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용이 지키는 도시답게 건물들은 나즈막하면서도 나름의 운치와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류블랴나 성을 향한 오르막길, 사람이 채 오르기도 전에 양옆으로 어깨 부딪기며 열지어선 집들이 먼저 지쳤다.

 

 

 

류블랴나 구시가에 있는 성당, 그 벽면에 기대어선 (아마도) 대주교님과 성모상, 그리고 가운데의 성화.

 

벽공에 마련된 피에타상, 밤에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을 내걸었다.

 

심지어 성당의 정문은 이렇게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돋을새김해둔 청동문이다.

 

 

 

류블랴나 구시가의 중심, 그리 크진 않지만 꼿꼿한 오벨리스크가 광장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뻗었다.

 

 

 

어느 갤러리였던가 박물관이었던가, 유서 깊어보이는 건물의 안마당으로 들어가서 발견한 류블랴나의 시내 지도.

 

그리고 다른 갤러리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사진보다 전시공간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는 또 처음이다.

 

 

광장의 바닥도 나름의 문양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는 곳, 뭔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느낌의 도시다.

 

 

 

좁은 골목길에 무심코 세워 놓았을 자전거조차도 왠지 그림이 되어 버리는 곳.

 

특별할 것 없는 허름한 건물 입구의 다닥다닥한 우편함에도 각기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들로 이곳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매력적인 곳임을 곳곳에서 과시하는 도시기도 하다.

 

 

 

아이고, 여긴 참..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눌러앉고 말았나 보다.

 

류블랴나의 자그마한 구시가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골목도 구경하고, 이쪽에서 본 저쪽 모습, 저쪽에서 본 이쪽 모습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사이에 안 그래도 흐렸던 하늘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꺼뭇꺼뭇해지고 있었다.

 

 

 

 

이집트는 묘한 나라다. 피씨방에서도 코란 독경소리를 엠피쓰리로 듣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아침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자신의 휴대폰에 담긴 야한 동영상을 어깨동무하고 같이 보자는 점원도 있다. 즐감해 주고, 몇마디

농담을 나누다가 카르낙 신전으로 향했다.

몇 대의 왕에 걸쳐 계속 확장되고 보수되고 고쳤다는 카르낙 신전. 전날 왕의 계곡을 자전거로 도느라 완전히 지쳤어서

오늘은 좀 여유있게 다니려 했는데, 이 신전 하나만 돌아보는데도 두세시간은 걸릴 듯 했다. 룩소에 도착해서 알게 된

친구 칼리드가 말한 대로 세 시간 정도는 할애해야 그 사이즈에 대한 느낌을 온전히 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둥이 수백개는 되는 듯 했다. 아마 최근 트랜스포머2에서 나왔던 이집트의 신전이 여기가 아닐까, 보면서 혼자

생각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카이로 기자의 피라밋 옆에 딱 붙어있는 신전처럼 나왔던 거 같다. 영화적상상력이란 건가.

그나마 다합으로 떠나기 전 룩소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를 칼리드와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사진이 좀 남았다.

그래서,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한국인누나들이 그랬듯, 아스완서 렌이 그랬듯, 룩소르에선 칼리드가 출발할

때 배웅해 주었다. 머, 앞길을 선명한 비전으로 가다듬고 오겠다거나, 세상에 다시없을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오겠다거나, 그런 거창한 걸 바라고 온 여행은 아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다니며 자유로움을

만끽했다는 게 제일 큰 뿌듯함인거 같다.

내가 무언가를 왜 하고 싶냐, 고 스스로 자문했을 때 왜냐믄 내가 그걸 하고 싶으니까. 라는 대답으로 충분하다는
 
것. 아마도 대뇌피질쯤에 각인되었을 그 무수한 해돋이와 석양의 풍경, 매혹적인 온갖 자연의 풍광들과 인간이
 
이루어놓은 호방하고 때론 우악스러운 유적..건축물들은 덤, 쯤 되겠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치고 말을 섞고 혹은 잠시나마 여행을 함께 한 사람, 사람들.. 언제나 난 사람들에
 
기대를 덜 걸었고,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은 내게 선물과도 같이 주어지곤 한다.


* 비분강개하게도, 인물이 사진 주제를 많이 훼손시킨 사진들.

Kenooz 레스토랑서 기필코 저녁 한 끼 먹어볼라다가 오늘은 또 '오늘부터 내부수리'란다. 결국 벼르고 별렀던 대충야자

밀크 쉐이크는 맛도 못보고, 걍 오다가다 대추야자만 실컷 따먹었다. 어찌나 달콤한지 나중에 배가 아릴 정도..

Shali에 올라 석양을 보려는데, 앞에서 파블로와 마르코가 내려온다. 이미 끝났대나..그래도 정상에서 벌겋게 불붙은

하늘을 보며 시와의 마지막 해를 잔뜩 감상해줬다.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어나 해뜨는 것보고 미친 것처럼 사막으로
 
내달려 하염없이 사막을 바라보다가, 저녁이면 해지는 것 보고 별 총총한 하늘을 원없이 구경하다가 자고.

요새 계속 그런 식이다. 그렇다고 전혀 식상해질 줄 모르는 이런 스케줄..언제 또 가능할지.

샤워하고 버스를 탔는데 얼마 못가 차가 '퍼졌다'. 고친다고 운전사가 꾸물꾸물 움직거리는 새 버스 앞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어젯밤만큼 멋진 밤하늘을 뚫어져라, 눈깜빡이는 것도 아까워하며 바라보았다. 별똥별은 역시 그냥 떨어져라,

냅뒀다. 눈에 담아가고, 마음에 담아가고, 넘칠 만큼 길어가고 싶은 이미지와 감흥과 감각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시와는.


차가 고장나서 한 30여분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칠흑같은 밤에 한가득 펼쳐진 별들을 잔뜩 바라본 거 빼고는,

좀체 정신을 못차리고 잠만 집요하게 청하고 만 밤 버스여행이었다. 문득 잠이 깨서 눈뜨니 왠 생경한 버스 터미널,

알렉산드리아란다. 6시 20분. 바다내음과 잔망스러운 모기떼들을 보면 알렉산드리아 같기는 한데, 사람들 표정이나

공기가 영 낯설다. 굳은 표정과 어수선하고 차가운 공기. 시와의 분위기나 호흡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던 게다.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 한분이 시디가베르 정류장 근처 내가 가려던 호텔까지 안내해 주어 금방 체크인할 수 있었다.

체크인하고 샤워 한번 하고는 바로 나와서, 포트 콰이트베이. 등대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그저 귀여운 외양의 요새만

서 있는데, 무엇보다 다시 혼자가 되어 사진찍어줄 사람도 없어지고 얘기할 사람도 없어졌단 게 좀 아쉬웠다. 그런 거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여주고 등을 보고..그렇게 나란히 서는 것. '드래곤 라자'의 후치처럼 그렇게 등을 보여주는 사람을

왕이라 생각지는 않더라도.

이제 어디로 가볼까. 생각해보면 은근히 빡시게도 여기까지 왔다. 좀 쉬엄쉬엄, 오늘은 그렇게 한 호흡 골라낼 생각인데

또 모르겠다. 트램을 한번 갈아타고 '폼페이의 기둥'을 봤다. 날 일본인이라 오해한 이집션이 일본어 한번 실습해 보려고
 
말을 걸었다가 함께 도서관이랑 기둥이랑, 사진도 번갈아 찍어주고, 근데 막상 또 한명이 생기니 불편하다. 해서 먼저

보내고, 혼자 카타콤을 향했다. 일종의 지하 공동묘지랄까, 죽음의 냄새가 짙게 서린 곳.

일본인 집단1과 프랑스 패키지집단2가 계속 앞길을 가로막아서 아예 확 뒤처져 유유히 돌아볼 생각도 했지만,

내부가 워낙 공포물스러웠던지라. 시와에서처럼 미라 한두어구 있었더라면 정말 식은땀이 흘렀을 게다.

지상으로 다시 나오니 폭싹 지쳐버렸다. 마땅히 걸을 거리도 아니고 해서, 택시 잡고 7EP 부르는 걸 4EP로 깍았다.

방금 점심삼아 먹었던 망고주스-거의 중독수준으로 마시고 있다..-랑 꿀 들어있는 빵 값이 빠진 셈이라고 어찌나

기쁘던지.ㅡㅡ; 아저씨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대우/현대차 지나갈 때마다 알려주며 한국좋다고 그러길래, 나도 이집트

좋다고,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쭉쭉 뻗어줬다. 그레코로망박물관. 로마식의 유물은 터키서도 많이 봤었지만, 마치

카타콤에서 봤던 아누비스가 로마틱한 옷을 입고 있었듯이 조금씩 융합된 유물들을 감별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듯.

이집트 유적도 그렇고.

지중해 도시로 이집트의 대체적인 분위기와 상당히 이질적인 알렉산드리아마저 모스크와 미나렛들은 빼곡했다. 그중에

이 사원은, 중세까지의 황금기를 거치고 이민족들의 지배를 몇백년간 받음서 황폐해진 이집트에서 근대에 들어와 다시금

피워낸 이슬람 건축문화의 백미라고 하던가. 어찌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탑처럼 세워낸 오벨리스크는 미나렛에 상응하고,

히에라글리프(상형문자)를 빼곡히 채워낸 건물 벽면은 모스크에 잔뜩 새겨진 코란문구와 아랍어에 상응하고...그런

식으로 꾸며내는 방식을 이어온 듯하다. 물론 그 내용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이슬람 문명으로 판이하게 달랐다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 그것을 위한 상상력은 역시나 역사적인 맥락을 이어왔단 추측..어쨌거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모스크가 잔뜩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판에는 시든 풀처럼 지쳐서 아무생각없이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들어 버렸다. 한 세시간쯤. 그러고 보니 여태껏 푹

낮잠을 자본 게 시와의 야자수 정원에 묶여있던 해먹에서 한번뿐이었다. 생각보다 강행군이었는지도. 자고 일어나 모처럼

-무려 나흘만에-돈 계산을 해볼까 하고 다 뒤적여 꺼냈더니 복대 안의 달러가 모자란다. 최근에 정산해 본 이래로 여행자

수표(T/C) 한장 환전한 것밖에는 없는데, 허리 쌕은 잘 때도 껴안고 잤는데, 떼어놓은 적이라곤...언제지...? 어디서, 누가
 
그랬을지, 누가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싫다. 여태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기억들만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어디에서 흘린 게다.


저녁 한끼 덜먹고 돈 덜 쓴다고 복구될 것도 아니고, 걍 지금까지처럼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선에서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근데 결국 저녁은 1.5EP(300원짜리) 망고주스랑 1EP(200원짜리) 펠라페. 윽..내 나흘치 노가다 일당.


어딜 가나 말을 걸어주고 친구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포트 콰이트베이에서나, 폼페이의 기둥에서나, 그레코로망

박물관에서조차. 때론 무지 고맙고 재미있고 그런데, 때론 내가 혼자 조용히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론리플래넷을 뒤적일

여지조차 치고 들어온다는 사실에 짜증이 살짝 일 때도 있다. 여행자 수준의 영어를 되풀이하며, 도식적이라 할 만한

자기 소개와 인사말을 건넨 후 이집트 좋은지, 이 지역 좋은지 계속 물어보는 그들.


여행, 확실히 친구랑도 젤 마지막에 해야한다는 이벤트인 건 확실하지 싶다. 그래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하고 이렇게

저렇게 서로 맞춰가면서 말을 섞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정말 계속 붙어다닐 수 있는 한 명 정도 있으면 훨씬

좋겠단 생각도 들지만. 참, 파블로와 마르코를 또다시 알렉산드리아 거리에서 조우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들 남매에게 펄쩍 안기듯 악수했다.





오후가 되었고, 튈를리 정원에 앉아 지친 발을 풀밭에 눕혔다.

저녁무렵이 되어서인지 루브르 박물관 쪽에서 여행객들이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지만, 당연히 내게는 모두 얼굴

낯설고 이름 모를 타향의 사람들. 더구나 왜이렇게 모두들 삼삼오오 일행들과 함께 나오는 건지.

혼자 떠난 여행의 단점은 자신의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는 것 외에도..문득문득 이렇게 혼자라는 느낌이 치받아

올 때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때에는 나무가 느닷없는 일진광풍을 가만히 견뎌내듯,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며 외로움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벌렁 누웠던 풀밭 옆에서 자기들끼리 열중한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발랄하고 경쾌한 웃음소리조차 그저

왁자한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런 순간. 주홍빛 백열등처럼 변한 태양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HOME으로 돌아가는지 전부 떠나고 나자, 이번에는 한 커플이 그자리를 떡하니

차지했다. 사실 저 카메라를 잔뜩 의식한 채 경계심을 풀지 못한 커플을 꼭 찍으려는 게 아니라, 하늘의 갑작스런

뭉게구름을 찍고 싶어서 쳐든 카메라였다. 이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살짝 센치해진 기분을 달래보려고 일단 일어서서 잠깐 걷기로 했다. 루브르 궁전 건물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또

길어지고 있었다. 사람들도 한결 덜어낸 공간이 다소 휑한 느낌이다. 차라리 한낮에 바글대던 그 공간이 낫겠다는

생각이 슬몃 고개를 쳐든 건 또 무슨 변덕일까.

카루젤 개선문도 왠지 분홍빛의 온기를 잃은 채 차가워져 가는 느낌. 모든 게 냉막해지고, 파리에 혼자 떨어져서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답답함이 울컥울컥해져 버렸다.

다시 돌아온 애초의 내 자리. 아까의 그 커플은 보이지 않고, 텅빈 녹색의 공간에 나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뭉게뭉게 구름은 잘도 피어오르는구나. 잿빛 하늘보다는 그래도, 파란 하늘이 보이니까 맘은 좀 낫다.

이런 식의 센치함이 닥쳐 온 건 사실 어딜 가던 한번씩은 꼭 있는 일이었다. 이건 단지 일상으로부터 도피한 것

뿐이라고, 아니 도피한 척 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혼자 이렇게 다니는 거 하나도 재미없다고, 이제 누군가와

함께 다니고 함께 보고 즐기고 싶다고.

날 위로해 주듯,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서 황홀한 낙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하늘에

찍찍 그어진 구름띠들, 그리고 어느 한점에서부터 엷은 금빛으로 물들여 나가는 다정다감한 햇살.

카루젤 개선문의 뒤로 돌아 서쪽을 바라보니 저멀리 노을이 은은하고 비치고, 해는 바야흐로 스물스물 기어내리고

있었다. 파리의 태양이 이제 서울로 떠나는구나. 6시간의 시차를 메꾸고 서울을 밝히러. 서울에 있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덥히러 가는구나 싶다.

하늘은 여전히 은은한 금빛이 흩뿌려져 있었지만, 지상의 사람들은 적당한 어둠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정도 어둠을 머금은 사람들의 어슴푸레한 윤곽은 왠지 정겨워졌다. 노랑빛이 풀어져 내린 흑백사진 속의 파리.

그래도 아직 대지는 고집스럽게 녹색을 움켜쥐고 있다. 저 운치있는 가로등과, 그림같은 가로수들의 형체들이

잔뜩 움츠러들고 옹송그려졌던 내 마음을 잔잔히 어루만졌다.

한국으로 가는구나. 엄밀한 과학적 상식으로야 내가 올라탄 이 지구라는 녀석이 팽팽 돌며 태양을 비껴나가는

거라지만, 그리고 태양이라는 거대한 불덩이가 고작 나를 위로하겠다고 세이 굳바이~ 할리야 없는 거라지만,

어쨌든 이제 맨눈으로 바라봐도 전혀 위협적이거나 아프지 않을 만큼 온화해진 태양은 조금씩 사그라들며

서울로 가노라고 했다.

해가 마침내 완전히 기울고, 서쪽 하늘만 조금씩 붉은 기운이 맴돌다가 사그라드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센치했던 기분과 왠지 처졌던 느낌들은 모두 이곳에 버려두고 가기로 했다.

룩소에서 봤던 오벨리스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룩소에서도 문득 예기치 못한 그리움에 사로잡혔을 때,

창밖의 나일강을 바라보며 달랬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힘내서 여행길을.

왠지 '드래곤라자'에서 나왔던 인사말이 떠올라 버린 타이밍.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루이 16세의 목이 댕강,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도 댕강, 그게 바로 여기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바닥의 안내문.

아마도 프랑스 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실시하던 로베스 피에르의 목도 아마 여기서 댕강? 그랬던 광장인지라 이후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 광장의 이름을 콩코드로 바꿨댄다. 조화라는 뜻.


무려 1343명의 피가 거리를 적셨다는 이 광장은, 가이드북의 도움을 빌자면 파리 시내의 수많은 광장중에서도

역사, 위치, 규모 면에서 가장 뛰어난 광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다소 실망스러웠다.
 
마치 개선문 앞 로터리에서 차들이 씽씽 달리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개선문 주위의 분위기를 산만케 했던 것처럼

여기도 차들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다니면서 소음과 스피드로 광장을 포위하는 느낌이었달까.

차라리 서울 시청앞 광장이 안정된 녹색 잔디밭을 확보한 채 도로로부터 조여오는 압박을 버텨내는 것만도 못한

것 같았다. 외부의 소음이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독자적인 공간, 독립적인 공간으로서 파리의 광장과 공원이

갖고 있던 온갖 장점들이 사라져 버린 채, 그저 샹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궁전 앞 튈를리 정원을 이어주는 역할

밖에는..남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곳에서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를 조금은 더 짙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기요틴이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고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뭔가 아쉬움이 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쪽편의 샹젤리제 거리로부터 쭉 넘어와선 어느 순간 보이는 조각상과 마치 마카롱 전문제과점으로 유명한

'LA DUREE'의 색감을 떠올리게 만든 가로등. 그치만 내가 그 유명한 콩코드광장에 서 있음을 깨달은 건 사방을

둘러본 조금 후의 일이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곳 콩코드광장 한가운데엔 1833년에 이집트에서 받은 룩소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고

했다. 내 앞 불과 10미터 앞에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덧칠된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 내가

발견해낸 첫번째 힌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집트에 여행갔을 때 놀랐던 사실 중의 하나는, 원래 저러한 히에로글리프(그림문자)로 가득한 사원들, 건축물들이

모두 각종 화려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씻겨 나가고 모랫빛만 남은 바탕색에

익숙해졌을 뿐이지만, 그것 역시 자세히 보면 깊숙히 새겨진 틈새에는 마치 손톱에 낀 때처럼 과거의 물감이 조금씩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금칠이 된 오벨리스크는 여기서 처음 봤다. 룩소에서 봤던 외짝 오벨리스크의 반쪽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무지하게 반가웠고, 이집트의 선물이었다곤 하지만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순수하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준 걸까, 왠지 나폴레옹이 로제타 석비를 옮겨오고 다른 녀석들도 이곳저곳을 들쑤셔 유물들을 강탈해 온 것처럼

강제적인 게 아니었을까 싶었기 때문.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당시 나폴레옹 3세에게 이집트 통치자가 나머지 한 개도 선물로 마저 줄라고

했다지만, 이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오고 다시 세우는데 고생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감)사,but(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판도 바로 이 오벨리스크 옆바닥에서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던 길을 거슬러 보면, 쭉 이어진 가로수길이 좌우로 시립한 가운데 개선문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쪽으로 보면 마치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긴 마들렌 교회가 보인다. 콩코드 광장이 팔각형의 형태라는데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오벨리스크 주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여기가 뭔가 파리 중심부의 주요한 건물들을

사방으로 품고 있는 중요한 교차로라는 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남쪽으로 보면 앵발리드의 금빛 돔이 멀찍이 보인다. 저 금빛 돔은 에펠탑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주변에선 역시나 눈에 잘 띄는 녀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서쪽으로 난 에펠탑의 보일듯말듯한 자태. 에펠탑을 구성한 저 철골 뼈대들은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두툼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앙상해지면서 다소 흐릿해 보인다. 당연한 거지만, 왠지 저렇게 어른어른거리는 에펠탑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잠시 눈이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걸 보니 새삼 신기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콩코드 광장..인지 정신없고 번잡스런 교차로인지 간에, 튈를리 정원으로 들어가려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잘 꾸며진 채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정원과 분수대를 기대하면서.


그 입구에 서있는 저건, 마치 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삼륜 자동차 '툭툭'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그치만 저 하얀

외장으로 자전거의 빈약하고 없어보이는 내장을 감쌌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이 엄청난 이미지의 차이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튈를리 정원에 들어서면 다소 두툼한 껌을 비스듬히 살짝 휘어놓은 채 두개를 평행하게 벌여 놓은 것 같은 거대한

설치 미술 작품을 통과할 수도 있다.

쇠가 시뻘겋게 녹이 슬어가고, 만지지 말라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남은 손자국과 발자국까지, 그다지 멋지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저 번잡스럽고 실망스러운 콩코드 광장과는 별개인 공간에 들어선다는 느낌을 생생히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