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묘젠지를 둘러싼 야트막한 담장길을 따라 나오는데, 단풍나무가 빼꼼히 배웅을 한다. 들어설 때 보이지 않던

풍경, 나무 밑둥으로 하얀 자갈이 고랑을 그리며 깔려 있는 모습이라거나, 저 건물 너머 그림같이 이쁜 정원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묘젠지에서 다자이후 역으로 돌아나가는 길, 길 양옆에 이런 울타리를 쳐 놓았다. 푸른 대나무를 다듬어 긴

장대로 만들고는, 목책에 구멍을 뚫어 걸어두거나 저렇게 대나무를 가뿐히 접어 고정시켜 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커다란 규모의 관광포스트들, 예컨대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혹은 고묘젠지 이외에도 자잘한 사원이나

사당같은 것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아마도 관광객) 출입금지인 걸로 보아 신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곳인 걸까.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753명절을 지내러 부모님 손잡고 텐만구에 가는 듯한 가족들하며, 점점이

보이는 소풍나온 듯한 학생들까지.

그런 와중에도 비둘기 한마리에 완전 몰입해 있는 귀여운 딸내미. 주위의 공기가 들썩들썩, 사람 버글대는 휴일

분위기로 꽉 차 있지만 그런 따위에 연연치 않는 듯, 꼬맹이와 비둘기 주위엔 왠지 다른 질감의 공기가 느껴진다.

석탑 위에 버티고 선 저 동물형상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글쎄 잘 안 나온 거 같다. 물고기나 해마 비슷하게

생긴게 꼬린지 발을 힘껏 차올리고서는 마치 물구나무서다가 고개만 꺽인 자세로, 정면을 보고 있다.

고묘젠지의 담장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바로 이렇게 민가들이 버티고 서있다. 커다랗게 적힌 한자들 때문일까,

뭔가 한국같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게 어디서 비롯하는지 모르겠다.

국화 화분을 앞에 내놓은 채 장사 중인 가게도 있고. 근데 이사진은 내가 뭘 찍고 싶었던 걸까.ㅡㅡ;

이렇게 이쁘게 잘 관리받고 있는 집도 있고. 일본의 집은 작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정말 다 작아

보인다.

이건 뭘까. 뭔가 넓은 부지를 차지한 채, 사당을 둘러싼 녹지에 원형 산책로까지.

그렇게 다시 다자이후 역근방까지 도로 나왔다. 살짝 꾸물꾸물한 하늘, 꾸물꾸물 모여들어 이젠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 혹은 참배객들.

화장실을 잠시 가려는데 여기도 남/녀 표시가 특이하다. 여기저기서 이렇게 화장실 남녀표시를 그간 찍어온 것만

따로 모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선남, 선녀.

다자이후 근방에는 다자이후텐만구, 큐슈국립박물관, 그리고 고묘젠지가 일단 역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금방금방 돌아볼 수 있고, 약간 떨어져서 절이라거나 유적지, 혹은 과거 토성의 흔적같은 게 산재해 있다고 한다.

다자이후 역에 가면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고, 거기서 빌려서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별로 의지가 없어서였는지 찾지 못했다. 후쿠오카(텐진)역에서 다자이후까지 가는 법은 위와 같음.ㅋ


다자이후 역에 내리면, 다자이후덴만구 이외에도 고묘젠지, 그리고 교토박물관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고묘젠지는

'고케데라-이끼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끼로 육지를, 흰모래로 바다를 표현한 정원과 돌로 '빛 광'

(光)자를 써놓은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단풍과 진달래로 유명한 사원이라고 한다.
고묘젠지 입구 모퉁이길에 세워져있는 볼록거울에 꽉 채워진 이웃집 풍경.

고묘젠지는 다자이후텐만구를 돌아보고 나오다 보면 빠지는 조그마한 샛길따라 나타난다.

고묘젠지,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했었는데 한자를 보니까 좀 풀린다. 광명선사..구나. 안내판의 한자들을 띄엄띄엄

읽어보니 임제종 계열에 속하는 철우원심스님이 약 700년전 창건한 절로서 다자이후텐만구의 결연사라는 거 같다.
절 앞측 정원은 열다섯개의 돌이 빛광자를 나타내고 있다는 큐슈 지방의 유일한 석재정원이라는 듯 하고, 절

내부의 정원은 육지나 섬을 이끼로 표현했고, 하얀모래로 바다를 표현했다는 것 같다. 음...어디까지나 내 맘대로의
해석.ㅋ

들어서려는데 현판의 초록빛이 이목을 끈다. 아마 이끼사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의 특징을 감안해서겠지만, 녹색을

사용해 저런 편액 글씨를 써놓은 것은 처음 봤다. 대문 너머 붉은 단풍과 어울려 산뜻한 느낌을 준다.

대문을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하얀 돌 가득 깔린 앞마당 정원. 여기가 아마도 빛 광자 모양으로 돌들이 늘어서

있다는 곳일 텐데,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 글자, 光자가 나타난다는 걸까. 외려 눈에 띄는 건

저토록 완벽하게 고랑이 파인 바닥. 긁개 같은 것으로 잘 가다듬어 놓은 거같은데, 그 이랑 틈새에 단풍잎들이

내려앉아 더욱 선명히 굴곡을 드러냈다.

고묘젠지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큰 방, 방 앞쪽에 마치 무대처럼 꾸며져 있는 이 조그마한 단상과 좌우에 도열한

그림 그려진 문짝은...뭘까. 뭔가 이 신사의 중심부가 여긴가 보다 싶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러 왔는지 검은

옷의 사람들이 이 곳에 무리져 있기도 했고.

이제 절 내부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사실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았고, 모두들 목조건물 대청마루랄까, 내부를

향해 펼쳐진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에 서서 정원을 감상했다. 하얀 모래로 바다를, 초록색 이끼로 땅을 표현했단

설명이 그럴듯 하다. 그렇담 저 튀어나온 괴석들은 바다에 불쑥대며 솟은 섬들이겠고, 저 나무들은...땅덩이의

사이즈와 비례해 생각하건대 거의 하늘을 꿰뚫만큼 높이 솟은 신목이겠군.

이런 정원을 밟게 해놨다면 얼마나 쉬 망가지겠냐만서도, 한번 저렇게 그림같이 잘 꾸며진 정원을 거니는 것도

정말 운치있고 행복할 거 같다. 저 하얀 자갈들의 바다는, 밟을 때 자갈자갈 소리를 내지 않을까.

고묘젠지 본건물과 옆의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뭐가 나올까 해서 살짝 들여다봤더니, 경읊는

소리와 함께 꽤 많은 사람들, 아마도 가족들이 제를 지내고 있었다. 여긴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곳이었던 게다. 자연 발걸음소리도 더욱 죽이고 걷게 되었다.

이런 식의 대청마루, 혹은 열린 복도. 건물과 바깥 마당을 막고선 저 울타리가 있으니 마루라기에는 좀 그런가.

11월 중순의 일본 후쿠오카, 처마지붕 아래 단풍이 연하게 든 나무들을 담고 싶었는데..지붕 아랫도리가 너무

어둡게 나왔다.

건물 벽면을 따라 쭈욱 돌면서 정원을 완상하다가 한 컷. 정원과 건물 사이를 가르고 있는 저 경계가 선명한 걸

보면, 정말 이 정원은 두고 보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같긴 하다. 흔히 일본과 한국, 중국의 문화적 차이를 담벼락

높이가 거의 낮고, 조금 높고, 매우 높다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저렇게 부여하곤 하는데, 정원만 두고 보면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보통 도매금에 묶이곤 하는 것 같다. 한국의 '자연미'에 비해 중국과 일본은 너무 인위적이라거나

특히 일본은 인간과 유리된, 감상용으로서의 정원을 꾸민다거나. 모종의 가치평가가 내재된 그런 지적을 꼭

따르고 싶지는 않지만, 여긴 확실히 그런 감상용 정원이긴 하다.


다만 그런 '감상용'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성을 생각해 보자면, 저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채 차를 한 잔 한다거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면..굳이 유리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당장 유센테이코헨같은 정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면서 풍경에 녹아들었으니, 꼭 "일본의 정원은 이래"라고 말할 것도 아닌거 같기도 하고.

옆건물로 건너가는 길, 조그마한 다다미방안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 격자무늬 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조그마한 물받이 돌그릇...이거 대체 이름을 뭐라고 해야할지 원...에 뭐가 있다고 저렇게 불편한 자세로 몇분씩

카메라를 들이대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 그 열의가 좋았다. 그리고 대체 무엇을 찍으시는 건지 무지하게

궁금해져서, 옆에서 여기저기 얼쩡거리며 구경하다가 드디어 빈 자리를 꿰어차고 들어앉았다.

아..!! 작게 탄성이 터졌다. 그 안에 단풍나무가 담겨 있었다. 물에 비친 선연한 붉은 빛의 단풍나무.

옆에는 정말 제대로 된 마루에서 사람들이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을 보기도

하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이 노는 것에 때론 눈길을 빼앗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유유자적하는

분위기. 뭔가 이 곳은 다른 질감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앉아서 보고 있던 풍경. 11월인데, 아직 대세는 청량한 초록빛이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가지런히 정리된 게다와 담백한 나무질감의 서랍장이 차분하다.

고묘젠지의 가을 풍경.

그래도 제법 울긋불긋한 느낌인데다가, 하얗게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지붕에 서렸다.

2층으로 올라가 난간을 잡고 내려본 고묘젠지의 앞면 정원. 완벽하게 빗살무늬가 새겨진 하얀 자갈정원바닥에

빨간 단풍잎이 고랑마다 내려앉아 더욱 선명하다.

고묘젠지를 들고나는 입구. 엉성하게 연두빛 잎사귀를 틔운 나무가 시야를 가렸다.

뭔가 그럴듯한 포스를 풍기며 가지를 사방에 뻗어나간 붉은 단풍.

2층 지붕에 살짝 가려진 단풍나무. 얼핏 보면 지붕에 불이 붙은 것 같지 않냐...는 강변이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한바퀴 돌고 잠시 정말 대청마루에 앉아서 좀 쉬었다. 나무의 원색을 최대한 끌어낸 채 별다른 채색이 더해지지

않은 담백하고 단정한 건물이, 붉고 푸른 주변 풍경에 더해져 제법 화려한 느낌도 풍긴다.


"위험하다!!"라는 표지판이 산책로와 산책로가 아닌 건물옥상 어딘가를 구분해 놓은 이곳은 후쿠오카 한 복판의

계단정원을 품은 건물, 아크로스 후쿠오카. 계단식 건물 옥상 가득히 펼쳐진 녹지에 구불구불 나있는 산책로를

빗겨나면 왠지 건물 내부 어딘가로 쿵,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이 엉성한 한국어로 된 경고판때문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었다.


후쿠오카 한복판에 나무가 무성한, 비탈진 야산같은 건물이 있다고 들었다. 여행을 다니며 건축물 순례를 하는 건

좀 내키지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르쇠 스킵할까 하다가, 텐진 중심부 근처길래 설렁설렁 산책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후쿠오카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개천, 물이 마르는 겨울철 11월이라 그런지, 아니면 수량 자체가 원래 풍부치

못했던 건지 물이 잘박잘박하다. 유속도 그렇게 빠르지 않아 수면 바닥에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고 냄새도 조금

풍겼다. 이걸 또 '신화적인 돌파력'을 가졌다는 어떤 사람이 본다면 싹 갈아엎고 수돗물을 흘려보내자고 할지 모를

일이지만..그래도 여긴 선진국 일본이다.

지나가며 잠시 들러본 섹스샵. 일본이라 좀더 특이한 게 많지 않을까 했는데, 올 여름 파리 몽마르뜨언덕 아래의

섹스샵거리에서 봤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파리여행] 물랑루즈 거리의 홍등가.)

단물이라곤 한방울도 남지 않은 '지구촌시대'라는 단어를 빌어 생각하자면, 사람들 혹은 남자들의 성적 취향과

자극원까지도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화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AV와 정체불명의 옷가지들,

중국제 성인용품의 세례를 받고. 성의 영역에서도 개별성과 고유성은 지켜져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한국

고유의 섹스샵, 고유의 성인 문화..머, 이미 뭔가 차고 넘치도록 있긴 한 거 같긴 하다만 그런 유흥문화말구.

지도에 따르면 대충 요  신호등을 건너 작은 다리만 건너면 바로 계단식 숲처럼 꾸며진 건물,

아크로스 후쿠오카가 보여야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머...여느 거리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높이의 반듯한

건물들 밖에는, 딱히 시야를 잡아끄는 것이 없어서 갸우뚱대며 파란 불 횡단보도를 건너다.

아..가까이 가니 네모반듯한 한 켠이 점차 무너져 내리며 땅바닥까지 끌리는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반짝이는 건물 외관에 동강동강 비쳐지는 맞은 편 건물의 적나라한 토막 마술쑈까지.

건물을 따라 쭈욱 걸었다. 무슨 야구장 스타디움같은, 계단식 관중석이 있는 원형돔을 종으로 절단한 내부를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맨들맨들하게 절단면이 빛나는 걸로 보아 상당한 고수의 실력이다.

아크로스 후쿠오카에서 잠시 내 시선을 돌리게 했던 건 이 폭주족틱한 복장의 자전거 아저씨. 그렇다, 아저씨.

뒷모습만 보면 젊은 애가 뭔가 주렁주렁 매달고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싶지만, 사실 앞을 보면 살짝 주름이 얹히기

시작한 연세의 아저씨라는.

아크로스 후쿠오카, 이 건물은 애초 국제회의, 문화, 정보 시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실제 내부는 그다지
 
색다르진 않았던 것 같고, 건물 한쪽 사면을 층층이 타고 올라가는 저 녹색의 물결이 정말 신기했다. 좀 만화같기도

하고, 왠지 열대우림지대의 오랜 옛 유적을 타고 올라가는 짙푸른 녹색 덩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여튼간에

저 계단식 정원은 건물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산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크로스 후쿠오카의 녹색 계단과 맞닿아 있는 자그마한 녹지는 바로 텐진 중앙공원.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기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한쪽에서는 젊은애들이 빈 플라스틱 술병을

들고 묘기를 연습중이다. 뭔가 했더니 아마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가보다. 다양한 모양의 병을 가져와선

저글링도 하고, 둘이 주고 받기도 하면서 병이 깨질 염려가 없는 잔디밭 위에서 오래오래 연습을 했다.

저렇게 배경으로 초록빛, 드문드문 붉은 단풍빛이 가득 얹힌 건물의 완만한 경사면을 두고 있으니 풍경이 무지

나른하기도 하고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텐진 중앙공원의 놓인 벤치, 적당하게 뒤로 누운 벤치에 반질거리는 짙은 나무색이 사람을 부른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얹힌 그 녹색 계단식 정원에 오르는 첫 관문. 이 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다들 올라갈

수는 있는데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는 식의 말만 있어서 난 끝까지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뭐, 좀 꼬불대며

올라가야 하는 거 같긴 했지만 우거진 수풀 때매 제대로 길은 안 보였고, 까짓 길어봐야 건물도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얼마나 걸리겠냐 싶어, 출발.

조금 올랐다 싶어 길을 되짚어 돌아보니 '풀떼기'들이 금세 시야를 막아섰다. 좀 가다 좌회전 한번, 또 좀 가다가

우회전 한번, 얼마후 다시 좌회전, 이런 식으로 우르르~ 좌르르~ 스텝정원을 올라섰다.

거의 다 올라왔다 싶을 즈음, 유난히 붉은 잎사귀를 소담히 얹은 여윈 나뭇가지가 후쿠오카 시내를 덮었다.

꼭대기에 올라와서 내려다본 아랫마을 풍경. 건물만 빼곡한 공간과, 이 곳 아크로스 후쿠오카가 품고 있는 작지만

짙은 가을숲, 그리고 텐진 중앙공원의 느낌이 영 다르다.

사실 전망대는 1미터 정도 위에 따로 설치된 공간이 있지만, 문이 닫혀있다. 아마 목욕탕 휴일 표시하듯 빨간 색

글자로 토,일,휴일을 적어놓은 걸로 보아 '정기휴일'이겠거니 하고 별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머 사실 조금 위에

더 올라서서 보나 지금 여기 높이에서 보나 비슷한 거다. 게다가 후쿠오카시의 마천루라는 게 상당히 나지막해서,
 
그러고보니 여기보다 높은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여기 앉아 혼자 빵과 우유를 먹던 아가씨도 내려가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는

멍하니 아랫쪽 어딘가를 바라보던 양복쟁이 아저씨도 내려갔다. 슬 그림자도 길어지고, 문득 바람이 차다고 느껴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침 등장한 경찰관 아저씨, 내가 한국인임을 한눈에 알아보곤 말보다 행동으로,

내려가라고 연신 손사래를 친 덕분에...마치 쫓겨내려오듯 후다닥.

내려오는 길은 반대방향으로. 그니까 오른 길을 되밟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아크로스 후쿠오카를

좌우로 헤집으며 내려가는 길. 아까 오르면서 만났던 빨갱이 단풍보다 더욱 선명하고 짙은, 그래서 더욱 이뿐

단풍을 만났지만 살짝 사진 한장 찍고 말았다. 사실은 단풍잎을 챙겨오고 싶었는데..경찰관이 계속 따라내려오며

지켜보는 바람에 엄두도 못냈다는.

내려오고 나니, 경찰관이 왜 그렇게 몰듯이 따라내려왔는지 알 거 같다. 애초 정원에 올랐던 정원 입구에는 오늘

더이상 입장이 불가능함을 알리는 표지가 있었고 문도 굳게 닫혀있었던 것. 아마 경찰은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은

혹시 없는지 살피면서 한번 코스를 순회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나랑 계속 겹쳐서 내려왔던 게다. 내 뒷통수가

솔찮이 따갑다고 느꼈던 건...아마도 과민반응이었던 듯. 하기야 이렇게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워낙 군데군데

으슥한 곳이 많아서 자칫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겠다.

텐진 시내로 가서 저녁을 챙기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어느덧 해도 많이 기울었고, 건물빛은 다소

둔탁해진 느낌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고풍스런 옛 대리석 궁전과 철재와 유리 재질의 유리 피라밋을 하나의

풍경안으로 잘 엮어낸 느낌이라면, 여기는 건물 하나에 자연의 영역, 그리고 인간의 영역을 오밀조밀하게 중첩해

놓았다는 느낌이랄까.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지 싶고, 또 한번 들렀다면 꼭 올라가볼 만한 계단식 정원이었던

것 같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경사도 완만해서 슬슬 오르기 딱 좋은 동네 뒤 야산같은.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명박대통령이 한-중-일 삼국 정상회담을 하러 간 곳이 후쿠오카랜다. 귀를 쫑긋 세우고,

찍찍대는 소리는 적당히 걸러가며 듣다보니 어라, 후쿠오카 큐슈국립박물관에서 원자바오 중국총리랑 아소 다로

일본총리를 만났대는 거다. 불과 몇주전 내가 갔던 그곳을 뒤따라와서 정상회담을 했구나, 하는 맘에 반가워서

여행다녀온 내 이야기를 부랴부랴 포스팅.


그나저나, 이명박대통령을 줄여서 쓰려다보니 이명박통이 된 건데...왠지 이거 의도치않게 와닿는다. 이명朴統.

우선 기차를 탄다. 다자이후텐만구와 인접해 있어서 아예 날잡고 다자이후텐만구, 고묘젠지, 그리고 규슈박물관을

돌아보면 반나절 내지 하루코스가 될 거 같다. 나 역시 아침 일찍 다자이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소풍가듯 그곳을

향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함께 설레하며 출발.

니시테쓰(西鐵) 다자이후역에서 내리면 이렇게 영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병기되어 있는 표지판들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준다. 일본과 한국, 참 가까운 나라이긴 한 거 같다. 서로 왕래가 이만큼 잦으니만치

관계도 그만큼 좀 친근해졌으면 좋겠는데, 참 간단한 일일 수도 있을 텐데 좀체 어렵다. 예컨대 서울, 부산, 도쿄,

후쿠오카의 사이즈를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도쿄에서 지방의 영양분을 모두

취하면서 각자의 존재감을 경쟁하고, 자신들이 마치 한국과 일본, 그 자체인양 비대한 몸집을 흔들며 상대보다

앞서기 위해 부산의, 후쿠오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준만교수가 쓴 지방은 식민지다, 라는 책을 요새 읽고 있는

탓일까. 모든 걸 중앙 지역, 일부 계층으로 집중시키는 블랙홀 혹은 기생충같은 몇몇 것들이 참 마뜩찮다.

다자이후 역 앞의 골목을 따라 쭈욱 걷다보면 깔끔하게 정리된 일본의 전통 가옥들이 늘어서있다. 전통가옥이라

할 수 있을지, 살짝 자신감이 없어지는데 뭐..일본에 대해 무지한 탓이려니 한다. 얼마전 월미도에 놀러갔을 때

차이나타운 귀퉁이에 옛날 일본조계였던 지역을 조그맣게 복원해두었던데 그때 봤던 단정하고 왠지 수줍은 집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음...막상 긁어오니까 별로 비슷하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그 깔끔하고 단정한 외관에서 느껴지는 '왜색'이란 게

공통적이라고 우선 우겨두기로 하자.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다자이후텐만구에 와 닿고,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큐슈박물관이랜다. 아직 관광객이

많이 들지 않은 거리에는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들만 분주하다.

마침 국화 품평회랄까, 뭐 그런 누가누가 국화 잘 키웠나 보자는 대회가 있나 보았다. 크고 작은 국화꽃들이 사방에

전시되어 있었고, 그 화분 옆이나 앞에는 아마도 출품자의 신상정보가 적힌 듯한 팻말이 함께 있었다.

주먹만한 꽃들이 눈을 부라리듯 화분 위에 딱 버티고 서있다. 어떻게 저렇게도 탐스럽게 키워냈는지, 꽃잎 한장

한장이 목련잎처럼 두툼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다자이후 관광협회장상, 다자이후시상공회상 등등 이아이들은

검증된 애들인 거다. 음...자세히 보면 저 무거운 꽃때문에 대궁이 처지지 않도록 빳빳한 마분지로 된 턱받침들을

하나씩 괴고 있다. 그렇지 않음 아마 몸을 못 가눴을 테니, 얘들 쫌 많이 심각한 대두다.

다자이후 큐슈박물관 가는 길에 마주치게 되는 조그마한 사원 미니어쳐 같은 구조물들. 한옥의 날아오를 듯 유려한

처마지붕도 멋지지만, 이런 처마 모양도 멋지다. 말아올리다 만듯 단정한 끝마무리로부터 급격히 배불러오른 처마

중앙께까지. 돌아봤던 신사들이나 다자이후텐만구나, 대충 지붕은 모두 이런 모양에서 딱히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자이후텐만구를 향할지, 큐슈박물관을 향할지 그 분기점쯤에서 재롱을 피우려는 듯 준비된 원숭이. 대체 무슨

재롱을 피우려나 보고 가려고 잠시 미적거리며 어슬렁댔는데, 이넘의 원숭이는 새초롬하게 빼고만 있고 외려

할아버지만 열심히 드럼(이랄까 북이랄까)을 두드리고 계셨다. 나중에 오는 길에 보니 결국 뭔가 사람들에 둘러

쌓인 채 재롱을 피우는 것 같긴 하던데.

큐슈국립박물관 입구. 다른 입구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다자이후텐만구쪽에서 들어서는 입구를 통하면

상당히 긴 에스컬레이터 구간을 지나야 박물관에 도착하게 된다. 얼핏 보아하니 저 뒷쪽의 산을 넘어야 박물관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명박통이나 중국, 일본 총리와 수행원들도 이쪽 길로 왔을까? 왠지 분명히 다른 곳에 또다른

입구가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렇게 불편한 곳을 감내할 만한 양반들이 아닐 텐데.

바로 오르막 에스컬레이터. 상당히 가파른 기울기의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길게 올라간다. 아마 한강 밑에까지

내려가고 혹은 밑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여의도역의 에스컬레이터 정도? 그정도로 길고 가파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올라서고 나면 다시 한동안 수평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이번에는 5호선 김포공항 역쯤에 있는 무쟈게

긴 그 수평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아..모든 걸 다 자신의 기존 경험과 지각에 어떻게든 맞춰보며

이해하고 소화시키려 애쓰고 있는 거다. 역시 그 양반들은 이쪽길로 안 왔을 거란 확신이 다시금 강해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터널을 지나, 불쑥 빠져나온 바깥에는 큐슈국립박물관이 냅다, 라는

느낌으로 덜컥 버티고 섰다. 일본의 국립박물관 중에서 가장 크다던가,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박물관'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들어가보고 이해했다. 일본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역사도 고루 소개하며 일본과의 비교문화사적 특징들, 그리고 상호 교류한 흔적들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아이들 놀이방같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서는, 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는 곳인거 같아 들어가봤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붙어있는 발바닥 모양을 하나씩 꼭꼭 짚어가며 들어서니, 정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아시아 각국의 아이들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도 있고, 전통놀이같은 것도 가볍게 체험할 수 있게 해뒀다. 시간대에

맞추면 뭔가 체험학습도 벌어지는 공간인 듯. 속내야 어쨌든 외견상 많이 어른인 만큼, 냉큼 나와버렸다.

박물관 입구에 높이 서있는 이건 뭘까, 구시다신사에서도 비슷한 걸 봤었는데, 뭔지를 모르겠다. 뭔가 축제나

행사 때 쓰이는 조형물인거 같긴 한데, 사람이 딱히 탈만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리고 저 인형들은

보기에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음...그나마 여기 출연한 사람들은 뭔가 근대의 복장과 근대의 제스처-한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한다던가 하는 등의-를 취하고 있어서 이질감이 덜한 편이다.

뒷면에 있는 이 아저씨들, 누님들은 대체 왜이리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거냐고. 마치 케이블에서 드문드문 봤던

일본 애니 '지옥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 그리고 몸짓이다. 대체, 다시한번 대체, 이게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걸까 궁금해 죽겠다.

더구나 그 탑이랄까, 인형들이 층층이 버티고 선 조형물이 놓인 곳이 이렇게 양광이 찬란히 스며들어오는 단정한

현대식 건물이란 데서 더 부조화스런 느낌이 커졌던 거 같다. 음...잊고 있었는데, 그래서 여기서 이명박통이 일본,

중국총리와 만나 삼국 정상회담을 했다는 거다. 박물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건 다른 무미하고 삭막한 회의장에서

하는 것보다 인문학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왜 좀체 그런 아우라가 안 씌워지는 건지.

안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나오는 길, 왠지 요 '간판' 앞에서 다녀왔음다~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유치하게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하냐는 거부감 사이에서 심적 갈등을 일으키던 사이 놀러온 일본 여학생 두명이

헤실대며 바로 여기서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난리가 났다. 저 동그란 '간판'을 힘주어 미는 척도 해보고, 둘이

셀카를 찍기도 하고, 약간 떨어진 채 지켜보고 있던 나를 살짝 의식한 채 신나라 하길래, 그네들이 떠나고 나도

사진 한장. 저 사진 너머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그 뒷길을 걸어보고도 싶었지만 마음만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쭉 내려오고 나니 아까 미처 못봤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큐슈국립박물관 입구라고 했던 건물

맞은편쪽에 있는 자그마한 놀이공원. 한눈에 보기에도 월미도 놀이공원 사이즈인데, 그래도 꽤 산뜻하게 꾸며놓은

듯 했다. 입구까지 조금 걸어서 무슨무슨 놀이기구가 있나, 가격은 얼마인가 한번 알아보기나 할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돌아서버렸다.


일본식 포장마차를 '야타이'라고 한댄다. 후쿠오카엔 나카쓰쪽 야타이가 유명하다고는 하던데, 가기 전 귀동냥한

팁들에 따르면 그쪽은 이미 많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더럽혀졌다'고 했던가. 바가지도 심하고, 맛도 그냥

그렇고, 친절하지도 않은 것 같다는 중평이었다. 우선 나카쓰쪽 야타이를 구경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텐진쪽

야타이를 가기로 맘먹고 호텔을 나섰다.
자전거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텐진의 거리.

텐진 기차역 부근의 횡단보도, 해가 살짝 뉘엿거리며 넘어가는 시간대, 택시기사 아저씨는 벌써부터 차에 조명을

밝혔다. 퇴근하고 번화가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이 확실히 늘어나서 거리는 더욱 붐비기 시작했다.

텐진(天神)역의 사통팔달한 지하상가 내 점포들은 10시부터 20시까지 영업을 한댄다. 그리고 통로의 개폐시간은

새벽 5시 반부터 24시 반이라나. 지하상가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아무 구멍으로나 나서서 조금만 걸으면 저녁엔

금방 야타이를 찾을 수 있다.

텐진 지하상가는 11월 중순부터 이런 치장을. 아마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단장한 듯 한데 뭔가 유치하고 엉성해

보인다. 그치만 지하상가 천장을 온통 파란 불빛으로 치장하고 나니 어쨌든 크리스마스 기분은 살짝 동하는 듯.

서울도 명동지하상가나 강남지하상가 천장을 저렇게 꾸며놓으면 조금은 더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까. 이제

12월도 중순인데 그다지 서울 거리에서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질 않는다.

길가다 마주친 야타이. 윙버스에서 추천하는 야타이 위치들과 가게 이름을 뽑아오긴 했는데, 그걸 보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그냥 아무 곳이나 내키는 곳을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느 곳에 무엇이 있더라, 하는 후기를

참고해서 굳이 그곳을 찾다보니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가게들 사이에서 괜히 거길 고집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그렇게 꼬리잡기하듯 뱅글거리며 골목길을 돌던 중 마주친 자판기에서 식권을 뽑아 주문하는 라멘집,

그치만 살짝 촌스런 노랑초록파랑 불빛이 일렬로 늘어선 '누름'버튼에는 메뉴가 지정된 것보다 비어있는

버튼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자판기는 정반대, 빈틈없는 진열과 누름버튼으로 전면을 메우고 있다.

일본을 두고 자판기의 왕국이라고도 하던데, 정말 이렇게 빼곡한 담배 자판기는 무시무시한 포스가

느껴진다. 네모난 담배갑의 오와 열을 딱 잡고 늘어세워서는, 왠만한 편의점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많은

종류의 담배를 팔고 있는 자판기.

도시의 야경. 후쿠오카시의 중심가, 큐슈지방 최대의 번화가라는 이곳은 그렇지만 서울보다는 조금 덜 복잡하고,

조금 덜 시끄럽고, 그리고 조금 덜 큰 거 같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도쿄 중심의 중앙집중식 개발이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를 대학교 때 무슨 강의에선가 들었었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과 수도 서울 간의 격차가 너무

현격하게 나는 것처럼, 아마 도쿄와 후쿠오카간에도 그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문득 그 네 도시간의 부등호 관계가 궁금해졌다. 도쿄>서울, 서울>후쿠오카, 후쿠오카>부산? 부산>후쿠오카?

자리를 잡고 들어간 야타이, 이미 아저씨 세네명이 정면에 앉아 잡고기탕에 아사히 병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한 직장동료인 것처럼 보이는 형님누님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이번에

후쿠오카를 다녀와서, 일본사람들이 조용하다느니 타인을 배려한다느니, 깨끗하다느니, 그런 식의 '상식'에

반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왔다. 택시 기사들은 보행자 신호임에도 횡단보도를 무시하는가 하면, 전혀 조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위를 아랑곳않고 떠드는 식당, 호텔 로비..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무지 반가워하면서 오래전에 누군가 꼽아두고 간 한글 명함을 수고로이 찾아 보여줬다.

후쿠오카에 다녀간 누군가 이곳이 맘에 들었었나보다. 약간의 취기가 묻어나는 글투로, 행복하세요~ 랜다.

오뎅도 맛있고, 뒤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건 잡고기들이 잔뜩 들어간 탕이랄까, 그냥 간단히 잡고기탕 정도.

그거랑 따뜻한 사케 한잔을 마시자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주앉은 형님누님들과 영어를 빌어 말도 섞고

간단한 생존 일본어를 선보이기도 하고. 대머리 주인아저씨 미소가 푸근했다.

말이 안 통한다네, 바가지를 씌우네, 온갖 조언들을 명심하고 왔었지만 이건 너무 쉬웠다. 짧은 몇마디에 마음이

훈훈해졌었고, 주인 아저씨는 한국에서 왔단 얘기에 어찌나 반가워하며 신나하시던지, 경계심이 녹아내렸다. 

잡고기탕 한 그릇, 오뎅 다섯개, 따뜻한 사케 세 잔 정도시켰던가, 1300엔밖에 안 나와서 내일 또 와야지 했었지만.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때 아쉬운 건, 맘에 들었던 곳을 다시 한 번 찍을만큼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뭘

먹어도 맛있고 어딜 가도 좋으니..계속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거다. 대체 얼마쯤 되는 일정이어야 긴 거냐고, 얼마쯤 되야 갔던 곳을 다시 찾겠냐고 묻는다면..글쎄, 그러고 보면

짧은 인생, 한끼를 먹어도 맛있는 것, 새로운 것을 먹겠다는 사람을 주위에서 많이 보는 것 같다.


가게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내일을 기약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은 힘들 테고 담에 언젠가 또 후쿠오카에 오게 되면

꼭 찾아보겠다고 다짐.

포장마차 안에 있는 동안 날이 더 쌀쌀해졌다. 따뜻한 사케를 마시고 풀렸던 몸이 다시 옹쳐매여지는 느낌의 추위.

입김을 내뿜으며 찍으려던 풍경에, 입김은 안 찍히고 술기운에 젖은 손가락의 떨림만 담기고 말았다.

텐진(天神)이라고 쓰인 왼쪽 끄트머리에 있는 숫자들은 몇번 버스인지를 나타내는 숫자들. 그리고 각 노선마다

쭉쭉 뻗어나가며 지나치는 정류장들을 그려놓고는 일정 구간을 넘어서는 순간 할증되는 금액들이 빨간 색으로

적혀있다. 예컨대 하카다역(博多驛)즈음까지는 100엔, 그 이후부터는 220엔.

게다가 평일(월-금), 토요일, 일요일 버스시간표가 다 따로 게시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막차 시간이 이르다. 조금만

더 미적거리다 일어났으면 텐진서 하카다역 근처 숙소까지 걸어가야 할 뻔 했다. 택시비는 무지하게 비싸다는 얘길

어디선가 또 들어놨어서.

집에 오는 길, 하카다역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도요호텔 앞길이 나온다.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앞에서 다코야끼를

팔고 있는 게 보인다. 왠지 일본의 다코야끼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차선 방에 가서 술안주 삼아 2차

술판을 벌여야겠다 하고 냉큼 샀더니, 녹차 캔음료 두개에 사탕 두개, 게다가 물티슈까지 두개 바리바리 비닐봉지

안에 챙겨주는 거다. 따로 다코야끼 위에 뿌리는 가쓰오부시도 챙겨주고. 오....이런 친절하고 세심한 서비스라니.


다코야끼 자체는 서울에서 먹어본 것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문어냄새가 조금 더 풍기는 거 같다는 호의 섞인

편향된 느낌과 약간 더 쫀득한 거 같다는 역시 호의 섞인 주관적 식감을 제하고 나면, 녹차캔 두 개와 사탕 두 개,

물티슈 두 개만큼, 그리고 그걸 건네주던 아저씨의 살가운 미소만큼 더 맛있었다는 게 정확할 듯. 


해가 갓 떠오르려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부산 후쿠오카를 향하기 직전이다. 한번 꼭 가보아야

겠다는 생각만 하다가, 문득 생겨난 찬스에 얼씨구나, 하면서 올라탔다. 비록 언제 환전하는 게 좋을까 환율추이를

보던 며칠새 백원씩 급등하는 환율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후쿠오카에 뭐가 있는지, 서울에서부터 어떻게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을지 요리조리 따져보면서 여행 자체보다 좋기도 하다는 '여행의 전희'를 맘껏 누렸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리면 바로 KTX입구 오른쪽으로 이렇게 순환셔틀버스 승차장이 있다. 전철역으로

한정거장, 부산역-중앙동역(여객터미널이 있는) 구간을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은, 그렇지만 7시 50분 가까이

되어서야 첫 차가 운행한다. 내가 탈 배는 오전 8시 30분 출발, 한시간 전까지는 안전하게 도착하라 했으니..셔틀은

아쉽지만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기본요금 거리, 참 부산 택시의 기본요금은 1900원이다.

11월 중순에는 그래도 기름값이 꽤나 내려간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오를 때와는 달리 그렇게 금방 반영되지는 않는

듯 하다. 왕복 뱃삯 이외에 유류세가 부과되는데, 부산에서 갈 때는 삼만원, 후쿠오카에서 올 때는 이천엔. 100엔에

대략 1500원 이상하고 있으니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금액의 세금이 부과되는 셈이다. 거기에 더해서

부두 이용료도 내야 한다. 부산에서는 3,200원, 후쿠오카에서는 500엔. 가기 전 인터넷이나 여행사를 통해 정확한

액수를 알아보려 했지만 워낙 변동이 심한 탓인지 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정확한 금액을 확인했다.

드디어 출발, 부산서 후쿠오카까지 고속으로 주파하는 이 배는 수면위 2미터를 부상해서 달린다고 한다. 왜 그

호버크래프트처럼 공기를 분사해서 떠 있는 건지, 아님 다른 뭔가 원리가 적용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엔간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3시간이면 충분히 후쿠오카에 닿는다고 했다. 푸른 하늘에 날아가는 갈매기떼들이 부럽지

않게도, 드디어 비행기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으로 외국을 밟게 되는구나, 싶은 느낌. 배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니,

 한'반도'라곤 하지만, 기실 섬나라에 살고 있었단 실감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고속여객선의 실내. 상당히 안락한 의자에 넓찍한 공간까지. 우등고속버스, 혹은 그 이상으로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보통 배를 타면 느끼는 파도모양의 율동감이 거의 안 느껴졌다.

깔끔한 식판거치대에 배 안내문, 면세품 이용안내문까지 가지런히 꽂혀있다.

옆에 지나치는 저 배는 대마도로 가는 배란다. 최근 일본 우익세력이 대마도의 실효적 지배권이 한국인에게 넘어

간다느니 어쩐다느니, 결국 독도를 노린 술수를 부리고 있다지만, 어쨌든 저 배에 타는 사람은 그렇게 많아보이진

않았다. 실제 대마도땅을 한국인이 매입한 것도 고작 0.5%라던가, 그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엄살쟁이 우익들.

배는 이렇게 부산항의 등대를 지나,

망망대해를 달렸다. 시속 80킬로미터라고는 하지만, 어디 하나 기준잡을 곳이 없는 망망대해인지라 그 속도감이

별로 실감이 안 난다. 다만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는 느낌, 파도 따위에 아랑곳없이 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다. 이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배가 아니라 수면 위 2미터 수준으로 공중부양한채 달리는 배인 거다.

한 세시간 가까이 지날 즈음, 우리가 가는 곳에서 오고 있는 여객선이나 고깃배들도 보이고, 첨엔 쪼그만 점처럼

보였던 섬들이 금세 부풀어오르더니 시야 뒤로 사라져 버렸다.

저기 조그맣지만 분명하게 형체를 드러낸 대형 관람차가 있는 곳에서 후쿠오카 인근 여행명소가 시작되는 거다.

저기가 이름이 뭐였더라, 후쿠오카에서 배를 타고 조금 가야 하는 곳이라고 봤던 거 같은데.

하카다항에 거의 도착할 즈음, 배의 속도가 완연히 늦춰졌다는 느낌과 함께 입국 안내가 시작되었다. 양손가락

지문을 모두 요구하는 일본의 과도한 입국 심사가 인권 침해라는 비판도 많지만, 사실 주권국가 일본이 그러겠다면

딱히 외부에서 막을 방법은 없는 거다. 일본에선 일본 법을 따라야 하는 건 기본이요, 들어갈 때도 일본 법에

따라야 저런 '입국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협박에 쫄지 않을 수 있는 거다. 그치만 이미 저런 흉악한 안내문 자체로

살짝 심리적 위축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얼마전 내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이야기에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 아니, 한국정부도 못 믿는데 일본정부는 어떻게 믿냐 말이다.

하카다항에 배를 대고 세관으로 올라서는 길, 부산까지 213킬로미터임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있는 항만의 건물.

웰컴투 후쿠오카, 세관을 거치기 전이라 그런지 촘촘한 그물이 일본땅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세관을

통과해야 비로소 그물이 걷힐 테고, 그러고 나서 맘껏 후쿠오카를 거닐어주겠다고 두근두근.

부산발 후쿠오카행 고속여객선 티켓. 배는 1층, 2층으로 나뉘어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볼 게 없었다. 그리고 시속

80킬로-실감나지는 않았지만-로 달린다는 배답게 선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놓고, 듬성듬성 설치된 티비로

영화를 상영해 주었다.


일본에 왜 이렇게 고양이들이 많은지, 그리고 고양이를 소재로 한 만화, 액세서리, 소품들이 다양한지 모르겠다.

이유는 몰라도 고양이가 눈에 띌 때마다 꺄아~ 하며 쫓아가선 사진을 찍기 수차례, 제풀에 지쳐서 나중에는 옆에

고양이가 멀뚱히 날 좀 찍어줘, 라 해도 애써 외면하고 지나기도 했다.
하카다역 근처 캐널시티 쇼핑몰에서 만난 고양이 인형. 이 므훗한 표정하며, 두손곱게 모아쥐고 투명한 유리공을

받쳐든 폼하며, 번들거리는 T존까지. 입꼬리, 혹은 눈꼬리가 어떻게 살짝이라도 비틀리느냐에 따라 표정과

느낌이 그야말로 천양지차로 바뀌고 만다. 당장 요 두마리도, 조금 덜 과감하게 웃은 왼쪽 녀석이 상대적으로

다소곳하고 순한 느낌이라면, 오른쪽 녀석은 왠지 잔뜩 장난꾸러기 같다.

후쿠오카 대로변의 한 주차장에서 등을 웅숭그린 채 사주경계 중인 호랑무늬 고양이. 복슬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앞발이 귀엽다.

구시다신사였던가, 신사에 있는 소원적는 나무판에 그려진 고양이. 축 늘어진 볼살을 그려내고 싶었던 듯 한데,

왠지 어색한 주름살로만 보인다. 그래도 천금과 만복을 가져다주는 고양이라니 번쩍 쳐든 앞발과 살짝 초점잃은

시선이 귀엽다고 치자.

큐슈지방에서 최대 규모의 잡화 전문점이라는 텐진 니시테츠 야쿠인역 인근 INCUBE 매장을 둘러보다가 한켠을

가득 메운 고양이에 혹했다. 섬세하고도 자부심강한 야옹이들의 러시.

하카타역 옆의 쇼핑몰 커낼시티를 걷다가 마주친 또다른 고양이들. 자세히 보면 사슴, 돼지, 토끼 등속도 보이지만

내겐 전부 고양이로 보인다. 특히 저 까만 고양이가 자꾸 눈을 당긴다.

텐진, 나카쓰 거리를 걷다가 문득 뒷통수가 근질거려 돌아본 곳에 버티고 앉았던 두 마리 얼룩 고양이. 깜장이랑

하양이 굵게 얼룩져 있는데, 두마리 다 콧등성이에만 조그맣게 검은 얼룩이 두드러진다. 도망가지도, 겁내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당당한 녀석들.

다시, 인큐브(INCUBE) 매장에서 만난 깜장 고양이. 저 몽환적인 눈빛과 축 늘어진 사지하며, 따스하고

살짝 거친듯 부드러운 느낌의 재질하며. 은빛 단추로 표현된 코와 은은히 웃고 있는 입 모양까지.

그러고 보니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던 체셔 고양이 때문이었던 듯.

몸뚱이만 서서히 지워져 나가고 난 후에도 그의 웃음소리는 남아서 사방을 울렸다는 그 입째진 고양이의

독특한 캐릭터와 카리스마가 좋았다. 

초점이 뒤에 있는 황금거북이한테 맞아 버렸는데, 요 두마리 고양이 장식품도 참 이뻤다. 심플하게 표현된 바디와

머리 위 장착된 두 개의 똥글똥글한 안구까지. 유려하게 슬쩍 웨이브를 탄 꼬리의 곡선도 미끈하다.

온갖 동물들이 인형으로 만들어지지만, 얼마전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산 이뿐 낙타인형과 더불어 이렇게 귀여운
 
고슴도치 인형은 본 기억이 없다. 보드랍고 포근한 느낌의 고슴도치.

실사 고양이인형..이랄까. 땡그란 눈을 두리번대는 것 같은 왼쪽 녀석도 귀엽고, 살짝 자긍심에 차 업되어 있는

느낌으로 코를 들어올린 오른쪽 녀석도 귀엽다. 어리버리하지만 순해보이는 왼쪽 녀석과 야무지고 똘똘해보이지만

살짝 건방져보이는 오른쪽 녀석, 멋진 짝이다.

닥스훈트 밑에 깔린 새끼 강아지.

그리고 토토로~* 역시 인큐브의 잡화매장에서 찍은 건데, 한 코너가 온통 만화 캐릭터 상품들로 가득했다. 그 중

가장 눈여겨보았던 건 역시 토토로. 말도 몇마디 없고 단순히 행동과 표정만으로 존재감을 전달하는 이 캐릭터에

왜 그렇게 꽂혀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요녀석의 캐릭터상품을 내 사무실 책상에 꼭 올려놓을 생각.

당장 2009년 달력도 팔고 있었지만, 글쎄..1년만 놓고 버려야 한다는 건 좀 아쉽길래. 토토로 분수대를 사실 가장

갖고 싶다는.

만화의 나라 일본에서, 이런 식의 상품 설명 만화가 그려진다는 건 좀 굴욕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저

어색한 표정, 어색한 동작, 어색한 얼굴의 여자아이가 그려진 그림이라니.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밑의 아가씨는 저게 혀라고 빼물고 있는 건지 저건 뭔가 적잖이 속이 쓰려오는 그림.

일본의 음식점이나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보이는 본던져주는 고양이가 살짝 변형된 오른쪽 고양이. 이 아이는 다소

과하다 싶게 속눈썹을 그려놓아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나름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참해 보인다. 그래도 역시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저 왼쪽 므흣고양이.

이런 식의 아이디어 상품. 비록 메이드 인 이태리..라는 글자가 선명하지만, 여튼 일본에서 봤으니깐. 저런 깜찍한

시계는 하나만 덜렁 있음 왠지 별로일 듯 하고, 다른 고양이 컨셉 소품들과 함께 있으면 정말 괜찮을 거 같다.

저런 독특한 소품들에 따르는 일종의 '규모의 경제'효과랄까, 한두개로는 별로 괜찮단 느낌이 없지만 여러개가

뭉쳐 있어야 비로소 그 진가가 살아나는 듯한.

전혀 고양이나 동물과 상관없지만, 저런 관람차 모양의 액자, 혹은 회전목마 모양으로 실제 돌아가는

액자도 꽤나 참신한 아이템이지 싶다. 애기들 사진 꽂아서 곁에 놔두면 혼자서도 재미있어하며 잘

갖고 놀지 않을까.

텐진의 어느 펫샵에서 만난 고양이. 엄청 나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길래 장난삼아 살짝 톡톡 건드렸더니 귀찮다는

듯 몸을 딩굴거린다. 왠지 한손으로 다른 한 팔뚝을 잡고는 뻐큐를 날리는 것 같은 포즈, 그리고 시크한 저 표정.

얘들도 동물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커낼시티와 붙어있는 구시다신사에서 만난 상상속의

동물 녀석. 붉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 잘 못 봤던 거 같다.

보통은 이렇게 회색빛 돌을 깍아서 만들지 않나. 얘는 근데 왜케 복슬복슬해 보이는지, 푸들의 몸을 빌린 거 같다.

얘는 표정이 맘에 좀 안든다. 사람을 내리깔아 보는 느낌의 눈빛. 게다가 살짝 입꼬리를 말고 웃고 있다.

신성한 소라며 대접받는 소 동상도 신사에서는 흔히 보이는 것 같다. 딱히 귀여운 느낌은 없고, 걍 동물이니까

끼워 준 셈.

부록삼아. 이 아이는 동물인지 식물인지..명확치 않으나 유산균 캔디를 샀더니 그 사은품으로 딸려있던 걸로 보아

유산균이라고 봐야 할 거 같다. 유산균은...식물은 아니니 포함시키기로 하고, 사실 유산균 캔디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 휴대폰 고리를 갖고 싶어서 산 거였다. 꽤 귀여운 데다가 일본 여행의 기념품도 될 수 있을 듯하여.

일본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대폰에 달고 좋아라, 하면서 찍은 사진. 저 입모양은 딱 빙긋 웃는 모양이다.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곳. 901년 '우다이진(右大臣)'이라는 장관직에서 돌연 다자이후로 좌천된

미치자네는 2년 후, 이곳에서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 이 '텐만구(天滿宮)', 그니까

신사로서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학문의 뜻을 이루고 부와 행운이 따른다나. 시골마을로 밀려난 이사람이 왜 무려

'학문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지는...글쎄, 관직운과는 별도로 학문적 성취가 대단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다만 '학문적 성취'를 빌도록 특화되어 개창했을 이 신사가 언제부터 부와 행운까지 얹어주는 종합선물세트로

탈바꿈했을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사람들은 언제 어느시대고 그런 것들을 바라는 법인가 부다 싶다.

다자이후텐만구에 가는 길에는, 엔 기호처럼 생긴 저런 문을 몇개씩 지나야 했다. 어렸을 적 민족사관이니 뭐니에

빠졌을 때에는 우리나라의 솟대, 천군의 상징이 저 문의 원형이라더라, 라고 외치는 비분강개조의 목소리에 동해

합세했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가까운 지역이 영향을 주고 받는 건 당연한 거고. 과거를 금칠하는 건 곧잘

현재를 비하하고 부정하는, 과거로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초래하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한민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외려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그리고 과도하게 부끄러워하는 함정. 그러다가 덜컥

부국강병, 군사강국을 이야기하고 '다물'을 이야기하며 북벌이니 남벌이니. 심지어는 핵무장을 통해 무궁화꽃이

피었다고 비분강개조로, 혹은 격정적인 연설조로 눈물이 그렁그렁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유아적 발상.

그런 시끄러운 감정과잉의 것들보다는 차라리 요런 게 훨씬 좋다. 저 꼬맹이의 할머니뻘 되어 보이는 분이 아기를

들쳐앉고는 봉헌된 '신성한 소'의 옆에 바싹 붙어 사진을 찍고는,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빌었다. 조용히.

또다시 지나는 문, 조금씩 본전에 다가설수록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교육 문제가 심각한

곳이니만큼, 학업성취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 다자이후텐만구는 아마도 영원토록 무궁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은 얼핏 듣기로 대학교만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도 어딜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어쩜 여태껏 한국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미, 조만간 한국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상승해서

금방 따라잡고 또 추월할 거 같단 생각이 강하긴 하지만.

마침 이곳을 방문했던 날이 11월 15일, 일본 명절인 시치고산(753)이라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한 백일잔치나 돌잔치를 하듯 일본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주는 행사라고. 아이들이 무사히 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신사에 가서는
 
조상신에게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날이란다. 말그대로, 7, 5, 3살짜리 아이들을 위한 날.


정작 이렇게 이뿌게 차려입고 온 아이들이 꾸역꾸역 정말 쉼없이 신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무슨

중학교 입학시험이나 초등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막 치르고 왔나 했다.

저렇게 귀엽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양손에 잡은 어른 한 명, 그리고 카메라를 쥐고선 버둥대는 아이들을 열심히

지휘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어른 또 한 명. 그렇게 구성된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어찌나 귀엽고 앙증맞던지, 도촬 아닌 도촬이 계속되고 말았다는.

우리나라 산사에 오르면 입구에 시원한 샘물이 있듯, 후쿠오카에서 들어가본 모든 신사에도 그런 샘물이 있었다.

물맛이 좀 이상하다 싶어 그냥 손만 씻고 말았는데, 일본 사람들도 나이가 좀 든 사람들 아니면 딱히 마시는 것

같진 않다. 하기야 이런 신사가 한국의 절들처럼 산등성이에 버티고 서서 사람을 목마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보고 귀여워 죽겠다고 생각하면 결혼할 나이라고 하던데, 한 세네살쯤 되어보이는 이 꼬맹이 아가씨의 눈이

어찌나 말똥말똥하던지. 그치만 결혼은 아직.

커다란 붉은 등을 지나면 인제 다자이후텐만구의 본전이다. 흐릿하게 디테일을 죽여놓고 보면 색감이나 목조건물

양식이나 얼핏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요모조모 따지다보면 딱히 닮았다기도 민망하지 않을까

싶도록 달라 보인다. 부산에서 배타고 고작 3시간여 달리면 도착할만큼 가까운 곳인데, 사실 아는 게 없다.

본전 앞마당 좌측에는 점쟁이같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아이들과 부모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꼬맹이가 점을 본 건지, 부적을 산 건지, 흐뭇한 아버지는 한 손에 잡은 뭔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애기는 바싹

얼어있는 표정이다. 여린 눈, 여린 피부가 감당하기엔 가을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랬던 건가.

본전에 올라가 절을 하고 나오는 아이들에게 신녀, 라고 하나...그 누님들이 풍선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다홍빛

치마에 팔소매가 너풀대는 하얀 저고리, 그리고 반들거리는 긴 생머리를 정갈하게 동여맨 흰 머릿수건..(?)까지.

뭔가 단순히 전통을 지킨다는 느낌의 '민속촌 도우미'가 아니라 성당의 수녀님들에서 느껴지는 단정하고 깔끔한,

그리고 뭔가 비세속적인 '종교인'의 느낌이 들었다.

꼬맹이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주고 있는 부모들. 그리고 언니가 빠알간 원색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게 여전히

낯선지 빤히 바라보는 여동생. 무엇보다 저 꼬맹이가 들고 있는 쪼꼬만 빽. 꺄아.

얜 뭘까. 한국이나 태국의 절에서 많이 봤던 것들과 비슷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태나 머 그런 불교설화상의 동물은

아닐 테고-여긴 신사 안이니까-, 그렇다고 한국설화에 있는 철을 먹는 불가사리, 이런 것도 아닐 테고-여긴 일본

이니까-, 정체가 싱숭생숭한 만큼이나 싱숭생숭한 저 눈빛. 녀석의 기분을 모르겠다.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본전에 들어가려는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지나는 신사 관계자분. 감청빛

바지와 살짝 비취빛을 띈 저고리의 색감이 청신하다. 그리고 왠지 약간의 대머리 느낌이 더할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느꼈다. 저 의상을 걸치고 시커멓게 숱이 많은 머리였다거나, 곱슬머리였다면 전혀 안 어울렸을 듯.

본전에 들어앉아 뭔가 빌고 있는 학부모들, 그리고 아이들. 사람들이 꽉 차들어왔다가는 쑥 빠지고, 또 다음 팀이

꽉 차들어왔다가는 파도처럼 쑥 빠진다.

그리고 한 가운데 당당히 버티고 앉아 뭔가를 읊고 있는 아저씨. 일본 제품들에서 종종 느껴지는 세련된 색감은

어쩜 저런 전통의상으로 전승되는 과거의 빛깔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다. 한국도 요새

세련되고 고급스런 색감의 한복이 많이 나오던데, 아직 그런 빛깔을 갖고 제품에 잘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점보는 듯한 곳에 갔더니 무려 일인당 오천엔. 당시 1000엔에 15000원하던 환율이었으니..무지하게 비싸다. 그치만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역시, 불황 속에서도 아이들만 잘 타겟으로 하면 지갑은 쉽게 열린다. 특히

최근 '소황제' 외동아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중국이나, 더 말할 것도 없는 한국이나, 그리고 일본은 그렇지 싶다.

뭔가 빨갛고 노란 종이들이 가득히 묶여있다. 내가 어렴풋이 아는 바로는, 신사에서 점괘를 보고 운이 좋으면 그냥

가져가고, 좋지 않으면 신사 안에 묶어두는 곳이라고 하던데, 그럼 저 이뿌게 묶인 종이들이 온통 악운을 예언한

것들인 건가. 일본어로 뭐라고 쓰여 있긴 한데 영 까막눈이다. 그래도 한자는 잘 읽는 편이지만, 일본어에 쓰이는

식으로 한단어씩 뚝뚝 끊겨 쓰여서야, 좀처럼 이해불능인 게다.

그 아마도 악운을 예견해서 이곳에 동여매진 종이들 사이로 바라본 텐만구 건물.

사진을 찍다보면서 느낀 거기도 하고, 지금 또다시 느끼는 거기도 하지만, 어쩌면 난 아이들이 이뻐서라기보다는

저 쬐끄만 사이즈의 일본 전통의상..아마도 기모노?..의 색깔과 라인, 그리고 문양들에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저렇게 등 뒤에서 커다란 꽃모양으로 묶인 허리띠의 깜찍함이라니.

말하자면 다자이후텐만구의 기념품점인 듯 한데, 파는 게 대부분 부적이다. 이미 수험생활과는 상당히 멀어져버린

몸인지라, 학업관련 말고 다른 종목에 괜찮은 물건이 있음 기념품으로 사갈까 했으나 그다지 땡기는 게 없었다.

뭐...솔직히 녹록치 않은 가격도 한 몫했달까.

100엔짜리 제비라고 한국어로 적혀있다. 한국사람들이 꽤 많이 오나본데, 그치만 내가 다닐 때에는 다른 한국인들

거의 못 만났다. 아사히 맥주공장 견학갔을 때 만났던 게 사실상 유일무이한 한국인과의 접촉이었던가. 급격히

올라버린 환율 탓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거나 다른 곳으로 돌렸다고 했고, 게다가 인근 국가에는

주로 패키지 여행이 많은 탓인지도 모른다. 내 일정 자체는 그다지 한국인을 피하려는 속셈이 없었으니.

다소...기분이 언짢았던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소원 적는 나무판들. 저렇게

조그마한 꼬맹이들이 뭔가를 간절히 두눈 꼭 감고, 혹은 머리를 푹 떨구고 빌고 있다. 합격을 바란다.

저만한 아이때부터 세상에 거부당한 느낌에 직면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극이지 싶다. 경쟁을 통한

선별작업도 좋고, 무한경쟁을 통한 체질개선도 좋은데...아직 가을햇살도 뜨겁고 눈부신 아이들이란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학업 성취라는 달콤한 과실을 설득력있는 스토리에 꿰어맞춘 이 다자이후텐만구는 살짝 애교스런

사기에 가까울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학업 성취'를 팔면서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을 박리다매식으로

그러모으고 있는 게다. 머, 사실 어떤 종교던 뭔가를 팔고 있는 거지만, 다소 노골적이고 상대적으로 다소 단순한

것을 팔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지 심플하고 담백한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선 부활이니 천국이니, 그런 세련된 걸

팔지는 않으니.

이 호리병들은 뭘까. 뭔가 안에 손오공이라도 가둬뒀을 법한 호리병들이 담고 있는 건, 사람들의 밝은 소원일까

아님 뭔가 이곳에 버리고 가고픈 악운이나 나쁜 감정일까.

그런 식의 소원적어 걸어두는 나무판은 다자이후텐만구 본전을 둘러싸고 쭉 계속 이어졌다. 어떤 한국사람은

독도는 한국땅, 이렇게 격정적인 궁서체로 적어놓기도 했고-미리 여기와서 그런 글을 쓰려고 붓을 챙겨올 만큼

용의주도했던 걸까, 아님 펜으로 붓의 궤적을 그릴만큼 집요했던 걸까-우리 사랑 영원하게 해주세요, 혹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운운운.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일본어로 적힌 것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바글바글한 꼬맹이들과 부모들을 품고 있는 본전 건물 뒷켠을 돌았더니 인적이 툭, 끊겨 있었다. 더러는 나무에

걸리고, 남은 햇볕들이 땅바닥에 누웠다.

신녀..라고 해야 할까, 라고 두번째 갈등. 여기서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인 걸까, 아니면 뭔가

일로 하는 걸까, 아님 알바? 아까는 '종교인'의 포스가 느껴졌던 뒷태였지만, 이렇게 인적없는 곳을 종종걸음치는

모습에서는 왠지 몇세기 전 일본에 불시착한 느낌, 민속촌의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시치고산(753)을 맞아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듯 흥정하는 가족, 그리고 요 쪼꼬맣고 귀여운 아가씨의 뒷태.


하카다 역 주변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유센테이 공원으로 향했다. 한 30-40분쯤 갔을까, 버스 안에 사람들이 잔뜩

탔다가 다시 대부분 내렸을 즈음 한적한 교외 동네가 나타났다. 유센테이, 友泉亭. 아는 거라곤 이수영이 여기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더라, 그리고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라더라, 그거밖에 모르고 무작정 와본 길.

정류장 지나 이런 돌담길을 마주치니 대충 이게 유센테이 공원의 외곽이겠거니, 감이 왔다. 입구까지 조금 걷다.

가을. 바삭할만큼 구워진 삼겹살처럼, 잘 말려진 갈빛 낙엽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안내판.

정(靜)..숙, 이겠지. 입에 손을 갖다대고 쉿, 할 필요도 없이 늦은 아침. 인적없이 고요한 공원에 발을 내딛었다.

한참 지나서야 부스럭거리며 나온, 그리고 채 자리도 못 잡고 있는 아저씨. 단정한 건물과 규칙적인 기왓장 배열.

작지 않은 연못을 경계로 두 세계가 마주보고 있었다. 위아래가 바뀌어도 이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느낌은 같다.

초록물이 번진 것처럼,  오랜 돌위에 이끼가 슬몃 끼어들었다.

바람조차 조용히 불고 지나는 찬란한 수면 속, 혹은 수면 위 세상.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만 표지판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순로'를 걷는다. 무작정 반대로 가지는 않을 만큼의 나이.

쉼터. 큰 연못을 가깝게 끼고, 때로는 살짝 멀게 두고 걷는 코스라지만 내겐 그다지 길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나무그늘모양 물웅덩이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금빛 물고기.

깔끔하면서도 정갈한 맛이 똑 떨어지는 느낌의 저 석조상에서 풍기는 꼿꼿한 존재감.

만원짜리의 경회루를 한번은 제대로 봐야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선 대조군이 외국, 실험군이 한국이 되고 말 듯.

저 둥글둥글한 탑 너머, 저 배배 뒤틀린 수풀 너머 암흑물질이 가득한 곳에는 토토로가 살고 있지 않을까.

네 활개를 쫙 펼친 '당당한' 남자용 표식.

빨간 천으로 팔다리를 다소곳이 싸매고는, 노랑 밴드로 이뿌장하게 동여맨 느낌의 여성용 표식.

연못에서 쏘아올린 분화구 속에서 피어오른 수풀들이 까칠해보인다.

설계도가 분명 필요했을 거다. 설계도에 더해, 적당한 크기와 모양의 돌들을 골라내어 섬세히 배치하는 수고로움.

90도, 그리고 또 90도. 그렇게 가차없이 전개된 대나무 울타리.

오랜 청동기유물처럼 사방에 초록색 녹이 슬어있어서, 싱싱한 녹색 수풀과 녹슨 이끼의 경계조차 허물어져버렸다.

들고남(出入)이 아니라, 서서 들어가는(立入) 걸 금지하고 있는 걸까. 유방이 기어지났다던 가랑이 사이도 아니고.

대인배는 200엔, 소인배는 100엔. Y자와 등호 =자가 포개져 인쇄된 듯한 게 엔 표시의 기원을 더욱 궁금케 만든다.

물에 절반, 땅에 절반 빚지고 있는 누각 위에 오르다.

잎사귀가 붉어지는거야 자연의 섭리, 일본색이 무척이나 강한 낯선 정원에서 내편처럼 든든히 느껴지던 단풍.

원근감과 입체감을 상실한 굵고 검은 나뭇둥치가 얼기설기 펼쳐지고, 붉고 푸른 조각들이 꽉 메워진 모자이크화.

액자식 구성, 스토리 속의 스토리. 1인칭 주인공을 바라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희롱처럼 고양이가면을 씌웠다.

이끼처럼 곱게 깔린 융단이 살짝 주름이 진 듯하여 맘이 좋지 않았다. 저걸 반듯이 펴주어야 하는데.

정숙해 보이는 연못속 세상을 흐트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50엔, 누룽지밥알처럼 엉겨붙는 물고기들의 아비규환.

다다미도 이뿌고 비슷한 사이즈의 단정한 문짝도 이뿐데, 저 빨간 요가 매트같은 게 영 거슬린다.

방 한구석에 놓인 화분 한 점과 그림 한 폭이 공간을 자극하며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대나무를 찰지게 엮은 매듭, 그리고 이끼가 점령한 지역과 자갈자갈 소리를 내는 산책길을 고집스레 선긋는 기와.

고풍스런 청보랏빛 우산이 이렇게 이뻐보이는 건,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의상과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다.

버스 노선도를 가만 보면 유센테이에서 텐진(天神) 지역을 지나 하카다역(博多驛), 300엔까지 오렌지색 라인 12번.

 주중,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의 운행스케줄이 다 달라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지만, 시간만 잘 지키면 된다. 쉽다.

유센테이 공원을 나서다가 발견한 스탬프 두 개, 기념품삼아 꾸욱 눌러 가져오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유센테이 공원. 과거 지방영주의 가옥이었던, 다도체험이 가능한 새롭게 정비된 일본식 정원이랜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서는 한국에 돌아와 비로소 펼쳐보아도 좋다. 그림같은 풍경이 가득했던 유센테이 공원.

"아사히 비~루 코~죠", 내 발음이 이상했는지 호텔 프론트의 직원들은 난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후쿠오카에 오기 전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아사히 맥주를 무한정 마실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있다고, "아사히 비루 코죠"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알 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사히 맥주공장이 하카타역
 
근처에 있다는 걸 아는 직원도 거기에 무료 시음을 제공하는 견학 코스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랬다.

다행히도 난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고, 호텔 로비의 공중전화를 써서 직접 통화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사전에

예약을 하고 가야하는데다가 영어가 가능하다고 했으니. 092-431-2701. 얼마를 넣어야 할지 몰라 우선 있는 잔돈

탈탈 털어넣었다. 요금이 툭툭 떨어지면서, 안내 아가씨와의 통화가 시작. 위치를 파악하고, 시간을 정하고.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어가이드를 대동한 한국인들 단체 관광객들과 같은 시간으로 예약해 주었다. 원래는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설명이 제공된다던가. 오픈시간은 오전 9시반부터 오후 3시까지였고, 난 3시 10분전에

도착하기로 했다.

비오는 날은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사히 생맥주를 포함한 술 자체를 워낙 좋아라~하는 터라

딱히 개의치 않고 호텔을 나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날을 맞아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 붙여져 있던

조그만 우산 판매 광고. 참...아기자기한 글씨에, 아기자기한 광고. 일본이다.

드문드문 젖어 있는 도로 위를 건너기 전. 숙소는 하카다역 근처 '도요(東洋) 호텔'이란 곳이었고, 하카다역에서

로컬 트레인을 타고 남쪽으로 한정거장 내려가면 '다께시타(竹下)'라는 곳이 나온다고 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다케시타'라길래 왠지 낯익은 단어다 싶어, 아 다케시마? 그러면서 '竹島'를 써보였더니 그게

아니라 죽하(竹下)였다. 어쩐지...'다케시마'란 이름의 역이 뜬금없이 후쿠오카 내지에 있을 리가 없지.

이게 바로 다께시타 행 티켓. 원래 커다란 기차역이 그렇듯 잔뜩 혼잡한데다가 공사까지 여기저기서 진행중이어서

더욱 정신없던 하카다역에서 무조건 역무원에게 다가가 가는 길을 물었더니 쉽게 해결해 주었다. 티켓 사는 곳도,

기계에서 티켓 사는 방법도, 그리고 차를 어디서 타야하는지도 자상히 지도받은 후에 기차를 기다리기 시작.

참, 티켓은 편도에 320엔. 왕복 640엔이었으니...고작 한정거장 가는 건데 한국물가로 치면 무지 비싼 거려나...

그치만 후쿠오카 내에서 버스 한번 타는 데도-시내 중심구간에 한정되어 운행하는 100엔버스를 제하고는-220엔,

혹은 그 이상인 걸 감안하면, 사실 전혀 비싸단 느낌도 없이 표를 샀었다. 이미 환율에 대한 건 고작 사흘만에

환율이 백원씩 폭등하는 엔화의 강세에 질렸을 때, 피눈물을 흘리며 환전하면서 맘을 접었기 때문인지도.

하카다 역 구내. 후쿠오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도 계속 느끼던 거지만, 되게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다. 단순히 일본어 표지판이나 간판 때문만도 아닌 거 같고. 전반적으로 매우 비슷하지만

살짝 낯선 느낌을 던지는 그 무엇, 끝내 무엇인지 속시원히 모른 채 돌아왔다.

더블체크를 위해 다께시타행 기차 타는 곳을 물었더니 정말 친절하고 열심히 가르쳐준 역무원 아저씨. 타는 곳은

애초 표살 때 가르쳐주신 분 말씀이 맞았는데, 로컬 트레인은 배차간격이 무지 길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거의

20분 간격으로 있는 거 같던데, 덕분에 여유있게 도착하겠거니 했던 예상이 보기좋게 틀어지고 말았다. 이젠 되려

지각했다고 안 들여보내주면 어쩌나,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 그나저나 역무원 아저씨, 카메라 의식하고는

기차 들어오는 것 무지 열중해서 바라보고 계신다.

하릴없이 20여분을 기다리면서 빗발이 점차 굵어지는 걸 보았다. 비가 내리는 걸 볼 때마다 참..인간들이 어줍잖단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어쩌니저쩌니 잘난척을 하는 인간들이지만 비가 내릴 땐 고작 우산이

전부다. 그런 식의 천조각/비닐조각으로 비를 긋는단 건 진부할대로 진부해졌음에도..별로 더 좋은 대응방법을

고안치 못하는 것 같다. 그치만 역시 일본에선 투명비닐우산이 많이 보였다.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투명 비닐 우산. 모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 그다지 쉽게 보이진 않는다.

플랫폼 한가운데 버티고 선 스낵코너.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자판기. 외국음식에 대한 넘치는 식욕과 호기심은 늘

절제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했고, 일본에서도 역시 곱창라면이니 뭐니 거의 돼지뼈가 흐물거릴 때까지

고아진듯한 느끼하고 진한 라면에 매료되어 버렸댔다.

한국의 '노약자석'은 기실 나이많은 분들을 위한 자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굳이 별도로 '임산부석'이란

표시를 '노약자석' 옆에 붙여야 할 정도로, 눈으로는 '노약자' 혹은 '장애인'석이라고 읽히되 머리로는 '노인'이라고

이해되는 어색한 간극이 곧잘 몇몇 사건들로 드러나곤 한다. 노인에게 자리양보하지 않는다고 폭언, 구타, 그러다

같이 경찰서도 가고, 혹은 배안나온 임산부를 억지로 일으키는 노인에 대한 항거, 분노..그런 이야기들.


일본은 '우선석'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었다. 애기가 있거나, 임신했거나, 노인이거나, 혹은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우선 앉도록 하는 우선석. 노인에게 벌떡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꼭 한국에서만 멋지고 자랑스러운 건

아닐 거다. 그리고 한국의 그것은, 개인의 선택 이전에 구조적으로 강제되는 '미덕'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미덕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카다(博多), 한자음으로는 '박다'라고 읽히는 곳에서 고작 한정거장, 다케시타.

기차에서 내려 빠져나오는데 불쑥 눈에 띈 '우측통행' 표지판. 그리고 얼마전 다른 블로그에서도 봤었지만, 일본도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는 안 하고 있었다. 한 줄서기가 굳어져 있는 것 같던데 대체 왜 갑자기 생뚱맞게 두줄로

서자고 잘되지도 않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는 건지. 이 역시 그 모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거 같은데..글쎄, 성격도

급하고 걸음도 빠른 나로서는 두줄서기는 죽을 맛이다. 괜히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한줄서기가 정착된 이상

거기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정답아니었을까. 캠페인, 계도, 그런 식의 고압적이고 수직적인 태도란 참.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지각한 사람은 아사히 맥주를 공짜로 맛볼 기회를 박탈할지도 몰라, 라는 염려로

우산도 안 쓰고 뛰었다. 다행히 기차역에서 내려 한 백미터 정도 걸었더니 바로 앞에 보였다.

헐떡이며 들어가니 이미 견학투어는 시작했댄다. 그렇지만 내 뒤에도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여유있게 입장하고

있길래, 왠지 마음이 푹 놓였다. 설마 한두명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데 안 들여보내주지는 않겠지 싶어서.


처음으로 마주한 견학 포스트는 맥주의 재료를 소개하는 곳이었다. 보리니 뭐니 샘플을 구비하고 있었고, 중국집

간장/식초통처럼 생긴 곳에 담긴 보리는 직접 시식을 해볼 수 있는 깨끗한 것이라고 했다. 몇알 입에 넣고 씹어

봤더니 생각보다 무지 고소하고 달콤했다는.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견학 코스에는 이렇게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놓기도 하고, 아사히맥주의 연혁을

소개하고 있기도 했다. 저 주홍빛 판대기에 하얗고 커다란 거품이 그려진 건 왠지 환타나 써니텐 오렌지맛스럽지
 
싶었다. 그리고 저 연혁을 차근차근 보기에는 생각보다 움직이는 스피드가 빨랐다. 4,50분만에 견학을 마쳤던 거

같은데, 그렇게 빠르진 않아도 거의 쉼없이 걷기는 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앞에서 저 빨간 옷을 입은 직원분이 일본어로 설명을 해주시면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이끄는 한국인

가이드분이 통역을 해주셨다. 보통 단체여행객은 이럴 때 끼어서 설명을 듣는 배낭여행자들이나 개인여행자들을

기피하고 싫은 티를 팍팍 내던데, 이분들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 가이드가 통역해주면서 내뱉는

말풍선들을 내가 혼자 들고 가서 독식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뱉어진 말들은 한없이 잘게 부서져 퍼지는

비누방울처럼 공간가득 채워지는 거 아닌가. 그렇담 그거 좀 같이 들으면 어때서 사람을 눈치주고 노골적으로

가라고 하는지. 뭐, 여기선 그렇게까진 안했지만 다른 데선 많이 겪었던 일이다.

중간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있는데, 왜지 사람들이 분위기잡고 앉아서 사진찍기 딱 좋은 지점같았다.

저 은빛 알루미늄 컵위에 올라앉은 건 분명 맥주거품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겠지만, 난 그냥 커피 위에 얹혀져있는

휘핑크림이 생각나는 건 왤까. 너무 과장스럽게 표현된 거같지만, 그만큼 아사히 맥주의 거품이 맛있다는 건

어필하고 싶었으리라 관대하게 납득하기로 했다. 이제 견학코스가 거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난 제한시간내에

최대한 많이 맥주를 마시기 위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복도 중간중간에 마주친 맥주 모양의 그림. 저런 세세한 곳까지 맥주와 연관된 장식을 채우다니 이곳이 정말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고, 아님 익히 알려진대로 일본인의 꼼꼼하고 섬세한 면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사진을 보곤 이런 곳까지 신경써서 관찰한 사람이 더 꼼꼼하다고 이야기해준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를 계속 안내해주었던 밝은 웃음의 인상좋은 아가씨. 견학 코스 중 사진을 찍지 말도록 제한한 곳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아사히 맥주가 어떻게 환경보호, 자원재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전시한 곳이었다. 맥주의

펫병으로는 폴리섬유를 짜내어서 직원들이 입고 있는 옷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기타 알루미늄캔, 남은

보리찌꺼기 등도 모두 남김없이 재활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역시 입고 있는 저 옷이 100% 아사히맥주 펫병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제일 놀라웠다. 벌써 근 30여년 이전부터 그렇게 철저한 자원재생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니,

역시 선진국다운 면모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규율 그리고 지원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드디어 무료시음회장 입성. 약 20분정도 진행된다고 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 30분 가까이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누군가 여기에서 맥주를 네 잔 마셨다고 했던가, 난 그 얼굴모를 블로거에게 뜨거운 호승심을 느끼며

최소한 다섯 잔은 마시리라 굳게 다짐하며 들어섰다.

우선 첫잔은 아사히 생맥주, "첫잔은 슈퍼 드라이로 마셔주세요"라는 한국어 안내문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두번째

잔부터는 흑맥주를 마시던 생맥주를 마시던, 본인이 원하는 걸 달라고 하면 저 아주머니들이 따라주신다. 왜 이런

무서운 얼굴의 사진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맥주를 청하면 쾌속무비한 속도로 손을 놀리시는 아주머니들이

그저 고마울 뿐. 생맥주도 맛있고 흑맥주도 맛있고.

사전에 인원수에 맞춰 테이블에 저런 안주를 인당 한개씩 배치해 둔다. 그리고 중간에 초콜렛이라거나 기타 안주를

맛보라며 조금씩 더 주는데, 그런 것들은 시음회 공간 한 옆에 있는 매점에서 팔고 있는 것들을 판촉하는 거라고

보면 될 거 같다. 그 매점의 매대에 마련된 시식용 안주들이 눈에 띄길래 새로 술잔 받으러 오고가는 길에 하나씩

집어들기도 했지만, 역시 맥주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안주는 없어도 그만이다.

생맥주, 흑맥주, 흑맥주, 생맥주, 흑맥주..기어이 채웠던 다섯잔은 아마 이 패턴으로 비웠던 것 같다. 듣던대로 단체

관광객들 중 술을 잘 안하시는 분들은 꽤나 많아서, 그분들은 주스 한잔만 마시고 금방 일어서시기도 하고, 매장에

무슨 안주를 파나 구경도 하고 그랬다. 그 와중에 다섯잔이라니 좀 심했다 싶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부어라하며

마신 것도 아니고 상당히 여유롭게 마셨는데도 시간이 충분했던 느낌. 정말 30분쯤, 혹은 그이상 시간을 할애해

주었던 거 같다. 그러니 이렇게 사진도 함께 찍고, 주변 사진도 찍을 여유도 있었겠지.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사람들이 전부 빠지고 나니 다시 자리를 정돈하고 내일 견학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나 보다.

어쨌든 이분들은 오늘 우리 3시 견학 일정을 끝으로 시마이.

왠지 나가기가 아쉬워서 매장이랑 근처를 살짝 둘러보았다. 생맥주와 흑맥주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잔을 채우던

저 샘터가에는 이제 사람 한명 보이지 않고, 반대편에 있는 매장은 뭔가 뒷정리로 분주하다.

아까 견학하면서 처음 받았던 브로슈어에 꼽혀있는 한국어 광고글, 대체 누가 쓴 건지 모르겠지만 참 빼뚝거리는

글씨에 꾹꾹 눌러박힌 느낌표들이라니, 정말정말 상품을 팔고 싶은 느낌이 확 전해지는 거 같다. 요컨대, 저

매장에서는 요런 것들을 판다는 거다. 그치만 시식해 본 바에 따르면 글쎄, 맥주가 제일 맛있었다.

가리키는 대로 문을 나서니 밖에는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치만 아까와 다른 건 어쨌건 빈속에

맥주를 다섯잔이나 들이마신 내 부유하는 정신상태. 조금씩 후끈해지는 머리와 목덜미에 와박히는 빗방울이

간지러우면서도 시원한 게, 이유없이 유쾌해져버렸댔다. 그냥, 취기가 돌았단 얘기.

다시 다케시타 역으로 갔더니 아까 서두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스탬프가 한 옆에 놓여 있었다. 아사히 맥주공장

기념 스탬프쯤 되려나, 찍을 만한 종이가 잡히지 않아 그냥 하얀 받침대에 하나 이뿌게 눌러 찍고는,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의 네모난 도장은 또 무슨 그림이었을까, 미처 못 보고 있었는데 이제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살짝 취했었던 겐가.

맥주 만드는 공정. 비단 아사히 맥주만이 아니라 모든 맥주가 이런 공정을 거쳐 만들어질 게다.

들고 온 명함, 후쿠오카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러볼 만한 코스인 거 같다. 맥주 공장이라는 곳을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아사히 맥주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갓 제조했을 거 같은 느낌의

신선하고 맛난 맥주를 맘껏 먹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꽤나 괜찮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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