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이동하려는 참,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노 머니, 노 허니'의 격한 티셔츠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이 티셔츠가 작년 여름에 캄보디아에서 대유행이었던 게 틀림없다.

시엠립의 재래시장통을 옆으로 스쳐보내고, 이 조그마한 마을이 옆에 품고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고대 유적들을

돌아본 기억을 차곡차곡 갈무리.

시엠립 시외버스터미널, 어딘가에서 모여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옮겨가는 식이었다. 처음엔

이런 미니버스를 태워서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얼마 달리지 않아 대형 버스들이

잔뜩 주차해 있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공터에 도착했다.

버스에 짐을 싣고, 아직 출발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6시간이나 시골길을

달려야 시엠립에서 프놈펜에 도착한다니 미리 좀 먹어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다행히 우리네 버스터미널이 그렇듯 슈퍼가 있어서 다양한 간식거리나 음료도 많이 팔고 있었고, 요기거리가

될 만한 것들도 노점에서 많이 팔고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저 소세지들은 딱 보기에도 위생상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름에 다시 지글지글 튀길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은근 맛있어 보이기도.

노점 말고도 건물로 된 음식점에서도 전부 이런 류의 소세지를 파는 게 왠지 안 먹으면 후회하겠다 싶어 주문.

칼로 잘라놓고 보니 꽤나 먹음직스러운 조리 예 시현, 무슨 고기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맛도 꽤 좋았다.

숙주랑 함께 볶아진 닭고기-아마도..?-요리도 간단히 맛보고,

닭요리처럼 보여서 시켰는데 왠지 뼈도 자잘하고 맛도 살짝 다른 것이, 주인 아저씨한테 몇번을 물어봤지만

영어도 손짓발짓도 (심지어) 한국어도 안 통한다. 결국 이게 무슨 고기인지 밝혀내는데 실패, 왠지 찝찝해서

다른 것들은 싹 먹어치웠지만 이 녀석은 조금 남기고 말았다는.

가게 한 켠에 놓인 평상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는 아저씨, 그리고 선풍기 앞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대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아이 하나. 시선은 티비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벌거벗은 가슴 가득 선풍기 바람을

부딪기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슬금슬금 가게를 빠져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 잘 못 먹었는지 바싹 야윈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 닭인지 비둘기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한 점을 던져주려 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버스 껍데기는 그래도 제법 깨끗하다. 더구나 내부에는 이렇게 화장실도 있었던 것. 여섯 시간쯤 달리니 필요하겠다

싶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아무리 그래도 중간에 휴게소도 설 테고 한국에서도 그정도 달려도 차에 화장실은

없는데 싶어 새삼스레 신기하게 바라봤댔다. 언제든 필요할 때, 급할 때 쓰라는 세심한 배려.ㅋ

그리고 뭔가 우스운 방석. 버스의 각 좌석마다 전부 이 알록달록한 핑크 톤의 방석이 매달려 있었다. 이건 뭐지.

버스 앞에는 그래도 티비도 달려 있고, 캄보디아의 대중 가요를 뮤직비디오랑 함께 쉼없이 틀어줬다. 뭐랄까,

80년대 한국 트로트 가요에 맞춰 성인 배우들이 80년대풍의 과장된 감정 연기를 하는 스토리다. 해변에서 함께

손잡고 하하호호 웃으며 뛰어다니다가, 어느 순간 그 해변에 홀로 앉아 눈물 글썽이며 옷을 쥐어뜯는.

바깥에서 휙휙 풍경이 지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복 2차선의 외길, 이대로 쭉 프놈펜까지 가는

길이라 했다. 엔간한 차 한대 보이지 않는 구간을 한동안 달렸고, 드문드문 스쿠터가 앞에서 알짱대기도 했고.

프놈펜에 거의 들어와간다 싶을 무렵, 똔레 쌉강인지 메콩강인지, 뜨겁던 태양이 한풀 꺽인 듯한 하늘 아래

강폭이 잔뜩 벌여진 수면 위로 배들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강변으로는 수상가옥스러운 가건물들이 비탈지게 세워져 있기도 하고, 양철판을 이어붙인 선박들이 쭉 정박해

있기도 하고. 목욕탕의 쑥탕같은 이벤트탕 색깔이랑 비슷한 강물 색깔이 묘하다.

프놈펜 시내에 들어섰다. 아줌마들이 열맞춰 서서는 쿵짝 리듬에 맞춰서 에어로빅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인도차이나의 파리'라 불렸다는 이곳은 아무래도 시엠립 같은

시골의 조그마한 동네와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비교적 높은 스카이라인도 그렇고 북적대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리고 웃통도 제대로 챙겨입은 꼬맹이들이나 아저씨들도.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쉽게 보이던 원숭이들도. 좀처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얼굴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막상 가까이 가거나 관심을 보이면 슬금슬금 도망가 버린다. 뭔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떠나가는 듯.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골목길에서 자주 보이는 길냥이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프놈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에 잠깐 들러본 왓 프놈, '언덕 위에 세워진 사원'이란 의미의

왓 프놈은 프놈펜 시민들의 도심 공원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위치도 딱 프놈펜 시내 중심쯤에-약간 북쪽에

치우친 감이 없진 않지만-자리잡고 있다.

얼핏 보면 세느강변 옆의 파리 시내 분위기도 얼추 느껴진다. 가로등과 건물들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렇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저녁의 어슴푸레한 풍경 속에서 촛불빛을 밝혀 바치는 걸로 보아 뭔가 종교적인

지도자 아닐까. 동상에 장식되어 있는 목걸이도 그렇고.

숙소, 호텔 캄보디아나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나니 객실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벽면에 찰싹 붙어있던

도마뱀 한 마리. 안뇽.

똔레 쌉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지점쯤에 호텔 캄보디아나가 서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어디서부터가 똔레쌉강이고

어디까지가 메콩강인지 뚜렷하게 구분하는 거 자체가 좀 넌센스다. 두 줄기 모두 홍수로 잔뜩 탁해진 한국의

강들처럼 온통 흙탕물인걸 뭐. 그치만 조금 낡긴 했지만 꽤 괜찮았던 오성급 호텔에 걸맞는 뷰라고 해두기로.

저녁이나 아침에 해넘이, 해돋이 보기엔 딱 좋은 위치다.

메콩 익스프레스, 시엠립에서 프놈펜까지 여섯 시간 걸려 달리는데 요금은 USD 11$ 이었다.(09. 8월 기준)

버스 짐칸에 짐을 실어주면서 가방에 묶어 두고 식별하기 위한 표찰을 떼어주기까지 하니까 나름 체계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짐표에 그려진 저 돌고래..는 메콩 익스프레스의 로고. 근데 메콩강에 돌고래가 사나.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가던 길이었다. 털털대는 버스가 흙길과 아스팔트길을 번갈아 달리다가 문득 멈춰섰다.

뭔가 노점이 길게 늘어서 있고 차들도 좀 보이는 게 말하자면 휴게소인 양, 잠시 멈춰서서 휴식도 취하고

화장실도 가고 그러라며 시간을 내준 거다.

노점상들에 쪼르르 달려가서 구경하기 시작, 몇 개 돌아보기도 전에 깜짝 놀라고 만 장면 발견. 다리가 우글우글,

털도 복슬복슬, 게다가 똥배는 오동통통 너구리. 색깔도 먹음직스런 갈색이다.


처음에는 무슨 후렌치 후라이인가 했는데, 날씬한 막대기들이 이리저리 서로 얽혀 있어서.

세부명칭은 싱가폴블루(Cyriopagopus sp.) 교목성(나무위성) 타란툴라, 수명은 10년, 성체가 되면 25cm까지 큰다니..이 아름다운 바디와 화려한 컬러는. 쿠하. 이제 날 타란툴라 브리더라 부르시오.

학명 : CYRIOPAGOPUS SP.

이름 : 싱가폴 블루

서식지 : 싱가폴

성체시 크기 : 25Cm까지 자라는 대형종

적정온도 : 26~32°C

적정습도 : 70~80%(바닥제는 습하게 해주는것이 좋다고 한다)

바닥제 : 바크,에코얼스,피트,버미큘라이트

성격 : 매우 공격적(꺄아~~^0^*)

성향 : 나무 위성

기타 : 싱가폴 블루는 구티오너멘탈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타란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타란입니다.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발색이 나온 성체가 없기에 자세한 정보를 알수없거 대부분 외국사이트에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체와 아성체를 구할수있습니다. 유체의 경우는 유목이나 바닥제를 이용하여 약간의 버로우성 은신처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이때는 약간의 충격과 진동에도 반응하며 더깊이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보아 사유난이도가 약간 있는편이지만 아성체의 경우는 지구타이거류의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므로 주의가 필요한 편입니다.



2007년쯤 반년동안 내가 길렀던 타란툴라가 생각났다. 슬슬 손바닥만하게 자라나며 저 신비한 파란빛이 몸통에

드문드문 배어나기 시작하던 녀석은, 2007년 겨울을 못 견디고 얼어죽어 버렸댔다. 집에 저 녀석이 왔을 때

질색팔색하던 어머니에게 "구워먹으면 초콜렛맛이 난다더라"며 설득했었는데 차마 구워먹기에는 반년간 쌓은

정이란 놈이 무서워서. 거미가 일찍이 '사랑은 없다'고 울먹였거늘.





타란툴라야 타란툴라야 거미줄을 뱉어라 안 뱉으면 구워먹으리 초콜렛맛.

타란툴라야 타란툴라야 꾸물대는 밀웜을 사냥해 보아라 꼼짝않고 버로우하면 구워먹으리 초콜렛맛.

거미튀김만 있던 건 아니었다. 정말 거대한 귀뚜라미들이 폴짝 뜀뛰려는 자세 그대로 뒤엉켜서는 난리다.

껴안고 뽀뽀하고 뒤집고 때리고, 지들끼리 난리가 난 그야말로 아수라장. 생명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저 지독하게

밀집된 인구밀도에서 벗어나도록 종이봉투에 좀 덜어갔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종이봉투에 담아 번데기씹듯

오도독 오도독. 나름 빨간 고추와 고수도 들어가 있어서 캄보디아 특유의 향신료 냄새도 부족하지 않을 듯.

이 녀석들은, 뭐랄까. 좋게 말하면 딱정벌레. 나쁘게 말하면 거대 바퀴벌레. 딱정벌레라고 하면 왠지 1그램쯤은

먹고 싶은 마음이 동할 수도 있겠는데, 바퀴벌레라고 하면 전혀 먹고 싶지가 않은 거다. 반질반질한 껍질이

기름에 튀겨졌으니 꽤나 바삭바삭할 거 같긴 한데. 근데 사진상의 에러는 저 절대 먹고 싶지 않은 빛깔의

징그럽게 생긴 곤충 하나. 아니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왠지 색깔이 빨갛게 잘 찜쪄진 꽃게 같기도 하고.

그 외에는 여느 시골의 노점과 딱히 다른 풍경은 없었던 거 같다. (워낙 저 거미와 귀뚜라미와 바퀴(딱정)벌레의

생생하게 튀겨진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연해서는 간이 '구루마' 옆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숫기없는 소년이 하나 있었다. 왠지 저 녀석,

거미튀김을 한 입 물려주면 기운이 번쩍 나서 구루마라도 뒤엎지 않을까, 마님을 찾진 않을까 싶은 상상의 나래.

차에 다시 올랐는데 바지만 입고 자전거를 타는 까무잡잡한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안장 높이나 전체 크기가

자신에 비해 훨씬 커보이는 자전거를 타고는 노점에 와서 뭔가를 사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계속 안장에

찡겼는지 엉덩골 사이에서 옷을 잡아빼는 번거로운 손길이 눈에 밟혔다.

이내 출발, 다시 평화롭고 뜨겁지만 나른한 캄보디아의 시골길을 따라 먼지 풀풀 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시엠립에서 프놈펜까지는 버스로 6시간, 중간에 몬도가네 튀김들을 보고 놀란 가슴 진정시키다 보니 그 정도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앙코르 톰에서 승리의 문을 지나, 톰마논과 차우 싸이 떼보다 사이를 가로지르고 나면, 문득 쌓여있는 돌무더기가

보인다. 예전에는 돌로 쌓아 만들어진 돌다리였을 것만 같은 아치형이 반복된 형태의 돌무더기. 많이 허물어졌다.

울룩불룩하게 힘이 들어간 근육과 다이나믹하게 꼬인 채 돌무더기를 움켜쥔 모습은, 금세라도 돌을 집어던질

듯한 살벌한 기세다. 조용하고 침착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랄까.

그런 무시무시한 나무들에 꼬불꼬불 흔적이 남아있다. 나무들은 돌들에 상처를 내고, 개미들은 나무에 상처를 낸다.

바로 이 녀석들. 지금도 쉼없이 꼬물대며 나무를 바스라뜨리는 녀석들.

뭔가 수박씨만한 녀석들도 보이고, 작은 놈들이라고 해도 여기 녀석들은 원체 먹을거리가 많아서 그런가 굉장히

억세보이고 강인해 보인다. 딱 보기에 덩치도 그렇고 딴딴해 보이잖아.

꺄아...징그러. 저번에 올린 타이완 화시제 야시장의 뱀 사체들과 더불어 혐짤이랄 수도...있으려나.





앙코르톰 동쪽 입구에 연해 있는 두 개의 사원, 톰마논과 차우 싸이 떼보다. 동쪽 입구에서 뻗어나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사원의 위치나 형태가 흡사하여 쌍둥이 사원으로 여겨진다고 하지만, 앙코르 유적에 대한

흥미를 더해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톰마논은 앙코르 왓을 세운 수리야바르만2세 때 세워진 사원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그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앙코르왓을 보기 이전이었는지라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닮았는지는.

천년도 넘은 사원의 무게감, 천년을 두고 돌덩이에 뿌리를 내렸을 이끼들도 돌의 무게감을 배웠다.

그리 크지는 않은 사원이라 한 바퀴 훌쩍 돌아보는데 한 삼십분 정도. 사실 반대쪽의 '차우 싸이 떼보다'란

기묘한 이름의 사원이 신경쓰여서 조금 살살 돌아봤다.

글쎄 길건너편엔 무슨 테마파크에서 봄직한 반짝반짝거리는 사원이 세워져 있었던 것. 똑같은 생김이고 방금

돌아본 톰마논과 같은 장식의 구조지만, 때깔이 너무 생경하다.

대충 뜨거운 태양에 눈먼 채로 보면 나이를 좀체 가늠할 수 없고, 부분부분 과거의 원형이 보전되어 있는 곳들이

있어 그래도 완전 복제품이라거나 100% 신품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중간중간 두드러진다.

이런 식으로. 감히 인간의 손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시간의 씻김, 그 자연스런 흔적과 함께 할 때 너무도

티가 나는 반듯반듯하고 번쩍번쩍하는 복원 부위. 시간이 지나면서 갓 지은 티가 좀 씻기고 나면 톰마논과

쌍둥이 사원으로 지어졌다는 게 좀더 실감이 나려나.

사원들 옆에 간단하게 지어올려진 천막, 그리고 보기만 해도 너무 편안해 보이는 해먹.

오랜만에 보는 봉긋한 사자녀석의 엉덩이. 이 녀석은 왠지, 봉긋보다는 불룩하단 표현이 맞을 듯 하기도.




앙코르 왓으로 향하는 길, 며칠째 들어서는 길목이라 낯설지 않은 그 길에 노란색 풍선이 떴다. 앙코르 왓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이미 세계의 이름난

유적들의 전경은 눈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거다. 그것들을 실감하기 위한 첩경은 그 전체적인 그림에 세세한

자신만의 디테일을 새겨 넣는 것,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며 세세한 부분들을 가슴에 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앙코르 왓에 들어서려면 무려 이백여 미터에 달하는 해자 위에 놓인 한 줄기 참배로를 지나야 한다. 바닥에

깔린 포석들이 불규칙한 듯 하면서도 잘 짜맞춰진 채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렇게 천년을 버티고 있었다.

참배로 가운데, 이를테면 중앙선 같은 위치 왼쪽으로는 살짝 돌들이 일어서있긴 했지만 유독 그곳만 무너진 건

뭔가 이유가 있어보일 만큼, 다른 곳의 포석들은 탄탄하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중앙선 왼쪽과

오른쪽의 건축 연대가 다르거나 건축 책임자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참배로 옆으로 보이는 해자, 그리고 무성한 정글의 수풀. 해자는 방어의 목적으로 건설되기도 했지만 이 사원,

앙코르 왓에서 행해지는 의례로 참석하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기 위한 정화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한다.

더러운 진흙속에서 싹을 틔워 미끄덩대는 녹조류 가득한 연못물을 헤치고 나와 봉긋 피워올려지는 연꽃봉오리.

게다가 아침에 꽃잎을 열고 저녁이 되면 꽃봉오리를 다시 닫는 그 모양이 세계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고

여겼댄다. 앙코르 왓의 연꽃봉오리 모양 사원보고 여봐라는 듯한 진홍빛 연꽃.

해자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공간이 열린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 올림픽공원이 1kmX1km의 사이즈였다고

하는데, 이건 그보다 더 크다.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 그 공간이 오롯이 앙코르 왓을 위해 바쳐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앙코르 왓은 비슈누를 위한 힌두교 사원이니까, 비슈누에게 바쳐진 셈이다.

아침에 들어서니 태양이 스물대며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동쪽을 향해 걸어야 했다. 구름이 슬쩍슬쩍 태양을

가릴 때마다 격하게 달라지는 빛의 농밀함.

앙코르 왓은 무려 37년 동안 지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왓'은 불교 사원을 뜻하는 단어로, 애초에는 단순히

'앙코르'라고 불렸다고 하며 왕궁이자 사원이자 도시의 역할을 겸했다고 한다. 비록 목조로 지어졌을 왕궁과

가옥은 사라져버렸지만 약 2만명이 거주했던 도시의 분위기는 얼핏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간임에도 바글대기 시작하는 여행객들.

앙코르 왓은 단순히 사원 하나가 아니라 도서관, 연못 등의 각종 '부대시설'을 포함한 공간이다. 참배로를 따라

가는 길 좌우에 포진해 있는 신비한 느낌의 도서관. 건물이 저렇게 '꼬질꼬질'해지기 전에는 얼마나 이뻤을까

싶을 정도로, 뭐랄까 다보탑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언뜻언뜻 비치는 것 같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내부는 너무 단촐하다. 장식도 없고 담백해서, 문밖 풍경에 눈에 간다.

앙코르 왓 중앙성소를 바라본 사진들. 구름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도 깜빡했다는 듯 금세 고개를 내미는 햇살

덕분에 앙코르 왓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앙코르 왓은-물론 다른 힌두교사원들도 그렇지만-좀더 선명한 피라밋 구조를 느낄 수 있다. 중앙으로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한 층씩 고도가 올라가는 거다. 힌두신들이 산다는 메루산, 그 세계 자체를 지상에 구현해 놓으려는

의지가 담겼지 않을까, 사방에서 사원을 수호하고 있는 동물상들.

본격적으로 사원 내부로 들어서기 직전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아직 해가 본격적으로 성내기 전이라 그다지

힘들진 않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정오쯤 되면 그늘이 귀한 꽤나 고생스런 길이 될 거 같다.

사원의 북서쪽 귀퉁이,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사원 내부로 들어섰는데 워낙 큰 공간에 풀려서 그런지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연밥무늬 창살은, 외부로부터의 가혹한 햇살을 막고 내부의 습기를 밖으로 원활히 빼내는데 적합한

형태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더해 안에서는 밖을 잘 볼 수 있지만 밖에선 안을 잘 볼 수 없단

점도 고려된 게 아닐까 싶다.

입구에서부터 건물 내부를 휘휘 도는 회랑이 시작하는 지점, 두 명의 여신이 양쪽을 지키고 서있었다.

근데 왜 저렇게 가슴과 코가 맨들맨들 닳아버린 거지, 여기도 뭔가 저런 데를 부비부비하며 소원을 빌면 애기가

생긴다거나, 남자아이를 잉태한다거나, 로또 대박이 될 거라고 믿는 분위기인가.

원래 여기는 물이 저만큼 차 있어서 목욕재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앞선 해자에서

'상것'들과 함께 몸을 섞기 싫은 '높은분'들을 위한 VIP용 욕탕이랄까.

오랜 연원의 유적들을 보면 늘 돌빛깔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잊기 쉽지만, 사실은 당대의 모습은 꽤나 화려한

채색과 치장이 되어있었던 게 대부분일 거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오벨리스크, 상형문자 가득한 사원들도

사실 굉장히 현란하고 화려한 아프리카풍의 색감이 가득했었지만 전부 씻겨지고 벗겨지고. 여기 역시 마찬가지

채색의 흔적만 아스라히 남아있었다.

반띠아이 쓰레이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정교한 문양들, 각진 모서리가 여전히 쫑긋 서있는 게 신기하다.

중앙사원의 턱밑에서. 아쉽게도 앙코르왓의 최중심부에 서있는 중앙성소에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무려 70도에 이른다는 가파른 계단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인간이 아닌 신을 위한 계단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고 저런 계단을 잘 오르리란 보장은 없을 텐데. '신성'이 꼭 가파른 계단 오르기 따위로 증명될

건 아니겠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드러내는 참신한 기제인 거 같기도 하다. (다른 식으로 신적인 걸 어떻게

증명하고 나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꽤나 골치아픈 문제인 거 같다.)

중앙사원을 바라보며 둘레를 한바퀴 탑돌이하듯 돌아 보았다. 돌로 반듯하게 다져진 바닥, 돌로 만들어 세워진

벽, 돌로 만들어 끼워진 창, 그리고 돌로 만들어 올려진 지붕과 장식들까지. 온통 돌이다.

중앙사원에 있는 탑들마다 사받으로 뻗은 계단이 있지만, 서쪽으로 향한 계단들은 약간씩 경사가 완만하다고.

사람들이 탑에 오르내리려면 서쪽 계단으로만 다녔다고 한다.

한쪽 벽에 조각된 압사라 댄스를 추고 있는 여신들. 딱히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듯한 분방한 자세와 표정이 딱

맘에 들었다.

앙코르 왓은 항상 어딘가 조금씩 보수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전체 그림을 망칠만큼 흉하게 넓은 부위를

덮고 보수 중이거나 탁 튀는 색의 휘장을 둘러놓고 하는 게 아니어서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아마 그 때문에

중앙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게 금지되었던 것 같지만,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보는 것도 충분히 좋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다듬지도 않은 돌들을 그냥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쌓아둔 듯한 중앙사원의 탑 꼭대기.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봉긋한 곡선이 아름답기도 하고, 삐쭉삐쭉 솟은 날카로운 돌의 모서리조차 잘 안배된

것처럼 보인다. 중앙사원탑 위에 짧막하니 올라 있는 저건 현대에 들어와 보완한 피뢰침인 걸까.

아침에 앙코르왓으로 오면서 보았던 노랑색 풍선, 이제 꽤나 높이 올라섰다. 아니, 이미 몇 차례 뜨고 내리기를

되풀이했을 거다. 저 위에서는 이 오돌토돌한 질감이 또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해졌다.

차츰 햇살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원 내부는 마치 동굴 내부에 들어온 양 시원하고 약간의 촉촉한

습기마저 느껴졌던 것 같다. 어디 바람 잘 불고 그늘진 곳을 찾아 잠시 쉬어 가기에 딱 좋은 타이밍.

앉아서도 계속 두리번두리번, 아름다운 사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라더라, 앙코르 왓의 도면을 그리려면

슈퍼 컴퓨터로도 삼년이 걸린다던가, 그런 식의 '선정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믿기지도 않고 의미도 없지만

굉장히 세밀하고 구석구석 아름다운 사원인 건 실감했다.

문득, 창 너머에서 압사라 여신들이 나타났다. 회색빛 돌벽에 퀴퀴한 색감으로 조각되어 있던 그녀들이 입고

있던 옷은 기실 저런 화려한 색감과 금빛 장식이 반짝이는 거였을 터. 여행객들이 얼마인지 모를 돈을 내고

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어서, 살짝 무임승차.




그리스 신들이 올림푸스 산에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 하면, 힌두신들이 모여사는 산 이름은 '메루산', 바로

바꽁(Bakong)의 사원이 바로 그 메루산을 형상화한 힌두교 사원의 최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불이라도 붙은 듯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운을 이미지화한 사원의 중앙성소가 바로 메루산, 힌두신들의

고향이다. 중앙성소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한 피라밋처럼 층층이 쌓인 채 동물상들로 수호되고 있다.

중앙성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여신상 조각들. 뭔가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잡기가 필수적인 것 같다. 너무 가까워도 전체 그림과의 조화가 뭉개지고, 너무 멀어도 디테일의 섬세함이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일년에 한 번씩 했던 '동계전술훈련', 대체 공군에 가서 하이바에 꽃꽂이하듯 풀떼기를 꼽고는

뛰어다니는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그냥 저 화분처럼 되어버린 사원을 보고 그 하이바가 생각났다.

중앙성소를 오르는 길에 마주했던 코끼리상, 길쭉하게 뻗어나가야 할 코가 부러져나가버리고 없지만, 그래도

얄포름하니 쉽게 펄럭일듯한 큼직한 귀의 묘사라거나, 완고하고 굳건해 보이는 네 다리와 넙데데한 발바닥,

그런 걸로 충분히 코끼리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진짜 코끼리 가죽처럼 거칠거칠하고 완전

건조한 채 두툼한 느낌의 조각상 표면 감촉을 들지 않더라도.

사원이 드리워낸 시꺼먼 그늘, 강렬한 태양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 세계와 극명하게 대비된 채 어둠이 내린 듯

어둡고 촉촉한 느낌의 또다른 세계.

중앙성소로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편으로 내려가면서 돌아본 풍경. 여기저기 풀들이 자리를 꿰어차고 앉아

조금씩 사원을 허물고 있었다.

거의 완전히 허물어져내린 전탑 하나.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하는 가짜문 하나만 간신히 남아있다.

얼핏 보면 앙코르왓 사원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알고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원래 바꽁의 중앙성소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 전쟁으로 파괴되고 나서는 그새 건축된 앙코르왓의 중앙탑 모양을 따서 재건되었다는 얘기.

사원만 바지런히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퍼석퍼석하고 낡은 느낌의 누런 사암색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광택이 번쩍거리는 생생한 샛노란 꽃 한송이를 보니 생명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바꽁 사원, 혹은 힌두신들의 고향이라는 메루산의 전경. 뭔가 느낌이 달라진 거 같기도.

시바신의 화신이라는 소 한마리, 메루산에 안 오르고 사원에서 돌아나오는 길 뚝방에서 풀을 뜯고 계셨다.

롤루오스 유적군은 롤레이, 쁘리아꼬, 바꽁으로 이어지며 얼추 돌아본 셈이다. 다시 씨엠립 시내로 들어가기 전

아쉬워서 슬쩍 돌아본 주변에서 발견한 캄보디아의 쓰레기통.

그리고 여기도 시바의 화신,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뽄새가 아늑해 보이기는 하는데, 지천에 깔린 녹색 풀들을

두고도 넌 대체 왜 이리 갈비뼈가 앙상한 거니. 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영 풀지 못하는 궁금증 하나.




쁘리아 꼬(Preah Ko)는 씨엠립 동남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롤루오스 유적군 중 하나다. 롤루오스 유적군은

앙코르 왕조의 초기 유적, 대개 900년대를 전후한 유적지여서 훼손도 그만큼 많이 되었고, 또 기교도 전성기만

못해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듯 하다.

'쁘리아 꼬'란 말의 의미는 '신성한 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목걸이도 하고 커다란

코를 위풍당당하게 벌름거리는 듯한 제법 그럴듯한 소 조각. 뒤로 피어오르는 한 줄기 버섯같은 흰구름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쁘리아 꼬는 크메르 왕국의 시조부터 세 쌍의 왕/왕비 부부를 모셔 놓은 사원이라 한다. 그래서 탑도 총 여섯개

쌓아올린 거라고 하고, 탑마다 계단 아랫쪽에는 이런 특이한 모양의 기단을 받쳐놓았다.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한다는 '월장석'이라 하여 달을 형상화한 돌조각이라 하는데, 저게 왜 달일까 한참 고민하게 만들었다. 왜

보통 '달'이라 하면 똥그랗거나 반달이거나 이지러졌거나 여하간 동그란 원의 형태로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건

무슨 말미잘처럼 너울너울 달빛이 퍼져나가는 것까지 형상으로 잡아낸 건가. 그때의 사람들은 달을 그리라하면

저렇게, 똥그란 원이 아닌 달빛 파장까지 반영된 그림을 그렸지 않을까. 아니면 어쩜 그때는 정말 저렇게 생긴

달이 이 '쁘리아 꼬' 사원을 비쳐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된 만큼 손대어 복원할 곳도 많은가 보다. 아예 탑 맨 아랫단부터 촌스럽도록 신선한 새 벽돌로 괴어나간

귀퉁이. 저렇게 '난 새 벽돌이요~'라고 티내는 것들이 대체 이 천년묵은 돌탑하고 융화될 수 있을까. 만약

진품 부분과 복원된 부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차라리 자연스레 무너진 부분에서

더이상의 붕괴를 막되 저렇게 어줍잖은 복원은 안 하는 게 차라리 보기 좋지 않을까 싶다.

사원 한 귀퉁이에서 길다란 목줄을 질질 끌며 유유자적 풀을 음미하고 계신 하얀 소님. 힌두교의 영향권 하에서

소는 파괴와 창조의 신인 시바의 현현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 캄보디아는 이제 힌두교의 영향력에서 완전 벗어났다고 해야 하나. 식당에선 쉽게 소고기

음식을 찾아 볼 수 있고, 딱히 소를 존경하지도 않는다. (캄보디아는 소승불교가 95%를 차지하는 불교국가다.)

오랜 세월을 견딘 인간의 건축물들은 조금씩 '인공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어느순간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연'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의 것으로 본다면 정말 남루해지고 퇴락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신비로운 느낌이 피어오르는 바윗덩이같은 거다. 저렇게 이삼천년 더 지탱해낸다면

이제야 기자의 피라밋처럼 그냥 '산'이 되고 '언덕'이 되어 버릴 거다.

지금도 벌써 드문드문 초록 이끼가 끼어 있는 바윗돌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바윗돌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모래알 깨뜨려, 뭐 그런 식으로 나가면서 차츰 닳아빠지고 없어져 버린다. 어떻게 보면 허무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작 신비로운 게 그런 가차없는 풍화, 무화의 과정 자체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왠 오동통한 참새냐, 했는데 가이드북 상으로는 '사자상'이랜다. 뭐 입도 쫙 찢어졌고 가슴에 불룩한 저게

탄탄한 근육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참새 몸뚱이에다가 괴물딱지 머리를 갖다 붙여 놓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아마 앙코르 문화의 초기니만치 조금은 서툴렀던 것일까.

이 다소 현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건물은, 위에 구멍이 뽕뽕 나 있다는 것에 주목해 '화장터'로 여겨진다고

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간다. 아무런 기록도 없다고 하니 좀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사실 경주의

'첨성대'를 두고도 수많은 설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인 거다. 실용적 천문관측대였다느니,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다느니, 커다란 기준표지였다느니,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다느니 등등. 그런 종류의 '여지'가 남아있어야

흥미로워진다. 현대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대면하고 있을 때의 낯섦, 생경함 따위의 감정이 살아나는 거다.

쁘리아 꼬 옆에는 캄보디아의 유수한 사원들을 자그마한 사이즈로 줄여서 전시해둔 미니어쳐 전시관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제대로 구색을 갖춘 건 아니고 그냥 마당 한복판에 앙코르왓이 있고 반띠아이 쓰레이던가

그런 유명한 사원들의 모형이 놓여 있었던 곳이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무심하게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열중해

있었다. 어이 이봐, 나는 이런 거 보겠다고 한국에서부터 몇 시간씩 날아온 거란 말이다. 왠지 저런 걸 보면

억울해질 때가 있다. 피라밋 옆에서 나른하게 파리를 쫓거나 졸고 있다거나, 에펠탑엔 눈도 안 주고 시크하게

걸어가는 파리지앵들, 혹은 9/11 전 쌍둥이 빌딩 전망대를 오르는 여행객들에게 웃어주던 뉴요커들..그런 거다.




이제 조금씩 인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 제법 표지판도 구색을 갖춘 '숲길'이 나타났다. 노란 바탕에

아이둘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걸로 보아 아이들이 많으니 조심하란 표지 같다. 근처에 학교라도 있다거나.

가만히 보면, 조금 더 큰 남자아이는 폴포트 치하의 캄보디아라거나 중공 등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일
 
법한 모자를 쓰고 책가방을 옆춤에 차고 있다. 저걸 뭐라 해야 하나, 베레모도 아니고 약간 빵모자스럽다고

해야 하나. 모자 가운데 별모양 배지라도 붙어있을 것 같은, 색깔도 왠지 핏기없는 풀색이나 갈색 계열일 듯한.

롤레이는 씨엠립 인근의 앙코르 유적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라고 한다. 9세기 말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다른 사원들에 비해 짧게는 백년, 길게는 이삼백년을 앞선 셈이다. 그 이삼백여년의 차이가 이토록 컸던지

사원이 거의 황폐해져 있었다.

총 네 개의 벽돌탑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미 저렇게 옆구리가 터져나가서는 토사가 잔뜩 흘러나온 탑도 있고,

가운데 중앙성소 역시 연꽃이 봉긋하니 피어오른 형태가 많이 이지러져서 끝이 뭉툭해졌다.

오히려 시선이 가던 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던 아이들. 내 어렸을 적 오징어 모양 그림을 그려놓고

뜀뛰기하며 놀았던 것처럼, 비슷하게 뭔가를 그려놓고 폴짝거리며 놀다가 여행객을 보고는 살살 눈치보며

장난을 걸어온다. 먼저 앞장서서 사원을 함께 돌아봐주기도 하고, 카메라를 의식하고 자세도 잡아주고.

다른 곳에 가면 귀엽지만 그악스럽게 달라붙던 꼬마 상인들이 여기는 아예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또 여기에

있던 동안 다른 여행객은 전혀 보지 못한 것으로 보아 꽤나 조용한 동네인가 보다. 그래서 그만큼 더 아이들도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것 같고.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 사람손을 많이 타고 안 타고의 환경적 요인이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꿨다.

사원 한 귀퉁이에서는 노인 한 분이 돗자리 위에다가 새하얀 뭔가를 고르게 펴놓고 말리고 계셨다. 뭘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까 하얀 쌀. 말려서 뭔가 누룽지처럼 해드시려는 건가.

아이들이 아무리 다가가서 장난을 걸고 툭툭 찔러봐도 그저 귀찮아 그늘 아래 널부러져 있던 강아지 한마리.

이 곳의 더위는 개들의 성미조차 노곤하게, 혹은 온순하게 만들어버렸다.

롤레이 옆에 불교 사원이 있는지, 밝은 감색의 승려복이 깨끗이 빨아진 채 널려 있었다. 저걸 그냥 몸에 둘둘

감으면 옷이 되는 건가 싶고, 빨면 참 금방 마르겠다 싶기도 하고.






아무리 반띠아이 쓰레이라 해도 역시 크메르 사원 양식을 벗어나진 않는다. 내부는 의외로 담백하고 밋밋한

그대로 인 거다.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외벽들, 물론 중앙성소가 있는 중심부로 갈수록 화려함은 더해가고 보존상태도 훨씬

훌륭해지지만, 이 곳 역시 천년의 시간을 빗겨나가진 못한 거다.



이빨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벽면, 그리고 황토를 개서 만든 벽돌을 딱딱하게 말려서 반들반들하게 만들었을

벽돌은 조금조금씩 비바람에 갉아먹혀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단단한 부분만 남았다.

링가의 늠름한 자태.

그러고 보니 이런 장식들도 우선 라테라이트 벽돌을 쌓아올린 후에 저렇게 입체감 넘치도록 조각을 해버린 거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복명'의 자세로 나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원숭이들. 얘들은 근데 최근에 복원한 건지

전부 색깔이 다르다. 주변의 때묻고 빈티지스러운 느낌과는 전혀 이질적이다.

도마뱀도 더러 지나가던 곳, 어찌나 빠르고 귀엽던지. 문득 초등학교 때 괌에 이민 사전조사차 갔다가 맥도널드

앞 유리창에 떼로 몰려있던 도마뱀들을 콜라 빨대 속으로 몰아놓고 장난치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중앙사원의 네 대문 중 세 개는 역시 가짜문이다. 동쪽으로 난 문만 진짜. 가짜문이라고는 해도 외관상으로는

진짜 문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장식을 해 놓았다.

얼핏 보면 원숭이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는 거 같기도 하고. 멀찍이 등돌리고 앉아있는 녀석을

나머지 네 녀석이 뒤에서 뒷담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신 뒤의 남신, 여신상에 비해 참 담백하다. 그냥 뭐, 아무 장식이 없이 지팡이 같은 거만 하나 들었다.

저런 식물들, 돌 틈새에 들어가서 뿌리라도 내리면 조각들 떨어져나가는 거 금방일 텐데. 다른 사원들에선

시간을 거슬러 아등바등 외관을 유지해보겠다고 애쓰는 게 안쓰럽고 조금은 치사(?)해 보였지만, 여긴 달랐다.

좀더 잘 지켜졌으면 좋겠고, 좀더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참 간사하고 기준도 없다, 그러고 보면.





링가와 한쌍을 이루는 '요니'의 바닥. 어디론가 연결되어 샘물이 솟아오를 거 같기도 하고.

또다른 요니, 여기는 연꽃무늬 벽돌이 네모반듯한 요니를 막고 있었다.




또다시 화장실 앞의 넓게 펼쳐진 연꽃밭에서. 아직 봉오리가 터지지 않은 탐스러운 연꽃송이는 정말 크메르

사원의 정형적인 형태와 닮아 있었다. 그 터지기 직전의 봉긋한 옆구리도 그렇고, 봉오리 위쪽의 삐쭉거리는

꽃잎매들도 그렇고. 연잎마저 탐스럽게 늘어졌던 반띠아이 쓰레이.

그 앞에는 상점들의 정비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제대로 외관을 갖춘 높은 지붕의 건물들에 입주한 각종 상점들.

지붕을 덮은 갈색 짚이엉이 야무지다.

크메르 전통 공예가인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를 깍아만든 '크메르의 미소'에 색깔을 입히는 모습이

굉장히 몰입해 있었다. 가격을 슬쩍 물어보니 왠지 씨엠립 시내의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비싸다 싶어서 그냥

돌아나왔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앙코르 유적지에서 약 38km, 한 시간정도 툭툭을 타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 소 달구지도

만나고, 자전거 레이스를 하겠다고 덤비는 꼬맹이들도 만나고.

밝은 감색 승복을 나부끼는 스님들과 허술한 기념품 가게 옆도 씽 지나쳐버렸다. 역시 여행은 속도가 느릴수록

재미있는데 말이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으니 자꾸 압축적으로 보려는 마음이

동하게 되는 거겠지만. 그래서 사실 가끔 여행 많이 다니는 자칭 '고수'들이 그렇듯 패키지로 나가는 '관광객'을
 
낮추어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빠알간 꽃의 무게를 못 이기고 축 처진 것처럼 보이는 줄기들.

반띠아이 쓰레이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 눈에 번쩍 띄었던 꼿꼿한 나무 한 그루. 뭔가 왼쪽의 무성한 이파리의

가지와 앙상한 오른쪽의 가지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드디어 반띠아이 쓰레이다. 근 한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꼭 와야 했을까, 살짝 반신반의하는 맘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여긴 입장권 판매소부터 다르다. 깔끔히 정비된 간판에 사원 주변을 둘러싼 듯한 연꽃밭.

입구서부터, 뭔가 조각이 다르다. 선명하고 섬세하고, 빈틈없이 화려하다.

'링가'들이 두줄로 정렬한 채 순례자를 중앙사원으로 인도하는 통로. 바닥의 포석은 더러 유실되고 이리저리

비틀어져 버렸지만 링가의 불끈한 형태는 그대로다. 상상 그대로인 것이, 저 링가란 파괴의 신 시바를 추상화한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시바신이 사람처럼 상상되기 이전 그의 존재를 나타낸 조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건

고대인들이 으레 그러하듯 남성의 성기 모양을 따서 상상되었다고 하는데 벌써 모양새가 딱 그렇다.

사원 중간중간 부서진 조각들에도 꼼꼼하게 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건, 이 사원이 한번 철저하게 스캐닝되어

관리되고 복원되고 있다는 의미와 같지 않을까. 이 조각이 있어야 할 곳, 소용되는 곳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단

것일 테니 말이다.

얼마나 깊고 정교하게 조각을 했는데 살짝이라도 손을 대면 으스러져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무슨 부드러운

붉은 색 목재를 조각한 것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건 모두 붉은 사암, 돌이다.

링가가 세워져 있던 장소, 성소가 흐르는 곳이라 하는 곳을 '요니'라 한다. 옆을 지나가던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훔쳐들은 바, 이것 역시 여성의 성기를 본따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래서 링가와 요니가 만나는 이

곳을 성스러운 장소로 여겼었다고. 미루어 추측해 보자면 아마 성기 그 자체가 창조나 풍요, 생산력을 상징할

수 있었겠구나 싶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굉장하다. 멀리서 볼 때부터 충분히 그 돌출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깊고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엇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건 무슨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코르크 재질로 만든 장식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던 당대의 장인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을까,

캄보디아의 전통 사회에서도 '사농공상' 같은 유교적 위계가 있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원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온통 조각으로 가득해서 밑에서부터 훑어올라가는 시선이 위에까지 가 닿으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쉽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을만큼 강렬한 매력을 가진 반띠아이 쓰레이.

그러고 보면 '반띠아이 쌈레', '반띠아이 쓰레이' 등등 '반띠아이'로 시작하는 사원들이 적지 않다. 반띠아이란

크메르어로 '방으로 둘러싸인 사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쓰레이'는 (발음을 잘 해야겠지만)

'여성'을 의미한다고 하니, 반띠아이 쓰레이는 사원의 여성적인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걸맞는 이름을 가진 셈.

앙드레 지드가 소싯적에 여기서 '동방의 모나리자'라 불렸다는 이 여신상을 도굴하려다가 잡혀서 6개월 실형을

살았다고 한다. 그가 여길 도굴하려던 게 1924년,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아름다운 사원이 발견된 게 고작 그

십년 전, 1914년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잊혀져 있었던 걸까.

하아...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저 조각들. 천년 전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엣지있게' 생생하다. 슬쩍

손을 뻗쳐 모서리를 만져보니 여전히 빳빳한 게, 막 조각해 내었을 때의 뚜렷한 각도가 그대로인 게다.

약간 사원 옆으로 튕겨나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아기자기한 높이에 그다지 크지 않은 스케일의 사원임엔

틀림없지만, 붉은 빛을 가득 품은 정말 아름다운 사원이다. 해가 뜰 때나 질 때 보면 햇살에 붉은 빛이 반사되어

더욱 이쁘다고 하는데, 빈약한 상상으로나마 그 풍경이 대충 감이 간다. 아니, 그때의 감동이 어느만큼일지

대충 감이 간다는 게 맞겠다.

육체적 피로나 따꼼한 발바닥 따위는 잊고 아무리 감격한 채 사원을 헤집고 다녀보려 해도 한가지, 뜨거운 불볕

더위는 어쩔 수 없다.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도 사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반띠아이 쓰레이에도 외부를

빙 둘러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자취가 거의 남지 않을 만큼 사라져버렸지만, 어쨌건 흔히 '유럽의 성'에서

연상하는 해자는 캄보디아에서 연원했다는 것.

3개의 탑을 앞세운 중앙성소는 원숭이 상들이 빙 둘러 수호하고 있고, 외벽에는 빼곡하게 여신상이나 코끼리상

혹은 나가(뱀)상, 덩굴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사치스럽기까지한 느낌이었는데, 아쉽게도

사진상으로는 색감이 좀 날아가버렸다.

근데 대체 지드가 훔치려 했던 '동양의 모나리자'라는 여신상은 어떤 걸까. 하나씩 꼼꼼이 살피며 대체 뭘까,

했는데 약간씩 표정과 몸짓의 뉘앙스가 다르다. 뭐였을까. 지드가 반해 버려서 도굴까지 꾀했던 그 여신상은.

사실 여신상은 중앙성소의 벽면마다 하나씩 안배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수가 조각되어 있는 데다가, 사이즈도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아 맨눈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극히 드물게도 이곳은 사원 보호를 위해

일정 거리를 확보한 채 출입제한선을 설정해 두고 있는 거다.)

어느 문화재나 그렇지만,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욱 재밌다. 그렇다고 여기에 직접

가이드북에서 읽은 배경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기는 건 의미없는 짓 같고, 그저 비주얼과 개인적인 이야기만

털어놓아도 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동하지 않을까 기대해 볼 뿐. 사실은 여행 가기 전 열심히 관련 책도 읽고

힌두교 신화와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입에서 술술 나올 만큼 익숙하게 공부를 했었는데, 어느새 다

까먹어 버렸다.;

또다시 중앙성소 주변에서 발견한 '요니'. '반띠아이 쓰레이'는 시바신에게 바쳐진 힌두교 사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바신을 형상화한 초기 형태랄 수 있는 남성 성기 모양의 '링가', 그리고 그것과 한짝인 '요니'가

곳곳에서 모셔지고 있는 거라고.

여기에 조금 남아있는 해자의 흔적. 원래는 해자 바깥 쪽으로 외벽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하는데 거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해자너머로 보이는 반띠아이 쓰레이의 중앙사원과 그곳을 향한 통로들이 장난감같이 귀엽기도

하고, 테마파크처럼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너무 거리를 두었는지 사원의 디테일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초록빛 정글과 대비되는 붉은 사암

재질의 벽돌들이 또다른 미감을 자극한다.

가루다(조류의 왕)도 보이고, 비슈누(코끼리)도 보이고, 말탄 시바도 보이고, 머리만 남고 자신의 몸을 모두

뜯어먹었다는 악마 칼라도 보이고. 아니 저토록 정교한 덩굴장식은 대체 어떻게 천년을 버티냐고.

연꽃밭 한 가운데 잘 꾸며진 화장실이 있다. 아마 캄보디아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연꽃들. 여행객들의 영양분을 먹고 살아 더욱 아름다워졌으리라.

화장실에서 발견한 어이없는 그림 하나. 휴지걸이 옆에 붙은 그림이 뭔가 보고 실소(失笑)해 버렸다. 샤워하지

말랜다. 워낙 더운 나라, 더구나 반띠아이 쓰레이까지 왔을 여행객들이면 얼마나 꼬질꼬질 힘이 들었을까.

이런 어이없는 그림이지만, 오히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생기길래 오죽하면 그러겠어 싶기도 하다.

캄보디아에서 봤던 개 중에 가장 활기차 보이던 개. (다른 개들과는 달리) 그래도 불볕더위가 내리쪼이는

시간대에 그늘에 숨어 퍼지지 않고 네 발로 당당히 버티고 서서는 화장실 다녀오는 사람들 냄새를 맡던 녀석은

꽤나 똘똘해 보였다.



반띠아이 쌈레의 건물은 좀 묘한 느낌을 준다. 붉게 산화한 라테라이트석의 색깔이 기이한 느낌을 뿜어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여태 둘러보았던 앙코르 유적군의 다른 유적들과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확연하다.

뭘까, 뭐가 다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보통 사원 외벽을 장식하기 마련인 무수한 압사라와 여신들,

그리고 정형화된 형태의 조각들이 하나도 없이 맨벽인 거다. 아마 벽돌이 저렇게 풍화되기 전에는 맨들맨들한

벽이 조각가의 손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서 있었던 게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셈.

드문드문 부조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건 위로부터 흘러내린 다크서클같은

검은 얼룩, 그리고 때가 낀 건지 이끼가 낀 건지 알 수 없는 세월의 자취.

그래도 연씨 무늬를 차용해서 만들어진 창은 훼손되지 않고 그 모서리마다 잘 보존되어 있었다.

창살 사이로 환하게 스며들어오는 햇살. 사원 내부의 매끈한 벽면은 뭔가 외부와는 다른 마감재를 써서

그런 걸까, 천년 세월에도 여전히 시멘트를 바른 양 매끈하기만 한 표면.

그리고 그 안에는 여전히 '신'이 모셔져 있었다. '신'이 모셔져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은 쉼없이

향이 피워올려지고 싱싱한 꽃이 바쳐지는 기적을 만들어내었다.

사원 위에 삐쭉삐쭉 올라있는 공룡 등뼈같은 뿔들은 그냥, 적당히 다듬어낸 길쭉한 돌들을 세워놓은 거였다.

여기 상당한 폭우가 무시로 쏟아져내리는 열대기후의 땅일 텐데, 저렇게 작은 돌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것들이

단단히 붙어있는 것도 범상한 일은 아니다.

정감가는 형태, 연꽃이 활짝 만개한 형태의 중앙사원. 보통 정사각형 형태로 꾸며진 크메르사원은 사방에서

중앙성소로 접근할 수 있지만, 중앙성소에 있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 중 동쪽으로 난 문을 제외한 세 개의

문은 문의 형태만 조각된 가짜문이다. 역시, 해뜨는 동쪽이 대세.




사원 내부는 너무 어두컴컴하다.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창문 역시 외부의 빛을 잘 들여보내주지 않는

구조여서, 자칫 발을 헛딛거나 미끄러지기 쉽다. 그나마 이렇게 창문이 조금 깨져 나가 빛이 들어오는 곳은

나은 편이고.

내부에서 장식을 발견하긴 쉽지 않지만 중앙성소쪽으로 가는 가짜문에는 나름의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가 문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겠지만, 어찌 생각하면 괜한 크메르 노동력의 낭비다.

캄보디아의, 크메르의 푸른 하늘. 그리고 정글의 침투와 시간의 부식을 막고 천년을 버틴 그들의 석조 문명.

반띠아이 쌈레는 꽤나 큰 사원이고, 앙코르왓의 3층 성소탑을 재현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닮아 있다고 한다.

일부러 반띠아이 쓰레이와 앙코르왓은 마지막 일정으로 빼놓은 게, 거길 보고 나면 어쩌면 다른 곳들이 굉장히

시시해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도 하고 사전 조사했을 때에도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기 때문.

사원 내부에는 종종 이렇게 천장이 무너져 내린 채 방치된 방들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듯, 무너져

내린 모양 그대로 꽤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사원의 방과 방을 잇고 있는 문턱은 어찌나 높은지 좀 돌아보다가 발이 무거워지면 툭툭 걸리기 일쑤다.

커다란 입을 귀밑까지 찢고는 무슨 벌레알같은 이빨을 우르르 과시하고 있는 괴수. 이거 호랑이인가?

창틀 밖을 내다본다는 것, 창틀과 함께 바깥 풍경을 기록한다는 건, 어쩌면 관음의 욕구를 반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안에서 밖을 보는 것, 창틀에 기대어 '액자'처럼 외부를 훔치는 것.
 
구석구석 새싹들을 품고 있는 돌덩이 사원. 길게만 자라 축축 처진 잎사귀들은 대체 뭘 먹고 자라는 건지.

사진 모델을 자처한 꼬맹이들. 카메라를 보곤 슬쩍 자세를 잡아주다간 좀 찍어볼라 하면 수줍게 도망가버리는

순진하고 귀여웠던 꼬맹이들이었다. 근데 밑의 꼬마는 다시 보니 킬빌의 그녀가 오버랩되는 듯.

어딘가 사원 구석에서 발견한 조각상의 잔해. 무슨 슬리퍼 두 짝이 남아있는 거 같아 재미있다. 무슨 조각이

이 슬리퍼를 신고선 자세잡고 서있었을까. 조각이 서있었을 자리에는 이제 무슨 연장통같은 나무상자가.

사원에서 빠져나가는 길, 이제 반띠아이 쓰레이로 간다.

뚝뚝이 기다리고 있는 사원 입구 쪽에 도착하니, 내가 그랬듯 수많은 아이들에 포위된 채 어쩔 바를 몰라

당황한 미소만 짓고 있는 여행객들이 있었다. 저 아이들의 애교 공세를 넘어서 반띠아이 쌈레 구경 잘 하시길.




'쓰라 쓰랑'이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다. 호수라기엔 좀 작고, 애초 존재하던 천연 저수지를 키워내어 왕실 전용

목욕탕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왕실의 목욕탕이라곤 하지만 딱히 그럴듯한 장식이나 화려한 부속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물이 깊지는 않아 보이는데  저쪽 너머에선 몇 사람이 수영도 하고, 목까지 물에 잠근 채 물놀이도 하는

걸로 보아 바닥 깊이가 생각보다 꽤나 깊은가보다. 날이 좀더 더우면 나도 같이 뛰어들겠구만.(실은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ㅡㅡ;)

앙코르와트 동편에 있는 동바라이 지역을 지나 반띠사이 쌈레로 가는 길, 거길 거쳐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올라가면 '크메르 예술의 보석'이라 칭해지는 반띠아이 쓰레이가 나타난다. 참 소략하게 지어진 움막같은 집,

그렇지만 참 실용적으로 보이는 집 옆을 뚝뚝타고 지나면서 한 장. 

길가에서 조그마한 바나나도 구워팔기도 하고, 과일도 팔고 있는 행상.

모자도 주렁주렁 매달고 팔고 있는 가게도 있었다. 내려서 구경도 하고, 집들 사이를 거닐며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겠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한가닥 외길을 따라 꾸역꾸역, 대체 여기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까, 출퇴근 같은 도시인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이 이어지고 있을 정글에서의 삶은 어떤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뿔이 곧추선 물소 두마리가 끄는 수레에 앉아 나름의 호흡으로 일을 하고 움직이기도 할 테고.

제법 돈 좀 모았다 하는 사람은 이렇게 네 벽이 제대로 갖춰진 건물, 게다가 1층엔 달구지 주차장을 마련해놓은

'그럴듯한' 집에서 살며 다른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기도 할 거고. 저기를 보라, 달구지에 더해 자전거

한 대까지 우아하게 주차되어 있는 럭셔리함의 극치를.

이렇게 정글이 집앞 마당까지 밀고 들어오면 어느새 꽤나 풍성한 정원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자연스레 집안

내부의 프라이버시까지 보호되는 커튼 효과까지 생기곤 하는 것이다.



반띠아이 끄데이, '방으로 둘러싸인 사원'이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방이라기 보다는 '벽'으로 둘러쌓였다는

느낌이다. 벽도 사방이 온전히 둘러쳐진 그런 벽이 아니라, 네 면중 한 면쯤은 꼭 허물어져 있는 듯할 정도로

허술해져 버린, 그런 사원이다.

그런 사원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었던 건 마치 방금 조각해낸 것처럼 선명한 윤곽과 신선한 색감이 살아있는

여신상들. 이 여신상 말고도 다섯여섯 걸음마다 사원 외벽에 여신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약간씩 다른 표정

다른 몸짓을 한 채 세워져 있었다.

피사의 사탑이 유명해진 이유는 건물이 살짝 기울어서. 이 정도 어긋난 채 기울어진 출입문은 어떤지.

그런 출입구를 지나면서, 또 다른 통로를 지나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위험' 표지판들.

표지판이 아니어도 이미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스릴있어 보이는 데다가, 굳이 '노 터치' 같은 사인을

붙이지 않아도 손을 대면 금세라도 폭삭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 아주아주 조심스런 행동을 유발하는 사원.

멋진 부조가 조각되어 있는 기둥. 압사라댄스를 추고 있는 여신들이 좀더 활짝 웃었다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님 그냥 지금처럼 살짝 웃음을 물고 있는 표정이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이기도 하고.

조금씩 기둥이 녹아내리는 걸까, 아마도 철분 성분이나 비슷한 게 기둥 위에서부터 녹아내리는지 까만 얼룩이

기둥을 타고 다크서클처럼 내려왔다. 저만큼 얼룩이 내려오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지. 백년에 일센치?

안쓰럽도록 꽁꽁 동여매어진 사원의 연꽃모양 탑.

문틀을 액자삼아 넘겨다본 저 너머의 풍경들.

그러고 보면 사원의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건 기와가 아니라 기와무늬 돌들이다. 커다란 돌을 올리고는 그렇게

기와무늬를 조각해 넣었나보다. 그 기와무늬 하나하나에 공들여 내려앉은 초록빛 이끼가 화려하다. 또다시

눈앞에 나타난 기우뚱 무너져내리기 직전의 벽면까지.

여기저기서 펼쳐져 있는 거미줄들. 저렇게 사람만한 크기의 거미줄이 펼쳐지고 유지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람의 손을 여전히 많이 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앙코르왓'으로 대변되는 앙코르

유적지가 세계적인 명소라고는 해도, 그 세세한 디테일까지 고루 살펴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강렬한 사원 내부의 공간들, 예전에 이 건물들을 막 지어올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을 거

같다. 아마도 그래서 건물 외부에 정성을 쏟아 조각을 하고 장식을 한 것과는 달리 내부는 거의 아무런

장식이나 무늬를 더하지 않았을 거다.

교정이 필요할 만큼 심하게 들쑥날쑥한 치열처럼 이리저리 어긋나 있는 기둥들. 술취한 녀석들이 우르르

어깨동무하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그림 같기도 하다.

사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왠지 사원과 스펑나무가 이렇게 사이좋게 함께 있는 모습은 처음 본 거 같았다.

대체로 사원을 스펑나무가 잡아먹고 있는 듯한 무시무시하고 치열한 광경이었는데, 아마 이들도 수백년내에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꽤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중인 듯한 사원과 나무.

사원에서 돌아나오는 길, 한쪽에 좀 본격적으로 마련된 기념품 샵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캄보디아 전통

의상을 입은 허수아비 인형들.




앙코르 유적군 쁘레룹(Pre Rup)에서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무렵. 천지창조화에 그려진 뭉게뭉게 구름들이

그림만은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하늘.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자전거로 한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어쩔

도리없이 서둘러 일어서야 했다. 자전거로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이런 단점이

있는 셈이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게 쉽지는 않고.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가 지는 해와 경쟁했듯, 그렇게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최대한 달렸고, 일단 어두워지고 난 이후에는 길가로 바싹 붙어 조심조심 안전운행에 신경썼다. 사실

차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쌩쌩 달리지도 않는 터라, 달릴 만 했다. 현지 캄보디아인들의 주요 교통수단 역시

뚝뚝이라는 3륜으로 개조된 오토바이나 자전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퇴근하는 듯한 자전거 탄 사람들의 인파

속에 섞여드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씨엠립 시내는 자그마한 마을 같은 느낌이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바글대는 활기넘치는 곳이다. 마치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 칭해지는 태국의 카오산 거리 같은 분위기이기도 하고.

2층의 한 레스토랑에 올라 저녁을 주문하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넘실넘실대고 있었다.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여행자' 특유의 여유넘치고 열린 분위기랄까.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도 반갑게 웃으며 말을 섞어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중간중간 가게들의 차양에는 '론리플래넷'에서 추천한 명소라느니, 누가 왔다 갔다느니 하는 광고성 문구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가이드북 중 가장 좋은 건 역시 '론리플레넷'이 아닐까 (근거없이) 믿고 있는 나로서는 저

가게를 한번 꼭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압사라 댄스는 더 괜찮은 곳이 있다고 들었으니 일단 참기로.

외국에 나가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밤문화'다. 아무리 태국의 카오산 거리라거나 캄보디아의 씨엠립이라고

해도 밤이 으슥해지는 12시 어간이 되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가게들도 대략 정리하는 분위기가 된다. 이래서

한국이나 일본만큼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도시가 참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거 같다. 아니면 이런

유명 여행지역은 아무래도 다음날 아침부터 다시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일찍 마치게

되는 걸 수도 있겠고.



앙코르왓 인근 주택가에는 마당-마당이라고 딱히 뚜렷한 구획이 지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이런 새들이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저게 칠면조인지 오골계인지, 조류의 이름이래봐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국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마주치는 소들은 다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라붙었을까. 일을 많이

시켜서일 수도, 혹은 더워서 힘이 드는 건지도.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얼추 해가 저물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군 외곽에서 씨엠립 시내의 숙소-그것도 하필

꽤나 외곽에 잡아버린-까지 자전거로 가려면 또 두시간여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보면 얼른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져서 그런지 하늘도 조금 어두워진 느낌.

길 양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촌에서 보이는 그런 무논이다. 빼곡하게 집약적으로 모를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아열대 기후 덕분에 일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이 나라에서도 싱그런 녹색이다.

쁘레룹에 가서 석양을 보는 걸로 3-day Pass의 첫날은 시마이하기로 했다. 기어 따위 없는 자전거에서 쉼없이

페달을 밟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잠깐 내려붓던 스콜, 열대성 강우의 물방울이 따꼼거렸지만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그것도 잠시, 채 십분이 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후끈거리는 찜통 속으로.

쁘레룹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석양을 보러 온 듯 여행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석양을 보기에 좋은 장소중 하나로 꼽히는 쁘레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많이 파괴된 채 중앙 성소를 감싸고 섰는 네 개의 보조 사원, 총 다섯 기의 연꽃모양 건축물이 비바람에

쓸리고 닳아빠져 있었다. 쁘레 룹은 사실 이 곳에 올라 석양을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들른 사원이었다.

위에 오르니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한 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에 한국말을 시끄럽게 쓰고 있었다. 왠지 그 압도적인 한국인 여행객

비율에 민망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석양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나? 아님 이 장소가 석양보기에 좋다는

팁은 한국어 가이드북에만 있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단일 장소에 이렇게 특정 국가

여행자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쨌거나 그다지 건전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서늘한 바람이 하늘끝에서부터 불어왔다. 구름들도 물통 속 담궈진 붓에서 잉크가

빠져나가듯 삽시간에 쏴아, 하고 하늘 바깥으로 번져나간다.

파노라마로 어떻게 연결해 보려고 찍어 보았으나 실패. 그치만 해가 구름에 가리고 조금씩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의 하늘이란 너무 이뻐서, 계속 질릴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약간씩이지만 다 다르다. 잠깐 사이에도 구름의 모양과 위치는 급변하고, 구름에 반사되는 햇살의 양과 강도에

따라 그 풍부한 느낌과 질감마저 달라지는 것 같다.

구름이 많아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뭉개고 있었다면 찍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버스나 뚝뚝을 대절한 게 아니라 두 다리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밟아야 할 몸인 거다.

가뜩이나 교통법규도 안 갖춰진 동네, 가로등 따위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동네에서 어둑한 길에 자전거를 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안녕 사자야~ 인사하고 쁘레룹을 내려섰다. 뒤에서는 여전히 한국말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위압한 채 우렁차게
들리고 있었을 만큼 한국인이 '쁘레룹 석양전망대'의 대세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내려서면서도 연신 눈과 카메라는 하늘을 찾았다.

와중에 두 번째 등장하는 '나'.

급변하는 일기 상태가 고스란히 구름의 형상에 반영되는가 싶다. 저 멀리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기저기서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두터운 구름, 그리고 눈앞에서 내려앉기 시작하는 깜깜한 먹구름.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하늘, 그리고 남국의 구름이었다.


때로 어떤 사원들은 다른 사원을 짓기 전 공법을 시험하고 디자인을 구현해 보기 위한 '시험판'의 역할을 맡게

되기도 하고, 임시로 다른 사원의 역할을 대행하기 위한 '가건물'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한 큰 규모의 사원인 쁘리아 칸(캄보디아#13. 파괴된 듯 이어지는 사원의 명맥, 쁘리아 칸(Preah

Khan)
)을 세우기 전 그보다 작은 사이즈로 지었던 사원이 바로 따쏨이다.


아마도 그래서 중요성에서 많이 밀리기 때문일까, 사원 내부는 어찌 할 수 없이 드러나는 퇴락과 붕괴의 조짐을

억지로 막아놓는 안간힘의 뚜렷한 흔적들이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금세라도 비바람 한차례면 무너져 내릴 듯 기우뚱한 입구. 이미 돌덩이가 몇개씩 빠진 이빨처럼 듬성거린다.

입구 하나를 집어삼켜 버린 나무, 처음에 과연 어디에서부터 씨가 싹을 틔우고 가냘픈 연두빛 잎을 내밀었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나무 뿌리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입구를 움켜쥔 채 땅 위로 끌어올린 느낌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균열과 붕괴의 조짐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왜, 저렇게 지키고자 하는 걸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근대', 혹은 '현대'라고 규정짓고 시대구분을 하면서부터 본격화된 박물, 역사 박제화의 시도들.

그 이전까지는 무너지고 부서지면 그 뿐, 이렇게 처절하게 시간을 거역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대체 지금이

'현대'라고 규정지어 버리고 나면, 백년이백년 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시대를 어떻게 규정지을까. 현대를

넘어서도 몇번은 넘어섰을 테니, 탈탈탈현대쯤? post-post-post-modernism? 늘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차라리 무너지고 사그라들도록 냅두는 것은 안 될까. 어쩌면 '인간이 왜 죽도록 냅둬서는 안 되는지'와 같은

도덕률과 당위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잔뜩 얽히고 섥힌 나무뿌리, 혹은 줄기. 어디서부터 줄기고 어디서부터 뿌리라 해야 할지. 차분하게 가부좌

틀고 앉아 수인을 맺고 있는 부처들의 자태가 고고하다.


 

앙코르 유적지의 스몰투어와 그랜드투어, 그 중에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얼추 하룻동안 돌아보게 되는

그랜드투어 루트를 자전거로 밟고 있다.

앙코르 왓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앙코르 왓은 앙코르 유적지 중 하나,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하나의 사원이고, 근처에는 아기자기한, 혹은 거대한 사원들과 유적들이 즐비하다. 그렇게 유적지와

유적지를 이어주는 이차선 도로 옆으로는 이따금 소가 풀을 뜯고, 원숭이가 지나가는 정글이다.

그렇게 도착한 니악 뽀안, 사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돌아봐야 하나 하는 회의도 얼핏 스쳤지만, 어차피 루트를

따라 가고 있는 중에 마주치게 된 것이라 잠시라도 들러보기로 했다. 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도로, 게다가

경사도 살짝 있어서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 돌아나갈 땐 어쩌나 싶은 코스를 오분 정도 달리니 당도했다.

니악 뽀안은 '꽈리를 튼 뱀'이라는 뜻이다. 가운데 분수대처럼 조성된 사원의 계단을 가만히 보면 두 마리의

뱀이 둘둘둘, 흔히 표현되는 잘 싸질러진 Ddong처럼 감겨 있는 걸 볼 수 있으니 이름의 의미는 충분히 알겠다.

사방으로 부조 조각이 있고, 그 중에서도 아직 많이 훼손되지 않은 조각들은 꽤나 그럴듯한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원래 이 곳은 물이 가득 차있는 수상사원인데, 우기에나 물이 찰 뿐 다른 때에는 걸어서 사원 안쪽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거다.

주위에도 네 개의 조그마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체 물이 어디까지 잠겨들어간다는 건지 그리고

조그마한 연못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짙푸른 하늘을 보며 잠시 누워 쉬기로 했다. 딱히 여기가 어떤 곳이고 역사적으로 어떻고 조각은 어떻게

조성되었으며 재질은 뭔지, 그런 거 모르고도 그냥 정글 한가운데 커다란 운동장 벤치 같은 거 있고 마침맞게

짙은 그늘도 있으니 쉬기 딱 좋은 타이밍인 거다. 그럴 듯한 운치. 잠시 낮잠을 즐겨도 좋을 만큼 기분좋은

따뜻함, 땀이 식으며 몸이 조금씩 '찰져가는' 느낌, 게다가 쉼없이 달린 자전거로 묵직하지만 유쾌한 두 발의

나른함까지.

잠시 누웠다가 가운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이 웃긴다. 아마 물이 들어차 있었으면 가운데

사원으로 헤엄쳐 가는 말의 형상이 그럴듯 했을 텐데, 지금은 무슨 부적붙은 말 강시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내뻗고는 꽁꽁 굳어있는 모습이다. 

중앙성소에서 한번 둘러보며 구경하고 있는데 저쪽 입구에서 우르르,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들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의 매력은 정글 한가운데서 사람 소리없이 편안히 누워 쉴 수 있었단 게 가장

컸었는데 그 평화가 깨지기 직전이다. 사람의 파도를 피해, 서둘러 다시 돌아나가기로 했다.




쁘리아 칸, 크메르어로 '신성한 검'이라는 의미의 남성적 기풍이 물씬한 사원에 도착해 자전거를 내리자마자

쫄래쫄래 쫓아오는 아이들.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거나 웃음을 보이면 안심한 아이들은 마음놓고 말을 걸고

물건을 내밀고 지칠줄 모르고 따라온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 어떻게 그리도 하나같이 이쁘고 눈이

맑은지 웃음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이라도 하듯 쫓고 쫓기는 정신사납고 부산한

놀이를 좀 하다가 끝내 털썩 주저앉아 항복하고 만 내게 사진찍어달라며 활짝 웃어주던 아이.

쁘리아칸은 앙코르톰 바로 북쪽에 붙어있는 커다란 사원이다. 한때 불교 승려가 천명을 헤아리던 거대 사원인

동시에, 왕궁이자 도시의 기능도 병행되었던 네모반듯한 계획도시이기도 하다. 정글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포위하고 슬금슬금 침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사원 내부의 통로들.

사원 중간중간에 배치된 경비원은 딱히 여행객들의 움직임을 제재하지는 않는다. 관람 동선이나 제한구역 등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거대한 사원을 돌아다니다 보면...길을 잃기도 한다.

좌우대칭에 엄격했던 크메르 유적들 안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다. 어디가 남쪽인지 이글대는 태양을 보고

가늠해 볼 밖에 없는 거다.

가루다, 한국에서는 불교적 전통에서 '금시조'라고 이야기하는 이 조류의 제왕은, 비슈누를 태우고 다니는

커다란 새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사원을 이고 있다는 듯 튼실한 '꿀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통로. 아무리 캄보디아, 앙코르왓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해도 워낙 많은

건축물들이 산재한 터라 생각보다 여행객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몇몇 주요 건축물만 빼고.

얼핏 보면 조그마한 집 하나가 옆의 나무에 치여서 붕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눈의 착각. 실제로는

꽤나 큰 사원인데다가 그보다 훨씬 징그럽도록 크고 거대한 나무다.

사람과 비교컨대 이정도 사이즈. 스펑나무라는 이 나무의 발육속도나 생장력은 어마어마해서 삽시간에 건물을

잡아먹곤 한다고, 그나마 이건 계속해서 신경써 통제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벽면을 움켜쥐려던 거대한 나무뿌리를 잘라서 생장억제제를 투여하기도 한다고.

틀림없이 이 사원 어딘가에 자신의 위치가 있었을 돌들이, 더이상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려버렸다. 그렇지만 그 위에는 이미 또 다른 사람들의 소원이 조그마한 돌멩이로 쌓이기 시작한

셈이니, 결국 어쨌거나 여전히 충실하달까.

무희의 홀이라 이름붙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들머리, 사원에 소속된 무희들이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했던

장소라 해서 '무희의 홀'이라고 한다. 공간에 맞는 인테리어, 무려 열세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동작이 조각된

문틀.

뱀의 신, 나가를 타고 있는 새의 신, 가루다. 아주아주 전형적인 크메르 유적군의 난간 '액세서리'.

잠깐 앉아서 쉴 만한 그늘을 찾고 나니 딱 이녀석과 눈이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뒤엣녀석은 이미 두 발만

남긴 채 자연으로 돌아갔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천년 가까이 사원을 수호하는 사자 한마리.

다소 이국적인 건물이다 싶어 가이드북을 펼치니 역시, 그리스풍의 건축물이라고 딱 찝어놓았다. 여기가

바로 '쁘리아 칸', 신성한 검을 모셔놓았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생긴 검이었을까.

유난히 촘촘하게 세워진 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고이 모셔져있었을 과거 '신성한 검'의 잔영이 보이는 듯 했다.

나의 상상 : 뱀의 형상을 한 왕의 침대같은 곳에 누워 육감적인 여성으로부터 크메르식 마사지를 받고 있는

오만한 표정의 남자. 이건 당대 크메르 왕국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걸까.

가이드북의 '정답' : 힌두신화에 따라 한 우주의 주기가 파괴되고 지금의 세계가 오기 전에 비슈누가 우유의

바다에서 큰 뱀 위에 누워 다음 세상을 명상하고 있는 장면.

나의 상상 : 퍼덕퍼덕 날아다니는 천사들을 배경으로 한 수레 위 가부좌 아저씨가 벌거숭이 아저씨들로부터

신앙고백을 받는 장면.

가이드북 : ...(침묵, 설명없음)

연씨무늬 창문살이란다. 뜨거운 햇살을 막으면서도 통풍을 원활하게 하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하려는

'조상님의 지혜'인 거다. 꼭 한옥이 어떻네 온돌이 어떻네 하면서만 찾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조상님의 지혜',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선배 인류에 대한 존중, 경탄의 표현이니까 말이다.

중간중간 세워져 있던 No Touch. 흔히 '노다지'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구한말부터 한반도에 들어와 지금의

북한 지역 금광을 채굴하던 서양인들-대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들-이 갱도 안에서 금을 캐던 한국인 인부가

금을 발견하고 나면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노 터치! 노 터치!', 그로부터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던

'노터치'란 표지판이 기우뚱 위태롭게 선 저곳도 캄보디아 현대인들에게, 인류에게 '노다지'와 같은 곳.

비록 이렇게 새초록한 이끼가 무성해지고,

문틀 가득 세심하게 조각된 무늬들이 손을 타 닳아갈 지언정,

여전히 사람들은 중앙 성소를 찾아 순례하는 마음으로 사원을 돌아 보는 거다.

앙코르왓 지역 내 어느 사원에서든, 영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 등 세계 언어로 가이드를 해주는 캄보디아

현지인 가이드들이 일군의 여행객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 중 한 영어 가이드가 설명하던

이야기를 훔쳐들으며 함께 감상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를 본딴 여신상이라던가.

같은 여신인데, 조명이 없을 때의 은은하던 미소가 조명 아래에선 '쥐잡아먹은 듯한 입술'로 덮여버렸다.

여기는 그 가이드가 은밀히(?) 안내해주며 팁을 요구했던 또다른 숨겨진 여신상. 보존 상태도 훨씬 양호하고

표정도 훨씬 당당하다. 여신이 아니라 여왕의 풍모가 풍겨난다.

한시간반 정도 둘러보니 다 둘러봤다 싶다. 나오는 길에 다시 돌아본 통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지는지. 사원의 네 개 대문에서 중앙성소로 이어지는 통로 중

서쪽에서 이어지는 통로는 중앙으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중앙, 왕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신하들의 머리가 숙여지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인 셈.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심지어는 수원화성에서도 왕이 지나다니는 문과 신하들이 다니는 문의 크기가 다르듯 여기 역시

마찬가지 아이디어가 건물에 반영된 거다.

머리가 날아가버린 수문장의 상이다. 이 곳을 공략했던 외적들이 크메르의 기운을 쇠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파괴했다는 건데, 그런 식으로 '기운'을 꺽기 위해 이러저러한 상징을 깨부수고 파괴하는 일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은 자취가 남아있는 듯 하다. 백두대간의 쇠말뚝도 그렇고, 태국의 무수한 머리없는

부처상들도 그렇고.





문둥이왕 테라스에 길게 이어진 건 바로 코끼리 테라스, 여기는 앙코르톰 동쪽 '승리의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던 개선군이 왕에게 승리를 보고하던 곳이라 한다. 코로 연꽃을 휘감아 왕에게 바칠 태세를 갖춘 코끼리

코들이 벽에서 뻗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코끼리들의 육중한 몸으로 벽을 쌓아 왕의 전면에 도열시켜 놓았음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굉장히 유니크하면서도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건축물이다.

코끼리 코, 하면 생각나는 건. 근데 돌로 깎였음에도 미끈하게 쭉 뻗은 코끼리 코라기보다는 팔을 스트레칭하는
것 같이 나와버렸다. 아놔.

통일신라시대던가, 이 땅에서 발굴된 막새-기왓장-무늬에도 비슷한 그림을 분명 본 적이 있다. 흔히 요새

'치우천황기'라고 흔드는 데 들어간 그 그림 말이다. 그건 사실 한민족의 고대 인물을 드러내기엔 다소 적젏치

않은 상징일지 모르겠다. 캄보디아에서도, 다른 불교 베이스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인 탓이다.

('치우천황'이란 인물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 왜곡이 중국에 의해 이뤄졌고, 그게 아시아 문화권 일반의 악귀,

라거나 악귀를 쫓는 무서운 신, 의 이미지로 변용되었단 점을 감안해도 그렇단 얘기다.)

여기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매혹적인 저 사자의 뒷태. 완전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의 조화라니. 사랑스럽다.

뭐랄까, 카메라 광고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의식하지 않게 하겠다, 어쩌구 하는 비를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지겠다. 두다리를 허공에서 펄럭이며 날고 있는 압사라 여신도 비웃었다.

코끼리 테라스에서 왕이 바라본 풍경은 또 어땠을까, 싶어 휘휘 둘러보았다. 우선 정면.

멀리 보이는 건축물들은 원래 창고 용도로 쓰이다가, 나중에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일종의 영빈관으로

쓰였을 거라는 게 가이드북의 설명이지만 글쎄. 저런 데 사람이 살기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굴뚝

아니면 무슨 화장터 같이 생겼는데.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저쪽에 문둥이왕 테라스와, 길게 이어진 코끼리 코가 인상적인 코끼리 테라스.

오른쪽, 문무백관들이 왕의 좌우로 호위하듯 둘러서 있었겠지. 빳빳한 밀랍인형처럼.

관광객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산하고 다소 휑한 분위기, 운치를 더하듯 어슬렁대는 검정개 한마리.

가만히 앉아 쉬고 있자니 휘적휘적대며 느릿하던 녀석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심심했던 게냐.

왕이 서 있던/앉아 있던 바로 그 장소. 다소 기울어져 보이는 게 카메라 잡은 이의 농간이었는지 아님 원래

저 지반이 살짝 뒤틀어져 기우뚱해 있던 건지 모르겠다.


왕의 시각에 빙의되어 보자, 이게 바로 왕의 시야.




여전히 앙코르톰 내부의 이야기. 3kmX3km의 거대한 계획도시의 내부에 돌로 축조된 궁전과 사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으니 둘러 보는 데만 한나절이다. 아무래도 크메르왕국의 최전성기이던 시절, 황금의 도시라 불리던

때 지어진 수도니만치 당대의 공력을 총동원했던 게다.

그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라 여겨지는 자야바르만 7세, 이 문둥이왕 테라스의 주인공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치하에 크메르 왕국 전지역에 병원들이 설치되고 정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가 문둥병/나병에

걸렸었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물론 다른 설들도 많다. 캄보디아의 많은 사원이 대부분 죽은 이들을

봉안한 무덤의 역할도 겸하고 있듯 이 테라스에도 왕실 전용 화장터가 설치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테라스 위에 앉아 있는 인물이 야마(염라대왕), 즉 죽음의 신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학자들 간의 설왕설래야 어떻든 간에, 이 조각상은 몇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옷을 안 걸치고 있는, 혹은

옷의 실루엣을 거의 조각해 넣지 않은 모습의 상이라는 점(누군가 저렇게 옷을 계속 공양하길 바라고 만든 양),
 
생긴건 남자임이 분명한데 앞면을 보면 뭔가 남성의 심벌이 없이 밋밋하다는 점(신의 양성성을 표현하고 싶던

걸까), 그리고 조각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고 뭔가 깔깔한 느낌이 의도적인 양 느껴진다는 점(이게

바로 이 조각상이 문둥병/나병에 걸린 인물이라 추측하는 이유라 한다). 차마 민망해서 앞면은 못 찍었다.ㅋ

문둥이왕, 혹은 염라대왕 혹은 다른 무엇, 그가 내려다보고 있던 풍경이 뭘까, 옆에 주춤 서서는 사방을 둘레

둘레 두리번거렸다. 우측에 보이는 길게 이어진 테라스의 요철, 그리고 오래된 것의 향취가 은근하다.

그리고 전면. 어라, 이 문둥이병 걸린 아저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걸까. 분홍색 귀여운 아이스크림차.

아이스크림 스티커가 나름 주의깊게 배치되어 나란히 붙어있는 걸 보면 왠지 저 차를 분홍빛으로 도색하고

스티커를 한장한장 울지 않고 삐뚤지 않게 세심하게 붙이려 노력했을 모습이 떠올라 재밌다.

아이스크림 차 옆으로 마치 무슨 제약회사 로고처럼 멋지게 자라난 거대나무. 짙푸른 녹색잎도 무성하고,

가지의 뻗어나간 모양이나 좌우 대칭의 형태가 장쾌하다. 넉넉히 사람 백명은 수용하겠다 싶은 짙은 그늘.

문둥이왕 테라스는 외벽과 내벽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테라스 위에서 내려서 벽면의 조각들을 보려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아까서부터 졸졸 우리를 따라다니던 녀석들이 계단에 기대 쉬고 있었다. 원달러원달러,

아저씨 멋져요, 일불일불, 이러던 애들. 과거 왕의 테라스였던 이 곳이 녀석들에겐 기대어 쉼직한 휴식처이자

일터인 셈이다.

앙코르왓이나 앙코르톰의 해자에는 원래 악어들이 득시글거렸다고 한다. 요새도 조금 깊은 정글에는 악어가

여전히 야생으로 살고 있다 하고. 그만큼 그 사나움과 파워에 익숙해서겠지, 조각에도 악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흉폭한 모습 그대로지만, 살짝 생각에 잠긴 듯한 눈매와 턱의 모습이기도 하다.

얼굴 아랫쪽 벽돌이 떨어져 나갔더니 더욱 무시무시하다. 빨간 마스크 밑에 쫙 찢어진 입을 숨기고 다닌다는

'빨간 마스크' 아주머니 같기도 하고.

'헐벗은' 여성들의 조각도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굵어서, 왠지 이 여성들도 악어처럼 용맹스러울

거 같아 보인다.

이녀석 웃는 모습이란, 왠지 주는 거 없이 얄밉다. 빙글빙글대는 웃음이 입가에서 뱅글거리는 느낌.

테라스도 그렇고, 다른 시엠립의 사원들도 모두 일정 수준의 복원을 거친 터라, 이런 자국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사방에 흩뿌려져있던 돌무더기들에 하나하나 이름/번호를 붙여 차근히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국사학자 내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었다.

뭔가 전투중인 장면이다. 날카롭게 조각된 돌칼들이 번득번득하고, 적군의 신체 중 아무데나 거침없이

겨냥되는 와중에 이 녀석은 왠지 술을 마시며 칼을 제편에 휘두르고 있는 것 같다. 병나발 불며 아군을

희생시키는 망나니 캐릭터랄까.

아...바이욘의 큰바위얼굴들 표정도 미묘하게 좋았었지만, 이 표정만큼 푸근한 건 그 전에도, 이 이후로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헤죽, 하고 큰 입을 쫙 땡겨벌리며 웃고 있는데, 눈도 가만히 따라 웃고 있다.




'나가'란 힌두교/불교에서 신성시되는 '뱀신'으로, 그 형태상 주로 난간에 많이 응용된다. 앙코르톰 내

문둥이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뒷켠에 있는 뗍 쁘라남(Tap Pranam) 뒷쪽 '쁘리아 빨리라이'에 있는 난간도

마찬가지.

몸의 몸통은 난간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뱀의 (무려) 일곱개나 되는 머리는 난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뱀 두마리가 인도하는 통로, 머리갯수로만 따지면 열네 머리가 인도하는 통로를 따르면 불교사원이

나타난다.

약간 이지러진 건축물, 그다지 임팩트 있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문 위에 조각된 것들이 꽤나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한쪽 조각면에 '우뚝' 서있는 부처, 그리고 밑에 옹송그리고 자세를 한껏 낮춘 '가련한' 중생들. 이런 식으로

신성성과 위엄을 강조한 조각은 사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조금 거부감이 든다. 쟤넨 무슨 벌레처럼.

가이드북에서 그럴듯하게 설명해놓았던 '쁘리아 빨리라이'의 북쪽 벽. 앙코르 유적에서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조각이라고 한다. 부처가 성나서 폭주중인 코끼리 머리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왠지

하얗게 녹아내린 건지 색칠이 된 건지 그런 바람에 좀 제대로 감상하기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사원의 한쪽 벽면을 따라 이리저리 강렬하게 뻗어나간 뿌리가 사원의 벽돌들을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무라기보다는, 뭔가 기괴하고 이질적인 외계의 생명체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하얗게 뼈다귀만 남아버린 거대한 생명체 같기도 하고, 빤딱빤딱 빛나며 비닐같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게 무슨 인공적인 조형물 같기도 하고, 허옇다 못해 펄빛나는 형광까지 감돌고 있다.

윗둥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이런 포스를 내뿜을 수 있다니.

캄보디아에서 본 '나무'들은 한국에서 보아온 '나무'와는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나무'를 그려라 했을 때

그릴 법한 아기자기하고 다소곳한 생명체가 아니라, 껍데기 안쪽에서 뭔가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느낌, 강렬하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건 나무의 '발'이라 불러 마땅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볼 때, 끄응~ 소리를 뱉으며 땅 속에

박아뒀던 발을 끄집어 쿠웅, 쿠웅 걷듯. 이런 이미지는 사실 '반지의 제왕'에서 구현됐댔다.

나무로 포위된 사원은, 가운뎃 부분만 위태로이 온전하다. 아직은. 알고 보니 저 위에 굴뚝처럼 뾰족하니

세워진 부분은 나중에 새로 쌓아올려진 부분이라 한다.

위태로이 세워진 탑 안에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나도 저 안을 들락날락 거렸지만 막상 내가 들어갈

때는 못 느끼던 위태로움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생겨난다.

돌아나오는 길, 뜨거운 태양 아래 나른히 늘어져 있던 개가 귀뒤를 긁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님 착해서

그런지 좀처럼 짖지도 않고 지들끼리 쫓고 쫓기며 시끄럽게 놀지도 않는 개들이다.

다시 돌아 나오며, 이번엔 뱀 두마리, 뱀머리 열네개가 수호하는 통로 옆길로 나란히 뱀과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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