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꿀꿀한 하늘 아래 형광색 점퍼를 입은 마부 아가씨가 눈에 확 띈다.


그리고 파란색 파이프가 구불거리며 도시를 관통하는 아래 새빨간 차양과 의자를 가진 까페도.


이 작고 귀엽지만 빨라 보이는 차는 아마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 같은데, 미처 그들에 초점을 잡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슈프레 강폭을 가늠할 수 있는 사진. 조금만 단단히 마음을 먹으면 이 정도 너비의 강쯤은 금방 횡단할 수 있을 듯.


그리고 계속 벼르고 있던 뮤지엄아일랜드. 호텔 바로 옆인데도 도무지 시간을 내볼 수 없었던 방문장소를 일욜 오후에야 겨우 들러봤다.


운이 좋았던 거라, 마침 벼룩시장이 열려서 중고 책이니 카메라니 심지어는 중고 타자기까지 꺼내놓고 팔고 있던 사람들. 이리저리 뜯어 보고 인터넷도 검색해보고 하다가, 구 소련제 필름카메라 한 점과 무려 1938년에 만들어진 타이프라이터 한 점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외모를 가진 아저씨가 노려보는 보데 뮤지엄, 그 앞에서 사람들이 번다하게 오가며 사진도 찍고 내부 전시도 보러 들어가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출장이 아니라 여행을 온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 기분을 더욱 북돋아주는 트럼펫 아저씨. 쉼없이, 엄청 진지하고 열심히 연주를 하고 계시길래 주머니 속 동전을 탈탈 털어드리곤 맘놓고 이리저리 사진 촬영을 시도..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해안,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이 있는 곳이다. 대략 150년 이전의 범선부터 2007년까지

 

활동하던 잠수함까지 7척의 크고 작은 선박들의 내외부를 일일이 둘러볼 수 있다는 게 포인트. 특히나 동해를 무대로

 

활동하던 구소련제 공격형 잠수함인 B-39의 좁고 불편한 내부를 살피는 건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박물관의 중심건물이랄 수 있는 1898년 건조된 버클리 선. 증기를 내뿜었을 커다란 굴뚝을 높이 세운 선박 안에는

 

증기선의 엔진이라거나 실내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뜬금없게도) 타투샵도 들어가 있었다.

 

1700년대 영국의 프리깃 선을 복원한 서프라이즈 선, 내부에는 그래도 제법 오래된 느낌을 살린 대포라거나 각종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

 

대포의 여러 부품에 대한 이름과 작동방식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고.

 

해먹 대신 그래도 널판지가 깔린 침대에서 몸을 뉘일 수 있었던 상급 선원의 공간도 둘러보고.

 

선장의 호화로운 식사 공간도 슬쩍 훔쳐 보는 재미.

 

당대의 선원들이 어떤 식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요일별 식단을 아예 소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18세기의 대영제국을 건설하는데 선봉에 섰을 전투선박인 거다. 충분히 해양박물관의 앞머리에 설 만하다.

 

그리고 1974년에 건조되었다는 구소련의 잠수함. 굉장히 투박하고 못 생겼다라는 느낌인데다가, 내부를 돌아보려면

 

우선 저 앞의 동그란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에 들어가야 한다. 설마 그렇게 좁은 출입구가 있겠어, 하기

 

쉽지만 정말로 저렇게 좁고 불편한, 당장이라도 폐쇄공포증에 시달릴 것만 같은 공간이 저 안에 있었다.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구소련 잠수함의 꼭대기에 그려진 혁명의 붉은 별, 그 붉은 빛이 선연하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것부터가 벌써 뭔가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

 

어뢰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공간인 거 같은데, 이렇게 조밀하게 공간을 채워넣으려 애써도 선원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은 고작해야 발딛고 움직일 수 있는 두어뼘 남짓이다.

 

그리고 잠수함에 탑승하기 앞서 시험해봤던 바로 그 문과 동일한 사이즈의 철문.몸집이 큰 미국인들에게는 꽤나

 

통과하기 어렵겠다 싶은데, 실제로 저 정도의 아저씨도 한참을 낑낑거리며 버거운 몸뚱이를 부비적거렸다.

 

그나마 화장실이 이정도 공간이라도 확보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온통 파이프와 전선과 손잡이로 포위됐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꽤나 현대적이랄까, 배관과 원형의 손잡이와 전선들이 최적의 공간 활용을 꿈꾸며 사방으로

 

내리달리는 모습이 자아내는 아름다움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 계란색 바탕에 빨갛고 파랗게 정돈된 색감 역시.

 

 

 

역시 어디서든 사람이 생활하는데 긴요한 건 먹는 것, 그리고 싸는 것. 잠수함 승조원들의 일과와 식사시간에 대해서

 

자세한 메뉴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비록 그런 삼시세끼 식사를 만들어내는 주방이라는 게 무슨 보일러실처럼 이렇게 작고 보잘것 없다고 해도.

 

재미있는 건, 이 잠수함의 작전구역이 한국의 동해지역이었다는 점, 때로는 대한해협을 통해 남해와 서해 지역까지도

 

작전지역으로 삼았다니 일촉즉발의 냉전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전사임에 틀림없다.

 

그런 잠수함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까지 항해해서는 결국 샌디에고에 안착, 해양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꽤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전히 이런 상급 장교의 의복이나 구소련의 영도자들 사진을 남겨둔 채.

 

잠수함 승조원들의 세면장..이라는데, 설마 여기서 모든 세면을 다 하지는 않았겠지? 고작해야 싱크대 수준인데.

 

 

그리고 다른 배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발견한 선실 창문에 반사된 샌디에고만 앞바다의 풍경. 온통 크고 작은 선박들이

 

정박해 있기도 한데다가 170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오랜 배들이 뒤섞여 있다보니 기분이 묘해진다.

 

그리고 해양박물관에서 가서 알게 된 재미있는 프로세스 하나. 참치 통조림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

 

 

 

 

라스베거스, 하면 도박과 화려한 쇼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라스베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는 원자폭탄을 최초로

 

테스트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사람들은 라스베거스로 원폭 실험 관광을 오기도 했다니 인류 최악의 무기인

 

원폭에 쏠렸던 당대의 관심과 열광을 짐작할 만 하다. 게다가 또 하나, 외계인 시체가 숨겨있다느니 하는 온갖 루머의

 

근거지가 되는 비밀 공군기지 area 51 역시 네바다주에 위치한 곳이니, 두가지 이슈를 모두 다루는 원폭박물관은

 

꼭 가보길 권하고 싶다. 영어 이름으로는 National Atomic Testing Museum. 이곳에선 원폭의 위력도 체험할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내용이 많고, 특히 원자폭탄이 갖는 의미라거나 네바다에서 역사적으로 원폭 실험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구 소련 등 국제정치적으로 어떤 반향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갖추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일일이

 

글을 다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사진에 담아온 내용들을 확인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침묵 모드로 사진만 줄줄.

 

 

 

최초 원자폭탄 실험을 위해 갖췄던 생활시설. 이때만 해도 피폭의 위험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더랬다.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이뤄진 곳에서부터의 반경. 이른바 zero point로부터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일본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졌던 아이들의 이름은 Little Boy와 Fat Man.

 

그리고 이제 지상 실험에서 슬슬 지하 실험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와 설비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이 원폭박물관에 대한 총체적인 감상은, 다소간 미국 정부의 프로파간다와 핵무기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를

 

맡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미국의 원폭 실전배치로 촉발된 냉전시기의 핵무장과 군비경쟁은, 그 상당부분의

 

책임을 소련에 전가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네바다의 핵폭탄 실험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소재 중 하나로 끌어왔던 영화들도 꽤나 많았던 거 같다.

 

마네킹이 막 놓여 있고, 한쪽에선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핵폭탄을 터뜨리는 장면들. 일종의 문화적인 현상이었을 거다.

 

 

 

 

매 테스트마다 여기에 나온 리스트 순서에 따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위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그라운드 제로 씨어터'. 실제 폭탄이 터질 때의 소리와 바람과 진동을

 

실감할 수 있는데, 영상과 더불어 제법 실감도 나거니와 꽤나 으스스한 체험이다.

 

 

이 곳 원자폭탄 실험과 관련된 시설에서 일했음을 증명하는 자격증 같은 것도 발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증서의

 

배경이 저렇게 으스스해서야, 받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으로 받았을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게 그 테스트 중에 있었던 모델하우스에 놓였던 마네킹들. 의복의 재질이 뭐였는지 등등에 따라 폭탄의 효과를

 

측정하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고 한다.

 

 

 

 

 

이렇게 직접 버튼을 누르는 체험..도 할 수가 있다는데, 이건 사실 굉장히 불편한 체험 시설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열손가락에 반지끼고 왜적장을 껴안고 함께 뛰어내리는 식의 '논개 체험'을 시키는 것 같달까. 대체 누가 원자폭탄을

 

발사하는 버튼을 눌러보고 싶을까. 그리고 그런 체험 내지 교육을 왜 시켜야 할까.

 

 

미국과 구소련 양국간의 핵무장 경쟁은 어느 순간 협력 기조로 변화해서 소련의 군사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이곳에 와서

 

실험시설을 시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 50여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핵무기 발전사를 직접 증거하는 자료들과 풍부한 내러티브가 끝나갈 무렵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준비된 몇 가지 부스들. 우선은, 방사능에 대한 차폐 효과를 직접 실감케 하는.

 

알루미늄과 종이와 유리 등이 방사능을 얼마나 막는지, 방사능 탐지기로 측정해보도록 하는 체험 시설.

 

그리고 방사능 폐기물이 어떻게 분류되며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겸한 체험 자료.

 

미국 전역에 걸쳐 있는 핵무기 관련 시설물들이 어디에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 이런 자료를 공개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2014년 현재까지의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화면. 80년대 어간부터는 거의 변화가 없어진 걸로 봐서

 

아마도 대부분의 무기가 경량화, 소형화되어서 더이상 시설물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방사능 폐기물은 사실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미국조차 해결하지 못한 문제지만 최소한 여기는 이렇게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 이렇게 잘 갖춰진 자료와 체험 설비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한다는 자세가 눈에 밟혔다.

 

그리고 이렇게 네바다 핵폭탄 실험 지역 인근에서 끊임없이 방사능량을 측정하며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점도 역시.

 

 

다소 프로파간다적이고 미국중심적인 결론, 북한을 비롯한 국가들이 핵무장의 위협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한국 등은

 

핵무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친절한 정보가 원폭박물관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던 내용.

 

그 다음 전시공간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던 area 51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스웰의 외계인 이야기라거나 온갖 UFO 목격담과 관련된 자료들을 담고 있기도 했고, 비밀 공군기지인

 

area 51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는 곳이었다. 외계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듯.

 

그리고 원폭박물관의 센스돋는 입장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입장권마다 다른 외계인의 ID처럼 다른 내용을

 

담고 있고,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해당 외계인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남도의 끝,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한시간 못 미처 바다를 달려나가야 도착하는 호젓한 섬 청산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된

 

섬에서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대를 담아내려면 왠지 필름카메라가 땡기는 거다. 77년생 소련제 카메라 Zorki 4K.

 

 섬을 종으로 횡으로 이어주는 청산도 슬로길을 설렁설렁 내딛는 걸음 따라 서편제의 풍경이 지나가고 누런 황소의 울음이 맺힌다.

 

 

 섬까지 물자를 실어나르기 쉽지 않아서였을까, 야트막한 단층 가옥을 짓고는 창문은 음료수병꽂이로 대신했다.

 

 

 양귀비가 시뻘겋게 피어난 붉은 밭, 그너머로 다랭이논들처럼 켜켜이 지붕을 잇고 덧붙인 마을의 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

 

 구불구불 끊길 듯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도 출렁출렁.

 

 

범의 머리 모양을 닮아 범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청산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포인트 지점.

 

자성이 강해 나침반이 오작동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스캐너가 좀 문제가 있는지 사진들이 좀더 흐릿하고 어둡게 스캔된 게 틀림없지만, 그래도 뭐 일단은 Zorki와의 조우 이후

 

어떤 풍경들을 담고 있는지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몇 장 골라서 올려두는 셈이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벼룩시장에서 조우한 구 소련제 필름카메라. 무려 77년산 Zorki 4K, 렌즈는 Jupiter8 2/50. 대체 제대로 찍힐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 야무지고 단단한 외관과 가죽내음 흠씬 나는 케이스가 맘에 들어 지르고 났더니 아무래도 찍어봐야겠는 거다.

 

며칠 후 동유럽의 진주 듀브로브닉에서 기어코 필름을 한 롤 사서는 다짜고짜 테스트 시작.

 

제대로 나오리라는 기대없이 찍었던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질 만한 풍경이 보였다. (게다가 필름 현상과 인화 비용이

 

왜 이리도 비싼지, 일단 인화까지 마치고 난 사진들은 어떻게든 활용해야 되겠다 싶어서 집의 구리디 구린 스캐너로 스캔까지 완료)

 

설핏 초록빛이 머금어진 듯한 톤다운된 색감이 맘에 드는데, 스캐너가 구려서 그런지 인화된 사진이랑 스캔본이랑 조금 색감에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듀브로브닉의 구석구석 들고 다녔던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이 떠올라서 무조건 만족.

 

 

 그치만 이 사진에서 나온 색색깔의 우산들이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 그래도 스캔이 사진 색감에는 딱히 영향을 미치는 거 같지 않기도.

 

 

 어쨌든,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놀려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발견한 건 가외의 수확인 듯 하다. 현상할 때 먼지를

 

잔뜩 뒤집어씌워서 사진을 망치는 그런 데 말고, 그리고 좀더 싸게 할 수 있는 현상소를 찾아봐야겠다. 게다가 스캔도 해줌 좋겠는데.

 

필름에 담긴 세달 전의 추억들, 필름이 아니라 일종의 단단한 깡통에 아껴둔 기억과 순간들을 열어보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이렇게 석달전, 한달전의 시간을 고스란히 되돌리는 게 필름카메라의 묘미일 듯. 리와인드.

 

 

 

 

투르크메니스탄 약사


민족 형성 및 각국의 지배


구석기시대 투르크멘바쉬 인근에서 인류 거주

○ 8,000년 전 코페트다그 산맥 지역에서 신석기 농경 시작

○ 청동기-Anau(아나우)문화 코페트다그 북부와 테젠강 하류에서 발흥

○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에 의해 피지배

○ 9세기말 이후 투르크계 오그즈족 이슬람교 수용→투르크멘 명칭 처음으로 등장

○ 12세기말 ∼ 13세기초 호레즘왕의 지배

○ 1219 ∼ 1221 징기스칸의 지배

15세기 ∼ 17세기 남부부족-페르시아, 북부부족-히바와 부하라왕의 지배

○ 18세기초 페르시아, 18세기말 부하라왕의 지배


帝政러시아와 舊소련 시대


1860년 제정 러시아군에 의해 크라스노봇스(現 투르크멘바쉬)시 건설

1869 ∼ 1880년 대러 항쟁

1884년 항복

1917년 자카스피 반볼세비키 지역 정부 형성, 투르크멘 의회 수립

1918년 4월 투르크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선포, 7월 영국 지지하 민족주의자들 볼세비키 정부 전복, 독립 정부 수립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독립정부 전복

1924년 10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1930년초 정치적 자치 운동 시작했으나 많은 지식인이 투옥 또는 처형됨


영세중립국 투르크메니스탄


○ 1990년 8월 주권 선언

○ 1991년 10월 독립 선언(10.27 독립기념일)

○ 1995년 UN 총회에서 영세중립국 결의안 채택

○ 2006년 12월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 사망

○ 2007년 2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취임

○ 2008년 9월 헌법개정안 채택



정치 · 사회 동향


정치 및 국제관계


야당 및 반대세력이 없어 정치 안정 가능

2007년 2월 1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전임 부총리이자 보건부 장관이었던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의회(Khalk Maslakhaty) 및 엘리트 집단의 절대적인 지지와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음.

ㆍ 철권통치를 자행해온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2006년 말 사망으로 신임대통령 선거 실시

ㆍ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여당인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구공산당)을주축으로 하는 단일정당체제 유지 및 실질적인 반대세력과 언론에 대한통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정치적 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권한 강화

ㆍ 2008년 9월 헌법이 개정되어 인민평의회(Khalk Maslakhaty)가 폐지되었으며, 의회(Mejlis)의 의원수가 65명에서 125명으로 증가됨으로써 명목상 국민의 대표자 수는 증가되었음.

ㆍ 동년 12월 민주적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유일합법정당인 민주당과 정부가 승인한 비정부기구만이 후보를 낼 수 있어 일당체제는 여전히 유지

ㆍ 그러나, 동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이 주지사 임명권을 보유하고 국가안보회의(State Security Council)의 의장이 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음.

러시아와 갈등 발발에도 불구 여전히 중요한 협력 상대

ㆍ 투르크메니스탄은 연간 700억㎥의 가스를 생산하며, 니야조프 정권이 2003년 체결한 25년 장기 가스 공급계약에 따라 이중 약 500억㎥를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Gazprom의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음.

ㆍ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저가 구입 후 우크라이나에는 고가판매를 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한편, 중앙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고 있음.

ㆍ 2009년 4월 가스관 사고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여 대 러시아 가스공급이 중단되었으나, 동년 9월 13일 가스공급 재개에 합의함.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자국 가스 재수출을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고정가격 기반 가스공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향후 분쟁 재발 가능성이 남아있음.

ㆍ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 입장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최대 가스수출 대상국이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자국 가스전개발에는 고비용이 소요되어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공급이 에너지 정책에 있어 중요하므로 현재 갈등에도 불구 양국의 경제협력관계는 유지 될 것으로 전망됨.

○ 중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증진

ㆍ 2006. 4월 중국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2007. 8월 중국 CNPC 주도의 총 7,000km의 가스 파이프라인(Central Asia Gas Pipeline) 건설에 착수하였고, 2009년 12월 가동될 것으로 전망됨.

중국에 대한 가스 공급 물량을 연간 300억㎥에서 400억㎥로 확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동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중국은 러시아에 이은 두 번째 가스 수입국이 될 것임(러시아에는 약 500억㎥ 수출).

ㆍ 2007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2008년 후진타오주석의답방을 통해 양국은 에너지 부문 이외에 섬유, 은행업, 통신 등 다방면에 걸친 협력을 약속하는 등 최근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증진되고 있음.

○ 가스 수출 다변화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방과의 협력 확대

ㆍ 최근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에 국한된 가스 수출선 다변화하기 위해 서방과의 협력의사를 표방함.


사회 및 소요사태


○ 장기 독재정권 지속에도 불구, 저항세력이 많지 않아 소요사태 발생가능성은 낮음

ㆍ 전임 니야조프 대통령의 독재정권이 15년 동안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이 많지 않고 국민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통령이 급격한 정치적 변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사회불안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임.



국제 신인도 및 대외지급능력


주요평가기관 신용등급


○ 주요기관별 신용도 평가순위

ㆍ 2008. 1월 OECD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높은 자원개발 가능성 및 신정부의 대외관계 개선 노력 등을 바탕으로 국가 신용등급을 7등급에서 6등급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바 있음.


평가기관

최근 평가 등급

종전 평가 등급

수출입은행

D2(2009.12)

D2(2008.11)

OECD

6등급(2008.1)

7등급(2007.1)

S&P

B2(2006.5)


*
Euromoney: 155/186('09. 3) → 155/186('09. 9)

* I.I: 129/177('09. 3) → 120/178('09. 9)


외채상환실적


○ 가스 수출에 따른 외환보유액 증가

ㆍ 에너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외환보유액은 2005년 45억 달러에서 2008년 167억 달러로 크게 증가하였음. 2009년 러시아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으로 수출이 감소하여 꾸준히 증가하던 외환보유액이 94억 달러 수준으로 감것으로 예상되나, 2010년부터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개시될 것으로예상되어 외환보유액 증가세는 회복될 것으로 전망됨.

○ 총 외채잔액은 낮은 수준

ㆍ 투르크메니스탄의 투기 등급(B2, Moody's)로 분류되고, S&P 및 Fitch사에서는 등급평가 대상국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등 국제자본시장에서 소외되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외채가 소규모인데 반해 동국의 외환보유액 및 가스 수출 전망이 긍정적임을 감안할 때, 외채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임.

2009년 말 총 외채잔액은 6억 6천만 달러(GDP 대비 3.4%)로 예상



사회


언어


○ 투르크멘어는 투르크-오구즈어 계통으로써 우즈벡어와 카작어보다 터어키어와 아제리어에 가까움. 투르크멘의 부족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음. 투르크멘의 표기문자는 18세기 들어 도입되어 주로 소수의 존경받는 시인들에 의해 사용되어옴. 투르크멘의 국립대학과 아쉬가바드의 주요 도로중 하나의 이름도 바로 이러한 유명한 시인중의 하나인 Magtumguly(막둠굴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짐. 시인들은 페르시아의 아랍 문자를 사용해 왔으나 1917년 혁명이후에는 라틴문자의 표기법이 개발됨. 이것이 1939년 소비에트 문화를 러시아화하기 위한 스탈린의 노력의 일환으로 시릴릭 표기법으로 바뀜. 1994년에 다시 라틴표기법이 재기되어 초등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시하다가, 2001년부터 공식적인 모든 정부문서 및 신문 등 공적게제에는 라틴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제정하여 실시되고 있음.

○ 구소련의 다른 민족과는 달리 투르크멘 종족들은 러시아화 운동에 저항을 해왔고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투르크멘인들은 투르크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러시아어를 말하지 않음. 그러나 지역 상권과 대부분의 공식 사업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투르크멘어보다 러시아어가 좀더 공식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편임. 특히 아쉬가바드와 같은 도시에서는 대화 중에 투르크멘어에서 러시아어로 자유롭게 전환하는 사람이 많음.


복장


○ 서구사람들에 비해 투르크멘인은 항상 깔끔하게 복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 남자들은 보통 넥타이와 깨끗한 구두에 정장을 입고 여자들은 아주 화려한 색상의 긴 드레스를 입음. 이것은 부를 과시하는 의미에서라기보다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임.

○ 공공장소에서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김. 하지만 집안에서는 손님이 있건 없건 자유로운 복장을 선호. 이에 반해 이 지역에 같이 사는 러시아인들, 특히 여성들은 전혀 다른 의복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긴치마와 긴소매, 머리에는 스카프를 둘러쓴 투르크멘여인과 짧은 미니스커트에 티셔츠를 입은 젊은 러시아 여성들의 대조되는 의복형태를 볼 수 있음.


교육


○ 투르크메니스탄의 초중등 교육체제는 구 러시아 때의 11년, 또는 12년의 의무교육제도를 폐지, 9년으로 축소 확정.

‘멕뎁’이라고 부르는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4년제 종합대학(우니버시테트) 이나 단과대학(인스티투트)을 진학할 수 있는데, 2년 동안의 정부관계의 인턴쉽 취업, 군대복무, 또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활동(예를 들면, 예술, 체육 등)들을 하여 직장의 추천을 취득한 후에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음. 대학교육도 정부가 학비를 전담하는 무료교육으로 되어 있으나, 입학을 하려면 엄청난 수준의 입학뇌물 또는 출신배경에 따른 입학청탁이 없으면 거의 입학이 불가능할 정도. 동시에 대학교육의 정원을 제한하고 교육계에 일하는 교수 및 교직원들의 일자리를 축소시킴으로써 고등교육을 제한하고 있음. 또한 투르크멘 내에서는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의 국내활동을 저지하려 함. 이러한 교육체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민교육’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음. 가능한 국민들의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하고, 외부와의 정보, 지식을 교환하고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국민들을 무식하게 만들고 바보가 되게 함으로써, 비판의식을 통제하여 철저하게 자신독재체제의 위치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임. 동시에 투르크멘 내의 국립대학의 종교학과를 제외한 어떠한 학교체제 내에서도 쿠란(이슬람의 성전)교육을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원리주의 이슬람들이 쿠란교육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도 금지하고 있음. 4년제인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외에도 2년제의 직업훈련 중심적 콜리지(College)제도가 있음. 따라서 부실한 교육내용과 짧은 교육과정에 만족치 않는 고소득권력층의 자제들은 많은 사교육에 의지함.


종교


○ 투르크메니스탄의 종교인구 분포는 이슬람교(수니파) 89%, 동방정교 9%, 기타 2%임.

○ 이슬람 정교 : 순니 이슬람의 ‘하나피’ 파에 속한 투르크멘 종족은 과거 70년간의 소련 공산 치하에서 이슬람 성전을 비롯한 다른 예배장소들은 폐쇄를 당했고 유물론적 세계관이 모든 교육과 사상을 지배. 그러나 1991년 독립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이슬람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이슬람교는 번성하기 시작함. 이슬람 성전인 메짓(모스크)이 다시 개방되고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알리는 애잔(이슬람 물라가 마이크를 대고 크게 코란을 읊으므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법)이 재개되는 한편, 대학에서는 이슬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종교학과가 신설. 여러 개의 이슬람 성전이 새롭게 건축됨. 하지만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이슬람은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신앙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노력으로 보여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함. 최근 터키의 문화와 이슬람교육에 초점을 둔 터키 학교들이 생겨났고 이란정부도 아쉬하바드에 대규모 이란 문화관을 설립. 이렇듯 증가하는 투르크메니스탄 내에서의 터키와 이란의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보통 시민들도 그들의 동기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음.

○ 민속 이슬람 : 소련 치하의 종교성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투르크멘인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자하여 민속 이슬람을 통한 종교활동을 이어옴. 이 민속이슬람은 원래 투르크멘이 갖고 있었던 샤마니즘적인 요소와 이슬람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종교적 형태이며 독립이후 이러한 활동은 상당히 널리 퍼지게 됨.

○ 악한 눈 : ‘악한 눈(괴즈데그메)’을 믿는 것은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투르크멘인들에게는 매우 흔한일임. 예를 들어 신생아를 보고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조차 아기에게 ‘악한 눈’을 심어놓는다고 생각하여 용납되지 않음. 왜냐하면 아기를 칭찬할 때 말하는 사람이 질투심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아기를 저주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임. 이러한 저주를 끊기 위해 투르크멘 사람들은 공식처럼 정해진 말을 세 번 반복하기도하고 처음부터 ‘악한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코란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종이에 써서 삼각주머니에 꿰메어 휴대하는 등 여러 가지 처방이 있음. “악한 눈이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라는 의미의 “퉤이레미”라는 말이 ’잘했어‘라는 표현으로 흔히 쓰임.

○ 낙타 털 : ‘악한 눈’을 비롯하여 다른 않좋은 일을 예방하는 대책으로 흔히 낙타털을 많이 사용함. 대부분의 차에는 운전대나 거울에 낙타털이 매어져 있는데 이것이 위헙으로부터 차를 보호한다고 믿고 있음. 또한 여자들은 낙타털로 만든 팔찌를 만들어 끼고 다니기도 함. 또한 낙타털은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만약 임신한 부인이 예정일을 넘기면 아이를 낳기 위해 낙타 밑으로 지나가야 한다고 믿음.

○ 후다이 욜리(신의길): 투르크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현으로 ‘후다이 욜리’ 즉 ‘신의 길’ 이라고도 말함. 예를 들어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의 기일이나, 아들이 군대에서 무사히 돌아오거나 기타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볶음밥(파로브)을 만들어 이웃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종종 이슬람 선생인 뮐라를 초청하여 코란을 읽히고 기도함. 사소한 경사가 났을 때는 빵이나 후식을 넉넉히 준비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 함. 이렇게 함으로써 알라가 그 가정에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라고 믿음.

○ 길일 : 투르크멘 사람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을 길일로 여김. 긴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 혹은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 이러한 길일에 택함. 수요일은 투르크멘 고어로 ‘챠샨베’ 즉 ‘4’라고 하는데 그 날에는 사방이 모두 열려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고 믿음. 금요일은 무슬림의 성스러운 날이므로 길일로 여김.






[투르크메니스탄 전도]


 

개관


 국 명 :
Turkmenistan(투르크메니스탄)

 수 도 : Ashgabat(아쉬하바드, 83만명)

○ 주요도시 : 아쉬가바드, 발칸아바드, 다쉬오우즈, 투르크멘아바드, 마리

○ 면 적 : 488.1천 km2 (한반도-221,000km2-의 약 2배)

○ 위 치 : 중앙아시아

○ 인 구 : 4.9백만명(‘10)

○ 민 족 : 투르크멘인 85%, 우즈벡인 5%, 러시아인 4%, 기타 6%

○ 종 교 : 이슬람교(수니파89%), 동방정교 (9%), 기타(2%)

○ 언 어 : 투르크메니스탄어(공식언어), 러시아어(통용어)

○ 정부형태 : 대통령중심제(임기 5년)

○ 국가원수 : Gurbanguly Berdymukhamedov 대통령

○ 의 회 : 단원제(125석)

주요정당 : 투르크민주당

○ 독 립 일 : 1991. 10. 27 (구소연방)

○ 화폐단위 : 마나트(Manat)(1$=2,843Manat)

○ 산업구조 : 서비스업 56.0%, 제조업 33.9%, 농업 10.0%(‘09)

○ 주요수출품 : 가스, 석유, 연화류, 직물(‘08)

○ 주요수입품 : 기계·설비, 식료품, 화학제품

○ 주요부존자원 : 석유, 천연가스, 유황, 소금

○ 경제적 강점 : 풍부한 천연자원의 높은 개발잠재력

○ 경제약점 : 국가주도의 통제경제체제, 에너지 산업에 절대적 의존

○ GDP : $ 77억 (2009)

○ 1인당 GDP : $ 1,604 (2009)

○ 표 준 시 : UTC+5

○ 기 후 : 투르크메니스탄은 대륙성 건조기후가 뚜렷,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극심. 습도가 낮고 증발이 높으며 강수량이 적음. 여름은 건조, 겨울은 대체적으로 온화하고 때때로 약간의 눈이 내림. 짧은 봄은 습윤하며 가을은 건조함. 식물생육일수는 200∼270일 정도.



일반개황


○ 구소련 당시 세계 10대 면화생산국에 들만큼 면화, 밀 등 농업부문이 발달되어 있었으나, 설비투자 부진으로 농업생산이 크게 위축되었음. 러시아에 이은 구소련지역 2위의 천연가스 보유국(확인매장량 7.49조㎥)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최근 동국 에너지 부문에 대한 관심이 높은 EU, 중국, 러시아 등의 경쟁을 부추겨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음.

○ 1991년 구소련 독립 이후에도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철저한 제하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릴 만큼 폐쇄적인 철권통치가 유지되었으며,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구소련 국가로 남아있음.

○ 2006년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2007. 2월 취임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지난 정권의 정책기조를 대부분 계승함에 따라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 체제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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