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쉐라톤 호텔은 호텔 투숙객을 위한 전용 비치를 갖고 있다. 초록색 잔디 정원이 넓게 펼쳐진 뒤로 보이는

남푸른 지중해 바다. 3박을 묵으면서 늘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틈만 나면 창가에 붙어

바다를 바라봤다.

어디를 가던 외국 단체 방문단에겐 경찰 호위가 붙어야 하는 나라지만, 의외로 호텔에 들어오는 절차는 간단했다.

물론 따로 우리 방문단을 챙기는 시큐리티팀이 가동되었다고는 해도, 저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검색대, 그리고

검색하겠다는 의지의 수위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하자면 매우 낮은 편이었달까. 최대한 우리 측의 편의를 봐준 탓도

있겠지만, 이거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 하는 희미한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호텔 로비를 딱 들어서면 보이는 계단. 이틀동안 회의다 오찬이다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도 막상 저 계단을

밟아본 건 삼일째쯤 되는 날이었다.

금연 표시는 어디에나 붙어있었다. 화장실, 엘레베이터, 복도..그렇지만 그건 거꾸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연기가

피워올려짐을 의미했다. 심지어는 회의장 내부, 호텔 복도..모든 곳에서.

내가 있던 곳은 주로 호텔 로비에 있는 푹신한 긴의자. Amir를 만나 아랍어나 불어 통역을 부탁할 때, 혹은 환전을

부탁할 때, 그리고 Farid에게 급작스레 변경된 배차계획을 알려주고 차량 이동을 부탁할 때. 금연공간이라지만

아랍인들이 모두들 장소불문 담배를 피워올렸고, 금세 한국인들도 장소불문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연기로 자욱한 그 로비 귀퉁이 긴의자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계단. 저 정도의 계단이면 뭔가 무도회를 열기에도

안성맞춤이겠는걸. 하얀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가 하얗고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살짝살짝 발등으로 쳐내리며 계단을

우아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중해 비치를 소유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벨리댄스 쇼까지 호텔에서 볼 수 있는 이곳은 휴양지로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곳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국제행사를 하기에는 영...

일단 불어의 문제. 화장실도 이렇게 '옴므'와 '팜므'로 표시되어 있을 정도. 영어는 기본적으로 이들 알제리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언어인 게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신기한 기계. 뭐냐면, 무료로 구두를 닦을 수 있는 구두닦이 기계였다. 왼쪽에서부터 구두약을

찍찍 눌러서 구두위에 짜내고, 두번째 부드러운 솔로 한번 구두약을 문질러 주며, 부드러운 세번째, 거친 네번째 솔
 
중 취향에 맞는 것으로 광내기작업 마무리. 새벽부터 저녁까지 벗지도 못하고 발발댄 탓에 막 물기짜낸 걸레처럼

찐득거리는 구두에 호사 좀 부려볼랬더니, 구두약부터 안 나온다. 걍 솔질 몇번 하며 킬킬대주고 치웠다.

오찬 행사장을 미리 점검하러 들어갔더니 의자들에 하얀 시트를 씌우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배열된 그 의자들이

마치 자체의 의지를 가지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혹은 자신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그 위에

앉히고야 소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몸짓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 초록빛 잔디. 나처럼 의자들도 저런 풍경에 매혹되고 말았나보다.

한편에는 풀장도 있다. 이 풀장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수영복을 가져갔는데, 고이 접어 가져간 그대로 고이 접힌 채

집까지 들고 왔다. 수영은 무슨.

종종 보기에는 이쁜데 실제 가서 앉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의자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매력적이고, 딱히

나쁜 점을 꼽아낼 수 없으며 외려 내게 과분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뭔가 주저하게 된다. 내게 그런 의자들은

왠지 호텔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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