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내 스카이라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텔레비전 송신탑, 삐쭉한 안테나처럼 생긴 그것을 따라 걷게 되면 나타나는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밤마실 삼아 설렁설렁 걷던 길에 슈프레 강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연 같은 것도 잠시 앉아 즐겨주고.


주먹만한 대리석들로 박아둔 유럽 느낌 그득한 포석을 달각달각 밟으며.


그래피티가 몇겹씩 덧씌워져 있는 교각 아래도 지나고.


도착한 너른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되려나, 백화점이나 각종 샵들이 모여있는 곳. 그리고 텔레비전 송신탑이 비로소 우뚝 서서 굽어보고 있는 곳.


한쪽에서는 베를린 시내 곳곳을 연결하는 트램이 출발.


그리고 이미 셔터를 내린 어느 건물 외벽에는 베를린, 러브, 두 글자만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느 오랜 성당 앞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시원한 분수 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아마도) 수도 파이프. 왠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현대적인 느낌 물씬.


조그마한 개천을 건너는데 시꺼먼 개천 위로 불빛이 둥둥. 굉장히 고즈넉한 동네, 무섭다기보단 마냥 평화로운 느낌.


그렇게 설렁설렁 밤마실 삼아 산책을 다녀온 덕에, 극악의 시차를 극복하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나 뭐라나..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작지 않은 강, 슈프레(Spree) 강변으로는 과거 독일 분단시기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독일이 동서로 나뉘고, 동독 내에 소재하던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었던 그 시절, 체제 경쟁이 심화하면서 동독은 서베를린의 구획을 온통 장벽으로 둘러싸버리기로 한 것. 그게 베를린 장벽의 초기 모습이었다. 물론 '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장벽이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구성도 단단해지고 강화되는 것처럼, 이 장벽도 점점 최신의 기술적 진보를 더해 걷잡을 수 없이 삼엄해졌고.

20여 킬로미터에 이르던 그 장벽이 일부 구간, 약 2킬로미터 정도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East Side Gallery다. 말그대로 거리의 갤러리, 장벽을 미술관 전시품처럼 보전해 놓은 곳.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는데, 상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장벽 자체는 이렇게 얇고 허름했구나 싶어서.


보전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 여기 보이는 그래피티들은 전부다 최근의 것들. 그러니까 '훼손'이랄 수 있겠다.


1961년 이래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1989년까지 장벽을 넘으려다 숨진 사람들의 공식적인 숫자는 163명이라고 한다. 그 숫자만큼 해당 년도에 표기해 둔 이 작품은, 그렇지만 공식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탈주 시도자와 은폐된 죽음들을 놓치고 있을 거다.


누군가 가져다둔 화환. 아마도 여전히 그 상흔을 생생히 갖고 있는 누군가겠지.


이렇게 장벽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둔 것처럼 묘사해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구멍 하나로부터 장벽이 무너지리라는 기대 혹은 다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끝나는 지점에 '장벽 박물관(The Wall Museum)'이 있다는 표지가 곳곳의 아스팔트 바닥에.


그렇지만, 동방의 여전한 분단국가에서 온 이가 새삼 감회에 젖기엔 이미 독일 통일은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 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마구 그려댄 그래피티로 장벽은 훼손되고, 그 코앞 전봇대나 가로등에는 온통 난삽한 광고 뿐이다. 이미 27년전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이미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장벽이 던졌던 문제의식, 혹은 장벽을 남기며 사람들이 남기고 싶었을 자유라느니 정의라느니, 그런 가치들은 이제 얼마나 싱싱하게 남아있을까. 아니면 이들은 이미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젖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느라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러운 일이다.


장벽 너머 보이는 슈프레강, 이 작은 강은 대체로 동독의 영역에 속한 채 군사 대치중이었기 때문에 강에 아이가 빠졌을 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칫 상대편의 총격을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후 인도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는 협조하도록 원칙을 세웠다고.


자꾸 한반도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5차 핵실험이 벌어지고, 남북한 양측의 '최고존엄'이 전쟁을 부추기는 언어를 주고 받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동독과 구소련 정치지도자 간의 유착관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버전으로 치면, 글쎄, 두 명은 누구여야 하려나.


The Wall Museum 내부, 생각보다 전시물도 많고, 장벽이 생긴 이래 철거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한 시청각 자료가 엄청 많아서 둘러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사진은 처음 장벽을 쌓아올릴 때 쓰였던 허름하고 기초적인 장비들.


그리고 최초의 기초적인 망루. 슈프레강 넘어 보이는 건 서베를린.


다리 중간도 이렇게 엉성하고 속이 빈 벽돌블럭으로 담을 쌓고.


그러다가 1989년, 외부 세력의 개입을 적절히 차단해 가면서, 또 적절히 활용해 가면서 서독과 동독은 결국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맞이한다. 박물관 내 영상 자료들을 따라가다보면 그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질 지경이다.


부럽기도 하고, 천운이었다 싶기도 하고, 또 한국과는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싶기도 하고. 일단 베를린이 엄청 어색하게 동독 한복판에 박혀 있었던 데다가 동독과 서독간에 전쟁 같은 대규모 유혈사태도 없었으니. 한국은, 그리고 북한은 독일과 같이 분단 체제를 역사로 되돌릴 수 있을까.




샌프란시스코의 곳곳에 숨겨진 특색있는 박물관 중에 하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박물관.

 

미국에 이주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고 하길래 찾았는데.

 

두둥. 올해말까지 더 크고 새롭게 짓는다며 리모델링이었다는. 아쉽게도 언젠가의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그리고 샌프란의 그래피티들. 이전에 갔을 때는 주로 미션 지구쪽의 이름난 그래피티 골목들을 돌았다면 이번엔 그냥 랜덤으로.

 

 

 

미국의 이미지 중 하나는, 온갖 담배와 맥주를 팔고 있는 철조망 촘촘한 구멍가게. 왠지 이런 그림에 가깝지 않을까.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 앞에서 문득 육박해들어오는 그래피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돌아보지 못한 골목에 대한 아쉬움도 한가득.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지만 외벽이 온통 음악과도 같은 느낌. 악기와 음표들과 새들이 날아다니는.

 

어디보다 맘에 들었던 그림, 선연한 빨강과 파랑, 그리고 하얀색과 왼켠의 노란색 기둥까지.

 

그러다보니 불쑥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의 공터로 흘러나왔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와

 

무거워보이는 짐보퉁이를 들고서는 힘든 듯 잠시 멈춰선 중늙은이 할아버지. 뭔가 지쳐보이는 뒷모습들이다.

 

어느 건물 벽면에 누군가 그래피티..라기보다는 캘리그래피같이 그려둔 낙서. 형체를 분간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저 그 모호한 형상과 필선의 강약만으로도 느낌을 던져주는 듯 하던.

 

여기 역시. 건물의 모든 외벽을 굉장히 세밀한 그래피티로 래핑해버린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건물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그리고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본 벽면의 그래피티.

 

실컷 거리를 종횡무진,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해떨어질 무렵 숙소로 돌아와서.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인지라

 

호텔방 번호판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케이블카가 담겼다.

 

 

 

 

싱가폴까지 와서 굳이 차이나타운을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긴 했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가기로 했다.

 

망고빙수가 유명하다는 집에 가보고 싶었고, 거리를 온통 중국 내음 물씬하게 꾸며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역시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여기서부터는 차이나타운이야!'라고 외치는 느낌이다.

 

역시 거리에는 중국으로부터 흘러나온 마오쩌둥 배지니, 시뻘건 어록집이니, 아니면 저렇게 뭔가 신기하지만

 

조금은 조잡한 상품들이 가판 진열대마다 그득그득하다.

 

 

그러고 보면 정말 차이나타운은 어느 나라에 가나 비슷한 분위기, 싱가폴이나 샌프란이나, 아니면 동남아 어디가 되었건.

 

 

그래도 다닥다닥 어깨를 겯고선 건물들의 모양새라거나, 많이 퇴락한 채 곧 벗겨질 듯한 페인트들의 느낌은 역시 좋다.

 

하늘을 종횡하며 가로지르는 홍등도 좋고.

 

망고빙수. 이제 한국에도 많은 빙수 브랜드와 스타일들이 들어와있으니 굳이 새로울 건 없었지만, 망고 함량이 굳.

 

 

그리고는 싱가포르를 들른 사람이면 누구나 들른다는 점보레스토랑으로.

 

 

점보 레스토랑 앞에서 바라본 강 너머의 풍경. 마침 수륙양용배가 지나고 있다.

 

 

여기가 점보. 한자로는 진기할 진에 보물 보,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중의적인 영어 이름 잘 지었지 싶다.

 

워낙 손님이 많이 달리 예약을 하지 않는 한 하나의 커다란 중국식 라운드테이블을 다른 손님들과 나눠쓰게 된다.

 

내가 앉았던 데만 해도 무려 네 개 팀, 아홉명의 인원이 저 테이블을 함께 썼더랬다.

 

점보 레스토랑의 시그너쳐 메뉴, 칠리 크랩.

 

그리고 그에 못지 않다는 페퍼 칠리 크랩.

 

새우볶음밥도 맛보고.

 

칠리크랩 소스에 찍어먹으면 그 바삭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한결 더 찰지게 무르익는 빵까지.

 

음식 사진은 잘 안 올리지만 여긴 한번 남겨둘만 하다 싶어, 메뉴마다 한장씩 열심히 찍어두었다.

 

 

BGM. 이화동, 에피톤 프로젝트

 

 

 

 우리 두 손 마주잡고 걷던 서울 하늘동네

 

 

 

좁은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야

 

 

 

 

 

 

 

그늘 곁에 그림들은 다시 웃어 보여줬고

 

 

 

 

하늘 가까이 오르니 그대 모습이 떠올라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해 오월 햇살

 

 

 

푸르게 빛나던 나뭇잎까지 혹시 잊어버렸었니.

 

 

 

 

 우리 함께 했던 날들 어떻게 잊겠니?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 해 오월 햇살

 

 그대의 눈빛과 머릿결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해

 

 

 아직 난 너를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난 너를 지울 수가 없어...

 

 

 

부산 갈맷길, 광안리해수욕장을 따라 이어지는 그 길로 무턱대고 걸었다.

 

조각배들이 허연 배를 뒤집어깐 채 넘어가는 석양을 쬐던 시간대.

 

벌써부터 한낮의 열기를 품고 뜨거워진 모래사장에 새겨진 누군가와 누군가의 사랑, 곳곳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하트다.

 

 

하나둘 광안리 저너머 회센터 건물들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발포성 아스팔트가 부어져 푹신거리는 산책로 한켠에는 이런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벽면에 엉성하게 그려진 계단을 따라 시선을 자박자박 올려보니

 

두 개의 불빛이 있었다. 몇층인지 아파트의 창문 하나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그리고 비슷한 높이의 갸름한 달빛.

 

 

저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어디를 향해 도약해야 하는 걸까.

 

요리조리 따져보며 사진을 찍어보던 중에도 시시각각 치솟아오르던 초승달, 아무 선택도 내리지 못했는데

 

어느새 달빛 혼자 저만치 올라가 버렸다.

 

 

 

 싱가포르의 부기스 스트리트와 아랍 스트리트, 말레이시아로부터 연원한 싱가포르 무슬림들이 모여 사는 아랍 문화 지역이다.

 

독특한 색감의 그래피티도 보이고, 틈새 하나 없이 벽면을 공유하는 건물들이 양쪽으로 길게 어깨를 겯고 있다.

 

 

 아직 때이른 오전시간, 간간히 열린 까페에는 외국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며 아직은 따뜻한 해바라기중.

 

 

 이쪽은 사실 이슬람 문화가 물씬 배어나는 특색보다도 마치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같이 깨알같은 쇼핑이 가능한 곳으로 유명하다나.

 

곳곳에서 아기자기하게 정돈되어 있는 쇼핑 거리의 간단치 않은 공력이 묻어나온다.

 

나처럼 너무 일찍 도착한 걸까, 일요일 오전 시간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아가씨가 한참을 서성였다.

 

그런가 하면 마치 한국의 삼청동이나 북촌 같은 분위기에서처럼 온라인 쇼핑몰 모델들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술탄 모스크, 모스크 안의 아늑한 분위기야 언제나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당장 여기만 봐도 한쪽에선 느긋이 기대앉아 신문을 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바지런히 오체투지의 자세로 기도를 하는 모습.

 

2층의 회랑으로 올라가니 영어와 아랍어로 된 코란이 가득. 전세계에서 메카를 향해 정렬해 있을 그 방향을 향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를 따라 늘어선 고층빌딩들이 그려내던 스카이라인과는 영 딴판의 야트막한 건물들,

 

잰 발걸음으로 그 골목통을 돌아나가는 무슬림 아가씨 한 명.

 

 

그림자가 조금씩 짧아지고 짙어지면서, 가게들이 하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골목통의 끽해야 이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는, 이렇게 외벽에 송풍기로 또 하나의 벽을 만들어두었다.

 

어느 현관 지붕위, 조그마한 창문턱위에서 삼엄하게 깨져있는 유리조각들 사이로 비죽이 고개를 내민 다육식물 무리.

 

 

이슬람 전통의상이나 카펫 판매상들 사이에서 보이는 술탄 모스크의 울타리. 노란 별과 달이 아스라해졌다.

 

 

가게 한쪽 벽면으로는 아랍 스타일의 타일과 조명기구들로 한껏 아라빅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리고 보기만해도 땀날정도로 폭신하고 따뜻하던 카펫들.

 

홍콩이나 도쿄를 떠올리게 할 법한 빼곡한 고층건물숲으로만 싱가포르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

 

이 곳에서 살아가는 무슬림들이나 다른 인종, 다른 종교의 사람들의 속살거리는 일상을 보고 싶다면 가보기를 추천.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트윈픽스 발치, F라인 전차의 서쪽 종점이기도 한 이쪽 미션Mission 지구 곳곳에는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는 중이다. 그만큼 샌프란시스코의 전향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이 곳,

 

특히나 돌로레스 대성당 어간에서부터 시작되는 발미 앨리Balmy Alley에는 1970년대 이래 진보적 아티스트들이 그렸다는

 

그래피티들이 골목들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평온한 일상이 흘러다니는 깔끔하고 단정한 큰길, 어느 길모퉁이에서 예기치 않게 나타난 전복의 순간.

 

 그리고 골목 담벼락을 온통 활용한 화려하고 입체감 넘치는 벽화.

 

 

비록 살짝 지린내도 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한 구간도 있긴 하지만, 차들이 늘어선 큰길가에도 그래피티의 축복이.

 

1776년에 지어져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랜 건물이라는 돌로레스 대성당의 종탑. 이 위에서라면 울긋불긋하게 단풍처럼

 

번져나간 발미 앨리 지역의 그래피티들의 물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세 차례씩, 2시간 동안 이 곳에 그려진 60-70여개의 벽화를 감상하는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고도 하는데,

 

혼자 돌아다니기보다는 아무래도 대낮 시간에 단체로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는 게 안전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혼자 이 구역을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다거나 곤란을 겪었던 건 아니고, 워낙 골목마다 숨어있는 그림들이

 

많아서, 잘 아는 사람의 안내가 있었다면 더욱 알차게 돌아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정도랄까. 요런 귀여운 토끼도 놓칠 뻔 했다.

 

 

성긴 철창이 가로막은 건물 외벽에도 누군가의 손길은 여지없이 거쳐갔다. 거대한 연꽃을 타고 있는 부처가 샌프란시스코에 현현했다.

 

 

 

정교하고 잘 안배된 기하학적 무늬가 차고 하나를 통째로 감싸버린 풍경이라니, 작업했던 모습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풍경이다.

 

 조던의 드리블 장면이 붉게 두드러진 농구 골대에 내리쬐던 햇살, 좁다란 골목 양켠에서 형형색색의 색채를 밝힌 그래피티들.

 

 

 

 이름 모를 성당-혹은 교회-옆구리에도 그래피티의 가차없는 스프레이는 비켜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성당의 위신을 고려했는지 만화체로 그려지긴 했지만 예수와 성모..인 듯한 캐릭터들이 독특한 수인을 맺고 있다.

 

 

 사실 벽화보다는 이런 그래피티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좀더 본격적이고 멋진 그래피티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작정하고 캔버스로 벽돌담 벽면을 활용한 듯한, 무려 호랑이와 상어 간의 일촉즉발 격돌 장면.

 

 사실 발미 앨리 아니어도 샌프란시스코의 곳곳에서 숨어있는 벽화, 혹은 그래피티들을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아마도, 카센터의 내려진 셔터에 그려진 그래피티. 이 정도면 나름 상업적인 목적에도 충실하면서 미적인 기능까지 놓치지 않은 수작. 

 

 

 혹은, 뜬금없지만서도 파라오의 토실한 입술이 센스넘치게 가리키고 있는 소화전의 붉은 주둥이.

 

 이 건물은 GLBT 역사 박물관, 그러니까 게이(Gay), 레즈비언(Lesbian),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역사와 투쟁을 담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당당하게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만으로도 뭔가 상쾌하다.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래피티, 혹은 좀더 포멀한 차원의 벽화들. 아래는 작년인가

 

금문교를 배경으로 치뤄졌던 세계 요트대회의 한 장면을 건물 벽면에 재현해 둔 거라고 한다.

 

 

 

 

 

저녁마다 동네 주민들이 모이고 호스텔에 체류 중인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던 연주회들, 혹은 심지어 패션쇼까지 벌어지던 숙소.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셀리카. 이날은 하루종일 걷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손풍금..아코디언 연주회가 막 시작한 참이었다.

 

바에서 파는 생맥주를 한 잔 들고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건배도 하고 노래에 대해 속삭이기도 하며 노래를 즐기던 그 시간들.

 

연주는 한두 곡으로 끝나지 않고 거의 한시간 반 가까이 계속되었던 거 같다. 덕분에 맥주는 한잔 두잔 늘어만 가고. 옆에 유쾌한

 

아저씨와의 시덥잖은 농담도 점점 더 웃음이 빵빵 터지는 농담으로 바뀌어버리고.

 

원래 감옥이었던 공간, 잠시 갤러리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호스텔로 바뀌었다는 곳, 그래서인지 벽면 가득

 

그래피티가 아낌없이 채우고 있었다. 숙소 내부도 제법 독특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잘 꾸며져 있었고.

 

이런 발랄한 그래피티라니. 오천년 묵은 스핑크스는 아마 이런 모습일 게다.

 

호스텔과는 상관없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던 건물의 지하 주차장 입구.

 

그리고 둘째날 밤이던가, 이 지역 의상학과 대학생들이 준비한 패션쇼가 한참 준비중이던 호스텔 로비에서, 매서운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마도 교수..지 않으려나 싶던 아주머니. 머리 모양이 굉장히 모델스러워서 슬쩍 도촬 한장.

 

그리고 이 아가씨. 호스텔의 바에서 서빙도 하고, 데스크에서 체크인-아웃도 챙겨주시던 분인데, 류블랴나에서 블레드 호수까지

 

타고 가겠다며 스쿠터를 빌리려 했더니 날씨가 궂어서 위험할 거라며 말려주었던 마음 착한 아가씨였다. (정말이지 스쿠터 빌려서

 

타고 갔다가는 영영 못 돌아올 수도 있었겠다능..)

 

꽤나 매력적으로 생겨서 마치 영화 '제5원소'에 나왔던 그..매혹적인 여배우의 분위기를 풍겨내느라 주위에 남자들이 계속 집적거렸지만

 

정작 내 눈을 끌었던 건 몸 곳곳에 숨어있던 타투들. 그 중에서도 뒷목에 슬쩍 그려져있던 이 것. 호루스의 눈. 이집트 왕들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 부적의 문양이랄까, 내가 벌써 10년째 끼고 있는 반지 (메이드 인 이집트 룩소르)의 문양과 같아서 굉장히 반가웠다.

 

그리고 숙소 주변을 슬쩍 산책하던 참에 발견한, 대우의 '레이서'라는 차. 이런 차가 있었나? 기억조차 없는데 한국에는 다른 이름으로

 

팔렸었거나, 혹은 내 기억에도 없을 만큼 옛날옛날 한옛날에 팔렸던 모델이라 그럴지도. 여하간에, 슬로베니아에서 대우 이름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구시가에 인접한 숙소, 우선 조금씩 에둘러 걸으며 이 곳의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바로 구시가라거나

 

유명하다는 명소로 진격하는 건 서툰 짓이라고 생각해서, 급할 거 없이 골목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적대며 걷는 중.

 

 

그 와중에 특별할 것도 없는 동네 성당이 저렇게도 이쁘구나, 지긋이 눈에 담기도 하고 벤치 아래 촘촘히 박힌 포석들의 가지런함을

 

눈여겨 보기도 하고.

 

 

어느 건물의 옆면과 앞면으로 이어지는 커다랗고 산뜻한 그래피티를 보기도 하고, 파스텔톤의 나즈막한 건물을 힘줄 툭툭 튀어나온

 

뼈마디 굵은 손으로 딛고 서려는 듯한 커다랗고 신경질적인 나무도 한 그루.

 

휘적휘적 걷는 사이에도 조금씩 류블랴나의 구시가, 그리고 중심에 위치한 류블랴나 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씨트로앵)

 

 

날씨가 조금만 더 맑았어도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류블랴나에선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살짝 우박도 맞았지만 햇빛만 못 맞았다.

 

 

그리고 동네 곳곳에서 목격되던 저 끈을 서로 묶은 채 대롱대롱 매달린 운동화들. 왜 그 영화 '빅피쉬'에 나오듯이

 

이 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전부 신발을 벗어던지고 평생 행복하게 머물고 있다, 머물겠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리고 느닷없는 용의 등장. 청동색 피부를 가진 사나워보이는 용의 뒤로 류블랴나 성이 훨씬 가깝게 보인다. 이 녀석은 아무래도

 

성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이나 최종병기일지도 모르겠다.

 

 

용이 지키는 다리는 사실 다리의 끄트머리, 그리고 그 끝의 양쪽 어귀에 모두 용을 한마리씩 앉혀놨으니 총 4마리의 용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라고 계산했다면 그건 오산. 다리 중간중간에 용의 새끼인 '해츨링'이랄까, 작지만 엄연히 용의 피가 흐르는 듯한 녀석들이

 

이렇게 매서운 눈초리로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중이다. 류블랴나성을 해치려는 나쁜 사람은 아닌지 살피려는 듯.

 

 

다리 중간에 설치된 표지판. 이 용다리가 1900년에 준공되었다는 듯 한데, 워낙 청동의 부식이 심해 글자를 잘 못 알아보겠더라는.

 

앞모습에서 풍기는 위압감과 사나움도 충분히 실감나지만, 다리에 꼬리를 말고서 기어이 지키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강건하고

 

단단한, 금방이라도 비상할 듯한 뒷모습도 못지 않다. 이 곳 류블랴나의 마스코트가 용이라더니, 용이 지키는 도시다운 모습이다.

 

 

 

그라데츠 언덕의 남쪽에서 로트르슈차크 탑으로 올라가는 길, 건물과 건물벽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남자 두명 어깨를 맞대고

 

걷기도 힘든 너비지만, 이 길 끝을 향한 관광포인트들의 화살표가 저리도 수다스러우니 한치의 의심없이 가는 거다.

 

 그래피티라기엔 조금 아쉬운 낙서들이 붉은 벽돌담의 회칠을 이리저리 긁어놓고 있었고, 다행히 골목은 조금씩 넓어지고.

 

 

언덕을 올라간다는 실감이 나는 게, 조금씩 자그레브의 구시가부터 야금야금 붉은 지붕들이 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다 싶었는데 성 마르크 성당이랑 그 너머 성모승천 대성당이 보인다. 저기가 자그레브의 또다른 언덕

 

카프톨의 꼭대기인 셈이고, 지금 걸어 올라가는 중인 언덕인 그라데츠를 오르면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을 비롯해서 성모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스톤 게이트 등을 볼 수 있다.

 

 제법 높이 올라왔다 싶어서, 뒤로 돌아 밟아 올라온 계단들을 보려는데 문득 눈이 마주친 아가씨. 손을 흔들어주니 흔쾌히 답해준다.

 

 그리고 왠지 알루미늄 호일을 꼬깃꼬깃 구겨서 만들었거나 껍데기를 씌운 듯한 이 조각상은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안툰 구스타브 마토사'라는 분을 기려 세워진 거라고 한다. 아니, '세워졌다'는 표현이 어폐가 있다 싶은 게 워낙 친근하고 격의없는

 

느낌의 조각이라 그런 거 같다. 그는 자그레브의 삶을 즐기고 자유로이 살다갔던 보헤미안이었다고 하니 이게 맞겠다.

 

 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그가 보았던 도시와 지금의 도시는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기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삶이 더 척박해지고 속물스러워지고, 게다가 많이 고유의 것들을 잃어버렸을 텐데. 다행히 짧은 체류를 했을 뿐인

 

외지인의 눈에는 꽤나 훌륭하고도 단단한 문화자산들을 갖고 있는 특색있는 나라로 보였지만 말이다.

 

두둥. 아직 3월 중순이라 봄이라고 하긴 애매한 시기지만, 여튼 푸릇푸릇해진 풀밭 너머로 보이는 게 로트르슈차크 탑.

 

그라데츠의 남문을 지키기 위해 세운 감시탑이라고 하는데, 무려 13세기에 지어진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단다.

 

수백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정오에 대포를 발사해서 시간을 알려준다는데 정오가 훌쩍 넘은 시각, 대포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지만 여전히 귓가에 남아있는 건 저 씨디도 발매하신 프로 아티스트 할아버지의 연주 소리.

 

 

사실 여기는 이렇게 걸어오는 것도 방법이고, 남쪽의 일리차 거리와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올라오는 것도 방법이다.

 

여하간 탑의 조그마한 입구를 들어서면 한산한 기념품샵과 매표소가 있고. 10쿠네(약 2천원)을 내면 저 문 너머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게 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형 계단은 우선 건물 외부를 타고 오르게 된다. 발음도 어려운 로트르슈차크 탑과 옆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따라 나선 계단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한켠에서 수줍게 나부끼며 응원중인 빨래들.

 

그리고 탑의 실내로 들어섰더니, 마침 자그레브의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탑의 조그마한 창문들로부터

 

은은하게 비쳐들어오는 흐릿한 햇빛이 탑 내부의 하얀 벽면과 반들거리는 나뭇바닥에 사정없이 반사되면서 분위기가 그럴 듯 하다.

 

슬쩍 내다본 창문 너머로는 방금 올라온 완만한 계단길이,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들고 나온 아가씨의 손수레가,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느라 여념이 없는 커플이 보인다.

 

그리고 일리차 거리에서부터 올라온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사람들을 쏟아내는 출입구. 사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진 않던 게, 나선 계단을 따라 탑을 뱅글뱅글 오르는 중에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저 문이 열리고

 

관광객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겠다 싶은 게, 운영 거리도 짧거니와 걸어서도 충분한데 뭐.

 

 

조금씩 눈높이가 둥실둥실 떠오르는 게 느껴지려나 모르겠지만, 한층한층 오를 때마다 탑의 네면에 한개씩 있는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사진으로 담다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들의 눈높이가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자그레브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어떤 식으로 디테일하게 타일들을 짜맞춘 건지 궁금증을 풀기도 하고.

 

이만큼 높아진 시선에서야 비로소 붉은 지붕들 너머로 하얗게 반짝거리는 성 마르크 성당의 일부를 보고 설레이기도 하고.

 

아래에서 강아지들을 끌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궁금해하며 사진을 담기도 하고.

 

아까 자그레브 대학교의 미대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저 아가씨는 그새 아이스크림 아저씨랑 한담을 나누는 중이다.

 

 

그래도 케이블카가 운영되지 않는 건 아니어서, 이렇게 두 개의 레일을 따라 파란색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걸 보기도 했다.

 

주변의 낡고 붉은, 그렇지만 그 디테일한 까끌까끌한 질감이 살아있는 지붕들과 완전히 정반대인, 반짝이는 파란, 매끄러운 케이블카.

 

계단은 계속됐고, 그 때마다 자그레브의 신예 작가들의 사진을 빠짐없이 감상하고 게다가 네 면의 조그마한 창문에서 보이는

 

자그레브 시내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나 걸리고 있었지만, 조금씩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는 걸 실감하며

 

기꺼이 만끽하는 중이었다. 계단도 그렇게 가파르거나 높지 않아서 힘들지 않고.

 

 

이런 창문들이 사각탑의 네 면마다 하나씩. 위로 올라가니 제법 외풍이 세차게 몰아닥쳐 창문을 아예 잠궈놨던데,

 

굳이 그걸 살짝 열고는 유리창의 방해 없이 맨눈의 자그레브를 구경하고 싶었다.

 

 

층수로 치면 4층쯤 되려나. 이제 왠만한 자그레브 시내의 건물들은 얼추 눈아래로 들어온다 싶을 즈음.

 

대포가 나타났다. 이게 매일 정오마다 발포되어 시간을 알려준다는 대포, 리얼 대포다. 대포가 있는 유리방 벽면에 붙어있는

 

온갖 삼엄한 금지 표시들만 봐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대포를 향해 창문 너머로부터 쏟아지는 이 나른하고도


따스한 햇살은 좀. 반칙 아닌가 말이다.

 

붉게 칠해진 바퀴는 단단히 고정되어 반동을 최소화했고, 어느 하나 녹슨 부품이 보이지 않는 대포의 철제 바디는 보기만 해도

 

왠지 군대의 살상병기가 갖는 위용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그런 대포가 자그레브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려주는 유용한

 

알람 시계로 활용되고 있다니 꽤나 교훈적이랄까 바람직하고도 건전한 모습이다.

 

그리고, 사진이 너무 많아 일단 여기서 끊고 로트르슈차크 탑 위에서 보이는 풍경은 다음 포스팅으로.

 

맛보기 삼아 한장만 올리자면, 이 탑 위의 전망대에서는 성 마르크 성당의 자수같은 지붕이랑 아이 컨택이 가능하다.

 

 

 

 

 

 

한파가 몰아닥친 2012년의 끄트머리,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추위가 한결 더 심해진 건 틀림없는 듯

 

연말 대목이 예년같지 않다는 푸념이 사방에서 들리더니 이태원프리덤의 이태원 역시 비슷하게 쎄한 분위기.

 

바람막이용 비닐 너머 괜찮은 비스트로 겸 까페 건물과 가로수에 칭칭 감긴 전등이 부옇고 앙상하게 드러나고,

 

마치 벽면을 타고 기는 덩굴손처럼 유리창 위에서부터 스물스물 늘어뜨려진 빨갛고 파랗고 노란 꼬마전구 불빛이 커튼처럼 드리웠다.

 

치킨집 천장에 장식된 세계 각국의 국기들. 홍콩을 국가라고 하긴 그렇지만 여하간 홍콩의 깃발도 보이고.

 

추위에 손이 곱아 아무리 손을 불어도 따스한 감각이 없어서 카메라고 뭐고 가방에 넣으려던 차에 눈에 띈 그래피티 하나.

 

왠지 2012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눈에 더 잘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에서 시작', 뭔가 리셋의 의미가 담긴 거 같기도.

 

 

어쨌거나 이제 모두 '작년'에 찍은 사진일 뿐.

 

아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 2013년이 되도록, 영에서 다시 시작~*

 

 

 

 

소호의 가로세로 바둑판같은 골목길들, 소호 거리라는 실감을 나게 해주는 건 건물밖으로 삐져나온 철제 계단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철제 계단, 필요에 따라 땅까지 늘어뜨리기도 하고 올려두기도 한다는 건 끝내 신기하다.

 

 

이래서 문화의 거리, 란 걸까 싶도록 구석구석 숨어있는 재미난 것들.

 

 

아마도 이건 지난 아큐파이 시위 때 붙여놓은 걸까.

건물들이 그럴 듯 하니 어떻게 찍어도 화보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막무가내로 그래피티같지도 않은 글씨들이 그려진 녹슨 철문조차 위에 붉은 크림 하나를 얹었다.

 

 

저 처자분 종아리의 그림은, 설마 타투는 아니리라 믿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로 본체 만체 지날 뻔 했던 두 아저씨는 각자를 이끌고 앞서 가던 개 두마리가 얽히는 바람에 눈이 맞게 되고..

 

 

온통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과 어디로던 통할 거 같은 철제 계단이 미로처럼 얽힌 속에서 괜히 여행을 떠날 때처럼 설레는 거다.

 

 

덥다 싶으면 무턱대로 가까운 갤러리로 들어가 전시된 작품들도 구경하고 땀도 식히고.

 

 

여전히 저런 스티커도 눈에 띈다. 9/11 is a lie.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반증일 텐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캠퍼 샵의 시원시원한 디스플레이.

 

 

소호도 예전같지 않다더니-예전이라 함은 이전에 여길 들렀던 2001년쯤-명품 샵들이 사방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도 여전히 멋진 샵들과 갤러리, 그리고 어디서든 털썩 가방과 카메라를 던져놓고 커피 한잔에

 

샌드위치 하나를 베어물고 싶게 만드는 까페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거리, 소호다.

 

 

 

 

 

 

한달전만 해도 저 그래피티는 없었던 거 같다. 아니, 보다 확신을 갖고 말하자면 한달전만 해도 저것들은 없었다.

동작대교 남단을 지나 올림픽대로로 내달리기 직전의 교각에 도장처럼 찍혀 버린 피스, 그래피티. 간단하고 앙상하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아마도 야음을 틈타 스프레이로 그려둔 게 아닐까 싶다.

자꾸 지나칠 때마다 눈에 밟혔던 거다. 기분이 묘하게도 요새 자꾸 여기저기서 저 그래피티를 보는 것 같단 느낌도

들고 해서. 배달 오토바이의 철가방에서도 보이고, 뒷골목 벽에서도 보이고 뭐 그런. 자꾸 그런 게 보이니까 뭔가

요새 한국의 '그래피티계界(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에 PEACE 마크가 다시 유행인 건가, 1960년대 말의 미국처럼.

그런 생각도 들곤 하는 거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피쓰~!

선뜩하고 찰져보이는 피부, 윤기를 잃어버린 머리카락, 사망 시간이 한참 지난 듯 빳빳이 경직된 팔다리,

게다가 근육들이 수축하면서 보기 흉하게 벌어진 몇 군데의 칼자국과 가슴과 배를 따라 Y자로 열었다가

두꺼운 실로 다시 꿰메진 자국까지. 섬뜩한 시체가 눈앞에 있다.

이 진짜같은 시체는 사실 '그림자 살인'에서 쓰였던 소품인데, CGV송파와 가든5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중 특수효과 전시를 위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것. 요모조모 꼼꼼히

뜯어보면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전에 국립과학수사원에서 경험했던 시체의 선뜩함과

냉기를 풍기고 있었다. (음식의 미학-부검 견학의 감상.)

으윽..아무리 모형이란 거 알아도 이런 건 좀. 성글고 뒤엉킨 머리칼하며 온몸에 묻어있는 피칠갑하며.

무엇보다 이렇게 유리관 안에 핏덩이를 담아놓았다는 게 제일 자극적이다.

가운데와 오른쪽의 머리는 알겠다. 대충 목을 잘라서 성문 앞에 내걸거나 죽창 위에 꼽거나 할 때 쓰는

특수분장 소품일 거다. 근데 왼쪽의 저 포효하는 원숭이는 뭐지. 스타워즈 소품인가.;

왠지 누군가를 닮은 여성의 머리도 유리관에 담겨있다 싶었는데, 한참을 눈싸움하다 보니 누구랑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떠올랐다. 왠지 김민희 많이 닮은 듯.

그리고 말의 모형까지. 코가 금방이라도 벌름거릴 듯 리얼하긴 한데, 털이 너무 광택이 없다. 경마장의

준마들과 비교하기엔 영양상태가 안 좋은 건지 발육상태가 별로인 건지.

특수분장 전시를 해둔 곳을 나와서 둘러보다가, 3D 바닥벽화 작업을 해놓았다고 하는데 이게 왜 3D지?

바닥에 그려놓았으니 원근감이 아무래도 느껴지기야 한다만은 아무래도 요새는 아무데나 3D란 단어를

갖다 붙여놓는 게 아닌가 싶다. 슈렉이나 쿵푸팬더, 지니가 다들 넘 아저씨스럽게 나왔단 것도 불만.

'3D'바닥벽화에서 못내 아쉬웠던 마음을 단번에 털어내주던 그래피티들, 몽글몽글 귀여운 동물들이

단체 사진찍듯 우글대며 모여있었다.

좀더 전형적인 그래피티, 글자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거라 하지만 어느새 글자로서의 형체나 기능은

소멸하고 추상화된 그림이 남는다. 어릴 적부터 그래피티를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는데. 흑.

락카 스프레이들이 잔뜩 늘어선 채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그래피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림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사람들. 원래 그래피티는 누가 보지 않는 새 보통 야밤을 틈타 후딱 작업하고 도망가는 게

묘미일 텐데, 평소 그런 거에 익숙한 이들이 사람들이 멀쩡하니 구경하는 앞에서 작업하려니 어색하진

않으려나. 스프레이로 저렇게 생생한 그림을 그리고 남겨놓는 솜씨는 역시 참 대단해 보인다.

그래피티에 열중한 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보니,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겠다는 생각이다.

벽면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림으로 메꾸려면 무릎을 꿇고 바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해서 그려야

하고, 위에 그릴 때는 사다리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사다리를 조금씩 옮겨가며 다시 올라야

할 테니 꽤나 번거롭고 피곤할 거 같다.

온갖 과일이 매달려 있는 과일나무와 가지, 옥수수가 날개달고 날아다니는 벽화는 빨간 지붕과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사람들이 은근 쉼없이 서서 사진을 찍던 포스트 하나.

영상축제를 찾은 사람들이 직접 아이들과 함께 벽돌에 그림이나 글씨를 그려넣으면 그 벽돌로

작은 집을 쌓아올리는 행사도 있었다. 한 꼬맹이가 자신이 만들었던 벽돌이 어딨는지를 찾는듯

몇 분째 유심히 벽돌 한장 한장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 옆에, 특수분장 체험관 옆으로 마저 이어지던 석고상들. 근데 인물들이 어디서 많이 보았던 듯

낯익은 면면이다. 이 둘만 해도, 모르겠다고? GOD의 멤버 중 두 명이라고 하면 바로 감이 오려나.

석고상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녀의 이미지는 소녀였다가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어버린. 박지윤이다.

워낙 개성있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 최민식.

이 두 사람도 뭐, 딱 보면 각이 잡히는 얼굴이다. 라디오스타의 두 스타. 안성기와 박중훈.

아무래도 여성의 경우는 조금 더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헤어스타일과 화장이 갖는 비중이 워낙

큰 탓인지도 모르겠고, 그녀들의 웃는 얼굴에 익숙해 있는지라 이런 눈감은 무표정한 얼굴은 어쨌든

실제로 낯설고 어색한 탓인지도 모른다. 위에는 김윤진, 밑에는 고 최진실. 최진실은 좀 많이 낯설다.

사실 이렇게 석고로 마스크를 뜨는 건 데드 마스크가 그 기원 아닌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죽은 이의

얼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도로 죽은 이의 얼굴을 정제한 후 석고를 부어 만드는 게 데드 마스크인데

이렇게 영화 배우들의 얼굴을 석고로 뜨는 건 어디에 쓰려나. 마네킹을 만들거나 대역배우 가면을

만드는데 쓰는 건가.

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빡빡 대머리에 아무 분장도 되지 않은 그들의 얼굴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뭐, 딱히 잘생기지도 않았네. (나랑 비슷하게 생겼네), 뭐 요런 턱없는 망상이

스물스물 자라났달까. 그래놓고 거울보면 왠 오징어가 있을지도.




버즈 두바이를 바라보기 가장 좋다는 맞은편 쇼핑센터, 시간이 너무 일러 대부분 문이 닫힌 상태였지만,

높이 솟은 건물들과 함께 잘 정돈된,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분수정원이 두바이의 급격한 축재를

잘 나타내주는 듯 하다. 이 메마르고 황량한 도시에 저런 분수대라니.

대개 모든 건물들이 지은지 얼마 안된, 갓 구워진 쿠키처럼 노르스름한 황토빛이다. 그래서인지 왠지 테마파크

같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조금씩 동이 터오는 하늘, 좀더 뜨겁게 땅이 달구어지고 그림자가 두껍고 짧아지면 이 곳의 풍경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너무 휑하다. 사람은 없고 풍경만 있다.
두바이가 최근의 모라토리엄 사태를 거치면서 곤욕을 치르고는 있지만, 두바이가 아랍에미레이트, 혹은 중동이

가진 핵심 전력은 아니다. 버즈 두바이니, 버즈 알 아랍이니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두바이는 이를테면 졸부의 땅. 중동의 이름난 부호국 중 하나인 아랍에미레이트의 대표주자는 역시 아부다비.

어쩔 수 없이 이 곳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갑작스런 붐에 불쑥 떠오른 지역이다.

밤새 불이 환하게 켜져있었던 공사현장. 두바이는 전기나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필수시설들에 대해서 자국민에

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일년에 몇차례씩 국민들의 빚을 탕감해주거나 일정액을 '하사'하는 다른

중동국들의 사례도 있으니 딱히 두바이가 독특하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외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네 '토목으로 '일어섰네' 어쩌고 하면서 벤치마킹하자고 나섰던 건 사실 우스운 일이다.

자국민에는 무료로 제공되어 밤새 펑펑 낭비되는 전력과 수도 등은 외국인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높은

금액이 부과된다고 한다.

두바이의 일출. 저 멀리 크레인들이 코끼리 코처럼 하늘을 향해 뿌우~ 코를 울리고 있다. 일출인데, 이건 무슨

일몰의 음울하고 축축 처지는 느낌의 이미지.

황량한 땅 위로 이리저리 가로놓인 고가도로가 던져주는 길쭉한 그늘이 도왔겠지만, 그보다 사막지대에선

금과도 바꿀 수 없다는 물을 윤택하게 제공한 덕분이지 않을까. 뚜렷하게 일정 지역만 덮어씌우고 있는

초록색 잔디. 그렇지만 광화문광장을 얄포롬하게 덮었던 화단보다는 수명이 길겠구나 니들은. 겨울은 없잖아.

뭔가 두바이의 도심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확연하다. 갑자기 불쑥 높아지는 마천루, 지금은 버즈 알 아랍 가는

길이다. 어딜 봐도 공사판, 좀처럼 오랜 것은 보이질 않고 모조리 새로 지은 것들 뿐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스쿨버스. 현지인들은 그다지 교육열이 높지 않아 생각있는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곳은 '교육'이란 게, 혹은 '학력'이란 게 출세나 돈벌이의 값진 지표로 작용하지 않을

만큼 온 국민이 고루 부유한 곳인 거다. 그렇지만 역시, 혹은 의외로,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는 여기도 크다고

한다. 어차피 (물질적) 박탈감이란 건 옆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생겨나는 거니까.

여기가 두바이의 강남이랄까, 가장 핵심 비즈니스 구역이라고 한다. 쭉 뻗은 대로 양쪽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

그치만 왠지 어색한 건,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뜬금없이 솟아오른 듯 보이는, 전혀 배후지역이 보이지 않는

섬같은 건물들이란 느낌 때문일 거다. 아무런 연원이나 전통적 상권 따위 없이 생겨난 건물들, 이것들이 모두

유럽의 자금이나 아부다비의 자금을 빌어 올려진 것들이란다.

차창 밖을 내다보던 중에 문득 눈이 띄였던 건 그래피티.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도 그래피티가 있었다니.

두바이의 모랫빛 건물들, 색깔없는 건물들 사이에서 노랑색 페인트칠된 창고건물은 꽤나 눈에 띄었던 건지

놓치지 않고 낙서를 해놓았나 보다. 더더욱 눈에 잘 띄는 약간 어설퍼보이는 그래피티.

참 단조롭도록 쉼없이 나타나는 공사현장들. 제대로 지어졌다 싶은 건물들도 공실률이 생각보다 꽤나 높댄다.

하긴 이렇게 뭔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한참 남아있는 '신도시'에 누가 서둘러 입주하겠나 싶기도 하고. 단지

높이 솟은 건물들, 현대식의 독특한 외양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모여있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니지 않겠지 싶다.

두바이를 배우자고 외치던 사람들은, 대체 뭘 봤던 것일까.

버즈 알 아랍이 저멀리 보이기 시작할 무렵, 조금씩 고급주택가가 나타났다. 너른 공간을 넉넉히 써가며 맘껏

녹색의 푸르름을 과시하는 고급 주택들, 왠지 야트막한 인도와 조그마한 신호등이 귀여웠다. 이제 저 너머로

시야를 돌리면 세계 최고의 칠성급 호텔이라는 버즈 알 아랍이.




 
"니들이 경찰이면 나는 송혜교다".ㅋㅋㅋㅋ 문득 웃음이 터졌었다.

거울까지 달아놓았다. "거울아 거울아".

"이명박씨, 당신이 선택하시라!" 이미 그는 수차례 선택을 선언해왔다. 새삼스레 바랄 것도 없지 않나..는 게 갠적인 생각.

"용산 참사 해결없이 이 땅에 민주주의란 없다."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목숨값도 가벼워야 합니까...

씁쓸했던 손자보 하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언젠가 새벽은 온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시절

했던 말이다. 이만큼, 뒤로 돌아갔다.

버려진 매트리스 세개로 그려진 세폭짜리 그림. 입에서 포클레인이 나오는 그대는, 진정한 트랜스포머.

용산참사 후 2개월, "용산GAJA展"에 다녀왔습니다. 라는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만평들을 다시 만났다. 반갑다기보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때만 해도 2개월이나 지났으니 뭔가 해결이 되겠지..했는데 어느덧 6개월이 넘어간다.

"돈놀이로 사람 죽이는 이 미친 개발을 당장 멈춰라." 돈과 사람 사이에 부등호를 세운다면 아가리가 돈 쪽으로 가는 세상.
"삶 자체를 철거하는 재개발 정책."

다섯 분의 영정이 실크스크린같은 형태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걸 굳이 다시금 지워버리려 한 누군가의 덧칠이 보인다.

이건 전쟁이다. 이 좁고도 별볼일없는 담장을 둘러싼 여론 싸움이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지우며, 다시 그 위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이 조그마한 공간은 보수언론이 장악한 거대한 체스판의 아주아주아주 미미한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다. 그만큼 날 것의, 그만큼 적나라한 이야기가 활자화되는 거지만, 동시에 그건 그만큼 세가 약하고 외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MB 퇴진. 의원내각제였다면 벌써 정권이 열번은 넘어졌을 거라고 손호철 교수가 그랬던가.

길바닥 역시 유용한 선전공간..이라기 보다는, 통로가 없다. 이들이 발언하고, 동의를 구하고, 자신들의 목청을 높일

공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온 비명같은 외침은 바닥까지 내려앉아 깊이깊이 새겨진다.

"철거하면 이명봙". 봙.

"공권력 메롱". 굳이 지난 촛불시위 때의 발랄함과 재치있는 움직임들을 들지 않아도, 조금씩 그들은 우스워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고, 스스로를 가볍게 만들고 있으니, 풍자의 의욕은 날로 높아간다.

"우리는...더 큰 울음소리로 살아날 것이다." 그치만 때는 진보세력조차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게 만드는 시대.

울음소리가 영영 사라질까 두려워 해야 하는 시대.

어느새 용역과 경찰이 한몸이 되어 버렸다. '용역경찰 박살내자'. 자신들이 뿌린 씨앗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의 표지에 나왔던 판화 그림이 붙어있었다.

"비록 패배가 지금 우리의 삶일지라도, 우리는 사랑도 알고 꿈도 안다." ...

돌아보다 보니, 무슨 전시회나 미술관을 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짧막하지만 생생하고 강력한 아포리즘들과 그림과 사진,

판화와 만평, 때로는 설치미술작품같은 것들까지. 그래피티가 별거인가. 어쩌면 애초 그래피티 정신엔 훨씬 어울린다.

이렇게 누군가가 열심히 지우는데 여념이 없을지라도, 그리고 때론 무지막지한 상말이 난무할지라도,

용산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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