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의 수도 이름은? 쿠웨이트. 정확히는 쿠웨이트 시티(Kuwait City)라 해야 할까. 카타르에서 쿠웨이트까진

고작 1시간 15분. 그치만 비행기로 1시간 안팎의 거리는 뭔가 가늠하기 어려운 격차가 있다. 서울에서 제주도도

50분, 서울에서 광주던가..그 거리도 45분. 서울에서 베이징도 대략 한 시간이었던 거 같다. 아마 미처 비행기가

제 고도에 올라 제 속도를 내기 전에 다시 착륙 준비를 하게 되기 쉬운 시간이지 싶다.


쿠웨이트 공항에 내려서면서 보인 공항 주변 풍경은, 사우디나 카타르나 비슷하다. 인천공항에 내려설 때처럼

서해쪽 섬마다 무성하고 파릇한 나무들같은 건 보이지 않는 건조한 그림.

현지에서 안내를 나온 아저씨가 완전히 우리를 잘못 인도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비자를 받는 데 1시간반

넘게 걸리고 말았으니..비행시간이 그보다 짧게 소요되었던 걸 생각하면, 비자 받으려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번

카타르로 날아 도착했을 거라고 모두들 툴툴거렸다. 이 상황에 딱히 적당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역시 해외에 나감

외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조심하라고 했던 거다. 그리고 내 경우엔 정말 그랬던 때가 많았다.


1) 비행기에서 내리면 바로 달려나간다. 저렇게 'VISA ISSUING'이라고 적힌 표지를 보고 종종걸음을 쳐서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비자 발급 기다리다가 홧병나 죽느냐, 혹은 늙어 죽느냐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내 경우, 굳이 일행들을 비행기 내리자마자 모아놓고 인원체크한 후 일일이 인사를 하겠다고 고집하는 그 아저씨

덕분에 이미 이 때 게임이 종료된 상황이었다. 늙어 죽을 운명.

2) 화장실 같은 건 조금 참았다가 비자 발급 순서기다리면서 가도 충분하다. 괜히 다른 곳의 화장실 사인과 달리

남자가 양쪽 허리에 손을 척하니 걸치고 있는 모습 같은데 혹해서 카메라를 찾는다거나 볼일을 보겠다고 들어가면,

비자발급대에 5분 늦게 도착해서 50분 늦게 떠날지 모른다.

3) 이렇게 세관으로 통하는 한 층 아래 내려가는 계단이 있지만, 우선 그 오른켠에 있는 비자 발급대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내려가야 한다. 역시 쿠웨이트는 다른 아랍국가들보다 훨씬 친미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제일 먼저 마주치는 가게는 바로 맥도널드였다. 그 맥도널드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저 비자발급 표지.

사실은 여기까지 고작 50미터 정도를 얼마나 빨리 주파하는지가 관건이었는데, 우리는 일행을 다 모아 나와서는

화장실도 들르고, 일일이 인사도 다 하고 명함도 주고 받고. 그랬다.

3-1)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고, 대기표 번호가 오육십번 밀려있는 상황에서..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참고삼아

찍은 사진. 이렇게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면 그 오른쪽에 저렇게 조촐한 비자발급대가 있는 거다. 저기서

시간 허비안하고 얼른 나서려면 달려야 하는 거다.

4) 비자발급대에 가면 무조건 빈 공간에 들이미는 게 아니라, 왼쪽 번호표 발급대에서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한국인은 번호표 없어도 괜찮아, 이런 말도 안되는 억지 부리면 1시간반 기다리는 거다.


약 대여섯명이 비자 발급 업무를 맡고, 창구를 열고 있는 거 같았다. 도착하고서 잔뜩 그 앞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 잠시 황망했다가, 또 번호표 필요없이 그냥 아무데나 가서 하면 발급해준다는 그 아저씨 말듣고

들이밀었다 구박당해서 또다시 황망..알고 보니 번호표는 680번대..그리고 현재 창구에 찍혀 있는 번호는 그보다

훨씬 앞에 있는 610-620번대.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의 일처리 행태였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일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한사람 해결하고

다음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좀처럼 부르질 않고 호출번호도 바뀔 줄을 모르는 거다. 그리고 멍하니 넋놓고 허공

쳐다보고 있거나, 옆사람과 잡담을 하고 있거나,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자신들앞에 입국자들이 3열짜리

의자에 빽빽히 앉아서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가끔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그런 사람 등 뒤를 손으로 쿡쿡 찌르면,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손을 뻗어 호출번호를

새 번호로 바꾸고는 손님을 맞는다. 그렇게 한명씩 쿡쿡 찌르고 다니는 감독자의 몸짓도 역시 나른하고 게을러

보였지만, 그래도 찔리기 전까지 움직일 생각조차 없어보이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무지 부지런하고 성격급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식으로..번호가 한번 바뀌는데, 그니까 한 사람 비자 발급하는데 십분 정도

걸리는 느낌이었다.

5) 이게 번호표 발급기계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옆에 있다. 'Service is Optional'이란 문구. 일종의

급행료를 받는 곳인 게다. 그냥 비자를 발급받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25달러, 더러는 30달러를 받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원래 25달러가 공식적인 가격이지만 창구에서는 대개 30달러를 요구하며, 이미 잔뜩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공무원들에 주눅이 든데다가 오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비자를 받는다는 것 자체를 감사해 하기 마련이라

그냥 모르고 주는 거다. 약 20명의 일행 중 딱 한명만 30불 내고 5불을 거슬러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30불을

당연한 줄 알고 내버렸다.


그런데 급행료의 경우, 50불을 주면 번호표가 필요없이 바로 발급받을 수 있으니, 시간이 보다 중요한 사람은

급행료를 내고 갈 만하지 싶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일행 중 하나가 모르고 내라는 돈 다 내고 Optional

Service를 받아 먼저 짐을 찾으러 내려간 덕분에 짐이 그새 없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 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짐의 안위를 걱정할 판이었을 게다. 어쩌면 급행코스 때문에 더욱 번호표 라인은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수입을 위해 더욱 기다리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다

지치면 돈 더내고 급행코스를 밟으라는 거 아닐까.

6) 이 조잡한 종이는, 실제 저렇게 번호표 받고 기다리면서 적게 되는 비자 발급 신청서다. 대체 어떻게 복사를

하는 건지, 좀 다시 깔끔하게 프린트해서 대량복사해놓으면 안 되는지, 네모반듯해야 할 표들이 휘영청 야자수처럼

너풀대고 있다. 자신의 순서가 되면, 혹시 그전에 홧병걸려 죽거나 늙어 죽지 않는다면, 정확히 25불과 함께 저

신청서를 내면 이제 저기에 도장을 찍어주고 직인을 붙이고 한다. 그게 바로 쿠웨이트 비자, 그자체가 되는 거다.


그러다가 잉크가 떨어져서 도장이 흐릿하니 안 찍히면 그 핑계대고 또 한참 손놓고 쉬기도 하고, 기껏 됐나보다

하고 저 비자를 들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뭔가 빠뜨린 게 있다며 다시 계단을 거슬러 오르기도 해야 하고..

쿠웨이트 비자 받기가 이렇게 힘든 건지는 미처 몰랐다.

공항을 벗어날 즈음 나타나는 그림. 흥, 웰컴 투 쿠웨이트란다. 웰컴은 커녕, 첫인상부터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동네란 느낌만 팍팍 각인되고 말았다. 어쨌든 살아 생전에 비자 받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가능한 빨리

비자 발급대를 찾아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자 발급비는-급행이 아니라면- 25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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