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굉장히 이름높은 곳이다.

 

게다가, 하루 전날 내내 폭설이 쏟아지고 난 다음날 쨍한 아침이 시작되는 댓바람, 그야말로 공원을 방문하기 최상의 타이밍!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1번 입구에서 티켓을 사고 공원 안으로 입성! 2번 입구는 폭설로 임시 폐쇄중이라고 하니 잘됐다.

 

 

플리트비체에 있다는 92여개의 폭포 중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백미라는 벨리키 폭포. 높이 78미터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게다가..물이 흘러내리는 곳따라 함께 흘러내리는 눈길에 밟히는 건..온통 눈꽃. 이런 눈꽃은 여태 듣도 보도 못했단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턴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사진 감상 위주로다가. 정리를 아무리 하고 지워보려 해도 아까운 사진들이 잔뜩이다.

 

 

 

 

 

 

1번 입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하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애초 석회암 지대인 이곳의 지반을 오랜 시간 강물이 깍아내리며

 

점점 계단식으로 층층이 호수를 넓혀온 거라고 한다. 그 외곽을 돌며 자잘한 호수가 이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묘미라는데.

 

 

이렇게 푸지게 눈이 온 다음날이라 가능한 풍경들, 눈꽃이 풍성하게 피어난 나뭇가지 위로 미끄러져내리는 무지개라거나.

 

투명하게 파란 하늘 아래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풍경, 그리고도 디테일한 원경과 근경, 그에 더한 보슬보슬 질감까지.

 

이런 식의 미묘한 푸른 빛의 호수가 조금씩 하류로 밀려들고 있는 풍경, 가히 절경이다.

 

 

국립공원이 개장하자마자-오전 10시 개장-제일 먼저 들어섰는데, 어느 순간 뒤에서 아저씨 둘이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프로 사진사 아저씨랑 공원 관리인 아저씨. 플리트비체의 공식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던가, 묵직한 장비를 이고지고 걷고 있었다.

 

 

 

아..넘넘 이쁘다 진짜. 정말이지 정신도 못 차리고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뿐.

 

 

 

 

그리고 이 미묘하고도 몽환적인 물의 색깔. 물속에 포함된 석회질과 각종 미네랄 때문이라나, 빛의 각도나 햇살의 세기에 따라서

 

그 색깔이 환상적으로 번져나가는 게 워낙 유명하다고 한다.

 

 

호수를 가로질러 반대편 기슭으로 가는 참, 다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던 나뭇가지나 부유물 위로 두텁게 쌓인 하얀 눈이불.

 

 

 

플리트비체의 호수들이 얼마나 큰 낙차를 갖고 있는지, 상류지역과 하류지역의 호수가 얼마나 낙폭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내판.

 

 

하류의 호숫가를 구경하고 벨리키 폭포를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코스는 이쪽인데,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나무계단 위로까지

 

호숫물이 범람해 버렸다. 눈이 두텁게 쌓인 산책로가 위태롭게 끊겨버린 지점, 이쪽으로는 포기해야 하나 잠시 갈등하던 참.

 

이 길을 따라가야 벨리키 폭포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일 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무지개 하나가 둥실 환상처럼 떠올랐다.

 

 

뒤로 돌아보아도 아까 그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 전날 내린 눈 때문인지 공원 내엔

 

사람 하나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다. 음..어디로 가야 하나 갈등이 조금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결에 다시 나타난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이 여기저기 휘적대며 사진을 찍더니 문득, 물이 잔뜩 차오른

 

나무다리를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물살이 세찬 나무다리 위로 발을 내딛고 말았다.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운좋게 그 1기 회원에 합류하게 되어 토요일 새벽같은 아침에 약수역 출사를 나갔다.

 

굉장히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조세현 선생님은 재개발을 앞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쿠바 하바나의 그것에 비겨보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곳곳에 숨어있는 풍경들을 잘 찾아보라 말씀해주셨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찍었다.

 

w/ Pentax K-5, 43mm limited

 

 

 

약수동도, 작년 드로잉 수업 들으며 쏘다녔던 여느 서울의 뒷골목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헤집어진 폐허에서 인간적인 풍경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이러니라 부르기도 뭐하다.

 

대책없이 까발겨진 내밀한 일상, 고유명사 '집' 안에서의 안식과 평온함을 담당하던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전시된 풍경은

 

외려 인간적이기도 하니까.

 


더이상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쇼파. 더이상 24시간 담배를 팔 수 없는 편의점. 더이상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없는 현관문 따위.

 

그렇게 보면 다소 안쓰럽고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어떨까. 반대로 한때는 그런 역할을 맡고 온기를 전했다며

 

무너져내리는 형체를 애써 가다듬고 있는, 그 의연함 같은데서 공감하고 마는 거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스산함을 느끼는 건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억지로 길가 위에 끄집어내진 원주민들의 삶과 추억들이 발하는 온기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 스산함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끄집어낸 감정, 기억, 일상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그 상처.


 

 

 

 

 용산의 망루, 왠지 남일당 건물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던..약수역의 주인없는 옥탑방.

 

제법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서야 기사분들도 한숨 돌리는 이 곳, 421 버스의 종점.

 

 

 온통 깨지고 뜯겨진 건물 내부. 슬몃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라붙던 철거현장 작업반들.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도 가려버리는 우중충한 가림막 안쪽의 숨겨진 폐허.

 

 

누가 무슨 이유로 현관문을 저렇게 살풍경하도록 부숴놓았을까. 

 

 두 개의 그래프, 혹은 두 개의 덩어리. 그리고 흑과 백.

 

 

 빨랫줄에 꽂힌 빨래집게까지 일일이 챙겨줄 여유 따위는 없이 다들 떠난 건 아닐지.

 

잠시 반짝 빛났을 이 곳의 부동산 경기. 이제는 숱한 부동산 간판들만 가림막 안쪽의 세상에 묻어두고 말았다. 

 

 

 아마도 자전거가 묶여있진 않았으려나, 장바구니 무거운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세워놨던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지역 앞의 높다란 아파트들로부터 수혈이라도 받는 듯, 굵은 전선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연세 지긋하실 아버지와 아들, 손목을 꼭 잡고 나란히 머리를 빛내시며.

 

 새로 지어진 아파트촌, 그리고 이제 사라질 재개발촌. 교회 첨탑으로 겨우 자존심의 높이를 맞췄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갔지만 여전히 스쿠터엔 두껍고 낡은 레자가죽의 장갑이 꽁꽁 싸매어져있다.

 

재개발, 그건 이렇게 훌쩍 뒤집어져버린 화분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한줌만 대접받으며 옮겨지고 나머지는 고꾸라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던 출사가 끝날 즈음 올려다본 하늘. 철거 현장의 분진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가림막은 햇빛마저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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