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내로 출근하는 아침, 개천을 따라 걷는 길이 어찌 이리도 고즈넉한지.


개를 끌고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도,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나와 잠시 앉아 쉬는 모습도, 모두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기능을 다하는 이쁜 다리.


사람들은 차를 운전해서, 자전거를 타고서, 혹은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며 과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이어주었던 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덤.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슈프레강변에서 이렇게 카누인지 카약인지를 띄우려 시도하시던 백발의 할아버지.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는 틈틈이 응원해주던 친구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능숙하게 카누에 탑승.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에 어느덧 저만치, 강 중심으로 나아가서는 멀찍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도 한강에서 저렇게 카약을 타며 노년을 즐길 수 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노란색 유람선도 지나고 노란색 전철도 지나는 다리가 다시금 눈에 들어와 한 장.




 

피크트램을 타고 올라선 높이에서 보이는 홍콩의 야경. 아무래도 홍콩의 밤을 만끽하기에 가장 좋은 포인트 중 하나.

 

 

그래서 그런지 갈때마다 사람들의 줄은 뱅글뱅글 꼬리를 물고 몇바퀴씩 또아리를 틀고 있다. 옆에 있는 마담투소 전시

 

티켓까지 같이 구매하면 더 빨리 입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유혹이 있지만, 밀랍인형 전시에는 그다지 흥미가 땡기지

 

않아서 늘 패스. 대신에 이렇게 옆에 전시된 피크 트램의 역사를 뚫어져라 공부하게 되는 듯.

 

오랜 기다림 끝에 이윽고 도착하는 협궤 열차. 사람들은 이미 잔뜩 달아오른 상태, 무질서와 혼잡이 극에 달하던 순간.

 

굉장히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열차인지라 나름의 스릴이 있다. 그리고 급격하게 올라가는 고도에 발맞춰

 

점점더 내려다보이는 홍콩 도심의 야경 역시 점점 멋져보인다.

 

 

 

그리고 산정상의 매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삼각대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몇 장 건진 홍콩의 야경들.

 

 

 

 

숙소로 가는 트램 안에서. 자그레브의 구시가 앞, 옐라치차 광장 앞에서 나를 내려줄 6번 트램 중에 섞여있는 오래된 트램 중에는

 

이렇게 객차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도 있는 거다. 왠지 앞엣 객차에선 뭔가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기라도 한 분위기.

 

 

며칠만에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되게 반갑다. 문을 닫고 정리하려는 꽃가게들의 풍경만 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그리고 아침, 왠지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다 했더니. 슬로베니아에서는 진눈깨비와 비를 잔뜩 맞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컨셉은 비와 눈을 온몸 가득 맞으며 돌아다니는 건가보다.

 

 

눈이 가진 질감과 부피감은 눈꺼풀 위에 날려들어 떨어질 줄 모를 때 가장 크게 실감난다. 빗물은 그저 흘러내릴 뿐 달라붙을 줄

 

모르지만 눈은 차디찬 바깥공기에 힘입어 뻗어나간 가느다란 팔다리로 시야를 가리고 마는 거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 가운데에서 치즈를 팔던 아가씨는 눈 때문인지 손님 발걸음이 뚝 끊긴 와중에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느라

 

손이 빨갛게 곱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사랑이어라.

 

 

 

그리고 눈이 점점 삼엄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한 자그레브인들의 걸음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천 마켓에서 블루베리도 사고.

 

 

옆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피자 한 조각을 사먹으며 가벼운 아침식사도 하고.

 

두어번 나도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까페. 몇몇 가이드북엔 맛집으로 소개되었던데,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맛있던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에도 어김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면면이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똑같길래 왠지 더욱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Shabby hostel, 아고다를 통해 찾아본 값싼 숙소 중에서 가장 가격도 싸고 위치도 최상이었던 곳이다. 10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가 한화로 2만원 선이었던가. 가격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 데다가, 직원들도 다들 친절해서 자그레브에 체류할 때마다

 

가능한 이 곳에 묵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나려는 참. 갑작스런 폭설 떄문에 교통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지

 

트램과 자동차 간의 접촉사고도 났다고 하고, 왠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난 트램이 삐걱거리며 철로를 따라 어딘가로 이송된 후에야 나타난 다른 트램들. 다행히도 사고는 그리 대단치는 않아

 

트램의 자동문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 다친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트램이 있어서 도심지의 교통 흐름

 

속도가 그나마 좀 여유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고가 나도 크지 않은 수준에서 멈추는지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계시던 두 어르신은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계셨다. 오랜 지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분은 때로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굉장히 훈훈한 풍경이어서 슬쩍.

 

그리고 버스정류장 도착. 애초 이 곳은 자그레브 국제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 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였달까. 이제 플리트비체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출발 직전.

 

 

* 교통 (Zagreb to Plitvice, 100쿠나(baggage fee 7쿠나 포함) 3시간 소요)

 

 10:30, 11:30, 12:30 하루 세 차례 운행이 전부  (2013. 3월 현재)

 

 

 

* 플리트비체행 버스가 언제든지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이드북 믿었다가 뒷통수 맞지 말고 미리미리 확인할 것!

 

 

 

 

시외버스 플랫폼의 황량하다면 황량한 풍경. 그래도 파랗고 붉은 색으로 도색이 말끔하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셈이었달까.

 

플리트비체 행 티켓, 정확하게 티켓 값으로는 93쿠나. 1쿠나가 대충 200원이라 치고 티켓이 2만원쯤 하는 셈이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로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건지 기사님도 내리고 손님들도 자연스레 내린 시간에 잠시 근처 구경.

 

여기는 자그레브보다 더욱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리는 참이었다.

 

 

 

 어느새 나무들은 모두 새하얗게 뒤덮여 버린지 오래. 이런 식이라면 대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플리트비체는 어떠려나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세시간여 달리고 나서 '무키네 Mukinje' 마을 입구에 내가 떨궈질 때는 버스 안에 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오는 길 내내

 

대관령 눈꽃열차를 달리는 기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떨궈지고 나니 좀처럼 모든 게 막막하니 새하얗게

 

덮어있는 풍경이어서, 당장이라도 길이 끊기고 고립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잔뜩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 자그레브 구시가 지도

 

 

* 자그레브 트램교통지도

 

 

* 저렴하고 훌륭한 호스텔. (searched by AGODA) 

 

 

*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 현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구시가/신시가 경계쯤의 레스토랑, 만족도 별 다섯개!

 

 

 

 

 

 

 

홍콩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를 둘 꼽으라면 하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볼 수 있는 찜사쪼이의 뷰잉 데크가

 

있겠고 (홍콩 야경의 진수, 'Symphony of Lights')  또다른 하나로는 바로 '빅토리아 피크'겠다.

 

센트럴에서 빅토리아 피크 트램을 타고 45도 각도의 언덕을 불과 7분만에 주파하여 올라선 홍콩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대부분의 홍콩 야경 이미지를 얻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홍콩의 택시, 기본적으로 붉은 색으로 칠해진 채 측면에는 때때로 현란한 광고를 온통 도배해놓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건 택시 앞 범퍼에 탑승가능인원을 저렇게 표시한다는 것. 더러는 4 SEATS, 더러는 5 SEATS.

 

 

홍콩공원 근처의 스쿼시 센터라거나 공원으로 이어지는 입구.

 

 

홍콩공원 근처의 피크 트램역까지는 택시를 타던, MTR을 타던, 심지어는 걷던 크게 찾는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대충 해 떨어지는 시간을 가늠하고 여기까지 도착하는 시간까지 얼추 맞아떨어졌지만, 문제는 끝이 안 보이는 사람들의 줄.

 

줄에 합류한 시점에서 '1시간 반'이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앞에 선 사람들도 이미 지쳐서

 

옆에 철푸덕 철푸덕 엉덩이를 붙인 채 쉬고 있었다. 그새 하늘은 삽시간에 어두워지기 시작.

 

 

아무래도 그런 공식적인 대기시간 안내 표지판은 조금 과장하는 면이 없지 않았어서, 실제로 줄을 따라 트램역 안으로

 

들어가서 표를 사고 트램을 타기까지는 대략 한시간 십분쯤 걸린 것 같다. 피크 트램 편도와 피크 타워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은 HKD 53$, 내려올 때도 이렇게 한시간여 기다려서 트램을 타고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트램이 왔다갔다 할 때는 가히 특급 연예인을 눈앞에서 보는 팬들의 마음이다. 모두들 푸쳐핸섭~ 해서는 사진을 찍어대는데

 

후레시가 사방에서 터지는 바람에 온통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다.

 

트램역 안에는 피크 트램의 역사와 이전 모습을 더듬어 보게 해주는 여러 자료들이 남아있었다. 빅토리아 피크는 초기에

 

홍콩 총독의 여름별장이 지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부호들의 피서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초반에는 가마가 유일한

 

통행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888년부터 최초의 트램이 운행을 시작했다나.

 

근 120년의 역사가 담긴 지금의 트램은 최대 120명이 탑승할 수 있는 트램으로 두 대가 왕복으로 오르내리는 거 같다.

 

해발 28미터에서 396미터까지 약 7분만에 주파해내는 트램인지라 굉장히 가파른 비탈길을 거의 45도 각도로 올라가는

 

느낌인데, 실제로는 4도에서 27도 정도의 각도라고 한다. 그래도 저렇게 누워있는 건물들과 철로의 굉음이 내는 특별함이란.

 

이제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여기가 바로 빅토리아 피크의 피크 타워하고도 그 전망대인 스카이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홍콩.

 

 

 

한 옆에는 하트가 뿅뿅 날아다니는 메모판이랄까, 그런 것도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아래로는 빅토리아 피크의 편의시설이나 다른 고급 별장같은 건물들도 보였지만,

 

그래도 눈을 강력하게 붙잡아 둔 채 놓아주지 않는 건 홍콩의 밤거리. 가까운 홍콩섬 쪽의 야경 너머로

 

빅토리아항의 불빛과 찜사쪼이 쪽의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전망대의 맨 가장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좀처럼 자리를 뜰 생각은 안 하고 전부 카메라와 폰카메라를 꺼내든 채

 

쉼없이 찰칵거리고 있어서 더러 풍경을 가로막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런 사람들의 실루엣이 있으니 좀더 현실감이 든다.

 

 

전망대 외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고, 쉼없이 색을 바꾸며 명멸하거나 흘러내리고 뿜어올려지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홍콩의 야경을 볼 만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홍콩섬 썽완의 이름난 관광 코스로는 웨스턴 마켓, 캣 스트리트를 지나 만모우 사원과 근처 할리웃로드의 골동품 샵이나

 

앤틱샵, 각종 갤러리샵들을 구경하는 정도가 있을 텐데. 그 중에서도 놓칠 수 없는 건 과일의 왕 두리안 향기를 풀풀

 

풍기는 '허니문 디저트' 샵에서 '두리안 팬케잌' 혹은 '두리안 푸딩' 혹은 기타 열대과일 디저트들 맛보기!

 

웨스턴 마켓, 은 그렇게 크지 않은 오랜 붉은 벽돌 건물로 근 백년을 버티고 있는 상가 건물인 셈이다. 2층엔 옷감만 취급하는

 

샵들이 꽉 차 있고 3층엔 레스토랑이 있으니 크게 시간을 들일 공간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오랜 세월의 풍취가 남아있다.

 

 이런 옛 스테인드글라스의 느낌이 그런 것들 중 하나. 그리고 밟을 때마다 살짝 울림이 있는 듯 느껴지던 바닥재들도.

 

 여하튼, 웨스턴 마켓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허니문 디저트'!

 

메뉴판 가득 망고니 포멜로니 타피오카니 두리안이니 온갖 종류의 열대과일로 만들어진 디저트류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지만

 

관심사는 오로지 두리안, 두리안을 먹겠다는 목표 하나로 태국 여행을 갔던 적도 있으니 뭐.

 

짧지 않은 시간동안 두리안으로 만들어진 것 중에서 뭘 먹을까 고심하다가 고른 건 '두리안 팬케잌'.

 

포크로 살살살 절개한 단면을 따라 황금빛 두리안의 크리미한 속살이 생크림을 잔뜩 묻힌 채로 두둥.

 

싸여있을 때는 살짝 후각 세포를 노크하던 수준의 두리안 향기가 불끈, 온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냐항.

 

요리조리 열심히 두리안 팬케잌을 감상하고 감사하고 향기를 맡는 나를 보며 같이 갔던 직장 동료가 그랬다.

 

먹는 걸 이렇게 열심히 찍는 모습은 처음 본다나. 당연하지, 이건 두리안으로 만든, 가공하거나 말린 게 아니라

 

두리안 생물이 가득한, 두리안 향기와 과즙과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리안 팬케잌이니깐!

 

그래서, 야곰야곰 먹으면서 점점 홀쭉해지는 녀석을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두리안의 향기가 몸속 가득 포섭된 데에

 

더할 나위없이 만족하기도 하면서 완전 몰입해서 먹어버리고 말았다는.

 

뭐, 이건 별로 눈길도 안 갔지만 그래도 예의상 찍어준 사진 하나. 올챙이알 같은 타피오카가 잔뜩 들어간

 

열대과일 플러스 녹차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두리안이 최고.

 

그리고 다시 힘내서 캣스트리트로 걸어 올라가는 길. 웨스턴 마켓 옆길에는 트램 정류장도 바로 붙어 있고 MTR역도 있으며,

 

홍콩의 어디를 막론하도 돌아다니는 2층버스 덕분에 더욱 풍경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비오던 날, 툭툭 창에 돋는 물방울 너머로 트램이 달렸다. 보스포러스항 바로 앞에서 멈춰 승객을

주고 받는 트램들은 톱카피 궁전과 아야 소피아 뮤지엄까지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지상에서 버스나 승용차들과 함께 달리면서 교통 신호도 함께 지키고, 차도도 공유하는 트램은

이스탄불의 구도심처럼 작지만 응축된 지역을 커버하기에 딱 알맞은 탈 거리 같다.

한국에선 아직 운행하지 않는 이런 트램 열차가 서울 시내나 다른 지역에서 다니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한국의 트램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어제 일찍 잔다고 누웠는데 주위 '아저씨'들이랑 수다떨다가 12시 넘어서야 잠든 거 같다. 눈떠보니 8시반,

아저씨들은 여전히 자고 있고, 알람을 분명 맞춰놨던 시계도 여전히 자고 있다. 샤워하고 체크아웃.

지상열차라 불러야 할까, 터키의 트램은 귀엽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고. 이스탄불 시내를 도는데 매우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집트 바자르 가면서 씁쓸한 기분으로 예니사원을 쳐다봐주고, 바자르 구경하면서 떡같은 것과 피스타치오를

계속 먹어댔더니 나중엔 아침 한끼가 해결되어 버렸다. 그래도 작정한대로 오늘 아침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는 어느 벤치에 앉아 고등어케밥과 터키식 요구르트를 먹는 로망을 실천. 저번과는 달리 고등어뼈가

막판에 쵸큼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린내도 안 나고 역시 괜찮았다. 하긴, 음식을 가린 적이 없다.

비가 상당히 쏟아붓는 바다 위에서 유람선을 타니까 느낌이 또 다르다. 수업 빼먹고 제부도로 바다보러 혼자

들어갔다가 폭우로 배가 끊겼을 때..그때 들어가던 비가 딱 이모냥이었다. 십년만에 올해가 비를 가장 쏟아부을

거라던 이상기후. 흑해로 다가가 이름모를 폐허의 성에 오르니 바닷바람이 귀를 막아버린다. 좋으네.

가슴이 방방 부푸는 느낌.

한참 바람을 맞고 있자니 어느순간 속이 헛헛해져서 배로 돌아가는 길, 한 터키 대학생아가씨와 나눈 담소가

-주로 그녀의 수다를 들으며-배안에까지 이어졌다. 함께 점심으로 양고기 케밥을 먹고. 부두에 다시 도착할

때쯤엔 거의 폭우 수준이었던 비를 피해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시골의 재래시장 느낌인 이집트 바자르와는 달리 나름 격조있으시게도 '뚜껑'있는 아케이드여서 비를 그을

수 있던 그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삐끼들과 말상대 좀 해주었다.(어쩌면 내가 말상대를 구한 건지도..

삐끼들이 안 잡으면 살짝 섭섭했으니.)

마지막으로 블루모스크랑 아야소피아 주변을 다시금 어슬렁대며 눈도장 좀 다시 찍어주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모스크 안의 분위기하며, 유려하고도 세련된 문양들, 그리고 광선을 걸러내는 저 이뿐 모양의 조그만

창들까지. 터키의 분위기랑 가장 잘 닮았다고 생각한 게 고즈넉할 때의 블루 모스크 분위기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곳을 돌아본 것 같다. 숙제하듯이 가이드북에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클리어'해간다는 부담스러움보다는

걍 설렁설렁 다니며 여기 사람들하고 많이 놀고, 구간구간 함께 하는 사람들이랑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뭐...아직은 정말 만족스러운 거 같다.

원래 여행 컨셉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부터, 아니 인천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멋진 누님들하고 함께 하고, 또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혼자 여행을 다시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이었다. 잠시 만났던 터키쉬 말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워지면 나이가 든 거라 했는데, 글쎄..

또 누군가는 그랬다. 혼자 밥먹는 걸 즐길 줄 알면 어른이 된 거라나.

셀축-아마도 젤 큰 로마시대 유적이 현존하는 지역이라는 그곳-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걸 구경했는데, 잠시 헷갈렸다. 어른이 된 건지, 나이가 든 건지.

아, 그리고 나서 카펫가게서 만났던 지야라는 20살 청년집에 놀러가서 환대받고, 과일과 차를 잔뜩 대접받고

왔었다. 지야, 지레, 부탄..삼형제의 장난스러움과 어수선함이라니. 내 군생활을 지탱했던 게 라디오헤드와

하루끼였는데, 지야 이녀석이 라디오헤드 광팬이었다. 같이 Paranoid Android, high & dry 뭐 그런 거

들으면서 화씨 9.11 이야기하고,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그는 비엔나에 가서 영화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블랙 코미디를 찍고 싶댔다.

문제는, 이 동네 사람들이 워낙 여행객에 기대어 살다 보니까, 워낙 친구도 많고, 워낙 덧없는(?) 만남도

많을 거 같다는 거다. 사실 나 역시도 첨에 카펫가게에 들어간 건 아이쇼핑도 할 겸 (목도 칼칼한데) 차대접도

받을 겸..괜히 맘에도 없는 카펫으로 고민하는 척하는 연기를 하며 환심을 끌었다 해야 하나. 그들 역시 내게

바가지(알고 보니 바가지였다는..) 씌울라는 의도, 나 역시 낼모레 체크아웃한다며 당장 지갑을 열어 구매할

듯한 뉘앙스, 머 글케 서로 약간은 어긋난 만남으로 시작했었다. 그나저나 숱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했을 그들은, 그 덧없는 '관계'라거나, 우연에 불과할지 모르는 '겹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봐야 했다. 내 여행과 끝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야경. 터키와 이집트의 모스크는, 마치 쇼윈도의

그것과 노점상의 그것만큼이나 다른 공기와 분위기를 뱉어낸다. 온몸을 내맡기는 오체투지의 자세로 알라의 뜻에

기대는 무슬림들의 뜻은 하나였으되, 터키에선 종종 그 숙연한 모습이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쯤으로나 쓰이곤 했다.

관광객들의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천장의 돔을 뒤흔들고, 쫓기듯 설명하고 채근하듯 움직이던 가이드에 내몰려

모스크의 공기는 온통 찢겨진 채 비둘기들을 흥분시켰다.

그래도 나, 한점의 유서깊은 공기를 들이기며 블루모스크의 그 고아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반나절을 오롯이 이 아름다운 모스크에 헌정했다. 구석에 최대한 쑤셔박힌 채 "눈까리가

째져라" 하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눈가리가 째졌다.

이제 내일 밤이면 터키를 떠나 이집트로. 그동네에선 지금이 딱 무지 덥고 습기도 없어 완전 미이라 되기에
 
최적인 날씨라고 했다. 머, 사막가서 여우나 길들여봐야겠다. 정말 사막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어린왕자의 '여우'라는 캐릭터는 어린왕자 스스로가 불러낸 '외로움'의 소산, 외로움의 메타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이집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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