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가는 트램 안에서. 자그레브의 구시가 앞, 옐라치차 광장 앞에서 나를 내려줄 6번 트램 중에 섞여있는 오래된 트램 중에는

 

이렇게 객차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도 있는 거다. 왠지 앞엣 객차에선 뭔가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기라도 한 분위기.

 

 

며칠만에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되게 반갑다. 문을 닫고 정리하려는 꽃가게들의 풍경만 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그리고 아침, 왠지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다 했더니. 슬로베니아에서는 진눈깨비와 비를 잔뜩 맞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컨셉은 비와 눈을 온몸 가득 맞으며 돌아다니는 건가보다.

 

 

눈이 가진 질감과 부피감은 눈꺼풀 위에 날려들어 떨어질 줄 모를 때 가장 크게 실감난다. 빗물은 그저 흘러내릴 뿐 달라붙을 줄

 

모르지만 눈은 차디찬 바깥공기에 힘입어 뻗어나간 가느다란 팔다리로 시야를 가리고 마는 거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 가운데에서 치즈를 팔던 아가씨는 눈 때문인지 손님 발걸음이 뚝 끊긴 와중에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느라

 

손이 빨갛게 곱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사랑이어라.

 

 

 

그리고 눈이 점점 삼엄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한 자그레브인들의 걸음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천 마켓에서 블루베리도 사고.

 

 

옆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피자 한 조각을 사먹으며 가벼운 아침식사도 하고.

 

두어번 나도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까페. 몇몇 가이드북엔 맛집으로 소개되었던데,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맛있던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에도 어김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면면이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똑같길래 왠지 더욱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Shabby hostel, 아고다를 통해 찾아본 값싼 숙소 중에서 가장 가격도 싸고 위치도 최상이었던 곳이다. 10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가 한화로 2만원 선이었던가. 가격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 데다가, 직원들도 다들 친절해서 자그레브에 체류할 때마다

 

가능한 이 곳에 묵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나려는 참. 갑작스런 폭설 떄문에 교통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지

 

트램과 자동차 간의 접촉사고도 났다고 하고, 왠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난 트램이 삐걱거리며 철로를 따라 어딘가로 이송된 후에야 나타난 다른 트램들. 다행히도 사고는 그리 대단치는 않아

 

트램의 자동문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 다친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트램이 있어서 도심지의 교통 흐름

 

속도가 그나마 좀 여유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고가 나도 크지 않은 수준에서 멈추는지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계시던 두 어르신은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계셨다. 오랜 지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분은 때로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굉장히 훈훈한 풍경이어서 슬쩍.

 

그리고 버스정류장 도착. 애초 이 곳은 자그레브 국제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 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였달까. 이제 플리트비체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출발 직전.

 

 

* 교통 (Zagreb to Plitvice, 100쿠나(baggage fee 7쿠나 포함) 3시간 소요)

 

 10:30, 11:30, 12:30 하루 세 차례 운행이 전부  (2013. 3월 현재)

 

 

 

* 플리트비체행 버스가 언제든지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이드북 믿었다가 뒷통수 맞지 말고 미리미리 확인할 것!

 

 

 

 

시외버스 플랫폼의 황량하다면 황량한 풍경. 그래도 파랗고 붉은 색으로 도색이 말끔하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셈이었달까.

 

플리트비체 행 티켓, 정확하게 티켓 값으로는 93쿠나. 1쿠나가 대충 200원이라 치고 티켓이 2만원쯤 하는 셈이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로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건지 기사님도 내리고 손님들도 자연스레 내린 시간에 잠시 근처 구경.

 

여기는 자그레브보다 더욱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리는 참이었다.

 

 

 

 어느새 나무들은 모두 새하얗게 뒤덮여 버린지 오래. 이런 식이라면 대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플리트비체는 어떠려나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세시간여 달리고 나서 '무키네 Mukinje' 마을 입구에 내가 떨궈질 때는 버스 안에 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오는 길 내내

 

대관령 눈꽃열차를 달리는 기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떨궈지고 나니 좀처럼 모든 게 막막하니 새하얗게

 

덮어있는 풍경이어서, 당장이라도 길이 끊기고 고립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잔뜩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광장에서부터 온갖 자그레브의 명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려면 손가락이 열개여도 부족하겠다. 사방팔방을 가리키는 화살표.


 옐라치치 광장으로부터 두 개의 언덕, 카프톨과 그라데츠로 뻗어나가는 오밀조밀한 골목 틈새를 비집고 늘어지는 햇살.


 

 성모승천 대성당이 삐죽 고개를 디밀고 있는 골목도 있고.


옐라치차 광장의 중심, 광장보다 움푹 들어가서 조성된 이 분수대 주변은 사람들이 층층이 앉기 참 좋게도 생겼다.


 짙은 구름이 잠시 지나고 햇볕이 내리는 그 곳은 역시나, 햇살을 즐기며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을 위한 명당자리.


  

 

옐라치차 광장 중앙에 선 기마상이 조그맣게 보이는 각도, 나도 질세라 분수 옆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참이다.


옐라치차 왕을 기리는 기마상 앞에는 크로아티아의 국기와 꽃들, 그리고 촛불이 잔뜩 봉헌되었다. 신생국의 포스란 이런 건가.

  

 

광장 옆의 기념품 가게. 자그레브의 고유한 빨간 하트 모양의 장식품이 화려하다.

 

 이곳의 축구 사랑이 유별나다더니 아예 기념품 샵들이 곳곳에 늘어섰다. 



기마상 앞을 지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광장일 수도 있겠지만 자그레브의 규모에 비기면 작진 않은 듯.

 

 

그리고 광장의 한켠에서 묵주니 성모상이니 등등을 팔고 계시던 분 뒤로 보이는-어디에서나 크게 눈에 띄는-저 광고는 참.




자그레브의 구시가, 그 시발점이 되는 옐라치치 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광장들을 따라 걷다보면, 우연찮게도-아마도

 

도시 계획의 산물이겠지만-커다란 U자 모양의 산책로가 만들어진다. 옐라치치 광장에서 슈비차 광장을 지나 모던 갤러리,

 

토미슬라브 광장을 지나 자그레브의 중앙역까지. 그리고 오른쪽으로 꺾어서 보타니칼 가든을 끼고 걷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턴.

 

그렇게 미마라 박물관과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을 만나는 코스가 바로 자그레브의 말굽 편자모양 산책로의 대략적인 동선.

 

(사실 그냥 걷고 싶은 대로 걷기만 해도 자연스레 걷게 되는 코스, 계속 초록빛 풀밭과 나무들을 옆에 끼고 걷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러다 보면 광장 어디메쯤에서 뜬금없는 슈퍼주니어 한국팬들의 테러도 볼 수가 있고,(여기서 콘서트라도 있었던 건가;;)

 

 

한국과는 달리 시원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소화전도 볼 수가 있고,(이건 사실 빨간색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자연스럽다)

 

 

송화가루인지 열매인지를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도 지나는가 하면,

 

슬몃 비껴나기 시작하는 햇살을 담뿍 빨아들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자그마한 분수대를 보기도 하고.

 

이만큼이나 길어진 나무 그림자들을 헤치며 공원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내딛는 중인 아저씨들도 만나는 거다.

 

 

자그레브 중앙역 앞의 '토미슬라브 광장', 그 가운데에서 마치 광화문 광장 중앙의 이순신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말탄 장군상.

 

그렇지만 저렇게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도 마시고 따끈하게 덥혀진 대리석에 앉아 광합성 중인 모습은 한국과 다르다.

 

어디나 그렇듯, 먼 길을 떠날 사람들에게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건 온갖 도색잡지들. 유리벽을 온통 도배해버린 타블로이드지들.

 

가게 너머 살짝 보이는 게 자그레브의 중앙역, 가까운 슬로베니아로부터 먼 유럽으로 이어지는 기차가 지나는 곳이다.

 

 

모던 갤러리. 안타깝게도 이곳 자그레브의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들 역시 월요일은 휴관. 여긴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사람과 자전거가 모두 멈추라며 시뻘겋게 핏대를 세운 자그레브의 신호등. 신호가 바뀌면 초록빛 사람과 자전거가 뿅.

 

 

4월부터 11월까지만 개방하는 보타니칼가든은 담장 너머로만 슬쩍 구경하고 지나고 나서 마주친 (아마도) 대학 건물.

 

건물 꼭대기에 무슨 장식물인가 했더니 눈을 부릅뜨고 사주를 경계중인 부엉이들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염두에 둔 거겠지만

 

왠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나 안하나 감시하는 엄한 선생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조그만 놀이터가 보이길래 그냥, 조금 말굽형 산책로에서 벗어나 갓길로 샌 참에 발견한 귀여운 꼬맹이들.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고는 여봐란 듯이 더 용감한 포즈들을 지어보이느라 경쟁이 붙었다.

 

 

그리고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던지는 샛노랑 외관이 파란 하늘 아래서 더욱 두드러지던,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맞은편의 미술공예 박물관도 노랑빛이긴 했지만 국립극장만큼 강렬하지는 못했다. 그늘진 모습이어서 그랬던 걸까, 모르겠다.

 

공원 옆에 그어진 주차구역 중에서 눈에 확 띄던 오토바이 주차구역의 표시. 되게 디테일하고 이쁜 표지다.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이 유명한 건 그 개나리색 외관뿐만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손꼽히는 예술가이자 조각가인 메슈트로비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작품이 정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작품, 남자와 여자의 강렬한 눈빛이

 

부딪히는 사이에 뒷켠에 있는 다소 늙고 지쳐보이는 남자의 시무룩한 포즈가 대비된다.

 

그런 군상들이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앞의 광장 한가운데에서 사방을 향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녹색 편자가 끊기고 다시 구시가에 가까이 도달한 즈음, 아무 노천 까페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는 참에 시선에 잡힌 할아버지.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멋지게 선글래스를 끼고는 자전거 페달을 힘주어 밟는 모습이 그럴 듯 했다.

 

테이블에 앉아 쉬는 김에 주머니를 털어 가진 돈 액수도 확인하고, 이 나라 돈에는 어떤 그림이나 장식들이 있나

 

꼼꼼히 살펴보는 참에 신기한 걸 발견했다. 크로아티아의 돈 단위인 쿠나(KUNA)는 동전의 숫자 뒤에 새겨진 그 짐승, 족제비나

 

담비처럼 생긴 동물의 이름에서 딴 거라길래 그것부터 신기하다 했는데, 모든 동전의 도안이 물고기, 새, 곰같은 동물이랑

 

식물들이다. 뭐랄까, 굉장히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인 것 같은 느낌이 팍팍.

 

 

그라데츠 언덕의 남쪽에서 로트르슈차크 탑으로 올라가는 길, 건물과 건물벽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남자 두명 어깨를 맞대고

 

걷기도 힘든 너비지만, 이 길 끝을 향한 관광포인트들의 화살표가 저리도 수다스러우니 한치의 의심없이 가는 거다.

 

 그래피티라기엔 조금 아쉬운 낙서들이 붉은 벽돌담의 회칠을 이리저리 긁어놓고 있었고, 다행히 골목은 조금씩 넓어지고.

 

 

언덕을 올라간다는 실감이 나는 게, 조금씩 자그레브의 구시가부터 야금야금 붉은 지붕들이 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다 싶었는데 성 마르크 성당이랑 그 너머 성모승천 대성당이 보인다. 저기가 자그레브의 또다른 언덕

 

카프톨의 꼭대기인 셈이고, 지금 걸어 올라가는 중인 언덕인 그라데츠를 오르면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을 비롯해서 성모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스톤 게이트 등을 볼 수 있다.

 

 제법 높이 올라왔다 싶어서, 뒤로 돌아 밟아 올라온 계단들을 보려는데 문득 눈이 마주친 아가씨. 손을 흔들어주니 흔쾌히 답해준다.

 

 그리고 왠지 알루미늄 호일을 꼬깃꼬깃 구겨서 만들었거나 껍데기를 씌운 듯한 이 조각상은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안툰 구스타브 마토사'라는 분을 기려 세워진 거라고 한다. 아니, '세워졌다'는 표현이 어폐가 있다 싶은 게 워낙 친근하고 격의없는

 

느낌의 조각이라 그런 거 같다. 그는 자그레브의 삶을 즐기고 자유로이 살다갔던 보헤미안이었다고 하니 이게 맞겠다.

 

 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그가 보았던 도시와 지금의 도시는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기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삶이 더 척박해지고 속물스러워지고, 게다가 많이 고유의 것들을 잃어버렸을 텐데. 다행히 짧은 체류를 했을 뿐인

 

외지인의 눈에는 꽤나 훌륭하고도 단단한 문화자산들을 갖고 있는 특색있는 나라로 보였지만 말이다.

 

두둥. 아직 3월 중순이라 봄이라고 하긴 애매한 시기지만, 여튼 푸릇푸릇해진 풀밭 너머로 보이는 게 로트르슈차크 탑.

 

그라데츠의 남문을 지키기 위해 세운 감시탑이라고 하는데, 무려 13세기에 지어진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단다.

 

수백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정오에 대포를 발사해서 시간을 알려준다는데 정오가 훌쩍 넘은 시각, 대포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지만 여전히 귓가에 남아있는 건 저 씨디도 발매하신 프로 아티스트 할아버지의 연주 소리.

 

 

사실 여기는 이렇게 걸어오는 것도 방법이고, 남쪽의 일리차 거리와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올라오는 것도 방법이다.

 

여하간 탑의 조그마한 입구를 들어서면 한산한 기념품샵과 매표소가 있고. 10쿠네(약 2천원)을 내면 저 문 너머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게 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형 계단은 우선 건물 외부를 타고 오르게 된다. 발음도 어려운 로트르슈차크 탑과 옆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따라 나선 계단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한켠에서 수줍게 나부끼며 응원중인 빨래들.

 

그리고 탑의 실내로 들어섰더니, 마침 자그레브의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탑의 조그마한 창문들로부터

 

은은하게 비쳐들어오는 흐릿한 햇빛이 탑 내부의 하얀 벽면과 반들거리는 나뭇바닥에 사정없이 반사되면서 분위기가 그럴 듯 하다.

 

슬쩍 내다본 창문 너머로는 방금 올라온 완만한 계단길이,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들고 나온 아가씨의 손수레가,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느라 여념이 없는 커플이 보인다.

 

그리고 일리차 거리에서부터 올라온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사람들을 쏟아내는 출입구. 사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진 않던 게, 나선 계단을 따라 탑을 뱅글뱅글 오르는 중에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저 문이 열리고

 

관광객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겠다 싶은 게, 운영 거리도 짧거니와 걸어서도 충분한데 뭐.

 

 

조금씩 눈높이가 둥실둥실 떠오르는 게 느껴지려나 모르겠지만, 한층한층 오를 때마다 탑의 네면에 한개씩 있는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사진으로 담다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들의 눈높이가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자그레브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어떤 식으로 디테일하게 타일들을 짜맞춘 건지 궁금증을 풀기도 하고.

 

이만큼 높아진 시선에서야 비로소 붉은 지붕들 너머로 하얗게 반짝거리는 성 마르크 성당의 일부를 보고 설레이기도 하고.

 

아래에서 강아지들을 끌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궁금해하며 사진을 담기도 하고.

 

아까 자그레브 대학교의 미대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저 아가씨는 그새 아이스크림 아저씨랑 한담을 나누는 중이다.

 

 

그래도 케이블카가 운영되지 않는 건 아니어서, 이렇게 두 개의 레일을 따라 파란색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걸 보기도 했다.

 

주변의 낡고 붉은, 그렇지만 그 디테일한 까끌까끌한 질감이 살아있는 지붕들과 완전히 정반대인, 반짝이는 파란, 매끄러운 케이블카.

 

계단은 계속됐고, 그 때마다 자그레브의 신예 작가들의 사진을 빠짐없이 감상하고 게다가 네 면의 조그마한 창문에서 보이는

 

자그레브 시내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나 걸리고 있었지만, 조금씩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는 걸 실감하며

 

기꺼이 만끽하는 중이었다. 계단도 그렇게 가파르거나 높지 않아서 힘들지 않고.

 

 

이런 창문들이 사각탑의 네 면마다 하나씩. 위로 올라가니 제법 외풍이 세차게 몰아닥쳐 창문을 아예 잠궈놨던데,

 

굳이 그걸 살짝 열고는 유리창의 방해 없이 맨눈의 자그레브를 구경하고 싶었다.

 

 

층수로 치면 4층쯤 되려나. 이제 왠만한 자그레브 시내의 건물들은 얼추 눈아래로 들어온다 싶을 즈음.

 

대포가 나타났다. 이게 매일 정오마다 발포되어 시간을 알려준다는 대포, 리얼 대포다. 대포가 있는 유리방 벽면에 붙어있는

 

온갖 삼엄한 금지 표시들만 봐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대포를 향해 창문 너머로부터 쏟아지는 이 나른하고도


따스한 햇살은 좀. 반칙 아닌가 말이다.

 

붉게 칠해진 바퀴는 단단히 고정되어 반동을 최소화했고, 어느 하나 녹슨 부품이 보이지 않는 대포의 철제 바디는 보기만 해도

 

왠지 군대의 살상병기가 갖는 위용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그런 대포가 자그레브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려주는 유용한

 

알람 시계로 활용되고 있다니 꽤나 교훈적이랄까 바람직하고도 건전한 모습이다.

 

그리고, 사진이 너무 많아 일단 여기서 끊고 로트르슈차크 탑 위에서 보이는 풍경은 다음 포스팅으로.

 

맛보기 삼아 한장만 올리자면, 이 탑 위의 전망대에서는 성 마르크 성당의 자수같은 지붕이랑 아이 컨택이 가능하다.

 

 

 

 

 

 

여기가 거기였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구시가 복판에 있는 성 마르크성당. 예전에 어디에선가 사진으로 스쳐지나갔던,

 

그렇지만 굳이 여기가 어디에 있는 건물일까 찾아보게 만들었던 그 건물이었다. 하얀 외벽에 깜찍한 지붕을 얹은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을 지나,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를 지나 금세 다다른 조그마한 광장, 아니 광장에 채 진입하기도 전에

 

지붕부터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림이라기엔 기와 한장한장의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한, 그래서 흡사 레고블록을 쌓은 듯한.

 

사실 성 마르크성당의 건물 자체도 1200년대에 지어졌다니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내공을 풍긴다.

 

들어서는 정문만 해도 십여명의 수호성인들이 지키고 선 걸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저 흰색과 파란색, 빨간색이 올망졸망한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하얀 벽 위에 얹혀 있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타일 지붕은 고작(?) 1880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하는데, 왼쪽은 중세의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지방, 슬라보니아 지방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자그레브 시를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게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더하기 달마티아 지방(현재 크로아티아의 중부 지방) 더하기 슬라보니아 지방(동부 지방)의 상징.

 

그리고 이게 자그레브 시의 상징인 셈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까 타일 한장 한장이 선명하고 화려한 발색을 내며 각자의 입체감을

 

돋을새김하듯 지붕 위에서 어필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더 뚜렷하다.

 

성당 안에서의 촬영은 다른 여느 성당들이 그랬듯이-성모승천 대성당도 마찬가지였지만-촬영 불가. 잠시 들어가서 그 묵직하고 오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두컴컴한 실내에 적응할 때쯤 다시 나와버렸다. 최소한 성 마르크성당은 밖에서 보는 게 진짜다.

 

아마 성 마르크성당 주변에는 EU 관련한 관공서랄까 정부 청사가 있는 건지 크로아티아 국기와 EU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롤이나 검정색 커다란 세단들도 누군가 귀빈들을 위해 대기중이었고.

 

그 와중에 경찰 아저씨의 허락을 득하고 찍은 크로아티아 경찰 오토바이의 위용. 진격의 BMW Motorad.

 

옐라치차 광장에서 성모승천 대성당, 각종 뮤지엄들, 그리고 성 마르크성당까지 그러고 보면 참 오밀조밀 잘도 붙어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나는 굉장한 풍경들과 역사의 증거물들 앞에서 숨 한번 돌릴 여유를 찾기엔 노천 까페가 최고.

 

이쯤해서 돌라츠 시장의 노천 까페를 찾아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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