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alaxy7, during short trip to 청주.

 

 설악산 울산바위까지의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아직 채 농익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또 풋풋한 단풍을 눈에 담았다.

 

왕복 네다섯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해가 뉘엿해질 무렵, 설악산 초입쯔음에서 문득 돌아본 설악산의 석양. 노란빛과 파란빛이

 

적당히 버무려진 신비로운 하늘 아래에는 금빛을 잔뜩 품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에만 해도 사람이 바글거리던 좌불 동상 앞에는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하산객들만이 띄엄띄엄.

 

 

셔터속도를 달리 해서 찍은 사진은 좀더 밝기는 한데, 금빛이 덜 표현된 듯.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만서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간다는 싱가포르의 마천루 풍경, 그 한쪽 어귀를 책임지고 있는 싱가포르 플라이어.

 

특히나 야경에는 빼놓을 수 없는 그 크고 아름다운 동그라미, 물경 지상 165미터에 이르러 근 42층 건물 높이에 육박한다는

 

그 대관람차에 탑승, 어둠이 내려앉는 마법의 시간대를 노렸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3월 현재 싱가포르의 저녁은 8시에야 시작.

 

 

총 28개의 커다란 캡슐로 구성되어 28분에 한바퀴를 완전히 돌게 되는 싱가포르 플라이어. 캡슐은 각기 특색이 있어

 

모엣샹동 와인을 제공한다거나 애프터눈티를 제공한다거나, 심지어 결혼식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탄 건 일반 캡슐,

 

중국과 일본과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과 여덟 좌석을 넉넉히 채웠다.

 

탑승시에도 절대 멈추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차분하게 돌아가는 캡슐.

 

슬슬 고도가 올라가기 시작, 플라이어의 앞마당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했다.

 

F1 트랙으로 쓰이는 플라이어 옆의 도로들이 보이고는, 바다 너머 가든 바이 더 베이의 실루엣이 움찔움찔.

 

 

계속된 간척사업으로 지금의 사이즈를 이루어낸 싱가포르, 더이상의 간척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이제는 재개발이란다.

 

도시 곳곳에서 낡고 낮은 건물들이 부서지고 하늘을 찌르는 건물들이 솟아나는 중이다. 마치 장마철 우산이끼들처럼.

 

가든 바이 더 베이. 이 이름을 그대로 쓰긴 하지만, 고유명사라기엔 뭣할 정도로 네이밍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만 옆에 있는 정원'이라, 이건 거의 위치에 대한 설명일 뿐 저 아름다운 야외정원과 실내 식물원을 묘사하지 않는다.

 

사실 플라이어 위에서 저 야외정원의 야경을 굽어보고 싶었는데, 싱가포르의 길고 긴 해를 원망할 뿐.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세 동으로 이루어진 호텔 건물 위에 척하니 수영장을 얹어 놓은 그 희대의 건축학적 상상력이라니.

 

그 너머 크레인이 촘촘하게 늘어선 곳은 수년 내로 또다른 빌딩숲을 세워올릴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리안. 에스플러네이드라는 길고 파란만장해보이는 (왠지 환타지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이름 대신에 쉽고 간편한 이름을

 

가진 콘서트홀이자 전시공간이 두 덩이 웅크리고 있는 너머, 희뿌옇게 슬금슬금 석양을 준비중인 하늘을 배경으로 조밀한 빌딩들.

 

그 와중에 왼쪽 귀퉁이에서 물을 토해내고 있는 멀라이언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바야흐로 캡슐의 높이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즈음, 살짝 앞엣 캡슐의 유리창 둘레에 조명이 켜졌다. 아쉽게나마 노란 햇살도 나리는 참.

 

 

클래식한 풍채의 넓데데한 플래턴 호텔, 과거에는 저 건물에서부터 우편배달선이 왕래했다는 우정청이었다던가.

 

그리고 마리나 베이 샌즈에 피어난 연꽃모양 박물관, 연꽃..이 맞겠지? 동남아에 지천인 두툼하고 아름다운 다른 꽃일지도 모르겠다.

 

캡슐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기 직전, DNA의 나선구조를 따서 만들었다는 헬릭스 브리지를 바닥에 깔고,

 

그처럼 중국과 말레이시아와 일본과 서양의 문화가 온통 비틀린 채 뒤섞인 싱가포르의 건물들이 눈앞에 우뚝.

 

 

 

 

 

보문사에서 굳이 마애관음좌상 이야기를 따로 빼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문사라는 절 하나를 돌아보는 것만큼

마애관음좌상을 보러가는 길과 마애관음좌상 자체의 무게가 묵직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렇게 보문사 극락보전을 돌아 마애관음좌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채 밟기도 전부터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이전 포스팅 :  석실 안에 모셔진 천오백년 전 부처님의 모습, 석모도 보문사에서.)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싶은데 벌써부터 계단 양쪽에 버티고 선 석등에는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쌍쌍이 손을 잡고, 혹은 아이의 손까지 잡고 사이좋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만 글쎄, 내가 본 바로는

계단 중간쯤부터는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며 대개 손을 놓고 제한몸 건사하기에도 힘겨워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약 10분 소요'된다는 이 계단은 경사가 꽤나 가파르기도 하고, 애초 절에서부터 마애관음좌상까지의 거리도

10분이 걸린다기에는 조금 무리다 싶은 1킬로미터 가량이라고 하니.

계단을 오르는데 눈에 띈 현수막 하나. 소원을 담는 곳이라나. 소원을 적어서는 유리병 속에 담아 100일을 채우고 나면

스님께서 축원을 올려주시고 태워서 날려보낸다는 건데, 딱히 불자는 아니지만 이런 걸 보면 왠지 한번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소원이라고 하면, 음..아무래도 로또나 연금복권 당첨 같은 것 밖에 떠오르질 않는 걸 보면 딱히

부처님에게까지 들고 가서 부탁할 일은 아직 없는 거 같다.

계단을 오르면서 계속 보문사 쪽을 돌아보았다. 아직 기운이 팔팔하던 계단 초입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풍진 숲속에

포옥 감싸여 있는 절의 전체적인 모습이 계단을 좀 오르면서 점점 각도를 달리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거다.

이런 식으로 보는 각도와 방향을 달리 해서 보문사를 굽어 볼 수 있다는 건 마애관음좌상을 친견하러 가는 계단 위에서

얻는 예기치 않은 또다른 즐거움.


오르는 길이 어찌나 가파른지, 계단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어 두었어도 어느 순간 아래를 내려보면 살짝 아찔하다

싶을 정도의 각도로 꺽어지고 있었다. 지그재그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이 저 아래 어디쯤에선가 앙상한 나무사이로

삼켜져 버려서 이젠 더이상 보문사의 기와지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노랗고 따뜻해 뵈는 등불을 품고 있던 석등이 중간중간 있어서, 저기까지만 가서 쉬면 되겠다, 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석등에서 석등을 마음으로 짚고 넘어가는데 점점 하늘이 어두워진다. 해가 워낙 짧고

금방 사그라져버리는 계절, 겨울이 오고 있는 거다. 마음이 급해지는데 앞에 왠 반짝거리는 유리병들이 보였다.


아까 계단 입구에서 봤던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유리병들이 여기다 모여있었다. 색색의 종이에 꾹꾹 눌러 씌인 사람들의

소원이 반짝거리는 말간 유리병 안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용 대여섯마리가 서로의 몸을 비비 꼬며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사이에도, 용의 사슴뿔 위에도

사람들은 겁도 없이 유리병을 걸어두었다. 저렇게 하면 용을 타고서 조금이라도 빨리 부처님께 가닿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마애관음좌상 도착. 툭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로 돌을 돋을새김한 부처님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겠다. 여기 예전에 왔을 때는 문득 비가 나려서, 저 눈썹바위 아래에 바싹 붙어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내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 고마웠어요 부처님, 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보문사는 600년경에 창건된 천년사찰이라 하지만 이 마애석불좌상은 아직 백년도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가 9미터가 넘고 너비가 3미터가 넘는 이 커다란 부처상도 그러고 보면 내가 그날 그랬듯

이 눈썹바위 덕분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다.

툭 튀어나온 바위가 지붕처럼 부처님을 가호해주고 있는 셈, 그리고 그 부처님은 이곳에서 저 아래 보문사, 그 아래 석모도,

그리고 강화도 너머 멀리까지 굽어살피며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가호해 주고 있는 거랄까. 여기서

다시 내려다본 지그재그 계단은 생각보다 별로 안 길어 보이는 게 아쉽다. 실제로는 숨이 턱까지 차서야 올라왔는데.

신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참 연약해 보인다지만, 특히나 저렇게 단단한 바위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조그마해 보인다. 그저 눈에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마치 빙하처럼 저아래로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낙가산 전체의 기운과 무게감이 부처님 조각에 실려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새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부처님 앞에 모셔진 촛불들이 더욱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안내판 참조) :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불상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정병을 든 관음보살이 연꽃받침 위에 앉아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보문사는 관음보살의 성지로서 중요시하던 곳이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딱히 기별도 없이 해가 넘어가버릴 생각인가 보았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면 서해바다로

곤두박질치는 붉은 해의 모습과 노을로 타오르는 하늘과 바다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나는 올 때마다

날씨가 이렇게 흐린지 모르겠다. 이런 것도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면 인연이려나, 시시각각 어둠이 내려앉고 계단을

지키던 석등의 노랑 불빛이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보문사를 넘어 석모도의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향불이 쉼없이 살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각기의 소원을 빌고 부처에 의탁하며, 빨강노랑초록색 향에 불을 쟁여

부처님께 바치고 있었다. 거칠 것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라, 바람이 한번 불어닥칠 때마다 바싹 빨아당기는

담배 끝처럼 향 끝에서 붉은 불꽃이 일렁이며 거침없이 타들어갔다. 향로에 무질서하게 꽂혀있는 색색의 향들이

만들어낸 모양이 삐죽삐죽 제멋대로의 고슴도치 같기도 하고.

이곳 보문사 마애관음좌상은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세속의 차원에서 보자면

보문사와 더불어 인천이 품고 있는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일 것이고, 부처님을 모시는 차원에서 보자면 이렇게 석등의

갓 위에까지 도톨도톨하게 돌멩이를 올려둘 만큼 절절하고 영험한 관음보살의 도량인 게다. 그리고 내게는, 아직

연이 닿지 않아 보지 못한 낙조 풍경이 숙제처럼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제긴 숙제지만 유쾌하게 받아들고

기꺼이 하고 싶은 그런 류의 숙제 말이다.




* 인천관광공사에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협재 해수욕장, 그야말로 제주도 관광의 성수기이던 8월 언젠가쯤이어서 그랬는지 해변가엔 온통 쓰레기가

검정 현무암돌바닥을 가리울 지경이었지만 나름의 운치는 여전했다. 홀로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반백 아저씨의

살짝 굽은 뒷 등덜미가 바닷바람에 조금 도닥여지는 거 같기도 하고.

해수욕장 앞으로 이어진 마을은 온통 구멍숭숭한 현무암 돌담으로 집집이 구획되어 있었는데, 그 엉성한 돌담에

하나 더 얹어진 돌멩이인 양 엉성하게 끼어 있는 새파랑 우편함이 웃겨서 사진 한장.

바다에 연한 시멘트 방조제. 하루방을 저런 식으로 표현해 놓으니까 무슨 모아이의 석상 같기도 하고, 표정도

뭔가 굉장히 엄하거나 화난 듯 하기도 한데다가 서로 등 돌리고 있으니 영락없이 싸우고 삐친 모습이다.



바다 색깔이 진짜로 이뻤는데, 사진엔 채 반의 반도 담지 못한 거 같다. 동남아의 유수한 신혼여행지 앞바다라며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여기에 펼쳐져 있었는데.


먼 바다에서 둘둘이 짝지어선 서로 마주보며 데이트 중인 어선들.

그리고 현무암질 용암이 질질 흐르다간 바다를 만나 쩍쩍 갈라지며 급격히 식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해변가.


해녀상. 튜브를 한팔에 꿰고 있는 다소 현대적인 매무새의 해녀도 있었고, 저고리 고름을 곱게 맨 채 등짐을 지고

있는 해녀도 있었고. 그리고 그녀들 너머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내려앉기 전에 바닷물에 발톱부터 담군 타이밍, 사람들이 슬슬 바다 밖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거대 버거. 제주도에 가면 꼭 한번 먹어봐야지 했던, 바로 그 '빅허브버거'다. 접시 위에

담대하게 올라앉은 그 버거의 사이즈를 체감할 수 있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하다가, 손닦으라고

나온 '건강물티슈'를 바로 옆에 붙여두고 찍었다.

커플버거도 있다는데, 별로 가격차이도 나지 않는 걸로 보아 빅버거로 쏠리게 하려는 속셈인 듯.

처음 생겼을 때에 비해 가격이 점점 올랐다는 불만의 글도 어디선가 봤는데, 사실 싼 건 아니다.

갈린 허브가 섞여있는 두툼하고 고소한 빵 사이에, 조금 얇다싶은 패티와 사과니 양파니 양배추니

패티의 아쉬움을 달래고 메인 목을 풀어주는 아삭아삭한 과일과 채소가 많이 들어있어서 조금 과하게

먹어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뭐, 저 거대한 빅허브버거도 버거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전의 금능 해수욕장과 그너머 바다가

그대로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가 참 맘에 들었다. 마침 식사시간을 좀 빗겨난 타이밍이라 아무도 없던

가게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며 창밖도 내다보고 가게 안도 구경하고.

벽면에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는 자그마한 화분이라거나 그림들이 꽤나 귀여운 이미지를 연출중.

따뜻한 노랑색의 조명도 맘에 들고.

그리고 화장실 표지도 발랄하다. 글자체도 그렇지만 변기에 앉아 행복해하는 꼬맹이 표정이 참.

 

해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바다로 점차 잠기며 한없이 길어지는 그림자가 가게 벽면에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무늬를 남겼다. 미련이 가득한듯 벽면을 야금야금 긁어내리는 뒤늦은 햇살이 따가웠다.

피자처럼 여덟조각으로 커팅되어서 나온 버거는 어느새 약간의 빵부스러기와 양배추만 남기고

전부 사라져버린 상태. 옷을 탁탁 털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자리를 나섰다.

태양이 녹아내리는 바다에 뛰어들어서는 햇살을 산산이 조각내며 노니는 사람들.






삼양검은모래 해수욕장의 낙조.  모래빛깔이 검은 탓인지 더욱 검게만 보이는 해변가, 그리고 중부지방엔,

특히 서울 강남엔 엄청난 폭우가 내렸던 날이라 그런지 갈기갈기 찢긴 구름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한 세시간 전쯤의 삼양검은모래해수욕장 앞바다. 햇볕이 뜨끈뜨끈 내리쏘이던 제주 북부, 제주시에서

그리 멀지않은 해수욕장인데도 사람이 얼마 없었다. 이곳의 검은모래가 신경통이나 피부병에 특효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참이었다.

이미 대여섯시쯤 되어 사람들이 한풀 꺾였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이렇게 사람을 묻고 사람이 묻혔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으니. 어찌 보면 씨앗들을 뿌리기 전의 밭고랑같기도 하다.

여긴 또 다르다. 일일 만오천원이던가, 쯤의 금액을 내고 입장할 수 있는 모래찜질 전용 공간. 삽과 기타

전문도구로 무장한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사람을 묻었다가 파냈다가 그러나보다. 밭고랑이라기보다는

무슨 대규모 플랜트농장같은 느낌. 거대한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왔다갔다 할 거 같은.

여하간, 정오의 햇살이 전달해준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모래는 생각보다 뜨끈거렸다. 어느 정도

깊이 파낸 모래도 그새 땅속 깊이 머금어진 햇빛의 힘으로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모래가

어두운 검정빛을 띄고 있어서 더욱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만 남기고 온통 파묻혀버린 사진.

커다란 봉분이 따끈하게 섰고, 그 속에서 옴쭉달싹 못한 채 순식간에 땀이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한 삼십분쯤 모래무덤 속에 짓눌려 있었던가, 생각보다 몸 위에 덮인 모래의 무게는 상당해서 좀처럼 쉽게

빠져나올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땀이 뻘뻘 흐르기에 이르렀고 버둥거리며 모래더미를 파헤치고선

좀비처럼 기어나와, 바다로 달려들었다. 누워있을 땐 몰랐는데 이미 많이 기울어버린 해.

그리고 잠시 후에 내 옆에서 함께 찜질하던 아빠가 일어나서 바다로. 정말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해안이 제주시 근처에 있단 걸 여태 몰랐다. 모래찜질하기에 딱 좋은 검고 고운 모래가 쪼르륵

깔려있는 아담한 해안, 햇빛에 뜨끈뜨끈 달궈진 모래인데다가, 눈앞의 바닷물도 깨끗한 편이고 경사도 완만해

놀기에도 좋은 곳인 듯 하다. 아빠가 몸에 곱게 코팅된 모래를 꼼꼼히 씻는 모습을 엄마가 바라보고 있다.

왠지 선녀와 나뭇꾼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전복한 이미지같기도 하고. 당당하게 남자를 훔쳐보는 여자랄까.

해안의 야경 사진 몇 장 더. 멀찍이 깜빡이는 노랑 불빛은 동해에서 남하한 오징어를 따라 제주도까지 내려온

오징어잡이배들이고, 하늘에서 반짝이는 빨간 불빛은 어디론가 우르르 일렬로 날아가던 헬리콥터들.

햇살의 잔영이 남아있는 바다쪽 말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새까맣다. 해안가에는 DNA 나선형 구조의

LED조명이 불을 밝혔고, 한결 더위가 가신 해변가에는 치킨이니 맥주를 들고 나와 삼삼오오 모여 마시는

사람들이 다시 출현했다.

이번엔 좀 늦게 해수욕장에 도착한 감이 있었던 데다가 수영복이고 세면도구고 전혀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쳐들어간 거여서, 다음에는 모래찜질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좀더 뜨끈할 때 가는 것도 괜찮겠다.






조그만 선착장 위에 부려진 채 커다란 동물처럼 웅크리고 있던 짐꾸러미와,

어딘가에 그 끝이 묶이지도 않은 채 하염없이 감겨있을 뿐인 투박한 밧줄과,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움키고 있었을 구명튜브의 뻥 뚫린 가슴 속으로,

병풍처럼 앞바다를 둘러친 섬들의 어깨를 훌쩍 짚고 넘은 햇살이 달겨들었다.



@ 외도 선착장.

하늘 끄트머리에서부터 슬몃 붉은 빛이 감겨 올라오는 시간, 손바닥만한 경주시 한 복판의

노서, 노동고분군 옆에 자리를 잡았다. 노랗게 변색한 잔디가 이쁘게도 입혀져서는, 경주시를

감싸고 있는 산들처럼 완만하고 복스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왕족들의 안식처는, 천오백여년

시간을 시위하듯 커다란 나무들을 키워 올리고 있었다.

누가 감히 왕들의 안식처에 올라가 저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손봐줬을 리는 없고, 그저

자연스레 바람이 옮겨다준 씨앗을 이 자그마한 언덕이 품고서 물을 주고 양분을 줬을 거다.

그렇게 싹이 트고 키가 자라 저렇게 커다란 나무가 되어 더욱 단단히 고분의 가파른 옆구리를

움켜쥐게 되었겠지.

빨갛게 지던 해는 저 너머 나무 뒤로 가뭇없이 숨어버렸고, 고분은 온통 깜깜해져서

이제 그 곱던 갈빛 잔디의 부드러운 질감도 지워져버렸다. 한결 단단해지고 완강해진 느낌.

고분의 주인은 이제 완전히 분해되어 다시금 나무와 흙으로 변신했겠지만, 신라를 지배하고

백성들의 왕으로 군림하던 그 '의지'만은 남아서 태양을 응시하는 듯 하다.

노서, 노동 고분군은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시에 내리면 어찌됐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유적지인 거다. 그만큼 시내 복판에 있는 셈이지만, 막상 그 주변은 적당한 음식점이나 카페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기어이 발견해낸 멋진 까페.

토토로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창가자리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길 건너 봉긋하게

올라선 고분과 주위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유리창이 통유리가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그렇게 스펙타클하고 거대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왕복 2차선인 도로 너머 야트막하고 둥실한 고분 두어기를

조용히 바라보는 거니까. 고분의 실루엣이 저 너머 산들의 실루엣과 겹쳐보이는 풍경.


이 까페에서만 한두시간 있었던 거 같다.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카메라를 대신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찍어대느라 급 방전된 아이폰을 충전하고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까페도 구경하고 다이어리도 끄적대고. 담에 경주를 들르면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은 까페.

그리고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신라 옛 왕들의 석양바라기 풍경.





구봉도에서 낙조를 보기로 했다지만 사실 구봉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나선 길이었다.

좀처럼 숨이 죽지 않아 짱짱한 햇살이 감히 바로 쳐다볼 엄두도 못 내게 하던 때, 그래서 아직은

오늘도 어제처럼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오리란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방이 훤하기만 하던 때

구봉도에 도착하고 나니 몇 마리 말들만 선한 눈을 꿈벅이며 반겨주었다.

'구봉도'는 대부도 북서쪽 끄트머리에 부리처럼 삐쭉 튀어나온 조그마한 섬의 이름이지만,

대부도가 섬과 육지 사이에 놓인 다리로 연결된 연육교인 것과 달리 아예 사이 바다를 메워

대부도의 일부가 되어 버린 섬 아닌 섬이다. 덕분에 인접한 제부도에서 하루에 몇 번 바다길이

열리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기다려 들고 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아무때고 원하는 대로

가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굳이 찾을 만한 이유는 역시 낙조. 안내자료에 따르면 '갯벌이

해를 삼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작정하고 낙조 사진을 찍어보겠다 나선 건 처음이어서

살짝 두근대는 마음으로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어느 순간 내가 내딛는

걸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해가 내려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맘이 조금 급해졌다.

바다를 바라보고 선 옹송그린 어깨의 할머니처럼 보이는 저 바위는 역시 할매바위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의 좀더 크고 남성적인 실루엣을 드러낸 바위는 할아범바위,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구봉도 선돌'이라 하여 이 곳의 유명한 낙조 관람 포인트라고.

그리고 드디어 맨눈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그 빛과 열을 잃어버린 태양이 땅위로

내려서는 순간, 움찔움찔 지표면과 가까워진다 싶더니 하필 야트막한 능선의 산언저리에

내려가 앉는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면 재밌겠다.

그런 나의 기대가 무색하게, 일단 산 너머로 저물기 시작한 해는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단순히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뭔가에 빨아들여지듯 그렇게.

꼴깍 완전히 산에 먹히기 직전에 내지르듯 뱉어낸 시뻘건 불빛, 뭔가 산 정상 부근에서

폭발한 것처럼 붉은 빛이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좀 층층이 끼어 있었다면

좀더 멋진 풍경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가을 하늘인지라 구름이 불타는 듯한

그런 풍경과 마주치긴 쉽지 않을 거다.

해가 넘어갔다고 바로 세상이 어두워질 거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늘 새롭게 깨닫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있는 사실이다. 여전히 위쪽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빛을 담아

바다의 파도 결결이 붉은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연히 온도가 떨어지고 있는 듯 했다. 금세 몸이 차갑게 식었고, 바람 역시 더욱

거칠 것 없이 불어오는 통에 재빨리 철수. 그 와중에 바닷가에 박혀 있는 그물 울타리뼈대들이

바다 너머 저쪽으로 건너가는 오솔길 같단 생각에 한 두방 더 욕심을 부렸다. 마침 사진에 함께

담긴 건 집으로 돌아가는 갈매기 한 마리.

이번에는 남쪽 해안길만 걸었지만 나중에 시간 나면 구봉도의 해안 오솔길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꽤나 괜찮을 거 같다. 요새 느닷없이 '올레길' 유행에 휘말려 여기저기에서

걷기가 광풍이라지만, 사실 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천지사방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거니까,

이름나고 유명해진 길을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걷는 거보다 이런 고즈넉하고 호젓한 길을

바닷바람 맞으며 파도소리 들으며 걷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싶다.





투르크메니스탄, 아쉬하바드의 야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이 신도시가 투르크를 외부에 보이기

위한 일종의 '쇼윈도 시티'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 저토록 불필요하게 곳곳에 촘촘이 박힌 불들이 얼마나

에너지 낭비인가 탄식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밤늦게 일을 보러 다니면서도 늘 카메라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던 거다.

도시 너머로는 온통 사막뿐인가 했더니, 어느 한쪽으로는 투박한 산맥이 등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등뼈

끄트머리에 살짝 얹힌 마지막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증거하고 있었다.

호텔 앞에서, 어물쩍 해가 넘어가려는 무렵부터 시작인 거다. 어느 순간 팟 소리를 내며 켜졌을 법한 가로등들과

그 너머 띄엄띄엄 세워진 거인같은 건물들이 보랏빛 황혼이 무색하게 빛을 밝혔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도시의 가로등들이 세워진 간격은 한국의 서울보다 두배쯤은 촘촘한 거 같다.

이맘때, 빛과 어둠의 투쟁이 막바지에 치달아 태양의 잔광이 마지막 숨을 깔딱거리는 즈음의 분위기란 어디고

참 싱숭생숭하다. 퍼렁빛의 하늘, 왠지 크게 술렁거리는 듯한 대기, 그리고 갈피를 못잡는 사람 마음.

어둠의 완승, 빛의 세상을 완전히 지구 반대편으로 몰아내고 나서 자축하며 잔뜩 꼽아둔 노랑색 촛불들.

여기도 중동 지역의 돈많은 국가들처럼 아스팔트가 다르다. 빛이 한없이 미끄러져 내리며 번쩍번쩍하는, 그런.

중동 지역은 비도 많이 오지 않고 오일머니랑 바꾼 최고급 스포츠카들이 잘 달리기 위해서 F1같은 레이싱트랙에

발라지는 특별한 아스팔트를 썼다고 했었다. 우리나라의 여느 아스팔트보다 훨씬 조밀하고 맨들맨들해서

승차감도 좋고 타이어도 찰싹 달라붙지만, 비가 오면 완전 잘 미끄러진다는 그런 특성의 아스팔트란 거다.

여기도 그런 건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비슷하게 건조한 기후인데다가 오일머니, 가스머니 많은 나라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이제 그냥 조용히 사진들 보여주기. 야경에 딱히 멘트라고 달 것도 많지 않은 거다.

가로등이 촘촘한 것도 그렇지만, 하나에 네다섯개씩 휘영청한 전구가 들어있는 것도 사람 할 말 잃게 만든다.

저 가로등들은 차들이 안전하게 다니라고, 행인들이 안전하게 다니라고 만든 게 아닌 건 분명한 거다.




청계천 광장의 재림이랄까. 색색으로 변하는 분수들은 밤이나 낮이나 꺼질 줄 모르고 그 구간 역시 청계천의

지극히 일부만 포장해둔 쪼잔한 사이즈와는 비교되지 않는단 점에서 오히려 여기가 한 수 위인 거 같기도 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배하는 과거 공산정권의 잔재, 냉막한 얼굴과 건조한 분위기에다가 예측 불가능하고 느린

일처리 같은 것들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야경이 참 이뻤다고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사진으로라도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찾고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사람의 마음이란 것도 싱숭생숭 어디론가 저물어간다.

건물들이 즐비하니 포위망을 좁혀오는 명동의 좁다란 샛길을 따라 흘러가는 사람들.

덩달아 붕 떠버린 마음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 명동, 어느 건물 5층의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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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빛 대리석으로 지어진 카루젤 개선문, 늦은 오후에 기울어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과 루브르 박물관을

오가는 사람들로 그 앞의 잔디밭은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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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하늘이 찌뿌둥둥하다는 이야기를 넘 많이 들었지만, 요새 한국날씨에 비기자면 저 하늘이 부러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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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의 녹색 '포장마차'들. 집 모양으로 빈틈없이 정돈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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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당신들을 찍으려던 건 아닌데. 더헙, 남자 손 어디 가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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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이엿뉘이엿뉘엿뉘엿녓녓. 순식간에 황금빛 석양 너머로 숨어버리는 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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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어둑어둑하게 찍혀나온 사람들, 그리고 노랑빛과 검정빛으로 가득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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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혹은 야경을 보러 에펠탑에 오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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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석양이 온통 잠식해버린 서쪽 하늘 말고 다른 쪽은 아직 낮의 느낌이 살아있다. 내 드림카였던 푸조307이

90년대 엑셀처럼 꼬리를 물고 달리던 파리의 차로. 더이상 드림카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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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젤 개선문을 다시금 일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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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마음이 흠뻑 담겼을 빨강장미꽃 한다발을 품고 가는 시크한 파리지앵 한 분의 긴 머리결에

살짝 설레어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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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을 지키고 선 나신의 아가씨들에게로 눈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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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넘흐 늘씬하시다~♡ 다리가 무슨 고무고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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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서니 비로소 아이들이 알록달록 눈에 띄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프놈 바껭(Phnom Bakheng)에 올라 바라본 캄보디아의 석양.

처음에는 두껍두껍한 구름들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니 달려나가는 걸 보며 오늘 해가 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씩 상앗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그렇지만 태양이 뜨겁던 대낮에 보았던 파란 하늘은 한점도 남지

않은 채 안개처럼 풀어진 구름이 하늘가득 점령해 버렸다.

프놈 바껭의 사암 돌덩이 건물에 노란 햇살이 스며들어 자체뽀샵의 경지에 올랐다.

휙휙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만큼 순식간에 구름이 쓸려나가더니 노란 햇살이 본격적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커지기 시작한 빗소리, 쏴아...

하늘은 이렇게 노랗게 밝아져 가는데,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우왕좌왕이다. 열대의 스콜을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

빗방울이 들이치는 우산들 너머로 하늘만 혼자 청청하다. 발딛은 이 곳과는 다른 세상,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풍경 같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고. 몽롱해지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도 하늘 풍경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의 비구름조차 휙휙 어디론가 내달리던 상황, 저 멀리

두꺼운 구름장막이 매초 새로운 질감과 두께감을 과시하며 만화경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울렁울렁 노랗게 빛나는 햇살을 배경으로 막 결혼을 한 듯한 신혼부부의 드레스가 흠뻑 젖어버렸다.

악플처럼 까맣게 몰려오는 먹구름.

어느새 이곳도 비가 멈추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만만찮게 뿜어내는 온기가 공기가득 충만해졌다.

한순간 눈을 떼기가 아쉬운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굳이 말이 더 필요하지 않았던 장면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떨어져내리는 궤적을 좇았다. 석양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불러내어지는 센치한 감정,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어둠 속에 묻혀버린다는데야.

돌아갈 길이 멀어 한 걸음 먼저 프놈 바껭에서 내려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킨 채 저물어가는

남국의 태양에 젖은 옷을 말리고, 지친 몸을 쉬이고, 하루의 기억을 다독다독 갈무리하고 있었다.

프놈 바껭은 야트막한 산 위에 세워진 사원이다. 예전엔 일출이나 일몰을 보러 몰려들었던 여행객들이 어두운

발치를 조심하지 못해 대형 사고도 난 적이 있다고 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오면서도 끝내 눈을 떼지 못했던 하늘.





앙코르왓 인근 주택가에는 마당-마당이라고 딱히 뚜렷한 구획이 지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에서 이런 새들이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저게 칠면조인지 오골계인지, 조류의 이름이래봐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이국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마주치는 소들은 다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말라붙었을까. 일을 많이

시켜서일 수도, 혹은 더워서 힘이 드는 건지도. 먹을 게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얼추 해가 저물어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앙코르 유적군 외곽에서 씨엠립 시내의 숙소-그것도 하필

꽤나 외곽에 잡아버린-까지 자전거로 가려면 또 두시간여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보면 얼른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져서 그런지 하늘도 조금 어두워진 느낌.

길 양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촌에서 보이는 그런 무논이다. 빼곡하게 집약적으로 모를 심어놓지는 않았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아열대 기후 덕분에 일년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이 나라에서도 싱그런 녹색이다.

쁘레룹에 가서 석양을 보는 걸로 3-day Pass의 첫날은 시마이하기로 했다. 기어 따위 없는 자전거에서 쉼없이

페달을 밟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잠깐 내려붓던 스콜, 열대성 강우의 물방울이 따꼼거렸지만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그것도 잠시, 채 십분이 되지 않아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다시 후끈거리는 찜통 속으로.

쁘레룹 앞에 도착하니 이미 석양을 보러 온 듯 여행객들을 실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석양을 보기에 좋은 장소중 하나로 꼽히는 쁘레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냥, 많이 파괴된 채 중앙 성소를 감싸고 섰는 네 개의 보조 사원, 총 다섯 기의 연꽃모양 건축물이 비바람에

쓸리고 닳아빠져 있었다. 쁘레 룹은 사실 이 곳에 올라 석양을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들른 사원이었다.

위에 오르니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한 채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은 전부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에 한국말을 시끄럽게 쓰고 있었다. 왠지 그 압도적인 한국인 여행객

비율에 민망해져 버렸다. 외국인들은 석양 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나? 아님 이 장소가 석양보기에 좋다는

팁은 한국어 가이드북에만 있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단일 장소에 이렇게 특정 국가

여행자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쨌거나 그다지 건전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서늘한 바람이 하늘끝에서부터 불어왔다. 구름들도 물통 속 담궈진 붓에서 잉크가

빠져나가듯 삽시간에 쏴아, 하고 하늘 바깥으로 번져나간다.

파노라마로 어떻게 연결해 보려고 찍어 보았으나 실패. 그치만 해가 구름에 가리고 조금씩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타이밍의 하늘이란 너무 이뻐서, 계속 질릴 줄 모르고 하늘을 보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고.

약간씩이지만 다 다르다. 잠깐 사이에도 구름의 모양과 위치는 급변하고, 구름에 반사되는 햇살의 양과 강도에

따라 그 풍부한 느낌과 질감마저 달라지는 것 같다.

구름이 많아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뭉개고 있었다면 찍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버스나 뚝뚝을 대절한 게 아니라 두 다리만 믿고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넘게 밟아야 할 몸인 거다.

가뜩이나 교통법규도 안 갖춰진 동네, 가로등 따위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동네에서 어둑한 길에 자전거를 타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안녕 사자야~ 인사하고 쁘레룹을 내려섰다. 뒤에서는 여전히 한국말이 다른 나라 언어들을 위압한 채 우렁차게
들리고 있었을 만큼 한국인이 '쁘레룹 석양전망대'의 대세였다.

그래도 아쉬워서,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내려서면서도 연신 눈과 카메라는 하늘을 찾았다.

와중에 두 번째 등장하는 '나'.

급변하는 일기 상태가 고스란히 구름의 형상에 반영되는가 싶다. 저 멀리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기저기서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두터운 구름, 그리고 눈앞에서 내려앉기 시작하는 깜깜한 먹구름.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하늘, 그리고 남국의 구름이었다.




@ 캄보디아.
밤에 몇 번씩 깨어서 남은 포도 마저 먹고, 모기향도 다시 갈아줄 정도로 잠을 뒤척였다. 5시반쯤에 인나서 6시에 떠나는

투어를 준비하고 보니 일행 두 명이 슬며시 로비로 나온다. 체코인 파블로와 마르코, 처음엔 걍 몇 마디 주고받는 선에서

그치고, 이제 드디어 직접 밟을 수 있었던 사막에서의 일출을 감상하는데 집중..

사막은 생각했던만큼이나 굉장했는데 그 깨끗함이나 우아함, 그리고 순수함이랄까. 오로지 모래만으로 언덕을 이루고,

골짜기를 이루고 벌판이 되고. 게다가 그 고아하고 부드러운, 때로는 비현실적일만큼 아름답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실루엣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성에 차지 않아, 결국 신발도 벗고 언덕에서 구르기도 하고, 전력으로 달리기도 해보고,

여태 바닷가에서도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는 모래찜질을 순식간에 해치우기도 하고. 그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조금씩 사막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샌드보드. 사막에서 타는 보드는 정말 그럴 듯했다. 어찌나 재미나던지, 점점 경사가 급한 곳을 찾아서는

거침없이 내달려주고, 다시 헉헉거리며 보드를 들고 올라서는 또 순식간에 훅~ 달려주고. 휘영청 만곡한 듄을

타고 달리는데 몇 번을 타도 질리지가 않을 정도..결국 내가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던 중 쫄아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보드 발걸이를 뿌셔먹고서야 어쩔 수 없이 보드에서 내렸다.

그렇게 사막과의 첫대면을 질펀하게 해주시고, 핫스프링이랑 콜드스프링, 솔트레이크-온천, 냉천, 그리고 소금호수..

라고 바꿔 말하면 되려나-를 향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이상적인 오아시스, 뭐랄까 손바닥만한 맑은 호수 주위를

추욱추욱 늘어진 초록빛 싱그런 야자수들이 뺑글하게 둘러싸고 있고, 야자가 툭툭 떨어지는 짙은 그늘 아래엔 왠지

파라솔이나 해먹이 매어져 있을 법한 그림과는 영 달랐다. 내가 그리던 맑고 깨끗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 워낙

만화적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도 깜짝 놀랐다.


이미 넓게 펼쳐진 야자수숲 가운데쯤 엉성한 풀장 같은 게 있다. 이끼가 잔뜩 끼고 물고기도 잔뜩 사는..깊이도

무지하게 깊어 보이는 짙은 푸른색의 물. 여행을 떠나기 전 '물가를 멀리 하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되새기며 혹시 어젯밤 꿈이 더러웠던가 잠시 상기했다. 겨우 물에 들어갈 엄두를 냈던 건, 간밤에
 
꿈을 꾼 기억이 없었던 데다가, 이미 들어가서 유유히 놀고 있는 체코 친구들한테 꿀려보이기도 싫었고, 워낙

덥기도 했으며(이미 난 피부 때깔이 달라져 있었다..8월의 이집트란..), 그렇게 깊은 데를 여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는 자각도 한 몫했다.

다이빙, 발이 닿지 않는다. 허부적대다가 오아시스의 가장자리를 테두리지어둔 바위에 겨우 의지하고, 다시 다이빙.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물에 대한 공포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퍼런 물의

심연이나 문득문득 팔다리에 스치는 이끼의 매끈하고 섬뜩한 느낌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싶어서, 살짝살짝 수영해

나가는 거리를 높여가다가 결국 오아시스 횡단 성공. 힘이 빠져 중간에 퍼뜩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신났다. 파블로와 마르코가 사륜구동 차위에 올라 오아시스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고 불끈, 나도 버둥버둥 차에

기어오르긴 했으나...차마 뛸 용기는 안 생겨서 패스. 사진만 찍어달라고 하고는 쪼르르 내려와버렸다.

그렇게 두어시간 놀다가 점심먹고 걸어간 곳이 소금호수. 팬티를 콜드스프링에서 벗어놓고 말린 참이라 바지를

입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 바닥에 잔뜩 형성된 소금결정들이 가시처럼 온통 꽂히고 박히는 통에 차라리 

바지차림이 나았던 듯 하다. 절로 몸이 둥둥 뜨는 게 물장구치려는 몸짓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곳의

물이 피부에 좋다는 이야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세수도 하고 몸도 여러차례 앞뒤로 뒤집어 주고. 

핫스프링은 그냥, 온천물같았다. 거기서조차 이끼가 잔뜩 끼고 하도 더러워보여서 발만 좀 담가보고 세수 한번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콜드스프링에 가서, 소금 가시들이 잔뜩 박혀있는 바지도 빨 겸 열심히 놀다가

호텔로 돌아와 휴식. 밤에는 사막에서 자며 별을 보기로 했는지라, 좀 자두는 만치 오늘밤 사막에서 별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출발해서 템플 오브 오라클, 아문,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의 연못까지. 생각보다 좀 다 별로였다. 아무래도

문명 세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인지라 붕괴되기 전의 유적들도 좀 급이 낮은 것들 아니었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연못은 잠깐 클레오파트라가 쉬었다 갔다던가...뭐 그래서 붙은 이름이라니 말 다했다. 그치만 역시 사막에서 

듄에 올라 바라본 석양이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  

사막에서 언덕을 오르내리고 초승달처럼 잔뜩 휘어진 언덕 아래 자리를 깔고 생선이랑 빵, 밥이랑 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날아와 박히는 별, 별, 별들. 그렇게

많은 별들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은하수란 게 저토록 선명하리라곤. 우윳길, 혹은 젖길이라고 불리웠다던

과거의 이름이 왜 붙게 되었는지 실감했을 정도로, 그렇게 이쁜 줄은 몰랐다. 안내인 알리와 압둘라를 비롯한

우리 일행들은 한국어, 체코어와 아랍어 등 저마다의 언어로 말하다가 영어로 말하다가.

별구경하며 사막의 밤을 보내면 은근히 엄습하리라 예상했던 괜시리 센치한 고민 따위로 다운될 여지조차 없었다.

완벽한 항복. 완전한 충일감. 쉼없이 떨어져내리는 별똥별 역시, 넌 떨어져라 난 즐길란다. 딱히 빌 소원조차 없던 밤.

카파도키아의 로즈밸리 하이킹을 함께 하며 친해진 일행들을 전부 꼬셔서 술과 안주가 무제한으로 나온다는(!)

투어에 끼기로 했다. 이름하야 '터키쉬 나이트'.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맥주는 물론이고 터키의 전통주인

'라키'가 나온다고 했다. '라키'란 포도를 증류해서 만든 50도짜리 술인데, 겉으로 보기엔 투명한 소주와 같지만

향이 매우 독특하고 맛도 묘하며, 물에 희석시키는 순간 하얗게 우윳빛으로 변해버리는 신비의 술이다. 사실 지금

우리 집에도 한병 있지만, 그 강렬한 이국의 맛과 향 때문인지 잘 손이 안 가는 게 사실이다.
물론 술이 무제한이라는 이유 이외에도, 터키의 전통춤인 밸리댄스를 보여준다는 이유도 있었다. 본전 생각에

저녁까지 굶고 저녁 8시에 숙소에서 출발, 우리 숙소처럼 똑같이 바위를 파고 만들어진 큼지막한 무대 옆에

차려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로 나온 과일과 과자를 계속해서 리필하며 밸리댄스와 수피댄스, 그리고

이름 모를 다양한 전통 춤들을 구경했는데, 아쉽게도 밸리댄스는 그다지 오래 공연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밸리댄스보다 더욱 눈을 끌었던 것은, 남자분이 치마같은 하얀 옷을 입고 몽환적인 음악에 맞추어 내내

뱅글거리며 돌던 수피댄스. 이슬람 신비주의..만물이 쉼없이 유전하며 변화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다는 그 댄스를 집중해서 보다보니, 지금까지 먹고 마신 술과 안주들이 뱃속에서 함께 뱅글거리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마지막은 거의 나이트 분위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던...그런

히피스러운 분위기랄까. 비록 몸은 뻣뻣한 나무토막같았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던 밤.

다음 날 눈떠보니 7시 반, 전날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몸띵이를 채근하며 일어났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여러

투어 중에서 뭘 해야 하루가 알찰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이곳이 워낙 넓고 기기묘묘한 형상들도 모두 신기한 터라,

굳이 다 '발자국 찍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지 싶다. 이스탄불에서부터 함께 움직이던 누님들과 함께 사파리 지프

투어를 하기로 했다.

터키 중부의 황량한 지형, 그곳의 기묘한 풍광은 역시 스타워즈에서 배경으로 삼을만한 이질적이고도 낯선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곳을 마냥 달렸던 우리의 지프. 이름 까먹은 저 터키아저씨..영어는 짧았지만 손은 길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ㅡㅡㆀ 누님과 휴학생 아가씨, 터키를 끝내 같이 돌았음 무지 잼있었을 멤버였는데.
울 뒷차엔 프랑스 할무이 한분, 글구 대구 커플 한팀..거기에 수학과외샌님들이랑-이분들한테 '아주머니'이랬다가

맞을 뻔했다. 그리고 회사 그만두고 몇달째 여행중이시라던 그 '여행속물' 아저씨 한 분. 여행 다님서 만나는

한국인은 딱 세 부류였다. 좀 젊다, 어리다 싶음 대학생, 약간 나이가 있다 싶음 학교 선생님들, 글구 어정쩡하니

왠지 안 어울려보이면 '백수'..회사 관두고 무언가 심기일전을 꾀하거나 애초의 꿈을 수복하거나. 학교 선생님들

참 많이도 만났다 그러고 보면.

차유신, 젤베, 데브란트, 우치사르..많은 곳을 돌며 그 루트도 참 괜찮다 싶던데, 황량한 벌판이나 완연한 시골길,

거친 오프로드에서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때론 시냇길을 차로 주파하며 '물쑈'를 하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터키인들 참 친절하고 적극적이랄까, 지프타고 가면서 계속 손흔들고 인사하며 푸근하게도 웃고 다닌 것 같다.

어설픈 웃음이나 경직된 미소, 금세라도 무표정으로 바뀔 듯한 위태한 미소가 아니라 정말 여유있는 웃음. 그걸

여행 도중에 계속 갖고 다녀야지, 하고 다짐.


걍 대략 산비탈에 벽돌로 올려세운 집들이 아니라, 산을 깍아내고 만든 이 촘촘한 공간들. 때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전체의 윤곽을 미처 알아보지 못할 만한 풍경들이 있는데, 카파도키아의 풍경 역시..지나고 나서야 무슨 길을

밟고 무슨 풍경 사이에 자신이 틈입했었는지 알 수 있는 법인갑다. 자연과 인간, 무슨 교양 수업 제목틱한 느낌을

카파도키아에서 참 실감나게 얻었더랬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기 마련이라지만, 대체로 울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무뚝뚝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대체로 터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무지 친절하다. 머...여자들끼리 다님 좀 안

좋다는 터키 유학생의 투덜거림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집트와는 달리 터키에선 아무한테나 카메라를 맡겨

사진을 부탁해도 잘 찍어주었다. 이것저것 말도 붙이며 호기심과 환대를 표하기도 하구. 이집트서는 카메라를

거부하거나, 왠지 카메라 받음 바로 도망갈 듯한 우려로 인하여 혼자 여행다님의 설움을 많이 느껴야 했었지만.

우치사르 정상에서 어느 붙임성좋고 잘생긴 터키 남성의 도움을 받은 단체 사진.

우리가 움직였던 코스.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LAZER Pension.

여행은 줄곧 해뜨는 것으로부터 해지는 것까지의 주요 일정과, 해진 이후의 옵션으로 구성되었더랬다. '해가 진다',
 
'해가 뜬다'란 표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면과 형용불가의 장면들을 담고 있는 것인지, 몇십번을 봤건만

질리지가 않았다. 대체로, 터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할 듯한 곳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계속해서 한탄.

리가 머물던 숙소는 기묘한 형태의 바위를 파내어 방을 만들어낸, 그런 운치어린 곳이었다. 그보다 더욱 좋았던

건, 혼자라 생각하고 떠났던 여행이 어느새 정감어린 사람들에 둘려진 채 따스한 배웅까지도 받는 '럭셔리'한

것으로 바뀌었단 사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지중해와 '나무 위의 집'-허클베리 핀이 살았을 법한-이 기다리는

올림포스로 떠나던 날 밤...누나들의 환송, 그리고 '아저씨'의 촬영.




기타 참고자료..도움이 되려나 몰겠지만.


카타르에서의 숙소는 라마다 플라자(Ramada Plaza), 사우디 호텔에서 미처 찍지 못하고 놓쳤던,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사진부터 후딱 찍었다. 이 곳 역시 화장실 풍경이 사우디랑 똑같앴던 것. 욕조와 좌변기 사이에 놓인

저것의 정체는..뭘까. 나중에 알고 보니 비데란다. 그치만 그렇게 알고 나서도 저걸 어떤 자세로 쓸지, 그리고

대체 어디에 쓰는 건지, 게다가 왜 저렇게 따로 만들어져 있는지..좀체 이해가 쉽지 않다.

카타르에서 만난 비즈니스맨들은, '비즈니스퍼즌'이란 젠더중립적인 단어가 이미 넓게 쓰이고 있는 세상임을

새삼스레 의식시켰다. 이전 사우디에서 만났던 한량 복장의 남성 일색의 상담회장이 아니라 히잡도 안 쓴 이런

당당한 여성기업인이 더러 눈에 띄었던 거다. 물론 이곳에서도 비슷하게 한량스런 전통 복장을 한 턱수염 복실한

아랍 아저씨들이 압도적으로 많기야 했지만, 저 여성이나 다른 여성들도 그저 유럽 어디메쯤의 아줌마 같은

느낌으로 충만해 있는 '비즈니스퍼즌', 혹은 당당한 '여성CEO'.

행사장이 있는 호텔 안을 종종걸음치다 발견한 구두닦는 이를 위한 의자. 저 높은 의자에 올라앉으면 구두닦는

아저씨가 양 발을 번갈아 올려가며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우아한 주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가

올라앉아 왠지 중세시대 하인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호텔 구두닦이에게 척하니 발을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사실은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남성은 모두 맨발에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있다. 대부분 닥스니

루이비통이니 하는 명품 슬리퍼. 해서..그런 적나라한 그림을 볼 수는 없었다는.

호텔 정문에는 역시 금속 탐지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사우디보다는 훨씬 작은 사이즈의 탐지기였다는 점,

그리고 호텔 경비원들의 인상이 훨씬 부드러웠다는 점 이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잔뜩

귀찮아하며 이러저런 서류뭉치와 가방, 카메라, 카타르 현지에서 쓰던 핸드폰 등을 여섯번째쯤 탈탈 털어놓고

맨몸뚱이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려던 내게 빙긋 웃어보이며 그냥 가라고 손짓해 줄 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건 역시

엄청나게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카타르, 우호도 5점 상승↑.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라마다 플라자 호텔의 위용. 그리고 그 앞에 꼬리물고 늘어선 황금색 고급차들의 행렬.

하루종일 예정된 상담회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점점 몸이 뒤틀린 나는, 살짝 자리를 벗어나 바람을 쐬러 나온

참이었다. 밤 두시정도까지 일하다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구두가 꾸덕꾸덕해져 있었다.

발은 언젠가 목욕탕 열수탕에서 깜빡 잠들어 세네시간동안 푸욱 삶아졌을 때처럼 팅팅 불어있었지만, 살짝

벗은 발로 허공을 휘휘 저어봐도 바람기운이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늘 하나 만들어지지 않는 뜨거운 태양

아래, 조그만 미동조차 없이 굳어버린 듯한 대기.

호텔 한 켠에는 높은 분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북한에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얼마전까지 박정희니 이승만이니 사진을 걸어놨던 것처럼, 그리고 사우디에서 초대왕과 선왕, 현재 국왕의 사진을

삼위일체로 걸어놓는 것처럼. 표정도 얼추 비슷하다. 무척이나 현명해보이고 부드럽다 못해 자비로워보이기까지

하려는 눈매에..그렇지만 왠지 느껴지는 삼엄하고 강단진 기운. 혹자는 카리스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부려짐'보다는 '부림'에 훨씬 익숙한 데서 비롯한 체취같은 거 아닐까.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충만한 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랍에서 손님을 맞는 전통적인 방식은 저런 곳에서 느긋하게 뒤로 누워앉아서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잠시 앉아 봤지만 뭐랄까, 사람을 무척추동물처럼 만드는 자리같았다. 아무리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보려해도 영 어색하고 불편해서 스스로 타협하게 만든다. 조금만 뒤로 기대 볼까.

그렇게 조금씩 엉덩이는 앞으로 쭈욱 미끄러져내리기 시작하고, 아예 온몸이 흘러내리겠다 싶은 순간 자연스레

양팔을 걸침으로써 그 효용을 다하는 팔걸이=몸걸이. 무지하게 편해서 한번 눌러앉으면 일어나기가 싫어지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호텔 로비에 떡하니 버티고 한번 맛이나 봐라~ 라고 있는 거 같다. 왜 그 난로와 이불과 테이블이

붙어있는 일본의 코타츠..던가, 내가 꿈꾸는 겨울나기 MUST HAVE 아이템인 그것보다는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름 이것도 사람을 마비시킬 만큼의 중독성은 있는 듯 하다.

그 곳에 앉아 바라본 호텔 인테리어. 어쩌면, 내가 좀더 여유롭고, 이게 좀더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 놓여

있었다면, 아마 하루종일 딩굴댔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숨 돌리러 다시 나온 호텔 창밖 풍경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태양은 조금씩 이지러지면서 건물 뒤로 숨고 있었고, 한낮엔 내 발을 쌩까던 바람도 어디선가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왠지 순식간에 가버린 하루, 그 느낌만큼이나 순식간에 저물어버리는 태양.

부드러운 살구색 빛살이 풀어져내리는 하늘 아래서 구두는 꾸덕꾸덕하고...

햇님은 번데기처럼 몸을 뒤틀며 쉬러가는데 난 아직도 오늘의 일정이 절반 가까이 남았고...

카타르 도하를 달구던 태양은 이제 불이 나가버렸다.

상담회장을 정리하고 우선 방으로 짐들을 올려두러 가는 길, 금세 나와서 만찬 행사장에 가야 한다.

호텔이야 어느 나라건 은은하다못해 침침한 조명에 다소 응큼한 분위기가 있다지만, 이날따라 침침했던 조명.

오후가 되었고, 튈를리 정원에 앉아 지친 발을 풀밭에 눕혔다.

저녁무렵이 되어서인지 루브르 박물관 쪽에서 여행객들이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지만, 당연히 내게는 모두 얼굴

낯설고 이름 모를 타향의 사람들. 더구나 왜이렇게 모두들 삼삼오오 일행들과 함께 나오는 건지.

혼자 떠난 여행의 단점은 자신의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는 것 외에도..문득문득 이렇게 혼자라는 느낌이 치받아

올 때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때에는 나무가 느닷없는 일진광풍을 가만히 견뎌내듯,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며 외로움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벌렁 누웠던 풀밭 옆에서 자기들끼리 열중한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발랄하고 경쾌한 웃음소리조차 그저

왁자한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런 순간. 주홍빛 백열등처럼 변한 태양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HOME으로 돌아가는지 전부 떠나고 나자, 이번에는 한 커플이 그자리를 떡하니

차지했다. 사실 저 카메라를 잔뜩 의식한 채 경계심을 풀지 못한 커플을 꼭 찍으려는 게 아니라, 하늘의 갑작스런

뭉게구름을 찍고 싶어서 쳐든 카메라였다. 이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살짝 센치해진 기분을 달래보려고 일단 일어서서 잠깐 걷기로 했다. 루브르 궁전 건물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또

길어지고 있었다. 사람들도 한결 덜어낸 공간이 다소 휑한 느낌이다. 차라리 한낮에 바글대던 그 공간이 낫겠다는

생각이 슬몃 고개를 쳐든 건 또 무슨 변덕일까.

카루젤 개선문도 왠지 분홍빛의 온기를 잃은 채 차가워져 가는 느낌. 모든 게 냉막해지고, 파리에 혼자 떨어져서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답답함이 울컥울컥해져 버렸다.

다시 돌아온 애초의 내 자리. 아까의 그 커플은 보이지 않고, 텅빈 녹색의 공간에 나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뭉게뭉게 구름은 잘도 피어오르는구나. 잿빛 하늘보다는 그래도, 파란 하늘이 보이니까 맘은 좀 낫다.

이런 식의 센치함이 닥쳐 온 건 사실 어딜 가던 한번씩은 꼭 있는 일이었다. 이건 단지 일상으로부터 도피한 것

뿐이라고, 아니 도피한 척 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혼자 이렇게 다니는 거 하나도 재미없다고, 이제 누군가와

함께 다니고 함께 보고 즐기고 싶다고.

날 위로해 주듯,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서 황홀한 낙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하늘에

찍찍 그어진 구름띠들, 그리고 어느 한점에서부터 엷은 금빛으로 물들여 나가는 다정다감한 햇살.

카루젤 개선문의 뒤로 돌아 서쪽을 바라보니 저멀리 노을이 은은하고 비치고, 해는 바야흐로 스물스물 기어내리고

있었다. 파리의 태양이 이제 서울로 떠나는구나. 6시간의 시차를 메꾸고 서울을 밝히러. 서울에 있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덥히러 가는구나 싶다.

하늘은 여전히 은은한 금빛이 흩뿌려져 있었지만, 지상의 사람들은 적당한 어둠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정도 어둠을 머금은 사람들의 어슴푸레한 윤곽은 왠지 정겨워졌다. 노랑빛이 풀어져 내린 흑백사진 속의 파리.

그래도 아직 대지는 고집스럽게 녹색을 움켜쥐고 있다. 저 운치있는 가로등과, 그림같은 가로수들의 형체들이

잔뜩 움츠러들고 옹송그려졌던 내 마음을 잔잔히 어루만졌다.

한국으로 가는구나. 엄밀한 과학적 상식으로야 내가 올라탄 이 지구라는 녀석이 팽팽 돌며 태양을 비껴나가는

거라지만, 그리고 태양이라는 거대한 불덩이가 고작 나를 위로하겠다고 세이 굳바이~ 할리야 없는 거라지만,

어쨌든 이제 맨눈으로 바라봐도 전혀 위협적이거나 아프지 않을 만큼 온화해진 태양은 조금씩 사그라들며

서울로 가노라고 했다.

해가 마침내 완전히 기울고, 서쪽 하늘만 조금씩 붉은 기운이 맴돌다가 사그라드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센치했던 기분과 왠지 처졌던 느낌들은 모두 이곳에 버려두고 가기로 했다.

룩소에서 봤던 오벨리스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룩소에서도 문득 예기치 못한 그리움에 사로잡혔을 때,

창밖의 나일강을 바라보며 달랬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힘내서 여행길을.

왠지 '드래곤라자'에서 나왔던 인사말이 떠올라 버린 타이밍.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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