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실감하는 데에는 East Side Gallery과 The Wall Museum을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지만,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구역을 보려면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함직 하다.


앙상하고 얄포름한 콘크리트 장벽의 골간이 되었던 철근만 뾰족하니 남아있는 그 곳에는 과거 이 장벽을 넘기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순간들이 주변 건물 벽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리고 인근의 불타버린 성당 자리에 새롭게 꾸며진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는 이 곳에서 흩뿌려진 피와 희생에 대해 묵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렇게 미니멀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듯 했다.



어느덧 30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역사, 뜯어낸 장벽을 둘러싼 울창한 초록빛 식물들의 생명력이 왕성하다.


메모리얼에 들어가면 실제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며 사람들의 이탈과 움직임을 막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내부까지 둘러보진 못했고 그저 바깥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



베를린의 상징과도 같은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라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장대한 모습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흥미를 끌었던 건 바로 그 남쪽에 인접해 있던 '메모리얼 투 더 머더드 쥬스 오브 유럽', 그러니까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정도로 번역될 법한 기념공원이었다. 저렇게 네모 반듯한 시멘트 덩어리를 마치 관짝처럼 제작해서는 오와 열을 맞추어 빼곡하게 설치해 두었다.

마침 내가 갔을 때, 왠지 굉장히 고독하거나 심난한 분위기를 풍기며 앉아있는 젊은 친구가 있길래 뒷모습을 살짝. 이럴 때 온갖 상상을 해보게 되는 거다. 유대인일까, 친지 중에 희생자가 있는 걸까, 2차 대전의 상처가 어떤 식으로 남아있는 걸까. 등등.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 단순한 네모반듯한 오브제들로 인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골목이 생기고, 그렇게 서로 예기치 않게 만나는 순간들이 반복되는 경험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유대인들이 겪었던 역사적인 희생과 마녀사냥, 그로 인해 흘린 피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 이런 기념공원에서 한번 되짚어 생각해 볼 수 있단 점에선 절대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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