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이중국적 문제부터 김일병의 '사고'까지. 병역 기피자들에 대한, '문제사병'에 대한 들끓는 분노가 돌아간 곳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거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하나였다'란 반쪽짜리 진실의 울먹임처럼, 이아이들 모두 다 내자식같다는 말이 담은

교묘한 울타리처럼.

군대 안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의 농밀한 부러움임을, 숱한 '문제사병'을 죽여왔던 총구가 이제

밖으로 돌려졌을 뿐임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의 극단과 극단에 선채 배설을 위한 쉬운 해답과

쉬워보이는 상대만 밟아대는 걸까.


근 1년만에 전투복을 입어봤다. 월욜, 화욜 훈련했던 석박사들보다 약간은 말을 안 듣는다는 교관들의 얘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순순하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올려붙여주고, 툴툴대면서도 열을 맞춰

'이동'하는 나 자신과 개구리얼룩 속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쩔수 없이 착해빠진

먹물들이라고, 풍선처럼 부푼 머리에 감정이 눌려버린 공허하고 얕은 인간이라는 게 훤히 드러나는 거 같았다.

강렬하게 뭔가가 가슴에서 치받아 오는 걸 느끼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티비에 나올법한 예비군 아저씨의 모습..

웃도리 풀어제치고 주머니에 손찌르고 모자삐뚜름히 돌려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교관 아저씨가 옆에 지나갈

때마다 슬그머니 손을 빼내고 단추를 채우는 척했다. 배터지기 직전의 개구리같이 바람만 잔뜩 들어갔다.

총을 쏘기가 싫었다. 훈련소 때 탄알이 총안에서 뭉그러졌던 사건 이후 삼사십살은 훌쩍 넘은 총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총을 다룰 때 나는 신경질적인 금속성과 호흡을 깨뜨리는 파열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못쏘겠습니다'하고 열에서 빠져나왔으면 좀더 맘이 편했을라나. 굳이 말앞에 '머리가 아파서'란 말을 붙이고

말았다. 어찌 생각하면 솔직하지 못했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이런 '연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합당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역할이다. 어찌됐건 저들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약장수처럼 떠들어대며 말안듣고 통제안되는

예비군들에게 군인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은 정말 쓰잘데기없고 짜증만 나는

훈련을 최대한 개기고 민간인임을 잊지 않으며 군복이 주는 마력과도 같은 압박감과 대치하는 것.

말로 자신의 사정..개인적인 의사를 이해시킬 여지도, 필요도 없다.

원하는 게 각기 달라, 결국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양쪽 다 신경만 곤두선채 스스로 회의가 들고 만다.

대체 이 나라는 어찌 되어가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이 같잖은 병정놀이를 왜 해야하냐.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막상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까지 바싹 끌어당겨졌었다. 참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내 의지, 내 각오를 믿고 뛰어들고 나니 주위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눈길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다. 바꾸어 보려다가 바뀌고 만다는, 진부한 얘기.


그리고 호루라기.

규칙적인 파공성으로 신경을 긁어놓는 그 소음을 무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을 '강제'하면서, 발은 안맞춰도 좋으니 열만 맞춰라..고 했던 교관들. 발을 질질 끌면서도 양순하게 끌려가는
 
머리만 굵은 얼룩무늬들. 1번부터 99번. 제각기였던 스텝이, 호루라기가 울리기 시작한지 얼마안돼 대략 일정한

발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재우치는 교관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발이 한덩이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억지로 엇박을 내딛으려 해봐도, 아님 그 거슬리는 소리를 쌩까보려 해도 내 몸은 헐떡이며 호루라기

소리하고 붙어먹고 있었다.

짜증나 죽을듯이 머리에서 거부감을 울컥 퍼올리는 것 만큼, 내게 삽입되었던 행동 패턴들과 양식들이 어느새

내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아버린 왼손의 담배처럼. 항시 경례를 준비해 비워놓아야 했던 오른손을

피해 왼손에 걸려진 담배는, 일이병때 그곳에서 내 낙하지점을 대략 상상해보기 위한 낙하물의 역할도

맡았더랬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한지 일년여만에, 다시 그 말도 안되게 어이없고 쓰레기같은 곳에 처했더니

온몸의 구정물이 들고 일어나 화답하는 꼴이다. 그치만 어째야 했는지. 어떻게 했으면 만족했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경례구호에 맞춰 어영부영 모자끝쯤 갖다붙였던 손가락 두개쯤..을 아예 쉬게 냅뒀어야 했을까. 총

들고 다니며 전쟁얘기, 핵폭탄 얘기만 해대는 동선을 못견디겠다고 주저앉았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당연한듯 명령하고 누군가는 깍듯이 각진 자세로 부름을 받잡는 조직을 인정치 못하겠다고 뻗대봤어야

했나. '다'나 '까'의 말투 따위 엿먹으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릴껄 그랬나..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근데...애초 군바리로 이름불리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한꺼풀만 들추면 인간이 사육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다. 남자나 여자나.

티비를 보면 진행자의 말끝마다 미친듯이 감탄하는 방청객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는 대한민국과 독도와 축구에

몰입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을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6번 더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제대..전역. 轉役. 그 공간은 근 반세기동안 그러했듯, 내 몸을 숙주로 삼고 사회를 칭칭 옭아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잡탕인 거다. 에이리언을 품은 시고니 위버가 자살을 택하듯, 최초의 보균자가 숨을 끊었어야 했나..?

..대답이 궁해졌다. 어쩔꺼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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