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희뿌연 하늘이 계속되더니 끝내 펑펑 눈이 내렸다.

 

진눈깨비처럼, 혹은 쌀가루처럼 휘몰아치는 눈이 내리고, 시커먼 기와지붕위에는 하얗게 줄이 그어졌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움직이던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 일행과 나. 전날 내린 폭설 덕에 한사람 걷기도 쉽지 않은 외길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서로의 위치를 빌려주기도 하고, 서로의 카메라가 향한 곳을 흘깃거리기도 하고.

 

 

 

그리고 잠시 한눈 판 사이, 나는 더이상의 접근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돌아섰던 그 곳을 훌쩍 넘어가버린 프로 아저씨. 엄청 불어난

 

물 때문에 통나무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거의 수면 아래로 잠기다시피 했던 길인데, 저 길 너머에 플리트비체의 대폭포인 벨리키폭포가

 

있는 거다. 아마도 이렇게 한 걸음 떼는지 마는지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일지도.

 

산책로 아래로는 바로 또 낭떠러지 폭포가 이어져 있어서 물소리도 귓전을 때리고,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물방울도 온몸을 때리고.

 

 

급물살은 찰박거리며 쉼없이 산책로를 들썩여대고, 폭포수의 맹렬한 소음과 진동은 몸 전체로 전해지는 상황. 이미 신발이고 옷은

 

흠뻑 젖어버렸고, 그저 카메라나 놓치지 않도록 꼭 쥐고 있는 것이 고작인 상황.

 

그래도 역시나, 이쪽에서 바라본 풍경들도 하나같이 숨을 멎게 만들 만한 그런, 절경이다.

 

 

멀찍이서 보이던 눈꽃들의 세세한 디테일과 원근감이 하나씩 드러나는 풍경 속에서, 좀더 두텁고 둔중한 소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벨리키 폭포. 플리트비체 하류의 대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폭포는 물의 낙폭이 78미터라나, 아래에서 올려다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폭포 아래로부터 어딘가로 다시 모여 흘러내리는 개울을 이루고는 오랜 세월 무성한 나무들을 키워냈다.

 

 

눈이 많고 추운 계절이라 그런지 아직 유량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소리나 위용은 굉장히 사납고도 맹렬하다.

 

 

옆엣 산책로를 조금 빗겨 올라가서 벨리키폭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껏 감상했다. 참, 이쁘고도 오묘한 경치다.

 

 

끊긴 다리를 향해 돌아가는 길, 벨리키 폭포는 플리트비체 공원 하류의 포인트이자 끄트머리이기도 해서, 이제 상류로 올라갈 시간.

 

 

상류쪽으로 멀찍이 보면, 조그마한 웅덩이 같은 에메랄드빛 호수들이 찔끔찔끔 이쪽으로 흘러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있다.

 

카르스트지형의 특색이랄 수 있는 그런 하류로 미끄러지는 호수들, 그에 더해 하류의 눈꽃에서 미끄러지는 무지개도.

 

 

왠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더 많은 산책로가 폭포수에 먹혀버린 듯 하다. 앞에서 한바탕 찍고 간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도 조금 끙끙대며 건너가는 거 같더니 이유를 알 만 하다.

 

 

뭐, 급할 거 없으니 안전하게. 그리고 가능한 풍성하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산책로가 폭포수에 먹힌 바로 그 시점을 코앞에 두고, 인증샷 한 장을 남겨 이날의 모험을 기억해두겠다며.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서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가 선방을 뜨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앞장설 일은 없었지 싶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굉장히 이름높은 곳이다.

 

게다가, 하루 전날 내내 폭설이 쏟아지고 난 다음날 쨍한 아침이 시작되는 댓바람, 그야말로 공원을 방문하기 최상의 타이밍!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1번 입구에서 티켓을 사고 공원 안으로 입성! 2번 입구는 폭설로 임시 폐쇄중이라고 하니 잘됐다.

 

 

플리트비체에 있다는 92여개의 폭포 중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백미라는 벨리키 폭포. 높이 78미터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게다가..물이 흘러내리는 곳따라 함께 흘러내리는 눈길에 밟히는 건..온통 눈꽃. 이런 눈꽃은 여태 듣도 보도 못했단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턴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사진 감상 위주로다가. 정리를 아무리 하고 지워보려 해도 아까운 사진들이 잔뜩이다.

 

 

 

 

 

 

1번 입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하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애초 석회암 지대인 이곳의 지반을 오랜 시간 강물이 깍아내리며

 

점점 계단식으로 층층이 호수를 넓혀온 거라고 한다. 그 외곽을 돌며 자잘한 호수가 이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묘미라는데.

 

 

이렇게 푸지게 눈이 온 다음날이라 가능한 풍경들, 눈꽃이 풍성하게 피어난 나뭇가지 위로 미끄러져내리는 무지개라거나.

 

투명하게 파란 하늘 아래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풍경, 그리고도 디테일한 원경과 근경, 그에 더한 보슬보슬 질감까지.

 

이런 식의 미묘한 푸른 빛의 호수가 조금씩 하류로 밀려들고 있는 풍경, 가히 절경이다.

 

 

국립공원이 개장하자마자-오전 10시 개장-제일 먼저 들어섰는데, 어느 순간 뒤에서 아저씨 둘이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프로 사진사 아저씨랑 공원 관리인 아저씨. 플리트비체의 공식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던가, 묵직한 장비를 이고지고 걷고 있었다.

 

 

 

아..넘넘 이쁘다 진짜. 정말이지 정신도 못 차리고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뿐.

 

 

 

 

그리고 이 미묘하고도 몽환적인 물의 색깔. 물속에 포함된 석회질과 각종 미네랄 때문이라나, 빛의 각도나 햇살의 세기에 따라서

 

그 색깔이 환상적으로 번져나가는 게 워낙 유명하다고 한다.

 

 

호수를 가로질러 반대편 기슭으로 가는 참, 다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던 나뭇가지나 부유물 위로 두텁게 쌓인 하얀 눈이불.

 

 

 

플리트비체의 호수들이 얼마나 큰 낙차를 갖고 있는지, 상류지역과 하류지역의 호수가 얼마나 낙폭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내판.

 

 

하류의 호숫가를 구경하고 벨리키 폭포를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코스는 이쪽인데,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나무계단 위로까지

 

호숫물이 범람해 버렸다. 눈이 두텁게 쌓인 산책로가 위태롭게 끊겨버린 지점, 이쪽으로는 포기해야 하나 잠시 갈등하던 참.

 

이 길을 따라가야 벨리키 폭포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일 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무지개 하나가 둥실 환상처럼 떠올랐다.

 

 

뒤로 돌아보아도 아까 그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 전날 내린 눈 때문인지 공원 내엔

 

사람 하나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다. 음..어디로 가야 하나 갈등이 조금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결에 다시 나타난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이 여기저기 휘적대며 사진을 찍더니 문득, 물이 잔뜩 차오른

 

나무다리를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물살이 세찬 나무다리 위로 발을 내딛고 말았다.

 

 

어둑해진 플리트비체의 저녁, 마트에서 사온 30도짜리 하트모양 라키야를 한 병 까고 치즈와 먹으며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치즈도 다 먹어치우고 라키야도 거의 다 마셔버린 즈음, 술도 깰 겸 밤풍경도 구경할 겸 민박집 밖으로 나왔다. 주홍 불빛이 반짝반짝.

 

 

불빛조차 전부 꺼져버린 민박집들 처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눈발은 바닥을 뒤덮다못해 벽면까지 새하얗게 칠해버렸다.

 

 

처음 플리트비체에 내렸을 때의 버스정류장까지 슬쩍 걸어가본 길, 낮에 미처 보지 못했던 십자가상이 그림자를 길게 뉘였다.

 

조금 더 걷다가, 아무래도 너무 캄캄하고 사람 하나 없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더해 축축해진 신발 덕에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술기운도 다 깨버린 참이라 그냥, 내일 아침이 맑게 개길 기대하며 숙소로 컴백.

 

 

그리고 눈뜬 다음날 아침, 정말 새파랗게 개인 하늘이 간밤에 푸지게 내린 눈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챙겨준 아침을 먹고, 간밤의 밤마실을 어디까지 갔었는지 이야기 좀 하다가, 오늘은 정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이쁠 거라며, 가까운 2번 입구는 여전히 막혀 있을 거고 1번 입구 쪽에서 짐 맡겨두고 돌아보길 권해주신다. 더구나 태워주시겠다고.

 

 

밥을 먹고 들뜬 마음으로 짐을 다시 챙겨 민박집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 참. 아저씨는 집 근처의 눈들을 쓸고 차를 준비중이다.

 

 

황금빛으로 마른 잎사귀에 새하얀 눈이 얹히니까 그게 또 그렇게 이뻐 보인다.

 

한쪽에 주차해놨던 차들은 온통 초밥처럼 두툼한 눈에 덮여버려서, 주인아저씨 차는 무사하려나 걱정도 살짝 헀지만,

 

아저씨의 차는 벤츠 SLK, 눈을 슥슥 쓸어내고는 4WD모드로 1번 입구까지 경쾌한 드라이빙. 눈이 얼어붙은 빙판길에서도 문제없더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무키네 마을의 유일한 레스토랑에서 피자 한판과 맥주 두병으로 맛난 점심을 해치운 후에 슬슬 숙소를

 

찾으러 눈보라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꽃이 만발한 작고 이쁜 민박집들이 열지어 서있어야 할 마을에는 온통 눈밭.

 

 그래도 용케 문 하나 열린 집을 발견하고, 사람이 지나지 않은지 엄청 오래 되었는지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지나 드디어 체크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입구는 두 개, 1번입구와 가까운 라스토바차 마을과 2번입구와 가까운 무키네 마을인 셈인데,

 

아마 공원이 폐쇄되었을 거라는 주인아저씨의 만류를 무릅쓰고 산책 겸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사람 하나 없는 길. 그래도 드문드문 제설차가 지났는지 큰 길에는 제법 눈이 치워진 흔적이 남았지만, 그 너머는 온통 눈이다.

 

 

 본격적으로 산길. 마을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호수들이 이어지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그렇지만 온통 눈. 어쩌다 만난 관광객 커플에게 앞의 상황을 물었더니 공원은 폐쇄되었고 사람 하나 없는데다가 길도 끊겼댄다.

 

그래도 일단, 풍경이 넘넘 이뻐서 무작정 앞으로 홀린 듯이 나가게 된다. 인적은 끊기고, 소복소복 쌓이는 눈에 소리는 모두 지워지고.

 

 

부지런히 길을 틔워놓는 제설차량의 바퀴자국. 그 위에 다시 소리없이 나려들며 흔적을 지우는 백배 더 부지런한 눈.

 

 

 

이윽고 도착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2번 입구. 폭설이 아니었어도 이미 입장시간은 아니었구나.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오픈.

 

내친 김에 다른 정보들도. 성인용 1일 티켓은 80쿠나, 아이는 40쿠나로 반값, 그리고 이틀짜리 티켓은 성인 130쿠나, 아이 60쿠나.

 

 

 

모른 척 하고 아무도 지키지 않는 입구를 넘어서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온통 하얀 세상, 나만 혼자 남겨진 듯한 착각.

 

누군가의 발걸음을 희미하게 지워둔 채 허벅지까지 들어가는 눈폭탄이 그곳에 있었다.

 

 

찔끔 겁이 나 버려서, 어디선가 들리는 졸졸졸 물소리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다 말고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선 발을 헛딛고 추락하거나 눈밭에서 뒹굴다가 죽어버려도 한동안은 아무도 찾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길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전경이 담긴 안내판 위로 수북하게 눈을 이고 지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축축 늘어져버렸다.

 

 

 

 

 

그리고 이젠 더이상 뭐라 할 말도 없는 하얀 세상.

 

 

 

 

 

저 아랫쪽으로 보이는 데가 아마도 초록빛 신비로운 색감의 플리트비체 호수들이 웅크리고 있는 국립공원 내부.

 

 

 

 

 안내판도 온통 눈으로 하얗게 지워져 버려서,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아까 밟아 내려왔던 길을 다시 그대로 찾아 올라가기도 힘든.

 

 

 그래도 불쑥 튀어나온 표지판에 의지해서 다시 찾아온 무키네 마을, 사실 2번 입구와 무키네 마을은 고작 2킬로 남짓

 

떨어져있을 뿐인데 이렇게 눈이 푸지게 내리고 길을 지워버려서야 도무지 거리감각이고 뭐고 없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그 슈퍼마켓. 와인을 한 병 사고, 700ml짜리 라키야를 한 병 사고,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추천을 받아

 

안주로 제격이라는 치즈랑 오렌지, 올리브 좀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 성찬을 벌이기로 했다.

 

이런 곳에 세워둔 차는 길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려나, 상태는 괜찮으려나 괜한 걱정.

 

 

 

 

 

플리트비체의 민박 마을에는 두 개, 라스토바차 마을과 무키네 마을이 있다. 그 중에서 2번 입구쪽으로 가까운 무키네Mukinje마을의

 

입구에서 덜렁 혼자 내렸다. 새까만 아스팔트 도로가 금세 하얗게 지워져버리는 폭설, 버스는 거북이 걸음으로 느릿느릿 떠났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다른 크로아티아 일정과는 달리 숙소를 전혀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와버린 플리트비체인데 암담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눈은 이렇게 펑펑 내리니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돌아볼 수나 있을지 아님 시외버스는 계속 다닐지.

 

 원래는 여기서 2박쯤 하고 스플릿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고 하룻밤만 지나면 길이 꽁꽁 얼어붙진 않을지.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눈밭을 헤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 좀체 인적도 없고 민박집들도 불이 꺼져있고.

 

 

마을 안쪽 깊숙이에 있는 정류장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 차도를 따라 걸어도 눈은 무릎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무키네 마을 유일의 레스토랑. 그리고 유일하게 문이 열린 채 사람들이 조금 모여있던 공간에 도착했다.

 

스키얄리슈테 피자 비스트로. 일단 맥주부터 한 잔 시키며 눈을 털었다.

 

 

 

테라스 너머 바깥으로는 아담한 스키 슬로프가 하나. 이 레스토랑은 사실 이 스키장에 딸려 있는 식당에 가깝다고 하는데,

 

자연설이 이만큼이나 넉넉하게 쌓인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놀면 진짜 재미있을 거 같다. 슬로프 위엔 사람 한 명 없고.

 

 

온통 하얗기만 해서 눈이 부실 정도인 바깥 풍경과는 달리 창가 안쪽에 있는 싱싱한 화분. 새빨강과 새초록의 싱그러움이라니.

 

 

 

마을 입구에 내려섰을 때의 막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창밖의 눈덮인 풍경들을 감상하느라 온통 마음이 기울어 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플리트비체에서의 이틀 동안 평생동안 볼 눈꽃과 셜경을 볼 수 있으리라곤 전혀 몰랐고, 이런 풍경이란 건

 

이제 플리트비체에서 본격적으로 마주할 풍경에 비기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걸 몰랐다.

 

그리고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피자 한판을 주문하고 맥주 한병을 다시 주문하고. 허겁지겁 먹다가 문득 생각나서 인증샷.

 

 

 

 

숙소로 가는 트램 안에서. 자그레브의 구시가 앞, 옐라치차 광장 앞에서 나를 내려줄 6번 트램 중에 섞여있는 오래된 트램 중에는

 

이렇게 객차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도 있는 거다. 왠지 앞엣 객차에선 뭔가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기라도 한 분위기.

 

 

며칠만에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되게 반갑다. 문을 닫고 정리하려는 꽃가게들의 풍경만 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그리고 아침, 왠지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다 했더니. 슬로베니아에서는 진눈깨비와 비를 잔뜩 맞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컨셉은 비와 눈을 온몸 가득 맞으며 돌아다니는 건가보다.

 

 

눈이 가진 질감과 부피감은 눈꺼풀 위에 날려들어 떨어질 줄 모를 때 가장 크게 실감난다. 빗물은 그저 흘러내릴 뿐 달라붙을 줄

 

모르지만 눈은 차디찬 바깥공기에 힘입어 뻗어나간 가느다란 팔다리로 시야를 가리고 마는 거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 가운데에서 치즈를 팔던 아가씨는 눈 때문인지 손님 발걸음이 뚝 끊긴 와중에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느라

 

손이 빨갛게 곱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사랑이어라.

 

 

 

그리고 눈이 점점 삼엄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한 자그레브인들의 걸음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천 마켓에서 블루베리도 사고.

 

 

옆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피자 한 조각을 사먹으며 가벼운 아침식사도 하고.

 

두어번 나도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까페. 몇몇 가이드북엔 맛집으로 소개되었던데,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맛있던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에도 어김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면면이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똑같길래 왠지 더욱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Shabby hostel, 아고다를 통해 찾아본 값싼 숙소 중에서 가장 가격도 싸고 위치도 최상이었던 곳이다. 10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가 한화로 2만원 선이었던가. 가격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 데다가, 직원들도 다들 친절해서 자그레브에 체류할 때마다

 

가능한 이 곳에 묵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나려는 참. 갑작스런 폭설 떄문에 교통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지

 

트램과 자동차 간의 접촉사고도 났다고 하고, 왠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난 트램이 삐걱거리며 철로를 따라 어딘가로 이송된 후에야 나타난 다른 트램들. 다행히도 사고는 그리 대단치는 않아

 

트램의 자동문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 다친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트램이 있어서 도심지의 교통 흐름

 

속도가 그나마 좀 여유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고가 나도 크지 않은 수준에서 멈추는지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계시던 두 어르신은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계셨다. 오랜 지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분은 때로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굉장히 훈훈한 풍경이어서 슬쩍.

 

그리고 버스정류장 도착. 애초 이 곳은 자그레브 국제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 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였달까. 이제 플리트비체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출발 직전.

 

 

* 교통 (Zagreb to Plitvice, 100쿠나(baggage fee 7쿠나 포함) 3시간 소요)

 

 10:30, 11:30, 12:30 하루 세 차례 운행이 전부  (2013. 3월 현재)

 

 

 

* 플리트비체행 버스가 언제든지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이드북 믿었다가 뒷통수 맞지 말고 미리미리 확인할 것!

 

 

 

 

시외버스 플랫폼의 황량하다면 황량한 풍경. 그래도 파랗고 붉은 색으로 도색이 말끔하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셈이었달까.

 

플리트비체 행 티켓, 정확하게 티켓 값으로는 93쿠나. 1쿠나가 대충 200원이라 치고 티켓이 2만원쯤 하는 셈이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로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건지 기사님도 내리고 손님들도 자연스레 내린 시간에 잠시 근처 구경.

 

여기는 자그레브보다 더욱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리는 참이었다.

 

 

 

 어느새 나무들은 모두 새하얗게 뒤덮여 버린지 오래. 이런 식이라면 대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플리트비체는 어떠려나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세시간여 달리고 나서 '무키네 Mukinje' 마을 입구에 내가 떨궈질 때는 버스 안에 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오는 길 내내

 

대관령 눈꽃열차를 달리는 기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떨궈지고 나니 좀처럼 모든 게 막막하니 새하얗게

 

덮어있는 풍경이어서, 당장이라도 길이 끊기고 고립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잔뜩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한시간 반,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날은 굉장히 흐리고 꿀꿀한 게 금세라도 비나 진눈깨비가 내릴 듯한 날씨였지만 호수의 수면은 거울처럼 매끈하다.

 

 

백조가 유유히 직선을 그어내는 호수 너머 조그마한 섬, 매직 아일랜드같은 느낌으로 버틴 섬을 꽉 채운 성모승천 교회.

 

 

그리고 100여미터의 절벽 위에 서 있는 블레드 성. 무려 천년 동안이나 저 위에서 호수를 굽어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모양의 (아마도?) 쓰레기통, 그 넓적한 입매가 장난스럽게 비틀어졌다.

 

 

백조님의 클로즈업 샷. 어찌나 깃털이 발수기능이 좋으신지 머리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호수는 엄청 커서, 둘레가 대략 6키로미터라고 했던가. 겨울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여름엔 무지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덩굴처럼 자라난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이 수면 위로 스물스물 그림자를 드린 가운데 새하얗게 우아한 백조가 그리는 궤적.

 

 

아직 날은 춥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지만 여지없이 봄이 내딛는 발자욱은 한걸음씩 진군 중이었다. 꽃망울을 여기저기 터뜨리며.

 

 

 

블레드 성에 오를 즈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그칠 기미없이 점점 세차진다 싶더니 급기야 호수 표면에 셀수없는 구멍을 내버렸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그어갈까 했지만 아직 다들 잎사귀조차 제대로 틔우지 못한 앙상하고 헐벗은 나무들.

 

 

중간중간 블레드 호수로 모이는 개울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드높아졌다.

 

 

 

블레드 섬과 호수 둘레길과의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던 즈음, 두마리 조그마한 오리들이 섬을 향하듯 호수면을 미끄러지고.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호숫가에는 차가운 빗물이지만 쉴새없이 내리며 조금씩 겨울의 흔적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블레드 호수의 둘레길, 블레드 성에서 산 와인 한병을 들고서 홀딱 비 맞고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병나발 부는 맛이란. 캬.

 

 

 

 

원래 블레드 섬까지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다고 해서 그것도 타보고 싶었지만, 워낙 비수기에 와버린 데다가 이렇게 비가 내리니

 

들어가는 건 포기해버렸다. 그 안에는 '소원의 종'이 있는데 그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내게 소녀시대가 있으니 괜찮아.

 

 

 

섬 주변에는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곳곳에 있고, 블레드 성같은 오랜 유적도 있는 데다가, 레스토랑이나 까페도

 

뭉탱이 뭉탱이 몰려 있다. 이 건물도 뭔가 까페인 거 같은데, 비수기라 역시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블레드 섬의 360도 뷰를 찍어볼 기세로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와인병을 기울이며 사방에서 찍어댄 결과물들.

 

 

 

그리고 호수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더이상 촬영은 무리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집어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담은 블레드 성의 옆모습. 얼짱각도에 수렴하는 45도 비껴난 샷이다.

 

다시 블레드에서 류블랴나로 가는 버스 안. 옷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홀딱 젖어서 무척이나 묵직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빗물이 진눈깨비나 눈발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날이 좀더 푸릇푸릇하고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비를 쫄딱

 

맞으며 와인 한병을 병나발 불며 호수 한바퀴를 도는 경험이란 것 역시 나무랄 데 없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의 사계절은 두바퀴 정도 돌려서 봤던 거 같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

 

올겨울 삼엄하게 내린 눈에 호수가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본관 중앙홀에 설치된 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으로 쌓은 탑이 360도의 뷰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 작품은 볼 때마다 내가 티비를 보는 건지 티비가 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주는 듯.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라도 할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 탑의 끝쪽에는 대들보를 상량하며 적어둔 축문이 한바퀴 둘려있다.

 

 

마치 구겐하임 미술관의 달팽이껍데기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계단이 휘감긴 벽면.

 

그리고, 온통 앙상한 잔가지만 가득한 나무와는 달리 겨울철 북풍한설에도 끄덕없는 둔탁하고 묵직한 인공조형물.

 

그 와중에 과천서울랜드 매표소가 이렇게 방긋 웃고 있었다. 어렸을 때도 저렇게 웃고 있었던가, 기억이 그닥.

 

 

 

 

눈이 펑펑 쏟아지다 못해 눈보라가 맹렬하던 서울의 하늘과는 달리, 나몰라라 새파랗기만 하던 가평의 하늘.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천조각 퍼즐로 짜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렵다. 반복적인 문양과 미묘한 색감의 변주.

 

 

강아지들이 눈보면 완전 신나서 펄쩍펄쩍 정신줄 놓고 나댄다더니, 정말 그 끝을 보여준 누렁이 한 마리.

 

문득 얌전한 틈을 타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뭘 알았는지 늠름하게 카메라를 응시해주신다.

 

 

마당에 놓인 테이블 위에 눈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 슬슬 녹고 있다.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적용해 촬영해 본 몇 장의 샘플들. 꽤나 재미있는 효과라서 자꾸 써보게 된다.

 

 

이런 느낌, 뭔가 거칠게 붓질을 한 느낌같기도 하고 굵은 윤곽선을 따라 형체만 잡고 나머지는 뭉개버린 느낌이 색다르다.

 

침실 옆에 깔린 핑크빛 커튼이라거나 비즈 장식, 그리고 굵은 매듭이 잡힌 매무새가 이쁘다.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과 외바퀴 수레. 엊저녁까지 눈을 치우는데 썼는지 눈이 가득 담긴 채 바닥엔 장갑이 한 짝 널부러졌다.

 

 

계속되는 일러스트 샷들. 펜션 옆 진입로를 비추는 등 주변에 소복하니 내려앉은 하얀 눈과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

 

 

눈이 녹고 다시 얼어붙은 바닥에 갇혀버린 단풍잎 한 장.

 

 

그리고, 펜션 앞으로 흐르던 비실거리던 개울 위론 꽁꽁 두껍게 얼음장이 얹혔다. 제법 겨울 풍취가 동한달까.

 

 

 

'컬러 IQ 테스트'라는데, 각 색상을 얼마나 고르게 배열하는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맨 끝의 두가지 색상은 고정이고, 그 사이에 타일들을 좌우로 움직이며 차츰차츰 색감이 변해가도록 조정하는게 포인트.


http://xritephoto.com/ph_toolframe.aspx?action=coloriq

 

 

 

따로 제한시간은 없는 거 같고, 다만 관건은 모니터의 성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참 보고 있으면 어지러워진다.

 

그래도 결과를 보니 16점, 점수가 낮을수록 좋은 거라고 하는데 청색 계열에서 조금 삐끗했나보다.

 

연령대와 성별을 입력하고 나니 이런 결과값이 나온다. 0점, 무려 퍼펙트한 점수를 받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1520점이라는 점수대를 얻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16점이면 그래도 선방한 축에 끼지 않으려나.

 

 

속초에서 만난 이번 겨울 마지막 눈. 청초호 너머 보이는 눈덮인 설악산 자락이 웅장하다. 희끗희끗한 색감하며.

어딘가로부터 달려와 네바퀴 자국을 뚜렷이 남긴 채 어딘가에 멈춰 선 승용차 한 대, 그리고 들고 나는 바퀴가

어찌나 많았는지 마구 붓질된 듯한 주차장 입구.

차바퀴들이 굴러간 까만 궤적은 그대로 행인의 길이 되었다. 더이상 아이가 아닌 사람들은 눈을 피해 걷는다.

띄엄띄엄 놓인 건물들 사이엔 그대로 맨 땅거죽이 드러나있다. 까만 까마귀들을 품었다가 훠이 날려보내는 하얀 눈밭.

하얀 눈을 뒤집어쓴 주택 몇채가 추위를 견디려는 듯 다닥다닥 붙어서 온기를 나누고 있기도 하고.


빨갛고 파란 지붕 위를 남김없이 덮었을 하얀 눈이 조금씩 미끄러져 내리는 3월 초의 속초. 곧, 봄이다.




대설경보니 주의보니 오후부터 푸지게 눈이 올거라더니, 눈도 눈이지만 날씨도 참 추웠던 1월의 마지막 날.

잡았던 약속들도 취소하고 모두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바삐 돌아가던 것과는 반대로, 역귀성하듯 텅빈 도심의

한적한 섬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새 눈은 그치고 눈물은 흘러내려 고드름이 되어버렸다.



















질퍽하게 더러워지고 만 도로와는 달리 사람들이 감히 밟고 다닐 엄두도 못 내게 만들던

삼엄한 눈발 속 쓰레기통의 위엄. 자동차도로보다 순결해보이는 쓰레기통이다.

게다가 하얗게 눈모자를 쓰고는, 평소라면 캔 나부랭이나 담겼을 그물망에는 소보록하니

눈송이가 잔뜩 담겼다. 예수가 '사람 낚는 어부' 운운했던 걸 빌자면, 이 쓰레기통이 쥐고 있는

그물망은 '쓰레기 낚는 그물망'이 아니라 '눈송이 낚는 그물망'으로 변신한 셈이다.

그리고 조금은 지치고 시든 듯한 초록빛 상록수잎 위로 그득하게 엉겨붙은 눈뭉치들.

이미 나려들던 때의 여리여리함과 따꼼한 찰나의 온기 따위는 지워버린 채 덜 떨어진

냉동고 속이나 찜질방 얼음방 속에 서걱거리는 얼음샤벳으로 변신해 버렸다.

눈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내일 출근할 때에는 삽 한자루를 쥐고 버스 정류장까지 굴을 만들어서

뚫고 가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밤에 돌아오려니 제법 삼삼한 날씨인 것이 더이상 눈오기는

글러먹었다. 게다가 차도도 대충 무지막지한 염화칼슘의 위력으로 정리된 듯 하니...별로

딱히 일상에 영향을 미칠 거 같지는 않아서 아쉽달까. 하루쯤 일 안하고 모두들 그냥 집안에

갇힌 채 지내는 것도 좋을 텐데. (일체의 열외없이 전부.)

이런 날은 어디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눈밭에서 마구 뒹굴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했다.






뭐 하나 딱 떨어지거나 명료하지 않은 채 뿌연 눈세계 속의 풍경처럼 불분명하고 모호한

그녀들의 사랑 이야기가 다시 와닿는 날이다. 같은 사람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 기억들을 잘 합쳐보면 그 사람에 대한 보다 '완전한' 기억과

이미지를 추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성공했을까. 그리고, 뒤늦게 받아든

누군가의 '러브레터'로 톡톡 두들겨진 오래전 첫사랑의 기억은 또다른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혹은 상처로 남을까.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오겡끼데스.


결국 지나간 두 개의 사랑에 안부를 묻는 영화,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지나버려

2년이 지나도록 지우지 못한 사랑과 그게 사랑이었는지도 모른채 지나버린 사랑에 대해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묻고 '난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

그건 상대가 감기에 걸리진 않았는지, 봄꽃은 보았는지, 눈이 내리는 날 뭘하며 지내는지

묻는 그런 소소한 말건넴 밑바닥에 깔린 채 쉼없이 속삭이는 본심일 거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지나간 일들은 모두 아름답게 분칠되고 지난 사랑 역시 늘

아름답게만 기억되기 마련이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지나버린 사랑,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사랑,

아름답지만 더이상은 가망없는 사랑-혹은 더이상 가능성이 남지 않아 더욱 아름답기만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에 대해 '오겡끼데스까'를 물어야 할 게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랑,

전쟁중인 사랑에 '오겡끼데스까'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나간 사랑에 안부를 묻기란, 진행 중인 사랑에 안부를 묻기보다 쉬운지 모른다.

중부지방에 폭설특보가 내린 날, 모처럼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다시 보고.





전주한옥마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 중의 하나는 '경기전'. 마치 덕수궁 돌담길이

하염없이 이어진 듯 보이는 이 길을 걸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사람들이 얼마 보이지 않았고

저만치 앞에서는 혼자 온 듯한 외국인 관광객이 새하얀 얼굴이 빨개진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왠지 이런 날 이렇게 마주치면 웃음부터 주고받게 되는 거다.

길바닥이 온통 반짝반짝하게 얼어붙었다. 경기전 내부로 들어와서도 바로 옆 전동성당의

멋진 풍모는 가려지질 않는 게 묘한 느낌이다. 조선시대 한옥 마을과 고풍스런 성당이

한 장면에 담기다니, 어디선가 유생들이 '야소'귀신 물러가라며 뛰쳐나올 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이쁜 그림이 된 거 같다. 시간이 쌓여 공자귀신과 야소귀신도 화해를 한 건가.

그리 높지 않은 한옥이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처마의 윤곽선을 눈으로 더듬다보니 뭐랄까,

리듬을 타는 기분마저 느껴졌다. 야트막한 담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은 이 곳 경기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식을 만들고, 떡을 찌고, 제기를 보관하는 등 온통 제사를 위해

마련된 건물들이니 그런 기분은 조금 안 어울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이라고 한다. 대략 500년 전에

그려진 이성계의 초상화를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왕노릇을 하면서 바라보고 기리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할아버지의 얼굴을 익혔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름 절실하기도 했겠지 싶다. 사진도

없고, 딱히 그 이미지를 남겨둘 방법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을 텐데 그걸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그렇게 1410년, 태종때 처음 지어져서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이래 이 곳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지기만 한 거 같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네 곳의 사고 중 하나인 '전주사고'도 여기에

있으니 꽤나 중요한 공간인 거다. 게다가 전주이씨와 경주김씨의 시조묘까지 있다고.

기와지붕위로 나뭇가지들이 살얼음처럼 번져나간 풍경. 잎새 한두장이 남아서 더욱 추워보인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봉안된 건물, 내부를 찍거나 영정 자체를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니

슬몃 카메라를 돌려 모퉁이 사진이나 찍을 수 밖에. 깨끗하게 칠해진 단청이 선명하다.

영정이 모셔진 경기전 내부 깊숙한 건물로 들어서는 가운뎃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다.

이름도 '신도', 아마도 이성계를 위시한 조선왕조의 이씨 혈족들, 그들의 영혼만이 다닐 수

있는 영혼길인 셈. 아쉬웠던 건 가운뎃길도 그렇지만 주변 길도 좀 정비 좀 잘 해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도록 삐뚤빼뚤 들쭉날쭉하던 바닥돌들의 배열이었다.

아마도 '전주사고' 건물을 복원이나 수리 중인 듯한 곳, 홍살문의 살들이 무언가에 잔뜩

치이기라도 한 듯 삐뚤빼뚤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부디 '잘 보존된 우리문화'로

이 곳이 좀더 정비되면 좋을 거 같다.

햇볕은 좋았지만, 꽁꽁 언 바닥에서 튕겨나오는 햇살들이 눈을 찔러대던 겨울날의 아침나절.

톡톡 튀어나온 문짝의 장식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눈에 바깥세상은 온통 하얗기만 했다.

이런 걸 솟을대문이라고 하던가.  차곡차곡 늘어지던 담벼락이 어느 한 곳에서 불쑥 튀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슈퍼마리오가 머리로 벽돌을 찧을 때 저런 느낌이었는데. ㅋ

한옥마을같은데 가면 꼭 궁금하게 만들던 이것의 정체, 이건 바로...굴뚝이었다. 기와집

앞마당에 불뚝불뚝 솟아있는 조그마한 탑같이 생긴 이곳에서 김이 펄펄 올랐던 걸까.

밑에서 올려볼 때는 꽤나 커보였지만 실제로는 저런 조그마한 쓰레기통 크기, 소복하니 눈을

덮은 채 정갈한 담벼락에 기대 선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해 보인다.


경기전은 어진박물관을 깊숙이에 품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비롯해 다른 조선왕들의

어진을 모아둔 박물관. 어진들은 모두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만 담았고, 한양에서

이곳으로 이성계의 어진이 옮겨지던 당시의 행렬을 재현한 모습은 파노라마로. 세 면에 걸쳐

구비구비 늘어선 아이들을 한 화면에 평면으로 구겨넣다니 역시 신기하다.

어진박물관을 나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다가 신기한

곳을 발견했다. 우물인데, 온통 담벼락으로 둘려진 채 작지만 잘 갖춰진 솟을대문까지 있다.

여기에서 퍼올린 물로 제사밥도 짓고 떡도 찌고, 여하간 음식을 준비하는데 전적으로

쓰였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경기전 내부에서 보이는 전동성당의 뾰족하고 둥근 외양. 기와지붕 틈틈이 소복하니 나려든

하얀 눈뭉치들도 소담스럽고, 희끗희끗 눈이 얼어붙은 바닥도 (미끄러워 위험하지만) 정겹다.

아까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기전 바깥 돌담길을 걸었던 외국인 여행객이 슬쩍

사진에 잡혔다. 웃음만 주고 받던 우리는 슬쩍 방향을 틀어 각자의 길을 걸었는데 어느새

내 카메라에 잡혔던 걸까. 이제서야 발견하고 새삼 반갑다는.

아무래도 이 곳에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모셔진 건 국가적인 차원의 의미라기보다는 혈족

혹은 씨족 차원의 의미가 더 부여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경기전 출입문 단청에 온통 적혀있는

복(福)자와 희(喜)자를 보면 그렇다. 나라를 연 건국시조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조상에 대한

예우, 그리고 그 후손에 대한 복과 기쁨을 비는 커다란 사당 같은 느낌이랄까.

돌아나오는 길, 사실은 좀더 있고 싶었는데 손도 곱고 다리도 시렵고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서 도망치듯 돌아나와야 했다. 온통 하얗고 차갑게 얼어붙은 공간에서도 홀로 파랗게

섰는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 이래서 옛 선비들이 그렇게도 소나무를 좋아했구나 싶다.

그랬는데 어라, 돌아나오는 길에 나무 한그루, 등저리에 온통 이끼를 안고 서 있었다.

겨울이라 파란 게 소나무만이 아니라 저런 선태식물, 이끼도 있는데 옛 선비들은 역시

가오를 따졌던 것인가 싶어졌다. 아무래도 이끼보다는 소나무의 덕을 칭송하는 게

보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좋으니, 인지상정이겠다.

다음에는 좀더 화사한 계절에 다시 한번 오고 싶어졌다. 어딘가를 가서 제대로 그 모습을

보려면 최소한 일년에 네 번, 사계절의 모습은 모두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요새들어 정말

그 말이 맞다 싶을 때가 있다. 봄의 경기전, 여름의 경기전, 가을의 경기전이 궁금해졌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로 비빔밥을 먹으러 가다가 문득 독특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돌담 너머 언뜻

비치는 기와지붕들이 느적느적대던 스카이라인 가운데 불쑥, 로켓처럼 하늘을 향해 온몸 뻗쳐있는

건물 하나. 그렇게 크지도 않은 건물이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끌리듯이 다가섰다. 이 아름다운 건물이 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이 슬픈 결혼식을

올렸던 그 곳이란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전동성당'이란 이름의 유명한 건물이란 것도.

두 팔을 한껏 벌린 예수가 성당을 꼭 껴안을 듯 하다.

뭐랄까, 전문용어로는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했다는 이 성당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를 기리고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정문을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틀 덕분에 뭔가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길고도 멀어보이는 느낌이 든다. 마침 미사 중인지 성가를 부르는 소리가

문밖으로 메아리처럼 흘러나왔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잠시 들어가 몸을 녹였다가 숨을 참으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번 주말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서울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이곳도 서울처럼 춥기는 매한가지. 그치만

차 안에 앉아 볕을 쬐노라면, 혹은 실내 찻집에 앉아 밝은 양달을 내려보노라면 꽤나 따뜻해

보일만큼 햇살은 좋았다. 사진 속에서도, 그림자가 지고 잔설이 남은 곳 말고 햇살을 바로

쬐고 있는 곳들은 은근히 포근해보이기까지 하는 듯.

한바퀴 빙 둘러보는데 이거 은근 흥미로운 구조다. 정면에서 보면 평평한 구조물이 뾰족뾰족

탑을 이뤘고, 길쭉하게 뒤로 뻗은 몸통은 일정한 패턴으로 연장되며, 마지막으로는 둥글게

십자가를 모신 공간 배치까지.

그리고 어디에서 보던, 꽤나 멀리에서까지 분명히 식별할 수 있을 저 십자가와 세 개의 둥근 돔.

붉은 벽돌로 처음 지었을 때에는 반짝반짝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이 좀더 들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적당히 녹슬고 빛바랜 지금의 모습은 많이 부드럽고 현명해 보인달까. 굳이 비기자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뭔가 생기충만하고 의욕이 넘치는 모습, 저 안에서 기도를 하면 바로

푸슝! 하고 하늘로 힘차게 쏘아올려질 것 같은 그런 에너지가 있었을 거 같다면, 지금은 뭐랄까

저런 곳 안에서는 기도도 왠지 조심스럽고 온화하게 드릴 거 같다.

사제관인 듯한 옆 건물도 불그스름한 파스텔톤이 되어버린 벽돌들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식빵 모양처럼 뚫려있는 곳으로 바람이 거침없이 숭숭 들고 나면 실제로는 굉장히 추울 듯.

전주 한옥마을 옆에 바로 붙어있던 전동성당.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에게도 눈에 번쩍 띌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었지만, 그 성당 안의 (촬영) 금지된 모습과 분위기는 더더욱.





물결모양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건물의 외관, 한국 전통의 역동적인 춤사위와 상모돌리기에서 영감을 얻어

구현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밤에는 LED조명이 물결을 따라 건물을 휘감았다.


엑스포 최초로 기업연합관 형태로 세워진 '한국기업연합관'. 총 12개의 국내 대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처음 연합관이 구상될 때는 끼지 않겠다던 기업들이 개막 이후에는 후회하며 담당자들을 질책했다는 후문.

상해에 눈을 선물한다는 구상, 제대로 맞아떨어진 듯 한 그 아이디어를 최대한 이쁘게 비쥬얼화하면 저런

그림이 나오는 거다. (사실 저렇게 이쁜 눈송이가 내리지는 않는다.)

참고. 상해엑스포, 상해 어린이들에게 눈(雪)을 선물하다.

1층에 있는 전시물, 저 프레임을 통해 보면 수만개의 거울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조금씩 움직이며 눈이

흩날리는 듯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시선이 이동하면 이미지도 조금씩 변화하는 원리인 거 같은데, 저 거울

조각들은 캔이나 폐지 등의 색채를 빌려온 재활용품이라고 한다.

기업연합관 건물을 휘감은 합성수지 막재는 엑스포 기간이 끝난 후 이런 모양의 쇼핑백 등으로 재활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런 엑스포가 아무리 '친환경/녹색'을 표방해봐야 행사 기간에만 쓰이는

건물과 부속 시설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폐자재와 쓰레기가 나오는지. 좋은 아이디어다.
 
잘 보이진 않지만, 저렇게 발바닥이 붙은 위치쯤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액자가 보인다. 5만여개의

거울조각으로 구성된 액자가 서서히 움직이며 기업연합관에 참가한 기업 12개의 로고와 이미지들을

노출하는 거다.

잘 안 보이니 3층으로 직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다시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런 식의 그림, 계속해서 뭉실뭉실대며 그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거나 저 그림이

좀더 '녹색'과 친하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다면 의미가 더욱 실리지 않을까 싶다.

3층 Preshow 공간. 12개 참가기업의 로고가 소개되며 처음 관람객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기업연합관은 총 3층짜리 건물, 동선은 1층에서 3층, 2층 이렇게 짜여져 있다.

그래서 3층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본전시, 직전에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샤이니 등 한국 연예인들이 상해엑스포

기업연합관 개관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마침 홀쭉해진 길이 방정맞게 인사중.

입구는 다소 어두컴컴한 느낌, 아무래도 안에 있는 장치들이 대개 LED 조명인데다 보여주려는 것도 LCD패널에

나타나는 동영상과 기술들인지라.

12개 기업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지나치면 각 기업들의 로고를 터치하고 자세한 설명을 팝업해서 읽어볼 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치게 된다.

"녹색성시 녹의생활". 녹색도시 녹색생활 쯤 되려나.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터치스크린들이 있어서

관람객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훑어보고, 그렇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벽면에 있는 것들도 전부

직접 사진도 찍고 조종해 볼 수 있는 것들, 최대한의 양방향성을 추구했다더니 정말 그렇다.

SF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요새야 광고에서도 많이 보이는 장면이지만 손으로 이리저리 작은 창들을 꺼내고

키우고 움직이는 게 이만큼이나 가깝게 구현됐다. 꽤나 재미있다는.

셀카를 찍으면 그 사진이 둥둥 떠다니다가 오른쪽 끝의 줄기에 가서 달라붙는다. 아무래도 셀카는 한국적인

뭔가라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처럼 셀카찍기를 즐기고 이렇게 전시관에 기본적으로 깔아두는 곳도

없지 싶은데.

그렇게 12개 기업의 대표 제품 및 서비스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벽들을 지나면 이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슬로프를 마주치게 된다.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타워랜다. 세계최대, 세계최고, 이런 식의 수식어를 붙이는 게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LCD 모니터 192개로 만들어낸 타워라니 크긴 크더라. 아, 192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번 상해 엑스포에

참가한 국가수가 192개라는데, 이는 유엔에 등록된 국가수와 같다고 하니 말그대로 전세계가 모두 참여한 셈.

상영시간 6분여의 영상이 펼쳐지는데 꽤나 화려했다. 전면에 커다랗게 기업 로고를 때려박는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조금은 세련된 방식으로 흘려흘려 보여주는 게 특히 맘에 들었다. 멋진 광고 한편을 본 느낌.

이번 전시 컨셉은 역시나 '녹색시티'. 2층에서 이어지는 5개의 테마관에서 미래도시의 이미지, 재생 에너지 등의

내용을 담아 관객과의 체험을 기다리고 있다.

각 테마관 모두 서포터즈 언냐들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를 알려주고, 직접 시연해 보여주기도 하고.

전시장의 마지막쯤..전시관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안에는 꽉 차있다는 느낌이다. 한국관이나 북한관, 심지어

중국관이랑 비교해도 왠만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재미있을법한 꺼리들은 다 갖추고 있는 듯.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는 2012 여수엑스포를 홍보하는 영상이 뜨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그 앞에 꾸며져있던 대여섯송이의 꽃, 그리고 그 그림자 이미지.

상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엑스포 참가사상 연합관 참가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상해엑스포에

최초로 연합관이 들어선 셈인데, 외국기업연합관은 이곳과 일본산업관 단 두 곳 뿐.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고

그만큼의 성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 오년 후, 밀라노엑스포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연합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4월말만 되어도 반팔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상하이, 눈이 내리는 일이 좀체 없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저렇게 펄펄 눈이 내리는 장면을 연출해낸 아이디어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만하지 않을까.

좋아라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어찌나 흐뭇해지던지.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손발을

나풀거리며 그야말로 온몸으로 눈내리는 순간을 만끽하는 녀석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레 모두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오고 말았었다. 2010 상해엑스포가 시작된 상하이,

한국기업연합관에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중국의 아이들(과 강아지들)에게 눈을 선물하고 있었다.


분분한 낙화. 사실은 인체에 무해한 계면활성제로 만들었다나 뭐라나. 어제 기업관 개관식날 보고를 듣던

MB 내외의 시선도 붙박아두었던 풍경이니만치 상해와 중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그럴듯한 기억으로 남기를.






*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를 동료로부터 받아 나름의 미세조정을 거친 '10계명'입니다. 눈길에서는 아무리 브레이크 밟아봐야 제동력이 떨어질 뿐더러 자칫 차가 돌아버리거나 적어도 '저항 제로'의 빙판길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앞차와 들이받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경험한 1人으로, 안전운전하시기 바랍니다^^

눈길 안전운전 '10계명'


◆ '급'자가 붙는 조작은 무조건 피해라

빙판길에서 갑작스러운 동작은 곧바로 오버 컨트롤, 즉 차가 운전자의 통제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가속페달을 밟거나 떼는 동작 모두 슬로 모션으로 움직여야 한다. 차 지붕 위에 사람 한 명쯤 얹어놓고 달린다고 생각하자. 자연스레 갑작스런 동작은 피하게 된다.

◆ 코너에서 브레이크는 금물

전방에 코너가 들이닥치면 완만하거나 급하거나를 떠나 무조건 감속이다. 이때 코너를 도는 중간에 브레이크를 밟아 감속해선 안 된다. 반드시 직선에서 속도를 충분히 줄인 다음 코너에 진입한다. 코너를 돌 때 가속 페달을 밟는 것도 위험천만한 행동. 코너를 완벽하게 탈출한 다음 직선에 들어서 조금씩 가속하는게 정석이다.

◆ 엔진 브레이크를 사랑하자

발로 밟는 풋 브레이크보다 빙판에서 효과적인 감속은 엔진 브레이크다. 자동기어 역시 셀렉터 레버를 저단으로 바꾸면 엔진 브레이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단, 기어를 단계별로 낮춰야 한다. 갑작스럽게 감속하면 무게중심이 갑자기 앞으로 쏠려 차가 스핀할 수 있다.

◆ 차선 바꾸기는 계단식으로

웬만해선 차선을 고수하고 주변의 흐름을 따라 서행해야 한다. 부득이 차선을 바꿔야 한다면 미리 방향지시등을 켜 뒷차에게 충분히 의사를 전달한다. 차선을 바꿀 때는 점진적으로 조금씩 옆 차선으로 스며들 듯 옮겨간다. 특히 눈길에선 차선과 차선 사이에 눈이 쌓여 작은 둔덕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이 눈 둔덕을 넘어설 때는 가속페달을 밟지 않는게 좋다. 자칫 소복이 쌓인 눈 위에서 차가 접지력을 잃고 스핀할 수 있다.

◆ 와이퍼를 녹여주자

눈이 올때 와이퍼는 요긴한 장비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지만 앞차에서도 눈보라도 퍼져나온다. 이때 와이퍼에 얼음이 붙어있으면 앞 유리를 닦아도 효과가 없다. 이럴 경우 바깥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도록 외기순환으로 돌린 다음 히터를 앞 유리 쪽으로 향하게 한다. 히터의 따뜻한 바람이 앞유리를 달궈 와이퍼에 달라붙은 얼음을 어느 정도 녹여준다. 내일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들었다면 전날 와이퍼를 세워 놓는 것도 좋다. 다음날 아침에 와이퍼의 결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스티어링 휠은 야금야금 천천히 돌린다

제 아무리 초광폭 타이어를 달았다한들 타이어와 노면이 맞닿는 면적은 고작 엽서 한 장 정도다. 이 접지력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이 빙판길 안전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조향바퀴, 즉 앞바퀴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달릴 때 접지력이 가장 크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기 시작하면 이 접지력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직진만 할 수도 없다. 가장 안전한 회전은 조금씩 야금야금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것이다. 왼쪽 코너를 돌때는 왼쪽으로 서서히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면서 코너를 돌면 된다.

◆ 앞으로 못 올라가면 후진으로 올라가라

앞바퀴굴림 차에만 해당된다. 예를 들어 응달진 곳을 전진으로 올라가다보면 구동바퀴가 헛돌면서 못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차가 미세하게나마 뒤로 기울게되면서 앞바퀴를 눌러주는 접지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때는 응급대처방법으로 차를 돌려 후진으로 올라가면 된다. 엔진이 앞바퀴를 지긋이 눌러주면서 바퀴가 헛돌지 않게된다. 후진기어의 기어비가 1단 기어보다 크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물론 가급적 후진은 자제하는 게 현명하다.

◆ 무게중심을 이동하라

자동차의 무게중심은 빙판길 접지력을 좌우하는 큰 요인이다. 뒷바퀴굴림 원박스카가 빙판에서 헛돌고 있다면 승객은 모조리 뒤쪽으로 몰려 앉아야 한다. 그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앞바퀴굴림 원박스카(국내에선 쌍용 이스타나가 유일하다)의 경우 앞쪽에 몰려 앉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가속페달도 지그시 밟아야 접지력을 살릴 수 있다.

◆ 월동장비는 최소한의 보험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자동차 관리측면에서 갖춰야할 것들이 많다. 여름 폭염, 겨울 추위 등이 반복되는 상황에 운전자는 반드시 계절에 맞게 자동차 용품을 준비하고 갖춰야 한다. 스노타이어와 스노 체인, 사계절 워셔액 등은 겨울을 나기 위한 최소한의 보험이다.

◆ 최악의 경우 타이어 공기압을 빼라

자동차의 접지력은 접지면적에 비례한다. 접지면적이 늘어날수록 접지력도 커지기 마련이다. 만일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 빠졌다면, 게다가 보험사의 긴급출동마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구동바퀴의 공기압을 조금 빼면 탈출할 수 있다. 공기압이 빠지면서 타이어의 접지면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의외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빠른 시간 안에 정비업소에 들러 공기압을 다시 채우는 것이 좋다.




안경을 언제부터 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 안경낀 내게 늘 안경이 잘

어울린다며 박사님박사님 하고 불렀던 기억이 안경에 얽힌 첫 기억이다. 아마도 1학년 여름쯤부터

안경을 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안경과 함께 20년도 훌쩍 넘게 살아온 셈이다. 7살에 초등학교를 들어갔으니 에효,

정말 굉장히 오래 끼고 살았다. 이쯤 되면 불편한 줄도 모르고 거의 몸의 일부라고 하는 게 맞을 텐데,

물론 맞지만, 불편함은 여전하다.


이를테면 요새같이 추운 날씨에 갑자기 후끈한 실내로 들어서서 안경에 성에가 확 끼게 된다거나, 미용실에

가서 대체 아주머니가 어케 머리를 깍고 있는 건지 뵈는 건 없고 손길은 따사로와 곤히 잠들어버리고는 머리가
 
엉망이 된다거나, 안경의 도수가 높다 보니 렌즈따라 얼굴 윤곽이 일그러져 보인다거나 눈이 더욱 작아

보인다거나, 한번 삐뚤어진 안경테를 아무리 바로잡으려 해도 뭔가 이전보다 2% 부족한 느낌에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거나, 고글이나 물안경을 안경 위에 낄 수는 없는데다가 요즘처럼 고글형의 선그라스가

유행하는 때 도수가 안 들어가는 그런 것들은 낄 수 없다는, 그런 따위들.


왠지 불쑥 오늘은 기필코 내가 찢어지던 렌즈가 찢어지던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동했다. 무슨 행사 때 무료로

얻어두었던 소프트렌즈가 한벌 있었고, 몇 번 깨작깨작 시도하다가 속눈썹과 눈꺼풀의 굳건한 방어막 앞에서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던 터였다. 그다지 풍성하지도, 길지도 않은 속눈썹이 무슨 거미손도 아니고, 렌즈가

들어갈라 치면 완전 금성철벽이었다. (뭐 이나이 먹도록 여전히 겁많고 두려움 많아 그런지도 모른다, 인정..

그치만 혹시 렌즈끼다가 눈알을 손톱으로 긁으면 어떡하냐고, 아님 렌즈가 눈알뒤로 돌아가버린다거나. 혹은

아예 렌즈가 눈알 속으로 녹아들어가 버리면, 빼낸다고 호스 넣고 기구넣고 하다가 눈알마저 터져버리면.;; )


근 한 시간. 눈이 씨뻘개지고, 위아래로 잔뜩 벌린 눈가 위아래 두덩에서도 열감이 느껴질 즈음. 파닥파닥대며

발버둥치는 속눈썹과 눈꺼풀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는가 싶자, 한순간 손끝의 렌즈가 쑥 눈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멍하니 손 끝만 바라보며 이게 지금 렌즈가 바닥에 떨어져버린 걸까 눈속에 들어간 걸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왼쪽과 오른쪽의 세상이 각기 다르단 걸 퍼뜩 깨닫고 말았다. 오...세상이 이렇게 밝고 맑았구나.


아마 내 시니컬함을 키운 건 팔할이 안경껴야 뭐가 보이는 저질 시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쪽 눈을 마저

업그레이드시키고 세상을 보니, 비록 딱 도수가 맞는 렌즈는 아니었으되 뭔가 뻥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안경 따위를 코끝에 걸치지 않고도 세상이 보이다니. 정말 편하다. 눈알 따위 터지지도 않을 거 같고, 렌즈는

든든하게 눈동자 위에 버티고 있을 거란 안심도 된다. 그러고 보니 렌즈는 그간 안경이 가려왔던 내 갈색

눈동자의 마력을 마구마구 발산시켜주지 않을까...이러고 있다.


이제 안경과의 타협이 조금 필요하지 싶다. 아예 안 끼자니 너무 얼굴 앞면이 심심할 거 같고, 뭔가 가려줄 게

필요하기도 하고, 렌즈가 없거나 보안경 수준의 도수만 가진 안경을 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좀더 익숙해지면

아예 벗어버릴까도 생각중이다. 어쨌거나 야호, 안경독립 만세. 역사적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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