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차이나타운에서 이십분 정도 남쪽으로 걸어가다보면 나오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 red dot design museum.


매년 디자인이 출중한 제품들에 수여하는 상인 레드닷 어워드를 받았거나 그에 준할 만큼 훌륭한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인데, 아직 한국사람들한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가이드북에도 안 나와있는 듯)



이쁜 빨강색으로 온통 칠해진 맵시있는 건물이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그 건물 전체가 뮤지엄인가 했지만 그렇진 않고, 이렇게 생긴 샵을 포함해 일층을 쓰고 있었다. 샵에도 디자인이


살아있는 제품들을 꽤 많이 전시, 판매하고 있었지만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패스.


샵 안을 둘러보고 이렇게 생긴 문을 지나 뮤지엄으로 입장. 입장료는 성인 8싱가폴달러, 학생 4싱가폴달러.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시품은 이제 꽤나 널리 알려진 이 시계. 한국인 디자이너가 만든 이 시계는 시각장애인들이


시계를 감촉하는 것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계다. 가운데서 뱅글뱅글 도는 쇠구슬이 시침이던가.


그리고 3D 퍼즐형태로 조립분해할 수 있는 반지. 



디자인이 매끈한 자전거다 싶더니 역시. BMW에서 만든 자전거.


목하 국내에서도 대유행중이라는 인디언텐트의 원조. 



눈꽃 모양의 육각형 부품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커다란 전등갓.



싱크대라거나 주방용품에 대해서도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고민은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보관 및 활용이 용이하도록 고안된 물병으로 장식된 한쪽 벽면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입체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디자인된 타일로 꾸며진 한쪽 테이블 위엔 올해의 레드닷 수상작 도록이.


갈수록 기계적 아름다움에 대해 눈이 돌아가는 건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이런 식의 나염이 살아있는 의자라거나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미려한 휠은 누가 봐도 이쁘지 않으려나.



제품들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빙 둘러선 가운데 공간에는 기업 디자인과 포스터 작품들이 전시.



중간중간 한국어도 보이고 한국에서 쉽게 접했던 것들도 보였는데 예컨대 AP통신의 한국어 버전 명함 시안이라거나


NHN의 환경친화적 명함 아이디어 시안이라거나. 


그리고 현대차에서 진행했던 전화기-우산 디자인 아이디어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쓰기 편한 우산, 이라는


컨셉을 생각해 내는 것도, 또 그걸 어떻게 구현시킬지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각종 전시회라거나 공연, 아니면 공공 목적에 부응하기 위한 포스터들. 꽤나 많고 한장 한장 디테일한 설명이 있었지만


몇몇 눈길을 잡아끌던 아이들만 사진으로 담아봤다.


포토그래퍼들을 초대해 강연을 연다는 걸 고려한 포스터. 사진기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피아노학원의 포스터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 블라인드를 피아노 건반인 듯 어루만지는 장면들로 가득.


전쟁과 평화 뮤지컬(인지 오페라인지)의 포스터. 전쟁시와 평화시의 레드크로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만은 한장의 이미지는 백마디 말보다 강력하다.


아동 성폭력이라는 불편하고 어려운 주제를 어떻게 이미지화할 수 있을까. 얼음에 갇힌 꽃이라면 어떨까.


혹은 쇠고랑으로 구속받는 꽃의 이미지라면 어떨까. 


와인의 맛과 향과 색을 포스터에 담고 싶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코카콜라의 광고나 디자인적 요소들은 이미 평판이 자자하지만, 여전히도 이렇게 신선할 수 있는 거다. 워낙 깊이


각인되어 버린 로고 디자인의 일부만을 활용해서도 바로 코카콜라를 연상시킬 수 있는 유려한 디자인.

이건 내가 사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던 아웃도어 용품. 가볍지만 단단하고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


이제 뮤지엄이나 갤러리에서 애플의 제품들이 예술품인 양 전시되어 있는 건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예술 작품처럼 핀 조명을 맞으며 홀로 서 있어도 전혀 주눅들거나 허름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니.


이 시계를 샵에서 팔길래 사고 싶었는데. 돈이 웬수랄까나.ㅋ


그리고 모빌처럼 모양이 변화하는 전등갓. 꽉 오무리고 있을 때도 활짝 열려 있을 때도 빛이 좋다.


스토케(Stokke)의 각종 아기용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BMW의 차량용 베이비시트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대나무로 만든 안경같은 것도 있고.


다소 민망하지만 참신하고 단아한 형태의 성인용품도 전시되어 있어서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GPS기능이 내장되어 지갑의 위치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지갑.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겐 희소식인 아이템.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렇지만 세련된 플루트. 중학교 때 싸구려 모양 플라스틱 단소로 맞았던 기억이 왜 나는 거지.


디지털 저울이 자체에 내장된 여행용 캐리어.


아주아주 매끈하게 생긴 알루미늄 책꽂이. 


해바라기 모양의 샤워기.


집에서 조립해서 쓸 수 있는 컴퓨터. 예전엔 라디오를 조립하는 키트가 있더니 이제 컴퓨터 조립 키트가 파는구나.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꼼꼼히 볼 만한 아이템들이 한 가득. 그래도 세시간 정도면 충분했던 거 같다. 


출장으로 싱가폴을 갈 때마다 자주 들른다는 친구의 이야기로는 전시품들도 규칙적으로 바뀌니만치 갈 때마다


만족스럽다고. 다음에 또 싱가폴 갈 일이 있으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뮤지엄이다.




 

 

코엑스 메가박스 가는 길, 리모델링이 한창인 코엑스 곳곳에서 문닫고 사라져버린 샵과 공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늘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등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고, 마치 이 곳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인양 카메라를 들게 만든 이유.

 

 구간구간 상점들이 빠져나가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이라 살짝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다.

 

그리고 코엑스 메가박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텔레비전 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어느샌가부터 메가박스 옆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생겼다. 도슨트도 상주 중이어서 언제든 들어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지만 알차게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

 

재미지고 발랄한 작품들을 볼 겸, 슬쩍슬쩍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 곳 중 하나.

 

 

 

 

티비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아티스트가 온몸을 기울이며 커다란 화폭 앞뒤로 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며,

 

손끝에서 사방으로 튀던 물감방울이며. 그런 이미지가 그대로 담긴 '드로잉쇼'의 티켓함.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장충동 웰콤씨어터에는 R석과 S석이 있었는데, 앞섶에 앉은 관객들에게는 아예 입장할 때

 

비옷이 제공되었다. 대체 얼마나 물감비가 쏟아져 내리려나, 사방에 마구 흩뿌리는 광란의 분위기가 연출되려나

 

조금 걱정도 되고 묘하게 설레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는 물감 한방울 휘날리지 않는 깔끔한 공연이었다.

 

 

공연 중에는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는 게 공연과 배우와 관객들에 대한 예의염치. 근 한시간반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커다란 그림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사진 촬영 시간을 안배해 주었다.

 

 

굉장히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중 한 명. 대사 하나 없이 보여지는 그림 만으로 극을 끌어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거다. 특히나 그림을 즉석에서 그려내는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완성되기까지, 적어도

 

관중의 감탄을 얻어낼 만큼의 윤곽이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가 관건일 터.

 

 

그럼 틈새를 역동적인 액션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몇 마디 괴성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채워나가는 걸 지켜보는 자잘한 재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즉석에서 그려진 그림들의 선 하나,

 

실루엣 하나가 공연 전반에 흐르는 강렬한 에너지와 역동감이 그대로 담긴 듯 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공연이 있던 웰콤씨어터. Welcome을 왜 굳이 웰콤이라 부르나 했더니 철자부터가 달랐다. Welcomm.

 

 

엉거주춤 선 사람과 쪼그려 앉은 사람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저 그림은, 유머러스하고 명료하면서도 살짝

 

젠틀하다는 느낌마저 전해준다. 왜 쪼그려앉은 사람에게서는 머리에서  저게 나가는 걸까.

 

 

웰콤씨어터 건물 자체도 요모조모 뜯어볼 만한 구석이 많았다. 어느새 길어진 햇살마저 뉘엿거리는 시간대엔 더욱.

 

 

 

다음에 이 쪽에서 공연을 볼 일이 있다면, 저 의자에 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다. 혹은, 아무 일 없이도

 

근처에 들를 일이 있다면 그저 앉아서 책 한권 뚝딱 읽고 일어서도 좋을 듯.

 

 

동대입구역에서 웰콤씨어터까지 왔다갔다 하는 길 위에서 만난 이쁜 건물 장식 하나.

 

 

그리고, 이 날 드로잉쇼를 보기 전 저녁식사로 먹었던 빠네 파스타와 먹물도우 피자.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찍었던 풍경과 공연이 끝난 후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후의 풍경이 워낙 다르다.

 

어쩌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보다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게 더 많은 걸 공감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대체 '부산의 산토리니'는 어디를 말하는 걸까.


부산에 '그리스 산토리니'마을처럼 이쁜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켜켜이 오붓한 마을이 어딘가 있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었었다. 다만 그 어딘가가 정말 어딘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상의 정보가 워낙 분분하고 혼란스럽다고 느꼈던 게,

'부산 산토리니'로 찾으면 '감천동 문화마을, 태극마을, 태극도마을, 영도 흰여울길, 영선동, 이송도 마을..' 등등 굉장히

다양한 지명들이 쏟아져 나온 탓이다. 직접 가보고서야, 그 혼란스러움은 어느정도 정리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부산 산토리니 = 감천동 문화마을, 태극(도) 마을, 감천2동, 감정초등학교 골목..전부 같은 곳을 말함.

부산의 또다른 산토리니 = 영도 영선동 이송도 마을(영도 절영 해안 산책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노닐다가 택시를 타고 '감정초등학교'를 가자고 했는데, 기사분이 잘 모르신다. 왜 그 부산의

산토리니가 있다는 곳 모르세요, 해도 모르신다 하고 자꾸 감천초등학교 아니냐고 되묻기만 하시기에, 손가락을

바싹 여며서 내비게이션에 찍어드렸다. 그리고 도착한 감정초등학교 앞. 이 벽화사진은 이미 숱한 블로그에서

잔뜩 본지라 꼭 많이 와본 곳 다시 방문한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 감정 문화마을, 혹은 '부산 산토리니'의 골목길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출발하기 전 우선 옆에 있는 안내지도 하나 찍어두고 출발. 빨간 길을 따라가는 게 정석이라는데 뭐, 골목길이란 게

가다가 내키는대로 요리조리 비트는 맛에 다니는 거니까 위치 확인만 할 정도로 참고할 생각이다.

문화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건, 산비탈을 따라 쭉 올라세워진 달동네 마을이 낡고 허름해진 위에다가, 예술가들이

채색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조형물도 설치하며 마을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일군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입구는

제법 여기저기에 유쾌한 조형물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있었다.

입구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얼굴 모양의 새, 인면조들.


감천동 문화마을, '부산의 산토리니' 안으로 들어서는 길은 기본적으로 저렇게 생긴 화살표를 따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파스텔톤의 색색가지 물감으로 칠해진 건물 외벽에 절대 놓칠리 없는 크고 작은 화살표들의 무리가 지긋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골목은 좁았지만 말끔했다. 페인트칠이 위부터 아래까지 꼼꼼하게 칠해져 있었고, 골목 양쪽에 마주본 벽면의

색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데다가 여기저기서 쉽게 눈에 띄는 꽃나무들이 분위기를 한결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야트막한 건물 위에서부터 슬몃 기어들어오는 분무기로 뿌린 듯한 햇살까지.

경사는 매우 가팔랐고, 이 곳에 사시는 할머니 몇분이 따뜻하게 덥혀진 시멘트 계단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앞서 걷고 있던 두 여학생들에게 뭐라뭐라 촬영하기 이쁜 데나 전망대를 알려주시는 분도

계셨고, 우리는 찍지 말라며 굳이 자리를 피하려 하시는 분도 계신듯 했으며, 여기 뭐 볼게 있다고 이리들 기어와

귀찮게 구냐고 한소리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렇지만 사진은 말이 없고, 찍고 나면 그뿐. 풍경속 할머니들의

등저리로 내려쏟는 부드러운 햇살이 노곤해 보인다.


낡고 녹슨 사다리가 단층 건물 옥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인 듯 했다. 페인트칠이 잘 되어있는 벽면에 비해

벌써 많이 녹슬고 피곤한 모습이라 눈에 띄었다. 벽을 칠할 때 같이 칠했을 텐데, 생각보다 페인트가 오래 못

버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한번 칠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달동네의 고되고 신산한 풍경에 '산토리니'의

느낌을 부여하고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많은 페인트통이 소요될 거다.


골목을 걷다 어느 탁 트인 시점에서 내려다본 풍경. 다닥다닥, 서로의 어깨를 내주고 모서리를 공굴리며 세워진 집들이라

집 모양이 네모반듯한게 아니라 삼각형, 마름모, 사다리꼴..유치원생들 도형 공부하기 딱 좋겠다. 그런 분방한 집들이 버틴

틈새로 차마 길이랄 것도 없는 골목들이 이리저리 꺽이는 게 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나름 배합에 신경을 쓴 듯 연두빛 분홍빛 파랑빛 페인트들이 골고루 쓰인 집들, 그 사이로 놓인 시멘트

계단을 자근자근 밟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 빛깔따라 조금이라도 화사해졌다면 좋겠다.

감천 문화마을, 이 '부산 산토리니'를 표방한, 혹은 '마추픽추'를 표방한 동네의 또 하나 특징은 온통 전선이 하늘을

달리고 있다는 점. 고작해야 이삼층 짜리 야트막한 건물들이 가파른 비탈 위에서 미끌리고 있는 와중에 우뚝 솟은

갸냘픈 전봇대 위에서 사방팔방으로 뻗는 전깃줄이 한뭉치다.

어느 집 슬레이트 지붕에 살짝 몸을 얹은 채 내려다본 풍경. 완만하게 휘어진 산비탈을 따라 맞은편 등성이에 비슷한

높이에 있는 집들이 보인다. 파란색 물탱크는 하나씩 죄다 옥상 위에 올린 건물들.

저렇게 사람 하나 지나기도 힘든, 지나면서 가방이고 겉옷이고 다 거칠하기 그지없는 시멘트 맨벽에 긁고 지나는

골목길을 품고 있기도 했다. 감천동 문화마을.

전깃줄이 사방으로 뻗은 하늘 아래, 조그마한 공간이 남아 푸른 빛이 맴돌았다. 사람과 건물과 골목이 온통

서로에게 한곁을 내어주고 살고 있는 듯한 풍경이 정겹기도 하고, 살짝 서글프기도 하고. 혹은 운치랄 수도.

빨랫감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여기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고, 골목을 다니며 만나는 건 커다란 카메라를

이고 진 외부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소리없이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런 빨랫줄에

도달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네칸짜리 사다리가 앙증맞다.

여행객들, 관람객들, 관광객들을 인도하는 화살표가 곳곳에서 발견되어 길을 잃거나 엄한 데로 빠지기도 쉽지 않겠다.

굳이 길을 비틀어 다른 곳으로 가도 금세 어디선가 안내를 발견하게 되어 내심 안심도 되고 했지만, 그런 친절한 화살표

아래에도 이 곳의 풍경은 묻어난다. 누군가 내어놓은 쓰레기들, 그리고 누군가 써둔 '재활용 분리바람'이란 문구.

워낙 경사가 가팔라서, 몇개 건물들만 슥슥 지나치면 금방 달동네의 바닥 아스팔트 차도로 내려올 수가 있을 거 같다.

굳이 같은 높이에서 좌우로 돌아보며 이것저것 찾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야, 저런 화살표 무더기들을 보고서

얌전하게 내려온다면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릴 '부산 산토리니' 투어가 될 듯.

그 길위에는 이렇게 아직도 생생하게 보랏빛깔이 살아있는 벽도 있고. 색색이 재미있게 칠해진 공중화장실도 있다.

멀찍이 가파른 옹벽 위로 차곡차곡 놓인 화분들도 보이고. 그 위로 분홍빛 상아빛 페인트칠이 곱게 된 건물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그러고 보면 저렇게 좁디좁은 옹벽 위에 화분을 하나씩 끌어다 놓았을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느 집 앞, 온통 유리테이프와 누렁테이프로 발린 우체통 위에는 북어 한 마리가 제물로 바쳐져 있었다. 가게나 집에

들어오는 입구에 저렇게 북어 한마리를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언젠가 티비에서 생활풍수,

어쩌구 내용이 나온 이후로 어머니도 변기 뚜껑을 잊지 않고 꼭꼭 닫아두셨었다. 그런 마음 아닐까.

이렇게 국자를 재활용한 듯한 풍차도 지붕 위에 얹어놓고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차갑고 거친 시멘트 벽면 위에 스마일 표시가 하얗게 웃고 있는 집도 있었고.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인 것처럼 비탈길 한 면에 위태하게 솟은 다용도 공간. 지붕조차 없는 그 옆면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져 달린 스텐레스 문짝과, 지붕 없이 그냥 흉내처럼 달려있는 문 아닌 문.

이렇게 부분부분 끊긴 채 담긴 사진으로는 감천동 문화마을, 혹은 태극마을, 태극도마을, 혹은 부산 산토리니라는

거창한 수식을 가진 이 마을의 풍경이 오롯이 담기지 않아서 아쉬울 뿐.

옹기종기 모여앉은 장독들, 위에 하나씩 얹힌 돌멩이, 시멘트덩어리, 벽돌 따위 모양과 형체는 다르지만 그런 다름조차

장독대 위에선 별달리 다툴 의미를 잃고 만다. 멀찍이 보이는, 이 골목들을 쏘다니며 사람보다 더 많이 발견했던 가스통.

곳곳에 잘 정비된 깔끔하고 귀여운 색감의 공중화장실이 있단 건 꽤나 인상적인 일이었다. 꼭 방문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가파르고 좁고 불편한 달동네에 사시는 분들에 아주 실용적인 도움이 될 거 같아서다.

그리고 발견한 공부방 하나. 왠지 모르겠지만 일본, 터키, 중국, 프랑스, 베트남, 대만..온갖 나라의 국기가 펄럭이는 벽면,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쓰인 응원의 말들이 발길을 잡았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국기 아래 씌인 문구가 참 좋았는데.

"감천동, 난 너희들이 좋아. 그저 너희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 뿐이야." 미래에 대한 약속도, 현재에 대한 위로도 없이 그저

지금 이순간 함께 하고 싶다는 그 마음만으로 충만한 메시지. 그만큼 솔직하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거 같다.

아마 각국에서 봉사활동으로 왔던 교육 활동가들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그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꽤나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 보이는 '우리누리 공부방' 나무 현판 옆으로 보이는 에펠탑이니 뭐니 글로벌한 풍경을 보니 그런 거 같다. 이곳이 비단

부산 사람들, 혹은 한국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곳을 알고 챙기려는 사람이 있다는 훈훈함.

 

그렇지만 문이 닫힌 채 불이 꺼져있던 공부방, 아이들을 볼 수 없던 감천동 문화마을 어딘가의 골목에서 내려다본 풍경에

옥상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하는 소녀가 잡혔다. 아이들은 전부 옥상에서 날아갈듯 맹렬하게 줄넘기를 하고 있는 걸까.


누가 여기를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이름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편하고 럭셔리한 이름이 이 곳에 맞는 옷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산토리니를 연상케하는 파스텔톤의 껍데기는 말고, 좀더 골목을 헤집으며 살폈던 속살 사진들은 다음 포스팅에...


부산 감천 문화마을의 속살, '산토리니'란 별칭은 내려놓는 게 어떨지.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1 아트페어,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다는 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다.

코엑스 주위 강남권에 회사도 많고 하니 잠시 짬을 내어 구경나온 회사원들도 적잖이 보였다. 네이버에서

세운 아트월 중 하나인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유심히 감상중인 어느 회사원의 뒷모습이 진지하다.

이번 아트페어의 스폰서인 네이버는 곳곳에 아트월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QR코드를

읽어서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좀더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포토월이란 단어는

많이 익숙하지만, 아트월(Art Wall)이란 단어는 처음 들어본 거 같은데 참 좋은 아이디어 같다.

이제 많이 유명해진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도 아트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마를린 먼로의 얼굴이

어슴푸레 드러나는 모자이크 그림도 눈길을 모으고 있었고.


이번 아트페어는 9월 22일부터 26일, 그러니까 다음주 월요일까지 코엑스 1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약 17개국의 200개 가까운 갤러리가 참여했다나, 총 작품수가 5천점에 이른다니 왠만한 미술관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던 거 같다. 뭐, 미술관 전시회처럼 주제가 명확하고

이야기 흐름이 있는 전시는 아니고 갤러리들이 소장한 예술작품들이 우르르 쏟아진 셈이니 보다보면

살짝 소화불량에 걸릴 듯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쏠쏠하다.

이렇게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감상하며 저게 뭘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어깨에 잔뜩 얹힌 채 매료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목이 뭐더라, the sunny day? 뭔가 해피한 날의 표정이긴 한데, 가슴엔 날이 시퍼렇게 선 식칼이 꼽혔다.

표정과 액션, 형상과 제목간의 모순으로부터 뭔가 궁금증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love였던가, 비슷한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온몸에 하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여자의 눈매가 저리도 앙칼진건

뭘까, 사랑의 흔적만 온몸에 남기고 뒤돌아서는 남자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나 지난 사랑을 그리는 안타까움일까.

이것도 맘에 들었던 것 중에 하나. 제목이 unmasked였던가. 마스크를 벗어던지듯 얼굴껍데기를 온통 벗겨버린

듯 근육과 지방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 그렇게 얼굴껍데기가 벗겨지고 나니 오히려 모든 표정이 지워진 채

그야말로 무표정한 모습이다.

요새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회화 소재 중에서 한국적인 미감을 물씬 풍기는 재료가 바로 자개. 색감도 그렇고

반짝반짝하는 광택도 그렇고,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다.

입체의 형태는 시각에 따라 하트로 보이기도 주머니로 보이기도, 혹은 그저 평평한 평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기한 재료들, 철사망을 어떻게 매만져야 저렇게 갈기를 휘날리며 내닫는 말의 형상이 떠오를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저 초현실적인 그림에선 나뭇이파리나 털들이 왜 툭툭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붙어있는 건지.

저런 분방한 상상력도 경탄스럽지만, 그런 상상을 저렇게 작품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그 능력도 부럽다.

일견 엉성하게 만들어지다 만 듯한 손, 심지어 손가락도 세 개 밖에 없는데다가 질감도 굉장히 거친데,

그게 또 이렇게 뭔가 절절해보이고 짙은 감성이 담긴 느낌을 던져준다.

이런 식으로, 숫자던 구체적인 물체-단추니 포크 따위-를 터무니없이 큰 사이즈로 재현하는 작품들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색감까지 알록달록 이쁘긴 한데, 왠지 이건 0부터 9까지

일괄구매해야 할 거 같다. 그치만 실제로는 숫자 하나만 구매해서 소장할 수도 있다더라는.

눈에 익고 친숙한 사이즈를 확 바꿔버림으로써 뭔가 미감을 자극하는 방식은 회화에서도 등장한다.

귤이니 콜라병이니 따위를 향해 진격하거나 공격중인 군인들의 모습이 연작으로 담겨있던 어느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그런 베이스에 나름의 아이디어를 얹어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인듯.

전통 회화와 오브제들이 바둑판무늬로 짜여져서는 설치미술작품이 된 거라고 해야 하나. 특히 저 노랑 버스랑

말 인형이 맘에 든다.

굉장히 다양하고 신기한 작품들이 그득한 전시장 안에서 문득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처럼 생긴 물고기가

둥둥 허공에서 유영하는 모습이란 그렇게 초현실적이진 않았다. 요샌 저런 'R/C 생선풍선' 있구나. 그런

정도의 감흥. 그치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거 꽤나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눈에 띄던 조각들. 아니지, 이걸 조각이라 하기도 그렇고 음..걍 미술작품, 이라는 게 무난하겠다.

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해댔길래 코가 저렇게 낭창낭창하도록 길어졌을까.

풍선아트를 그대로 굳혀놓은 듯한 저 선명하고 발랄한 색감의 작품은 분명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의

그것 같기도 한데. 이름을 까먹어서 잘난 척할 타이밍 1회 상실. 뭐, 이름 외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


금과 은으로 장식된 듯한 새하얀 마차랄지, 삼륜차랄지, 바이크랄지. 가만보면 좌석 등받이 쪽에 붙은

조그만 모니터에서 뭔가 사람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저렇게 낮은 곳에 있어서야 지나는 사람들의 부주의한 발길에 밟히면 어쩌려고. 하얀 모래가 깔린 가운데

허우적대고 있는 두 사람, 뭔가 개미지옥이나 사막의 구덩이같은데 빠진 절망적인 상황 같다.

그리고 뭔가 반복적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녀석들이 있었다. 눈과 입, 아마 실제

사람의 눈과 입을 따서 투영시킨 거 같은데, 쉼없이 꿈벅거리고 말하고 하품하는 그 형체가 기괴했다는.

그리고 이런 클래식하고도 반가운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도 있었다. 당대에는 획기적이고도

참신했겠지만 이미 그 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그의 작품은 뭔가

손때묻고 오래되어 따스한 온기가 도는 낡은 기계의 느낌이 난다. 오래된 재봉틀이나 빈티지스러운

바이크에서 느껴지는 그런.


나 같으면 BMW에 이런 식으로 도색을 하진 않겠다. 차는 참 이쁜데 말이지.

정말이지 전시장은 너무도 광활했다. 사람도 무척이나 많았지만 워낙 넓고 천장도 높아서 갑갑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그렇게 전시장 한가운데서 방황하다가 작가들이 붓을 흩뿌리며 작품을 만드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미술 시간에 저렇게 붓에 물감 찍어서 휙휙 뿌리는 건 참 재미있었는데. 


중세시대 귀족들을 희화화하는 걸까, 커다란 목장식을 벌통으로 바꿔놓고는 얼굴 곳곳에 벌을 붙여놓은

작품도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촬영하곤 이리저리 매만진 작품 앞으로 온통 분해되어 버린

바이올린의 조각들이 가까스로 서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던가, 그 나라의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런 사회성 짙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폴리스 라인 뒤에서 죽어 나자빠져 있거나, 그 라인을 의식하며 권력에 대한 충성을

허둥지둥 맹세하거나, 혹은 라인을 밟고 경계에 선 사람의 모습까지. 내 맘대로 읽어낸 거지, 실제로 무슨

의미를 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센스가 넘치는 회화들. 안 그런 것들이 없었지만 특히 저 사이클 장면을 그린 그림이 와닿았다.

부시와, 테레사수녀와, 달라이라마가 레이싱 중이다.
 

눈이 시뻘개진 나무 늘보가 괴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는가 하면,

그림 아래쪽에 창을 내고 알루미늄을 붙여선 공간을 틔워버리고 나비 두마리를 날려보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칠판처럼 배경이 그려진 그림 위에 저런 뜬금없는 고추를 그리거나 명함을 오려붙이고, 낙서를 마구

해서는 마치 학예회날이나 만우절날, 혹은 교생 떠나가는 날의 칠판을 그대로 떼어온 듯한 그림도.

누구의 입버릇을 빌건대, "내가 추석 연휴 때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을 전부 봐서 아는데,"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은 정말 그 풍요롭고 탄탄한 스토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서, 이렇게 예술작품으로 환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이다. 다스베이더의 가면 너머 숨어있는 그 깊고도 복잡한 심경, 그걸 그대로 전유해서

예술 작품 자체에 깊이를 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스타워즈 자체가 수많은 아티스트의

소재가 될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자극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거다.


여하간, 다스베이더를 소재로 삼은 저런 작품들, 아..하나 갖고 싶다. 스타워즈 빠돌이가 되어버렸다.

최근 인터넷에서 실사판 화투패라고 돌고 있는 것도 있던데, 그것도 제법이었지만 이렇게 뭔가 메카닉의 느낌이

담긴 화투판도 괜찮은 거 같다. 심지어 비광의 저 냥반은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거 같다.ㅋ

한국 작가 누구더라, 의 태권브이는 맨발로 당나귀를 타고 있다. 태권브이의 저 입모양은 이모티콘으로 따지면

-0-, 이런 느낌을 주는 거 같아서 재미있다.

저런 그림 참 좋다. 도발적인 자태와 눈빛, 흘러내린 머리까지. 나중에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리고 이런 툭 까내리는 메시지도 좋다. 다짜고짜 뻐큐란다.

모네의 그림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무질서해 보이는 수많은 붓질이 한송이 수련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처럼. 이 여인의 얼굴 그림 역시 가까이 들이대면 이런 조악해 보이는 어설픈 동글백이가

수없이 숨겨져 있었던 거다.


사진 작품들도 제법 있었다. 익히 알려진 배병우 작가의 작품들 말고도, 저런 작업은 어떻게 한 걸까.

어린왕자의 B612처럼, 조그만 별에서 벚꽃나무가 거침없이 뻗어나가 우주를 채웠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도장들을 모아서 프레임 안에 채운 게 아닐까 싶은, 크기도 높이도 모양도 내용도

전부 제각각인 것들이 모여서 커다란 직사각형의 작품에선 무슨 디오라마같은 입체감이 느껴진다.


뭐라더라, 설명을 들었는데 대도시의 밤풍경을 내려다보면 이렇게 혼란스럽고도 화려한 이미지일 거라

했던가. 작가가 실제로 그런 걸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딱 보면 정말 혼란스럽기는 하다.

예술은 늘 최신의 과학 기술과 성과를 또다른 표현수단으로 받아안고는 했다. 3D 아트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늦은 건 아닌지 싶을 정도다. 안경을 썼더니 너무 어지러워서 패스.


이거...레이 아닌가. 아니면 다른 변신물의 캐릭인가.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에서 뛰쳐나온 게 분명한

저 소녀가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다니, 저런 작품도 유쾌하니 맘에 든다. 사방에 뭔가 변신중이라는

듯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휘감겨 있는 것도 맘에 들고.

중국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요새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더니 꽤나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시니컬하게 담고 있는 그들의 작품 중에 특히나

너무도 적나라해서 눈에 확 들어왔던 작품. 색감도 굉장히 선명하고 멀리 떨어져 조그매보이는

천안문 광장 앞에 당당히 선 하이힐 신은 쪽쪽 곧은 다리들이 인상적이었다.


거칠게나마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훌쩍 지나 있는 시간,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은

전시물들이 있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어서 본인 깜냥에 맞춰서 즐기기에 딱 좋은 기회일 듯 하다.



"이곳 금남로는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맞서 5.18 광주항쟁 기간 중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항쟁의

거리다. 5월 18일 카톨릭센터 앞에서 최초의 학생 연좌시위가 있었으며 5월 19일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5월 20일 저녁에는 택시를 중심으로 100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대가 이 거리를 누볐다.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 군사독재 저지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금남로는 5.18광주민중항쟁을 상징하는 거리다. 5.18광주민중항쟁 이후에도 항쟁의 진실을 밝히려는

투쟁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가톨릭센터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시민 집회가 계속 열렸다.

항쟁 당시 가톨릭센터에서는 천주교광주대교구청과 CBS광주방송국이 들어서 있었다. 천주교광주

대교구청에서는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살상행위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피어린 투쟁을

전국에 알려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전파하였다."

그런 곳이 이 곳, 광주 금남로.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500여명이 사상당한 곳이자, 항쟁

처음부터 끝까지의 중심무대였던 곳이다. 대검으로 임산부를 찔러죽이고 도망가는 시민의 뒷통수를

곤봉으로 내리치고, 심지어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총을 쏴갈긴 곳. 예전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굉장히 좁은 곳이란 거였고, 이번에 다시 찾고서 느낀 건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하는 민망함.

몇걸음 뗄 때마다 세워져있는 조형물들을 마주하게 되어서 하나씩 찍어보기 시작, 그렇지만 그 조형물들이

80년 광주의 기억에 이어져있는 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한 기준은 작품의 형태와 제목,

그 이상 판단할 여지가 없기도 했거니와 금남로 양측으로 곤두선 건물들에 수반된 공공미술작품으로

늘어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작품이 고추상의 작품이어서 결국 판단은 작품 제목에

많이 기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내린 결론은 역시 광주의 기억을 떠올리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것.

제목 : 상징.

제목 : 평화를 추구하는 무등여인상.

제목 : 평화로운 나날.

제목 : 사랑.

제목 : 여심.

물론 금남로가 온통 광주의 기억으로 짓눌려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광주시내의 중심이니 박제된

역사적 공간으로만 남아있어서도 안 되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은 거다.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한복판이니.

다만 금남로공원처럼 이렇게 약간의 공간이라도 조성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 아픈 사건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너무나 아무것도 안 남아있는 거다.

금남로4가 전철역 입구에 서있는 지방 무가지 신문박스. 신문은 하나도 안 들어있었다. 그것보다 눈에

거슬렸던 건 그 뒤에 저 싸구려스럽고 촌스런 노랑색 담장.

뭔가 봤더니 노란 바탕색에 돌멩이인 양 그려놓은 회색 얼룩이 얼룩덜룩한 얄포름한 합판을 억지로

세워둔거다. 차들이 지날 때 흔들흔들거리는 게 꽤나 위태해 보였는데, 가늘디 가는 쇠줄 하나가

억지로 그 담장형태의 싸구려 장애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작은 사거리에서 만난 경찰초소. 뒤로 쉼없이 지나는 버스와 택시들, 이 거리에서 100대가 넘는 대형차량들이

시위에 합세해서 도청을 향해 행진했던 그런 날, 저런 경찰초소를 온통 불태우고 무너뜨리며 전진하던 그런

날, 어쩌면 그때가 한국 민주주의 정신이 도달했던 정점 아니었을까 싶어 우울해졌다.

금남로 지하상가에도 뭐가 있나 내려가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복작복작함,

지하상가 특유의 활기와 어수선함은 좋지만 왠지 괜히 아쉽다. 지상에도, 지하에도, 어디에도 그 사건은

기억할 만한 흔적과 자취를 남기지 않았나 보다. 괜히 화장실 사진이나 한번 찍고.

올라오는 길, 대피소 사인. 80년에는 지하상가가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확치는 않다. 그랬다면 더욱

끔찍한 참사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전경들, 군인들이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듯 쫓아다녔을테니.

제목 : 꿈(DREAM).

제목 : 추의 사념에서.

이렇게 조각들을 찍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 무렵. 지하철 환풍구에 누군가 페인트로

박아둔 글자가 눈에 확 띄었다. **반대.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반대한다는 표시, 그리고 저렇게

오래도록 남아 뜻을 전하려는 의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다. 단순히 미감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는 두루뭉실한 조각상들을 보다가 눈에 확 꽂혀버린 두 글자. 반대.

제목 : 꿈의 나라로.

제목 : 삶(LIFE).

2011 광주비엔날레에서 채택된 시민 공모 디자인인 듯. 큐브 같기도 하고, 뭔가 이쁜 상자같기도 하고. 저런

공공 설치물에 미감을 더하는 건 대체로 맘에 든다. 물론 주변 경관이나 색감과의 조화라는 부분이라거나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부분도 따져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를 누비는 디자인'이란 건 긍정적인 거 같다.

제목 : 함께 부르는 노래.

어렴풋이, 꿈 대신 해몽인지도 모르지만, 광주의 역사적 기억에 그 영감이나 의도의 부스러기를 빚지고

있는 듯한 작품들이 없진 않았지만 계속 아쉬운 와중이었다. 좀처럼 딱 깨놓고 여기가 그런 공간이었다,

말하고 공식적으로 기억하는 기념물은 왜 없는 거지. 그러다가 인도 한복판에 굉장히 어색한 위치에

설치된 벤치 두개를 보았고, 벤치에 시선이 팔려서 못본 채 지나칠 뻔 하다가 겨우 발견.

'5.18 민중항쟁 사적 4'라는 잔뜩 녹슨 글자는 쉬이 읽히지도 않는다.


사적비의 뒷면. 숫자가 4라고 붙어있는 걸 보면 다른 것들이 더 있다는 얘긴데, 요새 지자체들 잘하는 것들을

왜 여기엔 적용하지 않나 모르겠다. 포스트마다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게 부스를 설치해 둔다거나, 사적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비치해 둔다거나. 사실 올레길이니 갈매길(부산)이니 바우길이니 온갖 걷기코스가

개발되고 있는 요즘에, 이런 사적들을 잇는 순례길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굉장히 차별화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80년 광주의 기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 같은데. 


제목 : ~~ 문.

그렇지만 현재 금남로는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메시지 불명의, 오로지 거리 미화를 위한 듯한

조각들과 '부자되세요'라는 강력한 생활형 주문에 멈춰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미술 자체에 불만은

없고, 오히려 다른 거리에 비해 많은 미술작품들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이런 거대한 역사적 공간을

그냥 묵히고 있는 게 안타까운 거다.


제목 : 풍경.

제목 : 묵시-전환기적 시점에 서 있던 이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문화전당역, 이라는 역명을 가리키는 버스정류장. 문화전당이라.

제목 : 5.18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기념조형.

제목을 까먹은 조형물 하나를 마지막으로, 짧막한 금남로 두어 블록의 산책이 끝났다. 길 양쪽을 온통

돌아보며 확연히 건물에 부속된 조형물을 빼고 길가쪽으로 설치된 작품들만 찍었는데 정말 꽤나 많다.

그리고, 광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은유가 확연한 작품은 정말 꽤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범상치 않게 보이던 시그널. 추억의 7080 충장축제라던가. 광주의 7080은, 흔히 티비에

나오는 추억의 7080쑈라느니 하면서 달달한 통기타 노래들을 공유하는 그런 게 가능할까. 단순히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시대의 부조리와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던 사람들이 종종 토로하듯 그 시대에

멋내고 통기타치고 고고장 다니는, 그런 문화만 있던 건 아니었던 게 분명한데 말이다. 마냥 축제인듯

아름답고 멋지게 빛바랜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을까. 특히 광주에서.


내가 감정과잉의 상태로 광주를 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괜히 하나하나 민감해져서, 광주에서 사는

생활인이라면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이미지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외지인이라 해서, 실제로 그 고통을 겪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해서-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는 훌륭한

핑계에도 불구하고-할 말을 못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금남로에서 80년 광주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단 게 솔직한 심정이다.




토요일날 샤갈전을 보러 나섰었다. 3월 27일까지라 하여 막판이니 사람들이 많으리란 건 이미

예상을 했었지만, 줄이 잔뜩 늘어서 입장하는 데만 한시간이 걸리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왜 이리도 사람이 많은 건지. 굳이 샤갈전을 보러 왔다기보다는 근처를 걸으며 놀고 싶었던 거라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선 오디오 설명이 붙어있는 앞에서

바글바글 모인 채 줄서서 작품 감상을 하리라고 생각하니 정말. 샤갈은 다음 기회에.

그냥 돌아서서 정동 쪽으로 넘어가려는데 문득 발걸음을 붙잡은 건, 뭔가 분위기가 묘한 조각들.

잔뜩 찌그러들어있어서 왠지 저기 어딘가쯤에 블랙홀같은 게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건 아닌가

싶도록, 순간적으로 눈이 어질어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잔뜩 짜부러진

가족들의 모습들. 실물 형태로 만들어두고 위에서부터 지긋하게 꾸우욱 눌러서 만든 걸까.

각도를 이리저리 달리 해서 보니까 더 재미있었다. 눈높이를 맞춰서 보면 호빗족 같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냥 장독 같이 땡땡하고 배나온 물체들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작품 제목도

무려 '장독대'였던가.

그리고 좋아하는 길 중 하나, 시립미술관에서 넘어가는 길. 노랑색만 살리고 모노톤으로 찍어본

사진에서는 바리케이트가 발랄해 보인다. 저너머 수풀 속 개나리 뭉치들도 어찌됐건 슬금슬금

오고 있는 봄기운을 느끼게 했고.

가다가 문득, 정동갤러리를 들렀다. 현대작가들의 소품전을 열고 있었는데 여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다. 2층까지 전시된 작품들을 유유히 둘러보면서 몇몇 작가들의 그림에 감탄해주고

이름도 눈여겨 보아두고, 내키는 대로 돌면서 한바퀴 돌고는 점찍어둔 작품들은 다시 한번

봐주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 안에서 나무마룻바닥에 울리는 내 발걸음 소리도 좋았고

따끈하게 실내의 공기를 덥히는 백열전구들의 온기도 좋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쌀쌀한 삼월말의 날씨, 세상에 식목일이 코앞이건만 이렇게 추워서야. 갤러리 안에

후끈하게 덥혀진 공기는 백열전구 말고도 이 녀석의 도움이 컸던 거다. 빨갛게 달아오른 코일을

둘둘 감고 있는 난로. 그 솔직한 열기가 난로와 마주한 살갗에 훅 끼쳐와서, 왠지 정다워서 난로

앞에 쪼그려앉아서 열기를 느껴줬다.

늘 미술관에 오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특히나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 더 심해지지만 이렇게

작품들이 줄줄이 전시된 가운데 소화전이나 통신단자 부스같은 것들이 문득 숨어있는 거다.

더구나 여긴 아주 의도적인 양 스뎅부스 주변을 액자틀같은 걸로 둘러놓았다. 액자틀까지

대략 주위 작품들과 깔맞춤되어 있는데다가, 마침 바로 옆에 전등스위치가 바싹 붙어있어서

작품 라벨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노닐다가 밖으로. 어디선가 물이 줄줄 흐르는 소리가 개울가 같다 싶었는데

건물 청소중이었다. 4층짜리 학교 건물 위에 줄 하나로 지탱한 채 건물 외벽을 청소중이신

아저씨의 뒷모습이 하늘하고 붙어버렸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추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해 보이기도 하고.

마무리는 영화관. 어쩌다 보니 '미로스페이스'가 근 일년여만에 재개관하는 첫날이었다. 깔끔하게

재단장한 영화관, '2011 감독열전' 작품 중에서 시간이 맞는 녀석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었더라는. 혼자 영화관 전세내서 '초롤케의 딸'이란 다큐를 보았는데 이리저리 자세도 바꿨다가

좌석도 바꿔서 보았다가, 영화 만큼이나 너른 영화관도 재미있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으로부터 '백제의 미술'을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세계대백제전, 그리고 부여나 공주의

백제 문화유산들을 돌아보려면 우선 백제 문화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가 있어야 훨씬 깊게 보일 것 같았으니

정말 좋았던 기회였던 셈이다. 여행 그 자체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하는 재미가 더 크다는 말도 있듯이,

그곳에 대해 사전 지식을 쌓고 일정을 잡아보고 어떤 문화적 배경이나 특징이 있는지 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를 놓치고 봐서야 영 밍숭맹숭하기만 하기 십상이다. 백제를 돌아보기 전, 그야말로 든든한 가이드로서

부족함이 없으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한국미술사는 고사하고, 백제미술사에 대해 정리된 책 한권이 없다." 강연 말머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분이니

회화니 조각을 개별적으로 다룬 책들은 있지만 총체적으로 백제의 미술은 이렇다, 라고 정리한 책이 없단 거다.

백제 문화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 고작 중고등학교 때 배운 단편적 지식과 몇 개 이미지에서 멈춰

있는 중요한 이유겠다. 사실 그렇다. '백제'의 이미지란 어슴푸레하고 희미한, 불분명한 뉘앙스일 뿐이다.

사실 삼국시대의 세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대개 그렇다. 고구려는 강인하고, 백제는 우아하며, (통일전)신라는

소박하다는 정도.

유홍준 전 청장으로부터 한 두시간 반, 강연을 듣고 나서 바로 부여박물관의 유물들을 보았다. 뭔가 조금은

눈이 뜨이는 느낌, 이래서 백제의 문화를 두고 "儉而不褸,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이라고 표현한 거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문화의 고상함과 우아함을 표현할

극상의 표현 아닌가. 검소와 누추 사이, 화려와 사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내는 미감이란.

부여박물관은 주로 백제의 사비(부여) 시대의 유물을 품고 있다. 백제의 수도는 한성과 공주를 거쳐 부여로,

그렇게 옮겨 다닌 게 백제의 유물이 신라 유물에 비해 적게 발견되는 하나의 이유라고 했다. 물론 계속된

전란과 정복자의 역사 왜곡/지우기 노력도 한 몫했겠지만.

아마 교과서에는 한 줄 이렇게 실렸을 게다. '백제는 활발한 해상활동으로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교류했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유물들은 그 '왕성한 교류'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중국의 영향, 고구려와 신라와의

공통점, 왜와의 교류 흔적 등등. 나름 도식화되고 형식적인 그림 하나가 박물관에서 보였다. 설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적대관계와 교류관계를 선명히 구분했겠지만, 사실 당시의 외교란 게 오늘날 미국 편향의 외교같지도

않은 외교보다도 훨씬 정교하고 복잡해서 저렇게 국제관계가 굳어있었을 리 없는 거다. 뭐, 근초고왕 때의

분위기에 한정한 그림이라니 단순화를 무릅쓰고 저렇게 표현했겠지만.

전시품 중 동선의 앞머리에서 눈에 띄던 전시품 하나. 백제시대에 이걸 어떻게 세워놓고 활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후대의 '장승'이 어쩌면 여기서 기원한 걸 아닐까 싶어졌다. 어느 지역이나 고대로 갈수록

남근이라거나 성적 뉘앙스가 잔뜩 담긴 예술품이 많아 보인다. 그게 왕성한 생명력의 근원 혹은 상징처럼

고대인들 사이에 공유되는 이미지였을 거다.

최근 발견되어 기사에도 꽤나 심심치 않게 떴던 백제시대 면직물의 유물이 여기에 있었다. 고려시대 문익점이

붓뚜껑에 담아왔다던 목화씨 신화 이전에도 이미 면직물을 한반도에서 직조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유홍준 청장이

말한 것처럼, 유물 하나가 발견되려면 정말정말 억세게 운이 좋아야 한다. 하필 그 자리에 떨어져서, 우연찮게

보존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고, 이후 수백수천년간 전란이나 화마, 홍수 따위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근래에

들어서는 제대로 조사도 없이 갈아엎고 콘크리트를 부어대는 우악스런 손길을 벗어나야 하는 거다. 그리고도

발견되기란 더욱 기적과도 같은 일.


그래서 그나마 우리에게 남겨진 문화유산은 '죽음의 문화', 고분이나 무덤에 고이 매장된 것들이라 한다. 아무래도

'삶의 문화', 일상 생활에서 쓰이고 계속 변화하는 것들은 일상생활 중 파괴되거나 소모되기 십상이니까. 뭔가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백제금동대향로. 이것이 처음 발굴되었을 때 백제에서 만든 게 아닐 거라는 학계의 주장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그전까지 우리가 갖던 백제의 이미지란 막연하고 어설픈 것이었다. 발톱이 다섯개 달린 용이 연꽃봉오리를

입에 물고 버티고 있는 모양새라거나, 연꽃 위에 나타난 산수문양과 음악가들, 동물들의 형체, 그리고 맨 위에

버티고 선 봉황의 날아오르려는 듯한 모습까지. 이렇게 화려하고 우아한 대향로에 걸맞는 공간을 꾸미고 있었을

온갖 장식품과 치장들은 또 얼마나 화려했을까. 이 향로만 덜렁 놓였을 리 없는 거니까.

유홍준 청장에 따르면, 이런 백제의 공예 문화가 발달한 건 장인에 대한 예우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종을 만드는 주종(鑄鐘) 박사, 기와를 만드는 와(瓦)박사, 그렇게 기술인을 우대하고 적극 지원하는 정책,

오늘날 한국의 기술이나 디자인이 고전해온 이유도 그렇지 않을까. 장인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장인 정신을 북돋을 정책적, 사회적 토양이 없어서.

서산 마애삼존석불은 매 계절, 매 시간, 매 순간 표정이 달라진다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씌여있었다.

그걸 보여주려는 걸까, 사방에서 조명이 움직이며 그에 따라 변하는 표정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마터에서 발굴되었다는 거대한 좌대. '상현좌'라 하여 부처님의 옷자락이 좌대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사이즈가 거의 킹사이즈 침대만하다. 부처님상까지 다 남아있었다면 정말 멋졌을 텐데,라고

유홍준 청장이 탄식했던 그 유물이다.

이 파격적이고 생생한 얼굴 묘사라니. 그런데 제목은 무려 '나한(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성자)'랜다. 문득

현대미술을 전시한 미술전에 온 건지, 고대 문화유산을 전시한 박물관에 온 건지 헷갈리는 순간.

고대 삼국이 고분을 축조하며 왕의 안녕을 기원하던 시대에는 부장용 금관, 불교가 국교로 자리매김한 시대에는

사리함, 그렇게 일국 차원에서 문화적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내는 대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신라의 出자형 금관이

전자의 예라면 백제의 이런 사리함이 후자의 예. 권력층이 자신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문화적

역량을 총동원한다는 궤는 같지만.




백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연꽃무늬 기와. 그렇지만 연꽃도깨비무늬니, 산경치도깨비무늬니

하는 것들도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그전까지는 '연화귀형문전', '산경귀형문전'이란 함축적인

한자어로 표현되어 있어 딱딱하고 어려워보였는데, 그렇게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하니 훨씬 정감이 간다.

칠지도.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키워드들을 담고 있어 이를 소재로 하여 상상력을

마구 발휘한 소설들도 나왔던 바로 그 '칠지도'다. 진품은 일본의 왕실에 보관한 채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고

하던데, 칼에서 뻗어나온 가지들이 인상적이다.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흠뻑 서려있다.

나뿐 아니라 이 박물관을 둘러본 아이들의 눈에도 역시 그래보였나보다. 박물관 한쪽 벽에 전시된 아이들의

그림들엔 칠지도를 그린 그림들이 참 많았다. 문화시설이니 볼만한 전시회니 따위가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2010년 한국, 그렇지만 1400여년 전 백제의 고대문화유산을 둘러보기엔 이 근처사는 아이들이 오히려 꽤나

유리한 점도 있겠다 싶어 조금은 다행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유홍준 청장의 말솜씨도 그렇고 이런 편안한 분위기도 그렇고. 그리고

듣고 나서 뭔가 세상에 뿌려진 흔적들을 조금은 더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는 유쾌함도 그렇고.

비록 그게 당장 살아가는 데 도움은 안 되는 거라 할지라도, 막연하기만 하던 '백제'에 조금은 더 단단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면 꽤나 멋진 일 아닐지.



*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니 선택과목으로 하니 말이 많지만, 어쩜 그런 건 정말 중요한 논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몇가지 형식적이고 막연한 설명과 문화에 대한 표현어구를 외울 뿐인 식으로

공부시킨다면 그건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계승하고 느끼도록 하는 데는 실패하는 거다. '우아하다'라는

표현방식에 맞추어 백제의 유물 사진 몇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백제의 문화유산들을 둘러보고 본인이

'우아하다'라는 표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역사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용산참사현장을 돌아보며 느꼈던 건..이 곳이 단순히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사고 현장일 뿐 아니라,

약자들을 위한 분향소이자, 거리의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거리미술관이자, 또 그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한

추모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대로 적나라한 한국의 현실과 빈궁한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근거지이기도 했다.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1/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2/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니들이 경찰이면 나는 송혜교다".(3/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용산학살를 용서하지 않다!"(4/5)

[용산참사 6개월] 참사 현장, 매일 추모미사가 열립니다.(5/5)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용산참사 해결없이 이땅에 민주주의란 없다.

진상 규명은 사실상 그들이 원하던 원치않던 어느정도 된 상황아닌가. 누가 잘못한 건지, 안전수칙을 누가 어겼는지,

그리고 누가 지시했는지는 대충 언론보도로 (중구난방식일지언정) 노출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선.

과잉진압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는,

생존권대책 마련없는 난개발정책 중단하라.

용산 참사현장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유가족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귀막은 정부와 언론이 바라는 대로 잊혀지지는

않는다는 걸 직접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에 더해 민주주의를 위한 살아있는 교육 현장으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 가는 길 :

용산역 1번 출구, 혹은 신용산역 2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10분 이내.

저기 번개가 내리꽂힌 곳이 바로 용산4구역 철거민분들이 망루를 짓고 올라가셨던 곳이다.

..바로 여기.

다음 스카이뷰에 오른 사진은 언제 찍혔던 걸까. 아직 건물이 멀쩡히 제 기능을 할 때, 유리창들이 온전할 때, 그리고

그때만 해도 누군가 저 위에 올라가리라곤, 또 올라가 불에 타 돌아가시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때임에는 틀림없다.





* 본 포스팅은 백마탄 초인님의 블로그 1주년 축하 이벤트 응모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

1. 미술(예술) 은 [         ]이다!!!
(간략한 설명 첨부)

미술은 뭘까. 잘 모르겠다. 미술작품을 보면 마냥 이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쁘지 않으려고 애를 쓴 듯한 모양새에 흠칫 하며 이건 대체 뭥미..하게 되는 작품도 있다. 풍경이나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몰두한 작품도 있고, 혹은 뭔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득 품은 듯한 작품도 있다.
 
정말 미술(예술)은 뭘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전시회가 있으면 가고 싶고, 미술관도 드문드문 가주고 싶고, 이왕이면 집에나 사무실에도 그럴듯한 그림이 걸려 있으면 좋겠다. 이쁘던 안 이쁘던, 풍경화던 추상화던, 뭔가 내게 끌림이 느껴지는 그런 미술작품 말이다. 까뮈는 "매력이란 명백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예'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비록 내게 미술이 어떤 명확한 뭔가를 던져주진 않지만...그래도 난 대개는 항상 미술(예술)에 예, 라고 답하게 된다.

아마 내게 미술(예술)은 결국,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매력적인 그 무엇"인 것 같다.

혹은 미술은 "현실에 대한 애무"인지도 모른다. 미술(예술) 안에서 현실은 좀더 이해하기 쉽고, 좀더 의미있으며, 좀더 질서가 부여된 방식으로 잘 매만져진다. 종종 이해할 수 없고, 무의미해 보이며, 무질서 그 자체인 듯 보이는 현실 세계를 튼튼한 위장으로 소화해내고 주위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쉽게 살도록 긍정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것도 대부분 파괴적인 충동에 의해 현실 세계를 부서뜨리고 망가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을 사는 나와 내 주변사람,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이 담긴 손길로 어루만져진다는 느낌이다. 혹 다소 거칠고 광기에 찬 무언가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애증을 표현한 것 아닐까. 그러한 애정욕구로부터 표현욕구가 비롯되는 걸 테니 말이다.


2.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은 누구이며 무엇입니콰? 
  
(국내, 국외 상관 없이 그 작가의 그림중 가장 좋아하는 그림1점을 올려 주세요! 작가명과 작품 제목은 필수!!)

피카소전시회에 다녀왔다. 미술을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작품을 보며 그의 위트와 의도를 느끼고 웃어줄 수 있었다. 회뜨듯이 얼굴을 조각내어 평면에 늘어놓은 그림들은 그의 한 시기..그리고 그의 계속되는 실험의 한 연속선에 불과했다. 그가 곁을 허용했던 7명의 여자들..피카소는 그녀들을 모델로 세워두고는, 그 어슴프레한 윤곽을 몇개의 선으로 버혀내며 마치 선율처럼,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정말 와닿았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 그림 앞에서 족히 십분은 서있었던 것 같다. 그가 큐비즘에 빠져있던 시기, 칼날처럼 솟은 어깨'뽕'을 대담하게 그려내고는, 그위에 어두운 색채로 생략된 목에 이어붙은 직육면체의 턱쪼가리..혹은 얼굴의 아랫도리. 그리고 그 첨단쯔음에 위태하게 균형잡고 선 초승달같은 얼굴. 정면을 향한 외눈과 긴장되고 신경질적인 얼굴면 옆에는 또다른 얼굴이 그림자를 먹고 숨어있었다. 칼날같은 초승달이 품고 있던 측면부의 완만함. 피카소라면 분명히 '둔덕'이라고 표현했을 것같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굴곡을 그리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와 보이는 그 초승달의 얼굴정면은 가득찬 FULL MOON과 같은 이면을 갖는다. 정면의 외눈이 날카롭고 섬세하다못해 찌를듯한 예기가 서려있다면, 그림자를 머금은 측면의 눈은..놀란 듯이 커진 눈. 예기치못하게 허를 찔린 듯한, 원치않던 사랑에 빠진 듯한..표정. 그렇게..그 정면을 향해 무표정한 '여자'는, 측면에서는 가늘고도 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측면을 파고 들수록 깊어지는 어둠..불빛조차 가닿기 힘든 내면으로 다가설수록 그녀의 미소는 깊어지고 황홀해진다.

피카소의 인물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여자'가 가진 최외곽의 가면..하늘을 향해 예각을 세운 날카로운 코잔등에서 급격하고 단호한 감정선을 느껴보고, 찔리면 당장 죽을것 같은 코끝에서 사정없이 놀아나는 남정네의 가슴서늘함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약간만 고개를 틀어도 나타나는 방심한 듯한 눈매의 매력과 깊이를 품은 미소에 반하기도 하고. 피카소는, 잘라낸 손톱같이 신경질적이고 속알머리없어 보이는 초승달의 이면에 그렇게 둥실하고 아늑한 둔덕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는, 7명의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한사람한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인듯이 사랑했을 거라고, 질리지도 않고 그녀들의 얼굴을 탐닉하고, 표정과 뉘앙스를 짜내었을 거 같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시작되는 입술의 한쪽 언저리에서 다른쪽 언저리까지 가닿고 탐험하고 싶어서..불빛도 닿기 힘든 그 구석 한켠의 미소를 완전하게 찾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리라.

이미 한차례, 쪽당할 각오하고 '노란벨트'라는 작품을 폰카로 기어이 찍어버린 터였다. 피카소의 에로틱함..혹은 그가 추구하던 관능미가 유쾌하게 변주된 작품인거 같아서. 마치 프로이트의 심리병리학적 해석들처럼. 그런데 도무지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가 없다. 온갖 매체들이 써놓고 긁어놓은 작품사진이나 설명을 보아도..무엇이 원전인지 모르겠지만 거개가 다 똑같은 작품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뿐이다.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이 작품은..아마도 대중이나 전문가의 '인증'이란 걸 받지 못한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어서..내가 한번 기억을 떠올려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여자의 얼굴'이란 거.

덕수궁 돌담길의 그늘에 숨어 걸으며, 피카소는 붓으로 독심술의 결과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는 여자의, 사람의 얼굴이나 마음이 책처럼 편평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거다. '독심술'이란 말의 어폐..를 그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리뷰] "여자의 얼굴"-피카소.(2006.6.24))



3. 미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습니콰? 

2007년에 도예의 기초수업을 들으면서 도예를 연마했던 적이 있다. 전생에 도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던 추억이다.
예술성과 실용성의 격돌
조교 : 이 작품은 이번 '도예의 기초'강의에서 나온 것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늬에, 유약 처리에, 가마에서 예기치 않은 불의 산화/환원의 세례를 받고 나온 저 청동빛의 신비로운 색감을 보라.

윤작가 : 골판지의 따스함과 안온함을 형상화한 무늬를 넣어 진흙의 차
갑고 맨질맨질한 분위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덥히고자 했다. 조교가 우연이라고 착각하는 저 청동빛깔은 사실 작가의 치열한 미의식과 로맨티시즘이 현현한 것으로, 물방울과 같은 접시 안에 로마의 흥망성쇠, 나아가 인류의 흥망성쇠를 담는데 성공한 것이다. 화려한 청동조각상도 흐르는 물방울과 같은 세월에 씻겨 저렇게 녹스는 것 아니던가!

엄마 : 너무 작아, 어따쓸래? (이 때, 쾅! 하는 효과음. 실용성과 예술성의 격돌.)

광기에 사로잡힌 흩뿌림
화장토를 흩뿌리다 보면 가슴속에서 묘한 울렁임이 이는 걸 느끼게
된다. 붓 끝에서 사방으로 비산하는 물방울들, 그것은 체셔 고양이처럼 순식간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사방으로 튀던 흰색 물방울들은 사라지고, 휘영청 구부러진 자기 위에 얼룩점만 남았다. 남으로 창을 낸..화분? 화병? 필통? 뭐가 되었건 여튼 내가 만들어낸 아이.

안에 있던 건 안나오고.
어디에 쓸지에 대한 아무생각없이 완벽한 구형태를 만들겠다고 마냥 동글동글 동글리다가, 문득 그 안에 숨어있는 주전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여 다시 닭볏과 꼬리를 가진 주전자를
만들려다가, 다시 뿔이 듬성듬성난 형상화를 꾀하다가, 결국 나온건 돈데돈데돈데 돈데크만. 내가 봤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왠 괴물 주전자가 나와버렸었다는. 미켈란젤로는 조각이 안에 있는 형체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했다던가...그는 틀렸다.ㅡㅡ;;


4. 자신이 좋아하는 컬러와 자신은 무슨색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콰? (간략한 설명 첨부)

대체로 가장 좋아하는 컬러는 검정인 듯 싶다. 시뻘건 빨강색도 무지 좋아라 하지만, 가끔 너무 부담스럽거나 감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검정색이 세련되면서도 무난한 듯 잘 섞여들고, 또 그러면서도 자체의 존재감은 분명히 각인시킬 수 있는 색깔인 것 같다. 다만 검정 일색으로는 좀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고, 의외로 이쁘지 않은 검정색도 은근히 눈에 많이 띈다. 굳이 나누자면 무광의 죽은 듯한 검정-배트맨이나 배트카의 검정색이 무광 검정이다-은 너무 위세를 빼는 것 같아 맘에 안 들고, 어느정도 광택이 반들대며 유쾌하게 뛰노는 맨들맨들한 유광의 검정이 좋다.

스스로를 색깔로 표현한다면..글쎄, 아마도 검정색 아닐까 싶다. 검정이라면 무광의 죽은 듯한 검정은 말고, 적당히 빛에 반사되며 반짝거리는 검정색이..라고 느껴지면 좋겠지만, 그닥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듯. 어차피 이건 내맘대로 쓰는 거니까 뭐.ㅋ


5. 지금! 바로 자신 앞에 흰 도화지와 연필이 있다면, 무엇을 그리겠습니콰? 그 이유는?

그냥 그림판 꺼내서 그려봤다. 머..한가해서 그린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절대로 아닌데, 정말 오랜만에 그림그려본다. 그냥 요새 기차가 너무 타고 싶어서, 그리고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떠오른 대로 그렸다. 마우스를 움직여 그리기란 쉽지 않지만..그래도 재미있었으니 됐다. 저건 내가 그렸던 태양 중 가장 그럴 듯 하다, 대만족.ㅋㅋㅋ 별모양 별들이 너무 진부하고 유치하긴 하지만...별들 하나하나도 저렇게 그리긴 힘들어서 그냥 기호화된 별을 그려넣었다.


6. 미술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콰?

방금 마우스를 깔짝대며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 영혼이 고양되는 걸 느꼈다..는 건 뻥이고, 글쎄..아무리 미술(예술)이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감동을 던질 수 있다고 해도 고양이 한마리도 아니고 무려 '인류'씩이나 구원할 수 있을까 싶다. 구원이란 게 뭐로부터의 구원인지, 뭐에 대한 구원인지도 모르겠고. 혹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의미에서 인간 실존의 한계..죽음을 극복할 수 있냐는 거라면 예술이 인간에게 불멸의 무언가를 순간적으로 맛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인간 자체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렇게 언뜻 언뜻, 인간이 먹고자고 똥싸는 존재로부터 뭔가 정신적인 존재로 고양된 느낌이 들도록 해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도 생각한다.


7.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미술관(화랑 등)에 몇 번이나 가 본 경험이 있습니콰?   (간략한 설명 첨부)

대학 때부터 미술관 다니는데 관심이 있었다. 시립미술관을 자주 가는 편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인사동, 삼청동 쪽의 화랑도 드문드문 들렀다. 외국 여행을 가서도 박물관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 미술관은 좋아라 하며 다녔으니, 꽤나 많이 다닌 셈이다. 요새는 좀 못 가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언제든 내키면 불쑥 가게 되는 곳이 또 미술관이다.

누구누구 미술전이나 전시전이 있으면 혼자 찾아가서 우선 한번 설렁설렁한 걸음으로 뺑 둘러보고, 그다음에는 몇개 인상에 남았던 작품들을 찾아 두바퀴째 뺑 돌았다. 그렇게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오래오래 멈춰서서 이리저리 작품을 굽어보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나마 오랫동안 기억에 새겨둘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미술관은 여럿이 갈 때보다 혼자 갈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더구나 호오가 워낙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영역이라 보고 싶은 그림을 맘껏 보기에도 그렇다.



Thanks to 백마탄 초인님~*

& Congratulation!! 블로그 1주년 '베리베리' 축하드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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