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3, 지리산 둘레길(윤성의)-



* 2016. 7. 13(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9.9km))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지리산 둘레길입니다. 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 전남, 경남을 아우르며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 장거리 도보길로 현재 22코스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얼마 예능 프로그램에 그중 3코스가 소개되고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긴 했지만, 굳건하게 버틴 지리산 자락 아래 많은 마을길과 샛길들이 여전히 보석처럼 숨어있는 곳입니다. 저는 틈이 때마다 조금씩 아껴먹듯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요, 오늘은 1코스와 2코스를 중심으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중간에 있는 행정마을에서 맞는 아침. 예보대로 종일 비가 모양인지 꽤나 꾸물꾸물한 날씨였습니다.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습니다. 마을의 포장도로를 금세 벗어나 밟기 시작한 흙길,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부슬비에 젖었습니다.

검고 부드러운 흙바닥에 두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피어오르는 냄새, 흙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요. 어쩌면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황금연휴를 맞아서 불쑥 잡은 지리산행에 흔쾌히 함께 군대 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을 함께 타박타박 쌓아오며 용케 잘도 뭉쳐 다녔던 같습니다.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고즈넉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민가로 접어들면 사람 사는 풍경이 소소하게 펼쳐집니다. 골목길에 버티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선명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파스텔톤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시멘트 벽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았습니다. 색이 바랜 오래된 간판과 자전거들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 나간다거나 정복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가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천리행군이나 국토대장정도 아니구요. 그보다 중요한 , 어느 장소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오감을 온통 활짝 열어둔 , 발바닥에 밟히는 흙과 나뭇가지들을 온전히 느끼는 , 바로 그게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1코스와 22코스가 만나면서 지리산 둘레길을 한바퀴 완성시켜주는 접점인 주천면에 닿기 전, 제법 지대가 높은


구룡치 어간에서 자욱한 운무를 만났다. 이슬비가 쉼없이 내리던 와중에 안개가 조금 짙어지나 싶더니, 이렇게


배배 꼬인 연리지 나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삽시간에 시야가 가려져 버렸다.



이렇게. 온통 희끄무레하고 먹먹한 커튼이 내려뜨려진 느낌인데다가 빛은 사방에서 번져버리니 분위기가 묘하다.


들이마시는 호흡조차 축축하고 새하얀 빛깔인 것만 같은 느낌. 



마법의 시간이 끝나고 숲을 빠져나왔더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멀찍이 내닫는 시계.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1구간과 22구간이 양쪽으로 내달리는 시작점이자 종착점. 주천읍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녹색이 침공해 들어오는 계절도 아니건만 벌써부터 이 곳은 초록초록에 절반쯤 잡아먹힌 상태.





의식적으로 둘레길 코스에서 벗어나볼까 하면서 가닿은 곳에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다 보니 수위가 더 올라간 거 같기도 하고.







어느 곳에선가 마주친 사당이랄지, 아니면 사람이 살지 않게 된 흉가랄지. 집앞의 배롱나무가 활처럼 허리를 휘어서는


본채를 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현관의 기와지붕에 온통 퍼렇게 돋아난 이끼들도.



비가 그쳤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빗발이 그칠 기미가 없어 카메라를 잘 꺼내들 수가 없었다. 



다소 지루하게 이어지던 숲길, 설마 저 나무도 오늘 하루종일 비를 맞아 저렇게 이끼가 잔뜩 생긴 건 아니겠지. 



지리산유스호스텔 부근, 좀더 걸어가다가 아무래도 산속 깊숙히 들어가는 길인 거 같아서 중도에 돌아나왔다. 


계속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깊은 숲에선 금방 해가 떨어져버릴 것 같다는 점들을 고려했는데, 현명한 판단이었던 듯.



콜택시를 기다리던 중에 귀여운 표지판 발견. 나무를 베지 말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도 굉장히


명료했지만, 특히나 맨 마지막 그림의 토끼가 짓고 있는 호소력짙은 표정이 맘에 들었다. 자살토끼같은 표정.




지리산 둘레길 코스걷기 이틀째, 예보대로 종일 비가 올 모양인지 아침부터 꽤나 꾸물꾸물. 


행정마을은 그러고 보니 다른 지리산 마을에 비해서 꽤나 잘 정돈되어 있는 거 같다. 이런 이쁜 솔숲도 있고.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다.



아무래도 이런 둘레길이 자기 동네에 생긴다고 하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을 거다.





가지런히 열지어서 심어진 모들이 부채꼴 모양의 논을 따라 부드럽게 휘었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 걸어가는 신작로. 시멘트로 반듯하게 만들어진 길은 걷는 재미는 확실히 흙길만 못하다.



물이 가득 채워진 무논들 너머로 군데군데 잘 정돈된 마을 정자랑 그럴 듯한 나무들.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빗물에 젖었다. 





노치마을에서 만난 백두대간 비석. 지리산 인근 백두대간 정맥에 일제가 박아두었던 쇠말뚝을 제거하고는 이 마을에


일부 전시를 해두고 있기도 했다. 현대적인 의미의 산맥들이 한반도를 아우르며 어떻게 쉼없이 이어지는 건지


그림이 잘 안 그려졌었는데, 이 그림을 보니 백두산에서 설악산, 지리산이나 무등산까지 산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좀 알거 같기도 하다.


마을 어귀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 시소. 시뻘겋게 녹이 슬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삐걱대는 소리 없이 잘 움직이더라.




모내기에 한창인 때인지라 곳곳에서 이앙기가 출동 준비 완료.


그리고 이미 모내기 작업을 완료한 논. 슬쩍 손으로 쓸어보면 굉장히 보드라울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1코스 끄트머리쯤에서 만난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간이식당. 라면을 시켰을 뿐인데 굉장히 맛난 김치가 


함께 나와서, 역시 전라도 음식은 최고라는 확신을 다시금 갖게 해주었던.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1코스 종반부의 민박집에 자리를 잡고 났더니 


2코스 끝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체력도, 시간도 남았다. 설렁설렁 3코스를 계속 가보기로 한 참이다.



모내기에 한창이던 시절, 저렇게 여리고 자그맣던 아이들이 올여름 무더위와 가뭄에 잘들 버티고 있기를 바랄 뿐.


둘레길 코스를 따라 함께 흐르는 강 너머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우는..(이 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만서도)



어느 장소의 분위기를 아는데엔 한번의 방문으로는 택도 없다. 사계절을 다 보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담는 것, 그런 공을 들이고서야 이 공간이 가질 풍성한 느낌을 비로소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꽃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가던 길 끝의 어느 마을. 베이지색으로 단정하게 칠해진 담벼락에 벽화가 꽃길을 이어준다.



3코스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그 아래 개구멍을 꽉 들어채운 시퍼런 잡초.


담벼락에 기대 섰던 나무의 등걸에 기대어 그려진 벽화의 센스가 재미지다.



요새 축사는 그렇게 소똥 냄새가 멀리 않을 만큼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듯. 코앞에 도착해서야 저 안에서


뒹굴거리며 되새김질중이신 소들이 보였다.


산비탈을 따라 제법 층층이 포개진 다랭이논, 그리고 그 옆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둘레길.


3코스에는 황매암을 경유하거나 산신암을 경유하는 두가지 갈래길이 있다는데, 어쩌다보니 황매암으로 와버렸다.


코스 표지판을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렸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길안내가 부실하거나 둘 중 하나.



그래도 황매암을 둘러보며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건 꽤 괜찮았다. 산속길 깊숙이 숨은 곳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그마한 암자의 정취도 그렇고, 온통 푸릇푸릇하게 감싸고 올라오는 녹색의 기운도 그렇고.






지리산 둘레길 중에 가장 인기있다는 3코스, 아무래도 1박2일에서 이 코스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덕분인 거 같은데


역시나 방송에 나왔던 장소라는 현수막이 이렇게 떡하니 붙어있다. 




이런 개울을 지나고 산길을 계속 걷다 보면, 


현지 주민들이 지각없는 일부 둘레길 여행자들에 대해 읍소하는 이런 표지판도 보이고.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마을과 함께 수백년을 함께 했을 오랜 낙락장송 한 그루. 가지를 휘청휘청 늘어뜨린 모습이 연륜 가득하다.


대충 두어시간을 걷고 나니 장항마을에 도착,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에 기대 만들어진 쉼터에서 맥주랑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 숙소로 이제 돌아가기로. 죽자고 걷기보단 여유롭게 가자는 컨셉이니만치.



버스 시간표를 잠시 확인해보니 대충 이삼십분만 기다리면 한대 오겠다 싶다. 이런 여유로운 자세라니.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운봉읍에서 금계까지 이어지는 10km여의 구간은 마을의 수호장승으로부터 시작.


 

함께 걸었던 군대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동안 참 잘도 지내는게, 이리저리 갈린 길에서도 용케 잘 뭉쳐다녔다.


  

 

 

모내기를 위한 모판을 무논 위에 둥둥 띄워놓고. 모판을 실제로 본 건 꽤나 오랜만인데, 이렇게나 빽빽했던가,


그리고 이렇게나 싱그럽도록 연둣빛이었던가 싶다.


뭔가 일을 하시다 잠시 쉬시는 농부아저씨. 논두렁에 멋진 포즈로 딱 버티고 서서는 대지와 산을 바라보는.


 

둘레길 옆으로는 염소젖 짜는 체험도 해볼 수 있다는 조그마한 염소농장도 있고.


이런 아름드리 나무들도 쉬이 눈에 띄는 시골길이다.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 옆에는 나무의 자연스런 곡선을 그대로 살려서 지은 정자도 있고.

 

잠시 길을 잘못 든 통에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로변에서 걸어야 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논두렁 태우는 연기와 냄새가 훈훈한 시골의 봄길을 걷는 건 꽤나 유쾌한 경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그리고 솟대들이 온통 삐죽거리며 솟은 곳은 어느 마을의 입구.

 

 

 봄의 빛깔은 누가 뭐래도 연두연두. 그리고 저렇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벽돌빛의 배경이라면 더 좋다.


 

이제 슬슬 금계마을에 도착, 길이 민가로 접어들었고 이렇게 사람사는 풍경들이 나타난다.

 

골목길에 딱 버티고 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귀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참 좋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려 마음을 세운 것이 벌써 몇 년째, 5월초의 황금연휴에 불쑥-떼밀리듯-내려와버렸다.

 

별생각없이 잡은 숙소는 1구간 중간의 행정마을/삼산마을의 부녀회장님댁. 역시 전라도의 손맛이란 게 어찌나

 

훌륭하던지 아침저녁으로 푸짐하고 맛있으면서 저렴한 식사를 하고 내처 사흘째 걷다가 왔다.

 

 

모내기를 준비중인 논들은 온통 그득그득 물을 받아두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둘레길의 방향과 코스를 안내해주는 표지판들의 도움을 얻어 2구간쪽으로.

 

1구간 남은 곳과 2구간을 걸을 요량이었다.

 

 

 

 

 

유채꽃인지 무꽃인지, 화사하게 피어난 노란꽃들이 지천.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물을 가득 채워놓은 논. 수면에 모든 풍경들을 가둬놓은 모양새가 마치 수상마을 같기도.

 

 

 

그렇게 양쪽에 무논을 끼고 멀찌감치 지리산이 시야에 툭툭 걸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이내 운봉읍까지 도착.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고.

 

 

 

색이 빠지고 바래서 이젠 파스텔톤이 되어버린 간판과 자전거와 풍경들.

 

 

그와중에도 버스 정류장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 듯.

 

 

 

울타리나 철책이 둘리지 않은 자그마한 초등학교.

 

 

 

그렇게 설렁설렁, 금세 도착하게 된 2구간 시작점. 운봉-인월 구간, 거리는 9.9km라는데 뭐 무슨 정복하러 온 것도

 

아니고 갈 수 있는데까지 걸어보고 택시던 버스던 타고 숙소로 돌아오기로 했다.

 

 

 

 

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라는 지리산자락 바래봉,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5월초 황금연휴에  남원 운봉읍의 민박집을

 

잡았더니 여기를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신 거다. 부녀회장님이시기도 한 민박집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철쭉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도 구경하고, 떡과 막걸리도 얼콰하니 얻어먹고.

 

시골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는 건 역시 하늘 높이 떠올라있는 애드벌룬과 만국기.

 

그리고 한마리를 통으로 굽고 있는 지리산 흑돼지 바베큐, 막걸리 안주로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에 몇걸음 걷기도

 

전에 모든 걸 다 이루어냈다는 느낌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로 조금 올라가는 약간의 경사길에도 헥헥거리며 발걸음을 질질 끌고 말았던 것.

 

사실 철쭉이 그다지 이쁘다는 생각도 안 했었고, 무리지어 피어봐야 얼마나 볼만하랴 싶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 한 굽이를 지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온통 진분홍빛의 울긋불긋한 철쭉, 철쭉.

 

 

이렇게 지천으로 흐드러진 철쭉은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 할 만큼 빼곡하게 피어나서, 사람 하나 끼어 들어가

 

사진 찍을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앞에서 어떻게든

 

포즈를 잡아보느라 애쓰는 중이었고.

 

 

 

 

사실 바래봉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도 있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고는 했는데 일단

 

막걸리가 올라와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고, 또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터라 중턱까지만 피었지 위는 아직 멀었단

 

이야기를 듣고 지레 힘이 빠져서 그냥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내려오는 참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잘 꾸며놨다. 조경도 잘 해놨고 오밀조밀하니 걸어서 한바퀴 돌아볼 만하다.

 

 

 

그렇게 한참을 사방의 갈래길로 쏘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조금 취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하산. 본격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2코스를 시작하는 것으로.

 

 

 

광화문 인근을 지날 때마다 늘 맘속 한켠에 머물던 산, 인왕산. 온통 바윗덩이로 이루어진 듯한 험준한 산세 때문에

 

주저하곤 했었지만 이 짧디짧은 봄철의 산을 놓칠 수 없다 싶어 전격 트레킹.

 

 

대체 철쭉과 진달래는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늘 이맘때면 헷갈리고 다시 찾아서 익히고, 그리고 다시 내년엔 까먹고.

 

생각보다 훨씬 금방 올랐던 인왕산 정상머리쯤. 광화문과 서촌, 북촌은 물론이고 효자동 윗자락의 청와대까지도 환히

 

보인다. 슬쩍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리니 어디선가 휘리릭 나타난 의경 아저씨가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라고.

 

국내지도의 해외반출이 안되는 거나 청와대 사진찍으면 안된다는 거나 참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백악관 사진 찍으면

 

안된다거나 다른 나라 정부수반이 위치한 공간에 대해서 사진찍지 말란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한 일이다.

 

그래도 물리력을 갖춘 의경아저씨가 있으니, 얌전하고도 순순하게 카메라를 돌려서 이번엔 인왕산 자락 반대편,

 

독립문쪽이랑 아마도 신촌 근방이려나. 애꿎게 사진 한장.

 

 

광화문이랑 경복궁 궁궐들이 내려다 보인다. 아마 조선시대에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한양의 전경은 꽤나 멋졌겠지 싶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 시계가 맑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아늑한 느낌으로 자리잡은 서울의 구도심이라니.

 

내려가는 길에 줄곧 함께한 북한산 성곽.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이 제법 운치가 있다.

 

그렇지만 코앞에 들이댄 풍경은 또 다르다. 키치와 오리지널이 각기 보여주는 깊이와 색감의 차이.

 

 

벚꽃잎을 풍성하게 매달았던 벚가지 끄트머리에도 비로소 새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봄이 지난다.

 

 

 

블레드 호수를 천년동안 내려다보고 선 블레드 성은 무려 100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자리한 옛성이다. 올라가는 길은 이리도 험하다.

 

 

 

이런 휘장, 중세 시대 성벽에 나부낀다거나 기병대 간의 전투가 벌어질 때 뿔피리 소리가 들리면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깃발이다.

 

 

조금 가빠진 숨을 가누며 성 안에 들어서면 블레드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호텔이니 레스토랑이니 까페들이 한눈에 내려보인다.

 

 

그리고 옛날에 쓰였을 우물이니 초소니 건물들이 생각보다 훨씬 촘촘하게 성 안에 자리잡고 있다. 나름 굉장히 집약적인 공간활용.

 

 

그리고 성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블레드 호수의 한쪽 둔덕.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에서 되려 촉촉한 느낌의 풍경이다.

 

 

 

그리고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아무래도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는 이걸 참조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블레드 섬.

 

블레드 호수 주변에 있는 높고 낮은 구릉들은 관광객들이 즐기는 트레킹 코스 여러곳을 품고 있다고 한다.

 

단 이렇게 흐리거나 비가 왔거나, 최근에 눈이 많이 와서 길이 중간중간 끊겨있는 경우에는 입산 통제.

 

 

이때만 해도 아직 비가 오지 않아서, 저렇게 꼬물꼬물 조그마한 배가 블레드 섬에 오가는 걸 보며 나도 저걸 타면 되겠구나, 했는데.

 

 

 

 

동전을 넣으면 기념주화로 바꿔준다는 조그마한 프레스기. 궁금하긴 했는데 나 이외엔 여행자도 안 보여서 걍 포기.

 

 

덩굴손이 건물 외벽을 꼼꼼히도 감싸버린 운치있는 옛 건물은 빨간 지붕조차 적당한 느낌으로 퇴락했다.

 

성 내에 있는 '대장간' 공간에서 여전히 쇠를 만지며 이러저런 기념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나 보다. 역시나 용의 형상이 지천이다.

 

성 안에 있는 역사관이나 유물관 같은 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옛 시절의 용 이미지들.

 

 

이렇게 생긴 사람들이 블레드 성과 호수 주위에서 수렵을 하고 농경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때에도 역시 드래곤이 짱.

 

 

성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블레드 섬. 그리고 그 너머 더욱 꾸물거리는 하늘.

 

 

대장간 내부에 들어왔더니 망치와 모루, 그리고 온갖 공예품들과 장식품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요녀석이 땡겨서 슬쩍 만져보기도 하고 가격도 물어보고 디스카운트를 시도하다가 실패. 깨끗하게 포기. (너무 비쌌다)

 

 

그리고 성 안에 있는 성당. 제단 위에 있는 미니멀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성모상이 너무 맘에 들어서 슬쩍 사진을 찍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나는 망루 같은 곳에 잠시 기대어 비가 금방 그치지는 않을지 가늠해봤지만, 갈수록 굵어지는 빗발.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망루 주위를 두른 울타리랄까, 비둘기와 하트 문양이 번갈아 교직하는 그런 하얀 울타리.

 

 

블레드 성의 입장료는 8유로, 그런데 티켓에 1.5유로 짜리 쿠폰이 붙어있어서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사먹을 때

 

할인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일 쌌던 커피가 3.5유로였던가 하여 결국 돈을 더 쓰게 만드는 마법의 쿠폰.

 

그리고 블레드 성에 가게 되면 꼭 들르라고 강추하고 싶은 와인 저장고! 중세 수도사처럼 생긴 수염 북실북실한 아저씨가 직접

 

오크통에서 와인을 병에 옮겨담아서 저렇게 마개를 하고 라벨을 붙여서 마지막엔 봉인까지 해준다.

 

그런 특별한 와인 말고도 슬로베니아에서 나는 온갖 와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인근 지역에서 '블레드'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들도 꽤나 많이 보였다. 가격대도 다양하고, 아저씨도 굉장히 친절하고 수다스럽게 와인도 소개해주고

 

북한의 핵실험과 일본/중국의 단체여행객이라거나 싸이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최근엔 일본의 단체여행객들이 깃발을 하나 들고 우르르 왔다갔다 하는데 시즌이고 뭐고 없이 엄청 많이 온다고 하길래,

 

이제 이삼년 후면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올 거라고 지금부터 한국어 한두마디는 연습해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해줬다.

 

그렇게 아저씨랑 실컷 떠들며 한잔 따라주신 와인을 홀짝대다가, 결국 와인 한병을 사들고 뚜껑을 따달라고 부탁해선

 

더욱 거세진 빗발 속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와인을 한 병 들었으니 뭐 딱히 걱정할 것도 없고 하여.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한시간 반,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날은 굉장히 흐리고 꿀꿀한 게 금세라도 비나 진눈깨비가 내릴 듯한 날씨였지만 호수의 수면은 거울처럼 매끈하다.

 

 

백조가 유유히 직선을 그어내는 호수 너머 조그마한 섬, 매직 아일랜드같은 느낌으로 버틴 섬을 꽉 채운 성모승천 교회.

 

 

그리고 100여미터의 절벽 위에 서 있는 블레드 성. 무려 천년 동안이나 저 위에서 호수를 굽어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모양의 (아마도?) 쓰레기통, 그 넓적한 입매가 장난스럽게 비틀어졌다.

 

 

백조님의 클로즈업 샷. 어찌나 깃털이 발수기능이 좋으신지 머리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호수는 엄청 커서, 둘레가 대략 6키로미터라고 했던가. 겨울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여름엔 무지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덩굴처럼 자라난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이 수면 위로 스물스물 그림자를 드린 가운데 새하얗게 우아한 백조가 그리는 궤적.

 

 

아직 날은 춥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지만 여지없이 봄이 내딛는 발자욱은 한걸음씩 진군 중이었다. 꽃망울을 여기저기 터뜨리며.

 

 

 

블레드 성에 오를 즈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그칠 기미없이 점점 세차진다 싶더니 급기야 호수 표면에 셀수없는 구멍을 내버렸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그어갈까 했지만 아직 다들 잎사귀조차 제대로 틔우지 못한 앙상하고 헐벗은 나무들.

 

 

중간중간 블레드 호수로 모이는 개울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드높아졌다.

 

 

 

블레드 섬과 호수 둘레길과의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던 즈음, 두마리 조그마한 오리들이 섬을 향하듯 호수면을 미끄러지고.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호숫가에는 차가운 빗물이지만 쉴새없이 내리며 조금씩 겨울의 흔적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블레드 호수의 둘레길, 블레드 성에서 산 와인 한병을 들고서 홀딱 비 맞고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병나발 부는 맛이란. 캬.

 

 

 

 

원래 블레드 섬까지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다고 해서 그것도 타보고 싶었지만, 워낙 비수기에 와버린 데다가 이렇게 비가 내리니

 

들어가는 건 포기해버렸다. 그 안에는 '소원의 종'이 있는데 그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내게 소녀시대가 있으니 괜찮아.

 

 

 

섬 주변에는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곳곳에 있고, 블레드 성같은 오랜 유적도 있는 데다가, 레스토랑이나 까페도

 

뭉탱이 뭉탱이 몰려 있다. 이 건물도 뭔가 까페인 거 같은데, 비수기라 역시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블레드 섬의 360도 뷰를 찍어볼 기세로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와인병을 기울이며 사방에서 찍어댄 결과물들.

 

 

 

그리고 호수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더이상 촬영은 무리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집어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담은 블레드 성의 옆모습. 얼짱각도에 수렴하는 45도 비껴난 샷이다.

 

다시 블레드에서 류블랴나로 가는 버스 안. 옷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홀딱 젖어서 무척이나 묵직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빗물이 진눈깨비나 눈발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날이 좀더 푸릇푸릇하고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비를 쫄딱

 

맞으며 와인 한병을 병나발 불며 호수 한바퀴를 도는 경험이란 것 역시 나무랄 데 없다.

 

 

 

 

 

포항 북부해수욕장, 새벽부터 내달려 세시간반만에 도착한 한반도 동남쪽 바닷가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해수면까지 짙게 내려앉은 희뿌옇고 눈부신 장막 너머 포스코의 굴뚝들이 은폐엄폐중이던 그 곳.

 

 독도가 경상북도 울릉군, 이었다는 건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무수히 꽂힌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어릴 적부터

 

익어버린 노래 가사가 서로 만나는 순간 새롭게 각인되었다. 독도는 한국땅.

 

 포스코 제철공장을 마주본 이 곳인지라 그런지 곳곳에 철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보였다. 이렇게 커다란 철로 만든 모기도 한마리.

 

 북부해수욕장 끄트머리부터 시작하는 야트막한 구릉은, 봄철에 왔더라면 좀더 물이 올라 싱싱한 초록빛으로 반짝이지 않았을까.

 

중앙공원, 해맞이공원, 혹은 환여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은,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큼지막한 공원 가운데께에는 멀리

 

영일만의 반짝이는 파도가 굽어보이는 전망대도 있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도착하는 포항시립미술관(POMA)도 품고 있다.

 

 

 지방이라 그런지 아니면 포항이 부유한 도시여서 그런지 포항시립미술관은 무료. 마침 개관 3주년 기념 전시라며 그간

 

수집한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 물씬한 미술관 내부에 문득 볕이 들이치던 순간.

 

 미술관 정문 옆에 심어져 있던 아롱다롱한 소망나무 한 그루.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열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필체의 얼룩을 품었다.

 

 그리고 제법 오래 눈길을 붙잡았던, 포항시립미술관 앞의 이 작품. 허리춤을 아프지는 않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부여잡은 저 손.

 

전망대에서 미술관을 지나 다시 공원 밖으로 내려서는 참에 다시 만난 포스코 제철공장의 어슴푸레한 풍경.

 

맑은날 밤에 여기서 야경을 찍어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 묵었던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별 생각없이 "맛있는 칼국수 근처에 없나요", 라 물었더니 냉큼 알려주신 곳. '해궁'이란

 

곳의 푸짐한 해물칼국수. 아무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온갖 해산물이 그득그득.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포호 주변에서 드문드문 목격되는 네발 자전거를 따라 대여장소로 뙇.

 

핸들이 심플하고 단단하니 이쁘게 생겼다. 게다가 스티어링 휠이 작아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전감.

 

경포호 옆의 공터에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네발자전거..사륜마차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인다. 추위를 막을

 

비닐 차양이 씌워진 것도 있고 그냥 날로 벗겨진 것도 있고.

 

달리기 시작, 운전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지만, 경포호가 생각보다 큰 호수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호수 옆에 살짝 주차해 놓고 사륜마차 전신샷. 앞에만 비닐차양을 위로 걷어올리고 삼면을 두꺼운 비닐로 막았더니 그럭저럭.

 

그러고 허난설헌의 생가로 빠지는 샛길을 달려 버렸다. 원래 호수 둘레길은 다소 안정적인 평지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

 

경포호에서 백미터 정도만 떨어지면 바로 나타나는 게 허난설헌의 생가. 오르막내리막이 제법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사륜마차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곳에 와 버렸다는 뿌듯함.

 

 

사륜차를 한쪽에 슬쩍 세워두고 설렁설렁 돌아보고. 이미 바람이 차갑고 입김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는 살짝 기분좋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허난설헌 생가 뒷켠의 해송림 사이 오솔길을 내달리는 길. 아까 경포호에서 이쪽으로 올 때는 내리막이라서

 

엄청난 속도로 오솔길을 육박해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오르막. 꽤나 헥헥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샛길에서 다시 호숫가 둘레길, 공식적인 사륜차의 코스로 복귀하기 직전.

 

찬 바람이 씽씽 불어도 굳이 이 사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제 궤도에 올라 좀 편하게 달려볼까 하다가 문득 옆에서 눈에 띈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구마구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해보이는 길. 물 위에 다리처럼 놓였는데 이리저리 배배 꼬였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그래서 다짜고짜 진입. 그렇게 또다시 사륜차는 옆길로 새 버리고. 생각만큼 길은 좁아서 사륜차 한대가 꽉 끼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뭐 재미난 게 있나 싶어 뒤를 따라온 다른 사륜차 한 대. 더구나 저건 6인승이어서 휠베이스가 더 길었는데,

 

덕분에 일정 이상의 꼬불꼬불한 코너를 만나면 전부 내려서 자전차를 들어올려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오신 중년부부셨는데 어쩌자고 따라오셔서는.

 

그래도 중간에 차를 돌리고 이리저리 움직일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와서, 슬쩍 주차해두고 요리조리 구경도 좀 하고.

 

호숫가 한 복판에 이런 나무데크의 다리가 고불고불 이어지는 데다가 그 길에 꽉 껴서 달리는 사륜차도 재미있었다.

 

다시 정상 경로로 복귀. 그러고 보니 길 중간중간에 조각상도 보이고,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들도 보인다.

 

목 좀 축이고 가라며 만들어둔 음수대의 모양이 재미있다. 입을 쩍 벌리고 선 개구리 두 마리.

 

한바퀴를 도는데 한시간이면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더러는 딴 길로 새가면서 달릴 수 있는 듯 하다.

 

타기 전에는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싶다가도 생각보다 경포호 주변으로 샐 만한 곳도 있는데다가 기본적으로

 

두 발로 페달을 저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진하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태하 등대가 굽어보고 있는 동그란 만 형태의 바다, 짙은 에메랄드빛 잉크를 풀어내린 듯한 파도가 부서지던 곳.

 

태하 앞바다를 따라 걷는 해안 산책로, 뱅글뱅글 올라가는 길을 걸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저런 건 거리를 살짝

 

두고 보는 게 인상적이지 막상 저 나선궤도 위에 올라서면 별반 흥취가 없다며.

 

태하까지 왔으니 울릉도 북쪽 해안의 동에서 서까지 걸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

 

야트막하고 자그마한 집들이 좁다란 골목을 함께 나눠쓰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

 

뜨거운 계절엔 누군가의 수영복과 옷가지를 얹어두고 두팔 펼쳤을 빨랫대도 얌전히 쉬고 있다.

 

다시 태하삼거리로 돌아가는 길, 아무래도 저녁은 남양약소숯불구이를 먹어야겠다.

 

 

도로변에 이어진 너른 공터 한가득 나물을 말리고 있는 아주머니들. 트럭까지 동원해서 정말 대규모로 널고 계셨다.

 

거기서부터 이젠 남쪽으로 걷기로 했다. 울릉도에 있는 두개의 둘레길은 태하에서 남양을 잇는 길 하나,

 

그리고 내수전과 석포를 잇는 길 하나. 그중 태하에서 남양을 잇는 약 7km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

 

태하 등대에서부터 남양까지 치자면 대충 9km 정도 되는 거리, 그치만 결과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버려서

 

태하령입구를 지나 구암으로 빠져 남양까지 걸었으니 대충 11.2km 정도. 2km 정도야 대충 30분 더 걸으면 되는 정도니까.

 

예부터 있던 길을 다시 연결해서 만들어놓은 둘레길이라고 들었는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살짝 의심부터 든다.

 

차는 고사하고 인적조차 한동안 끊겼던 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거다. 온통 범람한 녹색의 이파리들도 그렇고.

 

생각보다 길도 험하다. 오르내리막이 연속되는 꼬부랑 고개가 꼬불꼬불, 하늘을 온통 가린 두터운 녹색의 장막.

 

게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제대로 된 길은 맞는지 알려주는 표지가 굉장히 귀했던 것도 뭔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사람 하나 없는 길에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가 울리면 사방에서 흑비둘기가 푸드덕거리는 짙은 숲속 외길.

 

 

그래도 한참 걷다보니 이런 정자도 나타나고. 숲에 대한 소개나 식생에 대한 정보가 담긴 안내판들도 정비되어 있고.

 

 

 

벤치도 중간에 조금 꾸며져 있긴 했는데, 정말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에 잡아먹혀서는 이제 엉덩이 반쪽 자리할 공간도 없으니.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며 점점 고도가 올라간다 싶다가, 태하령에서 고비를 찍고는 본격적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

 

'구비구비 버혀낸 긴긴 겨울밤'이 이럴라나 싶을 정도로 배배 꼬인 창자같은 길을 슬슬 풀어내는 참에

 

거꾸로 눈돌려 확인한 울릉도 제2둘레길의 호젓함.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는지라 굳이 걸어서 넘어갈 사람 아니고서는

 

이 길을 이용할 일이 없는 거다. 그게 이 길을 걷는 동안 사람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짙은 숲을 음미할 수 있었던 이유.

 

둘레길의 시작점과 종점이 명확하지 않긴 하지만, 대충 사람의 흔적이 길 양옆으로 남아있는 즈음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양쪽에 늘어서고, 하늘까지 치솟은 나무들의 키높이가 곤두박질치고, 비료 봉투를

 

뒤집어 세워 허수아비를 갈음하는 자그마한 개간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체 시작점과 종점이 어디인지 명료하지 않은 상황,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안내판들이 세워진 상황에서

 

몇 km 남고 몇 km 걸었는지 따위 계산은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외길이어서 그저 걸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어느순간 옆길로 새더니 구암 쪽으로 걷고 있었단 걸 발견했을 때 좀 신기하긴 했지만.

 

뭐 잘못 들어선 길이긴 했지만, 꼭 다시 되짚어 바로잡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손바닥만한 섬', 아무리 애를 써서

 

모로 가려 애써봐야 거기서 거기다. 시속 4km의 도보로는 나름 굉장히 광활한 땅처럼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 해가 한참 남았는데 번쩍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알게 모르게 슬슬 조바심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구비구비, 저기만 지나면 눈앞에 울릉도 남쪽 바다가 보이겠거니, 생각하다가 헛탕치기를 몇 차례.

 

뭐 그래도 발걸음이 한가로운 완만한 내리막길.

 

이 사진의 제목은 왠지 그런 거 어떨까 싶다. '삼송의 최후'라거나 뭐 그런거.

 

 

드디어 울릉도 남쪽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저만치 땡겨지도록, 태하를 출발한 이후부터 사람 하나 못 보고.

 

 

그러다가 우르르 길가에 나와 맞이해주던 까망색 흑염소 녀석들. 무슨 고산지대 산양처럼 맘껏 뛰놀던.

 

구암마을, 울릉둘레길로 돌아가는 안내판이랑 버스정류장을 보며. 무엇보다 눈앞에 바로 놓인 바다를 보며.

 

 

이제 해안도로를 따라 남양리로 걷는 길이다. 남양엔 유명한 남양약소숯불구이집이 있다니 저녁은 그곳에서 먹기로 하고.

 

 

구암과 남양 사이의 사태감 터널. 여느 터널과는 좀 다르다 싶어 유심히 살피다가 이유를 알았다.

 

 

구멍이 뽕뽕 나있는 외벽은, 언제고 바다가 거칠어지고 높은 파도가 몰아칠 때 터널 구조물이 좀더 버티도록.

 

바닷물이 들이칠 때 타격이 덜하도록, 그리고 빠져나갈 때 좀더 쉽게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진 거 같다.

 

 

그리고 남양 몽돌해변으로 이어지는 동글동글한 자갈 마당이 파도에 씻기우고.

 

 

울릉도에서 공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제법 여기저기 공사판이다. 그 앞에 보이는 게 구암터널.

 

 

남쪽 해안이라 해넘이가 잘 보이진 않을 거 같고, 살짝 바다가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양리에 들어서는 길에 바로 보이는 사자바위, 그 앞에 남근바위도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도

 

남근 비스무레한 건 찾는데 실패. 사실 이녀석도 딱히 사자다워 보이진 않는데.

 

그리고 투구봉.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의 우산국을 정벌했을 때 우산국 왕이 벗어놓은 투구가 봉우리가 되었다.

 

혹시나, 떨어지는 해와 경쟁해서 달리면 사진 한장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남양리 안쪽으로 들어가

 

남서일몰전망대를 찾아보았는데. 발은 아프고 배는 고프고 길도 모르겠고 하여 잠시 헤매이다 포기.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없이 걷고 싶은데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섬이 답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한뼘만한 땅덩이, 울릉도에서 2박 3일동안 정신나간 도보여행을 하고 싶을 때 추천하는 일정.

 

눈뜨면 걷고, 어두워지면 멈췄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건 삼일차, 남양에서 저동까지 움직이는 데까지만 한 번.

 

 

제주도 올레길이 조금은 편하고 아기자기한 코스라면, 울릉도 도보여행길은 좀더 거칠고 날것의 느낌.

 

대부분 성인봉 등반만 하고 마는 단체 등산객이거나 버스로 찍고 찍고 다니는 단체 여행객들만 찾는 곳이니만치

 

하루종일 걸어도 만나는 사람들은 손 꼽을 만큼인 곳. '둘레길'도 말만 둘레길이지 그냥 버려진 옛길이랄까.

 

 

미친 짓 한번 하고 싶을 때, 러닝-하이가 아닌 워킹-하이(Walking-high)를 맛보고 싶을 때 한번쯤,

 

내키는 대로 한없이 걷다가 바다가 나오면 발길을 틀면 그뿐이었다. 딱히 정해진 일정도 계획도 없었던 코스.

 

그렇게 3일동안 한걸음씩 꾹꾹 내딛었던 발걸음들을 잇고 나니 저런 길들이 그려졌다. 시속 4km의 세상.

 

 

 

ㅇ 1일차 : 사동항 - 성인봉(KBS중계소 코스) - 천부

 

 

(03:00 서울 출발, 05:30 추암 촛대바위 도착)

 

07:00 묵호여객선터미널 도착

 

07:00~08:00 아침식사

 

09:00 묵호항 출발 (by 씨플라워호)

 

12:30 사동항 도착

 

14:30 KBS중계소(성인봉 등산코스 출발지) 도착

 

17:00 성인봉 도착

 

18:30 나리분지 도착(성인봉 등산코스 도착지)

 

20:00 천부리 도착

 

20:00~21:00 저녁식사 (울릉도식 백반정식)

 

 

 

 

 

 

 

 

ㅇ 2일차 : 천부 - 현포 - 태하 - 둘레길2코스 - 구암 - 남양

 

 

10:00 숙소 출발

 

10:30~12:00 예림원(문자조각공원) 체류

 

13:00 현포 도착

 

13:00~14:00 점심식사 (울릉도식 백반정식)

 

15:00 태하항 도착

 

15:30~16:20 태하등대(모노레일) 체류

 

16:40 태하삼거리(울릉둘레길 2코스 시작점) 도착

 

18:30 구암 도착

 

19:00 남양 일몰전망대 도착

 

19:30~20:30 저녁식사 (약소숯불구이)

 

 

 

 

 

 

 

 

 

ㅇ 3일차 : 저동항 - 행남등대 -  도동항 - 독도전망대 - 사동항

 

 

10:00~10:30 아침식사 (따개비 칼국수)

 

10:40~11:20  저동항 도착 (by BUS)

 

12:00 소라계단 도착

 

12:30 행남등대 도착, 행남해안산책로 시작

 

14:00 도동항 도착 (행남해안산책로)

 

14:30 도동약수공원 도착

 

15:00 독도전망대 도착 (케이블카 왕복)

 

17:00 사동항 도착

 

17:30 사동항 출발 (by 씨플라워호)

 

21:00 묵호항 도착 

 

23:40 서울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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