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묵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기와 신비롭기까지한 분위기란 건 직접 맞닥뜨려야 실감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나무들이 한두 그루도 아니고 즐비하게 늘어서 아름답고 작은 성당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곳, 아산 공세리 성당이다.








당진의 아미미술관, 영화나 드라마촬영, 최근에는 웨딩 셀프촬영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는 곳이다. 

조그마한 시골 폐교를 그대로 살려서 지역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정말 구석구석 애정어린 손길이 담뿍 묻어있는 것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갯배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을 배경으로, 드라마 '가을동화'였던가의 한장면을 찍는 듯한 동상 아저씨.

 

 그리고 동상 아저씨가 보는 풍경 속에는 까만색 털모자를 따뜻하게 뒤집어쓴 송혜교 동상과 그녀에게 따스한 백허그를 당한 원빈 동상.

 

그리고 갯배. 바다라기보다는 걸쭉한 스프같은 점도가 느껴지는 내해의 좁은 수로를 횡단하는 이 독특한 탈것의 매력이라니.

 

갯배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계속 달려 영금정 앞에 이르렀다. 문득 눈에 띈 양심저울. 해산물을 구매하고 무게가 의심스러우면 여기로.

 

 영금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쪽 전망대로 향하는 녹슬고 야윈 현수교. 어떻게 보면 굉장히 퇴락한 금문교 같기도 하고.

 

 바닷가 쪽을 내려다보니 온통 해산물인지 젓갈인지를 담고 있는 '다라이'가 풍년이다.

 

 

청초호 안쪽으로는 자전거를 달려 지나온 두개의 붉고 푸른 구름다리가.

 

 

 영금정의 육각 지붕.

 

 

그리고 바닷가쪽 정자에서 영금정 전망대를 올려다본 모습.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좋은 일요일 내내 흙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를 핑계로 전날밤부터 급 달리기 시작한 '연애시대'.

토요일 밤을 꼬박 새고, 네시간 자고, 밥먹고, 다시 달려서 이제야 16부작 정주행 완료.

저렇게 적고 보니 왠지 폐인 모드였..지만, 왠지 한번쯤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전에 봤을 때와 지금의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내게 어떤 자극이 될지 궁금했달까.

장래희망을 잃고 하루를 견뎌내고 있단 느낌이 드는 때.



#1. 사랑이 오고 간 자취.

다시 봐도 역시, 서로 끌리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온갖 국면을 참 섬세하게

그려냈다. 미묘한 떨림, 설레임과 두려움에서부터 슬쩍 엇나가고 막막해지고 슬퍼지는 그런

순간들, 두사람의 감정이 휘발되고 언뜻 지치고 지루해지는 순간들과, 그리고 둘 이외에는

의미불명의, 둘에게조차 더러는 덧없을지 모를 몇몇 장면들이지만 분명히 행복했고 아름다웠던,

그리하여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들. 특히나 유머러스하지만 센스넘치는 카메라워킹과 소품들로

놓치지 않은 뉘앙스들은 장면장면 공들여 조탁된 이 드라마의 덕목 중 하나.


#2.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뭘까. 헤어지고 나서야 시작된 이상한 마음, 그런 것도 사랑일까. 미움도 사랑, 집착도

사랑, 미련도 사랑, 아쉬움도 동정도 선망도 욕정도 모두 사랑인 걸까. 그런 건 아니라 치면,

역시나 모르겠다. 사랑이 뭘까. 사랑이 아닌 건 뭘까. 마지막회 엔딩 후에 스탭들이 모두

'사랑이 몰까'란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둘이 있을 때 행복한 거, 믿음, 끊임없는

의사소통..같은 답들도 의미심장했지만 그보다는, 나잇살 깨나 먹은 분들도 모르겠다며

손사래치는 모습이 훨씬 든든했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구나, 하는.


#3. 사랑은..운명일까.

그리고 역시나.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와 '사랑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 사이의 갈등.

그 굵은 갈등선에 대해 워낙 풍부한 말들과 감성적인 장면들을 마련해 두었는지라, 결국은

이거든 저거든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어도 될 거 같다. 드라마야 비록 해피엔딩 아닌 앤딩을

말하며 끝났지만, 그래서 둘은 운명인 걸까,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지나고 나니 운명이었다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어차피 못가본 갈랫길엔 '붕어똥처럼' 후회가 남는 거다. 다만..

조심스레 덧붙이자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한결같은 그 일관성이 슬프고 원망스러울지라도.



#4. (특히) 이번에 꽂혔던 대사들.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아프고

시작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싶어서 부대끼고

사랑이 끝날 때엔 그 끝이 같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사랑 때문에 달콤한 것은 언제일까."


"사람은, 추억만으로도 살 만하단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 리 없다.

먼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노력하면 될 줄 알았어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할까요."


"당신이 그랬잖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 잘 될까?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확신해?

우리 끝까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언젠가는 변하고 언제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파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면서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도쿄, 여우비'를 한숨에 다 보아버린 어느 날.


사랑이 폭발했던 순간 김태우의 맹렬한 자전거 추격신, 빼앗긴 사랑, 김사랑만을 향해 쏟아지는 그의 괴롭게

일그러진 표정과 힘겹게 뱉어내는 맹세의 말들이 도리어 굉장히 행복하고, 절정에 달한 듯 죽도록 황홀해

보이기도 한다고 느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하나뿐인 생에서 그런 대사들을 진심으로 내뱉을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로 감정이 격탕할 수 있다는 건 아마도

로또보다 더한 행운이나 축복에 가까울 거다. 그런 기회를 품고 있는 상대를 만나기도, 그(녀)와 그만큼의 

감정을 기어이 쌓아 올리기도, 그렇게 맘속에서 윙윙대던 말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확인하고 명징하게 

가다듬을 타이밍을 찾기도.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거다.


...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앞뒤 토일껴서 9일동안 여름휴가다.

행선지는 파리. 사실 서유럽을 포함한 '제1세계' 국가들을 가보는 건 좀더 나이가 든 이후로 미뤄두고, 당분간은

네팔, 캄보디아나 탄자니아..이런 곳에서 거지처럼 여행다니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유학중인 친구 신세 좀 지고 다녀오기로 했다.


막상 파리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니, 부럽다는 반응들이다. 내가 히말라야나 킬리만자로 트래킹하러 네팔이나

탄자니아 갈까 한다고 했을 때와는 영 딴판인 반응, 왠지 '파리'라는 명칭과 장소가 갖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긴

한가 본데..나도 그런 걸 좀 갖고 가야 할 거 같아서, 이런저런 이미지와 스토리를 미리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게 된 게 "파리의 연인".

총 20부작에 파리를 무대로 한 건 고작 3화 중간까지. 그마저도 세느강변을 거닐던 씬은 한강에서 찍은 거였다는

누군가의 제보. 사실은 군제대하고 바로 터키,이집트로 떠나느라 이 드라마를 끝까지 못 봤던 게 못내 아쉬웠던

거 뿐이었던 거다.


핏줄의 비밀, 기억상실증, 왕자와 신데렐라, 착해빠진 주인공, 삼각관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경우엔 기주

삼촌-형에 대한 수혁의 박탈감이 되겠지만), 재벌 혹은 대기업 총수일가...하나씩 깨서 보면 그렇게도 통속적이고

뻔한 이야기들인데, 재미있었다.

뻔한 시작과 끝에 뻔한 갈등들이지만, 대사들이, 울음이, 웃음이 너무 이뻤달까나.


마지막 회에서 불쑥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버리는' 시나리오작가 김정은(태영이가 아니라)과 뭐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잘사는 박신양(기주가 아니라)과의 조우 in Seoul. 그녀의 시나리오처럼 가정부도 겸하고 있는

김정은은..모종의 아우라로 치장된 '파리'도 아닌데, 그리고 시나리오 속의 '태영이'도 아닌데, 이야기 속 정제된

대사들을 현실에서 풀어놓으며 주고받는다. 척박하고 치사한 서울에서, 쌔끈하게 빠진 기승전결로 향해 달리기도

힘든 리얼 삶속에서.


동화속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랄까, 아님 그런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라는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물음표랄까. 더러 황당하고 어이없었다고 했던 마지막이었지만,

내겐 그랬다.

그래, 지금까지 니가 본 건 드라마야. 궁상맞고 청승스럽지만 스포트라이트받는 주인공이 결국엔 해피해피해지는

드라마. 그치만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구, 니가 주인공이라고 믿기 어려운 팍팍한 삶에

해피엔딩을 믿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사랑이란 걸 한번 믿어봐, 라는 식의 마지막.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지만, 2004년 여름까지 그런 식의 한걸음을 내딛었던 한국드라마는 드물었던 듯 하다.


*
수영할 줄 알아요? 난 수영 못하거든요.
거짓말했어요. 나 수영잘해요.
근데 그쪽도 거짓말 한 것 같아서요.
내가 옆에 있는게 싫다 그랬죠? 그게 거짓말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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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안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니스에 갔던 건 돈때문이 아니었으니깐. 내 마음이 원한 거라구요.
그런 내마음값으로 도대체 얼마를 준다는 거에요?
(자존심이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아.)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
우리 애기 놀랜 거 안보여요?
우리 애기 안놀랬니?
오빠가 알아서 할께.

애기야, 가자~

*
자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당연히 상대방을 좋아해주는 거잖아.
그런데 만약에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아주 작은 희망도 주지 않아야 하는 거래.
왜냐면 그 작은 희망도 상대방에게는 큰 고문이 될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희망고문이래.


내가 강태영한테 배운게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법.
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법.
근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사랑하는 법 밖에 모르겠다.
만약에 나중에 너를 다시 만나도 사랑하는 법만 배울꺼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강태영하고 사랑하는 법.


이제부터 당신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이 생길꺼예요.
그 안에 있는 난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내 추억 안에 있는 당신도 항상 웃고 있을테니까요.


이것보세요 한기주씨.
미안할때는요 그냥 미안하다고 하구요.
고마울때는요 그냥 고맙다고 하는거에요.
그런말 서툴다고 억지로 뻐팅기지 말구요.
고치세요. 그럼. 자존심세우면서 사과하는 방법은 없어요.


그거 알아요?
저기, 여자들은요.. 그런 상상 가끔 하거든요..
화려한 사람들 틈에 나 혼자만 시든 꽃처럼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서 내 이름 불러주고,
내 어깨 감싸안아주고, 흩어진 머리카락 가만히 쓸어주는 상상...
거기다 대문앞까지 바래다주면 그건 너무 완벽하잖아요.
.. 갈께요.


니 눈에 난 안보이니? 나 안보여?
난 어땠을 것 같은데?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앞에서 우는데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다른 남자에게 부탁해야 하는 내 기분은 어땠을것 같은데?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몰라?
이안에 너있다.
니 맘속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내 맘속에 너 있어.

*
다행이죠?
(뭐가? 다시 못보게 된게?)
나쁘게 헤어지지 않아서요..
정말 고마웠어요. 파리의 일까지 포함해서 내가 평생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해줬어요. 좋았어요, 나.

*
나 죽어도?
너 나 죽어도 이럴 거야?!
이까짓 일로 죽을 사람이었으면 헤어지기 더더욱 잘했네요.
그리고 헤어진 뒤에 죽고사는 것 나 관심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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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이 밥먹고 바래다 주고?
원하지 않아도 도와주려 그러고?
큰 상처 안주려고 작은 상처 주려고 애쓰면 그게 연앤가?
그러면 하는 거 같고.


잭 니콜라우스가 얘기했던가?
내 기술은 의심해도 내 클럽은 의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자기 자신외에 어떤 것도 비난하면 안되잖아. 비겁하잖아.
공을 치는건 클럽이지만 그 클럽을 휘두르는 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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