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용이 지키는 도시답게 건물들은 나즈막하면서도 나름의 운치와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류블랴나 성을 향한 오르막길, 사람이 채 오르기도 전에 양옆으로 어깨 부딪기며 열지어선 집들이 먼저 지쳤다.

 

 

 

류블랴나 구시가에 있는 성당, 그 벽면에 기대어선 (아마도) 대주교님과 성모상, 그리고 가운데의 성화.

 

벽공에 마련된 피에타상, 밤에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을 내걸었다.

 

심지어 성당의 정문은 이렇게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돋을새김해둔 청동문이다.

 

 

 

류블랴나 구시가의 중심, 그리 크진 않지만 꼿꼿한 오벨리스크가 광장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뻗었다.

 

 

 

어느 갤러리였던가 박물관이었던가, 유서 깊어보이는 건물의 안마당으로 들어가서 발견한 류블랴나의 시내 지도.

 

그리고 다른 갤러리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사진보다 전시공간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는 또 처음이다.

 

 

광장의 바닥도 나름의 문양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는 곳, 뭔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느낌의 도시다.

 

 

 

좁은 골목길에 무심코 세워 놓았을 자전거조차도 왠지 그림이 되어 버리는 곳.

 

특별할 것 없는 허름한 건물 입구의 다닥다닥한 우편함에도 각기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들로 이곳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매력적인 곳임을 곳곳에서 과시하는 도시기도 하다.

 

 

 

아이고, 여긴 참..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눌러앉고 말았나 보다.

 

류블랴나의 자그마한 구시가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골목도 구경하고, 이쪽에서 본 저쪽 모습, 저쪽에서 본 이쪽 모습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사이에 안 그래도 흐렸던 하늘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꺼뭇꺼뭇해지고 있었다.

 

 

 

 


남자들은 보통 군대를 다녀오면서 '엄마'라는 호칭을 떼어버리곤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갈아탄다고 한다.

그렇지만 첫휴가 때부터 제대할 때까지 부모님께 제대로 '필승!'하고 경례 한번 한 적 없는 내 유별난 군대

혐오증 탓인지, 턱도 없이 군대를 빌어 뭔가 더 철든 척 하고 어른스러운 척 하기는 싫었던 터라

내게 엄마는 여전히 엄마다.


그런 엄마가 어느날 날 쿡쿡 찌르며 한번 읽어보라 했던 책.

누가 바라보는 건지, '엄마'도 아니고 '신'도 아닌 거 같은데, 뜬금없지만 집요하게 쓰이는 '너'라는 지칭에 다소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또 '엄마'란 존재가 또다시 자식들에게 헌신하고 남편에게 평생 봉사하고 모든 것을

다 챙기고 끊임없이 사랑을 퍼올리는 근원으로 이상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다소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찔끔이게 되는 건, 그 '엄마'에게서 스스로의 엄마 모습을 찾아내기 때문일 거다.


일찍 퇴근하는 날에도 늘 뭔가 약속이 있다며 주중엔 맨날 놀다가 늦게서야 집에 들어와서 피곤타고 짜증내고,

들어가 잔다고 뻥치고는 시덥잖은 컴터나 하고 앉아선 밤늦게 자기 일쑤고, 아침엔 혼자 못 일어나서 맨날

'오분만오분만~' 웅얼대는 게 일이고, '애미애비도 몰라볼 만큼' 술퍼마시곤 동네 놀이터에서 뻗어자기도 하고,

뭐 그런 것들. 그때마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했다는 새삼스런 반성.


조금은 더 엄마한테 덜 틱틱거리고 덜 투덜거릴 수 있게 날 잡아 주겠지만, 또 다시 당신이 예전에 불리던 이름과

예전에 가졌던 꿈들에 대해 살짝 무뎌져 버리면 금세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책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동안이라도.

'엄마를 부탁해'라는 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게 그 피에타.

엄마를 부탁해 - 6점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