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장중 저녁식사를 하러 들른 그럴듯한 바 겸 레스토랑. 잘 먹고 마신 후 야근을 하기 위해 일어서기 전 찾은 화장실 표시는, 굳이 찾을 것도 없이 이렇게 눈에 확 띄는 귀여운 삿대질.

거기서 끝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쌀 것만 같은지 잔뜩 허벅지를 움츠린 남자. 어흑~ 하며 숨을 삼키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여자. 마찬가지로 엄청 급해보이는 포즈가 생생하다. 화장실이 깔끔하고 좋은 술집, 남녀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면 더욱 좋고, 그런 술집 찾기가 강남에서도 쉽지 않은데 인도에서 이리 쾌적한 화장실과 세련된 표지를 만났다.


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8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잠시 포카라를 둘러보곤 카투만두로 날아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은

 

대충 대여섯시간 남은 상황, 카투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에서 걸어서 십오분 거리쯤에 있는 파슈파티나스 사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무려 1,000NPR(한국돈으로 약 10,000원)에 달하는 예기치 않은 고액 입장료에 놀랐으나 사원 입구에서부터 현란한 색깔로 압도당하다.

 

나무나 석물을 파서 만든 저 도장들을 위한 염료인 것 같은데, 색깔이 어쩌면 이렇게도 곱고 화려하게 발하는지.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이 나타나기도 전 이런 류의 기념품샵들에서부터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지체하고 있었다.

 

네팔의 상징과도 같은 'Buddha's eye'. 그 문양을 박아넣은 주발. 막대기를 사용해 주발의 바깥을 따라 부비면 거대한 공명이 생긴다.

 

이윽고 나타난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들의 실루엣. 켜켜이 중첩된 낡은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꼬맹이 하나.

 

 

 

그리고 예기치않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의 기습. 대체 이게 뭐야, 할 틈도 없이 시각과 후각을 빼앗겼다.

 

뭔가 굉장히 불편하고 메스껍기까지 한 냄새, 뭐랄까 고기를 굽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태우는 듯한 그런 냄새와 연기였다.

 

강 건너편에서 불구덩이를 만들고는 뭔가 열심히 태우는 사람들, 거의 다 불길이 사그라들어 연기를 뿜어내는 것도 있었고

 

혹은 이제 막 살라붙은 불이 맹렬하게 장작들을 공략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불쾌하고 역한 속을 애써 다독이며 걷다 보니 커다란 중심 탑 앞까지. 온통 구름 속인 듯 연기가 자욱하다.

 

 

그리고 붉은 축복의 징표가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려 온몸을 시뻘겋게 피칠갑하듯 염색해버린 조각상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좀더 가까이 다가간, 그 장작더미들과 불구덩이들의 정체는.

 

마치..나무로 짜인 침대와도 같은 장작 위에 놓인 그것, 한때 웃고 말하고 움직였을 그 몸뚱아리.

 

이곳 '성스러운 바그머띠 강'을 끼고 위치한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보다도 더 유명한 건, 힌두교도들의 마지막을 위한 강변의 노천 화장터가 상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금까지 누군가의 마지막을 위한 제의의 공간이었던 곳, 타고 남은 잿가루들이 강으로 쓸려내보내지고 나니

 

어디선가 비틀거리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털썩, 소리가 들릴만큼 주저앉았다. 혹시, 주인이었던 건 아니겠지.

 

화장터 앞에서 망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들, 그리고 관련된 종사자들. 마치 들것과도 같은 저 철판 위에다가

 

모셔와서는 정성껏 쌓아올린 나무 장작 위에 안치한다. 그리고 구석구석 고체 기름을 꼽고는 불을 댕긴다.

 

 

그게 끝. 아니, 사실 끝은 그보다 훨씬 이전일 거다. 눈을 감는 순간, 심장이 멈추고 뇌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그러고 나면 남는 쭉정이, 땅에 묻던 불로 사르던 수많은 원소로 돌아가는 건 같다. 다만 속도의 차이일 뿐.

 

 

그렇다고는 해도, 그 정제되지 않은 냄새와 연기.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니 더욱 숨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잠시 옆의 지붕이 그럴 듯한 사원으로 피신하여 숨을 돌렸다.

 

 

사실 이곳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를 모신 사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심지어 인도까지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사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도 그렇기에 교인들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까 열심히 연기와 냄새와 싸우며 걸어왔던 강변, 문득 다시 보니 지금은 원숭이떼가 온통 길을 점령해 버렸다.

 

이 곳에 사는 원숭이떼들은 더러 먹거리를 들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기도 할 만큼 악명이 높다고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조금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사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참, 장작을 쌓는 모습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자세랄까,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짝을 맞추고 높이를 조정하고.

 

그렇게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불길이 일 수 있도록 쌓은 장작더미.

 

위에 고인을 모시고 짚으로 몸과 얼굴을 잘 가리고 나면, 삐쭉 나온 두 발이 남긴 하지만 차라리 그건 덜 안타까운 장면.

 

옆엣 공간에서는 굉장히 작고 조그마한 짚덤불이 놓인 채 불이 올랐더랬다.

 

그리고 이리저리 불을 뒤채며 잔해가 남지 않도록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일꾼. 결국 재만 남고 나면

 

삽같은 것으로 긁어 강으로 남은 것들을 뿌려버린다. 아이들이 수영하고 뛰어노는 바로 그 강변으로.

 

 

그렇게 강변을 따라 늘어선 대여섯 개의 화장터. 마침표 이후의 잔해가 또 하나, 안식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하루에 수십번씩 벌써 수백수천날을 보았을 어미 원숭이와 그녀의 조그마한 새끼 원숭이.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시, '천하제일 비색청자'展.

 

중국에서 천하제일(The Best under Heaven)을 꼽으며 그 중 하나로 고려청자의 비색을 들었다는 인용구가 아니더라도,

 

청자의 빛깔(色), 형태(形), 그리고 상감된 그림들은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곱씹을 만한 것들이다.

 

 

이 정도의 국보급 청자들이 한자리 모인 기회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 대부분의 문화재급 청자들이

 

해외-대체로 일본-에 반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는 10. 16~ 12. 16까지.

 

 

총 4부로 이루어진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청자의 쪽빛으로 펼쳐진 풍경들. 아마 청자에 그려진 문양들을 따온 듯 낯익다.

 

 꽃을 따르는 나비의 화려한 자태.

 

 

 다기의 한 종류인 완에 새겨진 기사, 라는 연호. 은은한 비색이 우아하다.

 

 예전에도 한번 봤었지만, 청자로 기와를 얹었다는 건 대체 얼마나 사치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을까.

 

 

 기와 말고도 이렇게 담장 등에 장식이 되었다는 물방울 모양의 장식품도 얹혔었다고 한다.

 

 

 과하게 쓰이지 않은 금칠, 그리고 분방하게 만들어진 듯 자연스럽지만 세련된 뚜껑까지.

 

'콜라병 몸매'란 표현보다는 '고려청자 몸매'란 표현은 어떨까 싶을 정도로 곡선이 아름다운 병.

 

 

 학이 한마리, 구불구불한 꽃나무와 구름 사이를 날아가고 있다.

 

 

 이런 형태는 대체 어떻게 고안해내고, 어떻게 빚어냈을까. 색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에 익은 참외모양 청자. 주둥이의 저 물결치듯 리듬감넘치는 모양새라거나, 굽쪽까지 내려가는 봉긋한 곡선.

 

 

 1부, 2부에서는 청자의 역사라거나 여러 대표적인 제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중엔 청자 베개도 있었다.

 

 이런 청자 베개를 베고 자면 특히 한여름에는 머리가 시원하니 건강에도 좋을 거 같고, 만족감도 높을 거 같다.

 

 그리고 청자로 빚은 의자. 평상시에도 앉을 수는 있겠지만 주로 바둑 같은 걸 즐길 때 앉는 의자였다고.

 

 그리고 청자로 빚은 주사위까지. 유약 덕분에 적당히 동글해져서, 부르마블같은 거 할 때 저 주사위를 쓰면 좋겠다.

 

 게다가. 사치의 정점이랄까. 청자로 빚은 변기.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청자변기에는 심지어 연꽃무늬까지 그려져 있다.

 

길게 뻗은 고무신같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적당히 오므려져 일을 볼 때 사방에 튀는 걸 방지하는 실용성까지 겸비한 듯.

 

은실이 입사된 청동경대의 동그런 거울판이 반질반질, 진짜 유리거울처럼 말갛게 반사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화장품들을 담는 통들도 청자로 만들어졌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자그마한 통들에 분이나 액을 담아 썼을 듯.

 

그리고 약사발. 초등학교 때 과학시간에 쓰던, 그리고 약국에서 쓰이는 그거랑 거의 비슷한 형태지만 '고려청자'라는 거.

 

 

 고려시대에는 불상이나 동자상들도 청자로 빚기도 했다는 설명과 함께, 조금은 생소한 분위기의 인간상들도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정병. 불교에서 쓰이던 제기의 일종이라고 해야 하나. 여느 청자들보다 맑고 연한 빛깔이 순하다.

 

대범하고 세련되게 그려진 국화꽃과 이파리들의 문양이 자기면을 온통 휘감았다.

 

 

 가느다란 목과 위아래로 봉긋하게 부풀은 모양, 우아하게 굽은 주둥이가 아름답다.

 

 청자 시대였다고는 해도 이렇게 거칠고 투박한, 게다가 색감도 독특한 자기가 생산되기도 했나보다.

 

 

 

 곱게 발린 유약이 자잘한 균열을 자기 위에 살짝 끼얹어주어서 더 운치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감탄했던 뚜껑 중 하나. 저렇게 섬세한 표현에 독특한 장식이라니.

 

 

 

 청동 은입사 포류무늬정병. 이건 예전에 고려 불교문화 관련 전시때 봤던 거 같은데. 참 우아하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쉬고 있는 학과 사람을 그려놓았는데, 저 소나무의 대범한 구불거림이 참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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