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내 스카이라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텔레비전 송신탑, 삐쭉한 안테나처럼 생긴 그것을 따라 걷게 되면 나타나는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밤마실 삼아 설렁설렁 걷던 길에 슈프레 강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연 같은 것도 잠시 앉아 즐겨주고.


주먹만한 대리석들로 박아둔 유럽 느낌 그득한 포석을 달각달각 밟으며.


그래피티가 몇겹씩 덧씌워져 있는 교각 아래도 지나고.


도착한 너른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되려나, 백화점이나 각종 샵들이 모여있는 곳. 그리고 텔레비전 송신탑이 비로소 우뚝 서서 굽어보고 있는 곳.


한쪽에서는 베를린 시내 곳곳을 연결하는 트램이 출발.


그리고 이미 셔터를 내린 어느 건물 외벽에는 베를린, 러브, 두 글자만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느 오랜 성당 앞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시원한 분수 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아마도) 수도 파이프. 왠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현대적인 느낌 물씬.


조그마한 개천을 건너는데 시꺼먼 개천 위로 불빛이 둥둥. 굉장히 고즈넉한 동네, 무섭다기보단 마냥 평화로운 느낌.


그렇게 설렁설렁 밤마실 삼아 산책을 다녀온 덕에, 극악의 시차를 극복하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나 뭐라나..




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그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꼭 가야 할 곳. 그라데츠 성벽 남문의 로트르슈차크 탑 전망대.

 

그 위에 올라서면 그래도 제법 발딛고 돌아볼 수 있는 360도 전망의 뷰가 가능하다.

 

멀찍이 보이는 건 그라데츠 언덕의 상징인 성 마르크 성당. 타일로 장식된 그 지붕이 마치 자수로 한땀한땀 뜬 거 같이 보이기도 하고

 

레고 블럭을 하나씩 쌓아서 만들어진 장난감 같기도 해서 유명한 성당인데, 그 지붕을 살짝 굽어보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로트르슈차크 탑의 아랫층에서는 다른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에 가려서 감질나게만 보이던 성당이, 저렇게 확 트이는 셈이다.

 

 

그리고 카프톨 언덕의 꼭대기에 건축되어 천년을 버틴 성모승천 대성당의 모습이 당당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한쪽 첨탑이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남은 한쪽을 보고 보수중인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자그레브의 구시가 전경, 저 너머로 보이는 드문드문 높은 스카이라인은 신시가가 시작된다는 표지기도 하다.

 

 

아무래도 시선은 자그레브의 상징이자 심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 두 역사적인 건축물에 쏠릴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붉은 지붕, 파란 하늘,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하얀 건물들의 멋진 앙상블 그 자체도 매혹적이다.

 

탑의 맨 꼭대기에 숨어있는 오랜 종, 종을 지탱하는 나무 문설주나 기둥들에 빼곡히 채워진 낙서들을 보면

 

저런 데에다가 저렇게 낙서하는 게 비단 한국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었구나 싶어지기도 하고.

 

 

남은 사진들. 전망대의 시원한 바람과, 탑의 아랫도리에 앉아 악기를 연주중이시던 할아버지의 음악 소리,

 

이런 것들은 남길 수 없었지만 햇살 반짝이는 파란 하늘 아래의 자그레브 풍경은 아낌없이 담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그냥 종탑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또 한바퀴 돌며 멀찍이 뻗어있는 붉은 지붕들을 눈으로 더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걸 감각해내기에 모자람이 없던 곳. 로트르슈차크 탑의 전망대.

 

 

 

 

그라데츠 언덕의 남쪽에서 로트르슈차크 탑으로 올라가는 길, 건물과 건물벽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남자 두명 어깨를 맞대고

 

걷기도 힘든 너비지만, 이 길 끝을 향한 관광포인트들의 화살표가 저리도 수다스러우니 한치의 의심없이 가는 거다.

 

 그래피티라기엔 조금 아쉬운 낙서들이 붉은 벽돌담의 회칠을 이리저리 긁어놓고 있었고, 다행히 골목은 조금씩 넓어지고.

 

 

언덕을 올라간다는 실감이 나는 게, 조금씩 자그레브의 구시가부터 야금야금 붉은 지붕들이 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다 싶었는데 성 마르크 성당이랑 그 너머 성모승천 대성당이 보인다. 저기가 자그레브의 또다른 언덕

 

카프톨의 꼭대기인 셈이고, 지금 걸어 올라가는 중인 언덕인 그라데츠를 오르면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을 비롯해서 성모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스톤 게이트 등을 볼 수 있다.

 

 제법 높이 올라왔다 싶어서, 뒤로 돌아 밟아 올라온 계단들을 보려는데 문득 눈이 마주친 아가씨. 손을 흔들어주니 흔쾌히 답해준다.

 

 그리고 왠지 알루미늄 호일을 꼬깃꼬깃 구겨서 만들었거나 껍데기를 씌운 듯한 이 조각상은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안툰 구스타브 마토사'라는 분을 기려 세워진 거라고 한다. 아니, '세워졌다'는 표현이 어폐가 있다 싶은 게 워낙 친근하고 격의없는

 

느낌의 조각이라 그런 거 같다. 그는 자그레브의 삶을 즐기고 자유로이 살다갔던 보헤미안이었다고 하니 이게 맞겠다.

 

 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그가 보았던 도시와 지금의 도시는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기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삶이 더 척박해지고 속물스러워지고, 게다가 많이 고유의 것들을 잃어버렸을 텐데. 다행히 짧은 체류를 했을 뿐인

 

외지인의 눈에는 꽤나 훌륭하고도 단단한 문화자산들을 갖고 있는 특색있는 나라로 보였지만 말이다.

 

두둥. 아직 3월 중순이라 봄이라고 하긴 애매한 시기지만, 여튼 푸릇푸릇해진 풀밭 너머로 보이는 게 로트르슈차크 탑.

 

그라데츠의 남문을 지키기 위해 세운 감시탑이라고 하는데, 무려 13세기에 지어진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단다.

 

수백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정오에 대포를 발사해서 시간을 알려준다는데 정오가 훌쩍 넘은 시각, 대포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지만 여전히 귓가에 남아있는 건 저 씨디도 발매하신 프로 아티스트 할아버지의 연주 소리.

 

 

사실 여기는 이렇게 걸어오는 것도 방법이고, 남쪽의 일리차 거리와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올라오는 것도 방법이다.

 

여하간 탑의 조그마한 입구를 들어서면 한산한 기념품샵과 매표소가 있고. 10쿠네(약 2천원)을 내면 저 문 너머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게 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형 계단은 우선 건물 외부를 타고 오르게 된다. 발음도 어려운 로트르슈차크 탑과 옆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따라 나선 계단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한켠에서 수줍게 나부끼며 응원중인 빨래들.

 

그리고 탑의 실내로 들어섰더니, 마침 자그레브의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탑의 조그마한 창문들로부터

 

은은하게 비쳐들어오는 흐릿한 햇빛이 탑 내부의 하얀 벽면과 반들거리는 나뭇바닥에 사정없이 반사되면서 분위기가 그럴 듯 하다.

 

슬쩍 내다본 창문 너머로는 방금 올라온 완만한 계단길이,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들고 나온 아가씨의 손수레가,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느라 여념이 없는 커플이 보인다.

 

그리고 일리차 거리에서부터 올라온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사람들을 쏟아내는 출입구. 사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진 않던 게, 나선 계단을 따라 탑을 뱅글뱅글 오르는 중에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저 문이 열리고

 

관광객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겠다 싶은 게, 운영 거리도 짧거니와 걸어서도 충분한데 뭐.

 

 

조금씩 눈높이가 둥실둥실 떠오르는 게 느껴지려나 모르겠지만, 한층한층 오를 때마다 탑의 네면에 한개씩 있는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사진으로 담다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들의 눈높이가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자그레브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어떤 식으로 디테일하게 타일들을 짜맞춘 건지 궁금증을 풀기도 하고.

 

이만큼 높아진 시선에서야 비로소 붉은 지붕들 너머로 하얗게 반짝거리는 성 마르크 성당의 일부를 보고 설레이기도 하고.

 

아래에서 강아지들을 끌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궁금해하며 사진을 담기도 하고.

 

아까 자그레브 대학교의 미대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저 아가씨는 그새 아이스크림 아저씨랑 한담을 나누는 중이다.

 

 

그래도 케이블카가 운영되지 않는 건 아니어서, 이렇게 두 개의 레일을 따라 파란색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걸 보기도 했다.

 

주변의 낡고 붉은, 그렇지만 그 디테일한 까끌까끌한 질감이 살아있는 지붕들과 완전히 정반대인, 반짝이는 파란, 매끄러운 케이블카.

 

계단은 계속됐고, 그 때마다 자그레브의 신예 작가들의 사진을 빠짐없이 감상하고 게다가 네 면의 조그마한 창문에서 보이는

 

자그레브 시내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나 걸리고 있었지만, 조금씩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는 걸 실감하며

 

기꺼이 만끽하는 중이었다. 계단도 그렇게 가파르거나 높지 않아서 힘들지 않고.

 

 

이런 창문들이 사각탑의 네 면마다 하나씩. 위로 올라가니 제법 외풍이 세차게 몰아닥쳐 창문을 아예 잠궈놨던데,

 

굳이 그걸 살짝 열고는 유리창의 방해 없이 맨눈의 자그레브를 구경하고 싶었다.

 

 

층수로 치면 4층쯤 되려나. 이제 왠만한 자그레브 시내의 건물들은 얼추 눈아래로 들어온다 싶을 즈음.

 

대포가 나타났다. 이게 매일 정오마다 발포되어 시간을 알려준다는 대포, 리얼 대포다. 대포가 있는 유리방 벽면에 붙어있는

 

온갖 삼엄한 금지 표시들만 봐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대포를 향해 창문 너머로부터 쏟아지는 이 나른하고도


따스한 햇살은 좀. 반칙 아닌가 말이다.

 

붉게 칠해진 바퀴는 단단히 고정되어 반동을 최소화했고, 어느 하나 녹슨 부품이 보이지 않는 대포의 철제 바디는 보기만 해도

 

왠지 군대의 살상병기가 갖는 위용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그런 대포가 자그레브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려주는 유용한

 

알람 시계로 활용되고 있다니 꽤나 교훈적이랄까 바람직하고도 건전한 모습이다.

 

그리고, 사진이 너무 많아 일단 여기서 끊고 로트르슈차크 탑 위에서 보이는 풍경은 다음 포스팅으로.

 

맛보기 삼아 한장만 올리자면, 이 탑 위의 전망대에서는 성 마르크 성당의 자수같은 지붕이랑 아이 컨택이 가능하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월정사로도 유명하지만, 산기슭을 따라 걷는 전나무숲 산책로가 참 좋다. 산책로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울.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여름. 저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나뭇잎들이 흙바닥에 점점이 박혔다. 레오파드 무늬.

 

 

어느결에 문득 추워질 계절을 예감하고는 더운 날씨에 도토리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들.

 

 

마른 흙길을 가운데 두고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 어디선가 짙은 숲향이 번져나오는 산책로.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비어나가다 끝내 쓰러지고 만 거대한 나무둥치.

 

 

 

그리고  그 산책로 끝에 있던 멋진 기와를 얹은 대문. 여기까지 대충 한시간 유유자적 걸었으니 다시 한시간 돌아가면 된다.

 

 

월정사에 들어서는 길에. 저 회전하는 탑 같은 걸 잡고서 한바퀴 돌릴 때마다 공덕이 높아진다던가. 소원을 이뤄준다던가.

 

 

 

탑을 가운데 품고서 사방에 들쭉날쭉 늘어선 날아갈듯한 기와지붕들.

 

탑 꼭대기에 얹힌 장식을 바싹 당겨서 살펴보니 굉장히 섬세하다. 맨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디테일들.

 

 

 

화려한 단청과, 단청의 기본 오방색을 테두리에 두른 북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저렇게 빈티지스러워졌다.

 

월정사로 건너오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계단.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초록빛이 그득하던 오대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꺾어들어왔던 길, 등산할 생각은 없었지만

 

월정사랑 전나무숲 산책로를 걸었던 것 만으로도 무지 좋았던 기억.

 

 

 

 

영광 법성포는 인도 간다라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가 실크로드와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기 위해 바닷길로

들어올 때 최초로 당도하여 불법을 전파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 아미타불의 의미가

담겨있는 명칭으로, 이후 '성인이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法聖浦)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듯 백제 불교의 최초도래지인 이곳 법성포에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기념성역을 조성해두고 인도 간다라 특유의

불교조각과 건축양식을 따른 기념조형물들과 기념 공간을 마련했다고. 그런저런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는 사찰과 주변 조경이 산책삼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진찍기에 제법 괜찮은 곳이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최초도래지 입구로 들어가는 길, 외길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서있는 가로등 너머로 시퍼런

하늘이 참 좋았다. 특히나 가로등 바로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날아가는 비행기의 뒷꽁무니가 보이는 것 같기도.

청명한 가을하늘 저멀리로 마음도 같이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온통 붉은 열매가 지천으로 매달려 있던 풍경. 어찌나 왕성하게도 다닥다닥 붙어있던지

살짝 무섭거나 징그럽다고까지 느껴졌지만, 그래도 저렇게 프레임을 조금 잘라 들여다보면 나름 가을스럽던.

바다쪽 말고 산을 끼고 있는 길쪽으로는 철조망이 조금 둘려있었고, 철조망에 기대어 장미꽃들이 피어있기도 했다.

나름 단단한 꽃망울을 터뜨리곤 뾰족뾰족 가시를 발톱처럼 드러낸 장미꽃이라지만 철조망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끄트머리 철사 앞에선 여려보이기만 할 뿐. 

함께 나섰던 사진작가분이 억새를 가리키며 한번 찍어보라 하여 찍어본 사진. 살짝 역광을 안고 찍는 게 더 이쁠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카메라를 쥐고 자리를 잡는 바람에 왠지 민망해져서 살짝 찍어보곤 빠졌다. 


드디어 정문 도착. 과하게 임팩트를 준 거 같긴 하지만, 정문의 자바라식 철문이 정말 햇빛을 받아서는 저런 느낌으로

반짝반짝하고 있었단 말이다.


입구를 지나쳐 안으로 쏘아 들어가는 대신 저 화분이 눈에 들어와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진

화분은 무슨 돼지저금통처럼 금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고, 돼지의 모양 역시 돌돌 말린 돼지꼬리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표정도 참 탐스럽고, 두 볼에 찍힌 연지곤지같은 보조개도 귀엽다. 


기념공원에서 가장 바다쪽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정자,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동종 하나. 몸통 안에서 울림을 더하는

소리가 종 위쪽의 저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면서 나름의 진동과 웅얼거리는 울림이 깊어진다고 들었는데.

저 너머로 불(佛)자가 새겨진 정원과 부처상이 보이고, 앞으로는 부처의 자비심처럼 온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듯한

기운을 풍기는 범상치 않은 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들의 뻗친 형세하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묻어있는 

나뭇잎들의 분위기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계속 눈에 밟히는 나무였다.

마라난타 존자의 상과 그가 전래했다는 불교유물, 불교 설법의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던 간다라유물관. 안에 사람이

한명도 앉아있지 않았지만, '사진촬영금지'라는 말을 고분고분 들었던 건 마라난타 존자가 한가운데 딱 버티고

서서 나를 내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곳에도 가을은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불그죽죽해진 나뭇잎들이 하나씩 둘씩 짝지어 내려앉았다.

간다라 불교에서 연원한 여러 인물들과 부처상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향로 모양의

조형물의 지붕 사방으로 매달려 있는 종에 제법 섬세한 문양이 보였다. 바람이 불때마다 날개옷을 너울거리는

청동종 안의 사람이 땡그랑땡그랑 울었다.

나무데크로 정비되어 뭔가 집회를 위한 장소로 마련해둔 듯한 공간에 놓였던 긴 화분 하나에서 꽃이 한뿌리채 통째로

떨어져선 한층 아래 바닥에 낙하해버렸다. 스스로의 의지로 떨어졌을 리야 없겠지만 자꾸 비장한 누군가의 자살,

누군가의 투신과도 같은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여서 굉장히 잔인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바세계의 풍진만물을 세심하게 굽어살핀다는 부처님을 챙기는 건 정작 저렇게 두 눈알을 번쩍거리고 있는

CCTV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아직 공사가 채 마감되지 않아 밑의 기단이 헐벗은 콘크리트 더미로 남은

미완성의 부처라서 힘이 딸리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 얻어낸 오방색을 기반으로 꽃단장한 단청의 화려하고도 자연스런 색감, 갓 칠한 느낌 그대로 선명하고

또렷한 그 오방색 단청도 나무랄데 없다지만, 역시나 가을엔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의 오묘한 빛깔로 물든 단풍이 최고.


아직 공사가 미완이라지만 사람들의 소원은 완공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돌멩이들로 마감한 한쪽 축대의 돌들을

뽑아내서는 돌탑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 밑단의 돌을 하나 더 뽑아 위에 개어두면 언젠가는

모든 소원들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르지만, 다소 투기적인 마음으로 '나만 아니면 돼'라며 소원 하나의 무게를

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난 돌멩이들의 무게를 수천년간 견뎌내온 인류의 신이란 작자에게 조의를 표한다.


2층에 있던 법당, 생각보다 담백하고 부처상 역시 3D의 입체상이 아닌 2D의 그림으로 갈음되어 있었다. 법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던 건 반질하지만 유난하지 않은 나무 책상, 목탁과 죽비의 담담한 광택.

그나저나 사람들은 왜 저렇게 젖꼭지에 집착하는 걸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며 소원을 빌었던 그 손이 그 손 아닐까.

다른 분위는 텁텁한 대리석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유독 젖꼭지 두개만 반질반질, 좀만 더 있음 말갛게

광택이 생길 거 같다.

돌아나오는 길, 그러고 보니 밑에서부터 위에 모셔진 부처상까지 오르는 길은 108계단으로 맞춰졌었다. 인간세상을

살아내며 겪게 된다는 108개의 번뇌. 계단 한걸음한걸음 그 번뇌와 세사의 번다함을 되짚어보고 끊어내며 올라갔다

내려왔어야 했는데 뒤늦게 알아챈 탓에 그러지 못했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갈라타타워 가는 길,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이쁜 건물들이 제각기의 실루엣을 양옆으로 커튼처럼

늘어뜨렸다. 날씨가 좀 맑았어도 저 건물들이 좀더 반짝반짝 새콤한 빛깔을 냈을 텐데. 돌들의 굴곡이

오톨도톨 생생하게 느껴지는 도로 바닥과 마찬가지로 빗물이 묻어 조금은 쳐지고 차분한 빛깔이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점점 커진다. 두툼한 원통 형태의 바디가 의외로 경쾌한 느낌인 건 아마도 저

베이지색의 자잘한 돌덩이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인 듯. 타워, 탑, 성이라지만 담백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 덕에 애초 갖고 있었을 살벌하거나 딱딱한 느낌이 많이 희석되었다.

들어서는 길, 입구는 여기 한 곳이다. 안에 생각보다 좁은 공간에 기념품샵이 있고 위의 전망대나

레스토랑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레베이터가 두 대 있었다. 갈라타 타워 앞에서 돛을 몇개씩이나

달고 있는 범선들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던 옛날 어느적의 풍경이 늘어뜨려져 있어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엘리베이터는 '고작' 9층짜리. 7층 로비에서 내려서 한층을 걸어올라가야 8층 레스토랑이 나타나고,

그 레스토랑에서 바깥 테라스로 나가 이스탄불 전경을 볼 수가 있는 식. 그 위 최고 꼭대기인 9층엔

터키 전통공연이 벌어지는 나이트클럽이 있다고 하던데 공연 수준이 나쁘지 않은 정도라고 하지만

직접 안 봤으니 잘 모르겠다. 그보다 고작 6명이 들어가는 조그마한 엘레베이터에 안내원 한명은

고정적으로 타고 있으니 5명만 타면 만원.;; 속도도 빠르지 않은 엘레베이터 두 대인지라 사람이

좀 몰린다 치면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도 시간 좀 걸릴 듯.

7층에서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원래 엘레베이터가 있기 전에는 맨 아랫층부터 꼭대기까지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올라야 했을 거다. 이거 각도가 거의 70도정도는 족히 되어보이는

계단인데 폭도 좁아서 뱅글뱅글 꼬아올라가다보면 문득 핑-하고 도는 느낌도 들었다는.

8층 레스토랑에 올라 보니 생각보다는 공간이 넓다. 게다가 천장이 높으니 그렇게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아서, 테이블을 꽉 채운 채 밥을 먹으면서도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 얼기설기

불빛이 잔뜩 꽂혀있는 전등도 인상적이었고.


스프가 먼저 나오고 빵을 조금 먹다 보니 각종 고기 케밥이 나왔다. 감자 튀김도 맛있었고, 고기랑

빵이랑 같이 먹으니 역시 맛있더라는. 창 밖으로 멀찍이 보이는 블루모스크의 미나렛들이 밥맛을

더욱 돋궜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면 블루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의 미나렛들처럼 테이블 위에 우뚝 선 에페스 병맥주 탓이었는지도.

창가에 딱 붙은 옆 테이블 너머로 바깥 테라스에 나가 이스탄불 시내를 구경하는 두 젊은이가

풋풋했다. 이스탄불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쯤 되지 않을까,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돌아나오는 길,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다시 기다리려 금세라도 몸이 앞으로 쏠릴 듯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왔고, 금박으로 얼기설기 빚어진 갈라타 타워와 주변의 스카이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봤으며

5명씩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다시 내려와서 올려다본 갈라타타워. 반들반들, 조그맣고 단단해보이는 차돌들이 커다란 원통을 가득

감싸고 있었다. 아랫도리 부분은 사람들이 얼마나 매만졌을지 까맣게 손때가 묻어있던 갈라타타워.

6년전엔 돈이 없어 못 올라가본 채 밖으로만 맴돌던 그 곳.




갈라타타워 위에 올라가니 이스탄불이 온통 발 아래에 펼쳐졌다. 밖에서 올려보며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높은 느낌, 아무래도 탑 자체의 높이에 더해 언덕의 높이만큼 올라선 셈이라 그런 듯하다.

갈라타항에 정박해 있는 호화 크루즈선. 유럽에서부터 관광객들을 뭉텅뭉텅 실어나르는 배라고.

갈라타 대교 너머 왼쪽서부터 성 소피아 박물관, 블루모스크, 그리고 예니사원까지. 기도빨 충전되길

기다리며 장전 중인 수 기의 미사일 미나렛들을 품고 있다.

바닷가, 항만에 빼곡하게 들이차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도시 한 가운데를 바다가 가로질러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속한 지역으로 갈라놓는단 건 정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스탄불의

그 마력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건 이렇게 바다를 품고서 세 대륙의 기운을 마구 끌어들여서 아닐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구 시가의 골목은 시원시원하게 규칙적으로 종횡하는 게 아니라 툭툭

중간에 막히고 꺽이고 비틀비틀, 갈지자로 건물 사이를 감아돌아간다. 건물들 모양새 역시 꽤나

독특해서 오각형, 육각형 건물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 거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반듯한 골목 하나.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이 그저 지붕의 붉은 빛을

대충 공유할 뿐인 건물이 좌우로 시립한 채 반듯한 골목을 하나 만들어내고 지키고 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갈라타 대교 위에서 낚시도 하고 노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 같다.

하늘도, 건물도, 바다도 모두 축축하게 젖은 진회색, 그 와중에 부드럽게 번지는 붉은 지붕.

갈라타 타워 위, 둥그렇게 이어지는 테라스는 사람 하나 넉넉히 지나다닐 만한 폭이었는지라

뱅글뱅글 앞사람 꼬리를 물며 테라스를 한바퀴 도는 게 순례자의 길 같기도.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려고 뱅글대는 계단을 몇 걸음 오르다가 문득 이웃집 지붕에 눈길이 미쳤다.

어라, 대낮부터 왠 도둑님께서 커다란 주머니를 짊어지고 톡톡, 톡, 이런 느낌으로 지붕 위를

뛰고 있는 게 아닌가.


시꺼먼 도둑이 무섭거나 사나워보이기 보다는 앙상하게 드러난 알다리가 금세라도 헐거운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던 데다가, 천사들 노랑빛 고리처럼 떠있는

머리위 두 불끈 쥔 주먹이 조금 무시무시하기도 해서, 왠지 난 도득 편에 서고 싶어졌다.




@ 터키 이스탄불.
구 소련이 멸망할 때까지 공산정권의 치하에 있었던 이 공간은,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이란 이름으로 독립하게

되고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임을 선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후 두명의 대통령을 맞으면서 사실상의

일인 독재정권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공산주의 정권이나 일인독재 정권이나 어슷비슷하게 통하는 것도 있을 테고,

사람들의 일상이야 딱히 혁명이 일어나 뒤집히지 않은 바에야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

어쩌면 북한의 평양 시내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외부에 보이기 위한 일정 구획 안에만 잘 관리되어 있고

그 너머를 향하는 순간 마치 '매트릭스'의 세계의 끝에 도달한 느낌을 던지는.

시내 중심의 커다랗고 새하얀 건물들이 아쉬하바드의 집결된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면, 그걸 좀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건 곳곳에 서있는 초대대통령의 금빛 동상과 현직대통령의 대형 초상화, 그리고 탑이나 조형물들인 듯.

실제로 저런 커다란 건물들은 관공서, 정부 청사, 역사 혹은 국립 대학이라고 했다. 건물 외벽에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두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건물들인 거다.

그에 비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은 많이 허름했다. 옛 소련식으로 지어졌다는 아파트 건물들하며, 살짝

이지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가정집들. 모래폭풍이 심심찮게 불어오는 뿌연 공기 속에 내놓은 채 말리는

빨래들처럼 이들의 삶은 적당히 까끌까끌하고 건조하진 않을까 싶었다. 이 땅에서 많이 난다는 석유와 가스

팔아서 번 돈으로 저런 관청이나 대리석으로 지을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건 아닌가.

그치만 또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거 같다. 외부인의 시각으로야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라 여겨질 만한 일이라도

이들의 시각으로는, 그리고 이들의 기준으로는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국가로부터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까 초대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하늘을 찌르고 현직 대통령 역시 못지 않는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걸 거다. 분수대 앞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는 어머니도 그랬지만, 길거리를 걷는

많은 투르크인들의 표정은 분명히 밝았었다.

그녀들의 화사한 전통의상이나 원피스도 이쁘고, 나름 생기발랄한 표정도 그렇고, 찌푸리거나 쩔어있는 표정은

아니다. 그리고 흔히 '공산주의국가'나 '독재국가'를 상상할 때 그려지는 회색빛의 음침한 분위기도 아닌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들은 이전에도 이런 표정을 짓고, 이런 옷을 입고 다녔을까.

어쩌면 그런 변화는 구소련의 공산정권 치하를 벗어나고부터, 혹은 최소한 가스와 기름 덕에 조금씩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허름하고 흐릿하던 신호등이 이렇게 반짝거리며 녹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선명한 LED조명 신호등으로 바뀌었듯이.

그리고 여전히 이 나라는 러시아식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그런 나라인 거다.

거리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이는 딱딱하고 건조한 군인들, 이들은 샤방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과 함께 변화중인 투르크메니스탄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쉬하바드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커다란 깃발들, 깃발들을 꽂아 놓은 깃발꽂이들. 저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평양 시내를 스케치한 사진들에서도 비슷한 걸 봤던 거 같다. 집체 공연을 하거나 군중무를

할 때도 깃발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흔히 활용되는 도구기도 하다. 여기선 대체 뭐에 쓰이는 걸까. 궁금증을

끝내 풀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아파트 벽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그림, 성모 마리아 같은 인물을 그린 종교화 같기도 하고, 인민의 표상 같기도

하고, 혹은 공산주의식의 계급의식을 드러낸 벽화같기도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로만 따지면 소련의 느낌.

구소련 시절에 세웠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탑'(이라고 해야 하나 위령탑이라고 해야 하나..)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연합국 측의 승리를 가져온 건 팔할이 소련의 힘이었던 거니까

그들은 이곳저곳 치열한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에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곳에서 굴러다니는 차들도, 오래 된 것들이다 싶으면 대개 소련에서 양산되어 공급되었던 '국민차'에 속하던

것들이라 보면 딱히 무리가 없다고 했다. 물론 새 차들이야 벤츠에 BMW에 폭스바겐에 전부 외국 브랜드.

저 버스는 뭔가 깡총하게 생긴 게 뒷바퀴가 조금 앞쪽으로 땡겨져 있다 싶기도 하고, 어쨌든 꽤나 귀엽다.

그리고 아쉬하바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는 순간 황량해지는 풍경. 뜨문뜨문 떨어져 있는 건물들조차 저만치

멀어지고, 그 사이로 바싹 마른 채 헐벗은 땅거죽이 붉게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서울에서 조금만 교외로

빠져도 금세 스카이라인이 땅바닥에 달라붙고 도시적인 느낌이 사라지긴 하지만, 여긴 도시의 외관이 벗겨지면

바로 사막의 거칠고 헐벗은 식생이 드러나니까 더욱 극적인 거 같다.

와중에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투르크 여성분이 한 분 지나가셔서 급 화색이 돌던 풍경.

그나마 몇 그루씩 듬성듬성 있는 나무들도 비리비리하긴 마찬가지, 튼실하다거나 싱싱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나무 밑둥에는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하얗게 무언가를 칠해놓았다고 하던데, 알제리에 갔을 때도 이렇게

나무 밑둥을 전부 하얗게 칠해놨던 걸 봤었다. 물론 이유는 달랐지만. 거기선 '이뻐 보일라고' 칠했다던데,

어쩌면 알제리 역시 병충해 방지를 위한 목적일지도.

투르크메니스탄에도 소수의 쿠르드 족이 산다. 쿠르드족은 터키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종종 무력 충돌도

일으키고 소요를 발생시키곤 하는 소수민족인데, 이 곳의 쿠르드족은 그런 분리독립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쉬하바드를 벗어나 조금 산 쪽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저쪽 동네가 바로 쿠르드 족의 거주지역이라고.

정말, 아쉬하바드 시내 역시 참 작아서 이십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금방

주위 풍경이 바뀌어버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건물다운 건물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건조한 땅을 조금이라도

녹화시켜 보겠다는 의지로 심었을 조그마한 나무들은 사막의 거센 삭풍에 희롱당하며 비척비척.

그래서, 여기가 바로 아쉬하바드의 끝. 공산독재의 지난 세월이, 일인독재의 현재가 어떤 식으로 이 경계지역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여기가 아쉬하바드의 끝.





국가관들이 모여있는 푸동지역, A10 섹션에 가면 북한관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중국관에서 한국관을 지나 다소

푸동지역 전시공간의 변두리쯤..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래도 무려 엑스포에 최초로 참가하는 거다.


다소 웃기는 사실은 북한관과 딱 붙어 이란관이 있다는 점. 이른바 '악의 축' 국가 두 개가 나란히 전시관을

마련한 곳이니 저쪽은 여차하면 한 큐에..;;

북한이 표방하는 국제무대에서의 공식명칭은 조선이다. 위의 지도에서도 보였듯, 그래서 여긴 '북한관'이 아닌

'조선관'이라 부르는 게 맞겠다. 한국관에 비해 육분지일 사이즈라던가, 아담한 건물 하나. 외형도 단순하고

디자인도 쫌 벌써부터 '촌티'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도 굉장히 심플하다. 어쩌면 다른 관들이 전부 첨단의 번쩍거리는 조명으로 치장한 화려한 입구에

신경쓰고 있을 때 이토록 심플하고 단순한, 그리고 다소 시골스러운 디자인을 고수하는 건 멋진 전략일지도.

(그게 정말 고민 끝에 나온 전략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지만.)

'중국 2010년 상해 세계박람회'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했다. 저 우표를 살 수 있다면 사가면 좋겠다, 좋은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따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았다.

주체사상탑, 평양 시내 한복판의 랜드마크라는 저것이 고대로 옮겨져 있다. 근데 저..다홍빛의 횃불은 좀

어떻게 세련되게 안 되겠니, 싶도록 조악해 보였다. 좀더 그럴듯하게 만들었음 볼 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번영하는 평양'이라던가. 그래서 더욱 평양 시내의 모습에 집중했나보다.


건물은 좀 높은 천장을 가진 일층짜리, 벽면에는 '조선'의 국기를 그려넣었고, 주체사상탑 뒤로는 평양시내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중국에 와서 북한에서 운영하는 음식점도 가보고, 개성공단도 들어가보고,

그랬었지만 이렇게 엑스포장 내에서 '조선관(북한관)'을 둘러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다. 두근두근.

관리자인 듯한 분이 외신들과 인터뷰를 연이어 하고 있던 것도 신기했다. 아무래도 중국 언론은 엑스포에 처음

참가하는 북한에 대해 관심이 적지 않은 듯 하다. 더불어 다른 나라 언론들도 한번쯤은 둘러볼 듯 하고.

가슴팍에 달린 김일성배지를 찍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역광으로 사람 얼굴이 다 날아가버렸다. 다행인가.

전시관 내부는 간단한 편이다. 사실 그다지 내부가 넓지도 않은데다가 단층 건물이니, 그렇게 많은 내용을

담을 수도 없을 거다. 중앙쯤에 자리잡은 건 기둥이 매끈매끈 두툼하게 페인트칠된 듯한 작은 정자.

그래도 제법 붐비는 관람객 사이를 비집고 정자에 올랐다. 주체사상탑 뒤로 평양시내 전경도 보이지만, 그보다

저 왼쪽 벽에 그림이 눈에 확 꽂혔다. 헉. 선녀다. 선녀..다.

그리고 오른쪽, 롯데월드에서 두들겨본 듯한 속이 빈 바위동굴이 하나 있고, 앞에는 조그마한 분수 하나.

그리고 헉. Paradise for People이다. '조선(북한)'이 그토록 경계하고 적대하는 미제의 언어를 굳이 쓴 이유는

사실 한 가지 아닐까. 보는 눈 있는 사람은 봐라. 읽을 줄 알면 읽어라.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란 걸 선전하고

싶은 거다. 무려 '파라다이스'랜다. 이런 대단한 자신감을 우얄꼬 싶어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거대한 

농담은 실소(失笑)조차 잃게 만드는 거 같다.

파라다이스의 아이들은 빨간색 촌스런 옷을 입고 빙판 위에서 좋다고 놀고 있었다. 파라다이스의 어른들은

모두 무채색계열 잿빛 옷을 입은 채 열맞춰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선 파라다이스의 제일 손꼽히는

자랑거리 중 하나인 대규모 매스게임 장면이 쉼없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먼 옛날 한반도 북쪽을 거점으로 말타고 달리던 왕족의 고분벽화 한 점. 현무도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도 있고 고구려가 중화의 지방제후국 중 하나였다는 식의 해석으로 충돌을 빚고 있는데 북한이 어째

이런 걸 끄집어냈다 싶기도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슈퍼파워의 pivot으로 쓰임에 있어서야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하지만 북한은 중국에 대해 적당한 '외교'를 하는 거다. 어디하곤 달리.


게다가, 고구려의 역사적 의미와 적통성을 북한이 쥠으로써 얻는 이득도 사실 적잖다. 김일성가의 세습을

왕조의 그것과 비슷하게 포장할 수도 있고, 당대의 헤게모니파워였던 중국에 대항했다는 고구려의 이미지를

북한에 덧씌울 수도 있는 거다.

어라. 선녀들만 하늘에 있던 게 아니었다. 무려 무지개도 있었던 거다, 정자 안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이 각도가 딱이다. 무지개가 걸린 정자, 하늘 한켠에서 날개옷을 나풀대는 아리따운 선녀들. 

실은 고구려나 북한이나. 혹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권력 쥔 인간들의 권세와 호강을 위해 사람들만 뼛골

빠진다. 만리장성 짓는다고 삽질한 중국이나 영토키운다고 전쟁을 거듭한 고구려/발해나. 북한이나 남한이나

사실 한줌의 사람들이 '국가'와 '애국심'을 팔아 배를 채운다. 무지개로 사람들의 눈을 홀리고, 선녀의 자태를

'즐감'하도록 종용한 채.

사실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굳이 눈살 찌푸릴 일은 아닌지 모른다. 상해엑스포에서 외화벌이를 하려는

마인드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그것을 철저히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운 평양처녀' 운운하며 조선요리를

홍보하는 광고판이나 남한땅 주차된 차마다 빼곡한 마사지 광고물이나.

북한의 외화벌이에 일조했다고 잡혀가진 않겠지 설마. 그저 난 이름있는 '료리사 접대윈'이니 '직접 봉사'니

따위의 북한식 표현과 그 와중의 오타와 잘못 들어간 스페이스 한 칸이 우스웠을 뿐이다.

조선료리의 진맛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한번 가보시던가. 아무래도 정통 북한음식일 테니까 말이다.

또다른 외화벌이의 공간. 대부분 중국관람객들이 붐볐던 개막 당일이어선지 온통 중국말만 들렸다. 아무래도

중국인들은 북한을 남한보다, 혹은 남한만큼 친근하게 생각할 테니-그들이 우리를 더 좋아해 주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누구처럼 자기랑 악수하고 오일후에 다른 사람이랑 건배했다고 삐지는 쫌생이 짓은 말도록 하자-여기

이렇게 사람이 바글대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닐 거다.

조선 우표. 하나 사 갈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국내에서도 북한 우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미 해금된 지

오래라서, 사실 별로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른 몇가지의 기념품들. 북한의 인공기가 장식된 선반에 빼곡한 팜플렛들과 사진첩들은 대부분

주체사상탑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런 걸 누가 사려나..싶기도 하고. 막상 또 내가 한권 사보고 싶기도 하고.

'파라다이스' 밖에 나와 외부인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출신성분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보장받아야

가능하다고 들었다. 가슴에 펄럭이는 붉은 기 안에 투실투실 할아버지 사진.

조선식 민화라고 한다던가, 저 장구치는 아가씨 그림은 왠지 낯익다. 얇은 선으로 담백하게 그려진 게 왠지

아슬아슬해 보인다. 슬퍼보이기도 하고.


개막식 첫날 북한관에서 물이 샜다던가, 그랬다는 소식은 나중에 한국 돌아와서야 알았다. 내가 갔던

이 날이었다는 얘긴데 미처 몰랐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사고가 나서 휴관을 거듭하는 것 같던데, 아무리

'파라다이스'라고 억지스레 강변하고는 있어도 못내 안타깝다. 6개월여의 상해엑스포 기간 무사히 마치고

많은 사람 받아서 외화벌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개선문 근처의 야경을 보러 나선 길, 깔끔한 파리 지하철, 메트로의 좌석 배치는 마주보고 앉는 예전 기차와

전철의 여유공간을 합쳐 놓은 듯. 게다가 저 커다란 볼록거울은 버스 뒷문위에 달린 그것과 같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서자마자 파랑색 에펠탑이 하늘을 받치고 선 게 보인다. 이미 남빛 하늘은 무지근해졌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넘어가는 화려한 다리. 넘어갈 생각은 아니고 개선문으로 갈 생각이다.

파리의 국회의사당이었던가. 하얀 가로등 불빛이 담백한 대리석벽에 부딪혀서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개선문 올라가는 계단. 쉼없이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속도를 내다보면 순간 어찔, 한 순간이 있다. 살짝

내려다보면 무슨 달팽이관을 꾸역꾸역 말아올리는 느낌이기도.

개선문 내부를 장식한 금속제 문양들. 아마도 영광의 월계관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월계수잎이 빼곡히 꼽혔다.

그리고 야경, 거대한 ㅁ자 형태의 라 데팡스를 향한 직선대로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한껏 머금었다.

[파리여행] 새로운 신전, 라 데팡스

그리고 파랑색 거인. 다소 마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파란 뼈대에선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리 높지않은

건물들 사이에서 뾰족, 튀어나와 내려다보고 있다.

[파리여행] 기시감이 덕지덕지, 에펠탑과 야경들.

남빛 하늘은 점점더 어두워져선 푸른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지만, 그러고 나니 파란 거인 에펠탑이 사방으로

파랑 불빛을 쏴대고 있다. 흡사 등대.

그리고 파리 시내. 프랑스정원식으로 네모박스모냥 손질된 가로수들이 열맞춰 늘어선 커다란 울타리가 있고,

어디론가 향하는 자동차들이 유유하다. 다정다감한 불빛이 돋을새김해주는 운치있는 건물들의 윤곽선.

다시금 꼬부랑꼬부랑, 달팽이보다는 오랜 암모나이트 정도의 거칠고 울룩불룩한 껍데기가 떠올랐던 계단.




토끼 귀때기 모냥으로 길게 터미널이 두줄 늘어진 인천공항에 외항사 전용 터미널건물이 생기면서, 대한항공

혹은 아시아나같은 국적기 대신 외국항공사 비행기를 타려면 본건물과 이어주는 셔틀을 타야 한다. 마침

맨 앞칸에 타서, 슝슝 지나가는 노랗고 파랗고 하얀 조명들을 봤다.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9시간 반.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은 늘 밤비행기다. 두바이를 향한 비행기는 메카를

나침반 삼아 날아가고 있었다. 왠지 한결 고즈넉한 한밤의 비행.

비행기는 무슨 뱀파이어도 아닌 게 태양과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계속 어둠으로 어둠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계속 어둠 속에만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계속 밤시간대일 테니까 시간은....또다시

헝클어지고 마는 시간 관념. 실제로 비행기 속에서 시간이 조금 빨리 흐른다던가. E=MC².ㅋㅋㅋㅋ

두바이 공항이다. 공항 앞에 늘어선 핑크빛 택시들과, 핑크빛 유니폼 히잡을 둘러쓴 여성들이 신기했다.

두바이? 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국가의 한 조각, 한 에미레이트(州)를 이른다. 사실 아랍에미레이트라는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주중에서 가장 강성한 것은 아부다비, 대략 3/4던가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어쩌다 두바이가 아부다비보다 우리에게 더욱 크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로 '사막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냈다는 두바이는 모라토리엄 위기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운 것이

아부다비의 풍요로운 경제력이라 하고. 아부다비가 전통있는 갑부라면 두바이는 졸부랄까, 그런 이미지.

그래서 여긴, 모든 게 새것인 것 같다. 쉼없이 올라가는 건물들, 자국인에는 전기료나 수도세를 부과하지 않아

그런지 밤에도 불을 훤히 밝힌 채 골조를 그대로 드러낸 공사판 현장. 신기루처럼 어른어른 찍힌 사진.

하늘 한 귀퉁이가 쭉 째지며 조금씩 햇살이 번지는 시간, 두바이의 탑, 버즈 두바이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몇번의 완공 기일을 못 지키고 여전히 작업중이라 한다. 한국의 건설자본이

수주하여 화제가 된 건물이기도 하다.

이맘때의 하늘색깔이란 참 오묘하다. 한쪽은 짙푸른 군청색이 어른어른하고, 달을 감싸고 도는 뿌연 달무리는

꼭 물 한방울 톡 떨어뜨린 느낌이고, 지평선에 가까워지면서 이곳의 누런 모랫빛이 설핏 섞여드는 것 같기도.

전통 가옥들과 야생스런 야자수 너머로 날카롭게 솟아있는 빌딩은, 무슨 주사기 같다. 하늘을 향해

가파르고 삼엄하게 들이대고 있는 주사바늘 같은 첨탑.

대체 사진 한장에 담기가 쉽지 않을 만큼 길다란 빌딩이다. 대체 언제 완공되려나. 올해 말까지 완공된다더니

그것도 연기될 거라는 풍문을 들었다. 현지 인력들의 근무 태도나 수준이 도무지 퀄리티를 맞추지 못한다던가.

이왕임 좀더 두텁게 만들었음 안정감이 느껴질 텐데, 너무 얄포름하게 만들어서 휘청휘청할 것 같기도.


 

슬랩스틱이 난무하던 어린 시절의 개그 프로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나오던 동네가 있다. 방콕. 방에 콕? 그 방콕.

태국의 왕이 살던, 그야말로 방콕 중에서도 노른자위라 할 Grand Palace 내에 세워져 있는 이 황금빛 기둥은

'도시의 기둥'이란 의미의 락 므앙이라고 한다. 태국인들은 도시를 세우면 꼭 기둥을 세우고 그 곳에 사당을

세운다나. 끄트머리가 연꽃봉오리 모양인 황금빛 기둥은 얼핏 두꺼운 국기봉같기도 하지만, 글쎄, 아마도

태국인들은 이 기둥이 도시 위의 하늘을 떠받친다고 생각한 것일까.

뭔가 영험한 힘이 깃들었다는 곳은 한국이나 태국이나 온통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문양이 눈에 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벽지 디자인하며, 붉은빛 금빛으로 채색된 문짝하며, 그리고 그 위의 얹힌 핑크 테두리 그림까지. 참

이질적이다 싶으면서도 또 어떻게 생각하면 익숙한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의 절들에서 보이는 사천왕상이나

다른 벽화들, 혹은 불교에 포섭된 삼신각의 그림들까지.

락 므앙에 들어가는 문 중의 하나였지 싶다. 저토록 조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문양들과 문짝의 그림들이라니.

금색을 그냥 쳐발랐다면 무지 촌스럽고 유치찬란해 보였을 텐데, 금색의 고급스러움과 위풍당당한 느낌은

살리면서도 화려함 역시 갖추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았을까.

왕궁, Grand Palace는 어디나 그렇듯 무지하게 넓다. 여러 전각으로 구획된 공간마다 층층이 높고 주렁주렁한

장식이 달린 럭셔리 지붕이 턱하니 얹혀있었다. 상대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하얗고 네모난 기둥들.

이곳 기둥들을 전부 그 '도시의 기둥'처럼 금칠해놨었음 더욱 화려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외려 시선이 분산돼

지붕에서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장식들의 향연을 즐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전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태국인들의 먼 선조들이 일군 유물들. 그치만 서울의 을지로입구쯤서 드문드문

마주치며 과거의 사실을 일깨워주는 황당한 대리석비들처럼, 기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과 과거의 그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근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치장되기 시작한 과거, 박물관안에 모셔지고, 왕궁을

복원하고, 그렇게 시간 앞에 허물어지려는 기억과 흔적들을 애써 그러쥐며 난 관광중인 한국인, 그대는 순찰중인

태국인. 조금은 선명하게 너와 내가 갈라진다.

사진을 찍다 보면 문득, 아..이 건물들은 계속해서 내 시선을 높은 곳에 잡아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를 과시하려 지어진 건물들이 그렇다. 왕궁 안으로 들어와서 내 카메라는 계속 높은 곳을 향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의 목을 전부 뎅강뎅강 잘라버리고 건물을 담기에 여념이 없어지고 만다.

그치만 건물들이 워낙 화려한데다가 온통 금빛으로 번쩍거리니 원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숨겨진 고대의

황금도시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면 주위의 여행자들, 동료들 목을 뎅강뎅강 친다는 스토리도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같은 건물을 다른 측면에서 뒤로 잡고선, 조금 호흡을 가다듬어 한걸음 뒤로 재겨나서 찍은 사진엔 그래도 아빠가

제대로 들어가 있다. 왕궁이 관광자원화되려면 저런 식의 울타리는 필수인 걸까. 곳곳에서 마주치는 금지의 표식은

이 공간을 방문한 우리가 어쩜 상당한 불청객인지도 모른다는-실제로 그렇겠지만-느낌을 상기시키곤 했다.

이 금색의 원뿔탑은 부처님의 가슴뼈가 안치되어 있는 뼈라고 했다. 대체 어디에?라고 묻고 싶어지지만, 뭐 있다니

그런가보다 할 뿐. 너무 둔탁한 형태의 금빛 탑이라서 처음 봤을 땐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햇살이

강하게 내리쬘 때는 온통 번쩍거려서 눈이 아프도록 부시더니 살짝 구름이 끼니까 번쩍이던 불빛이 여기저기서

툭툭 힘을 잃고 떨어져내렸다.

계단 옆 난간도 범상치 않은 용가리 모양이다. 그것도 머리가 다섯개 짜리인. 사실 용이라기엔 입크기나 모양이

살짝 조잡스러워서 무슨 제삿상 굴비 입과 이빨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그래도 머리 다섯개 위에 제각기 그럴듯한

모자를 쓰고 있으니 용이려니 너그러이 받아주기로 했다.

저 탑은 뭔가 돌덩이로 탑의 형체만 얼추 잡아놓고, 금색 천이나 금색 벽지로 얼기설기 풀칠해서 싸발라버린 느낌.

축축 늘어진 윤곽들도 그렇고, 왠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의 금빛 광택도 그렇고.

그 탑을 밑에서 받치고 있는 괴물딱지들이 신기하고도 귀여워서, 어정쩡하지만 아빠랑 나랑 그 포즈를 따라했다.

...뭔가 저 괴물딱지들은 심하게 쩍벌쟁이들인 거다. 어떻게 저 자세가 가능하단 말이냐.ㅡㅡ;




 열반에 든 부처를 상징하는 와불상이 샛노랑 개나리색 옷을 입고 있다. 무슨 돌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녹아내린 건지 얼굴이 얼룩덜룩하다. 왠지 어렸을 적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한 배경화면같은 느낌?

사이즈로 승부한 느낌이다. 더구나 뒤로 돌아서 본 헐벗은 등짝의 남루함, 그리고 발바닥의 꼬질꼬질함이라니.

발가락이 네갠지 여섯갠지.

무슨 탑이었는데...뭐더라...제법 높은 탑에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온통 평지만 펼쳐진

태국에서 여기보다 높은 곳이 없다는 설명을 얼핏 어디선가 봤던 거 같기도 하고. 올라가봤는데 주변의 풍광이

온통 발아래로 말갛게 펼쳐졌었다. 탑이라기보다는 무슨 얄쌍한 피라밋같은 느낌?

위에서 내려다본 탑 아래의 풍경. 깔끔하고 실감나게 꾸며진 디오라마 마을같기도 하고, 입체감이 잘 느껴지는

가옥과 대문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저 건물은 기억컨대 부처님을 모신 불당이었을 게다.

 여행지마다, 고양이가 참 많이 따른다. 뉴욕서도, 이집트의 다합에서도, 그리고 태국의 아유타야에서도.

굳이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름 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고양이랑 개로 나누는 거다. 고양이과의 사람,

개과의 사람. 고양이가 가진 도도함과 자존심, 손길에 연연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표정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 다합의 모래사장에서 내 그림자를 청해왔던 그 자그마하고 귀엽던 새끼고양이처럼, 아유타야의 한 사원에서

중천에 뜬 태양을 피해 고양이가 내게 왔다. 고양이를 품었다. 그새 '품는 법'을 조금은 더 배웠구나.

적어도, 고양이 한마리 품을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글로벌 고양강아지

 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동물을 찾으라면, 아마 고양이와 강아지의 성격을 모두 가진 가상의고양강아지를 빗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양이와 강아지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고양이가 가진 야무지고 조심스러운 성정과 고유영역에 대한 소신 있는 몰입과 같은 것들은, 강아지가 갖고 있는 원만하고 적극적인 친화력과 충성심 등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두 특성을 모두 갖춘 채 적재적소에 필요한 성향을 드러내어, 최적의 맞춤형 인재로 부족함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고양강아지의 유연한 태도와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제가 귀 기업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애정과 소속감을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부드럽고 원만한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조직 및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 산문시집 '구직험난(求職險難)' 제 1장 '글로벌 고양강아지' 일부 발췌, 이채(생몰년도 미상)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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