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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쥐면서부터 이유모를 겸연쩍음이 계속됐다. 반지성주의란 단어가 활자화되어 다뤄진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우르르 몰려다니는 대중 따위 반지성적이라며 냉소했던 나 자신은 정작 뭔가 싶은 혼란스러움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대학 새내기시절 읽었던 '지식인을 위한 변명' 같은 책이 던졌던 오래된 질문을 환기시킨다. 지성은 뭐고 지식인은 누구이며 뭘 하는 존재들인가. 관료나 작가가 지식인인가, 월급노예는 그럼 뭐지. 나이와 위치에 맞게 좀더 현실화된 고민이다. 그리고 왠지 낯간지럽고 겸연쩍은 고민.

지성과 지식인의 특별함을 말하는 건 이제 그런 간지러운 느낌인 시대다. 혹자는 X선비질하지 말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민주주의와 평등이 보편가치가 되었고, 지식과 정보는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면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가 교수와 철학자의 이야기는 온라인 상에서 댓글과 과히 다를 것 없는 무게감을 갖는다. 정치와 역사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특허나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닐진대 대체 저 '척'하는 먹물들은 왜 그걸 독점하려 드는가 말이다. 그리고 쉽고 짧게 말하면 될 걸 왜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말이 길어지냐 말이다. 그냥 실용적이고 돈되는 이야기나 하지, 구름잡는 이야기 따위 일자리 한개라도 만드는데 보탬이 되나 말이다.

저자는 미국의 건국과 대서부시대 이래 1950년대 매카시 광풍이 지나간 시점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지식인사회-대중간의 긴장을 국면국면의 스냅샷처럼 찍어 세밀히 묘사한다. 미국의 특유한 '반지성주의'가 형성된 곳을 크게 종교와 정치, 사업과 교육에서 찾고 있다. 엄밀한 의례와 교의를 갖춘 종교와 대척하여 개인의 신비체험을 강조한 복음주의교파들, 지성보다 인성을 강조하며 귀족계급의 리더십을 타파한 평등주의적 정치이념, 고급문화의 정신적 가치 대신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삼은 교육과 사업에서의 실용주의자들. 미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흐름을 '지성 vs 반지성'의 오랜 갈등사로 재구성한 스토리는 굉장히 설득력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적실한 프레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가 유지하고 있는 지식인상이 정치와 문화, 체제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표상되는 점이 여전히 난 맘에 든다.

그렇지만 몇가지 떠오르는 질문들을 남겨놓자면. 1.이게 정말 미국만의 상황이었을까. 유럽 이외의 모든 국가에 보편적인 양상은 아니고? 어쩌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유럽의 '지성주의'가 예외적인 건 아닐까 싶어서 하는 이야기다. 2.2000년대를 경과한 미국도 같은 프레임으로 읽을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 같은 표피적인 사건말고 예컨대 서부 IT기업들의 기업문화는 반지성주의와 어떻게 엮일까. 실용성과 기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시 반지성주의의 흐름에 있다고 봐야 할지. 3.AI 등의 논의는 인간과 지성이란 테마에 어떤 자극을 줄까. AI를 둘러싼 논의가 온통  정보처리에 집중되어 있어 지성 따위 잊혀진 건 아닐까 싶은데 그럼 안되는 거 아닌가.. 4.한국의 반지성주의를 따져본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미국의 그것과 별반 차이없이 종교와 정치, 비즈니스와 교육이 큰 요소인 건 변함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한국이 타파해야 할 귀족적/특권계급적인 지적공동체, 앙시앙레짐이 애초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그 유명한 광고카피, "개구장이여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가 이곳의 어린이집 교훈임에 틀림없다.

거의 언덕 위까지 108계단을 밟아 올라야 어린이집 현관에 도착할 거 같은 이곳, 통학만 하다보면

자연스레 아이들의 신체발달이 촉진되고 체력이 증진될 거 같다.


아이들 체력단련에 최고인 어린이집을 찾는다면, 목포의 구X 어린이집에 문의해 보시길 권하며, 지리적 여건상

목포까지 통학이 어려운 경우에는 가까운 어린이집에 조심스레 벤치마킹을 유도해 보시길.




읽고 나면 그 소설의 한 장면이 유난히 남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읽고 나서 소설에서 쓰인 소재나

묘사의 대상이 된 행동이나 장면을 재연하고 싶어지는 작품이 있다. 예컨대 체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을 읽고 나서 나도 어디 한번 다시 체스에 재미붙여 볼까, 하는 식인 거다.


스토리는 그렇다. 아무런 영특함을 갖추지 못한 시골뜨기가 유독 체스에는 재능을 보여 급기야

세계 챔피언이 되었는데, 그런 그가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대양 위의 한 유람선에서-맞닥뜨린

상대는 나치 치하에서 수개월간 독방 고문을 겪으며 체스를 독학했던 지식인인 거다. 활자 중독에

빠져 있다 해도 좋을 지식인이 수개월간 아무것도 못 읽고 고작 체스 교본 한 권만을 갖고 있었으니

그는 그 한 권을 달달 외우고 머릿속에 체스판을 구현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지.

그들의 경기는 역시나 일반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서 펼쳐지지만, 끝내 무너지는 건 

실제 체스판과 말이 없으면 수를 생각하지도 못하는 혐오스런 챔피언이 아니라 지식인이란 반전까지.


결이 굉장히 많은 건 사실이다. 체스 게임을 둘러싸고 등장인물 간에 벌이는 심리적 갈등과

등장 인물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머리싸움이 긴박하게 묘사되는 것은 기본이고, '무지하고

교활한 챔피언 vs 생각많고 교양있는 지식인'이란 구도는 나치와 유럽 지식인이라는 역사적 관계를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듯 보인다. '독방 고문 vs 체스'에서 인류의 무지와 지적 탐구의 대립 구도도

선연하고, 느닷없이 치닫는 결말의 파국이 보이는 냉소와 배신감은 이차 세계대전 말기를 못 견디고

자살한 작가 자신의 비극적인 생의 결말과 맞물려 더욱 극대화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런 결들을

하나하나 포개보면 초점이 은근슬쩍 하나로 맞춰진다. 8*8의 체스판에 구현된 인간의 정신.


여느 소설과 같이 작품 속에 등장인물이 존재하고 등장인물간의 사건과 그들 사이의 대화도

존재하지만, 이 작품 '체스 이야기'의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스'라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인간의 사고 흐름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 것처럼 보인다. 나치 치하에서 인간이 겪었던

극한의 고문이나 반이성적인 처사들 모두 그렇게 체스에 몰입해 있는 상황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기

위한 조건인 것 같다. 체스 이외의 다른 점에서는 모조리 무지하고 천박한, 그 속내를 작가가 굳이

드러내지 않는 챔피언 역시 그렇게 체스에 불붙은 인간을 보여주기 위한 불쏘시개 같달까. 심지어

그 지식인에 대한 상세한 묘사조차 그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체스' 플레이어로서 그를 이해하고

설득력있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은 아닐지.


체스의 공간 속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고하고 승리를 기획할 뿐인 순수한 인간 이성이 어떻게

작용하고 반응하는지, 그 과정과 깊이를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밖의 것들이 전부 곁가지라거나 부수적인 해석은 아니겠지만, 정말이지 그의 작품에서 읽혀지는

체스 플레이어의 심리와 체스 게임 자체의 묘사는 집요하고 섬세하다. 당장이라도 체스판을 펼치고

말을 들먹이고 싶도록. 그렇게 체스판 위를 놀며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과정을 조금 멀찍이

떨어져 주시하고 뜯어보고 싶도록. 그리고 가장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은 그렇게 '체스' 판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사고와 반응이 다른 인간세계의 일들, 나치의 비인간성, 전쟁의 광기, 무지와 독선의

잔인함..같은 것들마저 모두 포괄하고 마는 거다.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체스라는 게임이 원래 그런 거 같다.

"(체스는) 절대적으로 우연의 독재에서 벗어나 있고 그 승리의 영광은 오로지 정신에, 아니 어떤 특정한 형태의 정신적 재능에 있었다...체스는 태곳적인 것이면서도 영원히 새로운 것이요, 그 구도가 메커니즘적이면서도 판타지를 통해서만 작동하며, 기하학적으로 일정 공간에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그 조합에서는 무제한적이고...그 존재 자체가 어떤 책이나 작품보다 영속적이며,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게임이면서도, 지루함을 죽이고 감각들을 예리하게 하며 영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신이 이 땅에 가져온 게임"

이렇게까지 격찬을 받는 게임, 그리고 그 게임플레이어의 내밀한 속내를 샅샅이 핥아서 보여주는

소설의 흡인력있는 묘사가 더해졌으니 당장 체스판을 꺼낸다고 해도 이상할 거 하나 없겠다.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반양장)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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