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전날까지 심하게 내렸던 눈으로 인해 대부분의 코스가 막혀버리고 하류쪽

 

약간의 코스만 열려있던 상황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눈을 헤치고 휘적휘적 나아가다가 어느결엔가 출입통제구역들까지 헤집었단 얘기.

 

 

 

 

에메랄드빛 호수 위로 슬몃 바람이 지나면 가지 위로 한껏 쟁여놓았던 눈발이 마치 하늘에서 내리듯 푸지게 쏟아져내린다.

 

 

아직 사람 하나 지나지 않은 하얀 설원 위에 길을 만들며 휘적휘적, 전후좌우 위아래로 온통 새하얀 풍경들이 쉼없이 이어진다.

 

 

 

 

 

무슨 말을 더 붙여야 할까. 그저 잠자코 사진이나 올릴 수 밖에.

 

 

 

벤치 위에 사람 대신 눈이 그득하니 앉았다.

 

 

 

 

제설차가 밀고간 눈이 온통 길 양옆으로 밀려나면서 다리를 완전 막아버렸지만, 저길 또 뚫고 지나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또 신세계. 대충 플리트비체 호수들의 중심, 코자크호수의 중류까지 도착한 듯 하다.

 

 

내가 만들어온 길도 한번 슬쩍 돌아봐주고. 이제 제법 태양이 중천으로 치솟고 있는데도 워낙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그치만 또 이런 말갛고 투명한 녹빛의 물이 유유히 흐르는 새하얀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냥 좋다.

 

 

 

 

 

 

 

 

 

 

 

 

 

 

 

커다란 S자로 휘이~ 돌아가는 저 산책로를 밟고 싶어서 이리저리 길을 뚫어보려 하는 참이다. 짙은 초록빛의 호수 가운데의 새하얀 길.

 

 

문득 잊혀졌던 바람이 다시 불면, 어제의 삼엄했던 폭설이 재연되는 순간.

 

그 와중에 내려가는 길을 찾아냈다. 아마도 여기가 날좋은 날엔 보트를 타거나 하는 식으로 호수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포인트인 거

 

같지만, 나중에 다시 올라오면서야 폭설로 출입통제였음을 확인했다. 어쩐지..내려가는 길에 몇번이나 위기를 넘기고. 결국 자빠지고.

 

 

 

결국 한번 되게 넘어지고 나서야 바닥을 보았다. 이곳에서 보이는 플리트비체 호수들의 풍경은 또 굉장히 다르다.

 

 

 

 

 

대체 뭔 사진을 버리고 뭔 사진을 취해야 할지 정하기도 쉽지 않다. 아니, 그보다 플리트비체의 한순간한순간이 너무나

 

인상깊어서, 어느 한토막이나 풍경 한조각을 버리기가 너무 아깝다는 게 맞겠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3월 중순의 늦은 폭설이 내린 직후라 이런 숨겨진 기적같은 풍경들에 매혹당하고 말았지만, 좀더 날씨가 풀리고

 

초록초록 울울창창하게 단장한 플리트비체를 만나는 것 역시 또다른 기적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일지 모르겠다. 언제고 꼭, 꼭,

 

다시 한 번 맨눈으로 다시 보고 싶은 최고의 비경.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굉장히 이름높은 곳이다.

 

게다가, 하루 전날 내내 폭설이 쏟아지고 난 다음날 쨍한 아침이 시작되는 댓바람, 그야말로 공원을 방문하기 최상의 타이밍!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1번 입구에서 티켓을 사고 공원 안으로 입성! 2번 입구는 폭설로 임시 폐쇄중이라고 하니 잘됐다.

 

 

플리트비체에 있다는 92여개의 폭포 중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백미라는 벨리키 폭포. 높이 78미터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게다가..물이 흘러내리는 곳따라 함께 흘러내리는 눈길에 밟히는 건..온통 눈꽃. 이런 눈꽃은 여태 듣도 보도 못했단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턴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사진 감상 위주로다가. 정리를 아무리 하고 지워보려 해도 아까운 사진들이 잔뜩이다.

 

 

 

 

 

 

1번 입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하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애초 석회암 지대인 이곳의 지반을 오랜 시간 강물이 깍아내리며

 

점점 계단식으로 층층이 호수를 넓혀온 거라고 한다. 그 외곽을 돌며 자잘한 호수가 이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묘미라는데.

 

 

이렇게 푸지게 눈이 온 다음날이라 가능한 풍경들, 눈꽃이 풍성하게 피어난 나뭇가지 위로 미끄러져내리는 무지개라거나.

 

투명하게 파란 하늘 아래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풍경, 그리고도 디테일한 원경과 근경, 그에 더한 보슬보슬 질감까지.

 

이런 식의 미묘한 푸른 빛의 호수가 조금씩 하류로 밀려들고 있는 풍경, 가히 절경이다.

 

 

국립공원이 개장하자마자-오전 10시 개장-제일 먼저 들어섰는데, 어느 순간 뒤에서 아저씨 둘이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프로 사진사 아저씨랑 공원 관리인 아저씨. 플리트비체의 공식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던가, 묵직한 장비를 이고지고 걷고 있었다.

 

 

 

아..넘넘 이쁘다 진짜. 정말이지 정신도 못 차리고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뿐.

 

 

 

 

그리고 이 미묘하고도 몽환적인 물의 색깔. 물속에 포함된 석회질과 각종 미네랄 때문이라나, 빛의 각도나 햇살의 세기에 따라서

 

그 색깔이 환상적으로 번져나가는 게 워낙 유명하다고 한다.

 

 

호수를 가로질러 반대편 기슭으로 가는 참, 다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던 나뭇가지나 부유물 위로 두텁게 쌓인 하얀 눈이불.

 

 

 

플리트비체의 호수들이 얼마나 큰 낙차를 갖고 있는지, 상류지역과 하류지역의 호수가 얼마나 낙폭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내판.

 

 

하류의 호숫가를 구경하고 벨리키 폭포를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코스는 이쪽인데,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나무계단 위로까지

 

호숫물이 범람해 버렸다. 눈이 두텁게 쌓인 산책로가 위태롭게 끊겨버린 지점, 이쪽으로는 포기해야 하나 잠시 갈등하던 참.

 

이 길을 따라가야 벨리키 폭포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일 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무지개 하나가 둥실 환상처럼 떠올랐다.

 

 

뒤로 돌아보아도 아까 그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 전날 내린 눈 때문인지 공원 내엔

 

사람 하나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다. 음..어디로 가야 하나 갈등이 조금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결에 다시 나타난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이 여기저기 휘적대며 사진을 찍더니 문득, 물이 잔뜩 차오른

 

나무다리를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물살이 세찬 나무다리 위로 발을 내딛고 말았다.

 

플리트비체의 민박 마을에는 두 개, 라스토바차 마을과 무키네 마을이 있다. 그 중에서 2번 입구쪽으로 가까운 무키네Mukinje마을의

 

입구에서 덜렁 혼자 내렸다. 새까만 아스팔트 도로가 금세 하얗게 지워져버리는 폭설, 버스는 거북이 걸음으로 느릿느릿 떠났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다른 크로아티아 일정과는 달리 숙소를 전혀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와버린 플리트비체인데 암담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눈은 이렇게 펑펑 내리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돌아볼 수나 있을지 아님 시외버스는 계속 다닐지.

 

 원래는 여기서 2박쯤 하고 스플릿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고 하룻밤만 지나면 길이 꽁꽁 얼어붙진 않을지.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눈밭을 헤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 좀체 인적도 없고 민박집들도 불이 꺼져있고.

 

 

마을 안쪽 깊숙이에 있는 정류장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 차도를 따라 걸어도 눈은 무릎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무키네 마을 유일의 레스토랑. 그리고 유일하게 문이 열린 채 사람들이 조금 모여있던 공간에 도착했다.

 

스키얄리슈테 피자 비스트로. 일단 맥주부터 한 잔 시키며 눈을 털었다.

 

 

 

테라스 너머 바깥으로는 아담한 스키 슬로프가 하나. 이 레스토랑은 사실 이 스키장에 딸려 있는 식당에 가깝다고 하는데,

 

자연설이 이만큼이나 넉넉하게 쌓인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놀면 진짜 재미있을 거 같다. 슬로프 위엔 사람 한 명 없고.

 

 

온통 하얗기만 해서 눈이 부실 정도인 바깥 풍경과는 달리 창가 안쪽에 있는 싱싱한 화분. 새빨강과 새초록의 싱그러움이라니.

 

 

 

마을 입구에 내려섰을 때의 막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창밖의 눈덮인 풍경들을 감상하느라 온통 마음이 기울어 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플리트비체에서의 이틀 동안 평생동안 볼 눈꽃과 셜경을 볼 수 있으리라곤 전혀 몰랐고, 이런 풍경이란 건

 

이제 플리트비체에서 본격적으로 마주할 풍경에 비기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걸 몰랐다.

 

그리고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피자 한판을 주문하고 맥주 한병을 다시 주문하고. 허겁지겁 먹다가 문득 생각나서 인증샷.

 

 

 

 

숙소로 가는 트램 안에서. 자그레브의 구시가 앞, 옐라치차 광장 앞에서 나를 내려줄 6번 트램 중에 섞여있는 오래된 트램 중에는

 

이렇게 객차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도 있는 거다. 왠지 앞엣 객차에선 뭔가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기라도 한 분위기.

 

 

며칠만에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되게 반갑다. 문을 닫고 정리하려는 꽃가게들의 풍경만 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그리고 아침, 왠지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다 했더니. 슬로베니아에서는 진눈깨비와 비를 잔뜩 맞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컨셉은 비와 눈을 온몸 가득 맞으며 돌아다니는 건가보다.

 

 

눈이 가진 질감과 부피감은 눈꺼풀 위에 날려들어 떨어질 줄 모를 때 가장 크게 실감난다. 빗물은 그저 흘러내릴 뿐 달라붙을 줄

 

모르지만 눈은 차디찬 바깥공기에 힘입어 뻗어나간 가느다란 팔다리로 시야를 가리고 마는 거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 가운데에서 치즈를 팔던 아가씨는 눈 때문인지 손님 발걸음이 뚝 끊긴 와중에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느라

 

손이 빨갛게 곱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사랑이어라.

 

 

 

그리고 눈이 점점 삼엄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한 자그레브인들의 걸음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천 마켓에서 블루베리도 사고.

 

 

옆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피자 한 조각을 사먹으며 가벼운 아침식사도 하고.

 

두어번 나도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까페. 몇몇 가이드북엔 맛집으로 소개되었던데,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맛있던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에도 어김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면면이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똑같길래 왠지 더욱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Shabby hostel, 아고다를 통해 찾아본 값싼 숙소 중에서 가장 가격도 싸고 위치도 최상이었던 곳이다. 10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가 한화로 2만원 선이었던가. 가격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 데다가, 직원들도 다들 친절해서 자그레브에 체류할 때마다

 

가능한 이 곳에 묵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나려는 참. 갑작스런 폭설 떄문에 교통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지

 

트램과 자동차 간의 접촉사고도 났다고 하고, 왠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난 트램이 삐걱거리며 철로를 따라 어딘가로 이송된 후에야 나타난 다른 트램들. 다행히도 사고는 그리 대단치는 않아

 

트램의 자동문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 다친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트램이 있어서 도심지의 교통 흐름

 

속도가 그나마 좀 여유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고가 나도 크지 않은 수준에서 멈추는지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계시던 두 어르신은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계셨다. 오랜 지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분은 때로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굉장히 훈훈한 풍경이어서 슬쩍.

 

그리고 버스정류장 도착. 애초 이 곳은 자그레브 국제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 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였달까. 이제 플리트비체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출발 직전.

 

 

* 교통 (Zagreb to Plitvice, 100쿠나(baggage fee 7쿠나 포함) 3시간 소요)

 

 10:30, 11:30, 12:30 하루 세 차례 운행이 전부  (2013. 3월 현재)

 

 

 

* 플리트비체행 버스가 언제든지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이드북 믿었다가 뒷통수 맞지 말고 미리미리 확인할 것!

 

 

 

 

시외버스 플랫폼의 황량하다면 황량한 풍경. 그래도 파랗고 붉은 색으로 도색이 말끔하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셈이었달까.

 

플리트비체 행 티켓, 정확하게 티켓 값으로는 93쿠나. 1쿠나가 대충 200원이라 치고 티켓이 2만원쯤 하는 셈이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로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건지 기사님도 내리고 손님들도 자연스레 내린 시간에 잠시 근처 구경.

 

여기는 자그레브보다 더욱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리는 참이었다.

 

 

 

 어느새 나무들은 모두 새하얗게 뒤덮여 버린지 오래. 이런 식이라면 대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플리트비체는 어떠려나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세시간여 달리고 나서 '무키네 Mukinje' 마을 입구에 내가 떨궈질 때는 버스 안에 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오는 길 내내

 

대관령 눈꽃열차를 달리는 기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떨궈지고 나니 좀처럼 모든 게 막막하니 새하얗게

 

덮어있는 풍경이어서, 당장이라도 길이 끊기고 고립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잔뜩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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