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한지 한달, 이곳에서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삶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집안 내부사정은


마무리진 것과는 거리가 먼 상황. 보수를 좀더 해야 할 부분도 있었고, 실내계단을 마감하는 것도 그랬고.


(어차피 내 집은 아니고 부모님댁이니 난 별로 한 건 없지만서도)


외부에도 몇가지 변화가 있었던 건 집에 들어오는 작은 다리에 저런 울타리를 설치했고, 집의 사방에서 볼 수 있는


CCTV를 설치했고, 마당의 잔디는 좀더 싱싱하게 자라는가 싶더니 최근 급락한 기온 탓에 누릇누릇해졌다.


아, 집앞에 작은 가로등을 설치한 거랑 잔디등을 쭈르륵 늘어뜨린 것, 그리고 현관앞에 이렇게 등도 달았다.


내부까지 완전히 마무리되기를 기다리기는 요원한 노릇, 일단 한달이 지난 지금쯤의 현황을 정리하고 기록을


매듭짓는 게 낫겠다 싶어, 현관문을 열며 시작하는 급 러브하우스 모드. (따다다다~)


마루. 여전히 탁자도 임시로 쓰고 있고 벽면에는 자리를 못찾은 거울이니 액자가 있고 계단 아래에는 박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커다랗게 소파가 자리를 잡고 계단이 완료되었으니 그럭저럭 안정감이 피어오른다.


부엌. 깔끔한 조명이 포인트인데다가 가장 일찍 정리를 마친 영역이기도 하다.


불이 켜지면 이런 느낌.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올라간 슬리퍼는 막 청소가 끝난 상태임을 암시하는 힌트같은 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완성태. 그리고 계단 위쪽에 있는 무드등이라고 해야 하나. 


집의 분위기를 좌우하는데 등이나 블라인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실감케 한 아이템들.


블라인드를 쳤을 때 계단을 올라가면 이런 느낌.


그리고 여전히 맘에 드는 포인트 중 하나, 이층 복도의 채광창.


그리고, 내 방. 방 가운데에 양쪽으로 책이 꽂혀지는 책장이 있는 거랑 흔들의자가 있는 게 포인트인데,


저기에 앉아서 출렁출렁하면서 바로 옆의 책장에 있는 술을 한잔 마시고 책장을 설렁설렁 넘기는게 최고.


책장 중간중간에는 원피스 피규어랑 카메라, 필름카메라들이 놓여있고, 침대 옆에는 이케아에서 산 파스텔톤의 수납장.



그리고 슬라이딩도어 형태의 문 옆에는 디지털 피아노랑 온갖 자잘한 것들로 가득한 장식장이 있다.


책상 위에는 요새 한참 재미를 붙인 드론, 그리고 하늘색의 꽤나 마음에 드는 블라인드가 뙇.


동생방은 슬쩍. 암막 커튼이 늘어뜨려진 책상 좌우로 책꽂이가 쪼르르.


청소한 직후라 이정도지 좀더 어지럽혀지기 전에 이정도만 찍어놓고 '판도라의 상자'는 닫아두는 것으로. 



여태 직사광선을 쨍쩅 통과시켰던 커다란 1층의 통창은 이제 이렇게 블라인드 커튼으로 마무리됐다. 





덕분에 한결 아늑해진 분위기, 떙볕 아래에서 살이 타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건 이제 이중으로 안심하게 된 게 


이렇게 커튼도 생겼거니와 그 이전에 자외선을 차단하는 필름을 붙여놨어서. 


슬쩍 1층의 옷방으로. 내가 들어갈 일은 없지만 저 자줏빛 서랍장과 보라색 블라인드가 꽤 임팩트넘치는 듯.



남으로 커다란 창을 내고 나니 날씨의 변화나 해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아직 들어와 산지


한달밖에 안 되었고 집에 붙어있던 날도 며칠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이곳으로 보여지는 풍경은 늘 새롭다.




해가 훅 내려가고 나서 삽시간에 깜깜해진 시간이 되면 불을 하나둘 밝히고 커튼을 친다. 더욱 아늑한 느낌.


그렇게 내부까지 거의 마무리되는 중. 여전히 자리를 찾지 못한 아이템들이 몇개 있고, 조명과 블라인드로 포인트를


찾고 나니 떼어버린 액자들의 거취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이쯤이면 다 됐다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이제 내년 봄에는 부모님 두분이서 정원이랑 텃밭도 가꾸고 나무도 심으면서 좀더 아늑하게 가꿔가실 테고,


올해가 가기 전에는 바깥 대문이랑 울타리가 완성이 되겠지만 가외의 이야기들.







토요일날 샤갈전을 보러 나섰었다. 3월 27일까지라 하여 막판이니 사람들이 많으리란 건 이미

예상을 했었지만, 줄이 잔뜩 늘어서 입장하는 데만 한시간이 걸리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왜 이리도 사람이 많은 건지. 굳이 샤갈전을 보러 왔다기보다는 근처를 걸으며 놀고 싶었던 거라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선 오디오 설명이 붙어있는 앞에서

바글바글 모인 채 줄서서 작품 감상을 하리라고 생각하니 정말. 샤갈은 다음 기회에.

그냥 돌아서서 정동 쪽으로 넘어가려는데 문득 발걸음을 붙잡은 건, 뭔가 분위기가 묘한 조각들.

잔뜩 찌그러들어있어서 왠지 저기 어딘가쯤에 블랙홀같은 게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건 아닌가

싶도록, 순간적으로 눈이 어질어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잔뜩 짜부러진

가족들의 모습들. 실물 형태로 만들어두고 위에서부터 지긋하게 꾸우욱 눌러서 만든 걸까.

각도를 이리저리 달리 해서 보니까 더 재미있었다. 눈높이를 맞춰서 보면 호빗족 같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냥 장독 같이 땡땡하고 배나온 물체들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작품 제목도

무려 '장독대'였던가.

그리고 좋아하는 길 중 하나, 시립미술관에서 넘어가는 길. 노랑색만 살리고 모노톤으로 찍어본

사진에서는 바리케이트가 발랄해 보인다. 저너머 수풀 속 개나리 뭉치들도 어찌됐건 슬금슬금

오고 있는 봄기운을 느끼게 했고.

가다가 문득, 정동갤러리를 들렀다. 현대작가들의 소품전을 열고 있었는데 여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다. 2층까지 전시된 작품들을 유유히 둘러보면서 몇몇 작가들의 그림에 감탄해주고

이름도 눈여겨 보아두고, 내키는 대로 돌면서 한바퀴 돌고는 점찍어둔 작품들은 다시 한번

봐주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 안에서 나무마룻바닥에 울리는 내 발걸음 소리도 좋았고

따끈하게 실내의 공기를 덥히는 백열전구들의 온기도 좋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쌀쌀한 삼월말의 날씨, 세상에 식목일이 코앞이건만 이렇게 추워서야. 갤러리 안에

후끈하게 덥혀진 공기는 백열전구 말고도 이 녀석의 도움이 컸던 거다. 빨갛게 달아오른 코일을

둘둘 감고 있는 난로. 그 솔직한 열기가 난로와 마주한 살갗에 훅 끼쳐와서, 왠지 정다워서 난로

앞에 쪼그려앉아서 열기를 느껴줬다.

늘 미술관에 오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특히나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 더 심해지지만 이렇게

작품들이 줄줄이 전시된 가운데 소화전이나 통신단자 부스같은 것들이 문득 숨어있는 거다.

더구나 여긴 아주 의도적인 양 스뎅부스 주변을 액자틀같은 걸로 둘러놓았다. 액자틀까지

대략 주위 작품들과 깔맞춤되어 있는데다가, 마침 바로 옆에 전등스위치가 바싹 붙어있어서

작품 라벨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노닐다가 밖으로. 어디선가 물이 줄줄 흐르는 소리가 개울가 같다 싶었는데

건물 청소중이었다. 4층짜리 학교 건물 위에 줄 하나로 지탱한 채 건물 외벽을 청소중이신

아저씨의 뒷모습이 하늘하고 붙어버렸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추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해 보이기도 하고.

마무리는 영화관. 어쩌다 보니 '미로스페이스'가 근 일년여만에 재개관하는 첫날이었다. 깔끔하게

재단장한 영화관, '2011 감독열전' 작품 중에서 시간이 맞는 녀석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었더라는. 혼자 영화관 전세내서 '초롤케의 딸'이란 다큐를 보았는데 이리저리 자세도 바꿨다가

좌석도 바꿔서 보았다가, 영화 만큼이나 너른 영화관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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