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pentax superprogram.

모스크바 붉은광장, 이쁘다는 뜻으로 '붉다'는 표현을 썼다더니 정말 아름다운 광장이다. 테트리스에서 참 많이도 봐서 익숙할 줄 알았던, 그치만 굉장히 아름답고 세밀한 성바실리대성당과 크렘린 앞 레닌의 묘, 그리고 테두리에 온통 노란램프를 밝힌 굼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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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의 인사동, 이즈마일로보 마켓에서 담은 필름 사진들.

photo by pentax superprogram

 

정말이지 보는 내가 다 움찔움찔, 현기증이 나서 보기가 힘들 정도의 높이에서 저리도 태연히 걸어다니다니.

 

팔다리가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심장이 쫀득거리는 영상.

 

언제고 혹시 과격한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거나 무료하다거나 할 때 찾아보기 쉽도록 스크랩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아래는, 심지어 외신에서 보도가 된 'adrenaline junky' Skywalker의 인터뷰 내용.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아무래도 유럽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온 맥주, 음료가 많기 마련이다.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입지가 그렇기도 하지만, 딱히 이 나라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보통

음식점이나 호텔에서도 많이 파는 건 그래서 '러시아' 맥주인 '발치카'.

이름부터 발칙하게도 '발치카'인 이 맥주는, 종류가 무려 9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발치카 1부터 발치카 9까지.

알콜 도수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그 숫자가 올라가는 식이라고 하는데, 보통 많이 마시는 건 발치카 3.

머물러 있는 사이에 1부터 9까지 전부 맛보리라 자그마한 다짐을 했었지만 3, 5, 7, 그리고 9를 맛보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우습게도 숫자가 달라지면 병 모양이나 라벨 모양도 약간씩 변해서, '발치카'라고 묶인

이름을 제외하면 딱히 같은 시리즈의 맥주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난이도 9, 발치카 9는 무려 8%의 알콜도수를 자랑하는 맥주. 맛부터가 일반 맥주의 궤를 확실히 벗어난 느낌이랄까.

맥주라기엔 굉장히 알콜이 세서 꼭 '소맥'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소맥이지만 맥주의 쌉쌀함이 많이 살아있는.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맛봤던 보드카. 서빙을 해주던 누나에게 포즈를 취해달라 부탁해서 병만 살짝

찍었는지라 정확히 저게 어디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랫도리에 둘려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문양들로

판단컨대 메이드 인 투르크 아닐까. 아무래도 보드카는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엔 너무 독하다.

그리고 투르크의 콜라. 마치 우리나라에 '콜라독립815'가 있었던 것처럼 이 나라에도 자체적으로 만든 브랜드의

콜라가 있는 셈. 맛을 볼 기회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의 전례로 짐작컨대 뭐 그다지 아쉬워할 일은

아닌지도.




투르크메니스탄 약사


민족 형성 및 각국의 지배


구석기시대 투르크멘바쉬 인근에서 인류 거주

○ 8,000년 전 코페트다그 산맥 지역에서 신석기 농경 시작

○ 청동기-Anau(아나우)문화 코페트다그 북부와 테젠강 하류에서 발흥

○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에 의해 피지배

○ 9세기말 이후 투르크계 오그즈족 이슬람교 수용→투르크멘 명칭 처음으로 등장

○ 12세기말 ∼ 13세기초 호레즘왕의 지배

○ 1219 ∼ 1221 징기스칸의 지배

15세기 ∼ 17세기 남부부족-페르시아, 북부부족-히바와 부하라왕의 지배

○ 18세기초 페르시아, 18세기말 부하라왕의 지배


帝政러시아와 舊소련 시대


1860년 제정 러시아군에 의해 크라스노봇스(現 투르크멘바쉬)시 건설

1869 ∼ 1880년 대러 항쟁

1884년 항복

1917년 자카스피 반볼세비키 지역 정부 형성, 투르크멘 의회 수립

1918년 4월 투르크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선포, 7월 영국 지지하 민족주의자들 볼세비키 정부 전복, 독립 정부 수립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독립정부 전복

1924년 10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1930년초 정치적 자치 운동 시작했으나 많은 지식인이 투옥 또는 처형됨


영세중립국 투르크메니스탄


○ 1990년 8월 주권 선언

○ 1991년 10월 독립 선언(10.27 독립기념일)

○ 1995년 UN 총회에서 영세중립국 결의안 채택

○ 2006년 12월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 사망

○ 2007년 2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취임

○ 2008년 9월 헌법개정안 채택



정치 · 사회 동향


정치 및 국제관계


야당 및 반대세력이 없어 정치 안정 가능

2007년 2월 1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전임 부총리이자 보건부 장관이었던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의회(Khalk Maslakhaty) 및 엘리트 집단의 절대적인 지지와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음.

ㆍ 철권통치를 자행해온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2006년 말 사망으로 신임대통령 선거 실시

ㆍ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여당인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구공산당)을주축으로 하는 단일정당체제 유지 및 실질적인 반대세력과 언론에 대한통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정치적 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권한 강화

ㆍ 2008년 9월 헌법이 개정되어 인민평의회(Khalk Maslakhaty)가 폐지되었으며, 의회(Mejlis)의 의원수가 65명에서 125명으로 증가됨으로써 명목상 국민의 대표자 수는 증가되었음.

ㆍ 동년 12월 민주적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유일합법정당인 민주당과 정부가 승인한 비정부기구만이 후보를 낼 수 있어 일당체제는 여전히 유지

ㆍ 그러나, 동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이 주지사 임명권을 보유하고 국가안보회의(State Security Council)의 의장이 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음.

러시아와 갈등 발발에도 불구 여전히 중요한 협력 상대

ㆍ 투르크메니스탄은 연간 700억㎥의 가스를 생산하며, 니야조프 정권이 2003년 체결한 25년 장기 가스 공급계약에 따라 이중 약 500억㎥를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Gazprom의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음.

ㆍ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저가 구입 후 우크라이나에는 고가판매를 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한편, 중앙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고 있음.

ㆍ 2009년 4월 가스관 사고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여 대 러시아 가스공급이 중단되었으나, 동년 9월 13일 가스공급 재개에 합의함.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자국 가스 재수출을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고정가격 기반 가스공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향후 분쟁 재발 가능성이 남아있음.

ㆍ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 입장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최대 가스수출 대상국이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자국 가스전개발에는 고비용이 소요되어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공급이 에너지 정책에 있어 중요하므로 현재 갈등에도 불구 양국의 경제협력관계는 유지 될 것으로 전망됨.

○ 중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증진

ㆍ 2006. 4월 중국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2007. 8월 중국 CNPC 주도의 총 7,000km의 가스 파이프라인(Central Asia Gas Pipeline) 건설에 착수하였고, 2009년 12월 가동될 것으로 전망됨.

중국에 대한 가스 공급 물량을 연간 300억㎥에서 400억㎥로 확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동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중국은 러시아에 이은 두 번째 가스 수입국이 될 것임(러시아에는 약 500억㎥ 수출).

ㆍ 2007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2008년 후진타오주석의답방을 통해 양국은 에너지 부문 이외에 섬유, 은행업, 통신 등 다방면에 걸친 협력을 약속하는 등 최근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증진되고 있음.

○ 가스 수출 다변화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방과의 협력 확대

ㆍ 최근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에 국한된 가스 수출선 다변화하기 위해 서방과의 협력의사를 표방함.


사회 및 소요사태


○ 장기 독재정권 지속에도 불구, 저항세력이 많지 않아 소요사태 발생가능성은 낮음

ㆍ 전임 니야조프 대통령의 독재정권이 15년 동안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이 많지 않고 국민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통령이 급격한 정치적 변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사회불안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임.



국제 신인도 및 대외지급능력


주요평가기관 신용등급


○ 주요기관별 신용도 평가순위

ㆍ 2008. 1월 OECD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높은 자원개발 가능성 및 신정부의 대외관계 개선 노력 등을 바탕으로 국가 신용등급을 7등급에서 6등급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바 있음.


평가기관

최근 평가 등급

종전 평가 등급

수출입은행

D2(2009.12)

D2(2008.11)

OECD

6등급(2008.1)

7등급(2007.1)

S&P

B2(2006.5)


*
Euromoney: 155/186('09. 3) → 155/186('09. 9)

* I.I: 129/177('09. 3) → 120/178('09. 9)


외채상환실적


○ 가스 수출에 따른 외환보유액 증가

ㆍ 에너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외환보유액은 2005년 45억 달러에서 2008년 167억 달러로 크게 증가하였음. 2009년 러시아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으로 수출이 감소하여 꾸준히 증가하던 외환보유액이 94억 달러 수준으로 감것으로 예상되나, 2010년부터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개시될 것으로예상되어 외환보유액 증가세는 회복될 것으로 전망됨.

○ 총 외채잔액은 낮은 수준

ㆍ 투르크메니스탄의 투기 등급(B2, Moody's)로 분류되고, S&P 및 Fitch사에서는 등급평가 대상국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등 국제자본시장에서 소외되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외채가 소규모인데 반해 동국의 외환보유액 및 가스 수출 전망이 긍정적임을 감안할 때, 외채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임.

2009년 말 총 외채잔액은 6억 6천만 달러(GDP 대비 3.4%)로 예상



사회


언어


○ 투르크멘어는 투르크-오구즈어 계통으로써 우즈벡어와 카작어보다 터어키어와 아제리어에 가까움. 투르크멘의 부족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음. 투르크멘의 표기문자는 18세기 들어 도입되어 주로 소수의 존경받는 시인들에 의해 사용되어옴. 투르크멘의 국립대학과 아쉬가바드의 주요 도로중 하나의 이름도 바로 이러한 유명한 시인중의 하나인 Magtumguly(막둠굴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짐. 시인들은 페르시아의 아랍 문자를 사용해 왔으나 1917년 혁명이후에는 라틴문자의 표기법이 개발됨. 이것이 1939년 소비에트 문화를 러시아화하기 위한 스탈린의 노력의 일환으로 시릴릭 표기법으로 바뀜. 1994년에 다시 라틴표기법이 재기되어 초등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시하다가, 2001년부터 공식적인 모든 정부문서 및 신문 등 공적게제에는 라틴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제정하여 실시되고 있음.

○ 구소련의 다른 민족과는 달리 투르크멘 종족들은 러시아화 운동에 저항을 해왔고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투르크멘인들은 투르크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러시아어를 말하지 않음. 그러나 지역 상권과 대부분의 공식 사업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투르크멘어보다 러시아어가 좀더 공식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편임. 특히 아쉬가바드와 같은 도시에서는 대화 중에 투르크멘어에서 러시아어로 자유롭게 전환하는 사람이 많음.


복장


○ 서구사람들에 비해 투르크멘인은 항상 깔끔하게 복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 남자들은 보통 넥타이와 깨끗한 구두에 정장을 입고 여자들은 아주 화려한 색상의 긴 드레스를 입음. 이것은 부를 과시하는 의미에서라기보다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임.

○ 공공장소에서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김. 하지만 집안에서는 손님이 있건 없건 자유로운 복장을 선호. 이에 반해 이 지역에 같이 사는 러시아인들, 특히 여성들은 전혀 다른 의복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긴치마와 긴소매, 머리에는 스카프를 둘러쓴 투르크멘여인과 짧은 미니스커트에 티셔츠를 입은 젊은 러시아 여성들의 대조되는 의복형태를 볼 수 있음.


교육


○ 투르크메니스탄의 초중등 교육체제는 구 러시아 때의 11년, 또는 12년의 의무교육제도를 폐지, 9년으로 축소 확정.

‘멕뎁’이라고 부르는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4년제 종합대학(우니버시테트) 이나 단과대학(인스티투트)을 진학할 수 있는데, 2년 동안의 정부관계의 인턴쉽 취업, 군대복무, 또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활동(예를 들면, 예술, 체육 등)들을 하여 직장의 추천을 취득한 후에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음. 대학교육도 정부가 학비를 전담하는 무료교육으로 되어 있으나, 입학을 하려면 엄청난 수준의 입학뇌물 또는 출신배경에 따른 입학청탁이 없으면 거의 입학이 불가능할 정도. 동시에 대학교육의 정원을 제한하고 교육계에 일하는 교수 및 교직원들의 일자리를 축소시킴으로써 고등교육을 제한하고 있음. 또한 투르크멘 내에서는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의 국내활동을 저지하려 함. 이러한 교육체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민교육’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음. 가능한 국민들의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하고, 외부와의 정보, 지식을 교환하고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국민들을 무식하게 만들고 바보가 되게 함으로써, 비판의식을 통제하여 철저하게 자신독재체제의 위치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임. 동시에 투르크멘 내의 국립대학의 종교학과를 제외한 어떠한 학교체제 내에서도 쿠란(이슬람의 성전)교육을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원리주의 이슬람들이 쿠란교육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도 금지하고 있음. 4년제인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외에도 2년제의 직업훈련 중심적 콜리지(College)제도가 있음. 따라서 부실한 교육내용과 짧은 교육과정에 만족치 않는 고소득권력층의 자제들은 많은 사교육에 의지함.


종교


○ 투르크메니스탄의 종교인구 분포는 이슬람교(수니파) 89%, 동방정교 9%, 기타 2%임.

○ 이슬람 정교 : 순니 이슬람의 ‘하나피’ 파에 속한 투르크멘 종족은 과거 70년간의 소련 공산 치하에서 이슬람 성전을 비롯한 다른 예배장소들은 폐쇄를 당했고 유물론적 세계관이 모든 교육과 사상을 지배. 그러나 1991년 독립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이슬람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이슬람교는 번성하기 시작함. 이슬람 성전인 메짓(모스크)이 다시 개방되고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알리는 애잔(이슬람 물라가 마이크를 대고 크게 코란을 읊으므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법)이 재개되는 한편, 대학에서는 이슬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종교학과가 신설. 여러 개의 이슬람 성전이 새롭게 건축됨. 하지만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이슬람은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신앙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노력으로 보여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함. 최근 터키의 문화와 이슬람교육에 초점을 둔 터키 학교들이 생겨났고 이란정부도 아쉬하바드에 대규모 이란 문화관을 설립. 이렇듯 증가하는 투르크메니스탄 내에서의 터키와 이란의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보통 시민들도 그들의 동기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음.

○ 민속 이슬람 : 소련 치하의 종교성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투르크멘인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자하여 민속 이슬람을 통한 종교활동을 이어옴. 이 민속이슬람은 원래 투르크멘이 갖고 있었던 샤마니즘적인 요소와 이슬람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종교적 형태이며 독립이후 이러한 활동은 상당히 널리 퍼지게 됨.

○ 악한 눈 : ‘악한 눈(괴즈데그메)’을 믿는 것은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투르크멘인들에게는 매우 흔한일임. 예를 들어 신생아를 보고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조차 아기에게 ‘악한 눈’을 심어놓는다고 생각하여 용납되지 않음. 왜냐하면 아기를 칭찬할 때 말하는 사람이 질투심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아기를 저주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임. 이러한 저주를 끊기 위해 투르크멘 사람들은 공식처럼 정해진 말을 세 번 반복하기도하고 처음부터 ‘악한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코란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종이에 써서 삼각주머니에 꿰메어 휴대하는 등 여러 가지 처방이 있음. “악한 눈이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라는 의미의 “퉤이레미”라는 말이 ’잘했어‘라는 표현으로 흔히 쓰임.

○ 낙타 털 : ‘악한 눈’을 비롯하여 다른 않좋은 일을 예방하는 대책으로 흔히 낙타털을 많이 사용함. 대부분의 차에는 운전대나 거울에 낙타털이 매어져 있는데 이것이 위헙으로부터 차를 보호한다고 믿고 있음. 또한 여자들은 낙타털로 만든 팔찌를 만들어 끼고 다니기도 함. 또한 낙타털은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만약 임신한 부인이 예정일을 넘기면 아이를 낳기 위해 낙타 밑으로 지나가야 한다고 믿음.

○ 후다이 욜리(신의길): 투르크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현으로 ‘후다이 욜리’ 즉 ‘신의 길’ 이라고도 말함. 예를 들어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의 기일이나, 아들이 군대에서 무사히 돌아오거나 기타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볶음밥(파로브)을 만들어 이웃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종종 이슬람 선생인 뮐라를 초청하여 코란을 읽히고 기도함. 사소한 경사가 났을 때는 빵이나 후식을 넉넉히 준비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 함. 이렇게 함으로써 알라가 그 가정에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라고 믿음.

○ 길일 : 투르크멘 사람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을 길일로 여김. 긴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 혹은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 이러한 길일에 택함. 수요일은 투르크멘 고어로 ‘챠샨베’ 즉 ‘4’라고 하는데 그 날에는 사방이 모두 열려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고 믿음. 금요일은 무슬림의 성스러운 날이므로 길일로 여김.






[투르크메니스탄 전도]


 

개관


 국 명 :
Turkmenistan(투르크메니스탄)

 수 도 : Ashgabat(아쉬하바드, 83만명)

○ 주요도시 : 아쉬가바드, 발칸아바드, 다쉬오우즈, 투르크멘아바드, 마리

○ 면 적 : 488.1천 km2 (한반도-221,000km2-의 약 2배)

○ 위 치 : 중앙아시아

○ 인 구 : 4.9백만명(‘10)

○ 민 족 : 투르크멘인 85%, 우즈벡인 5%, 러시아인 4%, 기타 6%

○ 종 교 : 이슬람교(수니파89%), 동방정교 (9%), 기타(2%)

○ 언 어 : 투르크메니스탄어(공식언어), 러시아어(통용어)

○ 정부형태 : 대통령중심제(임기 5년)

○ 국가원수 : Gurbanguly Berdymukhamedov 대통령

○ 의 회 : 단원제(125석)

주요정당 : 투르크민주당

○ 독 립 일 : 1991. 10. 27 (구소연방)

○ 화폐단위 : 마나트(Manat)(1$=2,843Manat)

○ 산업구조 : 서비스업 56.0%, 제조업 33.9%, 농업 10.0%(‘09)

○ 주요수출품 : 가스, 석유, 연화류, 직물(‘08)

○ 주요수입품 : 기계·설비, 식료품, 화학제품

○ 주요부존자원 : 석유, 천연가스, 유황, 소금

○ 경제적 강점 : 풍부한 천연자원의 높은 개발잠재력

○ 경제약점 : 국가주도의 통제경제체제, 에너지 산업에 절대적 의존

○ GDP : $ 77억 (2009)

○ 1인당 GDP : $ 1,604 (2009)

○ 표 준 시 : UTC+5

○ 기 후 : 투르크메니스탄은 대륙성 건조기후가 뚜렷,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극심. 습도가 낮고 증발이 높으며 강수량이 적음. 여름은 건조, 겨울은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때때로 약간의 눈이 내림. 짧은 봄은 습윤하며 가을은 건조함. 식물생육일수는 200∼270일 정도.



일반개황


○ 구소련 당시 세계 10대 면화생산국에 들만큼 면화, 밀 등 농업부문이 발달되어 있었으나, 설비투자 부진으로 농업생산이 크게 위축되었음. 러시아에 이은 구소련지역 2위의 천연가스 보유국(확인매장량 7.49조㎥)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최근 동국 에너지 부문에 대한 관심이 높은 EU, 중국, 러시아 등의 경쟁을 부추겨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음.

○ 1991년 구소련 독립 이후에도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철저한 제하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릴 만큼 폐쇄적인 철권통치가 유지되었으며,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구소련 국가로 남아있음.

○ 2006년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2007. 2월 취임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지난 정권의 정책기조를 대부분 계승함에 따라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 체제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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