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제주도. 비자림과 모슬포항, 가파도 청보리 축제까지 둘러봤던 짧은 여행. 들고 갔던 펜탁스 필카로 찍은 한 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뒷편으로 펼쳐진 가든스바이더베이. 매일 저녁 7시 45분, 8시 45분에는 슈퍼트리그로브에서


레이져쇼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가든스바이더베이의 스카이웨이라거나 플라워돔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스카이웨이의 진수를 맛보다.

바오밥나무가 자라는 플라워 돔, Gardens by the Bay



아무래도 한 십오분동안 여러 '그루'의 크고 높은 슈퍼트리가 번쩍번쩍, 쉬리릭, 펑펑, 하는 느낌이다 보니


글보다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할 듯. 참, BGM이 되어주었던 노래 중에 하나는 무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단.






말그대로 형형색색. BGM에 맞추어 출렁이는 불빛들을 보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전부 자리를 잡고 누웠다. 


명당이랄 자리가 따로 없는 게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이 눈앞의 시야를 휙휙 가리는 통에 누워서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래도 작년에 왔을 때 못 봤던 슈퍼트리쇼를 보는 게 그저 좋아서. 






뭔가 초록빛이나 노랑빛까지는 그래도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지만 이렇게 붉은 빛 일색이 되어 버리니 분위기가


일순간에 확 바뀌어 버렸다. 뭔가 화성침공의 느낌 같기도 하고.



멍하니 넋을 놓고 보다보면 왠지 엄청 몽환적이 되어 버린다. 아무 생각도 없이 불빛들이 돌아가고 노래가


바뀌는 것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흡수해버리는 느낌.  



대략 십오분 정도, 굉장히 밀도있고 몰입도 높은 쇼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마법에서 풀린 듯 다시 술렁이면서


움직이기 시작. 


이렇게 옆에 설치된 커다란 장기판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장기를 두기도 하고,


이런 류의 퀴즈게임을 풀기도 하고. 뭔가 상품이 걸려있으니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싱가폴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공연 같은 게 다시 속행. 중국의 전통악기들로 연주하는 팝이나 클래식곡들이


조용하게 가라앉은 슈퍼트리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걸 그대로 누워듣는 건 꽤나 멋진 일.



공연도 끝나고, 주위에 온갖 컨셉으로 만들어져있던 등들을 슬슬 둘러보며 돌아나가려는 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앞 용 모양의 등이 눈에 띄었다.



해서, 등들을 좇아 되는대로 걷다보니 이런 풍경도 보이고. 저멀리 싱가폴 플라이어도 보이고.




마리나베이샌즈 호텔로 건너가려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다시 슈퍼트리 그로브.

 


한풀 사람이 꺽인 시간, 쇼 때문에 번쩍거리지 않고 차분한 불빛의 슈퍼트리도 매혹적이구나.


그리고 탈출로 찾기 2차시도에선 가든스바이더베이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잇는 다리를 다행히도 금방 찾았다.


뭐, 이리저리 걷다보니 나온 길이니 찾았단 표현보다는 싱가폴의 멀라이언 신님께서 날 인도해주셨다고 하는 게.







 

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라는 지리산자락 바래봉,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5월초 황금연휴에  남원 운봉읍의 민박집을

 

잡았더니 여기를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신 거다. 부녀회장님이시기도 한 민박집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철쭉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도 구경하고, 떡과 막걸리도 얼콰하니 얻어먹고.

 

시골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는 건 역시 하늘 높이 떠올라있는 애드벌룬과 만국기.

 

그리고 한마리를 통으로 굽고 있는 지리산 흑돼지 바베큐, 막걸리 안주로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에 몇걸음 걷기도

 

전에 모든 걸 다 이루어냈다는 느낌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로 조금 올라가는 약간의 경사길에도 헥헥거리며 발걸음을 질질 끌고 말았던 것.

 

사실 철쭉이 그다지 이쁘다는 생각도 안 했었고, 무리지어 피어봐야 얼마나 볼만하랴 싶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 한 굽이를 지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온통 진분홍빛의 울긋불긋한 철쭉, 철쭉.

 

 

이렇게 지천으로 흐드러진 철쭉은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 할 만큼 빼곡하게 피어나서, 사람 하나 끼어 들어가

 

사진 찍을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앞에서 어떻게든

 

포즈를 잡아보느라 애쓰는 중이었고.

 

 

 

 

사실 바래봉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도 있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고는 했는데 일단

 

막걸리가 올라와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고, 또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터라 중턱까지만 피었지 위는 아직 멀었단

 

이야기를 듣고 지레 힘이 빠져서 그냥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내려오는 참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잘 꾸며놨다. 조경도 잘 해놨고 오밀조밀하니 걸어서 한바퀴 돌아볼 만하다.

 

 

 

그렇게 한참을 사방의 갈래길로 쏘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조금 취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하산. 본격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2코스를 시작하는 것으로.

 

 

 

 

 

 

속초 위쪽으로 있는 제법 커다란 호수, 영랑호. 그 주변길에는 왠지 80년대 정권의 핵심층이 '안가'로 썼을 법한 고풍스런 리조트가

 

열지어 늘어서있기도 하지만, 가을인지라 단풍이 곱게 든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는 거다. 혹시나 하고 찔러본 길이 대박.

 

 중간에 마주치는 연못에선 활짝 핀 연꽃도 구경하고, 범바위였던가 온갖 형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커다란 바위도.

 

 그리고 속초 닭강정시장통으로 가서 만석닭강정과 중앙닭강정과 시장닭강정집이던가, 3대 닭강정집을 둘러보며 시장조사.ㅋ

 

 마침 설악문화제던가, 축제기간이었는지라 시끌벅적하던 시장통을 한발 빗겨나오니 막 공연을 마치신 듯한 아주머니들이 길가에서

 

쉬고 계시길래 한 컷. 하와이에서 훌라춤을 전승받고 막 동남아 순회공연에서 돌아와 속초의 축제를 평정하신 아줌마들 되시겠다.

 

(물론 사진 촬영에 대한 허락은 자못 공손한 인사말로 얻어낼 수 있었음)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속초의 맛집 봉포머구리집. 가게가 휑뎅그레하길래 깜짝 놀랬는데,

 

최근에 건물을 새로 올려서 훨씬 번듯하게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는. 물회와 성게알비빔밥 모두 맛은 그대로였다.

 

 

 

 

 

포항 호미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을 가본 사람이던 안 가본 사람이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렇게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커다란 손의 형상.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사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혹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 청동 조각상은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99년 12월에 완공된 상생의 손,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 이렇게 두 손이 함께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손이 육지에도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성화대에 있는 화반은 해와 달을 의미하고,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던가.

 

바다에 있는 오른손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육지의 왼손. 그 앞에는 독도 일출과 피지의 일출에서 얻어온 불씨가

 

2000년 1월 1일 이래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었다.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왼손과 오른손, 상생하라는 두 개의 손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쥐고 있는 듯

 

살짝 움켜쥔 모양새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호미곶에 와서야 알게 된 손 조각상의 진실이랄까.

 

호미곶에 도착하면 딱 보이는 꽃마차들. 말갈기를 쉼없이 희롱하고 있던,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말들은 꿈쩍없었다.

 

상생의 왼손을 에둘러 바다쪽으로 훅 들어가는 전망대. 바다 쪽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는

 

갈매기들 틈새로 상생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전망대 걸어들어가는 길에 한번씩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 문어상. 포항이 문어로도 유명한 데다 심지어 문어축제도 있다는 사실.

 

 

더이상 나갈 곳 없는 전망대의 끝단에 서면 정확히 동쪽을 가리키고 선 꼬마 아이의 동상이 있고, 호미곶의 위치가 잡혀 있는

 

한반도 지도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분분히 날아다니며 상생의 손을 향한 시야를 여지없이 가리는 정신사나운 갈매기들. 사람들이 자꾸 과자를 던져댄 탓이다.

 

이쪽에서 보이는 상생의 오른손 측면샷. 아무래도 육지의 왼손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그림도 훨씬 이쁘게 잡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에 눈길이 간다. 포효하는 호랑이 형태의 한반도가 장식된 가로등이다.

 

같은 형태로 동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상 , 검고 노란 줄무늬가 선연하던 가로등 호랑이와는 달리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를 가졌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둥싯 떠있는 하얀 달을 움켜쥐려는 듯 내뻗은 육지의 왼손상.

 

 

광장에는 지난 새천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거나 각종 기념물들. 그 와중에 수쳔년 전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기념한 기념탑이 하나 숨바꼭질중.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로 가는 길은 엘레베이터와 계단. 계단으로 갔더니 대충 4층에서 5층 정도 높이가 되는 거 같다.

 

 

옆에 나란히 선 풍력발전기 한 대. 시험삼아 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효성의 광고판 같아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바닷바람이 매우 세게 몰아치기는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호미곶에 갓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부모손을 끌고 연 하나씩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바닷가의 소도시답게,

 

혹은 바닷가의 명소답게 저런 연들을 담은 종이박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잡힌다. 돌자반.

 

 

 

 

 

포항 죽도어시장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 중에 가장 맘에 드는 한 장의 사진을 꼽으라면.

 

과메기 축제중인 시장통을 구경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린 한쪽에는 생선을 파느라 열심인 어느 청년이 보였다.

 

대담하도록 치켜올라간 점퍼와 내려뜨려진 츄리닝 바지를 위아래 입술삼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포항은 역시 과메기와 대게의 고장. 시장통 골목 곳곳에서 짙고 풍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참돔배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상어 녀석. 경북 지방의 제수용 생선으로 널리 쓰인다던가. 세모꼴 이빨이 원통하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던 게 원조라고 하는데, 요새는 거의 이런 꽁치로 만든단다. 살가죽이 말라비틀어질 지경.

 

흔치는 않지만 이렇게 청어로 만들어진 과메기도 곧잘 내걸려 있었다. 아쉽게도 이 녀석들은 시식용이 없더란.

 

 좌판마다, 상점마다 맛보기로 내건 (꽁치) 과메기 시식을 하나씩 하며 시장을 걷다보니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입으로는 시식을 권하며 쉼없이 과메기의 껍데기를 벗기고 꼬리를 떼어내던 그네들의 손놀림은 가히 생활의 달인급.

 

 아무래도 살짝 찝찝한 건 없지 않았다. 과메기 클러스터, 형님 예산, 만사형통 따위의 단어들이다.

 

포항까지 내려와서 네놈의 이름 석자를 들을 줄은, 그래도 몰랐다.

 

에라이,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하얗게 성에가 내려앉은 동태의 썩은 눈깔같은. 

 

성황이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서울같은 먼 곳 말고도 인근 지역에서도 총출동한 듯 하다.

 

 꼬리에 철사를 꿰고는 물구나무선 채 해풍에 노닐던 생선들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묵직하고 맛깔스런 핑크빛의 몸뚱이를 가진, 지느러미가 촘촘한 생선도 있었다.

 

 그런 생선들의 장막 뒤로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 아주머니들.

 

 그리고 마치 커튼처럼, 시장통의 어느 예기치 않게 한적한 모퉁이에서 건너편 풍경을 미묘하게 가리는 생선들의 버티컬.

 

붉은 대게 한마리가 붉은 벽돌 건물벽을 기어오르다 잠시 쉬어가는 중.

 

그리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질척한 발길과 무수한 생선비늘로 갈고 닦인 이곳 죽도시장의 분위기만큼이나

 

운치있고 정감어린 돼지국밥집의 모자이크 창문 하나.

 

 

더위가 한풀 꺾이던 9월, 커튼을 너풀거리게 만들던 살랑바람이 마냥 상쾌하기만 하던 그 때의 안면도.

 

서해의 바다 풍경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바다맛이랄 게 없는 굉장히 지지부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야트막한 갯벌을 품은

 

그 어슴푸레한 분위기는 또 나름의 맛이 있지 싶다. 바다라는 게 꼭 시퍼러둥둥 깊고 진한 느낌만이 아니라는 식의 웅변.

 

 

새까맣고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가 졸졸졸 사람들 발꿈치를 따라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까만 눈이 반짝반짝.

 

그러면서도 겁은 많아서 막상 정면으로 사람을 마주보진 못하고 한발 떨어져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간밤에 생겨난 이 모래무더기들은 어느 게가 싸지른 똥무더기들인고.

 

 

꽃지해수욕장 인근의 해변을 잠시 산책하다가 배가 고파졌으니, 안면도에 왔으면 역시 대하.

 

 

이쁜 선홍빛으로 익어가는 새우들의 팔딱거림이 잦아들고, 파라솔을 가게 앞에 늘어세운 가게 안쪽 깊숙히 비밀의 문이 보인다.

 

 

새우깡 따위 던져주는 거 받아먹고 사는 비둘갈매기가 아니라, 진짜 바다냄새 풀풀 풍기는 포스를 풍기는 갈매기떼들.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이 나무 사다리는, 어느 배에서 떨어져나간 걸까. 머리를 바다에 처박고 한없이 뭔가를 그리는 듯 하다.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빨갛고 파란 물풀들이 나무처럼 모래밭에 버티고 섰다.

 

그러고 보니 멀찍이 배 한척이 지나고, 여기는 뭔가 바다 속에 초원이나 숲처럼 녹색의 띠가 사방으로 얽혔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벌써 십여년째-아마도 올해가 십년째라던가-이어지고 있는 세계불꽃축제.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이탈리아,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의 순서로 진행된 쉼없는 불꽃들은 아홉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그야말로 아낌없는 불꽃들의 향연.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십분을 책임진 이탈리아의 불꽃이 가장 이뻤던 듯.

 

늘 그렇듯 삼각대는 꼭 필요할 때면 들고 가지 않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발동하여, 무적의 손각대를 출동시켰으나..

 

불꽃이 워낙 느닷없이 피어올라가 뻥뻥 터지는 바람에 타이밍이고 뭐고 되는 대로 눌러버렸단 게 맞겠다.

 

촬영장소는 한강대교 중간에 조그맣게 걸쳐있는 노들섬, 미리 두시간쯤 전부터 맥주와 저녁거리를 사들고 자리를 잡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정상적인 자리는 만석이었다는 거. 덕분에 풀밭으로 기어올라가 없는 자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폭죽 소리, 그리고 하늘 가득 휘황하게 번쩍거리던 불꽃의 대향연. 정말이지 모처럼,

 

터지는 걸 보고 나서도 씁쓸하거나 허무하지 않은 불꽃들을 잔뜩 볼 수 있는 자리였지 싶다.

 

 

 

 

온통 뿌옇고 희끄무레하기만 하던 무채색의 겨울 풍경에 샛노란 개나리빛이 하나 풀어헤쳐졌더니 그냥 봄이다.

 

 

 

서울숲과 바로 이어지는, 금호역 옆의 응봉역과 가까운, '응봉산'. 가끔 차를 몰고 다니다가 문득 눈에

 

띄었던 적은 있을지언정 서울 시내에 이런 이름의 산이 있는지도, 또 이 산이 봄철이면 샛노랗게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곳인지도 전혀 모른 채 서울살이 30년이 넘었다.

 

 

 

중간에 나타난 쉼터에서 잠시 앉아 쉬는 참, 등산객처럼 몸풀기 운동을 하시는 건지 아이들처럼 마주보며

 

장난을 치는 건지 헷갈리는 두 어르신을 향해 아주머니의 폰이 찰칵 소리를 냈다. 절로 웃음지어지는 풍경.

 

 

 

산이 그냥 노랗다. 아니, 이럴 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어렸을 때 48색 크레파스를 썼던 거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산이 그냥 개나리색 지천이다. 유독 춥고 길던 겨울이다 했는데 어느덧 개나리꽃에 뒤이어 파릇한

 

새잎까지 돋는 4월이 되었다.

 

 

 

온통 개나리꽃 덤불이 지천이었는지라 새하얀 목련 한 그루가 확 눈에 띄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직 채

 

꽃망울도 여물지 않아서 가까스로 삐쭉삐쭉 꽃이파리를 내밀고 있는 정도지만 곧 도톰하고 풍만하게

 

물이 차오르면 시원하고 다복스런 꽃망울을 펑펑 잘도 터뜨려댈 거다. 아직 바람이야 좀 차다지만.

 

 

 

응봉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바로 오늘 2012년 4월 13일 14시~17시까지 응봉산

 

개나리축제를 벌이는 공간이기도 하다지만, 사실 이렇게 산 전체가 개나리색으로 출렁이고 있는대야

 

새삼 축제를 벌일 것이 또 무에 있겠는가. 금요일 오후라니, 딱 초등학생들을 위한 어린이 축제겠다.

 

 

그저 그 즈음이 개나리꽃 구경을 위한 최상의 타이밍이겠거니 참고삼으면 족하다. 축제 전전날, 그러니까

 

온통 전국이 시뻘개지던 4.11 총선날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서 줄 서서 돌아다녀야 할 정도였다.

 

 

팔각정 도착. 생각보다 너른 공간에는 이미 몇몇 아이들이 저..뭐라 그러더라, 저 그림판을 그려놓고 놀다가

 

잠시 앉아 쉬고 있던 참이었다. 어렸을 때 저거 진짜 많이 하고 놀았는데.

 

 

 

흐물흐물하니 멀찍이 보이는 남산N타워. 보듬어 주겠다는 듯 꽃무더기를 매달고 조심스레 들어올린 꽃가지.

 

아직까지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하기만 한 겨울나무들이 황량한 풍경 앞을 막아선 노란 담벼락.

 

 

 

산이란 게 으레 그렇듯 응봉산에 오르는 길도 꽤나 여러갈래다. 서울숲에서부터 길게 걸어오는 길도 있고,

 

아니면 응봉역이나 금호역에서부터 오는 길도 있고, 아니면 아예 응봉산 둔턱까지 차로 올라와 능청스레

 

슬몃 개나리꽃밭에 섞여드는 길도 있는 거다.

 

 

산에서 내려와 응봉역 쪽으로 걷는 길. 응봉산을 가득 채운 개나리빛 물감이 산비탈을 타고 줄줄 흐르더니

 

살짝 낡고 허름한 풍경에도 발랄하고 따스한 봄기운을 전한다.

 

 

 

 

가평에 있는 쁘띠프랑스, Petite France. '조그만, 작은, 이쁜' 프랑스라는 의미일 텐데 워낙 잘 알려져 있는 곳이고,

사진으로도 많이 담긴 이쁜 곳이니만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려니 이미 차들이 그득그득, 인도해 주는대로 길가에 차를 대고 매표소입구로. 아직 바람이 차갑다.

입구를 지나면 나타나는 이국적인 풍경. 파스텔톤의 벽면이나 따뜻한 색감의 기와들, 다양한 표정의 실루엣들이다.

자그마한 분수 광장을 둘러싼 노란 파라솔들, 그리고 다시 파라솔들을 에워싼 색색의 건물들. 그치만 위압적이진 않은.


빨간 제라늄꽃이 창틀에 놓인 건물 사이로 마을의 다른 건물 지붕들이 내려다 보인다.

겨우내 추위와 찬바람에 시달렸을 것들이 이른 봄볕을 찹찹찹 게걸스레 핥고 있다.

제법 복잡하게 이리저리 꼬인 계단들, 산토리니의 새하얀 계단형 건물들을 살짝 떠올리게 만드는.


아직은 누렇게 말라죽은 채인 풀밭이지만 조금만 더 날씨가 풀리고 따뜻해지면 꽃과 잔디가 융단처럼 깔릴 꽃밭.

갤러리 앞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도자기 인형들이나 접시가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노랑 우체통.

양철 주전자들이 띄엄띄엄 바닥에 늘어서 있는 폼이 불규칙하면서도 제법 느낌있다.

갤러리 안에 전시된 마리오네트 인형. 얼굴표정이나 옷감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굉장히 섬세하다. 툭 튀어나온 앞니까지.


마리오네트 인형들은 왜 이렇게 전부 인상적인 표정과 기괴한 외양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눈을 높이 맞추고 있다가 문득 바닥으로 내렸더니 왠 화관을 쓴 처자가 비둘기를 한마리 건네주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공간이 넓고 길다. 그 공간을 온통 꽉꽉 채운 프랑스 느낌 가득한 소품들과 장식품들.

프랑스를 상징하는 새, 프랑스의 국조는 수탉이란 걸 갤러리에서 새삼 실감했다. 온통 수탉을 형상화한 장식품들.




근데 한국의 나라새, 한국의 국조는 뭐더라. 까치였던가 싶긴 한데 확신이 없어서 검색해보니 역시 '까치'가 맞단다.

갤러리를 나와 조그마한 프랑스 마을 같은 쁘띠프랑스 내부를 걷는데 딱 나타난 사진찍기 좋은 곳.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나란히 내려놓고 카메라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쁘띠프랑스의 전경, 그리고 청평호수까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오르내리는 계단이 워낙 좁단 게 에러지만.

이렇게 쁘띠 프랑스의 색색 빛깔의 이쁜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거나,

청평댐이 버티고 막아서서 바다처럼 넓은 청평호수와 어른거리는 산그림자까지도 보이는 전망이니 올라갈 만 하다.


야생화 산책길을 지나 '사랑의 종탑'으로. 어린 왕자의 스토리에서 '사랑'과 관련한 경구들은 무수히 뽑아낼 수 있겠지만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을 오르며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이르고는 비로소 종에 다다른다. 대앵~ 대앵~

3월 18일부터 시작되었다는 유럽동화 인형극축제, 평소에 하던 샹송공연이니 마임쇼에 더해서 인형극도

열리고 목각인형 콘서트 같은 것도 열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후가 무르익을수록 점점 늘어나는 꼬마손님들.

안내 포스터에 나왔던 그 여자분이 그대로 나와서 샹송을 부르는 공연. 조금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저씨들이

문득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치더니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만 하는 수준의 샹송 가수를 받침해주던 악기는 기타, 그리고

약 백오십년 전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전통악기, 그리고 아코디언 한대.

따님의 초등학교 시절 아코디언을 들고 와 연주하시던 이 분이 활을 이용해서 켜는 방식의 프랑스 악기, 무려

한국에 한대밖에 없다는 이 악기도 연주하셨다. 건반이 감겨있는 모자라거나 어깨의 금색술이 인상적인 분.

 

쁘띠프랑스가 워낙 잘 알려진 명소가 된 데에는 장소 자체가 워낙 이쁘게 잘 꾸며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몇몇

방송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베토벤바이러스라거나 시크릿가든, 러닝맨까지.

특히 '베토벤 바이러스'의 경우는 메인촬영지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서 전출연자들이 사인도 남겨놓고 세트장의

배치도 고스란히 간직해두었다고 한다. 뭐, '베토벤바이러스'던 '시크릿가든'이던 드라마를 안 봤으니 별 감흥은 없지만.



그 옆에 바로 인접해 있는 건물은 '프랑스 전통주택관'. 근 이백년 가까이 된 프랑스의 고택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전시관이라고 하는데, 주름살처럼 깊이 골이 패인 기둥 하나만 봐도 이 집의 범상치않은 연륜이 느껴진다.

천사가 호롱불을 들고 날아다니는 천장에는 슬쩍 단발 비행기도 날아다니고 있지만 현란한 접시장식들로 숨겨졌다.

이것도 한 이백년쯤 되었으려나, 애기들이 타고 놀았을 목말이랄까, 세발자전거랄까.

집 한채를 통째로 옮겨왔다고 하니 이런 전등갓처럼 세세하고 고풍스런 장식물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백년전 프랑스의 저택에 살던 사람은 이런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겠구나. 세련된 색감이나 문양이 참.

화장실의 전경. 앞에서부터 세면대, 변기, 그리고 욕조 하나. 끝.

그런데 이 변기는 남성 전용인 걸까 아니면 남성 소변 전용인 걸까.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모든 걸 다 저기서 해결?

인형극장 앞에 있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기념사진 촬영용 판넬. 선그라스를 멋지게 낀 애기가 백설공주의

얼굴을 훔치고는 활짝 웃고 있었다.

프랑스나 유럽의 인형극을 부정기적으로 여는 극장이라고 하는데, 'Guignol', 기뇰이란 건 프랑스 전통의

손 인형극을 말하는 거라고 한다. 4-50석 되어보이는 자리가 꽉 차서는 빨간망토 소녀 인형극을 관람.

15분쯤 되는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에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간단한 구조와 심플한 등장인물들까지

아이들이 보기에 딱 좋은 내용과 분량인 듯. 감탄할 만큼 현란한 손놀림이나 부드러운 움직임도 관람 포인트.


처음에 한바퀴 돌아보면서는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마한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볼 것들도

많고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들이며 걷게 되었지만, 각도마다 달라지는 풍경도 한 재미.




돌아나오는 길. 샹송 공연에 인형극 공연까지 챙겨보느라 한 세네시간 정도 걸린 듯 하다. 그렇지만 까페에 들어가

커피랑 츄러스도 맛보고, 중간중간 앉아서 쉬기도 했으니 완전 널럴한 페이스였단 걸 감안하면, 작긴 작구나.ㅎ


쁘띠프랑스에서 체크아웃. 조금만 더 날이 따스해지고 야생화니 잔디가 불긋푸릇해지면 더욱 이쁜 풍경이지 않을까.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서며 조심스레 자세를 잡는다.

그녀는 아이폰, 나는 카메라. 바싹 움켜쥐어 상대에 겨누고는 잠시의 틈을 노리는 순간.


그녀가 한걸음 비틀어 내딛는 걸 신호로 한바퀴 팽팽한 원을 그리며 서로를 향한 맹렬한 연사.

온실 속 꽃들과 이파리들이 나부끼는 중에도 서로에 가닿는 초점은 용케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비비적대는 걸음걸이를 감히 플라맹고의 춤에 비기는 건 황송한 노릇이겠지만,

카메라와 아이폰으로 세워진 방패를 벗겨내려는 놀이는 그렇게 사랑춤이 되고 말았다.




@ 아침고요수목원.

삼수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강원도민의 95%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도 있지만 여전히 환경이나 경제 부문에서의

우려도 적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그딴 거에 왜 목매고 '국민적 자존심'을 팔아가며 유치해 왔나 싶다.

뭐, 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한 찬반이나 이후 추진 계획에 대한 리뷰는 차치하고.

국격을 드높이네 국민적 자존심을 세우네, 어쩌구 하기보다 뒤집어진 태극기나 바로잡자는 얘기다.


지난 8일(토) 있었던 "다함께! 함성"이라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기념 축제에서 찍었던 사진 하나.

뒤집힌 태극기는 이미 여러 차례 신문방송에서 지적되고 개탄되었던 일인데, 아직까지 이렇게

거꾸로 들려 내보내는 사람들은 뭐지. 조그마한 만국기 사이에 저렇게 커다란 대형 태극기를

아이에게 들려 내보내는 거니까 나름 신경은 썼을 텐데. 나중에 2018년에도 저런 태극기가 횡행하는 건 아닐까.

유난스런 애국심 따위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학습효과도 없나 싶어서 굳이 사진을 찍었다.


게다가, '기념행사 무료초대권 소지자에 한해 입장'이 가능하다는 행사 포스터 위에 어느순간 '무료입장'이란

종이가 덧붙어선 지역민들을 공짜로 불러들여 자리를 채우는 것만 봐도, 왠지 이 곳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른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일지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기왕 치르게 된 거 가능한 성공적으로 마치면 좋겠지만.

여하간 뒤집어진 태극기,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아시아'로 분류되는 지역에는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존재하지만, 그 다채로움 속에서도 종종 의외의

유사성이나 공유점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사진 속 삿갓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인데, 한국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의 아이콘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은 베트남에선 볏짚으로 만든 '능라'라는 이름의 전통

모자라고 한다. 한중일 삼국은 물론 동남아 전역에서 공유되고 있는 이 삿갓, 혹은 능라의 디자인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점이 바로 아시아 문화의 매력 아닐까.


위의 능라를 쓰고 공연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전라도 광주 일대에서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동안

벌어진 '아시아문화주간' 행사 때의 모습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음악, 미술, 영상, 춤, 문화 등 5대 장르에서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교류하고 나아가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비전을 천명했었다. 가장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당장 한국에 늘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거주외국인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씻고 화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당장 저렇게 베트남과

한국의 문화적 유전자를 한몸에 지닌 아이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대니까 말이다.



ㅇ 다문화 정치로 하나되는 아시아! (아시아 문화이해강좌)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는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아시아창작공간 네트워크, 아시아문화이해 공개강좌,

아시아문화포럼, 아시아 청소년문화축전 그리고 아시아어린이합창단 등 여섯꼭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전북대에서 있었던 아시아 문화이해공개강좌, 왜 아시아문화를 주목하는지, 지금 한국과 아시아는 얼마나

가까워져버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강의였다. 


한-몽 수교20주년이 된 2011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은 약 3만명, 2008년에 귀화한 '이라'씨는

한국 최초의 다문화 정치인으로 현재 경기도 의원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한국에 다문화 정치인이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2011년 현재 이미 130만명(인구의 2.2%)에 달하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있는 걸 감안하면

정치 무대에 나서는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한국의 국제결혼이 2004년 이래 매년 10%이상 증가추세를 보인다며, 특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비록 전국에 200여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수혜층은

고작 전체 다문화가정의 30% 내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앞선 '능라'를 쓰고 있는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융화되려면 정말 갈 길이 멀지 싶다.


사실 한국인의 '단일민족' 신화는 깨진 지 오래다. 한국에 있는 700여개 성씨 중에 440여개는 외국에서

귀화해서 만들어진 성씨라고 하는데 당장 이라씨의 성도 성남이씨로 새로 만들어졌다니 귀화성씨는 점점

늘어날 게 뻔한 거다. 점차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정책과 시스템 차원에서의 지원과

더불어 다른 아시아국가에 대한 이해와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ㅇ 한국 다문화가정의 공연들 (@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아시아 문화주간 중 벌어지는 월드뮤직페스티벌에는 세계적인 아시아 문화예술가들도 많이 오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과 2세들이 꾸미는 공연들도 적잖이 준비되어 있었다. 8월의 끝물,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광주 쌍암공원에서 태국과 베트남의 민속춤을 추는 이주여성분들.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 양산을 든채 맨발로 무대에 올라선 태국 출신의 그녀들이다.

잠시 그녀들의 공연을 감상. 그렇게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지만 갖춰입은 무대의상도 확실한 데다가

미소의 나라 태국에서 오신 분들답게 계속 방긋방긋 웃음을 잃지 않는 게 매력포인트. 프로 댄서들처럼

손으로 맺는 수인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우아한 느낌은 아니지만 한국에 살고 계신 얼마 안 되는 분들로

이런 공연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감탄할 만 하다. 


뒤이어 베트남에서 온 분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베트남의 삿갓, '능라'를 들고서 전통 무용을 보여주는

그녀들의 몸짓 역시 아마추어의 느낌이 역력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무대에 오른 그녀들의 용기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한편 무대 아래로 내려온 태국 출신 공연자분들 옆으로 다가온

아이들이 보였다. 내 자리 옆에서 엄마의 공연을 박수치며 구경하던 꼬맹이들, 금세 엄마한테 달려가서

손잡고 말걸고, 당연한 말이지만 여느 한국의 가족 모습과 하나도 다를 거 없는 모습이다.

태국과 베트남의 민속춤 공연을 준비한 곳은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이 곳과 연계되어 각국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공연에 나갈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이미 라인업은 어느 정도 짜여있어서

올초 부처님오신날에도 공연을 했다는 사무국장님 말씀. 공연 시작 전 무대 뒤에서 계속 연습을 함께

하며 틀린 곳을 교정해주고 격려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서로 얼굴 마주하며 일상적으로 부대끼다 보면 한국 내의 다문화 가정들이 자연스레 기존

한국 가정들과 허물없이 지내게 되는 거 아닐까. 이러니저러니 차가운 책상머리에서 짜여지는 계획이나

아이디어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건 이렇게 서로 섞여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피부색이니 국적이니 언어가 다를 순 있지만 그 밑에 숨은 '사람'이 보이게 되는 건 이런 와중일 거다.

그렇다고 그런 아시아문화의 적극적인 교류나 화합이 각 나라와 각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가리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될 일이다. '아시아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있기 전 리허설 장면과 실제

공연의 모습. 아이들의 눈코입은 똑같은데,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연습할 때보다 각자의 전통을 드러내는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아래 모습이 더욱 각자의 개성도 살고 그림도 풍성하니 화려하다.

국내에 있는 다문화가정의 유소년 중에서 경쟁을 거쳐 선발된 50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다문화어린이

합창단이라더니 실력도 단연 뛰어나다. 아리랑이나 다른 영어 가사의 노래들을 부를 때 화음도 들을 만

했지만, 아이들의 표정이나 몸짓들이 잘 가다듬어진 게 꽤나 준비했겠다 싶다. 국내에 있는 다문화가정

인구의 60%가 유소년, 그러니까 그들의 2세라고 했었다. 이 아이들을 차별없이 고난없이 얼마나 잘

품어줄 수 있는지가 그야말로 한국의 '국격'을 재는 바로미터와 같을 거라 생각해 본다.



ㅇ 아시아청소년문화축전, '아시안비트'

그런 다문화에 대한 감각, 아시아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주축은 역시 우리들의 청소년.

전국의 청소년, 대학생들과 국내 유학생이나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등이 모여서 만들어낸 공연 '아시안비트'.

무슨무슨 스탄으로 끝나는 서남아시아에서부터 몽골초원을 거치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의 한국으로,

제각기의 피부색과 신체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아이들이 허물없이 웃고 깔깔거리며 공연을 준비하더니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가니 굉장히 진지해졌다.

아이들이 공연을 마치고 손에 손 맞잡고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성별의 차이도, 국적의

차이도, 나이 차이같은 것도 모두 넘어설 수 있는 단단한 인간애를 키워나갈 수 있기를. 수월에서 왔다는

방글라데시 출신 슈학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8년이나 일했다는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는데, 아시아문화를 아우르는 축제인 아시아문화축제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최소한 아이들끼리는 서로 오해나 편견이 많이 줄어서 더욱 화합하는 분위기가 될 거 같다고.



ㅇ 아시아문화정보원 준비관 &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홍보관


금남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전남구도청, 그 옆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정보원

준비관'은 이런 아시아문화를 고취하고 서로간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하드웨어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된 곳이라고 한다.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유산 중의 공통된 부분들을 발견하고 이를 아시아 전체의

문화자원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아카이브의 역할인 셈이다.

아시아청소년들이 아시아문화정보원에 대한 설명도 듣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와 배경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받고 있다. 한쪽에 이렇게 마련된 강의장이나 세미나실은 앞으로 이 곳을 허브로

삼아 벌어진 다양한 차원의 학술제나 문화행사를 염두에 둔 듯 한데, 이를 통해 한국과 아시아 각국이

모두 윈-윈하는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아시아 각국의 문화자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아카이브도 구축하여 검색이 가능하고, 전시관 내부에선

아시아를 묶는 키워드가 되는 문양들, 상징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가 하면 직접 베틀의 문양을

짜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가 어떻게 그 비전을 키워왔으며 얼마나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홍보관을 구경했다. 구도청 옆의 쿤스트할레, 컨테이너 수백개를 활용해 만들었다는

'아시아문화마루' 건물에는 아시아문화주간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광주는 이미 십여년전부터 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차근차근 인프라를

갖추고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넓혀가며 이렇게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를 열기에 이른 것이라고.

앞으로 2023년까지 내다보는 장기 비전에는 광주의 고유한 가치, 아시아평화예술도시의 꿈과 함께

아시아문화교류도시의 꿈이 더해지고 있었다.

홍보관 내부의 전시물들과 광주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진 네트워크 속에서 아시아 각국의 주요

도시들을 밝히고 있는 전구 불빛들. 2014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완공되어 아시아문화교류의

중심공간으로 활용될 거라 하니 올해처럼 광주 일대 여기저기에 산재된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불편은

없을 거 같다. 광주의 오늘, 아시아문화의 오늘보다 내일을 그리게 되고 기대하는 이유다.

아직 '아시아문화', 그리고 아시아문화를 교류하고 화합하는 공간으로서의 '광주'라는 곳은 전부

채워지지 않은 공간과 같아 보인다.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아시아문화를 운위하기 이전에 한국사회의

문화 자체도 아직 척박하고 아시아에 대한 이질감이나 심지어 적대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것을

짚어 보아야 할 거 같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몽골출신의 다문화정치인 1호 이라씨가 이야기했듯,

이미 한국의 제도나 사회분위기 자체가 많은 부분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일지, 내년의 '제2회 아시아문화주간' 행사가 궁금해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성이라고 하면 역시 오사카성, 이려나. 아직 오사카를 가보지 못했으니 구체적인 이미지는

하나도 안 잡히지만, 그래도 대략 이런 그림일 거다. 3층 이상의 고층으로 쌓인 탑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물.

알고 보니 이 건물 자체는 '성'에 포함되어 있는 방어시설이자 망루의 역할을 하는 천수각이라고 한다.

오사카까지 가지 않고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공원에 있는 히로사키성에 가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히로사키성은 1895년 히로사키공원으로 개방되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는데, 이곳에

벚나무를 심은 것은 약 300년 전부터라고 한다. 현재 공원 안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왕벚나무와 일본에서

둘레가 가장 큰 왕벚나무를 포함해 약 2600그루의 벚나무가 있다고. 4-5월 벚꽃 축제 기간 중에는 전국에서

약 250만명이 찾아오는 일본 제일의 벚꽃 명소라고도 한다.

히로사키성 천수각은 원래 1611년에 축성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낙뢰를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고,

1810년에야 재건이 이루어져 지금의 이런 모습을 이룬 것이라고 한다. 에도시대에 재건된 천수각으로는

도호쿠 지방의 유일무이한 것이라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히로사키성과 관련한

유물이나 자료들을 전시하며 일반에 개방되어 있어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전시한 유물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화승총, 흔히 조총이라 부르는 그 '신무기'와 그곳에 들어갔던

옥구슬 총알, 그리고 화약통 세트. 거북이 등껍질이 통으로 쓰이고 있는 화약통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조총의 탄환으로 동그랗게 갈아서 만든 동그란 옥구슬이 쓰였다는 게 신기했다. 저건, 거의 준보석 아닌가.
 

그리고 남성용 가마. 아마도 이 히로사키성의 번주가 타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시나 크기는

매우매우 작아서 요새 체형이라면 열살짜리 어린애가 겨우 들어갈 정도인 거 같다. 까맣게 옻칠이

되어 있는 거나 사람 몸무게를 지탱하도록 단단해 보이는 외관은 그럴 듯 했다.


그리고 또, 신기했던 무기 하나. 이건 '바람의 검심'에 나왔던 그 사슬낫 아닌가. 그저 만화에서만 나오는

무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실제로 휘두르며 싸웠던 사람이 있었으니 여기 이렇게 똑같이 생긴

무기가 전시되어 있는 걸 텐데. 일본어로 뭐라뭐라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대충 에도시대 무기의 일종,

동으로 만든 추와 철로 된 낫을 사슬로 이었다는 이야기인 거 같다. 저걸 휘둘렀으리란 생각만으로도

굉장히 섬뜩한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가 박히진 않았을까.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윗대가리'들은 이렇게 탄탄한 갑옷을 입고 버티는 거겠지만, 역시

아까 그 남성용 가마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을 이 히로사키성의 번주는 참 작다. 요새 열살짜리 꼬맹이의

체구와 비슷했겠구나, 생각에 확신이 들었던 순간.

성의 각 층 옆구리마다 나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자세히 보니 동으로 만들어진 거 같다. 파랗게 녹이 슬어서

제법 세월의 더께가 실린 표정을 하고 있던 창문, 아무래도 방어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서 창문이 작고

저렇게 이중으로 나무 문살을 해둔 게 아닐까. 바깥 풍경을 보기에 딱히 유리한 창문은 아니다.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머리고 발걸음이고 온통 조심하라는 표지가

시뻘건 영어로 적혀있다. 아무래도 성의 기본적인 사이즈가 체구가 작은 일본인들 기준으로 맞춰져있어

(영어를 쓰는) 서양인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울 거 같다. 한국인 표준에 가까운 나 역시 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끼어앉은 듯한 갑갑함을 느꼈으니 서양인들은 오죽할까.

굉장히 세련되게 만들어진..쟁반이랄까, 접시랄까, 아님 그냥 장식품이랄까. 조개껍데기를 본따서

만들어진 황동색 틀 안에 슬쩍 웃고 있는 듯한 생선이 한마리 돋을새김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세히 보면 생선 뒷목쯤에 무슨 조그마한 집처럼 생긴 자개가 붙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히로사키성의 번주로 임명되었던 번주들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족보'. 봉건제도의 시스템상

번주들은 언제고 중앙의 권력자가 임명하고 폐할 수 있었던 거라지만, 실제로는 혼인관계나 세습으로 인한

변화가 더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얼핏만 보아도 1600년대 이래 19세기말까지 꽤나 복잡해 보인다.

그나마 번주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이 때마다 바뀌었으니 다행이지, 유럽처럼 가문이 합쳐지거나 하면

문장도 합쳐지고 했으면 완전 복잡한 문장이 최종적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래서 1895년, 이 히로사키성이 히로사키 공원으로 일반에 개방되기 직전에 이성을 지키고 있던 번주

가문의 문장은 바로 요것. 아마 성 2층에 밀랍인형으로 제작되어 관광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저 분이 이 성의 마지막 주인 아니었을까.


천수각의 어느 창문에서 내려다본 히로사키 성의 전경. 앞에 새빨간 이쁜 다리가 보이길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천수각을 떠나 성의 다른 곳들을 살펴볼 때 일부러 지나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천수각을 올려보기

딱 좋은 장소기도 하고, 성의 모습이 시원하게 트여보이는 곳이었다.  

3층짜리 천수각의 꼭대기층은 생각보다 전시물이 없어서, 사람들은 천장 한번 쳐다보며 천수각의 누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확인하고 사방의 창문에 붙어선 히로사키 성의 전경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어떻게

생각하면 커다란 범선의 전망대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로 만든 고층건물의 독특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원래 5층짜리로 만들어졌었다니 그때는 이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멀리까지 보였을 텐데 아쉽다.

오른쪽 위에 보이는 게 히로사키성의 천수각, 그리고 나머지 보이는 부분은 히로사키성의 혼마루(本丸).

지금은 온통 초록빛 넘실거리는 벚나무밖에 보이지 않지만 원래는 저렇게 어전과 보물창고, 돈창고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창문뿐 아니라 천수각의 기와도 청동으로 덮여있었던 거다. 어쩐지 그 미묘한 빛깔이 인상적이다 싶더니

청동이 녹슬어 에메랄드빛 비슷하게 변색되고 말았다. 그런 이끼덮인 듯한 느낌의 색깔이 천수각 벽면의

하얀 빛깔, 그리고 지반을 이루는 돌들의 담백한 색조와 어울려서 꽤나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천수각을 나와 성의 다른 곳들을 둘러보러 걷다보니 어디서도 천수각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해자를 따라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들이 휘영청 가지와 잎사귀를 늘어뜨려 좀처럼 완벽하게 제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는 모습이, 아무래도 천수각을 외적이나 간첩의 침투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고려가 되어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선명하게 나타난 건 아까의 그 빨간 다리, 게조바시 다리 위에서나 겨우.


그러고 보니 천수각을 해자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기반석들이 만들어낸 콧날이 굉장히

날카롭다. 칼날처럼 우뚝 서있는 기반석의 형태를 저렇게 짜맞춘 것도 신기하지만, 이게 바깥쪽 해자와

중간 해자를 통과한 후에 세번째이자 최종으로 나타나는 안쪽 해자인 걸 감안하면, 혹시 모를 침입과

전쟁에 대한 방비가 굉장히 철저했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그만큼 불안정하고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거겠지만, 그 언젠가 시체가 산처럼 쌓였을지 모를 저 해자 아래엔 그야말로

반들반들 싱싱하기 이를 데 없는 연잎들이 무섭도록 자라 있었다.


히로사키 성이 통째로 공원과 식물원으로 변한 히로사키 공원에 천수각만 있는 건 아니다. 천수각이

있는 혼마루를 포함해서 북쪽에 남아있는 성곽이라거나, 3개의 망루와 5개의 성문, 삼중으로 된 해자등이

꽤나 그럴듯한 풍광을 만들어내는 거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 옆의 '동내문'의 모습.

활짝 열린 문밖으로 보이는 수령 오래되어 보이는 굵은 나무들은 언제부터 여길 지키고 있었을까.

성문의 쇠경첩이 저렇게 붉게 녹슬고 삐걱거리며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문짝에 살벌하게 이열 종대로 징처럼 박혀있는 저 쇠못들의 예기는 여전해 보인다.  


그리고 또다른 문. 거의 비슷하게 생긴 문이 혼마루를 둘러싸고 동쪽과 남쪽에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

성루 세개가 천수각과 혼마루를 에워싸고 지키는 형태. 좀더 높은 데서 한눈에 볼 수 있었다면 히로사키성이

무엇을 꼬옥 품고서 지키려 하는 건지 바로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지금에야 온통 벚나무가 가득한

공원이 되어버려서 과거의 그 적나라하고 잔혹한 성의 '권력지도'가 잘 보이진 않겠지만. 모든 것은 성의

중심, 그리고 성의 주인을 위해 고안되고 배치되었을 그 때의 풍경.

히로사키 공원 내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식물들과 화초들을 기르고 있는 식물원이 별도의 공간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공원 내를 여기저기 정처없이 걸어보는 것 만으로도 거의

무슨 식물원이나 우거진 숲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무가 빼곡했고, 온통 녹색이었다. 그치만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는 그 식물원에는 꽃달력길이나 고산식물들만 모아든 정원 등, 흥미를

돋우는 것들이 적지 않은 거 같으니 기회가 닿으면 가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드문드문 이렇게 숲으로 난 길을 막아선 낡은 바리케이트도 보이고, 그 뒤로는 무려 50여 헥타르에 이르는

이곳 공원에서 벌채한 게 틀림없는 나무들이 차곡차곡 정돈된 채 서로를 의지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공원 여기저기에 이렇게 잘 만들어진 단아한 느낌의 화장실 건물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저게 화장실인지 매점인지 잘 모를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히로사키 성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가 있다곤 하지만 그 나이는 '고작'(?) 120살, 그에

비기자면 500살이 넘는다는 이 나무는 거의 히로사키 성이 지어진 이 땅의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다. 높이가 거의 18미터에 이르고 둘레도 5미터가 훨씬 넘는 이 임팩트 강렬한 나무는

이젠 그 거대한 몸뚱이를 스스로 지탱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지 꽤나 높은 곳에다가 저렇게

끈을 칭칭 동여매어 몸이 비틀리거나 쪼개지지 않도록 조치해놨다는 게 좀 아쉬웠지만.

히로사키 성을 돌아나오는 길, 제일 바깥쪽 해자에서 수면을 덮고 있는 풀들을 걷어내고 있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어딜 봐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흐트러짐없이 정갈한 모습이 유지된다 했더니 역시

그건 저런 분들이 계속해서 풍경이 뭉개지지 않도록,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신경써서 관리한 덕분.

천수각에 비치된 스탬프를 움켜쥐고, 이걸 과연 여권에 찍어도 나중에 출국하고 한국에 다시 입국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까 잠시 고민을 했더랬다. 주위 사람들이 신성한 여권에 그런 스탬프를 마음대로

찍으면 나중에 한국 못돌아간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그냥 다른 종이에 찍고 말았던 씁쓸한 기억이

묻어있는 히로사키성 천수각 기념 스탬프.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마라도 아니면 가파도에 가 닿는다. 더러는 마라도를 지나 가파도에

닿기도 하고,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닿기도 한다지만, 가파도로 바로 가는 직행 선박은 하루

서너차례쯤 있다고 한다. 9시, 11시, 14시에 모슬포행에서 출발.

빗발이 잘게 부서져 분무기에서 뿜어나오듯 사방으로 비산되는 궂은 날씨, 쾌속선 뒤의 스크류가

퍼올리는 바닷물 방울들까지 합쳐져 배 뒤는 온통 뿌연 안개다.

멀찍이 보이는 산방산. 신령이 한라산을 빚다가 너무 높다 싶어 산봉우리를 뽑아 내던져서 생겼다는

커다란 바위산이 불쑥 솟아서는 잿빛으로 케케한 풍경 너머 실루엣만 내밀었다.

가파도에 들어선 길. 채 20분이 걸렸나 싶을 정도로 짧은 코스였다. 날이 흐리고 파도가 높아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미처 걱정스런 마음을 채 펼치기도 전에 야트막한 바다를 건너 도착.

가파도는 '섬속의 섬', 제주 올레길 10-1코스다. 제주도를 따라 동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쭈욱

이어지는 긴 끈같은 올레길이 이어지는 와중, 우도니 가파도니, 옆으로 새어 나온 길은 '다시' 표시가

붙어서 가까운 올레길 번호로부터 갈라져나온다. 신기한 게 남쪽이 상동, 북쪽이 하동. 이 섬과

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살았단 증거 아닐까.

올레길 10-1코스, 가파도 코스는 총 5킬로미터, 한두시간이면 주파할 거리지만 어차피 조그마한 섬,

올레길에 구애받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한 세네시간 여유롭게 돌다보면 숨어있는

이쁘고 신기한 풍경들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게 조금 에러.

가파도에 살고 있는 인구는 겨우 150명 내외, 고양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지만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는 전부 알만큼 조그마한 섬인 건 확실하다. 바다 넘어 어디론가 달려가는 배 한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동도 않는 고양이 뒷모습이 맘을 건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가파도 올레길을 시작하는 길 앞머리에 그려진 포석은 그려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 벌써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날근날근해졌다. 그 옆으로는, 바람 많은 섬 제주도의 구멍 숭숭한

돌 현무암으로 괴어올린 구멍숭숭한 돌담을 시멘트 벽돌로 따라 만들어 놓은 거 같다.

원래 이게 정석 아닌가. 돌 많고 바람 많은 제주도의 돌담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 고양이가 많던지. 어쩜 가파도도 노인분들 밖에 남지 않아서 반려동물로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는 거 아닐까, 외로움을 달랠 벗삼아서. 그래서인지 고양이들 눈빛이 더욱 새초롬하다.

섬 외곽의 해안선을 따라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만 화살표 벗어나 섬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미로같은 길이 꼬불꼬불하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온통 까만색 현무암으로 구획된 채 사방으로

열리거나 닫혀있는, 더러 가정집 앞마당이나 뒷마당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재밌다.

가파도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역시 섬에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풀떼기가 무성하게

자라난 저 웅덩이가 우물인지 아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때는 우물 비슷한 거였지 않을까. 그리고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그리며 쌓아올려진 돌담은, 왠지 똥돼지를 가둬놓고 기르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저 쪽이 제주도. 자욱하게 피어오른 바다안개와 비구름 사이에 낀 채 겨우 봉오리만 봉긋 세운

산방산과 울룩불룩한 제주도의 실루엣이 보인다.

올레길을 조성하면서 섬 해안도로를 시멘트로 포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미처 다 완공되진 않았다고

옷이랑 신발 버린다며 딴 길로 가라고 알려주시던 가파도 주민 할머니, 맘 써주시는 게 고맙긴 했지만

조금 묘한 생각도 들었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길, 흙길을 더욱 반길 테지만 막상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흙길 대신 시멘트길을 당연히 더 반기는 거다.


'지방'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인식, '시골'에 대한 '도시'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 휴양지로서, 추억을

되새기고 재충전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상화된 자연, 박제된 과거의 이미지가 유지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간다움과 자연을 만끽하겠다는 건, 그게 일상이 아니라 잠시지간의

일탈, 혹은 여행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레길이 유명해지며 자연이 파괴되고 인심이 황폐해진다는

걱정은 도시 사람들의 것, 올레길이 유명해지니 이제 좀 살길도 트이고 개발되어 좋다는 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것 아닐지. 많이 거칠게 굳이 나눠보자면. 쉽지 않은 문제다.

깡총 솟아있는 한쌍의 쓰레기통이 귀여웠다. 금방이라도 저 철봉을 잡고 앞뒤로 흔들대다가 훌쩍

한바퀴 공중제비라도 넘을 거 같은 거다.

가파도를 걸으며 만난 꽃들, 거센 빗방울에 툭툭 꺾였다가도 힘내어 곧추서는 단단한 줄기에 매달려

말갛게 꽃잎을 씻어내고 있었다. 침침한 날씨에 꺼뭇한 돌틈 사이에 가려져서 원래 빛깔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꽃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꽃도 있었고.


가파도 북쪽 끝단에 가까워질 무렵, 아까 길이 채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있는데 비때문에 진창이

되어 있을 거라더니 여기 이야기였다. 온통 찐득한 진흙이 철퍽대는 길을 따라 걷다가 굵어진 빗발을

그을 겸 옆의 오두막 같은 곳으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 알고 보니 여기가 가파도에서 일출을 보기

가장 좋은 해맞이 장소라던데, 저렇게 잿빛 파도가 출렁이는 너머에서 해가 뜬다면 굉장히 멋질 듯. 


가파도에서 봄에 열리는 축제가 하나 있는데, 청보리밭 축제라고 한다. 조그마한 섬이지만 중간중간

제법 커다란 손바닥만한 보리밭이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아직 청보리를 수확하지

않은 건지 그 푸르름을 미루어 짐작함직한 '샘플'들이 남아있었던 것. 4,5월 쯤에 청보리가 지천에

틔워올랐을 때 다시 와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도 뭐, 다른 계절에 왔다고 해도 저렇게 돌뿌리에

기대어 소담하게 피어난 꽃들도 보이고, 갑갑한 창고 속에서도 초록빛 싱싱한 풀떼기도 보이고.

이쪽 각도로 보면 날이 좋을 때 무려 6개나 되는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지만, 날이

잔뜩 궂은 날에야 그런 풍경보다는 차라리 저 안내판이 더 눈이 갔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말의

형태를 본딴 게 틀림없는 파란색 철제 표지판. 제주도에 흔했을, 그래서 가파도에서 제법 흔했을

말과 소 같은 짐승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제주도의 무덤은 저렇게 돌담으로 네면을 모두 꽁꽁

싸매어놓는다고 한다.

마을의 안녕과 고기잡이의 성공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던 마을 제단이 있던 곳. 남자 9명이 제관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제를 올렸다는 이곳은, 정확히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지금도 매해 정월쯤에 날을 잡고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벌써 그게 150여년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해안길을 따라 계속 걷는 길, 그래도 자그만 섬에 항구는 남북으로 두개나 있는 데다가 커다랗게

헬기장도 하나 지어져 있다. 뭐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에는 파도도 높고 기상도 안 좋아서 바닷길이나

하늘길이나 둘다 위험하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특히나 긴급 후송환자가 있다거나 할 때 많이

도움이 되겠지 싶다.

비가 와서 그런가, 초록빛 식물들이 아주 극악스럽게 고개를 내민 것 같기도 하다. 깨어진 시멘트 길 

사이로 번개치듯 우르릉쿵쾅 내달리는 초록빛 새싹들하며, 해안가 옹벽을 잡아먹을 것처럼 두텁고

무섭게 흘러내리는 덩쿨들하며, 길가의 커다란 돌멩이 곳곳에 틈을 내어 뿌리를 뻗고 자라나는

끈질긴 녀석들까지.  


쉼없이 내리는 비, 우산을 접어버리고 우의를 걸친지 오래지만 맹렬히 내리는 비 앞에서는 전부

별무소용이지 싶다. 말하자면 이렇게 휑하니 뚫려있는 지붕 아래 서 있는 기분.

가파도수퍼를 필두로 해서 골목 곳곳에 이렇게 파랑색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거다. 이쪽 벽에서는

해녀가 자맥질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저쪽 벽에서는 가파도의 마을 제단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나무들이 꽃을 주렁주렁 매단 채 우뚝 서있기도 하고. 그렇게 화려하거나 그림 하나하나가

심오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벽들이 좌우로 늘어서 만들어진 골목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가파도 깊숙이 들어서며 사방으로 번지는 골목길들이 모두 이런 식이니, 사방으로

헤매고 다니며 그림 구경을 해도 다리 아픈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파란 하늘과 파란 청보리밭이 그려진 긴 벽면에 나있는 구멍 하나. 쥐구멍이라기엔

넘 높고, 무슨 호스같은 게 지나는 물받이 구멍이라기엔 넘 어정쩡한 위치. 뭔가 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그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던 초록색 잎사귀들. 저 식물을 살리려고 구멍을 뚫어두진 않았겠지만

자꾸 그런 식으로 상상이 되는 거다. 벽을 세우려는데, 저기에 저 풀떼기 하나가 눈에 자꾸 밟혀서

그 부분만 저렇게 빼놓고 벽을 세운 건 아닐까, 그런 식으로.


저 커다란 꽃들, 한송이만으로도 푸짐한 느낌이 넘쳐나는 화려한 색감의 꽃들은 가운데에 하나씩

뽀얀 색 진주를 박아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담백한 돌담벼락에 기대어 손가락길이의 잎사귀를

피워내고 끝내 담벼락을 닮은 담백한 빛깔의 꽃봉오리까지 활짝 틔워낸 녀석도 대견하다.


벽화 작업을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 가파도에 옹기종기 모여살던 집들도 바닷바람과 파도에

씻겨내린, 그런 자연스러움이랄까 분위기가 한껏 살아있다. 적당히 낡고 헤진 옷이 갖는 편안함같은.


가파도에도 고인돌 군락지가 있다길래 궁금해서 푯말을 따라갔더니, 글쎄, 아직 발굴조사 중인지라

뭐가 고인돌이고 뭐가 자연석인지 구분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냥 맨들맨들하니 조금이라도 인간이

가공한 흔적이 남아있고 평평한 돌이 있으면 저게 고인돌 추정 돌멩이인가 하는 거고. 고인돌 찾으러

들어갔다가 게으른 청보리밭 한뼘 구경하고 돌아나왔다.


이제 슬슬 가파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항구로 돌아나오는 길, 9시 배를 탔었고, 2시엔가 떠나는

배를 타겠다고 미리 표를 사뒀었던 거다. 일단 사고 나면 회항 시간은 못 바꾼다 했던가, 그래서 부러

여유있게 돌아보고 있었던 거기도 했다. 가파도 한가운데쯤 있는 건 초등학교. 놀이터가 잘 꾸며졌다.


항구에 가까워지니까 어라, 이런 좋은 길이 또 정비되어 있었단 말야, 싶도록 말끔한 산책로가 나왔다.

청보리밭 산책로라던가, 3,4월에 청보리밭 축제를 할 때 이 길을 거닐면 온통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청보리바다 한 가운데서 유영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그리고 가파도를 지키고, 남해를 지키고 있는

해수관음상.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관음의 상이 남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동포구, 모슬포행 선착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또다시 마주친 제주의 바다. 이 정도 섬 사이즈면 딱

내가 좋아라 하는 섬의 크기다. 빨리 걸어서 이십여분이면 섬의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가닿을 수 있는

크기, 그리고 섬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 보일만한 크기. 그 정도 사이즈라야 이게 섬이구나,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채 외로운 땅덩이구나 할텐데, 사실 제주도는 섬인지 뭔지 잘 감이 안 오니까.

항구를 둘러싼 채 두툼한 가랑이를 한껏 찢어벌린 방파제들이 흠뻑 젖었다. 빗물에 젖은 건지, 아니면

바닷물에 젖은 건지, 그렇게 조금씩 헐어가며 차갑게 반들거리던 시멘트 껍데기는 자갈과 모래가 섞인

뼈다귀를 드러낼 거다. 다음번에 조금더 헐어있는 방파제를 밟고 올라설 때엔, 눈위로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어김없이 정시에 가파도를 떠난 배는 불과 이십여분만에 다시금 제주의 모슬포항에 사람들을

부려놓았다. 섬 속의 섬, 이라는 표현이 딱 와닿았다. 서울이나 다른 '육지', '본토'에서 제주도로

넘어온 사람들에겐 제주도 자체가 섬이란 감각이 생경하다지만, 막상 또 제주도에서 가파도로

들어오니 이게 진짜 섬같다는 느낌이 확연한 거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왠지 발딛고 선 땅덩이가

커진 만큼 가슴도 넓어지는 거 같고, 좀더 세상이 커다랗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고인돌의 나라, 강화도(고인돌의 나라, 강화를 재발견하다.)에서 올해로 벌써 14회째를 맞이한

축제가 있다. 다른 지자체들의 축제가 부침을 거듭할 때에도 흔들림없이 계속되어온 이 축제의

이름은 "강화고인돌문화축제", 아무래도 강화도를 대표할 뿐 아니라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에 이른 고인돌을 앞장세운 게 톡톡히 제 역할을 했지 싶다.


이틀동안 축제가 벌어지는 곳은 생각보다 너른 섬 강화도의 중앙쯤 위치한 고인돌광장,

강화도 지석묘를 둘러싸고 있는 초록잔디밭 광장 위로 특이한 형태의 연들이 줄지어

꼬리를 퍼덕이고 있었다. 올해의 경우 6월 11일(토)부터 12일(일)까지 이틀 열렸는데

광장을 꽉 채워 고인돌 행사장, 체험장, 사진전시장, 전통체험관, 먹거리장터들이 늘어섰다.



ㅇ 고인돌 축조 재현하기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았던 건 역시 고인돌을 쌓아올리는 모습을 직접 재현하는 모습이었다.

부족을 통솔하던 부족장이 죽자 하늘이 내려앉은 듯 탄식하며 비통해하는 원시인들의 모습,

그리고 커다란 덮개돌을 덩굴같은 줄로 단단히 묶어서는 흙으로 비탈을 만든 바닥돌 위로

힘을 합쳐 끌어올리는 모습, 재현 중에서는 열명 남짓한 원시인들이 힘을 합쳤지만 실제론

수백명에 달하는 인력이 동원되었을 거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건 실제보다는 상당히 축약된 무게와 규모로 재현된 미니어처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재현행사를 준비하는 스탭들이 저 커다란 덮개돌을 가뿐하게 들어올리는

모습을 얼핏 보았던 거 같기도 하다. 스티로폼으로 만들었으려나, 그렇지만 그걸 저렇게

리얼한 표정과 액션으로 소화해내며 재현 행사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원시인 여러분들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낼만 했다.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불러내어 으쌰으쌰, 덮개돌을 바닥돌 위에 확실히 얹어놓고나서는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리며 고인돌이 완성된 것을 축하하는 원시인들. 바퀴 역할을 하며 바닥에서

뒹굴었던 나무통과 비탈을 만들어 주었던 흙만 치워내면 이곳 강화도에 이미 존재하는 140여기의

고인돌에 하나가 더해지는 셈이다.

고인돌축제의 개막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인돌 축조과정을 재현하는 원시인들의 기합소리와

함께, 칠선녀들의 공연과 함께. 고인돌광장과 바로 붙어있는 강화역사박물관에 마네킹으로 전시된

선녀들의 복장이나 장신구는 완전히 똑같았던 그녀들은, 그렇지만 훨씬 뛰어난 미모와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칠선녀는 과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를 지낼때 일곱선녀가 옆에서 제를

도왔다던 고사로부터 등장하는데, 전국체전의 성화를 매년 새롭게 뽑히는 칠선녀들이 참성단에서

채화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리고 그녀들은 1956년 이래 강화여고에서 뽑혀왔다고 하니, '그녀들'이라

칭하기보다는 그 아이들, 이라는 표현이 낫겠다.


ㅇ 원시인의 일상 체험하기

이리저리 고인돌광장을 떠돌며 행사도 구경하고 체험관들도 구경하던 와중에 만난 꼬맹이들.

고인돌을 둘러싼 울타리에 기대앉아선 조금 쉬어가려는 듯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더니

카메라를 보자 불쑥 장난끼가 발동한 듯 옥수수랑 돌도끼를 양손에 쥐고는 흔들어준다.

원시인들이 다들 저런 레오파드 무늬가 뚜렷한 가죽옷을 입고 다녔을지는 상당히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벌거벗고 다니거나 잎사귀 한두장으로 코스프레를 하기엔

너무 전위적인 느낌이니까 원시인들은 모두들 표범 한두마리쯤 쉽사리 때려잡았을 거라

호의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자. 호피무늬 원시인 복장을 머릿수건까지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돌도끼나 단검을 꼬나쥐고 나니까 다들 신났다. 거울 앞에서 요리보고 조리보고.

그렇다고 다들 폭력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다. 돌판과 돌확을 이용해서 낟알의 껍질을 까고 있는

진지한 표정의 아이의 손끝이 신중했다. 돌확은 원시인들이 곡식을 떨어내고 껍질을 제거하던

작업을 돕기 위한 도구인데, 저 정도로 원시적이어서야 손으로 하나씩 까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하지 않으려나 싶다. 하긴 워낙 발전속도가 빨랐으니, 수천년 전의 인류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터에 직접 '인간 탈곡기'가 되어 체험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몇몇 시대를 구분짓고 공간을 구분지을 지표가 되어주는 토기들을 갖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그 특징과 정보를 알려주고 계신 아저씨. 이 토기에 그려진 무늬는 빗살무늬라고 하는데

주로 곡식의 낟알등을 담아두었고 바닥이 뾰족한 건 땅에 묻어두었으리라 추측하는 근거가

된다 운운,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자세가 제법 의젓해서 보기만해도 흐뭇했다.

사냥감을 사냥해보는 체험, 이랄까. 새총들이 줄줄이 늘어선 가운데 꼬맹이들이 있는 힘껏

노랑 고무줄을 당겨서는 표적을 노리고 있었다. 공룡이 그려진 표적지를 보며 다시금 궁금해진 건,

인류의 조상인 원시인들이 공룡과 겹쳤던 적이 정말 없었을까. 일반적으로는 인류와 공룡은

서로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인돌 빠삐코'니 뭐니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원시인들은

늘 공룡들과 함께 노닌다.


ㅇ 강화도 문화 체험하기

강화도의 특산품, 하면 화문석. 어쩔 수 없는 암기식 교육의 부산물이다. 이름만 익히 듣고 외웠지

그게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여태껏 블랙박스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게 사실.

옆에서 하나씩 가르쳐주는 선생님 옆에서 입을 꼭 다문 채 화문석 만들기에 몰입해 있는 아이도

아이지만, 그 손놀림을 유심히 바라보며 대체 어떻게 저렇게 이어지고 묶이는 걸까 호기심에

가득찬 구경꾼들의 표정도 못지 않았다. 시간만 있다면 털썩 천막에 앉아서는 선생님한테

배워가며 직접 한땀한땀 정성으로 매만진 화문석 한장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강화도에 많이 나는 약쑥으로 비누도 만들어보고, 상큼한 형광색 꼬리를 달고 있는 화살을

던져넣는 투호도 하고, 그렇게 몇걸음 채 걷지 못하고 무언가 직접 손목 걷어부치고 만들거나

경험해보거나 그렇게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함께 즐길 거리들이 제법 솔찮았다.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혹은 걷는 아이 손을 꼭 붙들고 온 부모들에겐 꽤나 수월한 나들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천연염색을 체험할 수 있는 부스를 포함해서, 고인돌마을 족장 체험, 도자기 만들기 체험,

연날리기 체험, 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그리기 체험, 다도체험 등등 고인돌을 만들던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살던 인류가 축적해온 유무형의 독특한 문화유산들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넓게 열려있었다. 이정도면 굳이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단어를 동원해

교육과 놀이가 혼합되어있음을 강조한 주최 측에 수고했노라, 박수를 쳐줄 만 하다.


ㅇ다양하게 즐기기

강화고인돌문화축제를 즐기러 와서 찍은 사진 중에서 맘에 드는 사진은 즉석에서 인화해서

콘테스트에 응모할 수 있다나, 이미 응모된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다들 욕심이 그득하다.

일등해서 상품가져갈려는 의욕이 넘치는지 사진들이 다들 범상치 않았달까.

원시인 복장을 챙기고 돌도끼를 들지는 않더라도, 뺨이든 손등이든 뭔가 고인돌축제에 어울릴

페인팅을 하나 하고 나면 뭔가 축제를 즐길 준비가 된 느낌인 거다. 특히나 아이들이 엄마손

잡고서 길게 늘어선 그 줄을 슬쩍 지나치고 나니 또 다른 긴 줄이 나타난다. 삐에로 아저씨가

풍선으로 강아지를 만들어주는 건, 정말 어디서나 아이들을 모으는 최고의 방법인 듯.

그 와중에 바쁘게 돌아가는 먹거리장터와 행사장 주변 스탭들의 발놀림. 축제의 분위기를

돋우는 건 심장 박동을 따라 노니는 풍물의 흥겨운 장단과 함께, 빤짝거리는 새틴 재질의

'가죽옷'을 입은 '원시인'이 어색한 옷차림에 불편해하면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행사가

잘 되도록 움직이고 있는 모습인 거다.
 

공연도 이틀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짜여있었다. CBS에서 녹음방송을 하는가 하면, 마야가

초청가수로 와서 노래를 부르고, 평양예술단이니 인천시무형문화재협회 공연이니, 심지어는

웃찾사 공연팀이 와서 개그공연까지 하도록 스케줄이 짜여있었다. 나름 강화군 차원에서 심혈을

쏟아붓는 행사라는 게 빈말은 아닌 거 같다.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조금 아쉬웠던 건 '에어바운스' 축하비행이었다. 등뒤에 커다란 프로펠러를

메고서는 그 힘으로 날아올라 낙하산에 의지하여 두둥실 떠다니는 것, 처음에 굉장히 커다란

선풍기 소리가 날 때만 해도 설마 저게 날겠어 싶었는데 정말 훌쩍 떠오르더라는. 아쉬웠던 건

바람이 너무 쎄서 비행에 성공하기까지 어려움이 좀 많았고, 그나마 떠올랐던 것도 생각보다

일찍 내려온 거 같았다. 그치만 정말, 저렇게도 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줬달까.

그 옆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축제 기간에 맞추어 인천무형문화재 기능장들의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대금, 단소 같은 전통악기나 화문석, 도자기나 전통의상 등이 강화역사박물관 1층의

로비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으니, 잠깐 더위도 식힐 겸 에어콘 바람도 쐴 겸 들어가서

휘 둘러보기에 딱 좋았던 거 같다.  

 

2011년 강화 고인돌문화축제는 여러모로 좋은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강화도에 있다고만 들었던,

실물을 제대로 보거나 체험해본 적은 없는 고인돌이니 화문석이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작정하고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축제 자체도 '고인돌'이라는 뚜렷한 아이템을 가지고 특색있게 잘

꾸며놓아 중구난방식의 여느 지방 축제와는 격을 달리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강화 고인돌광장 인근으로 산재해 있는 고인돌군을 돌아보기에도 좋은 위치라는 점,

그리고 강화도도 제주도나 다른 곳들처럼 트레킹 코스를 사방으로 개발하고 있으니만치 더욱

즐길 것이 많아졌다는 점도 축제에 맞추어 강화도를 향해 발걸음을 쉽게 떼도록 이끈다.








부평풍물대축제는 부평역에서부터 뻗는 8차선 대로를 거의 블럭 하나 통째로 잡아두고는,

풍물마당, 경연대회장, 시민참여마당 , 체험장 등등으로 구획을 나누어 여기저기서 시끌벅적

축제가 벌어지는 그런 모양새로 구성되어있다. 그 중에서 풍물이 물론 주된 테마이긴 하지만,

'인천부평지역의 문화 예술 역량을 집결하여 시민들의 열정과 예술적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표현의 장'을 마련하는 게 축제의 또다른 목표이기도 하다니 더욱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이끌어내는 게 축제의 성공을 가늠하는 열쇠말일 듯.


ㅇ 시민참여마당



아이들의 벨리댄스, 어쩜 이렇게 동작 하나하나가 이쁜데다가 고개도 확확 젖혀지는지

아마추어들의 공연이라곤 믿기지 않는 호응과 집중도를 끌어냈던 무대였다.

원래 아이들에게 저런 공연시키면 괜히 화장 짙게 하고 아이답지 않은 애매한 섹시동작이나

시킨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워낙 방긋방긋 웃으며 땡볕아래서도 열심히 하니까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더라는. 공연을 마치고 나니 꽉 찬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장난아녔다.

그 외에도 다양하게 펼쳐진 인천부평시민들의 공연들. 오카리나 공연도 있었고, 전통북 공연도

있었고, 최신 노래에 맞춘 격정적인 안무를 선보인 공연도 있었고, 꼬맹이들의 태권도시범까지.


ㅇ 체험마당



 

공연장의 떠들썩한 소리를 뒤로 하고 부스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놀랐던 사실 하나는,

확실히 부평풍물축제에는 체험하고 참여하는 내용이 많다는 거였다. 풍물을 직접

배워보고 상모를 돌려보는 체험장에서 모자를 집어들고는 뱅글뱅글 해드뱅잉을

격하게 해대며 해맑게 웃는 꼬마가 너무 귀여웠다.

상모를 돌리는 꼬맹이의 개구진 표정도 표정이었지만, 커다란 천막을 가득 메운 채 이쁘장한

아이에게 풍물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해맑고 설레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공기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해 모두의 얼굴을 시뻘겋게 달구는 천막 안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채를 두드려대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부평대로의 팔차선, 평소에는 차들이 씽씽 내달려서 사고도 적잖이 발생했다는

그 곳에서 엄마와 할머니 손을 붙잡고 종이로 된 꼬깔모자를 접어쓴 꼬맹이가 산보를 하는가

하면, 굴렁쇠를 굴리고 투호를 하고 제기를 차는 아이들이 온통 내달리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런 게 그야말로 축제의 공간, 잠시나마 일상의 답답함을 벗어제낄 해방구의 분위기.

' 2011 부평평생학습축제'라는 이름으로 평생학습 체험장이 8차선 양쪽으로 쭉 늘어서있던 것도

꽤나 흥미로운 볼거리, 해볼꺼리들을 품고 있었다. 부평과 인천의 각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각종 문화학습이라거나 평생대학 같은 곳에서 배우는 치료법들 같은 것들을 소개하고 있었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조금씩 말라붙어가며 지친 사람들에게 귀맛사지도 해주고 어르신들

수지침도 놓아주며 또다른 놀거리들, 즐길거리들로 안내해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잠시 쉬며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며 원두커피를 홀짝이다가 저쪽에 가서 네일도 받고

귀 아로마맛사지 받으며 피로를 풀고, 조금 발걸음을 옮겨서는 부채에 그림도 그리고 자잘한

악세사리도 따라 만들어보고. 그리고 기네스북에 도전한다는 길다란 김밥만드는데 동참도 하고.

 

축제 한켠에선 아무래도 울긋불긋한 메뉴판을 풍물패 옷차림 바람에 나부끼듯 내걸고 있는

노천식당들이 점심 장사 준비를 하고 있고, 왠지 이런 축제에는 빠질 수 없는 각설이들도

등장해서는 가위질에, 만담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이 꽂히던 건 어렸을 적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동전을 쓸어가던 조그마한 바이킹.

지역의 축제들도 그렇고, 하다못해 대학교 축제때만 해도 항상 문제가 되는 건 화장실,

남자와 여자를 위한 화장실을 동수로 두는 것도 참 무신경하고 배려없어보이지만, 장애인

화장실을 별도로 넉넉히 준비해두는 건 아예 생각도 못할 일이었는데 여긴 달랐다.

장애인 전용 간이 화장실을 이렇게 준비해둘 만큼 세심한 준비라니, 주최측에 감탄했다.



ㅇ 거리미술전




부평풍물축제가 벌어지는 주된 거리는 부평대로의 8차선, 그렇지만 그 8차선을 대동맥으로

해서 실핏줄처럼 인근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곳곳에도 축제의 기운은 가득 스며들어있었다.

풍물소리가 이제 충분히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싶을 무렵, 적당히 쉬어가며 호흡 좀 가다듬고

지글거리는 아스팔트의 복사열도 피하고 싶다 할 무렵, 문화의 거리로 슬쩍 빠져들었다.

거리 곳곳에 숨어있는 설치미술 작품들. 동글동글한 알을 품고 있는 바다거북들이 거리 가운데

정원석 위에 조용히 은신하고 있는가 하면, 역시나 풍물축제의 분위기를 이어 풍물패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누워있기도 했던 거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실로폰, 캐스터네츠, 탬버린

그리고 트라이앵글 따위의 악기들을 설치해 두었던 작품. 유난히도 작렬하던 햇살이 하늘을

온통 눈부신 하얀빛으로 덮어버린 아래 투명한 초록 그늘을 겨우 드리운 나무, 그 아래

꿈결처럼 열려있는 악기들의 이미지가 꽤나 초현실적이었다.

그 밖에도 몇몇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재기발랄하던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환풍기인지 뭔지

커다란 금속박스를 거울로 덮어버리고는 독특한 표정의 가면을 늘어세우는가 하면,

나무 아래 (이번에는) 반짝거리는 포장지로 잘 포장된 사탕들을 매달아둔 풍경 너머로

꼬맹이가 들고 다니는 노랑색 피카츄 헬륨풍선이 잘 어울렸다.


부평풍물축제 기간에 맞추어 진행되는 2011 거리설치미술전, 풍물과 설치미술은 얼핏

좀 뜬금없어보이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개방된

전통문화공연장은 풍물축제를 찾은 아이들의 즉석 장기자랑 공연장이 되었고, 그 주변에

요모조모 설치된 미술작품들은 잠시 아픈 다리를 쉬어가는 멋진 휴식공간도 되어주기도

하고 자전거를 묶어두는 실용적인 보관대의 역할까지도 맡았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여기, 부평 '문화의 거리'는 이미 설치미술전시회 이전에도 나름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심심치 않고 띄는 곳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슴 두마리가 볼을 부비는

저 모양새의 차량통행 금지석이라거나, 푸근한 아주머니의 미소를 닮은 돼지 분수라거나.

그리고 색색으로 나부끼는 저 메뉴들은 정말 풍물놀이패의 그 날쌔고 현란한 몸놀림을

연상케 하는 거다.

골목이 끝나는 곳, 이런 예감이랄까 연상이 결코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란 확신이 들게 해준

풍물놀이패들의 흥겨운 몸놀림들이 묘사된 조각상. 골목이 적잖이 길었으니 여기까지 저쪽

부평대로의 거침없는 풍물소리가 들릴 리는 만무한데도 귓가에는 여전히 꽹과리와 장구소리가

투닥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북소리에 맞춰 심장도 같이 맥놀이하는 기분, 이내

몸을 돌려서 다시 풍물놀이가 벌어지고 있을 그곳으로 향했다.





Beat!

풍물을 처음 접했던 건 중학교 때, 축구 응원을 하며 어설프게 잡았던 북채였던 거 같다.

두툼한 가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심장 깊숙이부터 울려대는 듯하던 그 북소리는 이후

군대에서 체육대회 응원을 할 때 손가락이 까지고 피가 흐르도록 때려대던 북소리로 이어졌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체육대회 때 난타 공연을 연습하며 또다시 되살아났었더랬다.


인천부평풍물축제는 어느새 15년째를 맞고 있는 대표적인 풍물축제라고 한다. 예전부터

부평 삼산동 일대에서 두레형태로 유지되어 오던 풍물을 1997년부터 축제 형태로 되살려

이제는 연인원 8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규모에 이르렀다니, 올해 "아시아 문화중심을

꿈꾸다"라는 타이틀이 굉장히 야심차고 자부심넘쳐 보일만한 거다.  


올해는 특히 부평풍물고유제를 시작으로 인천 K-아트 초이스, 부평평생학습축제 등이 처음

함께 열리기도 하고, 주민들이나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마당이나 전국 각지의

풍물패들이 솜씨를 겨루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여느 지역축제처럼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거나 잠깐 즐기다 뜨는 그런 행사가 아니라, 풍물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것저것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명품 축제랄까.

일년에 딱 한번, 부평역 앞의 팔차선 대로를 온통 막고서는 곳곳에서 쉼없이 주고 받듯

이어지는 풍물의 가슴뜨거운 맥박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인 것 같다. 올해 5월의 마지막 5일동안 벌어졌던 부평풍물축제 기간 중에서도 이틀,

28일(토)부터 29일(일)까지의 기간동안 이런 해방구가 열렸고 뜨거운 뙤약볕도 아랑곳없이

풍물꾼들의 상모돌림에 넋을 잃고 말았다.



팔차선 대로를 꽉 채우고 양쪽의 인도로, 그리고 인도 너머 실핏줄같은 골목골목으로

넘쳐흐르는 풍물,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어우러진 소리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가슴을 직접 때리는 듯한 소리에 홀려 불러모아진 사람들은 이내 그네들의 눈까지

빼앗기게 되는 거다. 물흐르듯 쉼없이 흘러가며 휘감기고 더러는 휙휙 꺽이고 나풀거리는

저 상모꼬리를 보고 있자니 눈까지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Play!

그러던 와중에, 이 사람들이 갑자기 냅다 내달리며 원을 그리더니 점점 속도를 높이며

나는 듯 달리다가 펄쩍펄쩍 몸을 비틀며 돌기 시작했다. 빨강노랑파랑의 끈을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거리는 동시에 머리 위 상모가 빙빙 돌아가는 정신을 쏙 빼놓는 광경.

동영상이라도 찍어서 온통 원을 그리는 그들의 옷자락과 상모, 온몸의 팽팽한 실루엣과

그 에너자이틱한 역동성을 공유하고 싶지만, 이렇게 올리는 사진에서 그 일단의 느낌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부평풍물축제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이런 곳에 있는 것 아닐까. 과거엔 농사일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되었을 풍물놀이가 시꺼먼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재현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피를 휘몰이치게 만드는 그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마력을 확인하는 것. 지켜보는 사람들이 절로 흥분하며 움직임과 소리에 쫑긋

신경을 세우고 함께 몰입하고 녹아드는 과정이 바로 축제의 본령 아닐까 싶은 거다.


슬, 정리모드로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풍물패의 가락과 춤사위. 그네들의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조금씩 잦아지면서 술렁대며 방방 떴던 주위 공기부터 차츰 무겁게 내려앉았고,

소리와 몸사위에 흠뻑 몰입했던 마취상태에서 벗어나 주위를 조금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문득 눈에 띈 저 꼬맹이는, 공연을 펼치는 사람들과 꼭 같이 옷을 차려입고서는 심정

상모까지 쉼없이 돌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 저 꼬맹이 녀석은 풍물천재?!


어려서부터 저런 국악, 우리 소리의 재미와 흥겨움을 체득하고 있는 아이라면 앞으로

어떤 음감과 감성을 가지고 커나갈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런 축제에서 남들보다 한결 더

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전통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축제때나

드문드문 접하며 생소함과 낯섦으로부터 슬슬 몸을 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제대로

문화의 정수를 즐기고 이어받은 아이들의 세대엔 이 풍물축제가 얼마나 발전해 있으려나.


Fun! 

그렇다고 우리 풍물이 꼭 뭔가 남다른 감각을 갖춰야 한다거나 훈련을 통해서만 즐길 수 있단건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풍물축제라면야, 잘 몰라도 나름의 재미를 찾고 깨알같이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축제를 만끽하면 그만인 거다. 아마도 그런 축제의 여유로움과

다양한 면모야말로 부평풍물축제를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시킬 거대한 잠재력이기도 할 거다.

그 중에서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 아리따운 분들을 찾는 재미도 작은 건 아니다.

풍물을 하는 분들은 모두 나이 좀 있는 얼굴 까만 아저씨들일 거라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주신 이분께 감사를 드리며, 공연을 보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더라는.


부평풍물축제의 홍보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부평풍물단의 '삼신두레농악 판굿',

'웃다리농악' 공연 내내 사방에서 터져나오던 셔터소리의 대부분은 이 분의 활짝 핀 웃음을

향하진 않았을까. 정말 진정 흥이 돋아서 꽹과리를 두드리고 즐기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한켠에서 벌어지고 있던 온갖 경연대회나 청소년공연들도 풍물을 즐기는 또다른 방식의

체험이었다. 상모를 쓰고 복장을 갖춘 아이들이 관객석에 앉아 올망졸망 머리를 모으고

무대에 열중해 있는 장면이나,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앉으신 할아버지가 ENG카메라와

DSLR을 챙겨들고선 공연을 챙기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았다.

전국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활동중일 풍물패들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걸고

경연을 펼친다지만, 풍물의 신기한 마력은 역시 여지없이 발현되어 공연에 나선 아이들의

표정이나 관객석에 앉은 관중들의 표정은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악기를 두드리고

박자를 만들고, 화음을 만들어내며 심장 고동소리처럼 꽉 찬 맥박을 부평의 8차선 도로위에

메워내며 눈빛을 교환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대견하고 이뻐보였다.

무대 위에 오른 공연팀이나 무대 옆에서 연습중인 팀들이나. 풍물의 마력이 이런 거구나,

어렴풋이 깨닫게 해주었다. 아무리 인상을 쓰고 기분이 안 좋던 상황이라고 해도 북소리

몇번, 꽹과리 소리 몇 번에 이내 심장이 두근거려 표정을 풀고 몰입하게 될 그런 마력.

그런 마력에 빠져든 아이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보이며 부평대로 8차선의 공기를

두근두근 두들겨대기 직전, 다소곳이 서로의 머리띠를 묶어주고 있었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이 즐겁다고 합니다.

일년에 딱 한 번 8차선 대로를 밟을 수 있는 일탈의 기회를 함께 어우러져 도시 구석구석을

채우며, 흘러넘치는 풍물에 몸을 맡기고 흥에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인천부평풍물대축제위원장의 말 中)



작년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도 마찬가지다. 풍물은 무엇보다 하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도 절로 흥겹게 즐기도록 만드는 마력을 가진 것 같다. 내년에도

꼭 다시 부평에 돌아와 몸을 가볍게 날리며 겅중겅중 원을 그리는 그네들의 몸동작과,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두드리는 타악의 울림을 함께 하고 싶어졌다.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0년 세계등축제, 얼마전 화재사고가 터지는 등 불상사가 있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몰리고 호응이 좋은 탓에 일주일인가 축제기간이 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슬쩍 주워들은 이야기만 믿고서 다짜고짜 청계천으로.

십장생들, 학과 영지버섯, 거북이 등등이 소라광장에서부터 시작. 청계천 양쪽 수변으로는

색색의 등들이 두 줄로 내걸려 있었고, 아랫쪽 통행로는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순례중.

연보랏빛 벚꽃도 샤방하지만 그 나무에 슬몃 몸을 기댄 소녀는 더욱 샤방샤방.

용궁을 형상화한 듯 사람몸통만한 잉어들이 펄떡이며 호위하고 있는 화려한 구중궁궐.

중국의 경극에서 볼 수 있는 변검을 소재로 한 등인 거 같은데, 자꾸 어딘가의 도박장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빠찡꼬의 색감과 비슷해서 그런 듯.

굉장히 역동적인 동작을 보여주는 두 개의 등. 일본의 무사거나 신 아닐까 싶은데, 얼굴에

빨간 칠하고 칼든 저 분은 스트리트 파이터의 옛 캐릭터 혼다를 닮았다.

타이완에서 온 이 아저씨는, 주위에 금전을 질펀하게 깔아두고 '금전의 신' 행세를 하는 중.

남미의 어느 나라에선가 왔다는 이 초록빛깔 괴물등과 그 너머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모양의 등.

피사의 사탑이 원래 이 정도로 심하게 기울었나, 싶도록 완전 기우뚱한 등은 좀 위태위태해 보인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코트들인 듯. 뭐, 치렁치렁한 머릿결 외에는 그다지 특징적이지는

않은 캐릭터란 생각이 조금.

그러고 보니 대충 한 달 후면 크리스마스도 오는구나. 굉장히 심플하게 만들어진 형태지만

이런저런 그림들이 그 단순한 형태를 잘 보완해서 이쁘게 만들어진 듯. 살풋 부푼 별도 그렇고.

여기는 G20를 위한 공간, 스무 개 나라의 국기가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운운 할 때의 그 주마등, 등 안에 초를 켜두고 밑에 바람개비를

달아두면 안에 있는 그림통이 빙빙 도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말이 움직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 주마등이라고 한다. 스무 개 나라에서 온 말과 국기가 함께 빙빙 돌던 주마등, 아무 것도

성취없이 원점으로 도로 돌아간 G20 서울 서밋의 훌륭한 상징이긴 하겠다.

익살스런 표정의 장승들, 특히나 활짝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지하여장군의 기백이 대박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국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제작한 등 중에서 가장 맘에 들던 것 하나.

마침 올해가 호랑이해였고 내년이 토끼해니까, 늘어지게 퍼져앉은 호랑이 옆에서 담배연기

훔쳐 마시고 있는 눈빨간 토끼녀석이 좀더 눈에 밟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여기도 토끼, 이 녀석은 좀 덜 귀엽다. 밑에 있는 별주부 녀석은 뭐가 좋은지 헤벌레, 아, 금세라도

토끼 녀석의 간을 빼다가 용왕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에 은근슬쩍 잠겨 있을 때겠구나.

등불만 봐도 전체 스토리를 빠바박 떠올릴 만한 몇 개의 동화 내용들이 담긴 아름다운 등들이

지나가고, 그 담에는 좀더 경쾌하고 즐거운 모양의 등불들이 등장. 제기를 차거나 말뚝박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는 어린이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말뚝으로 박혀있는 녀석의

표정이 썩 밝고 재미있지만은 않다. 외려 굉장한 리얼리티.ㅋ

눈이 벌건 거북선도 떠있었다. 토끼의 해를 맞이하여 거북선의 용머리 눈알도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시켜주는 건 센스일지도.

뜬금없지만 무지 귀엽던 개 등불 옆을 지나, 메뚜기가 느적거리고 쇠똥구리가 거대한 똥을 말고 있는

풀밭을 지났다. 그러다보니 거의 종로1가쯤까지 걸은 듯 하다.

세계등축제의 마지막 전시 등불은 뭔가 '등불'의 개념파괴를 시도한 듯한 LED조명이 휙휙

지나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 파트라슈의 개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개의 온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녔는데, 그냥 난 좀전에 있었던 그 귀엽고 작지만 따뜻한 불빛을 품고 있는 강아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맘에 걸리던 것들, 청계천을 대낮같이 밝힌 등불과 청계천 수로 가운데에 수십개씩

설치된 철구조물 때문인지 수로 가장자리에 잔뜩 뭉친 채 부유하고 있던 조그마한 물고기들.

치어 수준의 어린 물고기들 같았는데, 이 녀석들은 어느 수족관에서 사왔을라나.

당장 눈에는 보기 좋고 사진찍기 이쁘기는 하다지만 그런 등불들이 청계천 위에 둥둥 떠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로 바닥에 이렇듯 튼튼한 철제 구조물을 받쳐두어야 하는 거다.

저것들이 위생상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밤 시간에 저렇게 밝은 불빛들이 한동안 켜져 있어도

수중 생태에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런 장애물들이 수로에 잔뜩 있으니 물 흐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지 그것도 모르겠고.

돌아나오는 길, 청계천 내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물흐름장애 및

수질오염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인데, 두 가지 전부 세계등축제에도 해당될 여지가 있어보인다.

청계천이 정말 복개천인지 아니면 거대한 인공수조인지, 거기 사는 물고기들이 생태계가 되살아난

증거인지 아니면 서울시청에서 사다가 뿌린 건지, 따위의 문제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으니 생략.


다만,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미끄러져 다니는 것 같아도 그 밑에서는 쉼없이,

그리고 고생스럽게 물갈퀴를 젓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구경하는

어여쁜 세계등축제가 벌어진 청계천 수중에서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생스럽고 힘겨운

삶을 사는 물고기나 수중생태계가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선뜩하고 찰져보이는 피부, 윤기를 잃어버린 머리카락, 사망 시간이 한참 지난 듯 빳빳이 경직된 팔다리,

게다가 근육들이 수축하면서 보기 흉하게 벌어진 몇 군데의 칼자국과 가슴과 배를 따라 Y자로 열었다가

두꺼운 실로 다시 꿰메진 자국까지. 섬뜩한 시체가 눈앞에 있다.

이 진짜같은 시체는 사실 '그림자 살인'에서 쓰였던 소품인데, CGV송파와 가든5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중 특수효과 전시를 위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것. 요모조모 꼼꼼히

뜯어보면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전에 국립과학수사원에서 경험했던 시체의 선뜩함과

냉기를 풍기고 있었다. (음식의 미학-부검 견학의 감상.)

으윽..아무리 모형이란 거 알아도 이런 건 좀. 성글고 뒤엉킨 머리칼하며 온몸에 묻어있는 피칠갑하며.

무엇보다 이렇게 유리관 안에 핏덩이를 담아놓았다는 게 제일 자극적이다.

가운데와 오른쪽의 머리는 알겠다. 대충 목을 잘라서 성문 앞에 내걸거나 죽창 위에 꼽거나 할 때 쓰는

특수분장 소품일 거다. 근데 왼쪽의 저 포효하는 원숭이는 뭐지. 스타워즈 소품인가.;

왠지 누군가를 닮은 여성의 머리도 유리관에 담겨있다 싶었는데, 한참을 눈싸움하다 보니 누구랑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떠올랐다. 왠지 김민희 많이 닮은 듯.

그리고 말의 모형까지. 코가 금방이라도 벌름거릴 듯 리얼하긴 한데, 털이 너무 광택이 없다. 경마장의

준마들과 비교하기엔 영양상태가 안 좋은 건지 발육상태가 별로인 건지.

특수분장 전시를 해둔 곳을 나와서 둘러보다가, 3D 바닥벽화 작업을 해놓았다고 하는데 이게 왜 3D지?

바닥에 그려놓았으니 원근감이 아무래도 느껴지기야 한다만은 아무래도 요새는 아무데나 3D란 단어를

갖다 붙여놓는 게 아닌가 싶다. 슈렉이나 쿵푸팬더, 지니가 다들 넘 아저씨스럽게 나왔단 것도 불만.

'3D'바닥벽화에서 못내 아쉬웠던 마음을 단번에 털어내주던 그래피티들, 몽글몽글 귀여운 동물들이

단체 사진찍듯 우글대며 모여있었다.

좀더 전형적인 그래피티, 글자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거라 하지만 어느새 글자로서의 형체나 기능은

소멸하고 추상화된 그림이 남는다. 어릴 적부터 그래피티를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는데. 흑.

락카 스프레이들이 잔뜩 늘어선 채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그래피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림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사람들. 원래 그래피티는 누가 보지 않는 새 보통 야밤을 틈타 후딱 작업하고 도망가는 게

묘미일 텐데, 평소 그런 거에 익숙한 이들이 사람들이 멀쩡하니 구경하는 앞에서 작업하려니 어색하진

않으려나. 스프레이로 저렇게 생생한 그림을 그리고 남겨놓는 솜씨는 역시 참 대단해 보인다.

그래피티에 열중한 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보니,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겠다는 생각이다.

벽면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림으로 메꾸려면 무릎을 꿇고 바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해서 그려야

하고, 위에 그릴 때는 사다리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사다리를 조금씩 옮겨가며 다시 올라야

할 테니 꽤나 번거롭고 피곤할 거 같다.

온갖 과일이 매달려 있는 과일나무와 가지, 옥수수가 날개달고 날아다니는 벽화는 빨간 지붕과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사람들이 은근 쉼없이 서서 사진을 찍던 포스트 하나.

영상축제를 찾은 사람들이 직접 아이들과 함께 벽돌에 그림이나 글씨를 그려넣으면 그 벽돌로

작은 집을 쌓아올리는 행사도 있었다. 한 꼬맹이가 자신이 만들었던 벽돌이 어딨는지를 찾는듯

몇 분째 유심히 벽돌 한장 한장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 옆에, 특수분장 체험관 옆으로 마저 이어지던 석고상들. 근데 인물들이 어디서 많이 보았던 듯

낯익은 면면이다. 이 둘만 해도, 모르겠다고? GOD의 멤버 중 두 명이라고 하면 바로 감이 오려나.

석고상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녀의 이미지는 소녀였다가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어버린. 박지윤이다.

워낙 개성있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 최민식.

이 두 사람도 뭐, 딱 보면 각이 잡히는 얼굴이다. 라디오스타의 두 스타. 안성기와 박중훈.

아무래도 여성의 경우는 조금 더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거 같다. 헤어스타일과 화장이 갖는 비중이 워낙

큰 탓인지도 모르겠고, 그녀들의 웃는 얼굴에 익숙해 있는지라 이런 눈감은 무표정한 얼굴은 어쨌든

실제로 낯설고 어색한 탓인지도 모른다. 위에는 김윤진, 밑에는 고 최진실. 최진실은 좀 많이 낯설다.

사실 이렇게 석고로 마스크를 뜨는 건 데드 마스크가 그 기원 아닌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죽은 이의

얼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도로 죽은 이의 얼굴을 정제한 후 석고를 부어 만드는 게 데드 마스크인데

이렇게 영화 배우들의 얼굴을 석고로 뜨는 건 어디에 쓰려나. 마네킹을 만들거나 대역배우 가면을

만드는데 쓰는 건가.

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빡빡 대머리에 아무 분장도 되지 않은 그들의 얼굴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뭐, 딱히 잘생기지도 않았네. (나랑 비슷하게 생겼네), 뭐 요런 턱없는 망상이

스물스물 자라났달까. 그래놓고 거울보면 왠 오징어가 있을지도.




이효석이니 정지용이니,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있다는 건 지자체들로서는 꽤나 '땡큐'한 일일 거다. 아니,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끼리도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핀란드니 아이슬란드니 하면서 툭탁대면서 서로

갖겠다고 야단인 걸 보면, 요새같이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 다 파는', 심지어 자신조차 좋은 값에 팔기 위해

버둥대는 시대에 정말정말 땡큐한 일일 듯. 강원도 평창의 인물, 가산(可山)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하며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

이효석, 그는 '메밀꽃 필 무렵'으로 중고교 교과서를 평정해버린 인물인 거다. 그 밖의 '분녀'니 '화분'이니 몇개

읽었던 작품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의 문학관 가는 길목에 문처럼 버티고 선 저 커다란 책들이 보여주듯

다른 대표작들도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메밀꽃 필 무렵'의 그 선뜩하고 소름돋도록 아름다운 묘사들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내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운운하던 그 대목.
 
길 오른편으로 선명한 녹색과 노랑색 모자이크가 조그맣게 펼쳐진 논밭 풍경을 끼고 메밀밭에 포위당한 언덕을

조금 올랐다. '소금을 뿌린듯이' 하얗다는 메밀꽃은 8월말에서 9월초쯤에 피는데, 그때 맞춰 이곳에선 지역

축제가 벌어진다 한다. 올해는 축제기간 중 대부분 비바람이 몰아쳐서 영 재미가 없었다는 메밀부침팔던

아주머니의 전언.

그렇지, 이 대목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굉장히 운치있고 애잔하면서도 에로틱하고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섹시한 묘사. 이효석은 정말이지 푸른 달이 풀포기와 옥수수 잎새를 폭풍처럼 덮치는 광경을

보고 말았던 건지도 모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새겨져 있는 판목, 이효석 문학관 바깥 벽면에 걸려 있었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좋아하는 구절을 찾아보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장면을 되짚어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길다면 긴,

그렇지만 사실 굉장히 짧아 보이는 저만큼의 글자들 무더기 안에, 물레방앗간의 속살거림이 있고 달이 따르며

비추는 길도 있고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도 생생하게 담겨 있는 거다.

사실 초기 이효석은 당대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 청년답게 사회주의, 러시아혁명에 동조했던 '동반자 작가'의

일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제가 계급주의 문학을 탄압하기 시작한 30년대 초반, 그리고 이효석 개인으로서는

열흘남짓 조선총독부 검열계에서 일하다가 때려치고 말았던 그 즈음부터 그는 인간의 애정욕이라거나 자연에

집중하는 탐미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왠지 굉장히 와닿던 구절. "사상적 동감보다도 시각적 애정으로 첫눈에 끌은 그를 주리야가 사랑하지 않을 리

없었다...사람의 육체에 눈이 있고 심장이 있는 이상 이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하였다...감정의

명령을 잘 좇는 것이 도리어 양심에 충실한 소이가 아닐까 생각하였던 것이다."([주리야], 이효석)

그의 서재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서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것과 그때 이효석이 자아내려고 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을 거다. 그가 빵과 버터를 즐기고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기며 유럽여행을 늘 꿈꿨다고 해서

이걸 단순히 서구지향적이라거나 서구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말기에는 그 시절의 '서양'과

지금의 '서양'은 꽤나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거 같다. 그 시절의 '서양'은 뭔가 바다너머,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든 그런 곳. 일종의 '피안'이랄까 '노스탵지어' 같은 공간 이미지 아니었을까.


그런 곳을 지향하던 이효석의 지향은 오늘날로 바꿔 이해하자면, '달'이나 '외계' 정도로 알아들음 되려나.

그런 점에서 그를 '서구지향적 모더니스트'라고 하기보다는 '보헤미안' 아님 '노마드(실향민)' 정도로 지칭하는게

좀더 적실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시대적 좌절 속에서 정면으로 맞서지도 적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대로

시대에 반응하던 존재. 빵상아줌마나 허경영 따위 짭퉁 말고, 밤하늘 어딘가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 믿는 작은 별

B-612를 그리는 어린왕자 쯤이 이효석의 문학세계의 감수성에 맞을 듯.

그렇지만 지구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같은 그인지라, 한글 실력은 참. 도무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난필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는 사실. 이효석의 다른 작품인 '분녀' 역시 영화화되었었다고 한다.

책을 보고 영화로 다시 보게 되면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인데 저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조금은

아슬아슬하고 색정적인 이미지들을 머릿속으로만 그리다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문학관이 나름 칸칸이 알차게 꾸며져 있어서, 메밀의 효능과 메밀을 활용한 음식들을 구경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돌아나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굉장히 담백하고 선굵게 그어진 '화장실' 사인부터 찾아 한숨돌렸다.

문학관이 C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정원 한귀퉁이에 섰던 빨간 우체통. 이효석 문학관과 봉평을

홍보하는 무료 엽서에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나중에 배달이 된다는.

정원 한가운데 책상에 앉아 공책을 펼치고 머릿속 단어들을 가다듬고 있는 가산 이효석의 동상이 있다. 마침

누구라도 와서 앉을 수 있게 비어있는 의자도 이효석 옆자리에 마련되어 있어서 함께 사진찍고 돌아서기 딱

좋은 공간인 듯. 그게 아니라도 이렇게 이쁘장하게 꾸며놓은 벤치도 있고.

문학관 안에는 '메밀꽃 필 무렵'의 인상적인 장면 몇몇을 재현해놓은 인형 세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유명한 '물레방앗간' 장면에서 느껴지는 저 생생한 긴장감과 벌떡거림이란. 젊던 허생원의 손끝이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것만 같다.

문학관에서 조금 내려와 걷다보면 이내 그 물레방앗간이 나타난다. 허생원과 동이들이 술을 마시던 '충주집'은

원래 실존했던 거여서 예전 위치 부근에 '복원'해 놓았다고 하고, 이 물레방앗간은 이효석 생가를 복원하면서

함께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낮에도 저렇게 깊고 완고한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니 왠지

이전에 존재하던 '레알' 물레방앗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 같다.

이효석 문학관 주변은 온통 메밀전, 메밀동동주를 파는 집들이다. 이효석의 문학 작품 하나 덕분으로 지역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메밀. 집집마다 초가지붕과 옹기 조각 따위로 한껏 분위기를 내었지만 이 집이 그 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듯. 가게 입구 어름에 동이나귀와 성처녀나귀가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버전의 성처녀상. 푸훗.

봉평 재래시장에도 들를 겸 섭다리를 건넜다. 한번 장마에 떠내려가고 나면 다시 만드는데 오백만원이 든다는

섭다리는, 작년 재작년에는 거푸 떠내려갔었지만 올해는 어째 물이 찰랑찰랑하더니 다행히도 떠내려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걷다가 살짝 출렁출렁하는 느낌이 들어 장난삼아 쿵쿵 뛰었더니 금세라도 밑이 쑥 빠져버릴 것만 같다. 소나무로

틀을 짜고 거적대기와 소나무가지들을 위에 올려서 흙으로 다진 거 같은데, 삐죽삐죽 튀어나온 소나무 가지들도

그리고 자잘하게 균열이 그려져 있는 다져진 흙들도 재미있다.

그에 반해, 이건 정말 아니다 싶던 것들. 말라죽거나 말거나 듬성듬성 갖다가 꼽아놨으니 내 할일은 다 했다고

말하는 듯한 이 인도변의 '꽃.밭.'. 게다가 그 옆에 저 얼룩덜룩한 무늬의 보도블록은 뭔가.

으악. 이건 너무너무 촌스럽고 하나도 도로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인 거 같다.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하얗고 뻘겋고 시퍼런 얼룩이 보도블록에 마치 곰팡이처럼 슬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회색빛 블록이나

검은빛 아스팔트와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전혀 쌩뚱맞아 보이는 부조화를 보인다는 것도. 뭔가 튀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효석이나 다른 문인들의 작품을 한글로 프린팅해 넣던가.

봉평 이효석 문화마을, 아기자기한 것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는 데다가 워낙 고즈넉한 동네여서

산책하듯 걸으며 즐기기 딱 좋은 마을인 거 같다. 다음번에는 8월말이나 9월초, 흐뭇한 달빛아래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얗게 빛나는 때 와봐야겠다. 혹시 그때는 나도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까만 먹장이 둘린 하늘엔 연등이 둥둥 떠있고, 살짝 비린내가 풍기는 청계천 수도물하천엔 호랑이며 선녀 따위

모양의 연등들이 늘어서있었다.


애초 종이에 저런 그림을 그린 후 조립하는 걸까 아님 철사로 모양을 잡은 후 그 종이 위에다가 그리는 걸까,

어떤 경우라 해도 저런 사이즈의 연등을 만들어내기란 꽤나 공덕이 필요할 게다.

그리고 청계천을 밝히던 십여개 연등의 행렬이 끝난 즈음, 디지털 가든이던가 그런 이름으로 꿈지럭꿈지럭

피어나는 꽃송이들. 꽃이라고는 하는데, 오히려 뭔가 자동차가 꿈틀꿈틀 변해서 로봇으로 변하는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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