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alaxy7

어느날, 저녁도 먹을 겸 공연도 들을 겸 찾아간 이태원의 올댓재즈. 딱히 연주자 누구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충분히 즐길 만큼의 선곡과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밴드들을 만나게 된다.

 

연주를 감상하며 음료를 홀짝거리다 문득 눈길이 닿은 곳에 무수히 내려앉은 별빛들.

 

유리창에 새겨진 드럼 세트 위로 반짝이는 별빛에 마음마저 일렁일렁.

 

 

 

 

 

이태원 올댓재즈, 대로쪽에 연해 있다는 정보들과는 달리 조금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직 해가 까무룩히 잠들지는 않은, 마법의 시간대. 짙은 청빛이 도도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천장.

 

이 곳에서는 재즈 공연을 보고 듣는 것도 좋지만 음식들도 꽤나 괜찮다고 하더니, 피자와 샐러드 시킨 것 모두 만족.

 

 

콘트라베이스의 둔중한 울림이 스피커로 빠져나와 하늘로 피어오르는 시간.

 

그리 크지 않은 무대와 무대와 바싹 붙어선 그리 많지 않은 좌석들. 반층 위 객석을 감싼 유리창이 번들번들 붉은 벽돌담이 되었다.

 

 

 

 

 

금요일 점심마다 짬을 내어 피아노 학원을 다닌지도 어언 3개월, 이제 슬슬 새끼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가고 어렸을 적

배웠던 것들이 몸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질러버렸다. 피아노. CASIO의 PX320, 가뜩이나 책으로 가득차서

좁은 방에 뭔가를 더 들이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멜로디 악기를 쭉 배우고 싶단 생각에 중고로 질렀다.

(셔터속도 15 sec, 조리개 F/29.0, ISO 800)

그리고 틈날 때마다 맹연습 중.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나, 늦게 들어가더라도 괜히 술이 땡기는 날이면 예전처럼

혼자 술을 홀짝이는 대신 피아노 커버를 벗기고 이것저것 치고 있다. 초딩 때 쳤던 정규과정에 따르자면 모차르트

연습곡 번호 5번이나 7번을 치는 수준에까지는 돌아왔는데, 굳이 그 레파토리 따르지 않고 치고 싶은 곡들 치려고

지금은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와 야니의 'ONE MAN'S DREAM'을 주로 연습하는 중.

(셔터속도 5 sec, 조리개 F/11.0, ISO 100)

술을 혼자 마시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엊그제부터는 집에서 위스키나 꼬냑 한 잔 따라두고 향이 잔잔하게

퍼지기를 기다리며 두어번 곡을 연습하는 재미에 눈을 떠 버렸다. 비틀비틀 건반 위를 허우적대다가 보면 어느 순간

황금빛 알콜의 짙고 끈적한 향이 음표처럼 방안을 떠도는 거다.

(셔터속도 8 sec, 조리개 F/32.0, ISO 1600)

우야튼 그리하여, 정확히 10월 6일에 업어온 피아노. 어느새 3주로 접어들고 있지만 피아노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심지어 이름도 지어줘버렸다. '나넬', 모짜르트의 누나이자 숨겨진 천재, 그리고 최근 영화로도 개봉된 그녀의 이름)

두고 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 되었다 싶으면 동영상 녹화를 해서 여기에 하나씩 악보와 함께

올려볼까 싶기도 하고. (셔터속도 1/25sec, 조리개 F/3.5, ISO 800)


아, 그리고 악기 사진 올린 김에 겸겸. 회사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기 시작한 알토 색소폰을 불고 있는 사진도.

2년 가까이 배웠지만 주중에 한번 잠깐 배우고 잠깐 연습한 거여서 아쉬운 점이 많다.

2년 동안 불면서 그래도, 아저씨들의 뽕삘 대신 근사한 재즈삘의 엇박을 조금은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길고 이쁜 동그라미를 그리며 호흡을 내뿜도록 좀더 가다듬게 되었다는 건 앞으로도 큰 재산이 될 듯.

물론 그 '재즈삘의 엇박' 감각은 정박 클래식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한참 충돌하더니 지금은

어디갔는가 모르겠다. 아마도 안드로메다로.





방콕에 가서는 꼭 들르게 되는 바가 있다. '색소폰Saxophone'이라는 이름의 재즈바.

방콕 북쪽 전승기념탑 근처에 있는 이 라이브바는 9시부터 라이브 공연을 시작하는데 그다지

한국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곳 같다. 사실 장소도, 시외로 나가는 버스들이 우르르 서있는

큰길가에서 조금 빗겨나 예기치 않은 장소에 놓여있어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막상 들어가면, 맥주 한병에 120-150바트 정도 과히 비싸지는 않은 가격에 주로 서구에서

온 외국인들이 우글우글하다. 게다가 공연 라인업도 가히 방콕 최고의 퀄리티를 자부한다는.

9시 이후 본격적으로 밴드들이 공연하기 전엔 가볍게 클래식 기타 공연, 이렇게 맥주 한잔 마시면서

다이어리도 정리하고 엽서도 쓰고. 중간중간 곡이 끝나면 박수쳐주는 거 빼고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아마도 Byrd의 초상화인 듯한 그림이 한 점 천장 가까이에 걸려 있고 알토, 테너, 소프라노

색소폰들이 반짝반짝 빛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알토 색소폰을 손에서 잠시 놓은 게 어느새

육개월, 나도 얼른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아홉시가 지나니 이렇게 저렇게 마이크도 체크하고 한참을 부산하게 굴더니 꽤나 시간을 잡아먹는다.

근 이십여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한 밴드는, 그렇지만 그 기다림이 전혀 아깝거나 화나지

않을 만큼 훌륭하고 그럴듯한 공연을 보여줬다. 특히 뒤에서 알토 색소폰을 불던 저 까까머리 아저씨.

알토 색소폰 말고도 플룻도 불고 테너 색소폰도 불고, 여차하면 트럼펫도 같이 부는 굉장한 실력을

보이며 화려한 손놀림과 입놀림을 보였댔다.

10시쯤 되니까 사람들이 바를 가득 메우고 급기야 자리가 없어 벽에 기대어 서서 병맥주를 홀짝이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바 한쪽 벽면에는 실내 소음크기를 측정하여 보여주는 전광판이 대충

80에서 90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데시벨을 나타냈고.

원래는 열한시쯤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글쎄 금세 새 밴드가 와서 공연을 한다는 거다. 이미 앞의

밴드가 후끈 달궈놓아 흥분한 혈관에 알콜이 더해졌고, '색소폰'에 대한 신뢰가 더했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려 맞이한 두번째 밴드, 역시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최고였다. 특히 저 건반을 맡은

아저씨의 무시무시한 속주 실력이란.

그리고도 저 귀여운 아가씨와, 슬쩍 우습게 생긴 이 아저씨의 노래 솜씨는 정말 들어보지 않고는

말을 할 수도 없는 정도. 바를 온통 후끈 달군 채 사람들을 열광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던.

하나 아쉬웠던 점이라면 저 아저씨가 신고 나왔던 모카신, 그리고 공연 시작 전 기타리스트의

엉덩이를 슬쩍 만지며 들어서던 모습을 내가 똑똑히 보고 말았다는 것. 사실 내가 특별히 아쉬울

부분이란 게 있을 것도 없지만 저런 모카신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후끈 달아오른 바의 관객석. 원래는 8시쯤 들어갔으니 세시간 정도만 놀다가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한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야 아쉽게 아쉽게 돌아서고 말았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이랄까, 딱히 정해진 스케줄 없이 다음날 일정에 대한 압박감없이

그냥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고 싶은 시간만큼 머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장점을

최대한 뽑아쓸 수 있게 해주는 공간, 색소폰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