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부터 온갖 자그레브의 명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려면 손가락이 열개여도 부족하겠다. 사방팔방을 가리키는 화살표.


 옐라치치 광장으로부터 두 개의 언덕, 카프톨과 그라데츠로 뻗어나가는 오밀조밀한 골목 틈새를 비집고 늘어지는 햇살.


 

 성모승천 대성당이 삐죽 고개를 디밀고 있는 골목도 있고.


옐라치차 광장의 중심, 광장보다 움푹 들어가서 조성된 이 분수대 주변은 사람들이 층층이 앉기 참 좋게도 생겼다.


 짙은 구름이 잠시 지나고 햇볕이 내리는 그 곳은 역시나, 햇살을 즐기며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을 위한 명당자리.


  

 

옐라치차 광장 중앙에 선 기마상이 조그맣게 보이는 각도, 나도 질세라 분수 옆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참이다.


옐라치차 왕을 기리는 기마상 앞에는 크로아티아의 국기와 꽃들, 그리고 촛불이 잔뜩 봉헌되었다. 신생국의 포스란 이런 건가.

  

 

광장 옆의 기념품 가게. 자그레브의 고유한 빨간 하트 모양의 장식품이 화려하다.

 

 이곳의 축구 사랑이 유별나다더니 아예 기념품 샵들이 곳곳에 늘어섰다. 



기마상 앞을 지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광장일 수도 있겠지만 자그레브의 규모에 비기면 작진 않은 듯.

 

 

그리고 광장의 한켠에서 묵주니 성모상이니 등등을 팔고 계시던 분 뒤로 보이는-어디에서나 크게 눈에 띄는-저 광고는 참.




어렸을 때 봤던 '백 년 동안의 고독',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랄까, 혹은 소개글이랄까.

 

게다가 연애감정을 단순히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만으로 묘사하는 단순한, 그래서 그만큼 거짓된 이야기들이 창궐한 세상에서

 

이렇게 정서적 혼란이 난무하는 것 자체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이란 걸 짚어주는 것 자체로도 위로가 되는 글이다.

 

 

 

 

이별 통보하며 던진 말 "널 지독히 사랑해!" (프레시안, 2012-05-11)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연재를 시작하며

사랑에 빠진 젊은 당신에게 묻는다. 행복하세요?

허세를 좋아하지 않는 청년이라면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고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적인 말씀 앞에서 청년은 기가 죽는다. 그리고 한탄한다. 실은 나 사랑에 빠진 죄로 피를 뚝뚝 흘리며 고통 받고 있는데, 어디 가서 하소연할꼬? 어떻게 말로 할 수 없는 이상한 마음에 빠져 있는데, 이 혼돈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러다가 내가 미치는 게 아닐까?

선남선녀가 첫눈에 반해서 장애물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연애담의 다가 아니듯이,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연애 심리의 다가 아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종종 극심한 정서적 혼란을 겪는다. 더욱 곤란하게도 그들은 혼란의 정체조차 모른다. 연애는 기묘한 인간 심리가 난투극을 벌이는 장이다.

훌륭한 소설들은 이런 미친 듯한 기묘한 심리들을 발견하고 묘사했다. 이 연재는 명작 소설에 나타난 기이한 연애 심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각 이야기의 서두에는 민, 경, 희, 연, 도 등 익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소설 주인공이 아니라, 독자이다. 연애 때문에 고민하는 혹은 고통 받는 독자이다. 그들은 소설에서 비슷한 증상(?)을 발견하고 공감하거나 위로 받거나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그들의 실제 연애담을 먼저 이야기하고, 본문에서 그와 관련된 소설 속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청년은 또한 질문한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신경증인가? 판타지인가? 유일한 구원인가? 이 질문 앞에서도 명작 소설들은 이미 멋진 답안들을 제출하였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이 답안들, 유식하게 말해서 '사랑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을 훔쳐보는 즐거움도 누릴 것이다.

사족

그런데 필자 양반, 왜 이런 글을 쓰세요?

그렇게 물어볼 줄 알았다. 본 게임 전에 하는 말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우선 연애 때문에 마음 아픈 당신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당신의 기묘한 심정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라 말하고 싶었다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명작 소설이 아픈 마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마음의 백과사전'임을 보이고 싶었다고, 아울러 소설을 깊이 읽는 한 방식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이런 식의 소설 읽기를 통해서 점점 독자를 잃어가는 소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기적도 아주 가끔 꿈꾼다고만 이야기해 두겠다.

 


첫 번째 상담

민이 연인에게 결별을 고했다. 일방적으로. 사람들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민을 부러워했는데. 그녀의 연인은 보기 드물게 자상했다. 어디에 가든, 그는 그녀와 동행했다. 우습게도 그는 혼자 있는 그녀가 혹여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들이 싸웠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녀의 안부였고, 그녀는 사소한 걱정이나 부끄러운 험담을 그에게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에게 그녀는 가장 흥미로운 텍스트였고, 그는 그녀의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 자신도 자기 마음을 모르는데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쏟아지는 질문에 그녀는 침묵으로만 응대했다. 그와 그녀의 이별 후유증에 대해서는, 말을 말자.

세월이 흐른 후 그녀는 <백 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을 읽는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해했으므로 드디어 그녀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붉은 화인으로 남은 청춘의 한 때, 그녀가 빠져든 어리석음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의 어리석음을 애도하면서 혹은 찬란함을 질투하면서.

그때, 난 천국에서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어. 천국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외줄 아래는 무시무시한 낭떠러지야.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다리가 늘 후들거렸어. 끝장나게 행복했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불안했단 말이지. 그 상태를 더 이상 지속할 힘이 없었어. 무엇보다 외로워서 미칠 것만 같았어.

사랑은 왜 그렇게 피곤한 걸까? 그리고 그 피곤한 사랑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정열과 고독, 그 기이한 함수관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불안감은 침대 안에서가 아니고는 평화를 찾지 못하리라.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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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문학사상사

사랑할수록 처절하게 외롭다. 말장난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체험적 진실이다. 이 소설의 레베카와 아마란타 역시 사랑 때문에 외롭다. 그들은 동시에 피에트로 크레스피를 사랑하지만, 레베카는 사랑을 차지하고 아마란타는 그러지 못한다. 정황이 다르기에 그녀들의 외로움의 색깔은 다르지만, 이는 사랑의 짝패인 고독의 두 가지 전형적 사례이다.

우선 사랑에 응답 받지 못한 아마란타의 외로움은 쉽게 납득된다. "변소를 닫아 잠그고 안에 들어앉아서 절망적인 정열의 고뇌를 쏟아버리려고 정열적인 편지를 써서는 그 편지들을 트렁크 깊이 감추"(81쪽)기를 반복하는 아마란타의 고독한 정열. 응답 받지 못한 정열은 고독을 부추기고 고독은 다시 정열을 불태운다.

외사랑이 깊어질수록 저 홀로 타는 정열의 불길은 거세어진다. 응답을 받았으면 평범했을 정열은 종종 응답을 받지 못했기에 더욱 광포하게 날뛴다. 걷잡을 수 없게 된 정열 때문에 점점 더 사랑을 얻기 어려워지고, 더 고독해진다. 아마란타는 고독하기에 정열적이고, 정열적이어서 더욱 고독하다.

그러나 사랑을 잃은 아마란타 못지않게 사랑을 얻은 레베카도 외로우니, 어쩌면 더욱 처절하게 고독하다. 레베카는 피에트로 크리스피의 편지를 매일 기다린다. 우편배달부는 2주에 한 번씩 온다. 그런데 실수로 다른 날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녀는 매일 오후 4시마다 배달부를 기다린다. 그러나 다른 날 우편배달부가 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와야 할 날에 오지 않기도 했다.

그런 날 레베카는 "절망에 미칠 것 같아서 레베카는 한밤중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고통과 분노로 흐느껴 울면서 흙을 닥치는 대로 손으로 퍼서 집어삼켰고, 매끈매끈한 지렁이를 막 씹어먹었으며, 달팽이 껍질이 입안에서 아삭아삭 바스러졌다. 레베카는 동이 틀 때까지 먹은 것들을 토해냈다. 열병에 걸린 듯 레베카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79쪽)

광란에 빠진 레베카는 실연을 당했거나 외사랑에 고통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이다. 피에트로는 극진하게 레베카를 사랑했다. 편지가 오지 않는 경우도 피에트로가 무성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우편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편지는 대개 정기적으로 도착했다.

이렇게 보면 레베카의 광적인 절망은 그 연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것이 된다. 드높은 인격과 향기로운 미덕을 갖추신 분들은 레베카를 맹목적인 탐욕에 사로잡힌 영혼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맹목적인 탐욕이란 사랑이 필연적으로 거느리는 것, 사랑의 심장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사랑의 응답은 언제나 모자란다. 충만하다 못해 과도하게 넘쳐흐르는 사랑의 응답도 필경 결핍만을 부각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는 야차와도 같이, 사랑에 빠진 자는 악무한의 굶주림에 시달린다. 사랑에 빠진 자의 이런 허기를 마르케스는 '고독'이라는 평범하지만 깊디깊은 속뜻을 품은 한 마디로 표현한다. 레베카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사랑에 빠진 아우렐리아노뿐이었다.

열애 중인 연인은 고독이라는 인간의 천형을 사면 받는가?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한 열정의 노예가 된 사람은 연애 중에 오히려 더한 외로움을 느낀다. 아마란타와 마찬가지로 레베카의 사례에서도, 고독은 정열의 크기에 비례해서 깊어진다.

정열이 깊을수록 상대로부터 기대하는 바가 많아진다. 많은 것을 기대하면 자연스럽게, 만족하기보다는 결핍을 느끼기 쉽다. 그러니 고독할 수밖에. 또한 그는 고독하기에 다시 정열을 불태운다. 결핍을 느끼면 그것을 채우려고 발버둥치지, 어지간해서는 체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맬망정 배고픔을 잊으려고 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열이 고독을 부르고 고독이 정열을 부르는 이 원환(圓環).

냉혈한인 그녀, 사실은 두려워서 사랑을 포기한 연약한 영혼

여자는 거리낌 없이 그를 만져댔고, 그는 그 여자의 손길에 몸을 부르르 떨며 쾌감보다는 두려움이 머리에 꽉 차 있었다. (38쪽)

상대의 마음은 대체로 나와 같지 않고, 마음이 맞는다 하더라도 이른바 '맺어지기' 전 결별의 요인은 너무나 많다. 그러니 사랑이 '맺어지기'란 구우일모(九牛一毛)나 다름없는 진귀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토록 어려운 '맺어짐'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은 과연 기쁜가? 진실을 토로하라면 그때 표현하기 힘든 혼란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질투에 휩싸인 아마란타는 레베카와 피에트로의 결혼을 극성스럽게 방해하고 레베카를 독살할 계획까지 세운다. 하지만 레베카는 피에트로와 헤어진다. 아마란타가 방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레베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피에트로와 아마란타는 자주 만나서 조용한 사랑을 키워간다.

피에트로는 미쳐 날뛰는 정열적인 사랑이 아니어도 따뜻하고 고요한 사랑에 도취하여 아마란타와 결혼하려고 결심한다. "억누를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쫓겨서라기보다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르자는 뜻"(125)에서. 그런데 청혼을 받은 아마란타의 대답은 어떠했나.

"나는 죽으면 죽었지, 당신하고는 결혼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정말로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앞으론 다시는 집안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요." (126쪽)

이제 피에트로는 흐느껴 울며 비굴하게 애원한다. 비 오는 밤이면 아마란타의 침실을 바라보며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을 만큼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있는 목소리"(127쪽)로 노래를 부르며 그녀를 설득한다.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절망을 이기지 못한 그는 자살하고 만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서 석탄불에 손을 지진다. 평생 화상의 흔적 위에 시꺼먼 붕대를 감고 산다.

아마란타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외롭게 했고, 질투심에 불타게 했으며,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던, 그리고 여전히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피에트로의 청혼을 고집스럽게 거절했을까? 피에트로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마란타의 어머니 우르슬라는 이렇게 분석한다.

아마란타는 우르슬라의 마지막 분석 과정에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여인이었음이 분명해져서, 우르슬라는 아마란타에 대해 동정을 느꼈고, 피에트로로 하여금 부당한 고통을 받게 만든 까닭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자신이 겪은 괴로움에 대한 앙갚음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시 사건은 모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랑과 물리칠 수 없었던 비겁함의 결사적인 투쟁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였으며, 마침내는 아마란타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마음에 대해서 느끼고 있던 어처구니없는 두려움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280쪽)

그 비극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랑과 물리칠 수 없었던 비겁함의 결사적인 투쟁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였다고 한다. 냉정하다는 평판과 달리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린 아마란타는 어처구니없는 두려움에 굴복한 가엾은 영혼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마란타는 피에트로를 깊디깊게 사랑했으나, 사랑의 동반자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사랑에 빠진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서 있는 자리는 꼿꼿한 직립이 가능한 굳은 땅 위인가, 천길낭떠러지 옆에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좁은 비탈길 위인가? 마음이 연약하고 깊은 이들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깊은 사랑과 동시에 두려움에 몸을 떠는 사람은 이렇게 되뇐다.

그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토록 모자란 나를. 그는 언젠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니 결국 나는 사랑을 잃게 될 것이다. 잃은 후의 절망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나. 게다가 미쳐 날뛰는 정열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정열이 벼려 낸 내 안의 칼이 그를 찌르면 어쩌지. 사랑 속에서 나 자신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 그밖에도 많다.

사랑에 빠진 자가 모두 사랑을 쟁취하려고 동분서주하는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경우 그는 사랑의 성취 바로 앞에서 비겁하게 몸을 사리고 도망쳐 버린다. 사랑의 깊이와 두려움의 깊이는 비례하므로, 피에트로를 죽음으로 이끈 아마란타의 냉혹함은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아마란타는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워했을까. 아니면 폭력적인 사랑의 심연을 두려워했을까. 그랬을 수도.

어쩌면 두려움은 행복 자체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란타는 눈앞에 다다른 행복 앞에서, 단지 행복해지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오랫동안 꿈꿔 왔던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어떤 이는 환희보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행복이란 워낙 드문 것이기에, 사람은 그것을 만나면 낯설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 줄 모른다.

행복은 과거와 미래 속에서만 존재했거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과거에 행복했다고 다소 왜곡해서 기억하거나, 미래에 행복하기를 기대할 뿐이지, 현재 행복하다고는 거의 느끼지 않는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 펴냄, 2007년), 197~200쪽).

지금 이곳에서 행복은 항시 부재중이다. 없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예상을 벗어난 낯선 것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 순간 닥치는 행복은 '원래 없어야 하는 것'인데다 '예상을 벗어난 낯선 것'이므로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편,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다. 줄기차게 추구해온 욕망의 정점에 아무것도 없음을. 그 텅 빈 정점을 보는 순간 느낄 참혹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기에, 꿈이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에 도망쳐 버리는 게 아닐까. 꿈꾸는 대상이 허상이었음을 인정하기 두려워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아마란타는 게리넬도 마르케스를 만나면서도 되풀이 두려움을 느낀다. 여러 해에 걸쳐서 거듭 사랑을 고백하고 정성을 기울인 게리넬도에게 아마란타는 "자기 자신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절망"하면서, "죽는 그 날까지 혼자서 울면서 고독하게 평생을 보내리라고 결심하고는"(187쪽)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그녀의 이런 처사가 그동안 겪은 괴로움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사람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후 우르슬라는 피에트로의 경우에서처럼, 그것이 깊은 사랑과 두려움의 싸움에서 두려움이 사랑을 이긴 결과라고 이해한다. 사랑이 깊기에 사랑이 사랑을 죽인 것이다.

내적 분열, 사랑의 핵(核)

그는, 그럴 마음이 없으면서도 그 여자를 만나러 가야만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39쪽)

인간의 마음은 본디 분열적이다. 무엇을 하고 싶을 때 동시에 그것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이러한 내적 분열을, 연애하는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하게 체험한다. 사랑하면서도 밀어내고, 도망치면서도 사랑한다. 아마란타가 게리넬도를 대하는 모습은 내적 분열하는 연애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게리넬도에게서 과거 피에트로에게 느꼈던 정열을 되살려보려고 애를 쓴다. 애를 쓴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 정열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죽을 만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게리넬도를 거절한 후에도 아마란타는 "우르슬라에게 전쟁에 대한 최근의 형세를 알려주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으나 밖으로 나가서 그를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겨우겨우 그 충동을 억제할 수 있었다."(160쪽)

사랑의 빛깔은 형형색색이라, 격렬한 정열이 아니어도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심정도 있고,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으면서도 억누를 수밖에 없는 심정 또한 있다. 이런 분열적인 심정은 노년에도 그대로여서, 아마란타는 게리넬도 노인을 만나면서 추억으로 마음이 아파질 때면 공연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서 그를 괴롭힌다.

 

ⓒ프레시안(손문상)

/박수현 문학평론가


"강릉을 넘어 현실에까지 범람한 그와 그녀의 사랑. 그들의 로맨스는, 그들의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ytzsche.



강릉과 非강릉, 영화와 현실의 공간.

강릉은 그런 곳이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파랗기만 한 바다에 연한 이 자그마한 소도시는, 외지에서 들고 나는 사람들을

통해서나 비로소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곳이다. 특히 여름에 바다를 찾는 향락객들에게는, 강릉이란 극중 민아의 자조섞인

표현처럼 일종의 '피서지용 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필요할 때 찾아와선 며칠 후엔 훌쩍 내버리는.


영화사 조대표도 잔뜩 지친 채 그렇게 불쑥 강릉으로 향한다. 딱히 일정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바다를 보겠다

떠난 길이었으니 그에게 강릉은 일종의 비현실이었다. 그리고 투숙한 호텔에서 20년전 강릉에서 만나 하룻밤을 지냈던

민박집 여자아이와 똑같이 생긴 그녀, 민아를 만나 함께하며 강릉은 20년만에 로맨스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여느 연인들처럼, 그와 그녀 역시 스치는 손길 하나에, 미묘한 뉘앙스를 흠뻑 적신 단어 하나에, 그렇게 감정이 부풀어오른다.

그건 그가 호텔 로비에서 만나는 남자 맛사지사와 여성고객의 흥정 따위를 모두 성적인 의미를 함뿍 담아 읽어내린다거나,

그녀 역시 그를 조심스레 만지려 들며 그를 욕망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자연스러운 거다.



강릉에서의 로맨스, 강릉에서만 가능한 로맨스.

문제는 그들이-그의 생각대로라면-부녀간일 수도 있다는 것. 그는 드문드문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감정을 벌여놓는다. 그건 그가 강릉이란 곳을 대하던 태도에서 비롯할지 모른다. 여긴 '피서지'니까,

현실과는 다른, 영화 속과 같은 허구의 공간. 현실의 문법과 규율이 깨지는 그런 비현실의 공간. 이미 그는 20년전에도 그랬었다.


어쩌면 그녀도 그와의 사랑이 순간의 불장난이라거나, 두시간여만에 크레딧이 올라가며 끝나버릴 영화같은 기억으로 끝날 거라

지레 겁먹고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아픈 상처를 갖고 있던, 그리고 아마 그런 아픈 상처의 결과로 태어난 그녀다.

혹은 그녀는 아직 어려서, 깨질지언정 한번 그와의 이야기 마지막 페이지를 보겠다는 당돌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같다.


그와 그녀는 줄곧 손에 소니 핸드캠과 라이카 카메라를 쥐고 다닌다. 경포에서 주문진을 돌아다니는 길에, 그들은 쉼없이

서로의 이미지를 기록하고 저장한다. 일층에 미용실이 있는 이층 양옥집에 대한 엇갈린 기억이라거나, 새로 찍으려 하는

영화에 대한 즉흥적이고 암시적인 이야기들이라거나, 그러는 그들은 분명 그 예술적인 세계의 감독이나 배우처럼 굴고 있었다.

 



현실까지 넘쳐들어온 로맨스의 물결.

그녀가 그에게 먼저 고백한 때, 그는 그 직전 분명 그 타이밍에 마음을 전하려 결심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도망갔을까.

왜 강릉을 벗어나 자신이 속한 거대한 도시 서울로 한달음에 되돌아왔을까. 그녀의 고백에 퍼뜩 놀라 겁먹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게 '로맨스'로서 어울리는 짧고 아름다운 결말이라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울에 돌아와 안심했을까.


아마 그는 굉장히 찝찝하고 부끄럽고 지쳐버린 채 돌아왔을 거다. 어디선가 내 아이가 나도 모르게 자랐다는 상상, 그리고

그 아이에게 '핏줄이 당기는 것'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상상이 허용되던 다소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불쑥

냉혹하고 단정한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그리고 20년이 지나도 똑같이 그 공간에서 도망나와 문제를 피해버렸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영화같다'고 표현하는 식이라면, 여기서 그의 이야기 한토막은 크레딧을 올리며 끝내야 하는 타이밍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아직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영화는 끝이 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해주는 데서

폭발하는 거다. 강릉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었던 그들의 영화같은 사랑이 비로소 그 속박을 끊고 현실까지 넘쳐들어오는 순간.


로맨스와 현실의 혼재, '강릉'이란 알리바이가 필요치 않은 사랑.

물론 대책없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녀는 그의 딸인 게 분명해지고, 그렇지 않다 해도 그들의 나이차는 스무살.

그들의 사랑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물과 기름같이 겉돌던 로맨스와 현실을 비로소 뒤섞을 수 있게 되었다. 강릉과 非강릉의 벽을 넘어서.


어쩌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아닐까. 로맨스는 로맨스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따로 생각하는 식의 사고방식 말이다. 영화에선

그게 '강릉 vs 非강릉'의 공간으로 표현되었다면,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거나, 연애 초 콩깍지와 리얼한 실재모습은 다르다는

식으로, 결혼 전과 후가 다르단 식으로 칸막이를 세워 놓고는 '(짧아서 아름다운) 로맨스 vs 현실'의 구도를 만들곤 한다.


아닐 수도 있을 거라 믿는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녹록치도 않고, 로맨스의 마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으니만치

뭐 하나 뚜렷하게 확신을 갖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건 확실하다. 우리의 로맨스는, 우리의 영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다음 장면으로 함께 넘어갈 수 있는 한 끝나지 않는다. 그게 아마도 백년후에 크레딧을 올리는 비법.


각자 만들어가는 영화의,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의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라면. 배우와 감독이라면.



설득 (반양장) - 10점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문학동네

"사랑과 결혼, 그 풀리지 않는 함수관계에 대한 사려깊은 답안, 읽고 나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ytzsche.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으로 필명을 떨친 그녀가 죽기 일년 전에 남긴 유작이자 또다른 명작이라 감히 칭하고 싶다.

사랑이란 감정이 어떻게 맥놀이하는지를 보여주는 건 이미 숱한 작가들이 숱한 작품에서 묘사하려 애썼던 것이지만,

제인 오스틴이다. 그녀의 문장은 비단처럼 매끄럽고 섬세하며, 그 와중에 날카롭고 예민한 성찰까지 녹아들어 있는 거다.

게다가 이미 이전에 놓쳐버렸다,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다시 어떻게 안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하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꺽이고 젖혀지는지, 그리고 다시 만개하는지를 이토록 흡인력있게 묘사해내다니.


결혼이란 문제는 흔히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양 이야기하는 게 현명함을 가장하기 쉽다. 자못 어리숙하다느니,

세상물정 모른다느니, 결혼은 또다른 현실이라느니 따위의 야박한 '설득자'들 앞에서, 사랑과 결혼,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는

식으로 편히 갈라놓고 이야기하는 건 제인 오스틴이 목도했던 근대 초기의 세태와 작금의 세태가 과히 다르지 않은가 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프레임도 그런 식이다. 감정에 몰입하기보다는, 결혼을 디딤돌로 얻을 수 있는

물적 조건-적나라하게 말하자, 그때나 지금이나 재력과 '신분'을 업그레이드할 기회인 거다-에 집중하라!


오스틴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펼쳐 놓으며 그들의 결혼, 혹은 결합이 서로에게 어떤 시너지를 줄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묻는

당대인의 모습을 눈 앞에 보일 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런 세밀화의 풍경엔, 불타오르는 사랑 앞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듯하던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눈먼 사랑이라거나 그 반대의 팜므파탈이 나설 공간은 없다. 얼핏 보기엔 우리 옆을 스치는 여느 남녀의

범상한 연애담과 결혼담에 지나지 않을 법한 담담하고 평이한 풍경 속에, 그녀는 잃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마음이 다시 열리고,

의심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 국면을 너무도 강렬하게 돋을새김해 놓는다.


하여, 사랑은 판타지일 뿐이라며 어른의 조언을 따르라는 '설득', 그에 반해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또다른 '설득', 혹은

지난 일은 어쩔 도리가 없이 지난 일일 뿐이라는 옛사랑의 '설득' 따위에서 방황하며 더러는 길을 잃고 더러는 홀로 야위어가던

앤 엘리엇은, 누군가의 설득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로맨스를 찾아간다. 그건 처음부터 로맨스로 시작해 무책임한 결말을 비워두는

이야기도 아니고, 시니컬한 냉소로 시작해 황폐한 풍경만 지루하게 내뿜는 이야기도 아니다. 주위의 설득으로 이미 한차례,

로맨스를 버리고 '현실'을 좇았던 여인이 이제는 안간힘을 쓰며 스스로의 로맨스를 복구해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연애담 혹은 결혼담은, 둔한 눈으로 보면 얼핏 '다들 그러고 사는 것'이라며 무시하고 지나치기 쉬운, 삶의 어떤

결정적인 국면을 포착해내어서는 그 안에 숨어있는 내면의 폭풍과 결단의 순간들을 너무나도 특별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어루만져 주는 거다. 그것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감정이 격동했던 이유 아닐까 싶다. 평이한 일상에 그토록 밀도높은 생기와

현실감, 극적인 감각을 불어넣어준 오스틴 덕분에, 심장이 문득 두근거렸다. 어떤 의미로던 이 책 '설득'은 너무도 늦게 한국어로

번역된 거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좋은 일요일 내내 흙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를 핑계로 전날밤부터 급 달리기 시작한 '연애시대'.

토요일 밤을 꼬박 새고, 네시간 자고, 밥먹고, 다시 달려서 이제야 16부작 정주행 완료.

저렇게 적고 보니 왠지 폐인 모드였..지만, 왠지 한번쯤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전에 봤을 때와 지금의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내게 어떤 자극이 될지 궁금했달까.

장래희망을 잃고 하루를 견뎌내고 있단 느낌이 드는 때.



#1. 사랑이 오고 간 자취.

다시 봐도 역시, 서로 끌리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온갖 국면을 참 섬세하게

그려냈다. 미묘한 떨림, 설레임과 두려움에서부터 슬쩍 엇나가고 막막해지고 슬퍼지는 그런

순간들, 두사람의 감정이 휘발되고 언뜻 지치고 지루해지는 순간들과, 그리고 둘 이외에는

의미불명의, 둘에게조차 더러는 덧없을지 모를 몇몇 장면들이지만 분명히 행복했고 아름다웠던,

그리하여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들. 특히나 유머러스하지만 센스넘치는 카메라워킹과 소품들로

놓치지 않은 뉘앙스들은 장면장면 공들여 조탁된 이 드라마의 덕목 중 하나.


#2.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뭘까. 헤어지고 나서야 시작된 이상한 마음, 그런 것도 사랑일까. 미움도 사랑, 집착도

사랑, 미련도 사랑, 아쉬움도 동정도 선망도 욕정도 모두 사랑인 걸까. 그런 건 아니라 치면,

역시나 모르겠다. 사랑이 뭘까. 사랑이 아닌 건 뭘까. 마지막회 엔딩 후에 스탭들이 모두

'사랑이 몰까'란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둘이 있을 때 행복한 거, 믿음, 끊임없는

의사소통..같은 답들도 의미심장했지만 그보다는, 나잇살 깨나 먹은 분들도 모르겠다며

손사래치는 모습이 훨씬 든든했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구나, 하는.


#3. 사랑은..운명일까.

그리고 역시나.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와 '사랑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 사이의 갈등.

그 굵은 갈등선에 대해 워낙 풍부한 말들과 감성적인 장면들을 마련해 두었는지라, 결국은

이거든 저거든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어도 될 거 같다. 드라마야 비록 해피엔딩 아닌 앤딩을

말하며 끝났지만, 그래서 둘은 운명인 걸까,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지나고 나니 운명이었다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어차피 못가본 갈랫길엔 '붕어똥처럼' 후회가 남는 거다. 다만..

조심스레 덧붙이자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한결같은 그 일관성이 슬프고 원망스러울지라도.



#4. (특히) 이번에 꽂혔던 대사들.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아프고

시작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싶어서 부대끼고

사랑이 끝날 때엔 그 끝이 같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사랑 때문에 달콤한 것은 언제일까."


"사람은, 추억만으로도 살 만하단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 리 없다.

먼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노력하면 될 줄 알았어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할까요."


"당신이 그랬잖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 잘 될까?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확신해?

우리 끝까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언젠가는 변하고 언제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파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면서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1. 이런 '연애조작단' 어디 없을까.

일단 아무 여자나 하나 '찍기'만 하(고 돈만 내)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준다는 거잖아. 뭐,

전지현이나 신민아는 안 된다는 거 같지만 그래도 굉장히 획기적인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할 때 어느 부분이 상대의 주의를 빼앗고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그런 불안하고 막막한

부분들을 든든히 받쳐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과 동선까지 파악해서 그야말로 '인연'을

만들어내는 거니까.


#2. A/S가 관건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첫인상을 잘 만들고 인상적으로 깊이 새겨지는 이벤트로 마음을 얻었다해도,

이후의 관계가 문제 아닐까. 계속해서 둘 사이의 친밀도를 유지하려면 꾸준한 관리가 절대로

필요할 텐데. 아니면 대부분의 상황에 대한 그녀의 '모범답안' 메뉴얼을 한 권 만들어서

제공하던가. 그렇지만 그들도 온갖 변수에 즉흥적으로 대응해야 할 뿐이니 그건 불가능할 듯.

연애가 고백으로 끝나는 원샷이벤트는 아니잖아. 아니 원샷인가? 그건 원나잇 아닌가.


#3. 평생 '가면'을 쓰고 지내야 하려나.

막말로 '조작단'이 평생관리를 해준다 해도 문제다. 언제까지 그렇게 그녀 맞춤형으로 '나'를

연기하며 지낼 수 있을까. 처음에야 그저 그녀의 마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기뻐서 내가 다 맞추겠네

평생 저항않고 노예처럼 받들겠네, 하겠지만 그게 어디 될 말인가 말이다. 연애는, 관계는,

여튼 맞출 수 있는 한 서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할 텐데. 그렇게 한발이라도 삐끗하면 그들의

관계는 끝장날 가능성이 더욱 클 텐데.


#4. 에라, 그냥 알아서 하던대로 하자.

헷갈리는 와중에, 그러고 보면 사실 조금 낮은 수준의 '연애조작단'은 이미 가동중이지 싶다.

초딩들이 활개치는 포털사이트는 제끼고라도, 연애감정 비슷한 것이 일어나는 상대가 생기면

머릿속에서 촤라락 돌아가는 과거의 경험들, 그리고 주변인들을 동원한 암호식별 및 행동전략.

뭐, 맞을 때도 있고 영 아니다 싶을 때도 있는 거지만, 어차피 연애란 게 하나의 블랙박스,

읽어보지 않은 책을 살며시 열어보는 재미 아니던가. 이쪽이나 그쪽이나.



뭐, 영화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영화보고 나니 저런 '조작단' 하나 있음 어떨까 싶어서

이런저런 잡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토끼해를 맞아 다짐했을 여러 약속들, 꼭 이뤄지길 바라는 여러 소원들, 모두 그 결이 다르고

색이 다른 이야기들이겠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로 돌아오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많이 사랑하고, 많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번 발렌타인데이를 핑계로 그런 마음을 채우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초콜렛을 (많이) 받는 나만의 노하우!'라는 Q&A를 겸한 초대장 배포!


● 일시 : 2011년 2월 11일(금) PM 3: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옛)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초콜렛을 많이 받는 나만의 노하우?"
              이 질문에 대한 본인의 답과 그 이유를 적어주세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22장


In Honor of

the hopeful bloggers of the Tistory


Ytzsche

(
http://ytzsch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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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Tistory.com

since Friday February 11, 2011



R.S.V.P
ytzsche.tistory.com






출장을 마치고, 뒷정리를 어영부영 해치우고, 이제야 부랴부랴 제5차 동시나눔에 나섭니다.

지난 글들을 보며 대체 이번이 몇 번째인가, 궁금한 맘이 일어 헤아려보다가 말았습니다. 나눔이라 이름붙은

건 9번, 10번 된다지만 숫자를 세기 시작하니 왠지 자꾸 숫자를 늘리고 싶은 맘이 불끈 동하는 거 있죠?

티스토리 초대장도 나눈 건 나눈 거니까 몇 번 더해넣고 싶고, 뭐 그런 게 사람 맘인지라 그냥 숫자는 잊기로

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포스팅 하나하나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거니까요^^


이번 나눔, 뭘 할까 한참 고심하였...다는 건 뻥이고, 이번엔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출장 가서 사온 하이퍼울트라 은하계급 초레어 아이템을 나누고자 합니다. 무려 "LOVE CANDY"!!

미처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관계로, 사무실 복사기에 넣고 컬러스캔했습니다. 컬러스캔하고 복사해서

몇가지 광고 문구를 넣어 보았습니다..ㅡㅡ;;


이게 뭐냐고 하실지 몰라도, 무려 연애세포재생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길도 이거 딱 두 알 먹고 나니 박정아랑 사귀었답니다. 강혜정? 타블로가 가루로 빻아서는 억지로 먹였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대륙 통일할 때 전사들이 모두 하루에 이거 한알씩 먹고 전투에 임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소위 "인생은 육십부터 연애중"이라는 모두 익히 알고 계신 황금언을 가능케 만든

기적의 캔디가 바로 "LOVE CANDY"인 것입니다.


왜 이래요, 러브 캔디 한 알 못 먹어서 평생 연애 한번 못 해본 사람들처럼.
연애세포가 뭔지는 다들 아실 거고, 언제까지 솔로로 살 텐가. 가을이고 날도 춥고 바람도 차가우니 요

"LOVE CANDY" 하나씩 물고 푸석푸석해진 연애세포 좀 생기발랄하게코롬 촉촉하게코롬 되살려 보시죠ㅎ
 
덤으로 제가 직접 만년필을 휘둘러 손편지도 써드립니다.(음..이건 좀 마이너스..일까나..ㅡㅡ; )


2009. 10. 24(토) 24:00 까지 댓글로 자신이 아는 가장 멋진 사랑의 멘트를 알려주시는 분 5분을 선정하여
 
'영혼을 위한 비아그라'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기적의 캔디, "LOVE CANDY"(정품, 수입승인번호:

식가583-183092)와 제 정성을 가득..쪼끔 담은 손편지 한 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동시나눔 진행중이신 분들

주관하시는 BlogIcon 민시오™

[블로그 동시 나눔 행사] 제5차 "OO 기념 동시 나눔 마당" 진행 - 제5차 가을맞이 기념 나눔 이벤트

BlogIcon Slimer
정신 없이 바쁜 기념으로 조금 나누어 봅니다.

BlogIcon 백마탄 초인™
10월에 터지는 행운을 잡아라~!! [제5차 블로그 나눔]

BlogIcon 초하(初夏)
◆ '제5차 동시 나눔' 마당에 동참할 이웃지기님들을 기다리며

BlogIcon 2Proo
2proo.net 블로그 5차 동시나눔 이벤트 - 방문자수 4백만명 돌파 이벤트

BlogIcon Design_N
이사 완료 기념, 동시 나눔! (5차)

등등 많은 분들이 있으니 한번 둘러보고 가셔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휴대폰도 되고 카메라도 된다는 '컨버전스', 혹은 엠피쓰리도 되고 USB도 된다는 '양수겸장'의 아이디어 상품은

종종 성공적이지 못하다. 어느 한 쪽의 기능이나마 제대로 살아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 다른 한 쪽의 기능이

물귀신처럼 우월한 쪽의 기능을 물고 늘어져 두 가지 기능 모두 어정쩡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읽기에 따라 연애소설이 될 수도, 미스터리소설이 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강조하는 건,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는

쉽게 와닿기는 힘들 듯 하다. 우선 미스터리를 구성하기 위해 치밀히 고안된 복선들과 상징들이 일본 '내수용'의

것들이어서 내 눈에는 별로 걸리지 않았다. 다만 A면, B면이라 이름붙은 두 챕터가 알고 보면 동시간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기록이라는 흐릿한 의심은 뒤로 가면서 더욱 짙어졌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하는 과거의 기억들은

나름 성공적으로 그간의 긴장을 날려버렸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참신하고 재치있는 구성의 묘미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연애소설의 측면에서는. 글쎄. 얼핏 생각하면 그 소설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아포리즘은 이건가 싶다.

인간에겐, 이 세상에는 절대란 건 없다고. 그걸 알게 되면 비로소 어른이라고 해도 좋다고.

이 사람이라면 평생 사랑할 수 있겠다는 느낌, 헤어진 뒤에도 그 이상으로 좋아하게 될 상대는 앞으로 평생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런 건 모두 어린 시절의 무지한 신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절대'란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연애가 바로 일종의 통과의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러브라고.


그런 거구나, 하면서 제길, 하면서 끄덕끄덕 하려다가 왠지 반감이 인다. 내가 품은, 그녀가 품은 애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당사자들도 알지 못하고 확신도 없는 게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믿을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얄팍하고 찰나같은 진실이란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고작 그정도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절대'라느니, '(성숙한) 어른의 사랑'이라느니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의 사랑'이라느니.

자존심을 다칠까 마음을 다 못주는 연약함, 상대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걸 견딜 수 없는 두려움, 그런 걸 왠지 다

컸다는 느낌을 강변하는 '어른의 사랑'이란 단어로 뭉개버리려는 건 아니고?


섹스 파트너를 감수하면서까지 그의 마음을 얻으려 했던 그녀,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라는 그녀의 한 마디.

그녀는 마치 열혈 기독교도처럼, 자신이 이미 알아버렸다고 생각한 그 황량하고 불가역한 '진실'이 남자에게도

유효할 것이라 이야기했지만..막상 그녀로 인해 황량해져버린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상처나 공허함을 타인에게도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얼마나 기다려야 다시 예전처럼 신선하고

건강한 핑크빛 하트로 회복되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어차피 살아간다는 게 계속해서 상처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면...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처투성이 마음으로 사랑을 다시 해야 한다면, 그게 '어른의 사랑'이란
 
단어의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이니시에이션 러브 - 6점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북스피어

어쩌다 보니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VIP시사회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VIP로 대접받고

싶어하고, 행사가 있으면 헤드테이블에 앉겠다고 난리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마치 그런 거다. 내가 뜬금없는

호텔 VIP로 대접받아 영화시사회에 초대받는 상황.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러고 보면 요새 영화는 전부 시사회에 초대받아 보고 있다. 요새 좀 그렇다.)


영화는, 사람 얼굴을 쉽게 외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다소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인물을 깔아두면서 시작했다.

그들의 사랑이 때론 막 깨어져 나갔고, 진행중이기도 하고, 혹은 피어나는가 싶더니 피시식 꺼져버리는 이야기들.

그런 짧막한 에피소드들이 서로 하나씩 단서들을 물면서 연결되고, 누군가의 불꽃같은 사랑은 또다른 누군가에겐

결혼생활을 송두리째 회의케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감정에 빠진다는 것은,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취사선택을 요구받았던 두 개의 알약 중 하나를 삼켜야

하는 바로 그 타이밍에 빠져드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생활, 지금까지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뭔가 낯설고 거슬리는

균열을 발견하고 다시는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다만 매트릭스의 알약과 사랑의 차이라면, 이번

'핑크 알약'은 한번 먹어서 될 일은 아니라는 거 아닐까.


소설 하나를 쓰는 기분으로 연애나 사랑을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저러한 감정의 변곡선의 위태위태한

궤적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어디서 언제쯤, 어떤 대사를 동원해 결말까지 써내리겠다는 다짐을 나 자신도 모르게

어느 시점에 했을 거라 자각했던 건, 늘 그 사랑이 지나고 난 바로 다음이었다. 그대로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해도,

사랑에 빠진 스스로의 감정을 즐기며, 그렇게 암묵적인 개요와 아웃라인에 맞춰 결말까지 숨가쁘게 한판 달리고

나선 문득 이건 자기애가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런 이기적인 '사랑'놀음을 깨고, 마치 영화에 나오는 알렉스가 지지에게 빠져버리듯 그렇게

최초의 '핑크 알약'을 맛봤던 그런 순간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퇴락하거나, 무의미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상투적인 사랑이야기라기엔, 그리고 상투적인 변곡선들이 넘나들며 결국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식의 뻔한

스토리라고 치부하기엔,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 커플(혹은 홀로 선 깨진 커플조차)의 모습이 이쁘다.

타인의 시각으로 보기엔 참 뻔하고 식상하고 닳고 낡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지금 사랑에 빠져 있고, 그 사랑이

자신을 사랑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유치하고 이기적인 수준이 아니라면, 그 둘만의 이야기는 참 충만하고

내밀한 달콤한 소근거림으로 가득할 거다.


마침 발렌타인 데이란 게 다가왔고 또다시 솔로들의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겠지만, 지금 사랑하고 있는

이들은 부디 자신들의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소근대기를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어딘가엔

"He's just not that into you"라는 살벌한 가능성이 으르렁대며 웅크리고 있을지라도, 그저 매순간 진심을 따라

행동한다면, 그리고 그 진심에 감응한 또다른 진심이 용기를 낸다면,


He can be absofuckinglutely that into you. 비록 언젠가 마침표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찍게 될지라도.


[술잔#1] 조각만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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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한쪽 끝에 서면, 다른쪽 끝이 보일만큼 자그마한 섬에 가보고 싶다.
내가 가보았던 섬들은 모두 너무도 크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김한길이 이야기했던가, 북극곰은 다른 곰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고. 평생 한번 만날지조차 기약없는 만남이므로. 그렇게, 조각만한 땅뙈기에서, 술잔과 오른손의 인연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술잔#2] 그녀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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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마주섬에서 시작된다. 설레이며 눈을 마주치고, 술잔과 오른손은 서로가 품고 있는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감정과 상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채 두손 떨구고 어설픈 사랑.



[술잔#3] 목소리 좀 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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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동하면 몸이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간다.
입밖으로 소리내어 사랑을 말하는 순간 손가락은 술잔에 매료되고 말았다. 당신도 날 보고 있었나요..우선, 술잔 당신의 매끄럽고 후끈한 목소리를 좀 들려줄래요. 우리 목소리부터 익혀나가는 건 어떨지. 손길이 닿으면 갸냘프지만 분명한 술잔의 응답. 말꼬리를 땋기 시작했다.



[술잔#4] 살짝 접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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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술잔은 위험하지 않다고, 냄새와 향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손을 뻗어 만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꿈이었던양 떠나버릴 것 같아..오른손은 술잔의 부피와 질감을 확인하기 시작하다. 이 세상에 있었구나, 조각만한 세상에서 병아리오줌만한 인연을 타고. 고마워서.



[술잔#5] 외전. 기어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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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오른 유리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니미럴 절라 높네.



[술잔#6] 니 이야기를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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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들..하루가 하루를 지랄같이 소모시켜도 기꺼이 온몸으로 귀가 되어주는 술잔이 있었기에. 서로의 사용설명서를 꼼꼼이 읽어내리며, 조금씩 마카로니 치즈의 맛을 음미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몇번씩의 구역질과 거부감을 인내한 후에야.



[술잔#7] 어깨 빌려 사람人의 뜻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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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휩쓸려 가라앉지 않으려면 댄스댄스댄스. 끊임없이 똑딱이며 빛바래가는 세상 속에서 오른손의 이정표는 술잔. 생기와 의욕을 말려버린채 기어코 삶의 뒷켠으로 내리눌러버리겠다는 시간을 비웃으며 어깨도 걸어보고. 가벼운 스텝으로 하루하루 생을 더해갈 수 있다면. 하루치 삶의 의미를 아침마다 떠올릴 수 있다면.



[술잔#8] 손잡고 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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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다 힘들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손잡고 가기도 하고.
지겨워서, 힘들어서, 살다가 지쳐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손내밀어 이끌어주기도 하는. 어차피 시작해 버린 인생, 최종 목표는 트루 러브라 외치는 술잔과 오른손. 그 치기어린 말과 행동은 한때..아름답다.



[술잔#9] 기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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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기. 허물어지듯 무너지더라도, 두팔가득 받아줄 술잔이 있다면 나중나중에 다시 일으켜세워볼 요량도 생기겠지. 세상이 무거워졌다고 느낄 때 대신 하늘을 빤히 노려봐주는 노랑색눈깔의 술잔.



[술잔#10] 좌우명은 올인(a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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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지 못하겠음 뛰어든다. 이리저리 재봐야 답도 안보이고 머리만 아플터. 맷돌에 장렬히 뛰어든 콩처럼 곤죽이 된채 설설 밀려나올지라도, 올인이다. 눈에 보이고 말이 섞이고 심장이 따라간다면. 오른손과 술잔의 이빨과 이빨이 부딪쳐 불똥이 튄다해도, 좌우명은 올인.



[술잔#11] 완전한 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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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길에 도착. 정점에 도달했으니 식도를 타고 내려갈 길만 남은 건가. 혹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속으로..? 완급의 조절, 호흡의 조절. 산낙지마냥 술잔에 엉겨붙은 오른손은 그저 좋댄다. 일생동안 흔치않을 황홀한 충만감. 손을 위한 술잔. 술잔을 위한 손.



[술잔#12]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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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충실한 게 술잔이라지만, 납득할 수 없는 오른손.
어디갔을까,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고 순식간에 말라붙은 술잔.



[술잔#13] 넌 왜..비어 버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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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비견될만한.
넌 왜 비어버렸니.
털썩, 절망한채 바닥에 무너져내리는 오른손.



[술잔#14] 술은 술이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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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만한 인연이 사그라들고, 잘록한 곡선과 짙은 향을 닮은 술잔을 다시금 어디선가 들어올리겠지만. 지나간 시간과 흘러간 이야기들은 사진첩에 봉인된 채 고이 '버려진다'. 찍히는 순간 죽어버리는 밴댕이같은 사진, 그리고 그속에 담긴 기억들처럼. 달그림자가 비치듯 그대의 마음에 잠시 비쳤던 것 뿐이니..슬퍼할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어디선가 오른손의 이야기와 표정을 떠올려 준다면..

술은 눈코입으로 마시고 마음으로 마신다. 그리고 무엇보다...술과 술 사이, 그 비워진 잔 또한 마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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