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3, 지리산 둘레길(윤성의)-



* 2016. 7. 13(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9.9km))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지리산 둘레길입니다. 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 전남, 경남을 아우르며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 장거리 도보길로 현재 22코스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얼마 예능 프로그램에 그중 3코스가 소개되고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긴 했지만, 굳건하게 버틴 지리산 자락 아래 많은 마을길과 샛길들이 여전히 보석처럼 숨어있는 곳입니다. 저는 틈이 때마다 조금씩 아껴먹듯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요, 오늘은 1코스와 2코스를 중심으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중간에 있는 행정마을에서 맞는 아침. 예보대로 종일 비가 모양인지 꽤나 꾸물꾸물한 날씨였습니다.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습니다. 마을의 포장도로를 금세 벗어나 밟기 시작한 흙길,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부슬비에 젖었습니다.

검고 부드러운 흙바닥에 두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피어오르는 냄새, 흙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요. 어쩌면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황금연휴를 맞아서 불쑥 잡은 지리산행에 흔쾌히 함께 군대 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을 함께 타박타박 쌓아오며 용케 잘도 뭉쳐 다녔던 같습니다.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고즈넉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민가로 접어들면 사람 사는 풍경이 소소하게 펼쳐집니다. 골목길에 버티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선명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파스텔톤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시멘트 벽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았습니다. 색이 바랜 오래된 간판과 자전거들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 나간다거나 정복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가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천리행군이나 국토대장정도 아니구요. 그보다 중요한 , 어느 장소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오감을 온통 활짝 열어둔 , 발바닥에 밟히는 흙과 나뭇가지들을 온전히 느끼는 , 바로 그게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섬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다. 제주도처럼 너무 커서 육지에 사는 것과 별반 느낌이 다름없는 거 말고-제주도가 


섬이라면 왠지 호주도 섬이고 유라시아 대륙도 섬이라고 해도 별로 억지스럽지 않은 것 같달까-섬 끝에 서면 섬의 


반대편 끝이 보이는 그런 작은 섬에 머물고 싶단 생각. 울릉도가 그랬고 그보다 더 작게는 가파도가 그랬으며


승봉도 역시 그런 섬이었던 셈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자월도, 이작도를 거쳐 승봉도까지 닿는 뱃길은 대충 한시간. 새로 제작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


구명조끼 입는 방법에 대한 동영상을 관람하고 잠시 바다구경을 하고 나면 금세 닿는 거리지만, 바다를 사이에 둔


덕분에 분위기며 풍경이 확 다르다. 


피서철을 지난 때문이겠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여행자들, 그저 곳곳에 점점이 박힌 듯한 현지 주민분들.


숙소는 되는대로 도착해서 구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왔던 터라 무작정 선착장에서부터 바다를 따라 걸었다. 


내키는 풍광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바닷가를 앞에 품은 곳에


맘씨 좋은 아저씨가 살고 계신 민박집이 있었다.


(라면에 소주를 함께 기울이며 이런저런 좋은 말씀 해주신 아저씨, 감사합니다~*)



내가 도착한 날 아침에 들였다던 따끈한 강아지. 어미품에서 떨어진 충격이 커서인지 엄청나게 낑낑거리던


녀석의 이름은 개똥이.



그리고 나비.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던 순둥이 개냥이의 이름치곤 다소 새초롬하다지만,


눈빛의 요염함이 뒤지지 않으니 인정.



민박집 앞마당의 낡고 닳은 파라솔, 저 그늘에 의지해서 책도 읽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참 좋았던 곳.


그리고 설렁설렁 돌아봐도 세네시간이면 한바퀴를 돌아본다는 승봉도 산책에 나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인 화장실.


남자화장실은 도약하는 돌고래, 여자화장실은 해바라기(?) 그림을 붙여둔 게 뭔가 의미심장하다.



확실히 서해바다는 갯벌이다. 물이 쓸려나간 전장에 남은 흔적과 잔해를 헤집고 다니는 자잘한 생명체들.


그 와중에는 제법 우아하게 뒤뚱거리며 이런 자국을 남기는 녀석들도 있고.




갯벌길을 따라 한바퀴 돌기에는 중간중간 바닷물로 끊긴 구간도 있고 제법 난코스여서 다시 섬으로 상륙. 



승봉도 삼림욕장 안내도. 피톤치드를 듬뿍담뿍 흡수하실 수 있으시단다.



무성한 녹음, 그리고 잘 닦였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찻길.




김인지 해초인지 뭔가 양식을 위한 구조물이 설치된 해변가를 따라 섬의 끄트머리, 나무가 많이 나서 목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섬으로 설렁설렁.



나무데크로 길도 잘 갖춰져 있고, 걷는 와중에 쉼없이 우측으로 지나는 거대한 고래같은 화물선들 보는 재미도 쏠쏠.




목섬 역시 썰물 때는 이렇게 육지랑 이어진 채, 밀물 때나 조금 바닷물로 가로막혀서 섬다운 모양새가 되는 곳이다.


조그마한 섬이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길을 벗어나 아무렇게나 섬의 반대편으로 접어든 참인데..숲이 우거지고


풀떼기가 무성하게 자란 곳에는 역시 함부로 발딛는 게 아니다. 미아되서 해경에 신고할 뻔.


이름붙여진 돌들에서 그 이름에 걸맞는 형상을 찾아내기란 또다른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다. 차라리 그냥 내멋대로


딱 보여진 형상으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주는 게 좀더 유쾌한 수수께끼일 거 같지만. 대체 촛대바위가 무슨 돌에 


붙은 이름인지 몰라 사방을 헤매다가 포기, 내눈엔 그저 황량하고 거친 돌들 뿐인데. 


굳이 이름붙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 솔직한 심정이겠다.






선재도 옆에 바싹 붙어있어서일까, 측도라는 이름의 섬. 바다가 빠지고 나서 거칠한 자갈길이 드러나고 나면


전봇대가 측도로 내달리고 그 옆으론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게 된다. 



측도까지 덜컹덜컹 내달린 길이 끝나고, 어디든 차를 세울 만한 곳에 세워두고는 타이어랑 휠베이스를 챙겨보게 된다.


천천히 달린다고 달렸는데도 워낙 모가 날카롭게 선 돌들이 사방으로 튀던 길이었던지라.



조그마한 섬이니 설렁설렁 한바퀴 돌아보는 걸로. 이렇게 담쟁이가 무성하게 건물을 덮고 있기도 했다.


파스텔톤으로 이쁘게 탈색된 슬레이트 지붕. 


윤기나는 새빨간 색으로 물든 고추는 햇살 아래 잘만 말라가고.


멀찍이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언덕 위의 집에서는 자잘한 생선을 이렇게 말리는가 하면.


어느집 우체통은 바닷바람을 잔뜩 머금고 이렇게 벌겋게 녹슬어버렸다.



아직 해가 뜨겁던 9월의 햇살을 고스란히 맞고선 허수아비는 덥지도 않은지 깜장색 패딩점퍼를 둘렀다.



탈춤의 춤사위를 시전하는 듯한 몸짓의 허수아비. 금세라도 참새떼들을 쫓아낼 듯한 운동감이 좋다.


서해쪽의 섬은 아무래도 여름철 한철 장사려나. 살짝 피서철을 지났을 뿐인데도 사람 한명 볼 수 없는 풍경에


새빨갛고 굵은 페인트칠로 씌여진 간판이 괜시리 민망하다.



서해의 특징은 역시, 물이 빠진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정취랄까. 황량하고 쓸쓸하고. 그런 느낌이 담뿍이다.



돌아나오는 길, 측도의 가장자리에서 선재도를 향해 섰다.


멀찍이 인천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들도 보이고.


선재도에 다시 오르는 찰나에 잠시 차를 세우고 기념샷.




언제였더라, 어느 여름에 찾았던 수목원 제이드가든에서의 몇 컷들. 추석이 지나고 어느새 서늘해진 날씨 때문인지


사진 속의 왕성한 초록빛이 문득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특히 이런 진초록빛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느끼는 바람이라거나 그 은근한 냉기라거나.






꼭 이름난 곳, 유명한 곳을 따라 다니는 것말고도 재미난 일들은 많다. 동네 마실삼아 설렁설렁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풍경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으니. 낯선 눈으로만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1만 있다면.


특별한 뭔가가 있지는 않지만, 그냥 짠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천천히 낡아가는 마을의 살아있는 풍경들.


인공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너머에는 야트막한 울타리, 그리고 바로 짙푸른 남해 바다.


몇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샛노란 스쿨버스 두대가 얌전히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논밭 한켠에는 이렇게 생활하수가 흘러내리는 '싱크홀'.


그리고 이름과 외관의 이 아이러니도 참, 온통 낡고 헐어보이는 아주아주 오래된 새마을농업창고. 


그리고 이 오랜, 담쟁이조각이 눌어붙어있고 온통 붉은 녹물이 흘러내리는 철문짝.


언제 마지막으로 열렸을까 싶도록 오랜시간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듯한 철문이었다. 


그리고 등이 굽은 자전거 라이더.


굴양식을 위해 바다속에 걸어두는 조개껍데기들. 여기에 매달려 자라는 건가.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쪽에서, 이 나무 울타리는 왜 때문에 설치해 둔 건지 모르겠지만 새들의 좋은 쉼터가 된 듯.






바닷가 아스팔트길은 온통 갈라터지고 깨져있기 일쑤, 그 틈새에 머리박고 자라난 물색없는 이파리들.


바닷가를 떠나 크게 우회해서 마을로 돌아가는 길. 각기 다르지만 오묘하게 비슷하게 바랜 빛깔의 슬레이트로


누덕누덕 기워진 지붕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벌겋고 퍼런 차양이 갈기갈기 찢겨있는 어느 헛간.



그나저나 사람 한명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동네다. 아까 배 떠나갈 때 두어분의 어르신이 타시는 거 보고 계속 혼자.


이 가로등은 언제 이렇게 기세가 꺽여서는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걸까. 지난 태풍쯤이었으려나.




남해군의 맨 아랫곁, 남해 바다를 향해 싹둑 잘린 느낌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토막토막 논을 일군 오랜 흔적. 다랭이논.



한창때의 짙푸른 녹음이 그악스런 산복판이나 계단처럼 차곡차곡 내려오는 논밭이나 시퍼렇기는 매한가지.


구름다리 두개가 듬성하니 지나가며 바닷가의 날카로운 바위들을 가로지른다.


다랭이논조차 만들 엄두를 낼 수 없도록 깍아지른 바닷가 가파른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바다 저아래 수천년 수만년 파도에 시달렸을 바윗덩이는 평생 땅을 파먹고 사느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했던


할배의 손등같기도 하고.



한발 멀찍이서 보면 온통 빽빽하게 무성한 초록 지천이더니 가까이 다가서면 이런 산책로와 논두렁길이 숨어있다.


다랭이논이 산의 사면을 따라 슬금슬금 올라가는 모습.




역시 여름이다. 사람들이 꽤나 오다녔을 텐데도 서슬이 퍼런 잎사귀는 손바닥보다도 크게 자라나 길을 가렸다.



해남 땅끝마을에 비해서는 조금 북쪽에 위치해있다지만, 느낌으로는 거기 못지않다. 땅끝의 느낌.







남해 다랭이마을을 돌아보는 길은 '남해바래길'의 일부로 다랭이지겟길 코스라고 한다. 남해의 수려한 풍광을 한켠에


두고 반대로는 산비탈을 깍아만든 다랭이논을 지나볼 수 있는 트레킹코스.

 

홍콩섬 남쪽에 닻을 내린 배에서 맥주와 버니니를 마시던 우리는, 적당한 취기에 따끈한 햇살이 뒤를 밀어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요트의 본넷 위로 기어올라가 바다를 향해 뛰어내리고 말았다. 어찌나 멋지던지.

 

아침 댓바람부터 코즈웨이베이 앞에 집결하기로 했다. 프라이빗 요트들은 여기에 정박할 수 있다고 했던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요트 안에 탑승하기 시작하고, 선장님은 작대기로 항구를 밀어내며 배를 바다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스타페리가 진부하게 왕복할 뿐이던 바다에 횡으로 큰 궤적을 그리며 홍콩섬을 따라 요트가 달리기 시작.

 

도시를 벗어나 좀 초록초록한 공간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지만, 여기도 고층빌딩이 불쑥불쑥 자라난 건

 

서울이나 비슷하구나 싶다. 뜬금없이 섬 한가운데서 버섯처럼 자라나서는 몇 채가 서로 얼굴을 맞댔다.

 

 

 

 

한참을 달리고 살짝 홍콩섬의 해안선을 따라 구부러졌다 싶었다. 제법 들고 나는 해안선이 재미있는 리듬감을 준다.

 

그리고 정박. 저 너머에는 제법 사이즈가 되어 보이는 88열차 코스가 섬위에 떡하니 얹혔고, 그 앞 바다에는 요트들이.

 

 

요트를 타고 즐길 수 있는 게 단순히 달리는 것 뿐만이 아니구나 싶었다. 한군데 머물며 둥싯둥싯 파도를 느끼고.

 

잔뜩 쟁여간 맥주니 버니니니 간단한 스낵들이니 먹고 마시고. 그러다가 간단한 쿠킹 코스도 함께 하고.

 

 

여차하면 바다로 뛰어들어서 수영도 하고, 조금 무리하면 이 아저씨처럼 해안선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다들 그저 즐거운 어느 여름날의 한때. 요트를 본거지로 해서 사방에서 삼삼오오 모여서는 웃고 떠드는 그런 분위기.

 

그렇게 한량처럼 보내는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네댓시간을 유유자적하다가 어느새 코끝은 빨갛고 타고

 

바닷물에 젖었던 몸에는 소금 결정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홍콩섬 남부의 어느 항구에 배를 대고 상륙 준비.

 

 

 

이렇게도 많은 요트가 정연하게 마치 주차장에 차를 대놓은 것처럼 반듯반듯 세워져있는 모습이라니.

 

여전히 요트 위에서 널부러진 채 망중한을 즐기던 동료 하나.

 

조그마한 배로 갈아타서 항구로 상륙을 해야 한다. 요트는 여기에 반듯하게 주차할 예정.

 

 

홍콩섬 상륙 직전. 이렇게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에 이날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라면 배위에서 살겠고만..

 

 

그리고 부두에 어느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는 창고. 아마 제각기 쓰임이 있겠지만 전혀 과문한 바 잡동사니처럼 보일 뿐.

 

요트 위에 있을 때는 그래도 이렇게 위압적인 느낌은 아니었는데. 조그마한 항구와 그 앞의 조그마한 부품점을

 

오만하게 눈을 치뜨고 내려보는 거인같이 고층 아파트들이 어깨를 맞댔다.

 

 

이제 여기서 각자 편한대로 다시 호텔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근처에서 좀더 놀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비슷한 행선을 가진 사람들끼리 택시를 하나씩 불러타고, 아닌 사람들은 조금 걷거나 근처의 바에서 낮술을 푸겠다며.

 

 

 

 

 

모슬포여객선터미널, 새롭게 단장중이던 터미널 앞 건물에는 철썩철썩 파도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여객선으로 대략 20-30분 정도면 금세 제주도를 떠나 가파도에 가닿는다. 산방산과 송악산이 바다너머 보이고.

 

  

누군지 참 공들여 쌓아둔 돌탑.

 

올레길 코스를 가리키는 파란색 화살표가 오두막에 단단히 박혔다.

 

 

 

새파랗던 하늘, 시퍼렇던 바다, 초록초록하던 가파도의 해안길.

 

 

 

 

선인장이 드문드문 자라는 식생도 조금 이질적으로 보이고.

 

풀숲 위로 스물스물 낮은 포복하듯 기어가는 하얀 구름, 파란 배경 탓에 바로 눈에 띈다.

 

 

 

가파도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 제사를 지낸다는 제사단.

 

그리고 사람들이 앉아 쉬었다 가는 팔각 정자의 시원한 대청마루.

 

 

 

 

 

온통 동글동글한 몽돌로 치장한 가파도 마을의 어느 민박집.

 

올레길의 또다른 상징, 파랑색 조랑말 모양의 표지판.

 

아무래도 이런 조그마한 섬에선 급한대로 이렇게 쓸 일이다. 나무판자에 (아마도) 락카로, 급커브.

 

 

 

해안도로랄까, 산책로와 바다의 경계에는 씨알굵은 바윗덩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단단히 박혔다.

 

 

그리고 가파도 민박식당. 이곳의 정식은 갈 때마다 참, 신기하고도 맛난 반찬들로 가득하다.

 

어느 갈래길. 제주도의 흔한 현무암 돌멩이들로 쌓아올린 돌담들의 실루엣이 미묘하다.

 

 

 

단단히 묶여있고 싶었던 거다. 이리저리 묶고 조여서는, 붉게 녹슬어 거죽은 부서져내릴지언정 철심에 기대고 싶었을 거다.

 

 

가파도를 해안선따라 한바퀴 걸어서 돌아보는 시간은 고작해야 두어시간, 중간중간 쉬고 사진찍는다 해도 그정도.

 

 

 

풍력발전기가 두 기. 거대한 바람개비처럼 윙윙 돌아가는 모양새가 한마리 학처럼 우아하기도 하고.

 

 

구멍이 숭숭한 돌들이 어찌나 많은지, 처음엔 신기한 수석보듯 보다가 나중엔 그저 범상해 보이기만 하더라는.

 

와중에 만난 하얀 강아지 한마리.

 

그리고 이 뜬금없는 시멘트 구조물은, 바다를 향한 미끄럼틀.

 

가파도를 닮아 담백하고 조용한 할머니 한분이 천천히 지나가며 슬쩍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제주도와 가파도를 오가는 배의 선장님은 때로는 피자배달부가 되기도 하더라는.

 

 

 

 

 

 

 

 

연꽃이 뾰족하니 솟아오르고, 둥긋둥긋한 꽃잎 위로 나비가 깃을 나리던 곳. 색소폰 소리 짙게 울리는 두물머리 옆의 세미원이다.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잇는 배다리, 배를 둥둥 엮어 만든 다리라 하여 배다리라 하였던가. 제법 센스넘치는 안내문이 각별하다.

 

 

 

 

이렇게 수십척의 배를 매어 다리를 만드는 건 아마도 높은 분의 행차를 위해서렸다, 색색의 깃발을 세워둔 것만 해도 알만 하다.

 

 

트로트삘 충만한 색소폰 소리는 사진에 담기지 않았지만, 왠지 두물머리의 풍경에는 자연스레 연주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

 

 

 

 해운대에서 동백섬으로 들어서기 전, 벌써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 5월초의 해수욕장이 눈이 부시다.

 

 

 이전에 왔을 때는 이렇게 나무데크가 잘 갖춰졌던 거 같지 않은데, 동백섬을 한바퀴 빙 둘러 걷기 편한 길이 생겼다.

 

 

 

해운대 백사장이 멀찍이 보이고, 이제 사람들은 개미만한 점 모양으로 추상화되어 버린 거리.

 

 

 등대 앞에는 먼옛날 이 곳을 '해운대'라 이르며 큰 바위에 한자로 새겨놨다는, 그렇지만 지금은 다 마모되어 버린 채

 

흔적만 남은 글씨가 몇 자 있고, 멀찍이 대마도와 오륙도가 보인다는 곳을 향한 망원경이 몇 대.

 

 

 그리고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누리마루..였던가. 멀찍이 광안대교가 보이고, 앞에는 시퍼런 부산 앞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인 왕궁, 그 거대한 정사각형 형태의 성벽 외곽으로 한바퀴를 돌고 나니 이제는 안으로 돌아다녀볼 차례.

 

 

 

반질거리는 대리석 바닥은 근 이천년 가까이 숱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쓸려 광택에 광택을 더했음이 틀림없고, 온통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들의 위로는 그 오랜 세월의 현현인 것처럼 두텁고 육중한 벽돌들이 벽을 이루고 공간을 쌓았다.

 

 

 

두터운 외벽과 내벽 사이의 공간, 이 빈 틈새로 수백년이 지난 폐허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거처를 구하고, 그렇게 잊혀졌던 곳이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스플릿과 이 왕궁이 주목을 받은 건 1차 세계대전 시기 항구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라고.

 

 

여전히 골목은 말그대로 미로와 같고, 곳곳에서 막다른 길 앞에 나를 멈춰세우지만, 그렇게 잠시 잦아든 발걸음 앞에 놓인 게

 

이런 비감하면서도 다정한 풍경이라면. 저런 대리석 받침은 대체 몇백년을 이곳에 버티고 있던 걸까. 누가 저리로 옮겨놨을까.

 

 

빼곡히 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과 골목 사이를 뱅글뱅글 감아나가다 보면 그래도 곳곳에서 확 숨이 트이는 광장들을 만나게 된다.

 

동상 너머로 온통 벽을 지탱하기 위한 조임쇠들이 벽면 곳곳에 박혀 있는 오랜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저건 무슨 행정관청이었으려나.

 

 

 

 

광장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골목들을 따라 둥둥 흘러나온 사람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건물들과 대리석에 눈이 부신다.

 

 

 

 

 

 

스플릿의 수산시장, 바다에 바로 접한 대로의 반질거리는 대리석 위로 생선 비린내가 바다향기를 짙게 풍긴다.

 

 

이 곳에 풍부한 해산물들, 그 중에서도 집게 달린 이 새우로 만든 요리들은 뭘 먹어도 맛있었던 듯.

 

 

바다를 옆으로 끼고 걸어가는 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거대한 옛 궁전에 기대어 지어진 까페와 주택들을 바라보며

 

바다냄새 나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던 아저씨는 잠시 그늘로 숨어들었다.

 

 

이 곳에 보이는 벽들은 모두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의 남쪽 벽면이다. 폐허로 남겨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를 몇백년.

 

 

이제는 이런 쌍둥이 꼬맹이들도 보라색 옷 때깔 맞춰입고 찾아올만큼 유명한 유적지로 남았다.

 

 

거의 이천년이 다 되어가는 로마황제의 거대한 개인 궁전, 한참을 버려졌던 이곳엔 이제 유리창도 에어컨도 끼워맞췄다.

 

 

성의 동쪽 외벽에 기대어 펼쳐진 재래시장에선 올리브유니 꿀이니 채소니 과일이니 온갖 것들이 주섬주섬 펼쳐졌고.

 

샘플 하나씩을 뚜껑에 달고서 갖가지의 크기와 색깔과 모양을 뽐내는 단추들.

 

꽃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했다. 알고 보니 꽃 위에다가 락카를 뿌린 건지 어쩐 건지 퍼렇게 뻘겋고.

 

비닐로 몸을 둘둘 대충 감아둔 돼지 서너마리가 통으로 매달린 정육점.

 

 

 

그리고 머리까지 고스란히 붙은 채 생전의 모습과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닭고기들. 이건 설마..채식을 유도하는 고도의 장치?

 

 

색색의 바지들과, 과하게 가슴과 엉덩이를 튕겨낸 마네킹들. 허리에서 에구구 소리나는 것만 같다.

 

핏물처럼 붉은 과즙이 흐르던 블러드 오렌지.

 

 

그리고 다른 곳보다 좀더 많이 허물어진 성벽을 바라보고 선 성당 하나.

 

예수의 12길이 굉장히 강렬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진 인상적인 모습들을 한바퀴 둘러보니 마음이 써늘해졌다.

 

아마도 옆가게로 수다떨러간 주인아주머니 대신 노상의 꽃가게를 지키고 선 고양이 두마리. 한마리는 벌써 지겨운지 기지개다.

 

 

 

네모 반듯한 왕궁의 외벽을 따라 바깥 풍경을 한 바퀴, 벌써 남문과 동문을 지나 북문으로 향하는 참이다.

 

 

그리고 북문에서 만난 마법사 같은 차림의 거대한 동상 하나. 10세기 크로아티아의 주교였다는 닌스키의 동상이라나.

 

 

라틴어 대신 크로아티아 어로 예배를 보도록 했던 그의 의도에는 무심한 관광객들은, 문지르면 복이 온다는 그의

 

엄지발가락만 반질반질거리도록 쓰다듬고 떠나버렸나 보다.

 

스플릿의 구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왕궁을 굽어볼 만큼 거대한 그의 모습, 그리고 저 역동적인 어깨와 손가락 놀림은

 

왠지 모를 위압감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표정도 너무 진지해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벽을 따라 돌면서 발견했던 가장 흥미롭던 장면 하나는 이 클래식 포크스바겐.

 

양쪽 어깨에 높은 건물을 올려둔 좁다란 골목 안에 짙게 배인 그늘을 벗어나던 샛노란 차로 향한 카메라를 의식했다.

 

문득 멈추더니, 다시 슬슬 뒤로 후진해서는 촬영할 준비를 하라며 손짓을 한다. 빵 터져서 웃고는 오케이, 손짓하니

 

살금살금, 대리석을 즈려밟으며 한바퀴 한바퀴 우아한 워킹. 양팔을 쭉 뻗어 하트 한번 그려줬더니 그쪽 역시 빵 터졌다.

 

여름에 갔던 제이드가든, 어이없게도 들고 갔던 카메라 배터리가 불과 삼십여분만에 엥꼬 나는 바람에 허우적대다가

 

아쉽게 돌아와버렸지만, 그래도 몇 장이나마 찍은 사진이라도 올려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여느 수목원과는 달리 나름 유럽 스타일의 정원을 만든다고 했던가, 꽤나 아기자기하고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어떻게 보면 골프장 조경만큼이나 신경써서 만들어진 구릉이나 평지, 그리고 연못들의 배치들이다.

 

 

산들이 죽죽 다리를 뻗은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골짜기 안쪽 깊숙이 이어지는 제이드 가든의 산책로.

 

 

슬슬 따라 올라가다가 제이드 가든의 끄트머리, 하늘 정원이던가, 올라왔던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산바람이 시원했던.

 

 

이런 느낌의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지던 곳.

 

 

 

내려오는 길, 간당거리는 배터리를 흔들어가며 쥐어짜낸 마지막 몇 장. 이쁜 꽃들이 곳곳에 무더기무더기 피어있더라는.

 

 

흐벅지게 피어난 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벌들, 가끔 불쑥 들이밀어진 카메라에 놀란 듯 윙윙거리며 성을 내기도 하던.

 

 

빨리 따뜻한 여름이 돌아오면 좋겠다..따뜻한 햇살 아래 푸릇푸릇한 풀빛으로 싱싱한 풍경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니 원.

 

 

 

 

 

정동진 앞바다, 7월말 햇살이 뜨겁던 그 때는 마냥 시원하게 보이던 풍경이었는데 어느새 살풋 냉기가 전해오는 패러세일링.

 

 정동진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썬크루즈호텔에서 바라본 정동진 앞 바다.

 

 

 한철의 한주일 그렇게 그악스럽게 울어대며 자손을 남기려 애쓰던 녀석들은 이제 모두 흙으로 돌아갔을 시간.

 

절대 만나지 못하는 두 개의 평행선, 이라 흔히들 말해지는 철도길이 이리저리 휘며 겹쳐지고 관통할 때.

 

 

 저런 요트를 타고 둥싯둥싯 푸른 동해바다 위를 떠다니며 노니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거 같다. 조금은 파도가 높아도 좋을 텐데.

 

 

 

정동진 앞바다, 시꺼먼 구름처럼 바닷가바위를 온통 뒤덮은 갯벌레나 따개비처럼 자글자글한 파라솔 너머 늠름한 요트. 

 

 정동진 해돋이 열차가 들어오는 건가, 알록달록 원색으로 칠해진 통유리창 열차가 시원시원하다.

 

그저 들어가 보려고만 해도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 하는 정동진역사, 야트막한 천장에 모기향처럼 대롱거리던 피노키오.

 

 

 모래밭에 드문드문 꽂혀 있는 파라솔들이 옷깃을 잔뜩 그러쥐고 꽁꽁 여몄다.

 

 

 

 

 

싱겁게도 길게만 자라난 잔디 잎새들은 초록빛을 잔뜩 머금었고,

 

어느새 노랗게 바래버린 채 툭 떨궈진 잎새 하나를 품을 만큼은 속이 깊어졌나 보다.

 

 

누군가의 상처입은 사랑이 노랗게 곪은 채 저렇게 툭. 떨어지는 계절, 가을.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저런 엉성한 잔디 쿠션이나마 함께하기를.

 

 

 

@ 무악재 안산.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울릉도 평리의 예림원(a.k.a. 문자조각공원)을 걸어나와서 다시 북쪽 해변을 따라 울릉도 서안으로 향하는 길.

 

둥글둥글 다듬어진 자갈들이 차르르륵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파도랑 얼싸안고 나뒹구는 해변.

 

 

 

시멘트 옹벽 아래까지 도톨도톨한 돌기가 선연한 분홍빛 혀를 빼물고는 온통 흐드러진 꽃무더기.

 

그러고 보면, 바다로 향한 등대의 왼쪽은 꼭 빨간색, 오른쪽은 꼭 하얀색으로 반짝거린다. 일종의 약속인 듯 하다.

 

 

현포항에 들어서는 길목, 방파제가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있는 야트막한 내해에 소심하게 뻗어나간 구름다리.

 

뒷꿈치가 완전히 아작이 나서, 게다가 울릉도의 길가엔 편의점도 슈퍼도 흔치 않아서, 급기야 현포항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경찰서에 무작정 들어갔다. 밴드랑 기타 응급약상자가 있을까 했는데, 없다며 근처의 주민분께

 

밴드를 얻어주신 경찰 아저씨를 기다리다 한 컷. 걸음이 빠른 경찰 아저씨가 화면 한구석에 잡혔다.

 

 

맨발도 답이 아니고, 밴드를 발라봐야 이미 뒷꿈치는 피칠갑을 했고. 잠시 암담해하며 쉬어가던 참. 주머니에 꽂았던

 

핸드폰은 그냥 신발에 발 대신 우겨넣고 노래를 틀어버렸다. 신발이 그대로 주크박스로 변신해 버린 참이다.

 

그래도 돌아보면,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잠시 앉아 쉬어가던 현포 전망대. 멀찍이 지나쳐온 코끼리바위니 노인봉이니, 송곳니처럼 삐쭉 튀어나온 송곳산도 보인다.

 

그리고 울릉도의 밭떼기에서 자주 보이던 저 조그마한 모노레일. 아니지, 레일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니 '모노'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경사가 심한 비탈을 일구고 가꿔야 하니 이동네엔 저게 필수품일 듯.

 

울릉도는 크게 북면, 서면, 그리고 울릉읍으로 나뉜다. 울릉도 북쪽 해변의 서쪽끝과 동쪽끝을 꼭지점으로 한 역삼각형

 

모양으로 울릉도 북쪽을 차지한 북면의 끄트머리를 지나는 참. 돈키호테를 기다리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꽂힌 곳이다.

 

 

현포와 태하 사이, 그러니까 울릉도의 북면과 서면을 가로지르는 고갯길은 구불구불 꼬부랑길.

 

슬슬 짙푸른 군청빛의 바다가 하늘로 기어오르고.

 

조그마한 초등학교 분교 앞 운동장 가득 뭔가를 널어 말리는 계신 아주머니들을 지나.(아마도 울릉도 특산나물 '부지깽이'인 듯)

 

이처럼 씁쓸하고 잔인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성하신당으로 도착.

 

 

나이 어린 동남동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백골이 되기까지 사람을 원망했을까, 울릉도 앞 험한 바다를 원망했을까.

 

 

 

 

 

육칠년만인가, 참 오랜만에 다시 찾은 추암 해수욕장. 그리고 추암 촛대바위.

 

추암의 해돋이를 보겠다고 부지런히 달렸지만, 아쉽게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어슴푸레한 빛의 띠만 보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했던 건, 마치 거대한 대포를 쉼없이 쏘아올리듯 온몸을 진동시키는 삼엄하고 우람한 파도소리.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울타리도 꾸며놓고 망원경도 가져다 놓고 그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람 한명 찾기 힘든 추암의 해안 산책로. 해는 구름 뒤에서 스물스물 떠오르고 있겠지만 바닷바람은 살을 에인다.

 

 

 

 

아스라히 보이는 배 한 척. 그리고 수만년 파도에 으깨지면서도 여전히 뾰족 솟은 돌부리 하나.

 

 

이 곳의 풍경을 한층 더 삼엄하게 만드는 건 여느 해안선에서처럼 바다를 온통 가로막고 선 철책들.

 

 

추암 촛대바위 들어가는 길목,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부리며 서 있는 돌멩이들. 위태로운 소원들.

 

추암 촛대바위 들어가는 길의 낡은 집 한 채는, 아마도 칠팔년전에도 눈에 담아놨던 풍경이다.

 

 

 

 

파도에 떠밀려온 온갖 쓰레기들, 외적을 막아낼 철망엔 쓰레기만 걸렸다.

 

 

철망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온통 시뻘겋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곳. 이제 60년이 되어가는 살풍경이다.

 

 

 

 

추암 촛대바위, 해수욕장 옆에 조각공원. 얼마나 관리를 안 하고 있는지 잡초가 보풀보풀.

 

 

좀 뜬금없다 싶은 조각공원 너머로 파랑주황 슬레이트 지붕이 이어지고 그 너머 수평선이다.

 

 

 

추암의 일출을 보러 가는 화살표 따라 노니는 청둥오리들의 물결.

 

 

 

추암역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던가.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기차역은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역사 건물도 없이 그저 철로 옆에 플랫폼 하나가 전부인 추암역. 내려다보니 주차장에 글자가 떠오른다. 공허한 문구.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안가를 거닐고 촛대바위에 눈길을 준 후, 해가 완전히 떴지만 결국 해돋이를 보는 건

 

실패했음을 확인하고 묵호로 달려가기로 했다. 울릉도로 떠나는 배를 타기 전 해돋이를 보려 왔던 참이었으니.

 

 

추암 해수욕장에 접근하려면 이렇게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굴다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옆에 사람이라도 걸어지난다 하면 꼼짝없이 조심운전해야 하는, 그런 좁고 어둡고 짧은 굴다리 터널.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외관 탐구. 료칸에 들어서면서 꼭꼭 눈에 담기던 풍경을 좇아 밖으로 나왔더니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같은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게 더욱 큰 재미였던.

 

 

료칸의 입구. 입구에서부터 온통 울긋불긋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입구에 놓인 차임벨. 여느 술집이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벨에도 온통 꽃무늬다.

 

유후인에서 실감했던 '원피스'의 위력. 료칸에도, 유후인 거리에도 온통 원피스!

 

 

 

풀섶에 숨어서 갸웃이 고개를 내민 고양이 인형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유후인몰, 조그마한 세로형 간판 양 옆에 서서 손님을 반기는 마냥 해피한 얼굴의 인형 두개.

 

 

이건 사실 유후인몰이 아니라 이전에 들렀던 숙소에서 담은 풍경. 비슷한 료칸의 풍경이다.

 

 객실문마다 별자리를 따서 붙인 이름, 그리고 나무를 파서 만든 호실 명패.

 

 

1층에 있던 레스토랑의 입구. 이 곳에서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고.

 

 

남녀탕이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에 발에 채일만큼 많이 널렸던 아이템들, 이 장난감 강아지도 그중 하나.

 

 

완전 싱싱하게 뻗어나간 굵고 탄탄한 대궁 위에서 활짝 피어난 잎사귀.

 

 

 

 혼자 사진에 담긴 고양이는 왠지 도도해 보이는 느낌이 아주 강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담긴 사진에서 녀석들은 왠지 다소곳하다.

 

 

그냥 되는 대로 툭툭 아무데나 던져둔 것 같은 악세사리들이 료칸 바깥에 온통 널렸다.

 

 

 

그리고 따사로운 큐슈 지방의 햇살을 온몸으로 흠뻑 맞고 있는 꽃들.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길, 그 옆에 소복소복 쌓인 초록빛 무더기들.

 

가족탕으로 꺽어들어가는 길, 그 앞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어느 가족이 지금 사용중이다.

 

주의할 것조차 딱히 없어서 온통 녹슬어버린 주의 표지판. 이 조그마한 온천 마을이란.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저 도자기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고양이 녀석 한 마리를.

 

 

 

료칸에서 펑펑 솟는 온천수 덕분일까, 새로 돋는 잎사귀가 무지 두텁고 반질거린다.

 

 

 

 

사람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고즈넉한 마을의 조용한 료칸, 건물 밖의 의자에 앉아 흐느적대기 딱 좋은 곳.

 

 

온통 담쟁이덩굴이 칭칭 휘감아 시간도 끈적하게 쉬엄쉬엄 흐르는 곳이라 이끼조차 한모금 머금었다.

 

 

 

 

조화라는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싶어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아무래도 그 빨갛고 푸른 색감이 참 선명하다.

 

 

 

어느새 어슴푸레하게 너울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 시퍼런 어둠에 먹힌 바깥 풍경과는 달리

 

아직은 제 색깔을 고르게 지켜내고 있는 테이블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들. 

 

 

체크인했을 때 고개를 꿇어박고 서류를 작성했던 딱딱한 책상에도 주홍빛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이 건물을 갉아들어왔고,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은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그 와중에 나비 모양 등불은 꽃망울을 향해서 활짝 날개를 펼쳤다.

 

 

 

 

 

 

니콘 쿨픽스 S30! 뜨거운 여름 쿨~하게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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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추억만들기는 니콘 쿨픽스 S30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떨까. ‘패밀리 카메라’의 기치를 걸고 출시된 니콘 쿨픽스 S30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선 여름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나섰다. 카메라를 처음 만지는 사람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심플한 조작법과 부담없는 가격대에 더해,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서 카메라를 물에 빠뜨리거나 떨어뜨려도 안전한 방수, 충격방지 기능까지 든든하게 갖춘 니콘 쿨픽스 S30. 듬직하면서도 장난스러워 보이는 외관과 그에 걸맞게 유머러스하면서도 실용적인 기능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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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쿨픽스 S30을 자동차로 비교하면 온-오프로드를 막론하고 독특한 운전재미와 안정감을 선사하는 SUV 정도다. 도톰하고 단단해보이는 바디는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여느 카메라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플라스틱 케이스가 가진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 덕분에 오히려 귀여운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체 크기 역시 102 x 65 x 40mm로 고작해야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이니 지니고 다니기에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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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상단과 모니터 좌우에 배치된, 몇 개 되지 않는 커다랗고 둥근 버튼들은 심플하면서도 야무진 외양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상단의 버튼 세 개가 차례로 동영상 촬영, 전원, 셔터 버튼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니콘 쿨픽스 S30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니콘 쿨픽스 S30을 즐기려면 그저 전원을 켜고 사진이던 동영상이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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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기로 따지면 모니터 왼쪽에 쪼르르 일렬로 늘어선 버튼 네 개의 배치나 변화무쌍한 기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니콘 쿨픽스 S30이 ‘패밀리 카메라’를 표방하고 나선 것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카메라를 처음 접하는 어른까지 쉽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작동 방법이 간단하고 직관적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슨 대단한 기계인 양 빼곡한 버튼들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큼지막하고 장난스러운 버튼들 몇 개를 상대하는 게 훨씬 쉽고 만만할 수 밖에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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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쿨픽스 S30은 플라스틱 재질이라 무게도 가볍다. 배터리와 메모리카드를 포함해서 고작 214g이라고 하니 아이들이 가볍게 손에 쥐거나 목에 걸어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2.4인치 23만 화소 액정 모니터나 니콜 줌 렌즈 모두 예기치 않은 충격이나 파손에 대비하기 위해서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단단히 보호되고 있다. 무엇보다, 방수 카메라라고 하면 카메라 내부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외관을 그야말로 ‘물 샐 틈 없이’ 패킹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AA형 배터리 2개가 들어가는 배터리 슬롯과 메모리카드 슬롯이 내부 커버와 슬롯 커버의 이중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점은 안심이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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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쿨픽스 S30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시 충격방지, 방수 성능이다. 이 제품은 80cm 높이에서 5cm 두께의 합판 위로 수십 차례 떨어뜨리는 니콘의 내부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는 미국 국방부의 표준 테스트와 동일한 기준이라 한다. 물론,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카메라가 손상되거나 고장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80cm 높이에서의 충격방지 성능은 믿을 수 있는 셈이다. 또한 방수 성능의 경우 수심 3m 이하의 수중에서 최대 60분까지 촬영이 가능하다. 온천과 같은 특수 상황은 제외하고 강이나 바다, 담수나 해수를 막론하고 작동한다는 점은 니콘 쿨픽스 S30의 활용폭을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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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충격방지, 방수 성능은 그저 그런가 보다-하고 넘길 부분이 절대 아니다. 아웃도어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절, 가족이나 친구들과 산이나 바다로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자칫 돌바닥에 카메라를 떨어뜨린다거나 물에 빠뜨리게 되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는지, 그리고 또 그런 낭패는 의외로 얼마나 자주 발생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니콘 쿨픽스 S30의 충격방지, 방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고개를 크게 끄덕여 수긍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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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역시 카메라는 사진으로 말해야 하는 법, 니콘 쿨픽스 S30의 사진 품질 역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1/3인치의 1,04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장착한 니콘 쿨픽스 S30은 연속 AF를 적용해 HD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며, ISO 80에서 ISO 1600에 이르는 고감도를 지원한다. 렌즈는 29~87mm 광학 3배 줌 렌즈로 광각과 준망원 초점 거리를 모두 지원하는데, 모드에 따라 렌즈 끝 약 5cm 거리에서도 초점이 잡히는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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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물속에서 찍기(수중촬영)’ 모드나 ‘가까이 대고 찍기(접사)’ 모드에서 5cm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그리고 셔터속도나 노출을 자동으로 설정하여, 역광이나 캄캄한 실내 등 열악한 상황에서도 카메라가 최적의 사진을 담아내 준다는 점은 사용자의 편의와 만족감을 극대화해주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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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바꾸기 흑백

색깔 바꾸기 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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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바꾸기 청사진

사진 꾸미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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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쿨픽스 S30은 부수 기능 역시 일반 카메라에 뒤지지 않는다. 사진의 색깔톤을 전체적으로 바꾸는 ‘색깔 바꾸기’ 기능이라거나, 사진에 액자 형태의 프레임을 추가하는 ‘사진 꾸미기’ 기능, 그리고 흔히 색추출 기능이라 부르는 ‘특정 색깔만 남기기’ 기능 등이 있는데, 예로 든 기능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일이 쉽게 풀어 설명하려 했다는 노력이 드러난다.

심지어 흔히들 ‘스마일 모드’라고 부르는 기능 역시 ‘웃을 때 찍기’라는 직관적인 기능명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카메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엔 감탄할 만하다.

사진 꾸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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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추출 1

색추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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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 쿨픽스 S30은 사실 단순히 사용자 편의만을 안배한 것이 아니다. 전원 버튼을 켜면서부터 2.7인치 23만 화소 LCD 모니터에 나타나는 귀여운 오프닝 화면이 뭔가 흥미롭고 발랄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면,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큼 재미있고 독특한 기능들이 추가되어 있다. 단적으로 ‘소리 바꾸기’ 기능은, 카메라 버튼을 누를 때 강아지 소리나 병아리 소리 등 무려 아홉 가지나 되는 재미있는 소리 옵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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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택하면 다양한 BGM과 함께 슬라이드쇼가 펼쳐진다거나, 원하는 디자인으로 앨범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들 역시 사용자의 즐거움과 만족도를 한껏 높여주리라 기대된다. 상상해 보라. 어느 해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나면, 낮에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조그마한 디지털 액자처럼 배경이 되어주는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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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니콘 쿨픽스 S30의 최대 장점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내구성, 80cm 높이에서의 충격 방지와 3m 깊이에서의 방수 기능을 갖춘 작고 가벼운 카메라는 산이나 강, 바다에서의 거침없는 아웃도어 활동을 만끽하도록 지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 번째로는 사용자 편의성, 처음 카메라를 사용하는 아이들조차 직관적으로 한눈에 기능을 이해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다양한 기능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눈에 띈다. 세 번째로는 Fun, 재미있는 사용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수중에서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부터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니콘 쿨픽스 S30은 그에 못지 않은 흥미로운 부가 기능들이 있어 더욱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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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흥미로운 사용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는 좋지만, 사진에 ‘하고픈 말 주고 받기’ 기능을 더한 건 다소 의욕이 앞섰다는 느낌이다. 사진에 더해 음성을 녹음하고 심지어 답장까지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이라니, 실제로 사용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의심이 든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위한 다양한 모드가 제공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셔터속도나 노출값이 자동으로 설정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따르는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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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한번 떠올려 보자. 여름철 많이 팔리는 카메라용 방수 비닐팩이라거나 장난감 수준의 저가 방수 카메라의 퀄리티를 감안한다면, 니콘 쿨픽스 S30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아웃도어 활동을 위한 필요충분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추천하고픈 아이템이다. 니콘 쿨픽스 S30은 이번 여름, 그리고 언제고 야외로 나가 리프레시하고 싶은 당신의 추억을 책임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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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ytzsche

 

 

 

 

 

 

 

 

 

 

 

안양에 있는 학의천,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랏돈으로 건물 올리고 콘크리트 붓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절

 

안양시청에서 하천을 정비하고 생태를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지자체나 일반인들이 자연 하천과 주변 지역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알기 전 미리미리 자연을 지켜낸 결과

 

학의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이자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진 곳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하천들, 그 좌우로는 녹색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고 하천을 따라 이어진 길들엔 세월이 흐른다.

 

 

그렇게 관내 주민들의 반발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정비를 마친 학의천,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노랑 꽃을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몇 마리 노랑나비가 사방으로 날아가는 듯한 자태.

 

내친 김에 클로버꽃의 시각도 빌려봤다. 꽃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은 이렇겠구나.

 

 

 

이름은 몰라도 꽃의 형상과 색과 질감이 남는다. 사람이나 꽃이나, 중요한 건 이름보다 그런 것들일지도.

 

 

 

학의천에 배를 깔고 물결을 일으키며 유영중인 오리들.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돌다리, 저쪽 끝에서부터 건너오는 아저씨 하나가 기우뚱. 덩달아 카메라도 기우뚱.

 

다리 위에서 학의천을 내려다보며 슬슬 자전거를 몰고 가시는 아저씨도 한분. 그 아저씨를 내려다보는 아파트도 하나.

 

 

나무벤치에 박힌 못처럼 연둣빛 새순이 박혔다.

 

 

 

곳곳에서 야생화들, 들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미 대낮의 햇살은 여린 꽃잎이 버티기엔 살벌해져 버린 듯 하다.

 

황톳빛 흙길바닥으로 둥그렇고 탐스런 그림자를 드리운 버드나무 두어 그루.

 

 

어느 다리 아래엔 아이들의 장난질이 심술궂다. 즐, 이라니.

 

 

 

 

하천에는 버들치니 참게도 살 정도로 물이 아주 맑다고 하더니, 산란기에 접어들었다는 잉어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적대며 열중하고 있었다. 찰박이며 일어나는 잔물결들, 그리고 물결 위로 얹혀지는 햇살부스러기들.

 

 

 

다리 아래로만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났다. 어느새 나무 그늘을 찾고 시원한 바람을 찾는 날씨가 되었다.

 

 

 











































































@ COEX, 이천, 인천.



ⓒ ytzsche.tistory.com

컴퓨터 정리를 하다가 문득 튀어나온 사진들, 지난 여름 즐겨 다니던 잠원 한강고수부지공원에서 찍었는데 잊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우와, 굉장히 시원해 보이는 사진이다 싶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왜 저리 헐벗고 있나 싶기도 하다.

꼬맹이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분수물이 솟구치는 구멍을 밟는 재미에 빠져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잡으려 했는데.

물줄기들이 좀 지저분하게 담긴 거 같다. 위의 사진처럼 무슨 해파리나 연체생물이 튀어오르는 모양으로 잡혔다면

좀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두 장 다 아쉬움만 가득한 사진.

아이들이 모조리 분수대 속으로 들어가서는 사방으로 팔다리를 휘젓고 다니며 꺄르륵 숨넘어갈 듯이 즐거워하는

웃음소리를 닮았다. 위로 솟구치기만 하고 내려올줄 모르는 분수가 그랬다.






1) 손가락 끝이 다쳤을 때,

2) 그리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일 때,

3) 게다가 물에 들어가고 싶을 때,

4) 우연히도 마침 콘돔이 있을 때.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었다는. (내 손가락은 아님)


아이폰 사진첩을 뒤지다가 문득 나온 사진 한장이, 다친 손가락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숭고한 목적에 복무한 그때 당시의 '불의의 수정차단을 위한 라텍스제품'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아오모리 지역의 토속 분위기가 물씬한 쯔가루 네부타마을, 네부타 마츠리라 불리는 동북 최대의 축제를

일년내내 감상할 수 있는 관광지. 마츠리 체험 외에 샤미센 연주 감상과 팽이와 같은 놀이문화도 체험할 수

있고,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도 잘 가꿔놓고 있어서 일본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흔히들 '도쿄'를 다녀오고 '일본'을 다녀왔다 하고, '뉴욕'을 다녀오고 '미국'을 다녀왔다 하는 식으로 도시

한두개를 보고 그 나라 전체를 다 경험해 본 양 말하는 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게 만드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공간.

입구로 들어가니 네부타 마츠리를 설명하고 네부타에 대해 설명하는 할아버지가 떠듬대는 한국말이지만

굉장히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네부타 마츠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3대축제의 하나로,

아오모리의 여름을 역동적으로 수놓는 축제라고 한다. 일본의 전통 종이에 사람 모형을 그리고 철사로

뼈대를 잡아 만드는 등불장식수레를 네부타라고 하는데, 네부타 하나에 150kg의 철사가 소요, 총 2500장의

화지가 소요되는 커다란 사이즈의 그것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직접 축제를 보고 싶어진다.

일본의 마츠리,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커다란 북을 신명나게 두드리는 것.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는 듯한 그 북소리가 점점 고조되면서 사람들은 단조롭고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거나, 혹은 몸과 마음에 꽉 차 있던 불만족과 권태로움을 태워버리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시범을 따라 방문객 중 한명이 함께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엄청나게 파워풀해 보인다.

히로사키 네부타 축제는 매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 1주일간 열리며, 60대 정도의 큰 등통(네부타)이 거리를

대열지어 행진하는 축제라고 한다. 아오모리현에서는 크게 구분해서 히로사키 네부타, 아오모리 네부타의

두가지로 나뉘는데, 아오모리 네부타는 인형의 모양을 한 입체적인 것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행진하는

반면 히로사키 네부타는 부채꼴 형태로 된 것이 주류이며 천천히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행진하는 게 제일

큰 차이점이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입체적인 네부타는 아오모리식인 거다.

반면 이렇게 부채꼴 모양으로 평면상 그림이 펼쳐진 건 히로사키식 네부타. 입체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동적인 느낌은 떨어지지만, 면과 면을 이어 만드는 입체적인 아오모리식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인상적이다. 특히 여성의 저런 나긋나긋한 표정이나 실루엣은 거칠고 압도적인 느낌의 입체로는

표현하기 쉽지 않을 거다. 결국 두가지 모두 일본의 중요 무형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네부타는

사실상 일본 축제 문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네부타의 속살, 철사가 쓰이는 입체형의 네부타 대신 부채꼴형의 네부타 뼈대는 나무로 엮여있었다. 저렇게

부채꼴 모양으로 뼈대를 잡는 것도 생각보다 복잡하다 싶은 게, 워낙 사이즈 자체가 크다 보니까 그 안에서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제작하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해지고, 중간중간 발디딤대가 필요해지고 뭐 그런 식으로

정교해진 거 아닐까 싶다. 그 위에 저렇게 화려하게 채색된 그림을 한면 한면 붙이고 불을 켜면 끝, 이라기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일 거라 짐작해 볼 뿐이다.

 쯔가루의 독특한 '쯔가루니시키'라고 하는 금붕어가 모델이 된 금붕어 네부타. 1706년경부터 서민들이 네부타로

만들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네부타 축제 때에 어린이들이 제등처럼 손에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고

한다. 어쩐지 아오모리쪽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호텔 내에서 예외없이 마주쳤던 저 금붕어 등불들이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금붕어 말고도 십이간지의 열두 동물이 모두 등불을 속에 품고 반짝반짝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아를

찧다가 급하게 불려온 듯 떡방아를 쥐고 있는 토끼도, 닭도 개도, 심지어 뱀이나 쥐새끼조차도 제법 귀여운

모습으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네부타 축제가 처음 생겨났을 즈음에는 물론 지금처럼 이렇게 커다랗고 화려한 네부타 등불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조그맣고 상대적으로 심플한 형태의 등불들을 앞세우고 축제를 벌였다고 하는데,

슬쩍 새장 속의 새들이 보일듯 말듯한 모양도 그렇고 화지를 잘게 잘라서 한번 꼬아 붙인 모양도 그렇고

간단해 보이면서도 꽤나 세련된 모습이다.


히로사키 네부타 축제의 기원에 대한 유력한 학설은 '옛날, 농민이 여름철 작업중에 졸음 때문에 농사일이

소홀해지거나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졸음을 작은 등통과 함께 강에 흘려보낸다'는 행사가 기원이라는 거다.

그 행사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축제로 변화발전해 왔다고 전해지는데, 그 근거로 '졸립다'라 하는 말이 쯔가루

방언으로 '네푸테', '네푸테쟈'이고 그 말이 변하여 '네부타'가 되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네부타의 그림에는 그 원형적인 감성이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 보인다. 굉장히 섹시하고

도발적이면서 관능적인 느낌마저 도는 그 여전사들의 모습이나 여성적인 선들도 그렇거니와 이를 온통

드러낸 채 으르렁대는 모습의 남성들도 그야말로 남성성의 화신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시대가 지나

거칠고 날것의 흉폭함을 보이던 그림이 조금씩 정련되기는 하지만, 다소 섬뜩하고 위화감이 이는 신성성

가득한 그림의 포스는 그대로다.


너른 공간 가득했던 네부타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다보니 한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일본의 장인들이

네부타를 만들고 코케시 인형을 만드는 모습을 조금 구경하다가 도착한 곳은 샤미센 연주장. 벽면 가득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안구를 괴롭히던 네부타로부터 벗어나 담백한 햇살이 내려앉는 공간에

도착하니 갑자기 눈이 심심해진 느낌이다.

일본의 샤미센은 원래 뱀가죽을 덧댄 중국의 '산싱(삼선)'이란 악기가 기원으로 16세기에 오사카로

전해진 것이 처음이라 한다. 그렇게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다는 샤미센은 민요 등 노래의 반주 악기로

널리 쓰이다가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예능, 문화로서의 츠가루 자미센이 되어 버린 셈이니 니것내것

가르며 자국 문화를 편협하게 고수하려는 자세가 우습단 걸 존재 자체로 웅변하는 것 같다.


선생님과 제자 같은 두 사람은 가끔 눈빛을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의 멜로디에 악기통을 툭툭

두들기며 박자를 맞춰주기도 하면서 기교를 맘껏 구사하고 있었다. 때로 굉장히 힘있게 현이

끊어질 듯 튕기기도 하고, 때로는 나뭇가지를 살랑이는 미풍처럼 현을 건드리는 듯 마는 듯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그 섬세한 음율이 인상적이었다.
 

마당에 꾸며져 있는 정원은 '요키원', 1880년경부터 191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35년동안 가꾸며 형태를

잡아온 정원이라고 한다. 쯔가루 지방의 고유한 방식에 맞춰 세심하게 배열된 돌과 나무들, 그리고

연못의 구성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런 석등에 새겨진 초승달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돌에 새겨넣은 걸까 아니면 인공석인 걸까 궁금해서 만져봤는데 잘 모르겠다.

다른 각도에서 본 정원, 요키원의 모습. 비슷한 사이즈로 다듬어진 나무들이 가지런히 열맞춰서 묶여있는

연못 위 다리도 이쁘고, 위에 너덜너덜 이끼가 내려앉은 커다란 석등도 둥글둥글하니 인상좋아 보이고.

쯔가루 고유의 팽이라는 '즈구리'를 직접 시연해 보이고 있는 아저씨, 여러 가지 팽이를 하나씩 돌려가며

샵을 지나는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 팽이랄까, 내가 어렸을 때 돌렸던 팽이들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보이는 나무 팽이는 슁슁 돌아가며 굉장히 매력적인 중저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달마 인형들을 응용해서 만든 이런저런 장난감들, 바퀴달린 수레인지 자동차 같은 것 위에

올라 앉아있는 잔뜩 인상쓴 머리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수레 위를 겁내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찬 것 같기도 하고. 그리 두텁게 칠하지 않은 붉은 색감 아래로 나무의 색감이나 결도 그대로

살아있는 게 저런 장난감이라면 아이들의 손때를 묻히고 묻혀서 대를 물려 넘겨줘도 좋겠다 싶다.

네부타 마을의 입장권, 애초에 저런 모양으로 접힐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어서 네부타 세워놓듯 세우고

코케시 인형을 앞에 배치한 장식품이 될 수도 있겠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책상 서랍 어딘가쯤에 나름

곱게 보관해둔다고 모셔두었다간 몇년쯤 지나 그냥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여느 티켓들과는 달리 이렇게

어디에고 접어서 세워두는 티켓이라니, 오래도록 네부타 마을의 기억을 반추할 수 있는 작지만 귀한

계기가 되어주고 있다.




참고. 네부타마을(네부타무라) 공식홈페이지(www.neputamura.com)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강릉에 있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원래는 요새 강릉 지자체에서 꾸며놨다는 바우길을 따라 걸으려

했었다지만, 어쩌다보니 바우길 코스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대로 걷는 일정이 되어 버렸다. 그건 아마도

뭔가 이렇게 흥미로워보이는 게 눈에 띄면 쪼르르 달라붙어 고개를 묻고 있던 일행들 덕분이기도 할 거고,

빗발이 변덕스럽게 쏟아붓던 지랄같은 날씨 탓이기도. 여하간, 코스에 대한 강박관념 따위는 버리는 게 좋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문장가였던 허난설헌이 남매

사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헷갈렸던 건 그 중 누가 손위였냐 하는 문제. 허균이 오빠?

아니면 허난설헌이 누나? 왠지 허균이 늘 앞서 이야기되기도 했던 데다가 여기 이름도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인지라 허균이 손위 오빠일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렸다. 진실은 기념공원 안에서 확인하기로.

공원 안에는 허난설헌 생가터가 있었다. 허난설헌이 태어났고 허균도 아마 태어난 곳 아닐까, 이미 한무리

방문객들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고 계시던 봉사자분의 말씀을 귀동냥해보니, 여기는 토담과 주변솔밭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연꽃이 물에 뜬 것과 같은 '연화부수(蓮花浮水)'형의 명당터라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소나무숲 한가운데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과거엔 더욱 그럴듯한 풍광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을 듯.


처마 끝에 서려 있던 이슬로 빚어진 그물망 하나. 조선시대 이런 변방에서 태어났던 양반가 자제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렇게 그물망 하나 풀어놓고 세월을 낚는, 권력의 중심으로 굳이 애써서

나서려 하지 않고 안분지족의 삶을 즐기는 '폐포파립'의 선비였으려나. 아니면 언제고 중앙정치의

무대로 되돌아갈 생각으로 이를 갈며 쓸개를 핥던 야심가들이었을까.



아무래도 신분제에 예리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던 허균이나,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여성이었던 허난설헌

모두 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나라를 뒤엎겠다는 거대한 혁명의 꿈까지 꾸진 않았다고 하면, 에라 그냥

산좋고 물좋은 강릉에서 시나 읊고 글이나 쓰고, 음풍농월로 한세월 보내자는 생각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들 남매는 '양반-상놈', '남존여비'의 당대 관념에 얼마나 시니컬했을까. 뭐 그렇지만 그들의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중국에까지 뻗쳤다는 게 함정. 힘들게 피보며 나라를 엎느니 그게 남는 장사일지도.

기념공원 앞에 있던 홍길동 기념관. 조그마한 오두막이 2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올라가면 뭐가 있으려나

싶어서 걍 외관만 구경하고 말았는데, 기념관 안에는 온갖 버전의 홍길동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허균은 본인의 숨겨둔 욕망, 못 가본 길에 대한 갈증을 홍길동으로 하여금 대리충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초가지붕이 단정하게 얹혀있는 황토빛 화장실. 궁서체로 써진 '화장실'이란 글자가 나름 운치있다.

사용후기 : 사람이 그렇게 많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관리되더라는.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 옆에 서있던 오문장비. 이 곳에 살던 허씨 5문장을 기념한 비석들로 아버지 허엽,

장남 허성, 허봉, 허난설헌, 그리고 허균 이렇게 다섯 명을 허씨 5문장이라고 한단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글재주가 돋보였다며 후대에도 칭송이 자자했던 사람은 바로 허난설헌, 알고 보니

허균이 막내아들이었고 그 손위 누이가 허난설헌. 무려 6살이나 많았던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라고 한다.

허균의 생몰년도는 1569-1618, 허난설헌의 생몰년도는 1563-1589.


그녀의 글재주는 8살때 신선세계의 궁궐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았다고 상상하고 썼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에서부터 조선땅과 중국땅의 인증을 받고 일본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그녀의 시는

현재까지 약 210여수가 전한다고 하는데, 그나마 그녀의 유언으로 전부 태우고 남은 게 그만큼이란다.


허초희. 이름이 참 이쁘다. 이름을 알고 나면 얼굴이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 그녀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빚어낸 그녀의 황동빛 조상이 기념공원 한가운데 단아하게 앉아있었다. 27살에 죽었다니 정말 이른 나이에

돌아갔구나, 역시 천재들은 일찍 요절하는 법인가 싶어 살짝 씁쓸해지던 차에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사실들이 몇개 나열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풍류를 즐기던 남편, 빡빡한 시어머니, 무엇보다 자녀들의

죽음과 태중의 아이까지 상실한 아픔. 생각보다 참, 힘들고 신산스러운 삶이었겠다.


그녀가 두 자녀를 잃고서 썼다는 시를 보면 허초희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지가 절절하다.

제목은 '아들딸 여의고서'.

 

"지난 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도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바치네

소지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아무렴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에 메인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며 허난설헌과 허균의 삶과 사상, 문학세계를 돌이켜보고 나니 왠지 기분이

스산해졌다. 물론 그들이 당대의 문명을 널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떨치고 죽어선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념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장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계속 맘에 걸린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앞세우고

아내로서 남편과 시댁의 박대를 받고, 그렇다고 해서 조선 문단의 일원으로 제대로 평가되지도 못했을거고.

그게 허초희의 질곡이었다면 허균 역시, 본인이 꿈꾸던 세상과 사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욕구불만과 갑갑증은 오죽했을까.

기념공원을 빠져나가 경포호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다. 삐쭉삐쭉 가늘고 길다란 소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땅바닥에 꽂혀있는 솔밭 사이 오솔길을 걸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수묵화를 보면 소나무를 저렇게 앙상하게, 그저 쭉쭉 기둥만 그려놓고 위에

한웅큼 다복솔을 뿌려놓곤 해서 상상해서 그린 거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다. 수묵화 속의 소나무들이

그대로 실사로 표현된 공간. 


경포호로 가는 길은 홍길동의 분신들이 촘촘히도 지키고 섰다. 다리 양쪽에 선 울타리에도, 교각 위에도,

뭔가 솔방울 수류탄을 던지는 포즈의 홍길동이 거북이 등 위에 단단하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다시 바우길 위. 올레길이 파란색 조랑말표식이나 화살표로 코스를 안내해 주었다면

강릉 바우길은 저렇게 파랑색 솟대 그림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경포호 옆길로 바싹 다가서자 저너머 경포대가 보인다. 경포호가 이렇게 컸구나, 싶은 실감을 하고 있던

차라서 정반대에 있는 경포대까지 가보는 건 일단 가볍게 포기.

경포호를 따라 걷다보니 홍길동전의 스토리를 따라 조성된 조각들이 보인다. 홍길동의 어린 시절이라는

이 세 아이들의 조각 중에 누가 홍길동일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가운데의 제일 개구진 녀석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유별나게 개구장이였던 녀석이라야 나중에 크게 된다는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저런 아크로바틱한 자세라니 보통 인간은 가능하지도 않을 자세인데, 역시 홍길동의 타고난

신이함을 드러내는 조각이라고 마음대로 정리.

그리고 돌을 네 조각으로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칼솜씨, 홍길동이 수련중인 장면이다.

그리고 탐관오리들의 행패..였던가. 아니면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활빈단..이었던가. 형틀에 묶인 채

맞고 있는 게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에 따라 홍길동전의 전개상 기승전결 중 '승'에 해당할지 '전'에

해당할지 바뀌겠지만, 여하간 맞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무척이나 괴로워보인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게다가 저 펑퍼짐하게 까뒤집어진 채 맷자국이 도랑처럼 남은 엉덩이, 참 아파 보인다.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기 전, 그 섬에 있던 요괴들을 처치해야 하는 퀘스트가 남았다. 아마 이 요괴들을

없애고 나서야 아리따운 여인을 얻어 혼인, 해피엔딩에 이르렀던 거 같은데. 요괴들이 짜리몽땅하고 왠지

익살맞게 생긴 게 그렘린같기도 하고, 골룸같기도 하고.

언제나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나름의 갈고 닦은 영웅포즈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홍길동이 갈고 닦은

포즈는 바로 이것, 주춤 서서는 한 손으로 칼을 쥐고 다른 손으로 거리를 잡는. 이 조각상은 특히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홍길동의 눈이 새겨져 있지 않아서였다. 눈을 새겨넣으면 밤에 홍길동 조각이 살아나서

당장 이 나라의 탐관오리와 부패한 '조정'을 뒤집을 것이 겁났던 걸까.

이렇게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을 둘러보고 경포호를 따라 걷다간, 경포대해수욕장까지 가서 주변 횟집에서

회 한접시 먹는 것도 꽤나 그럴 듯한 코스였다. 허균은 익히 알고 있었다지만 그저 여류 문인의 한명으로만

알고 있었던 허난설헌, 허초희 그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거칠게나마 알게 된 것도 적잖은 소득이었고.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까페 가회, 저번달에 '타투이스트'의 전시가 있다해서 겸겸 다녀왔었다. 전시는

생각보다 단촐했는데, 아무래도 전시의 방점이 '타투'보다는 타투이스트의 예술 세계에 맞춰져서 그런듯.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여권에 과감하게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고, 심지어 저렇게 타투하듯이

재봉틀로 별이니 배니 종이비행기니 박아놓았던 작품.

북촌 한옥마을은 거의 처음 가봤던 거 같다. 안국역에서 내려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판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선, 빗길을 뚫고 가회 갤러리 까페 입성.


입구에서부터 전시중인 타투이스트 전시 관련한 팜플렛과 달력, 온통 그의 '타투' 작품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A4 한장 크기의 도보자용 지도도 주었는데, 여태 모셔두고만 있다.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걷기엔 참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타투이스트',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어로 딱히 바꾸기가 애매한 단어다. 문신술사, 문신전문가, 문신예술가.

혹은...뭐가 더 있으려나. 그만큼 한국에서 '타투', 문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고 척박하단

사실을 반증하는 거 같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종이 비행기를 주된 테마로 잡고 타투 아트를 계속해온

아티스트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박수쳐줄 일이지 싶다. 자기 몸을 도화지 삼아 연습하지 않았을까.


그가 갖고 있는 타투 장비들. 저 총처럼 생긴 것에 잉크통을 꼽고서 펜처럼 피부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뭐라더라, 공중위생법으로 제재받고 있다던가. 딱히 제재할 법이 없으니 저

타투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느니 병을 옮긴다느니 따위의 조잡한 꼬투리를 잡고서 제재하고 있다는데,

한심한 일이다. 양성화해서 다양한 예술적 디자인이나 그래픽이 발전하도록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정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이스트 한 명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결과물들도 전시해 놓았었다.

재봉틀을 이용해 저런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수놓고는 소녀의 여린 팔목에 뽀빠이처럼 닻 모양이라거나

조폭처럼 '一心' 이런 한자를 수놓는 센스라니.


뭐 벽면 한쪽으로 그런 그림이나 복합 재료로 꾸며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분방하게 채색된

구두도 한 켤레 놓여있었고. 아무래도 갤러리 까페라 그런지 차 마시기도 괜찮은 분위기였지만, 찻잔을

들고 벽면을 따라 돌아다니며 이런 전시물들을 구경하기에도 괜찮았던, 편한 분위기의 천장 높은 까페.

와중에 발견한 맘에 쏙 들던 아이템 하나. 뱅 앤 올룹슨의 오디오였는데, 저 앙증맞은 빨강 세모모양

스피커가 한눈에 확 꽂혀버렸다. 게다가 조그마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전혀 뒤지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꼭 사겠다며..일단 위시리스트에 보관.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많이 연했다. 갈수록 진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참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 위의 크리마가 여느 까페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부드러웠던 듯.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

스푼의 애교에도 맘이 녹아내렸다.


들어갈 때 한장씩 나눠줬던 종이는, 전시 중인 타투이스트의 메인 테마인 종이비행기를 접으라며 미리

접는 선이 인쇄된 종이였다. 내친 김에 종이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나서는, 영수증 종이로도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마저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문득 불붙어 버린 종이접기의 마력. 어렸을 때 만들었던 독수리5형제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궁금해져버려서 있는 종이 없는 종이 동원해서 결국 만들고야 말았다. 저렇게 입도 쩍쩍

벌어지는 날렵한 모양의 비행기. 양쪽 옆구리에도 비행기 한대씩 합체분리할 수 있고 위에도 한대

합체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비행기였었다. 어렸을 때 커다랗고 두꺼운 달력 종이로 참 많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까페도 온통 둘러보고, 책도 읽고 하는 와중에도 참 줄기차게 내리던 비.

이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기보다는 '우기'가 있는 아열대의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서 북촌한옥마을을 좀더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에스프레소는 훌짝 다 마셔버린지 오래. 마치 타투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버린 크리마의 갈색 띠만

에스프레소 잔 안쪽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 타투를 보고도 사람들이 '참 잘했어요'라거나 '1등급' 따위의 둥근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이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더 밖으로 열려있는 이미지였음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달과 별을 몸에 새겼으니 다음에는 다른 천체를 새겨서 공간을 넓혀야겠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가회 갤러리까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 타투이스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내 꺼만한 게 없지 싶어서 조금은 뿌듯.




오이라세계류, 아오모리현의 특별명승지이자 천연기념물이라는 계곡을 따라 하늘을 가릴만큼 빼곡한

원시림 숲길을 걸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체 거리 약 17킬로미터에 이른다는 오이라세계류

산책구간은 어쩌면 이제 한국에도 익숙해진 올레길, 둘레길 같은 트레킹 코스의 경쟁상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제 점수는요. 바로 옆으로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함께 달리고 있음에도 마치 사람 하나 찾기 힘든

깊은 산속의 좁은 숲길을 혼자 걷는 듯한 호젓함과 한가로운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다.

오이라세계류를 따라 걷는 길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다리를 건너 개울 건너편으로 간다거나 잠시 구불댄다는

등의 변칙은 있었어도, 대개 한켠에는 개울을, 신록이 그득한 원시림 한꺼풀 너머에는 이차선 도로를

끼고서 걷는 길. 다니는 차가 많지도 않았지만 두껍게 드리워진 초록빛 커튼이 소음과 부산함을 전부

막아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치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까.

길 중간중간 오이라세계류 트래킹코스로 합류할 수 있는 샛길 길머리에는 어김없이 이런 안내판이

서있었다. 일본어로밖에 안 나와있는 건 아쉬웠지만 그림과 간략한 영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알 수 있는 내용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식물을 채취하지 말고, 동물을 함부로 풀어놓지 말고,

불을 붙이지 말라는 주의사항들은 어찌보면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저런 기본이 제대로

지켜진 덕분에 이곳의 짙푸른 원시림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지켜지는 거 같다.

핫코다 하치만타이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일본에서 세번째로 깊다는 도와다호수는 강물이 전혀 흘러들지

않고, 땅에서 솟는 물과 비, 눈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호수에서 유일하게 흘러나가는 물줄기가

바로 오이라세계류, 계류가 이끼낀 바위 사이를 힘차게 흐르면서 일으키는 하얀 물거품이 선명하다.

게다가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 드문드문 찢겨진 채 떨궈지는 햇살 한 조각이 묘하게도 이끼낀 바위위에

떨어지는 것도 굉장히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마치 하늘에서 의도한 적정량의 조명이 적절한 바로 그곳에

딱 맞춰서 예정대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숲이면 다 같은 숲이지 '원시림'은 또 뭐냐, 하는 맘이 없지는 않았다. 한국에도 여기저기 조성된 트레킹

코스들은 대개 나무가 무성한 숲길 한가운데를 걷거나 숲과 바다와 산을 끼고 걷는 길인데 새삼스러운 게

있으려나 생각했었던 거다. 그런데 '원시림'의 포스는 뭔가 분명히 다른 게 있다. 저 수령을 알 수 없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 주변에서 아우라처럼 뻗어오른 잔가지들, 그리고 그 잔가지를 다시 감싸는

초록색 이파리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다른 거다.

저 너머 도로에 꽂혀있는 급코스를 경고하는 노랑색 교통표지판이 보이는 즈음에, 나무 역시 급코스를

온몸으로 예고하듯 격하게 뒤틀어져 있기도 했다.


길 중간에 개울 너머로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통나무 다리도 만나고. 나무로 만든 다리가 아니라

말그대로 통나무 하나를 베어내선 개울 이쪽과 저쪽으로 걸쳐놓은 통나무 다리였다. 흔들리지 않게

제법 단단히 양쪽 땅에 고정된 거 같긴 했는데, 뭐하나 의지할 것 없이 이 나무다리를 건너 저쪽으로

건너갔던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의구심과 동시에 저 건너편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이 일어난 것도 사실.

나무 옆구리에서 톡톡톡, 연지곤지 찍듯이 여리고 둥근 연두빛의 잎사귀가 부드럽게 돋아났다.

계단 옆으로 하얗고 두꺼운 나무 뿌리 두개가 툭, 툭, 상아처럼 튀어나온 것도 꽤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부러지고 넘어지고 휩쓸리고 뒹굴던 나무들. 이미 당당히 하늘을 향해 온몸을 펼쳤던 모습은

오래전 과거의 것인 듯 부러지면 부러진 대로, 넘어지고 휩쓸리면 휩쓸린 대로 각자의 모습 그대로

연두색 융단이나 액세서리들을 도톰하게 휘감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나왔던 숲의 정령들이

어디에선가 끼이- 끼이- 거리면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벌인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풍경.


전체 17킬로미터 구간을 다 걷지는 못했고 일부만 걸었는데, 그 중에서 이렇게 넓은 길은 정말 극히

일부였던 거 같다. 대개가 한사람이 딱 걸을만한 좁은 폭, 반대편에서 사람이 올라치면 어깨를 칼처럼

세워서 서로 지나쳐야 할 정도로 좁았으니까. 아무래도 숲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니까 길을 최소한으로

내려고 했던 거 같다. 한국의 지자체들도 걷기 열풍을 타고 트레킹코스를 만든답시고 나무데크로

길을 완전 포장해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데, 자연이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이렇게 고사리가 무섭도록 무성하게 자라난 곳도 무딘 발에 밟히거나 쓸려나가지 않을 테고,

이렇게 좁은 숲길 양쪽에 펼쳐진 이끼 융단이라거나 여리디 여린 덩굴들이 그물처럼 서로를 엮어넣은

모습을 지켜낼 수가 있을 거다. 오이라세계류의 원시림을 이렇게 훌륭하게 지켜낸 건 그런 마인드 아닐까.

좋은 계절에 온 것 같았다. 온통 나무들이 꽃보다도 이쁜 초록빛 잎을 크고 두껍게 피워내는 신록의 계절,

계류를 따라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새소리마저 신비한 숲속을 산책하면, 시끄러운 물소리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온통 차분하고 경쾌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몇걸음 앞에 다른 일행이나

사람들이 앞서고 뒷서며 함께 걷고 있음에도 웬지 이곳에 홀로 쉬고 있다는 느낌.

실타래처럼 떨어지는 폭포인 '시로노이토'. 삼각대를 갖고 왔어야 저 가늘고 부드러워보이는 폭포수가


더욱 그럴듯하게 표현되었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었다는. 이곳은 아무래도 호수에서 뻗어나온 개울이다

보니까 낙차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유량이 많은 편도 아니라고 한다. 폭포라길래 뭔가 콰콰쾅하는 소리가

사방에 진동하고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사실.


그건 '조시오타키'라는 이름의 폭포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낙차가 있고 유량도 많은 편이긴 했지만,

앞선 폭포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물줄기를 보고 기대치를 어느정도 조정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조금 실망할 뻔 했다. 그렇지만 도쿠리병의 주둥이처럼 생겨서 저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 폭포는

이 오이라세계류에 산다는 무지개송어의 장벽이기도 하단다.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시퍼런 색깔이

섞인 게 신비한 분위기를 살풋 풍기며 부지런히 쏟아져내리는 폭포수가 굉장히 시원헀다. 


아마도 상수원이니 물을 깨끗이 보전하자는 건가, 아님 나무와 풀을 보호하라는 건가, 여하간 꽤나

오랫동안 저 자리를 지켰을 강철표지판의 가장자리가 온통 낡고 닳았다.

커다란 구렁이가 나무를 칭칭 휘감고 올라가는 건가 해서 깜짝 놀랐는데, 눈비비고 다시

보니깐 두툼한 가지 하나가 나무둥치를 휘감고 뻗어있었던 거였다. 깜짝이야.

원시림을 벗어나 다시 세속으로 돌아나오는 길, 불과 몇걸음 안 떼었는데도 방금까지 바로 옆에서

지줄거리며 흐르던 개울과 단단하게 공기를 쥐고 있던 푸른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공간이 꿈인양 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은 이런 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둘러보고 느끼는

와중에 딱 어울릴 것 같다. 다시 딱딱하고 살짝 끈적해진 느낌의 아스팔트를 밟으니 정신이 번쩍 난다.

도와다 호수로부터 뻗어나온 유일한 개울이라는 오이라세계류가 그럭저럭 직선을 그으며 흘러나가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황토색 길, 17킬로미터에 이르는 전 구간을 걸었으면 딱 하루 코스였을 텐데 시간만

허용되었다면 정말 꼭 걷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렇게 살짝 맛만 보고 돌아서야 하다니. 주위에 보니

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적잖이 보였는데 무지무지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숲길들도 잘 보존해서 이런 상서로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때가 오길.


* 오이라세계류의 위치.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말로만 듣던 거대 버거. 제주도에 가면 꼭 한번 먹어봐야지 했던, 바로 그 '빅허브버거'다. 접시 위에

담대하게 올라앉은 그 버거의 사이즈를 체감할 수 있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하다가, 손닦으라고

나온 '건강물티슈'를 바로 옆에 붙여두고 찍었다.

커플버거도 있다는데, 별로 가격차이도 나지 않는 걸로 보아 빅버거로 쏠리게 하려는 속셈인 듯.

처음 생겼을 때에 비해 가격이 점점 올랐다는 불만의 글도 어디선가 봤는데, 사실 싼 건 아니다.

갈린 허브가 섞여있는 두툼하고 고소한 빵 사이에, 조금 얇다싶은 패티와 사과니 양파니 양배추니

패티의 아쉬움을 달래고 메인 목을 풀어주는 아삭아삭한 과일과 채소가 많이 들어있어서 조금 과하게

먹어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뭐, 저 거대한 빅허브버거도 버거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전의 금능 해수욕장과 그너머 바다가

그대로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가 참 맘에 들었다. 마침 식사시간을 좀 빗겨난 타이밍이라 아무도 없던

가게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며 창밖도 내다보고 가게 안도 구경하고.

벽면에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는 자그마한 화분이라거나 그림들이 꽤나 귀여운 이미지를 연출중.

따뜻한 노랑색의 조명도 맘에 들고.

그리고 화장실 표지도 발랄하다. 글자체도 그렇지만 변기에 앉아 행복해하는 꼬맹이 표정이 참.

 

해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바다로 점차 잠기며 한없이 길어지는 그림자가 가게 벽면에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무늬를 남겼다. 미련이 가득한듯 벽면을 야금야금 긁어내리는 뒤늦은 햇살이 따가웠다.

피자처럼 여덟조각으로 커팅되어서 나온 버거는 어느새 약간의 빵부스러기와 양배추만 남기고

전부 사라져버린 상태. 옷을 탁탁 털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자리를 나섰다.

태양이 녹아내리는 바다에 뛰어들어서는 햇살을 산산이 조각내며 노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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