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톰 동쪽 입구에 연해 있는 두 개의 사원, 톰마논과 차우 싸이 떼보다. 동쪽 입구에서 뻗어나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사원의 위치나 형태가 흡사하여 쌍둥이 사원으로 여겨진다고 하지만, 앙코르 유적에 대한

흥미를 더해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톰마논은 앙코르 왓을 세운 수리야바르만2세 때 세워진 사원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그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앙코르왓을 보기 이전이었는지라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닮았는지는.

천년도 넘은 사원의 무게감, 천년을 두고 돌덩이에 뿌리를 내렸을 이끼들도 돌의 무게감을 배웠다.

그리 크지는 않은 사원이라 한 바퀴 훌쩍 돌아보는데 한 삼십분 정도. 사실 반대쪽의 '차우 싸이 떼보다'란

기묘한 이름의 사원이 신경쓰여서 조금 살살 돌아봤다.

글쎄 길건너편엔 무슨 테마파크에서 봄직한 반짝반짝거리는 사원이 세워져 있었던 것. 똑같은 생김이고 방금

돌아본 톰마논과 같은 장식의 구조지만, 때깔이 너무 생경하다.

대충 뜨거운 태양에 눈먼 채로 보면 나이를 좀체 가늠할 수 없고, 부분부분 과거의 원형이 보전되어 있는 곳들이

있어 그래도 완전 복제품이라거나 100% 신품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중간중간 두드러진다.

이런 식으로. 감히 인간의 손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시간의 씻김, 그 자연스런 흔적과 함께 할 때 너무도

티가 나는 반듯반듯하고 번쩍번쩍하는 복원 부위. 시간이 지나면서 갓 지은 티가 좀 씻기고 나면 톰마논과

쌍둥이 사원으로 지어졌다는 게 좀더 실감이 나려나.

사원들 옆에 간단하게 지어올려진 천막, 그리고 보기만 해도 너무 편안해 보이는 해먹.

오랜만에 보는 봉긋한 사자녀석의 엉덩이. 이 녀석은 왠지, 봉긋보다는 불룩하단 표현이 맞을 듯 하기도.




박쎄이 참끄롱(Baksei Chamkrong), 박쎄이 참끄롱, 박쎄이 참끄롱, 뭔가 묘한 운율감과 리듬감이 혀끝에서

대롱대롱 살아난다. 앙코르왓과 앙코르톰 사이에 끼어있는 조그마한 사원, 그냥 모른 채 휙 지나기 쉬울 정도로
 
조그맣다. 더구나 다른 후대의 사원들과는 달리 탑 하나 덜렁 있는 일탑형 사원이어서, 이후의 화려하고

울룩불룩한 사원들의 실루엣과는 영 달리 한번 볼록, 하곤 끝이다.

꼭대기까지 끙끙대며 기어올라가 보았다. 저 구멍 안에는 뭐가 있을까 싶어서. 팔을 괴고 누운 와불이 놓여있고

앞에는 향과 꽃이 빼곡하게 들이차있었다. 원래 이 곳은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교 사원이라던데, 사실 이 땅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교도인 거다. 지금처럼 민족 국가 단위로 그 땅위의 소유주를 주장하고

승인했으니 망정이지, 과거의 힌두교 선인들이 보았다면 당장 제단을 뒤엎고 불상을 깨뜨렸을 일이다.

가파른 벽돌탑, 붉은 기가 언뜻언뜻 배어나는 모퉁이에서, 벽면 귀퉁이에서 마성의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저런 색깔은 아마 캄보디아의 사원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낑낑대며 내려오는 길, 70도의 각도라곤 하지만 체감하기론 거의 90도에 가깝다. 모로 비튼 발바닥이 겨우

지탱해낼 만큼 깔려있는 계단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에잇, 귀찮은데 훌쩍 뛰어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 박쎄이 참끄롱은 '날개로 보호하는 새'를 의미한다고. 그냥, 사원 안에서는 그다지 새라거나 날개라거나

따위의 이미지가 구현된 부분은 못 봤던 것 같다.

뚝뚝을 타고 첫날 자전거로 돌며 만났던 앙코르 톰 내부를 다시 한번 돌아나오는 길. 정말, 자전거로 달릴 때와

차로 달릴 때, 그리고 걸어서 볼 때 눈에 잡히는 풍경이 다르다. 자전거로 달릴 때는 물론 언제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차 안에서나 걸어가면서 뒤로 흐르는 풍경 따라 고개를 한없이 돌릴 수는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다시 만난 앙코르 톰 '승리의 문', 안녕, 크메르의 미소씨?

왠지 전에 봤을 때랑 분위기도, 뉘앙스도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아서 잠시 뚝뚝에서 내렸다. 이 녀석,

햇살의 강도니 각도니 그런 것들에 따라 느낌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 같다.

45도쯤 비튼 각도, 약간 아래에서 위로. 조명이 살짝 위에서부터 스미도록.

'크메르 미소'씨의 얼짱 각도 뽀샵사진.





쁘리아 칸, 크메르어로 '신성한 검'이라는 의미의 남성적 기풍이 물씬한 사원에 도착해 자전거를 내리자마자

쫄래쫄래 쫓아오는 아이들.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거나 웃음을 보이면 안심한 아이들은 마음놓고 말을 걸고

물건을 내밀고 지칠줄 모르고 따라온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 어떻게 그리도 하나같이 이쁘고 눈이

맑은지 웃음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이라도 하듯 쫓고 쫓기는 정신사납고 부산한

놀이를 좀 하다가 끝내 털썩 주저앉아 항복하고 만 내게 사진찍어달라며 활짝 웃어주던 아이.

쁘리아칸은 앙코르톰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커다란 사원이다. 한때 불교 승려가 천명을 헤아리던 거대 사원인

동시에, 왕궁이자 도시의 기능도 병행되었던 네모반듯한 계획도시이기도 하다. 정글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포위하고 슬금슬금 침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사원 내부의 통로들.

사원 중간중간에 배치된 경비원은 딱히 여행객들의 움직임을 제재하지는 않는다. 관람 동선이나 제한구역 등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거대한 사원을 돌아다니다 보면...길을 잃기도 한다.

좌우대칭에 엄격했던 크메르 유적들 안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다. 어디가 남쪽인지 이글대는 태양을 보고

가늠해 볼 밖에 없는 거다.

가루다, 한국에서는 불교적 전통에서 '금시조'라고 이야기하는 이 조류의 제왕은, 비슈누를 태우고 다니는

커다란 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사원을 이고 있다는 듯 튼실한 '꿀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통로. 아무리 캄보디아, 앙코르왓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해도 워낙 많은

건축물들이 산재한 터라 생각보다 여행객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몇몇 주요 건축물만 빼고.

얼핏 보면 조그마한 집 하나가 옆의 나무에 치여서 붕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눈의 착각. 실제로는

꽤나 큰 사원인데다가 그보다 훨씬 징그럽도록 크고 거대한 나무다.

사람과 비교컨대 이정도 사이즈. 스펑나무라는 이 나무의 발육속도나 생장력은 어마어마해서 삽시간에 건물을

잡아먹곤 한다고, 그나마 이건 계속해서 신경써 통제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벽면을 움켜쥐려던 거대한 나무뿌리를 잘라서 생장억제제를 투여하기도 한다고.

틀림없이 이 사원 어딘가에 자신의 위치가 있었을 돌들이, 더이상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려버렸다. 그렇지만 그 위에는 이미 또 다른 사람들의 소원이 조그마한 돌멩이로 쌓이기 시작한

셈이니, 결국 어쨌거나 여전히 충실하달까.

무희의 홀이라 이름붙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들머리, 사원에 소속된 무희들이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했던

장소라 해서 '무희의 홀'이라고 한다. 공간에 맞는 인테리어, 무려 열세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동작이 조각된

문틀.

뱀의 신, 나가를 타고 있는 새의 신, 가루다. 아주아주 전형적인 크메르 유적군의 난간 '액세서리'.

잠깐 앉아서 쉴 만한 그늘을 찾고 나니 딱 이녀석과 눈이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뒤엣녀석은 이미 두 발만

남긴 채 자연으로 돌아갔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천년 가까이 사원을 수호하는 사자 한마리.

다소 이국적인 건물이다 싶어 가이드북을 펼치니 역시, 그리스풍의 건축물이라고 딱 찝어놓았다. 여기가

바로 '쁘리아 칸', 신성한 검을 모셔놓았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생긴 검이었을까.

유난히 촘촘하게 세워진 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고이 모셔져있었을 과거 '신성한 검'의 잔영이 보이는 듯 했다.

나의 상상 : 뱀의 형상을 한 왕의 침대같은 곳에 누워 육감적인 여성으로부터 크메르식 마사지를 받고 있는

오만한 표정의 남자. 이건 당대 크메르 왕국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걸까.

가이드북의 '정답' : 힌두신화에 따라 한 우주의 주기가 파괴되고 지금의 세계가 오기 전에 비슈누가 우유의

바다에서 큰 뱀 위에 누워 다음 세상을 명상하고 있는 장면.

나의 상상 : 퍼덕퍼덕 날아다니는 천사들을 배경으로 한 수레 위 가부좌 아저씨가 벌거숭이 아저씨들로부터

신앙고백을 받는 장면.

가이드북 : ...(침묵, 설명없음)

연씨무늬 창문살이란다. 뜨거운 햇살을 막으면서도 통풍을 원활하게 하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조상님의 지혜'인 거다. 꼭 한옥이 어떻네 온돌이 어떻네 하면서만 찾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조상님의 지혜',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선배 인류에 대한 존중, 경탄의 표현이니까 말이다.

중간중간 세워져 있던 No Touch. 흔히 '노다지'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구한말부터 한반도에 들어와 지금의

북한 지역 금광을 채굴하던 서양인들-대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갱도 안에서 금을 캐던 한국인 인부가

금을 발견하고 나면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노 터치! 노 터치!', 그로부터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던

'노터치'란 표지판이 기우뚱 위태롭게 선 저곳도 캄보디아 현대인들에게, 인류에게 '노다지'와 같은 곳.

비록 이렇게 새초록한 이끼가 무성해지고,

문틀 가득 세심하게 조각된 무늬들이 손을 타 닳아갈 지언정,

여전히 사람들은 중앙 성소를 찾아 순례하는 마음으로 사원을 돌아 보는 거다.

앙코르왓 지역 내 어느 사원에서든, 영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 등 세계 언어로 가이드를 해주는 캄보디아

현지인 가이드들이 일군의 여행객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 중 한 영어 가이드가 설명하던

이야기를 훔쳐들으며 함께 감상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를 본딴 여신상이라던가.

같은 여신인데, 조명이 없을 때의 은은하던 미소가 조명 아래에선 '쥐잡아먹은 듯한 입술'로 덮여버렸다.

여기는 그 가이드가 은밀히(?) 안내해주며 팁을 요구했던 또다른 숨겨진 여신상. 보존 상태도 훨씬 양호하고

표정도 훨씬 당당하다. 여신이 아니라 여왕의 풍모가 풍겨난다.

한시간반 정도 둘러보니 다 둘러봤다 싶다.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본 통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지는지. 사원의 네 개 대문에서 중앙성소로 이어지는 통로 중

서쪽에서 이어지는 통로는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중앙, 왕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신하들의 머리가 숙여지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인 셈.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심지어는 수원화성에서도 왕이 지나다니는 문과 신하들이 다니는 문의 크기가 다르듯 여기 역시

마찬가지 아이디어가 건물에 반영된 거다.

머리가 날아가버린 수문장의 상이다. 이 곳을 공략했던 외적들이 크메르의 기운을 쇠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파괴했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기운'을 꺽기 위해 이러저러한 상징을 깨부수고 파괴하는 일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은 자취가 남아있는 듯 하다. 백두대간의 쇠말뚝도 그렇고, 태국의 무수한 머리없는

부처상들도 그렇고.





앙코르 톰을 벗어나 소위 '그랜드 투어 코스'를 자전거로 돌아 보기로 했다. 네모반듯한 앙코르 톰의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동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나가면 '스몰 투어 코스'로 작은 원을 그리며 앙코르왓으로 돌아오게

되고, 북쪽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랜드 투어 코스'로 좀더 많이 큰 원을 그리며 한나절 코스가 되는 거다.

사실 한나절 코스니, 반나절 코스니 미리 재단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가서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몇시간이

지나가던 앉아서 쉬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서 아침에 대략적인

스케줄만 스케치하듯 잡고서는 나머지 디테일은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채우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북문에도 여지없이 눈똑바로 뜨고 앙코르 톰을, 씨엠립을, 캄보디아를 지키는 '크메르의 미소'. 네모나게 각진

얼굴에 저런 은근한 미소를 물려주지 않았다면 꽤나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곳에도 역시 깊고 넓게 파인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거대한 뱀의 몸뚱아리를 줄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 신들이 있다. 감사해요, 덕분에 다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겠군요.

쁘레아칸(Preah Khan)으로 가는 길 중간, 느닷없이 마주친 한무리의 아이들. 축축 늘어져있는 가지에 매달려

그네처럼 좌우로 거침없이 흔들기도 하고, 해먹인 양 편히 기대어 쉬기도 하고, 쪼꼬마한 아이들도 나무를 꼭

쥐고서 놀고 있는 게 꼭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도 가끔 나타나 화제가 되고 하는 '정글 인간', 십수년씩 혼자 정글에서 동물들과 생활했다는 그들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지내던 게 아닐까. 정글 깊숙이 우거진 나무들에 기대어 쉬고,

놀고, 잠들고. 저렇게 많은 아이들을 품어 주고 버텨주는 나무가 듬직하다.

앙코르 왓 내부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몇 킬로미터씩 가야 띄엄띄엄 있는 수준인데, 가끔은 입장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는 유료 화장실도 있다. 자전거를 격하게 달린지라 장 활동이 활발해졌는지, 화장실의

위치 추적에 예민해졌던 그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났던 '한국-캄보디아 우호의 숲'이라고 읽히는 낯익은 글자.


의전 원칙에 따라 자국 국기를 왼쪽으로, 외국 국기-여기선 태극기-를 오른쪽으로. 자국어인 캄보디아어로

먼저 소개를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보질 못하겠고, 한글로는 한국이 먼저 나와 '한국-캄보디아', 그다음

병기된 영어로는 'Cambodia-Korea'로 자국이 먼저 나오고. 나무랄 데 없는 배치다.

우호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장실.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건물을 따라 숲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뭐, 딱히 다를 건 없었고 그냥 여느 앙코르 왓 내부의 정글과 같이 치렁치렁하고 빽빽한

정글, 숲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한 장. 왼쪽부터 보자면, 흡연 금지다. 아무래도 정글에 목재 건물이니

화재 예방이 중요한 거다. 그담 변기뚜껑에 올라앉아 일보지 말라는 표시, 워낙 많은 불특정다수가 쓰는 공용

변기이다 보니 더러워지기 쉬울 테고 그럼 또 저런 자세를 부득불 취해 더욱 더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저 자세로는 물이 사방으로 튈 텐데.ㅡㅡ;; 세번째는,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발 닦지 말라는 건지

신발을 닦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날이 워낙 더운데다 여기 오면 아무래도 많이 걷게 되니 발 한번 씻고

나면 피로도 좀 풀리고 좋지 않나? 좀 이해가 안 되는 표지다. 마지막 그림처럼 샤워하지 말라는 거야, 다른

사람에 민폐도 될 수 있고 '선녀'처럼 옷을 분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 중 하나를 어기고 말았다. 너무 더운데다 이미 옷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 어쩔 수 없었다는.


문둥이왕 테라스에 길게 이어진 건 바로 코끼리 테라스, 여기는 앙코르톰 동쪽 '승리의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개선군이 왕에게 승리를 보고하던 곳이라 한다. 코로 연꽃을 휘감아 왕에게 바칠 태세를 갖춘 코끼리

코들이 벽에서 뻗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코끼리들의 육중한 몸으로 벽을 쌓아 왕의 전면에 도열시켜 놓았음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굉장히 유니크하면서도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건축물이다.

코끼리 코, 하면 생각나는 건. 근데 돌로 깎였음에도 미끈하게 쭉 뻗은 코끼리 코라기보다는 팔을 스트레칭하는
것 같이 나와버렸다. 아놔.

통일신라시대던가, 이 땅에서 발굴된 막새-기왓장-무늬에도 비슷한 그림을 분명 본 적이 있다. 흔히 요새

'치우천황기'라고 흔드는 데 들어간 그 그림 말이다. 그건 사실 한민족의 고대 인물을 드러내기엔 다소 적젏치

않은 상징일지 모르겠다. 캄보디아에서도, 다른 불교 베이스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인 탓이다.

('치우천황'이란 인물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왜곡이 중국에 의해 이뤄졌고, 그게 아시아 문화권 일반의 악귀,

라거나 악귀를 쫓는 무서운 신, 의 이미지로 변용되었단 점을 감안해도 그렇단 얘기다.)

여기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저 사자의 뒷태. 완전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의 조화라니. 사랑스럽다.

뭐랄까, 카메라 광고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어쩌구 하는 비를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지겠다. 두다리를 허공에서 펄럭이며 날고 있는 압사라 여신도 비웃었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왕이 바라본 풍경은 또 어땠을까, 싶어 휘휘 둘러보았다. 우선 정면.

멀리 보이는 건축물들은 원래 창고 용도로 쓰이다가, 나중에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일종의 영빈관으로

쓰였을 거라는 게 가이드북의 설명이지만 글쎄. 저런 데 사람이 살기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굴뚝

아니면 무슨 화장터 같이 생겼는데.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저쪽에 문둥이왕 테라스와, 길게 이어진 코끼리 코가 인상적인 코끼리 테라스.

오른쪽, 문무백관들이 왕의 좌우로 호위하듯 둘러서 있었겠지. 빳빳한 밀랍인형처럼.

관광객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산하고 다소 휑한 분위기, 운치를 더하듯 어슬렁대는 검정개 한마리.

가만히 앉아 쉬고 있자니 휘적휘적대며 느릿하던 녀석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심심했던 게냐.

왕이 서 있던/앉아 있던 바로 그 장소. 다소 기울어져 보이는 게 카메라 잡은 이의 농간이었는지 아님 원래

저 지반이 살짝 뒤틀어져 기우뚱해 있던 건지 모르겠다.


왕의 시각에 빙의되어 보자, 이게 바로 왕의 시야.




여전히 앙코르톰 내부의 이야기. 3kmX3km의 거대한 계획도시의 내부에 돌로 축조된 궁전과 사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으니 둘러 보는 데만 한나절이다. 아무래도 크메르왕국의 최전성기이던 시절, 황금의 도시라 불리던

때 지어진 수도니만치 당대의 공력을 총동원했던 게다.

그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라 여겨지는 자야바르만 7세, 이 문둥이왕 테라스의 주인공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치하에 크메르 왕국 전지역에 병원들이 설치되고 정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가 문둥병/나병에

걸렸었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설들도 많다. 캄보디아의 많은 사원이 대부분 죽은 이들을

봉안한 무덤의 역할도 겸하고 있듯 이 테라스에도 왕실 전용 화장터가 설치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테라스 위에 앉아 있는 인물이 야마(염라대왕), 즉 죽음의 신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학자들 간의 설왕설래야 어떻든 간에, 이 조각상은 몇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옷을 안 걸치고 있는, 혹은

옷의 실루엣을 거의 조각해 넣지 않은 모습의 상이라는 점(누군가 저렇게 옷을 계속 공양하길 바라고 만든 양),
 
생긴건 남자임이 분명한데 앞면을 보면 뭔가 남성의 심벌이 없이 밋밋하다는 점(신의 양성성을 표현하고 싶던

걸까), 그리고 조각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뭔가 깔깔한 느낌이 의도적인 양 느껴진다는 점(이게

바로 이 조각상이 문둥병/나병에 걸린 인물이라 추측하는 이유라 한다). 차마 민망해서 앞면은 못 찍었다.ㅋ

문둥이왕, 혹은 염라대왕 혹은 다른 무엇, 그가 내려다보고 있던 풍경이 뭘까, 옆에 주춤 서서는 사방을 둘레

둘레 두리번거렸다. 우측에 보이는 길게 이어진 테라스의 요철, 그리고 오래된 것의 향취가 은근하다.

그리고 전면. 어라, 이 문둥이병 걸린 아저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걸까. 분홍색 귀여운 아이스크림차.

아이스크림 스티커가 나름 주의깊게 배치되어 나란히 붙어있는 걸 보면 왠지 저 차를 분홍빛으로 도색하고

스티커를 한장한장 울지 않고 삐뚤지 않게 세심하게 붙이려 노력했을 모습이 떠올라 재밌다.

아이스크림 차 옆으로 마치 무슨 제약회사 로고처럼 멋지게 자라난 거대나무. 짙푸른 녹색잎도 무성하고,

가지의 뻗어나간 모양이나 좌우 대칭의 형태가 장쾌하다. 넉넉히 사람 백명은 수용하겠다 싶은 짙은 그늘.

문둥이왕 테라스는 외벽과 내벽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테라스 위에서 내려서 벽면의 조각들을 보려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아까서부터 졸졸 우리를 따라다니던 녀석들이 계단에 기대 쉬고 있었다. 원달러원달러,

아저씨 멋져요, 일불일불, 이러던 애들. 과거 왕의 테라스였던 이 곳이 녀석들에겐 기대어 쉼직한 휴식처이자

일터인 셈이다.

앙코르왓이나 앙코르톰의 해자에는 원래 악어들이 득시글거렸다고 한다. 요새도 조금 깊은 정글에는 악어가

여전히 야생으로 살고 있다 하고. 그만큼 그 사나움과 파워에 익숙해서겠지, 조각에도 악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흉폭한 모습 그대로지만, 살짝 생각에 잠긴 듯한 눈매와 턱의 모습이기도 하다.

얼굴 아랫쪽 벽돌이 떨어져 나갔더니 더욱 무시무시하다. 빨간 마스크 밑에 쫙 찢어진 입을 숨기고 다닌다는

'빨간 마스크' 아주머니 같기도 하고.

'헐벗은' 여성들의 조각도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어서, 왠지 이 여성들도 악어처럼 용맹스러울

거 같아 보인다.

이녀석 웃는 모습이란, 왠지 주는 거 없이 얄밉다. 빙글빙글대는 웃음이 입가에서 뱅글거리는 느낌.

테라스도 그렇고, 다른 시엠립의 사원들도 모두 일정 수준의 복원을 거친 터라, 이런 자국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사방에 흩뿌려져있던 돌무더기들에 하나하나 이름/번호를 붙여 차근히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국사학자 내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었다.

뭔가 전투중인 장면이다. 날카롭게 조각된 돌칼들이 번득번득하고, 적군의 신체 중 아무데나 거침없이

겨냥되는 와중에 이 녀석은 왠지 술을 마시며 칼을 제편에 휘두르고 있는 것 같다. 병나발 불며 아군을

희생시키는 망나니 캐릭터랄까.

아...바이욘의 큰바위얼굴들 표정도 미묘하게 좋았었지만, 이 표정만큼 푸근한 건 그 전에도, 이 이후로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헤죽, 하고 큰 입을 쫙 땡겨벌리며 웃고 있는데, 눈도 가만히 따라 웃고 있다.




'나가'란 힌두교/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뱀신'으로, 그 형태상 주로 난간에 많이 응용된다. 앙코르톰 내

문둥이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뒷켠에 있는 뗍 쁘라남(Tap Pranam) 뒷쪽 '쁘리아 빨리라이'에 있는 난간도

마찬가지.

몸의 몸통은 난간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뱀의 (무려) 일곱개나 되는 머리는 난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뱀 두마리가 인도하는 통로, 머리갯수로만 따지면 열네 머리가 인도하는 통로를 따르면 불교사원이

나타난다.

약간 이지러진 건축물, 그다지 임팩트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문 위에 조각된 것들이 꽤나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한쪽 조각면에 '우뚝' 서있는 부처, 그리고 밑에 옹송그리고 자세를 한껏 낮춘 '가련한' 중생들. 이런 식으로

신성성과 위엄을 강조한 조각은 사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조금 거부감이 든다. 쟤넨 무슨 벌레처럼.

가이드북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해놓았던 '쁘리아 빨리라이'의 북쪽 벽. 앙코르 유적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조각이라고 한다. 부처가 성나서 폭주중인 코끼리 머리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왠지

하얗게 녹아내린 건지 색칠이 된 건지 그런 바람에 좀 제대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사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 이리저리 강렬하게 뻗어나간 뿌리가 사원의 벽돌들을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생명체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빤딱빤딱 빛나며 비닐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게 무슨 인공적인 조형물 같기도 하고, 허옇다 못해 펄빛나는 형광까지 감돌고 있다.

윗둥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다니.

캄보디아에서 본 '나무'들은 한국에서 보아온 '나무'와는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무'를 그려라 했을 때

그릴 법한 아기자기하고 다소곳한 생명체가 아니라, 껍데기 안쪽에서 뭔가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느낌, 강렬하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건 나무의 '발'이라 불러 마땅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끄응~ 소리를 뱉으며 땅 속에

박아뒀던 발을 끄집어 쿠웅, 쿠웅 걷듯. 이런 이미지는 사실 '반지의 제왕'에서 구현됐댔다.

나무로 포위된 사원은, 가운뎃 부분만 위태로이 온전하다. 아직은. 알고 보니 저 위에 굴뚝처럼 뾰족하니

세워진 부분은 나중에 새로 쌓아올려진 부분이라 한다.

위태로이 세워진 탑 안에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나도 저 안을 들락날락 거렸지만 막상 내가 들어갈

때는 못 느끼던 위태로움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생겨난다.

돌아나오는 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른히 늘어져 있던 개가 귀뒤를 긁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님 착해서

그런지 좀처럼 짖지도 않고 지들끼리 쫓고 쫓기며 시끄럽게 놀지도 않는 개들이다.

다시 돌아 나오며, 이번엔 뱀 두마리, 뱀머리 열네개가 수호하는 통로 옆길로 나란히 뱀과 함께 걸었다.




앙코르 톰 내부를 비롯, 앙코르왓 유적군 모두에 화장실은 이런 식으로 안내되어 있다. 허름한 안내판만큼 화장실도

허술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글쎄. 화장실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앞에 관리인이 목욕탕 티켓파는 곳처럼 앉아 있고, 여자가 다가오면 왼쪽, 남자가 다가오면 오른쪽을 손짓한다.

앙코르톰 사원이란 사실 가로 3킬로, 세로 3킬로의 거대한 성곽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쪽 중심부에 늘어선

바이욘, 바푸온 등과 같은 사원과 궁전터 등이 실제 앙코르톰이 품고 있는 유적들인 거다. 마치 크메르 왕의

집약된 중앙집권 권력을 반영하듯 하나로 응축된 사원들과 궁전들, 그런 유적들이 뭔가 하나로 눈이 모이는

집약식 볼거리라면, 뗍 쁘라남이나 쁘리아 빨리라이는 슬슬 산책하며 이리저리 휘휘 둘러보기 좋은 그런

분산식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뗍 쁘라남, 이라는 이곳은 돌로 잘 포석이 깔아진 이 길이 인상적이었다. 잔뜩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잘 다듬어진 돌길을 걷노라면, 가뜩이나 여행객도 드물어 호젓한 이곳은 고요한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뒤편으로는 이렇게 야자수를 큰 칼로 썰어 빨대를 꼽아주는 자그마한 행상도 있다. 물이 꽉 들어찬 살풋

덜 익은 코코넛은 칼이 닿자마자 찍, 하고 물을 내뿜고 만다.

대불좌상이 놓여있는 산책로의 끝. 그 오른쪽으로는 스님들이 묵고 있는 요사채..가 있다고 한다. 불상도 최근의

것인지 색깔이 아직 싱싱한 돌멩이다.

실제로 지금 꾸려지고 있는 사원인지 감색 옷을 입은 스님이 앞에 앉은 두 사람 등목을 시켜주고 있다. 시원하게

물을 뿌려준 스님, 그리고 시원하게 사방으로 튀기는 물방울. 아니 근데 오른쪽 사람은 여자였었나...?

사람이 살고 있음이 틀림없는 집. 우리네 시골 집 툇마루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분위기.

앙코르왓 내부에서 기거하고, 수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다. 이렇게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오는 수돗가도 있고.

거대하고 묵직하고 '케케묵은' 사원들이 가득해 보이기만 하던 앙코르왓 내부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저 봉곳한 궁둥이와 허리라인이 예술이다. 도무지 저 엉덩이로부터 흘러넘치는 마력같은 매력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함께.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쭉 펴고 엉덩이를 있는 힘껏 뒤로 빼고 경계에 들어갔다.





바푸온 사원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나타나는 피미니아까스, 그리고 옛 궁전터. 건장한 금발남자 세네명이 우르르

몰려다니길래 슬쩍 끼어들어 말을 섞어봤다. 엑, 회사를 삼개월동안 쉬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무지하게 부럽긴

했는데, 사진은 참...이상하게 찍어준다.  

피미니아까스란, 궁전 내부에 있는 사원이다. 궁전은 이미 다 헤집어져서 주춧돌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가보지 않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사원인 이 곳만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저 어마어마한 경사도. 인간이 아닌 신이 걷는 길이라

하여 일부러 저렇게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앞에 버티고 선 사자상의 각목같은 다리가 아쉽다.

여기도 노골적으로 각목같은 사각기둥 모냥의 네 받침대 위에 둥둥 떠있는 조각상. 복원을 어정쩡하게 시멘트로

눈속임하듯 발라놓느니 차라리 저렇게 노골적으로 "여긴 파손된 부위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게 솔직하지 싶다.

사원 벽면 돌 틈새에, 그리고 벽돌 한장한장에 숭숭한 구멍 틈새를 놓치지 않고 무수하게 싹을 틔운 초록생물들.

왠지 '토토로'에서 우산든 토토로가 씨앗들을 틔우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귀엽고 작은 잎새들이지만, 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마 금세 전부 솎아내질 거다.

신이 걷던 길을 인간이 오르려니, 쉽지 않다. 피라밋 오르는 것도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로 만끽되다가 사람

몇명 떨어져 죽고는 금지되었다고 하던데, 여기 경사는 피라밋보다 더 높은 거 같다. 보통 사원 네 면에 모두

이런 계단이 있는데, 약간씩 경사가 다르다. 허물어지고 이지러진 탓도 있겠지만, 잘 돌아보면 특정 방향

계단이 일부러 좀더 완만하게 만들어진 곳도 있다.

이 곳의 서쪽 계단을 통해서만 3층의 성소까지 갈 수 있다. 경사가 약 40도에 이른다는 이 계단 아래에도 여지없이

'곰팡이처럼' 피어난 녹색의 여리여리한 이파리들. 이 계단 말고 돌계단을 직접 밟고 가다 보면 가끔은 덜컹덜컹

움직이는 계단석이 있었다. 순간 움찔하게 되는 상황.

3층 성소에 해당하는 지역. 예전에는 원래 ‘황금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3층 꼭대기.

원나라 때던가, 중국 사신이 이곳에 거주하며 남긴 글에 따르면 여기가 온통 황금으로 치장된 그곳이라지만,

지금은 네발짐승처럼 팔다리를 온통 몸무게 지탱에 쓰는 여행자들만이 굳이 올라가 보는 곳.

낑낑 올라가서 내려다 본 피미아니까스의 연못. 여기는 왕과 왕비가 동침하기 전에 스르륵 옷가지를 풀어헤치고

몸을 씻던 곳이 아닐까, 아니면 얼핏 어디선가 본 것처럼 후궁들이 몸을 씻었던 곳인지도. 힌두교의 사제들은

정절을 어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 곳에서 딱 이런 시선으로 마치 나뭇꾼이 선녀 목욕 훔쳐보듯 밤마다

벌건 눈으로 두리번거렸을지도 모른다.

어느 사원 근처에나 쭉 늘어서 있는 행상들. 잡다구레한 액세서리도 팔고, 시원한 물과 음료는 기본이고 코코넛을

큰칼로 손질해 즉석에서 빨대를 꽂아 코코넛주스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예외없이 눈크고 이쁘장한 아이들까지 완비.

사람 댓명이면 꽉 차버릴 만큼 좁은 정상에는 향꽂이랑 조그마한 함이랑 뭐 그런, 예불 드리기에 딱 좋은 일습이

구비되어 있었다. 뭐랄까, 저 사진만 보면 왠지 계룡산이니 마니산이니, 그런 곳에서 예불을 보거나 나름의 종교의식을

치르는 분들의 장비랑 그 분위기랑 비슷하다.

앙코르왓의 돌들은 전부 이런 사암석, 라테라이트라고 한다던가. 흙을 물에 개어서 벽돌을 만들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벽돌이 된다고 했다. 부분부분 누런색이 끼어있는 걸 보고 혹시 과거의 금칠이 남아있는 건가

눈을 크게 뜨고 꼼꼼히 뜯어봤지만 아니었다는. 손톱으로 좀 긁어봤어야 했다.

내려가는 길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올라오긴 햇는데 막상 내려가려니 그 체감하는 경사가 또 다른 게다.

밑에서 올라오려 기다리는 서양 아주머니들이 몇 분 있길래, 위에 아무 것도 없다고 얘기해줬더니 마침 잘됐다

싶은지, 냉큼 앞장섰던 의욕에 찬 아주머니 한 분 손을 이끌고 뒤로 이끄셨다.

사진이 좀 작게 찍혔는데, 저 달구지 같은 것 위에 올려져 있는 건 무슨 조각상의 몸통이다. 아마도 배꼽부위쯤.

그야말로 유적이 발로 차이고 홀대받을 정도로 넘쳐나는 공간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수퐁나무, '툼레이더'에서 그 신비로운 폐허를 만들어낸, 그밖에도 다른 앙코르왓 유적들을 잡아삼킨 주인공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를 연상케 할 정도로 두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거침없는 이 나무는, 그래도 현지인들에게

큰 효용이 있다고 한다. 저기서 나오는 검정액체가 일종의 기름 대체물이 된다는 것. 호롱불도 밝히고, 배도 용접하고.

그러고보니 캄보디아는 여전히 전기가 귀하여 어두워지면 이곳 사람들은 바로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궁전터를 돌며 마주친 또다른 연못. 어렸을 적 동남아 지역에 대해 어렴풋이 들었던 내용 중에는, 비가 오고 나면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기는데 그 안에서 바로 고기들이 뛰어논다던가. 그토록 풍족하고 먹기 살기 편하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발전이 늦었다느니, 식의 왜곡된 사실까지는 당시에도 별로 와닿진 않았지만,

비가 내리면 물고기가 뛰어노는 물웅덩이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문득 무너져 내린 왕궁 담장. 나무들이 빼곡하고 잎사귀가 무성해서 시야가 많이 가리지만, 답답한 느낌보다는

뭔가 야~ 눈이 좋아지겠다, 라거나 피톤치드를 많이 흡수하겠네, 라는 식의 상쾌한 기분.

쭉쭉 뻗은 미끈한 나무들. 잘 생겼다, 라는 느낌도 있지만 워낙 크다. 머리 하나쯤 큰 서양인의 훤칠하고 우월한

골격을 보는 것 같다.

온통 녹조류가 끼어서 초록빛 스프가 고인 것처럼 되어버린 연못. 뭔가 신비한 것이 저 아래 숨어있지는 않을까,

마주한 연못 하나가 문득 몽환감을 불러일으켰다.



바푸온으로 향하는 잘 닦인 돌길은 여느 힌두교 사원과는 달리 '나가 난간(뱀머리와 몸통으로 장식된 난간)'이 없다.

지상과 천국을 잇는 다리를 재현하려는 의도였다고 추측된다는데, 탁 트인 채 주변 녹지와 이어져 있어 살짝

어색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다.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에 한 컷. 그런데, 저 너머 천국은 얼핏 봐도 공사중.

양쪽에 배치된 인공 연못은 열대 기우 특유의 끈적한 느낌이 묻어났다. 뭔가 쏴한,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아니라

끈적한 젤리나 타르처럼 몸에 덕지덕지 묻어날 것 같은 연못물. 바람이 일면 수면이 푸딩처럼 흔들렸다.

사방에 흩뿌려진 돌덩어리들에 쭈그려 붙어앉아 뭔가를 열심히 정돈하는 사람들. 혹은, 단순히 잔디깍는 중인지도.

'바푸온', 숨긴 아이라는 뜻의 사원은 전쟁 때 아이와 아내를 숨겼다던가, 그런 연유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지금이야 무너지고 부서져 사방에 구멍이 숭숭 난 채 헐벗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피신자들을 품넓게 넉넉히 안아줄
 
만한 커다란 사원 아니었을까. 아마도 새들마저 조심할 만큼의 위엄이나 신성을 띄고 있었을 거다.

네모 반듯반듯한, 게다가 계단 차곡차곡한 연못. 아마 사원에 들어가기 전 몸을 씻는 공간이었지 싶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물이 갖는 이미지란 별 수 없는 거다. 정화, 죄씻음, 그런 이미지. 인간의 상상력이란 의외로 한계랄까

그 구획이 뚜렷하다. 마치 저 연못처럼.

인류에게 공동된 거대한 지식창고가 우주 어딘가에 있고, 인류의 각 민족들은 거기서 조금씩 지식을 끌어쓰고

있다는 뉴에이지류의 상상력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먼 타지에서 '별수 없군'이란 생각을 들게

만드는 몇가지 진부하고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그 결과물을 만날 때.

가까이서 바라본 바푸온 사원의 본전은 생각보다 많이 뭉개져있었다. 복구를 한다고는 하는데, 오랜 내전이나 

킬링필드, 인접국과의 전쟁 등 여러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도면이 사라지기도

했다는데, 엄격한 좌우대칭의 원칙을 지키는 공법과 여러 노력을 기울인 덕에 나름 복원을 재개하고 있다고.

캄보디아는 근 칠십년이던가, 19세기 중반이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었다. 아마 앙코르왓이 재발견된 것도

프랑스 식민시절이 아닐까 싶은데, 이 곳의 수많은 유적들은 지금 각국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거나 유지되고 있다.

당장 바푸온사원도 이렇게,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원이 한창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캄보디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과거'를 돌보기엔, 그들의 '현재'가 너무 숨가쁘다.

돌덩이에 그려진 전 식민국가 프랑스의 자유/평등/박애 삼색기.

태양을 피하는 법. 몸을 숨길 조그마한 그늘막 아래서 뜨거운 태양볕을 피하고 있는 인부들. 저 그늘막의 남루함

혹은 빈티지스러움은 왠지 천년을 지낸 사원에서 느껴지는 '남루함' 혹은 빈티지스러움에 필적하고 있다.

새로 해 넣은 이가 과장스럽게 반짝거리듯, 뭔가 새로운 걸로 '땜빵'해넣은 곳이 온갖 시선을 한몸에 받듯,

반짝거리는 복원부분. 보통 새로 기워진 부분이 이전 몸체에 융화되려면 그간 본체를 써온 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던데. 바푸온 사원의 새롭게 복원된 부분이 자연스럽게 원형에 녹아들려면 또다른 천년쯤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

문틀에 조각되어 있는 동물들의 움직임이, 마치 문틀을 발로 차 깨고 어디론가 도망가려는 것처럼 역동적이었다.

아마도 사원의 복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무실로 쓰고 있지 않을까, 싶도록 사원 옆에 딱 붙어 세워져있던

'움집'. 아기돼지 삼형제 중 게으른 첫째가 지었다던 지푸라기집이 이런 거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그 첫째돼지는

게을렀던 게 아니라, 동남아와 같은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엉성해보이는 외관은 실은 바람 숭숭 통하기 위한 지혜이며, 햇볕만 막음 되니 공들여 담쌓고 벽세울 필요도 없을 터.

사원 위에 올라 내려다 본 천상과 지상을 잇는 참배로. 저 멀리 보이는 건 한무리의 참배객, 아니 단체여행객.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이나 영어 가이드가 붙었다면 설명도 훔쳐듣고 좋았을 텐데, 한템포 빨랐다.



바이욘은 크메르왕국의 전성기를 구축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무덤으로 추측되고 있다. 바이욘에 있는 오십여개의

탑 네면에는 모두 사람 얼굴이 돌로 짜여져 있는데, 이 얼굴이 아마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로 죽고 나서도 왕국을

수호하겠다는 의지, 지켜보겠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해석이다.

바이욘에 들어가 돌아보기 전 한번 여행책자를 일별해 보았다. 뒤로 보이는 수많은 아이들은, 여행객의 복장, 말투의

힌트를 얻고 '안녕하세요 일달러, 니하오, 곤니찌와, 하이'를 넘나들며 조악한 악세사리를 다짜고짜 들이댄다.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왓 유적군의 대부분은 그의 치세 때 세워진 것들이다. 이름이 잘 안 외워진다면,

"잘 발음해봐" 자야바르만. 이제 한 큐에 외워버렸다.

캄보디아에 대한 몇 안 되는 이미지 중에 빠지지 않는 '압사라 댄스', 머리에 금탑같은 거 쓰고 손으로 인을 맺으며

추는 춤이 바로 이런 '압사라'들의 동작을 흉내낸 거다. '압사라'란, 태초에 세계가 거대한 우유바다였는데 그걸

신과 악마들이 휘저으며 세상을 창조할 때, 우유 거품에서 태어난 무희의 신들이다.

바이욘에 들어서니 이미 두 무리의 단체여행객이 회랑을 선점했다. 바이욘 회랑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가이드의

선전을 들으며 그들이 진격하는 사이,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사간 용과(Dragon Fruit, 龍果)을 까먹었다.

삐딱하게 세워진 위험 표지판만큼이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유적. 그렇지만 여긴 그래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라

잘 관리되고 있는 축에 속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깨달았다.

돌에 새겨진 조각이라기엔, 드문드문 곰팡이도 슬고 퇴락한 것처럼 보여서 무슨 그림 같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돌덩이였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저 씻겨지고 부서져 여전히 돌덩이 그대로였을 텐데, 사람의 손을 타고나니

돌에 시간이 새겨진다.

앙코르 톰은 4대문을 가진 성곽도시였다. 바이욘을 기준으로 남쪽은 귀족들의 거주지역, 북쪽은 왕궁과 사원이었다고
 
하며, 백성들은 악어가 사는 해자를 지난 성벽 외부에 살았단다. 돌로 만든 것들만 남아서, 지금은 가로세로 3km의

성곽과 내부의 왕궁, 사원들만 남아 있지만 이런 회랑의 벽화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다.

얼굴이 숨어있는 돌탑들, 이정도면 차라리 얼굴이 스며들은 돌탑이라는 게 나을지도. 20만개가 넘는 돌들을 쌓아올려

만들어졌다는 이 얼굴들은 약간씩 표정이 다르다. 세월에 따라 버즘처럼 피어오른 얼룩이들이 뉘앙스와 표정을

바꿔놓았는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두툼하고도 커다란 입을 벌려 껄껄 대고 웃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입을 벌려 혀를 움직이고 이를 부딪혀 무언가 말을 만들어낼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양식화된 형태의 나무. 정글 지역의 나무답게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었다.

코끼리가 한바퀴 돌았나보다. 바이욘 사원의 문간 너머로 문득 잡힌 코끼리.

알고 보니 흡연 금지, 쓰레기 투척금지, 식사 금지, 음...떠들기 금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그리고 사원이니만치

민소매 대신 반팔을 입으라는 지침. 반팔을 입으라는 건, 사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서양인들은 차제에

선탠까지 같이 하고 싶은 듯 다들 바짝바짝 짧게 입었고, 나도 벌써 흠뻑 젖은 옷을 보니 차라리 나시가 낫겠다싶다.

희끗희끗한 붓의 터치감, 약간 탁한 초록빛 풀빛이 섞인 진회색의 사원. 불투명수채화 화폭 가운데에다 대고

사람이 얼굴을 마구 눌러대는 것만 같다.

낙서란, 어쩔 수 없다. 아예 정과 망치로 새겨버린 듯한 이 오랜 낙서는, 어느 시점부터는 '유적'이 될 게다.

회랑을 지나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 아무런 조명도 없는 그곳까지 스물거리며 기어들어온 정글의 햇살.

아래서 보면 살짝 웃는 거 같기도 하다. 훈남. 정면에서 볼 때랑 밑에서 볼 때랑, 이게 바로 얼짱 각도의 마법?!

원래 54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약 40개가 안 되는 탑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 탑 중 하나 안에 들어가보니

하늘이 저멀리로 밀려나있다. 하늘을 길어내릴 수 있을 법한 거꾸로 '우물'이다.

"Hey Ya hey Ya Fire Fire 오 아가씨 Yeah ya Yeah Ya Warning Warning No No"(냉면, 명카드라이브 中)

명수 생각하다. 이정도 가파름이라면, 제시카를 업어야 한다. 근데 낼모레 마흔인 내가, 내몸도 추스리기 힘들텐데.

시카 생각하다. 이정도 가파름이라면, 명수 오빠를 업어야 한다. 에효. (팬픽 '금단의 사랑' 51부 中)

이 사자상의 매혹적인 뒤태. 돌로 조각해서 만들었다기엔 너무 유연하고 봉곳하다.

어이, 비웃지 말라고. 사자상 뒷태 좀 감상했기로서니. 가까이서 보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들.

압사라 댄스 무희 복장을 하고, 여행객들과 함께 사진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처자들. 1 달러였던가, 나는

누군가 함께 찍힐 준비를 하고 있는 새 그녀들만 사진에 담아와 버렸다. 내가 들어있지 않아도, 내가 찍은

사진이면 만족한다.

누구라도 생각할 법한, 액자식 프레임 안에 담긴 '크메르의 미소'.

질문. 이 사진안엔 총 몇 개의 얼굴이 담겨 있을까요.

미소짓고 있는 압사라. 왠지 머리굵어지고 나서 석굴암에 다시 한번 가봤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거기에도 압사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좀.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얼굴을 정육점 회전분쇄기에 대고 갈아버린 것 같잖아. 근데 좋댄다.

돌들에 나 있는 구멍들은, 아마도 돌들을 서로 이어놓기 위한 이음새를 꼽아넣었던 자국 아닐까 싶다.
 
약간 폐허의 느낌처럼 돌조각들이 산재해 있는 바이욘의 내부 공간. 그래도 천년이나 무사히 버텨온 게 대단하다.

여긴 금세라도 이런 거대한 나무와 덩쿨들이 짖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정글'이란 말이다. 악어와 원숭이들이

뛰놀고 뱀들이 쉭쉭거리며 한동안 인적을 끊어놓았을 그런 깊은 야생의 정글.

그 와중에 마주친 고양이 한마리. 꺄아~ 이 곳의 고양이도 한국의 고양이처럼 보드라운 털실을 신고 살금살금

사람 사이를 돌아다녔고, 살짝 뾰루퉁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도함을 잃지 않았다.

목이 잘려나간 수문장. 신화와 은유의 세계였던 그 때 사람들의 사고를 어찌 오롯이 이해하랴만은, 이 곳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며 수문장의 목을 꺽고 조각상들을 훼손한 침략자들의 심보야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어쩌면 발전한 건 인간의 도구일 뿐, 그걸 다루고 이용하는 인간은 별반 진보하지 않았다. 어쩌면 철저히

분업화되고 실제 생산활동에서 유리된 현대인은 생존능력이랄까, 어떤 면에서는 퇴보했는지도 모른다.

올록볼록 양감이 뚜렷한 탑들이 천년을 버티고 서있었다. 아기자기하게 인공으로 꾸며진 작은 돌산 같기도 하고.

떠나기 전 뒤돌아 바라본 바이욘의 전경. '크메르의 미소'는 숨어버리고 '크메르의 사원'이 남았다.




흔히 '앙코르왓'이라고 칭하는 크메르 유적군은 멀게는 씨엠립 시내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롤루오스 지역,

37킬로미터 떨어진 반띠아이 쓰레이까지 포괄하는 넓은 지역에 수십여 유적이 산재해 있는 방대한 지역을
 
이른다. (사실 '앙코르왓'은 그 유적군 중 하나, 대표적인 하나의 유적 이름이다.) 캄보디아만 따로 다룬 안내책은

생각보다 많지도 않지만 보통 뚝뚝을 하루 종일 대절하는 것을 전제로 하루짜리, 혹은 삼일짜리 일정을 엇비슷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나름 좀 새로운 루트를 구상해봤다.


첫날(자전거) : 일명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코스. 오전에는 앙코르 톰(Angkor Tom)(바이욘, 바푸온, 피미니아까스,
 
옛궁전터, 문둥이왕테라스, 코끼리테라스), 오후에는 쁘리아 칸(Preah Khan), 니악 뽀안(Neak Pean),

따쏨(Ta Som), 그리고 쁘레룹(Pre Rup)까지.

* 자전거 대여료는 호텔에서 보통 하루 3달러, 예치금을 맡기기도 한다. 그랜드 투어 이외에 스몰 투어 코스가 있는데

이름 그대로 좀더 짧고 여유로운 코스가 될 거 같다.


둘째날(뚝뚝) : 외곽지역의 포스트들을 작정하고 둘러보는 코스. 오전에는 쁘라삿 끄라반(Prasat Cravan), 반띠아이
 
끄데이(Banteay Kdei), 쓰라쓰랑(Sras Srang), 반띠아이 쌈레(Banteay Samre), (한참달려) 반띠아이 쓰레이

(Banteay Srey), (한참달려) 오후에는 롤루오스 유적군(롤레이(Lolei), 쁘레이꼬(Preah Ko), 바꽁(BaKong)까지.

* 뚝뚝의 종일 렌트비는 12-15 달러 정도? 흥정하기에 달린 거 같다. 다만 반띠아이 쓰레이 쪽을 가려면 10달러 정도
 
비용을 더 내야 하니, 차라리 추가비용 내고 도는 김에 외곽지역을 다 도는 게 좋을 듯 하다.



셋째날(자전거 또는 도보 또는 뚝뚝) : 앙코르왓 유적군의 핵심, 앙코르왓과 기타 지역 둘러보는 코스.

오전에는 박쎄이 참크롱(Baksei Chamkrong), 앙코르왓(Angkor Wat), 승리의문(Angkor Tom East Gate),

오후에는 톰마논(Thommanom), 차우싸이 떼보다(Chausay Thevada), 스삔토마(Spean Thma), 따께우(Ta Keo),

따쁘롬(Ta Prohm), 프놈바껭(Phnom Bakheng)까지.

* 체력 상태에 따라, 충분히 도보도 가능할 만큼 오밀조밀 붙어있는 포스트들이다. 다만 도보라 해도 뚝뚝 등을

이용해 앙코르 왓 내부까지는 들어와야 하며, 씨엠립시내에서 앙코르왓까지 최소 5달러는 줘야 하는 듯. 그러느니

자전거나 뚝뚝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기도, 편하기도 할 거다.



기타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문의해주시면..최대한 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지만, 막상 이렇게 정리하고보니

기존 루트와 아주 다르진 않다. 다만 앙코르왓을 맨 마지막으로 아껴두었던 건 정말 잘 한 거 같다. 그걸 보고 다른 걸

봤다면 아마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듯. 갠적으론 반띠아이 쓰레이, 앙코르왓, 따 쁘롬이 정말 좋았다.

어쨌든, 그런 정도로 거칠게나마 일정을 짜두고 출발한 첫날 아침, 물안개 너머 어슴푸레한 앙코르왓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대로 앙코르 톰까지 직진. 남문을 지나기 직전이다. 이미 사람들이 바글대는 건가 살짝 긴장했는데

워낙 넓은 곳에 흩어지다 보니 별로 여행객이 많다는 느낌은 내내 안 들었던 것 같다. 남문 고푸라(현관문짝..

이랄까)에서 언뜻 내비치는 큰바위 얼굴이 보이는지.

난간에 장식되어 있는 사람의 형상. 실은 이런 장식 하나하나에도 과거 신화의 한 대목을 구현한 내용이 응축되어

있어서 아는 만큼 보이는 거고 더욱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거라지만, 모른대도 딱히 문제될 건 없다. 앙코르톰을

둘러싼 넓은 해자는 살짝 말라있었다. 유럽 중세의 성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깊은 해자와 도르레로 오르내리는

거대한 성문이 떠오를 텐데, 그 해자가 서기 천년경 크메르 양식으로부터 전래된 거란 사실은 꽤나 놀라웠다.

어디로 갈까, 여기는 어딘가 잠시 자전거를 내려 길을 살펴보고 있는 라이더 윤. 그러고 보면 이날 햇볕이 그리

뜨겁지 않아 왠종일 자전거를 타는 게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오후엔 스콜이 잠시 내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기도 했지만, 그 역시 더위를 식히는 데 일조했을 뿐더러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남문에서 쭉 올라가니 앙코르 톰의 대표 유적지, 바이욘Bayon이 있다. 캄보디아에 대해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이 거대한 돌머리, 이른바 '크메르의 미소'가 아닐까 싶다. 그 크메르의 미소가 사면에

그려져있는 탑이 백여개라던가, 그런 유적지가 바로 바이욘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정교하게 잘 쌓아올려진 완만한 굴곡 띈 돌탑들, 혹은 사원으로 보이지만 조금 눈살에 힘을 주고

눈여겨보자면 몇 개의 얼굴이 떠오르는 게 보인다.

앙코르 톰 주변을 코끼리로 돌아보는 여행자들. 쭉쭉 뻗어나간 나무들, 울창한 정글 사이를 저렇게 코끼리 타고

누비는 것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았다.

뭐랄까, 나무들이 전부 훅, 하고 자라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사이즈와 기장의 나무들이 아니라

훨씬 크고 훨씬 높다란 나무들이어서 영판 다른 종을 보는 듯한 느낌. 이런 나무들이 쭉쭉 자라나는 정글속에서

문득 앙코르왓 유적지, 천년 동안 버텨낸 유적지를 처음 발견했을 자의 경이로움이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앙코르 톰, 바이욘 앞에 정비된 자그마한 연못들. 세월의 때가 눅진눅진 묻어있는 돌덩이들인지라, 건조물 자체가

하나의 자연석인 양 느껴진다. 본격적인 앙코르 톰 탐방은 다음 포스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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