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디뮤지엄의 새전시, 헤더윅 스튜디오전은 thinking, making, storytelling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있다.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간명하게 정리한  이 세가지 열쇳말 중에서도 근간이 되는 thinking. 그에 대한 헤더윅의 문제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설명.

공공영역의 미술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냉각장치의 통풍구를 저렇게도 만들 수 있고, 저런 작품을 거리에 가진 도시가 실제로 있다니.

대부분의 전시물은 실제 런던이나 중국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돌돌 말리는 보행교 역시 런던 패딩턴에서 있단다.

곡물창고의 미술관으로의 대변신. 커다란 원통형 저장고를 저렇게 썰어버릴 생각을 했다.

3,40년만에 새로운 디자인, 런던버스.

아부다비 사막에 지어지는 공원도 헤더윅이 고안하면 이렇게나 다르다. 땅이 갈라지고 그아래 오아시스나 지하도시가 드러난 듯한 파격적인, 그렇지만 곰곰 생각하면 실용적이고 설득력있는 디자인.

츄러스를 잡아뽑듯 스테인레스를 잡아뽑아 벤치를 만든다. 전혀 레디메이드되지 않은, 복제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형태의 작품들.

그들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데서 멈추는 건 아니다.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구슬을 일일이 위치에 맞추어 꿰고 거는데 24시간 3교대로 4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까, 역시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그들의 디자인 영역은 산업디자인이나 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건물과 공원, 나아가 아예 도시를 조성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까지 진행중이라고.

이건 2010년 상해 엑스포때 본적이 있는 건물이다 싶더니, 민들레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끌었던 영국 국가관이다. (이것도 헤더윅의 작품이었다니..)

끄트머리에 씨앗을 수십만개 품은 플라스틱 봉이 건물 안과 밖을 관통한 채 빛을 머금었다.

중국의 도시 건설 프로젝트. 이런 공상과학영화의 한장면같은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니.

봄베이 사파이어 증류소와 방문자 센터. 실제 건물 밖으로 저런 고풍스런 느낌의 온실을 빼내어서 술 안에 들어가는 약초들을 기르고 있다고.

헤더윅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굉장히 충실하고 자세하게 그들의 작품과 아이디어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왜 굳이 여기를 이만큼 공들여 소개하나 싶은 삐뚤어진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그 방대한 작업 분야와 참신한 상상력, 구현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디뮤지엄은 점점 안정감있게 발전해나가는 중, 이쁜 까페와 비스트로들도 건물 내에 많아졌고. 다만 컨셉이 많이 겹쳐보일 만큼 차별성을 못 느끼겠는 게 함정.



지난 토요일, 한남동에 뭔가 새롭게 미술관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찾아가본 디뮤지엄. 알고 보니 대림미술관의 분관이랄까.


대림미술관과 함께 디멤버십 카드로 전시나 강연을 찾아볼 수 있다. 개관 특별전은 9개의 개별 방을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채운


9개의 빛에 대한 내용, 공간을 채우는 빛의 질감이나 색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중인지라 흥미가 확 돋는 전시였다.


1번방부터 9번방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가 반복될 때마다, 단순히 빛의 궤적만이 존재하던 방에 소리가, 색감이, 그리고


움직임 더해졌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은 여기. 하얀 조명이 살짝 굽어있을 뿐인데, 바람에 사정없이 휘날리는 하얀


A4용지 보고서더미 같은 후련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위치에서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원색 조명을 쏘아서 형상을 강렬하게 일그러뜨렸던 이 방도 재미있었고.


단순한 조형물에서 뻗어나간 세가지 빛깔의 그림자가 마구 뒤섞이면서 저렇게 비현실적인 실루엣과 색감을 만들어낸다.


한켠에는 이렇게 삼색으로 뒤섞이는 그림자도. 


빛과 조형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텅빈 공간이 이렇게 깊숙한 숲길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반사에 반사를 거듭해서


켜켜이 쌓인 그림자가 그대로 나뭇잎이 되고 덤불이 되어버렸다.


혹은 이런 류의 비현실적인 색감도 맛볼 수 있는 방이 있다. 온통 새하얀 방, 신발조차 커버를 씌우고 들어가야 하는 그 방에는 


세개의 칸막이로 적당히 가려진 불빛이 천장에 매달린 정사각면체들의 면면과 벽면을 몽환적인 색감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이 커다란 조형물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명을 받아 변화무쌍한 근육을 뽐내는 모습까지. 사실 이 방이 두번째였던가 했지만.



아무런 필터나 효과를 더하지 않고도, 오로지 조명 만으로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아홉 개의 방을 하나씩 


방문하며 실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중 두번째의 헛걸음. 지난 11월에도 분명 허탕치고 2017년에나 오픈한다는 표지를 MOMA에서 봤었는데,

 

혹시나 하고 다시 또 찾고는 좌절. 그래도 뭔가 샌프란시스코 MOMA의 전시를 안 볼 수는 없어서, 아시안아트뮤지엄에서

 

콜라보로 전시중인 'Gorgeous'전을 찾았다. '고져스~ 고쟈쓰~' 의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에 대해 각종 예술품으로 되짚어보는 전시.

 

 

 

 

드디어 아이폰이 미술관 전시에 전시품으로 진열되기에 이르렀구나. 분명 그렇게 될 만큼 디자인이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으니.

 

'고져스'의 관점에서 보아도 아이폰이 전혀 새로운 스마트폰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점, 버튼을 없애고 베젤을 두른 둥근 조약돌 형태의

 

전화기를 구현했다는 점 등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사례인 거 같다.

 

 

 

 

조악한 장미 조화와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빚어내는 투명하고 고급스러운 의자. 질료가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코끼리똥을 캔버스 양쪽 하단에 괴고 가운데에 떡하니 붙여둔 채,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다.

 

 

 

 

 

 

 

 

 

 

그리고 몇 점의 한국 예술품. 조선시대의 춘화 중 한점이 '고저스'의 상징으로 나왔고,

 

고려시대 자개상자가 또다른 고져스의 사례로 등장. 외국에 나와서 한국의 문화재를 보니 왠지 낯설다. 이 자개상자만 해도,

 

글쎄..한국에서 통용되는 한국의 아름다움이라거나 전통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이는 변주같은 느낌.

 

그리고 조각보. 그저 쓰다남은 짜투리천을 되는대로 이어붙인 게 아니라, 모종의 패턴과 정교한 밑그림을 가지고 시작되었다는 게

 

고져스함의 포인트.

 

 

 

 

 그리고 야마하에서 컨셉카로 제작했다는 1980년대말의 바이크.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근 이삼백여 점의 고져스전시가 끝.

 

아시안아트뮤지엄에서 보유하고 있는 한중일 삼국, 그리고 기타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재들을 한바퀴 훑어보던 중 발견한,

 

굉장히 아름다운 색과 형을 가진, 게다가 저 섬세한 문양을 갖춘 청나라의 자기 하나.

 

그리고 일본의 현대 자기예술이 얼마나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워졌는지. 현대로 이어지는 흐름까지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안아트뮤지엄 자체도 좀더 시간을 들여서 꼼꼼히 훑어볼 만한 전시공간인 듯.

 

 

taken by Iphone5

* 이미 전시기간은 경과된지 오래이나, 찍어둔 사진들과 '호박'을 위해 포스팅.

 

 

 

 

그녀의 호박 찬가는 이토록 담대하고 거창하며, 근본적이었던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용이 지키는 도시답게 건물들은 나즈막하면서도 나름의 운치와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류블랴나 성을 향한 오르막길, 사람이 채 오르기도 전에 양옆으로 어깨 부딪기며 열지어선 집들이 먼저 지쳤다.

 

 

 

류블랴나 구시가에 있는 성당, 그 벽면에 기대어선 (아마도) 대주교님과 성모상, 그리고 가운데의 성화.

 

벽공에 마련된 피에타상, 밤에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을 내걸었다.

 

심지어 성당의 정문은 이렇게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돋을새김해둔 청동문이다.

 

 

 

류블랴나 구시가의 중심, 그리 크진 않지만 꼿꼿한 오벨리스크가 광장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뻗었다.

 

 

 

어느 갤러리였던가 박물관이었던가, 유서 깊어보이는 건물의 안마당으로 들어가서 발견한 류블랴나의 시내 지도.

 

그리고 다른 갤러리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사진보다 전시공간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는 또 처음이다.

 

 

광장의 바닥도 나름의 문양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는 곳, 뭔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느낌의 도시다.

 

 

 

좁은 골목길에 무심코 세워 놓았을 자전거조차도 왠지 그림이 되어 버리는 곳.

 

특별할 것 없는 허름한 건물 입구의 다닥다닥한 우편함에도 각기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들로 이곳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매력적인 곳임을 곳곳에서 과시하는 도시기도 하다.

 

 

 

아이고, 여긴 참..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눌러앉고 말았나 보다.

 

류블랴나의 자그마한 구시가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골목도 구경하고, 이쪽에서 본 저쪽 모습, 저쪽에서 본 이쪽 모습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사이에 안 그래도 흐렸던 하늘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꺼뭇꺼뭇해지고 있었다.

 

 

 

 

 

 

일시 : 2013년 5월 1일(수) AM 10: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12


 

 

모처럼 찾은 인사동, 길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걷기도 힘들고 공기조차 차갑게 호흡기를 긁어내리며 들이마셔지는 느낌이라

 

가나아트스페이스니 무슨무슨 갤러리니 등등 눈에 띄는대로 일단 들어가서 체온을 보충, 그리고 설렁설렁 구경하다 다시 밖으로.

 

 

그러다 보니 이런 조각보 전시도 예기치 않게 구경하기도 하고, 생활한복이니 도자기니 사진전이니 등등, 예기치는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쏠쏠한 재미가 있는 인사동 나들이가 되었다.

 

 쌈지길이 이렇게 내려다보이도록 높은 곳까지 한층한층 차근하게 구경하며 옆 건물의 갤러리를 돌아보기도 하고.

 

 기와지붕에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풍경 너머로 질척한 뻘밭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사람들.

 

 새하얀 눈송이를 머리 위에 지고 있는 장독대 4인가족이 흘낏 훔쳐보는 쌈지길의 번다함과 퓨전스러움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슬쩍 스며들듯 찾아온 조용한 까페. 아무래도 메인로드 양옆의 까페들이나 전통찻집은 늘 바글바글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나름 테이블간 거리도 아늑한 곳이 있었구나 싶다.

 

 

 

왠지 요새 크리스마스는 어영부영 지나버리는 느낌이지만 그즈음의 이런 장식들은 한철이라 더 이쁘게 느껴지는 거 같다.

 

 

 

 

그다지 길지 않은 하루 해가 그렇게 또 가고. 창 너머 비스듬한 옆집 지붕 위에는 에어콘 환풍기가 일렬로 늘어선 채

 

'홍콩'반점의 뿌연 형광등빛을 한겨울 얼어붙은 눈무더기처럼 이고지고 버텨낸다.

 

 

 

 

 

 

 

대림미술관, 규모는 작지만 나름 재미있고 알찬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어서 나 역시 꾸준히 발걸음을 하는 이 곳에,

 

11월부터 시작되어 내년 3월중순에 끝나는 전시회가 하나 열렸으니 바로 '스와로브스키, Sparkling Secrets'展.

 

 스와로브스키의 상징인 우아한 백조와 함께 조그마한 쥐도 한 마리 보였고(내가 본 쥐 캐릭터 중에 손꼽을 만큼

 

귀여운 녀석이었던 듯. 쥐에 대한 생래적인 혐오감과 더불어 최근 학습된 반감을 거의 극복해낸 아이템이었다.)

 

 

 크리스털로 만든 열쇠가 두 벌, 목걸이에 걸어서 짤랑짤랑 소리나도록 하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 열쇠에 맞는 자물쇠도 같이 크리스털로 만들 수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스와로브스키가 제작, 가공하는 크리스털들이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납성분같은 것들을 유출시키지 않고 만들기 위한

 

노력을 소개하는 장에서, 무려 250mm나 되는 크리스털을 그런 친환경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전시를 해놓았다. 빙글빙글

 

돌면서 사방으로 무지갯빛을 흩뿌리는 커팅면의 굴곡이 오묘하다.

 

 제법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문구들을 담은 스와로브스키 전의 아트북 중 한 문장.

 

"사람은 감동을 받기 위해 하루를 살아가고, 감동은 사랑을 주기 위해 순간을 간직한다."

 

 색색의 원석들, black diamond라거나 saphire라거나. 스와로브스키가 활용하는 오색빛깔 영롱한 크리스털들 차트다.

 

스와로브스키가 다양한 셀렙들과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건 익히 알려져 있다지만, 마릴린 먼로, 마돈나, 제니퍼 로페즈 등

 

불멸의 스타가 된 이들을 빛내주는 아이템들을 옷이라거나 액세서리라거나, 아님 이런 크리스털 '가발'로 함께 했는줄은.

 

 

 게다가 여러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오랜 기간 진행했다고.

 

크리스털들을 마치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잎새처럼 뾰족뾰족하게 표현한 작품. 제목이...Crystal Branch였던가.

 

 달팽이랑 나비가 마주 보고 사랑에 빠진 모양이 넘 귀여웠던 반지도 있었고.

 

실키한 핑크빛 레이스에 파스텔톤 크리스털이 보드랗게 이어지는 목걸이. 굉장히 여성스러운 느낌이다.

 

 영화 '물랑 루즈'나 다른 화려한 쇼 장면이 있는 영화, 뮤지컬 등에서 활용되었다는 스와로브스키의 아이템들.

 

스와로브스키의 반짝임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였겠지만, 온통 전시공간은 깜깜하게 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검은색 주렴이 드리워진 대림미술관의 숨겨진 휴식공간에 앉아 쉬기도 하고.

 

 2층부터 4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 4층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환해진 느낌인 건, 이 샹들리에의 역할이 컸던 듯.

 

영화 '블랙 스완'에 나왔던 바로 그 샹들리에라고 하는데, 아마 주인공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 샹들리에에 깔리던가.

 

 베라 왕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스와로브스키는 여지없이 그 빛을 발했다. 이를테면, 그들의 작품인 옷에

 

화사함을 더하고 포인트를 주는 한줌의 시즈닝이랄까.

 

 

 

 이런 식의 반전 뒷태를 책임지는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들.

 

 

 

 그리고 다시 1층. 어느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기 시작한 그곳에서 이미 한바퀴 둘러보고 나온 사람의 만족감이란.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고, 파란 배경에 투명한 크리스털이 반짝거리며 오색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대림미술관 뒷켠의 까페 공간도 스와로브스키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마치 크리스털이 커팅되었듯

 

수십수백개의 맨들한 면을 불연속적으로 이어붙인 채 커다랗게 부푼 공간이 거기 있었으니깐.

 

 

 그리고 스와로브스키의 반지가 흔히 갖고 있는 수백개의 커팅면을 그대로 키워낸 거울면의 아우라를 뒤로 받친 채,

 

온통 일렁일렁이는 환상적인 풍경 한 가운데에 반지 하나가 흔들림없이 버티고 섰다.

 

겸겸 나도 한 장. 핑크빛의 조명이 거울 내로 스며들어서 온통 핑크핑크한 분위기에서, 참 야무지게도 카메라를 쥐었구나 싶다.

 

 

 

 

 

 

 

 

 

 

 

 

 

 

 

 

ⓒ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

 

 

1) 한국정치가 양당제로 고착화될까.


유럽과 같은 다당제가 이념정치, 계급정치가 가능할 거란 점에서 우리나라 의회정치도 그렇게 가는 게 이상적이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회의적이 되어간다. 특히 지리멸렬해진 진보블록을 대신해 치고 나온 안철수의 역할과 성과가 문제가 될 텐데...만약 그가 자체의 정치세력을 만들어내고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이제 한국사회는 양당제가 고착화되지 않을까.

안철수가 뭔가를 제대로 해내기는커녕 이쁘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가능성이 농후해지면서 제3세력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불신은 팽배할 테고. 이미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불러낸 대중들의 피로감과 분노를 가중시키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 하다. 그렇다면 역시, 한국도 미국처럼 양당제로 고착하게 되는 걸까. 심지어 미국보다 못한 식의 중도우익과 극우세력의 양강구도가 되리라 예상되지만.

 


2) 진보정치세력의 구심은?


이른바 재야나 운동권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건설된 진보정당에서 지켜온 의회 내 진보정치의 기치는, 어느덧 아웃오브안중이 되어가는 거 같다. '진보', '개혁', '복지', '경제민주화' 따위 단어에 대한 소유권도 모두 넘어가버렸고 좀처럼 회복될 거 같지도 않다. 이는 진보정당의 한계기도 하고, 이나라 민주주의와 '계몽'의 한계기도 하다. (안철수 현상의 안쓰러운 미망을 보라) 의회정치 내에서 진보적 가치를 표방할 수 있으려면 진보정당이 아니라 차라리 민주당 내 진보블록을 미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의회 밖의 정치적 필드는 별도로 치고)

 


3) 비판적 지지의 문제


이념적 비전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든 현실은 찔끔찔끔 변한다 했을 때,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이 뭘지에 대한 고민이다. 페이퍼당원이나마 진보신당 당적을 갖고 있지만 당에서 미는 후보가 아닌 타당의 후보를 이렇게 거리낌없이, 혹은 절박하게 미는 경우는 또 처음이니까. 진보신당의 공식지지 후보 김소연 후보, 그녀의 자격과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지지하지만 현재로선 문재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문>박,안)

 


4) 선택지에 대한 고민...박과 안의 비교.


다만, 단일화된 결과 안철수가 야권 후보가 된다면 다시 난 고민하게 될 거 같다. 그에게 기본적인 국정운영의 능력과 자원이 있을까. 정치라는 것에 대한 그의 얕은 인식과 부정적인 시각에 더해서, 도대체 그가 가진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능력은 무엇인지 문제해결능력-정치력-은 있는지 뭐하나 알 수 없단 점에서 그렇다.
수첩공주라지만 박양은 할튼 조조처럼 재사들을 주위에 많이 모으고 있고, 독재자의 딸이라지만 그건 이제 까봐야 먹히지도 않으며, 민주주의적 감수성이나 가치관이 부족하다지만 기성 정치인들 대개 오십보백보인 거 같기도 하고. 최소한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되지 않을까. 박양이 된다고 애비처럼 독재를 하거나 총칼로 짓밟진 않을 테고 뭐, 엠비만큼 하겠지...니미.


굉장히 우울한 그림이지만, 안철수가 하면 뭐가 나아질까, 그리고 뭐가 불안해질까를 계량했을 때. 난 안과 박양 둘다 지랄같은 결과일 거 같아서. 그땐 차라리 진보정당의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현재로선.

 

 

4-1) 안철수에 대한 단상

 

정치개혁'이라는 말을 협소한 지평에 지 나름의 상식에 가둬놓고는,
피와 살이 느껴지지 않는 '국민'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모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단어, '개혁'과 '변화'의 이미지를
냉소의 도가니에 빨아제낀 걸레짝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

대체 안철수가 바라는 '정치개혁'이라는 건 뭘까.
감성적으론 알 듯 말 듯 하다가도, 정작 디테일은 없다.
니들이 알아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면 정답이 나올 거다, 라는 식인데
이건 어쩌면 자기도 뭘 어째야 할 지 몰라서일지도.

* 이번에 다시 국회의 구조조정/정리해고를 말하는 꼬라질 보고 확 열받아서.

 


5) 요약.


박양이 대통령이 될 거 같고, 안철수는 엑스맨인 거 같고, 문재인과 민주당은 확연한 진보성은 고사하고 리더십도 전략도 없는 거 같고. 그런데 진보정당은 다 말아먹었고. 당비가 아까울 지경이고. 뭐 이딴 지랄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는지 니미.

 

게다가 더욱 좌절스러운 건, 엠비5년의 시점, 나라의 가치관과 비전과 성장/분배전략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굉장히 큰 공간이 열렸음에도 이지경이라는 점. 분명 큰걸음 한발자국 왼쪽으로 뗄 수 있는 객관적인 호조건이 도래했음에도.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사이에 텅빈 공간은 그대로 서울의 밤풍경을 담아내는 화폭이 된다.

 

멀찍이 파랗게 빛나는 탑은 서울N타원, 주변에 별무리처럼 총총이 박힌 주홍불빛들이 따스해 보인다.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이른 시간부터 후둑후둑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집집의 불빛이 안온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폐장이 가까운 시간이 되니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거대한 구조물만 덩그마니 남았다.

 

박물관 안에 있는 이쁜 까페에도 온통 테이블과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드리운 두꺼운 어둠 덕분에 깊은 바다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창 밖, 그 심해 속에서 유영하고 있던 두 석상. 중앙박물관 앞에 꾸며진 석조산책로는 예상치 못했던 멋진 공간이었다.

 

 

 

 

 

 

천하제일 비색청자전(1-3부), 청자 변기의 호사로움.

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전시중인 청자들 중 특히 4부, 국보급 명품들을 하나하나 조곤조곤 살펴보면서

 

담아본 사진들을 중심으로 포스팅하기로 한다. 딱히 말을 더할 것도 표현할 것도 없는 듯.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시, '천하제일 비색청자'展.

 

중국에서 천하제일(The Best under Heaven)을 꼽으며 그 중 하나로 고려청자의 비색을 들었다는 인용구가 아니더라도,

 

청자의 빛깔(色), 형태(形), 그리고 상감된 그림들은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곱씹을 만한 것들이다.

 

 

이 정도의 국보급 청자들이 한자리 모인 기회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 대부분의 문화재급 청자들이

 

해외-대체로 일본-에 반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는 10. 16~ 12. 16까지.

 

 

총 4부로 이루어진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청자의 쪽빛으로 펼쳐진 풍경들. 아마 청자에 그려진 문양들을 따온 듯 낯익다.

 

 꽃을 따르는 나비의 화려한 자태.

 

 

 다기의 한 종류인 완에 새겨진 기사, 라는 연호. 은은한 비색이 우아하다.

 

 예전에도 한번 봤었지만, 청자로 기와를 얹었다는 건 대체 얼마나 사치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을까.

 

 

 기와 말고도 이렇게 담장 등에 장식이 되었다는 물방울 모양의 장식품도 얹혔었다고 한다.

 

 

 과하게 쓰이지 않은 금칠, 그리고 분방하게 만들어진 듯 자연스럽지만 세련된 뚜껑까지.

 

'콜라병 몸매'란 표현보다는 '고려청자 몸매'란 표현은 어떨까 싶을 정도로 곡선이 아름다운 병.

 

 

 학이 한마리, 구불구불한 꽃나무와 구름 사이를 날아가고 있다.

 

 

 이런 형태는 대체 어떻게 고안해내고, 어떻게 빚어냈을까. 색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에 익은 참외모양 청자. 주둥이의 저 물결치듯 리듬감넘치는 모양새라거나, 굽쪽까지 내려가는 봉긋한 곡선.

 

 

 1부, 2부에서는 청자의 역사라거나 여러 대표적인 제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중엔 청자 베개도 있었다.

 

 이런 청자 베개를 베고 자면 특히 한여름에는 머리가 시원하니 건강에도 좋을 거 같고, 만족감도 높을 거 같다.

 

 그리고 청자로 빚은 의자. 평상시에도 앉을 수는 있겠지만 주로 바둑 같은 걸 즐길 때 앉는 의자였다고.

 

 그리고 청자로 빚은 주사위까지. 유약 덕분에 적당히 동글해져서, 부르마블같은 거 할 때 저 주사위를 쓰면 좋겠다.

 

 게다가. 사치의 정점이랄까. 청자로 빚은 변기.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청자변기에는 심지어 연꽃무늬까지 그려져 있다.

 

길게 뻗은 고무신같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적당히 오므려져 일을 볼 때 사방에 튀는 걸 방지하는 실용성까지 겸비한 듯.

 

은실이 입사된 청동경대의 동그런 거울판이 반질반질, 진짜 유리거울처럼 말갛게 반사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화장품들을 담는 통들도 청자로 만들어졌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자그마한 통들에 분이나 액을 담아 썼을 듯.

 

그리고 약사발. 초등학교 때 과학시간에 쓰던, 그리고 약국에서 쓰이는 그거랑 거의 비슷한 형태지만 '고려청자'라는 거.

 

 

 고려시대에는 불상이나 동자상들도 청자로 빚기도 했다는 설명과 함께, 조금은 생소한 분위기의 인간상들도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정병. 불교에서 쓰이던 제기의 일종이라고 해야 하나. 여느 청자들보다 맑고 연한 빛깔이 순하다.

 

대범하고 세련되게 그려진 국화꽃과 이파리들의 문양이 자기면을 온통 휘감았다.

 

 

 가느다란 목과 위아래로 봉긋하게 부풀은 모양, 우아하게 굽은 주둥이가 아름답다.

 

 청자 시대였다고는 해도 이렇게 거칠고 투박한, 게다가 색감도 독특한 자기가 생산되기도 했나보다.

 

 

 

 곱게 발린 유약이 자잘한 균열을 자기 위에 살짝 끼얹어주어서 더 운치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감탄했던 뚜껑 중 하나. 저렇게 섬세한 표현에 독특한 장식이라니.

 

 

 

 청동 은입사 포류무늬정병. 이건 예전에 고려 불교문화 관련 전시때 봤던 거 같은데. 참 우아하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쉬고 있는 학과 사람을 그려놓았는데, 저 소나무의 대범한 구불거림이 참 인상적이다.

 

 

 

 

지난 3개월여, 토요일마다 서울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

 

고등학교 언젠가부터 칼로 끊기듯 뚝 끊겼던 4B연필이나 '그림그리기'와의 인연이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둘 그어본 선들이 형태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했다.

 

고경일 선생님이나 김부일 선생님의 칭찬은 넘쳐올라 들썩이는 파도가 되었다.

 

 

서울 곳곳의 숨어있는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서촌, 이태원, 보문동, 애오개, 양화진..서울이 숨긴 풍경을 지긋이 응시하는 두어시간.

 

 

실력은 치졸하지만, 아마 그림 그리기의 매력이란 그런 거 같다.

 

바가지로 물을 퍼내듯 슬쩍 사진에 담아내고 말 풍경을, 한방울씩 곱씹으며 가만히 퍼올려내는 작업이랄까.

 

 

 

-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 느티나무강좌 '고경일, 김부일의 서울 드로잉' 3기 소감.

 

 

 

엽서로 제작된 내 그림 두 점.

 

나무 판넬로 제작되어 전시될 그림 한 점. 어느 비오는 날 실내에서 본인이 갔던 여행지 사진을 그리는 날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위,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드로잉.

 

 

 

 

다른 그림들 몇 점..

 

 

 

 

 

서울 통인동에 소재한 참여연대 건물, 여기 1층에 있는 '까페 통인'에서 2주 정도 걸려있을 그림들.

 

6/22~7/6, '전시회'라기도 우스운 '학예회' 수준의 자리라는 게 맞겠지만 혹 시간 나시면 들러서

 

'숨은 서울찾기展'의 숨어 있는 제 그림들을 찾아 보시길.

 

 

 

 

 




서울이란 동네는 워낙 순식간에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 올라가는 곳인지라, 당장 오늘 찍었던 사진이 내일이면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는 경우가 왕왕 있단 이야기를 들었었다. 옛 서울역사, 그곳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될 거라며 헐벗은 채 속살과 뼈대를 드러내며 리모델링 중이었던 모습이 오히려 사진전에
 
출품된 사진들보다도 흥미로웠었다. 이 곳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하게 단장해서 옛모습이 많이 지워지겠구나,

하는 비감함마저 들었는데 2009년 그 때 이후, 대충 3년이 꽉 차가는 시점에 다시 가본 서울역사는 또 달랐다.


재단장되어 문을 연 이곳에서 '연합국제보도사진전'이 열리고 있고, 다른 개관 프로젝트 설치미술전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단 이야기를 들은 건 사실 두어달 전이었다.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이제야 갔더니, 이미 보도사진전은

끝났고 '카운트다운'이란 이름의 개관프로젝트만 내년 2월까지 열려 있었다. 3년동안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애초 1925년 복원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문화재 복원의 의미와 문화 공간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아우르는

시도로 '카운트다운'이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before & after #1.) 서울역사 1층 로비 한가운데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보이는 천장. 위의 사진이 2009년의 모습.

그리고 밑의 사진이 복원공사를 마치고는 밝고 산뜻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이전의 모습이 뭔가 공공기관의 느낌이

강하도록 무궁화니 봉황이니 태극마크가 커다랗게 압도했다면 지금 모습은 훨씬 샤방샤방하니 이쁘다.

 

(before & after #2.)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저 낡고 삐걱대는 문짝들이나 페인트칠이 잔뜩 금가고 깨어져나간

공간이 이렇게 말끔하게 정돈된 셈이다. 새하얗고 잔잔한 불빛이 말끔하게 칠해진 하얀 벽면과 전시물들에 반사되어,

높은 천장과 더불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before & after #3.) 천장에 그려져있던 누렇게 바랜 두터운 벽지같던 무늬와 색감은 전부 사라지고 새하얗고

단정하게 칠해진 하얀 벽만 남았다. 그래도 마냥 하얗지만은 않아서, 기둥마다 검정색 받침으로 포인트를.


1층의 어느 창문들은 이렇게 색색으로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막 뭔가 복잡한 형체가 그려지거나 그러지 않아도,

저렇게 유리마다 다른 색을 끼워놓기만 해도 제법 분위기가 그럴 듯 하구나 싶다. 그리고 기차역이었던 이 공간의

전력을 감안한 듯 기차모양으로 쭉 이어지는 의자, 혹은 의자 모양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인 거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 앉았다 간 듯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서 슬쩍 엉덩이를 걸쳤더니 선뜻하니 차갑다.

예수와 부처와 공자? 뭔가 세계 종교를 대표하는 듯한 입상들이 서 있었는데 가만히 보면 그들의 대표적인

상징들이 혼란스럽게 뒤바뀌어 있다. 부처 머리위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있다거나, 예수가 수인을 맺고 있다거나.

그리고 작품들 너머로 보이는 말끔하고 단정한, 그야말로 새건물같은 옛 서울역사. 아, 이제 이곳의 이름은 바뀌었다.

이제 이곳은 2012년 3월부터 '문화역서울 284'라고 불리게 된다고 한다. 284는 이곳의 문화재 사적번호.

(before & after #4.) 다 찢어발겨진 벽지, 깨어진 창문, 대충 흰천으로 막아둔 썩은 나무내 풍기던 창틀 풍경이

이렇게 바뀌었다. 귀빈들이 기차를 기다렸다는 오늘날 VIP대기실과 같았던 이 공간, 그때의 우아함과 고급스런

느낌을 살려서 붉고 따뜻한 느낌의 두툼한 커튼과 함께 세련된 온기를 품고 있다.

(before & after #5.) 그리고 같은 공간, 일제강점기 쯤에는 겨울철 추운 날에 저기서 땔감을 때며 방안에 온기를

불어넣지 않았을까. 2009년 국제사진페스티벌 당시 사진작품을 올려두는 멋진 포인트 공간이었던 곳엔 역시

'우리는 모두 여행자'란 LED조명이 반짝이는 또다른 예술작품이 설치되었다.

(before & after #6.)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깨져나간 벽면은 을씨년스럽기가 그지없어서 왠지 공포영화의 한장면으로

손색이 없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말끔하게 정리되어선 저렇게 이리저리 뒤집히고 기울어진 숫자 작품들이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백열등이 아니라 세련되고 도회적인 느낌의 하얀 형광등이란 것도 큰 차이.

(before & after #7.) 계단도 말끔하게 바뀌어 있긴 매한가지. 잔뜩 녹슨 철제 기둥에 드문드문 거미줄도 끼어있어

가뜩이나 차가워 보이는 시멘트계단 바닥이 더욱 차가워보였는데. 한결 나아진 모습이다.
.
(before & after #8.) 시커먼 먼지가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흐르는 동안 운명처럼 내려앉았던 그 곳, 조명조차 부실해서

더욱 껌껌해 보였던 그곳이 하얗게 씻겨지고 나니깐 난간에 붙어있는 무늬도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before & after #9.) 화장실도 이렇게 바뀌었다. 배선이 다 드러나고 위의 천장도 뜯겨서 이리저리 흐르는

파이프가 다 보이던 복원공사 중의 서울역사와, 이제 그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한 말간 얼굴로 시치미를

떼며 사람들을 맞이하는.

(before & after #10.) 큰 변화 중 하나는 창문에 붙어있던 철망이 모두 사라지고 딱딱하고 무거운 색감의 창문틀이


파스텔톤의 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가진 창문틀로 바뀌었다는 것.

(before & after #11.) 2층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맞닥뜨리는 두개의 방. 이전에는 화장실과 이발실로 쓰였다는

곳이다. 지금은 이 곳이 과거에 어떤 모양이었으며, 복원을 거치며 어떤 부분이 어떻게 살아남고 버려졌는지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는 복원전시실이 되었다.

안에 들어가보면 이렇게 이전의 빨간 벽돌 건물의 속살이 그대로 살아있고, 고풍스런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유리장이나 목재 전시장 안에서 마치 박물관의 귀한 유물처럼 옛 서울역사의 부분들이 모셔져 있었다.


1층 로비의 천장화 그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옛 사진들도 남아있고, 서울역사 곳곳의 문짝 손잡이도

추려져 있었으며, 심지어 과거 이방이 화장실이었다는 걸 환기시키는 벽면의 파이프 흔적까지 간직했다.

(before & after #12.) 과거에 양식 레스토랑의 대명사였다는 서울역사의 대식당 '그릴', 그 공간은 이제 커다란

다목적홀로 바뀌었다. 휘황한 불빛을 뿜어내는 샹들리에가 줄줄이 늘어져 있던 곳은 그 무겁고 웅장한 느낌을

벗어던지고 밝고 가벼운, 좀더 현대적인 느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한 인테리어들과 방 자체의

독특한 모양새에서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고풍스러움이 멋지다.

과거에 대식당, 그릴이었다는 것의 흔적도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1층에서부터 음식들이 올라오는 엘레베이터가

두개, 고스란히 남아있었는데 워낙 깔끔한 상태여서 지금도 그대로 써도 될 거 같다.

그리고 홀 뒤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저 문을 통해 날랐었나 보다. 매표소 유리창처럼 생긴 저 두 개의 구멍은

아마도 홀 서빙을 맡은 사람과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창구 같은 거였을라나.

(before & after #13.) 한쪽에 있는 벽난로. 저기에서 뻘건 불빛이 날름날름 땔감을 핥고 있었을 거고, 그 불빛에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지 않았을까. 뭐 여기가 유럽의 어느 연회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식의 상상을 자꾸 부채질하는 이 곳의 건축물. 애초 그렇게 서양을 따르고 상상하며 만들어진 아시아

'근대'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before & after #14.) 그 안에 있던 라디에이터들. 지금도 설마 작동이 되랴만은, 그 쓰임이 없다고 지워버리지 않고

굳이 저렇게 철망까지 만들어서 그대로 보존해둔 건 그 자체로 이 방의 분위기를 만드는 아이템이지 싶어서일 듯.

아마 앞서 보았던 벽난로는 그냥 장식적인 효과만을 노린 거였거나, 아니면 워낙 방이 큰 지라 열기가 사방에 전달되지

않아서 별도의 난방 장치가 필요했나보다.

 

그리고 전시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 건, 벽면을 따라 담쟁이 덩굴처럼 타고 오르던 이 수많은 전선들, 아니 이어폰들.

뭐라고 칙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살아있는' 이어폰들이 벽면을 따라 꿈틀대며 유리창을 한가득 덮고 있었다.

창너머에서 조명이 아래로부터 위로 비쳐왔다. 서울역사 건물 외곽에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조명들을 빙

둘러서 야경을 이쁘게 꾸미보려고 하는 거다. 근데 조명이 좀 얼룩덜룩하게 벽면에 그림자를 남겨서 새롭게

복원된 역사 건물 내부처럼 말끔하다는 느낌은 없는 거 같지만, 여하간, 창문을 넘어 천장에 울퉁불퉁 그림자를

물리쳐낸 조명의 힘.

그리고 다른 예술작품들이 역사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제목을 보기 전에 먼저 작품을 한참 노려보며

대체 뭘까 상상을 해보고는, 대충 생각이 멈춘다 싶으면 제목을 보고 다시 자극을 받고 제목과 작품 간의

연관관계를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그런 감상 패턴.

그리고 이런 무지개색 아크릴인지 유리인지를 활용해서 네모난 방 공간 곳곳에 입체 형상들을 배치해둔 작품도

있었다. 다른 것들보다, 실용성이란 측면에서, 창문 옆에 기대어 선 저 핑크빛의 영롱해 보이는 수납장이 맘에 들었다.

아무거나 손닿는 대로 집어서 저기에 칸칸이 집어넣어 두면 이쁠 거 같은데.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건물 밖으로 돌아나오면서 다시 한번 눈여겨 본 역사의 이모저모. 복원공사를 거치고

말끔하게 타일을 바꾸거나 페인트칠을 하고 거울도 말갛게 새로 갈아 꼈다지만, 나무문짝이라거나 묵직해보이는

문손잡이, 그 나무빛깔이 워낙 생생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빈티지스럽다. 그래서 다행이지 싶다.


하늘이 파랗게 밝을 때 들어갔는데, 한바퀴 휘휘 둘러보며 작품들도 보고 서울역사의 바뀐 모습들도 살피고

하다보니 어느새 하늘이 파랗게 어두워졌다. 건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서서, 한때 기차를

타는 손님들이 들고 나던 건물에서 이제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이 들고 나는 건물로 쓸모를 바꾸며

수명을 이어가는 건 멋진 일인 거 같다. 이 곳에 켜켜이 쌓였던 오랜 기억들과 시간들 위에 또 다른 추억들이

쌓여 간다는 것, 하릴없이 무너져 내리고 사라지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건 참 다행이다.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1 아트페어,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다는 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다.

코엑스 주위 강남권에 회사도 많고 하니 잠시 짬을 내어 구경나온 회사원들도 적잖이 보였다. 네이버에서

세운 아트월 중 하나인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유심히 감상중인 어느 회사원의 뒷모습이 진지하다.

이번 아트페어의 스폰서인 네이버는 곳곳에 아트월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QR코드를

읽어서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좀더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포토월이란 단어는

많이 익숙하지만, 아트월(Art Wall)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본 거 같은데 참 좋은 아이디어 같다.

이제 많이 유명해진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도 아트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마를린 먼로의 얼굴이

어슴푸레 드러나는 모자이크 그림도 눈길을 모으고 있었고.


이번 아트페어는 9월 22일부터 26일, 그러니까 다음주 월요일까지 코엑스 1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약 17개국의 200개 가까운 갤러리가 참여했다나, 총 작품수가 5천점에 이른다니 왠만한 미술관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던 거 같다. 뭐, 미술관 전시회처럼 주제가 명확하고

이야기 흐름이 있는 전시는 아니고 갤러리들이 소장한 예술작품들이 우르르 쏟아진 셈이니 보다보면

살짝 소화불량에 걸릴 듯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쏠쏠하다.

이렇게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감상하며 저게 뭘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어깨에 잔뜩 얹힌 채 매료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목이 뭐더라, the sunny day? 뭔가 해피한 날의 표정이긴 한데, 가슴엔 날이 시퍼렇게 선 식칼이 꼽혔다.

표정과 액션, 형상과 제목간의 모순으로부터 뭔가 궁금증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love였던가, 비슷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온몸에 하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여자의 눈매가 저리도 앙칼진건

뭘까, 사랑의 흔적만 온몸에 남기고 뒤돌아서는 남자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나 지난 사랑을 그리는 안타까움일까.

이것도 맘에 들었던 것 중에 하나. 제목이 unmasked였던가. 마스크를 벗어던지듯 얼굴껍데기를 온통 벗겨버린

듯 근육과 지방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 그렇게 얼굴껍데기가 벗겨지고 나니 오히려 모든 표정이 지워진 채

그야말로 무표정한 모습이다.

요새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회화 소재 중에서 한국적인 미감을 물씬 풍기는 재료가 바로 자개. 색감도 그렇고

반짝반짝하는 광택도 그렇고,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다.

입체의 형태는 시각에 따라 하트로 보이기도 주머니로 보이기도, 혹은 그저 평평한 평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기한 재료들, 철사망을 어떻게 매만져야 저렇게 갈기를 휘날리며 내닫는 말의 형상이 떠오를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저 초현실적인 그림에선 나뭇이파리나 털들이 왜 툭툭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붙어있는 건지.

저런 분방한 상상력도 경탄스럽지만, 그런 상상을 저렇게 작품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그 능력도 부럽다.

일견 엉성하게 만들어지다 만 듯한 손, 심지어 손가락도 세 개 밖에 없는데다가 질감도 굉장히 거친데,

그게 또 이렇게 뭔가 절절해보이고 짙은 감성이 담긴 느낌을 던져준다.

이런 식으로, 숫자던 구체적인 물체-단추니 포크 따위-를 터무니없이 큰 사이즈로 재현하는 작품들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색감까지 알록달록 이쁘긴 한데, 왠지 이건 0부터 9까지

일괄구매해야 할 거 같다. 그치만 실제로는 숫자 하나만 구매해서 소장할 수도 있다더라는.

눈에 익고 친숙한 사이즈를 확 바꿔버림으로써 뭔가 미감을 자극하는 방식은 회화에서도 등장한다.

귤이니 콜라병이니 따위를 향해 진격하거나 공격중인 군인들의 모습이 연작으로 담겨있던 어느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그런 베이스에 나름의 아이디어를 얹어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인듯.

전통 회화와 오브제들이 바둑판무늬로 짜여져서는 설치미술작품이 된 거라고 해야 하나. 특히 저 노랑 버스랑

말 인형이 맘에 든다.

굉장히 다양하고 신기한 작품들이 그득한 전시장 안에서 문득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가

둥둥 허공에서 유영하는 모습이란 그렇게 초현실적이진 않았다. 요샌 저런 'R/C 생선풍선' 있구나. 그런

정도의 감흥. 그치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거 꽤나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눈에 띄던 조각들. 아니지, 이걸 조각이라 하기도 그렇고 음..걍 미술작품, 이라는 게 무난하겠다.

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해댔길래 코가 저렇게 낭창낭창하도록 길어졌을까.

풍선아트를 그대로 굳혀놓은 듯한 저 선명하고 발랄한 색감의 작품은 분명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의

그것 같기도 한데. 이름을 까먹어서 잘난 척할 타이밍 1회 상실. 뭐, 이름 외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


금과 은으로 장식된 듯한 새하얀 마차랄지, 삼륜차랄지, 바이크랄지. 가만보면 좌석 등받이 쪽에 붙은

조그만 모니터에서 뭔가 사람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저렇게 낮은 곳에 있어서야 지나는 사람들의 부주의한 발길에 밟히면 어쩌려고. 하얀 모래가 깔린 가운데

허우적대고 있는 두 사람, 뭔가 개미지옥이나 사막의 구덩이같은데 빠진 절망적인 상황 같다.

그리고 뭔가 반복적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녀석들이 있었다. 눈과 입, 아마 실제

사람의 눈과 입을 따서 투영시킨 거 같은데, 쉼없이 꿈벅거리고 말하고 하품하는 그 형체가 기괴했다는.

그리고 이런 클래식하고도 반가운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도 있었다. 당대에는 획기적이고도

참신했겠지만 이미 그 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의 작품은 뭔가

손때묻고 오래되어 따스한 온기가 도는 낡은 기계의 느낌이 난다. 오래된 재봉틀이나 빈티지스러운

바이크에서 느껴지는 그런.


나 같으면 BMW에 이런 식으로 도색을 하진 않겠다. 차는 참 이쁜데 말이지.

정말이지 전시장은 너무도 광활했다. 사람도 무척이나 많았지만 워낙 넓고 천장도 높아서 갑갑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그렇게 전시장 한가운데서 방황하다가 작가들이 붓을 흩뿌리며 작품을 만드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미술 시간에 저렇게 붓에 물감 찍어서 휙휙 뿌리는 건 참 재미있었는데. 


중세시대 귀족들을 희화화하는 걸까, 커다란 목장식을 벌통으로 바꿔놓고는 얼굴 곳곳에 벌을 붙여놓은

작품도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촬영하곤 이리저리 매만진 작품 앞으로 온통 분해되어 버린

바이올린의 조각들이 가까스로 서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던가, 그 나라의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런 사회성 짙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폴리스 라인 뒤에서 죽어 나자빠져 있거나, 그 라인을 의식하며 권력에 대한 충성을

허둥지둥 맹세하거나, 혹은 라인을 밟고 경계에 선 사람의 모습까지. 내 맘대로 읽어낸 거지, 실제로 무슨

의미를 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센스가 넘치는 회화들. 안 그런 것들이 없었지만 특히 저 사이클 장면을 그린 그림이 와닿았다.

부시와, 테레사수녀와, 달라이라마가 레이싱 중이다.
 

눈이 시뻘개진 나무 늘보가 괴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는가 하면,

그림 아래쪽에 창을 내고 알루미늄을 붙여선 공간을 틔워버리고 나비 두마리를 날려보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칠판처럼 배경이 그려진 그림 위에 저런 뜬금없는 고추를 그리거나 명함을 오려붙이고, 낙서를 마구

해서는 마치 학예회날이나 만우절날, 혹은 교생 떠나가는 날의 칠판을 그대로 떼어온 듯한 그림도.

누구의 입버릇을 빌건대, "내가 추석 연휴 때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을 전부 봐서 아는데,"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은 정말 그 풍요롭고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서,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환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이다. 다스베이더의 가면 너머 숨어있는 그 깊고도 복잡한 심경, 그걸 그대로 전유해서

예술 작품 자체에 깊이를 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스타워즈 자체가 수많은 아티스트의

소재가 될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자극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거다.


여하간, 다스베이더를 소재로 삼은 저런 작품들, 아..하나 갖고 싶다. 스타워즈 빠돌이가 되어버렸다.

최근 인터넷에서 실사판 화투패라고 돌고 있는 것도 있던데, 그것도 제법이었지만 이렇게 뭔가 메카닉의 느낌이

담긴 화투판도 괜찮은 거 같다. 심지어 비광의 저 냥반은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거 같다.ㅋ

한국 작가 누구더라, 의 태권브이는 맨발로 당나귀를 타고 있다. 태권브이의 저 입모양은 이모티콘으로 따지면

-0-, 이런 느낌을 주는 거 같아서 재미있다.

저런 그림 참 좋다. 도발적인 자태와 눈빛, 흘러내린 머리까지. 나중에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리고 이런 툭 까내리는 메시지도 좋다. 다짜고짜 뻐큐란다.

모네의 그림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무질서해 보이는 수많은 붓질이 한송이 수련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처럼. 이 여인의 얼굴 그림 역시 가까이 들이대면 이런 조악해 보이는 어설픈 동글백이가

수없이 숨겨져 있었던 거다.


사진 작품들도 제법 있었다. 익히 알려진 배병우 작가의 작품들 말고도, 저런 작업은 어떻게 한 걸까.

어린왕자의 B612처럼, 조그만 별에서 벚꽃나무가 거침없이 뻗어나가 우주를 채웠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도장들을 모아서 프레임 안에 채운 게 아닐까 싶은, 크기도 높이도 모양도 내용도

전부 제각각인 것들이 모여서 커다란 직사각형의 작품에선 무슨 디오라마같은 입체감이 느껴진다.


뭐라더라, 설명을 들었는데 대도시의 밤풍경을 내려다보면 이렇게 혼란스럽고도 화려한 이미지일 거라

했던가. 작가가 실제로 그런 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딱 보면 정말 혼란스럽기는 하다.

예술은 늘 최신의 과학 기술과 성과를 또다른 표현수단으로 받아안고는 했다. 3D 아트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은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안경을 썼더니 너무 어지러워서 패스.


이거...레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변신물의 캐릭인가.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에서 뛰쳐나온 게 분명한

저 소녀가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다니, 저런 작품도 유쾌하니 맘에 든다. 사방에 뭔가 변신중이라는

듯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휘감겨 있는 것도 맘에 들고.

중국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요새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더니 꽤나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시니컬하게 담고 있는 그들의 작품 중에 특히나

너무도 적나라해서 눈에 확 들어왔던 작품. 색감도 굉장히 선명하고 멀리 떨어져 조그매보이는

천안문 광장 앞에 당당히 선 하이힐 신은 쪽쪽 곧은 다리들이 인상적이었다.


거칠게나마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훌쩍 지나 있는 시간,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은

전시물들이 있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어서 본인 깜냥에 맞춰서 즐기기에 딱 좋은 기회일 듯 하다.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까페 가회, 저번달에 '타투이스트'의 전시가 있다해서 겸겸 다녀왔었다. 전시는

생각보다 단촐했는데, 아무래도 전시의 방점이 '타투'보다는 타투이스트의 예술 세계에 맞춰져서 그런듯.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여권에 과감하게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고, 심지어 저렇게 타투하듯이

재봉틀로 별이니 배니 종이비행기니 박아놓았던 작품.

북촌 한옥마을은 거의 처음 가봤던 거 같다. 안국역에서 내려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판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선, 빗길을 뚫고 가회 갤러리 까페 입성.


입구에서부터 전시중인 타투이스트 전시 관련한 팜플렛과 달력, 온통 그의 '타투' 작품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A4 한장 크기의 도보자용 지도도 주었는데, 여태 모셔두고만 있다.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걷기엔 참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타투이스트',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어로 딱히 바꾸기가 애매한 단어다. 문신술사, 문신전문가, 문신예술가.

혹은...뭐가 더 있으려나. 그만큼 한국에서 '타투', 문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고 척박하단

사실을 반증하는 거 같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종이 비행기를 주된 테마로 잡고 타투 아트를 계속해온

아티스트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박수쳐줄 일이지 싶다. 자기 몸을 도화지 삼아 연습하지 않았을까.


그가 갖고 있는 타투 장비들. 저 총처럼 생긴 것에 잉크통을 꼽고서 펜처럼 피부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뭐라더라, 공중위생법으로 제재받고 있다던가. 딱히 제재할 법이 없으니 저

타투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느니 병을 옮긴다느니 따위의 조잡한 꼬투리를 잡고서 제재하고 있다는데,

한심한 일이다. 양성화해서 다양한 예술적 디자인이나 그래픽이 발전하도록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정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이스트 한 명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결과물들도 전시해 놓았었다.

재봉틀을 이용해 저런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수놓고는 소녀의 여린 팔목에 뽀빠이처럼 닻 모양이라거나

조폭처럼 '一心' 이런 한자를 수놓는 센스라니.


뭐 벽면 한쪽으로 그런 그림이나 복합 재료로 꾸며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분방하게 채색된

구두도 한 켤레 놓여있었고. 아무래도 갤러리 까페라 그런지 차 마시기도 괜찮은 분위기였지만, 찻잔을

들고 벽면을 따라 돌아다니며 이런 전시물들을 구경하기에도 괜찮았던, 편한 분위기의 천장 높은 까페.

와중에 발견한 맘에 쏙 들던 아이템 하나. 뱅 앤 올룹슨의 오디오였는데, 저 앙증맞은 빨강 세모모양

스피커가 한눈에 확 꽂혀버렸다. 게다가 조그마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전혀 뒤지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꼭 사겠다며..일단 위시리스트에 보관.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많이 연했다. 갈수록 진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참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 위의 크리마가 여느 까페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부드러웠던 듯.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

스푼의 애교에도 맘이 녹아내렸다.


들어갈 때 한장씩 나눠줬던 종이는, 전시 중인 타투이스트의 메인 테마인 종이비행기를 접으라며 미리

접는 선이 인쇄된 종이였다. 내친 김에 종이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나서는, 영수증 종이로도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마저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문득 불붙어 버린 종이접기의 마력. 어렸을 때 만들었던 독수리5형제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궁금해져버려서 있는 종이 없는 종이 동원해서 결국 만들고야 말았다. 저렇게 입도 쩍쩍

벌어지는 날렵한 모양의 비행기. 양쪽 옆구리에도 비행기 한대씩 합체분리할 수 있고 위에도 한대

합체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비행기였었다. 어렸을 때 커다랗고 두꺼운 달력 종이로 참 많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까페도 온통 둘러보고, 책도 읽고 하는 와중에도 참 줄기차게 내리던 비.

이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기보다는 '우기'가 있는 아열대의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서 북촌한옥마을을 좀더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에스프레소는 훌짝 다 마셔버린지 오래. 마치 타투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버린 크리마의 갈색 띠만

에스프레소 잔 안쪽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 타투를 보고도 사람들이 '참 잘했어요'라거나 '1등급' 따위의 둥근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이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더 밖으로 열려있는 이미지였음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달과 별을 몸에 새겼으니 다음에는 다른 천체를 새겨서 공간을 넓혀야겠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가회 갤러리까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 타투이스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내 꺼만한 게 없지 싶어서 조금은 뿌듯.




* 19세 이하에게 유해한 정보(사진 등)가 포함되어 있다 하여 강제 비공개처리된 후, 약간의 수정과

사진 자체 검열을 통해 재발행하는 '유르겐 텔러' 사진전. 그의 전시는 19금이 아니었다.



대림미술관의 전시를 언젠가부터 빠짐없이 보고 있다. 최근만 해도 폴스미스, 디터람스, 이번에

유르겐텔러의 전시까지. 그는 무려 10년동안 마크 제이콥스의 광고사진을 찍기도 하고 각종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는 등, 딱히 상업사진가라거나 예술사진가라는 식의 단순한 도식에

포섭되는 인물은 아닌 거다. 원래 전시를 보러가서 작품을 찍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그의 사진들을 보며 내가 다시 재촬영하고 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생겨버렸다. 

유르겐텔러의 이번 전시회, 'Touch Me'를 소개하는 브로슈어의 소개된 두장의 그림은

위의 마크제이콥스 광고사진과 이 문어 사진. 아마도 마크제이콥스의 상품들을 탐닉하다못해

쇼핑백 안에까지 박박 긁어들어간 빅토리아 베컴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한 첫째 사진과

침대 위에서 여덟개의 다리를 흐느적대며 쉼없이 꼬아대는 문어를 보여주는 두번째 사진은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는 거 같다. 침대 위 문어는 굉장히 섹슈얼하면서도 강렬한 느낌. 



(사진)


그의 사진들은 거침이 없다. 주저없이 드러내고 거침없이 희롱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는

임신한 부인의 만삭의 배 위로 자신의 성기를 드리운 채 사진을 찍는다. 그의 몸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그는 스스로 포토그래퍼의 '권력'을 내려놓고 피사체로 평등해지는 건 아닐까.

 

(사진)

여성 모델이 그럴듯한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주를 하는 사이, 그는 또다시 옷을 벗고 피아노

위에 올라가 넓은 등판을 통해 피아노 소리를, 울림을 듣고 있다. 자신의 적나라한 신체를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듣는다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려는 듯.



(사진)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사진은 어린아이의 돌사진 같은 포즈를 요청하여 찍은 것이란다.

비슷한 포즈, 비슷한 표정이라지만 너무도 이질적이고 위화감마저 조성되는 풍경, 아마도 그는

이런 식의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고 좋아하는 건 아니려나. 뭔가 쿨하게 드러내고 표현에 거침없다

싶으면서도, 그의 사진은 은유와 유머가 가득하단 느낌이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면서 모두가 바라는 건 그런 거 아닐까. 이미 잔뜩 소모되고 익숙해져버린

풍경에서 뭔가 새로운 느낌, 낯선 시선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런 사진인 거다.

지상에 존재할까 싶은 생명체의 모습같기도 하고, 영화 '괴물'에 나왔던 녀석의 모형같기도 하고,

그런데 알고 보면 바나나를 긴 혀로 휘감아 삼키려드는 순간의 코끼리였다는 반전.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touch me', 그 제목은 사실 이 사진 어디엔가 숨어있는 그 문구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터치 미. 옷을 전부 챙겨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팬티만 입은 한 남자가 다소

멍하고 방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의 팬티에 그려진 손모양과 간단한 문구.

묘한 광기가 떠도는 듯한 눈빛 위로 거꾸로 쓴 왕관, 길가의 가로수 나무라도 꺽은 듯 엉성하고

약해보이지만 구부정한 자세를 용케도 버텨주는 나무지팡이, 옆에 변기와 맞물려 왠지 냄새나고

더러운 오물일 거라 짐작-기대되는 거뭇거뭇한 흔적들이 묻는 그의 몸. 


(사진)


그녀의 강렬한 눈빛에 이끌렸던 시선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츰 내려가는 순간, 또다른 눈이 하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외설적인 느낌보다는, 활짝 열린 그곳으로부터 도리어 관찰당하는 느낌.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정도? 다큰 성인의 몸뚱이라지만 다 벗은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한없이 유약하고 부드럽고, 또 추워 보이는 거다. 난로를 들이대니 오히려 더

추워보이는 느낌이 더해진 걸까.

저런 생생한 표정, 맥주가 터져서 거품이 질질 흐르는 순간이다. 할아버지는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병을 쥐곤 (공교롭게도) 그의 노쇠한 성기가 있을 위치에서 두 손이 굳었고, 할머니는

그야말로 경악하며 한 손으로 그 광경을 가리려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림미술관 2층, 3층을 한 바퀴 돌고, 몇몇 맘에 들던 작품들 다시 한번 보고 나서 도착한 곳은

유르겐 텔러와 함께 작업했던 모델, 유명인들이 그에게 던진 질문들이 벽면 가득 적혀있던

미디어룸. 원래는 하나하나 답하려 했다고 하나, 무려 102개의 질문이라 그러지 못해 미안하단

유르겐의 쪽지가 가운데에 적혀있었지만 질문들이 전부 유르겐을 비춰주는 거울 같아서

찬찬히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1층에 전시되어 있던 유르겐 텔러의 그 거대한 쇼핑백. 사람들에게 일종의 포토존 역할을 하는

저 쇼핑백 뒤에서 해보고 싶던 건 사실 물구나무를 서던가 해서 다리 두개만 번쩍 노출시키는

거였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참았다..랄까. 여하간, 사진을 나도 저렇게 멋지게 찍고 싶다고

잔뜩 파이팅을 충전해서 돌아왔던 전시였다. (2011. 4. 15 - 7. 31, 대림미술관)





안녕하세요,

저는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 비공개 포스트 : http://ytzsche.tistory.com/1486
* 비공개 일시 : 2011-06-03 18:00
* 조치 내용 : 포스트 비공개 전환
* 비공개 사유 : 청소년 유해 정보


최근 이러한 조치가 내려진 것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해당 포스팅은 대림미술관에서 연령제한없이 입장가능한 '유르겐텔러'사진전의 내용을 재촬영,

인용한 것으로 일부 신체 부위가 노출되고는 있으나 이미 타임지, 보그 등 해외 유수의 잡지에서

공개된 광고용 사진으로 수십년에 걸쳐 인용되어온 바 전혀 유해할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예술과 음란물의 경계가 비록 애매하다고는 하나 해당 사진전의 전시주체로부터의 허락을 받고

촬영한 작품들을 포스팅한 것이 음란물로 취급되어 이렇게 비공개로 강제전환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고 여겨지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입장표명과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광화문 광장 아래엔 거북선이 숨어있다. 실제의 55% 사이즈로 만들어졌다는 거북선, 무엇보다

빨갛게 번뜩이는 눈이 인상적이었지만..실제의 형체는 사실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단 사실은

알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당당히 버티고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아마 이 머리위쯤에 있으려나,

광장 지하에 이렇게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황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된 건 처음 들어가보고 알았다.


그 말많고 탈많은 동상이 최근 대대적으로 세척에 들어갔던 때쯤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한 적이 있나보다. 한쪽 벽면에 포스트잇이 빼곡한

거대한 캔버스가 나왔다. 아무리 그 동상에 대해 구구한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순신장군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심지어 소원을 빌기도

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묘해졌다.


그 중 몇몇 눈에 콕콕 박혔던 포스트잇들을 찍어 봤다. 누군가의 하트뿅뿅하는 내용, 표현도 참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니, 팍팍 와닿는다. 근데 그 옆에 일본인이 쓴 메모는 뭐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뭔가 한-일간의 오붓한 관계를 보여주는 거 같아 기분이 좋을라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고? 뭐가 고마운 거지..?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들을 무찌른 게? 일본의

대륙 정벌 야욕을 꺾어뜨린 게? 음...다카히로라는 저 분은 세계시민인 건가.

참, 센스쟁이 우후훗. 간단한 메시지다. 돌아오셔요. 그러게, 이순신 장군같은 군인다운 군인이

그정도의 지위에 지금 자리잡고 있다면 얼마나 듬직하려나. 정치를 고려하고 쿠데타 따위나

일으키는 정치 군인은 말고, 그렇다고 팽창욕에 사로잡힌 관료적 군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위에 족한 그런,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마음가짐의 군인.

장군님 안녕하세요, 하며 안부를 묻고는 따뜻하게 감기 걱정을 해주는 메모, 글씨체를 보면

별로 어린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동심이 살아있는 따뜻한 메모랄까. 그렇지만 동심에 관한

가히 종결자라 할 만한 메모는 정작 그 옆에 있었다. 요술봉을 갖고 싶어요.ㅎㅎㅎㅎ 장군님이

요술봉이 있었으면 진즉에 왜적을 포함한 외적을 물리치고 태평성대를 갖고 왔겠지.

돌아오셔요, 에 이은 또하나의 따뜻한 다섯글자. 보고 싶어요. 왠지 그 밑에 '새해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란 말 때문에 더욱 뭉클해지는 표현같다. 사백여년 전의 인물이 2011년 새해에

돌아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누구던 읍소하고 보는 건 그만큼 절박하단..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죽은 자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건강하라니. 장군님은 이미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의 지경이건만. 근데 전혀 맥락에 와닿지 않는 저건 뭐지. 배부른데

아이스쵸코가 먹고 싶다며 하트눈을 하면, 장군님이 거북선 팔아서라도 사주시길 바라는 듯.

그래도 이렇게 훈훈한 장문의 메모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어 재미있었다. 그치만 이 메모의

포인트는, '학익진 전법을 받들어 살겠다'는 그녀의 다짐. 대체 어떻게...??;;;

그리고 몇몇 진지한 비분강개조의 메모들. 피노키오보고 울아빠 꿈속에 나와서 나 좀 놀게 

해달라던 노래가사말 이후로, 이순신장군님이 이명박대통령 꿈에 나타나서 훈계를 해달란

이야기는 참 와닿는 게 많았달까. 훈계로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MB는 그럴지도.

'내 꿈에 이순신장군이 나와봐서 아는데, 찍찍.' 


혈세를 갉아먹는 국회의원들은 반성하란다. 이순신장군상을 닦을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압박받는 사람들을 더 챙기란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밑에 부자될께요, 란 메모랑

맞물려서 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꾸 장군님장군님 하니깐 이북에 계신, 지금도

유해가 곱게 남아있으니, 그분이 떠오르는 건 왜지;

그리고 전혀 이순신장군과는 상관없는, 그렇지만 나름의 진심과 애틋함을 담고 있는

이런 메모도 좋다. 수백장의 메모가 전부 이순신장군 찬양 일색이라면 좀 무섭잖아?

더러는 자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아이스초코가 먹고 싶다고도 하고, 이렇게 그 공간을

빌어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는 거지. 일종의 反영웅주의.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던 메모. 북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는 아이들의 소망이 있었고,

또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며 평화통일하게 해달라는 아이들의 소망이 있었으며, 거기에다가

굳이 이렇게 댓글을 달아놓아 북한이 우리의 적이니 아니니 왈가왈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북한이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세상. 이순신이 온다면 글쎄, 천안함을 누가 그랬던간에

우선 책임자 및 보고라인에 대한 엄중처벌이 우선되지 않았을까.

거북선의 용머리는 우리나라를 등진 모든 곳을 향해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 바라는

소망은 그야말로 나라의 내외부를 막론한 모든 곳, 가장 낮은 빈한한 곳에서 높은 국회의원들이

있는 곳까지.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건 좋지만, 그런 영웅이 세상에 존재하리란 건 환상에 가깝다.

다들 알지만, 답답한 현실을 한큐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요술봉같은 뭔가를 바라니까

그러는 거겠지 싶다.




화투패 좀 아시나요?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0 서울 인형전시회'를 돌아보다가 굉장히 흥미로운

인형들을 보았더랬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화투패의 모습을 인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위 작품은 8월을 나타내는 거죠.



1월부터 12월까지, 이렇게 8월처럼 딱 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 인형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봐도 이게 몇 월을 나타내는 건지 알 수 없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각각의 인형들이 몇 월을

나타내는 건지 세 개 이상 말씀해주시는 감사한 분께 초대장을 보내드리도록 할께요.


ㅇ 일시 : 2010. 12. 26. 23:10~

ㅇ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ytzsche.tistory.com)

ㅇ 퀘스트 : 밑의 그림 12개 중 3개 이상 화투 숫자(해당 월)을 말씀해주시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도 간단히 비밀댓글로 적어주시는 분
                (ex. 일곱번째 그림 8월인 거 같아요, 산 위에 뜬 달이 똑같아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 주소도 꼭 적어주셔야 해요!

ㅇ 보답 : 티스토리 초대장 (선착순 100장)


그 이외에도 나름 국내 최대의 인형 전문 전시회라는 2010 서울인형전시회, 꽤나 볼만한 것들이

많은 전시였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꼭 가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자, 여기서부터 문제의 그 열두 인형들입니다. 위쪽 왼편에서부터 1번으로 시작해서 맨 끝의

12번으로 끝나겠네요. 이 중 아무거나 세개의 화투 숫자(월)을 맞춰서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안동의 어느 전시관에서 만난 이 때깔나는 옷들은 사람의 상상력을 마구마구 자극했다.

비에 젖거나 물이 묻으면 흐물흐물 녹아내리거나 힘없이 벗겨지지 않을까. 때가 묻으면

지우개로 그저 쓱쓱 지워버리면 되는 걸까. 여차하면 한 귀퉁이 찢어내어 수첩으로도

쓸 수 있는 걸까. 저 옷은 급하면 그냥 아무데나 잡고 쫙 찢어내리면 되는 걸까, 따위 온갖

흥미진진하고 살짝 야시시한 그림을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만드는 옷들의 재료는, 바로 종이다.


'종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런 의미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이라고 하면

으레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좀더 머리를 굴리면 뭔가를 포장하고 덮는 정도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할 뿐인 거다. 찾다 찾다가, 무려 '식품과학기술대사전'에까지 가서 찾아본 종이의

만드는 법, 분류, 용례 등은 이런 거다.


식물섬유나 그 밖의 섬유로 제조한 펄프를 얽히게 하여 엷게 교착시켜 말려서 시트 상으로 만든 것. 광의로는 합성고분자물질로 제조한 합성지도 포함된다. 종이는 한지, 양지, 판지, 합성지로 나누어지나 용도에 따라서 인쇄용지, 필기용지, 도화용지, 지도용지, 여과지, 감광지 등 또는 백판지, 골판지원지 등으로도 분류한다. 종이의 제조원리로는 플라스틱이라든가 인청동의 망 위에 펄프를 부유시킨 물을 흘려, 수분을 제거하고 건조시켜 만들어진다.

약 3000~4000년 전, 이집트에서 파피루스(papyrus)의 육질부를 종횡으로 펴놓고, 압착하여 건조시켜 필기용으로 사용했던 것에서 유래하여 paper(영), papier(독일), papel(프랑스)의 어원이 되었다. 현재의 종이는 서력 105년 중국에서 채윤이 삼 또는 동백의 나무껍질을 원료로 발에 올려 종이로 한 것이 기원으로 되어 있다. 종이가 대량으로 쓰이게 된 것은 목재로부터 펄프가 만들어지고 원망, 장망 등 기계적으로 연속생산이 가능하여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지만 그전까지는 귀중품이었다.

종이에 의해서 인류는 과거의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종이의 소비량은 문화의 척도가 되고 있다. 컴퓨터시대가 되어 종이의 소비량이 감소할 것으로 추측하였으나 실제로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용도별로는 중량비로 약 4할이 포장에 사용되고 있어 종이는 포장의 중요한 소재이다.

* 출전 : 식품과학기술대사전 한국식품과학회 저, 2008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뭔가를 접고 오려 만들거나, 단단하게 말려서 바람을 일으키거나, 혹은

벽에 바르거나 바람을 막는데 쓰는 건, 그 위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함께 오래전부터

활용되어 온 종이의 쓰임 중 하나인 거다. 그런데 옷이라니. 종이로 옷을 만든다는 건 어릴 적

여자애들과 같이 못 이기는 척 인형 옷입히기 놀이를 할 때 빼고는 생각도 안 해본 일이다.

그런데 그저 슬쩍 걸쳐놓기만 하는, 전혀 실제로 입을 엄두도 낼 수 없는 그 2차원의 옷이

실제 사람이 입고 생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채 이 곳에 전시되어 있던 거다. 마치 아바타를

필두로 한 3D영화가 전혀 새로운 충격과 감각을 일깨우듯, 3차원으로 구현된 옷들이 눈앞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사실은 생각을 조금만 뒤집으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왜 하필 수의를 앞에 두고 그렇게

납득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옷이나 포장지나, 뭔가를 싼다는 것에선 같은 거다.

물론 수의와 달리 실생활에서 입을 수 있으려면 그 종이의 견고함이나 내구성, 부드러움

정도가 굉장히 특출해야 하겠지만.

여기가 바로 그런 한지를 만드는 곳이다. 이미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가 다녀간 안동 하회마을 옆의 안동한지공장이다. 얼마전 있었던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 곳의 한지가 또다시 국제적으로 알려질 기회를 얻었는데 15개 회의장 전체의 실내공간을

장식할 도배지로 활용되었다는 것. 전국 최고의 품질임을 거푸 인증받은 셈이다.

이 곳에서는 단순히 한지를 전통적인 제조법에 따라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만들어진 한지를

전시하고 제작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관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지를 원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었고, 명함통이나 필통 같은 것들을 직접 한지로 만드는

체험 역시 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만들어진 종이를 파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앞으로도 한지를 볼 때마다 스스로의 이야깃거리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랄까.

닥나무가 시래기와 함께 시름시름 마르고 있던 컴컴한 창고. 얼핏 보아서는 무슨 뱀가죽을

벗겨놓은 듯 길고 가늘고, 그렇지만 질겨보이는 것이 잔뜩이다.

가까이서 보면 겉껍데기는 칙칙하지만 속은 제법 하얀 빛깔을 숨기고 있는 게, 어찌어찌 살살

잘만 다뤄주면 하얗다 못해 뽀얀 빛깔을 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실제로 한지를 제조하는 건

이 녀석들을 사정없이 삶고 헹구고 햇볕 아래 표백하는 과정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한지만들기1. 커다랗고 네모난 솥에서 삶아지고 있는 닥나무 껍데기들, 슬쩍 만져보니

제법 낭창하게 많이 부드러워졌다. 물기도 흠뻑 머금은 데다가 불에 삶아진 덕분인 듯 했다.

한지만들기2. 창고에서 봤던 녀석과는 비교도 안 되게 새하얀 빛깔로 변신한 닥나무 껍데기,

아주머니 둘이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무더기무더기 끄집어 내어 열심히 뭔가를 골라내고

있었다. 껍질 속에 혹여 섞여 들어간 티를 골라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한지만들기3. 잡티가 없이 깔끔하게 골라진 닥나무 껍질을 분쇄기에 들어가 잘게 짓이겨진다.

그때 아무 염료 없이 그대로 짓이기면 하얀 한지를 만들 원료가 되는 거고, 뭔가 빨갛거나

파랗거나 노란 염료를 첨가하면 그 색깔을 띈 한지가 만들어지는 거라 한다.

한지만들기4. 여기가 아마 제일 기술도 필요하고 힘도 필요한 작업이지 싶었다.

생각보다 훨씬 작고 열악한 공장에서 내리쬐는 형광등은 왜 그다지도 밝은지, 판을

휘젓는 아저씨의 팔뚝에 솟아오른 굵고 야성적인 힘줄과 핏줄들을 그대로 비췄다.


한지만들기5. 잘게 짓이겨진 닥나무 섬유들이 둥둥 떠다니는 물 속에 저 커다란 판을 넣고

좌우로 세번, 위아래로 세번, 그렇게 십여번 가까이 힘차게 흔들어주면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던 판 안에 하얀 종이가 생겨나는 거다. 섬유들이 물풀처럼 흔들리며 좌우로 정렬하는

모습이 머릿속엔 생생하게 그려졌지만, 아저씨들의 두꺼운 팔목이 움직이는 아랫쪽을 아무리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아도 한지가 생겨나는 과정은 좀체 신기롭기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지를 판에서 떼어내어 아랫쪽에 차곡차곡 쌓아올리곤, 다시 닥나무

섬유들이 흐늘거리는 물 속으로 판을 집어넣었다. 다시금 시작되는 좌우로 세번, 위아래로

세번의 십단콤보. 둘이 나란히 서서 하는 작업이니 아무래도 조금 덜 심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두분이서 슬쩍 장단을 맞춰가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분이 조금 앞선다

싶으면 다른 분이 금세 따라잡기도 하고.

그렇게 쌓여만 가는 한지는 아직 너무 축축하다. 축축하고 미끌거리고, 해서 좀처럼

손으로 잡아올릴 수가 없었다. 귀퉁이에 슬쩍 손가락을 댄다는 게 무슨 지문을 남기듯

깊은 흔적을 남겨버려서 시껍하곤 도망나와버렸다. 아직 종이라기보다는 뭔가..묵이나

전병같은, 먹을거리에 가까워보이는 네모판.

한지만들기6. 어느 정도 물을 빠지도록 방치했던 그 하얗고 네모진 묵덩어리에서는 이제

한장씩 '종이'라 부를 만한 것이 떨어져 나올만큼 형체가 잡혔다.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운

철판 위에 한장씩 솜씨좋게 잡아당겨 붓질 한 방에 찰싹 붙여놓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은

거의 춤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마른 종이는 이제 한장씩 다시 포개져선 밖으로.

한지 만들기 체험관에서는 '좌우 세번, 위아래 세번'의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손가락만 슬쩍 빠뜨려도 온통 닥나무 섬유들이 휘감기는 물 속에서 조그마한 판을 움직여

종이를 만들고, 수건 위에 올려 물을 뺀 후에 뜨거운 철판 위에서 바싹 말리는 과정. 그렇게

내가 만든 종이 양쪽 귀퉁이에는 서로 마주보도록 도장을 두 방 찍어줬다.


내가 만든 한지를 조심스레 접어서는 어디에 쓸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옆 방으로 옮겼더니

온통 화려하고 아름다운 종이들이다. 닥나무 섬유질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결하며, 정말

곱게 나염된 그 빛깔하며, 저런 종이는 포장지로 쓰거나 아님 아까 봤던 한지 옷의 허리띠로

써도 딱 좋을 거 같다.


무려 천 년 이상 보존된다는 우리 나라 고유의 전통 한지는 '조선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독자적인 특징과 개성이 묻어 있다고 한다. 종이 한 장이라도 직접 만들어보고 나니

그 과정에서 천년을 버틴 사람들의 지혜와 미감의 한켠이나마 엿본 듯 했다. 아무래도 앞으론

한옥집이나 한지로 된 포장지만 보아도, 아니 한지 비스무레한 아름다운 종이 한 장만 보아도

마음이 설렐 듯 하다.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리얼리즘' 전은 추석 연휴 기간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김혜자를

닮은 이 인도네시아 여자는, 그녀의 인상적인 얼굴, 혹은 두 눈을 제한 나머지는 온통 흐릿하게 처리되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는 듯.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라는 무미건조한 제목이 레알 리얼리즘의 향취 가득.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로 광고나 티켓에 온통 쓰이고 있었는데 역시, 작품의 일부만 자른 채 활용된

그림들과 전체가 다 살아있는 실제 사이즈의 그림은 그 느낌이 꽤나 다르다. 가장 맘에 들던 작품 중 하나.

또 하나는 문화혁명기의 중국 화풍을 여실히 보여주는 몇 가지 작품들, 리얼리즘이 결국 대면하게 되는 사회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영웅화된 노동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예컨대 이런, "구리광산의

첨병" 같은 작품.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마치 기념동상이라도 된 듯 단단하고 당당하게 버티고 선 저 굳건하고

의지적인 자세, 게다가 광산 내부를 흐르는 물방울의 정밀한 묘사까지.


이외에도, 비바람을 맞으며 한밤중에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복구하는 용감하고 굳은 눈매를 가진 아가씨의

그림이라거나, 밤중에 애기를 이쁜 포대에 업은 채 쇠스랑을 꼬나쥐고 사람죽일 눈매로 뛰쳐나오는 애아주머니의

그림 같은 것들.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절로 기운이 솟아 죽창이라도 뽑아들거나 열심히 노동해야 할 듯.

사실 한국의 20세기 리얼리즘을 보여준다는 작품들은 대개 실망이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20세기는 어느 정도의 공통 분모를 공유하고 있었고 피식민 경험, 일본의 수탈, 태평양 전쟁,

식민지 근대화와 독재, 자본주의화 따위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치열히 대면한 작품들이 보였지만, 한국은

그다지 선명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은 느낌. 일제 강점과 극렬한 사상대립, 한국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

재벌과 압축 근대화 등등 리얼리즘의 냉막하지만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주제는 무궁무진했을

텐데, 다른 나라의 작품들에 비해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의미심장해 보이지도 않았다.


모르겠다. 아마도 한국의 리얼리즘을 좀더 잘 드러내는 작품들의 섭외가 안 된건지도. 그치만 그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속 농자천하지대본'. 쌀포대에 직접 그려진 이 작품은 표창장과 태극기와 캠페인 포스터의

활짝 웃고 있는 농부의 모습들이 온통 쭈글쭈글한 저 노인의 얼굴 속으로 우겨들어간 채, 그가 품은 한장의

편짓말로 주제를 드러낸다. 노인들만 남아 일손은 없고, 몸은 아프지만 난 괜찮응게. 부디 너그들은 대처에서

잘 살아라잉.



추석날 서울에 남아서 노는 건 처음이었다. 뭔가 공기가 달라진 채 휑한 느낌의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 갔다.

중화전 앞마당에 놓인 품계석들은 원래 왕이 조회를 볼 때 문무백관이 시립할 위치를 표시한 것, 그렇지만

추석을 맞아 품계석 주변에는 온통 '일반 백성'을 위한 플라스틱 의자가 깔린 채 우리 소리 한마당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거의 한 때나마 '똥돼지들'이 대대손손 해먹던 자리에 '딴따라'와 '무지렁이 백성'들이

편안히 앉아 연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니. 유쾌한 추석.






@ 도쿄, 도쿄에도건축공원.



가족들은 전부 어디론가 떠나고, 혼자 외로이 남아 집을 지켜야 하는 추석 연휴.

마음 속에서 바람소리가 휑하니 들리는 듯 하지만.


9월 20일(월) 저녁부터 9월 23일(목) 밤까지 어떻게 놀아야 재미있게 추석 연휴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가 볼만한 곳이나 재미있는 꺼리들에 대해 가장 매력적인 조언을 해주신 여섯 분께 초대장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제가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는, '좌우파 사전'같은 새로운 책을 몇 권 주문해 놓았고 '반지의 제왕'

디비디를 전부 빌려두어 한번도 쉬지 않고 이어서 볼 생각입니다. 미술관 전시나 하나 둘러볼까 생각중이기도

하구요. 그런 것들에 더해서 뭘 해야 추석 연휴를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요?


미리~ 감사합니다~*




* 참고 : 제 거주지역은 서울, 제 성별은 남자..또...




공룡이라고 다 무서운 건 아니지만, 여태 인류가 상상해낸 공룡의 표정 중에선 가장 불쌍한 표정 아닐까 싶다.

다른 광포한 육식공룡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다가 바닥을 기어 도망가려는 듯한 애틋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이 녀석, 표정이 너무 인간스럽달까. 애니의 왕국 일본이어서 이런 표정의 공룡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게 가능했던

건 아닐지. 어떻게 보면 조금 '개'같이 생기기도 했지만서두.



@ 일본 도쿄, 모리타워에서 열린 공룡전 광고판에서 한 컷.





오랜만에 덕수궁미술관, 생각해보면 여긴 뭔가 내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덜렁 카메라 둘러메고 떠나는 곳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덕수궁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있었다.

미술관 앞, 몇 개의 부처상들이 놓여있었다. 심상히 여기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배치된 것들이었다. 작품의 컨셉, 이번 전시의 컨셉은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지. 그리고 그 아연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어떤 공력을 기울이고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는지. 그걸 보여주려는 전시였달까.


그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이 조각상들..이었지 싶다.

덕수궁 미술관을 가는 길엔 산책삼아 한바퀴 돌아보는 덕수궁, 늘 그렇듯 낯익은 듯 하면서도 새로운 구도와

모습들이 드러난다. 내가 방문하는 시간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피사체는 사라지고 배경만 남아버린 이런 풍경.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전시 제목은, 실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라는 백남준의 작품 제목을

따서 지은 거라 한다. 전시회를 한바퀴 둘러보다가 운좋게 만난 도슨트의 설명이 그랬다. 굉장히 로맨틱하고

그럴듯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백남준의 원제가 더욱 그럴듯하지 않은가 싶었다. 우리가 둥그렇게 생긴

아날로그, 디지털 시계를 내려다보기 전에는 달을 바라보며 시간을 어림잡았을 테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밤하늘에 뜬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상념을 잠겼을 거다. 그야말로 태곳적의 텔레비전.

내가 전시를 돌아보는 방식은, 언젠가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런 식이다. 우선 한바퀴 훌쩍 돌아보고 나선 맘에

폭폭 꽂혔던 것들 위주로 다시 한번 돌아보기. 요새는 워낙 도슨트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처음 한 바퀴는

으레 도슨트를 따라 돌며 기본적인 배경지식과 관점을 참고하게 된다.

그냥, 전시를 죽 돌아보고 나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도. 역시 시간은 흐르는구나. 시간은 흐르고,

어찌 되돌이키거나 붙잡거나 고여있을 수 없는 순간들이 지나고, '강이 흐르듯' '시간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듯'

어쩔 수 없는 상처들은 덮거나 지우고  다시 흐르는구나. 나도 흘러야겠구나. 그런.

이 작품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비누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삽시간에 '나이'를 먹는다. 야외에 설치되어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씻기고 아이들의 손이 타 금세 지저분하게 녹아내리고 심지어는 갈라지는 조각상.

건물마다, 예술작품마다 제각기의 '수명'이랄까 '나이'가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게 아마 도심속의 덕수궁

미술관에 들어설 때 느끼는 이질감의 정체겠지만, 씬삥의 콘크리트 건물이 뿜어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훨씬 긴 호흡의 뭔가를 이전 시대의 건축물이나 예술품에서 느끼는 거다. 그 차이. 그걸 응축해서 보여주는

게 이 비누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아닐지.

다른 작품들은 모두 이미 제작된 작품들을 섭외한 거지만 이 아이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다시 제작된

것들이라 했다. 이전 전시에서는 이런 아이들이 화장실 세면대 옆에 설치되었다던가. 손을 씻고 이 아이들을

문대면서 자연스레 씻겨나가고 지워지는 효과를 의도한 거라 했었다. 멋지다.

덕수궁 내에는 시간의 흐름을 잡아내는 또다른 도구가 있으니, 바로 자격루다. 덩어리 덩어리 분절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흘러가는' 시간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은 액체, 물이었을 거다. 그러고 보면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 가슴을 울렸었다. liquified agony. 에라 모르겠다. 씻겨나가겠지, 라는 식의 제목.



* 도슨트 말로는, 5월 초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를 위해 덕수궁 미술관 앞에 설치된 저 비누 조각상들이

불과 한달만에 저렇게 쩍쩍 갈라지고 허옇게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아마 전시가 끝나기 전에

녹아내려버릴지도 모르겠다 했다. 장마철이 다가오고, 유난히 비가 많을 거라는 이번 여름을 생각하면

정말 그럴 거 같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관람료는 덕수궁 입장료 포함 5,000원. 성인 기준이다.





상해엑스포장 내의 한국관, 멀찍이서부터 뽕뽕 구멍뚫린 듯 표기된 글자가 한국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포서 지역보다 포동 지역에 중국관을 비롯한 국가관이 모두 모여있는지라 관람객들이 훨씬 많이

바글대고 있었고, 비단 한국관만이 아니라 일본관, 중국관 모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선 채 입장을 기다려야 했다.

최근에 중국 칭하이에서 큰 지진이 나고 또다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각 국가관에서 모두 조기를 게양해

비극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관은 조기를 게양하지 않아 중국 내 반한감정을 건드리는 불씨가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여튼 아이티 지진이 났을 때와는 너무 달랐던 국내의 분위기는 내 생각에도

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똑같이 사람 목숨이 날아간 비극이었는데.

벽면 가득 색색의 한글이 차 있었다. 무슨 200자 원고지에 빼곡히 글자를 적어 건물 벽면에 둘둘 바른 느낌.

근데 심지어 그 글자들이 이어져 문장이 된다.

"그림을그릴때눈을반쯤감고그려야좋은그림이나온다가장좋은냄새는학교앞문방구에서방금산책받침냄새다서울서인천까지걸을만하다파송송잘끓인라면을당할음식이없다감싸고보듬으면살아난다남자들은대체로피부가맑은여자를좋아한다 서울은잠을자지않는다흐린날밤산속에서는손바닥도안보인다라면은양은냄비에끓여야한다전기통닭은무맛이다지하철에서나와방향을모를때는맞다고생각하는쪽의반대로가면된다얼짱사진각도는사십오도가아니라사십팔도라고한다 양손을가슴에얹고자면꼭가위에눌린다붐비는식당이맛있다코가닮은사람끼리친하다 계란을좀더오래삶으면껍질이저절로까진다토끼는토끼굴에여우는여우굴에서산다"

1층은 한국기업연합관과 마찬가지로 파시드, 벽면이 없이 기둥만 세워져서 트인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5월의 뜨거운 상하이 햇살을 피해 줄을 선 사람들. "닌더펑요따한민구어", 당신의 친구 대한민국.

한국관 벽면은 참, 한글을 가지고 이쁘게 만들어냈지 싶다. 평면으로 글자와 음가들을 배치하기만 한 게 아니라

툭툭 모음과 자음이 튀어나와 있다. 벽면에 빼곡히 들어차다 못해 밖으로 튕겨나오는 듯한 단어들.

한국관 관람은 커다란 대형 패널을 사용한 티비 사이를 걸으면서 시작된다. 한국의 태권도, 영화, 제품, 그리고

미술이니 전통문화 등을 소개하는 영상들, 그리고 연예인들의 축하 노래까지.

녹색 성장을 모토로 잡고 있는지라 역시 녹색 차양이 잔뜩 드리워져있고, 이것저것 뭔가 자연친화적인 냄새를

풍기도록 기획된 것 같다. 기업관에 비하자면 부지가 두배가 넘어서 그런지 공간이 아주 널찍하다.

나무의 느낌을 살린 다른 한켠의 전시공간. 시간이 많지 않아 휘 둘러보고 나오고 말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백열등 조명과 은은한 나무결이 괜춘하다.

한국관 내부의 이동통로에 매달린 등의 갓. 한국어, 영어, 혹은 그림과 기하학적 무늬까지. 한 개만 있으면 꽤나

썰렁하고 어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개 있으니까 제법 그럴 듯 하다.

한국관의 하이라이트,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이거다. 2012 여수 엑스포를 홍보하는 공간, "자신만의 물고기를

만들어보아요" 던가. 화면을 터치해서 물고기 종류를 고르고, 물고기 등에 업히거나 채울 수 있는 기계 종류를

고르고, 그렇게 물고기를 "만들어서" 바다로 내보내면 위쪽의 커다란 모니터에 본인이 만든 물고기가 유유히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는 거다.


뭔가, 익숙한 그림 아닐까. 4대강에 풀어놓겠다는 그 물고기들. 수온 측정하고 오염도 측정하고 하수 방류

감시하는 그 물고기 발언에 이어지는 과학과 조직의 공명이다. 하아. 끔찍해라.

한국관 마지막 전시물은 이 나무다. 설명에 따르자면 한국과 중국을 상징하는 나무 두개가 칭칭 얽혀 올라가는

듯한 모양이라는데(마치 연리지처럼),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자세히 보면 엽전을 이어붙여서 나무둥치를

만들었구나 정도, 주렁주렁 매달린 종들이 땡그랑대는 것도 그렇고 엽전으로 만든 둥치도 그렇고, 돈 좋아하는

중국인들 굉장히 즐거워하는구나 라는 인상.

그리고 정말 마지막, 요새 트렌드가 워낙 3D 티비 이런거다 보니까 부랴부랴 세팅되었다는 쌈쏭의 3D TV.

아무리 3D면 뭐하나, 콘텐츠가 별로 재미가 없어서, 게다가 안경을 쓰고 멈춰서서 여유있게 관람하기엔 동선도

전혀 배려가 되어있지 않아서 걍 나와버렸다.

크게 중국어로, 그리고 작게 한국어로, 한국관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잘 가라며 다시 만나자며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가장 임팩트있었던 것은 그 뭔가를 연상케 하는 불쾌한 물고기 만드는 체험프로그램, 그리고 밖에서

가장 임팩트있었던 것은 이 건물의 외관. 한글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는데 성공한 거 같다.

그리고 한 100여미터도 채 못 가면, A-10 지역. 조선관(북한관)이 기다리고 있다.

엑스포 사상 첫 참가한 'Paradise for people' 조선관(북한관).







물결모양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건물의 외관, 한국 전통의 역동적인 춤사위와 상모돌리기에서 영감을 얻어

구현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밤에는 LED조명이 물결을 따라 건물을 휘감았다.


엑스포 최초로 기업연합관 형태로 세워진 '한국기업연합관'. 총 12개의 국내 대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처음 연합관이 구상될 때는 끼지 않겠다던 기업들이 개막 이후에는 후회하며 담당자들을 질책했다는 후문.

상해에 눈을 선물한다는 구상, 제대로 맞아떨어진 듯 한 그 아이디어를 최대한 이쁘게 비쥬얼화하면 저런

그림이 나오는 거다. (사실 저렇게 이쁜 눈송이가 내리지는 않는다.)

참고. 상해엑스포, 상해 어린이들에게 눈(雪)을 선물하다.

1층에 있는 전시물, 저 프레임을 통해 보면 수만개의 거울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조금씩 움직이며 눈이

흩날리는 듯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시선이 이동하면 이미지도 조금씩 변화하는 원리인 거 같은데, 저 거울

조각들은 캔이나 폐지 등의 색채를 빌려온 재활용품이라고 한다.

기업연합관 건물을 휘감은 합성수지 막재는 엑스포 기간이 끝난 후 이런 모양의 쇼핑백 등으로 재활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런 엑스포가 아무리 '친환경/녹색'을 표방해봐야 행사 기간에만 쓰이는

건물과 부속 시설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폐자재와 쓰레기가 나오는지. 좋은 아이디어다.
 
잘 보이진 않지만, 저렇게 발바닥이 붙은 위치쯤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액자가 보인다. 5만여개의

거울조각으로 구성된 액자가 서서히 움직이며 기업연합관에 참가한 기업 12개의 로고와 이미지들을

노출하는 거다.

잘 안 보이니 3층으로 직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다시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런 식의 그림, 계속해서 뭉실뭉실대며 그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거나 저 그림이

좀더 '녹색'과 친하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다면 의미가 더욱 실리지 않을까 싶다.

3층 Preshow 공간. 12개 참가기업의 로고가 소개되며 처음 관람객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기업연합관은 총 3층짜리 건물, 동선은 1층에서 3층, 2층 이렇게 짜여져 있다.

그래서 3층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본전시, 직전에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샤이니 등 한국 연예인들이 상해엑스포

기업연합관 개관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마침 홀쭉해진 길이 방정맞게 인사중.

입구는 다소 어두컴컴한 느낌, 아무래도 안에 있는 장치들이 대개 LED 조명인데다 보여주려는 것도 LCD패널에

나타나는 동영상과 기술들인지라.

12개 기업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지나치면 각 기업들의 로고를 터치하고 자세한 설명을 팝업해서 읽어볼 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치게 된다.

"녹색성시 녹의생활". 녹색도시 녹색생활 쯤 되려나.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터치스크린들이 있어서

관람객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훑어보고, 그렇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벽면에 있는 것들도 전부

직접 사진도 찍고 조종해 볼 수 있는 것들, 최대한의 양방향성을 추구했다더니 정말 그렇다.

SF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요새야 광고에서도 많이 보이는 장면이지만 손으로 이리저리 작은 창들을 꺼내고

키우고 움직이는 게 이만큼이나 가깝게 구현됐다. 꽤나 재미있다는.

셀카를 찍으면 그 사진이 둥둥 떠다니다가 오른쪽 끝의 줄기에 가서 달라붙는다. 아무래도 셀카는 한국적인

뭔가라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처럼 셀카찍기를 즐기고 이렇게 전시관에 기본적으로 깔아두는 곳도

없지 싶은데.

그렇게 12개 기업의 대표 제품 및 서비스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벽들을 지나면 이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슬로프를 마주치게 된다.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타워랜다. 세계최대, 세계최고, 이런 식의 수식어를 붙이는 게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LCD 모니터 192개로 만들어낸 타워라니 크긴 크더라. 아, 192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번 상해 엑스포에

참가한 국가수가 192개라는데, 이는 유엔에 등록된 국가수와 같다고 하니 말그대로 전세계가 모두 참여한 셈.

상영시간 6분여의 영상이 펼쳐지는데 꽤나 화려했다. 전면에 커다랗게 기업 로고를 때려박는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조금은 세련된 방식으로 흘려흘려 보여주는 게 특히 맘에 들었다. 멋진 광고 한편을 본 느낌.

이번 전시 컨셉은 역시나 '녹색시티'. 2층에서 이어지는 5개의 테마관에서 미래도시의 이미지, 재생 에너지 등의

내용을 담아 관객과의 체험을 기다리고 있다.

각 테마관 모두 서포터즈 언냐들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를 알려주고, 직접 시연해 보여주기도 하고.

전시장의 마지막쯤..전시관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안에는 꽉 차있다는 느낌이다. 한국관이나 북한관, 심지어

중국관이랑 비교해도 왠만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재미있을법한 꺼리들은 다 갖추고 있는 듯.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는 2012 여수엑스포를 홍보하는 영상이 뜨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그 앞에 꾸며져있던 대여섯송이의 꽃, 그리고 그 그림자 이미지.

상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엑스포 참가사상 연합관 참가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상해엑스포에

최초로 연합관이 들어선 셈인데, 외국기업연합관은 이곳과 일본산업관 단 두 곳 뿐.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고

그만큼의 성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 오년 후, 밀라노엑스포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연합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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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전시회에 다녀왔다. 미술을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작품을 보며 그의 위트와 의도를 느끼고 웃어줄 수 있었다. 회뜨듯이 얼굴을 조각내어 평면에 늘어놓은 그림들은 그의 한 시기..그리고 그의 계속되는 실험의 한 연속선에 불과했다. 그가 곁을 허용했던 7명의 여자들..피카소는 그녀들을 모델로 세워두고는, 그 어슴프레한 윤곽을 몇개의 선으로 버혀내며 마치 선율처럼,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정말 와닿았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 그림 앞에서 족히 십분은 서있었던 것 같다. 그가 큐비즘에 빠져있던 시기, 칼날처럼 솟은 어깨'뽕'을 대담하게 그려내고는, 그위에 어두운 색채로 생략된 목에 이어붙은 직육면체의 턱쪼가리..혹은 얼굴의 아랫도리. 그리고 그 첨단쯔음에 위태하게 균형잡고 선 초승달같은 얼굴. 정면을 향한 외눈과 긴장되고 신경질적인 얼굴면 옆에는 또다른 얼굴이 그림자를 먹고 숨어있었다. 칼날같은 초승달이 품고 있던 측면부의 완만함. 피카소라면 분명히 '둔덕'이라고 표현했을 것같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굴곡을 그리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와 보이는 그 초승달의 얼굴정면은 가득찬 FULL MOON과 같은 이면을 갖는다. 정면의 외눈이 날카롭고 섬세하다못해 찌를듯한 예기가 서려있다면, 그림자를 머금은 측면의 눈은..놀란 듯이 커진 눈. 예기치못하게 허를 찔린 듯한, 원치않던 사랑에 빠진 듯한..표정. 그렇게..그 정면을 향해 무표정한 '여자'는, 측면에서는 가늘고도 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측면을 파고 들수록 깊어지는 어둠..불빛조차 가닿기 힘든 내면으로 다가설수록 그녀의 미소는 깊어지고 황홀해진다.

피카소의 인물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여자'가 가진 최외곽의 가면..하늘을 향해 예각을 세운 날카로운 코잔등에서 급격하고 단호한 감정선을 느껴보고, 찔리면 당장 죽을것 같은 코끝에서 사정없이 놀아나는 남정네의 가슴서늘함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약간만 고개를 틀어도 나타나는 방심한 듯한 눈매의 매력과 깊이를 품은 미소에 반하기도 하고. 피카소는, 잘라낸 손톱같이 신경질적이고 속알머리없어 보이는 초승달의 이면에 그렇게 둥실하고 아늑한 둔덕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는, 7명의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한사람한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인듯이 사랑했을 거라고, 질리지도 않고 그녀들의 얼굴을 탐닉하고, 표정과 뉘앙스를 짜내었을 거 같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시작되는 입술의 한쪽 언저리에서 다른쪽 언저리까지 가닿고 탐험하고 싶어서..불빛도 닿기 힘든 그 구석 한켠의 미소를 완전하게 찾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리라.

이미 한차례, 쪽당할 각오하고 '노란벨트'라는 작품을 폰카로 기어이 찍어버린 터였다. 피카소의 에로틱함..혹은 그가 추구하던 관능미가 유쾌하게 변주된 작품인거 같아서. 마치 프로이트의 심리병리학적 해석들처럼. 그런데 도무지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가 없다. 온갖 매체들이 써놓고 긁어놓은 작품사진이나 설명을 보아도..무엇이 원전인지 모르겠지만 거개가 다 똑같은 작품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뿐이다.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이 작품은..아마도 대중이나 전문가의 '인증'이란 걸 받지 못한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어서..내가 한번 기억을 떠올려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여자의 얼굴'이란 거.

덕수궁 돌담길의 그늘에 숨어 걸으며, 피카소는 붓으로 독심술의 결과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는 여자의, 사람의 얼굴이나 마음이 책처럼 편평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거다. '독심술'이란 말의 어폐..를 그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200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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