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어떤 철학이 담겨야 할지, 어떤 역사적인 맥락과 주변과의 조화가 고려되어야 할지에 대한 많은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흔히 DDP로 줄여부르는 것 같은 그 건물이다. 사실 이 생뚱맞고 이질적인 건물을 설계한 자하 하디드를

 

둘러싼 논쟁보다는, 원칙적으로 제기되는 건축의 철학성, 역사성, 그리고 주변과의 심미적인 조화에 대한 문제가 과연 한국에

 

현대 건축에 얼마나 배어있는지를 곱씹어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건축이라면, '말하는 건축가'

 

고 정기용 건축가씨의 건축 정도려나. 몰개성한 아파트더미들과 스틸과 유리로만 처바르면 미래지향적이라 생각하는 건물들이 천지다.

 

하여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깔고 앉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그래놓고 보호하자는 이 낯짝두꺼운 표지판 보소.

 

 

 

동선이 굉장히 기괴하다고 느꼈는데, 층수와 현재 위치에 대해 계속 헷갈리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위풍당당한 외양에 집중한 건물.

 

음...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아기자기하다거나 눈높이가 낮은 건물은 아니어서, 전시나 슬쩍슬쩍 보고 빠져야 할 듯 하다.

 

아니면 옆에 전태일교에서 노랑리본을 단 채 21세기의 이땅을 바라보는 그 청년의 곁을 지나쳐 동대문 시장통을 거닐거나.

 

 

 

 

 

 

 포장마차에서 양념치킨과 후라이드치킨을 파는 것도 신기방기한데, 심지어 백숙을 판다는 이야기에 기함.

 

간판은 누가 저렇게 아작을 내놨는지, 그리고 그걸 또 누가 저렇게 잘도 다시 붙여놨는지.

 

 

 

 남포동 BIFF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것질거리. 씨앗호떡이 기름이 튀겨지는 모습.

 

 가위로 옆구리를 슬쩍 잘라낸 후에 숟가락으로 해바라기씨, 땅콩등을 푹푹 찔러넣는 게 포인트.

 

 

그리고 바로 옆,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생선구이정식을 먹기 전 시장 구경부터.

 

 

 

뜬금없이 발견한 보양탕집, 마침맞게 자라 두마리와 닭인지 오리인지,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다라이 안에 갇혀있던.

 

그리고 시장통에 줄기차게 이어지는 생선구이집들. 몇년전이나 다를바없이 푸짐하고 맛나던 한상.

 

 

 

 

by law. 아마도 싱가포르의 정류장, 공공시설물, 까페 등등에서 제일 자주 접했던 문구인 듯 하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처음 왔던 싱가포르, 어렸을 적 어마어마한 벌금과 엄격한 법집행에 기반한 공중도덕과 청결한 도시의 화신처럼 배웠고 대학 때도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는 이야기에 쎄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내가 사는 한국과 멀지 않다. 츄잉껌을 수입하거나 만들지 않고, 온갖 것에 벌금을 매겨놓고 있는 싱가포르라지만..., 이미 우리는 큰사거리 건널목마다 주춤주춤 문워크중인 차들과 골목마다 눈에 불을 켠 씨씨티비의 천국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또 갑갑하기만 하다. 이번에 들고 온 책이 김세균 서울대 정치과교수의 고별강연집, '사상이 필요하다'였는데 발간된 시점은 박근혜 당선직후쯤. 공저자인 홍세화 전 진보신당대표나 손호철 교수, 계간 문화과학 발행인이었던 강내희 교수 등등 필진은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었고 책도 사둔지 오래건만 여태 펼쳤다 덮길 수차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정치적 기본기'란 부제가 무색하도록 세상은 역진중이다.

진보 대 보수, 란 페이크 프레임이 끝내 다른 가능성들을 전부 막아버린 꼴이다. 안철수에 기대한 건 단지 제3의 공간을 열어주길, 양당제로 고착화되는 추세를 조금은 지연시켜주길 바랬던 것 뿐이나 역시. 싱가포르와 한국.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린 천민자본주의사회란 건, 어쩌면 압축성장을 경험한 풍요로운 경제와 천박하고 미발전한 시민사회 및 지평을 가진 나라의 귀결일지 모른다.

이제 점점 거대해지는 자본권력과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은 누구의 입으로 어떤 공간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까. 제3당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가능성과 사상이 들어설 자리는 봉쇄되고, 삿된 영웅-안철수-는 그나마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공간을 벌려 스펙트럼을 결과적으로 넓히나 했더니 투항해버리고, 민주당도 안철수도 결국 파이를 키우기보다 있는 파이를 지키는 현실적 선택을 해버린 것 같다.

그저 노무현이 읊조렸듯 말한마디로 치우고 넘기면 편하려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이미 모든 것이 소비일진대 정치 역시 일인일표의 소비행위 그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뭐가 이상하냐고. 싱가포르, 한국의 근미래에서 한국의 현재로 워프하기 직전, 한발 재겨 딛을 수 밖에.

 

(2014. 3. 2. from FB note.)

 

 

스플릿의 수산시장, 바다에 바로 접한 대로의 반질거리는 대리석 위로 생선 비린내가 바다향기를 짙게 풍긴다.

 

 

이 곳에 풍부한 해산물들, 그 중에서도 집게 달린 이 새우로 만든 요리들은 뭘 먹어도 맛있었던 듯.

 

 

바다를 옆으로 끼고 걸어가는 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거대한 옛 궁전에 기대어 지어진 까페와 주택들을 바라보며

 

바다냄새 나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던 아저씨는 잠시 그늘로 숨어들었다.

 

 

이 곳에 보이는 벽들은 모두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의 남쪽 벽면이다. 폐허로 남겨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를 몇백년.

 

 

이제는 이런 쌍둥이 꼬맹이들도 보라색 옷 때깔 맞춰입고 찾아올만큼 유명한 유적지로 남았다.

 

 

거의 이천년이 다 되어가는 로마황제의 거대한 개인 궁전, 한참을 버려졌던 이곳엔 이제 유리창도 에어컨도 끼워맞췄다.

 

 

성의 동쪽 외벽에 기대어 펼쳐진 재래시장에선 올리브유니 꿀이니 채소니 과일이니 온갖 것들이 주섬주섬 펼쳐졌고.

 

샘플 하나씩을 뚜껑에 달고서 갖가지의 크기와 색깔과 모양을 뽐내는 단추들.

 

꽃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했다. 알고 보니 꽃 위에다가 락카를 뿌린 건지 어쩐 건지 퍼렇게 뻘겋고.

 

비닐로 몸을 둘둘 대충 감아둔 돼지 서너마리가 통으로 매달린 정육점.

 

 

 

그리고 머리까지 고스란히 붙은 채 생전의 모습과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닭고기들. 이건 설마..채식을 유도하는 고도의 장치?

 

 

색색의 바지들과, 과하게 가슴과 엉덩이를 튕겨낸 마네킹들. 허리에서 에구구 소리나는 것만 같다.

 

핏물처럼 붉은 과즙이 흐르던 블러드 오렌지.

 

 

그리고 다른 곳보다 좀더 많이 허물어진 성벽을 바라보고 선 성당 하나.

 

예수의 12길이 굉장히 강렬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진 인상적인 모습들을 한바퀴 둘러보니 마음이 써늘해졌다.

 

아마도 옆가게로 수다떨러간 주인아주머니 대신 노상의 꽃가게를 지키고 선 고양이 두마리. 한마리는 벌써 지겨운지 기지개다.

 

 

 

네모 반듯한 왕궁의 외벽을 따라 바깥 풍경을 한 바퀴, 벌써 남문과 동문을 지나 북문으로 향하는 참이다.

 

 

그리고 북문에서 만난 마법사 같은 차림의 거대한 동상 하나. 10세기 크로아티아의 주교였다는 닌스키의 동상이라나.

 

 

라틴어 대신 크로아티아 어로 예배를 보도록 했던 그의 의도에는 무심한 관광객들은, 문지르면 복이 온다는 그의

 

엄지발가락만 반질반질거리도록 쓰다듬고 떠나버렸나 보다.

 

스플릿의 구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왕궁을 굽어볼 만큼 거대한 그의 모습, 그리고 저 역동적인 어깨와 손가락 놀림은

 

왠지 모를 위압감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표정도 너무 진지해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벽을 따라 돌면서 발견했던 가장 흥미롭던 장면 하나는 이 클래식 포크스바겐.

 

양쪽 어깨에 높은 건물을 올려둔 좁다란 골목 안에 짙게 배인 그늘을 벗어나던 샛노란 차로 향한 카메라를 의식했다.

 

문득 멈추더니, 다시 슬슬 뒤로 후진해서는 촬영할 준비를 하라며 손짓을 한다. 빵 터져서 웃고는 오케이, 손짓하니

 

살금살금, 대리석을 즈려밟으며 한바퀴 한바퀴 우아한 워킹. 양팔을 쭉 뻗어 하트 한번 그려줬더니 그쪽 역시 빵 터졌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벼룩시장에서 조우한 구 소련제 필름카메라. 무려 77년산 Zorki 4K, 렌즈는 Jupiter8 2/50. 대체 제대로 찍힐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 야무지고 단단한 외관과 가죽내음 흠씬 나는 케이스가 맘에 들어 지르고 났더니 아무래도 찍어봐야겠는 거다.

 

며칠 후 동유럽의 진주 듀브로브닉에서 기어코 필름을 한 롤 사서는 다짜고짜 테스트 시작.

 

제대로 나오리라는 기대없이 찍었던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질 만한 풍경이 보였다. (게다가 필름 현상과 인화 비용이

 

왜 이리도 비싼지, 일단 인화까지 마치고 난 사진들은 어떻게든 활용해야 되겠다 싶어서 집의 구리디 구린 스캐너로 스캔까지 완료)

 

설핏 초록빛이 머금어진 듯한 톤다운된 색감이 맘에 드는데, 스캐너가 구려서 그런지 인화된 사진이랑 스캔본이랑 조금 색감에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듀브로브닉의 구석구석 들고 다녔던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이 떠올라서 무조건 만족.

 

 

 그치만 이 사진에서 나온 색색깔의 우산들이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 그래도 스캔이 사진 색감에는 딱히 영향을 미치는 거 같지 않기도.

 

 

 어쨌든,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놀려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발견한 건 가외의 수확인 듯 하다. 현상할 때 먼지를

 

잔뜩 뒤집어씌워서 사진을 망치는 그런 데 말고, 그리고 좀더 싸게 할 수 있는 현상소를 찾아봐야겠다. 게다가 스캔도 해줌 좋겠는데.

 

필름에 담긴 세달 전의 추억들, 필름이 아니라 일종의 단단한 깡통에 아껴둔 기억과 순간들을 열어보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이렇게 석달전, 한달전의 시간을 고스란히 되돌리는 게 필름카메라의 묘미일 듯. 리와인드.

 

 

 

 

 

숙소로 가는 트램 안에서. 자그레브의 구시가 앞, 옐라치차 광장 앞에서 나를 내려줄 6번 트램 중에 섞여있는 오래된 트램 중에는

 

이렇게 객차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도 있는 거다. 왠지 앞엣 객차에선 뭔가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기라도 한 분위기.

 

 

며칠만에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되게 반갑다. 문을 닫고 정리하려는 꽃가게들의 풍경만 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그리고 아침, 왠지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다 했더니. 슬로베니아에서는 진눈깨비와 비를 잔뜩 맞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컨셉은 비와 눈을 온몸 가득 맞으며 돌아다니는 건가보다.

 

 

눈이 가진 질감과 부피감은 눈꺼풀 위에 날려들어 떨어질 줄 모를 때 가장 크게 실감난다. 빗물은 그저 흘러내릴 뿐 달라붙을 줄

 

모르지만 눈은 차디찬 바깥공기에 힘입어 뻗어나간 가느다란 팔다리로 시야를 가리고 마는 거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 가운데에서 치즈를 팔던 아가씨는 눈 때문인지 손님 발걸음이 뚝 끊긴 와중에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느라

 

손이 빨갛게 곱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사랑이어라.

 

 

 

그리고 눈이 점점 삼엄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한 자그레브인들의 걸음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천 마켓에서 블루베리도 사고.

 

 

옆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피자 한 조각을 사먹으며 가벼운 아침식사도 하고.

 

두어번 나도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까페. 몇몇 가이드북엔 맛집으로 소개되었던데,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맛있던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에도 어김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면면이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똑같길래 왠지 더욱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Shabby hostel, 아고다를 통해 찾아본 값싼 숙소 중에서 가장 가격도 싸고 위치도 최상이었던 곳이다. 10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가 한화로 2만원 선이었던가. 가격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 데다가, 직원들도 다들 친절해서 자그레브에 체류할 때마다

 

가능한 이 곳에 묵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나려는 참. 갑작스런 폭설 떄문에 교통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지

 

트램과 자동차 간의 접촉사고도 났다고 하고, 왠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난 트램이 삐걱거리며 철로를 따라 어딘가로 이송된 후에야 나타난 다른 트램들. 다행히도 사고는 그리 대단치는 않아

 

트램의 자동문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 다친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트램이 있어서 도심지의 교통 흐름

 

속도가 그나마 좀 여유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고가 나도 크지 않은 수준에서 멈추는지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계시던 두 어르신은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계셨다. 오랜 지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분은 때로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굉장히 훈훈한 풍경이어서 슬쩍.

 

그리고 버스정류장 도착. 애초 이 곳은 자그레브 국제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 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였달까. 이제 플리트비체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출발 직전.

 

 

* 교통 (Zagreb to Plitvice, 100쿠나(baggage fee 7쿠나 포함) 3시간 소요)

 

 10:30, 11:30, 12:30 하루 세 차례 운행이 전부  (2013. 3월 현재)

 

 

 

* 플리트비체행 버스가 언제든지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이드북 믿었다가 뒷통수 맞지 말고 미리미리 확인할 것!

 

 

 

 

시외버스 플랫폼의 황량하다면 황량한 풍경. 그래도 파랗고 붉은 색으로 도색이 말끔하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셈이었달까.

 

플리트비체 행 티켓, 정확하게 티켓 값으로는 93쿠나. 1쿠나가 대충 200원이라 치고 티켓이 2만원쯤 하는 셈이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로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건지 기사님도 내리고 손님들도 자연스레 내린 시간에 잠시 근처 구경.

 

여기는 자그레브보다 더욱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리는 참이었다.

 

 

 

 어느새 나무들은 모두 새하얗게 뒤덮여 버린지 오래. 이런 식이라면 대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플리트비체는 어떠려나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세시간여 달리고 나서 '무키네 Mukinje' 마을 입구에 내가 떨궈질 때는 버스 안에 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오는 길 내내

 

대관령 눈꽃열차를 달리는 기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떨궈지고 나니 좀처럼 모든 게 막막하니 새하얗게

 

덮어있는 풍경이어서, 당장이라도 길이 끊기고 고립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잔뜩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자그레브의 재래시장인 돌라츠 시장, 자그레브 구시가지의 두 중심인 카프톨과 그라데츠 마을 사이에서

 

자연스레 발생했다는 이 재래시장에는 여전히 크로아티아인들의 일상이 이어지는 중이다.

 

꽃이 참 흔한 나라라는 생각부터 들 만큼, 도시 곳곳에서 꽃을 파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처음엔 이걸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많이들 파는 건가 싶었지만 어쩌면 그런 질문에 깔려 있는 '실용성'이라거나 '가격 대비 가치'의 관념부터 틀렸는지 모른다.

 

 

 

돌라츠 시장에선 성당에 바칠 온갖 초들이라거나 올리브 오일 같은 생필품을 파는 한켠에 이런 전통적인 장식품이나 기념품들을

 

파는 상인들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물건을 파는 데에 관심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여행 비수기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이곳 사람들의 성향이랄까 분위기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주인 없이 혼자 남아있는 가게들. 뭐, 옆가게 아주머니한테 마실이라도 가서 잠시 놀고 계셨던 건지도 모르지만.

 

부활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때라, 게다가 워낙 가톨릭이 강세를 보이는 동유럽 국가인지라 부활절 달걀들이 주렁주렁.

 

다소 쌀쌀하고 흐릿한 날씨 속에서도, 살짝 유유자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역시나 재래시장 특유의 활력이 느껴지는 돌라츠 시장.

 

이쪽으로 보면 성모승천 대성당의 두 첨탑이 또 보인다. 첨탑이 생강이니 감자니 양상추들을 슬며시 내려다보는 중.

 

 

돌라츠 시장을 내려다보는 저 시계탑은 바로 성 마르크 성당의 그 종탑이다. 아쉽게도 형형색색의 지붕은 안 보이지만서도.

 

 

그리고 시장 한켠에서는 집에서 만든 치즈를 마치 우리네 순두부 팔듯이 팔고 계신 할머니들이 벙긋벙긋 웃고 계셨는데

 

참 이쁘게들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들, 한 이십년 전에 독립전쟁을 치르셨으니 인생에 굴곡이 많으셨을 텐데도.

 

장사하시는 분들도 그렇지만 물건을 사러 장바구니 끼고 나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참 멋스럽다.

 

 

 

외국에 나와서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 같은 종류의 채소거나 과일일 텐데 참 다르게 생겼다는 거.

 

이렇게 짧고 통통한 오이만 봐도 그렇다. 처음엔 무슨 아보카도인가 했는데, 틀림없는 오이.

 

시장 입구에 선 할머니 동상이랑 똑같이 머릿수건을 바싹 땡겨묶은 백발의 할머니, 어째 콧날이니 눈매가 조각상이랑 똑같으시다.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부활절 달걀, 자그레브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디언스'를 봐서 그런가 부활절 토끼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 영화 한줄평 : 가디언스는..음....비행기 안에서 잠은 안 오고 할 건 없을 때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

 

 

돌라츠 시장에서 옐라치차 광장으로 빠져나가는 길, 이제 좀 채소와 올리브 오일과 꿀과 프로폴리스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저기의 빨간 파라솔들은 온통 꽃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대군단.

 

 

길을 걷다 말고 옆집 아주머니를 만나서는 대화 중이다.

 

"아이고 철수 엄마, 뭘 그리 샀어?""저기 영희네 가게에서 오늘 떨이하더라구" "아 그래? 어디 한번 봐봐~"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하게 만드는 두 아주머니의 재미있는 포즈.

 

 

그리고 느닷없이, 그렇지만 놀라울 것도 없이 사방에서 열리는 골목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지만 다만 한 가지,

 

어디로 걷던 성모승천 대성당의 첨탑은 하나의 훌륭한 기준점처럼 든든하게 버티고 섰다. 자그레브에선 길 잃고 헤메기도 어렵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구시가에는 두개의 야트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중세때부터 발전해온 카프톨과 그라데츠 두 마을이 있다.

 

그리고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 개의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을 메워 조성한 거리가 바로 돌라츠 시장과 트칼치체바 거리.

 

 

성모승천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종교의 중심지 카프톨 언덕, 그리고 스톤 게이트를 중심으로 한 상공업의 중심지 그라데츠,

 

두 마을 사이 간에는 미묘한 긴장과 협력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었을 테니 아무래도 대부분의 협상과 협력은 이 곳,

 

두 마을의 경계선을 따라 이뤄지지 않았을까.

 

그런 분위기를 이어받았다고 해야 할지, 이곳은 이제 현지인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노천 까페가 즐비한,

 

우리로 치자면 신사동 까페골목이라거나 청담동, 혹은 분당 정자동 같은 느낌의 까페골목으로 변신했다.

 

 

아직 바람이 살짝 쌀쌀한 날씨에도 대리석 보도 위로 테이블과 의자를 깔아놓고 무릎담요까지 얹어두는 센스, 그리고

 

어김없이 빈자리를 찾아드는 여유로운 사람들. 그리고 이내 피어오르는 까만 에스프레소의 하얀 김 한오라기.

 

 

붉은 지붕들 너머로 슬쩍 보이는 성 마르크 성당의 첨탑 끄트머리.

 

어느 까페 모서리에 붙어있던 왼갖 브랜드 간판들. 크로아티아 산 유명한 맥주 Karlovacko를 비롯, 하이네켄, 에딩거, 그리고

 

커피브랜드 라바짜와 전세계를 점령한 코카콜라까지.

 

 

중간중간 맘에 드는 까페 겸 레스토랑들이 보여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침 배도 출출한 겸 그 중 하나에 입장.

 

버터를 살짝 올린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짙은 까만색의 흑맥주 한잔. 생각보다 포만감 가득한 맛있는 식사였다.

 

크로아티아 전통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머리 희끗한 주인장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음식을 그대로 따랐는데 만족만족.

 

 

 

곳곳에서 보이는 아이템들, 뭔가 가게 주인이 고심해서 포인트를 잡았다는 티가 역력한 빨간 자전거나 빨간 대문들이 눈길을 끈다.

 

 

크로아티아 전통음식말고도 아드리아해 너머 이탈리아에서 전래되었을 피자라거나 파스타류, 그리고 코스모폴리타닉한

 

국적불명의 웨스턴 음식들을 취급하는 레스토랑도 있고, 케밥이나 심지어 스시를 파는 레스토랑도 봤었지만, 그래도 이런

 

크로아티아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도 보이고 대체로 크로아티아 느낌이 충만한 곳이다.

 

골목에 처음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돌아나오는 길에야 그 용도가 혹시 해시계인가 싶어서, 시간을 확인해보곤 깜놀. 정확했다.

 

 

딱히 밥 때가 되었다고 사람이 더 많은 것도 아닌거 같고, 일단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들이 모두 관광객인 거 같지는 않고, 그냥 크로아티아라는 동유럽 국가의 기본적인 삶의 페이스 아닐까 싶어 굉장히 부러워졌다.

 

그리고, 잔뜩 헐고 낡아서 볼품없어져 버린 거리의 뒷켠조차 이렇게 알 수 없는 운치가 서려 있는 풍경을 가진 나라라는 건.

 

압축성장을 위해 과거를 밀어버린 폐허를 계속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하는, 그런 류의 개도국에선 불가능하고 근대를 리드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중인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분위기가 아닐까 했었는데, 어쩌면 그건 손쉬운 핑계가 아니었는지 싶기도.

 

 

 

 

 

여기가 거기였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구시가 복판에 있는 성 마르크성당. 예전에 어디에선가 사진으로 스쳐지나갔던,

 

그렇지만 굳이 여기가 어디에 있는 건물일까 찾아보게 만들었던 그 건물이었다. 하얀 외벽에 깜찍한 지붕을 얹은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을 지나,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를 지나 금세 다다른 조그마한 광장, 아니 광장에 채 진입하기도 전에

 

지붕부터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림이라기엔 기와 한장한장의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한, 그래서 흡사 레고블록을 쌓은 듯한.

 

사실 성 마르크성당의 건물 자체도 1200년대에 지어졌다니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내공을 풍긴다.

 

들어서는 정문만 해도 십여명의 수호성인들이 지키고 선 걸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저 흰색과 파란색, 빨간색이 올망졸망한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하얀 벽 위에 얹혀 있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타일 지붕은 고작(?) 1880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하는데, 왼쪽은 중세의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지방, 슬라보니아 지방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자그레브 시를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게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더하기 달마티아 지방(현재 크로아티아의 중부 지방) 더하기 슬라보니아 지방(동부 지방)의 상징.

 

그리고 이게 자그레브 시의 상징인 셈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까 타일 한장 한장이 선명하고 화려한 발색을 내며 각자의 입체감을

 

돋을새김하듯 지붕 위에서 어필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더 뚜렷하다.

 

성당 안에서의 촬영은 다른 여느 성당들이 그랬듯이-성모승천 대성당도 마찬가지였지만-촬영 불가. 잠시 들어가서 그 묵직하고 오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두컴컴한 실내에 적응할 때쯤 다시 나와버렸다. 최소한 성 마르크성당은 밖에서 보는 게 진짜다.

 

아마 성 마르크성당 주변에는 EU 관련한 관공서랄까 정부 청사가 있는 건지 크로아티아 국기와 EU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롤이나 검정색 커다란 세단들도 누군가 귀빈들을 위해 대기중이었고.

 

그 와중에 경찰 아저씨의 허락을 득하고 찍은 크로아티아 경찰 오토바이의 위용. 진격의 BMW Motorad.

 

옐라치차 광장에서 성모승천 대성당, 각종 뮤지엄들, 그리고 성 마르크성당까지 그러고 보면 참 오밀조밀 잘도 붙어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나는 굉장한 풍경들과 역사의 증거물들 앞에서 숨 한번 돌릴 여유를 찾기엔 노천 까페가 최고.

 

이쯤해서 돌라츠 시장의 노천 까페를 찾아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다.

 

 

 

 

#1. 포항 북부해수욕장과 환여해맞이공원 사이의 물횟집. 

 

 포항 북부해수욕장과 환여해맞이공원 사이에 위치한 환여횟집. '1박2일' 방송에 출연하기 전부터 포항시내에서

 

물회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라는 친구 추천에 일단 고고. 서울에서 먹던 그 맛을 상상하고 있었다.

 

 도다리 물회를 시키려다 말고 '단지 물회'로 선회, 거기에는 해삼이니 멍게니 전복 같은 것들이 들어간다고 하는 말에

 

4인 가족이서 단지물회 2인분을 시켰다. 분명 모자라서 더 시키려니 생각했는데 왠걸. 생각보다 양도 많았고.

 

 양도 양이지만 그 풍성한 해산물의 향연, 그리고 개운하고 시원한 맛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함께 나왔던 해산물 샐러드..라고 해야 하나. 전복과 해삼 등등이 김과 무채와 함께 비벼져서 나온.

 

여느 곳이나 그렇듯 이 환여횟집 좌우로 비슷한 물회집이 주욱 늘어서 있었는데, 다른 곳은 맛보지 못했으니 꼭 저곳을

 

고집하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포항에 가면 꼭 다시 맛보고 싶은 건 이런 류의 물회라는 것.

 

 

#2. 포항 죽도어시장의 대게상차림.

 

살이 꽉 차오른 대게의 앞발, 이렇게 탱탱한 속살이 푱, 하고 야무지게 튀어나오는 순간을 만끽하기란 쉽지 않다.

 

어둠이 나리고 나면 죽도어시장의 대게 골목들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수증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밤이 으슥해질수록 축축하게 으깨진 시장통 골목을 오가며 적당한 횟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늘어나고.

 

자리잡고 앉은 횟집에서 스끼다시로 나온 굴. 커다랗고 뽀얀 속살이 탱글탱글.

 

그리고 참소라. 원없이 먹어보겠다던 소원을 그대로 성취한 커다란 접시 가득 썰어져나온 참소라 생물 회.

 

그리고 마리당 1킬로그램에 육박하던 거대한 대게들을 세마리 찜쪄버렸다. 김이 폴폴 오르는 대게들 사진은 용케 남겼다.

 

정신없이 양손을 다 쓰며 먹다가 아무래도 이 커다랗고 오동통한 앞발은 남겨야겠다 싶어서 한 장 남기고 나니 끝.

 

산처럼 쌓인 잔해 사이에서, 등껍데기에 밥을 비벼 싹싹 말끔히 비워버리고 만 녀석의 흔적을 찾아 병따개와 비교샷.

 

그리고 다음번에 포항에 갈 일이 있거들랑 꼭 맛보고 싶은, 횟집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셨던 이 곳에서만 난다는

 

이름모를-가르쳐주셨지만 까먹어버린-요 생선. 묘하게 생겼는데 맛은 어떠려나 모르겠지만 일단 기대.

 

 

 

 

 

포항 죽도어시장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 중에 가장 맘에 드는 한 장의 사진을 꼽으라면.

 

과메기 축제중인 시장통을 구경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린 한쪽에는 생선을 파느라 열심인 어느 청년이 보였다.

 

대담하도록 치켜올라간 점퍼와 내려뜨려진 츄리닝 바지를 위아래 입술삼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포항은 역시 과메기와 대게의 고장. 시장통 골목 곳곳에서 짙고 풍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참돔배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상어 녀석. 경북 지방의 제수용 생선으로 널리 쓰인다던가. 세모꼴 이빨이 원통하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던 게 원조라고 하는데, 요새는 거의 이런 꽁치로 만든단다. 살가죽이 말라비틀어질 지경.

 

흔치는 않지만 이렇게 청어로 만들어진 과메기도 곧잘 내걸려 있었다. 아쉽게도 이 녀석들은 시식용이 없더란.

 

 좌판마다, 상점마다 맛보기로 내건 (꽁치) 과메기 시식을 하나씩 하며 시장을 걷다보니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입으로는 시식을 권하며 쉼없이 과메기의 껍데기를 벗기고 꼬리를 떼어내던 그네들의 손놀림은 가히 생활의 달인급.

 

 아무래도 살짝 찝찝한 건 없지 않았다. 과메기 클러스터, 형님 예산, 만사형통 따위의 단어들이다.

 

포항까지 내려와서 네놈의 이름 석자를 들을 줄은, 그래도 몰랐다.

 

에라이,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하얗게 성에가 내려앉은 동태의 썩은 눈깔같은. 

 

성황이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서울같은 먼 곳 말고도 인근 지역에서도 총출동한 듯 하다.

 

 꼬리에 철사를 꿰고는 물구나무선 채 해풍에 노닐던 생선들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묵직하고 맛깔스런 핑크빛의 몸뚱이를 가진, 지느러미가 촘촘한 생선도 있었다.

 

 그런 생선들의 장막 뒤로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 아주머니들.

 

 그리고 마치 커튼처럼, 시장통의 어느 예기치 않게 한적한 모퉁이에서 건너편 풍경을 미묘하게 가리는 생선들의 버티컬.

 

붉은 대게 한마리가 붉은 벽돌 건물벽을 기어오르다 잠시 쉬어가는 중.

 

그리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질척한 발길과 무수한 생선비늘로 갈고 닦인 이곳 죽도시장의 분위기만큼이나

 

운치있고 정감어린 돼지국밥집의 모자이크 창문 하나.

 

 

 

 

손이 아프다며 뒤로 뺀 후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먹울먹하며 그 손을 찾아가려는 장년층..

 

그들이 아마도 38%의 강고한 박근혜 지지층 중 핵심을 이룰 텐데.

 

 

잡지 못하는 손을 향한 그들의 '손'바라기, 이제 잡을 수 있는 손을 찾을 때 아닐까.

 

 

 

 

유후인역에서 긴린코호수까지 유유히 걷는 길, 대충 중간쯤의 지점에는 '중앙아동공원'이 있고, 거기서부터 쭉 이어지는

 

직선길을 따라 걸으면 바로 긴린코 호수까지 가 닿게 된다. 소형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도로 양켠으로는 온통 꽃들,

 

그리고 간식거리를 팔거나 악세서리니 캐릭터상품을 파는 샵들.

 

지도만큼이나 간단하고 쉬운 길이라 좀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거니와, 실제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쉬엄쉬엄 걷기 좋다.

 

 

바람에 펄럭이는 이발소의 출입문 커튼. 그리고 선연한 붉은 빛을 밝혀든 화분들.

 

비가 내릴 때 처마에서 땅바닥이 패이도록 주룩주룩 흘러내길 빗물을 달래려 살살 타고 흘러내길 길을 늘어뜨렸다.

 

곳곳에서 보이는 인력거꾼들. 꽤나 요금이 비쌌던 거 같은데, 3,000엔이었던가.

 

 

언젠가부터 이곳저곳에 있는 바이크들에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참 이쁘네.

 

 

그렇다고 유후인 마을의 길들이 온통 샵들이 빽빽하게 꽂힌 그런 길은 아니다. 이렇게 빈 틈새도 보이고, 그 곳엔

 

옥수수를 걸어두고 말리거나 자전거들을 꼬리물고 주차해두는 공간들이 여백처럼 존재한다.

 

시식거리를 잔뜩 마련해둔 견과류 가게, 고양이를 컨셉으로 한 온갖 상품들을 팔던 가게, 악세사리들을 걸어둘 장식대마저

 

저렇게 이쁜 인형 모양으로 만들어둔 가게들. 어디 하나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운 볼거리들이다.

 

 

특히나 이 고양이를 컨셉으로 잡은 가게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양이 인형이니 악세서리들이 가득가득.

 

 

 

 

길가에는 이 곳의 유명한 우유 아이스크림도 팔고, 이런 오징어 철판구이도 팔고, 빵에 오꼬노미야끼에 햄버거에..

 

길 건널 때 조심하라며 입을 한껏 벌려 소리없이 외치고 있는 저 꼬맹이, 거참.

 

 

홍등이 길게 이어지는 이 골목도 꽤나 궁금했지만, 조금씩 덥고 발의 무게가 느껴지고 있었다. 스킵.

 

 

 

그래서 다시 까페에 들어가 좀 쉬기로 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간, 잠시 햇빛을 피하며 땀도 식히고 차도 마시고.

 

 

겸겸 까페 안에 그득한 아이템들도 하나하나 구경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유후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아마도) 유후인 사이다. 여느 사이다랑 별반 다를 게 없는 맛이었지만, 사실 병이 탐났던 거다.

 

가게 이층의 한 귀퉁이에 놓인 흔들의자. 햇살을 받으며 제 혼자 흔들흔들, 땀을 식히고 있엇다.

 

거품이 양껏 풍성하던 카푸치노.

 

꼬리를 흐느적 거리는 고양이 시계가 참 귀여워서, 저런 건 동영상으로 남겨야지 싶어서 담았더니..옆으로 누웠다.

 

 

온실처럼 온통 유리창으로 세워진 벽들을 돌아보며 나름 이 층에서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어딜 보나 말끔하고 단정하다.

 

 

 

 다시 원기를 좀 회복하고 밖으로.  

 

  

 

 긴린코 호수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싶으니 샵들이 점점 드문드문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긴 긴린코 호수 옆에 위치한 자동차 박물관. 입구부터 동전을 넣고 탈 수 있는 자동차 장난감이 있어 눈길을 끌었지만,

 

박물관은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좀 휑한 분위기다 싶어서 그냥 스킵. 이제는 긴린코 호수로~*

 

 

 

 

 

 BGM : '시장에 가면'.

 

재래시장임이 분명한 골목통 시장통에 떡하니 붙은 '현대시장'. '현대'라는 단어를 굳이 앞세워 촌스러움을 더하는 시장.

 

도로 앞까지 잔뜩 좌판을 벌이고 바가지마다 듬뿍담뿍 과일이니 생선을 올려둔 아주머니들.

 

 아직은 이르다 싶은 시간대부터 좁고 긴 시장 골목통에 머리를 삐쭉 내밀곤 불밝힌 가로등.

 

 시장에 가면~ 사과도 있고~ 레몬도 있고~ 바나나도 있고~ 참외도 있고~ 수박도 있고~ 포도도 있고~

 

 불쑥 튀어나온 주차금지 표지판, 그 불그죽죽한 낯짝에서 전통시장의 신산한 속내를 넘겨짚어 볼 뿐.

 

 이윽히 내려앉는 어둠에 뒤질세라 시장을 뒤지며 몇백원을 아끼는 우리네 어머니들.

 

가게의 내용물을 모두 밖으로 토해낸 듯한 가게다. 간이고 쓸개고 온통 거리에 전시중.

 

 어둠처럼 내달리는 걸음걸이로는 잡을 수 없는, 알전구 위에 별빛이 피었다.

 

 가게마다 주렁주렁한 하늘색 반투명 까슬한 비닐봉지. 바스락보스락 소리조차 죽여주는.

 

그리고, 이게 바로 재래시장의 흔한 S라인.

 

 

 

이태원을 좋아라 하지만, 이쪽으로는 걸어 올라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녹사평역에서 남산터널 방향으로,

 

그렇게 조금 걷다보면 나타나는 경리단 골목길. 그러고 보니 타코를 먹으러 한 번 왔다가는 영영 길을 잃은 그곳이구나.

 

함께 드로잉 수업을 듣는 동기이자, 부부가 함께 수업을 듣고 계신 잉꼬 한쌍 중 한 분이 나중에 가보라고 찍어주신 곳.

 

좁다란 시장통 골목을 슬쩍 가리고 선 화려하고 거친 파라솔, 그리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꽃망울들.

 

살짝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 계속 되고 있었다. 굵은 가지에서 뻗어나가는 잔가지처럼 좌우로 뻗은 골목길들.

 

비슷한 간격으로 놓인 차들이 쩜쩜쩜... 말줄임표를 만들며 오르막길을 버티고 서 있었고.

 

간헐적으로 쟁여진 계단들은 숨이 가쁠만 하면 쉬어가라며 여남은걸음의 평지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은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슬쩍 날렵한 태를 내비추는 남산S타워.

 

 

그러다가 불쑥, 건물이 이어지던 곳에 주차장이 휑하니 공터를 주장하고 나서자 뒷켠에 숨었던 타워가 덩달아 나섰다.

 

 

이태원의 상권도 여느 이름난 곳들, 신사동이니 삼청동이니 처럼 미어터지기 시작했는지 여기저기 공사중.

 

먼지 비산을 막는 차양을 커튼처럼 치고서 아저씨는 벽돌 등짐을 지려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실핏줄처럼 번져나가는 골목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골라잡고서 무작정 걸어가다보면 무슨 풍경이 나올지 설레는

 

그런 느낌, 상해의 오랜 골목통이나 카이로의 오랜 골목들에서 느끼던 그런 묘한 설레임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공영주차장에 고경일쌤과 함께 올라서는 순간 탁 트이던 풍경. 서울N타워가 바로 지척에서 내려보는 느낌.

 

 

 

납작 엎드린 건물 옥상에서 제법 매운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던 빨래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일단 그림 하나를 후딱 그리고 나서, 타워를 바라보며 조금씩 각도를 옮기며 풍경을 보는 중. 꼬물꼬물한 건물들.

 

 

건물들이 야트마학 사선을 따라 조금씩 무릎을 낮추며 이지러지고 있는 풍경 자체의 운율감이 리드미컬하다.

 

 

 

비슷비슷한 풍경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느낌의 풍경들. 커다란 나무가 웅크린 산비탈 아래의 골목길 끝단에서부터.

 

어지럽게 비틀린 골목길을 따라 잔뜩 어그러진 골목 담벼락.

 

새삼 그림이 그리고 싶어져서, 혹은 재미있어서 이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 중에는 은근 실력자들도

 

많이 숨어 계신데, 이 분도 그런 실력자 중의 한 분. 앉아계신 분위기부터 벌써 다르다.

 

 

경리단길을 오르다보면, 그새 올라간 높이만큼 계단이 삼엄하게 사방으로 오르내린다. 내려와 살피면 옹이구멍만한 하늘.

 

그리고 어느결에 풍경과 하나가 되어버린, 자연스레 그림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고.

 

 

공영주차장에서 바라본 남산 서울N타워 주변으로 헤쳐모인 성냥갑 집들. 그 오밀조밀 바스락거릴 듯한 풍경과

 

여성전용 주차장 사이에 가로놓인 구멍송송 새하얀 담벼락이 왠지 유럽의 어느 나라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하루.

 

 

 

청와대와 가까워 가끔 대통령이 출몰하기도 하는 통인시장의 화장실, 여느 전통재래시장에서는 찾기도 힘들고

위생상태나 미관 면에서도 '고향의 운치'를 들먹거려야 하는 화장실이지만 이 곳은 나름대로 깔끔하니 정리된

공간에 표지판도 글로벌하게 일본어까지 병기되어 있다. 통인시장, 통통 튀는 센스를 찾아보기.

여자화장실에는 커다란 연꽃을 타고 나온 심청이가 등장하더니 남자화장실에는 김홍도의 풍속화에 그려졌던

서당 훈장님과 돌아앉아 울먹이는 아이가 등장했다. 왠지 그 카피가 생각나는데,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란 카피. 저 꼬맹이 녀석이 울먹거리는 바람에 연상이 뻗어나가 검색하게 된 화장실 스티커.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몇달전인가, 어느 시사잡지에서 '통인시장'의 상인분들이 미대생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각자의 상점을 나름대로

이쁘게 꾸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생선가게에는 생선의 테마로 한 참신한 간판이나 장식들이 내걸렸고

옷가게는 옷을 가지고 꾸며서 사람들의 이목과 발길을 붙잡는다는 컨셉이었던 던 거 같은데, 직접 가서 보니

정말 시선을 확 붙잡을 만큼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여전히 깔끔하게 손님들을 끌고 있었다.

'여기 속옷집이 있다, 비와이X'. 가게 앞에 속옷만 입은 사람 형상의 판넬이 둥둥 공중부양중이다.

건어물가게, 주렁주렁 엮인 명태가 매달려 있는 옆에는 눈이 부리부리한 오징어가 매달려 있다.

'반찬과 함께 사라지다', 오래된 영화포스터를 연상시키는 간판과 함께 LP판을 활용한 메뉴판.

두부와 콩나물국과 만두, 새하얀 천과 금박이 입혀진 빨간 천이 번갈아 널린 장식이 제법 단정한 분위기.

어느 생선가게, 겨울이라 조금 춥게도 보이지만 생선들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바다수영의 포스.


미용실 앞에 있는...음...용도불명의, 그렇지만 스케일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딱 미용실을 나타내는 (아마도) 간판.

과일들이 으레 그렇듯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진열된 것 뿐 아니라, 가게 위쪽에도 맛나보이는 과일들이 그득하다.

어느 분식점, 과자 포장지를 활용해서 찢어붙이기를 한 듯, 곰인형 한마리가 둥둥 떠있다.

어느 고깃집 유리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댕기머리 총각. 티비를 훔쳐보는 건가 싶은 재미있는 풍경.

생선가게 앞에 '천하대장군'처럼 우뚝 선 물고기 한마리. 심심하게 서 있던 기둥에 표정이 생겼다.

그리고 심심찮게 보이는 SINCE 천구백몇년, 생각보다 연륜이 오랜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50년이 넘은 떡집도 있고.

자하문길로부터 들어가는 통인시장 입구. 쭉 한길로 이어지는 심플한 시장통이 필운대길쪽까지 뻗어있다.


전통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한번 가서 오뎅 하나 집어먹고 뻥튀기 하나 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시장을 정비하고 꾸미고, 이야기를 얹는 등 다양한 노력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렇게 고객만족센터도 만들고, 통인시장에서 파는 반찬거리나 부식재료로 만든 도시락 까페도 만들어 운영하고,

통인시장은 나름 재래시장으로 살아남고 부흥하기 위한 서비스 마인드와 아이디어가 통통 튀고 있었다.

일회용 우의를 판다는데 포즈는 왜 저리도 시크한지. 우산을 슬쩍 쥐고 있는 두 손가락이나 푹 눌러쓴 모자도 완전 시크하다.

김치마을, 가게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게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통인시장, 통인마을이랄까.

심지어 상점에도 이렇게 손이 많이 들었을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가게에서 파는 맛소금이니 밀가루니 따위의

포장재를 하트모양으로 잘라서 달아놓으니 뭔가 가게에서부터 하트가 뿅뿅 날아올라가는 분위기.

분식 집 앞에서 방긋 웃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김밥 내외.

전집 간판에 달라붙어 놀고 있는 몇몇 살찐 졸라맨 버전의 아이들은 '전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신발이 전시된 모양 그대로 이미 이쁘단 느낌을 자아내는 신발가게의 간판은 화려한 색감을 더했다.

식당의 메뉴가 그림과 글씨가 묘하게 뒤섞인 캘리그라피로 문짝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떡집의 '떡'자는 화려한 꽃그림으로 치장이 되어 시선을 붙잡는다.

어느 만두집 간판 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감긴 레이스를 잡아 떼어서 돌돌 뭉쳐만든 듯한 고양이가 한마리.

과일가게의 하얀 벽면에는 제법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과일나무가 한 그루.

무와 배추와 양파를 파는 가게에는 허공에 무가 매달려 있는가 하면 가스통은 꽃무늬 옷을 입은 배추아줌마로 변신했다.

옷 수선점의 간판은, 크고 작은 각종 모양의 실패를 이어달아서 커튼처럼 드리웠다.


필운대길쪽으로 빠지는 통인시장의 입구. 천장이 유리 지붕으로 덮여있는 아케이드 형태인지라 날씨가 궂거나 춥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살짝 들어가서 둘러보기 좋은 재래시장이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통인시장.




속초에서 꼭 돌아봐야 할 곳은 속초관광중앙시장이란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원래 여행을 다닐 때 시장구경하길

좋아하기도 하지만, 수수부꾸미니 닭강정이니 오징어순대니, 항구쪽보다 싼 횟집들까지 먹거리도 많고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았던 곳이다. (그리고 갯배랑 바로 이어지는 동선이라거나 속초시내 중심에 있다는 점도 좋다)

갯배에서 내려서 조금만 걷다보면 바로 만나는 이 커다란 황금색 황소. 뉴욕 월스트리트가에 있는 황소는

Bull's Market, 호황을 바라는 증권맨들의 마음을 담은 거라면, 이 녀석은 소를 닮은 지형의 속초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속초인들의 마음이 담긴 걸까.

사실 시장이란 게 여행하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하고 그자체로 여행의 메타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건 딱히

정해져있는 입구와 출구도 없고, 루트도 없고. 발 닿는 대로 걸으면서 둘러보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야지, 라거나 사야지, 라고 맘먹었던 샵이나 위치는 대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어지는 묘한 마력이 있다는.

그리고 시장에선 애써 꾸며지거나 포장되지 않은 모습들이 드러난다는 점도 참 맘에 든다. 이렇게 빛바랜 만국기가

잔뜩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하늘을 가르고 있다는 점도 왠지 맘에 들지만, 저런 '미용휴게실'이니 다방이니 하는

촌스런 간판들이 늘어서 있다는 점도 그렇다.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시장에서 눈에 띈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손에 들고 다니는 거 같던 '만석닭강정'.

줄이 어찌나 길던지 뱅글뱅글 용트림을 하고도 한참 늘어서 있어서 좀체 줄을 설 엄두는 못 내고, 맞은편의 맛난

수수 부꾸미와 찹쌀 부꾸미를 파시던 분께 부꾸미를 사며 슬쩍 물어봤더니 그 옆의 '속초닭강정'도 추천해주시더라는. 


먹어본 사람들의 말도 분분하던데, 맛이 거기서 거기다, 라는 말도 있고 아무래도 만석닭강정이 짱이다, 라는 말도.

모르겠지만 가격대는 대략 이렇게 비슷한 거 같고, 아무래도 방송과 입소문의 힘, 그리고 무엇보다 줄이 저렇게

늘어서 있단 건 그 자체로 저 꼬리에 붙어서야 할 거 같은 굉장한 압박감을 주는 거다. 시장입구의 호떡집도 그렇고.

여하간 속초닭강정, '매운맛/보통맛/순한맛'으로 나뉘는 삼단계 양념소스 중에서 보통맛도 조금 매콤하다고 하여

보통맛을 골라 순살닭강정을 맛보는데 오오..따뜻해도 맛있고 식어도 맛있고 배고파도 맛있고 배불러도 맛있고.

시장 안에는 이렇게 천장이 막혀 있어서 바깥 날씨에 상관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도 있고, 여느 재래시장처럼

천장이 없는 대신 파라솔들이 촘촘이 늘어서서 자연스레 하늘을 막고 있는 구역도 있고.

아바이순대타운, 닭전, 어물전, 의류, 그리고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호떡집이라거나 국화빵집이라거나. 제법 너른 공간에

끼리끼리 뭉쳐있는 상인들의 난전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가 또 줄이 늘어선 호떡 겸 붕어빵 집을 보면 슬쩍 줄을 이어서서 하나씩 맛보기도 하고.

지하에 있는 수산센터, 노르웨이에서 온 냉동 고등어들이 빳빳하게 몸을 비튼 채 박스의 형체를 간직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다듬는 생선은 광어 한마리와 우럭 한마리. 그렇게 간식거리들을 맛보고도 어쨌든 저녁은 먹어야겠다며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자는 단순한 소망을 끝내 이루고 말았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워낙 너른 국제시장의 한쪽 블록을 일러 '깡통시장'이란 이름으로 따로 부르던데, 그곳에서

티비에도 여러번 나왔다는 비빔당면 깃발을 보았다. 당면으로 비빔국수처럼 만드는 건가 싶어 궁금한 맘에 고개를

빼고 누가 먹고 있나 봤지만 샘플을 찾을 순 없었고. 점심때가 어정쩡하게 지난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하나 시켜서

맛보기도 애매하길래 그냥 스킵하고 말았다는.

무려 '촤밍' 미용실. 챠밍, 차밍도 아니고 촤밍이라니 그 과장스런 입벌림과 부담스런 입술의 움직임 탓에 웃음이

나면서도, 뭔가 쫀득한 발음. 귀에 쏙쏙 꽂히는 거 같기도 하고.

공사판 옆 어느 조그마한 골목어귀를 메웠던 건 환전상들. 이렇게 번듯한 가게도 있었지만 노점 수준의 간이시설

혹은 행상 수준의 환전상들도 보였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적혀 있는 간판은 그대로

이 국제시장에 어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지를 알려주는 거다.






노무현 재임시절 모든 사람들의 입버릇이던 문장이 있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경제가 안 좋은 것도, 일자리가 없는 것도, 대학교육이 엉망인 것도, 집값이 폭등하는 것도, 심지어 시험성적이 떨어진 것도

전부 다 노무현 때문이라 했었다. 그러더니 그의 사후, 그는 갑자기 구름같은 추모물결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의 재임시절은 마치 정의와 행복이 강처럼 흐르던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의 호시절이었다는 식으로 드라마틱한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노랑풍선이 일렁였고, 그는 (참 모호하지만) '소탈하고 정많고 정의롭던 대통령'이 되었다.


분명 노무현은 그렇게 세상만사에 대해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거나

올바른 지향점으로 여겨져야 할 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한미FTA다. 2005년 6월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불쑥 내지르고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내정치와 사회의 소모적이고 극단화된 형태의 분란이 끊이진 않는 건

분명히 노무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명박을 욕하지만, 한미FTA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때문이다.


워낙 한미FTA와 관련한 이슈들도 많았고 논란거리들도 많았으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살짝만 짚어보면 그렇다.

협상개시 선언 후, 이른바 4대 선결문제를 미리 해결한다며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쇠고기 수입재개 따위를 양보해버렸다.

영화계와 농민계가 반발하고 항의하자 집단이기주의네 폭력시위네 하며 수천수만의 전경을 동원해 진압해버렸었다. 정책이

결정되기 위한 사전절차로 국민 혹은 국회를 설득하거나 논의하는 과정은 생략됐다.


그뿐인가. 한국이 미국에 비해 어떤 실익을 얻었고 양측의 실익이 균형잡혔는지조차 의문이 남는 협상 결과에 대한 투명하고

충분한 해명이 없었으며, 심지어 협정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권조차 비공개로 봉쇄하고 국회의원에게조차 제한했었다.

악명높은 독소조항이라는 몇몇 항목에 대한 비판 역시 어정쩡한 얼버무림으로 넘어가며 협박하기를, 개방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국내 경제를 선진 미국의 경제시스템으로 재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싶다면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난맥상이다. 국내 여론을 수렴하지도, 한미FTA의 필요성이나 효과나 대책에 대해서 아무런 공론화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시작했고, 그런 태도 그대로 밀어붙였던 거다. 각각의 국면에서 점검하고 논의하고 의견이 모였어야 할 이슈들이

있었지만 우격다짐으로 미루기만 했던 문제들이 지금 순간에 폭발하고 있는 거다. 사실 ISD같은 조항의 유독성 여부나 의료보건

분야 등에 대한 파급효과 예측이라거나 국내 경제에 대한 효과라거나 따위를 협상이 다 끝난 다음에 따진다는 건 코미디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은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거다. 한미FTA 광고에 노무현이 나왔다고 많은 이들이 분개했다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대표적인 '성과'였던 게 사실 아닌가.
그 공을 이어받았을 뿐인데, 이제 와서 노무현의 사람들이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대중을 '선동'해서 매국노라느니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홍준표 한나라당대표가 그렇게 억울해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명박이 정권을 이어받은 이후의 일들, 여전했던 불통과 불투명성 따위에 대한 비판은 올곧이 그의 몫이다.


노무현을 욕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여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체결 전략의 핵심이었던 '한미FTA'를 추진한 최고정치인

대통령 노무현을 욕해야 한다. 그를 밟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기껏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런 것 뿐이다. "그의 한미FTA와 이명박의

한미FTA는 다르다." 다르다고? 뭐가 얼마나 다른지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한다."

그들이라고 나라 팔아먹겠다고 눈이 벌개 혈안이 되어 한미FTA를 추진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과 당시 열린우리당은 그랬나.


치졸하다. 대통령 노무현의 전반적인 공과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한미FTA 추진정책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해야 이런 치졸한

항변이나 인신공격 이상의 비판을 할 수 있다. 최소한 민주당 내의 한미FTA반대파들, 그리고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의리'를 깨고 그의 정책을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명박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혹은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하는 것은 설사 그 반대가 성공한다 해도 아무 교훈도 남기지 못할 거다.


그랬을 때 우리가 얻게 될 교훈, 그리고 새로운 생각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거다. 시장과 개방, 시장개방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2005년과 2011년, 한국과 세계 경제환경은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동일한 것일까. 한국 경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 그 이득은 어디로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할까. 그런 방향과 가치를 정하는 과정으로 한미FTA 찬반 논의가 가야 한다.


그러면서, 이명박은 물론이고 노무현도 넘어서는, 그런 인물을 발견하고 골라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거다.

단순히 인물 한명에 기대어 나라가 좌지우지되고 흔들거리는 허탈한 후진국가를 이젠 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한미FTA 통과후 첨언]

허탈하다. 기껏 열심히 썼더니, MB가 순방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날치기를 해버리다니. 비록 통과가 되어버려

더이상 한미FTA 반대를 말하는 게 의미를 잃어버린 상황에 처하고 말았지만, 이 글의 본래 의미는 크게 손상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MB를 넘어서려면 노무현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런 바탕에서

한미FTA에 대한 비판비난질책이 귀결될 지점이 어디인지 살펴보는 건 여전히 의미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p.s. 지금도 국회에선 강행처리를 막으려는 진보정당 의원들의 절박한 몸부림이 있었다는 속보가 떴다. 한미FTA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고성과 몸싸움을 그저 '정치싸움꾼'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손쉬운 양비론으로 빠지는 것은 피할 일이다.


p.s.2. [리뷰] 자유무역협정의 정치경제(윤영관, 인간사랑)(2007.4.19)

노무현 정권 때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했던 윤영관 교수의 '국제정치경제' 수업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첫단추부터

잘못 꿰였던 정황이 조금이나마 묻어난다 싶어 첨부한다.


p.s.3. 2011년 11월 22일 오후 4시 한미FTA 비준안 국회본회의 통과.

당장 한국이 멕시코나 미국처럼 의료보험체계가 붕괴하고 사람 못살 곳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서히, 마치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속에 담긴 개구리가 조용히 삶아지듯, 그렇게 삶의 환경과 조건이

악화되지 않을까. 수년쯤 지나 문득 뒤돌아보면 어라, 생각보다 많은 게 변했구나 하는 식으로.


아울러, 한미FTA는 노무현 때문이다, 란 말에도 약간의 추가를 해야겠다.

한미FTA는 노무현과 이명박 때문이다.



목포는 항구다, 깊은 밤 산책길에 만난 아크로바틱한 조기들.

에 이어지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목포수협 위판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선들이 쏟아내는

생선이 어떻게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를 봤으니 이젠, 그 생선들이 어떻게 경매에 붙여지고 팔려나가는지.

온통 새까맣기만 하더니, 어느덧 희뿌여니 바다 저편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밤새 뱅글거리며 밤바다에서 있을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던 소리없는 사이렌 불빛이 이제야 조금 졸음이 오는지 한풀 꺾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또렷하게 해가 뜨는 건 구경하기 쉽지 않겠다 예감했지만, 그래도 제법 구름들에 붉은 물이

슬금슬금 배어오르는 게 시시각각 주위 풍경과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하나도 안보이던 먹장 커튼이 걷히고

점차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좀 늦었다 싶어서 재게 걸음을 놀리는 와중, 벌써 해안가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어서 한참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그네들이 살짝 떨어져 있는 배들을 낚시질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배들이 묶여있는 두꺼운 밧줄이 마치 그들이 늘어뜨린 낚시줄 같이 보였다.

밤에 지나다가 '개 풀어놓았음, 물려도 책임안짐'이라는 살벌한 경고문구에 쫄아서 돌아갔던 곳에는 그새

불이 환히 밝혀진 채 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알고 보니 생선들을 담는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공장이랄까,

좁지 않은 마당 한가득 나무상자가 잔뜩 포개어 쌓여있었고, 새벽바다 냄새에 더해 싱그러운 나왕 나무

냄새가 온통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핏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노랑색 낡은 간판 위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운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저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려나. 눈앞의 화분들 때문에

시야가 약간은 가리거나 초록빛으로 일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전망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은 창고를 지나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그 옆의 창고로 향했더니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사람 한명이 겨우 걸어다닐 통로를 드문드문 남기고는 온통 바닥을 몇 겹으로 점령해버린 생선들, 그리고 그 통로에

비집고 서서는 경매인의 손가락들과 생선들로 시선을 옮기기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인 거다. 목포수협 마크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쓴 경매인분들을 한번 쳐다보고, 그 밑에 지천으로 깔린

셀수없이 많은 생선들의 상태와 크기와 선도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별해내느라 번쩍거리는 눈빛. 금빛으로

번쩍이는 오동통한 조기들은 바다처럼 싱그러운 짠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은빛의 긴 칼처럼 번뜩이는

갈치들은 비늘이 벗겨지거나 하는 상처 하나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매물에 대해서 제각기의 금액을 말하고, 빨간모자 아저씨는 그걸

다시 확인하며 창고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고도 재빠른 목소리로 모두에게 확인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풍경.

 

 창고 끝에 쌓인 생선들부터 거래가 이루어져서는 점점 옮겨오는 경매인, 그리고 그를 따라 모세혈관같은 샛길을

밟고 신속하고 헤쳐 모이는 사람들. 거래가 끝난 생선들은 리어카나 트럭에 바삐 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부옇게 밝아오는 바다와 하늘.

거래에 나온 건 대풍이라는 조기만이 아니었다. 갈치도 있었고, 복어도 있었고, 고등어니 삼치도 있었고, 심지어

익숙하게 생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상어도 있었다. 거의 '시장에 가면~'으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무한

돌림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의 이상하게 생긴 놈도 상어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발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보고 '홍어X'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이것도 모르는 딱한 도시사람을 봤다는 투로 '아귀'라고 알려주셨다. 콩나물넣고 찜으로 쪄먹는

아귀 혹은 아구찜 모르냐고 부연설명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럼 저건 '홍어X'이 아니라 '아귀X'이구나 하고

머릿속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눈에 담아두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떠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외판장 전경을 담고는 자리를 떴다. 수협외판장

앞면에 내려진 철제 셔터막에는 귀여운 거북이들이 곰실곰실.

이제 저렇게 경매를 거쳐 팔려나온 조기와 갈치 같은 생선들이 위판장 근처 생선가게에서부터 깔리기 시작했나보다.

깔끔하게 포장된 조기 상자하며, 진열대 아래로 추욱추욱 꼬리를 늘어뜨린 갈치들. 갈치 꼬리들이 무슨 고드름처럼

진열대에 매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이미 해가 바싹 떠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오르는 중이었나보다.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배 위로도, 걸쭉한 물결이 이는 불투명한 수면 위로도, 조금씩 저 너머 바다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침없이 햇살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갈매기도 날고, 날다가 지친 새들은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구름이 좀만 더 옅었어도

햇빛이 좀더 구름의 장막을 뚫고 넓게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느낌도 다르고, 수면 위에 이는 고요한 물결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달라서

좀체 해돋이 사진이나 바다 사진은 골라내질 못하겠다. 하여, 그냥 핑계김에 전부 올려버리는 게으름을.


그러다가 역시, 제버릇 개 못준다고 또다시 옆길로 새어서는 꽃도 보고, 어느 낡은 건물 벽면에 기대어선 닻도

구경하고. 산동네처럼 언덕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며 저 사잇길로 돌아다니면 예기치 못한

재미난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남겨두었지만.

이런 운치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 열게 될 저런 낡은 대문도 맘에 들었다. 해풍을 맞고 소금기에 절어 눅진눅진

삭아가고 있을 대문 위로 세워져있는 짧막한 창살들도 방범용이라기엔 시늉만 남은, 경비할아버지같은 느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애초 박원순과 나경원의 경합은 네거티브 대 네거티브의 구도가 절대 아니었다.

양쪽을 모두 비난하고 틀린 점을 지적하는 양시양비론, 구름 위에 올라 촌평하는 식의 태도는

결국 우위를 점한 자, 기득권층에 슬그머니 기대겠다는 심보일 뿐.


'정치인 아저씨들 싸우지 좀 마세요'라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 말앞에 모두 부끄러워 하란 말은

그래서 대개 사실 판단의 의지가 없는 게으르고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

선거도 그렇고, 사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 사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이나 그 뒤에 버틴 안철수가 진보일지, 진보적 정책(이라 쓰고 사회주의적 정책이라

읽는다)를 펼지는 모르겠다. 정권과 제대로 각 세운 적도 없는 유복한 시민운동가와 고작해야 기업CEO출신인

그들보다 비전이나 구체적 정책 면에서 신뢰할 만했던 사람들도 이미 기성정치판에 적지 않았었다.


그냥 내게 이번 투표는 사람들의 상식과 눈높이가 어느 수준인지, 부글거리는 불만이 제대로 타겟을 찾았는지

확인하는 의미 정도로 남았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도 나경원은 온갖 악재와 최악의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여하간

45%대의 적잖은 투표율을 이뤄냈고,  나머지 보궐선거 지역은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도 어렵다니. 그나마 '선거의 여왕'이라는 누군가의 아성에 균열이 생긴 걸 확인하는 게 위안이다.





안철수와 박원순. 최근 갑작스런 등장과 폭발적인 지지도로 한국의 정당정치제도를 일거에 희화화하고 있는

그 두 명의 이름이 어느 까페, 어느 책에서 문득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2008년 6월에 '안철수 연구소 사람들'이 써낸 책이라 되어 있는 이 책 앞머리에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재직중이던 그의 추천사가 적혀있는 거다. "안철수연구소는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기업인이 존경받을 수 있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시민운동 영역과 재계(중소기업)의 영역, 서로 다르다면 꽤나 다른 영역이지만 두 사람 정도의 네임밸류라면

이미 2008년 이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을 테지만, 막상 요새 둘의 드라마틱한 등장과 이후 숨가쁜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언제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거다.





● 일시 : 2011년 8월 24일(수) PM 18:00부터

●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중앙일보 왈, '보편적 복지 vs 선택적 복지'의 프레임 싸움인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졸지에 오세훈 시장 본인에 대한 불신임 투표로 바꾸어버린 와중,

 1) 작금의 상황에 대한 본인의 평가를 간단히 해주시고,

 2) 저녁 8시에 마감될 주민투표 최종 투표율을 예견해주세요.


 ex.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주민투표까지 끌고 온 놈들이 참 씨발롬들이네요,
         15%로 마감될 거 같습니다."



가장 가까운 투표율을 찍어주신 다섯 분에게 티스토리 초대장을 보내드립니다!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5장 (당첨되신 분께는 오늘밤 자정 이전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In Honor of

the hopeful bloggers of the Tistory


Ytzsche

(
http://ytzsche.tistory.com)

requests the pleasure of your joining

at
www.Tistory.com

since Wednesday August 24, 2011



R.S.V.P
ytzsche.tistory.com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청담역에서 내렸다. 무심하게 플랫폼을 밟고 계단을 향하는데,

문득 시선이 간 반대편 쪽에 전철이 문이 활짝 열린 채 뭔가가 바글바글한 거다. 그냥 잠시

정차해 있는 지하철이겠거니 했는데 다시 출발하지도 않고 그냥 계속 잠잠하다.


그러고 보니 양파자루도 보이고, 노랑 플라스틱 박스도 보이고, 어라 저게 뭐지.

궁금증을 못 참고 슬쩍 객차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건 무슨 마을 장터다. 손님들이 앉았던

의자는 박스들을 쌓아두는 간이창고로 바뀌었고,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할 위치에는

오이니 양배추니, 채소들이 진열된 채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림, 제법 사람도 복작한 게

너무 재미있는 거다.

아예 저렇게 커다란 현수막도 내걸고, 냉장고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장사하는 분들을

보니까 이게 한두번으로 끝나는 일회성 행사는 아닌 듯 싶다. 아는 분들은 알음알음해서

퇴근길이나 어디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두손을 무겁게 해서 전철역을

나설 것만 같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지하철 마을 장터, 주변분들은 애용하시면 좋을 듯.







아야 소피아에 가까운 곳에 '그랜드 바자르'가 있다. 바자르란 시장을 의미하는 터키어니까, 한국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같이 커다란 시장이 선 곳인 셈. 그냥 노상에 선 시장이 아니라 아치형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 쭉 이어지는 실내 공간에 선 시장, 말하자면 강남역 지하상가같은 게 한 대여섯개

쭉 이어진 채 지상에서 사방팔방 이어지는 걸 상상하면 되려나.


입구부터 넘실넘실 파도치는 인파 속에서 관광객과 터키 현지인을 구분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터키인이랑 유럽인은 다른 거 같으면서도 비슷한 면이 많아서, 그저 내 눈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유럽인 정도가 식별되는 듯. 굳이 더한다면 미국인과 유럽인도 조금은 구별되는게

옷차림이나 스타일이 영 다른 거 같다.

저 입구로 들어서야 본격적인 그랜드바자르 내부에 들어서는 건데, 이건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사람들이 그득그득하다. 내부 공간을 채우다 못해 밖으로까지 삐져나온 상점들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탓이겠지만, 정말 한번 둘러보면 재미있는 것들, 이쁜 것들이 꽤나 눈에 밟혔다.

맘을 붙잡던 몇몇 액세서리들을 눈여겨 보다가, 드디어 실내 진입. 내부의 벽면에 터키스러운 문양과

형태가 표현되어 있어서 그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시장과는 좀더 다르다. 터키의 느낌이 좀

진하게 배어나오는 공간이랄까.

그렇지만 또 진열대 안의 상품이나 벽면에 즐비하게 전시된 상품들에 시선이 붙잡혀 있으면

여기가 동대문인지 이스탄불인지 알 수가 없어지기도 한다. 지름신엔 국적이 없다. 특히나

저 독특한 고양이 도자기인형들. 톱카프궁전에서 한참을 뒹굴다 온듯 온몸에 모자이크

무늬가 지푸라기처럼 붙어있는 녀석들의 나른한 포즈와 장난스런 눈빛을 보니 불끈불끈.

그랜드 바자르에는 수십개의 출구가 있어서 자칫 길을 잃고 헤매기 딱 좋은 미로같기는 하지만,

어디로 빠져나오던 심심치 않은 풍경들이 나타난다. 오래 전 만들어진 대리석 구조물과 그 앞을

몇 겹씩 가리려 들고 있는 카펫들, 카펫이 아니어도 직물이라거나 악세서리라거나 온갖 것들이

나와 있는 곳. 다리가 아프도록 돌아다니다 보면 워낙 여기저기 물건값이 다른 데다가 흥정하는

재미 역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겪었던 제일 황당하고도 재미있던 경험, 어디선가 "한국말 참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요?"

너무나도 능숙하고 구수하게 이런 한국말이 들리길래 당연히 한국인 손님이 터키인 점원에게

하는 말인가 했다. 알고 보니 그 반대. 터키인 점원이 한국인 손님들에게 호객하면서 그토록

능숙하고 유들유들한 한국어를 구사하더라는.






일주일여 묵었던 친구녀석의 아파트 건물에 있던 빈티스 느낌 가득한 엘레베이터. 이중문으로 되어 있어

바깥문을 먼저 열고 안의 문을 열어야 엘레베이터에 탈 수 있고, 두개 문을 모두 닫아야 작동되는 형태.

마지막으로 돌아본 녀석의 집. 아침에 나와선 뒤도 안 돌아보고 멀어졌다가, 밤이 깊어 어둑해져서야 더듬대며

돌아왔으니, 이렇게 밝은 시간에 제대로 마주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치?

튈를리 정원 근처의 풍물시장이 있단 이야기를 들었는지라, 살짝 돌아보고 구경이나 할 셈으로.

터헛. 장화신은 고양이 3종세트가 저런 슈렉고양이스런 눈빛을 하고 내게 걸어오는 듯한 환상은 뭐지. 아..

저 애절하면서도 도도하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눈빛. 냐옹.

마침 고양이 인형 샵도 옆에 있어주시고, 냉큼 들어가서 할딱할딱대며 온갖 고양이들을 원없이 구경하다가

눈에 딱 들어온 저 녀석. 저 아이, 딱 보면 갖고 싶어지지 않나효.

고양이 말고도 이런 아리따운 자태의 소녀들과 요정들도 잔뜩 귀엽긴 했지만, 고냥이보단 못해, 라고 멋대로

생각하고는 더이상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고양이에 대한 절개..랄까.

암튼, 내가 샀던 건 요녀석들, 발을 늘어뜨리고 새근대며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니. 꺄아.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점심, 샹젤리제를 걷다가 역시나 발이 땡겼던 곳은 뽕드뺑. 뽈을 가줄까 하다가

그럴듯한 야외 테이블에 빈 자리가 없어서 여기로 와서 간단히 빵과 에스프레소로 요기.

왠지 파리지앵들은 휴가 마지막날 공항으로 가기 직전의 여행자보다도 여유로워 보였다. 휴가를 위해 일한다는

그들, 나도 그렇긴 하지만 그들은 조건부터가 다르다. 일년에 4주 휴가는 보통, 6주에서 8주 휴가도 전혀 드물지

않다는 삶의 질을 누리는 그들.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안다, 그건 축복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한 '상식'이다.)

거리 공연이 늘 벌어지던 지하철 역사 내 그 장소, 어김없이 어느 아티스트의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고 행인들은

적잖이 발걸음 멈추고 구경중이었다. 파리의 마지막 이미지.




<경고> 임산부나 노약자, 혹은 어젯밤 묘한 짓을 하여 심신이 미약해진 젊은이의 건강과 기분을 해칠 수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시제 시장, 대만의 유명한 하고 많은 야시장들 중에서 뱀이나 자라의 해체쇼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

두근두근하며 찾았던 곳이다. 여차하면 이번 여행의 목적 중에 하나였던 '뱀탕'을 시음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실내로 이어져 있는 시장통 골목은 뭔가 다른 스린이나 궁관 야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뭔가

야시시한 상점들도 보였고, 마사지샵하며 횟집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에 가득한 살풋 비린내음.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냄새가 너무도 확연히 와닿았고, 점차 냄새의 실체에 접근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뱀을 커튼처럼 가게 앞에 늘어뜨려놓았다. 다른 가게들도 이미 몇 개를 지나쳤지만 사진 촬영을 허가해 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했다. 비린내가 확 와닿는 뱀커튼들. 옆의 촘촘한 철망에는 뭔가가 쉼없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커튼으로 걸린 녀석들은, 피와 함께 내장을 모두 뱉어내고 있었던 거다. 밑에 놓인 '빠께쓰'에는 핏물과

함께 뱀의 이런저런 장기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기-일다란 뱀의 몸통에 그어진 기-일다란 칼자국, 그리고 그

기-일다란 몸통을 타고 흐르는 핏물.

뱀들이 두세마리씩 끈에 목이 감긴 채 주렁주렁.

뒤의 티비에선 언젠가 했을 해체쇼를 녹화해선 무한반복으로 틀어놓고 있었고, 앞에선 반짝거리는 뱀가죽에

구슬처럼 빛나는 뱀눈알이 콕 박힌 채 흔들거리고 있었고.

뱀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뱀의 징그러운 모습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는 듯 하다. 뭐가

되었던 신체를 저렇게 칼질하고 내걸어두면 이뻐보일리야 없지만, 왠지 목졸라 죽인 듯한 그 살벌한 분위기에

더해서 더욱 적나라한 뱀의 표정이랄까, 게다가 쫙 찢어진 입은 살풋 비웃음마저 머금고 있는 듯 해서 더욱.

철망 안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 왠지 이 녀석들은 죽음 앞에서도 초탈할 거 같다. 포유류가

파충류, 특히 뱀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어느 문화권에선 경외감과 존경심을 낳았고, 다른 문화권에선

혐오감과 배척을 낳았던 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싸구려스러운 불빛 뭉테기들이 천장에서 흘러내리고, 사진에 찍히지 않는 뱀의

비릿한 향취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뱀탕은 도저히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패스.

그 와중에도 눈이 돌아가는 섹스돌샵, 온갖 종류의 성인 장난감들을 팔고 있었지만 좀처럼 들어가 구경할

엄두도 못내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그저 愛神이라는 간판 제목이 좀 웃겨서 웃었을 뿐, 이내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또다른 샵. 반투명한 비닐 커튼을 드리웠지만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대충 뭐가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저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다 알겠더라. 내 상상력이 탁월한 걸까 아님 그것들이 워낙 적나라하게

생겼던 걸까.

아케이드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조금 살 만하다. 탁하고 비릿한 공기에서 해방되니 야시장 특유의 기름내와

온갖 음식냄새가 뒤섞인 그 오묘한 내음조차 향기롭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만난 뱀아저씨. 담배를 척, 하니 꼬나물고 무려 '소녀시대'의 댄스에 맞춰

뱀을 주물럭주물럭, 완전 기력이 쇠한 듯한 뱀을 억지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뒤의 모니터에선 소녀시대가 상큼발랄한 미소를 작렬하며 귀엽귀엽 댄스 중이시고, 앞에서는 담배를 꼬나문

아저씨가 투닥투닥 뱀을 훑으며 엉거주춤 댄스. 이건 좀 굉장히 부조화스럽기도 하고 부조리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녀시대 팬클럽에라도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아닌가 싶은데.ㅋ '소시가 뱀쇼 배경화면으로 쓰인대요'




상하이의 짝퉁시장 근처에는 한글 간판이 굉장히 많았다. 짭냄새 풀풀 나는 카피 상품에 대한 한국인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았고, 한국인이 그 제조 공정에 그만큼 깊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건지도 모른다.

'최고의 서비스', 는 알겠는데 '일반소비자가격'은 뭘까. 어쩌라구.

신기한 메뉴 투성이다. 두부김치냄비는 그렇다 쳐도, '미소코디레코딩'은 대체 뭘까. 레코드판을 먹어야 할 기세.

이건 더 대박, '뼈없는 쇠고기 돼지갈비'. 응...응?? 쇠고기랑 돼지갈비가 같이 나온단 건가, 아님 소를 먹인

돼지 고기를 준다거나 돼지를 먹인 소고기를 준단 건가. 

이어지는 단어들, 소고기 어깨고기, 소의 갈비뼈, 혀..최소한 부위들이 제시되는 것들이니 뭔지 상상이라도

해보겠지만, 대체 '유명 쇠고기'는 뭘까.

혹시 직접 가보고 싶은 분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여기는 남북으로 jinhui로가 달리고 동서로는 xianfeng로가

가로지르는 지점쯤이다. 역시 지금의 상해는 상당부분 계획된 도시로 설계되어 그런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금보나 보건안마클럽'을 찾으세요.

가게 이름이 '오토종닭'이다. 뭘까. 오~ 토종닭? 오토(auto) 종닭? 황당무계한 간판.

자랑스런 한국의 미용산업의 명성은 진즉부터 알아모시고 있던 게다. 무려 '한국전문가 직접관리'. 신뢰100%!?

불법복제 디비디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는 섭섭치 않을만큼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본 영화가 세상엔

넘 많다. 고작 저 판때기 하나 위에 깔린 영화 중에도 안 본게 잔뜩이다.

나름의 운치를 과시하는 어느 가게의 간판. 중간에 오타나 요상한 표현이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불을 켜보려다가

말았다. 저 간판 위의 세상은, 말하자면 '시적허용'의 세계인 거다.

이 간판도 그런 세상인 걸까. 숱불구이. 하긴 이런 식의 오타나 실수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한국어들조차 그다지 정확하진 않다. 표준어법을 알면서 피해가는 재치있게 비틀린 표현들 말고, 정말 몰라서

자꾸 틀리는 표현들. 그건 좀 거슬린다. 나는 않 틀린다.ㅋㅋㅋ

짭퉁들의 본거지라는 민차오패션마켓. 꽤나 큰 건물을 온통 차지한 마켓 정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들.

한국복식 매력 연출, 아무래도 여기에서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고 감수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인 거 같다. 남측보다

북측의 어휘나 분위기에 훨씬 어울리는 단어 선정이다.

수출정품관? 엄선된 상품들이란 의미의 정품(精品)인 건 알겠지만 역시 눈에 선 표현이다. 게다가 옆에 자석은

왜 갖다가 그려놓은 거지. 뭘 끌어당기고 싶은 거냐 네놈들은.

아이의 하얀 박꽃같은 엉덩이가 완전 흐뭇한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겸둥이~ 꺄아~~*

출장마사지 서비스도 있읍니다. 저 '읍'자가 아무래도 어색하게 손봐진 걸로 봐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틀리게 고쳐쓴 거 같다. 딱 억지개그치는 느낌이 가득한 게 전혀 '레알'스럽지 않은 거다.


혹시 야밤을 틈타 저기 슬쩍 다녀가신 거 아냐? 떡검들이랑 G랑 어깨걸고 '못생긴 마사지사' 찾아서?

상해에서 이번에 먹었던 음식중 가장 독특했던 건, 중국식으로 매콤한 '개구리 요리'. 우리식대로 매운 거는

뭔가 땀이 뻘뻘 나고 혀끝에서 불이 나는 건데, 여기의 매운 맛은 혀와 입안을 온통 얼얼하게 마비시킨다.

치과에서 마취제를 입안에 맞고 있는 듯한 느낌, 식용 개구리의 뒷다리는 정말이지 왠만한 치킨가게에서 파는

닭날개랑 비슷한 사이즈를 과시했다. 12足쯤 먹었으니...6마리 되시겠다.



@ 중국의 한 짝퉁 시장.

이쁜 치마를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다른 군더더기는 제하고 치마만 입혀 놓고 나니깐 그치만 되려 부작용이다.

다른 살색 부위에 대한 쾌속한 스캐닝과 동시에 치마에 대한 원망이 스물스물 일어나서, 누가 저 치마를 산다고

나서면 왠지 말리고 싶어질 듯.

벗으니까 홀가분해 보이긴 하는데, 솔직히 썩 이쁜 몸은 아닌 거 같다. 기계로 찍어내는 건데 좀더 이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잖아. 쳇.



뒷이야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발견하고는, 가게에선 사람이 부랴부랴 나와서 옷을 주섬주섬 입혔다.

상술로 벗겨놓았다기보다는-마네킹의 인권, 아니 마네킹권을 유린하는 처사로 지탄받아야 할-그냥 잠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가졌던 듯 하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