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부터 온갖 자그레브의 명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려면 손가락이 열개여도 부족하겠다. 사방팔방을 가리키는 화살표.


 옐라치치 광장으로부터 두 개의 언덕, 카프톨과 그라데츠로 뻗어나가는 오밀조밀한 골목 틈새를 비집고 늘어지는 햇살.


 

 성모승천 대성당이 삐죽 고개를 디밀고 있는 골목도 있고.


옐라치차 광장의 중심, 광장보다 움푹 들어가서 조성된 이 분수대 주변은 사람들이 층층이 앉기 참 좋게도 생겼다.


 짙은 구름이 잠시 지나고 햇볕이 내리는 그 곳은 역시나, 햇살을 즐기며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을 위한 명당자리.


  

 

옐라치차 광장 중앙에 선 기마상이 조그맣게 보이는 각도, 나도 질세라 분수 옆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참이다.


옐라치차 왕을 기리는 기마상 앞에는 크로아티아의 국기와 꽃들, 그리고 촛불이 잔뜩 봉헌되었다. 신생국의 포스란 이런 건가.

  

 

광장 옆의 기념품 가게. 자그레브의 고유한 빨간 하트 모양의 장식품이 화려하다.

 

 이곳의 축구 사랑이 유별나다더니 아예 기념품 샵들이 곳곳에 늘어섰다. 



기마상 앞을 지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광장일 수도 있겠지만 자그레브의 규모에 비기면 작진 않은 듯.

 

 

그리고 광장의 한켠에서 묵주니 성모상이니 등등을 팔고 계시던 분 뒤로 보이는-어디에서나 크게 눈에 띄는-저 광고는 참.




눈이 펑펑 쏟아지다 못해 눈보라가 맹렬하던 서울의 하늘과는 달리, 나몰라라 새파랗기만 하던 가평의 하늘.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천조각 퍼즐로 짜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렵다. 반복적인 문양과 미묘한 색감의 변주.

 

 

강아지들이 눈보면 완전 신나서 펄쩍펄쩍 정신줄 놓고 나댄다더니, 정말 그 끝을 보여준 누렁이 한 마리.

 

문득 얌전한 틈을 타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뭘 알았는지 늠름하게 카메라를 응시해주신다.

 

 

마당에 놓인 테이블 위에 눈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 슬슬 녹고 있다.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적용해 촬영해 본 몇 장의 샘플들. 꽤나 재미있는 효과라서 자꾸 써보게 된다.

 

 

이런 느낌, 뭔가 거칠게 붓질을 한 느낌같기도 하고 굵은 윤곽선을 따라 형체만 잡고 나머지는 뭉개버린 느낌이 색다르다.

 

침실 옆에 깔린 핑크빛 커튼이라거나 비즈 장식, 그리고 굵은 매듭이 잡힌 매무새가 이쁘다.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과 외바퀴 수레. 엊저녁까지 눈을 치우는데 썼는지 눈이 가득 담긴 채 바닥엔 장갑이 한 짝 널부러졌다.

 

 

계속되는 일러스트 샷들. 펜션 옆 진입로를 비추는 등 주변에 소복하니 내려앉은 하얀 눈과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

 

 

눈이 녹고 다시 얼어붙은 바닥에 갇혀버린 단풍잎 한 장.

 

 

그리고, 펜션 앞으로 흐르던 비실거리던 개울 위론 꽁꽁 두껍게 얼음장이 얹혔다. 제법 겨울 풍취가 동한달까.

 

 

11년만에 다시 찾은 뉴욕, 아르바이트를 했던 맨하탄의 스무디바나 그라운드제로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브로드웨이에서의 뮤지컬들. 짧은 일정이니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뮤지컬에 두고

 

두 개 보는 데 성공했는데, 그 중에서 처음 본 건 바로 '스파이더맨'!

 

 

만화적인 상상력을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구현하는데 성공한 게 영화 '스파이더맨'이라면, 그걸 또다시 뮤지컬로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게 가장 큰 궁금증이었다. 최근에 개봉해서 인기몰이중이라는 핫한 뮤지컬, 스파이더맨을

 

세시간 가까이 관람하고 나니 완전 대만족. 커튼콜이 나올 때의 저 '스파이더맨 키스' 장면은 놓치지 마시길.

 

타임스퀘어 근방에 브로드웨이를 따라 수십개 극장이 늘어서서 '맘마미아'니 '위키드'니 '라이온킹'같은 공인된 대작들을

 

공연중이지만 새롭게 오른 작품이 롱런하는 건 흔치 않은 거 같다. 아마도 스파이더맨은 그 바늘구멍만한 가능성을 뚫을 듯.

 

 

극장 안으로. 오후 2시와 7시 공연이 있는 것 같던데, 워낙 휴가철이니 더욱더 그득하게 차는 것 같다.

 

 

기념품들을 팔고 있는 부스 앞을 지나고. 스파이더맨의 디자인이 이쁘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는데, 저 빨갛고 파란

 

유니폼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서. 그렇지만 이제 뮤지컬까지 보러 와서 그런지 새삼스레 이뻐보이기도 하고.

 

 

앉았던 곳은 맨 앞의 오케스트라석. 1층과 2층까지 좌석이 가득차 있었지만 에어콘이 워낙 빠방한, 전기 절약 따위

 

안중에도 없는 미국의 뉴욕의 맨하탄인지라 실내는 쾌적.

 

 

 

20분의 인터미션을 포함 세시간의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 중인 배우들. 관객에 인사를 마치고 자기들끼리 하이파이브 중.

 

 

그리고 고블린 역의 Robert Cuccioli. 사랑을 잃고 더욱 삐뚤어져 버린 그의 심성만큼 삐죽삐죽 까칠거리는 외모.

 

유머도 넘치고 카리스마있던 그의 연기에 반한 누군가의 꽃다발이 바쳐지는 장면.

 

그리고 히로인, Rebecca Faulkenberry. 작은 체구지만 노래는 참 잘 하더라는.

 

 

스파이더맨키스를 마치고 몽롱해진 주연, Reeve Carney의 표정이 참.

 

 

이내 기운을 되찾고 관객들의 환호성에 답하는 스파이더맨. 무대가 좁다며 관객석 위의 천장 사방팔방을 날아다니느라,

 

또 거미줄을 쉼없이 쏴대느라 정말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무대인사 마지막 쯤에 이루어진 스파이더맨과 고블린의 화기애애한 순간. 둘이 손을 꽉 잡고 화해하는 중이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나눠주는 플레이빌, 일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전문매거진..이라고 해야 하려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작품들에 대한 기사와 정보들이 실려 있다.

 

 

 

팜플렛에 써있듯 티켓을 사는 방법은 세 가지, 그에 더해서 타임스퀘어에 티켓부스에서 조금 할인을 받고 살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티켓오피스의 내용을 참조~*

 

 

 

 

미로공원의 대체적인 이미지는 그런 거다. 회양목류의 정원수를 키가 넘도록 길러서는 도톰하게 관리해서

이리저리 휘어지고 갈라지는 길을 뱅글뱅글 만들어두는 것. 다만 그게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나, 그냥

애기들이나 재밌다며 돌아볼 그런 난이도의 가벼운 미로일 거라고 생각했고, 미로보다는 잘 다듬어졌을

그 정원 자체가 볼 것이 더 크지 않을까 했었다. 오산이었다. 최근에 본 네이버 웹툰에서 미로를 빠져나가는

'좌수법'이니 '우수법'이니를 배워두길 잘 했다 싶었다.

비슷한 테마파크들이 서로를 복제하며 우후죽순처럼 들어선다 싶은 제주도, 미로공원 역시 여러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오래 된 곳은 이곳 '김녕미로공원'이다. 제주도 동북부의 김녕해수욕장이랑 바싹

인접해 있기도 하고, 제주시에서부터 차로 달려도 채 한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 입구 매표소에선 미로를

다 통과하면 종을 울리면 된다며, 아무리 헤매도 한시간내로는 다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미로 패스하고

난 기념 선물은 아이들에게만 준다고도 했다.)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푯말 하나. 대개가 30분 안에 종을 울린다는 이야기인데, 좀체 방향감각이나 길찾는 능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저 80% 안에 들을 수 있을지 슬쩍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1시간이 넘도록 헤매는 건

아니겠지 설마, 했는데 막상 미로 속에 들어서니 설마가 역시나가 될 듯한 분위기.

키를 훌쩍 넘어까지 올라간 미로의 수풀 담벼락, 길도 두사람이 동시에 지나기 힘들정도로 좁은 데다가

이리저리 격하게 휘어지고 갈라져 있어서 좀체 한치 앞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렇게 하트 모양으로

다듬어둔 모양조차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이의 커다란 사이즈로 미로 속 인간들을 압박하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세갈래길,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얄미워 보였지만 뭐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하나씩 차례로 뚫어보기로 하고 우선은 오른쪽 길로 고고.

길이 좀 아닌 거 같다. 몇걸음 지나지 않아 덤불 저 너머로는 시체라도 파묻을 듯 붉게 드러난 흙무더기

위로 삽 두자루가 꽂혀 있는 모습이 살벌했다. 미로공원에 함께 들어왔던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수가

그리 적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주위에 인기척은 없고, 미로의 벽들이 소리를 전부 흡수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괴괴한 분위기가 살짝. 뭐, 0.5초 만에 앞의 코너에서 불쑥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긴 했지만.

여하간 중간중간 사람들의 인적이 뚝 끊긴 분위기가 연출될 때가 있는 데다가, 길이 막다르거나 혹은 조금

급하게 휘어져돌아간다 싶은 곳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표지가 필요하겠다. 뽀뽀금지. 연인들이 손붙잡고

이쪽저쪽을 상의하며 가다가, 어딘가에서 불쑥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둘만 있다고 느낄 때 인지상정인 거다.

이렇게 덜컥 막다른 길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눈높이로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 담벼락인데다가 담 너머

저쪽에는 뭔가 기준으로 삼을 만한 표식도 없어서, 망망대해에서 둥둥 속절없이 떠다니는 느낌이다.

이렇게 휘휘 감아 돌아가는 길에서 그냥 무작정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그래서, 딱히 내 의지가 실렸다기보단

그저 되는대로 가보자, 언젠가는 길이 뚫리겠지, 라는 식의 체념과 멍때림의 상태.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수준의 미로일 거라 지레 짐작했던 걸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 닿은 곳은 어이없게도 입구. 차분한 맘으로 다시 미로를 재출발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한번씩은 다시 입구까지 돌아와서 출발한 경험이 있어서 딱히 내가 멍청한 건 아니..라고 자기 위안.

이번에 새로 밟는 길에선 드문드문 해골이 깔려있기도 했다. 여름철 야간개장을 한다고 밤 9시반까지 미로를

개방한다더니 혹시 저 해골들은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야광해골은 아닐지. 깜깜해진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건 음...살짝 스릴 넘칠 거 같단 생각도 든다.

종이 매달려 있는 도착점이 눈앞인데, 좀체 저기로 나가는 길을 모르겠단 말이다. 그 와중에 아까 봤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엇갈려 마주치고, 정말 두세번 만나는 게 낯설지 않았다.


해골과 키스하지 말란 표지판. 뭔가 으스스하면서도 달콤한 분위기가 풍기는 미로공원이다.

겨우 발견한 길, 미로 위로 올라서는 계단이길래 다 왔구나 했다. 근데 아직. 갈 길이 좀더 남았더라는.

이쪽에서 저쪽 종이 있는 곳까지 다시 또 미로를 헤쳐나가야 한다니, 더구나 이렇게 위에서 바라봐도

좀체 꼬불꼬불한 길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로가 생각보다 훨씬 크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 이리저리 길을 휘휘 돌다 보니까 불쑥 미로의 끝에 도달했다. 다시 걸어보라면 또다시 헤매며

좀체 학습이 이뤄지지 않은 그 길이었지만 어떻든 도착점은 예고도 없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덜컥 다가왔다.

이미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재촉하니 사람들 표정이 다들 환하다. 


종을 울리고 미로 밖으로 빠져나오기 전 한번 휘휘 눈으로 온 길을 되짚어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모르겠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시작점과 도착점을 아무런 방황없이 통과할 수 있을까. 그치만 사실 미로는 좀

그렇게 헤매고, 뒤로 돌기도 하고, 왔던 길 또 가기도 하라고 만들어둔 거니까 대충 삼십분쯤 헤매면 미로가

가진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 거 같다. 바로 한큐에 왔다면 글쎄, 한 5분 걸리려나.

미로 밖으로 내려섰더니 이제야 미로 앞의 잘 꾸며진 정원도 눈에 좀 들어온다. 정원도 길이 꼬불꼬불하니

또다른 미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선이 야릇했지만, 그래도 잘 다듬어진 관목들과 꽃나무들이 보기 좋다.

아래는 그 정원에서 찍은 꽃들.

확실히 제주도는 따뜻한 남녘땅이어서 그런지 화려하고 커다란 꽃들도 많은 거 같고, 위에서 못 봤던

품종들도 많은 거 같다. 아니면 내가 '위쪽'에서 보았던 게 대부분 콘크리트 사이에서 비리비리한 한계절용

조경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반양장) - 10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문학동네

특별봉사대, 그것도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의 역할은 분명하다.

열대 우림의 후끈하지만 여자 한명 찾기 힘든 환경 속에서 갈곳없이 억눌리고 있는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만족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항상 봉사하고 봉사하며 또 봉사하세, 조국의 육군에게...병사들을 행복하게 해주세...

땅에서건, 그물침대에서건, 수풀에서건, 막사에서건, 야영자에서건, 공터에서건

상관이 명령하면 우리는 키스하고 포옹하며 사랑한다네..."


이런 노골적인 가사가 담겨있는 그들의 공식적인 '특별봉사대 찬가'만 봐도 뻔하다.

군대의 억눌린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한 합법적인 배설구, 그런 조직에 대한 이야기란 거다.

포인트는 그런 예외적인 조직이 군대라는 극단적인 관료주의 사회 내에서 어떻게 커나가고

어떻게 사람을 갉아먹는지, 그리고 얼마나 의도치 않은 유머러스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지.


한국적인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유머나 아이러니에 고분고분 따라가기는 조금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없지 않다. 이번 지진 때 '사람의 귀한 목숨은 국경을 초월한다'며

침묵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로와 항변을 전했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그분들의 기억이

여전히 위로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 땅에서, '위안부'의 이야기라니.


그렇지만 다르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그토록

적나라하고 비인간적인 상황, 누가 봐도 뚜렷한 선악의 구별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 조금은

더 복잡다단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을 주목하는 거다. 그들은, 특별봉사대는, 자발적으로

질병과 불규칙한 수입을 피해 군대 조직에 편입되길 원하며, 나름의 사명감마저 갖고 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그런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에 조응해 혼신의 힘을 다해 최선의

성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완벽주의적이고 순결하기 짝이 없던 '판탈레온 대위'. 그는

나무랄 데 없이 성실한 미덕을 갖추었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성실함'과 '충성심'이 스스로를 어디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판탈레온의 '특별봉사대'가 점점 성공리에 시스템화되면 될수록, 그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과 평판은 걷잡을 수 없이 굴절되어 나간다. 동시에 진행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

이적을 행한다며 십자가에 각종 사체를 못박는 '프란시스코 형제'를 따르는 광신도의

그것은 마치 판탈레온의 거울 이미지인 양 애초부터 품고 있던 파국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나가는 것만 같다.


성욕, 그리고 종교적 신심이 관리되는 세상. 약간의 삐긋거림만으로도 그들은 단숨에

집창촌 포주, 혹은 광신으로 치닫고 만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삐긋함'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시스템의 잔혹함. 그 와중에 성실함과 순응, 자신의

소박한 삶에 최선의 가치를 두던 사람들은 괴물이 되고 광신도가 되어버리고 마는 거다.


판탈레온이 며칠밤을 새워서 작성한 평가와 도표, 그래프들. (창녀를 고용하기 위한)

예산이 22% 증액되면 매주 500회에서 800회의 봉사를 제공하면서 작업량을 60% 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는 자체의 논리 내에서는 아무런 결함도 없다.

오히려 군대의 (성적인) 병참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반증하는 것.


남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쯤 되지 않을까.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나름의 신념과

미덕을 실천하려 애써봐야, 마치 개구리가 서서히 끓는 물에 삶아지듯 의식하지 못한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포주'로 몰락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에 따르면 '평균 20분도 채 되지 않는' 잠깐의 성욕을 부자연스럽게 억압하고 다시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배출시키며 관리하는 세상에서 남자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골목을 뱅글뱅글 돌았다.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씨씨티비를 피해 세워놨던 차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문득 조바심치다 에라 모르겠다. 늘 길찾기는 내게 스트레스였다.

문득 떠오른 그녀의 타박 아닌 타박. 오빠는 어떻게 나보다도 길눈이 어두워.


어차피 집 밖에 나서면 전부 길이다. 낯선 길 위에서 늘 그녀의 말이 맴돈다면 큰일이다.

장소에 주석을 붙이고 기억을 첨부하는 건 일종의 허세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악세사리같은 말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정작 나는 길 위에서 추억한다.


그러다 번쩍, 계시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안농'손칼국수. 지난 3년동안 그녀의 인사는

대개 '안농' 아니면 '안뇽'이었다. 안농. 입술에 주름을 잔뜩 끌어모아 앞으로 바싹, 평온하던

날에 그 인사말은 장난스런 키스의 느낌을 떠올렸댔다. 안농, 그러면 나도 안농.


길 위에서 넘실대던 그녀의 기억이 인도 위까지 들이차기 시작한 걸까. 장마철 보도블록을

핥아대며 역류하는 빗물의 강처럼 뭔가 으슬으슬해졌다. 우리의 시간이 내게 주었던 교훈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역시 조금은, 변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의 '안농'이 내게 남았다. 그리고 다른 고민이 남는다. 그럼 대체 난 뭘 배운 걸까.

그 시간동안, 그 평온했던 날들과 쓰라렸던 날들을 거치면서 결국 뭔가 배워야 할 걸 못

배운 건 아닐까. 이런 내가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니 드라마를 보면, 모두가 조금씩은 깨달음을 얻는 거 같다.

그때 그랬어, 사실은 그랬어야 했어, 내 문제였어, 둘다 어렸어 따위. 근데 정말, 그렇게

현실이 굴러간다면 지금쯤은 세상엔 사랑에 득도한 사람들만 가득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저 다들 늘어만가는 나이에 부끄러우니까, 깨진독처럼 좀처럼 숙성되지 않는 경험치가

부끄러우니까 있어보이는 척만 하는 건 아닐까. 사실은 나도 그래보일 순 있는데. 허름하니

글자가 깨져나간 간판 하나에 '안농'이니 어쩌니 울렁대지만 않으면. 




임수정은 뭘해도 이쁘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무대뒤를 감독하느라 정신없을 때도, 감독에게

쿡쿡 가슴께를 내질리며 구박받느라 허리가 접히도록 죄송합니다를 연발할 때도, 샐쭉하니 입술을

내밀며 맘에 들지 않는 남자 흉을 보거나 멍하니 넋놓고 잠들어 있을 때조차, 뭘해도 이쁘다. 특히

고양이 기지개켜듯 허리를 활처럼 젖히고 남자에게 다가가 키스하는 장면은. 아아.


또다시, 임수정은 이쁘다.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못 잊는다며 십년전의 사진들을 망연히 바라볼 때도,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결말을 보게 될까봐 소설의 마지막을 못 보겠다고 이야기할 때도, 남김없이

먹고 나면 허해질까봐 하나는 꼭 남기고 먹는다고 호두과자를 오물거릴 때도, 그리고 첫사랑 앞에서

끝내 돌아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겠다며 슬쩍 팔짱을 껴올 때도 이쁘다.


사실 임수정의 첫사랑은 내가 아니고(당연히 그럴 리도 없지만), 그녀가 그 귀여운 입술로 말을

나누고 시선을 마주하는 상대 역시 단한번도 나였던 적이 없으니 팔짱 따위 더더욱 내게 끼어왔을리

없는 거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다. 내게도 임수정이 다가올지 모른다고, 어디선가 막막한

첫사랑을 끝내고 조금은 성숙해져서 내게 기회를 줄지 모른다고. 그런 희망을 갖게 되는 거다.


'첫사랑(김종욱)찾기'가 영화의 제목이라지만 정작 영화는 첫사랑 이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첫사랑을 가슴시린 무엇으로, 유리알같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씁쓸할지 모르지만, 첫사랑 이후 수많은 사랑을 거치게 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실 나처럼 작은

위로가 되는 영화 아닐까. 첫사랑을 통해 '시작하고 끝내는 법'을 대략이나마 배워서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지난

첫사랑(들)이 헛되고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셈이다.



p.s. 여성팬들의 관심사일 공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역시 굉장히 귀여웠다. 살짝 융통성없고

뻔한 멍청이같아 보이지만 세심하고 착한 모습, 영화랑 비슷하다. 이미 가뜩이나 뻔한 레파토리

연극으로 수백번 우려먹었지만, 영화는 세심하고 착하게 임수정과 공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맥주를 맛있게 잘 마시는 방법 중 하나는 맥주잔을 한번 들어올려 한모금 마실 때마다 일정한 양의 맥주를

들이키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 급하게 덤벼들거나 지루하게 할짝대지도 않으면서, 적당하고 일정한 템포로

맥주를 맛보는 것이 요체.


어렸을 적 키스를 잘하려면 체리에 달려있는 뒷꽁지를 입안에서 잘 휘감아 매듭짓는 법을 연습하라던 얘기를

듣고 종종 연습했던 적이 있었는데, 맥주도 마찬가지. 이렇게 크리미한 흑맥주류를 잔에 가득 따라서 거품이

일정한 간격으로 고리를 만드는 걸 확인해 가며 마시면 보는 재미에 마시는 재미까지 일석이조랄까.


에비스의 스타우트흑맥주는 달콤한 맛이 살짝 커튼 뒤에 숨은 채 이쪽을 훔쳐보는 발그레한 뺨의 소녀처럼,

쌉쌀한 맛이 막 장작개비 일백개를 힘껏 패고 굵은 힘줄이 여기저기 돋아난 당당한 마당쇠처럼 방울방울.



@ 도쿄, 에비스맥주박물관.

별 생각없이 빌려든 디비디, 저번 여름 시사회에 당첨되고도 못 갔던 영화였던지라 왠지 묵은 숙제를 해낸다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댔다. 사실 별 거 없을 거 같은 영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겠지 싶었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되잖아. 애피타이져와 메인요리같은 거지."

몰입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키스는 섹스를 부르는 마법의 언어, 키스없는 섹스란 상상할 수 없다는 남자의

말 한마디. 느슨한 눈빛을 풀어놓고 느슨하게 보던 영화에 바싹 기대어 행간을 읽어보려 애쓰게 되고 말았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사실 단순한 섹스를 이르는 건 아니다. 세상의 남자를 두 종류로 가르라면, 사랑 없는

섹스가 불가능한 사람과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한 사람, 이렇게 가를 수 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함께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그는 전자였다.


연애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자긴 내 몸이 좋은 거야 아님 내가 좋은 거야. 나와

하는 게 좋은 거야 아님 그저 함께 있어도 좋은 거야. 몸과 마음, 욕망과 마음을 구분지으며 자신에 대한

순도 백퍼센트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기 쉽다. 영화에선 다행히도 남자와 여자는 그런 경계를 일찍이

뛰어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싶도록. "뾰루지 퇴치용으로 여자를 만나는 건 싫어."


대신 그들이 봉착하는 혼란스러움은 조금은 조잡스러운 거다.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는 이미 결혼한

몸, 법률적 '주인'-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몸에 대한 주인이란 의미에서-이 있는 거다. 키스로 시작된 그들의

일렁이는 감정에 무엇이라 이름붙일지 몰라 서로를 시험에 들게 하고 다시금 맛보고 괴롭히는 모습은, 마치

질풍노도 십대의 그것과 같다. 키스로 불붙은 서로의 몸을 두고 이게 순수한 감정일까 아니면 잠시 환각에

취한 걸까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고픈 욕망이 만든 일탈일까. 사랑이 아니라 속궁합만 잘 맞나? 난 남들보다 나약해서
이유없이 흔들리는 건가? 난 너무 이기적이어서 내 생각만 하는 건가? 달랑 키스에 애무 갖고 인생을 뒤집어
엎을 수 있나?"

어휘는 다를지언정 그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다시, 처음이다. "난 지금 그의 몸이 좋은 걸까 마음이

좋은 걸까. 그와의 키스가 좋은 걸까 아니면 사랑하고 있는 걸까." 차마 사랑이라는 단어를 유부녀의 입과

여친 있는 남자의 입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뱉어내기 힘들어서일 뿐, 그녀 역시 몸과 마음의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남자는 끊임없이 설득하려 하고,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며,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끌림이 바로 사랑이라고 되풀이 말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인다.


여기서 싸우게 될 상대는 두 가지다. 일부일처제라는 혼인제도, 그리고 지금의 남편/혹은 여친. 싸울 맘이 

용케도 생겨서 싸워야 한다면 상대가 그렇단 얘기다. 영화는 혼인제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대신, 멋지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남긴다. 그건 다시금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하니, 제도적 측면을 우회하여 '사랑'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람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이쯤에서..헤어지자. 자기 잘못 아냐. 자기 탓 안해, 탓은커녕 자긴 부족한 게 없어. 근데 내 사랑이 부족한
거 같아...더 노력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 요즘 내가 많이 소홀했지? 안됐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
헤어지게 되서 맘이 안 좋다.." 운운.


글쎄. 새로운 사랑들에겐 과거를 닫아버리는 불쾌하지만 건설적인 '통과의례'라 해도, 남는 사람에겐 분명

치졸하고 열불 뻗치는 변명이다. 그의 여친처럼 "서툴러서 그런건데 뭐. 서툴다고 뭐랄 순 없지."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으려면 그야말로 운명론자쯤이나 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둘만의-셋 이상의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만-사랑을 위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그런 걸 구할 수 있는 절대자가 있다면

말이지만, "그(전 남편)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할 거 같애"라는 여자의 말에서 그녀가 짊어질 짐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이야기의 화자는 그녀 자신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지막을 가까스로 봉합한다. "미련은...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해요. 애써 알려고도 만나려고도 하지 말아요. 그냥 키스가 끝나면 떠나요. 말없이, 눈길도 주지 말고

어떤 표정도 짓지 말아요. 여운은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아두기로 해요."
키스를 마친 후 몸과 마음의 반응을

정지시켜 버린 그녀, 그렇담 그녀는 사랑한 걸까 아닌 걸까. 키스는 몸이 반응한 걸까 마음이 반응한 걸까.

어쩌면 키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담긴, 그래서 역시나 소크라테스 말마따나 '가장 힘센 도둑'인지도 모른다.


키스를 못하면 그게 안 된다. 키스란 건 마음을 말하기도, 몸을 말하기도 한다. 마음이 안 땡기면, 몸이 안 땡기면

섹스가 안 된단 이야기. 첫번째는 (남자를 좀더 믿어도 된단 의미에서) 의미심장하고, 두번째는 뻔한 이야기.


"키스는 나누기 전엔 가벼울지 무거울지 아무도 몰라요."


 



 

로댕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점심시간이 지난 2시경, 우선 근처의 까페에서 배를 채우고 입장하기로 했다.

입구 바로 옆켠에 있던 까페에서 치즈샌드위치 하나랑 와인 한 잔을 주문했더니, 와인잔이 철철 넘치도록 따라진

레드와인이 나왔다. 물론 잔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잔이 찰랑이도록 따라마시는 와인이라는 거.

한국엔 이렇게 편히 마시는 와인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몇 만원짜리 잔에 살짝 따라마시는 와인만 들어온 게 애석할

따름이다. 치즈가 듬뿍 들어있던 샌드위치를 먹고 힘내서 로댕 미술관, 드디어 입장.

로댕 미술관의 티켓이라기엔 좀 어색한 그림이 들어가 있다. 알고 보니 이 곳에는 로댕의 대표적인 조각들 말고도,

쉽게 보기 힘든 그의 습작들과 소묘도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렇지만 나더러 티켓 전면에 넣을 만한,

로댕 미술관을 대표할 만한 것을 고르라면...아마 정원 맨 안쪽에 있는 긴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된 여행이 아무래도 피곤했던 탓일까, 부쩍 심해진 일교차 때문일까, 그것도 아님 방금 홀짝대며 마셨던 와인

때문일까,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도착한 정원 끝에는 정말 편안해 보이는 긴의자가 있었고, 잠시 낮잠이

들고 말았다. 그늘의 서늘함이 으스스한 추위로 느껴질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깨서는 한동안 정신을 못차린 채

멍때리고 있었지만, 짧은 낮잠 덕에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로댕 미술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옥의 문. 로댕의 대표작이다. 예술작품 중 이론적으로 몇 번이고 같은 작품을 찍어낼 수 있는 판화나 조각 같은

작품에는 작가가 몇 분의 몇 이런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인증'한다. 예컨대 7/150 이라고 하면 총 150개의 작품이

복제된 것까지 작가의 작품으로 인증이 된 것으로 그중 일곱 번째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이야기다. 한국에도 지옥의

문이 하나 '오리지널'로 있다. 리움미술관에 일곱번째인가 여덟번째인가로 제작된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글쎄..

작품이 '오리지널'이라는 작가의 인증 절차라는 건, 사실 작품의 희소성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가장 크지 않을까.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일본 애니에 나오는 차원의 문이랄까, 그것의 이미지가 아마 이 지옥의 문에서 차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강철의 연금술사'의 이미지가 강했거나, 혹은 매우 유사했다. 말로만 진부하게 들어왔던

지옥의 문이라는 게 갖고 있는 아비규환과 혼돈의 이미지를 다른 곳에서 먼저 접해 버려 김이 빠져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뭐랄까, 마치 관용구처럼 쓰이는 몇개 단어들..'밤꽃향기'라거나 '아지랑이'같은 표현들이 애초 유래한

평화로운 농촌에서 떨어져서 이상한 야설이나 아스팔트 위에서 뒹구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처럼.

마치 그 옛날 지구를 떠받치고 있었던 아틀라스나 타이탄들처럼,(정확히 이 아이들이 지구를 들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대충 그런 근육 불뚝거리고 인고의 세월이 깊은 주름으로 파인 신족이라고 치고,) 세 사람이 어깨를

잔뜩 긴장한 채 햇살을 떠받치고 있다. 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근육의 꿈틀거림. 인간이다.

아무리 강인하게 단련이 된다 해도 부드러운 질감과 곡선형의 윤곽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부드럽고

혹은 허약해 보인다 해도 저치들은 지금 햇살을 이고 있다.

이 동상은 왠지 이목을 끌었다. 언젠가 티비에 나왔던 60대 보디빌더같은, 그런 생뚱한 조합에서 기인한 걸까.

얼굴은 꽤나 나이들어보이는 데다가, 굳게 악다문 입은 왠지 세상에 치이다 맺힌 근성이랄까 똥고집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시들지 않은 육체는 나ㅡ름 긴장감이 풀리지 않은 근육으로 감겨 있는 듯이 보인다.

빅토르 위고를 기리며 제작했다는 조각. 로댕 미술관에 들어서서 길게 이어진 정원에는 몇걸음 옮길 때마다 멋진

조각들이 자리깔고선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몇걸음 걸어들어가서 줌-인했다가, 다시 몇걸음 빠져서

줌-아웃했다가, 한바퀴 돌아보기도 했다가, 그런 스텝을 밟았다.

정원 끝에서 날 기다리던 긴의자들.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햇볕을 쬐며 누워서 책을 읽거나 애인과

소곤거리거나 혹은 아이를 보고 있었다. 냉큼 자리를 잡고는 내가 걸어온 쪽을 향해 사진 한 장. 덤불로 마치

성벽처럼 담을 쌓고 세 개의 아치형 문도 내놨다. 그 사이로 살짝 보이는 로댕미술관 건물.

토막잠이나마 자다 일어났더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원래는 긴의자 사진도 좀 찍고 주변의 짙은 숲 분위기를 한껏

살린 사진도 몇 장 남기려고 했었지만 모두 포기, 그나마 햇볕이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고 바로 내리쬐는 곳으로

나와 몸을 덥혔다. 깔끔하게 관리된 정원, 그리고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

이건 로댕의 비너스라 해야 할까. 뭔가 다른 이름을 붙였겠지만, 왠지 팔이 없는 걸 보면 비너스..란 이름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건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의 '생각하는 사람'. 영어로 된 작품 제목은 'the Thinker'.

할머니 두분이서 그 앞 벤치에 앉아 이 생각에 잠긴 녀석을 바라보고 계시길래 사진 한장을 부탁드렸다. 외국에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자기 사진을 남기기란 얼마나 귀찮고도 번잡한 일인지. 한국 사람들만큼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프랑스 할머니들이 두 번만에 그럭저럭 포착하는데 성공하신 '생각하는

사람 따라하기'.


사실은 좀더 무릎을 접어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발도 11자로 모았어야 했다. 왜 내가 같이 여행다닐 사람 없었던

걸 아쉬워하는 때라는 게 고작 요런 사진을 좀더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일까.ㅎ

그래도 할머니들은 연신 웃어대시면서 재밌다고 야단들이셨으니 뭐, 나쁘지 않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로댕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가 창조해낸 온갖 청동조각, 대리석상, 소묘들이 가득하다.

그 중 아마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고 알려진 까미유 끌로델의 두상이지 싶은데, 무언가에 놀란 듯한 눈매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했다. "엄머~ 다시 한번 말해봐~ 뗄미뗄미~"

2층에 걸쳐있는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왔지만, 애초 정원을 거닐며 만났던 로댕의 대작들이 남긴 기억이 워낙

강렬했어서 사실 건물 내의 작품들은 그다지 내 맘을 흔들지 못했다. 건물 밖에 나와서 다시 정원을 휘 둘러보던

중에 만난 장미꽃들. 그새 내 눈이 반듯하게 정돈된 프랑스식 정원과 화단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이렇게 삐쭉대고

하늘높이 피어오른 장미를 보니 왠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신선했다.

로댕 미술관의 브로슈어.


입구에서 정원 반쪽.

정원 반쪽에서 끝까지 나머지 반쪽.


1층. 알겠지만 어떤 나라들은 한국에서 1층이라 불리는 층을 'ground floor'라고 하고, 그 위부터 '1st floor'(일층)

이라고 한다. 프랑스가 그랬다.

그래서 여기가 한국식으로는 2층, 프랑스식으로는 1층.


오랑주리 미술관의 정문 앞에는, 두 남녀가 정열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청동상이 놓여있다. 왠지 정면에서

바라보기는 겸연쩍어서 살짝 가재눈으로 흘깃대야 할 것처럼, 그렇게도 뜨겁게 자신들의 감정에 몰입해 있다.

이게 로댕 미술관 1층 로비에 있는 '키스'라는 작품과 같은 거다. 다만 미술관 내의 '키스'는 흰색 대리석이었다면

이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다를 뿐..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랄까. 키스하는 이 두 남녀의 몸을 보아도 동그란 어깨와 완만한 둔덕이 피어오른 여체와

어딘지 우악스럽고 쫀득하게 강인해 보이는 남성의 몸이 그럴듯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방금 티비서 비타민인가 하는 건강-웰빙의 열풍을 타고 부르는-프로그램을 보며 하나 앞으로의 트렌드를

예견하게 되었다. 키스하면, 위장병이 전염될 수 있단다. 헬리코박터 감염숙주가 남한땅 성인의 70프로라니.

헬리코박터가 인간에 기생한건지 인간이 헬리코박터에 기생한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요새처럼 죽도록 '웰빙', 벽에 똥칠안하고 오래 살길 꿈꾸는...분위기라면 백방 키스가 터부시될 게 뻔하다.

키스하다가 위장병 걸린 인물 하나 티비에서 띄워주고 책쓰다가 위장병으로 죽을때쯤 공익광고에 나올게다.

여러분 키스하지 마십쇼. 그거 독약입니다. 학자들은 키스가 야만인의 의학적 무지와 혹은 악의로부터 비롯된

'가미가제'식의 입술공격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발견해낼 것이고, 인류문명의 발상지 모처에서는 전쟁중에

도려낸 적들의 입술을 금박도자기에 봉인해 놓은 유물이 발견될 것이다. 어용철학자들은 '키스'행위를 선진질서

및 문화의식 고양에 장애가 되는 범죄로 규정짓고, 앞으로 키스는 지정된 장소-예컨대 헬리코박터 및 구취를

순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입술비데가 비치된..-에서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커플만이 할 수 있겠지.

물론 일각에선 의료보험도 안되는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없는 빈한한 커플을 구제하라거나,

입술비데기 비치장소를 확대하라거나 하며 반발하겠지만. 결국 누군가가 휴대용 입술비데기를 만들어내어

'신지식인' 반열에 등극할 것이고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인류는 일만년 역사의 '키스' 행위를 폐기하고 새로운

행위를 만들어내어 서로를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일백년 후 우리의 손자/녀들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삭제된 영화를 골동DVD로 볼 것이고 왼갖

문학작품들과 예술작품들도 모자이크 처리될 게다. 아마 조각상같은 경우라면 맞닿은 입술이 레이저로 태워지지

않을까, 유머가 있는 녀석이 책임을 맡았다면 그저 대갈을 한대 후려갈겨 입술을 돌려버린다거나 입술사이에

종이 한장 끼우고 말지도 모르겠고. 아, 그냥 두명에게 마스크를 씌워버리는 게 최선이겠구먼.

도덕책에선, 22세기 문화인은 입술을 내보이지 않는다고 기재된 채 오래 살고 싶으면 키스따위 하지 말라

그러겠지. 아마도 월마트에선 박하향나는 입술 제독용 방독면을 번들로 팔지도 모르겠고. 밤늦게 들어온 자식

녀석의 입을 지시약 기능이 첨부된 페이퍼로 눌러보고 키스한 자취가 드러나면, 마치 지금 부모들이 담배갖고

아이와 실랑이하듯, 등짝을 후려치며 "너 키스 안끊을래?"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가능한 핑계로는, 글쎄...

"당했어" 정도랄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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