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2, 괴산 산막이옛길(윤성의)-


* 2016. 7. 12(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구불구불한 산막이옛길에 풀향기가 가득.)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충북 괴산에 위치한 산막이옛길입니다.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을 이어주던 10리길, 그러니까 4km 옛길을 이르는 말인데요.

산으로 깜깜하게 막혀있던 산막이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산나물이나 약초들을 강건너 읍내 장에 내다팔거나 옆마을로 넘나들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점차 마을이 작아지면서 잊혀져 가던 길이라고 합니다.

옛길 초입부터 여행자를 구불구불 따라오는 괴강입니다. 1950년대 괴산수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에는 괴산호라 불리는 곳이죠. 바람 때문인지 괴산호 수면에는 잔물결이 꼼꼼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굽어진 강물, 강물 따라 또한 잔뜩 굽어진 산등성이, 이런 산등성이를 따라 새겨진 초록빛이 가득한 풍경이 활짝 펼쳐집니다.

길이 적당한 강약으로 오르내리는데다가, 적절한 보폭의 나무데크로 이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좋습니다. 드문드문 나무에 묶인 그네에선 아이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아래쪽으로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저러다 휘잉~ 하고 그대로 호수까지 날아갈 같은데 아이들은 겁이 나지도 않는지 마냥 즐거운 웃음소리를 던집니다.

아이들의 발랄함이 가시기도 전에 이어지는 출렁다리입니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서 우다다 걷다가 일부러 흔들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뒤에 따라오는 꼬맹이가 완전히 겁먹은 보고 미안해졌지만 이내 걸음 가지 못해 다시 출렁출렁해보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 느낌 그대로, 어른들한테도 꽤나 길고 재미있던 코스였습니다.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 쬐이는 단단한 흙길을 밟으니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산뜻한 초록색을 뽐내며 옛길을 터널처럼 감싼 나무들, 그리고 제법 울창해진 틈새를 비집고 기어이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과 이따금씩 뚝뚝 떨어지는 햇살 조각들. 어디선가 풍기는 나무냄새, 꽃냄새까지 더해지니 정말, 한없이 걸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약수터의 펑펑 흘러나오던 물맛도 무척이나 좋았고요. 예전에는 논이었지만 지금은 연꽃이 피는 연화담도 지나고, 60년대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동굴도 놓칠 없는 포인트입니다. 무엇보다 지상 40m 높이에 설치된 고공전망대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었지만, 아래 보이는 온통 초록빛 풍경과 아름다운 강물에 아이들도 겁먹지 않고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곳이었습니다.

산막이옛길의 끝은 산막이마을입니다. 끝에서 돌아오는 방법은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반 정도 걸려 꼼꼼하게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걸어 수도 있고요, 출발지로 돌아오는 소형배를 타면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다른 풍경을 발견하면서 15 만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본격적인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나오는 것도 방법이겠죠.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어요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산막이옛길, 풀향기 가득한 그 길에 처음 섰던 건 사실 하늘이 종일 칭얼거리던 날.

날씨도 우중충하고 빗물도 그치지 않아 어쩔까 하다가 잠시만 둘러보기로 하고 우산을

들고 카메라를 쥐었다. (맑은날의 기록 : 구불구불한 산막이옛길에 풀향기가 가득.)

흙바닥이었지만 나무쪼가리들이 폭신하게 깔려있어서 물웅덩이가 생겨있거나 질척해져있지는

않아 걷기 수월한 덕분에 물기가 총총히 맺혀있는 나무들도 보고, 흰 김같은 구름을 칭칭

감고 있는 산들도 보고, 물안개가 잔뜩 피어오른 강도 보고. 삐죽거리는 솔잎 끄트머리마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물방울들이 점점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간, 주륵.

그네도, 흔들의자도, 나무와 나무사이에서 슬쩍 휘어있는 벤치도, 그리고 자연목으로

얼기설기 엮어만든 울타리도 모두 흠씬 젖어 있었다. 그 와중에 울타리 위에서 뱀인지

용인지 혀를 날름거리며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옆에는

나무를 깎아만든 오리도 있고 새도 있고, 이 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소품들이다.

그렇지만 이 옛길을 걸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품이랄까, 포스트는 단연코 이곳이었다.

정사목. 한글로 된 음만 읽으면 감이 확 오지는 않지만 한자로 써놓으면 그 의미는 분명해지는 거다.

情事木. 아니, 뻣뻣하게 굳어있는 나무가 정사라니, 기껏해야 서로 수십년에 걸쳐서 손이나 잡는

느낌의 연리지가 고작일 텐데, 나무가 정사라니.(feat. '내가 고자라니')

정사목. 나무에 뭔가 남자표시 여자표시 이름표가 붙어있는 걸 보니 뭔가 기대가 되긴 하는데,

딱히 모르겠다. 설명에 따르면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포즈의 나무들이라는데, 대체 뭐가

어떻다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근데 왜 가지가 세개지, 여자 표시가 두개 붙어있는건...?

아하, 슬쩍 각도를 틀어서 가까이 가서 보니 바로 알겠다. 무슨 숨은그림찾기처럼 한번 그림이

보이고 나니까 이제 아주아주 잘 보이는 그림, 이 나무 진짜 그럴 듯하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음...남자나무가...여자나무를...음...[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한참을 즐감해주시다가, 왠지 나무들이 삐걱삐걱거리며 서로의 몸을 더듬고 비트는

듯한 환상과 함께 어디선가 밤꽃냄새가 마구 풍기는 듯한 환상이 떠오를 무렵, 정신건강에

안 좋겠다 싶어 일단은 철수하기로 했다. 마침 빗발도 좀더 굵어지고 있었고, 잔뜩 찌푸린

하늘 덕에 금세 어두워지겠다 싶기도 해서.

솔잎마다 방울져있는 빗방울들,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빗물을 닮았다는 느낌. 빗물에 씻기고

나니 산막이옛길도 그렇고 온통 푸르른 풍경이 더욱 싱싱해졌다.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 편도 약 3킬로미터의 옛길 구간 내내 화장실이 없는 건 아마

자연을 지키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또 꼬맹이들 손붙잡고 오는

부모님들이나 사람들을 발 동동 구르며 울부짖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 절절한

멘트를 큼지막하게 써붙일 수 밖에 없는 거다. 여기 좀 봐유, 이곳에서 버리고 가유~!


잘 되지도 않는 충청도 사투리로 몇번씩 되뇌여보다가 그 리드미컬함에 놀라며 완전

재미가 붙어버렸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성조에 맞춰서 찰지게 달라붙는 저 끄트머리의

머머해유~ 하는 맛이라니. 화장실 없슈, 없대유, 여서 버리고 가유, 돌 굴러가유, 말했잖슈.ㅋ


양반의 고향 충청도답게 화장실 표시에 등장한 남자와 여자도 아주 잘 갖춰입고 점잖기가

그지 없다. 눈을 얌전히 내리깔고 부채를 펼쳐든 신랑의 이미지와 그보다도 훨씬 수줍어

보이는 볼빨간 신부의 이미지. 나름 험한 산길을 앞에 둔 간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색색깔 등산복이나 간편복장과는 영 다른 느낌.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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