방의 유명한 휴양지로는 파타야 정도가 흔히 알려진 곳이지만, 파타야 조금 아래쪽에 있는 해안마을인

 

반페(BANPHAE)에서 배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는 꼬싸멧은 그야말로 (한국인들에게) 숨겨진 휴양섬이다.

 

 

* 가는 길 : 방콕 동부버스터미널(에까마이)에서 07:00부터 1시간 간격 반페행 버스 운행(3시간반 소요)

반페 항구에서 꼬싸멧행 배 1시간 간격 운행(30분 소요)

 

방콕 에까마이에 있는 동부 버스터미널에 도착, 7시에 출발하는 반페행 첫 버스를 탔다. 역시 정시 출발은 무리.

 

반페까지 달리는 길은 대체로 왕복 이차선에 아스팔트 포장도 군데군데 벗겨져나간 편치 않은 길이지만 버스는 나쁘지 않다.

 

에어콘도 나오고, 제법 시트도 푹신하고, 차냄새도 심하지 않은데다가 운전기사 아저씨도 편안하게 운전했던 듯.

사실 태국 방콕까지의 5시간여 밤비행 덕에 다소 지쳐있기도 했고, 공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새벽 시간에

 

짐을 끌고 가는 길도 쉽지 않아서 꽤나 지쳐있던 터라 반페에서 배에 오르는 시점으로 순간이동.

 

항구에 가득한 배들이 제각기 구명복들을 오징어처럼 널어두었다.

 

저 얄팍하고 약하디 약해보이는 발판을 딛고 배로 가야 한다는데, 들고 있던 짐은 20키로가 훌쩍 넘는다는 게 함정.

 

 

부두의 널빤지는 이빨이 어찌나 넓던지 짐가방의 돌돌이 바퀴를 계속 깨물려고 들어 더욱 쉽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부둣가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의 저 여유로운 의자 위 소품들과 긴의자의 세상이 머지않았다는 예감.

 

반페의 부두에서 내다본 방파제, 그리고 그 너머 아늑한 언덕같은 느낌의 섬이 아마도 꼬싸멧.

 

 

정시마다 반페를 떠나 꼬싸멧을 출항하는 배는 이제 항구를 벗어나기 시작.

 

시원한 바닷바람과 강렬한 태양이 이제야 조금 태국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그렇게 작지 않은 배는 잔잔한 바다 위를 제법 빠르게 내달려 꼬싸멧을 왈칵왈칵 끌어당기고 있었고.

 

아무리 남국이라도 여기 역시 북반구인지라 현재 계절은 겨울, 현지인들은 목도리도 하고 비니도 쓰고 그런 날씨였다.

드디어 손에 잡힐 정도의 거리에 육박해오는 꼬싸멧.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리조트 건물들과 빌라들이 멋지다.

 

그리고 꼬싸멧의 항구 도착.

 

 

저 거대한 뒷태가 뭔가 했더니 아마도 바다의 신, 이런 분이신가 보다. 손에는 사람들이 바친 꽃다발이 주렁주렁.

 

그러고 보면 역시 태국의 꽃의 나라. 뱃전마다 꽃다발이 모셔졌다.

 

항구를 벗어나 처음 밟는 꼬싸멧의 풍경은 살짝 허름한 방콕의 골목 같달까.

 

(아마 세븐일레븐 앞의 저 아저씨가 피리를 불며 바다의 신을 위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세모꼴 모양의 섬 북부에 위치한 숙소까지 걷기로 맘을 정하고 몇걸음 떼지 않아 발견한 풍경들.

 

이곳이 태국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조금만 더 청명했다면 더욱 이뻤을 테지만, 하얀 모래사장하며 맑은 청록빛의 바다.

 

서울에서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10시간여의 여독이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100여년전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구룡포항 앞의 조그마한 거리, 일본식의 '적산가옥'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나면 여느 소도시, 아니 조그마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높아봐야 2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맞부비고 있는 조그마한 골목통, 그 와중에도 네모 반듯반듯하고 말끔한 분위기의

 

일본식 건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옆엣 건물들의 어깨 사이에서 살짝 기죽어 있는 듯한 단층 건물 역시 담백한 직선과 네모로 이루어진 형태가 일본냄새를 풍긴다.

 

 

100년전의 낡은 지붕, 붉은 벽돌과 뻥 뚫린 나무창살까지 일본식 가옥거리의 이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한 사진들.

 

 

 

잔설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채 하얗고 까만 일본식 기와가 얹힌 담장들이 차분하다.

 

그렇게 골목통을 따라 휘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일본식 가옥들은 저만치 밀려나고 또다른 생활의 풍경이 나타난다.

 

날것의 거칠한 질감 가득한 콘크리트 벽돌블록을 쌓아만든 담장 옆에는 그래도 구룡포 앞바다빛깔을 담은 파란색 칠의 대문이.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는 외계인 가면처럼 생긴 오징어들이 배를 째고서 바닷바람에 마르는 중이었다.

 

지붕위를 두텁게 덮었던 하얀 눈이불은 발치까지 끌어내려져서는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온통 녹슬어버린 파란 대문짝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풍상, 바닷바람의 짠기,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일상..

 

 

분분이 남아있던 잔설들은 단정하고 담백한 일본식 기와지붕의 갈비뼈를 까맣게 드러냈고, 거칠고 투박한 벽돌은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근대문화역사거리의 가장 윗동네에 있던 초등학교는 언제부터인지 폐교된 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윗동네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의 저녁 풍경. 불밝혀진 노점들의 행렬 너머로 바닷물이 일렁인다.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찻집. 잠시 들러 몸도 녹이고 차 한잔을 하려 하였건만 자리도 몇 개 안 되고 문도 일찍 닫는 듯 하다.

 

 

애초엔 '근대문화역사거리'인 줄만 알고 들어섰던 골목길이었지만 꼭 그런 느낌만 담겨있던 공간은 아니었다.

 

사실 늘 새롭고 예기치 않은 풍경으로 이끌어줬던 건 이런 골목길들이 품고 있는 마력 덕분이었으니,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

 

 

 

 

 

구룡포항 앞에 있는 어부의 동상, 손에 실제로 두꺼운 줄이 감긴 채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바다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온통 빼곡하게 들어선 채 후끈한 김을 퍼올리고 있는 대게 음식점들. 가게마다 대게 한마리씩 간판에 올렸다.

 

 

구룡포항을 굽어보는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의 탁 트인 구룡포항 풍경.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리는 시점, 항구 앞 노점들이 발갛다.

 

한쪽에서는 품바 '예술공연단'이 쉼없는 깨방정으로 장터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지만 늦은 시간 탓인지 한적하기만 하다.

 

삽시간에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장터, 과메기와 대게를 파는 노점들은 한산하고 주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서 한담중이던.

 

풍어를 기원하며 배에 꽂아둔 나뭇가지들.

 

 

게섰거라~ 찜통에서 쉼없이 뿜어나오는 하얀 연기엔 촉촉하고 탱글거리는 대게의 바다내음이 섞였다.

 

 

 

 

 

 

 

 

아들을 빌어보세요.

 

 

 

 

 

제주 모슬포항, 고등어회가 유명한 이 곳,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에서 맞았던 봄.

 

 

짠기운 섞인 비바람에 삭아내려 조각조각 부서져내리는 항구 끄트머리의 나무틀.

 

 

그 틈새에서 용케도 뿌리를 내리고 새 잎사귀를 틔워내고 줄기를 겯고 급기야 꽃망울까지 터뜨린 녀석들.

 

언제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모슬포항,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무척이나 리얼하다.

 

모슬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버스를 몇차례 타보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꼭 사람만은 아니더라는.

 

기다림이 간절하면 저렇게 갓 박아둔 보도블록 틈새로 손가락만큼 굵은 꽃대를 세우기도 하더라는.

 

 

 

 

 

밤바다란 온통 깜깜할 뿐이어서,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또 해안가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는 거다.

그건 온갖 네온사인이니 간접조명으로 흐트러진 도심의 어둠에 익숙해던 눈과 마음에 대한 일종의 테러와도

같았는지라 저렇게 뜬금없이 동그마니 놓인 자판기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유백색의 불빛조차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내, 까맣게 타버린 어둠 속에서 홀로 저렇게 불을 밝히고 선 허여멀끔한 녀석의 철판 껍데기라거나

차갑다 못해 시린 느낌으로 번지는 불빛이라거나, 채 몇걸음 내닫기도 전에 바닥에 하릴없이 달라붙고 말아선

고작 발끝에만 뭉쳐있는 허약하고 맥아리없는 빛그림자들이라거나. 왠지 월-E의 첫장면이 생각났다.







목포는 항구다, 깊은 밤 산책길에 만난 아크로바틱한 조기들.

에 이어지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목포수협 위판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선들이 쏟아내는

생선이 어떻게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를 봤으니 이젠, 그 생선들이 어떻게 경매에 붙여지고 팔려나가는지.

온통 새까맣기만 하더니, 어느덧 희뿌여니 바다 저편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밤새 뱅글거리며 밤바다에서 있을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던 소리없는 사이렌 불빛이 이제야 조금 졸음이 오는지 한풀 꺾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또렷하게 해가 뜨는 건 구경하기 쉽지 않겠다 예감했지만, 그래도 제법 구름들에 붉은 물이

슬금슬금 배어오르는 게 시시각각 주위 풍경과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하나도 안보이던 먹장 커튼이 걷히고

점차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좀 늦었다 싶어서 재게 걸음을 놀리는 와중, 벌써 해안가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어서 한참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그네들이 살짝 떨어져 있는 배들을 낚시질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배들이 묶여있는 두꺼운 밧줄이 마치 그들이 늘어뜨린 낚시줄 같이 보였다.

밤에 지나다가 '개 풀어놓았음, 물려도 책임안짐'이라는 살벌한 경고문구에 쫄아서 돌아갔던 곳에는 그새

불이 환히 밝혀진 채 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알고 보니 생선들을 담는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공장이랄까,

좁지 않은 마당 한가득 나무상자가 잔뜩 포개어 쌓여있었고, 새벽바다 냄새에 더해 싱그러운 나왕 나무

냄새가 온통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핏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노랑색 낡은 간판 위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운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저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려나. 눈앞의 화분들 때문에

시야가 약간은 가리거나 초록빛으로 일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전망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은 창고를 지나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그 옆의 창고로 향했더니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사람 한명이 겨우 걸어다닐 통로를 드문드문 남기고는 온통 바닥을 몇 겹으로 점령해버린 생선들, 그리고 그 통로에

비집고 서서는 경매인의 손가락들과 생선들로 시선을 옮기기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인 거다. 목포수협 마크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쓴 경매인분들을 한번 쳐다보고, 그 밑에 지천으로 깔린

셀수없이 많은 생선들의 상태와 크기와 선도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별해내느라 번쩍거리는 눈빛. 금빛으로

번쩍이는 오동통한 조기들은 바다처럼 싱그러운 짠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은빛의 긴 칼처럼 번뜩이는

갈치들은 비늘이 벗겨지거나 하는 상처 하나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매물에 대해서 제각기의 금액을 말하고, 빨간모자 아저씨는 그걸

다시 확인하며 창고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고도 재빠른 목소리로 모두에게 확인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풍경.

 

 창고 끝에 쌓인 생선들부터 거래가 이루어져서는 점점 옮겨오는 경매인, 그리고 그를 따라 모세혈관같은 샛길을

밟고 신속하고 헤쳐 모이는 사람들. 거래가 끝난 생선들은 리어카나 트럭에 바삐 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부옇게 밝아오는 바다와 하늘.

거래에 나온 건 대풍이라는 조기만이 아니었다. 갈치도 있었고, 복어도 있었고, 고등어니 삼치도 있었고, 심지어

익숙하게 생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상어도 있었다. 거의 '시장에 가면~'으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무한

돌림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의 이상하게 생긴 놈도 상어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발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보고 '홍어X'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이것도 모르는 딱한 도시사람을 봤다는 투로 '아귀'라고 알려주셨다. 콩나물넣고 찜으로 쪄먹는

아귀 혹은 아구찜 모르냐고 부연설명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럼 저건 '홍어X'이 아니라 '아귀X'이구나 하고

머릿속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눈에 담아두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떠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외판장 전경을 담고는 자리를 떴다. 수협외판장

앞면에 내려진 철제 셔터막에는 귀여운 거북이들이 곰실곰실.

이제 저렇게 경매를 거쳐 팔려나온 조기와 갈치 같은 생선들이 위판장 근처 생선가게에서부터 깔리기 시작했나보다.

깔끔하게 포장된 조기 상자하며, 진열대 아래로 추욱추욱 꼬리를 늘어뜨린 갈치들. 갈치 꼬리들이 무슨 고드름처럼

진열대에 매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이미 해가 바싹 떠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오르는 중이었나보다.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배 위로도, 걸쭉한 물결이 이는 불투명한 수면 위로도, 조금씩 저 너머 바다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침없이 햇살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갈매기도 날고, 날다가 지친 새들은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구름이 좀만 더 옅었어도

햇빛이 좀더 구름의 장막을 뚫고 넓게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느낌도 다르고, 수면 위에 이는 고요한 물결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달라서

좀체 해돋이 사진이나 바다 사진은 골라내질 못하겠다. 하여, 그냥 핑계김에 전부 올려버리는 게으름을.


그러다가 역시, 제버릇 개 못준다고 또다시 옆길로 새어서는 꽃도 보고, 어느 낡은 건물 벽면에 기대어선 닻도

구경하고. 산동네처럼 언덕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며 저 사잇길로 돌아다니면 예기치 못한

재미난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남겨두었지만.

이런 운치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 열게 될 저런 낡은 대문도 맘에 들었다. 해풍을 맞고 소금기에 절어 눅진눅진

삭아가고 있을 대문 위로 세워져있는 짧막한 창살들도 방범용이라기엔 시늉만 남은, 경비할아버지같은 느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목포의 유달산 일출을 찍기로 한 출사 여행이었던지라 저녁 일정은 일찍 마쳤다. 술도 깰 겸 하여 습관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훌쩍 혼자서 나온 건 이미 늦은 밤, 그래도 밤 공기도 선선한데다가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너무 좋아 내처 걸어보기로 했더랬다. 알고 보니 숙소가 위치한 유달산쪽은 옛 목포항이 있던

곳이라나, 몇걸음 걷기도 전에 물결치는 필체로 쓰인 '예향목포'란 돌덩이부터 만났다.

역시 항구도시인지라 길가에 이렇게 닻을 겹겹이 쌓아둔 채 셔터를 내린 상점들도 보이고, 스크류니 프로펠러니

선박에 관련된 장비들을 취급하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지나는 사람은 고사하고 차들도 흔치 않아 조금 헛헛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혼자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밤길을 걷는 건 굉장히 유쾌한 일이다.

나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선 한밤 중에 단풍놀이도 즐기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절여졌을 텐데도 노랗게 잘도

익은 나뭇잎들이 이쁘다. 그런데 그 밑에 줄줄이 주차해 있는 저 리어카들은 왜 저렇게 바닥이 길게 덧대어져

있는 걸까. 한 두대도 아니고 우르르 세워진 리어카들이 전부 저 모양이니 더욱 궁금증이 이는 거다. 나중에

목포 수협 위판장까지 걷고 나서야 풀린 의문.

목적지를 정해두고 걷는 길이 아니었으니, 골목이 나오면 괜히 한번 꺽어들어가 보기도 하고, 뭔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게 있겠다 싶으면 옆길로 새보기도 하고, 아니면 굳이 뒤로 되돌아와 확인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떠도는 중에 지나친

골목 중 하나. 작고 여윈 이층짜리 건물에 문짝은 왜 그리도 많이 달렸는지, 문짝 하나 창문 하나로 이루어진 상점들이

세네개는 들어서 있는 거 같았다. 가로등 불빛을 양분삼아 하얀 스티로폼 상자 속에서 쑥쑥 자라던 상추들도 있었고.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문득 다다른 곳이었다. 목포수협 위판장. 불이 환하게 밝혀진 곳이 멀찌감치에서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을 향해 걸었을 뿐이었는데 무슨 마을 잔치라도 벌어진 듯이 웅성대는 분위기에 온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온 듯 바글바글한 인구밀도까지. 뭔지 몰라도 바싹 구미가 당겨서 풍경 틈새에 비집고 들었다.


그 결과,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떻게 어선들이 잡은 생선이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 그 과정을 전부

구경할 수 있었다. 더불어 다음날 새벽 5시부터 경매가 진행된다는 정보도 입수해서, 경매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생선들이 팔려나가는지까지 알 수 있었던 뜻밖의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우선은 경매를 준비하기까지,

생선들이 집하되고 분류되고 포장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사진은 어쩌다보니 역순으로 찍혔더라는.

어선들이 항구에 배를 가까이 대고 나면, 크레인차가 배 곁으로 바싹 붙어선 단단히 위치를 잡는다. 온통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온 배와 그 우악스런 불빛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데, 게다가 어디선가

솔솔 풍기는 기름 냄새와 둔중한 기계의 울음까지.

배의 갑판 위에서 잡은 고기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선원 아저씨들. 예비군 모자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젊은이도 있고,

그야말로 뱃사람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저씨도 있고. 옷에 가려 보이진 않아도 그네들의 팔뚝은 두꺼운 근육들로 감겨

사방으로 갈라지지 않을까 싶다. 크레인이 늘여뜨려진 배의 한복판에서 잰 손놀림으로 뚝딱 짐 하나를 꾸린 사람들.


그렇게 잘 여며진 생선 상자들이 크레인의 움직임에 따라 번쩍 들려서는 안전하게 항구 위 단단한 바닥에 옮겨졌다.

두껍고 까만 크레인 낚시바늘이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렸지만, 그런 건 일하는 사람이 아닌 놀고 있는 사람 눈에나

보이는 법인가 보다.

한짐을 꽁꽁 안전하게 묶고 있던 두꺼운 밧줄을 헤집어서는 번쩍,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겨진

생선들은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부어져서 아주머니들이 분류해주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어찌나 생선들이

많은지, 당연하지만 한마리 한마리 긁히거나 찌그러지지 않게 챙길 여유는 없는 듯 했다. 마치 우유가 담긴

그릇에 씨리얼을 붓듯이 가차없이 부어버리는 그 냉정한 손속이라니.

일렬로 늘어선 아주머니들과 노랑 박스를 무질서하게 가득 채운 조기들과의 기싸움이 시작되고. 아주머니들의

군더더기라곤 없는 정연한 몸놀림과 생각보다 현란한 패션센스에 뒤지지 않는 생선들의 아크로바틱한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입을 쩍쩍 벌린 채.
 

아주머니들은 인어공주처럼 온통 반짝거리는 비늘로 뒤덮인 하반신을 하고 있었다. 창백한 색감의 형광등 아래에서

미끌거리며 반짝거리는 비닐 앞치마 자체의 광택도 눈이 부셨지만. 생선의 사이즈에 따라 각기 다른 상자에 옮겨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생선들을 분류하는 손놀림에서 일말의 망설임이나 잡생각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무슨 '생활의 달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달까.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생선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펄떡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제각기의 패션센스와 칼라를 과시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오게 되는 그런 따뜻한 풍경이기도 했다. 열두시가 넘은 오밤중에 나와서 쉼없이 저렇게 일하시는 게 그렇게

마냥 재미있는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노랑 박스에 포위당하다시피 한 상태로 끊임없이 새로 부어지는

생선들의 산을 의연하게 해치우시는 모습은, 뭐랄까, 약간 영웅적인 분위기마져 풍겼던 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이즈별로 분류된 생선을 받아서는 저렇게 가지런히 정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사이즈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약간씩 자세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무슨 테트리스 조각맞추듯이 이렇게 저렇게 짜맞춰선

틀림없이 저런 봉긋한 언덕 모양의 생선박스를 만들어내시는 거다. 그 손놀림 역시 신묘하기가 달인의 경지더라는.

완성된 생선꾸러미엔 저렇게 물을 한바가지 끼얹어서는 창고 맨 뒤쪽부터 차근차근 놓이게 되는 거다.

그 전에 생선의 선도 유지를 위해 빠질 수 없는 얼음 한 삽. 큰 칼 옆에 차고 자세를 잡으신 충무공은 아니라지만

눈삽을 옆에 차고 깔맞춤된 '구루마'에 턱하니 기대선 모습이 어찌나 멋지시던지. 마침 약간 빛살도 새어들어와

머리 위로 내려떨어졌으니 더할나위없는 영웅의 풍모.

이렇게 안에서부터 바싹 붙어선 차곡차곡 채워지는 생선들은 이제 새벽에 있을 경매를 기다리며 네다섯시간을

얼음찜질하는 거다. 물론 이 곳으로 목포 근방의 어선들이 모두 집결하니까 생선량이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얼핏 보기에도 조기가 정말 풍년이긴 한 것 같다. 드넓은 위판장 바닥이 온통 저렇게 빈틈없이 빽빽하게 갈무리된

조기 꾸러미로 깔려 버렸다.

그래도 그 옆에서 수협 위판장 바닥에 대한 나름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녀석들은 새우젓 드럼통들. 꽁꽁 묶인

주둥이 사이로 용케도 삐져나온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고 나서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던 위판장 벽면의 무슨 전기스위치상자. 손대지 맛시요. 위염. '맛시요'란 말은

전라도의 특징적인 억양을 그대로 살려서 적은 거 같은데 왠지 발음하며 읽어볼수록 맛깔스러운 거 같다.

손대지 맛시요. 알았시요, 라고 얼른 대답해 주고 싶은.

조금이라도 자고 몇 시간 후에 있을 경매 모습을 구경하려면 얼른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이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숙소.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짧았고,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그토록 길게 덧대어진 리어카들의 쓰임을 알아냈으니, 생선을 담는 나무상자를 가능한

많이 싣고 옮기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 저런 식으로 '대륙'의 느낌 가득하게 나무상자를 바리바리 싣고는

위판장에서 필요할 때 옮겨와서 쓰는 거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미 자정이 지난 늦은 밤이었지만 시꺼먼 바다를 가르며 불빛들이 나타나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생선을 실은 배인지 아니면 막 내려놓은 배인지 모르겠지만 불빛 세 개가 발톱처럼 수면을

긁으며 앞으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배가 지나가고 나면 길 옆으론 온통 까만 어둠이다. 빵꾸난 구멍으로 새어나올 법한

불빛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먹지같은 까만 벽이 하나 바닥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세워진 느낌. '바다'라는 곳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망연함이란 건 사실 저런 형태 아닐까 싶었다. 제 손가락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무저갱의 어둠 속. 아마도 밤바다가 웅크리고 있을 그 무시무시한 공간을 옆으로 두고는

열심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저 털뭉치였다.

흐릿한 하늘 아래 황토빛 털복숭이가 하나, 해안가의 시꺼먼 현무암 돌담 위에서 바다로

나서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귀를 쫑긋 세우고는 등을 둥글게 말아올린

고양이가 배웅이라도 하듯,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먼바다로 나서는 배에 붙박혀있었다.
 

배가 멀찍이 나아가며 점점 나아가는 걸 확인하고야 귀찮다는 듯 슬쩍 몸을 돌려 카메라를

바라봤다. 뭐야, 배웅하는데 왜 방해하고 그래, 라는 투다. 배에 녀석의 친구나 주인이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님 누군가가 배를 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바다를, 배를

바라보고 꼼짝없이 앉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온갖 드라마를 불러온다.

가파도엔 왜 이리 고양이가 많아, 싶어지도록 몇걸음 채 걷기도 전에 다시 발견한 이쁜 고양이.

현무암 돌무더기에 살짝 가려진 몸을 빙글 돌리고는 얼추 반쯤 가려진 얼굴로 이쪽을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었다. 선명히 드러난 한쪽눈의 모양새라거나 얼룩덜룩한 무늬가 호랑이같은 몸의

실루엣이라거나, 뒷배경으로 당당히 서있는 싱싱한 풀떼기의 위풍당당함이라거나.

잠깐 그렇게 포토세션을 갖고는 이내 가르릉대며 몸을 피해버리는 도도한 녀석. 뭐, 그래도

저렇게 멋진 포즈를 잡아주었으니 그걸 제대로 포착하고 못하고는 찍는 사람의 문제인 거다.

이제 여기저기서 고양이가 툭툭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달까. 가파도의

해안길을 따라 둘려진 바람숭숭 돌담 위에서도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했다. 이녀석, 비를

피하지도 않고 저렇게 계속 맞고 있는 건가, 싶도록 엉망이 된 털인데다가 눈도 잘 못뜨고

꼬박꼬박 조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온몸을 잔뜩 옹송그리고 꼬리까지 바싹 몸에 두른

모습이 정말 어디가 안 좋은 건가 싶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도 귀찮다는 듯 고개만 휘휘 돌릴 뿐 딱히 새초롬하니 도도쟁이 놀이를

하지도 않고, 움직임도 느릿느릿하다. 그냥 졸릴 뿐인거 같기도 하고.

가파도의 한가운데 교회 앞마당에서 발견한 껌정얼룩고양이. 정문 뒤에 슬쩍 몸을 가린 채

이쪽을 경계하는 모습을 처음에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한걸음씩 가까이 접근하는 모습을 바싹 곤두선 모습으로 경계하다간 후다닥 도망가서

몸을 숨기겠답시고 벽돌 뒤에서 눈치를 빤히 보고 있던 녀석이다. 저기에 몸이 숨겨질거라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법 커다란 벽돌의 든든함이 맘에 들었는지

꽤나 가까이 다가서도록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얼음, 하고 있었다.

한바퀴 휭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냐옹냐옹. 이 녀석이

인사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님 나랑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 반가운 맘에 둘러보니

초록색 풀밭에 배깔고 누워서는 게으르게 냐옹거리는 중. 눈도 반쯤 감긴 게 얼마나 태평해

보이던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가 저런 표정이었을 거다.







배들이 부딪힐 것에 대비한 걸까, 타이어를 촘촘이 둘러둔 제주 모슬포항 가장자리는 짠내나는

비바람에 말라터진 각목재들이 한번더 둘려 있었다. 그렇게 파도에 흠뻑 젖었다가 햇볕에

바싹 말라 소금꽃을 피웠다가, 그렇게 반복하며 저렇게 껍데기만 겨우 지탱하고 있는

각목과 시멘트 사이에서 풀꽃들이 피어났다.


어디에선가 실려왔을 풀꽃씨가 용케도 바다에 삼켜지지 않고 저기에 안착하기까지, 그리고

느닷없이 출렁거리는 물벼락이나 바닷소금의 짠기에 침범당하지 않고 싹을 틔우고 저렇게

작지만 샛노란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있었을까. 다 썩어빠진

나뭇토막엔 대체 양분이 남아있기나 하려나.

서울로 돌아오기 전 협재해수욕장에서 낙조를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언제 이렇게

해넘이 시간이 늦어졌는지, 7시가 넘어도 좀체 가라앉지 않는 태양보다 서울행 비행기가

먼저 떠나버릴 지경이어서 여기까지..여기까지만 해가 내려앉은 걸 보고 버스를 부랴부랴

잡아타고 말았다.



@ 제주도, 모슬포항 & 협재해수욕장

외도에서 촬영되었다는 옛날옛적의 드라마, '겨울연가'를 알리는 낡은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2002년 드라마였던가..했다가 문득, 군대가는 바람에 마지막 엔딩을 못봤었단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정말 어떤 장면에서 외도가 나왔던 거지? 전혀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놓친 엔딩?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으로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이 그대로 투영된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 평소에 관리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던 범상치않은 조경.

온통 하늘로 치솟은 덤불의 끄트머리가 무슨 탑의 형상같기도 하고, 에너지가 뻗쳐나가는 거 같기도.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외도에서 눈에 띄던 건 역시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열대의 식물들, 황금빛에 가까운 신기한 빛깔을 뽐내던 요 신기한 풀떼기처럼.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 한바퀴를 도는데 대략 한시간 정도 소용된다니 걷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엘레강스한 화장실 표지 역시 섬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하나의 특징적인 포인트일 텐데 조금 거창하단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이쁘다.

화장실 표지도 표지지만, 전지역 금연을 실시할 정도로 환경을 보호하기에 열심인 이 작은 섬에선

빗물을 저장시설에 모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섬이 작아 딱히 물이 있지는 않은가 본데,

이렇게 많이 다녀가는 관광객들을 소화하려니 이런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정말이지 깔끔하게 전정된 가로수들, 가지들을 툭툭 쳐낸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옷걸이로 쓰면

딱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저기에 잘못 부딪히면 푹 박히는 거 아닌가 싶어 지레 소름돋기도

하고. 저런 곳의 나무를 켜내면 옹이구멍이 송송 박혀있는 거 아닌가.

2월의 매화꽃. 짙은 초록색의 두텁고 반들거리는 울창한 잎사귀 사이에서 샛노란 술을 가진

새빨간 꽃들이 촘촘이 박혔다. 슬쩍 잎사귀를 차양삼아 햇살을 가리려는 듯한 꽃잎의 제스처가

사랑스럽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산 같은 섬인지라, 이렇게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다. 더러는 높은 나무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저런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줄서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러웠던 공간, 외도에서 가장 뭐랄까, 이질적이고 뜬금없다 싶었던 공간이었던 거 같다.

물론 갠적으로. 이름하여 '비너스가든'과 '음악당'. 루브르박물관에서 봤던 니케상 비슷한 것도

하나 서 있고, 그리스 느낌 가득한-그렇지만 꽤나 아쉬운 느낌 역시 가득한-구조물이 바닷바람을

맞고 녹슨 채 서 있었다.

프랑스 식으로 잘 다듬어진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만 늦게 와서 날도 풀리고 꽃도 좀더 피고 녹색도 좀더 싱싱했다면 더 멋졌을 거 같긴

하지만, 뭍은 아직 겨울바람 씽씽 불어닥치는 2월에 갔어도 꽤나 좋았았던 공간.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다.

괜히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내려 힘준 게 아니라, 그리고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잡느라 꼬불꼬불한 문양으로 흉내낸 게 아니라 좋았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여긴가, 여긴가 했다. '겨울연가'에 나왔던 장면이, 나왔던 외도의 풍경이

여기 어디선가 찍혔던 건 아닐까 추측이 난무했던 곳.


곳곳에 숨어있던 귀여운 소품들, 고양이 가족들의 익살맞은 표정도 맘에 쏙 들었지만 색색깔의

기린들이 보이는 시크한 표정과 우물대는 듯한 입모양이 참.

외도의 주인이 얼마나 조경에 힘쏟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그루의 잘 가꿔진 나무들.

남자사람 머리만 해도 삐쭉삐쭉대지 않도록 잘 다듬어주려면 삼주에 한번씩은 깎아줘야 하는데,

작다고는 하지만 이 섬 전체를 정원으로 꾸며버린 스케일을 감안했을 때 정말 얼마나 손길이

필요한 일일까. 하나 흐트러짐이나 지저분한 구석없이 이렇게 관리하려면. 



양배추처럼 생긴 꽃..저거 이름이 뭐더라, 맨날 듣고는 까먹어버리는 이름의 꽃들 사이로

곰발바닥이 새겨진 시멘트 바닥을 따라가면, 지금은 출입통제된 정원의 어느 샛길이 나타난다.

막혀있단 거 뻔히 보이지만 곰발바닥이 귀여워서 일단 따라 걷고 보는 단순한 걸음걸이.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정도 사이즈는 아니어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손에 닿을듯

가깝게 보일만한 사이즈.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고.

기묘하게 생긴 벤치, 아마도 커다란 죽은 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어디론가

통하는 샛길 하나가 또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귀여운 바리케이트로 막혔다. 자연스런

나무의 휘어짐이나 모양새가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날씨에 따라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전망대, 오백원짜리 동전은 내가 어렸을 적 통일동산이나

판문점 같은 곳에 올랐을 때부터 변치않는 가격인 거 같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었어도

전망대용 망원경 가격은 십여년째 그대로.


날이 흐리고 해무도 끼어서, 게다가 딱히 망원경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섬 너머는 전부 바다니깐

그냥 맨눈으로 보아도 이쁘다. 그리고 전망대 아랫자락으로 펼쳐지는 외도의 살갗도 참 이쁘고.

거의 외도를 한 바퀴 돌고서,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내려다보이는 '비너스정원'과

'음악당'의 모습이 자그마하니 귀엽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삥삥 도는 저 계단 역시.


'명상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 혹은 성당. 사이즈로는 정말

X딱지만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작지만, 안에 슬쩍 들어가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따뜻하기 그지없던.


선착장으로 가는 길, 바닥엔 동글동글 까만 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만들고

담백한 풀꽃모양도 떠올려냈다. 그리고 가로수들 그루마다 둘러싼 깔끔한 돌화분에 박혀있는

산뜻한 타일들, 애기들이 지나가다 관심을 바싹 갖고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하트 모양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공간을 발견, 저 은은하고 부드러운 핑크빛의

하트에는 동글동글하고 작은 조약돌로 두번이나 하트모양으로 띠도 둘려 있다. 일종의 이별여행을

떠났던 곳이니만치, 저런 모양 하나하나에 쿡쿡 가슴이 찔려왔지만, 사랑ing인 사람들이야 뭐.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라는데 다른 것보다 그 뷰가

참 좋았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시선을 던져둔 채 망연하게 넋놓고 있는 것.

배가 선착장을 떠나는 순간. 선착장과 배 사이를 쉼없이 이간질하며 철썩철썩 거칠게 내지르는

파도를 견디어내려면 저렇게 튼튼한 타이어를 빈틈없이 둘러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서도

바닷물과 바닷바람과 파도와 무디고 둔탁한 뱃전에 쓸려 금세 낡고 허름해지는 타이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구나. 늘 긴장 가득한 관계구나 싶다. 배와 항구란 거.




해질녘 단수이항, 통통배에서 내려 뭍으로 오르는 사람들.

까만 실루엣으로만 남은 저것들-포클레인이니 중장비 따위-가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검푸른 바다와

파스텔톤이 은은히 번져나가는 하늘이 참 이뻐서.

그리고 다시 떠나는 통통배들, 어둠은 조금 더 깊어졌고 건너편 해안의 불빛도 조금 더 강해졌다.






@ 강화도 대명항.


새하얗고 커다란 구름 갈매기가 어느결엔가 내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구름 갈매기의 위용에 조무래기 갈매기들이 모두 날아올랐다.


카메라 초점이 애초 맞을 수가 없는 저 너머의 갈매기였지만, 덕분에

물기를 머금은 듯 번져보이는 대명항이 조금은 순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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