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우리네 동대문시장같은 느낌의 부기스 스트리트 말고 그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아랍스트리트.


부소라 스트리트니 하지 레인이니 하는 부수적인 골목들 이름은 몰라도 좋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골목들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은근히 쏠쏠한 재미가 있다.


카펫이나 이런 직물들을 팔고 있는 가게들도 잔뜩 있고,


야트막한 이층건물들이 틈새도 없이 쭉 이어진 곳에서조차 그래피티는 용케 곳곳에 안착했으며,


이국적인 장식품이 아니라 생활용품으로 진짜 쓰이고 있는 아랍의 향취 물씬한 아이템들까지.



이런 모자이크등은 볼 때마 참 이쁘다는 생각, 그리고 동시에 한국에 들고 가면 참 안 어울리겠다는 생각. 


이렇게 우르르 모여있을 때, 그리고 이런 분위기의 공간에 있을 때가 가장 이쁜 거 같다.


하지 레인의 벽화거리에서는 올 때마다 이렇게 (아마도) 쇼핑몰 커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던 거 같다.


핫한 아이템으로는 커피 위에 본인 사진을 얹어서 만들어주겠다는 셀피커피샵이 있달까.



여전히 헤이즈 때문에 사람들은 꽤나 마스크를 일상적으로 착용하고 있지만서도.


그와중에도 길거리 공연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며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온갖 의류들과 악세서리를 전부 취급할 테니 일단 들어오기나 해라, 라는 당당함의 표현이려나.



이건 직물에 무늬를 찍는 틀이라고 해야 하나. 금속으로 저렇게 세심한 무늬를 단단하게 만들어두고 잉크를 묻혀서


직물에 규칙적으로 찍는 거겠지.


이제 싱가폴에서는 시샤(물담배)가 불법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어디선가 한줄기 불어오는 바람에 애플향


시샤임이 틀림없는 향기를 맡고는 찾아간 곳. 새 한마리가 짭새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던 그곳에서의 시샤 가격은


무려 35싱가폴달러. 동남아나 이집트에서의 가격을 생각하면 도무지 아닌 거 같아서 코만 몇번 벌름거리고 스킵.


아랍스트리트 어디였더라, 고양이 한마리가 저 조그마한 구멍으로 부비부비하더니 슬쩍 빠져나가는 곡예를 보여준 게.





아야 소피아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본다는 손가락 넣고 돌려보기, 저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한바퀴 삼백육십도 회전시킬 수 있다면 소원이 이뤄진다던가. 대체 어떤

이야기가 얽혀있어서 저 구멍이 그런 '행운의 구멍' 역할을 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냥, 늘 행운과 소원성취를 바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아닐까 싶다.

반쯤 돌리다가 선택의 순간에 직면, 손가락을 꺽어뜨릴 것인지 내 소원을 꺽어뜨릴 것인지, 아무래도

몸을 챙겨야겠다 싶어 포기하고 아야 소피아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울퉁불퉁한 돌들이 나름

미끈하게 닳긴 했지만 여전히 꿀렁꿀렁, 옆으로 새는 길은 저렇게 철망이 쳐진 채 길을 막았다.

2층에서 보이는 풍경은 1층에서 볼 때와는 또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색

글자가 샹들리에와 함께 바로 눈높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데다가, 창문을 바로 등진 위치라서

훨씬 밝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2층은 아야 소피아가 성당이던 시절 그려진 벽화나 기타 작품들을 전시해둔 미술관 같은 분위기.

무슬림들의 공간 모스크로 변하면서 회칠로 덮이기도 했던 그림들이라 도리어 보존상태가

양호한 건지도 모른다. 모스크를 꾸몄던 것들은 이후 다시 기독교도들이 이곳을 차지하면서

전부 돌이킬 수 없게 지워버렸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림과 글자가 어지러이 섞여 있는 데다가, 그림이 보여주는 전형성들, 그림에서 드러난

상징들을 보면 이 때의 그림이란 게 단순히 미감을 충족시키는 장식용이나 종교적 숭배의

의미 뿐 아니라 교육의 의미도 컸음을 짐작케 한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예수의 얼굴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같은 공간에, 다른 시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나타나는 신의 형상이 변화한 건 역시 당대 인간들의 상상력 차이 아닐까 싶다.

천정의 무늬를 보란 듯이 한 겹 벗겨낸 뒤에서 드러나는 어슴푸레하지만 분명 다른 문양들.

아마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지배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이 곳에서 지워진 상대의 흔적,

그리고 새롭게 덧씌워진 자신의 흔적일 텐데, 저런 식으로 절개된 모습을 보니 무슨 외과수술

같기도 하고, 역사의 지층을 드러내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렇게 벽면 가득한 문양들 뒤에서 새롭고도 오래된 흔적을 찾아내는 건 지층을

헤집으며 화석을 찾으며 과거 시간을 복원하려는 노력과도 비슷하겠다. 노란빛 일색으로

뎦였던 그 공간 뒤에서 웅얼대고 있던 옛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또 한 편으로는 지금 겉으로 드러나 있는 이야기들을 더이상 허물어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도

함께 진행중이다. 이미 오랜 이야기, 터키가 비잔틴 제국에 속했던 때, 술탄의 지배 하였던 때,

그런 기억들은 이미 도색된 물감들이 색을 잃고 먼지처럼 바스라질 만큼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도 대신 사진과 이미지를 구하러 들르는 시대.

한쪽 돔에서 드러난 성모자의 벽화. 돔의 완만하지만 분명한 곡선벽에다가 그림을 그려넣는

작업은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 그 굴곡진 면의 왜곡되는 정도를 생각하고 실제 아래에서

그림을 볼 때 어떻게 보여질지를 감안해야 했을 텐데.

어느 창 너머를 무심하게 시선이 쓸고 가다가 문득 멈췄다. 창 너머 언뜻 보이는 저 뾰족탑들은

블루모스크의 그것들, 담담하고 차분하지만 세련된 느낌의 옅은 청회색 미나렛이 이쁘다.

아야 소피아에 남아있는 모스크의 자취, 1층과 2층 사이에서 여성들을 위한 기도공간.

나오려다가 마주친, 전등을 갈고 있던 아저씨들. 이 공간에 켜져있는 샹들리에만 수십개니까

거기에 달려 있는 전구는 대체 몇 개나 되려나. 의외로 저분들 하루에 해야 할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출구로 돌아나오는 길에 올려다본 천장들, 천장을 꾸민다는 행위는 뭐랄까, 가장 덜 필요하면서

또 가장 재력과 위엄을 과시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싶다. 공간에서 눈이 가 닿을 마지막 부분이

아마도 천장, 그리고 화장실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화장실은 아예 공간 밖으로 빼내어 버리고

천장에도 이렇게 공을 들여 무늬를 그려넣고 모양을 만들고.

아야 소피아의 복잡한 내부 구조를 생각하면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만, 그 외부는 역시 만만치

않은 복잡한 구조로 이리저리 꺽이고 휘어지고. 이렇게 거대하고 위대한 건축물은 그래서 역시

바싹 붙어서 보려다간 전혀 알아볼 수 없고 도리어 혼란에 빠져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완상하는 게 가장 잘 파악하는 길인지도.

원래는 이곳에서 무슬림들이 발을 씻고 손을 씻는 곳일 텐데, 더이상 모스크로 기능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더이상의 실용성을 잃은 정자 정도랄까. 이날처럼 비가 오던 날은 잠시 안에 들어가

일행을 기다릴 수 있는, 비를 긋는 공간으로 쓰였다.

그리고 굉장히 쿨한 모습으로 금발을 휘날리며 앞서 걷던 두 분의, 아마도 프랑스 아가씨들.

전혀 아야 소피아와 연관되지 않는 사진이라지만, 그래도 출구가 저렇게 생겼구나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니 전혀 억지로 끼워넣은 건 아니다.ㅋ




아야 소피아 성당, 하기야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박물관, 이 건물을 칭하는 수많은 단어가 있다.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를 넘나들며 수차례 건물벽면에 회칠이 새롭게 되고 이전의 흔적이 덮였던

건물다운 건지도 모른다. 유럽과 아시아 한 가운데 버티고 선 이 건물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할지,

이 건물을 성당이라 해야 할 지 이슬람 사원 모스크라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뜨악하고 어색한 색감이지만, 구석구석 자연스럽게도 닳아빠진 게 용케도

중후하고 분위기 있는 색감을 만들어냈다 싶다. 저렇게 뻘건 색깔이 생생하게 갓 칠해졌을 땐

대체 어땠을까, 사실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는 않도록 텁텁하고 끈적하고 더운 색감이지 않았을까.

안으로 들어서서 처음 맞이하는 길다란 회랑은 의외로 꽤나 담백하다. 담백하다기보단, 전혀

치장이 안된 맨얼굴을 맞이하는 느낌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바닥의 돌들은 조금씩 삐뚤거려

발걸음을 엉키게 하고, 벽면과 천장의 벽돌들은 곱고 반듯하게 마감했을 회칠이 전부 벗겨졌는지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유적을 연상케 했다. 그 벽면에 기댄 그림들은 아야 소피아의 과거를

알려주는 온갖 그림과 정보들.

그 그림들을 슬쩍 훑고서 문 하나를 더 지나치면 벽면이 색색깔의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그 자체의

문양과 색감으로 이미 충분히 화려한 회랑이 다시 나타난다. 조명조차 변변찮던 첫번째 회랑과는

달리 수십개의 전구가 밝게 켜진 샹들리에가 드높은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리뜨려졌다.

두번째 회랑에 들어서면 언뜻언뜻 문 안으로 보이는 아야 소피아의 내부가 워낙 현란하고

궁금해서 금방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회랑을 살피면 이곳도 꽤나

공들여 다듬어진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대리석을 잘라 그 무늬가 좌우대칭이 되도록 하여 붙힌

벽면의 붉고 푸르고 하얀 대리석들도 그렇고, 천장의 노란 배경색과 문양들이 그렇다.

드디어 아야 소피아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길을 끌었던 건 커다란 문 위에 그려진

금빛 찬란한 성화 한 폭. 성화도 성화지만 그림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는 레이스같이 가느다랗고

새하얀 장식들이 섬세하다.

드디어, 드디어 아야 소피아 내부로 진입. 벽면에 커다랗고 동그란 검은 판에 금빛으로 씌여진

그림은 코란의 한 구절들이라고 한다. 도무지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모스크의 중앙돔엔

'알라가 유일신'임을 고백하는 아랍어가 씌여있다고 하니 그 비슷한 문구들이 아닐까.

6년 전에 왔을 때도 어딘가 공사중이긴 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도 한쪽 벽면은 완전히 아시바로

빼곡히 가려진 채 복원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아무래도 세계의 주요한 유적들은 쉼없이 복원이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른 거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도 그렇고, 서유럽의 온갖 유적지도

그렇고, 여기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도 그렇고. 일상 생활에 들어와 활용되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기도 하고 스러지기도 하던 공간에서 과거를 고착시키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바뀌면서

억지스레 잡아놓으려니 그런 거 같다.

이 분위기란, 이 이국적이고 혼란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느낌이란, 따뜻한 듯 하면서도 뭔가

비밀을 숨긴 듯한 엄숙하고 단호한 느낌이란,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가는 여행자들이 내뿜는

웅성거림과 방황하는 분위기가 더해지니 완전히 멍하니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사방으로 종횡하는

시선을 따라 사방으로 눌려지는 셔터.

아무리 찍어도 좀처럼 온전히 아야 소피아의 아름다움과 그 독특한 분위기가 담기지 않는 듯.

돔형으로 지어진 천장을 따라 둥글둥글 내려선 벽면들, 그 벽면들에서 다시 뭉글뭉글 뻗어나간

공간들과 입체적으로 뚫린 창문들, 실제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하기 힘들도록 입체적으로

확장되어지는 공간, 그 공간감을 더욱 왜곡시키는 건 사방으로 늘어뜨려진 샹젤리제와 동그란

판들과 기둥들과 회랑과 창문들.

그 기둥들 하나하나에 저렇게 투각되어 있는 기하학적인 문양들, 그리고 벽면의 노란 색감만큼

노란 빛을 뿜어내는 수백 수천개의 전구들, 그만큼의 빛을 이 공간에 던져놓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만 둥근 창문들. 대체 이런 너를 뭐라면 좋을까.

아무래도 아야 소피아엔 항복이다. 아무리 찍어대도 뭐 하나 만족스러운 사진이 없고, 아무리

찍어대도 이 아름답고 위엄있는 건물에 누를 끼치기만 하는 느낌이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관광지 벨트'랄까, 톱카프 궁전-아야 소피아 박물관-

지하 저수조-블루 모스크로 이어지는 그 구역에서 가장 맘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블루 모스크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과 나란히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붉은 빛이 감도는 그것과는

달리 훨씬 포근한 푸른빛 감도는 잿빛 건물이 온화한 데다가 주위에 벤치나 녹지공간도 많이

품고 있어서 쉬기에 좋다. 게다가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공짜, 아무래도 블루 모스크가 가장

맘을 풀어둔 채 쉴 수 있고 또 그만큼 기억도 많이 남길 수 있는 이유다.

블루모스크의 이름이야 당연히 푸른빛이 은은한 이 외관에서 비롯했겠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꾸물꾸물한 하늘 아래서 바라보니 오히려 살짝 칙칙한 잿빛이나 회색빛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지만

그 파스텔톤의 한결 가라앉은 색감이 여전히 번뜩이는 황금빛 장식들과 어우러져 던지는 운치란 

또 나름의 매력이었다. 얄쌍하게 뻗은 네 개의 미나렛에서 풍기는 세련되고 단아한 느낌은 한결같다.

블루 모스크 앞 벤치가 비 때문에 축축해지고 나니까 사람들 대신 고양이들이 활개를 쳤다.

인류의 엉덩이가 드리워져야 할 벤치에 뽀송뽀송 곱게 살이 오른 고양이 발바닥이 종종 찍혔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귀찮다는 듯 느적대며 자리를 피하는 고양이 녀석.

옆의 아야 소피아 박물관 2층 창문에서 슬쩍 내비치는 블루모스크의 미나렛과 중앙 돔의 모습.

많이 느낌이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사원이 서로 나란히 붙어 있으니, 게다가 한놈은 파랗고 한놈은

빨개서 좀 우습지만, 그래도 한 눈에 두 건물을 바라보면 꽤나 흐뭇한 광경이 된다.

지도로 바라본 이스탄불의 구시가. 맨 오른쪽 아래의 블루모스크, 그 위로 예레비탄 사라이,

그 위로 아야 소피아 박물관, 그리고 톱카프 궁전까지 딱 하루동안 돌아보기에 좋은 알짜코스.

사실은, 블루 모스크라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라도 맨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라볼 수

있겠다는 게 솔직한 본심이다. 며칠짜리 코스가 어디 있나, 그냥 맘이 채워질 때까지 묵묵히

이리도 돌아보고 저리도 돌아보고, 다시 또 뒤로 돌아보기도 하는 게 여행.





@ 사막의 도시 투르크메니스탄.



@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섞여드는 터키 이스탄불.


@ 동방명주가 하늘을 밝힌 상하이 와이탄.
비오던 날, 툭툭 창에 돋는 물방울 너머로 트램이 달렸다. 보스포러스항 바로 앞에서 멈춰 승객을

주고 받는 트램들은 톱카피 궁전과 아야 소피아 뮤지엄까지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지상에서 버스나 승용차들과 함께 달리면서 교통 신호도 함께 지키고, 차도도 공유하는 트램은

이스탄불의 구도심처럼 작지만 응축된 지역을 커버하기에 딱 알맞은 탈 거리 같다.

한국에선 아직 운행하지 않는 이런 트램 열차가 서울 시내나 다른 지역에서 다니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한국의 트램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벽면을 따라 평면으로 이동하던 시선을 움푹 집중시켜 버리는 둥그런 돔 지붕 자체가 만들어내는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에 더해 온통 화려한 금장이 구불구불거리며 우아한 파스텔톤의 벽면을

기어다니는 천장이라니. 이런 천장을 이고 지고 살아보는 팔자라는 것도 꽤나 괜찮았을 듯.


집 밖으로 두 팔과 두 다리가 삐쭉삐쭉 튀어나간다는 초가삼간이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사실

이런 집에 살아본 사람이나 할 법한 이야기. 마치 돈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살면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말을 할 수 있듯이.



@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아야 소피아에 가까운 곳에 '그랜드 바자르'가 있다. 바자르란 시장을 의미하는 터키어니까, 한국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같이 커다란 시장이 선 곳인 셈. 그냥 노상에 선 시장이 아니라 아치형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 쭉 이어지는 실내 공간에 선 시장, 말하자면 강남역 지하상가같은 게 한 대여섯개

쭉 이어진 채 지상에서 사방팔방 이어지는 걸 상상하면 되려나.


입구부터 넘실넘실 파도치는 인파 속에서 관광객과 터키 현지인을 구분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터키인이랑 유럽인은 다른 거 같으면서도 비슷한 면이 많아서, 그저 내 눈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유럽인 정도가 식별되는 듯. 굳이 더한다면 미국인과 유럽인도 조금은 구별되는게

옷차림이나 스타일이 영 다른 거 같다.

저 입구로 들어서야 본격적인 그랜드바자르 내부에 들어서는 건데, 이건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사람들이 그득그득하다. 내부 공간을 채우다 못해 밖으로까지 삐져나온 상점들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탓이겠지만, 정말 한번 둘러보면 재미있는 것들, 이쁜 것들이 꽤나 눈에 밟혔다.

맘을 붙잡던 몇몇 액세서리들을 눈여겨 보다가, 드디어 실내 진입. 내부의 벽면에 터키스러운 문양과

형태가 표현되어 있어서 그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시장과는 좀더 다르다. 터키의 느낌이 좀

진하게 배어나오는 공간이랄까.

그렇지만 또 진열대 안의 상품이나 벽면에 즐비하게 전시된 상품들에 시선이 붙잡혀 있으면

여기가 동대문인지 이스탄불인지 알 수가 없어지기도 한다. 지름신엔 국적이 없다. 특히나

저 독특한 고양이 도자기인형들. 톱카프궁전에서 한참을 뒹굴다 온듯 온몸에 모자이크

무늬가 지푸라기처럼 붙어있는 녀석들의 나른한 포즈와 장난스런 눈빛을 보니 불끈불끈.

그랜드 바자르에는 수십개의 출구가 있어서 자칫 길을 잃고 헤매기 딱 좋은 미로같기는 하지만,

어디로 빠져나오던 심심치 않은 풍경들이 나타난다. 오래 전 만들어진 대리석 구조물과 그 앞을

몇 겹씩 가리려 들고 있는 카펫들, 카펫이 아니어도 직물이라거나 악세서리라거나 온갖 것들이

나와 있는 곳. 다리가 아프도록 돌아다니다 보면 워낙 여기저기 물건값이 다른 데다가 흥정하는

재미 역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겪었던 제일 황당하고도 재미있던 경험, 어디선가 "한국말 참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요?"

너무나도 능숙하고 구수하게 이런 한국말이 들리길래 당연히 한국인 손님이 터키인 점원에게

하는 말인가 했다. 알고 보니 그 반대. 터키인 점원이 한국인 손님들에게 호객하면서 그토록

능숙하고 유들유들한 한국어를 구사하더라는.






톱카프 궁전 깊숙한 곳,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단정하게 세워진 다소곳한 별궁.

내부의 벽면이 전후좌우, 윗면 모두 복잡하게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으로 가득하다. 창밖너머에서

그득하게 던져지는 햇살을 뚫고 창틀에 기대면 시퍼런 보스포러스 해협이 활짝 펼쳐진다.

날이 쌀쌀해지면 저 실내 스토브에서 불을 피웠던 걸 거다. 아니 근데, 저거 스토브가 맞는 건가.

그리고 밑에는 아마도 세면대..? 아니면 기도시간에 맞추어 발을 씻기 위한 곳인가..; 용도가

아리까리하지만 그림같은 아랍어 글자들과 금박이 단정하고 세련되게 입힌 모양새가 이쁘다.

가까이 들여다본 모자이크 타일의 섬세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양, 한 장의 타일 내에 구비구비

얽혀있는 문양들도 신기하지만, 그 타일들이 다닥다닥 붙으면서 이어지고 엮여지는 느낌이 굉장하다.

빛이 스미는 창틀 바닥면에도 빠짐없이 붙어있는 모자이크 타일들이 정교하다.

길게 누울 수 있는 빨간 의자가 긴 벽면을 따라 미리부터 길게 누워있었고, 돌아나오는 발걸음을

잡는 건 좀처럼 심심할 틈 없는 올록볼록한 철문의 문양들.

별궁에서 바다 쪽으로 면한 울타리 너머로 톡 튀어나온 조그마한 정자, 금빛 지붕이 반짝이는

곳에서 두 사람이 서면 꽉 차는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너머로는

외적을 침입이나 불청객의 접근을 막기 위한 돌담이 완고하게 버티고 섰고.

이렇게 햇살이 부드럽게 흘러넘치는 곳에서 긴 의자에 누워서 뻐끔뻐끔 시샤를 맛보며 나른하게

한나절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푹신푹신하고 탱탱하게 탄력을 유지하는 듯 해 보이는 쇼파가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은 듯 새것같은 느낌마저 풍기고 있었다.

둥근 돔 천장에서 무게를 잡고 돔을 지탱하는 무거운 추가 늘어뜨려져 있다. 건축학을 전공한다는

여행 친구로부터 듣기 전까지는 왜 저런 걸 늘어뜨렸을까 궁금했는데, 그림까지 그려주며 설명하던

그 친구의 열의 덕에 이해할 수 있었더랬다.

건물 가운데에 네 발로 버티고 선...이것은 뭘까. 향로? 터키에도 향을 피우는 전통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김새로 보자면 꽤나 그럴듯하게 생긴 향로인 거 같은 거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 초를 꼽거나 물을 담아두었을까. 그다지 다른 용도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분명히 '나는 향로에요'라고 외치는 듯한 외양.

궁궐 건물들 사이에서 발견한 조금은 외진, 그렇지만 까막 바닥돌들이 하얀 돌들과 어우러져

꽤나 이쁜 그림을 그려내던 길 하나가 눈에 들었다.

돌아나오던 길, 드문드문 비추던 햇살은 깍쟁이처럼 끝내 간만 보이다가 사그라들어 버렸고,

어두침침한 구름 사이에서 톱카프 궁전의 담회색 잿빛 색조가 조금은 무거워졌다.

궁전의 곧고 반듯한 포장도로 위에서 젖은 발을 끌며 걷는 여행객들, 그렇지만 이전에 이 길위를

걸었던 건 터키의 왕후장상, 더러는 말을 타고 지나기도 했으려나.

아무리 해도 이런 둥그렇고 완만한 돔 형태의 지붕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어렵다. 그냥 눈으로만 잠깐 바라보고 있어도 눈알이 뱅글뱅글, 덩달아 머릿속도

뱅글뱅글 해서 왠지 갸냘픈 폐병환자처럼 풀썩 기절이라도 할 거 같은 거다.

궁전에서 거의 다 돌아나올 즈음, 마치 테마공원의 으리으리한 지붕처럼 양끝의 첨탑이 뾰족하니

깃발을 휘날리는 성문을 지나쳐 나오곤 돌아보았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며 함께 걸어주던 성벽 근처에선 더이상 아무런 살벌한 기운도, 예리한

금속물질들의 철컹이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고양이 새끼들 몇 마리가 지나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며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는. 저 녀석들은 고양이라기보다는, 마중냥이나 개냥이 정도.

이제 완전히 톱카프 궁전의 구역을 빠져나오는 길, 돌아나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좀더 선명히 기억을 남길 수 있었던 거 같았다. 눈앞에서 어른대는 파랗고 하얗던

모자이크 타일들이니, 살짝 뿌연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보스포러스 해협의 검푸른 파도라거나,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거닐던 와중에 발견한 호젓하고 분위기 있던 짧은 골목길이라거나.




갈라타타워 가는 길,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이쁜 건물들이 제각기의 실루엣을 양옆으로 커튼처럼

늘어뜨렸다. 날씨가 좀 맑았어도 저 건물들이 좀더 반짝반짝 새콤한 빛깔을 냈을 텐데. 돌들의 굴곡이

오톨도톨 생생하게 느껴지는 도로 바닥과 마찬가지로 빗물이 묻어 조금은 쳐지고 차분한 빛깔이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점점 커진다. 두툼한 원통 형태의 바디가 의외로 경쾌한 느낌인 건 아마도 저

베이지색의 자잘한 돌덩이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인 듯. 타워, 탑, 성이라지만 담백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 덕에 애초 갖고 있었을 살벌하거나 딱딱한 느낌이 많이 희석되었다.

들어서는 길, 입구는 여기 한 곳이다. 안에 생각보다 좁은 공간에 기념품샵이 있고 위의 전망대나

레스토랑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레베이터가 두 대 있었다. 갈라타 타워 앞에서 돛을 몇개씩이나

달고 있는 범선들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던 옛날 어느적의 풍경이 늘어뜨려져 있어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엘리베이터는 '고작' 9층짜리. 7층 로비에서 내려서 한층을 걸어올라가야 8층 레스토랑이 나타나고,

그 레스토랑에서 바깥 테라스로 나가 이스탄불 전경을 볼 수가 있는 식. 그 위 최고 꼭대기인 9층엔

터키 전통공연이 벌어지는 나이트클럽이 있다고 하던데 공연 수준이 나쁘지 않은 정도라고 하지만

직접 안 봤으니 잘 모르겠다. 그보다 고작 6명이 들어가는 조그마한 엘레베이터에 안내원 한명은

고정적으로 타고 있으니 5명만 타면 만원.;; 속도도 빠르지 않은 엘레베이터 두 대인지라 사람이

좀 몰린다 치면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도 시간 좀 걸릴 듯.

7층에서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원래 엘레베이터가 있기 전에는 맨 아랫층부터 꼭대기까지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올라야 했을 거다. 이거 각도가 거의 70도정도는 족히 되어보이는

계단인데 폭도 좁아서 뱅글뱅글 꼬아올라가다보면 문득 핑-하고 도는 느낌도 들었다는.

8층 레스토랑에 올라 보니 생각보다는 공간이 넓다. 게다가 천장이 높으니 그렇게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아서, 테이블을 꽉 채운 채 밥을 먹으면서도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 얼기설기

불빛이 잔뜩 꽂혀있는 전등도 인상적이었고.


스프가 먼저 나오고 빵을 조금 먹다 보니 각종 고기 케밥이 나왔다. 감자 튀김도 맛있었고, 고기랑

빵이랑 같이 먹으니 역시 맛있더라는. 창 밖으로 멀찍이 보이는 블루모스크의 미나렛들이 밥맛을

더욱 돋궜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면 블루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의 미나렛들처럼 테이블 위에 우뚝 선 에페스 병맥주 탓이었는지도.

창가에 딱 붙은 옆 테이블 너머로 바깥 테라스에 나가 이스탄불 시내를 구경하는 두 젊은이가

풋풋했다. 이스탄불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쯤 되지 않을까,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돌아나오는 길,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다시 기다리려 금세라도 몸이 앞으로 쏠릴 듯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왔고, 금박으로 얼기설기 빚어진 갈라타 타워와 주변의 스카이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봤으며

5명씩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다시 내려와서 올려다본 갈라타타워. 반들반들, 조그맣고 단단해보이는 차돌들이 커다란 원통을 가득

감싸고 있었다. 아랫도리 부분은 사람들이 얼마나 매만졌을지 까맣게 손때가 묻어있던 갈라타타워.

6년전엔 돈이 없어 못 올라가본 채 밖으로만 맴돌던 그 곳.




갈라타타워 위에 올라가니 이스탄불이 온통 발 아래에 펼쳐졌다. 밖에서 올려보며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높은 느낌, 아무래도 탑 자체의 높이에 더해 언덕의 높이만큼 올라선 셈이라 그런 듯하다.

갈라타항에 정박해 있는 호화 크루즈선. 유럽에서부터 관광객들을 뭉텅뭉텅 실어나르는 배라고.

갈라타 대교 너머 왼쪽서부터 성 소피아 박물관, 블루모스크, 그리고 예니사원까지. 기도빨 충전되길

기다리며 장전 중인 수 기의 미사일 미나렛들을 품고 있다.

바닷가, 항만에 빼곡하게 들이차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도시 한 가운데를 바다가 가로질러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속한 지역으로 갈라놓는단 건 정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스탄불의

그 마력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건 이렇게 바다를 품고서 세 대륙의 기운을 마구 끌어들여서 아닐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구 시가의 골목은 시원시원하게 규칙적으로 종횡하는 게 아니라 툭툭

중간에 막히고 꺽이고 비틀비틀, 갈지자로 건물 사이를 감아돌아간다. 건물들 모양새 역시 꽤나

독특해서 오각형, 육각형 건물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 거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반듯한 골목 하나.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이 그저 지붕의 붉은 빛을

대충 공유할 뿐인 건물이 좌우로 시립한 채 반듯한 골목을 하나 만들어내고 지키고 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갈라타 대교 위에서 낚시도 하고 노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 같다.

하늘도, 건물도, 바다도 모두 축축하게 젖은 진회색, 그 와중에 부드럽게 번지는 붉은 지붕.

갈라타 타워 위, 둥그렇게 이어지는 테라스는 사람 하나 넉넉히 지나다닐 만한 폭이었는지라

뱅글뱅글 앞사람 꼬리를 물며 테라스를 한바퀴 도는 게 순례자의 길 같기도.








@ 터키, 이스탄불.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는 멀고 먼 출퇴근길을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책 볼 시간을 벌고 있다 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지 삼년째인 친구는 올해 첨으로 유럽여행을 해봤다고 했다.


내가 못 가본 길들,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하여 닫혀버렸던 길들, 그런 다른 이들의 현재가

지금 나의 현재를 위로하고 긍정하는 발디딤판으로 쓰인다면 굉장히도 이기적이고 치졸한 짓.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의 현재와 나의 현재가 그닥 어느 한 편의 승리라 이야기함직한 것도 아니고,

난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환경과 쉼없는 지적 자극으로 활기찰 그의 환경이 부럽긴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현재를 부러워하며 살고 있진 않다. 앞으로야 모르겠지만서도.

깜빡깜빡 위성 신호를 놓치는 DMB를 퍽퍽 치대며 잠깨우듯 그렇게 우선 내 정신부터 차릴 일.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려고 뱅글대는 계단을 몇 걸음 오르다가 문득 이웃집 지붕에 눈길이 미쳤다.

어라, 대낮부터 왠 도둑님께서 커다란 주머니를 짊어지고 톡톡, 톡, 이런 느낌으로 지붕 위를

뛰고 있는 게 아닌가.


시꺼먼 도둑이 무섭거나 사나워보이기 보다는 앙상하게 드러난 알다리가 금세라도 헐거운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던 데다가, 천사들 노랑빛 고리처럼 떠있는

머리위 두 불끈 쥔 주먹이 조금 무시무시하기도 해서, 왠지 난 도득 편에 서고 싶어졌다.




@ 터키 이스탄불.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옆으로 조금 걸으면 나타나는 지하저수조, 비잔틴시대에 지어졌다는 이 지하

구조물은 당대의 수도 시설이었다고 한다. 천오백년전의 구조물이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실제로 볼 만한 건 지하저수조를 떠받친 빼곡한 기둥들 중 주춧돌을 메두사

형상의 조각상 머리로 받쳐놓은 몇 개의 기둥들.

조명이 기둥마다 비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까만 먹장 아래에 숨어있는 지하 저수조,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안에서처럼 웅얼웅얼 번진다. 물방울이 더러 심하게 떨어지는 곳에서는 아예

우산을 쓰고 가는 앞사람의 어깨가 이미 젖어있었다. 예레비탄 사라이, 터키어로 물에 잠긴 궁전이란

뜻이라더니 정말. 물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일명 '눈물의 기둥'. 다른 기둥들이 아무런 장식없이 그저 까끌까끌한 표면을 가진 것과는 달리

이 기둥은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유난히도 물이 많이 흘러내리는 기둥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 문양 자체도 왠지 굵고 끈적한 눈물을 흘리는 눈알처럼 생기기도 했고.

이렇게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물들이 정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걸 알고 일부러 기둥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것이라고 하던데, 이 '눈물의 기둥'은 워낙 물이 많이 흘러내려서인지 아님

처음부터 그렇게 다듬은 건지 굉장히 매끈하고 미끈미끈하다.

메두사의 머리 부분이 거꾸로 물구나무선채 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사람들도 몰려있고, 동전들도

몰려있던 곳.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 더이상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들과 괴수들이 진지하게 믿어지지

않던 시기였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봐라, 메두사 머리와 옛 신전의 조각들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않느냐. 봐라, 그 때 진지하게 메두사를 무서워하던 건 신화와

실제를 구분 못하는 무지몽매함 때문이었을 뿐이란 말이다. 아마 그런 걸 웅변하고 싶던 거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메두사 머리를 백팔십도 거꾸로 돌리나 구십도만 틀어버리거나 거기서 거기다.

굉장히 부리부리하고 선명한 눈초리에, 온통 크고 두툼한 코와 입술, 머리의 컬까지 메두사는

비록 고개가 꺽였을지언정 여전히 풍기는 압박이 범상치 않다. 비록 비잔틴인들이 신화세계를

무시하고 청산한다는 의미로 신전을 부수고 메두사의 머리를 이렇게 다뤘지만, 의연하려는

겉표정과는 달리 은근히 속으로 쫄지 않았을까. 마치 오늘날 성황당이니 부적이니 따위에

코웃음치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거시기하듯이.

이 곳에 저장된 물이 깨끗해서 마실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보기 위해 비잔틴인들은

이렇게 물고기를 길렀다고 한다. 지금도 저 아래에 온통 꼬물대는 물고기들은, 어쩌면 그때부터

천오백년동안 이곳에서 자라온 물고기 일족의 후예 아닐까. 천오백년이면, 저 물고기들이 환경에

적응을 거듭하여 결국에 눈이 퇴화하기에 짧은 시간이었을까.

지상으로 다시 올라왔다. '메두사'란 이름의 까페가 바로 옆에 있었다. 이전 시대에 무서웠던 걸

괜시리 툭툭 치면서 자신의 당당함이나 용감함을 과시하는 건 비잔틴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메두사가 날뛰던 시절의 공포가 거의 완전히 무독해진 채 지하궁전보다도 훨씬 아래에 파묻힌

오늘날에는, 아마도 과학 이전의 비합리적 믿음이나 광신도적 신앙,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나

마음가짐, 체벌도 교육의 일종이라 여기는 마음가짐 따위를 지하궁전에 처박은 채 의연한 척

해야 하지 않을까.





성 소피아 성당 앞을 걷다가 마주친 뭔가 희한하게 낯설면서도 낯익은 옷가게가 보였다. '몸빼바지'를

잔뜩 팔고 있던 터키식 '몸빼바지' 전문 매장이래도 손색이 없을 법한 노천 옷가게. 펑퍼짐하게 여유를

둔 바지 아랫단하며, 허리춤이나 발목춤을 유연하게 조여주는 고무줄, 게다가 화려한 색감까지.


형제의 나라라더니 언젠가부터 두 나라 여인네들의 의상 컨셉조차 공유하고 있었다는.ㅋ

옷가게를 지나니 옆에선 석류가 잔뜩이다. 요새 터키 근방에는 석류가 제철인지 온통 석류를 산처럼

쌓아둔 채 즉석에서 주스를 만들어주는 과일가게들이 한 블록에 하나씩 있었던 듯.

석류를 반으로 잘라서 이렇게 압착기에 넣고는 열심히 손잡이를 돌려 석류즙을 짜내는 식인데, 꽤나

시거나 떫은 맛이 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어서 깜짝 놀랬다. 굉장히 달콤상큼했다는.

하긴 석류가 얼마나 잘 익고 싱싱하던지 거죽의 때깔이나 과즙의 탱탱함부터 남달랐다.

부슬비가 적시고 가서인지 더욱 선명해진 원색깔로 부조화의 조화를 보여주는 테이블과 의자.

다른 간식거리들, 우리네 겨울 간식처럼 밤에 칼집을 넣고 구워내는 군밤이랑 똑같아 보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이니 따끈하고 노릇노릇한 밤을 까먹으면 딱 어울릴 거 같았는데, 잠시나마

지켜보고 있던 사이에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예전에 이스탄불을 돌아다닐 때 가끔 밥한끼 대용으로 뜯어먹고 다녔던 빵, 프레첼이랑 비슷하게

생긴 빵인데 소금이 솔솔 뿌려져서 짭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한진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른 친숙한 간식거리를 팔던 두발짜리 포장마차. 샛노랗게 잘익은 옥수수를 소금 뿌려서

구워서 팔던 곳이었는데, 저기도 예전에 내가 맛봤던 것만큼 굉장굉장히 짠 옥수수를 파는 건 아닐까

시험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드문드문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 성마르게 벌써 환히 밝혀진 네온사인들, 그리고 차분하지만 굵게

실루엣을 각인하는 예니 사원의 미나렛 두 개.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비가 드문드문 오는지라 배를 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선착장 역시

생각보다 한적하더라는.

이스탄불을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으로 세조각내는 건 강이 아닌 바다, 바다 건너 보이는

굵직한 탑은 이스탄불의 전경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인 갈라타 타워.

고등어케밥을 파는 배일 텐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장사하던 사람들은 어디 가고 불꺼진 빈 배만 남았다.

간판 왼쪽에 고등어 사진도 붙어있었다. 바게트빵 사이에 구운 고등어를 넣어주는 고등어케밥은 의외로

담백하고 맛있었는데, 비리지도 않고.

예니 사원 앞으로 이중삼중으로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빨강색의 터키 국기가 선명하다.

갈라타 대교를 통과하기 직전, 대교 옆의 계단 통로에 그려진 그래피티들이 뭔가 인상적이었다.

저 눈알이 줄에 걸린 채 튕겨오른 듯한 그림은 아무래도 '낚시바늘 주의' 정도의 의미 아닐까, 여기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많으니 휙 뒤로 낚싯대를 제낄 때 뒷사람 눈에 낚시바늘 꽂히지 않도록

주의하란 뜻 정도 말이다.

커다란 호화 크루즈선들, 저 정도 사이즈의 배면 안에는 슬롯머신이라도 설치되어 있지 않을까.

주로 유럽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올 때 저런 크루즈를 이용한다던데 장기간의 배여행도 재미있을 듯.

하늘은 급격히 사위어가고,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던 노란 가로등이 점점 강렬하게 불빛을 내쏘았다.

갈라타 탑이 언덕배기를 따라 조금씩 키가 커지는 건물들 사이에서 단연 우뚝 솟은 채 노랑색 실루엣을

뚜렷이 새긴 채 길 잃은 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미나렛 네 개를 가진 성 소피아, 그리고 미나렛 여섯 개를 삐쭉 세워올린 블루 모스크. 저렇게 열 개의

첨탑이 한눈에 들어오니 무슨 로켓 기지라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셔터를 누르는 사이의 그 짧은 시간에도 하늘은 그 색깔을 휙휙 잘도 바꾸며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물색처럼 맑고 가벼운 느낌의 하늘이었는데 조금씩 어둡고 무거워지는 느낌, 그렇게 두 가지 얼굴을

한 대기가 서로 뒤엉켜 사방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 사이 크루즈선에도 조그마한 어선에도 갈라타

타워에도 평범한 건물에도 불빛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조금씩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진을 찍기가 점점 어려워졌지만 보스포러스 해협

양 쪽으로 드러난 풍경들이 차마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이었다. 온통 불빛으로 휘감아 정신없이 화려한

건 아니었지만 적절한 수준으로 특정 건물에만 임팩트를 준 조명들이 오히려 세련되어 보였달까.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은 톱카프 궁전 대신에 19세기쯤 유럽의 양식을 많이 차용하여

새롭게 지은 궁전이라고 얼핏 기억한다. 다른 것보다 바다쪽 정원에서 조그마한 항구랄까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이 있어서 바로 선박을 궁전에 이어붙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었다. 그렇게

돌마바흐체를 지나 흑해 쪽으로 가다가 다시 빽, 막연하게 들떠있던 어슴푸레함 대신 완연한 어둠이

내린 이스탄불을 바라보았다.




아프리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이스탄불의 거리를 넋놓고 걷다 보면 아무래도 적절한 타이밍에

급한 볼일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마련. 치사하게 공공화장실 입구에 부스를 설치하고 사용료를 받고는

있다고 해도 하루 종일 참았다가 공짜 화장실이 있는 곳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니, 일촉즉발 급박한 상황에서

화장실을 재빨리 찾아내는 것이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관건이겠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도 저렇게 크게, 눈에 잘 띄게 붙여놓은 화장실 표지는 처음 본 듯. 차도변의 다른

교통표지판들보다도 높고 크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매의 눈'을 동원해 검색한다면

정말 0.01초만에 찾아낼 수 있을 거 같다.

화장실 이용료로 재벌이 되겠다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발로인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인류를

구원하려는 휴머니팅의 발현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 시뻘건 표지 덕분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적잖을 거라는 사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동전 몇 푼 던져주는 게 아깝다고

형제의 나라 터키 이스탄불이 베푼 푸근한 화장실 인심을 매도하진 않기를.




2004년, 휴가때마다 못을 밟아가며 노가다 현장에서 모았던 돈을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제대하곤 사흘만에

훌쩍. 터키와 이집트로 향했었다. 왜 하필 그 나라들을 가겠다고 맘먹었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덕분에 제대하곤 군대에서 공찬 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복학생' 껍데기 따위는 한번도 뒤집어쓰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그만큼 행복했던 터키의 기억, 이번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디지털 모드로

6년만에 다시.

아낌없이 사진을 찍어주리라 다짐했건만,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새벽에 나와 아침 9시쯤 공항 도착하니

이곳은 일주일 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10월경이 터키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던데 아마 세계적 기상이변의 영향 아닐까, 창밖으로 빗발이 계속 빗금을 긋고 있었다.

톱카프 궁전 들어서는 길,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여행객들이 참 많았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사방에서

우산도 팔고 우의도 팔고. 저렇게 파란색 우의를 단체로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크루즈를 타고

놀러온 유럽인들이라 했다. 갈라타항구에 커다란 크루즈선이 정박하면 며칠동안 이스탄불 곳곳에 저들이

출몰하며 혼잡함을 더한다고.

티켓을 끊고 들어서는 곳부터 높은 천장, 금칠된 장식들, 묵직한 대리석의 위용.

이 꼬맹이들은 터키 어디선가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온 걸까. 선생님인 듯한 분이 한 군데로 모아놓고

설명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제각기 다른 곳을 보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의 분방함은 어디나 똑같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흙먼지 풀풀 나는 건조한 분위기에 익숙했다가 초록빛 가득한 궁전 안을 둘러보니 눈이

다 싱그러워지는 듯 했다. 더구나 비까지 촉촉하게 내려주는 이스탄불의 아침이다.

궁전 곳곳에 돋을새김으로 그려진 문자들은 아랍어, 아마도 코란의 구절들 아닐까 싶지만 저건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건지 여전히 감도 안 잡힌다.

화려한 문양과 금박들로 뒤덮인 궁전에서 이렇게 담백한 벽면 찾기도 쉽지 않은 지라 오히려 더 눈에 띄던

하얗고 소박한 벽면. 게다가 활짝 열린 창문간에 놓인 조그마한 꽃화분까지. 왠지 조그마한 공주님이라도

살고 있을 거 같은 귀여운 방이 창문 너머에 있을 거 같다.

톱카프 궁전에서 꼭 보아야 할 곳 두 군데를 꼽으라면 왕궁 내 여자들이 거처하던 하렘, 그리고 이곳 보석방.

200캐럿이던가 굉장히 큰 다이아몬드를 위시해서 투르크 왕조가 비장하고 있던 보석류와 호화로운 장신구,

황금칼 같은 것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다.

이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색감이 참 좋다. 갓 구운 빵의 노릇노릇하고 먹음직스런 빛깔 같기도 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크림 같기도 하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세워진 성곽이 왕궁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여기뿐 아니라 이스탄불 시내의 근처

해안가에는 오래전 세워진 성곽이 무너지거나 유실되지 않고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궁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꽤나 불편해보이는 돌의자 발견. 왕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저렇게 딱딱한 의자에 바로 앉히진 않았겠지 설마. 십분만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시리고 욱신거릴 거 같다는.

독특한 형태의 격자가 들어있는 난간 아래로 졸졸졸, 낙수물이 흘러내린다.

네모네모 반듯하게 구획된 창살에 송글송글 맺힌 빗방울들.

좌우대칭이라거나 정연한 질서가 있지 않아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모자이크가 벽면 가득, 아마도

그때의 미감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일까. 딱히 좌우가 대칭되어야 한다거나 똑같은 문양이 연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런 대칭미나 연속미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톱카프

궁전의 모자이크.

궁전 내에는 은근히 앉아 쉴 만한 곳이 숨어 있었다. 애초 사람을 앉히려고 저렇게 툭 튀어나온 모양새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궁전 안을 배회하다 지친 다리를 쉬기에는 안성맞춤. 이미 자리잡고서 느긋이

쉬고 계신 어느 풍채좋은 유러피안 할아버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터키 이스탄불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하루를 꽉 채운 트랜짓

시간이 생겼다. 6년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마지막에는 역시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색에 맞추어 점점 화려해지는 이스탄불의 야경.

보스포러스 대교가 원래 이렇게 조명이 반짝반짝했던가. 다리를 지탱하는 줄들이 촘촘한 거미줄같기도.

대형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항구 너머, 갈라타타워가 둥실 떠있다.

갈라타 대교 아래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들 불빛이 바닷물 위로 번져나간다.

갈라타 타워, 스카이 라인에서 우뚝 솟은 채 이스탄불 시내를 굽어보는 것 같다. 타워 위에 올라 내려보는

전망이 탁 트일 수 밖에 없구나 싶다.

갈라타 대교 앞에 있는 예니 사원, 예전에 저 사원 뒷쪽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고 다녔었는데.

배들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던 이스탄불의 항구, 까맣게 타버린 저녁시간에도 환하게 불밝히고 이리저리

보스포러스 해협을 종횡하는 유람선들.





터키의 맥주, 하면 역시 에페스. 6년전 그때도 터키에서의 여행은 에페스를 마시면서 시작했었다. 에페스(Efes)는

이스탄불의 고대 로마 유적이 몰려있는 도시 이름이기도 한데, 우리로 치면 경주쯤 되려나.

에페스에서 만났던 영국인 의사 아저씨 말을 빌리자면 이탈리아의 로마를 조금 줄여놓은 느낌이라고 했다.

원형경기장이 있고, 잘 포장이 되어 여태까지 남아있던 도로가 있고, 도서관이나 사원, 공중 화장실 건물이

남아있고, 사창가를 가리키는 고대의 광고판이 남아있고.


그래서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마셨던 에페스 맥주에는 그 '에페스'에서 봤던 것들의 추억, 그리고 

터키에서 여행했던 곳들의 추억이 전부 담긴 채 '스토리'가 생겨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에페스 다크가 있었다고? 그때는 없었던 거 같은데, 이번에 가서 만나고 말았다. 에페스 다크.

알콜함량이 6.1%, 흔치 않게 투명한 병에 들어있는 새까만 다크 맥주란 사실도 맘에 들었다. 다만 맛이

조금 달달한 느낌이 강해서 아쉬웠달까. 난 쌉쌀한 맛이 강한 게 좋은데, 레페 브라운처럼.

근데 이전에 내가 마셨던 건 그럼 에페스 라이트였던가.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맥주인 듯 여태 술집에서

한번도 이 맥주를 본 적이 없는지라 조금 헷갈린다. 그때 마신 게 에페스 라이트였던가, 아님 그때는 그냥

'에페스' 한 종류였다가 다크도 생기고 하면서 라이트가 새롭게 이름 뒤에 붙은 건가.

호기심을 풀어주었던 건 에페스 캔맥주 하나. 이 녀석 이름은 에페스 필스너랜다. 아마도 이게 내가 예전에

마셨던 녀석인 듯. 그러고 보니 그때도 파랗고 하얀 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던 캔맥주로 마셨었다.

땅딸하고 통통해 보이는 요 에페스 병맥주도 이쁘다.

왠지 포스팅을 하면서도 맥주가 땡기게 만드는, 에페스의 추억을 불러내는 에페스 다크.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Ashgabat는 아쉬하바드라 읽어야 할지 아쉬가바드라

읽어야 할지 스튜어디스들조차 헷갈리던 그런 곳. 아침부터 35킬로그램짜리 출장용 짐을 바리바리 싸느라 테이프

한 롤을 전부 박스포장하는데 써버렸다가, 수하물은 32킬로그램으로 무게가 제한되어있단 이야기에 저 노가다가

결국 아무 쓸데없는 삽질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된 출장.

모래바람이 낭자하게 사방에 모래부스럭지를 흩날리던 거친 사막의 나라. 땀방울조차 붉다던 적토마의 조상인

명마 '아헬테케'를 품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자줏빛 석양은 특히나 마음을 흔들었더랬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자동차 번호판. 다섯 주를 의미하는 문양 다섯 개는 각 지역의 전통적인 카펫 문양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카펫박물관도 있고, 심지어 카펫부-외교부, 지경부처럼-도 있다니 카펫은 이들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듯.

오래 된 차들과 소형 버스들, 러시아에서 넘어왔다는 이 낡고 고풍스런 차들이 번쩍거리는 BMW나 벤츠와 같이

도로를 달리는 아쉬하바드의 시내.

여전히 공산주의의 내음이 짙게 풍기는 이곳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빌어 정권의 부자세습이 이루어진 나라.

러시아 풍의 군복입은 군바리 아저씨가 누군가를 태운 지나가는 차에 경례를 붙여올리는 순간.

전기가 꽁짜, 물도 꽁짜. 세계 4위의 가스 잠재부존량을 갖고 있는 부유한 나라라 그런지 졸부짓을 좀 해놨다.

촘촘이 늘어선 가로등에 커다란 건물마다 간접조명은 빠지지 않아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지는 야경.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음식이라 하면 샤스리크, 돼지고기나 양고기 꼬치구이를 말한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현지음식은 제대로 먹어야 되지 않겠냐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양 통구이 샤스리크 맛집을 묻기 위한

나의 그림 설명. 이넘의 나라는 러시아어나 투르크어가 주로 쓰일 뿐더러, 영어로 '양 통구이'를 뭐라 해야할지

참 난감하더라는. 생떽쥐베리가 양 그림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의 고충을 이해했다.

현지 국영방송에 살짝 나온 내 얼굴. 행사를 마치고 잔뜩 지쳐서 돌아온 호텔 방에서 문득 틀었던 티비 속에서

이번 행사 스케치가 한 오분여에 걸쳐 나오는 걸 보고 나름 보람찼다는. 살짝살짝 나오던 얼굴을 찾는 재미 역시.

그리고 잠깐, '투르크의 배한성' 가이드 압둘라를 앞세워 돌아보았던 그들의 초대대통령 묘소. 독재자에 대한,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너무나 대단해서 거대한 모스크를 지어 기리고 있었다.

마지막날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에서 주관했던 만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득 눈에 띈 반달. 투르크도 이렇게

와 보았구나, 그래도 행사 잘 마쳤구나, 며칠씩 두세시간만 자며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황량하고 헐벗은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 때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터키 이스탄불에 당도하니 모든 게

풍요롭고 윤택해 보인다. 활짝 열어둔 창문도, 창문틀 위의 작은 꽃화분도.

터키는 요새 석류주스가 유행인 듯. 골목마다 석류를 잔뜩 쟁여두고 바로 짜서 내어주는 주스가게가 성업중.

시지도 않고 새콤하면서 산뜻한 게 아픈 다리 쉬어가며 한잔 쭉 들이키기에 좋더라는.

6년전 터키를 여행할 때 필름카메라를 들고 간 게, 그래서 아껴찍은 데다가 잘 못 찍어 사진이 몇 장 없는 게 

너무 아쉬웠었다. 게다가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줬던 여행속물 한국인 아저씨는 그 뒤로

연락을 끊고 도망쳐 버려서 더욱 아쉬움이 컸었는데, 한을 풀듯이 잔뜩 셔터를 눌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보아도 이쁘게만 보이는 이 도시, 이스탄불은 아무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

비가 촉촉히 내리고 나니 더욱 산뜻한 색깔을 발하는 까페 앞의 테이블 & 의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달리는 크루즈 위에서 예니 사원을 바라보다. 그때, 저기서 그림그리던 할아버지와

대판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랜드 바자르 뒤쪽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던 기억도 떠올리고.

그때는 너무 비싸서, 아니 돈이 없어서 그저 밖에서만 구경했던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볼 수 있었음에 뿌듯해하며,

저 갈라타 대교 아래 어디메쯤에서 팔던 고등어케밥의 맛은 그대로일지 궁금해하며.

그렇게 이스탄불에서의 남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귀환. 투르크메니스탄과 터키에서 찍은 사진들은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겠지만, 우선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도 할 겸.




이런 기분이랄까. 내게 보이는 세상, 나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눈이 부시게 강렬하고 적대적인데, 슬쩍 꺼내든

핸드폰 액정으로 비쳐드는 싱싱하고 또렷한 총천연색의 예기치 않은 풍경을 바라보는.


사실은 내가 직접 맨눈으로 보는 풍경이나 핸드폰 액정을 거울삼아 비쳐보는 풍경이나 그놈이 그놈인데,

그래도 저렇게 햇살이 온 세상을 점령해버린 날에 손바닥보다도 액정으로 반사시킨 풍경은 뭔가 안타깝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거다. 액정에서 원쿠션 튕겨서 들어오는 풍경의 사이즈나 깊이나, 보고 싶은 걸 맘대로

보고 느끼기에는 너무도 제약이 많고 아쉽기만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나마 볼 수 있다는 데야.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가는 데에만 열 몇시간이 소요된다 하여, 진즉 주문해 두었던 조정래의 '허수아비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썼던 이 굉장한 소설가가 새롭게 발표한 신작인데 이렇게 잠잠해서야, 그가 건드린

경제민주화라는 주제 자체가 역시 지금 이 시대 살아있는 권력을 바로 겨누고 있단 반증인 건 아닐까 싶어

얼른 사버렸댔다. 리뷰는 출장 다녀와서 바로 올리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중.


아, 출장지는 투르크메니스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있는 일명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는 공산국가.

김태희가 밭을 매고 송혜교가 접시를 닦는다는, 미녀 많기로 소문난 그 '-스탄' 국가들 중의 하나인지라

카메라 배터리는 넘치도록 챙겼을 뿐 아니라 망원렌즈까지 준비해 가긴 하는데, 다녀와서 그 결과물들을

공유해 볼 생각.ㅋ


10일, 내일부터 15일까지 5박 6일. 터키 이스탄불은 6년만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고등어 케밥을 다시 한번

맛 볼 수 있을 줄이야. 비행기 안에서 푸욱 자려고, 그리고 그간 밀렸던 것들 정리한다고 여태 안자고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새 글 안오른다고 넘 썰렁하게 이 곳을 비워두진 말아주시길..;






여행이 끝났다. 한달여 나의 의지에 오롯이 맡겨졌던 시간이 다시 내 아쉬운 주먹을 희롱하며 어딘가로 풀려난다,

사막의 모래처럼. 아주아주 크고, 딱딱한 책갈피 하나를 꼽아 넣은 느낌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검정빛, 가죽냄새도 약간 나면 좋겠다.


8주마다 나오는 휴가와, 제대휴가를 온통 노가다판에서 보내며 모았던 돈이었다. 못을 밟아 피가 흐르는 발바닥을

뽁뽁 쳐대며 죽은 피를 뽑아내주던 작업반장의 망치질이 웃기기만 했던 건, 그래도 제대하고 나서 '군대에서 공찼던'

기억만 잔뜩 이야기해대는 '복학생'이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군대라는 웅덩이에 내가 담겨 있었단 사실이 저만치 예전의 일인 양 스스로에게 낯설어진 것에 대해

감사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다합의 해변에서 되짚어 보았던 '나'라는 것으로부터 한걸음 더 멀어졌다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했던 xx살의 나, 하루키의 매혹적인 이 표현을 쓰고 싶어서 난 23, 22, 21,그런 식으로

나라고 불려왔던 것이 밟아온 무대와 주어진 씬, 그리고 허용되었던 애드립과 - 사실은 스스로 알고 있었을 - 대사들을

충분히 떠올려 보고, 그게 뒤늦게 내게 의미했던 '필연성'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들과 같은 진실을 담은 온갖 표현들, 하지만 그것이 살아있는 울림을 갖고 효용을 갖는 것은

이미 그 진실이 자신의 지나간 과거로 굳혀진 이후일 뿐이다. 그처럼. 나의 과거도. 다행인지, 아직 크다란 후회나 참담한
 
고뇌를 되씹을 만한 상처를 입지 않은 내게, 미래란 언제나 여전히 최초의 반짝임을 그대로 간직한 신품의 크리스탈과

같다. 그리하여 불행인지, 무언가 바람이 바뀌어 불 때마다, 나는 노심초사하며 나를 되짚어보고 지금 나의 꿈을

생각한다. 혹여나 최초의 균열, 내지 최초의 후회-돌이킬 수 없을 만한-가 이로부터 비롯되지는 않을지, 여태 아무런

흠집없이 나름대로 명민하던 그 반짝임이 드디어 뭉그러지고 무뎌지는 건 아닌지. 혹은 이미 그리 되었는지도

모르겠으되, 그토록 커다란 책갈피의 느낌을 갖는 지금 다시금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은, 맨 몸이었다. 룩소르에서 10여시간 자전거를 타고 물통 네 개를 아작내거나, 17시간 버스에 구겨진채 버티거나,

혹은 등짐을 메고 왠종일 거리를 걷거나. 그러한 순수한 육체적인 깡다구로서의 의미 외에도, 이른바 계급장 다 뗀
 
상태에서의 맨 몸이었단 뜻도 된다. 혹자는 김일성의 한국이냐고 되묻기도 하는 그런 내 나라주소, 거기에 알게모르게

내 등뒤에 버티고 섰던 온갖 상징들-학력, 나이, 재력, ..이른바 사회적, 문화적인 자본이랄까-이 훨씬 희미하게

드러나는 곳에 순간적이나마 벌거벗겨졌다. (물론 여행자로서 달리 획득하는 또다른 온갖 외투들이 순식간에 다시

입혀지지만..)


그곳에서 내 앞에 펼쳐질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곧 내가 돌아올 곳에서 다시 꿰어입어야 할 내 친숙한

껍데기들을 하나씩 꼼꼼히 뜯어보며 각각의 가능성과 내 의사를 타진한다는 것과 같지 싶다. 현재까지 내가 있었던 곳,

바라보던 곳,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그렇게 차근차근 지금의 '나'란 것에 대해 반추해보고, 그것이 어느쪽으로

얼마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또 해는 앞으로 어디로 움직여 그림자가 얼만큼 어디로 길어지게 될지. 그래봐야

고작 한 뼘이겠지만.


생각이란 놈도 일정량의 치사량이 있는 듯하여, 술에 먹히는 경우 바로 게워내짐이란 행위로 다시금 술을 잡아먹을

준비를 가다듬듯, 생각이 잡다하게 얽히고 섥혀 결국 갈피를 못잡게 되면 다시금 토해내고 그 어느 맘 잡히는대로의

꼬투리에서부터 잡념을 이어가는 듯하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 없는 건 알 수 없는 것.


그냥 가보는 거야, 라고 신해철이 '절망에 대하여'에서 절규했듯..그렇게. 역시나 답은 없이 고작 불타오르는 양광 아래

한뼘의 그림자로 방향을 가늠해볼 수 밖엔 없을 거 같다. 고대 이집트에선 그림자란 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믿어졌다던가.


여행이 끝났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내가 정말 그것을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다면, 노심초사 따위 고이접어
 
나빌레라.ㅋ



* 지금보다 낫던 그때의 마음과 정신상태. 아아..바쁘게 살기엔 삶이 짧단 말이다..




역시 터키는 뭔가 심심하다. 차가 달려도 빵빵거리지 않고,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며, 공항도

좀더 럭셔리한 티가 풀풀 난다. 물론 터키항공의 불친절과 덜된 서비스정신엔 할 말 없지만, 적어도 트랜짓 동안 쉬라고

별 넷짜리 호텔을 제공했으니 그 또한 봐줄 수 있다. 밤 3시 45분 비행기로 날아서 6시에 이스탄불을 다시 도착한

참이었다. 자, 이제 저녁 8시 비행기 타기 전까지는 12시간 정도 시간이 있으니 뭘 할지 생각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번 하는데 꾸정물이 줄줄 나온다. 그런 시설에서 한번 씻고 났더니 피로가 대번에 풀리는 느낌,

대신 무지하게 배고파져서 일단 에미뇨뉴로 나와 고등어케밥부터 먹었다. 역시 맛있다. 파샤 모스크를 찾아가서 기대

이상의 인테리어를 좀 인상깊게 봐주고, 슐레마니에 가서 그들 술탄들의 무덤을 먼저 보았다. 천년쯤 된 무덤들이

그토록 고스란히 남아있다니, 종교의 힘이 아마도 그 시간을 지켜냈으리라. 도저히 눈이 감기고 피곤해서 모스크의

천장 그림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여기 터키의 사원들은 그다지-아니 절대-편히 쉬고 누워 잠잘 만한

정도의 분위기가 안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구석에 가서 벽에 기대앉아 한시간쯤 잤나.


주섬주섬 일어나 한바퀴 돌며 인사해주곤, 중심가 산책이나 어슬렁대며 하기로 했다. 그랜드 바자르 한번 돌아보고,

이집션바자르도 한번 돌아보고, 블루모스크까지 걸었다. 도중에 격하게 친절했던 삐끼 아저씨들한테 잡혀서

양탄자 가게에 앉아 설탕 듬뿍 들어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정치학 얘기까지. 그리곤

이집트 카르낙 신전에서 들고 와 이스탄불의 한 광장 복판에 서있는 오벨리스크에게 그곳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다시 블루모스크다. 근데 이집트를 거쳐 다시 바라본 이곳은, 정말 시장바닥이다. 전혀 모스크로서의 기능,

성소로서의 아우라를 잃은 채 그냥 관광지같다. 애들 뛰어다니고 단체관광객 줄서서 돌아보고 다니고. 그냥

한군데 퍼져 앉아 이리저리 고개 갸웃대며 바라보고 싶었는데, 왠 이상한 관광객들이 같이 사진찍자고 하질않나,

아님 애들이 놀자고 장난걸질 않나..머 나름 전부 여자였으니 불만이야 없었지만. 내가 원했던, 이집트에서

만끽했던 그런 분위기는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 나올 법 하지 않아 걍 나와버렸다.


어제 일찍 잔다고 누웠는데 주위 '아저씨'들이랑 수다떨다가 12시 넘어서야 잠든 거 같다. 눈떠보니 8시반,

아저씨들은 여전히 자고 있고, 알람을 분명 맞춰놨던 시계도 여전히 자고 있다. 샤워하고 체크아웃.

지상열차라 불러야 할까, 터키의 트램은 귀엽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고. 이스탄불 시내를 도는데 매우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집트 바자르 가면서 씁쓸한 기분으로 예니사원을 쳐다봐주고, 바자르 구경하면서 떡같은 것과 피스타치오를

계속 먹어댔더니 나중엔 아침 한끼가 해결되어 버렸다. 그래도 작정한대로 오늘 아침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는 어느 벤치에 앉아 고등어케밥과 터키식 요구르트를 먹는 로망을 실천. 저번과는 달리 고등어뼈가

막판에 쵸큼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린내도 안 나고 역시 괜찮았다. 하긴, 음식을 가린 적이 없다.

비가 상당히 쏟아붓는 바다 위에서 유람선을 타니까 느낌이 또 다르다. 수업 빼먹고 제부도로 바다보러 혼자

들어갔다가 폭우로 배가 끊겼을 때..그때 들어가던 비가 딱 이모냥이었다. 십년만에 올해가 비를 가장 쏟아부을

거라던 이상기후. 흑해로 다가가 이름모를 폐허의 성에 오르니 바닷바람이 귀를 막아버린다. 좋으네.

가슴이 방방 부푸는 느낌.

한참 바람을 맞고 있자니 어느순간 속이 헛헛해져서 배로 돌아가는 길, 한 터키 대학생아가씨와 나눈 담소가

-주로 그녀의 수다를 들으며-배안에까지 이어졌다. 함께 점심으로 양고기 케밥을 먹고. 부두에 다시 도착할

때쯤엔 거의 폭우 수준이었던 비를 피해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시골의 재래시장 느낌인 이집트 바자르와는 달리 나름 격조있으시게도 '뚜껑'있는 아케이드여서 비를 그을

수 있던 그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삐끼들과 말상대 좀 해주었다.(어쩌면 내가 말상대를 구한 건지도..

삐끼들이 안 잡으면 살짝 섭섭했으니.)

마지막으로 블루모스크랑 아야소피아 주변을 다시금 어슬렁대며 눈도장 좀 다시 찍어주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모스크 안의 분위기하며, 유려하고도 세련된 문양들, 그리고 광선을 걸러내는 저 이뿐 모양의 조그만

창들까지. 터키의 분위기랑 가장 잘 닮았다고 생각한 게 고즈넉할 때의 블루 모스크 분위기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곳을 돌아본 것 같다. 숙제하듯이 가이드북에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클리어'해간다는 부담스러움보다는

걍 설렁설렁 다니며 여기 사람들하고 많이 놀고, 구간구간 함께 하는 사람들이랑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뭐...아직은 정말 만족스러운 거 같다.

원래 여행 컨셉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부터, 아니 인천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멋진 누님들하고 함께 하고, 또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혼자 여행을 다시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이었다. 잠시 만났던 터키쉬 말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워지면 나이가 든 거라 했는데, 글쎄..

또 누군가는 그랬다. 혼자 밥먹는 걸 즐길 줄 알면 어른이 된 거라나.

셀축-아마도 젤 큰 로마시대 유적이 현존하는 지역이라는 그곳-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걸 구경했는데, 잠시 헷갈렸다. 어른이 된 건지, 나이가 든 건지.

아, 그리고 나서 카펫가게서 만났던 지야라는 20살 청년집에 놀러가서 환대받고, 과일과 차를 잔뜩 대접받고

왔었다. 지야, 지레, 부탄..삼형제의 장난스러움과 어수선함이라니. 내 군생활을 지탱했던 게 라디오헤드와

하루끼였는데, 지야 이녀석이 라디오헤드 광팬이었다. 같이 Paranoid Android, high & dry 뭐 그런 거

들으면서 화씨 9.11 이야기하고,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그는 비엔나에 가서 영화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블랙 코미디를 찍고 싶댔다.

문제는, 이 동네 사람들이 워낙 여행객에 기대어 살다 보니까, 워낙 친구도 많고, 워낙 덧없는(?) 만남도

많을 거 같다는 거다. 사실 나 역시도 첨에 카펫가게에 들어간 건 아이쇼핑도 할 겸 (목도 칼칼한데) 차대접도

받을 겸..괜히 맘에도 없는 카펫으로 고민하는 척하는 연기를 하며 환심을 끌었다 해야 하나. 그들 역시 내게

바가지(알고 보니 바가지였다는..) 씌울라는 의도, 나 역시 낼모레 체크아웃한다며 당장 지갑을 열어 구매할

듯한 뉘앙스, 머 글케 서로 약간은 어긋난 만남으로 시작했었다. 그나저나 숱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했을 그들은, 그 덧없는 '관계'라거나, 우연에 불과할지 모르는 '겹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봐야 했다. 내 여행과 끝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야경. 터키와 이집트의 모스크는, 마치 쇼윈도의

그것과 노점상의 그것만큼이나 다른 공기와 분위기를 뱉어낸다. 온몸을 내맡기는 오체투지의 자세로 알라의 뜻에

기대는 무슬림들의 뜻은 하나였으되, 터키에선 종종 그 숙연한 모습이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쯤으로나 쓰이곤 했다.

관광객들의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천장의 돔을 뒤흔들고, 쫓기듯 설명하고 채근하듯 움직이던 가이드에 내몰려

모스크의 공기는 온통 찢겨진 채 비둘기들을 흥분시켰다.

그래도 나, 한점의 유서깊은 공기를 들이기며 블루모스크의 그 고아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반나절을 오롯이 이 아름다운 모스크에 헌정했다. 구석에 최대한 쑤셔박힌 채 "눈까리가

째져라" 하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눈가리가 째졌다.

이제 내일 밤이면 터키를 떠나 이집트로. 그동네에선 지금이 딱 무지 덥고 습기도 없어 완전 미이라 되기에
 
최적인 날씨라고 했다. 머, 사막가서 여우나 길들여봐야겠다. 정말 사막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어린왕자의 '여우'라는 캐릭터는 어린왕자 스스로가 불러낸 '외로움'의 소산, 외로움의 메타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이집트다.


생각보다 많이 지쳤던 거 같다. 계속 죽은 듯이 자다가 루밀리성이 얼핏 보일 때쯤 잠시 정신차렸다가, 다시

이스탄불 오토가르에 올 때까지 전혀 대비없이 자버렸다. 셀축(Celcuk)-혹은 에페스(Efes)-에서부터 12시간

내리 달려 이스탄불까지. 버스들이 전부 껍데기는 벤츠인데 알맹이는 그냥 시골버스다. 차냄새 쿠리쿠리한. 

메트로 찾아서 악사라이까지 왔더니 또 친숙한 삐끼 아저씨를 한 명 달아버리고, 걍 주절주절 계속 달고

다니다가 비오는 걸 기화로 걍 떼내버렸지만 이젠 미안하지도 않다.


비가 오는 이스탄불은, 공기조차 달콤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어느 입구..저 너머엔 황금빛 응가통이 있었던 듯 하다.>

체크인하며 Shit이라 내뱉는 서양아가씨에 동감하며 짐풀곤 바로 박물관으로. 모자가, 알고 보니 용도가

디게 다양하다. 우산으로도 쓸 수 있었다. 소피아라는 덴마크 아가씨 만나서 말 좀 섞다가 박물관의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랑 최초의 평화조약을 함께 보고...또...여기 와서 많이 멍청해졌음을 느낀다, 들으면 바로

까먹으니. 여튼 몇 가지 멋졌던 것들을 기억하고 숙소에서 인터넷에서 좀 썼다.

<돌마바흐체의 후원이던가, 흑해에 바로 면한 이 뒤뜰에서 맞은 시원한 바닷바람과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사방에 비산되던 촉촉한 물방울들.>


동양호텔은 사람도 넘 많고-밖에 없고-인터넷이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온단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국같이 익숙하고 둔감한 것이랄까, T4 라인 타고 돌마바흐체 가는데 현지 유학생을 만났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치근덕대는 터키 남자들때문에, 여자끼리 여행하기엔 참 안 좋은 곳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하고, 터키에서 공부한다는 그녀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하고.

돌마바흐체는 눈이 좀 편했달까. 대략 눈으로 좇으며 걸어다닐만한 정도의 화려함. 그 음양감과 생생한 조각의

흔적들이 모두 그림이라니. 쳇, 짭퉁이다. 결국 울룩불룩한 게 아니라 평면이란 말이지. 껌딱지처럼.
일단의 패키지 여행객을 만났는데, 가이드가 정말 별로였다. 전혀 자신의 일에 열의가 안 느껴진달까. 그냥, 그래

한번 훑어봐라~ 라는 식의 싸늘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 식은 눈빛. 시간과 정신이 담긴 문화재를 설명하는 일에,

비록 남의 나라 것이라 여겨서 그럴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정말 별로였다. 이스탄불 왔더니 역시

한국인이 많다. 가이드의 째려보는 눈빛을 느끼면서도 그의 설명을 조금조금 귀동냥하다가, 배낭여행객은 절로

가라고 하도 눈치주며 구박하는 통에 걍 니들끼리 놀아라~ 속으로 그러고 말았다.

탁심까지. 갈라타탑까지. 갈라타대교까지 내처 걸었다. 명동같은 거리에서 첨으로 가이드북에 나왔던 음식점을

찾아 맛을 보기도 했고, 구시가에서 잠시 길을 잃고 버벅거렸는데 아마도 그건 그 직전 예니사원서 만났던

적반하장의 할배 탓일 거다. 무지 친절한 척하다가 갑자기 삐져버리고. 아직 영어로 싸우는 건, 혹은 따지는 건

잘 못하겠다. 그저 착하고 모범적인 영어만 배워왔으니 원. 그림도 신통찮더만, 맘껏 구경하래서 옆에서

그림그리는 거 구경하고 한점 두점 꺼내서 보여주는 거 잠자코 구경했다가 갈랬더니, 그림 하나 안산다고 난리...

걍 말 안통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치워야겠다.


일요일이어서 원래 문을 안 연 거였는지, 아님 갑작스레 8시가 넘으면서 어두워진 것에 놀란 건지, 좁은 시커먼

골목에 인적도 없고 아무 생명의 기운도 없고, 아잔 소리가 괴기스럽게 골목을 뒤흔들더닌 길가에 널린 고양이들이

음흉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헤매도 대로는 커녕 사람 한 명 안 보이는데 덜컥 쫄아서 어느순간 뛰기 시작했는데,

문득 아야소피아의 어여쁜 미나렛이 눈앞에 서있는 모습에 맥이 탁 놓였다.

무슨 페스티발 같은 게 오늘부터 아야소피아 앞 광장서 있었나보다. 우리네 장터같이 구멍가게들이 열리고,

경찰들이 분주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좀 구경해주다가 영 지치고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고. 오렌지를 까먹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었는데, 오렌지주스말고 생 오렌지는 절대 안 판다는 싸가지 아저씨에서, 여섯개에 오천원을

부르는 사기꾼식끼, 그런 고난과 역경 끝에 겨우 6개를 1$에 손에 넣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공연을 보며 오렌지를

까먹겠다던 원래 생각과는 달리 공연은 보는 둥 마는 둥 계단에 앉아 순식간에 다 까먹고 숙소로 들어와버렸다.





셀축(Celcuk)행 버스를 타고 '오라이~' 아저씨와 안 되는 영어로 둘다 애써가며 터키어도 몇마디 배워보고,

서로의 지갑도 구경시켜 주고 했다. 그렇게 심심찮게 도착한 셀축에선, 아르테미스 분수대 앞에서 또다시

새로운 아저씨와 친해지고 말았다. 재미있게 말도 잘했고, 맥주도 사준대다가 안주삼아 먹고 있던 도토리도

맛보여줘서 그냥 자연스레 합석하고, 함께 걷게 되었던 거다. 그냥 착한 현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한적한

골목 어귀에 앉히고는 주위를 둘레둘레, 사뭇 긴장한 손짓으로 지갑 속에서 오래 되어 보이는 금화를 몇 닢이나

꺼내 놓았다.


250달러, 150달러, 100달러, 50달러, 40달러, 10달러, 5달러까지...재미삼아 시작한 흥정인데, 급기야 내가 찬

싸구려 목걸이라도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에페스에서 일한다느니, 발굴작업하면 그냥 그런 과거의 유물들이

쏟아져나온다느니, 합법적인 루트로는 팔 방법이 없어 그러니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사달라느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문득 질려버린 걸 느꼈다.

그런가 하면 이사베이모스크 옆의 가게에 있던 그 스무살짜리 아가씨, 뛰어와서 빨대까지 챙겨주는 거 보면

어려보인다고 칭찬해줬던 말이 약빨이 있었던 것 같다.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머리 모양새도 그렇고 얼굴의

솜털도 그렇고..난 부모님이 잠시 안 계신 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중학생쯤으로나 상상했었단 말이다.


오토가르 가는 길 가르쳐주면서 담배도 권해주고 이것저것 유적도 보여줬던 아저씨도 있었다. 이빨을 온통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주었던 그의 주름진 털복숭이 얼굴. 그런 식의 친구가 권하는 담배는,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 아, 시장에서 만난 카펫집 아저씨는 복숭아티도 사주고 쉬었다가 가라고 살갑게

대해주기까지 했었다.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밝고 긍정적이랄까.


근데도 침대가 열 몇개 있는 데서 혼자 자려니 무진장 외롭네. 혼자 시장쪽을 돌며 아이쇼핑을 하는데, 문 다 닫힌

유적들을 헛되이 도는데 왜 그리도 허전하던지. 동양인따위 한명도 보이지 않는 외딴 곳에서 혼자 떨궈진

느낌이랄까.

시계를 7시반에 맞춰놓았는데 8시에 일어났다. 알람이 믿음직스럽지가 못하군. 샤워 한번 싹 해서 체온 좀 올리고

바로 체크아웃하고 나섰다. 성요한교회부터 찾아나섰다. 어젯 밤에 멋진 성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은 교회유적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리저리 배회하며 구경을 하다가 어제 그 아저씨를 또 만나고 말았다.

숨겨져 있던 리얼 모자이크를 보여주겠다며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또다시 그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기로 하자)를 꺼내들었다. 해서 필살기. Traveler's Check도 받아요? 바로 돌아서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래도 사진이나 한 방 같이 찍어줄까 하는 마음이 동했으나, 그새 다른 여성여행객에게 달라붙어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는 그 금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사베이모스크 보러 가는 길에 어제 그 아가씨 있는 가게에 다시 들러 물을 샀다.

하맘보러가다가 또다시 동전이랑 '파파 프러블럼'을 호소하는 아저씨한테 잡혀서 잠시 옥신각신하다가,
 
반강제로 그의 귀여운 아이와 함께 사진을 기어코 찍고는 빠이빠이. 모스크에선 비치되어 있던 쿠란을

조심스레 살펴보며 잠시 쉬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신전을 거쳐 에페스까지 걷기로 작정,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둥 하나 딸랑 남은 유적지.

참 친절한-주는 것 딱히 없이도 기분이 좋아지는-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트를 무겁게 끌고 가던 꼬맹이 아이들, 비록 짐은 얼마 안 되었지만 카트 자체로도 충분히 무거워보였다구.

타투를 멋지게 하고 자전거를 타는 장난꾸러기 녀석들, 포스만은 폭주족이었다.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권하는

아저씨에 아까 동전갖고 하맘서 장난친 아저씨까지.

에페스는 멋졌다. 무진장 더운 거 빼고는. 또 어느 가족에게 잡혀 영어실습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진도

찍히고, 왠지 손해보는 듯 해서 나도 굳이 같이 찍자고 하고. 에페스서 오는 길에 긴 생머리 여선생님을 만나

마케서 과일 쫌 같이 사서 함께 나눠먹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양도 많던지. 남겼다.

푸욱 쉬고 박물관 가서 돌아보고는, 이번에는 오렌지를 사들고 돌아다니다가 카펫 가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지야. 아침에 환전해야 해서 여기저기 은행을 찾아보고 환전소를 찾다가 난감하던 중에, 어떤 삐끼

한명이 친절하게도 환전이 가능한 한 기념품 샵에 데려가 주었었는데, 그때 거기 누나가 파랑눈깔 비스무레한 걸

내게 달아줬었다. 그 삐끼가 바로 지야였던 것. 우연찮게 다시 만난 그는 무지 반가워하며 차도 잔뜩 대접해주고
 
카펫도 구경시켜 주고.

차 석잔쯤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야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시장 들러서 잠시 그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데, 드디어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들어가보는구나 하고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지야, 지레, 부탄..이던가,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집에 가서 복숭아 먹고 무화과도 먹고. 터키 음악채널 보면서

음악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장래 이야기랑 블랙코미디, 영화이야기까지. 뭐 약간의 연애나 여자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난 여기서 Radiohead가 먹힐 줄은 몰랐다. 와우. HIgh & dry라거나 Let down..


뭐랄까, POWER of MUSIC.



안탈랴에서 마주쳤던 아이들, 저울을 갖고 다니며 몸무게를 재주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터키 전통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를 파는 맥도널드 앞에서 머니머니~를 외치며 오가는 관광객을

붙잡기도 하고 있었다. 크고 짙은 쌍꺼풀이 인상적인, 그래서 그저 선해보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눈에 꽉 찼다.


파묵칼레로 이동하려고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문득 볼일이 있어서 급하게 주위를 찾았더니, 화장실 앞에

지하철 같은 회전문이 설치되어있었다. 무려 500,000터키쉬리라. 그래봐야 한국돈으로 치면 500원이라지만

어쨌든 이런 치사한.


안탈랴(Antalya)에서 데니즐리(Denizli)까지 4시간, 거기에서 다시 파묵칼레(Pamukkale)까지 30분 소요.

생각보다 피곤했었나보다. 여러 사람과 계속 다녀서 그랬는지, 혹은 맨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내 자버렸다. 생각보다 파묵칼레는 별로였다.

탄산성분을 흠뻑 함유하고 있는 온천이 흘러나와 기원전시대부터 휴양지로 이름높았다는 파묵칼레, 이곳의

하얀 물그릇같은 웅덩이에 층층이 고인 하늘빛 물결이 찰랑이는 그림. 요새 터키 관광을 홍보하는 광고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던가,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고.

여러 이유가 있었을 거지만, 이 탄산온천 지역의 환경 및 수량 보존을 위해 유량을 제한하고 있었다는 것도 하나,

그리고 뭐랄까...딱 이 사진만큼의 풍경이었다는 이유도 하나, 마지막으로 저 언덕을 올라가는데 신발을 벗고

맨발로 느꼈던 물머금은 탄산칼슘 덩어리들의 찝질한 감촉이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는 것 하나까지.

해가 질 무렵 다시 올랐던 파묵칼레에서의 그늘진 풍경. 때로는 잔뜩 선망을 품고 다가갔던 그에게서 생각보다

전혀 진부하거나 실망스런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거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새하얀 '목화의 성'(파묵칼레의

의미라던데)다운 풍모가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이대고 볼수록 뭔가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멀리서 바라볼 때

더 좋은 풍경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에서 걸어서 고작 몇 분..? 그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고대의 도시 유적이다. 집터라거나,

아치형 문의 형체라거나, 여러 유적들이 남아있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2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로마의

원형극장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에 귀를 쫑긋세워 감청해 보니 여기가

오히려 그곳보다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도 못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실제로 여전히 당시 고안되어

배치되었던 돌들에 반사되는 음향효과가 작동하고 있어, 무대 위에서 지른 소리가 관객석 뒤쪽까지 전달된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는 여행객들. 나도 뒤에서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원형극장을 한바퀴 돌았다.

그걸 확인하러 무대와 관객에 뿔뿔이 흩어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경탄하는 여행자들. 나는 신체분절의

마법을 사용하여 조금씩 사진 속에 나를 구겨넣기로 하고, 나의 가지런한 두 발을 사진에 담았다. 아 물론,

내 귀에도 무대에서 누군가가 "마이크 테스트"를 웅얼대는 소리가 와닿았었다.

더운 날씨였다. 8월의 터키는 계속 그랬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 온 듯한 여행객들은 웃통을 훌떡 벗어제끼고,

우람한 배와 복실복실한 가슴털을 자랑하며 활개치고 다녔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지중해와 '나무 위의 집'-허클베리 핀이 살았을 법한-이 기다리는 올림포스로 향했다.

지중해의 유명한 휴양도시라는 안탈랴(Antalya)에서 머물 생각이었으나, 올림포스에 있다는 나무위의 집과

오렌지밭이 궁금했다. 카파도키아에서 올림푸스까지는 11시간, 버스비만 무려 25,000bin. 밤새도록 달리는

버스에서 친구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이스탄불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 비야누님과 그랬듯.

그리고 이어폰을 나눠낀 채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새벽 6시. 안탈랴에서 잠시 버벅대다가 올림포스행 차로

갈아타고 드디어 오렌지 펜션으로.

오렌지 펜션의 나무위의 집. 첫인상은 머..신기하고 색다르기도 하고 그런데, 좀 거리를 두고 보면 가건물같기도

하다. 통나무집 짓고 쓰고 남은 자재로 얼기설기 지은 게 아닌가 하고. 중간층의 더블룸을 잡고 나서는 올림포스

유적과 해변 쪽으로 나가보았다. 해변 들어갈 때 입장료를 받는다고 들었고, 실제로 옆에선 입장티켓을 끊던데...

난 걍 들어갈 수 있었다. 절대 꼼수를 쓰거나 비비적대며 사람들 틈에 묻어 들어간 건 아니다.

지중해. 정말 파란 바다와 물밑 자갈들의 반짝거림. 잠시 갈등하다 이내 팬티만 남기고 바다로 입수.

어찌나 좋던지.

걍 암 생각없이 멍하니 파도만 바라보다 바닷가에 누워 낮잠을 즐겼다.

노느라 정작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던 건...최소한 지중해의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건 아쉽기 짝이 없다는..

점심 때 수박하고 빵을 양껏 먹었는지라 별로 배는 안 고팠고, 맛난 요구르트를 후식삼아 한끼를 해결하고는

친구와 맥주 한병씩. 지치도록 바닷가를 거닐며 이야기하고 '가건물'로 돌아왔다. 아침, 점심, 저녁...빵에

고등어를 집어넣거나, 양고기를 넣거나, 혹은 치킨을 넣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게 삼시세끼를 해치웠더랬다.

머 먹는 거라면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튼튼한 위와 비위좋은 미감을 감사할 뿐. 터키의 수도물과

이집트의 수도물 역시 내 위장을 비틀어대지는 못했으니.ㅋ


다음날 눈뜨자마자 샤워를 하고, 역시나 전통적인 터키의 아침. 걍 과일과 빵. 늘 그렇듯 맛있게 먹고 설탕 듬뿍한

애플티를 석잔. 오전에 좀더 거닐다가 안탈랴로 다시 빽.


지중해의 풍토란 건 그전에 보았던 이스탄불이나 카파도키아랑은 영 다른, 그런 햇빛과 분위기가 있었다.

휴양도시라서 그런지 유로화가 많이 쓰이고, 물어물어 찾은 Lase Pension에 4$짜리 돔베드를 잡고 바로 나서선

골목골목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목걸이, 팔찌, 귀걸이 같은 온갖 장신구에, 장식품에, 특이한 문양의 헤나며

타투까지 아이쇼핑하기 너무도 좋았던 그 뒷골목들. 생오렌지를 갈아만든 주스도 사마시며 올림푸스와 비슷하게

휴양하는 기분으로 다니는 게 조금 처지는 건 아닌지 싶기도 했지만, 카라알리올루 공원서 본 퍼어런 바다색과 그

율동감을 넋놓고 바라보면서...그냥 맘을 놓아버렸다.


코에 피어싱을 고민하는 친구를 부추기기도 하고, 오렌지주스맛을 못 잊어 다시 大자로 사먹으며 케밥먹고, 저녁

해가 어슴푸레해진 안탈랴의 구시가를 거닐었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철푸덕 자리잡았던 카리알리공원 명당자리서

돈계산을 한번 해보곤, 딱 액수가 맞음을 핑계로 쐈던 Efes Dark 두어캔.








카파도키아의 로즈밸리 하이킹을 함께 하며 친해진 일행들을 전부 꼬셔서 술과 안주가 무제한으로 나온다는(!)

투어에 끼기로 했다. 이름하야 '터키쉬 나이트'.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맥주는 물론이고 터키의 전통주인

'라키'가 나온다고 했다. '라키'란 포도를 증류해서 만든 50도짜리 술인데, 겉으로 보기엔 투명한 소주와 같지만

향이 매우 독특하고 맛도 묘하며, 물에 희석시키는 순간 하얗게 우윳빛으로 변해버리는 신비의 술이다. 사실 지금

우리 집에도 한병 있지만, 그 강렬한 이국의 맛과 향 때문인지 잘 손이 안 가는 게 사실이다.
물론 술이 무제한이라는 이유 이외에도, 터키의 전통춤인 밸리댄스를 보여준다는 이유도 있었다. 본전 생각에

저녁까지 굶고 저녁 8시에 숙소에서 출발, 우리 숙소처럼 똑같이 바위를 파고 만들어진 큼지막한 무대 옆에

차려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로 나온 과일과 과자를 계속해서 리필하며 밸리댄스와 수피댄스, 그리고

이름 모를 다양한 전통 춤들을 구경했는데, 아쉽게도 밸리댄스는 그다지 오래 공연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밸리댄스보다 더욱 눈을 끌었던 것은, 남자분이 치마같은 하얀 옷을 입고 몽환적인 음악에 맞추어 내내

뱅글거리며 돌던 수피댄스. 이슬람 신비주의..만물이 쉼없이 유전하며 변화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다는 그 댄스를 집중해서 보다보니, 지금까지 먹고 마신 술과 안주들이 뱃속에서 함께 뱅글거리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마지막은 거의 나이트 분위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던...그런

히피스러운 분위기랄까. 비록 몸은 뻣뻣한 나무토막같았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던 밤.

다음 날 눈떠보니 7시 반, 전날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몸띵이를 채근하며 일어났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여러

투어 중에서 뭘 해야 하루가 알찰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이곳이 워낙 넓고 기기묘묘한 형상들도 모두 신기한 터라,

굳이 다 '발자국 찍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지 싶다. 이스탄불에서부터 함께 움직이던 누님들과 함께 사파리 지프

투어를 하기로 했다.

터키 중부의 황량한 지형, 그곳의 기묘한 풍광은 역시 스타워즈에서 배경으로 삼을만한 이질적이고도 낯선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곳을 마냥 달렸던 우리의 지프. 이름 까먹은 저 터키아저씨..영어는 짧았지만 손은 길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ㅡㅡㆀ 누님과 휴학생 아가씨, 터키를 끝내 같이 돌았음 무지 잼있었을 멤버였는데.
울 뒷차엔 프랑스 할무이 한분, 글구 대구 커플 한팀..거기에 수학과외샌님들이랑-이분들한테 '아주머니'이랬다가

맞을 뻔했다. 그리고 회사 그만두고 몇달째 여행중이시라던 그 '여행속물' 아저씨 한 분. 여행 다님서 만나는

한국인은 딱 세 부류였다. 좀 젊다, 어리다 싶음 대학생, 약간 나이가 있다 싶음 학교 선생님들, 글구 어정쩡하니

왠지 안 어울려보이면 '백수'..회사 관두고 무언가 심기일전을 꾀하거나 애초의 꿈을 수복하거나. 학교 선생님들

참 많이도 만났다 그러고 보면.

차유신, 젤베, 데브란트, 우치사르..많은 곳을 돌며 그 루트도 참 괜찮다 싶던데, 황량한 벌판이나 완연한 시골길,

거친 오프로드에서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때론 시냇길을 차로 주파하며 '물쑈'를 하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터키인들 참 친절하고 적극적이랄까, 지프타고 가면서 계속 손흔들고 인사하며 푸근하게도 웃고 다닌 것 같다.

어설픈 웃음이나 경직된 미소, 금세라도 무표정으로 바뀔 듯한 위태한 미소가 아니라 정말 여유있는 웃음. 그걸

여행 도중에 계속 갖고 다녀야지, 하고 다짐.


걍 대략 산비탈에 벽돌로 올려세운 집들이 아니라, 산을 깍아내고 만든 이 촘촘한 공간들. 때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전체의 윤곽을 미처 알아보지 못할 만한 풍경들이 있는데, 카파도키아의 풍경 역시..지나고 나서야 무슨 길을

밟고 무슨 풍경 사이에 자신이 틈입했었는지 알 수 있는 법인갑다. 자연과 인간, 무슨 교양 수업 제목틱한 느낌을

카파도키아에서 참 실감나게 얻었더랬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기 마련이라지만, 대체로 울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무뚝뚝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대체로 터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무지 친절하다. 머...여자들끼리 다님 좀 안

좋다는 터키 유학생의 투덜거림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집트와는 달리 터키에선 아무한테나 카메라를 맡겨

사진을 부탁해도 잘 찍어주었다. 이것저것 말도 붙이며 호기심과 환대를 표하기도 하구. 이집트서는 카메라를

거부하거나, 왠지 카메라 받음 바로 도망갈 듯한 우려로 인하여 혼자 여행다님의 설움을 많이 느껴야 했었지만.

우치사르 정상에서 어느 붙임성좋고 잘생긴 터키 남성의 도움을 받은 단체 사진.

우리가 움직였던 코스.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LAZER Pension.

여행은 줄곧 해뜨는 것으로부터 해지는 것까지의 주요 일정과, 해진 이후의 옵션으로 구성되었더랬다. '해가 진다',
 
'해가 뜬다'란 표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면과 형용불가의 장면들을 담고 있는 것인지, 몇십번을 봤건만

질리지가 않았다. 대체로, 터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할 듯한 곳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계속해서 한탄.

리가 머물던 숙소는 기묘한 형태의 바위를 파내어 방을 만들어낸, 그런 운치어린 곳이었다. 그보다 더욱 좋았던

건, 혼자라 생각하고 떠났던 여행이 어느새 정감어린 사람들에 둘려진 채 따스한 배웅까지도 받는 '럭셔리'한

것으로 바뀌었단 사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지중해와 '나무 위의 집'-허클베리 핀이 살았을 법한-이 기다리는

올림포스로 떠나던 날 밤...누나들의 환송, 그리고 '아저씨'의 촬영.




기타 참고자료..도움이 되려나 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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