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2, 외국 분위기 물씬한 바다(윤성의)-

 


* 2016. 8. 17(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울릉도 태하등대, 깊고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 싶다면.)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울릉도, 중에서도 북서쪽 태하항 일대의 에메랄드빛 바다입니다. 해외로 떠날 때 흔히들 상상하게 되는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호젓한 분위기, 그리고 이국적인 먹거리를 그대로 국내에서 만끽할 수 있는 바다라고 소개하고 싶은 곳입니다.

물론 해외로 떠나지 않고도 동남아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몇군데 있기는 합니다. 제주도 김녕 성세기 해안이라거나 남해 비진도, 동해 촛대바위 앞바다들이 그런 곳들이죠. 그렇지만 적어도 제게는 한국에서 접했던 최고의 에메랄드빛 바다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진작가들도 이곳을 국내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고도 하니까 그렇게 편향된 건 아닌 셈입니다.

울릉도는 뭍으로부터 접근하기 쉽지 않아 아직은 그 천혜의 비경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섬입니다. 사실 섬의 해안선 어디에서든 기암괴석이 즐비한 가운데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끽할 수 있으니 굳이 그 중에서 어딜 손꼽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23일동안 걸어서 섬을 돌아다니던 중에 가장 극적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태하항 앞바다였습니다.

성인봉을 오르내린 후 나리분지를 지나 접어든 북쪽 해안산책로, 태하항에 도착하니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해변마을이었습니다. 이미 울릉도 해안가의 여러 마을을 거쳐온 터였지만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던 마을, 아마도 뜬금없던 모노레일 탑승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박집을 겸한 자그마한 슈퍼와 이발소와 음식점들, 그 옆으로는 태하 등대가 있는 향목전망대로 향하는 모노레일 탑승장이 동그마니 있었습니다.

여행객은커녕 동네 주민분도 보이지 않아 운행은 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시간표에 맞춰 운행중인 모노레일, 거의 거의 수직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높이를 따라 시퍼런 바닷물 수위가 모노레일 위로 넘실넘실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육분 정도,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가파른 야산 위로 올라오고 나니, 향나무숲이 울창한 오솔길 끝에 보이는 태하등대 너머 탁트인 바다 풍경에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동남아 어느 리조트 앞바다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바닷물이 저런 빛을 띌 수 있는 건지 이쪽 끝으로 가서 내려다보다가, 또 다시 저쪽 끝으로 가서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맑고 부드러운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어떻게든 그 느낌을 그대로 담고 싶어서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내뿜으며 반짝거리는 푸른 파도의 질감이라거나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그저 눈과 가슴에 담길 뿐 사진에는 담기지가 않더라구요.

모노레일 안에 붙어있던 울릉도 순환버스 시간표, 버스회사 이름은 우산버스였습니다. 한때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자취가 이런 식으로나마 남아있었습니다. 성인봉을 찾는 단체등산객들이 많은 항구 주변 말고, 이렇게 북서쪽 깊숙히 들어온 곳에서 울릉도의 명물 따개비국수를 꼭 맛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색다른 음식을 맛보며 원시림 향기가 그윽하게 번져오는 섬그늘에서,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이 곳이 정말 한국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지실 겁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태하 등대가 굽어보고 있는 동그란 만 형태의 바다, 짙은 에메랄드빛 잉크를 풀어내린 듯한 파도가 부서지던 곳.

 

태하 앞바다를 따라 걷는 해안 산책로, 뱅글뱅글 올라가는 길을 걸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저런 건 거리를 살짝

 

두고 보는 게 인상적이지 막상 저 나선궤도 위에 올라서면 별반 흥취가 없다며.

 

태하까지 왔으니 울릉도 북쪽 해안의 동에서 서까지 걸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

 

야트막하고 자그마한 집들이 좁다란 골목을 함께 나눠쓰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

 

뜨거운 계절엔 누군가의 수영복과 옷가지를 얹어두고 두팔 펼쳤을 빨랫대도 얌전히 쉬고 있다.

 

다시 태하삼거리로 돌아가는 길, 아무래도 저녁은 남양약소숯불구이를 먹어야겠다.

 

 

도로변에 이어진 너른 공터 한가득 나물을 말리고 있는 아주머니들. 트럭까지 동원해서 정말 대규모로 널고 계셨다.

 

거기서부터 이젠 남쪽으로 걷기로 했다. 울릉도에 있는 두개의 둘레길은 태하에서 남양을 잇는 길 하나,

 

그리고 내수전과 석포를 잇는 길 하나. 그중 태하에서 남양을 잇는 약 7km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

 

태하 등대에서부터 남양까지 치자면 대충 9km 정도 되는 거리, 그치만 결과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버려서

 

태하령입구를 지나 구암으로 빠져 남양까지 걸었으니 대충 11.2km 정도. 2km 정도야 대충 30분 더 걸으면 되는 정도니까.

 

예부터 있던 길을 다시 연결해서 만들어놓은 둘레길이라고 들었는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살짝 의심부터 든다.

 

차는 고사하고 인적조차 한동안 끊겼던 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거다. 온통 범람한 녹색의 이파리들도 그렇고.

 

생각보다 길도 험하다. 오르내리막이 연속되는 꼬부랑 고개가 꼬불꼬불, 하늘을 온통 가린 두터운 녹색의 장막.

 

게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제대로 된 길은 맞는지 알려주는 표지가 굉장히 귀했던 것도 뭔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사람 하나 없는 길에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가 울리면 사방에서 흑비둘기가 푸드덕거리는 짙은 숲속 외길.

 

 

그래도 한참 걷다보니 이런 정자도 나타나고. 숲에 대한 소개나 식생에 대한 정보가 담긴 안내판들도 정비되어 있고.

 

 

 

벤치도 중간에 조금 꾸며져 있긴 했는데, 정말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에 잡아먹혀서는 이제 엉덩이 반쪽 자리할 공간도 없으니.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며 점점 고도가 올라간다 싶다가, 태하령에서 고비를 찍고는 본격적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

 

'구비구비 버혀낸 긴긴 겨울밤'이 이럴라나 싶을 정도로 배배 꼬인 창자같은 길을 슬슬 풀어내는 참에

 

거꾸로 눈돌려 확인한 울릉도 제2둘레길의 호젓함.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는지라 굳이 걸어서 넘어갈 사람 아니고서는

 

이 길을 이용할 일이 없는 거다. 그게 이 길을 걷는 동안 사람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짙은 숲을 음미할 수 있었던 이유.

 

둘레길의 시작점과 종점이 명확하지 않긴 하지만, 대충 사람의 흔적이 길 양옆으로 남아있는 즈음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양쪽에 늘어서고, 하늘까지 치솟은 나무들의 키높이가 곤두박질치고, 비료 봉투를

 

뒤집어 세워 허수아비를 갈음하는 자그마한 개간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체 시작점과 종점이 어디인지 명료하지 않은 상황,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안내판들이 세워진 상황에서

 

몇 km 남고 몇 km 걸었는지 따위 계산은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외길이어서 그저 걸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어느순간 옆길로 새더니 구암 쪽으로 걷고 있었단 걸 발견했을 때 좀 신기하긴 했지만.

 

뭐 잘못 들어선 길이긴 했지만, 꼭 다시 되짚어 바로잡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손바닥만한 섬', 아무리 애를 써서

 

모로 가려 애써봐야 거기서 거기다. 시속 4km의 도보로는 나름 굉장히 광활한 땅처럼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 해가 한참 남았는데 번쩍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알게 모르게 슬슬 조바심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구비구비, 저기만 지나면 눈앞에 울릉도 남쪽 바다가 보이겠거니, 생각하다가 헛탕치기를 몇 차례.

 

뭐 그래도 발걸음이 한가로운 완만한 내리막길.

 

이 사진의 제목은 왠지 그런 거 어떨까 싶다. '삼송의 최후'라거나 뭐 그런거.

 

 

드디어 울릉도 남쪽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저만치 땡겨지도록, 태하를 출발한 이후부터 사람 하나 못 보고.

 

 

그러다가 우르르 길가에 나와 맞이해주던 까망색 흑염소 녀석들. 무슨 고산지대 산양처럼 맘껏 뛰놀던.

 

구암마을, 울릉둘레길로 돌아가는 안내판이랑 버스정류장을 보며. 무엇보다 눈앞에 바로 놓인 바다를 보며.

 

 

이제 해안도로를 따라 남양리로 걷는 길이다. 남양엔 유명한 남양약소숯불구이집이 있다니 저녁은 그곳에서 먹기로 하고.

 

 

구암과 남양 사이의 사태감 터널. 여느 터널과는 좀 다르다 싶어 유심히 살피다가 이유를 알았다.

 

 

구멍이 뽕뽕 나있는 외벽은, 언제고 바다가 거칠어지고 높은 파도가 몰아칠 때 터널 구조물이 좀더 버티도록.

 

바닷물이 들이칠 때 타격이 덜하도록, 그리고 빠져나갈 때 좀더 쉽게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진 거 같다.

 

 

그리고 남양 몽돌해변으로 이어지는 동글동글한 자갈 마당이 파도에 씻기우고.

 

 

울릉도에서 공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제법 여기저기 공사판이다. 그 앞에 보이는 게 구암터널.

 

 

남쪽 해안이라 해넘이가 잘 보이진 않을 거 같고, 살짝 바다가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양리에 들어서는 길에 바로 보이는 사자바위, 그 앞에 남근바위도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남근 비스무레한 건 찾는데 실패. 사실 이녀석도 딱히 사자다워 보이진 않는데.

 

그리고 투구봉.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의 우산국을 정벌했을 때 우산국 왕이 벗어놓은 투구가 봉우리가 되었다.

 

혹시나, 떨어지는 해와 경쟁해서 달리면 사진 한장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남양리 안쪽으로 들어가

 

남서일몰전망대를 찾아보았는데. 발은 아프고 배는 고프고 길도 모르겠고 하여 잠시 헤매이다 포기.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태하항 옆의 해안산책로, 뱅글뱅글 말려올라가는 골뱅이 계단이 전신주에서 뻗어나간 전선들마저 감아돌리려 든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해변마을. 민박집을 겸한 자그마한 슈퍼와 이발소와 음식점들.

 

 

 

태하 등대와 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을 타는 길.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운행이나 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수시 운행중이다.

 

 

몰랐었는데 위에 올라가고야 알게 된 사실. 태하등대까지 올라가는데 꼭 모노레일을 탈 필요는 없다. 살짝 걸어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걸어보신 분 말씀으로는 그 길도 제법 가파르지만 이쁘다고 했다.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는 길, 거의 수직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높이를 따라 바닷물 수위가 모노레일

 

위로 넘실넘실 차오르기 시작했다.

 

 

모노레일 안에 붙어있던 울릉도 순환버스 시간표. 버스회사 이름이 '우산버스'다.

 

한때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자취가 이런 식으로나마 남아있었다.

 

 

모노레일은 한 육분 정도,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가파른 야산 위로 올라왔다. 태하 등대 가는 길은 한때 굉장했다는 향나무숲.

 

태하 등대와 전망대의 갈림길에서 푯말을 들고 두뺨을 붉힌 오징오징 오징어.

 

 

 

전망대 한가운데에는 밑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나무를 위한 공간을 틔워놓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들이 국내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는 태하 등대 앞의 푸른 바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동남아 어느 리조트 앞바다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렇게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내뿜으며 반짝거리는 푸른 파도의 질감이라거나

 

하얀 포말을 포기할 수 없어서 사진들을 골라내고 버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쪽 끝으로 가서 내려다보다가, 또 다시 저쪽 끝으로 가서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맑고 부드러운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다.

 

어찌 바닷물 색깔이 저런 빛을 띌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등대. 태하 등대는 전망대 바로 옆에 붙어 있다시피 하다.

 

거대한 대왕오징어, 괴수 크라켄이 빨판이 그득한 다리를 꿈틀거리며 지상으로 솟아오르는 중.

 

 

다시 모노레일을 타러 내려가는 길, 아까는 조용하던 염소가 갑자기 울어제끼며 사진을 보챈다.

 

역시 이곳도, 도르레가 설치되어 있어 간단한 물품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모노레일이 내려가는 방향의 바다, 방파제가 저렇게 정연하게 차곡차곡 놓인 모습은 보기 쉽지 않은데.

 

두 량짜리 모노레일, 어렸을 적 타고 놀던 다람쥐통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또다시 수직낙하하는 기분으로 가파르게 내려앉는 길, 같이 모노레일을 탔던 분들이 너른 유리창 너머 바다와

 

태하항의 풍경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