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실감하는 데에는 East Side Gallery과 The Wall Museum을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지만,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구역을 보려면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함직 하다.


앙상하고 얄포름한 콘크리트 장벽의 골간이 되었던 철근만 뾰족하니 남아있는 그 곳에는 과거 이 장벽을 넘기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순간들이 주변 건물 벽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리고 인근의 불타버린 성당 자리에 새롭게 꾸며진 자연친화적인 공간에서는 이 곳에서 흩뿌려진 피와 희생에 대해 묵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렇게 미니멀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듯 했다.



어느덧 30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역사, 뜯어낸 장벽을 둘러싼 울창한 초록빛 식물들의 생명력이 왕성하다.


메모리얼에 들어가면 실제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며 사람들의 이탈과 움직임을 막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내부까지 둘러보진 못했고 그저 바깥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



장면 #1.

강호순이 현장검증을 다니며 여기저기 야산에서 살인과 매장을 재연할 때마다 벌떼처럼 사람들이 몰렸다.

'동네주민'이라고 소개되는 이들은 한결같이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느냐, 사형시켜야 한다 등등 극한 언사와

폭언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저게 인간이야?!", "저 XX한테 인권이 어딨어?!", "마스크를 왜 씌우냐고!!"

수백명의 강호순'갤러리'들이 그의 범죄 현장을 따라다니며 혀를 끌끌 차대고 고래고래 욕해대기에 바빴다.


마치 팬클럽처럼 졸졸졸. 스트레스 제대로 풀 화풀이감 하나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장면 #2.

대중을 끊임없이 자극시켜, 행여나 그 날선 분노와 눈먼 증오가 무뎌질까봐 두려운 기자들은 오늘도 이런 기사를

쓴다. 강호순, 유치장서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잘 먹고…(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2/2009020200054.html)

현장검증을 하는 강호순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방송멘트는 으레 이렇게 시작된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살인행각을 별다른 동요없이 태연히 재연했습니다, 이틀째인 오늘도 태연히 재연했습니다, 대체로

무덤덤한 표정으로...망설임없이...(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278278_2687.html)


대체 강호순이 어떤 표정과 태도를 보이면 만족할지 궁금하다. 직접 손으로 찢어발기지 못해서 아쉬운가.


장면 #3.(고백)

어렸을 적 나를 놀래키고 겁먹게 했던 배가 빨간 독개구리, 셀수없이 많은 발을 꼬물딱대던 지네, 그리고

새까맣고 반들거리는 눈에 분홍색꼬리를 가진 쥐를 '말살'시키면서 어떠한 쾌감을 느꼈는지 고백한다.

*                          *                          *

마스크를 벗겨야 하네 어쩌네 말이 많았다. 그 와중에 법질서 수호를 걸핏하면 핏대높여 외치던 조선과 중앙이

가장 먼저 '공익'을 위한답시고 마스크를 벗겨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분한 욕지거리와 삿대질,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느껴지는 광기는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 집단적인 폭행을 가하고, 멸시하며, 침을 뱉고 돌을 던진다.

그리고 언론은 그런 비이성적인 흥분과 감정과잉의 상태를 부추기고 보도하며 보도하고 부추긴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라는 탄식. 그건 위선일지 모른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고

자신은 어떤지 돌아보지는 않더라도-'너희 중 죄없는 사람만이 돌을 던지라'는 가르침을 주는 어느 종교가

성행하고 있으니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굳이 사이코패스니 뭐니 나와는 다르다는 부적들로 덕지덕지

분리시키고 격리시키는 건 왜라고 생각하는가.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다면, 지금 이렇게 사냥감의 목덜미를 한번 물면 놓을줄 모르는 충성스런 사냥견같이

강호순에 극악스럽게 달려들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당신들은. 피냄새를 맡고 온 건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들이 발가벗겨진 그보다 훨씬 선하며 인간답다는 도덕적 우월감, 그리고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마치 말못하는 못생긴 짐승과도 같은 그에 비해 압도적인 힘의 쾌감을 은근히 만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어쩌면 그건 강호순이 다른 여자들을 죽이면서 얻었던 쾌감과도 같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렸을 적

혐오스런 생명들을 짓밟으면서 느꼈던 잔인한 희열과는 분명히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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