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마: 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을 보고 나서 그랬는지, 베를린에서 만난 자연주의 레스토랑의 음식이 엄청 인상적이었다. 독일식이면서도 실험적이고, 식재료를 가능한 날것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10코스 요리.

 

홍콩 몽콕의 랑함 플레이스 호텔에서 운영하는 정통 광동 요리 레스토랑, 밍 코트Ming Court. 

 

홍콩 미식대상에서 수상한 코스 메뉴들이 여러개 있지만 내가 맛봤던 건 2013년에 상을 받은 코스 메뉴.

 

 

레스토랑 내부의 럭셔리한 모습. 다소 늦은 저녁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푸아그라랑 새우 등 여러가지 해산물로 맛을 보는 에피타이저.

 

 

 저 하얀 주전자에 녹차를 담고 있는 온열기도 섬세하니 이쁘다.

 

 

 캐쉬넛과 소고기를 볶은 요리.

 

 

그리고 디저트로 나온 건 타피오카가 담겨 나오던 망고주스.

 

 

 

 

태국요리의 두드러진 봉우리 하나랄까,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똠양꿍'.

 

현지의 타협하지 않는 맛에는 생강과 온갖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거침없이 뿜어나오는.

 

꼬싸멧의 밀가루 모래사장에 길게 누워 마시던 코코넛 쉐이크.

 

 

그리고 태국의 이러저러한 해물볶음밥. 도대체 이들의 이름은 외우려고 해도 외우기가 넘 어렵다는.

 

웨스턴 스타일의 아침을 먹었을 때도, 유난히 진하고 샛노랗던 노른자위가 박힌 태국의 계란이.

 

역시 이름은 알 수 없는, 그렇지만 코코넛 밀크가 듬뿍 들어있던 매우몹시 맛나던 태국식 커리.

 

그리고 하얀 살이 가득 차있는 게와 커리가 범벅되어 있는 요리. 이번 여행 최고의 음식이었다는.

 

태국에 와서 한번은 꼭 먹어보아야 할 망고밥. 망고와 코코넛밀크와 동남아쌀밥의 심플한 조합이지만 맛있다.

 

또다른 웨스턴 스타일의 식사. 네모난 곽에 담긴 형태의 볶음밥이라거나 두툼한 베이컨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꽤 진하게 내려주던 맛있는 커피. 이른바 커피벨트가 지나는 베트남이나 라오스에 인접한 나라여서 그런지 맘에 들었다.

 

 

 

 

 

배고픈 시간대를 대비해 홍콩에서 먹었던 자잘한 것들 모음. 유명한 주스점에서 몇 번을 사먹었던 망고주스.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선착장 창밖으로 바라보며 한 장.

 

타이청 베이커리, 홍콩의 에그타르트를 검색하면 무조건 일순위로 나오는, 온갖 포스팅이 즐비한 곳.

 

그런만큼 사람들도 줄을 서서 에그타르트를 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위치가 바로 찾기 쉽지는 않았던.

 

그래도 그 노릇노릇한 색깔과 입천장을 벗겨내도록 뜨겁던 에그타르트는 정말 맛있었다. 홍콩 총독들이 반할만 하더라는.

 

팍앤샵이니 리앤펑이니 하는 홍콩의 리테일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계 각국의 맥주들. 더구나 홍콩은 주류에 세금이 붙지않아

 

한국에서 홍콩으로 들여온 맥주들이 한국에서 살 때보다도 쌀 정도라고 한다. 밤마다 영국, 덴마크, 러시아 등지의 처음 보는

 

맥주들을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던 홍콩의 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홍콩공항에서 떠나기 전 공항 내에 있던 제이드 가든에서 먹었던 샤오롱바오.

 

그리고 무를 갈아 버섯과 고기를 섞어 만들었다는 요상한 모양의 딤섬.

 

플라잉 구스, '날아다니는 거위'로 유명하다는 가게가 뭔가 했더니, 홍콩을 들르거나 살았던 외국인들이

 

귀국할 때면 전부 이 곳의 거위 요리를 사들고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라나.

 

 

웨이터가 건네주는 메뉴가 무려 세가지. 하나는 일반 메뉴랄까, 기본적인 요리들이 나와있고 다른 하나는 이곳

 

융께이 레스토랑의 수상 경력이라거나 수상 요리에 대한 소개, 마지막 빨간 표지는 완전 특별한,

 

각종 요리대회 수상 요리들로 채워진 코스 메뉴.

 

베이징 카오야랑 조금 비슷하게 바삭하고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있는 부드럽고 담백한 거위 살이 맛있었다.

 

혼자 가서 2-3인분이라는 레귤러를 시켰는데, 사실 3-4인분이라고 표기된 반마리나 한마리를 시켰어도

 

완전완전 만족스럽게 다 먹었을 듯.

 

저 거위 껍질에 잘잘 흐르는 윤기하며, 부드러운 고기 위에 살짝 얹힌 채 바삭바삭함이 살아있다.

 

 

두번째 메뉴에 있던 온갖 수상경력들. 홍콩에서 유일하게 포춘지에 선정된 세계최고 레스토랑 15선 중 하나라던가.

 

 

그렇게 거위 요리를 맛봤지만 조금 모자라다 싶어서, 로제와인에 재워만들었다는 족발요리도 하나 더 시켰다.

 

음. 이건 뭔가 반찬도 같이 주문했어야 했거나 다른 채소 요리랑 같이 먹었어야 했을 듯.

 

 

레스토랑 입구에 걸려있는 잘 조리된 거위들. 저 노릇노릇한 껍질하며, 반질반질한 윤기하며.

 

나중에 가면 세번째 메뉴에 있었던 그 특별 메뉴들이 즐비한 코스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데, 가격은 굉장히 비싸단 느낌.

 

그렇지만 요리의 천국 홍콩에서 이런 거 한번 먹어보는 호사를 누리는 건 분명 꽤나 기억에 남을, 행복할 경험일 거다.

 

 

 

 



 

할복(割腹)

1. 배를 가름.

2. <수산> 물고기를 가공 처리하거나 보관하기 위해 그 배를 땀. 또는 그런 일.

*연관단어 : 북한어 "밸따기"



그래서 '할복 아줌마 구함'이라는 이 첫눈에 섬찟한, 마치 배를 찢고 자살이라도 할 사람을 찾는 것 같은 현수막은 알고 보면

'물고기 가공 처리/보관을 위해 배를 따는 일을 할 아줌마 구함'이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속초시의 건조한 인간들을 모아놓은 건조인협회 안내판 아래에는 또다른 단어, '활복'이 있다.

활복(活복). 살아있는 생선 복어를 이르는 말. 표준어라거나 정식 어휘로 등재되어 있지는 않은 거 같은데

어쨌든 '활복'으로 검색하면 활복 지리, 활복 전문점, 활복 요리..따위, 복어와 관련된 음식이 주르륵.





 


카이세키 요리, 일본 아오모리현에 가서 카이세키 요리를 먹을 예정이라 하니 좀 안다는 사람들이

궁중에서 먹는 요리라느니 연회장 요리라느니 여러 구구한 설명을 해줐지만, 정확히는 이런 거란다.


"에도시대부터 연회요리에 이용하는 정식요리이다. '가이세키[]'는 모임의 좌석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정식요리인 혼젠요리를 간단하게 변형한 것이다. 결혼식이나 공식연회 또는 손님을 접대할 때

사용한다. 처음부터 음식을 모두 차리는 혼젠요리와 달리 국과 생선회를 먼저 차린다. 그리고 다음

요리를 차례로 낸다.


보통 1즙3채()·1즙5채()·2즙5채()를 이용한다. '즙()'은 국을 뜻하며,

'채()'는 반찬을 이르는 말이다. 요리는 손님의 취향에 맞추어 계절에 어울리는 것으로 준비한다.

음식마다 서로 같은 재료, 같은 요리법, 같은 맛이 중복되지 않도록 구성한다.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색깔과 모양을 감안하여 요리하고, 그릇에 담을 때도 그릇의 모양과 재질까지 고려한다."

뭐 그러고 보니 국과 생선회가 먼저 나오긴 했던 거 같다. 참치랑 연어랑 새우회.

그리고 약간의 면이 들어간 맑은 냉국.

새우랑 문어, 그리고 파프리카랑 채소들이 버무려져 있는 상큼한 샐러드.

오리훈제고기와 큼직하게 썰린 토마토 한 조각.

마 같은 느낌이었는데 정확치는 않고, 유부랑 마가 얇게 슬라이스된 반찬.

그리고 아오모리 고유의 특성이 살아있는 메인요리. 한국에 '도루묵'으로 알려져 있는 생선과 쌀로 빚어진

떡같은 것, 그리고 좀 짭조름하게 간이 배어있는 어묵같은 것들을 화롯불에 굽기 시작.

그리고 큰 무쇠냄비에 푸짐하게 담겨나온 아오모리 지역의 대표음식. 어묵처럼 생긴 저것은 꼬치구이로

이미 나와서 철판 위에 구워지고 있는 것과 같이 쌀로 빚어진 떡이라고 해야 하나. 찰지게 엉겨있어서

그렇지 입안에서는 물에 갠 밥처럼 이내 풀어지는 식감이 독특하다.

서빙해주시는 호텔의 아주머니가 일본식으로 얌전히 무릎을 모으고 앉으셔서 젓가락을 교묘하게 움직이며

고르게 배분되도록 신경쓰셔서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한그릇씩 덜어주셨다.

뾰족뾰족 깃대처럼 꽂혀있던 것들을 철판 위에 고이 눕히고 노릇노릇해질때까지 굽는데 아무래도

저 '숭악스런' 도루묵 생선의 표정이라거나 구불구불 잘도 꼬챙이에 꽂혀 있는 그 모양새가 계속

시선이 간다. 다른 것들이야 뭐, 그냥 별스럽지 않은 꼬치스럽게 생겼다지만 저 역동적으로 파닥대다

굳어버린 듯한 자세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뱉는 듯한 입모양하며.


도루묵의 어원이, 임진왜란 때던가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던가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어딘가로 피신하던

그 곤궁하고 핍박받던 상황에 여느 어부가 바친 생선이 너무도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던가. 그래 생선의

이름을 왕이 묻자 '묵'이라 답하였고 이에 왕은 이토록 맛난 생선에 이름이 너무 별로라 하여 다른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줬다가, 나중에 다시 사태가 진정되어 왕궁에 돌아와 배부르고 등따실 때 옛 추억

더듬는다며 '묵'을 맛보자 하고는 에잇 퉤퉤, 도로 묵이라고 하여라, 하여 도루묵이 되었다고 했었다.


뭐, 그 장황하고 변덕스런 이야기는 굳이 제대로 된 버전을 찾을 것도 없이 별다른 교훈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거니까 그렇다 치고, 중요한 포인트는 '도루묵'이란 생선의 맛.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구워진 도루묵은 꽤나 맛있었다. 꼬챙이에 아코디언처럼 꿰어버린 몸뚱이에 활짝 벌린 아가리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뭐.






호텔에서 나온 한식 코스메뉴를 쭉 훑어내려 보다가 문득 놀랐다. 얼간이 된장국? 얼간이?

먹으면 얼간이가 되는 된장국인 걸까. 얼이 빠진 사람, 정도가 얼간이의 뜻일 텐데.

그래도 호텔에서 만드는 메뉴이니만치 오타는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또 동시에

'얼간이 된장국'이란 말에 이렇게 생경한 나 자신도 찜찜하길래, SMART하게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국어사전에 접속했다.

얼간망둥이랑 얼간이가 둘다 표준어란 건 알게 된 수확은 있었지만, 그리고 얼간이의

관련어휘로 멍청이, 멍텅구리, 바보, 얼뜨기 따위가 있다는 걸 재발견한 수확은 있었지만

도무지 '얼간이 된장국'의 유래를 알 수가 없었다. 이거 혹시 '얼갈이'의 오타는 아닐까.


왜 그 얼갈이 배추니, 얼갈이 김치니 하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얼갈이는 얼간이랑은

영 다른 의미를 담은 단어, ㄹ과 ㄴ의 한끝차이일 뿐인데 느낌이 확 다르다. 그야말로 절묘한

오타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얼갈이 된장국이 맞지 싶어 수정을 요청했다.

그렇게 다시 고쳐진 메뉴, 얼간이 된장국이 아니라 얼갈이 된장국이 되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해진 기분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눈에 띄는 다른 문구. 진지와 얼갈이 된장국. 밥 대신

진지라고 하니까 그것도 또 나름 웃기다.

여하간 이게 그 '진지와 얼갈이 된장국'의 정체. 그냥 뭐..흰쌀밥과 배추국이다.

아무래도 한식을 호텔에서 먹는 건, 뭔가 코스모폴리타닉해진 맛이랄까, 많이 심심하고

밋밋한 맛으로 순화되어서 그런지 별로 맛있다는 느낌은 없고 정갈하다랄까, 딱 그정도.




전주에서의 화려한 점심식사, 이름난 요리집에서 '골동반' 정식을 주문했다.

요리들이 한상을 가득 채우고 넘치도록 즐비하게 서빙되었던지라, 가히 사진으로 남기고

글을 몇 자 끼적여 기억해둠직한 화려한 상차림.

 '골동반(骨童飯)'이란 '여러 가지 귀한 재료로 준비된 식사'란 의미로, 옛부터 궁중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비빔밥을 골동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골동반(骨童飯)'이란 '여러 가지 귀한 재료로 준비된 식사'란 의미로, 옛부터 궁중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비빔밥을 골동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골동반 정식은, 그런 비빔밥과 전주식

일품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풀코스 상차림이랄까. 우선 수삼샐러드와 황포묵무침이 선봉에

섰고, 이내 모주의 달콤하고 걸쭉한 물결을 타고 북어구이와 전들이 육회와 함께 쳐들어왔다.


수삼향이 감도는 샐러드도 맛있었고, 완전 탱글거리는 황포묵이 일단 입안을 싹 헹궈주더니

굉장히 진한 모주가 김치전과 생선전, 육회들을 돌돌 감고서 까무룩하니 목구멍 동굴 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북어구이도, 완전 부드럽고 완전 고소하고.

바늘꽂을 틈새도 없이 꽉 메워진 밥상의 위엄.jpg

이보다도 더 빼곡하게 음식이 즐비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몇몇 접시가

잔인한 젓가락질로 난도질당한 다음인지라 그다지 이쁜 그림이 안 나오기에 이 사진으로 대체.

맛난 음식을 먹는 게 춥고 힘든 날에는 가장 좋은 위로 중의 하나란 게 정말 맞는 말이다.


잡채랑 삼합이 나왔을 때 이미 지금까지 먹은 걸로도 대충 뱃속이 40%는 충전된 느낌,

잡채도 괜히 면발만 많은 게 아니라 목이버섯에 돼지고기 따위가 면발보다 많이 들어있어

맛있었는데, 삼합은 생각보다 조금 실망한 게 홍어가 좀 덜 삭았다. 뭐, 어디까지나 홍어찜과

홍어애탕, 홍어애 날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서 그렇단 거니까 그렇게 덜 삭은 편은 아닌지도.

신선로와 갈비떡찜의 본대가 밥상 위에 얹힐 때쯤 완전 행복해져 버렸댔다. 김이 펄펄 오르는

신선로에는 어찌나 작은 새우들이 많이 들어있던지 국물이 죽도록 시원했고 온갖 해물들이

가득 들어있어서 감탄하고 말았다.


이제 더이상은 배불러서 못 먹겠다, 싶을 즈음 잊고 있던 '골동반'의 등장. 짜잔.

밥이 뜨겁게 달궈진 방짜 유기그릇에 담겨나왔고, 따로 8가지 고명과 10가지 반찬이

깔끔하게 정리된 밥상 위에 올랐다.

단순히 전주식의 일품요리들을 조금씩 맛보고 마는 게 아니라, 요리 하나하나 제대로 맛본데다가

비빔밥까지 이렇게 야채를 잔뜩 넣고 비비니까 또 왕창 양이 늘어난 느낌. 그렇지만 서울에 올라가

언제 또 이렇게 맛난 전라도 음식을 먹어보겠나 싶기도 했고, 그런 생각으로 합리화하기도 전에

이미 혀와 목구멍과 식도와 위장이 애타게 음식들을 탐하던 터라 결국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아, 사진만 봐도 다시 배고파진다.








이태원 이란음식점에서 물담배 한대 땡겨보시려는지.(물담배 원리도 첨부)

에서 포스팅했던 그 가게, 이제 이태원에 다섯 번 가면 한 번쯤은 꼭 가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평을 빌자면, 주인 아저씨의 한국어 실력은 그새 조금 더 진보했고 또 그만큼 페르시안 음식들의 맛도 조금 더

향상된 거 같달까. 조금 바뀐 인테리어도 이전에 비해 조금은 더 세련된 느낌.

메뉴판을 한번 찍어두고 싶었는데 이제야. 메뉴에 나온 음식은 거의 다 먹어본 거 같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약간씩 변주된 이란의, 페르시안의 음식들.

메뉴판 반대편, 농염한 자태의 글래머러스한 흑발 여인이 포즈를 취했고, 페르시아의 유물이 가게 이름 위에

내려앉았다.

Chelo Kebab, 양고기 비비큐랑 양파, 오이, 구운 토마토랑 밥이 함께 나오는 메뉴.

Gheimeh, 양고기와 렌틸콩, 감자와 레몬으로 국물 자작하게 만든 소스와 함께 밥이나 난을 함께 먹는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애써 눌러 잡지 않았지만, 딱히 거슬리진 않는다. 오히려 그 양 냄새를 즐기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요구르트, 플레인이면서도 시지 않고 정말 담백하고 걸쭉한 느낌이라 난을 찍어먹기 딱 좋은 만큼의 점도.

모처럼 갔으니 시샤 한 대 한 피고 돌아오는 건 예의가 아닌 터. 가장 맛좋은 애플 대신에 주인 아저씨의

추천으로 '피치'를 택했다. 처음엔 다소 옅게 올라오던 복숭아향이, 어느순간 물기를 담뿍 머금은 촉촉한

수증기처럼 폴폴 올라왔다. 생각의 줄을 놓은 채 뻐끔뻐끔, 집에다 한 대 들여놓았음 좋겠다고 또다시

마음이 동해버렸다.





배우들에 우선 놀랬다. 메릴 스트립,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심지어 때로는 섹시한 중장년의 여성을 연기해 낼
 
수도 있다니 정말 대단한 배우.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 어쩌다 두 번이나 보게 되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
 
love)'의 지젤이었단 걸 끝까지 몰랐다. 사랑스런 공주님이셨다.


두 명의 캐릭터, '줄리'와 '줄리아'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뭐랄까 약간의 '공주' 캐릭터. 현실 감각이라 할 만한

건 평균에 많이 못 미치면서도 불쑥 열정에 휩싸여서는 두손 그러쥐고 눈 반짝거리며 꿈을 이야기하는.

나이가 들어서도 꿈많고 순수하지만, 그만큼 여리고 철없거나 순진해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은. 줄리아의
 
다소 과장스럽고 생각없게 들릴 수 있는 말투라거나 줄리의 블로그에 대한 순진한 몰입과 기대라거나.


그렇지만 그녀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요리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 앞에서 그녀들은 불쑥 자라난

모습을 보인다. 8년에 걸쳐 요리책을 가다듬는 모습, 1년에 걸쳐 수백개의 레시피를 전부 시도하는 모습,

그 와중에 생겨난 문제들을 직면하고 돌파하는 모습..까지. 자신이 벌여놓은 일의 애초 부여한 의미를

잊지 않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는 모습은 그들에게 혀를 차던 주변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의 열정에 감화되어 박수를 보내게 할 정도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스위치를 못 찾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유치하고

무책임한 아이에서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길 바라거나 무턱대고

철 좀 들자며 스스로를 타박할 일이 아니라 그 스위치부터 찾아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리를 통해

성장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서로 대비되면서 내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스위치는 무엇인가.


그저 '요리를 통한 성장드라마'라고 하기에는 감출 수 없는 미덕이 참 많은 영화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줄리와 줄리아가 현실 세계에서 끝내 만나거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한다. 줄리가 요리의 '스위치'를 켜서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필요했던 건, 전설의 쉐프 따위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본인을 계속 지켜봐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동수'. 그런 점에서 영화에선 두 명의 줄리아가

나온 셈이다. 그밖에 무책임한 해피 엔딩을 지양했다거나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두 여인의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다거나, 무엇보다 둘의 연기가 좋았다는 정도. 2시간의 러닝 타임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느낌.




타이완의 야시장음식, 길거리음식도 워낙 유명하지만, 허름한 길가 음식점이나 조금 고급스런 수준의 음식점의

음식 역시 뭐 하나 맛이 없는 게 없었다. 상해나 북경에서 맛봤던 중국음식들도 대개 맛있었지만 대개 음식점들

내부는 기름때가 손닿는 모든 곳에 쩔어 있고 기름쩐내 역시 음식점 내에 꽉 들어차 있었다면, 바로 그런 위생상의

문제가 깔끔히 해결된 채 중국 요리의 맛까지 놓치지 않은 게 타이완의 음식점인 듯.

타이완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콩국', 두유, 혹은 그냥 영어로 소이밀크, 라고 하면 다들 알아들었었다.

아침으로 워낙 많이들 먹는지 파는 곳도 굉장히 많고, 들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는데 콩을 갈아

직접 만들고 며칠 만에 소진해서 새로 만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찬 것과 뜨거운 것, 두 종류로 팔던데 찬 두유를

마시면 기운도 나고 땀도 식고. 아침식사로 딱.

아침으로 두유와 함께 먹는 샤오삥(小餠), 깨가 가득하게 뿌려진 채 파삭파삭하고 고소하니 따뜻한 빵만 따로

팔기도 하고, 계란을 스크램블 에그처럼 으깨넣어 팔기도 하고. 
 
타이완에 가면 누구나 '딘타이펑' 본점을 순례하듯 들르곤 하지만, 사실 길거리 이름없는 가게에서 파는

'샤오롱빠오(小龍包)'도 뜨거운 육즙이 그득하게 들어있었다.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101빌딩 내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본 적도 있었다.

한국의 LA갈비와 비슷한 요리, 좀더 짭조름한 맛이 덜하고, 바닥에 상추가 깔려있더란 점 이외에는 비슷했던 듯.

이건..뭐더라..돼지 고기로 만든 음식이었는데, 오향장육이었던가.. 부들부들하면서도 쫀득한 돼지 껍데기 부분이

간장이 주 베이스로 이뤄진 양념에 포옥 안겨있었다. 그리고 옆엔 썰은 파와 고수.

그 고깃덩이와 채소들을 이 빵에 가운데에 넣어서 먹는 거다. 깨가 촘촘히 틀어박힌 빵 속에 젤리처럼 포들한

돼지껍데기와 고기가 웅크리고 들어가서는 따끈따끈, 쉼없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는.

고궁박물관 찻집에서 맛보았던 '애프터눈티' 세트. 호박과 오리와 배추가 이쁘게 올라와 있었던 고급스런 다과.

그리고 개구리 난소였던가, 뭔가 굉장히 독특한 내용물이 들어가 있던 독특한 후식, 시원하고 대추가 들어가

있어 달콤하고, 부석부석한 덩어리들의 식감 역시 묘하게 이끌렸었다.

101빌딩 89층 전망대에 있던 소 한 마리, 냉기가 뿜어나오는 아이스크림을 꼬나쥐고, 우람한 젖통을 불끈

내 보인 채 서 있던 풍경이 넘 재미있어서 한 방.

우육면, 뉘오우룽미앤. 고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우육면과 우육탕면의 이름이 바뀌고 가격이 배로 차이가

나던 바로 그 메뉴. 고기가 무슨 맛난 갈비탕에 담긴 갈비살처럼 보들보들 야들야들.

돼지 귀 잘라 무친 것과 콩으로 만들었다는 소세지 모양의 반찬, 반찬은 한 접시에 40NTS던가, 돈주고 따로

샀어야 했다. 콩으로 만들었다는 저 소세지 같은 건..뭔가 아무 맛도 안 나는 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쫄깃한

식감 때문에 마법처럼 손이 계속 이끌리더라는.

융캉제 주변의 刀麵, 일종의 칼국수 집에서 맛보았던 국수. 손으로 한 반죽을 칼로 설설 썰어내는 통에 두툼하고

얇은 면의 다양한 부분에 제각기의 개성실린 맛이 났다.

 그 유명한 융캉제의 얼음빙수. 삥관, 혹은 아이스몬스터라고 불리는 그 곳에서 먹었던 망고 빙수는 과연 최고.

얼음의 부드러움은 밀탑빙수의 뺨을 치고, 망고의 달콤함은 뭇 과일을 무색케 하며, 야박하게 흉내만 낸

망고 시즈닝이 아니라 그야말로 풍족하게 올려주는 망고를 씹다보면 혀를 씹어도 모른다는.;

혹은 난징둥루의 브리즈센터 지하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반짝이던 홍등 아래 먹었던 음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뭔가 마나 감자나 그런 뿌리식물을 갈아서 만든 것 같은 떡과 같은 에피타이저. 알고 보니 '무' 떡이랜다.

돼지 족발과 비슷하면서도 좀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찜한 느낌이 강하던 음식, 청경채와 함께 찰진 면발 위에

올려져서 함께 먹어줘 함께 먹어줘, 요러고 있었다. 녀석의 소원대로 발가락 사이뼈를 하나하나 분해해가며

남김없이 먹어 치워줬다는.

사실은 베이징 카오야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하고 패스, 꿩 대신 닭, 아니 오리 대신 닭으로 카오야와

비슷하게 바삭한 껍질을 가진 닭요리를 시켰다. 메뉴판의 그림과는 달리 생각보다 카오야와는 많이 거리가

있었고, 차라리 후라이드치킨에 좀더 가까웠던 요리.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라면, '삐딴'을 제대로 맛보았다는 점.

* 네이버 참조 : (중국 요리에서) 오리알이나 달걀을 나무의 재·소금·생석회가루를 섞은 것에 두 달 이상 담근 것. 흰자위는 투명한 적갈색, 노른자위는 진한 녹갈색이 됨. 피단.

그리고 국내에서 이러저러한 기회에 맛보았던 삐딴과는 달리, 타이완에서 몇 번씩이나 맛봤던 삐딴은 일관되게

다른 특징을 보여줬다. 진한 녹갈색의 노른자가 거의 생크림처럼 보드라와져 있다는 점. 심지어 나무젓가락으로

슬쩍 크림 떠내듯 건드리면 노른자가 크림처럼 떠진다는 사실. 게다가 향도 훨씬 진했다.

닭발 요리, 한국에서처럼 뼈없는 닭발 요리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건 뼈가 알알이 박혀 있는 닭발.

닭발하면 매콤한 맛만 떠올리게 되는 한국인의 상식을 깨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꽤나 좋았다.

그리고 새우 두 마리가 박혀 있던 촉촉한 밀병 요리. 미끈하면서 쫄깃한 게 떡을 얇게 펴서 그 안에 새우를

박아넣은 듯 했다. 좀 새우랑 껍데기랑 따로 노는 느낌은 아쉬웠지만, 나름 묘한 조합.

두화, 한자로는 豆花, 콩꽃이란 뜻이 되려나. 푸딩처럼 야들야들하고 탄력있는 순두부에 팥이니 타피오카니

아몬드니 원하는 토핑을 얹어서 먹는 디저트 메뉴다. 단팥을 선택하고 나니 약간 실망했던 게, 팥의 향이나

맛이 너무 강해서 '두화'가 그냥 단팥죽처럼 느껴지고 말았다는 것,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다면 타피오카나

아님 그냥 토핑없이 심플하게 먹어 봤을 텐데.




꾸스꾸스, 예전에는 조나 수수, 뭐 그런 걸로 만든 음식인 줄 알았었다. 알고 보니 밀가루를 오돌도돌 뭉쳐서

빳빳하게 건조시켜서는 주머니 속에 담아 낙타에 싣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부패도 막고 이동에도 간편하며

조리도 쉽도록. 지혜롭도다.

조금씩 깔리기 시작하는 코스 메뉴. 알제리는 프랑스의 피식민 경험 때문인지 빵이 꽤나 맛있었다.

양고기가 꽉 차있었던 조르바, 라는 이름의 튀김요리. 양고기의 육즙이 울컥울컥 배어나오던.

잘 삶아진 수육처럼 나온 양고기 덩어리. 그리고 그 옆에 일견 밥처럼 보이는 하얀색 알갱이들이 바로 꾸스꾸스.

양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 먹는 양고기는 확실히 한국에서와는 맛이 다르다. 그만큼 많이 소비되니

신선한 고기가 쉼없이 공급되는 탓도 있을 거고, 레시피와 조리사의 한계도 있을 거고.

그 위에 이렇게 소스를 뿌려준다. 걸쭉한 카레같기도 하지만 그런 향신료의 냄새가 강하지는 않고. 보슬보슬한

꾸스꾸스가 더욱 부드럽고 달콤고소하게 느끼게 해주는 도우미랄까. 양고기의 혹시 모를 퍽퍽함 역시 한결

덜어내 주는 소스의 위엄.

수분을 잔뜩 빨아들인 밀가루 알갱이들이 고소하게 입안에서 깔짝깔짝, 씹는 식감도 독특하고 은근 배도 꽉

차게 불러오는 음식. 더구나 스테미너에 좋다는 양고기와 함께니 한끼 식사로 더할나위없던 알제리 꾸스꾸스.

알제리가 또 프랑스로부터 넘어온 와이너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던데, 함께 마셨던 알제리 와인도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거기에 더해, 죽도록 달디달던 알제리의 디저트 쿠키들. 아랍쪽을 다니며 아무리 맛보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디저트류의 그 아리도록 단 맛. 어찌나 단지 한입 베어물면 귓속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너무 구라라는 게 티가 나려나.




쟁반, 접시, 물잔, 맥주잔과 숟가락이 비닐 포장되어 있던 상해의 어느 음식점. 웬만한 음식점에 가면 음식은

맛있다 해도 대부분 찐득찐득하고 더러운 접시 때문에 살짝 기분이 상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비닐로 잘 싸여있는

식기류라면 왠지 믿음직스럽겠다 기대가 되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을 감지하고 나온 아이디어 아닐까, 일인용

식기 세트를 완전히 비닐포장해서 그때그때 서빙하는 거.

비닐을 짝짝 찢어서 접시랑 컵이랑 숟가락을 세팅하니까 이런 모양이다. 비닐 포장되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그닥

깨끗하진 않았다. 물이 질질 흐르고, 여전히 군데군데 뭔가 찌꺼기같은 게 붙어있어서, 그냥 비닐 포장하나

안 하나 별차이없는 중국의 식기구나 했다.

그런 접시들을 앞에 놓고, 상해의 명물이라는 '민물게요리'를 먹었다. 새우같기도 하고 가재같기도 하고, 커다란

집게 모양의 앞발이 두 개 달린 새우라고 하면 되려나. 매콤한 양념도 맛있었지만, 껍데기를 입으로 까서 먹는

그 속살의 쫀득이는 식감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접시가 깨끗하니 안하니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

먹고 안 죽으면 되지 뭘.

맥주는 맛있는 칭다오. 한국과는 다른 디자인이 꽤나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민물게요리랑 딱 어울렸던.





상하이의 짝퉁시장 근처에는 한글 간판이 굉장히 많았다. 짭냄새 풀풀 나는 카피 상품에 대한 한국인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았고, 한국인이 그 제조 공정에 그만큼 깊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건지도 모른다.

'최고의 서비스', 는 알겠는데 '일반소비자가격'은 뭘까. 어쩌라구.

신기한 메뉴 투성이다. 두부김치냄비는 그렇다 쳐도, '미소코디레코딩'은 대체 뭘까. 레코드판을 먹어야 할 기세.

이건 더 대박, '뼈없는 쇠고기 돼지갈비'. 응...응?? 쇠고기랑 돼지갈비가 같이 나온단 건가, 아님 소를 먹인

돼지 고기를 준다거나 돼지를 먹인 소고기를 준단 건가. 

이어지는 단어들, 소고기 어깨고기, 소의 갈비뼈, 혀..최소한 부위들이 제시되는 것들이니 뭔지 상상이라도

해보겠지만, 대체 '유명 쇠고기'는 뭘까.

혹시 직접 가보고 싶은 분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여기는 남북으로 jinhui로가 달리고 동서로는 xianfeng로가

가로지르는 지점쯤이다. 역시 지금의 상해는 상당부분 계획된 도시로 설계되어 그런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금보나 보건안마클럽'을 찾으세요.

가게 이름이 '오토종닭'이다. 뭘까. 오~ 토종닭? 오토(auto) 종닭? 황당무계한 간판.

자랑스런 한국의 미용산업의 명성은 진즉부터 알아모시고 있던 게다. 무려 '한국전문가 직접관리'. 신뢰100%!?

불법복제 디비디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는 섭섭치 않을만큼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본 영화가 세상엔

넘 많다. 고작 저 판때기 하나 위에 깔린 영화 중에도 안 본게 잔뜩이다.

나름의 운치를 과시하는 어느 가게의 간판. 중간에 오타나 요상한 표현이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불을 켜보려다가

말았다. 저 간판 위의 세상은, 말하자면 '시적허용'의 세계인 거다.

이 간판도 그런 세상인 걸까. 숱불구이. 하긴 이런 식의 오타나 실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한국어들조차 그다지 정확하진 않다. 표준어법을 알면서 피해가는 재치있게 비틀린 표현들 말고, 정말 몰라서

자꾸 틀리는 표현들. 그건 좀 거슬린다. 나는 않 틀린다.ㅋㅋㅋ

짭퉁들의 본거지라는 민차오패션마켓. 꽤나 큰 건물을 온통 차지한 마켓 정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

한국복식 매력 연출, 아무래도 여기에서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감수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인 거 같다. 남측보다

북측의 어휘나 분위기에 훨씬 어울리는 단어 선정이다.

수출정품관? 엄선된 상품들이란 의미의 정품(精品)인 건 알겠지만 역시 눈에 선 표현이다. 게다가 옆에 자석은

왜 갖다가 그려놓은 거지. 뭘 끌어당기고 싶은 거냐 네놈들은.

아이의 하얀 박꽃같은 엉덩이가 완전 흐뭇한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겸둥이~ 꺄아~~*

출장마사지 서비스도 있읍니다. 저 '읍'자가 아무래도 어색하게 손봐진 걸로 봐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틀리게 고쳐쓴 거 같다. 딱 억지개그치는 느낌이 가득한 게 전혀 '레알'스럽지 않은 거다.


혹시 야밤을 틈타 저기 슬쩍 다녀가신 거 아냐? 떡검들이랑 G랑 어깨걸고 '못생긴 마사지사' 찾아서?

상해에서 이번에 먹었던 음식중 가장 독특했던 건, 중국식으로 매콤한 '개구리 요리'. 우리식대로 매운 거는

뭔가 땀이 뻘뻘 나고 혀끝에서 불이 나는 건데, 여기의 매운 맛은 혀와 입안을 온통 얼얼하게 마비시킨다.

치과에서 마취제를 입안에 맞고 있는 듯한 느낌, 식용 개구리의 뒷다리는 정말이지 왠만한 치킨가게에서 파는

닭날개랑 비슷한 사이즈를 과시했다. 12足쯤 먹었으니...6마리 되시겠다.



국가관들이 모여있는 푸동지역, A10 섹션에 가면 북한관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중국관에서 한국관을 지나 다소

푸동지역 전시공간의 변두리쯤..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래도 무려 엑스포에 최초로 참가하는 거다.


다소 웃기는 사실은 북한관과 딱 붙어 이란관이 있다는 점. 이른바 '악의 축' 국가 두 개가 나란히 전시관을

마련한 곳이니 저쪽은 여차하면 한 큐에..;;

북한이 표방하는 국제무대에서의 공식명칭은 조선이다. 위의 지도에서도 보였듯, 그래서 여긴 '북한관'이 아닌

'조선관'이라 부르는 게 맞겠다. 한국관에 비해 육분지일 사이즈라던가, 아담한 건물 하나. 외형도 단순하고

디자인도 쫌 벌써부터 '촌티'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도 굉장히 심플하다. 어쩌면 다른 관들이 전부 첨단의 번쩍거리는 조명으로 치장한 화려한 입구에

신경쓰고 있을 때 이토록 심플하고 단순한, 그리고 다소 시골스러운 디자인을 고수하는 건 멋진 전략일지도.

(그게 정말 고민 끝에 나온 전략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지만.)

'중국 2010년 상해 세계박람회'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했다. 저 우표를 살 수 있다면 사가면 좋겠다, 좋은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따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았다.

주체사상탑, 평양 시내 한복판의 랜드마크라는 저것이 고대로 옮겨져 있다. 근데 저..다홍빛의 횃불은 좀

어떻게 세련되게 안 되겠니, 싶도록 조악해 보였다. 좀더 그럴듯하게 만들었음 볼 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번영하는 평양'이라던가. 그래서 더욱 평양 시내의 모습에 집중했나보다.


건물은 좀 높은 천장을 가진 일층짜리, 벽면에는 '조선'의 국기를 그려넣었고, 주체사상탑 뒤로는 평양시내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중국에 와서 북한에서 운영하는 음식점도 가보고, 개성공단도 들어가보고,

그랬었지만 이렇게 엑스포장 내에서 '조선관(북한관)'을 둘러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다. 두근두근.

관리자인 듯한 분이 외신들과 인터뷰를 연이어 하고 있던 것도 신기했다. 아무래도 중국 언론은 엑스포에 처음

참가하는 북한에 대해 관심이 적지 않은 듯 하다. 더불어 다른 나라 언론들도 한번쯤은 둘러볼 듯 하고.

가슴팍에 달린 김일성배지를 찍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역광으로 사람 얼굴이 다 날아가버렸다. 다행인가.

전시관 내부는 간단한 편이다. 사실 그다지 내부가 넓지도 않은데다가 단층 건물이니, 그렇게 많은 내용을

담을 수도 없을 거다. 중앙쯤에 자리잡은 건 기둥이 매끈매끈 두툼하게 페인트칠된 듯한 작은 정자.

그래도 제법 붐비는 관람객 사이를 비집고 정자에 올랐다. 주체사상탑 뒤로 평양시내 전경도 보이지만, 그보다

저 왼쪽 벽에 그림이 눈에 확 꽂혔다. 헉. 선녀다. 선녀..다.

그리고 오른쪽, 롯데월드에서 두들겨본 듯한 속이 빈 바위동굴이 하나 있고, 앞에는 조그마한 분수 하나.

그리고 헉. Paradise for People이다. '조선(북한)'이 그토록 경계하고 적대하는 미제의 언어를 굳이 쓴 이유는

사실 한 가지 아닐까. 보는 눈 있는 사람은 봐라. 읽을 줄 알면 읽어라.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란 걸 선전하고

싶은 거다. 무려 '파라다이스'랜다. 이런 대단한 자신감을 우얄꼬 싶어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거대한 

농담은 실소(失笑)조차 잃게 만드는 거 같다.

파라다이스의 아이들은 빨간색 촌스런 옷을 입고 빙판 위에서 좋다고 놀고 있었다. 파라다이스의 어른들은

모두 무채색계열 잿빛 옷을 입은 채 열맞춰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선 파라다이스의 제일 손꼽히는

자랑거리 중 하나인 대규모 매스게임 장면이 쉼없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먼 옛날 한반도 북쪽을 거점으로 말타고 달리던 왕족의 고분벽화 한 점. 현무도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도 있고 고구려가 중화의 지방제후국 중 하나였다는 식의 해석으로 충돌을 빚고 있는데 북한이 어째

이런 걸 끄집어냈다 싶기도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슈퍼파워의 pivot으로 쓰임에 있어서야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하지만 북한은 중국에 대해 적당한 '외교'를 하는 거다. 어디하곤 달리.


게다가, 고구려의 역사적 의미와 적통성을 북한이 쥠으로써 얻는 이득도 사실 적잖다. 김일성가의 세습을

왕조의 그것과 비슷하게 포장할 수도 있고, 당대의 헤게모니파워였던 중국에 대항했다는 고구려의 이미지를

북한에 덧씌울 수도 있는 거다.

어라. 선녀들만 하늘에 있던 게 아니었다. 무려 무지개도 있었던 거다, 정자 안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이 각도가 딱이다. 무지개가 걸린 정자, 하늘 한켠에서 날개옷을 나풀대는 아리따운 선녀들. 

실은 고구려나 북한이나. 혹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권력 쥔 인간들의 권세와 호강을 위해 사람들만 뼛골

빠진다. 만리장성 짓는다고 삽질한 중국이나 영토키운다고 전쟁을 거듭한 고구려/발해나. 북한이나 남한이나

사실 한줌의 사람들이 '국가'와 '애국심'을 팔아 배를 채운다. 무지개로 사람들의 눈을 홀리고, 선녀의 자태를

'즐감'하도록 종용한 채.

사실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굳이 눈살 찌푸릴 일은 아닌지 모른다. 상해엑스포에서 외화벌이를 하려는

마인드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그것을 철저히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운 평양처녀' 운운하며 조선요리를

홍보하는 광고판이나 남한땅 주차된 차마다 빼곡한 마사지 광고물이나.

북한의 외화벌이에 일조했다고 잡혀가진 않겠지 설마. 그저 난 이름있는 '료리사 접대윈'이니 '직접 봉사'니

따위의 북한식 표현과 그 와중의 오타와 잘못 들어간 스페이스 한 칸이 우스웠을 뿐이다.

조선료리의 진맛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한번 가보시던가. 아무래도 정통 북한음식일 테니까 말이다.

또다른 외화벌이의 공간. 대부분 중국관람객들이 붐볐던 개막 당일이어선지 온통 중국말만 들렸다. 아무래도

중국인들은 북한을 남한보다, 혹은 남한만큼 친근하게 생각할 테니-그들이 우리를 더 좋아해 주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누구처럼 자기랑 악수하고 오일후에 다른 사람이랑 건배했다고 삐지는 쫌생이 짓은 말도록 하자-여기

이렇게 사람이 바글대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닐 거다.

조선 우표. 하나 사 갈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국내에서도 북한 우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미 해금된 지

오래라서, 사실 별로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른 몇가지의 기념품들. 북한의 인공기가 장식된 선반에 빼곡한 팜플렛들과 사진첩들은 대부분

주체사상탑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런 걸 누가 사려나..싶기도 하고. 막상 또 내가 한권 사보고 싶기도 하고.

'파라다이스' 밖에 나와 외부인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출신성분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보장받아야

가능하다고 들었다. 가슴에 펄럭이는 붉은 기 안에 투실투실 할아버지 사진.

조선식 민화라고 한다던가, 저 장구치는 아가씨 그림은 왠지 낯익다. 얇은 선으로 담백하게 그려진 게 왠지

아슬아슬해 보인다. 슬퍼보이기도 하고.


개막식 첫날 북한관에서 물이 샜다던가, 그랬다는 소식은 나중에 한국 돌아와서야 알았다. 내가 갔던

이 날이었다는 얘긴데 미처 몰랐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사고가 나서 휴관을 거듭하는 것 같던데, 아무리

'파라다이스'라고 억지스레 강변하고는 있어도 못내 안타깝다. 6개월여의 상해엑스포 기간 무사히 마치고

많은 사람 받아서 외화벌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반띠아이 쓰레이에서 롤레이 유적군으로 달리는 길, 한참 불붙은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아스팔트길 위에서.

사실은 뚝뚝 운전수 칭이 헬멧 안에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 노래를 '채취'하고 싶었는데, 정작

이글대는 햇볕 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시끄럽게 녹음되고 말았다.

캄보디아에는 거의 산이 없다고 한다. 저 정도의 높이만 되어도 꽤나 높은 산 축에 들어간다고 했다. 도로

양쪽의 블록에는 무슨 자동차 서킷장처럼 빨갛고 하얀 페인트를 알록달록 칠해놓았다.

문득 고개를 올려 발견했던 뚝뚝의 부적.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의미의 부적이라는데, 워낙 운전을 조심스럽게

잘 해주어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계속 눈똑바로 뜨고 부적값 톡톡히 해주시길.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씨엠립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있는 반띠아이 쓰레이,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잔뜩

내려와 애초 올라갔던 것보다 더 오래 가야 나오는 롤레이 유적지. 거기까지 가는 길은 온통 정글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도 보이지 않고, 드문드문 여윈 소떼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지만, 그 너머엔 또

삼엄하다 싶을 만큼 빽빽하게 짙은 녹색의 정글.

길가에 뚜욱 뚜욱 떨어져있는 집들에서 튀어나왔을 아이들은, 포장된 길 바로 옆 웅덩이에서 발가벗고 물놀이

하느라 여념이 없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선 가게, 무려 "튀긴 개구리"요리를 파는 굉장히 캄보디아 현지의 '타협하지 않은 맛'을

고집하는 음식점이었다. 개구리 요리를 시도해 볼까 했으나. 그냥 좀더 노멀한 캄보디아 전통음식을 맛보기로

맘을 고쳐 먹었다.

아마도 코코넛 열매인듯, 화분도 공중에 매달아 놓고.

아무리 뙤약볕이 내리쬐도 그늘 안으로만 들어오면 또 시원하다. 한국의 무더위처럼 습기가 끈끈하다거나

찜통 속의 후텁지근한 느낌이 아니라, 보송보송하게 더운 느낌. 중동 지역의 그것과 비슷했다.

뭘 시켜 먹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안 날 뿐이고. 뭔가 굉장히 색다른 향신료의 향과 맛이 강렬했던, 푸짐하고

독특한 진미였다는 이미지만 남아있다. 고기류와 생선류로 골고루 시켰던 거 같은데 결국 다 먹어치웠었다.

(저것들이 뭔지 아시는 분은 댓글로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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