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1코스 종반부의 민박집에 자리를 잡고 났더니 


2코스 끝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체력도, 시간도 남았다. 설렁설렁 3코스를 계속 가보기로 한 참이다.



모내기에 한창이던 시절, 저렇게 여리고 자그맣던 아이들이 올여름 무더위와 가뭄에 잘들 버티고 있기를 바랄 뿐.


둘레길 코스를 따라 함께 흐르는 강 너머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우는..(이 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만서도)



어느 장소의 분위기를 아는데엔 한번의 방문으로는 택도 없다. 사계절을 다 보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담는 것, 그런 공을 들이고서야 이 공간이 가질 풍성한 느낌을 비로소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꽃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가던 길 끝의 어느 마을. 베이지색으로 단정하게 칠해진 담벼락에 벽화가 꽃길을 이어준다.



3코스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 그 아래 개구멍을 꽉 들어채운 시퍼런 잡초.


담벼락에 기대 섰던 나무의 등걸에 기대어 그려진 벽화의 센스가 재미지다.



요새 축사는 그렇게 소똥 냄새가 멀리 않을 만큼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듯. 코앞에 도착해서야 저 안에서


뒹굴거리며 되새김질중이신 소들이 보였다.


산비탈을 따라 제법 층층이 포개진 다랭이논, 그리고 그 옆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둘레길.


3코스에는 황매암을 경유하거나 산신암을 경유하는 두가지 갈래길이 있다는데, 어쩌다보니 황매암으로 와버렸다.


코스 표지판을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렸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길안내가 부실하거나 둘 중 하나.



그래도 황매암을 둘러보며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건 꽤 괜찮았다. 산속길 깊숙이 숨은 곳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그마한 암자의 정취도 그렇고, 온통 푸릇푸릇하게 감싸고 올라오는 녹색의 기운도 그렇고.






지리산 둘레길 중에 가장 인기있다는 3코스, 아무래도 1박2일에서 이 코스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덕분인 거 같은데


역시나 방송에 나왔던 장소라는 현수막이 이렇게 떡하니 붙어있다. 




이런 개울을 지나고 산길을 계속 걷다 보면, 


현지 주민들이 지각없는 일부 둘레길 여행자들에 대해 읍소하는 이런 표지판도 보이고.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마을과 함께 수백년을 함께 했을 오랜 낙락장송 한 그루. 가지를 휘청휘청 늘어뜨린 모습이 연륜 가득하다.


대충 두어시간을 걷고 나니 장항마을에 도착, 또다른 아름드리 나무에 기대 만들어진 쉼터에서 맥주랑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머리를 맞댄 결과 숙소로 이제 돌아가기로. 죽자고 걷기보단 여유롭게 가자는 컨셉이니만치.



버스 시간표를 잠시 확인해보니 대충 이삼십분만 기다리면 한대 오겠다 싶다. 이런 여유로운 자세라니.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여전히 쉽지 않은, O'Donohue's Pub. 더블린 시내에 위치한 바 중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바라고 하던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맥주가 무지 맛나고-기네스는 더블린 어디에서나 맛있었지만-


닭튀김도 맛있어서 굉장히 많이 먹었었으니 뭐. 


 

 

 

더블린의 여느 펍에서나 볼 수 있는 카운터. 서버에게 마시고 싶은 맥주를 주문하면 바로 따라내어준다.


기네스의 경우에는 저렇게 조금 남기고 따라놓고는 시커멓게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니 섣불리


참지못하고 잔을 움켜쥐는 일은 벌이지 말 것. 첫날 내가 갈증을 참지못하고 저질렀던 실수기도 하다.ㅋ

 

더블린의 유명하고 오래된 펍들을 소개해놓은 포스터. 그리고 가스등의 운치가 느껴지는 실내 장식등.

  


펍의 실내 공간 이외에도 야외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나와서 시뻘건 불빛아래 시끌벅적한 중이다. 


  

 처음에는 그저 멋지다고 감탄하며 두리번거리던 기네스의 꺼먼 디자인이 담긴 펍의 공간들, 몇군데를 거치고 나니


더블린의 모든 펍은 기네스로 온통 장식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


 

 


 날씨가 조금 쌀쌀했지만 야외에서 맥주와 피시앤칩스를 씹으며 떠드는 더블리너들의 밤은 이제부터인 듯 했다.


한국인들만큼이나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느낌, 왠지 모를 친근감.

 

 펍 안의 화장실, 벌건 불빛이 후끈한 분위기와는 영 딴판의 단정한 화장실이다. 역시 Gents. & Ladies.



여긴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또다른 펍. 모든 펍이 기네스를 전면에 내세워서 술을 팔고 있다는 느낌.



 

 

만타나니섬에서 시험삼아 시도했던 수중 촬영이 기대이상의 효과를 보여, 두번째로 찾았던 사피섬에서는 본격적으로

 

수중 촬영에 돌입했다. 덕분에 굉장히 많은 사진들을 건지기는 했지만, 그걸 다시 추려내고 고르는 작업도 큰일.

 

사피섬의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직접 보는 것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뽐뿌질이 되길 바라면서.

 

 

 

photo by SONY TX-30.

 

 

 

 

 

 

 

 

 

 

 

 

 

 

 

 

 

 

 

 

 

 

 

 

 

 

 

 

 

 

 

 

 

 

 

 

 

 

 

 

누가 그랬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동남아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배를 타고 섬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말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코타키나발루는 5개의 섬이 모여있는 툰쿠 압둘라만 해상공원을 위시하여

 

만타나니 섬을 뺴놓고는 말할 수 없는 여행지. 에메랄드빛 바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만타나니 섬인 것 같다.

 

가는 길은 조금 어려운 편인 게, 만타나니 섬은 코타키나발루에서 차로 두시간여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데다가

 

어느 포인트에선가 보트로 갈아타고는 이런 황토빛 강을 따라 내달려서 본격 바닷길로 나서게 된다.

 

 

 

이때만 해도 전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얼마나 더 가야 만타나니 섬이 나타나는지도 감이 없던 상태..

코타키나발루의 인심이란 게 어찌나 좋던지, 모터보트로 빠르게 달리다가도 옆에서 고기를 잡고 계신 듯한

 

동네 주민을 보면 속도를 완전히 떨어뜨리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어르신 고기는 많이 잡히나요, 많이 잡히긴. 어디 가나 개똥이, 손님들 모시고 섬에 갑니다~ 이런 대화가 오갔으려나.

 

배로 약 40분 정도, 거의 바이킹이나 후룸라이드 류의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으로 내달리다 보면

 

온몸이 흠뻑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만다. 그리고 떠나온 육지가 보이지 않을 즈음 에메랄드빛 바다가 시작된다.

 

  

만.타.나.니.

 

 

 

이정도 거리에다가 접근성도 떨어지다 보니-차타고 배타고 해야 하나-아무래도 만타나니는 투어로 올 수 밖에 없겠다.

 

게다가 이렇게 잘 차려진 식당에서 부페로 나온다는 점심도 꽤나 괜찮았고.

 

  

 

넉넉하게 있는 긴의자라거나 해먹, 그리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 장비들 덕분에 그야말로 지상낙원.

 

게다가 큰 칼로 툭툭 썰어내어 빨대 하나 꼽아주면 끝인 코코넛도 이렇게 잔뜩 쟁여두었다.

 

 

이런 에메랄드빛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걸까.

 

 

시시각각 그리고 시야 각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바다 빛깔. 우선 한차례 스노클링을 마치고 인근에 산호무더기로

 

형성된 산호섬 가서 두번째 스노클링을 하는 길에 찍은 사진.

 

 

이렇게 산호들이 잔뜩 퇴적되어서 만들어진 조그마한 언덕이랄까 섬에 내려주고는, 딱딱하고 뾰족한 산호에

 

발아파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내츄럴 마사지라며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코타키나발루 사람들이다.

 

 

하아..어찌나 아름다운 물빛깔이던지. 지겹도록 이런 바다를 보았을 아저씨는 스노클링하라며 승객들을

 

풀어놓고는 물수제비를 뜨고 계신다. 저렇게 이쁜 바다에 대고 돌팔매질이라니.

 

어마무시하게 많던 물고기떼들. 방수카메라를 미리 준비해서 잔뜩 수중 풍경을 찍어놨지만 그건 다음 포스팅에.

 

 

 

각 삼십여분씩 두번의 스노클링을 마치고 다시 섬의 식당으로 돌아가는 길,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런 어처구니없도록 환상적인 빛깔. 넘실거리는 파도조차 몽환적이다.

 

부페로 나온 점심, 새우와 닭날개튀김, 나시고랭과 밥, 약간 똠양꿍같은 느낌의 생강국이 나왔는데

 

워낙 격렬한 물놀이-스노클링-을 즐기고 나서인지 굉장히 맛있게 싹 비우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해안가를 거닐며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소 한마리. 파란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새하얀 모래로 삼분할된 풍경에 불쑥 들어선 불청객치고는 하는 짓이 귀엽다.

 

 

만타나니 섬에서 구비하고 있는 스노클링 장비들, 그러니까 물안경, 구명조끼, 오리발 등을 대여해주는 곳.

 

애초 투어 내용에 왕복 교통, 점심 부페와 스노클링 장비 대여료가 포함되어 있으니 그냥 받아오면 된다.

 

투어요금은 여행사 따라서 190~280링깃까지 다소간 차이가 있었는데, 인당 190링깃으로 쇼부치는데 성공.

 

다음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해봐야겠다. 동남아의 이토록 이쁜 바다에서 좀더 안정적인 호흡으로 깊이 들어가보고 싶다.

 

섬 한켠에 쌓인 구명조끼들.

 

두시간여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섬을 돌아다니거나, 바닷물에 들어가(스노클링 장비는 모두 반납했으니) 가볍게

 

놀거나, 혹은 해먹이나 긴의자에 누워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천국같던 시간.

 

 

 

 

그리고 아무래도 여긴 적도에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정오가 지나면서부터는 굉장히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자칫 컨디션이 망가지거나 새카맣게 타버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일.

 

 

 

이런 바다에 대고 '에메랄드빛' 운운하는 것도 참 진부하고 둔탁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형용불가, 촬영불가의 그런 빛깔 앞에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던 시간.

 

 

만타나니 섬을 뒤로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던 참에, 강기슭에 서 있는 새하얀 나무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미니버스에 다시 탑승하기 전, 간단한 간식처럼 제공되었던 코코넛 과자랄까 빵이랄까.

 

코코넛 과육이 굉장히 많이 들어있어서 보기보다 꽤 맛있길래 몇번이나 리필해서 배를 채우고 말았던 간식.

 

 

 

캘리포니아 남부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 중의 하나라는 샌디에고 라호야 지역, 그 보석같은 해안 중에서도 특히나

 

영롱하게 빛나는 해변, 블랙 비치(Black's Beach)다. 이곳은 특히 자연주의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으로, 누드로

 

모래밭을 활보해도 전혀 눈치보거나 어색할 일이 없다.

 

블랙 비치는 토레이 소나무 주립 비치(Torey Pines State Natural Reserve)와 맞붙어 있는 곳으로, 다만 그 황량하고

 

아름다운 해안가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통해야 한다.

 

절벽 위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시야에 걸려들어오는 건, 누군가가 만들어 세워놓은 세로로 길쭉한 푸른색 액자.

 

 

 

빗물에 씻겨 거대한 등뼈가 드러난 것처럼 울룩불룩한 땅을 조심해서 밟으며 해안가로 내려가는 길.

 

 

휘영청 구부러진 해안선 따라 슬며시 내려앉은 안개낀 풍경을 보고 있으니 여기가 어딘가, 문득 망연해진다.

 

 

 

열심히 내려가는 길, 전날 내렸던 소나기 탓인지 길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제 바닷가 도착.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건 해류가 세니 수영할 때 조심하라는 경고판이다.

 

그리고 곱고 새카만 입자들을 숨기고 있는 금빛 모래사장. 파도에 쓸려서 오르내리며 환상적인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실루엣들. 전혀 아무런 색깔도 추가되지 않은 살색의 실루엣들이 해안선을 따라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막 도착한 사람들은 한귀퉁이에서 자연스럽게 훌렁훌렁 옷을 벗고 있었고.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향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럴 땐 그저 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를 감상할 따름.

 

 

나 역시 그들의 대열에 동참한 채 조금은 차갑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던 태평양 푸른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가

 

모래사장을 거닐기도 했다. 모두 벗어던진 채 탁 트인 바닷가에서 파도와 바람과 모래에 살부빌 수 있다는 것,

 

그런 기회를 어디서고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잡아챌 일이다.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해안,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이 있는 곳이다. 대략 150년 이전의 범선부터 2007년까지

 

활동하던 잠수함까지 7척의 크고 작은 선박들의 내외부를 일일이 둘러볼 수 있다는 게 포인트. 특히나 동해를 무대로

 

활동하던 구소련제 공격형 잠수함인 B-39의 좁고 불편한 내부를 살피는 건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박물관의 중심건물이랄 수 있는 1898년 건조된 버클리 선. 증기를 내뿜었을 커다란 굴뚝을 높이 세운 선박 안에는

 

증기선의 엔진이라거나 실내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뜬금없게도) 타투샵도 들어가 있었다.

 

1700년대 영국의 프리깃 선을 복원한 서프라이즈 선, 내부에는 그래도 제법 오래된 느낌을 살린 대포라거나 각종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

 

대포의 여러 부품에 대한 이름과 작동방식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고.

 

해먹 대신 그래도 널판지가 깔린 침대에서 몸을 뉘일 수 있었던 상급 선원의 공간도 둘러보고.

 

선장의 호화로운 식사 공간도 슬쩍 훔쳐 보는 재미.

 

당대의 선원들이 어떤 식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요일별 식단을 아예 소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18세기의 대영제국을 건설하는데 선봉에 섰을 전투선박인 거다. 충분히 해양박물관의 앞머리에 설 만하다.

 

그리고 1974년에 건조되었다는 구소련의 잠수함. 굉장히 투박하고 못 생겼다라는 느낌인데다가, 내부를 돌아보려면

 

우선 저 앞의 동그란 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에 들어가야 한다. 설마 그렇게 좁은 출입구가 있겠어, 하기

 

쉽지만 정말로 저렇게 좁고 불편한, 당장이라도 폐쇄공포증에 시달릴 것만 같은 공간이 저 안에 있었다.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구소련 잠수함의 꼭대기에 그려진 혁명의 붉은 별, 그 붉은 빛이 선연하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것부터가 벌써 뭔가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

 

어뢰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공간인 거 같은데, 이렇게 조밀하게 공간을 채워넣으려 애써도 선원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은 고작해야 발딛고 움직일 수 있는 두어뼘 남짓이다.

 

그리고 잠수함에 탑승하기 앞서 시험해봤던 바로 그 문과 동일한 사이즈의 철문.몸집이 큰 미국인들에게는 꽤나

 

통과하기 어렵겠다 싶은데, 실제로 저 정도의 아저씨도 한참을 낑낑거리며 버거운 몸뚱이를 부비적거렸다.

 

그나마 화장실이 이정도 공간이라도 확보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온통 파이프와 전선과 손잡이로 포위됐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꽤나 현대적이랄까, 배관과 원형의 손잡이와 전선들이 최적의 공간 활용을 꿈꾸며 사방으로

 

내리달리는 모습이 자아내는 아름다움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 계란색 바탕에 빨갛고 파랗게 정돈된 색감 역시.

 

 

 

역시 어디서든 사람이 생활하는데 긴요한 건 먹는 것, 그리고 싸는 것. 잠수함 승조원들의 일과와 식사시간에 대해서

 

자세한 메뉴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비록 그런 삼시세끼 식사를 만들어내는 주방이라는 게 무슨 보일러실처럼 이렇게 작고 보잘것 없다고 해도.

 

재미있는 건, 이 잠수함의 작전구역이 한국의 동해지역이었다는 점, 때로는 대한해협을 통해 남해와 서해 지역까지도

 

작전지역으로 삼았다니 일촉즉발의 냉전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전사임에 틀림없다.

 

그런 잠수함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까지 항해해서는 결국 샌디에고에 안착, 해양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꽤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전히 이런 상급 장교의 의복이나 구소련의 영도자들 사진을 남겨둔 채.

 

잠수함 승조원들의 세면장..이라는데, 설마 여기서 모든 세면을 다 하지는 않았겠지? 고작해야 싱크대 수준인데.

 

 

그리고 다른 배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발견한 선실 창문에 반사된 샌디에고만 앞바다의 풍경. 온통 크고 작은 선박들이

 

정박해 있기도 한데다가 170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오랜 배들이 뒤섞여 있다보니 기분이 묘해진다.

 

그리고 해양박물관에서 가서 알게 된 재미있는 프로세스 하나. 참치 통조림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

 

 

 

 

 

 

Chijmes, 차임스라고 읽어야 하지만 자신있게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 곳은 1980년대까지 수녀님들이 고아들을 돕기 위해 이용한

 

일종의 보육시설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웨딩 촬영이 곳곳에서 성행하는 데이트 코스이자 이름난 레스토랑들이 집결한 곳.

 

 

아르메니안 교회 정원, 시내 한 가운데에 있지만 굉장히 조용하고 시내의 소음에서 뚝 떨어진 느낌의 하얗고 자그마한 교회

 

주변으로는 이렇게 십자가로 고행하는 예수를 담은 십자가의 길이 3D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중앙 소방서. 건물이 아기자기 귀엽게 생긴 게 소방서의 급박하거나 긴장감 넘칠 업무와는 영 딴판.

 

멀라이언 파크에서 싱가포르의 서쪽으로. 남쪽 해안으로는 온통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군락을 이루고, 뒤에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고층빌딩들이 한무더기.

 

무더기째 뭉쳐져 있던 건물들로 한발 재겨딛으면 이렇게 활짝 열리는 미지의 뒷골목.  

 

마리나베이 샌즈 쇼핑몰 중앙에서 수시때때로 기획되어 있는 듯한 라이브 공연. 나름 시스루를 입고 나오셨다.

 

 

그리고 헬릭스 브리지. 싱가포르의 다민족, 다인종성을 상징하듯 DNA 나선구조가 거침없이 꽈배기로 용틀임하는 모습을 담았다나.

 

 

물론 다리가 온통 불밝히는 밤도 좋지만 낮에도 걷기 괜찮은 다리,

 

다리가 잇고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쪽과 싱가포르 플라이어 쪽의 풍경도 좋다.

 

 

 

다리 중간중간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전망대. 저기에서 마리나 베이 저끄트머리의 멀라이온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두리안, 이라는 별칭의 에스플러네이드. 일종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미술 전시나 공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잠시 둘러보려 들어갔는데 싱가포르 전통악기 공연이 있다길래 삼십여분 무료 와이파이를 즐기다가 연주를 감상.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할 때더라, 택시를 탔더니 온통 불상과 힌두교 신들, 혹은 무조건 복을 빌어주는 각종 잡신들, 심지어

 

손님을 빌어주는 일본 고양이인형까지 모아둔 정신사나운 모양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독일 맥주가 굉장굉장굉장히 맛있었던 어느 바. 특히나 더웠던 날 점심부터 맥주를 대차게 마셔줬다.

 

이건 센토사, 동남아 최초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남쪽의 리조트 월드 공간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리지널로 경험했으니 패스, 대신 택한 건 실내 스카이다이빙 체험.

 

 

 

과거 싱가포르의 우정청이었던 건물을 호텔로 개조한 플러턴 호텔, 그 로비에는 싱가포르 최고의 애프터눈티를 맛볼 수 있다는

 

코트야드가 있다. 과거 대만에서 애프터눈티의 호사를 누리고 나서 다시금 이 곳 싱가포르의 애프터눈티도 만끽하겠다며 진출.

 

 

싱가포르의 유명한 티메이커인 TWG에서 특별납품한다는 스페셜티와 함께, 3단 트레이를 꽉꽉 채운 핑거푸드들. 스콘과 타르트와

 

케잌과 샌드위치들은 계속해서 리필이 가능하다. (가격은 얼마였더라..SD 40-50 사이였던 거 같은데, 두어시간의 호사라면야.)

 

 

책도 좀 읽고, 와이파이를 쓰며 잠시 문명과 접합하기도 하고, 사진도 정리하다간 차를 홀짝대고. 그렇게 두세시간이 훌쩍.

 

  플러턴 호텔에서 북쪽의 올드시티로 이어지는 다리. 강철줄로 지탱되니 현수교라고 해야 하나, 고졸한 아치가 살아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다리 밑으로 왠지 아슬아슬 통과해 지나는 유람선들. 생각보다 속도도 빠르고 왕래도 잦은 편이다.

 

 

 

너머로 보이는 건 보트키Boat Quay로 이어지는 적갈빛 지붕의 건물들.

 

 

그리고, 온통 수십층을 훌쩍 넘긴 듯한 거대한 고층빌딩 사이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당당함, 플러튼 호텔의 고풍스러움이라니.

 

호텔이 품고 있는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멀라이언 파크, 바다에 대고 물을 토악질해대는 오리지널 말고

 

요렇게 작고 귀여운 미니어쳐도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 녀석도 나름 물을 뱉긴 하는데, 아직 연륜이 부족한 듯 질질.

 

 

이미 덕 투어로 근접해서 보았었지만 걸어서 찾아보니 또 다르다. 아무래도 사자와 생선의 기묘한 조합.

 

게다가 이 곳에서 가만히 코를 쫑긋거리면 가까운 아이스크림 샵에서 무려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파는 냄새를 잡아낼 수 있는데,

 

두리안을 좋아한다면 꼭 코를 벌름거려 위치를 확인 후 기필코 맛볼 것. 굉장히 함량도 높고 맛있었다.

 

 

멀라이언 파크에서 바라본 마리나베이 샌즈와 에스플러네이드, a.k.a. 두리안.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중심부인 슈퍼트리 글로브에서부터 바깥방향으로 크게 돌아 실내 정원으로 가는 길,

 

잔디밭 위에 둥실 떠올라 있는 듯한 커다란 아기 조각상이 시선을 붙잡는다.

 

 

싱가포르 플라이어, Flyer를 바라보고 있는 Dragon Fly의 Flyer. 이런 유머러스함을 녹여낸 건 아마도 작가의 의도려나.

 

 

어느새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그늘 한줌조차 남기지 않는 시간, 그나마 날이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지만 햇살은 만만찮다.

 

 

 

멀찍이 윤곽을 드러내는 실내 정원. 그러고 보면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색깔은 보라색인 걸까, 공항에서부터 세련된 보라색이 눈에 띈다.

 

이빨 하나하나 정교하게 새겨진 악어 조각상, 그저 눈으로만 감상하는 게 아니라 이 자체가 긴의자로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그리고 플라워 돔 입장. 두개의 실내 정원 입장료가 근 SD28 이던가, 대충 한화로 이만오천원 선인 거 같은데 아깝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그저 식물원 내의 이쁜 꽃들을 담은 사진들.

 

 

 

 

 

 

 

 

 

 

 

 

 

 

 

 

 

 

 

아프리카 바오밥나무에서부터 다육식물들, 각종 지역별 특색이 살아있는 정원까지 굉장히 큰 규모로 꾸며진 데도 놀랐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유럽 성의 컨셉을 따르는 거 같아서 그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저런 인형이 중간중간 화려하게 등장하고.

 

 

 

 

뭐랄까, 식물원 위에서부터 설렁설렁 내려오다 보면 왠지 공주를 지키러 온 기사단과 맞닥뜨리게 되는 느낌.

 

 

그리고, 탐스럽고 동글동글한 이끼더미가 치덕치덕 달라붙어있던 공간 하나.

 

같이 사진을 찍으면 딱 귀여울 거 같은데 딱 발딛을 장소에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워뒀다.

 

 

 

 

 

 

2012년 6월, 마리나 베이 샌즈 옆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식물원, 그래서 이름도 베이 옆에 있는 정원이라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이름이 좀 심심하다 싶긴 하지만 무료 개장중인 야외정원, 그 중에서도 슈퍼트리 글로브를 둘러보는 것은 무조건 강추!

 

 

 야외정원과 두 개의 실내정원으로 구성된 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내부에서는 오디오 투어용 셔틀이 다니기도 하지만,

 

직접 걸어다녀본 바로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크지 않다. 굳이 셔틀을 이용하지 않고도 중앙의 슈퍼트리 글로브와 몇몇

 

포인트들, 실내정원을 둘러볼 수 있으니 괜시리 겁먹고서 셔틀부터 잡아탈 필요는 없을 듯.

 

 중앙의 슈퍼트리 글로브. 25미터에서 최고 5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 형태 조형들로 가히 이곳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슈퍼트리 글로브를 감싸듯 각국의 식생과 정원 스타일을 살려둔 헤리티지 가든, 그리고 다양하게 꾸며진 산책로들.

 

 두둥. 열대의 왕성한 생명력을 체현한 듯 무섭도록 푸릇푸릇한 나무들 사이로 슈퍼트리의 중심부를 발견했을 때의 위압감이란.

 

 

 두 개의 슈퍼트리를 잇는 노란색 다리는 높이 22미터, 길이 128미터의 스카이웨이.

 

 오른쪽으로 바싹 붙어 보이는 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그리고 기하학적인 연속선으로 표현된 슈퍼 트리의 가지, 혹은 잎새들.

 

한켠의 티켓 부스에서 스카이웨이 티켓을 사서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밑에서 볼 때보다 체감컨대 훨씬 높은 느낌.

 

발 밑으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철판, 그 위에 얇게 덧대어진 고무판 덕에 그야말로 스카이 워크, 고스란히 바람에 출렁거리던.

 

 그래도 이런 전망을 굽어볼 수가 있다는 점, 심장이 쫄깃해지는 발밑의 위태로움과 거센 바닷바람만 제하면 정말 멋진 뷰포인트.

 

출렁거리는 현수교처럼, 발가락 끄트머리가 오무라들던 그 스카이웨이 위로 늘어뜨려진 슈퍼트리의 그림자.

 

 멀찍이 보이는 건 플라워 돔과 클라우드 포레스트, 두 개의 실내 정원이 꾸며진 거대한 유리 돔이다.

 

 그리고 또다른 슈퍼트리들 너머 싱가포르 플라이어의 완전한 동그라미가 자리를 잡았으며.

 

 

문득 불어닥친 바람에 바다 위 조각배처럼 출렁이던 스카이웨이 위에서도 태연하게 사진찍기에 몰입하던 사람들.

 

 

 

 한번 끝까지 걷고 나니 왠지 담력이 두둑해져서 다시 반대편까지 한번 더 걸으며 찬찬히 풍경을 완상 중.

 

 설마 이렇게 촘촘하니 강철줄로 연결된 다리가 끊어지기야 하겠어, 여긴 나름 선진국 싱가포르니깐 괜찮을 거란 자기 최면.

 

 

반대편 끝에서 엘레베이터로 다시 내려오기 전, 아무래도 못내 아쉬웠던 점은 이곳은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와야겠구나 싶던.

 

 

 

 

 

 아랍 스트리트가 위치한 부기스 지역에서 리틀 인디아역까지는 걸어서 대략 10분, 곳곳의 공사판 사이로 이런 원색의 아파트도 지나고.

 

 이렇게 깊숙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사람들이 삥 둘러선 공사판 가림막을 지나서 도착한 곳. 그야말로 진짜배기 인도의 축소판.

 

 북적거리는 거리와 시끄러운 인도 음악의 무규칙한 조합. 심지어 무질서하게 지나며 클랙션을 울려대는 차들까지 판박이다.

 

  

 싱가포르의 세련되고 고급진 이미지는 간데없고 끽끽 소리내는 양은냄비를 늘어놓고 온갖 꽃장식을 팔고 있는 가게들.

 

하다못해 건물들 뒷켠의 골목까지 인도스럽도록 신산하다. 이걸 집이라 부를 수 있을지 고심케 만드는 허술한 방벽들.

 

 그리고 조각보만한 공간에서 삐져나와 골목 귀퉁이를 차지한 채 야채를 다듬고 카레냄새를 풍기는 인도 출신의 사람들.

 

 더러는 삐쭉하니 늘어뜨린 나무막대를 따라 온통 뒤엉킨 빨래들을 그나마 단정하게 늘어뜨리느라 여념이 없기도 하고.

 

 

골목마다 숨어있는 힌두교 사원, 모스크, 그리고 불교 사원까지 잡신들이 총망라된 거리에 소만 풀어놓으면 딱 인도겠다.

 

 그리고 값싸보이는 배낭여행객 전용 숙소들과 이메일 체크를 위한 인터넷 까페들이 넘실넘실.

 

이제 싱가포르 시내 남쪽에 위치한 차이나 타운을 들러보러 택시를 잡아탄 찰나,

 

유리창에 붙은 one singapore이란 표어가 눈길을 끈다. 무슬림이건, 힌디건, 혹은 불교도거나 심지어 파룬궁신도건 간에.

 

 

 

 

 

마리나 베이 샌즈의 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조명들이 수면 위에서 뛰노는 참이다.

 

  헬릭스 브리지의 DNA 나선구조형 사슬, 매혹적인 보랏빛 자줏빛 구슬들이 알알이 맺혀 있는 게 몽환적이다.

 

 잠시 자리를 옮겨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마리나베이샌즈 옆에 새로 조성된 커다란 야외 정원의 야경도 이쁘다더니.

 

저 불빛 속으로 들어가서 즐겼다면 더 이뻤을 텐데 시간을 낼 수가 없어 그냥, 멀찍이서 감상하는 걸로 만족.

 

그리고, 마리나베이샌즈의 레이져쇼, 하루 두어차례 하는데 생각보다 임팩트가 꽝꽝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대략 십여분

 

진행되는 레이져쇼와 분수들의 움직임은 해안가에 앉아 맥주 한병 마시며 즐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광경.

 

 

 레이져쇼가 끝난 후에도 거대한 벽처럼 눈앞에 버티고 선 빌딩숲에서는 현란한 불빛이 쉼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28개의 캡슐에 환하게 불을 밝힌 싱가포르 플라이어.

 

 조금 자리를 옮겨 멀라이언 파크 앞에서 바라본 마리나 베이의 해안가 풍경.

 

 어둠 속에 불쑥 드러난 새하얀 멀라이언의 자태. 밤에 보니 표정이 좀더 풍부해 보이기도 하고.

 

센토사에 잠시 갔었을 때 찍어둔 또다른 멀라이언 동상. 이 녀석은 훨씬 더 큰데, 오리지널과는 달리 눈에서 빛도 나고

 

입에서도 빛이 나고. 게다가 사람들이 저 아가리 부위까지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던가.

 

개인적으로는 오리지널 멀라이언이 좀더 세련되면서도 표정이 풍부한 거 같아 더 맘에 든다.

 

 

 

 

 싱가포르의 부기스 스트리트와 아랍 스트리트, 말레이시아로부터 연원한 싱가포르 무슬림들이 모여 사는 아랍 문화 지역이다.

 

독특한 색감의 그래피티도 보이고, 틈새 하나 없이 벽면을 공유하는 건물들이 양쪽으로 길게 어깨를 겯고 있다.

 

 

 아직 때이른 오전시간, 간간히 열린 까페에는 외국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며 아직은 따뜻한 해바라기중.

 

 

 이쪽은 사실 이슬람 문화가 물씬 배어나는 특색보다도 마치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같이 깨알같은 쇼핑이 가능한 곳으로 유명하다나.

 

곳곳에서 아기자기하게 정돈되어 있는 쇼핑 거리의 간단치 않은 공력이 묻어나온다.

 

나처럼 너무 일찍 도착한 걸까, 일요일 오전 시간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아가씨가 한참을 서성였다.

 

그런가 하면 마치 한국의 삼청동이나 북촌 같은 분위기에서처럼 온라인 쇼핑몰 모델들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술탄 모스크, 모스크 안의 아늑한 분위기야 언제나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당장 여기만 봐도 한쪽에선 느긋이 기대앉아 신문을 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바지런히 오체투지의 자세로 기도를 하는 모습.

 

2층의 회랑으로 올라가니 영어와 아랍어로 된 코란이 가득. 전세계에서 메카를 향해 정렬해 있을 그 방향을 향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를 따라 늘어선 고층빌딩들이 그려내던 스카이라인과는 영 딴판의 야트막한 건물들,

 

잰 발걸음으로 그 골목통을 돌아나가는 무슬림 아가씨 한 명.

 

 

그림자가 조금씩 짧아지고 짙어지면서, 가게들이 하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골목통의 끽해야 이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는, 이렇게 외벽에 송풍기로 또 하나의 벽을 만들어두었다.

 

어느 현관 지붕위, 조그마한 창문턱위에서 삼엄하게 깨져있는 유리조각들 사이로 비죽이 고개를 내민 다육식물 무리.

 

 

이슬람 전통의상이나 카펫 판매상들 사이에서 보이는 술탄 모스크의 울타리. 노란 별과 달이 아스라해졌다.

 

 

가게 한쪽 벽면으로는 아랍 스타일의 타일과 조명기구들로 한껏 아라빅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리고 보기만해도 땀날정도로 폭신하고 따뜻하던 카펫들.

 

홍콩이나 도쿄를 떠올리게 할 법한 빼곡한 고층건물숲으로만 싱가포르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

 

이 곳에서 살아가는 무슬림들이나 다른 인종, 다른 종교의 사람들의 속살거리는 일상을 보고 싶다면 가보기를 추천.

 

 

 

 

샌프란시스코의 북쪽끝에 위치한 항구지역, 피셔맨스 워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점, 시간당 8달러였던가에

 

일단 세시간을 약정하고 빌려서는 저멀리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붉은 금문교를 향해 출발.

 

금문교 반대쪽을 찍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대여점 아저씨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문제는 금문교로 향하는 길에 계속 밟히던 풍경들. 오른쪽으로 끼고 향하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는 악명높은 수용소

 

알카트라즈섬 내부의 건물과 시설물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이리저리 휘영청 종횡하는 부두 시설들이 보여주는 리드미컬한 곡선들과 시퍼런 바닷물 역시.

 

 

 

중간에 잠시 녹색빛 가득한 공원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하고.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는 공원 투어가 있을 정도로 공원이 많다고.

 

 수백척의 요트가 대규모 공용주차장의 차들처럼 빽빽히 열맞춰 주차되어 있는 정박장을 지나고.

 

 

 어느새 이만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야외전시물들이 놓인 새초록 잔디밭 너머로는 붉은 금문교가, 앞으로는 개장수 아저씨가.

 

 

자전거 전용도로의 방향을 일러주는 표지판, 바닷바람에 지친 듯한 피로한 낯빛이 맘에 들었다. 

 

 돌아보면 생각보다 먼 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금문교까지 닿는 길이 제법 오르막과 내리막이 랜덤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런 사진찍기 딱 좋은 명당들을 마주치는 재미. 그리고 조금씩 금문교가 육박해들어오는 생생한 실감까지.

 

 

 

 시간대에 따라 금문교 위의 통행로를 자전거에 교차해서 오픈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표지판이 이만치 닳았을만큼 오랜 룰인 듯.

 

 

그리고 사진찍기 좋겠다 싶은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바글거리는 사람들. 저 꼬맹이들은 무슨 수학여행이라도 나온 듯 시끌벅적.

 

 바야흐로 금문교 진입 직전. 360도로 크게 회전하는 길 중턱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는 금문교와 함께 한 장.

 

 다리 양쪽으로 나 있는 인도 겸 자전거 도로는 생각보다 좁아서인지,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온갖 규정들이 입구부터 빼곡했다.

 

 

 금문교를 건너다가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풍경. 꽤나 멀어 보이는 게, 자전거로 쉬지 않고 달려도 삼십분은 걸리겠다.

 

 조금 땡겨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No U Turn. 자전거나 보행자를 위한 표지판은 아니고 실은 자동차들 보라는 표지라지만 왠지. 뭔가 계시를 받는 느낌.

 

 굉장히 고풍스럽고 우아한 금문교의 준공기념패랄까나. 청동덩어리를 양각한 듯한 모양새하며 그 클래식한 글씨체까지.

 

 

 

 뭐라더라, 선진시민은 우측통행이라던 어느 정부의 강변과는 상관없이 좌측통행을 하되 대체로 내키는 대로 보행중인 미국시민들.

 

 

 금문교 저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의 군집이 바로 소살리토. 시간만 괜찮으면 저기까지 내달려도 좋을 듯 해서 고민고민하던 중.

 

보통은 저기까지 내달리고는 페리에 자전거째 싣고 피셔맨스워프로 돌아오는 코스를 많이들 탄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금문교 건너편에 도착. 이쪽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나파 밸리의 중심가, 나파 다운타운에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트렌디한 와인샵들과 함께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제법 와인 관련한 아이템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캘리포니아 와인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챙겨먹는 것도 좋을 법한 지점이다. 마침, 11월의 나파밸리는 담쟁이가 익어가는 계절.

 

 점심을 간단하게 먹으려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유명하게 인지도가 높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프렌치 베이커리 앞에서 어마어마하게 늘어선 줄.

 

 

 샵들에서 구경할 수 있는 재미있는 소품들과 와인 관련 아이템들을 구경하면서 이곳저곳에 인심좋게 널려있는 음식들을

 

시음시식하다 보니 딱히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더라.

 

 

 

와인병을 재활용한 생활 소품들도 많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런 그럴듯한 조명 역시 와인병을 그대로 활용한 사례.

 

와인병을 녹이거나 이어붙이거나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상품들도 있었지만 촬영이 금지된 경우도 왕왕 있어 촬영 실패.

 

 

 나파 밸리의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는 와인 트롤리, 저속으로 운전하는 버스라 그런지

 

창문도 없고 관광객들은 모두 탁 트인 창문을 바라보고 옆으로 앉아있다.

 

 

 온통 빨갛고 노랗고, 그리고도 푸릇푸릇한 나파밸리의 가을.

 

 

캘리포니아 와인의 본산 나파 밸리에서는 자전거 보관소도 와인 숙성을 위한 오크통을 재활용해 만들어 놓았다.

 

다운타운에서도 중심가에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가로지르는 길. 골목 곳곳에서 향긋한 와인 향기가 번져온다. 

 

 

  

다운타운 곳곳에서 마주하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집들과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

 

오퍼스 원의 양조장이었던가, 나파밸리의 아름다운 길을 달리며 가이드 아저씨가 알려줬던 커다란 와이너리.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트윈픽스 발치, F라인 전차의 서쪽 종점이기도 한 이쪽 미션Mission 지구 곳곳에는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는 중이다. 그만큼 샌프란시스코의 전향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이 곳,

 

특히나 돌로레스 대성당 어간에서부터 시작되는 발미 앨리Balmy Alley에는 1970년대 이래 진보적 아티스트들이 그렸다는

 

그래피티들이 골목들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평온한 일상이 흘러다니는 깔끔하고 단정한 큰길, 어느 길모퉁이에서 예기치 않게 나타난 전복의 순간.

 

 그리고 골목 담벼락을 온통 활용한 화려하고 입체감 넘치는 벽화.

 

 

비록 살짝 지린내도 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한 구간도 있긴 하지만, 차들이 늘어선 큰길가에도 그래피티의 축복이.

 

1776년에 지어져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랜 건물이라는 돌로레스 대성당의 종탑. 이 위에서라면 울긋불긋하게 단풍처럼

 

번져나간 발미 앨리 지역의 그래피티들의 물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세 차례씩, 2시간 동안 이 곳에 그려진 60-70여개의 벽화를 감상하는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고도 하는데,

 

혼자 돌아다니기보다는 아무래도 대낮 시간에 단체로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는 게 안전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혼자 이 구역을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느꼈다거나 곤란을 겪었던 건 아니고, 워낙 골목마다 숨어있는 그림들이

 

많아서, 잘 아는 사람의 안내가 있었다면 더욱 알차게 돌아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정도랄까. 요런 귀여운 토끼도 놓칠 뻔 했다.

 

 

성긴 철창이 가로막은 건물 외벽에도 누군가의 손길은 여지없이 거쳐갔다. 거대한 연꽃을 타고 있는 부처가 샌프란시스코에 현현했다.

 

 

 

정교하고 잘 안배된 기하학적 무늬가 차고 하나를 통째로 감싸버린 풍경이라니, 작업했던 모습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풍경이다.

 

 조던의 드리블 장면이 붉게 두드러진 농구 골대에 내리쬐던 햇살, 좁다란 골목 양켠에서 형형색색의 색채를 밝힌 그래피티들.

 

 

 

 이름 모를 성당-혹은 교회-옆구리에도 그래피티의 가차없는 스프레이는 비켜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성당의 위신을 고려했는지 만화체로 그려지긴 했지만 예수와 성모..인 듯한 캐릭터들이 독특한 수인을 맺고 있다.

 

 

 사실 벽화보다는 이런 그래피티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좀더 본격적이고 멋진 그래피티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작정하고 캔버스로 벽돌담 벽면을 활용한 듯한, 무려 호랑이와 상어 간의 일촉즉발 격돌 장면.

 

 사실 발미 앨리 아니어도 샌프란시스코의 곳곳에서 숨어있는 벽화, 혹은 그래피티들을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아마도, 카센터의 내려진 셔터에 그려진 그래피티. 이 정도면 나름 상업적인 목적에도 충실하면서 미적인 기능까지 놓치지 않은 수작. 

 

 

 혹은, 뜬금없지만서도 파라오의 토실한 입술이 센스넘치게 가리키고 있는 소화전의 붉은 주둥이.

 

 이 건물은 GLBT 역사 박물관, 그러니까 게이(Gay), 레즈비언(Lesbian),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역사와 투쟁을 담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당당하게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만으로도 뭔가 상쾌하다.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래피티, 혹은 좀더 포멀한 차원의 벽화들. 아래는 작년인가

 

금문교를 배경으로 치뤄졌던 세계 요트대회의 한 장면을 건물 벽면에 재현해 둔 거라고 한다.

 

 

 

 

 

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허름해보이지만 휠까지 말끔하게 페인트를 칠한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무겁게 몸을 실어넣으려는 네팔 아주머니의 몸짓.

 

대체 버스 바닥높이가 왜 이렇게도 높은 거니.

 

그리고 흔하게 볼 수 있던 '소판'. 드넓은 차도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주변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즐기는 중이시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 열대 기후대에 걸맞는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는, 주스 한잔 주문하니 삼십분이 걸렸다.

 

 

포카라 메인로드의 온갖 기념품점의 형형색색 기념품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도 더 구미에 당기던 어느 차안 황금색 가네쉬.

 

길쭉하게 아래위로 잡아뽑힌 얼굴상들.

 

론리플래넷이었던가 어느 유수의 여행매거진에 소개되었다고 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간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 새끼고양이.

 

제대로 서빙이 되어 나오는 네팔의 '달밧'이란 어떤 건지가 궁금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것과 뭐가 다른지.

 

사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히말라야에서 매번 먹었던 달밧들은 제각기 전부 맛있었으니-양이 좀더 많았다 정도?

 

역시나 이런 나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달밧에 한해서는 밥과 반찬이 리필이 가능하다는 것도 소소한 깨달음.

 

일주일이 넘는 트레킹으로 잔뜩 지친 다리에 풋 마사지 한시간을 선사하고 났더니 이제 카투만두로 떠나야 할 시간.

 

그런데 마사지샵으로 들어갈 때부터 눈에 거슬렸던 저 건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절반만 색칠하고, 아니 절반만 지어놓은 걸까.

 

그렇지만 또 돌아보면 은근히 그런 건물이 많다. 저기 저 건물도, 건물 형태 자체도 한쪽이 확 끊겨버린 듯한데다가 페인트칠 역시.

 

그리고, 그야말로 공항으로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포카라 공항. 워낙 작고 활주로도 짧아서 종종 결항이나 딜레이가 발생한다고.

 

그래도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카투만두로 출발.

 

 

# Tip.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왼쪽으로 앉아야

 

히말라야의 새하얀 봉우리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물론 날씨가 맑고 구름이 걷혀 있어야 조우할 수 있지만.

 

 

 

 

포카라의 페와 호수. 히말라야에서 터져나온 물줄기가 모여 호수를 이루었다는 곳이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에서 해발 8,000미터의

 

즐비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볼 수도 있고, 날이 맑고 좋으면 호수면에 비친 또다른 히말라야 영봉들을 볼 수 있다는 명소기도 하다.

 

 

 

굉장히 커다란 호수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성기게 늘어서서는 관광객들을 맞고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네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빨래도 하고 낚시도 하고, 잠시 그늘에 쉬어가는 생활의 공간인 듯 했다.

 

띄엄띄엄, 뭔가 아직은 본격적인 관광지라기엔 엉성해보이는 배후시설들. 그래도 몇몇 군데 레스토랑은 당장 들어가 눕고 싶은

 

푹신한 쿠션이나 해먹을 걸어두고 있었다. 모히토 같은 거 한잔 하면서 한나절 빈둥대기에도 좋을 법한 곳.

 

 

아니면 저 산봉우리, '사랑곳'이라는 이름의 1,500여미터 고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도 시도해봄직하다. 쉼없이 산봉우리에서

 

낙하하는 분분한 낙하산들.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뒤로 한채 휘적휘적 바람을 타며 내려오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다.

 

 

페와 호수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힌두교 여신을 모셨다는 바라히 사원이 세워져있다고 한다.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빌려타기로 하고 가는 길에, 거리의 악사가 잠시 내려둔 네팔 전통 현악기와 타악기를 보았다.

 

현악기의 경우에는 그다지 맑거나 이쁜 소리는 아니고, 좀 탁하고 텁텁한 소리가 났던 거 같다. 튜닝장치도 좀 엉성해보이고.

 

 

 

호수변을 따라 좀 걷다보니 나타난 선착장. 배들이 전부 여기다 모여있었다.

 

 

선착장에서 배를 한시간 빌리고, 코스는 가운데의 조그마한 섬을 돌아보고 호수를 크게 한번 돌아보는 걸로 잡았다.

 

뱃사공이 포함된 요금은 400루피, 한국돈으로는 대충 4천원쯤인데 그에 더해 구명조끼 대여 비용도 개당 20루피.

 

  사랑곳 너머 새하얗고 두툼한 구름이 잔뜩 깔려있어 보이지 않지만, 저쪽 방향이 히말라야의 하얀 만년설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늘이 맑고 구름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호수면에 그대로 반사되어 멋진 풍경이 보인다던데.

 

바라히 사원이 세워져있는 페와 호수 가운데의 조그마한 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원에서 기도도 할 겸 더위도 식힐 겸 들어왔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는 바나나나무가 길거리에 왕성하게 자라나있는 열대기후에 가까운 지역이다. 얼마전까지 안나푸르나에서

 

밤새 추위로 떨었던 걸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만큼의 온도차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섬을 꽉 채우다시피한 바라히 사원의 모습들.

 

힌두교도로서 하루를 맞을 때 신을 경배하는 의미로 이마에 새기는 빨간 꽃장식을 한 아저씨와 아이가 호숫가로 나왔다.

 

그리고 바라히사원의 중심탑. 왜 그리도 비둘기가 많던지, 그 녀석들이 푸드덕거리고 사방으로 종횡무진 날아대는 통에 시껍했다.

 

호숫물도 왠지 색깔이 혼탁해보이고 지저분해 보여서 뭐가 살기는 하려나 싶었는데, 팔뚝만한 고기떼들이 섬 주변에 잔뜩 몰렸다.

 

 

바라히 사원에서 소원을 빌고 향을 올리는 사람들. 스스로의 이마 가운데에 붉은 꽃잎을 묻히듯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들에도,

 

그리고 신들의 조각상들에도 온통 붉은 꽃잎이 핏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섬 주변을 에워싼 안전망 너머로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조그마한 꼬맹이가 위태롭도록 올라가서는 수면을 바라보느라 정신없다.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와 팔바티의 아들, 가네쉬의 신상. 실수로 아들의 목을 베어버린 파괴의 신 시바가 급한 대로 지나던 코끼리의

 

얼굴을 대신 붙였다는 신화가 바로 가네쉬가 코끼리 형체를 가진 신으로 정형화되는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섬의 부둣가에서 신에게 바칠 꽃을 팔고 있는 여인, 그리고 맞은편 부두에서 섬을 향해 순례하러 오려는 수많은 사람들.

 

 

바라히사원에 마지막으로 눈길을 주고는, 다시 보트에 올라타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호수를 한바퀴 크게 돌아볼 차례.

 

내가 탄 보트도 다른 배에서 보면 저런 모양새인 거다. 나와 가이드는 샛노랑 형광색의 구명조끼를 입었고, 사공은 노를 젓는다.

 

  혹은 단체의 경우 저렇게 그늘막이 드리워진 배를 타기도 하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빛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왠지 집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직접 타면 그다지 운치는 덜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호수의 맞은편, 굉장히 울창한 숲이 호숫가에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가끔 원숭이나 사슴떼들이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한단다.

 

호수 수면위에 온통 둥둥 떠다니는 풀떼기들 때문에 아무래도 호수가 더럽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수면을 뒤덮은

 

해파리떼같은 부레옥잠들도 제법 이쁜 꽃을 틔워낸다. 연보랏빛의 하늘거리는 꽃잎, 진흙 속에 뿌리박은 연꽃이나 부레옥잠 꽃이나.

 

 

 

이 드넓은 페와 호수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어업이라고 해야 하나. 배를 가지고

 

이렇게 관광객들을 유람시켜 주기도 하고, 팔뚝만하던 그 물고기들을 잡아서 팔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사랑곳. 왠지 한국어와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로맨틱해보이는 이름이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영어로는 Sarangkot이라고 쓰던, 저 산봉우리를 언제고 다시 찾아서 패러글라이딩을 꼭 해봐야겠다는 다짐.

 

 

 

한시간을 꽉 채운 뱃놀이가 끝나고 다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

 

커다란 호수 곳곳에 흩어졌던 배들이 제각기의 궤적과 페이스로 선착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배들을 꽁꽁 동여매서 배다리를 만들면, 이곳에서부터 바라히 사원이 있는 조그마한 섬까지 금세 이어져서는

 

사람들이 다니기도 훨씬 편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생각보다 다양한 원색으로 두텁게 칠한 보트들이 이쁘다.

 

그 작은 보트가 미어지도록 사람을 태우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도 있다. 보트 허릿춤이 거의 물살이 찰박거리도록

 

가라앉아서는 묵직하게 나아가는 보트. 저분들은 전부 바라히 사원에 기도하러 가시는 현지분들인 듯.

 

 

 

 

 

 

시욜라바자르에서 눈을 뜬 아침, 마치 신기루처럼 멀리 보이는 마차푸차레의 두갈래 봉우리. 그러고 보면 굉장히 많이 걸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부지런히 내려와 꼬박 이틀동안 걸었으니 산봉우리가 저만치 밀려날 만 하다.

 

 

이제 두시간여 나야풀까지만 걸어가면 거기서부턴 택시를 타고 한시간, 포카라로 들어가 조금 돌아보고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니

 

사실상 두시간 정도 후면 트레킹도 끝이다. 왠지 헛헛한 마음으로 롯지 근처를 둘러보며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즐기는 중.

 

조그마한 키의 주인 아주머니도 진한 홍차를 한잔 들고 나와 아침의 선선한 공기를 즐기시는가보다.

 

롯지 안의 부엌과 여차하면 침대로도 쓸수 있는 식당의 의자들. 실제로 성수기에 방이 모자라면 식당에서 자기도 한다고.

 

 

커다란 물고기 모양의 방키가 나란히 걸려있고, 네팔어인지 티벳어인지 글씨가 쐐기문자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색색의 깃발들.

 

오늘은 얼마 걷지 않을 테니 간단하게 아침식사. 마치 공갈빵을 닮은 구릉족의 전통빵과 벌꿀.

 

아무래도 물자가 귀하고 조달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플라스틱 의자같은 것들도 이렇게 수리해서 쓰는 동네다.

 

이제 마지막 여정을 완수하러 다시 출발. 지붕만 덮인 비닐하우스 너머로 평탄하고 여유로운 길이 계속 이어진다.

 

길을 막고 선 송아지가 혀를 빼물고는 달려들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뭔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광우병은 아니겠지 싶기도 하고.

 

트레킹 코스 옆의 허름한 가건물같은 상점에서 과일을 파는 꼬마애들은 자기들이 강에서 잡았다며 '피시~피시~' 이런다.

 

길은 중간중간 히말라야에서부터 터져나온 물줄기로 흠뻑 젖고 잠기고 끊기기도 한 제법 도전적인 오프로드길.

 

 

트레킹 첫날 점심을 먹었던 비레탄티. 이곳에서 트레커 카드와 TIMS카드를 검사받고 체크인을 했었는데, 꼬박 8일만에 체크아웃.

 

아저씨가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는 어디까지 갔다왔냐며 활짝 웃어준다.

 

비레탄티에서 나야풀로 걷는 길은 트레커들을 위한 장비점들, 그리고 온갖 조잡한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와중에 눈길을 끈 장면. 말그대로 '닭장차'에서 닭을 사려는 아주머니가 날갯죽지를 잡고 거침없이 끌어당기는 모습.

 

신기하게도 박스 안에 담긴 닭은 더이상 저항도 하지 않고 날개를 늘어뜨린 채 얌전하다.

 

 

나야풀 즈음에서, 그러고 보니 내가 딱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빨노파의 트레커들이 장비를 챙기고 이제 출발하려나보다.

 

그리고 나야풀에 거의 도착할 즈음 가이드가 잡은 택시 한대. 이제 안나푸르나 푼힐, 그리고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끝.

 

용수철 소리 삐걱거리는 자동차의 쿠션에 감탄하며 몸을 편히 뉘인 채 잠시 가던 중에, 차도 역시 히말라야에서 터져나온

 

물줄기들로 잡아먹힌 구간들을 지나게 되어 그야말로 오프로드 체험을 방불케 했다. 저런 길을 지프도 아니고 소형차로 막 건너고.

 

그렇게 나야풀에서 포카라로. 포카라에서는 페와호수를 둘러보고 카투만두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총 10일동안의 휴가, 직행비행기가 아니라 오갈 때 근 12시간-15시간을 소요하고 남는 시간은 거의 전부 트레킹에 썼던 휴가.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타서 오가며 시간을 아끼고, 그렇게 남긴 시간으로 조금 포카라와 카투만두를

 

둘러볼 수는 있었지만, 트레킹에 근 7일을 꽉 채워 할애한 셈이다.

 

 

 

 

 

 

 

 

 

 

이제 거의 7-8일에 달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정확하게는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한 일정의 대단원에 도달하는 즈음.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하룻밤 묵고 나면, 내일아침에 두어시간 더 걸어서

 

나야풀까지 가면 트레킹 코스의 끝에 닿는 거다. 한층 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2,000미터 아래로 내려온지라 경사도 훨씬 완만해졌고 길도 편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나무 가지를 줄넘기삼아 깡총거리는 꼬맹이의 표정도 위에서 만났던 소년소녀들보다 훨씬 밝아보이는 것 같고.

 

 

한쪽으로 산비탈이 상당한 이런 좁고 오르내리막하는 길조차 이제는 굉장히 편하고 다정다감한 길로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도 훨씬 유속이 느려졌고, 트레킹 코스와의 낙차도 그리 크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걷기도 재미있고, 중간에 고삐풀린 염소떼들이 온통 길을 점령하고는 시끄럽게 훈계질하는 것도 듣고.

 

 

중간에서 만난 또다른 염소떼들은, 사람을 겁내면서도 잰 걸음으로 자기들 헛간으로 들어가느라 바쁘다.

 

 

안전한 집으로 일단 피신하고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사람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삐죽삐죽 고개들만 빼밀었다.

 

차가 다니길래, 시욜리바자르에 다 왔는가 했다. 그게 아니라, 사륜구동 지프차는 여기서부터 다닌다고 한다. 비정기적으로 다니는

 

지프인데, 시욜리바자르나 나야풀까지 간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걷는 길은 좀 비포장된 시골길이랄까, 차가 다닐만한 널찍한 길.

 

 

그래봐야 다랭이논을 이쁘게 정돈해서 빡빡한 생업에 힘쓰는 건 산 아래나 위나 똑같고, 자유롭게 풀린 닭들이 천지사방으로 기웃대며

 

닭털을 풀풀 날리고 다니는 것도 똑같고. 차가 다닌다고 해서 딱히 더 발전된 모습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비포장된 시골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이제야 손님을 다 채운 지프차가 따라잡았다. 온통 물이 범람하고 바윗돌들이 들썩거리는

 

데다가 심지어 저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에는 사람이 그득그득, 뒤에까지 저렇게 매달린 채 달린다.

 

지프를 먼저 보내고 걷고 있다가 만난 네팔의 젊은 아가씨. 등짐을 가득 지고는 맨발로 저런 길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버스. 이제 저 굉음과 악취를 동반하는 쇳덩어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들어왔구나, 확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히말라야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지난 며칠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던 순간.

 

 

그렇게 찻길을 따라 좀 걷다가, 저 강 옆에 모여있는 집들, 시욜리 바자르로 내려가는 샛길로. 그러고 보면 '바자르'란 단어는

 

아랍쪽에서도 시장이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인데, 뜻도 같고 발음도 같다. 그렇다고 저 동네가 무슨 시장통은 아니고 이전에

 

그런 물물교환의 거점 역할을 한 모양인데, 대체 네팔과 아랍,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 어떻게 같은 단어를 쓰는 건지는 신기할 따름.

 

 

 

시욜리 바자르에 도착,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그동안 잘 인도해주고 챙겨줬던

 

가이드 커멀과 맥주를 한잔 나눴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이야기며,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치하,

 

그리고 나중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해주겠다는 약속까지.

 

진짜로, 영어와 한국어와 네팔어와 인도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가이드, 게다가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

 

아무리 네팔 사람들이 순하고 밝고 착하다고는 해도, 이런 가이드는 흔치 않다.

 

우리가 함꼐 나눈 맥주. 독일 맥주던가, 투벅의 공장이 네팔에 있다고 한다. 제법 맛도 좋고 값도 무지 싸고.

 

그가 내 무릎에 압박붕대 대신 감아줬던 그의 손수건. 마치 깃발처럼 그의 방앞 빨랫줄에 얌전히 내걸렸다.

 

그렇게 깊어가는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 이제 다음날 아침 두시간 정도만 걸으면 트레킹도 끝이다.

 

 

네팔어로 '파니'는 물, wat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레파니나 타다파니, 혹은 여기 히말파니까지의 지명에 '파니'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특히나 이곳 히말파니는 히말라야의 물, 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곳 히말파니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욱신거리는 무릎을 뜨거운 물에서 좀 쉬게 하고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롯지는 이제 우기가 끝나고 몰아닥칠 트레커들을 위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으로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하고는

 

내리막길로 걸어서 15분정도 걸린다는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은 없고, 앞서 가던 가이드가 물소들이 몸을 담근 저 늪을 두고 온천이라는 소리에 잠시

 

시껍했으나, 다행히도 저렇게 정비되지 않은 물구덩이를 두고 온천이라고 하진 않는 듯 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사정없는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더욱 아파올 무렵, 근 40분 가까이 걸었다 싶던 참에 비로소 강물 옆으로 나타난 온천 건물.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둥 박아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놓은 정도지만 저 정도만 되어도 기대 이상이다.

 

너도나도 재빨리 옷을 벗고 최소한의 복장만 갖춘 채-함께 내려가던 일행 중에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콸콸 쏟아지는 온천수로.

 

강물이 이렇게 거칠게 흐르는 산골짜기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으니 롯지에서 여기 온천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험했던 거다.

 

 

그 와중에 먼저 와서 실컷 즐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예수처럼 생긴 서양 아이 하나. 그러고 보니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벌렁 누워 가방에 꽂힌 우쿨렐레를 연습하던 그 녀석이다. 여성 앞에서도 거침없이 덜렁덜렁 지나가는,

 

그리고 여성 역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그 쿨함과 자연스러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옆에서는 두번째 탕을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 같은 대머리 할아버지랑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두 명이서

 

언제 다 지어질까 싶은 네모난 탕을 만들려는 듯. 물은 뜨겁진 않고 따뜻한 정도, 그치만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린다.

 

굳이 하나 더 짓지 않고 하나 갖고 복작복작하는 게 왠지 더 이곳의 분위기에는 어울릴 거 같은데.

 

점심으로 나온 볶음면. 다시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역시 30분이 넘었던 듯 하고, 올라오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조금 나아진 듯 했던 무릎도 다시 아팠지만, 그래도 한번 꼭 들러보길 강력히 추천하고픈 히말파니의 온천.

 

 

한결 개운해진 몸과 가벼워진 무릎으로 한참을 걸어 가던 참에, 이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거워 쉬엄쉬엄. 나오는 마을이나

 

롯지마다 한번씩은 앉아서 땀도 식히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했던 것 같다. 챙겨간 볼펜을 줘도 좀체 웃지 않던 요 꼬맹이.

 

색색의 빨래들이 얹힌 은빛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마당에 편히 자리잡고 앉아 옥수수를 말리는 아주머니의 다부진 머릿수건.

 

 

와중에 굉장히 이쁘게 꾸며졌다 싶던 어느 마을, 간드룩 지방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지천에 사루비아가 넘실넘실.

 

길은 거의 헷갈리거나 잘못 들 염려가 없는 한길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샛길도 나있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친절한 표지판 등장.

 

게다가, 어느 마을에서부터 졸졸 쫓아오더니 아예 앞장서서 인도해주는 길앞잡이 개까지 친절하다.

 

비록 중간에 물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겁먹고선 꼼짝도 못하는 순둥이에다가, 가파른 내리막 앞에선 주춤거리다가 절룩거리는

 

내 다리 사이로 진로방해를 하는 녀석이긴 헀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려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쉬어주는 센스쟁이.

 

그렇게 도착한 큐미. 간드룩 지방의 여러 마을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다음 마을인 시욜리 바자르Syauli Bazar에서부터는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나야풀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코스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7일동안 바퀴달린 거나 엔진같은 동력기관을 본 적이 없다. 왠지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큐미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갈까 아니면 시욜리 바자르까지 예정했던 대로 갈까 고민 시작.

 

꽃나무도 많고, 롯지 한쪽에서는 이렇게 재봉틀이 발랄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말끔한 마을이어서 꽤나 맘이 동했지만

 

그래도 온천빨이 아직 남아있으니 좀더 걸어두기로 했다.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저녁 먹고 자는 걸로 결정.

 

 

큐미에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려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당나귀떼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출현했던 듯한 수많은 당나귀들이 ctrl+c, ctrl+v로 찍어낸 느낌으로 불어나있었다.

 

그 와중에 앞엣놈 엉덩이 냄새를 맡는 놈도 있고, 괜히 대열을 벗어나 사람들에 흥미를 보이는 녀석도 있고.

 

그러고 보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게 하산길 초입이니 이틀째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걷고 있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아침 일곱시반쯤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점심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들을 빼더라도 대략 열시간 내외 걷는 것 같다.

 

 

 

 

여태 들렀던 롯지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어있던 곳이어서 눈여겨 보았더니, 자매만 셋인 집이었나보다. 나름 한껏 치장하고

 

포즈를 잡은 사진들을 벽면에 잔뜩 붙여두었는데, 히말라야의 녹색 풍경 속에서 문득 현란한 색감을 마주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제는 마차푸챠레 봉우리도 등지고 안나푸르나도 등지고, 정말 산에서 내려간다는 실감이 팡팡 나는 내리막길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곱시 반부터 출발해서 조금 걷지 않아 무릎이 절룩거리길래, 중간에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려던 참.

 

꼬맹이들 둘이서 끈을 잡고 앞뒤로 살살 흔들어대는 뭔가가 흥미를 잔뜩 돋궜다. 뭘까.

 

따뜻한 담요로 꽁꽁 싸매어진 그것은 바로 갓난아이가 담긴 포대기. 눈까지 푹 내리씌운 자줏빛 모자가 귀엽다.

 

저런 식의 한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요새 히말라야 트레킹을 오는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겠다.

 

이제 햇살도 다시 완연히 뜨거워졌고, 왠지 초록빛들도 훨씬 더 싱싱해진 느낌. 멀리 새하얀 봉우리가 꿈만 같다.

 

 

 

시누와 아랫마을부터는 물소도 보이고, 당나귀도 짐을 싣고 다니고. 시누와가 그 마지노선이라고 했었다.

 

내리막이라고 마냥 내리막길만 있는 건 아니다. 꼬맹이들도 애기를 업고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기도 하고.

 

 

그리고 트레킹 길을 관통하며 세워진 '굉장히 큰' 상점. 거의 히말라야 최대의 대형마트 수준인 거다 이정도면.

 

술도 팔고 담배도 팔고 과자와 물과 등산화와 스틱, 수건에 필름, 건전지, 약품류까지. 없는 거 빼놓고 없는 게 없는 상점.

 

 

 

그리고 촘롱에 도착해서 일단 맥주부터 한잔. 아침 6시반부터 열심히 오르내리막, 전반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걸었더니 몇시간

 

걷지 않아 땀이 흠뻑 나버렸다. 아무래도 아래로 내려올수록 기온이 확 올라가는 게 체감될 정도로, 가파르게 하강 중인 거다.

 

맑은 날에는 촘롱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와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보인다더니, 정말 선명하게 두개 봉우리가 보인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만년설로 덮인 날카롭고 위태로와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

 

다리가 아파 더이상 못걷겠다는 어떤 트레커는 이제부터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하고 백마를 호출했다.

 

 

잠시 쉬고는 다시 출발, 닭들을 쫓으며 노는 아이를 지나기도 하고.

 

노랗고 빨간 무늬의 수건이 높은 바람에 펄럭이는 제법 '대문'이란 것도 갖춰놓은 집을 지나기도 하고.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바싹 당겨 관찰해보기도 하고.

 

푼힐 전망대쪽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는 반대쪽 길로.

 

 

층층이 그 육중한 무게감과 부피감을 과시하는 산의 옆구리들. 그리고 그 모든 굵직한 주름들 너머로

 

짙고 두터운 하얀 구름을 피워올리며 홀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 일출을 보고, 조금더 안나푸르나 쪽으로 걸어보기도 하면서

 

훌쩍 지나버린 아침시간. 이 풍경들을 이곳에 놓고 와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길이다치면 빈틈없이 내 옆에서 길을 안내해주고 여기는 어디, 저기는 어디, 안내해주던 훌륭한 가이드 커멀.

 

그를 먼저 내려보내고는 거의 한걸음에 한 장씩, 이 멋진 광경을 꼭꼭 새겨두리라 다짐하며 셔터를 눌렀다.

 

 

 

 

 

 

같은 듯 다른 사진들. 뭐하나 차마 버릴 수가 없던 디테일들.

 

그렇게 겨우 숙소까지 도착해서는 지난 밤 덜덜 떨며 비몽사몽간에 홀로 지새운 휑뎅그레한 삼인실 방을 정리하고는 하산 시작.

 

그새 구름을 잔뜩 뿜어낸 안나푸르나. 구름이 어디선가 흘러와서 덮는 게 아니라 산 스스로가 만들어내어 덮는 느낌이다.

 

 

어제에 비해 훨씬 맑아진 하산길의 시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길 위로 강렬한 햇살이 빗겨들었다.

 

이제는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선연하다.

 

몰랐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게이트의 뒷면에는 이런 따뜻한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그새 풍성해진 구름 틈새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가 손을 흔들어주는 듯 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듯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는 길. 전날 오후에 짙은 안개 혹은 구름 속을 헤치며 왔을 때는 몰랐던 풍경이다.

 

 

회색빛 강을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두시간이 채 안되었을 즈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를 지나고 데우랄리를

 

지나고, 어느덧 4,120여미터의 고도에서 3,000미터 어간으로, 다시 2,600미터 어간의 도반까지 내려왔다.

 

달밧으로 점심을 먹고,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다리를 좀 주물러주다가 다시 출발.

 

사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두개의 스틱을 잘 써서 거의 네발짐승처럼

 

빠르고 안전하게 산을 오르긴 했지만, 하루 열시간을 넘나드는 오르내리막의 산길을 6일째 쉼없이 걷다보니 아마도 무리했던 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이 서로 통증을 호소하며 자기가 더 아프다고 경쟁하더니, 왼쪽 무릎으로 모든 통증이 옮겨가는 걸로

 

정리가 되어서는 발을 내리딛을 때 거의 도가니가 찢겨가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절룩거리며 왼발을 제외한 세 다리로 하산 재개.

 

그래서,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해발 2,360미터의 시누와까지 내려오기까지는 카메라도 가방 안에 넣고

 

무사히 내려오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특히 점심 먹고 이후의 코스가 꽤나 가파르고 험한 돌밭이어서 조심조심.

 

그래도 무릎에 맨소래담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네팔 현지 연고를 바르고 손수건을 압박붕대삼아 칭칭 감고 걸으니 좀 괜찮은 듯 하여

 

여지없이 열시간 가까이 걷는 하루를 이어갔다.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시누와 동네 사진 한장. 트레킹코스를 따라

 

길게 형성된 롯지들의 군집. 그게 시누와를 포함한 다른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마을들이 생겨나고 커지는 방식인 듯 싶다.

 

 

저녁은, 두둥. 어느 롯지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Noodle' 메뉴 중의 하나, 'Korean shin lamen noodle'. 심지어 한글로 '신라면'이라

 

적혀있기도 하길래, 대체 맛이 어떠려나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았는데, 면발이 꼬들꼬들하고 한국보다 더 매콤하니 맛있었다.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등산길보다 하산길은 훨씬 빠르게 주파하는 중이다.

 

올라올 때는 근 이틀이 소요되었던 구간을 하루만에 내려와버린 셈이니. 다리가 안 아팠다면 훨씬 빨리 내려올 수 있었을 듯.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그곳에서 올려다본 안나푸르나 산봉우리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산줄기들은,

 

하얀 색과 검은 색이 어우러졌을 때 도달할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w/ Pentax K-5, 15mm limited lens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히말라야 캠프는 2,920미터, 점심은 3,700미터의 MBC, 그러니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그리고 저녁은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먹기로 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길, 정점을 찍는 날이다.

 

바깥이 시끌벅적하길래 눈을 떴다. 맹렬한 추위로 뼈마디가 온통 굳어버렸고 무릎도 발가락도 온통 아프지만, 일단 카메라를 쥐고

 

밖으로 뛰쳐나왔더니 맑은 하늘에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보인다. 밤새 비가 오더니 그래도 아침만 되면 용케 비가 그치니 다행이다.

 

 

위풍당당하게 출발, 기온이 확실히 떨어져있어서 옷을 좀 두껍게 입을까 하다가 어차피 계속 걷다보면 열이 오르고 땀이 나니 패스.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있는 거대한 동굴. 비가 오거나 하면 잠시 앉아 쉬어가며 구름바다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렇게 오르막 일색인 것도 아니고, 적당한 경사의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그리고 중간중간

 

날 듯이 걸어갈 수 있는 평지 구간도 안배되어 있다.

 

 

걸어가면서 점점 눈에 잘 띄는 삼각뿔 모양의, 마치 피라미드 같은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

 

얼마 가지 않았다 싶은데 벌써 시야에는 다음 마을, 데우랄리가 보인다. 해발 3,200미터상의 마을이자 그 위로는 단지 ABC와

 

MBC만을 두고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이기도 하다. 각기 안나푸르나(7,200여미터)와 마차푸차레 등정(7,000미터)을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ABC와 MBC 그 두개는 딱히 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니깐.

 

 

물살은 한결 더 급하고 격하고, 유량도 많다. 최근에도 이 곳에서 한국 트레커가 한 명 실족해서 사망했던 일이 있었을 만큼,

 

잠깐의 방심이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곳이다.

 

 

데우랄리에 도착했을 즈음, 하늘은 더 없이 파랗고 햇살은 정말 눈부시다. 자외선지수도 엄청 높을 테니 잠시 앉아 쉴 때마다

 

선크림을 챱챱 발라주고, 안경 대신 렌즈에 선그라스를 끼고 다니기를 정말 잘했다고 실감하는 하늘이다.

 

 

잠시 앉아서 땀도 식히고 물도 좀 마시고 나서는 다시 출발. 이제 마차푸챠레와 안나푸르나가 코앞이라고 하니 없던 기운도 솟는다.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 햇살 속에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갈라진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신기루처럼 둥실 떠 있다.

 

 

그리고, 데우랄리 위쪽으로는 계속 걷기 무난한 코스가 이어지고. 사실 촘롱으로 들어선 이후로 그렇게 길이 험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던 거 같다. 푼힐 전망대쪽에서 촘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제일 어려웠던 듯. 정확하게는 타다파니에서 촘롱 구간.

 

 

 

양쪽으로 봉우리가 우뚝 솟아난 틈새, 그 협곡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길이다.

 

 

한쪽으로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서 내리는 듯한 회색빛의 시냇물이 요란하게 흐르고, 한쪽으론 제법 평평한 공간에 꽃들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새하얀 암벽. 히말라야의 숨겨진 비경이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가 드디어 시야에 잡히다.

 

 

고도가 높으니 나무같은 것들은 안 보인지 오래. 키작고 조그마한 식물들이 빽빽히 들어찬 초원이라고 해야 하나.

 

 

왔던 길을 돌아보니 구불구불, 길이 참 이쁘기도 하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해발 3,700미터 고지다. 아침에 먹은 갈릭수프 덕분인지 고산병의 징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전에 막 새로 단장한 듯 말끔한 페인트칠에, 어라, 벽면에는 이러저러한 기하학적 문양까지 새겨넣었다.

 

그리고 눈이 멀도록 새하얗고 강렬한 태양. 기온은 서늘할 정도로 낮은데 햇살은 찌르는 듯 따가운 그런 기묘한 느낌.

 

마치, 왼발은 찬물에 오른발은 뜨거운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거침없는 오르막길, 그 문턱에 있는 시누와. 시누와까지만 당나귀나 물소가 다니고 그 위로는

 

사람만 등짐을 메고 다닐 뿐이라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의 습격도 없고 당나귀 똥밭도 없긴 하지만, 또 그래서 시누와 위쪽으로는

 

미네랄 워터를 팔지도 않고 그저 끓여서 정제한 물만 판다는 단점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물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있고.

 

시누와를 지나 2,310미터 고지의 밤부Bamboo에 다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밤부, 맞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게 꽃나무고 풀떼기들인데도, 이렇게 플라스틱 케이스를 재활용해서 롯지 곳곳을 식물로 꾸며놓았다.

 

롯지 앞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대나무숲, 사람들이 몇명 들어가서 대나무를 베고 죽순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미 슬쩍 소슬해질 만큼 낙차가 느껴지는 기후, 맨땅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워져서 꼭 저렇게 양털가죽을 깔고 앉으라

 

말해주는 세심한 가이드, 그 덕분에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달밧을 시켰는데 반찬이 색다르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더니 밑반찬도 대나무 속대로 만든 요리. 맛있었다.

 

 

다시 배를 채우고 출발, 해발 2,920미터 고지의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대충 500미터 어간을 올라야 하는 셈.

 

체코에서 오신 70대 노부부의 페이스에 맞춰서 살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가이드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은 역시나,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가. 무작정 서두르고 다그치며 오르는 한국인들이 많은가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옆에서 대나무 속대를 채취해서는 다듬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등짐을 메고 이마로 끈을 버팅기며 저 무거운 가스통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

 

 

앞의 체코 노부부를 챙기는 가이드도 굉장히 살뜰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을 지날 때는

 

원, 투, 쓰리, 발 딛을 곳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줘가며 인도해주고, 어떨 때는 이렇게 힘껏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아무리 봐도 네팔어는 참, 저 글자를 어떻게 쓰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쓴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점점 안개인지 구름이 휘감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경사도는 완만해질 줄 모르고 끝없이 오르막인데다가 짐은 무겁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들, 급류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과 온통 초록초록한 가운데 점점이 뿌려진 꽃송이들.

 

그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히말라야 캠프. 2,920미터의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이제

 

세개 포스트 남았다. 데우랄리,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인 왕궁, 그 거대한 정사각형 형태의 성벽 외곽으로 한바퀴를 돌고 나니 이제는 안으로 돌아다녀볼 차례.

 

 

 

반질거리는 대리석 바닥은 근 이천년 가까이 숱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쓸려 광택에 광택을 더했음이 틀림없고, 온통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들의 위로는 그 오랜 세월의 현현인 것처럼 두텁고 육중한 벽돌들이 벽을 이루고 공간을 쌓았다.

 

 

 

두터운 외벽과 내벽 사이의 공간, 이 빈 틈새로 수백년이 지난 폐허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거처를 구하고, 그렇게 잊혀졌던 곳이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스플릿과 이 왕궁이 주목을 받은 건 1차 세계대전 시기 항구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라고.

 

 

여전히 골목은 말그대로 미로와 같고, 곳곳에서 막다른 길 앞에 나를 멈춰세우지만, 그렇게 잠시 잦아든 발걸음 앞에 놓인 게

 

이런 비감하면서도 다정한 풍경이라면. 저런 대리석 받침은 대체 몇백년을 이곳에 버티고 있던 걸까. 누가 저리로 옮겨놨을까.

 

 

빼곡히 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과 골목 사이를 뱅글뱅글 감아나가다 보면 그래도 곳곳에서 확 숨이 트이는 광장들을 만나게 된다.

 

동상 너머로 온통 벽을 지탱하기 위한 조임쇠들이 벽면 곳곳에 박혀 있는 오랜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저건 무슨 행정관청이었으려나.

 

 

 

 

광장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골목들을 따라 둥둥 흘러나온 사람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건물들과 대리석에 눈이 부신다.

 

 

 

 

 

 

스플릿의 수산시장, 바다에 바로 접한 대로의 반질거리는 대리석 위로 생선 비린내가 바다향기를 짙게 풍긴다.

 

 

이 곳에 풍부한 해산물들, 그 중에서도 집게 달린 이 새우로 만든 요리들은 뭘 먹어도 맛있었던 듯.

 

 

바다를 옆으로 끼고 걸어가는 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거대한 옛 궁전에 기대어 지어진 까페와 주택들을 바라보며

 

바다냄새 나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던 아저씨는 잠시 그늘로 숨어들었다.

 

 

이 곳에 보이는 벽들은 모두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의 남쪽 벽면이다. 폐허로 남겨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살기를 몇백년.

 

 

이제는 이런 쌍둥이 꼬맹이들도 보라색 옷 때깔 맞춰입고 찾아올만큼 유명한 유적지로 남았다.

 

 

거의 이천년이 다 되어가는 로마황제의 거대한 개인 궁전, 한참을 버려졌던 이곳엔 이제 유리창도 에어컨도 끼워맞췄다.

 

 

성의 동쪽 외벽에 기대어 펼쳐진 재래시장에선 올리브유니 꿀이니 채소니 과일이니 온갖 것들이 주섬주섬 펼쳐졌고.

 

샘플 하나씩을 뚜껑에 달고서 갖가지의 크기와 색깔과 모양을 뽐내는 단추들.

 

꽃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했다. 알고 보니 꽃 위에다가 락카를 뿌린 건지 어쩐 건지 퍼렇게 뻘겋고.

 

비닐로 몸을 둘둘 대충 감아둔 돼지 서너마리가 통으로 매달린 정육점.

 

 

 

그리고 머리까지 고스란히 붙은 채 생전의 모습과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닭고기들. 이건 설마..채식을 유도하는 고도의 장치?

 

 

색색의 바지들과, 과하게 가슴과 엉덩이를 튕겨낸 마네킹들. 허리에서 에구구 소리나는 것만 같다.

 

핏물처럼 붉은 과즙이 흐르던 블러드 오렌지.

 

 

그리고 다른 곳보다 좀더 많이 허물어진 성벽을 바라보고 선 성당 하나.

 

예수의 12길이 굉장히 강렬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진 인상적인 모습들을 한바퀴 둘러보니 마음이 써늘해졌다.

 

아마도 옆가게로 수다떨러간 주인아주머니 대신 노상의 꽃가게를 지키고 선 고양이 두마리. 한마리는 벌써 지겨운지 기지개다.

 

 

 

네모 반듯한 왕궁의 외벽을 따라 바깥 풍경을 한 바퀴, 벌써 남문과 동문을 지나 북문으로 향하는 참이다.

 

 

그리고 북문에서 만난 마법사 같은 차림의 거대한 동상 하나. 10세기 크로아티아의 주교였다는 닌스키의 동상이라나.

 

 

라틴어 대신 크로아티아 어로 예배를 보도록 했던 그의 의도에는 무심한 관광객들은, 문지르면 복이 온다는 그의

 

엄지발가락만 반질반질거리도록 쓰다듬고 떠나버렸나 보다.

 

스플릿의 구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왕궁을 굽어볼 만큼 거대한 그의 모습, 그리고 저 역동적인 어깨와 손가락 놀림은

 

왠지 모를 위압감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표정도 너무 진지해보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벽을 따라 돌면서 발견했던 가장 흥미롭던 장면 하나는 이 클래식 포크스바겐.

 

양쪽 어깨에 높은 건물을 올려둔 좁다란 골목 안에 짙게 배인 그늘을 벗어나던 샛노란 차로 향한 카메라를 의식했다.

 

문득 멈추더니, 다시 슬슬 뒤로 후진해서는 촬영할 준비를 하라며 손짓을 한다. 빵 터져서 웃고는 오케이, 손짓하니

 

살금살금, 대리석을 즈려밟으며 한바퀴 한바퀴 우아한 워킹. 양팔을 쭉 뻗어 하트 한번 그려줬더니 그쪽 역시 빵 터졌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벼룩시장에서 조우한 구 소련제 필름카메라. 무려 77년산 Zorki 4K, 렌즈는 Jupiter8 2/50. 대체 제대로 찍힐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 야무지고 단단한 외관과 가죽내음 흠씬 나는 케이스가 맘에 들어 지르고 났더니 아무래도 찍어봐야겠는 거다.

 

며칠 후 동유럽의 진주 듀브로브닉에서 기어코 필름을 한 롤 사서는 다짜고짜 테스트 시작.

 

제대로 나오리라는 기대없이 찍었던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건질 만한 풍경이 보였다. (게다가 필름 현상과 인화 비용이

 

왜 이리도 비싼지, 일단 인화까지 마치고 난 사진들은 어떻게든 활용해야 되겠다 싶어서 집의 구리디 구린 스캐너로 스캔까지 완료)

 

설핏 초록빛이 머금어진 듯한 톤다운된 색감이 맘에 드는데, 스캐너가 구려서 그런지 인화된 사진이랑 스캔본이랑 조금 색감에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듀브로브닉의 구석구석 들고 다녔던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이 떠올라서 무조건 만족.

 

 

 그치만 이 사진에서 나온 색색깔의 우산들이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 그래도 스캔이 사진 색감에는 딱히 영향을 미치는 거 같지 않기도.

 

 

 어쨌든,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놀려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발견한 건 가외의 수확인 듯 하다. 현상할 때 먼지를

 

잔뜩 뒤집어씌워서 사진을 망치는 그런 데 말고, 그리고 좀더 싸게 할 수 있는 현상소를 찾아봐야겠다. 게다가 스캔도 해줌 좋겠는데.

 

필름에 담긴 세달 전의 추억들, 필름이 아니라 일종의 단단한 깡통에 아껴둔 기억과 순간들을 열어보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이렇게 석달전, 한달전의 시간을 고스란히 되돌리는 게 필름카메라의 묘미일 듯. 리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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