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분명하고도 직관적인 화장실 표시라니. 게다가 인도의 최전선인 공항에서 꼭 어필해야 할 인도 전통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았다.


인도 출장중 저녁식사를 하러 들른 그럴듯한 바 겸 레스토랑. 잘 먹고 마신 후 야근을 하기 위해 일어서기 전 찾은 화장실 표시는, 굳이 찾을 것도 없이 이렇게 눈에 확 띄는 귀여운 삿대질.

거기서 끝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쌀 것만 같은지 잔뜩 허벅지를 움츠린 남자. 어흑~ 하며 숨을 삼키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여자. 마찬가지로 엄청 급해보이는 포즈가 생생하다. 화장실이 깔끔하고 좋은 술집, 남녀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면 더욱 좋고, 그런 술집 찾기가 강남에서도 쉽지 않은데 인도에서 이리 쾌적한 화장실과 세련된 표지를 만났다.



아마도 선릉역 인근의 코코브루니였던 거 같은데,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의외로 여자화장실이었다. 화장실 근처로


자리를 잘못 잡았던 게 되려 저런 재미난 표지판을 인지할 수 있었다. 아주 심플한 모양새로도 누가 봐도 여자임이


분명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위에 정식의 심심한 표지판을 하나 더 얹었다.


남자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 누가 봐도 남자일 수 밖에 없는 그림으로 분명히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에도 재차


문자와 클리셰에 가까운 이미지를 통해 실수의 여지를 제로에 가깝게 끌어내렸다.






이화동 인근의 어느 까페였던 거 같은데, 무심코 들어간 화장실에 남녀 구분을 이렇게 심플하고 명료하게 해놓은 거다.


원목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문짝에다가 하얀색 페인트로 깔끔하니 눈에도 잘 띄고 이쁘기도 하고. 맘에 들었다.


여자화장실에도 마찬가지, 다소 밋밋해보였던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제법 배려를 많이 한 듯 큼지막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가 얼마나 섬세하게 고민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올댓재즈였던가, 핸드폰에 묵혀둔 케케묵은 사진인지라 어디에서 찍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등신대 크기의 남자와 여자가 자못 분위기 넘치는 포즈를 잡고 화장실 문에 기대어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겠다만


혹여 여자의 잘록한 허리라거나 남자의 근육질 팔목에 혹해 이성을 좇아 문을 열지 모를 일이다.





성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이다 보니 아무래도 화장실 표시부터 남다르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절대 닫혀있지 않도록


쇠사슬로 열어놓은 채 고정해놨다는 건 또다른 포인트) 큐빅인지 뭔지, 그런 소재를 가지고 남자의 몸을 형상화하고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은 아닙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듯한 남자화장실 표시.


그리고 제법 현실적인 몸매를 갖춘 여성의 닭똥같은 낙루. 여자화장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런던 타워 브릿지 인근의 애프터눈티 까페에서 마주친 화장실 표시. 남자와 여자, 트럼프의 킹과 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가 화장실 표시로 쓰고 있었다. 여왕이 통치중인 나라에서, 왠지 트럼프도 영국에서 생겨났을 것만 같은 데다가,


젠틀맨이란 표현 역시 영국에 맞춤한 표현이다 보니 여러모로 절묘한 표시란 생각.


남자용입니다. 젠틀맨, 킹.


여자용입니다. 레이디, 퀸.





싱가폴 Mount Faber Park의 케이블카 정류장, 땀을 많이 흘리며 걸었음에도 맥주를 큰 잔으로 한잔 원샷하고 나니


아무래도 생리 현상은 피할 길이 없다. 급한 맘에도 모처럼 재미난 화장실 표지판을 만나니 반가운 맘에 사진부터


찍고 나서 입장.


옆에 붙어있던 여자 화장실 역시 귀여운 표지판이 딱. 포인트는 다소곳이 모은 손과 살짝 올린 한쪽 다리 되시겠다.




인도 뭄바이공항의 화장실, 표지판은 굉장히 심플하지만 짙은 대리석 벽면에 그려진 무굴제국 병사같은 모습의

 

이미지가 그나마 밋밋한 남자 화장실의 외벽을 장식중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여자 화장실 역시, 표지판 자체는 별 특색이 없지만 벽면에 제법 포인트가 있다.

 

오히려 남자 화장실쪽보다도 더 신경써서 도안된 듯한 여성, 눈이 이쁜 인도여성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청와대와 가까워 가끔 대통령이 출몰하기도 하는 통인시장의 화장실, 여느 전통재래시장에서는 찾기도 힘들고

위생상태나 미관 면에서도 '고향의 운치'를 들먹거려야 하는 화장실이지만 이 곳은 나름대로 깔끔하니 정리된

공간에 표지판도 글로벌하게 일본어까지 병기되어 있다. 통인시장, 통통 튀는 센스를 찾아보기.

여자화장실에는 커다란 연꽃을 타고 나온 심청이가 등장하더니 남자화장실에는 김홍도의 풍속화에 그려졌던

서당 훈장님과 돌아앉아 울먹이는 아이가 등장했다. 왠지 그 카피가 생각나는데,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란 카피. 저 꼬맹이 녀석이 울먹거리는 바람에 연상이 뻗어나가 검색하게 된 화장실 스티커.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위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오래 살기 위해?

또는 떠나기 위해?

Let's ride motorcycles!

 

평균연령 81

 

한명은 청각장애

 

한명은 암

 

세명은 심장병


모두가 퇴행성 관절염이 있다.


6달의 준비


13일간의 타이완 여행


1139km


북쪽에서 남쪽으로


저녁에서 낮까지


한가지 간단한 이유로


Dream


for ordinary people with extradinary dreams


 

'에일리언 비키니', 미모의 여자 외계인이 지구에 들어와 하룻밤새 원하는 정자를 얻어 임신을 해야 하는데,

막상 마주친 사람은 서른네살까지 연애 한번 못해본 혼전순결주의자에 숫총각인지라 그를 유혹하고 얼르고

고문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는 게 이 영화를 보기 전 마주했던 몇몇 시놉시스들의 대략적인 얼개.

시놉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고 신선하다 싶어 꼭 봐야겠다 싶던 영화였다.


굉장히 가볍고 발랄한 구성, 거침없는 표현과 상상력이 뭉게뭉게 피어나는데다가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보다 결정적인 세팅은, 말하자면 '발정난 여자'와 순결을 지킨다며

'거절하는 남자'라는 전복적인 상황 그자체였다. 외계인이니 뭐니 장식된 설정들을 떼어내고 보면 결국 당장

남자의 몸을 바라는 여자가 남자를 달래고 얼르고 유혹하고 만지고 물고 빨고 심지어 때리는 상황.


마사지와 카마수트라, 최음제와 밧줄까지 동원되는 그녀의 '정자를 얻기 위한' 몸부림은, 여러 가지 장면과

자연스레 연결됐다. 여자는 그저 일종의 '정액받이'나 살아있는 공기인형처럼 다뤄지며 남자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는 온갖 포르노들, 그리고 포르노만큼이나 말초적이고 일방향적인

성희롱, 성폭력들과 돼지발정제니 최음제니 온갖 도구들. 그렇게 여자를 대하고 돈주고 사면서도 동시에

순결 이데올로기와 정조 관념 따위를 주입하려 드는.


그런 남자들의 거침없는 판타지와 본능이라 당연시되는 욕망이 영화속에서 여자의 것으로 표출되며 남성이

대상화되는, 그런 낯설고 미묘한 상황이 재미있으면서도 불편하고, 또 오히려 더욱 적나라하기도 했던

거 같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저 멍청한 남자녀석 같으니, 라는 울림이 쉼없이 울렸단 것도 사실이지만.


음. 스토리로 뽑아낼 부분은 그 정도란 게 맞을 듯 하다. 그 앞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그러니까 남자의

과거사라거나 외계인과 그 사이의 섹스 이후에 지구에 벌어진 일들 따위-은 애초 그렇게 남녀의 스타일이

역전된 상황에 덧씌워진 액자틀과도 비슷한 거 아닐까 싶어서다. 액자 속 그림과 액자틀 자체의 디자인이

잘 어울릴 수도, 혹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고 섞이지 못한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건 부수적인 이야기일 듯.

아니, 부수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딱히 스토리라인에 편입되지 않는 이미지나 뚝뚝 끊어진 단상같은

거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만들고 싶진 않아서 그닥 별 의욕없이 만들어낸 기승전결의

허울을 위한 이야기랄까, 이야기가 딱히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하나의 반짝거리는

메타포-남녀의 성에 대한 관념과 행태가 뒤바뀐-를 공들여 세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다. 지구가 멸망해버리는 그 시니컬하고 터무니없는 새드 엔딩은 그래서 굉장히 맘에 들었다.



* 그런데 왜 이리 이 영화를 개봉하는 영화관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며, 막상 찾아서 들어가보면

이렇게 사람들이 적은 거냔 말이다. 아쉽고 아쉬웠던.




산막이옛길, 풀향기 가득한 그 길에 처음 섰던 건 사실 하늘이 종일 칭얼거리던 날.

날씨도 우중충하고 빗물도 그치지 않아 어쩔까 하다가 잠시만 둘러보기로 하고 우산을

들고 카메라를 쥐었다. (맑은날의 기록 : 구불구불한 산막이옛길에 풀향기가 가득.)

흙바닥이었지만 나무쪼가리들이 폭신하게 깔려있어서 물웅덩이가 생겨있거나 질척해져있지는

않아 걷기 수월한 덕분에 물기가 총총히 맺혀있는 나무들도 보고, 흰 김같은 구름을 칭칭

감고 있는 산들도 보고, 물안개가 잔뜩 피어오른 강도 보고. 삐죽거리는 솔잎 끄트머리마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물방울들이 점점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간, 주륵.

그네도, 흔들의자도, 나무와 나무사이에서 슬쩍 휘어있는 벤치도, 그리고 자연목으로

얼기설기 엮어만든 울타리도 모두 흠씬 젖어 있었다. 그 와중에 울타리 위에서 뱀인지

용인지 혀를 날름거리며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옆에는

나무를 깎아만든 오리도 있고 새도 있고, 이 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소품들이다.

그렇지만 이 옛길을 걸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품이랄까, 포스트는 단연코 이곳이었다.

정사목. 한글로 된 음만 읽으면 감이 확 오지는 않지만 한자로 써놓으면 그 의미는 분명해지는 거다.

情事木. 아니, 뻣뻣하게 굳어있는 나무가 정사라니, 기껏해야 서로 수십년에 걸쳐서 손이나 잡는

느낌의 연리지가 고작일 텐데, 나무가 정사라니.(feat. '내가 고자라니')

정사목. 나무에 뭔가 남자표시 여자표시 이름표가 붙어있는 걸 보니 뭔가 기대가 되긴 하는데,

딱히 모르겠다. 설명에 따르면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포즈의 나무들이라는데, 대체 뭐가

어떻다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근데 왜 가지가 세개지, 여자 표시가 두개 붙어있는건...?

아하, 슬쩍 각도를 틀어서 가까이 가서 보니 바로 알겠다. 무슨 숨은그림찾기처럼 한번 그림이

보이고 나니까 이제 아주아주 잘 보이는 그림, 이 나무 진짜 그럴 듯하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음...남자나무가...여자나무를...음...[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한참을 즐감해주시다가, 왠지 나무들이 삐걱삐걱거리며 서로의 몸을 더듬고 비트는

듯한 환상과 함께 어디선가 밤꽃냄새가 마구 풍기는 듯한 환상이 떠오를 무렵, 정신건강에

안 좋겠다 싶어 일단은 철수하기로 했다. 마침 빗발도 좀더 굵어지고 있었고, 잔뜩 찌푸린

하늘 덕에 금세 어두워지겠다 싶기도 해서.

솔잎마다 방울져있는 빗방울들,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빗물을 닮았다는 느낌. 빗물에 씻기고

나니 산막이옛길도 그렇고 온통 푸르른 풍경이 더욱 싱싱해졌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화장실 표시. 이야..내가 여태 한국에서 돌아본 화장실 중에서 거의

손꼽히는 화장실 표시가 아닐까 싶다. 나무결이 슬쩍 드러나는 판을 마치 쪼갠 듯이 잘라내서는

이렇게 깔끔한 도안으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한국어와 영어로 깔끔하게 알리는 표시.


한옥마을에 어울리는 화장실이라고 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메아리로 울리는

푸세식변기, 그리고 허름하고 오래된 화장실 표시를 냅둬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설은

쾌적하고 깨끗하면서도, 서구화된 채 천편일률적인 표시 대신 이렇게 특색있고 느낌이 사는

표시를 달아 붙이는 것. 가장 눈에 안 띄지만 또 가장 중요한 곳에 대한 세심한 손길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백화점 명품샵에서 아랫도리를 훌렁 벗고 신발까지 벗어던지 이 앙상한 알다리 아저씨.

바바리 아저씨보다 더 시크한 포즈로 다리깽이를 자랑질 중이셨다. 


근데 나름 귀티랄까, 간지가 흐르더라는. 슬쩍 말려올라간 니트의 느낌도 그렇고.







어느 가을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를 둘러보았다.

고작 그 노래 하나로 평생 울궈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지만, 화개장터 근처에 친척댁이

있는지라 그래도 드문드문 들러보는 화개장터는 조금씩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근처를 걸을 수 있는 산책길 코스가 정비되었고, 화개장터의

옹기집이니 반찬가게니 좀더 번듯하고 깔끔하게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거다.


이전에 화개장터는 그저 유서깊은 재래시장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조금씩 이렇게

초가지붕도 엮어올리고 구석구석 황토의 분위기를 살려넣어 좀더 전통 문화나 정서가

담기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한 재미다. 바가지머리 모양으로 초가지붕을 올린

남자화장실 건물 역시 그런 의식적인 노력의 일환일 거다. 파랑 작대기인간이 서있는

화장실 사인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 양쪽 옆구리춤에 쓰인 '남자'란 글자가 정겹다.

여자 화장실도 일관성있다. 빨강 작대기인간 양쪽 허리춤으로 역시 '여자'라고 두글자를

적어넣은 분은 틀림없이 동일인물.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다면, 화개장터와 하동, 하면

역시 박경리의 '토지'만한 컨텐츠가 없으니만큼 서희랑 누구더라, 그 남자캐릭터를

남녀 화장실의 표지모델로 썼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경주 시내 곳곳에 뿌려져있는 자그마한 고분들, 누대에 걸쳐 조성된 탓에 딱히 한 곳에

모여있다기보다는 여기저기 산재해 있지만, 그래도 크고작은 고분 이십여기가 모여있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대릉원, 천마도가 발굴된 천마총이 있는 곳이다.


큰 고분은 지름이 무려 120미터까지 뻗어나가기도 하는지라 대릉원의 넓이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데, 둥그런 고분들 사이를 걷도록 조성된 산책로가 정말 멋지다. 그런 곳인지라

화장실도 나름 신경써서 표지를 만들어 붙인 거 같다. 出자 모양장식의 왕관을 쓰고 옥대를

찬 똘망한 남자아이가 가리키는 건 역시 남자 화장실이다.

그리고 남자의 왕관보다 조금 덜 화려하지만 비슷한 시리즈라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왕관을 쓰고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이 여성은 아마도 왕녀의 신분인 듯. 지체높은 혈통에서

뿜어나오는 우아함이랄까 범접치 못할 당당함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 왕녀가 가리키는 거니까

역시 여자 화장실.


뭐, 만화체 그림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화장실 문양에도 어느 정도 이 공간, 이 분위기를

이어받은 것처럼 느껴지니 만족할 만 하다. 커다란 왕과 왕녀들의 릉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한참 그 분위기와 역사에 취해있다가 불쑥 생리적 욕구에 못 이겨 찾은 공간이, 전혀 생뚱맞은

빨강색 파랑색 인간모형으로 그 흥취를 다 깨버린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말이다.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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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가족들과 함께 삼청각 찻집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마주쳤던 한국식 화장실 표시.

큰 갓에 두루마리를 챙겨입은 남자와 무거워보이는 커다란 가채를 올린 치마 저고리의

여자가 마름모꼴 공간 안에 들어있었다. 살짝 내외하는 듯 남자나 여자가 서로를 빗겨 선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국내에서 내가 본 것 중에 이만큼 세심하고 이뿌게 한국의 미를 살리려고 애쓴 화장실 표시는

거의 못 봤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을 수 있는 화장실 표시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걸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나처럼, 누군가는 그 표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려

애쓰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싶다.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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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갔던 제주도,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성인용 조각공원에서 발견했던 조각들은 온통

남자와 여자의 몸 일부만을 소재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반짝거렸었다. 꼭 그만큼

그 공원 내의 화장실도 재기발랄함이 가득했는데, 남자용 화장실 유리문에 그려진 남자가

여느 파란색 인물이 다소곳하고 밋밋하게 선 것과는 달리 실감나는 포즈와 물줄기를 그리고

서있던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뽀인트는 바로 저 손잡이.

여자쪽은 어떠냐 하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빨간색 여자가 남자와 똑같이

두발 쩍 벌리고 선 채 '여기가 여자화장실이에요' 하는 건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거다.

저렇게 실제 포즈를 잡고 물줄기까지 고래처럼 뿜어줘야, 아 여기가 여자화장실이구나

하지 않을까. 남자화장실보다 재미있는 모양, 훨씬 공들여 만든 게 분명한 손잡이는

역시나. 대박 센스.



* 참고 : (19금) 제주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조각공원.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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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관, 원리대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국민들 중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이 모여 공동체의 일을

논의하는 곳이다. 뭐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이야 딱히 그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에서 고루 뽑혀서

고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임한 국민들을 위해 일하기보다

오히려 국민들과 때깔부터 다른 금빛인간들인양 권세나 부리기 일쑤지만.


그건 어쩌면 개화기 이래 쭉 내려온 '인텔리 의식'과도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서양의 것에 대한

접근성과 익숙한 정도에 따라 '개화'된 여부가 결정되던 그 때. 여전히 국회 화장실, 여자 화장실에

저런 서양식 나들이용 모자를 쓴 캐릭터가 굵은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다는 건 그런 식의 의식이

발현된 건지도 모른다. '고상하고', '세련된' 여성의 캐릭터가 국회에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첫째 문제, 두번째로 그런 캐릭터가 저런 서구식의 캐릭터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둘째 문제.


남자 화장실의 표지 역시 마찬가지다. 나비 넥타이에 중절모를 한, 코큰 아저씨. 역시 무슨 옷을

걸쳤는지 알 수 없는 파란색 단촐한 남자 캐릭이 아니라 뭔가 고상하고 교양있는 모습을

보이고 차별화하고 싶어했다는 게 첫째 문제, 그리고 그게 하필 서양의 '신사' 이미지와 같다는

사실이 두번째 문제.


국회는 신사들의 공간인가. 민노당의 강기갑 의원을 위시한 다른 이들이 국회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국회에 출입하고, 양복 정장이 아니라 노동자의 작업복 차림이나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갔을 때 떠들썩한 기사거리가 되었던 걸 생각하면, 국회는 신사들의

공간이었고, 여전히 그런 거 같다. 화장실조차 '신사숙녀'의 공간이니까.

국회 본관에 간 건 거기서 열렸던 공청회에 참석할 일이 있었기 때문. 들어가면서 용건을

이야기하고 주민증을 맡기면 이렇게 방문증을 교부한다. 정부종합청사나 비슷.

내가 받았던 출입증은 회의참석용 방문증이었는지라 공청회 등 회의 참석만 가능한 증이었다.

별다른 장치는 더 없었고 그냥 심플한 굴림체 안내사항들과 간단한 국회 이미지가 있던

출입증이었다.

본관 로비에서는 국회 건물 높이만큼 되어보이는 높은 천장을 볼 수 있었다. 둥글게 감겨진

2층, 3층의 복도 울타리를 프레임 삼아 시선이 한층한층 위로 향했다. 그리고 국회 본관의

그 높은 돔인 듯한 곳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뭔가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조명이

은은히 밝히고 있는 그 곳은 누군가 반으로 쪼개져 마징가제트가 나올 곳이라 했던가.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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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중국대륙의 보물들 중에서도 귀중하다는 것들만 선별해 무사히 타이완 섬까지 수송해냈다는

그 군사 작전 자체의 이야기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들게 하는 곳, 타이완의 고궁박물관이다.

부패하고 무능력하던 장개츠의 국민군이 패배를 거듭하며 결국 대륙 밖으로 축출되는 와중에도

그때까지 발굴된 중국 대륙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모으고 선별하고 안전하게 포장해서 바다건너

타이완섬까지 수송하는 과정이라는 건,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전쟁이었을 거다.


그 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이쪽 끝과 저쪽 끝에 떨어져 있어서, 중국의

귀중한 유물들을 구경하다가 타이밍이라도 놓칠라 치면 저런 일이 종종 생길 게다. 남자가

다짜고짜 덥썩,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여자화장실로 뛰어드는. 


*  타이완 고궁박물관에서 황제의 다과를 맛보다.

중례츠, 한자 그대로 읽으면 충렬사. 타이완의 '호국영령'들을 모셔둔 일종의 사당이랄까, 아님

현대적인 단어로 고치자면 '현충원' 정도 되려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선전되는

애국심의 화신들을 모셔두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후세의 귀감으로 활용하기 위한 그 공간에서

정작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공간은 꽤나 홀대받고 있었다는 느낌.


* 파란하늘, 하얗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붉은 피 흥건한 중례츠(忠烈祠),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발현된 과학적/근대적

사고랄 수 있는 실학적 마인드와 서양의 축조술까지 참조하여 당대 축성 기술의 정수가 어우러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어쩐지 나는 갈 때마다 날씨가 궂거나 비가 내려서

좀처럼 제대로 돌아보질 못하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꼭 한 번은 들르게 되는 건 역시나 화장실.


그래도 이정도면 그림은 무난하지 않나 싶다. 갓쓴 남정네의 얼굴이 간략하게 그려졌고, 단정히

머리를 쪽진 아낙네의 옆모습 역시 간략하게 그려졌다. 둘다 코가 너무 크다거나,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이라는 별다른 이유없는 색깔 지정이 좀 거슬리는 데다가 욕심을 낸다면 글씨체도

좀 이쁜 걸 골랐으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뭐. 다만 저 대충 만든듯한 파란 지붕의 성곽 모양

판 자체가 좀 많이 저렴해 보인다는 아쉬움이 크다.

정작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앞에 붙은 표지는 좀 낫다. 팔각으로 된 틀에다가 전통 문양도

둘러넣으니 훨씬 깔끔해 보인다. 그래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조금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다면 어땠을까.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백제 문화가 만개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건 '무령왕릉'의 발굴 이후였다고 한다. 우리가 갖고

있던 백제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막연하고 불분명해서, 예컨대 금동용봉대향로같은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된 유물을 발굴하고 나서도 이것이 백제의 것일지 아니면 중국의 것을 수입한

것일지 논란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儉而不褸,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라는 백제의 미감을 한껏 표현한 무령왕릉유적의 화장실엔 그래도 조금은 신경쓴, 백제의

미감엔 한참 못 미치고 복식 역시 조선의 그것을 연상시키지만, 아무튼 조금은 신경쓴 듯한

화장실표시가 있었다.

이왕 화장실 표시를 범용의 파란색 남자, 빨간색 여자 표시에서 벗어난 개성있고 문화가 담긴

뭔가로 바꾸고 싶었다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약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그래도 이 곳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것 자체로도 분명 진일보한 건 사실일 터다.



2010 상해엑스포의 꽃은 역시 붉은 왕관 모양의 '중국관', 중국관의 번지르르한 외양은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붙박아놓고 화려한 내부로까지 자연스레 이끄는 힘이 있지만 그 세심한 내공이

느껴지는 건 그 건물 한구석에 붙어있는 화장실. 화장실마저도 중국의 문화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공간을 활용하며 세심하게 꾸며놓은 걸 보면 얼마나 공들였는지 대략 가늠할 만하다.

중국 고대의 갑골문자에서 현대적인 번체자로 변천해 왔던 한자가 상형문자처럼 많이

형이상학적이고 기하학적이지만, 나름 현대의 글자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는 수준으로까지

변화해 온 즈음의 글자들이 담백한 조명과 벽면 위에서 검고 단단하게 자리잡았다.

여자 화장실도 마찬가지, 좀더 안쪽에도 뭔가 글자가 그려넣어져 있었을 것 같은데 차마 더이상은

못 들어가고 살짝 입구에서 맛만 보는 정도. 그나저나 이런 한자는 그렸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님

썼다고 표현해야 할지, 그림과 글자의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는 그 모양새가 새삼 신기하다.

한자문화권에 속해있다는 한국인의 눈에도 신기한데 이 곳을 찾은 다른 문화권의 외국인들에게야

더 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신기할 거다.




@ 상해엑스포, 중국관.
남양주에 있는 '봉쥬르', 왔다갔다 하면서 늘 눈여겨 보게 되던 화장실의 간판이다.

파이프를 물고 살풋 구겨진 모자를 눌러쓴 텁수룩한 남자의 이미지는 꽤나 간지나는데

그걸로는 "자연의 부름에 응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눈에 쉽사리 띄기가 어렵다 생각했나보다.

밑에 굳이 '남자'라고 삐뚤하게 적힌 글씨가 재미있었다.

여자 화장실은 일종의 시각적 터부의 공간.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고사하고 눈길이 조금만 오래

그 안쪽으로 고정되어 있다 싶기만 해도 왠지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지고 심장도 쪼글쪼글해진다.

그래도, 저 의지력 드높은 사각턱의 여인이 입술을 앙다문 표정은 아무래도 카메라를 부르더라는.

'남자'라는 글씨를 썼던 사람이 여기도 똑같이 쓴 게 틀림없다. 참 알기 쉬운 필체.



@ 남양주, 봉쥬르.
난 김혜자가 싫었다. 그녀의 가늘고 여리여리한 목소리, 때로는 신경질적일 만큼 하이톤의 그 목소리도 싫었고,

그 목소리가 이와 혀를 걸러 발출될 때의 발음과 말투도, 그녀의 얇은 입술도 싫었다. 쉽게 근심그늘이 고이는

웅덩이같은 그녀의 양미간, 짙은 주름도 보기 싫었고 무언가 늘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는 듯한 눈매와 그

축축한 눈동자도 모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엄마'였다. '국민 엄마'라는 칭호로 소개되곤 하던 그녀에게선, 정말이지

여자가 아닌 엄마의 표시만이 가득했다. 잔소리와 더러는 짜증을 예비하기 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는 자식 걱정에 굵게 패인 주름, 자식놈이 커나갈수록 쉬이 축축해지는 눈동자까지. 그런 '엄마'만

있는 게 아니라지만, 그녀는 그런 특징들을 꽉 쥐고 '엄마' 역할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런 엄마, 전원일기 속 엄마, 드라마 속 엄마에 더해 봉준호의 '마더'는 그녀에게서 살짝 불온하고 불안한

엄마 모습을 캐내고자 한다. 섹스가 없는 상태에서의 엄마, 섹스를 원하지만 충족할 수 없는 엄마의 모습들.

간이 옷장 안에 숨어 젊은 남녀의 육덕진 섹스를 훔쳐보는 엄마, 고등학생의 부탁으로 생리대를 고르고

계산하며 눈치보는 엄마, 휴대폰 속 벌거벗은 남자-섹스 구매자로서-들 사진을 한장씩 넘겨보는 엄마,

심지어 자신을 막 대하는 아들 친구에 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엄마. (어쩌면 이미 그녀와 아들 친구놈은

한번쯤 잤던 사이라고 힌트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그녀, 엄마는 조금은 지쳐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라곤 아들 밖에 없는 집에서 둘이 산 지 오래다.

다 큰 아들은 정신이 온전치 못해 팬티만 입은 채 한 이불을 덮고 엄마 가슴을 조물딱대며 잠들곤 하니,

'엄마와 잔다'는 표현이 계속해서 중의적으로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닌 거다. 아직은, 아마 앞으로도,

상상할 법한 '패륜'의 힌트가 예기되지는 않았으니 엄마는 만족되지 못한 채 지치거나 욕구불만이거나.

그렇지 않을까. 아마도 그래서 노상에 방뇨하는 아들의 그곳에 유심스레 눈길이 간 거다.


남자의 욕구야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그녀의 다 큰 아들도 마찬가지다. 정신은 빠졌어도 육체는 건전하니,
 
쌓이기만 하는 욕구는 그를 '발정난 개'로 만들어 버린다. 굳이 '오이디푸스 신드롬'이니 따위 엄마에

대한 근원적 욕구를 운운할 생각은 없지만, 그를 사랑해주고 보듬어주는 여자는 그녀 뿐이다. 비록

그녀가 다섯살즈음 농약을 먹였을지언정, 그녀는 마르지 않고 넘칠듯한 사랑으로 그를 무조건 믿고

보호하며 지지한다는 걸 안다. 그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대안은, 엄마다.


아들에게 '바보'라는 표현이 그 누적된 욕구불만을 파열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면, 엄마에겐 그

아들의 존재-하나뿐인 피붙이이자 '남자'로서-가 위기에 처할 때 방아쇠가 작동한다. 천지사방을

뛰어다니며 아들의 구명을 위해 애쓴다. 그치만 누구를 위한 구명일까. 바보천치 아들은, 콩밥도

맛있다며 교도소 안이 편하다는 아들은 사실 창살 안과 밖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혹, 엄마 자신을 위한 구명 활동 아닐까. 그녀가 살기 위한, 그녀의 욕구불만을 해소키 위한. 
 
그러고 보면 엄마에게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남자는, 아들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은 더욱 서로에 의지하고, 지쳐가며, 또 헌신한다. 다른 방법이나 대안이 없기도 하다.

특히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에 대한 보호 본능이라 이름붙이던 모성애라 이름붙이던, 그녀는 아들로

인해 욕구불만이 강화되고 아들로 인해 욕구불만을 해소한다. 달리 기댈 곳이 없었던 그들의 애정이 쏟아져

나갈 유일한 통로,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 애정이 콸콸 쏟아지는 순간, 그녀는 말랐던 댐이 터지듯 온통

뿜어나오는 피분수 속에 두 손을 담궜다. 어느 순간 구르기 시작한 파국적인 결말을 향해 치달으면서도

그 둘의 징글징글하고도 섬뜩하기까지 한 애정, 특히 엄마 혜자의 아들 도준에 대한 사랑은 더욱 뚜렷이

선연해지기만 한다.


"엄마는 원래 그런 존재야, 모성애란 그런 거지" 등등의 따뜻하지만 통속적인 이야기로 끝낼 영화는 아닌 거

같다. 그녀의 사랑은 알게모르게 현실적인 이해타산이 맞물려 있고, 다른 통로의 유무에 따라 그 강렬함이

결정되며, 그 기저엔 엄마이기 이전 사그라드는 여성으로서의 욕구불만이 마그마처럼 꿈틀대고 있다는. 

무조건 신성하고 순결한, 지고한 데다가 여성이 가진 본성과도 같은 덕목으로 찬양받는 '모성애'가 실은

그런 육체적인 욕망과 얼기설기 엮여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던 건 아닐까. 천상의 모성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어떤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여대생 하나가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했댄다. 그리고 인터넷과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포털마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 파문' 어쩌구 하면서 아주 신났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 열폭중이시다. 루저라는 단어에 예민하거나, 아니면 '남자의 키'라는

남성들의 스트레스 요인과 자격지심을 건드렸기 때문이거나, 둘 다이거나.(혹은 언론의 부추김/오바질이거나.)


경과를 굳이 자세히 살필 필요야 있겠냐만은, 그녀가 애초 대본에 있던 내용이었다는 해명을 하고 이에 대해

방송작가 측에서 반박을 하면서 일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제2의 개똥녀파문으로 번질 것 같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난무하고, 프로그램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한 거라는 추측도 더해지고, 신나서 들들 볶아대는

여론이지만 늘 그렇듯 기껏해야 며칠 시끄럽고 말 일이다.


애초 이런 일에 계속 해명을 요구하고 뒤를 캐는 것 자체부터가 우스운 일이지 싶다. 키 작은 남자가 루저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 방송은 안 보고 그저 몇 개 언론이랍시고 뻥튀기에 자기복제만 해대는 기사들을 봤지만

그렇게 문제될 발언인지 잘 모르겠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단

게 사실이라면, 그냥 본인의 생각이다. 키작은 남자가 싫은가부지, 본인 키보다 큰 남자를 찾고 있나부지,

그렇게 넘기면 될 일 아닌가. (참 기자들 기사 쉽게 쓴다. 그것도 힘없는 사람 하나 십자포화로 때려 가며.)


뭐 말투가 좀 싸가지 없었는지도, 표정이나 뉘앙스가 영 띠꺼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방송을 직접 보고
 
인용된 문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대도 마찬가지다. 그냥 좀 뻔뻔하구나, 혹은 독특한 개념을

갖추고 계시구나, 이러고 말 일이지 뭘 그렇게 흥분을 할 일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미녀들의 수다'같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뱉어지는 대사들이 사려깊고 올곧기만을 바랬던가 말이다. 공익적이고 도덕적인 발언만 나오는

교육방송을 보고자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녀에게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물 것도 아닌 거고.


남자의 키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사항, 개인의 취향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본인의 기호와 취향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 물론 좀 덜 자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좀 다르고 불쾌하지만 그러려니 하지 뭐, 그렇게 넘어갈

만큼의 여유도 없는 건가.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당장 남성으로서 자신이 '루저'로 낙인찍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그리고 자신이 어필하려는 여성들-이 대번에 그런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도 아니잖나. 그녀의 마인드를 책임지고 고쳐줄 것도 아니고 당장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닌데, 왠 밴댕이 속알딱지같은 열폭인가.


물론 많은 여자들이 남자의 키에 예민한 게 사실이고 하나의 냉정하고 분통터지는 기준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녀는 단지 그러한 트렌드 내지 풍조에 편승해

발언한 것 뿐인 거다. 저변에 깔려있는 분위기와 여성들 일반의 '입맛'이 문제라면 문제인 거다. 말을 안 한다고

지적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이 경우에도 그녀가 이렇듯 십자포화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키에 민감한 건 오히려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딱히 남자가 자기보다
 
작아도 개의치 않는 것 같던데. 상대적으로.)


사실 언론에서 그려내듯 그렇게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은 못 봤다.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다니 어떤

의미로던 '차암~ 대단하다'는 반응, 혹은 방송에서 이특이 반응했던 것처럼 "나도 그쪽 관심없거든요"라는 식의

맞대응 정도를 봤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반인의 돌출 발언, 돌출 행동에 너무도 가혹하고 각박하게

'열폭'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늘 있어왔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이거 원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안주감 오징어처럼 짝짝 찢어발겨져 잘근잘근 씹혀진다. 힘있는 사람이어도 이렇게 집요하게 흠집내고 갈구고

꼬투리를 잡을까. 굉장히 가학적인 세상이고, 비겁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것 아닌 일을 떠들썩하게 키워내어 이득을 볼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봤다. 자극적인 기사로 조회수를

손쉽게 낚아내는 기자들, 누군가 씹을 거릴 만들어내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오지랖넓고 시간많은 한량들,

시대가 선사한 공허감과 분노를 풀길 없어 간편하고 무해한 씹을거리만 찾아대는 불만증환자들. 그들은 모두

하이에나같다. '발톱사이에까지 털이 나있는' 혐오스럽고 야비한 짐승이다. 자기보다 약하고 병든 동물만

사냥한다는 하이에나-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처럼 비겁하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수혜자들이 있을 거다. 80년대 3S-섹스, 스크린, 스포츠-정책이나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먹잇감-의 조합을 의미하는 티티테인먼트라는 조어가 발휘하는 힘으로 대중의 관심을

사회/정치적인 공적영역으로부터 유리시키려고 쉼없이 노력하는 권력자들. 개똥녀니 뭐니, 그런 자극적이지만

별반 공동체에 기여할 것이 없는 이슈들로 인터넷 자원과 진득하지 못한 대중의 관심을 소모시켜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권력자들. 무대 앞에서 일개 여대생이 다구리당하고 있을 때 키득대고 있을 장막 뒤의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이 불안하다.




Smart와 Nice와 Handsome, 세 개의 그룹이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영역들,

난 어디에 속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속편한 답을 찾았다.





난 여집합.


그렇다면 여자의 경우는 어떨까. boy에 대응하는 Girl의 패러독스.

공감이 간다기보다는 재미있어서.ㅋ











플로베르는 말했다. "나는 귀두에 뻣뻣한 털을 세우고 그것으로 암놈을 찢어버리는 호랑이와 같다."


이런 식의 '당당한' 마초적 발언들이 누대에 걸쳐 이어져서일까, 남성은 먼 옛날 사냥꾼의 본능을 이어받아

끊임없이 이 여자 저 여자를 찝적거리며 육체적 쾌락에만 몰입한다는 식의 신화가 알게 모르게 전승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미 진부해진 나쁜 남자 신드롬이니, 마초니 하는 것도 그렇고, 최근에 돌연 부상한 초식남이니

건어물녀니 하는 신조어들의 본질이 그 '섹스에 무관심한, 무성적인' 부분에 있다는 점도 되려 이전의 남성상이

성적 욕망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에게 육체적 사랑이 중요하다는 신화, 혹은 사랑보다 섹스를 탐하는 남자들..이라는 유서깊고도 심증 짙은
 
의구심을 주목한 출판사는 책이름을 선정적으로 비틀어버렸다. 원제는 "Man, Love and Sex". "남자, 사랑과

섹스" 정도로 번역될 만한 원제의 세 단어에 조사를 조금씩 바꾸니 이런 도발적인 제목이 나타난다.

"남자의 사랑은 섹스다." 저번주 내내 왠지 이 블로그 유입 키워드 2, 3위를 놓치지 않았던 문장이었다.
 
처음엔 사실 책 제목인지도 몰랐다. 단지 책이나 영화 제목이겠거니, 했을 뿐.


하도 궁금해져서 점심 시간에 밥안먹고 서점가서 책을 찾아 읽었다. 그림을 좀 첨부해볼까 하다가, 그닥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라 말기로 한다. 2009년 8월 10일에 초판발행된 따끈한 책이었다. 미국의 'Mens' Health'라나

남성잡지 편집자이자 남자행동분석전문가라는 저자가 말하는 방식은, 뭐랄까, 왜 남자 맘을 몰라주냐고 여성들에
 
투덜대고 떼쓰는 느낌이었다. 단적으로 책 중간에 'Q&A 코너'를 빌어 여성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 있었다.

Q: 왜 남자들은 화장실 변기를 더럽히며 소변을 보나요?
A: 남성의 방광이 어쩌구...거기에 마이크로칩이 달린 것도 아니고...시작과 끝에 흔들림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이해해주시고...(결론) 남성용 소변기를 화장실에 설치하세요.

내 기억과 짧은 메모에 의지해 복구한 내용이지만 거의 비슷할 거다. 하다못해 '남성다운 남성'의 상징 최민수조차

티비 토크프로그램에 나와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떳떳이 말하고 있는데, 남성용 소변기를 설치하라는 건

뭥미. 말그대로 '뭥미'다. 남자들을 좀 이해해 달라, 남자들을 배려해 달라면서 실은 계속된 기득권을 견지하겠다는

욕심꾸러기 떼쟁이 악동같은 태도.


책의 주제인 남자의 사랑과 섹스를 말하는데 줄곧 같은 자세를 견지한다는 게 문제다. 남성이 섹스 후 당신의 아파트에서
 
자지 않고 간다면? 다음날 칫솔과 면도기가 있는 자신의 집에서 눈뜨고 싶은 남성의 현실적인 태도니 이해해라. 남성이
 
섹스 후 당신의 아파트에서 자고 간다면? 다음날 회사에 안 나가니 편하게 쉬고 싶은 남성의 현실적인 태도니 이해해라,

라는 식이다. 당신을 사랑해, 라고 말하면 그저 사랑하는구나 믿고, 일하면서 별일 없었어, 라고 말하면 아 별일 없었구나

라고 믿으면 된단다. 단 이전에 다른 여자와의 경험이 다섯번이라 하면 열두번이겠거니 하면 된단다. 또 처음 데이트할

때에 비해 많이 활동성이 줄었는데 왜 그럴까. 십오만 킬로를 달린 차는 이제 차고에 들어가 편히 쉬고 싶지 않겠나, 이런
 
식이다. 이런 게 잔뜩 있지만 굳이 더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충분하다 싶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가이드북'은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두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더 잘 소통하기 위한 (그야말로) 일반화된 수준의 길잡이를 제공하는데 작으나마 그 미덕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이미 그러한 류의 책은 다양한 변주를 거쳐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니 '섹스'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끄집어

내고 싶었을까. 혹은 사회적으로 다소 터부시되는 그 소재에 대해 용감하게 발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과는

신통찮다는 게 내 개인적인 결론. (사실 이 책은 미국 남성을 기준으로, 미국 남성을 위해 쓰인 거라서, 사실 미국에선

그다지 선정적이지도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저런 '온건한' 영어 원제목으로는 더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내용이 거의 없는 책인데 그 선정성에 기대고 있을 뿐인 그런 책이라 불만인 거다. 그리고 그게

애초 목적이라 표방된 "남자를 이해해줘"라는 의도조차 무색할 정도로, 오히려 남여간의 사이만 멀게 만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배려심없고 이기적으로 보여서 불만인 거다. 


책의 마지막 메시지는 나름 의미심장하다. 의미심장한데, 책의 전개가 전혀 그런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질 못했다.

사실 그 메시지는 한국에서 번역된 책 제목과는 영 딴판이기도 하다. 메시지는, 불만족스러운 관계에 만족스러운

섹스라봐야 기껏해야 관계를 조금더 지속시키는 매개에 불과하다는 것. 뒤집어 말하자면 남녀간의 관계가 탄탄하고
 
만족스럽게 맺어져 있는데 섹스까지 훌륭하다면 더할나위없다는 거다. 그래서 남자들이 바라는 건 단순히 섹스가

아니라 사랑과 친밀한 의사소통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다, 저자는. 뭐,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인데 그걸로는

책 한권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나부지, 라는 지독히도 시니컬한 반응을 부르는 책. 제목에 낚이지 말길.



덧댐. Q. 뭔가 남자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무엇을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A. 섹스를 선물하라. 그것도 이왕이면 근사한 포장(?)이 된 거면 더욱 좋겠다.(ⓒ 남자의 사랑은 섹스다)

남자의 사랑은 섹스다 - 2점
데이비드 징크젠코 지음, 김경숙 옮김/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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