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와 픽사가 합친 건 나로선 매우 다행인 일, 디즈니 오피스에 가끔 들를 때 이렇게 루카스필름과 픽사의 캐릭터들을 볼 수 있다니.

최근 이마트 키즈존에서 뜻밖의 득템을 하고 기쁘긴 하나, 좀더 정교한 피규어들이 있음 좋겠다..고 쓰다가 생각난 녀석.

있긴 했구나ㅎㅎ 레고 스페셜 에디션. 그래도 여전히 배고프다고! 특히나 이브는 왜 피규어가 한개도 없냐능!

김포에서 김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촬영한, 일종의 항공사진이랄까. 어젯밤에 중부지방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다더니 제법 가벼운 느낌으로 쳐내어진 구름들이 하얗게 깔려선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분명한 속도감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구름들은 더러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혹은 딱 붙어서는 전혀 움직임없이 비행기와

함께 흘러가는 듯 하기도 했다. 비행기 탈 때마다 잠시 구경하다가 이내 창문을 내리고

잠을 청하거나 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지루할 틈 없이 뭉개지고

다시 뭉쳐지고 또다시 뭉개지는 그 모양새와 디테일한 보슬보슬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터키의 파묵칼레, 온통 하얀 석회석으로 이루어져 반짝거리는 새하얀 산이었던 그곳에

다시 오른 느낌이었다. 비행기 문을 열고 저위로 한걸음 내딛으면 딱딱한 바닥이 감각될 듯한.

맨발로 그 하얀 석회석과 미끈거리는 물을 가르며 걸었던 기억이 문득 발에 돌아왔지만,

아니면 북극이나 남극에 둥둥 떠다닐 커다란 빙하에 오른 듯 차가운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도 제법 날카롭고 높직한 산맥이 내달리는가 하면, 평야가 넓게 펼쳐지기도 하고,

새하얀 대지 아래를 적시며 잿빛 강이 흐르기도 했다. 예전에 봤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업'이 떠올랐다. 색색의 풍선들을 매달고 하늘을 나는 집, Adventure is up there라고 했지만

실은 Adventure란 게 어디에나 있음을 이야기하던, 그리고 인생을 순식간에 흘려보내는

압도적인 오프닝이 있었던 멋진 애니메이션. 풍선들 대신 비행기를 탔지만, 그림으로

접했던 그네들의 설렘과 열광, 흥분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부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지상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불쑥 굽어진 어떤 강이

온통 황토빛으로 흐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탁하고, 무겁고, 혹시나 4대강 삽질때문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워낙 새하얗고 가볍고 장난스러워서

상대적으로 더욱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줘야 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초대장 배포(100장)] 화투패 좀 아시나요? 에서 '2010 서울 인형전시회'의 작품들을 조금

소개했는데, 그 이외에도 꽤나 재미있는 인형 작품들이 많았다. 우선 수많은 셀레브리티들.

007 요원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그 안무, 한 동작으로 김연아임을 단번에 알아채게 했다.

시크릿가든, 현빈과 하지원의 인형. 슬쩍 올라간 현빈의 입매와 하지원의 동글한 눈이 이쁘다.

성균관 스캔들의 등장인물들이 황토담 앞에 분분이 서 있다. 이 드라마를 모르니 패스.

그리고 카라~ 한때 뭇남성들의 눈을 고정시켰던 '미스터'의 엉덩이춤 의상이다.

2NE1의 네마리 곰이 날씬한 자태를 도도하게 흔들어주는 센스. 복실한 얼굴털이 매력적이다.

빅뱅 테디베어들, 원색의 칼라풀한 옷차림, 그리고 음..글쎄, 남자는 관심없으니 패스.

그리고 업! 할아버지와 똥똥한 꼬맹이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센이자 치히로인 소녀와 '가오나시' 괴물이 얌전히 열차를 탄 장면.

은하철도999의 철이와 메텔, 그리고 차장 아저씨..였던가. 워낙 어렸을 때 본 만화라.

파란요정을 만난 거짓말쟁이 피노키오. 푸르스름한 피노키오의 낯빛과 요정의 파란 머리칼의

색감이 참 이쁘다. 근데 왠지 피노키오와 '마지막 잎새'쯤이 묘하게 섞인 느낌.

퇴화해서 형체만 남은 듯한 팔다리를 늘어뜨린 염소의 므흣한 웃음이란. 피노키오 이야기의 일부.

꺄아~ 고양이 인형 완전 사랑스럽더라는. 저 경직된 얼굴 근육은 금세라도 씰룩댈 듯.

폴스미스 스타일의 테디베어들, 곰팅이들 생긴 건 어슷비슷하다고 해도 천의 색깔과 느낌에

따라서 참 다르다. 저 세쌍둥이 곰돌이들조차도 약간씩 분위기가 달라서.

전시관 안쪽에 꾸며져있던 북극의 한 귀퉁이, 솜처럼 새하얗고 복실해 보이는 북극곰들이

단란한 한 가족처럼 모여있는 풍경이다.

아마도 1톤트럭 뒤를 꽉 채워서 실려왔을 거 같은 거대한 곰돌이 한 마리. 그 밑에 사람이라도

깔리면 옴쭉달싹도 못할 만큼 육중한 녀석이 제법 귀엽다.

수십 개의 부스에 나와있는 인형 전문업체들, 자리에서 직접 이렇게 계속 인형을 만드는 분들도

많았고, 둘러보는 손님들한테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분들도 있었고.

'토이스토리3'에 나왔던 그 인형들이 우르르 모였다.

이쁘지만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드는 표정과 분위기, 볼터치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뭔가

공포영화의 좋은 소재로 쓰일 수 있겠다 싶은 아이들.

강백호의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고,

승리의 후레시맨은 왼손으로 비를 가리고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조금 닮았지만 그 살기와 단단함이 조금 부족하다 싶고,

인형의 집은 굉장히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온기가 없다. 인형들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그래서

따뜻하고 포근한 재질로 만든 인형들이 더 정감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자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보다 복실복실한 털로 만들어진 인형들이 더 좋은 거다.

그래서 약간은 섬뜩한 아이들. 구체관절인형의 일종인 듯 한데, 소녀의 몸매가 풋풋하다.

포셀린, 도자기를 구워 인형과 옷을 모두 고슬고슬 만들어낸 건데 저 레이스의 화려함도 그렇지만

저 매끈한 도자기 피부. 그리고 저 각선미..훙훙.


이건 아마도 구워내기 전의 인형인 걸까. 굉장히 정교하고 여리여리한 디테일이 인상적.

이런 것들도 은근히 많았는데, 가뜩이나 사람을 많이 닮은 인형은 섬뜩하거나 무서울 때도 있거늘

굳이 저렇게까지 무섭게 할 건 뭐람. 그러면서도 그 생생함이나 신기함에 눈이 자꾸 가는 거다.

이런 따뜻하고 귀여운 인형이 사실은 좀더 내 취향에 가깝다. 포근하고 부드럽고 몽실몽실한.

아 물론 이런 인형님들도 대환영. 어렸을 때 바비인형도 갖고 놀았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전시기간이 12월 24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딱 연말연시 분위기가 절정인

타이밍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소품들도 많았다. 산타클로스 인형은 케잌 위에 올라가는

여느 자잘한 설탕인형과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인데다 이쁘기도 하다.

인형 전시회가 벌어지는 코엑스몰에서 인형옷입고 홍보중인 아저씨-누나-형-동생님.

요즘처럼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에는 그래도 꽤나 할 만한 아르바이트 자리일 거 같다.





업, 근래 봤던 영화 중에 꽤나 인상 깊이 남았던 영화다. ([업] Adventure is ubiquitous.)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집스런 사각턱 할아버지나 통통한 동양계 꼬맹이 말고, 저 커다랗고 길다란 새를 기억하는지?

아마도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집을 날렸던 곳은 남미 어디메쯤이었던 듯 하지만, 사실 이 새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짠~* (왠지 익숙한 이 단어, 짠~*) 똑같지 않은가, 강인하게 쭉 뻗은 긴 다리, 두껍고 강력해 보이는 부리, 전체적으로

타조와 비슷할 만큼 대형 몸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슬림하게 뻗어있는 허리와 둔부까지. 깃털까지 꼽아놓았다면 아마

더더욱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록달록 빛깔이 선명한 깃털들로. 아프리카박물관엔 이런 조각상이 아주 많다.

제주도 컨벤션 센터와 마주보고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소재한 젠네 대사원'을 토대로

설계하였다는 박물관의 외관이 실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무려 세계 최대의 진흙건축물이랜다.

마당 한 켠에 분방하게 전시되어 있는 전통 가면들. 왠지 하늘로 손을 쭉쭉 뻗은 나무들조차 아프리카스럽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새의 조각상. 딱 보자마자, '업'에서 벌어지는 탐험의 중심에 있던

그 새가 너로구나, 반가웠다. "코뿔새 상"이랜다. 업에 나왔던 그 새의 이름을 이제야 알겠다. "코뿔새"다.

"코뿔새는 아프리카의 신화적 동물로 반투어로는 코몬도(Komondo)라고 불린다. 코몬도는 양성의 동물이며, 크기가 30m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가뭄에 시달릴 때, 하늘에 비를 내려 주기도 하고 죽은자의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나쁜 기운과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아프리카박물관은 기대 이상으로 볼 거리도 많았다. 애초에는 하루 세차례, 11:30. 14:30, 17:30에 열린다는 아프리카

전통 공연을 위주로 보고 나머지 소장품들은 설렁설렁 보면 보고 말면 말자는 식이었는데, 소장품들도 풍부하고

재미난 것들도 꽤나 많았다. 아, 이런 아프리카 전통의 S라인 조각상을 봤다고 그러는 건 아니다.

S라인이 제대로 안 살아나 각도를 바꿔 다시 한번(이라고 쓰고 실은 여러번, 이라 속으로 생각한다) 찍는 열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정말 이 조각상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단지 아프리카에도 이렇게 수준높은 몸매...

아니, 이렇게 수준높은 조각예술이 발달했었나, 이렇게 육감적인 표현이 가능했었나 신기했을 따름.


어쩌면 마치 우리가 고대의 유물을 두고 다산/순산을 기원했다느니 하는 설명을 아프리카 예술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들 나름의 미감과 미적 쾌감이 발전해 왔을 텐데, 그들은 고대인이 아니고 아프리카

역시 21세기의 아프리카 땅이란 측면을 넘 무시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유리창 너머 보존되는 조각상이라 사진이 안 나왔다. 눈으로 보면 무척이나 섬뜩하고 강렬한 조각상인데.

해서 아프리카박물관 홈피에서 업어온 그림 첨부.
콩고의 주술사가, 부족의 룰을 어긴 사람을 선별해서 벌을 줄 때 사용한 조각상이라 한다. 온통 쇠못이 고슴도치처럼

박혀서는, 냉막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송곳을 집어들고 있는 게 처키보다 섬뜩하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 아픔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게, 치유를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저 살벌한 못들처럼.

주술사가 해결할 사건 수가 늘어갈수록 쇠못도 하나씩 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면서 타인에게 박아넣는 못들보단

훨씬 적은 수일 거다. 만약 그게 저 못들처럼 대가리를 삐죽대며 몸에 박힌 게 보인다면. 으..

신기하게도, '용'이란 존재를 불러내는 상상력은 만국 공통인 듯 싶다. 서양의 용, 동양의 용, 그리고 아프리카의 용.

아프리카의 용은 왠지 짧막하고 가분수인 게, 귀엽다. 이 녀석 어쩜 거대용의 아바타일지도.

시간 맞춰 들어선 지하의 공연장. 자그마한 공연장이지만 사람이 꽉 찬 게 더 놀랍다. 아프리카박물관을 강추하는

온갖 블로그나 까페, 구전의 효과란 말인가. 나 역시 그 구전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맘먹고 블로그 중이지만.

세네갈에서 왔다는 공연팀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열정적인 댄스와 노래-랄까 격한 허밍이랄까-를 선보였던

아리따운 검은 아가씨. 반질하고 매끈한 피부가 꼭 새까맣고 단단한 흑단목을 연상케 했다.

북을 치는 아저씨 둘은, 박자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깨고 잇고, 굉장히 멋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수준높고 열정적인 공연이라니. 물론 그 와중에도 뽁뽁이 신발신고 뒤에서 뛰어다니는 아가의 부모는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아무런 제재나 부모의 관리없이 통로를 방황하고 있었지만.

꼭 '국립문화원'이니 '예술의 전당'이니, 돈쳐바른 곳에서만 조용히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이제 둘러보고 나가는 길, 코뿔소 새의 휘영청 만곡한 부리가 너무 멋지다. 죽음의 사신이지 수호신이라는 신화적

존재, 코뿔소 새. 근데, 머리 위의 갈기털은..누가 파마를 시켜놓은 건가.

아프리카 박물관의 센스는, 화장실 표지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런 자그마한 것 하나에서도 그 공간의 이미지와

특성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섬세함이 난 좋다.

기념품점에서 맞닥뜨린 No.5 던가.(일본만화 '원피스'를 보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 듯.ㅋㅋ) 기린기린열매를 먹은

그가 열심히 단련하여 네모반듯한 기린 전사가 되는 눈물없인 볼 수 없는 감동의 대 서사시. 딱 그녀석이 생각났다.

왠지 우울한 표정의 원숭이, 조삼모사에 낚인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호랑이는 왠지 입에다가 타이거마스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고, 또다시 등장한 기린은 아직 완성체가 되기 이전의 모습.

티켓 값이 그다지 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도의  지원으로 10% 할인이 적용된다고 한다. 참고로 아침일찍

갔다가 허탕쳤음을 호소해도 추가 할인은 없다.









이건, 요새 봤던 왠만한 영화 중에 최고다.

Wall-E에 이어 픽사가 또다시 잊지 못할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업(UP) 말이다.

메가박스 영화관 한가운데에 전시된 풍선이 주렁주렁 매달린 집을 보았을 때도, 다른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으로

할아버지와 뚱뚱한 꼬맹이가 나왔을 때도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감동적이고 흡인력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애니메이션이 더이상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이미 상식이 되어버렸지만, 이제 굳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방식을 지적하며 다른 실사 영화와는 다른 기준으로 그 예술성이나 완성도를 평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건, 요새 봤던 왠만한 영화 중에 최고다. 이야기를 이끄는 호흡의 완급에 있어서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있어서나, 어느 모로 보나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 같다. 감동을 마구 먹어버렸다.

스포일러의 요소를 최대한 피하겠지만, 사실 이건 영화를 직접 봐야 느낄 수 있으니 별로 스포일링되지 않을 듯.


영화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눈물이 한번 고여버렸다.

할아버지가 거대한 풍선다발에 집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의 삶, 그러니까 그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초반의 장면들이란 건 뭐랄까, 누군가의 인생에 순식간에 감정이입하면서 문득 일흔세살의 노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어느순간, 내가 그 '칼'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그의 백발이

이전엔 검은 머리였음을 알고, 그의 완고한 표정과 눈매가 이전에는 훨씬 부드러웠고 누군가에겐 애정이 가득했음을

알고 있다. 비행선을 동경하며 늘 모험을 꿈꾸던 아이가 어른이 되고 홀로 남게 된 그런 상황, 영화는 그제서야

시작이다. 영화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눈물이 한번 고여버렸다. 이런 영화는 본 적이 없다.

"Adventure is up there"?

스토리를 구구절절 이야기할 생각은 없으니 급마무리랄까. 할아버지가 집을 위로 띄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황,

주위가 온통 재개발에 들어가 고층빌딩이 조그마한 집을 포위한 터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집을 띄우고 남아메리카까지

날아가기로 한다. 비행선을 동경했던 할아버지 내외의 가슴에 새겨져있던 탐험가의 말, "Adventure is up there"는

늘 '칼' 할아버지에게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었댔다. 이야기가 끝낼 때쯤에야 바닥에 안착하는 집의 이미지가 보여주듯

모험이란 건 다소 들뜨고 불안정한 상태,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건,

모험을 하려면 약간은 바닥에서 거리를 두고, 원경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Adventure is ubiquitous!

'유비쿼터스'란 단어가 한때의 트렌드였던 적이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재하는' 정도의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아마도 이 이야기와, '칼' 할아버지를 이끄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위(up)' 어딘가 기다릴 모험을 찾아 떠난

길이지만 실은 그의 삶 전부가 모험에 다름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어느 특정 장소에 도착해야 비로소 모험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하며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던 거다. 흔히 여행이란 방식으로
 
낯선 곳에 떨어지고 나서야 하루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곤 하듯이 말이다.


'칼' 할아버지는 과거의 일상이 모두 소중한 모험이었음을 깨닫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의 순간을 적극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의 집이 비록 과거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과거에 약속한 모험을 이루기 위해 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수천개의 풍선은 이제 지금의 순간을 위해, 지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으레 삶의 전성기를 지났다 여겨지는 노인들이 그러듯 어떤 삶의 순간에 멈춰버리지 않고, 다시금 계속해서 살아간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며.



p.s. 다시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이어서 유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애니메이션이라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장면 하나하나에 스토리의 흐름에 필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움직임
 
하나, 소품 하나까지 의도에 맞게 정밀하게 세공해낼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이니까. 중간중간 화면 전체에 의미가 꽉 차

있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더러 있었다. 게다가 어떤 건물의 창문밖을 슥 지날때 풍선을 투과해서 집안 내부에 비쳤던 

알록달록한 조명도 그렇고, 집에 묶여 바람에 나부끼는 색색의 풍선들이 보여주는 음악같은 율동감과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이라니. 물론 이야기 초반에 나오는 압축적이고도 압도적인 삶의 묘사는 말할 것도 없고.


또 하나 만화라서 되려 유리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한 부분이 있다면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육체적으로

쭈글쭈글하여 '아름답지' 않으며 뭔가 모험이나 역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 극을 이끄는 주인공으로는 잘

캐스팅되지 않는 그런 캐릭터를 무리없이, 감정이입이 쉽게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애니메이션이 갖는 '미화'의 힘

때문은 아닐까. '칼' 할아버지는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레 외면에 쌓게 되는 온갖 흔적들로부터 자유로운 건 사실이니까.

어떤 배우가, 어떤 사람이 '칼' 할아버지를 이만큼 연기해낼 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 간다. 만화라서 유리한 건 역시

역사성 없는 할아버지 캐릭터랄까. 삶의 구린내가 전혀 풍기지 않는 동화(만화) 속의 할아버지여서, 그의 삶에 더욱

쉽게 감정이입하고 그와 함께 울고 웃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살풋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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