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에서 차 한잔 마시며 카메라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시간을 보니 꽤나 훌쩍 지나있었다. 맹물은

두잔을 마시기도 힘든데, 차로 마시면 정말이지 쉼없이 물이 들어가는 거 같다. 더구나 이렇게 운치있는 다기와

주전자를 들썩이는 깨알같은 재미도 있다면야.

주펀의 본격적 매력 발산 타임.

치렁치렁 촉수를 내려뜨린 둥근 홍등에 일제히 불빛이 담겼고 음식점이니 기념품점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어우러져 왠지 잔치같이 들뜬 분위기를 자아냈다.

군청색 단색으로 무신경하게 칠해버린 듯한 하늘이 평면처럼 주펀의 천장에 덮였고, 모노톤의 하늘이 불쑥

총천연색의 향연으로 반전되고 마는 주펀의 골목 풍경.

녹록치 않은 연륜을 과시하는 홍등 하나가 어, 왜 저기에 걸려있지, 할 정도로 뜬금없는 위치에 덜컥 걸려있었다.

아마도 이전 가게에서 저쯤에 달아놨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그 불빛을 보며 감상에 잠기고 흥이 북돋아지던

사람들이 오갔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괜시리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어둠이 살짝 깔리면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 듯 싶다. 주말이 되면 여행객들 말고도 주펀 인근의 타이완 커플들이

잔뜩 몰려와서 불야성을 이룬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한적한 걸 바란다면 주중에 날을 잡는 게 나을 듯.

사탕가게에서 팔던 뾰족한 뿔 모양의 사탕. 사탕이라고는 하지만 손끝으로 꼭꼭 눌러보면 쑥쑥 들어가는 부드러운

느낌인지라, 유가에 가깝다고나 할까. 식감이 독특할 거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저 요란한 색깔들은 식용색소

1호와 4호를 적당히 섞어 만들었겠다 싶어서 말았다. 무슨 꽃다발처럼 박스에 담겨있는 사탕송이들.

이건..일종의 콩떡이라 해야 하나. 손가락 마디마디 모양이 새겨지도록 꾹꾹 눌러빚어진 떡 안에는 이런저런

고명들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네 만두를 쪄내는 찜통같은 데서 뜨끈뜨끈하게 쪄내어지는 떡들.

그러고 보면, 주펀이란 곳은 살짝 야시장 삘도 나고, 남대문시장 같은 삘도 나고. 내가 돌아다녔던 곳이

이곳의 역사라거나 탄광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곳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펀의 골목들이

빼곡히 끌어안고 있던 것들은 역시 관광객 상대의 음식점, 분식점, 기념품점. 주렁주렁한 홍등만으로

충분히 분위기가 화사해지고 업되기는 하는데, 거기 뭐가 있드나, 하면 딱히...'분위기가 있어' 정도.

아, 그리고 이런 새로운 한글도 볼 수 있다고 말해주면 되겠다. "미ㅡ럼 ㅜ의' 한자니 일본어는 훼손없이 잘만

붙어있는데 한글만 유독 이렇게 글자가 파기된 건 왜지. 쌍기억과 지읒이 사라졌다. ㄲ, ㅈ. 꺼져?

넘치는 간식거리, 돈만 있음 이것저것 자잘하게 사고 싶던 장식품들, 특히나 그 고양이들을 사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는. 그래도 오르락 내리락 주펀의 경사로를 종횡하며 다니다보면 배 꺼지는 건 순간이었다. 땅바닥에서부터

홍등이 내걸린채 지정해주는 높이까지의 공간, 그 공간에 꽉 차 있던 볼거리, 먹거리들.

타이완에 와서 꼭 보고 싶던 것 중 하나가 경극, 중국어 공부를 한다 치면 니하오, 닌꿰이씽, 다음 쯤으로

꼭 나오는 문장, "나는 경극을 봅니다." 따위의 것들. 경극이 대체 뭐길래, 아니, 뭔지야 알지만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 연극인지, 실제로 얼굴 바꾸는 걸 눈앞에서 볼 수 있는지 등등이 넘 궁금했는데, 역시 이번엔

기회가 닿지 않았다. 가면만으로 우선 만족.

좁다란 골목을 꽉 채운 채 천천히 진입하는 청소차, 뭔가 굉장히 부조화한 클래식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시끄럽게 깔아두고서 골목 양켠의 쓰레기모듬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어두워지고 만 주펀의 중심가. 사람들이 슬슬 버스를 타고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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