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시내는, 사실 한국을 떠나 어느 나라를 가던 늘 실감하는 거지만, 굉장히 밤이 금방 찾아오는 듯 하다.


가게들은 일찍 불을 끄고 문을 닫는가 하면, 퇴근시간 잠시 혼잡했던 거리는 이내 차들조차 드문 적막강산이 된다.

 

 

그래도 더블린의 밤을 늦은 시간까지 지키고 있는 건 템플 바 등등의 유명한 펍들이 늘어선 템플바 스트리트.


마침 세인트 패트릭데이를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어서 더욱 들뜬 분위기의 거리.

 

 

 

아마도 세인트 패트릭데이 즈음해서나 거리에 나와있지 않을까 싶은 인형탈쓴 사람도 보이고.

 

곳곳에서 보이는 거리의 음악가들. 음악영화 '원스'에 나왔던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 저들 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템플 바'를 가지 않더라도 주변에 즐비한 게 분위기 좋고 독특해보이는 바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자신들만의 콘서트에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

 


그 뜨겁던 거리 인근에 위치한 호텔 지하의 바. 

 

그리고 더블린의 택시. 워낙 조그마한 도시라 택시나 기타 대중교통을 탈 기회도 없었지만서도.

 

더블린,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게 세이파리 클로버랑 녹색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도심 곳곳에서 이런 초록색


불빛으로 단장된 건물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쳤던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숙소 주변인 그랜드 커널 닥(Grand Canal Dock)의 야경. 



 

어느날, 저녁도 먹을 겸 공연도 들을 겸 찾아간 이태원의 올댓재즈. 딱히 연주자 누구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충분히 즐길 만큼의 선곡과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밴드들을 만나게 된다.

 

연주를 감상하며 음료를 홀짝거리다 문득 눈길이 닿은 곳에 무수히 내려앉은 별빛들.

 

유리창에 새겨진 드럼 세트 위로 반짝이는 별빛에 마음마저 일렁일렁.

 

 

 

 

 

 

전날 14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온 탓일까. 인천에서 오전 10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이곳 뉴욕 JFK 공항에 오전 11시 20분에

 

내렸으니, 그날 하루는 내게 24시간이 아니라  37시간(10 1/3 + 14 + 12 2/3)이었던 셈이다. 온몸이 혼곤해진 채로 이곳 기준

 

새벽에 번뜩 눈뜨고 일어나서 숙소 옆의 센트럴파크로 아침산책을 나갔다. (사실 알람도 두개나 맞춰놨었다.)

 

센트럴파크 남쪽의 플라자호텔. 이제 이 호텔을 두고 '나홀로 집에'에 나왔던 그 호텔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건 일종의

 

세대를 식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질문같은 게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당당한 황동기마상 아래 누워서 잠들어 있는 배낭객들, 혹은 노숙자들이려나. 아직 이른 아침이니 밤새 저랬는지도 모른다.

 

센트럴 파크에 들어섰다. 플라자호텔의 뒷통수가 보인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센트럴파크의 동남쪽에 있는 동물원이 새벽잠에 뒤척거리는 틈새를 빠져나와.

 

 

 

이쁘장하게 아치 형태로 버티고 선 다리 밑을 지나.

 

녹색이 싱싱한 센트럴파크의 풀밭을 거닐거나 청소중인 사람들과 조우했다.

 

 

색색의 운동복을 입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만큼이나 많이 보이던 산책 중인 개들.

 

 

오늘도 더우려나보다. 구름 틈새로 내리쬐인 햇살 하나가 불화살처럼 커다란 나무 하나를 하얗게 불살랐다.

 

 

그러고 보면, 맨하탄의 거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곳 센트럴파크에서까지, 성조기가 참 흔하다. 나라사랑이 참 그득하셔들.

 

중간에 만난 놀이터. 아직 아이들이 노닐기 전이라 그런지 굵은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조깅하는 사람, 산책하는 개들만큼이나 많이 보이던 자전거타는 사람들. 심지어 길바닥에도 이렇게 누워서 페달을 밟는 중.

 

여우 꼬리처럼 엉덩이 양쪽으로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저것은 휴지가 아니라 수건. 아니 뭐, 그렇단 거지 별 뜻은 없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살짝 후끈해졌나보다. 연못과 분수를 보니 솟았던 땀이 쏘옥 들어가는 느낌.

 

 

그리고 어디선가부터 귀로 새어들어온 노랫소리, 누군가 앰프를 크게 틀고 노래를 듣나 했더니 아니다. 무려 생음악.

 

 

 

너무 즐거워 보인다. 이른 아침에, 드넓은 센트럴파크에, 이 노래를 듣고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리고 그들이 돈을 몇푼이나 저 기타 상자 안으로 넣어주겠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아침에 노래를 하는 모습이 행복해보인다.

 

 

 

커다란 열쇠구멍을 빠져나가듯, 그녀의 노래소리와 내 동전 몇푼에 행복한 웃음을 나눠주었던 그 온기를 꼭 쥐고 밖으로.

 

 

예상치 않게 내 시야 속으로 뛰쳐들어온 아저씨. 사실은 이 자전거에 치였을지도 모를 만큼 빠른 속도로 가까이 다가왔었다.

 

깜짝 놀라며 누른 셔터, 엉겁결에 담긴 사진에 늘어진 뱃살과 뻘겋게 달아오른 피부가 고스란히 담긴 아저씨.

 

 

 

센트럴 파크 동남쪽으로 들어가서 위로 좀 헤메이다가 남서쪽 입구쯤을 찾아 돌아나서는 길에 발견한 커다란 지침.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위한 유원지도 조그맣게 있었다. 자그맣고 싱거워보이는 놀이기구들이 조금조금씩.

 

센트럴파크 남단에 바싹 붙어선 거대한 고층빌딩들. 이 정도의 스카이라인을 따라잡을 만한 도시는 흔치 않다.

 

 

센트럴파크 내의 보트하우스에서 가볍게 아침까지 먹고서 다시 숙소로 가는 길, 대략 한시간 조금 넘게 돌아다니고

 

도심으로 돌아오니 그새 사람이 북적북적해졌다. 어디선가 자전거 대여해준다는 간판을 들고 선 아저씨들도 블럭마다 보이고.

 

 

 

 

 

 

 

초보비행 (by 에피톤프로젝트,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서툰 실력이 늘 힘들지만

오늘만큼은 내 모든 용기를 같이 가자

우린 모든 것이 다르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어디로든지

이렇게나 많은 짐은 필요없어

준비되면 이제 내게 말해

함께 가자 그 어디든 내 손 잡아 그대여

내 손 잡아 날 붙잡아

휘청이는 별에 넘어지지 않게

수많은 시간의 기적들을 끌어안고

할 수 있는 마음 모두 다해

같이 가자 그 어디든 내 손 잡아 그대여

내 손 잡아 날 붙잡아

휘청이는 별에 넘어지지 않게

 

 

우리의 음악

 

 

유난히 길었던 계절이 가고

아쉬운 봄의 끝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걸 기억해

말투와 글씨를 알아나가며

그대가 좋아한다던

음악을 듣고 다닌 걸 기억해

그대여 사랑을 미워하진마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을

때로는 눈부시던 시절을

모든게 조금씩 빛을 바래도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대가 듣던 음악을

다시 또 듣고 있겠지

오늘처럼

 

 

 

새벽녘

 

밤새 내린 빗줄기는

소리없이 마름을 적시고

구름걷힌 하늘 위로

어딘가 향해 떠나는 비행기

막연함도 불안도

혹시 모를 눈물도

때로는 당연한 시간인 걸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함께 했던 시간을 꺼내놓고

오랜만에 웃고 있는 날 보며

잘 지냈었냐고 물어보네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라

함께 했던 시간의 눈물들은

어느샌가 너의 모습이 되어

잘 지냈었냐고 물어보네

 

 

작년말 루시드폴 연말공연에 이어 이번엔 그의 세미심포닉 공연!

 

듬성하고 촉촉하지만 얼어붙은 땅속 깊숙히 스며드는 봄비처럼 맘속을 적셔주던 루시드폴의 읊조림은 정말.

 

 

 

인터미션도 없이 근 두시간동안 워낙 많은 노래를 불러서 뭘 불렀던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어'로 시작하거나 '어'로 끝나는 그의 대표곡들을 비롯, 앨범 미수록곡과 브라질 노래들까지 다양했지만 다 좋은.

 

기타 네개를 앉은 자리 좌우로 둥글게 후광처럼 배치해 두고서 노래를 불렀던 루시드폴, 잠깐 곡을 소개하고

 

두세개씩 연거푸 노래를 부르던 그가 마지막 노래를 마치고 일어나 함께 했던 마에스트로 조윤성에게 박수를 보냈다.

 

 

루시드폴 조윤석과 마에스트로 조윤성. 이름도 한끝차이인데 생긴 거나 개그코드까지 비슷하던 그들.

 

항상 공연가면 궁금한 점, 어차피 앵콜곡 준비해둔 것도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인사하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걸까. 아마 관객들이 '앵콜곡'을 들어야 돈이 덜 아깝게 여겨진다는 심리 때문아닐까 싶은데, 이날

 

역시 그런 조삼모사의 지략이 발휘되어 앵콜곡이 두개. 마지막은 고등어를 다함께 열창.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관객 앞에서 추어올리던 그들.

 

5집에서 그들이 함께 작업했던 노래는 '어부가', '불', '그리고 눈이 내린다', 모두 인상적이던 노래들.

 

작년말에 들었던 루시드폴의 'Silent Night, Nylon Night' 공연은 그가 매년 하던 연말 공연이었는데,

 

올해는 이 공연 LUCID FALL with 조윤성 Semi-Symphonic Ensemble로 끝으로 안식년을 갖는단다.

 

 

영혼의 떨림이란 게 있다면 저런 게 아닐까 싶은 그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미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겠지만,

 

내년에 다시 돌아올 그의 공연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싶다.

 

 

 

완전 아기같은 표정으로 두손을 나풀나풀 흔들며 관객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루시드폴.

 

공연이 있었던 LG아트센터. 벤치의 색감이나 디자인이 참 독특하다.

'광주에서 즐기는 7일간의 아시아문화여행'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보여주듯, 올해 최초로 열린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녹아드는, 그런 기회를

여러 차례 예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력하고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역시 음악의 영역에서

아시아 각국의 전통 문화를 서로 소개하고, 알아가고, 끝내 어우러지던 그런 자리들이었다.

2011 광주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문화주간 중에서도 금토일, 가장 중요한 대목에 해당하는 시기를 책임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클라이막스를 광주 도심 한복판의 금남로공원, 아시아문화마루인 쿤스트할레, 그리고

빛고을 시민문화관과 첨단쌍암공원을 넘나들며 책임져야 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가장 먼저 만났던 공연은

아시아 각국의 대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각자의 고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선사했다.

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는 하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면 서로 생김새도 딱히 같다고 하기 뭐하고, 표정이나

악기의 음색, 연주법 따위도 다 다르지 싶으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했다. 대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뭘까.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걸까.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수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쪼개어 각자의 민족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아시아'로 뭉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신명나게 고조되는 음악의 힘을 빌어 희미한 힌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버린 순간 그 다양한 국적,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베트남 등등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의

덩어리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모양이 많이 달라지고 제각기의 민족성이나 특성에 따라 변주되는

악기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원형은 지켜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뜨겁고 무더운 날씨에도 관객들은 좌석을 꽉 채우고 더러는 뒤에서 서서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페스티벌의

분위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 점잖게 자리에 앉아 연주되는 음악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쿡 눌러쓰더니 카메라폰을 들고 무대 앞까지 돌입하셔서 사진을 찍기에 이르셨다.

아마도 카메라폰 쓰는 법을 가르쳐준 손자나 손녀에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아닐까.

다음 무대는 인도네시아였던가, 왠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남국에서 왔을 법한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이 차지했다. 그들의 몸에는 온통 타투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나풀거리는 천조각은 카메라를 들고 그 빈틈을 노리며 무대 주변을 맴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차림새나 타투들 만큼이나 노래 역시도 생경해서, 이건 혹시 자메이카나 아프리카 같은 멀고도

이국적인 곳에서 온 음악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아시아'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DNA가 이만큼 광범위하고도 풍요롭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인기 만점이었던 이들의 이 멋진 무대의상, 이랄까 혹은 전통의상이랄까.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달려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는 통에 그냥 스킵하기로 했다.

은근히 여성 관객이나 여성 진행도우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듯.

계속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는 계속 그랬다. 넋놓고 그들의 음악을 즐기다가도 어느순간, 어라 근데 이게

아시아음악이라고? 그리고 저 연주자가 아시아사람이라고? 그만큼 음악적인 색깔도, 연주자의 외모나

신체적 특징들도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에서 느껴지는 색감이나 미감 역시

뭔가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상식이나 선입견이 얼마나 좁고도 편협했는지 돌이켜보게

해줄만큼 충분히 자극적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무대 뒤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미 리허설이나 공연 중간중간의 조우를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힌 게 틀림없는 공연자들끼리 어느새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서 무대 뒤에서 서로 장난도

하고 웃고 떠들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이런 게 아마 우리가 바라는

'아시아 문화'의 정수 아닐까.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 친밀한 감정, 그리고 저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마침 한국과 몽골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는 올해, 몽골에서 온 연주자들의 공연도 있었다. 선명한 원색의

옷차림에 독특한 악기들이 이목을 특히 끌었었는데,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마치 짙초록색의 드넓은

몽골 초원 위를 내달리는 말위에 몸을 맡긴 듯한 그런 느낌. 초원위를 가지런히 갈퀴질하며 지나는 바람소리를

닮은 그네들의 악기도 그랬지만, 몽환적이고도 격정적인 구령소리같은 노랫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가만히 보니 현악기의 머리 부분에 조각된 건 다름아닌 말의 머리 모양. 정교하게 말갈기와 주둥이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연주와 노래가 마냥 신기했는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의 뒷모습.

 

 

그렇게 첨단쌍암공원에서의 오픈 스테이지 공연은 일단 막을 내렸다. 아시아 각국, 조금은 친숙한 나라도

있었고 조금은 생경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그네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씩은 더 반가워지고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의 다채로운 복장 만큼이나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만난 아시아

각국의 연주자들, 아마도 그들이 가장 크게 서로에게 자극받고 친숙해진 계기가 된 건 아닐까.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마지막 연주는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통해 그들이 서로 '아시아인'으로 느끼고

하나되는 화룡점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광주에서 열린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놀다가 예기치 않게 빨려들어 완전히 몰입해버린 밴드가 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밴드 이름만 듣고는 이게 어느 나라 밴드인지, 어떤 느낌인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지만, 일단 한번 딱 듣고 나면 바로 그들의 신도가 되어 버리는 거다.(혹은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며

평생 등을 돌릴지도 모르고.) 나 같은 경우는, 좀체 연예인 사인받고 팬질하고 그러는 거 없지만서도

공연 마치고 난 그들을 발견하고 얼른 달려가 사인까지 받아버렸다.


노래하는 오마르와 다르부카 치는 미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정현이 바로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멤버들.

그들의 음악은, 앨범 제목이 '지구음악'이라는 데서 힌트를 찾을 수 있듯 그 뿌리를 딱히 어느 나라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인류의 음악, 민족과 국가로 쪼개지기 전 신과 통하려는 주술적 의지나

집단 최면상태를 만들어내는 그런 음악인 거다. 달리 말하자면, "박카스 주사맞은 느낌"의 음악.


이토록 강하게 끌어당기는 음악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근래 달달하고 은근한 인디음악만 줄곧

들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예기치 못한 멜로디의 진행이라거나 터무니없는 창법들. 정말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허를 찔러들어오면서도 몸을 흐느적대게 만드는 그 마력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아래는, '수리수리마하수리'의 공연 영상과 몇 장의 공연장 사진들.



















 


 

 


 



 




윤상과 신해철이 댄스가 없는 댄스음악을 만들어보겠다, 고 의기투합하여 만든 앨범이었던가. 나중에 SES가

리메이크했던 '달리기'란 노래가 있었고, '질주'와 '기도'란 노래도 꽤나 인상적인 앨범이었지만 무엇보다

강렬했던 노래는 역시 이 노래였다.


윤상과 김광민, 이병우가 함께 했던 'Play with us' 콘서트의 잔향이 여전히 짙게 남아있는 무더운 여름날

생각난 김에, '사랑은 천개의 날을 가진 날카로운 단검이 되어 너의 마음을 베고 찌르고 또 찌르고, 자 이제

날 저주하겠니'란 가사가 완벽하게 아름다웠던. 96년 노댄스의 그 노래. Moon Madness.




너의 눈빛 너의 몸짓
너는 내게 항상 친절해
너를 만지고 너를 느끼고
너를 구겨버리고 싶어

걷잡을 수 없는 소유욕
채워지지 않는 지배욕
암세포처럼 지긋 지긋하게
내 몸을 좀 먹어드는 외로움

나의 인격의 뒷면을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을
거길 봐줘 만져줘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내 결점을 추악함을
나를 제발 혼자 두지마
아주 깊은 나락 속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은 구르는 공 위에 있는 거 같아
때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괴롭지
날 봐, 이렇게 천천히 부서지고 있는데
아주 천천히

끝없이 쉴곳을 찾아
헤매도는 내 영혼
난 그저 마음의 평화를
원했을 뿐인데

사랑은 천개의 날을 가진
날카로운 단검이 되어
너의 마음을 베고
찌르고 또 찌르고

자 이제 날 저주 하겠니
술기운에 뱉은 단어들
장난처럼 스치는 약속들

나이가 들수록
예전 같지 않은 행동들
돌고 도는 기억속에
선명히 낙인 찍힌
윤리 도덕 규범 교육

그것들이 날 오려내고
색칠해서 맘대로
이상한걸 만들어 냈어

내 가죽을 벗겨줘
내 뱃살을 갈라줘
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나도 궁금해

나의 마음은 구르는 공 위에 있는 거 같아
때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괴롭지
날 봐, 이렇게 천천히 부서지고 있는데
아주 천천히

끝없이 쉴곳을 찾아
헤매도는 내 영혼
난 그저 마음의 평화를
원했을 뿐인데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
기억나지 않는 지난밤
내 마음을 언제나
감싸고 있는 이 어둠은
아직 날 놔주지 않고




어제 배철수가 그랬던가, 비오면 비온다고, 추우면 춥다고, 어떤 핑계든 대고 찾는 게 술이라고.

그렇게 비온다고, 눈온다고, 밤이라고, 춥다고 찾는 게 또 하나 있으니 음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음악과 술은 언제 어느때고 내키면 꺼내들 수 있는 창과 방패인 듯 하다.


부드러운 음악으로 실드치고 톡 쏘는 술로 찌르기 들어가고.


그렇게 싸우다 보니 저녁밥으로 술을 마셔버렸다. 아 무슨 술꾼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은 공부가주 마시고 야근중..)




사실 나는 기억이 차곡차곡 쟁여지고, 그러한 기억들이 계속해서 누적되면서 '나'를 이루는 걸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가끔은 손실되기도 하고, 적당한 모습으로 재구성되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내가 문득 의식을

감지한 유년의 어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 살면서 쌓아온 느낌, 경험, 그런 것들이 무한히 축적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내가 가진 기억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기억들이 '나' 자신을 구성하는 거라면,

그렇게 쌓여가는 경험치를 통해서 조금씩 맘에 드는 모습으로 다듬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쉽지도

않겠지만 '발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놈들을 끌어안고 나아가면 성숙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아니다. 사람이란 게, 한없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 끝없이 무언가를 쟁여넣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보관할 수 있는 지퍼달린 크린백이 아니었다. 우연찮게 소거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재구성되는 기억의 소실만이

아니라, 어느 시점...문득 본격적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억들, 자신의 살점들,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던 이미지들, 관념들, 기억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던 경험들, 아니면 관계들..조금씩

밀려나고 후퇴하고 있다고 설핏 느끼고 있던 오래된 살점들이 먼지가 되고 어느 순간 콸콸 소리를 내며 내 몸을

투과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흘러가고 기억이 더해지고, 더이상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전의

것들을, 지금의 내게서 멀어져버린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상실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기억들과 새로운 관계들, 그리고 새로운 감정들이 다시 채워진다. 예전에 알고 있던

나와는 약간 다른 모습, 그리고 약간 다른 체취를 가지고, 자신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들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제 된 건가. 나비가 허물을 벗듯 몸에 안맞고 시간에 지체되었던 기왕의 자신을 변화시켰으니

된건가.



아니. 문제는, 이제 알아버렸단 거다. 사람은 (적어도 나는) 버린단 행위에 절대 익숙치가 않고 버려야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껍데기와 사고들, 나 자신을 구성하던 온갖 층위의 관계와 기억들은 마치

초딩 때의 일기장처럼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단 사실이 깨어져 나갔다. 게다가, 그

당혹스러운 '상실의 의무'에 더하여, 처음 몸을 찢고 기억이 버려질 때 생긴 상처는 아물때쯤 해서 다시금

몇번이고 다시 파열되고 마는 마법같은 행사가 된다는 거다. 이제 평생 계속해서 리싸이클링될 '나'란 존재의

쓰레기 배출구가 되어..일정량 이상의 시간이 모이고 그사이 침잠해버린 이전의 나 자신을 버리고 감정과 관계를

버리고, 더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상실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목까지 음식을 채워넣은 듯한 불편함 속에서 생각한다.

허무하다. 대체 난 뭐란 말이냐. 비록 지금 이런저런 것들로 '나'를 감지하고, 내살점이라 느끼고, 이게 나다..라고

느끼고 있지만. 어느 순간 고름처럼 시간이 고이고, 시간과 더불어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씻겨나가고 있음을 불쑥

의식하게 된다. 페이지가 정해져 있는 일기장은 연필로 써야 한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내고 지우개똥이

수북해지면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사실 볼펜 따위도 주어지지 않았다.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와

죽을 때까지 쥐고 싶은 마음으로 영원한 것, 기댐직한 것을 찾지만, 고작해야 눌러 쓴 연필의 자국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기내 방송에서 문득 '노르웨이의 숲'정도를 듣게 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뿐이다.



산다는 게 상실해가는 거란 사실을 몰랐었던 것, 상실이란 게 존재의 의미..소위 '레종 데트르'라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일 준비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대략 스물에서 서른, 광석이형같으면 서른셋, 기억이 꽉 차오르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점이 지난후 그 안쓰러운 감각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는 것. 새롭게 대체되는

자신의 기억, 자신의 살점,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미리 그 상실을 예견한 채 압도당해 버리는 것. 그게 시간을

중간에 끊어버리고 자신의 소모를 막아버리곤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의 원천인 거 같다. 견딜 수 없어져

버린 게다. 비어져 가고, 잊혀져 간다는 그 느낌을.



사실 그러한 상실감을 껴안고 살아가려면 세가지 정도, 선택지가 있다. 무언가 영원한 존재를 찾아 몸을 의탁하고

정신을 맡기는 것. 신이 되었건 구도가 되었건..인간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영원성이라는 개념을 빌려오는

것. 아니면 상실감에 익숙해지고 그러려니...무뎌져 버리는 것. 원래 그런 거야, 시간이 약인거야..라는 말이 바로

그런 거다. 살아남기위한 전략으로서의 상실. 상실의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그런거.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피칠갑을 한 영혼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거다. 아프고, 절그럭거리고, 공허하고, 옆구리

어귀에서 콸콸대며 무언가 쏟아져나가버리는 느낌을 선연히 간직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막되먹은

깡다구로 살아보는 거다. 적어도...잎새 하나 띄운 물잔 건넬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게다. 내가 잊었어도

날 기억시켜 줄 친구는 있을 게다. 날 나이게 하는 것들..조금은 더 지탱시켜 줄 안정감과 안온함으로 위로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일상적인 상실이 주는 피폐함과 무의미함을 이길 수야 없을지언정.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데야..

그랬던 거 같다. '재미없다'는 말을 연발하는 친구녀석이나..뭔가 지쳐 보이는 사람들, 힘들고 우울하고 불안정해

보이는..나 역시. 의식했건 못했건, 환상이나 동화처럼 느껴지는 어릴 적과는 달라진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해

버린 거 같다. 한번 변하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다. 돌이킬 수 없는.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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