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카가 곰실곰실 기어다니는 파리 시내, 엷은 잿빛의 대리석만큼 하늘이 우중충하던 날 거리를 거닐었다.

스마트카가 참 귀엽다며 서울에서도 저런 차들이 많아졌음 좋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거의 달구지 수준으로

낡은, 그렇지만 또 어찌 보면 굉장히 유니크하고 귀여운 녀석이 하나 지나갔다. 네모 반듯하게 각진 '월-E'의

캐릭을 처음 봤을 때 그 가공할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는 저런 투박한 생김에서도

뭔가 귀여움을 찾아낼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화려한 장식이 주렁주렁 꾸며져 있는 다리,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위에, 구릿빛 주물들을 포인트마다 조금씩

얹어 놓고, 반짝반짝하는 금칠로 마무리. 밤에는 그 위에 주홍빛 불빛이 한겹 내려앉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느강변, 어느 아가씨가 둔덕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사과를 깨물어 먹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쳐다봤댔다. 그녀가 가버리고 남은 자리.

한강 고수부지와는 다른 느낌, 뭔가 좀더 풍경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바닥에 깔린 포석부터. 한강은

그냥 시멘트로 맨들맨들, 아무런 질감이나 요철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죽이 대부분인 거다.

가방을 앞에 앉힌 채 근처 까페에 들어갔었다. 까페 이름은 퐁뇌프. 바로 그런 이름의 다리 옆이었다.

잔이 넘치도록 찰랑찰랑 따라진 화이트와인을 홀짝홀짝. 빵을 담았던 종이봉투가 꼬깃꼬깃해지도록 손에

쥐고 다녔으니 여기서 저 와인의 마지막 한 방울이 사라질 때까지 같이 다 마셔버릴 셈인 거다.

일요일날에 나왔을 적엔 차들의 통행을 막은 채 거리 축제 분위기를 한껏 풍겼던 바로 그 거리, 평일의 찌뿌린

하늘 아래에선 왠지 살짝 쓸쓸한 분위기의 한적한 길가로 변해버렸다.

성 샤펠성당을 지나며 다시 한번 그 뾰족뾰족한 외양을 눈길로 슬쩍 쓰다듬어 주고.

관광객도 잘 눈에 띄지 않던 어느날 오후, 금세라도 비가 꾸물댈 듯한 날씨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

틈에서 왠지 나도,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인 양 무심하게 한번 올려다 보았다.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삼색기에 담긴 그럴듯한 뜻도 그렇지만, 프랑스의 국가 역시 피 냄새가 가득하다.

피를 먹고 세워진, 자라난 그네들의 국가 이미지. 최소한 그 정도의 피값을 주고 기억해 내어야 나라의 기풍이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만한 건덕지가 생기는 걸까.

노틀담 성당.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는 딱히 랜드마크라 할 만큼 두드러지게 높은 건물이 눈에 안 띄지만, 그래도

단연 노틀담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이 시선을 잡아끄는 거다. 자연스레 시선을 붙잡아 두는 효과.

오르세 미술관 지나는 길. 철도역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오르세 미술관 옆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언뜻 옛 서울역의

풍취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리 작지는 않은 사이즈의 도시에서 마주쳤을 법한 철도역사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었다.




노틀담 성당을 지나다가 우연찮게 구경하게 된 미사 집전 장면, 아마 파리 추기경이 직접 와서 집전하는 것

같던데 제법 볼만한 광경이었다. 아름다운 성당과 더불어 멀리부터 순례해 오는 듯한 사제들과 수사들이 

파리 시내 가운데서 압도적인 경건함을 피워올린다.
 
양쪽으로 쭉 늘어선 관광객들과 구경꾼들을 헤치고 노틀담 성당으로 스며들듯 빨려드는 하얀 옷입은 신의

대리인들. 이미 미사를 보려는 교인들은 성당 안에 만석이었다.

왠지 가톨릭교와 관련된 오리지널 버전의 이미지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벽안의 백인 (남성)신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하느님-혹은 신-의 이미지 역시 서양 백인남성의 그런 이미지 일색이었다가, 얼마전부터

그런 성상이나 성가에 대해 '한국적' 시즈닝이 가해졌다고 알고 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예수님, 국악풍의

성가라는 건 바람직한 변화인 거 같긴 하다.

사실 '신성함'의 외피를 두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은지도 모른다. 정숙하고 느릿한 발걸음, 신과 그 위엄을

상징하는 온갖 악세사리와 기호들, 그와 나의 공통 인식기반이 되는 문화적 컨텐츠들. 예컨대 천지창조니

부활이니 하는 신이 역사한 사건들에 대한 경외감.


그런 건 모두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의 외피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 법정스님 선종 후 터져나온

봉은사 명진스님에 대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외압설에 대해 '종교인이 정치색이 심하다'느니, '모든 걸 버리고

조용히 하라'느니, 따위의 조언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종교적 신성함과 종교적 의미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법정스님이 4대강 사업에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던 건 어떨까. 세상에 뒹굴며 세속에서 힘쓰는 게 곧

'더러워지고' '신성함을 해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워낙 관광객이 많은지라, 앞에는 미사를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도록 성당 가운데쯤 바를 쳐 두었다. 높은 천장,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정숙하게 걸러진 햇살, 십자가에 집중된 조명,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한 선율과 울림까지

미사 참여의 목적이 아닌 '구경'의 목적으로 들른 사람들조차 위압한다.


미사는, 프랑스어로 진행되어 뭔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글로리아, 아멘, 이정도? 근데

말을 못 알아들어도 하울링 심한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신부님의 낮고 단정한 음색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혹은 신성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그에 비하면 요새 나오는 더미 파이프오르간은 상당히 간소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다. 애초 천장이 저리도

높고 공간이 넓은 성소를 짓기란 요새 세상에 불가능하니, 파이프 오르간의 성스러운 효과음 역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 연출되어야 하는 거다.




노틀담 성당의 건물은 +자 모양이랄까, 입구와 십자가상이 양끝에서 마주 보고 있고 그 직선상 허리켠 쯤에

양날개처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커다란 채광창이 달려있는 형태다. 그 +자의 중간, 성당의 중심부 천장엔

이런 그림이 조그맣게 올라붙어있단 사실을, 구석구석 둘러보다가 발견했을 때 혼자 속으로 많이 좋아했다.

천장에 조그맣게 그려진 저게 이런 성모자의 형상이란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그래서

노틀담 성당에 대한 내 첫 사진으로 임명. 별이 가득한 우주를 관장하는 그리스도와 성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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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시테섬으로 건너면서 놀랬던 건, 거의 십여개에 달하는 다리를 세느강 양안으로 뻗고 있는 시테섬은

그다지 섬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 하나, 그리고 관광객들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노틀담 성당에 전부 다

몰려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하나. 2층짜리 관광버스가 쉴새없이 관광객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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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노틀담 성당의 이미지는 사실 모종의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이미 익숙했다. 그렇지만 뒤에서 본 노틀담

성당은 영 딴판이어서, 마치 '대항해시대'같은 게임에서 숨겨져있던 보물같은 장소를 찾을 때 느끼는 그런

팡파레 같은 게 터지면서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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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부는 아저씨에게선 왠지 모를 예술혼이 느껴져서, 내 기꺼이 50상팀을 내주었다. 사실은 사진 좀 잘

찍어보려다 눈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별 수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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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은 왠지 상아를 정교하게 세공한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아이보리빛을 띈 건물에 촘촘하게

조각된 창문이나 정면에 선 세 개의 대문은 한참동안 서서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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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성당에 나가고 세례도 받았지만은, 성당같이 '신성성'을 표하는 공간에 들어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의도한 대로,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노래와 높은 천장으로 공명하는 울림, 그리고 어슴푸레

조여진 몇몇 창문으로 계산되어 들어오는 한줌의 햇살, 아줌마라 불러야 할지 처녀라 불러야 할지 모를 마리아와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한 사내, 혹은 아기의 형상까지. 스스로 만들어낸 분위기에 스스로 압도당하고 눌려버리는

것 같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신에게 스스로의 삶을 바치고, 인간의 역사를 내맡겨선 몇 백년간 싸움도 하고

여전히 그런 도그마에 빠져 종교분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는다. 물론 맑스의 그 말은 뒤집어 생각컨대, 적절한 수준에서의 '복용'은 정신건강에도, 육체건강에도 좋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 비상약으로 아편을 꿍쳐놨다가 조금씩 써먹었다는 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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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놀란 것 중 하나가, 기독교 문명권에서 얼마나 다양한 표정과 모션과 메시지로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미지가 변주되어 왔는지 하는 것. 숱한 옛 기록들을 짜맞춘 'holy book'을 그 자체 하늘의 음성으로

여기면서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한 그 결과물들은, 당연히도 제각기

첨예하게 다르다. 단지 외양이나 포즈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었을지..에 대한 기대나 예측 자체가

그토록 판이한데, 과연 그들이 생각하고 호명하던 '신'이란, 과연 같은 사람 혹은 무언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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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 안에 있는 프랑스의 성녀, 잔 다르크. 어떤 영화에서였던가, 그녀는 신들린 반 또라이로 나왔던 걸

본 적이 있다. '신들린'이란 단어, 써놓고 보니 참 시니컬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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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 이뿌다는 생각 이전에, 저기에 돌멩이 하나라도 던져서 누군가 깨뜨릴라 했다면, 그

소리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솔직한 고백. 이 경건하고 웅장하고 밭은 기침소리 하나 내기도 힘든

엄숙하기 짝이 없는 성당 내로 유리조각들이 산산이 떨어져내릴 때라면, 거의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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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인 파리지앵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언젠가 한번 명동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이

직접 연주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시니컬한 나로서도 그 장엄함에 감동받고 말았었다. 여긴 어떨까..궁금했는데,

우연찮게도 여행을 마치기 전에 한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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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바깥날씨, 왠지 밖으로 나오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내가 사는 세상, 가스펠 성가나

엄숙한 설교소리, 그리고 고요한 분위기로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다소 칼칼하지만 신선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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