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의사자 #애비게이터커 #마티 #캣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고양이 #애묘 #집사필독서

오랫동안 cat-person을 자처해왔지만 문득문득 그런 의문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앙증맞고 새침한 동물은 대체 뭐하는 동물이길래 사람 맘을 홀리는가. 딱히 쓸모도 없고 충성심도 없어 스크래치를 온사방에 내기 일쑤인 이 이기적인 동물이 어떻게 길과 거실을 온통 장악해버릴 만큼 번식하고 넘쳐나 버렸는가. 심지어 이제는 사진첩과 SNS피드를 정복해 버렸으니 말이다. 의문들은 으레 일종의 경외감과 숭배의 마음으로 찜찜하게 마침표를 찍곤 했었다.
 
이 책, 거실의 사자는 그런 고양이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애초 거대고양잇과 육식동물의 간식에 지나지 않았던 인류가 그들의 고기를 훔쳐먹고 차츰 도구로 무장하며 세력이 비등해지는 것에서 고양이의 가축화 아닌 가축화가 시작된다. 고양이는 개나 소와는 달리 가축화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특별한 동물이란다.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복속되지 않고 종적인 일관성을 유지한 채 골격과 체형을 지금까지 유지했다고. 개와 달리 종 자체가 고작 털색으로 구분되는 얄팍한 다양성을 가진 걸 감안하면 알 만하다.

인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개와 달리 고도의 육식동물인 고양이는 인간에게 소처럼 편하고 안정적인 단백질원이 될 수도 없었고, 쥐를 잡는다는 오랜 통념과 달리 쉬운 먹이를 취하느라 쥐 박멸엔 큰 효과를 내지 못했고, 다양한 표정과 감정표현을 진화시킨 개와 달리 단독사냥꾼 고양이는 늘 새침한 표정으로 곁을 내주지도 않는다.

그 와중에 번식기계 고양이는 폭발적인 번식속도와 인류 이동에 힘입어 전지구로 퍼져나갔다. 이집트에서 발원한 고양이는 신대륙과 남극까지 퍼지며 토착생물의 씨를 말리고 급기야 인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번성하는 동물이 되었다. 미국에서만 하루에도 길고양이 수만마리가 살처분되고 있지만 숫자는 줄어들 줄 모르고 중성화조치(TNR)는 애묘인과 인도주의자를 의식한 요식적인 눈가림일 뿐이란다.

이쯤되면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 만물의 영장이 맞나 다시 물어볼 때다. 고양이님들의 집사를 자처하는 인류는 먹이사슬의 맨꼭대기를 고양이에 양보한 건 아닐까. 소위 '양육 본능의 오발'을 유발할 만큼 귀엽고 애기같아지는 식으로 진화한 고양이의 매력 앞에 저항할 수 있는 인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책중에 소개된 '톡소플라스마'의 전인류적 감염으로 고양잇과 동물에 대한 저항력과 경계심이 제거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이토록 귀여운 책표지를 만든 디자이너는 분명히 그런 환자임에 틀림없다.

고양이의 매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왜 스스로 고양이 앞에선 애기 어르듯 하며 집사를 자처하게 되는 건지 궁금한 사람에게 강추강추하고 싶은 책. 냐옹♡


단지 착취나 억압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서, 혹은 그에 저항한다고 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심지어 남성들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것이 트렌드라곤 하지만, 페미니즘이 무엇이며 어떤 문제의식과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인지 차분한 이야기를 나누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저자는 명료하게 말한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고. 남성을 여자 아래로 끌어내리고 여성을 남자 위에 세워올리는 게 아니다. 남성과 여성간의 젠더 전쟁을 벌이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바꿔나간다는 건 그저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 남성'에 분노한다는 것 이상을 말함이다.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선 내면의 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스스로 바뀌기 위한 진단과 공부가 필요한 거다. 자신과 타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 하나하나 철저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여성 내부에 체화된 가부장제적인 감수성과 인종적, 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고서는 기득권에 편승중이라며 공격받는 남성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종, 계급, 민족 등 스스로가 놓인 지형에 대한 성찰과 고민없는 일부 얼치기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기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수혜자들인 남성과 얼마나 닮았던가. 강자와 약자가 그대로 온존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로라면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개인의 출세나 자기만족을 위한 하나의 발판처럼 쓰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단 페미니즘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런 '미러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 페미니즘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조심스레 따라가볼 필요가 있는 거다.


#모두를위한페미니즘 #페미니즘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예술과경제를움직이는다섯가지힘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비추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한다. 자라와 솥뚜껑이 닮았다는 관찰은 제법 참신하고 재기넘쳐보일 수 있지만, 본질이나 근본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런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란 의미로 새길 수도 있을 거다. 예술과 경제를 함께 얽어내는 이런 책이 인문학을 살짝 얹은 천박한 교양서나 잡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대체 예술과 경제를 비교하기 위한 잣대가 뭔지부터 살펴보자. 머릿말에서 저자는 그걸 '명쾌하게' 다섯가지로 집약한다. 투시력, 재정의력, 원형력, 생명력, 중력-반중력. 각각에 대한 자의적인 설명은 그렇다치고라도, 그 다섯가지가 왜 근본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 게다가 정의상 서로 충돌하거나 중첩되는 것들까지.

다소 참신하고 풍부한 시각으로 예술의 표피로부터 경제에 대한 메타포를 끌어낼 뿐인 책이다. 경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썰어내고 구부러뜨린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 다시금, 이런 류의 '통섭'이나 '지적 네트워킹'을 말하는 자들에 대해 실망하고 말았다.


#0. 시작은 블로그 방명록에 남은 그리 길지 않던 안내글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
저는 문화의 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탑스피커즈 프로젝트 매니저입니다.

저희는 저자강연회와 사회공헌프로젝트를 같이 묶어서 하는 강연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참가비로는 중고책을 받고, 그 수익금 전액으로 태국 메솟의 고아 난민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블로거님과 함께 하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정철 선생님의 신간 <머리를 9하라>리뷰 블로깅을 통해 함께 해주신다면 저희가 작지만 감사의 의미로 ‘정철 선생님의 머리를 9하라’ 신간과 ‘인생사전’, ‘만년필’, ‘제주도 리조트 사우나 이용권’을 선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책과 강연'을 좋아하고, '손쉬운 재능 기부'로 '난민 아이들 돕기'에 뜻을 같이 하실 수 있는 분들은 의사를 알려주시고 주소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서울에서의 저자 강연회는 6월 4일 이화여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추후 정철 선생님과 함께 식사도 있을 예정입니다^^
문화의 선한 바람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능 기부, 한때는 뭔가 트렌디한 물결처럼 덮쳐왔다가 요새는 '공짜로 상대의 재능을 착취하겠다'는 의미와 등치되기에까지 이른

 

단어가 튀어나왔고. 누가 쓴 건지 책을 준다고 하고. 또 만년필을 준다고 하여-만년필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라-이쯤 되면 딱히

 

재능이랄 것도 없는 리뷰 포스팅 하나로 좋은 뜻에 함께 할 수 있겠다, 딱히 착취랄 것도 없겠다 싶어 대뜸 손을 들게 되었다.

 

 

 

#1. 책이 왔다. 정철의 '머리를 9하라'

 

 

사실 책보다 먼저 눈이 갔던 건, 색지를 자르고 풀로 편지를 붙인 듯한, 게다가 직접 펜으로 이름을 일일이 쓴 듯한 편지였다.

 

재능을 기부해주어 감사하며, 이는 태국 메솟 지역에 있는 난민 고아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적립될 것이라는 안내. 뿌듯했다.

 

근데, 정철이 누구지? 사실 책에 대해서는 거의 기대하는 것도 없었다. 워낙 나무에게 미안한 책들이 많은 세상이니까.

 

 

 

#2. 책을 펼치고, 그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였음을 알게 되다.

 

이런 재기발랄함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 '상식'의 틀 안에서 안전하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철은 뇌 근육을 한번 움직여보고, 꾸준히 움직여 훈련하라고 권해주는 거다.

 

덕분에 이런 발랄한 그의 카피나 짧은 문구들, 단문들이 나오는 것이리라. 다소 뻔뻔하기까지 한 그의 자기 자랑, 혹은 자기

 

작품에 대한 '감상' 요청은 어느결에 마음을 열고 나 역시도 지지 않겠다며 뇌근육을 꿈틀대도록 하는 자극이 되는 거다.

 

'구두에서 가장 때가 타기 쉬운 곳은 밑창인데'로 시작해서, '마음이 정말 구두 밑창 같으시네요'로 끝나는 찰진 문장.

 

 

#3. 머리를 좌우로 돌렸다 앞뒤로 돌렸다가. 목운동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재기발랄함, 카피 한 줄이 갖는 팽팽한 긴장감과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게으르게 책을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잠시라도 읽기를 멈추고 직접

 

머리를 써보기를 권한다. 그런 부지런함과 집중, 대상에 대한 몰입은 심지어 장미의 붉은 입술마저 열게 했댄다.

 

 

그리고 이렇게 그가 일을 할 때의 작업 노트가 몇 장 실사로 담겨 있기도 했다. 역시, 허투루 얻어지는 한 문장, 한 단어가 아니었다.

 

작업노트를 온통 까맣게 메운 단어들과 문자들, 그 중에서 얼마나 살아남아 빛을 보고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까.

 

 

#4. 현재 시점에서 가장 맘에 와닿던 카피라이터 정철의 작품 두 점 감상.

 

 

여행.

 

빈틈없는 계획이 섰니?

 

그럼 가지 마.

 

여행은 틈을 만나러 가는 거야.

 

 

 

별과 달 중에.

 

별과 달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

 

힌트는 별은 무수히 많은데 달은 혼자라는 것.

 

그래, 별이 더 외롭지.

 

무수히 많은 속에서 혼자인 게 훨씬 더 외롭지.

 

당신처럼.

 

나처럼.

 

 

 

#5.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쭈욱.

 

정철의 작품을 더러는 곰곰이 되씹으며, 혹은 그냥 심상하게 지나치기도 하며 후루룩 한 권을 쉽게 읽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처음보다는 정철이란 사람이 쓴 이 책에 호의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최소한, 나무에게 아까운 책은 아니고 더구나 꽤나

 

머리를 요리조리 돌려보고 발상을 자유로이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인 거다.

 

 

이런 재미에, 그래도 전혀 기대치 않았던 책에서 나름 몇몇 포인트-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남겨두고 싶은 것들-을 찾아낼 때의

 

쾌감 덕분에 새로운 책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놓을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계속 기회가 닿으면 함께 해도 좋겠다 싶은 프로젝트다.

 

 

 

 

 

 

작년 말, 2030세대에 대한 선험적이고 편의적인 규정과 비난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자성에 기반해서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기획한 2030세대와 4050세대 간의 이해를 도모한다는 좌담회가 있었다.

 

 

어쩌다보니 '30대 직장인' 대표 패널로 나서게 되었는데, 사실 세대론 따위는 (비록 그 편의성과 명료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세대' 대신 '계층'이나 '계급'을 통한 사회 분석이 적절하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말을 많이 하게 되어버려서 다른 패널분들께 민폐를 끼친 거 같기도 하고,

 

'세대론'이란 걸 깔고 이야기를 하려 했던 애초 취지를 상당부분 불식시켜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사실 대선 이전에 출간되어 2030세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바탕으로 범진보 야당세력을 정신차리게 하려던

 

이 책이..이제야 나오게 되어 제2의 박통 시대를 맞게 된 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해보고.

 

 

또 하나는, 대선 후 평가 국면에서 또다른 반편향으로 치닫던 5060세대 ㄱㄱㄲ론 같은 것도 결국 '세대론'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로 뭐 하나 설명하지 못하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주문일 뿐이란 생각이다.

 

 

단적으로, 대형차 타고 골프치러 다니는 60대 부부와 리어카 끌고 폐지줏으러 다니는 60대 부부가 하나로 묶일까.

 

해외어학연수 다니고 온갖 학원 등록해서 다니는 소위 있는 집 대학생과 등록금 하나 감당하기 힘든 없는 집 대학생이 같을까.

 

 

아래는 참여사회연구소에서 내보낸 보도자료, 그리고 본문 중 내가 발언했던 부분들 중 일부 캡쳐.

 

 * 보도자료, "참여사회연구소, 단행본《2030 크로스》출간, '불임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붙임의 세대론'" 中

1.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소장 :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3월 4일 단행본 ≪2030 크로스 ― 불임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붙임의 세대론≫(참여사회연구소 기획, 양정무‧윤홍식‧이상호‧이양수 엮음, 이매진 펴냄)를 출간했다. 이 책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백수와 음악가, 의사와 시민단체 활동가, 결혼을 앞둔 20대와 비혼주의자, 동성애자 등 다양한 20, 30대와 참여사회연구소의 40, 50대 편집위원들이 필자로 참여해, 2030세대의 현실과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세대 간 이해와 통합을 위한 단초를 고민한다.

 

 

2. 1부에서는 2030세대 24명이 직접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고, 2부에서는 이른바 사회분석 전문가들이 세대 담론을 되짚었으며, 3부에서는 청년과 기성세대가 모여 진행한 난상토론을 글로 담아냈다. 불안하고 불평등하며 불합리한 ‘불임’의 시대를 사느라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채 살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보수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끊임없이 ‘오해’를 받는 2030세대가 과연 어떻게 4050세대와 ‘크로스’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

 

5. 3부 ‘2030 크로스 4050’에는 20, 30대와 40, 50대의 난상 토론을 담았다. 2030과 4050이 한자리에 모여 왜 자꾸 2030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세대 구분의 의미와 한계는 무엇인지, 2030은 동질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세대를 넘어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6. 지금의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이기적이며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불임의 시대’에서 청년들에게만 진보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겁하다. 따라서 4050세대는 어설픈 위로 대신 2030세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혐오하는지 제대로 보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이젠 2030세대와 4050세대가 함께 불안을 잘라내고 희망을 붙이는 ‘붙임’의 세대론을 모색해볼 시간이다. 

 

 

 

 

 

 

 

 

 

 

 

 

 

 

분노하라 - 10점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돌베개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책읽기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언가 자신의 사고 궤적을 이어나가는 행위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소설이나 문학류 이외의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서적을 본다는 건 당시 자신이 갖고 있는 의문점,

고민이라거나 관심분야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독서 리스트를 쭉 이어나가보면

그자체로 나름의 스토리랄까 문제의식이 뻗어나가는 그림이 잡히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하라'라는 책이 내 손에 쥐어진 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람들이 다들 쥐고

있는 이른바 '핫한' 책들은 일단 피하려고 하는 묘한 청개구리 심리에다가-아직 '정의란 무엇인가'는

좀체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지구 반대편 레지스탕스의 목소리를 빌려 굳이 '분노하라'는 말을

전해듣지 않아도 될만큼 무시로 분노하고 있지 않은가. 그냥, 워낙 감각적인 표지가 맘에 들었다.


삶으로 말한다, '앵디녜부(Indignezvous)!'

저자는 이제 무관심과 냉소를 넘어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행동을

위한 에너지로서 분노를 말하고, 분노의 결과로 행복을 말한다. 삶의 안전망으로 기능해야할 사회보장

제도의 축소, '일반의 이익보다 특정인의 이익을 앞세우'게 된 경제 시스템, 정부와 대기업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고 있는 찌라시 언론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대물림하는 교육. 분노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런 식의 현실분석은 이미 차고 넘친다.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배포되는 얇은 전단에

더욱 정밀하고 응축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에 기반한 결론, 혹은 주장도 같다. 이제 그만 속고,

그만 참고, 그만 당하자고. 분노하고 저항하자는 거다. 다만 이 책은, 그 뻔하고 당위적이며 선동적인

이야기에 담긴 무게가 다르다. 메시지의 진정성, 신뢰성이 다른 거다. 그러니 울림이 다를 수 밖에.
 

1917년에 태어난 저자는, 나치와 싸우며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가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갇힌 채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탈출하고 다시 투쟁,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인권과 환경 등 사회문제 전반에 발언하며 활동하고 있다. 올해 아흔네살이다. 그런 '늙은이'가,

그런 '꼰대'가 좋은 게 좋다느니, 철 좀 들으라느니 따위 이야기가 아니라 '분노하라'는 거다.


90대 노인의 '격렬한 희망'에 위로받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발견한 건, 육체적인 쇠락에 지지 않고 탄탄하며 쌩쌩한 열정과 젊음을 가진

어느 존경할 만한 투사의 삶이다. 그리고 그의 삶 자체로 느껴지는 위로다. 나보다 앞선 그의 삶과

신념과 가치를 발견하고는, 왠지 그의 여전히 탄탄할 것 같은 등을 바라보는 안온함과 믿음직함을

느끼게 되는 거다. 근 한세기동안 명멸해온 거대한 폭력과 광기를 지켜봐온 그가 희망을 말하니까.

그의 견지로 봤을 때 MB치하 3년간의 고난, 괴로움은 그야말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이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좌절과 절망을 느꼈을까.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왔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제 한세기를 살아온 노인의 혜안으로 젊은이들에게 고한다.

"주변을 둘러봐요. 그러면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이민자, 불법체류자, 집시들을 이 나라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등등-이 보일 겁니다. 강력한 시민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 상황들이

보일 겁니다. 찾아요. 그러면 구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총대를 넘겨 받으라, 분노하라는 거다.


수많은 한국의 레지스탕스에게. 특히 김진숙에게.

이 책의 소감은 사실 책에 씌여질 종류의 것은 아닌지 모른다. 분노하고, 행동하라는 그의 분명한

메시지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한국에 태어난 건 다행인지 모른다. 갈수록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렵고 분노의 대상이나 책임의 소재를 밝히기 어려워지도록 복잡해지고 은폐되어지는

사회시스템의 진화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날것의 국가폭력, 비인간적인 자본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용역깡패의 모습으로, 어용 언론의 모습으로, 유치한 고소고발로,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의 밥줄을 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노하기 유리할지도.


역시, 내게 책읽기는 사유의 연장이다. 요새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 한진중공업의 그녀, 김진숙.

사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할아버지까지 찾아갈 것도 없었다. 젊어서부터 안 해본 것 없이 노동해온

오십대의 그녀가 도무지 한눈에 보기에도 어처구니없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대항해서 크레인에

올라간지 180여일이 가까워진 참이다. 한국의 자본권력, 그리고 그를 비호하는 국가권력은 최소한의

설탕코팅조차 없이 쓰디쓴 현실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참이다.


스테판 할아버지(저자)는, 그녀의 이런 투쟁을 안다면 노구를 이끌고 크레인 위에라도 오를 사람이다.

그리고 김진숙 그녀는, 레지스탕스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거리의 신부 문정현신부님이나 다른 한국의

이름없는 레지스탕스들처럼, 아무리 나이를 먹고 육체가 노쇠해져도, 지금과 같이 그런 열정과 분노를

가지고 우리에게 든든한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그러려면 이 팬시하고 '깔쌈한' 표지의 책은 서가에

꽂아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에 꽂아두어야 할 일이다.


그러면 혹시 또 아나, 우리는 백발 성성해진 김진숙이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야기하며 분노하라,

그리고 저항하라며 쓴 또다른 뜨거운 책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경쟁에 반대한다 - 10점
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산눈

제목부터 도발적인 책이다. "경쟁에 반대한다"

경쟁에 반대한다고? 시장 논리와 무한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의 신화가 경제 영역을 벗어나 교육, 정치,

문화 전 분야로 뻗어나가는 이런 시기에, 예컨대 '불공정한 경쟁'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 그 자체에

반대한단 제목이다. 이런 책은 둘 중 하나 아닐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으로 '낚아보려는' 책이거나

혹은 작심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보겠다는 결기 어린 책이거나. 둘 중 어떤 걸까, 이왕이면 후자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처음 집어들었다.


부제는 더욱 웃긴다. "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

누구는 낭비하고 싶어서 하나? 그리고 나라고 지기만 한 경주는 아니었단 말이다, 라고 저쪽에서 루저 1이

울컥 핏대세워 이야기한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에 이기면 된다고, 더 큰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거라고

저쪽에서 또다른 루저 2가 자신없이 중얼거린다. 이건 낭비가 아니라 '두걸음 전진을 위한 한걸음 후퇴'라고

해병대 팔각모자쓴 저쪽 루저 3은 강단진 표정으로 이를 악문다. 1%의 인재가 나머지 사람들을 먹여살려

준다는 이야기는 이런 식의 경쟁, 줄세우고 비교하고 99%를 '비인재', 루저로 모는 무한경쟁 무한찬양의

극단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당장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싫어도 경쟁 속으로 뛰어들고,

혹은 더 큰 과실을 위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치열한 몸값경쟁을 통해 낙찰,

낙찰가 88만원인 거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배웠네 하는 사람들도 이야기한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여태 인류의 발전 과정을

보면 끊임없는 약육강식의 갈등, 적자생존의 경쟁 상황 속에서 이런 '빛나는 문명'을 꽃피운 거랜다. 한국

사회로 스코프를 좁혀보아도 국내 기업간의 이기기 위한 경주, 뼈를 깍는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난 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진단평가니 뭐니 시험을 보고 경쟁을 붙여야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도 올라가고, 그래야 우리 지자체의 경쟁력-이라고 쓰고 명문대 합격률이라 읽는다-도 올라가고

국가 경쟁력도 올라가고 나아가 인류 전체의 복지에도 공헌할 거라는 투다.


인류의 놀이문화를 봐도, 어쩌면 경쟁은 인간의 본성일 거라는 지레짐작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이미

우리는 고대 그리스 이래 스포츠와 놀이 문화조차 '인격 형성과 성숙에 도움이 된다며 경쟁 일편향으로

기울어져 왔으니, 지금의 축구나 야구 같은 현대 스포츠가 전쟁과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욱 폭력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경쟁적 스포츠로 인간 본성에 내재한

전투적 본능을 달랜다는 해석도 있는 거다. 스포츠맨십 따위 치장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건 굳이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고 승리를 통해 쾌감을 만끽하려는 욕구다. 승패 따위 가리지 않는 게임은 솔직히 지루하지

않은가, 라고 물어보기도 우스울 만큼 재미있으려면 당연히 경쟁적이어야 한다고 모두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티비에 만연한 온갖 버라이어티에서 보이는 경쟁 구도들, 갈수록 선연해지고 말초적으로 변해가는

경쟁들이 그 단적인 사례들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거다. 경쟁을 통해 더욱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믿음, 경쟁을 통해 삶이 윤택해지고

의미가 생긴다는 믿음, 심지어는 경쟁이 '인간 본성' 그자체에서 비롯한다는 믿음,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오해거나 혹은 악의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게 이 책의 골자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자존감 부족이 바로 경쟁사회의 원인이자 결과,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 실은 협력을 통해 더욱 재미있을 수 있고 생산적일 수 있으며, 개인의 자존감 역시 더욱 고양될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도 이미 나와 있음에도 워낙 근본적인 문제라 꼼짝도

안 한다는 거다.


생각보다 학술적으로 깊이 들어간 책이고 책 자체가 하나의 주장을 위한 탄탄한 논문이라 해도 좋을 만큼

논리 정연하고 논거가 풍부하다. 교육 심리학자인 저자는 기존의 학문적 필드에서 '정설'이라 일반화되어

버린 설들에 대한 강력한 반박을 하고 있어서 상당 부분 '팩트' 싸움, 유의미한 해석을 도출하는 실험의 인용

여부 및 신뢰도 싸움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총 10장으로 구성된 챕터 중 무려 아홉 챕터나 할애해서

집요하게 보여주려는 것, "승리와 성공은 다르다"라는 명제 아래 지금의 "경쟁"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키워드, "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와 문제제기는 정말 너무나도 무겁다.


사실 이미 경쟁을 조장하는 구조가 문제냐, 경쟁적인 마인드에 절어버린 사람이 문제냐, 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같은 무의미하고 무익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예컨대 '키작은 사람은 루저'라는

말에 분개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경쟁시스템에서 '키'라는 요소로 패배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한편 '키'라는 요소조차 타인과의 경쟁구도 속에서 생각하는 멘탈리티를 이미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키'라는 신체적/천부적 조건조차

이 도박장이나 주식시장같은-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잃는다는 점에서-경쟁시장의 칩으로 훌륭히 쓰이고

있는 거고, 또 칩으로 이미 유통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키'를 둘러싼 경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띠.


그렇게 보면 참 공고하다. 아무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하는 동물이 아니며, 경쟁 말고 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떠들어봐야, 마치 맑스주의를 오늘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그래, 니말은 다 알겠는데, 참 논리정연하고 그럴 듯하고 멋져보이는데, 그래서 어쩌라구. 그런 차갑고

단단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 때문에 책을 읽어내리다가 덮어버리기를 몇 번. 단순히 경쟁 말고 협력에 의한

문화, 경제, 사회가 가능하겠구나 정도 고개 몇 번 주억거리고 말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뭔가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 지, 기업 구조, 경제 시스템, 학업 시스템 따위 거대한 것들 말고 당장

경쟁에 길들어버린 '내 입맛'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저자는 치사하게 자기

전문분야인 '교육'에 대해서만 몇 마디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말았다.


그냥, 계속 생각해 볼 만한 책이고 어쩌면 좀 확장해서 읽어보아야 할 책일지도 몰라서, 정리가 채 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정리해 버릴 책이 아닌 거다. 계속 책상 위, 머릿속에서 ing로 남아있어야

할 책, 남아있어야 할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외부의 자-타인이 되었건

그들이 정해둔 기준이 되었건-를 빌어 스스로를 재어 보며 위축되거나 과시하지 않고, 스스로 혼자 설 수

있도록 좀더 애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직 시즌이라 알게 모르게 또 마음속의 자를 가동해보는 자그마한

모터 소리가 윙윙 들리는 거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어디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어디쯤, 이런 식의 등수

놀이를 피하려면 다소간 '도 닦는 마음'이 필요한 거다. 스포츠에 비기자면,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려는

축구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기록을 갱신하려는 역도나 높이뛰기쯤에 임하는 마음이랄까.
 

책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던 대학교 2학년 때의 기억 하나. 학과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새내기준비위원회

회장을 맡아서는 오리엔테이션에 뭐하고 놀지, 뒷풀이에선 뭐하고 놀지, 새터가서는 또 뭐하고 놀지

나름 열심히 고민고민했었다. 뭐 결과물이야 통속적이고 보잘것 없었지만, 만약 내가 '경쟁'과 '협력'을

감별해낼 만큼의 미각을 갖고 있었다면 좀더 신선하고 즐거운 놀이들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함께 즐겁고, 서로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이름과 쉽게 매칭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게임들.

누구보다 앞서고, 누굴 제치고 이기려고 바둥바둥대느라 잔뜩 지치고 상처받았을 녀석들하고 굳이

또 그런 게임을 할 필요는 없었던 건데.


어떤 책들은 읽고 나면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사방팔방으로 울림이 번져나가는 책,

그게 소설이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되었던, 들불처럼 사방으로 번질 수 있는 의미의 갈래들을

하나씩 새겨보고, 그게 어떤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읽는 것 자체와는

또다른 큰 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런 책들에서 자신이 애써 고삐를 추스려 잡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 중의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뭐, 고작해야 학사 나부랭이인 내 수준에서

그렇단 얘기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 10점
최장집 지음/돌베개

최장집 교수의 이 책, 그의 다른 책들처럼 굉장한 책이다. 나는 그저, 내 나름의 맥락에서 그 중

일부를 떼어서 조금이나마 사고를 자극하고 정렬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리뷰'라기보다는 일종의 발제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전제로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두 개의 집단이 맞서고, 두 집단은

모종의 타협이나 정치적 과정을 거쳐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그런 무조건적인 통합의 메시지는 국가주의나 집단주의를 초혼할 뿐이다.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국회는 안건을 갖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게 당연하고, 시민들 역시 떠들어댈 광장이 필요하며,

시스템이 안배한 통로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은 초법적 수단조차 동원해야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갈등선'이 비로소 그어지는 거다.


갈등을 부정하고 묵살하는 사회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갈등'에 대해 그 존재부터 부정하고, 묵살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시스템 내의 '갈등

발견&해소 프로그램'은 협소하고 취약하기 짝이 없어서, 모든 갈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결국 사교육비 많이 부담하라는 교육문제, 애기 외롭지 않게 키우라는 출산율문제, 손 많이 씻고

쇠고기는 알아서 골라 먹으라는 보건문제, 우유 많이 먹고 성형외과 찾아가라는 젠더문제, 눈높이를 낮추고

기술을 배우라는 취업문제. 사실은 사회 문제, 즉 사회적인 갈등선을 빚어내는 문제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소하도록 종용되고 있다.


복불복 마인드로 순치되어 버린 파편화된 개인

그리고 조용한 사회. 누군가 '노'라고 이야기하면-갈등을 말하려 하면-사회 불만세력, 반정부세력, 심지어는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조장하는 매국노로까지 매도당한다. 지금의 비정규직 정책에 반대한다, 한미FTA에

반대한다, 재개발 정책에 반대한다, 등등 이어지는 '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무조건적인

사회 통합의 강요, 국가발전 한길로 매진해야 할 시기에 힘 빼지 말자는 국가주의적 교시였다. '노'라고 말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적 안배나 기제가 없는 상황에서 번번이 '불법'으로 밀려나는 최악의 상황에선, 1박2일식

'복불복 마인드', '나만 아니면 돼'라는 파편화된 개인들은 그러한 무서운 국가 앞에 무력할 뿐이다.


똘레랑스는 갈등 인정 이후의 문제다

그게 민주주의일까. 황장엽이 말하고 보수세력들이 떠드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그런 거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 혹은 다른 무엇이다. 민주주의는 최장집의 표현을 고대로 빌건대 "폭력을 배제한 갈등과

타협에 기초한 정치체제"에 가까운 무엇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똘레랑스는 고사하고 갈등 자체를 터부시

하고 있는 거다. 시끄러운 국회가 싫다, 시끄러운 광장이 싫다, 결국 '시끄러운 게 싫다'란 정도로 요약될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한 혐오나 염증이 문제다. "정치인 아저씨들은 왜 맨날 싸워요?"라고 묻는 어린애의 똘망한

눈망울 앞에 무조건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적인 갈등을 대체하는 추상적 전선(戰線)

혹은 갈등을 묵살하고 없는 것 취급하는 것과 동시에, 추상적인 양극 구도로 몰아간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평화개혁세력 대 냉전수구세력' 따위의 갈등선은 뭔가 선명하고 뚜렷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이상

내용도 없고 실천적 의미 또한 던져주지 못하는 죽어버린 그림이 아닐까. 87년을 기점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나서, '민주', '진보', '개혁' 따위의 단어로 지시되는 내용은 그때그때 바뀌어 버렸다. 이미 갈등선이

그 고도로 추상화된,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쉬운 단어의 세계를 넘어서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로 넘어온 거다. 


'부러지지 않는 쌍쌍바', 자잘한 균열선들의 긍정적 역할

두 개의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쌍쌍바 여러개를 고르게 포개어 쪼개는 그림, 그리고 쌍쌍바 여러개를

무질서하게 포개어 부러뜨리는 그림. 첫번째 그림에서 쉽게 부러질 쌍쌍바가 '민주 대 반민주'니 '진보 대

보수'니 따위의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갈등선으로 일관하는 사회의 파국 혹은 불건전성을 의미한다면, 둘째

그림에서 좀처럼 부러지지 않을 쌍쌍바들은 예컨대 '동성애 찬성 대 반대', '증세 찬성 대 반대', '등록금 무료

찬성 대 반대', '모병제 찬성 대 반대' 따위 수많은 이슈에 대한 자잘한 갈등선을 품어내는 사회의 건전성을

의미한다. 최장집은 정당정치가 그러한 자잘한 갈등선을 반영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부재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할까. 정당 정치는 마비되었고, 광장 정치(광장 민주주의라 높이 평가되기도 한)는

고양되지 못한 채 배설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근대 정치에 걸맞는 '자유주의적 인간형'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거대한 국가와 동등한 계약관계로 묶인(혹은 묶였다고 상정되는)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시민' 대신에 NL(민족민주)이니 PD(민중민주)니 통일조국, 민주국가건설을 위한 '민중'만이 화석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광기에 가까운 월드컵 응원 열기, 골프와 피겨, 축구 선수에 대한 과도한 국가적 상징화,

새롭게는 '국격'이니 '국위 선양'이니 따위의 국가주의적 수사에 푹 절어 있는 것이 하나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네티즌 수사대'가 몰려들어와 융단폭격을 하는 원시적/집단주의적 작태가 다른 하나다.


'민중'에서 '시민'으로 바꿔내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

최장집이 이른바 386세대, 운동권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세력,

구조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서 스스로를 형상화하고 안티화해내면 되었을 뿐인, 역사적인 한계기도 하지만 능력

부족이기도 했던 부분이다. '민중'이란 불분명한 역사적 집단에 기대어 '역사의 정방향으로의 발전'을 믿었던,

지금과는 정반대의 뒤집어진 세상만 꿈꾸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불철저했던 문제의식은 곧 김대중/노무현

두 자칭 '진보성향' 정권의 실패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은

동일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혹은 이명박은 10년 '좌파 정부'의 예정된 귀결이었다고 판단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을 박제화한 '민중'의 배신은 당연하다

과연 그런 걸까. 판단은 유보하되 의견을 말해 보자면,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죽음에 비통해 하던 이들은

'민중'이었지 '시민'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세속된' 이해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갈등을 시스템 내에서

해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민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또 이명박이 퇴행시켰거나 노출시킨

허술한 민주주의에 놀란 상태에서 '민주 대 반민주'라는 손쉬운 갈등선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한 '민중'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명박 덕분에 갑자기 '민주'의 화신, 실패한 영웅으로 부활했지만, 사실 그들은 재임 중

수많은 이슈에 대해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도 시스템 내로 그런 이슈, 갈등을 들고 들어와

해결하는 기제를 마련치 않았다. 그 결과다. '민중'은 속되고 삿되다 하여 정치권에서 다루지 않는 온갖 생활

밀착형 이슈들, 부동산과 주식과 교육과 취업과 세금의 문제에서 또다시 '김대중과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고

있다. 이명박의 지지율을 보면 알 일이다.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 10년을 날려버린 정치권의 실패다. 그들은

"샐러리맨 세금낮추기 정당", "공휴일에 지하철 막차시간 연장하기 정당", "대학생 일자리 보장 정당" 따위, 좀더

세분화되고 생활에 발딛고 있는 이슈로 자잘한 찬/반 균열을 그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이슈들의 묶음으로

커다란 '진보'를 형상화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곧 '구체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라는 구호의 함의였을 거다.

사실 국가 발전을 위해 다른 갈등들을 묵살하는 기득권 세력의 몸짓은 지금의 '운동권' 세력에게도 여기저기

발견된다. 조직 내 성추행 사건을 덮는다거나, 전경과 대치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동원되는 '사수대'의 군대식
 
규율,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도덕률과 사명감의 차원으로 모든 것을 치환해 버리는 방만함까지.


자잘한 이슈들을 그어내고 반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좀더 갈갈이, 중층적으로 찢겨야 한다. 무슨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반공이니, 신자유주의니, 혹은 친미/반미니,
 
심지어는 희화화된 형태의 '보수꼴통'과 '친북좌파'의 굵고도 무식하며 무시무시한 일도양단식 균열말고. 그런

세속화되고 일상적인 형태의 자잘한 균열들이 좀더 촘촘하게 그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고착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구처럼 국가 이전에 '시민'이 먼저 형성되는 것이 실패하였다 치더라도,

이제라도 강력한 국가 앞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시민'을 불러내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분열을 말할 때다. 지금처럼 인터넷 상에서 서로 ^^해가며 좌빨이니 우빨이니 맞지 않는 화살만

잔뜩 주고 받는 소모적인 이야기로 분열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입장이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분열 말이다.



덧댐.

어쩌면, 이명박을 뽑은 국민들이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으로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경제발전'에 대한 감수성과 비판의식을 키워내야겠지만

'돈을 많이 벌게 해줄 것'에 대한 디테일과 방법론이 경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진보'를 자처한 진영이

그 이슈를 송두리째 방기했음을 반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태의 삶의 부유함을, 어떻게 창출할 건지에

대한 미시적 수준의 갈등선을 역시 그었어야 한다는 거다. 이 역시 이명박의 집권이 김대중/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운동권 세력이 정치적 발전에 소홀했던 덕택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6점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눈길을 붙잡았다. 이럴 때는 원어로 된 제목을

봐야 한다. 번역본은 더러는 시류에 영합하려고, 혹은 편집자의 과욕으로 영 이상한 제목을 달고

나올 때가 많으니 말이다. 이 책 역시, 조금 제목이 과했다. 원제는 'the Rhetoric of Reaction'.


레토릭이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되는 수사학적 표현을 말한다. 뭐랄까, 논리의 형태를

갖추기는 했지만, 결국 논쟁에서 이기겠다는 최종 목적에 충실하기 위한 말하기 전략이랄까.

상대의 논설이 가진 논리적 어그러짐을 공격하는 건 기본이고 상대의 주장이 놓친 이면을

가능한 확장하거나 변형하여 '꼬투리'를 잡아내는 것, 그런 게 수사학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 6점
쇼펜하우어 지음, 김재혁 옮김/고려대학교출판부

어렸을 때 봤던 책 중에 이런 책이 있었다. 쇼펜하우어가 지었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상대의 논리는 최대한 일반화해서 허점을 키우고 자신의 논리는 최대한 구체화해서 허점을

줄이라거나, 상대가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거나, 의미없는 말들을 쏟아내라거나 따위의 야비한,

그렇지만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들이 무려 38가지나 소개되었던 책이다. 그는 이걸 활용하라는게

아니라 이런 식의 수사를 동원하는 상대를 대비하라는 의미로 지었다지만, 실제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억누른 후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문제는 그거다. 실제로 레토릭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 권위에의 호소,

잘못된 인과, 대중에의 호소, 성급한 일반화 따위의 이야기들은 책 속에만 우스꽝스런 사례로

제시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신문사설에도, 정치인들의 입에도, 늘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실제 사실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지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레토릭을 잘 쓰는지가 더러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비극이다.


그런 레토릭은 상대보다는 청중을 장악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민주주의 시대의

레토릭
은 더욱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정치학자 마셜이 제기한 민주주의 3단계론의 각

계단에서 사회의 보수진영이 어떤 레토릭으로 시민권, 정치권, 경제사회권으로 확장되어가는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았는지를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사례와 논설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레토릭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실제로 나머지의 레토릭들은 이 세 가지의 변형이거나 부산물이라는 게 저자의 관찰이다.


1) 역효과론 :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2) 무용론 : 그래봐야 기존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3) 위험론 :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풍부하게 인용하는 당대의 보수 석학들은 근대의 개인을

처음으로 세워낸 프랑스혁명과 인권선언, 1인1표의 보통선거권에 기반한 정치적 민주주의, 그리고

복지국가라는 단어로 축약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줄곧 거부하거나 부정해왔던 거다. 실제로

그 간단한 레토릭이 대중을 움직이고 여론을 만들어내어 민주주의의 확장을 막아왔다.


세 가지 레토릭에 기반해서 사실을 호도하고, 대중에 호소하고, 이성보다 감정에 의지하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공히 나타나는 일이라지만, 특히 지금 우리나라에는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지 싶다.

민주주의, 혹은 복지국가라는 큰 아젠다를 둘러싸고 벌이는 보수-진보간의 갈등은 무상급식이니

무상의료니 따위의 이슈를 두고 팩트의 해석에서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바로 책에서 보였던

여러 역사적 논쟁과 국면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하면 오히려 서민가정이 피해를 입는다거나, 무상급식을 한다고 서민가정에 좀더

수혜가 가지도 않을 거라거나, 심지어 무상급식으로 우리나라 재정이 파탄나고 모두가 위태롭게

될 거라는 식의 논변. 게다가 시대착오적인 사대강 삽질과 언론규제 따위의 이슈에 대해서도

약간씩의 변형이나 강약은 있겠지만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현실이 겹쳐보이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제기될 법한 당연한 질문 하나. 보수파만 레토릭을 활용했을까. 진보파도 같은

논변을 통해 보수를 굴복시키고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 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역사적으로 진보파가

대중을 장악하기 위한 논쟁에서 다소간 열세에 있었으며, '진지성'이 너무 강해 '풍자'에는 약했다는

정도로 넘어가려는 듯 하다. 조금 보태자면,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지키려는 입장보다 뭔가 바꾸고

변혁하려는 입장이 아무래도 취약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레토릭을 안다고 해서, 레토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처럼 논쟁에서 휘말리지

말라는 실용적인 목적이라기엔 저자는 좀더 본격적이었다. 저자는 이미 '두 개의 똑같은 불합리'라고

지적된 극단적이고 비타협적인 레토릭간의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대립에서 벗어나서 이른바

'민주주의 친화적'인 영역을 찾아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자는 의도란다. 그렇지만 그도 이미

지적한 것처럼 레토릭은 레토릭일 뿐, 실제로 상황은 보수와 진보의 레토릭 사이에서 움직여 왔다.

레토릭을 벗어나 '민주주의 친화적'인 영역을 찾으려면 단순히 레토릭을 아는 것 말고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P.S.

아마도 그건 청중들의 수준이 그걸 감별해내고 기각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된 이후에나 가능할 거

같다. 몇 마디의 논설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단어로 인기를 얻고 감정을 흔드는 정치야말로

요새 유행하는 말을 빌자면 '포퓰리즘'인 거다. 레토릭에 휘둘리는 '포퓰리즘' 정치를 벗어나려면

우선 피아식별을 하고 줄기차게 싸워야 하지 않을까.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상황에 좀더 구체적으로 적용시키자면, '어린애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냐'느니, '말꼬투리

잡는데 연연한다'느니 따위의 정치 일반에 대한 막무가내식 손가락질과 비난을 피해야 한다.

모두에 대한 비난은 결국 그 누구에 대한 비난도 아닐 뿐더러, 정치적 허무주의만 조장하고

마는 거니까. 그렇게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감내하는 게, 레토릭에 휘둘리지 않는 첫걸음이지 않을지.




선물로 받은 프라하산 고양이 한 마리. 자그마한 비닐백 속에 담긴 채, 빨간 끈뭉치랑 놀고 있었다.

비닐백에서 풀어놓으니 앞다리도 움직이고, 뒷다리도 움직이고. 세모꼴 귀만큼이나 쫑긋 선 꼬리가 귀엽다.

가만히 보면 표정이 익살스럽다. 코를 벌름벌름대면서 금방이라도 냐아~ 할 거 같다.

빨간 끈을 완전히 감아 버렸더니 살짝 실눈을 뜨고 나를 흘기는 듯한 저 고냥이스런 표정.

요새 보고 있는 책에 갈피해 넣었다. 하나의 땅에 사는 두 개의 민족 이야기다. 쉽진 않지만 꽤나 재미있다는.

실 끝을 부여잡고 있는 고양이의 자세가 왠지 굉장히 절실하다. 실을 놓느니 죽어버리련다, 정도의 결기랄까.

다른 쪽 끝, 고양이에겐 마치 세계의 반대편 끝이라고나 느껴지려나. 단정히 주저앉은 실타래.

내 선물 말고도, 집에 하나 새로 생긴 꼭두각시 인형. 손발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데 심지어는 걷는

모습까지 '레알' 재현이 가능하다.


 
우선 '리뷰'라는 단어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리뷰. 사전적 의미로는 도서, 영화, 연극 등에 대한 논평이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선 다소 다른 의미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듯 하다. 티스토리의 공지 역시 '영화, 리뷰, 책...'

거기서 얘기한 '리뷰'란 아마 각종 제품에 대한 '리뷰'라고 이해하면 될 거 같다.

(무슨 제품에 대한 것이 되었건) 리뷰나 영화, 책에 대한 포스팅이 딱히 사진이 강조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렇지만 글만 줄줄 들어가는 것도 참 재미없는 노릇, 간단히 사진 한장에 포스팅 내용이 얼마간 노출되는

것이 역시 최선인 것 같다.


남는 문제는, 그런 '리뷰'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괜찮지 않을까 시도해봤다.

"최신 포스팅", "분야별 리뷰", 그리고 "직접 선정한 추천 리뷰" 정도.

아무래도 최신 포스팅이 맨 위로 오르는 게 '첫화면'으로서 꼭 필요하고 당연하기도 한 순서 같다. 따끈한 최신

포스팅이다 보니 포털 헤드라인 스타일로 그림도 크게 넣고 노출되는 글도 조금은 많이.

영화 리뷰의 경우 난 으레 영화 포스터를 하나씩은 넣곤 한다. 딱히 다른 이미지를 넣을 게 없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소감이니만큼 글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어서다. 그런 욕심으로, 조금은 더 많이 노출시킨 글자들.

도서 리뷰는 약간 더 글자 중심이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아예 이미지 노출을 치워버렸다. 포스팅 제목에 책

제목이 들어가면 됐지 굳이 책 사진을 올릴 필요까지야.

여태 써온 리뷰들을 보면 대개 영화와 도서 분야, 상대적으로 언론과 공연/전시 쪽은 포스팅도 뜸하고 글도

많지 않아서 두 개씩만 노출시켜 보기로 했다. 언론 분야나 공연/전시 모두 이미지가 필요하니 적당하게.

그리고 마지막 부분, '영화, 도서, 언론, 공연/전시' 분야에서 그래도 스스로 맘에 드는 리뷰 포스팅들을 몇개

골라서 간략한 형태로 노출시켜 봤다. 다른 박스들에서 최신글들이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특히나 맨 앞머리에서

리뷰 분야 최신글이 노출되겠지만, 이 부분은 본인이 스스로 지정한 글들을 변경하지 않는 한 계속 같은

포스팅들을 노출시키게 될 거다. 그건 이 '리뷰' 블로그의 뼈대거나 주된 색깔, 시각을 드러내는 대표선수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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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536회 (4) " 동혁이형 국사선택과목 유감"  2010-02-28 방송. KBS 찜,  Powered by VMark>

KBS ‘찜’은 KBS 컨텐츠의 편리한 시청, 공유를 위해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굳이 이름을 알리고 싶지도 않은 어떤 시민단체는 동혁이형의 개그가 "국민을 賤民(천민) 혹은 暴民(폭민)화"

하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선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제2의 김제동 꼴이 나는 건 아니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반면 '개그는 개그일 뿐,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비판도 있네요.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건 초점을 흐릴 수 있으니, 단지 '국사 문제'에 한정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국사 과목이 무슨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이야, 우리 역사에 간주점프 버튼 계속 눌러댈 거야, 독도는 노래만

줄창 불러대며 지킬 거야, 라는 동혁이형의 샤우팅에서 틀린 부분을 좀처럼 찾기가 어려운 건 제가 과문한

탓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기사화되지 않고 있는 요미우리 신문과 청와대 간의

진실게임이 보여주듯 오히려 더욱 제대로 된 국사교육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독도는 우리땅', '한민족의 우수성' 따위만 강변하는 교육을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겠죠. 어쨌거나

'근대 민족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의 역사를 민족단위로 쪼개서 땅따먹기하다 보니 일본과 부딪히고, 중국과

부딪히고 그러는 거니까요. 역사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공통교재를 발간하는 작업이 중요한 게 바로

그런 부분에서 서로의 과잉한 민족적 내러티브를 줄이고 보다 냉정하고 차분한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동혁이형의 개그를 그들의 '선전선동'을 위한 불쏘시개로 써먹는 역겨운 시민단체-그 시민에서 저는

좀 빠졌으면 좋겠습니다만, "XXXX시민(빼기 이채)연대"라고 말이죠-로부터 그의 개그를 지키고 싶은 맘에

이번 나눔을 진행합니다. 개그가 담고 있는 내용이 맞고, 개그가 재미있으니 그의 샤우팅에 푸쳐핸졉~해서

호응해주고 싶습니다.


하여, '한일역사 공통교재'로 한국과 일본 연구자/교사들이 10년에 걸쳐 완성한 한일 양국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를 다룬 책을 이번 나눔으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한일 교류의 역사"라는 책인데요, 총 세 권입니다.

동혁이형이 마지막에 말한 대로 선택과목으로 아무리 괄시한다 해도 찾아서 배우고 공부하면 되는 거겠죠,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조금더 균형잡힌 성숙한 시각으로 읽고 싶은 분들, 푸쳐핸접~*


                        ----   제7차 동시 나눔 마당 응모 안내  ----

   * 응모 기간 :  롸잇나우~3월 12일 (금) 24:00
   * 응모 방법 : 이 글 밑에 신청 의사와 이유를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선정 조건 : ① 
직접 쓴 본인의 국사교육 관련 포스팅을 엮어 나눠 준 분, 우선 선정
                        ③ 댓글로 신청 의사와 그 이유를 남겨주시는 분, 선정
  * 선정 발표 : 3월 13일 (토)

  * 책 배송 : 3월 15일 (월), 우체국 택배로 발송 예정

한일 교류의 역사 - 8점
한국역사교과서연구회 엮음/혜안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모  집

제4차 동시나눔 '멍석돌/순이'를 구합니다!

◆ 'OOO기념, 공동(동시) 나눔' 마당에 동참할 이웃지기님들을 기다리며
(BlogIcon 초하(初夏) 님)


이렇게 3차에 걸쳐 진행된 동시나눔마당을 이어받아 9월 중에
whenever/whatever/wherever/whyever 진행하실 whoever를 해보고 싶으신 분, 손들어주세요~*

(저나 초하님, 백마탄 초인님께 알려주시면 성심성의껏 도와드리니 부담가지실 것은 없답니다.ㅎㅎ)

이라 하였으나 사방이 고즈넉하여 어느 하나 손드는 이 없어 제가 다시 한번 해볼까 하던 차에,

마침 BlogIcon Adios  님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나눔블로그'(http://nanumbook.tistory.com/)가 1차 나눔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호~ 블로거들끼리 서로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어느 기관 하나에 기부하는 것도 좋겠구나~♡"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고, "그렇다면 이번 9월 4차 동시나눔은 한번 나눔블로그와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지요. 다른 분들도 저랑 같이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블로거&블로거, B2B의 관계에서 보다
 
넓혀서 블로거&사회, B2S의 관계로 한번 성큼 발딛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B2S의 세계로 입문, 꼬우꼬우~!
일시 : 2009. 9. 18(금) 24:00까지
물품 : 취학전 아동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읽을 수 있는 도서류.
장소 : '나눔블로그'(http://nanumbook.tistory.com/) 방명록!!!!
         (이 포스팅에 댓글로 의사를 밝혀주시면, 제가 님들 방명록에 쫓아가서 다시 한번 자세히 알려드리겠어요.
          기부 창구가 하나여야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도서 수집이 가능할 거 같거든요, 꼭 '나눔블로그' 방명록에!ㅎㅎ)
방법 : ①'나눔블로그' 방명록에 기부 의사를 밝히시고 기부하고자 하는 책, 혹은 도서상품권/문화상품권에 대해
         글을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② 글을 남기면 댓글이나 이메일로 '배송지 주소'를 받으실 수 있을 거에요. 
           (배송지 주소는 현재 대구SOS아동센터와 접촉하고 계신 BlogIcon 함차家님이나 대구SOS아동센터 
            두 군데를 모두 알려드리게 될 겁니다.)
       ③ 그쪽으로 책을 배송해 주시면 끝~!
           (마치 이전 동시 나눔 때 선정된 분들께 책을 배송해드렸던 것처럼요^^)

저는 집을 뒤져보니 이런 책들이 있더라구요. 이번 달 동시나눔은 그리하야 '기부'를 통한 나눔을 해보려 합니다.

동시나눔을 통해 '나눔'의 즐거움을 맛보셨던 분들, 그리고 집에 돌아다니는 책 중에서 더이상 읽지 않는 책들이

있으시다면 이번에 한번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아래 내용은 "나눔블로그"(http://nanumbook.tistory.com/)에서 퍼올린 내용입니다.

◎ 어떤 책들이 필요한가요?

도서종류는 장르는 관계없으나 다양했으면 합니다..
보호아동 연령이 다양해서 취학전아동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있습니다. 
 
예를들어 청소년권장도서 부터 세계명작단편집, 어린이동화책, 한국의 야생화, 과학도서, 문화유산관련도서, 한국의 전통한옥, 등등 아동들이 대체로 사진과 그림이 있는 도서가 SOS아동보호센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연령대가 읽을 수 있는 그 어떤 책도 좋습니다.

또한 새책을 주문해서 보내주셔도 괜찮습니다. 포인트가 남아서 그 포인트로 채 주문해주셔도 좋구요.
도서상품권이 있어 책 사는데 보템을 주고 싶은 분들 도서상품권 코드만 알려주셔도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SOS아동보호센터 사무국장 김효승입니다.
먼저 사랑의 책나누기 회원님들께 저희 SOS아동보호센터 보호아동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저희 SOS아동보호센터는 아동일시보호기관으로 6개월 미만으로 일시보호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영유아보다 취학전 아동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의 아동들이 많이 입소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님과 함께 바다에 가보지 못한 친구도 있고 혼자서 라면만 끓여먹으며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온 친구들은 돈까스가 맛있다며 과식을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가끔 신문지상이나 매스컴에
보도된 사건의 주인공도 저희 센터로 오곤 하는데요..

이러한 친구들이 집에서 책을 접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결국 이러한 아동들이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고 다시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렸을 때 폭력적인 가장이 되고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요즘은 "북스타트" 운동이라 해서 영유아기 때 부터 책을 가지고 놀며 자주 접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열악한 환경에서 아동들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정서적 안정을 취해가며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소설문학, 과학, 경제, 여행.. 무엇이든 좋습니다. 작은 정성하나하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을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이 아이들이 성장하여 우리 이웃, 학교,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자리잡을 걸로 믿습니다.
따뜻한 관심, 격려의 말씀 모두 감사드립니다. 언제든 사랑의 책나누기 회원이라 말씀하시고 방문해 주시면
따뜻한 차한잔 드리겠습니다. ^^


◎ 나눔에는 어떻게 참여하나요?


방명록이나 메일보내기로 연락처(메일주소or 블로그주소)와 나눔할 도서종류와 수량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책 보낼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드립니다.
받으신 연락처와 주소로 직접 포장을 해서 택배나 등기로 발송 (배송비는 본인부담)해 주시면 저희 나눔블로그에서 책을 받아 직접 대구 SOS아동보호센터에 찾아가 전달 할 것입니다.


* 방명록에 나눔 참여 신청글 남기기:    글남기기
* 이메일로 나눔 참여 신청글 보내기:    메일 보내기 


* 9월 말에 나눔블로그로 모아진 도서를 모아 블로거들과 함께 직접 대구 SOS아동보호센터를 방문 책 정리와 도서목록작성, 아이들과 함께 독서시간 및 자원봉사 활동 도 할 계획입니다.
오프라인 자원봉사 활동에 함께 하실 분들은 방명록에 연락처 남겨주세요 ^^

* 책 전달이 완료되면 후기란에 나눔에 참여해 주신 분들 명단과 여러분이 나눔해 주신 대구 SOS아동보호센터의 나눔 모습, 기증 후 새로 생긴 도서관의 책들 모습도 보실 수 있습니다.

  SOS아동보호센터 홈페이지- http://childcare.koreasos.or.kr
  대구SOS아동보호센터관련 자료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동시 나눔이 시작되던 세달 전쯤, 이웃 블로거님인 Adios님이 주도적으로 발의하셔서 가칭 '나눔 블로그'란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러저러한 일상에 치여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Adios님, BlogIcon 함차家 님이나 BlogIcon 윤뽀 님 등 다른 참여하신 이웃분들께서 워낙 출중하셔서 이렇게

그 첫 고고성을 울리게 되었습니다^^


1. 나눔 블로그란

- 블로거 (Blogger)들이 모여 만든 나눔 공동체 입니다. 비영리적이며 블로그가 없는 일반인, 블로거, 기업체 등 누구나 참여 가능한 팀 프로젝트입니다.

- 집이나 회사 등 책장에 묵히고 있는 책들을 책이 필요한 곳에 보내주는 사랑의 책나눔 운동이 주된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나눔활동이 왕성해 지면 물건 나눔, 책장만들어주기, 자원봉사활동 등의 프로그램과 연계할 예정입니다.
- 책은 주로 아이들 공부방, 복지시설, 농어촌, 산골마을 도서관 등 책 읽기가 힘든 곳을 중심으로 보낼 예정입니다.
- 책 나눔을 통해 책이 필요한 곳에 소중히 쓰일 수 있도록 나눔블로그에서 중간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첫 나눔 대상기관인 "SOS아동보호센터"는 어떤곳?

- 대구지역의 아동들 중 가정 문제로 버림받거나, 위기상황에 놓인 아동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3개월간 임시로 머물며 심리 상담 및 관찰 보호 되는 곳입니다. 갑작스러운 가정의 무너짐이나 실직으로 어려운 위기에 처한 가정의 아동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고를 일으키거나 문제가 있어 심리 상담과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의 교육과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놀이, 그림, 심리치료 활동으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 도서관이 따로 마련되어 아이들과 함께 독서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출판협회로부터 약간의 도서를 지원받고 있지만 현재 도서관 내에 비치된 도서들은 그 수량이 적고 기존의 도서들은 오래되었거나 만화책 등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아동들이 머무는 보호센터의 성격과 맞지 않는 도서들이 대부분입니다.



3. 어떤 책들이 필요한가요?

- 도서종류는 장르는 관계없으나 다양했으면 합니다. 보호아동 연령이 다양해서 취학전아동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동들이라 미취학 아동, 초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예를들어 청소년권장도서 부터 세계명작단편집, 어린이동화책, 한국의 야생화, 과학도서, 문화유산관련도서, 한국의 전통한옥, 등등 아동들이 대체로 사진과 그림이 있는 도서가 SOS아동보호센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4. 나눔에는 어떻게 참여하나요?

- 방명록이나 메일보내기로 연락처(메일주소or 블로그주소)와 나눔할 도서종류와 수량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책 보낼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드립니다. 받으신 연락처와 주소로 직접 포장을 해서 택배나 등기로 발송 (배송비는 본인부담)해 주시면 저희 나눔블로그에서 책을 받아 직접 대구 SOS아동보호센터에 찾아가 전달할 것입니다.

* 방명록에 나눔 참여 신청글 남기기:    글남기기
* 이메일로 나눔 참여 신청글 보내기:    메일 보내기 



*                                                                           *                                                                           *

아직 첫걸음이니만치 미숙하기도 하고, 뭔가 구색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드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치 동시나눔이

이러저러한 소중한 분들의 힘으로 어느덧 네번째를 향해 달리고 있듯이 말입니다.    

"전국 블로거들의 힘을 !! ^^  집에 묵혀두고 있는 책을 소중한곳에 쓸 수 있도록 기획햇습니다.
블로그 한명이 한권의 책만 모아도 몇십권의 책을 보낼 수 있습니다.
책이 필요한 공부방, 농촌,어촌,산골마을, 시민단체의 지원이 적게 미치는 곳에 블로거들이 책을 보내는 운동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봉사활동도 연계할 수 있도록 그 첫 준비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Adios님)

이런 아이디어에 공감하신다면, 거기서부터 한걸음씩 같이 내딛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동용 도서 있으신 분 많은 관심과 기증 부탁드려요~^^*

http://nanumbook.tistory.com/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방금 [제3차 동시나눔], 혹은 2009년 8월 동시나눔을 예고하는 포스팅에서 예고한 것처럼, 이번에는 책뿐만이 아니라

뭔가 가슴떨리고 두근두근한, 예기치 못했지만 누구라도 환영하고 사랑스러우며 러블리러블리 샤방샤방한, 게다가 럭셔리한 "옵하 한번 믿어봐~" 초절정은하계대박만성최고절찬리상습적조기품절 물품

을 내어놓습니다!! ([제3차 동시나눔 함께해요!] 저는 샤방샤방 러블리한 나눔물품을 올릴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1차 동시나눔에는 화폐전쟁, 쿠오바디스 경제학을 비롯한 경제 관련 서적을 나눴구요,
[나눔] '경제'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책 날개달기.(보도자료 첨부)

제2차 동시나눔에는 해리포터 영어판, 유토피스틱스 영어판을 비롯한 영어책을 나눴었네요.

[동시나눔] 해리포터 최종편 개봉기념 영어책 날개달기.


왠지 계속해서 책만 나누고 있다는 주변으로부터의 압박과 모진 비난(리나님 뜨끔하시죠?ㅋㅋ)도 있었지만, 저도 뭔가

새로운 나눔을 개척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엔 좀 참신한 것들을 나눠볼까 해요. 그것도 좀더 참신한 방법으로요ㅎ


각설하고, 나눔 물품부터 뵈드립니다~! 골라골라~~
기호 1번. "거꾸로, 희망이다!!" 음...반응이 별루인가요...ㅡㅡ;;;; 그래도 스스로를 잘못많은 무지랭이로 몰아가는

자기계발서에 담긴 '희망'보다는 훨씬 아름차고 이뿐 희망을 읽을 수 있다구요. 옵하 한번 믿어보시라능.ㅋ

[거꾸로, 희망이다] 위기의 시대, 거꾸로 희망을 찾아보지 않으련? 이라 묻는 책.

기호 2번. "여기 사람이 있다!!" 음...왠지 이번 나눔 컨셉을 잘못 잡았나 스스로 패닉상태에 빠져가는 중입니다.ㅜ

음...음...뭐랄까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책들마저 퍽퍽한, 아니 혈흔이 얼룩진 듯한 내용일지라도, 이런 책들이

뭘 바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봐주고 쓰다듬어주고 나아가 용산에 또 철거문제에 한번 관심가져주고..

그러길 바라는 거겠죠. 옵하 한번...미...믿어 보시...ㄹ라우?ㅡㅡ;

[여기 사람이 있다] 우리들의 '구차한' 밥그릇싸움에 사형을 언도한 그들.

기호 3번. 술입니다 술, 술술, 술술술!! 꺄하하~♡  그러고 보니 어제 저렇게 책 두권을 하려다가 문득 술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간 고이 소장해뒀던 미니어쳐 양주들을 어디에 뒀나 뒤적뒤적하다가, 이런 걸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지요. 럭셔리하죠? 러블리러블리 콜? 샤방샤방 빛나는 뽀샵처리는 기술부족으로 못하지만,

자체발광 두근두근 사랑스런 '옵하 한번 믿어봐' 초절정대박최고절찬리조기품절 물품!!!

아아, 정신 좀 차리고-이거 완전 몸 속에서 알콜이 자체적으로 생산되는가 봐요 아침부터..-아리땁게 다리를 살포시

꼰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앉아있는(보이죠? 술병들이 다리꼬고 앉아있는거, 안보이면 응모하지 마셈ㅡㅡ+) 술병들,

내가 그대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다만 유리병에 지나지 않겠죠. 왼쪽부터, 러시아에서 온 보드카종족 레베루양,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도 녹여버린다는 위스키부족 그랜츠군, 40여년전 이방인을 탈고한 까뮈

옆에서 텅텅 빈 채 나뒹굴었다던 프랑스 꼬냑마을 출신 미시즈 까뮈, 아마도 미국산 싱글몰트위스키주에서 왔다던

글렌리벳씨, 영국(?)-갈수록 병들 국적에 확신이 없어진다는..-출신 천한매력 노예 바카디(대체 왜인지는 묻지 마시길.),

마지막으로 확실히 마데 인 우스아(USA) 속삭이는 위스키 잭다니엘 할배. 얘들 전부 묶어서 한분께 드립니다!!


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완전???

자, 이제 어떻게 해야 요 사랑스런 베이베들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들어갑니다~* 간단해요. 말만 잘하면 꽁짜로도 덥썩

덥썩 집어주던 재래시장, 벼룩시장의 정신을 십분 앙양하야, 말만 잘하시면 되요.

원하는 울트라초대박은하계최고절찬리상습적조기품절상품들의 기호를 말씀해주신 후,
가장 긴 댓글을 남기시는 분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제? 이 블로그에 대한 평가, 개선해야 할 점, 원하는 점...같은 거 아니어도 되요. 오늘 하루의 일기를 시간순으로 쓴다거나 소설을 쓴다거나 시를 읊는다거나 편지를 쓴다거나 의미없는 낱말들을 나열한다거나..."자유 주제"입니다.

기간? 지금부터 요이~땅! 해서 달려가면 8월 19일(수) 24:00까지 받도록 하겠습니다. 넉넉히 잡은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상품에 대해 자신보다 긴 댓글을 단 사람이 있다면 추가로 댓글을 더 달아 글자 수를 늘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기준? MS Word 2007로 그대로 긁어 붙여서 "단어개수(공백 제외)"로 검증토록 하겠습니다.


* 뭐, 강제사항은 아닙니다만, 책의 경우 읽고 나서 리뷰를 트랙백걸겠다거나, 술의 경우 맛난 안주와 함께 마시는
 
인증샷을 첨부해 트랙백 걸겠다는 등의 공약(公約)을 내거시는 경우, MS Word 2007 기준 공백제외한 단어개수

100자 인정해드립니다!

* 공정한 심사를 위해 '비밀댓글'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저번엔 티스토리 초대장을 이런 식으로 나눴었는데 무려 2,345자(공백 제외)까지 써주신 분이 계셨어요^^

말만 잘하면(!) 공짜로 막 드리는 제3차 동시나눔 이벤트, 지금 시작합니다.

(왠지 이번 나눔 멍석돌이로 활약 중이신 백마탄초인님의 글투를 닮았다고 느끼는 건 저 혼자일까요..ㅋㅋ)











이웃 띠보님께서 [이벤트] 14회 한겨레문학상 <열외인종 잔혹사> 리뷰어 모집이란 포스팅에 "예쁘게 귀엽게 섹시하게
 
당황스럽게 유머러스한 댓글"
을 달면 '열외인종 잔혹사'라는 책을 배려해 주시겠다 하였다. 전혀 예쁘지도 귀엽지도

섹시하지도 당황스럽지도-아마 1그램쯤 당황스러우셨을까-유머러스하지도 않은 댓글을 달았지만, 경쟁률이 1:1이 되지
 
않았던 예기치 못한(나로서는 기적적인!) 사정이 도래하여 책을 받아 보았다. 봉투에 찍힌 도깨비 그림 도장이 귀엽다.


이야기는 단숨에 읽혔다. 책을 받아보고 잠시 몇장 펼쳐볼까 했던 게, 세네 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읽고 나니

뭐랄까..너무 허했다. 이야기의 구조나 전개가 무슨 골다공증 마냥 구멍 숭숭 뚫린 엉성한 모양새여서가 아니라, 아주

매력적이고 스피디하며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은 지독하고 잔혹한 현실에 대한 지독한 은유였기 때문이다.


뫼비우스 띠의 앞면.

주위에서 너무 쉽고 익숙하게 접하던 캐릭터와 공간들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천만명이 사는 서울에선 딱히 희소할 것도 없는 10대 불량청소년 하나, 눈에 밟히고 발에 채이는 30대 남성노숙자 하나,

고만고만한 대학을 나와 인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이 되려는 20대 여성 하나와

매일 군복을 갖춰입고 탑골공원에서 온갖 빨갱이들이 등장하는 시국연설에 열을 올리는 60대 할아버지 하나라는 등장

인물들 말이다. 그리고 마치 길안내하듯 자세하게 그려지는 압구정역 3번 출구 옆 맥도널드와 코엑스 배스킨라빈스와

푸드코트, 혹은 홍제동과 독립문역의 풍경까지.


어쩌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이다. 노숙자에, 구직자에, 완고한-시니컬하게 표현하자면 '시대의 부산물'이랄-

친미보수우익 노인네, 그리고 번쩍거리며 재탄생한 용산역과 한국 자본주의경제의 상징, 코엑스몰과 압구정까지.

코엑스몰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잊지 않고 순례하는 명소 중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기도 하다.


그런 공간이 어느 순간 전쟁터로 변한다. 방화용셔터가 전부 내려가 외부로부터 격리되며, 대량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여차하면 당겨진 방아쇠로 많은 사람들이 총살당하는 공간이 되는 순간, 내가 아는 구체적인 지역에서 벌어진다는

생생한 현실감에 되려 서늘한 날이 서면서 그 공간이 낯설어진다. 어라. 마찬가지다. 지하철 안에서, 혹은 버스 안에서

한번쯤 마주쳤을 동시대인들이 문득 괴물같은 상황에 떠밀려 '모처럼 심장터져라 뛰는' 지경에 이른다. 낯설다.

그러고 보니 저렇게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상황이란 건 얼마나 드문 상황인가. 머리끝까지 열이 뻗치거나 강렬한
 
열망에 의해 쉼없이 뛰어다니는 상황이라는 건. 혹은 스스로의 괴물같은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건.

"뭐 이런 카니발도 나쁘진 않네요. 사람 죽어나가는 게 좀 끔찍하긴 해도, 서울에서 하루에도 수백명씩 교통사고와 암으로 송장이 되어 죽어나가는데 이깟게 뭐 대수겠어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뭐랄까? 이번 정규직 사원 인사 발탁 건 말이에요. 음..."


뫼비우스 띠의 뒷면.

연미복에 양머리를 뒤집어쓴 '최악'의 멤버들. 양털이 복슬복슬한 그 양머리는 단정하지만 과장스런 연미복 차림과

기괴한 매치를 이루며 왠지 이 땅위에 있어서는 안 될, 혹은 있으리라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로 나타난다.

그들의 '양머리 카니발'이란 게 시작되는 순간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변해가는 공간. 노숙자들의 서툰 쿠데타가

가십처럼 벌어졌던 용산역에서처럼, 그치만 그보다 훨씬 강력하고 전면적으로 세상이 낯설어진다.


그런 낯선 것들은 어느 순간 온전한 지금 이대로의 모습과 겹쳐져 보이니 또 이상한 노릇이다. 양머리를 뒤집어

쓰고 사방에 총을 난사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의 잔혹한 살인행위와 웅얼대는 혁명선언도 묘한 기시감을 수반한다.

그러다 보면 번쩍이는 은빛 총을 움켜쥐고 양머리들을 하나씩 쓰러뜨리는 게임중독 10대 청소년이 양머리들보다

괴물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 봉착하기도 하고, 양머리들의 난동이 되려 인간적이랄까, 안쓰럽달까, 그런

동정 혹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게다.

"그런데 우리들은 모두 양머리들뿐이야. 목자가 없어. 그래서 불안해지기 시작한 거지.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 그래서 우리는 목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지. 그런데 왠걸. 우리가 목자라고 믿고 싶던 대상들이 하나같이 우리의 기대를 배반했어. 또 어떤 얼어 죽을 사이비 목자들은 우리를 썩은 오물통 속으로 밀어넣기도 하고 말이야."


띠의 앞면에도, 뒷면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 "열외인종"

그렇게 띠의 앞면과 뒷면, 각기의 흐름을 타고 일상에서 비일상을, 비일상에서 일상을 퍼올리던 흐름은 어느순간

하나로 합쳐진다. 그야말로 뫼비우스 띠처럼. 양머리를 쓴 노숙자는 더이상 띠의 앞면에도, 뒷면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가 낑낑대며 끌어올렸을 거대한 돌덩이가 거친 소리와 함께 산비탈을 달려내려가듯

차라리 호쾌하게 내려닫는 이야기의 결말이라니. 그전까지 가벼운 조증에 걸린 듯 시니컬하면서도 신나게

이야기하던 화자는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고는 완전히 시니컬해진다. 혹은 어리둥절해하는 독자를 보며

가학적인 쾌감이라도 느끼듯, 돌연 잔혹하고도 엄연한 현실을 불러낸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제의 일을 다 알고 있다!"라는 외침. 그 외침이 누구의 관심도, 누군가로부터의 반향도 얻지 못하고

헛헛하게 공중을 맴돌다 사라져버리는 기분은 어떨까.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10대, 20대, 30대,

아니 세대를 막론하고 뭔가 스스로의 의지나 행위와는 달리 제알아서 돌아가고 있는 거대한 세상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당장 치솟는 어리둥절함과 분연한 의기, 그 뒤를 바싹 좇는 무기력감과 소외감, 억울함과

열패감까지. 이런 결말이라니 잔혹하다. 이런 세상이란 걸 깨닫게 해주는 이런 결말이라서 잔혹하다.

"어떻게 천만 인구가 아웅다웅 모여사는 서울특별시에서 적어도 오십 명 이상 죽어나간 이 대대적인 인질극에 대해 한마디도 없냔 말이다. 별 볼일 없는 연예인 부부의 이혼 소식조차 탑 이슈로 보도하는 이 판국에."


열외인종 잔혹사 - 10점
주원규 지음/한겨레출판





책 읽는 즐거움 그뒤엔 돌려보는 나눔까지 ‘북 크로싱 운동’
작성일 2009-08-04 15:11:29

(신광영 앵커) 집안 대청소를 할 때마다 책장에 가득 쌓여있는 책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되시죠? 사놓고 안 읽은 책, 그리고 한번 읽었지만 다시 볼 일이 없을 책들이 공간만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현수 앵커) 가끔은 과감하게 책장을 비우는 게 좋지만, 막상 멀쩡한 책을 버리자니 아깝습니다. 책을 아끼는 사람들은 헌책의 새 주인을 찾아준다고 합니다. 신성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회사원 윤성의 씨는 한달에 책을 10권씩 읽는 독서광입니다. 서재 가득 책을 모으는 게 취미지만 올해 들어서는 책장을 비우는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윤 씨가 선택한 방법은 여럿이 책을 돌려보는 `북 크로싱 운동`입니다. 윤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헌책 목록을 올리면, 블로거들이 이 가운데 읽고 싶은 책 제목과 집 주소를 댓글로 남깁니다. 윤 씨는 직접 배송비를 부담해 이들에게 책을 보내줍니다.
(인터뷰) 윤성의/ 서울 역삼동
"한 50여명 되시는 분들이 같이 이렇게 참여를 하고 있고, 그럼 온라인 시장에서 온라인에서지만 벼룩시장처럼 북적북적 대는 느낌도 가질 수가 있어서 더욱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                                                                             *                                                                             *

저번주 금요일에 온라인 책나눔문화와 관련, 내 방을 취재하겠다고 기자 한분과 카메라기자 한분이 찾아왔었다.

아무래도 방송이니까 '그림'이 좀 필요하다면서, 이미 내 방 일부가 찍힌 사진을 내 블로그에서 보았노라 했었다.

책나눔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웃블로거분들과 동시나눔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짧막한 인터뷰도 있었는데, 뭐 나름 애초 '나눔'을 시작하게 된 취지나 의미같은 것이

결과적으로도 적절하게 전달된 것 같다.


다만 굳이 '북 크로싱'이란 단어를 고집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책 10권씩 읽는 독서광'이라는 유치한 캐릭터는

좀 식상하고 진부하지 않은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뷰엔 소정의 보상을 줄 수는 없었는지는 아쉬운 부분이다.


첨엔 동아eTV라고 해서 거절해 버릴까 했었다. 미디어법안이 이렇게 난리인데 컨텐츠로 이용당할 수는 없어, 란

생각이었지만, 책나눔 혹은 동시나눔 이벤트를 좀더 알릴 수 있지 않을까, 나눔문화란 거 퍼뜨릴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 고심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차라리 돈을 받고 그돈으로 미디어법안 관련싸움하시는 분들한테

박카스라도 하나씩 돌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근데 돈을 안 준다. 왠지 낚였다는 느낌...이랄까.


여튼, 8월에도 동시나눔 재미나게 해보아요, 재밌다고 하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혹시 전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클릭.

책 읽는 즐거움 그뒤엔 돌려보는 나눔까지 ‘북 크로싱 운동’





2Proo님이 동시나눔하셨던 프렌치카페 기프티콘, 잘 받았습니다~*

BlogIcon 2Proo 님의 블로그 동시나눔 이벤트 - 프렌치카페 기프티콘에 응모했었는데, 덜컥 받게 되어서 여전히

제 핸폰 배경화면엔  2Proo님의 "이벤트 당첨 축하합니다^^ 시원한 커피 한잔 드시고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길 바래요"란

따뜻하고도 시원한 마음씀씀이가 고이 모셔져 있지요. 얼른 써버려야 할 텐데, 왠지 아끼고 있답니다.

그리고 초하님, 보내주신 '내 심장을 쏴라' 잘 받았어요^-^*

BlogIcon 초하(初夏) 님의 ◆ [제 2차 동시나눔] 신간 책 3권 공개 마당 중에 한권이었는데, 얼마전 댓글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제 동생이 먼저 보겠노라고 납치해 가버렸네요.ㅜ 같이 보내주신 블로거 명함은 넘넘

부러워서, 저도 꼭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노라는.ㅎㅎ 얼른 읽고, 동생 소감과 잘 비벼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슴다~*

마지막으로 띠보님이 열었던 [이벤트] 번데기 앞에서 두뇌 주름잡기에서 용케 선정되어 받게 된

"두뇌 비타민"이란 책입니다. 감사해요 띠보님~! 이번 동시나눔 이벤트에서 반짝거렸던 아이디어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 1, 2위를 다투지 않나 싶었는데, 이벤트 선정 발표를 하시면서 선정해준 댓글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이벤트발표] 번데기 앞에서 두뇌 주름잡기) 일곱살 짜리가 나보다 잘하는 것

세가지 적기, 맥가이버칼에 꼭 추가하고 싶은 나만의 아이템 하나, 그리고 비버리힐스에 사는 억만장자

독신녀가 소유할 만한 물건 적어보기..이런 세가지 문제를 비롯, 유쾌하고 신선한 질문들이 가득한 책이에요.

조만간 리뷰 올라갑니다 띠보님~*


아 그리고, 이건 이번 나눔과는 상관이 없지만 제 친구가 이번에 유럽여행을 다녀오며 제게 선물한 홍차에요.

그 친구 말을 빌자면 "영국에서 초 유명한 홍차샵"에서, 왠지 저는 홍차도 다양하게 맛보았을 거 같다며

고르고 골라 최대한 레어한 맛을 골랐다는데 무려 피나콜라다 맛입니다. 파인애플과 코코넛향이 진동하면서

완전 맛있다는.ㅎㅎ 잘 먹고 있어용~* 쌩유베리감솨^^


*                                                         *                                                         *

처음엔 매달 17일로 고정해서 동시나눔을 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별 생각없이 날짜를 잡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저도 그렇지만 다른 블로거님들도 아무래도 주말에는 잘 접속을 안 하게 되시는 듯 해요.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실댔던 이번 나눔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나눔을 좀 앞장서서 준비하고 진행사항을 중계해주실 '멍석돌이'-제멋대로 붙인 이름입니다만-

께서는 뭐 '동시나눔'의 큰 틀만 유지하신다면 좀더 실험적이거나 자유로운 방식을 제안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날짜를 바꾸셔도 될 것 같고, 나눔의 대상이나 참여방식을 좀더 바꿔볼 수도 있겠구요. 아니면 아예 나누는 책을

모두 모아 어딘가에 기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뭐가 되었건, 온라인 공간의 문화란 게 자율성, 유연성, 뭐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한 거 아니겠습니까.ㅎㅎ


8월달, 휴가 계획도 많으실 테고 뭔가 더위로 만사 귀찮아 늘어지기 쉬운 시점이 아닌가 싶은데, 주관하실 분이

저보다 훨씬 발도 넓어 블로거 이웃분들도 많고 나눔에 대한 생각도 오래 해보신 분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8월의 동시나눔 '멍석돌이 혹은 멍석순이'가 되겠다고 나서신 분은 BlogIcon 백마탄 초인 님이시구요^^

혹 다른 분도 함께 멍석을 깔아보고 싶다 하시면 말씀 주셔요~*




 
제 나눔정리하기 전에, 이번 2차 동시나눔도 많은 분들과 함께 재미나게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청유형 포스팅] 테마가 있는 '온라인 동시나눔마당'에 함께 해요~*
테마가 있는 온라인 동시나눔~ 벌써 올리신 분들도 계시네요^^
[동시나눔] 18일 01:00분 현재 나눔마당이 벌어진 곳들 모아드립니다~*

이웃분들 모두 완전 멋져요~!! 제가 링크를 없앤 대신 모두모두 RSS로 묶어두었답니다. 혹시 제가 놓친 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사과부터 드리구요, 앞으로도 계속 이웃분들 곁으로 비비적대고 파고 들겠슴다^^


자 이제 다시, [동시나눔] 해리포터 최종편 개봉기념 영어책 날개달기.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참여해서 성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용~*

책을 나눔받기 위한 조건은 두가지였어요.

1) "영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30자 내외의 견해와, 
2) 원하시는 책을 한권 말씀해 주시면서 '성함, 주소, 전화번호' 등 배송에 필요한 정보. 를 부탁드렸었죠.ㅎㅎ

[논제] 영어 공부를 위한 사회적 비용과 스트레스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영어만 잘해도 취직이 걱정없다는 한국적 정황을 고려하여, 영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 견해를 밝히시오.(30자 내외)

참여해주신 분들의 다양한 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BlogIcon 비프리박님은 "영어가 필요없는 사람에게는 청소년기에 국가로부터 부과되는 노역"이라 생각하셨네요.

"박노자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강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2mb는 이제 언제든 영어몰입 교육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죠. 노역의 강도를 높이는 짓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와 같은 부연설명도 아낌없으셨구요.


영어로 답하시면 '약간의 어드밴티지가 있을 수 있다고 했더니 chul2님은 "English is the minimum shield of

our life
". 라고 무려 영어로 답해주셨구요. 푸른대양님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해주는 것이면서도

어리석게 만드는 것
"이라는 알쏭달쏭하고 심오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BlogIcon 초하(初夏)님은 "English is Bla

Bla Bla~~
"라고 답해주셨네요. 최소한의 삶의 방패라는 말이나, 어리석음의 원인이자 자학의 원인이란 말,

그리고 그저 영어는 어쩌구저쩌구..라는 그 도구성에 초점을 맞춘-이거 제가 제대로 해석한 거 맞죠, 초하님?ㅎ-

촌철살인의 말들이 이어졌네요.


이외에 "이젠 영어는 필수불가결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듯 합니다..."(Adish Ninsol님), "영어는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하나의 짐이 아닐까요?"(BlogIcon 러블리미니민님), 그리고 "영어란 바디 랭귀지다OTL"(BlogIcon 에우리알레님)

의 의견들은 왠지 씁쓸하고 피로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헉! 참여하려니 어렵다 ;ㅁ;"(BlogIcon ★바바라님)

라거나 "먹을꺼 먹을꺼로 하시라니까 ㅜㅡ 힝...섭섭해라.....ㅋㅋㅋ"( BlogIcon 카타리나^^님)같은 반응이 자연스럽네요.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정말매우몹시무척이나 감사합니다~^^


여튼,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BlogIcon 에우리알레님,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은 푸른대양님, "체게바라의

모터사이클다이어리"는  BlogIcon 비프리박님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의 두 분, 에우리알레님과 푸른대양님은

잘 지내보자는 의미도 크네요. 워낙 대답들은 다들 잘해주셨으니 제 주관이 많이 작용한 듯해요^^


신청하신 분들 모두 책 한 권씩 쥐어드리고 싶은데..아디쉬님하고 초하님은 혹시 다른 책 원하시는 거 없으신지요?ㅜ
 
초하님이 말씀하신 책은 좀 많이 더러워서 차마 드릴 수가 없구요, 아디쉬님은 하필 길고 긴 답글을 달아주신

비프리박님과 경합하시는 바람에...흑.T^T






아빠 어디 가? - 8점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열림원

희생-선택을 해야 한다면 작은 희생보다는 큰 희생이 선호된다 : 왜냐하면 큰 희생에 대해서는 작은 희생에서는 불가능한 자기찬미를 통해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년 후 한 웅큼의 불안과 함께 태어난 두번째 아이도 장애아였다.

저자는 "두번째 세상의 종말을 맞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른바 막장드라마가 아무리 창궐했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는 데다가 오버스러워서 드라마로 치자면 되려 실격이다. 같은 부모의 두 아이 모두가, 그것도

같은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니, 이렇게 억지스럽고 말도 안되는 설정은 '감정이입'도 '개연성'도 너무나 떨어진다.


감정이입도 쉽지 않고 개연성도 떨어지지만, 현실이다.

저자는 "세상으로부터 감동적이고 훌륭한 아버지라는 역할을 배정받았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제 마치 로또에 두번

연이어 1등 당첨된 만큼이나 희소한 경험을 하고 있는 애비로서 세상의 주목을 끌 수 있으며, 그의 두 아이들을

내세워 스스로를 치장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장애아는 하늘의 선물이야, 라며 초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거나, 혹은 항상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불행함의 기운을 풀풀 뿜어내는 식이다.


불행-누가 어떤 사람에게 "그러나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보통 항의할 정도로, 불행에 들어 있는 특별한 명예(마치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천박함, 겸허함, 평범함의 표시인 것처럼)는 대단히 크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애써 음울한 표정만을 고수하지도, 고상하고 이타적인-모범적인-마음가짐만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그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 '기적처럼' 자신의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거라

가쁜 호흡의 문장으로 기대해 보기도 하고, 아이들의 장애인 증명서 덕분에 불법주차를 버젓이 할 수 있다며

자랑삼기도 하고, 또 자신 아이들 "똥강아지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지푸라기만 잔뜩 들었단 말을 몇번이나 되풀이하며

얼핏 무지하게 씨니컬하고 까칠한 말들만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또 아이들이 남들과 '다를' 뿐이라며, 아인슈타인이니 모짜르트가 모두 남들과 심각하게 달랐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스스로에게 주입한다. 밤중에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똑똑해서 아주아주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끝내 "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기고, 제일 멍청하다. 이게 다 내 잘못이다. 제대로

실패한 것이다"라며 펑..."도대체 뭐가 뭔지, 어느 상황에 있는지...알 수가 없다...내 길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내 삶은 막다른 길에서 끝이 난다."라며 폭발하기도 한다.


수정된 누가복음 18장 14절-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아마 하루에도 수백번, 이런 감정의 기복, 인내심의 기복을 경험하지 싶다. 그게 솔직하게 와닿았다.

사실 아무리 불행해보이는 사람도 하루에 몇번쯤은 삐쭉삐쭉 웃게 되고, 또 아무리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듯 보이는 사람들-대표적으로는 부모님들-도 가끔은 심술을 부리거나 지쳐서 시니컬해지기도 하는 거다.


감정선이 그렇게 들쭉날쭉 널뛰기를 하는 것이, 심장의 쿵쾅대는 맥박뜀과 겹쳐 보이며 '인간적'이라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그렇지만 장애아를 둔 아버지의 적나라한 감정선의 맥놀이를 드러낸다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의 삶을 온통 불행일색으로 칠해놓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쉽게

동정할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춰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정상아'들이 입주위에 온통 케잌을 묻히며 먹는 모습에는 웃는 사람들이, '장애아'의 같은 모습에는 절대

웃지 않는 게 사람들인 거다. 장애아라 해서 우리를 웃음짓게 하는 특혜에서 제외시켜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끝내 방송전파를 타지 못했다고 했다.










가상 공간에서 시골장터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경험적 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블로고스피어에 확산되는 '나눔의 문화'
2009년 06월 16일 (화) 23:32:12  이채 기자 ( iamhere_now@naver.com)
가상 공간에서 대규모 나눔 장터가 열려 주목된다. 티스토리에서 활발한 블로그 활동 중인 초하씨(주거 미상, 연령 미상)가 주도한 이 '공동 나눔'의 장은 17일을 전후하여 약 40개의 블로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게 된다. 초하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공동(동시) 나눔' 마당 기획, 중간 보고 및 진행 요령"이란 제목의 포스팅에서 이번 나눔을 통해 긍정적인 블로그 환경을 도모하는 '나눔의 문화'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초하씨는 "2-3명이 모인 나눔은 즐거운 유희가 될 수 있으며, 1-20명이 모이고 30명이 모인 "동시 나눔"은 좋은 블로그 세상을 만드는 하나의 '나눔문화'가 됩니다."라고 밝히며, 블로거 모두가 진정한 독서 유희와 다양한 나눔의 쾌락을 즐길 것을 권유했다. 초하씨의 권유로 나눔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ytzsche씨(서울, 29살)는 "이번 나눔에는 '경제'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책들에 날개를 달고 희망하시는 분들께 나눠줄 것"이라며 이를 받아보고 기뻐할 이웃 블로거들을 상상하면 기분이 너무 유쾌해진다고 말했다. 이로써 애초 여러 블로거들이 내키는 대로 아무때나 덜컥 열곤 했던 나눔 이벤트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초입력 : 2009-06-16 23:32:12   최종수정 : 2009-06-17 01:05:42


시절이 하 수상하니 스스로 경제학을 배워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해지는 6월입니다.(아닌가요..ㅡㅡ;)

미네르바도 처음엔 그저 하루하루 신문에서 읊어주는 타이틀만 바라보며 그러려니 하다가, 어느 순간 대체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알고나 말하는 걸까, 혹은 (악의적으로 해석컨대) 뭔가 숨겨놓고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건 아닐까..라는 궁금증에서 경제학 독학을 시작한 건 아닐까요.


제가 여기저기서 증정받거나 개인적으로 득템한 경제(학) 관련 책 네 권에 날개를 달아봅니다.



#1. 화폐전쟁
화폐전쟁 - 6점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랜덤하우스코리아
[화폐전쟁(쑹훙빙, 랜덤하우스)] 한국에선 무슨 의미가 있는 책일까.
음모론에 경도된 책의 앞머리 절반쯤을 읽으며 한 댓번은 "그래서 어쩌라규~"를 외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불태환화폐가 고작 몇십년의 역사밖에 지니지 못한, 아주 특이한 경우임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듯 하다. 태초부터 그랬던 듯 단단하고 완전무결해 보이던 지금의 시스템이 실은 역사적인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인식, 그리고 변경가능하다는 상상력의 자극. 그게 지금 시스템의 문제점을 바꾸는 단초일 테니까.



#2.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 10점
이준구 지음/푸른숲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시장주의자 = 좌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그는 경제학자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원칙적으로 믿는 시장주의자다. 그런 사람을 일러 좌빨이라 칭하는 사회에서는 두가지 문제가 생긴다. 미쳐 돌아가는 시장탈레반주의자, 혹은 뭐라 이름붙일 '주의-이즘'도 없는 깡패 권력자 집단에 쉽사리 농단되고 희롱당하는 희생자가 수도 없이 나온다. 도심 테러분자라 희롱당한 용산, 논두렁에 1억시계를 버렸다는 식으로 하지도 않은 말들이 첨가되어 희롱당한 노무현, 고공농성 중인, 파업중인, 혹은 스스로 산화한 노동자들까지.

두번째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런 공간에선 '시장주의자' 이준구를 비판할 여지조차 협소하다. 왜 그는 한미FTA를 한번 걸어볼만한 도박이라 생각하는가. 왜 그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규제 자체를 모두 피해야 할 것으로 매도하는가. 공익을 위한 규제라면, 좀더 정밀하게 가다듬어진 규제라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3. 경제학 콘서트
경제학 콘서트 - 8점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확실히 일반인이 간과하고 놓치기 쉬운 뭔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책입니다. 경제학이 어떻게 일상에 스며들어 이야기될 수 있는지, 흥미롭게 시작할 수 있는 단초가 될 듯.



#4. 괴짜경제학
괴짜경제학 - 6점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총이 위험할까, 수영장이 위험할까. 부모들은 이름을 어떤 생각으로 지어주는 걸까. 왜 마약판매상이 부모와 함께 사는 걸까. 그런 따위 시시하고 뜬금없는 질문들이 의외로 상콤하고 탄복할 만한 사고과정을 거쳐 나름의 정합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쾌감이 있다. 물론 그 결론까지 흥미롭고 감탄할 만할지는 장담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런 시시껄렁한 질문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달까.


신청방법!!

비밀댓글로 남기시는 게 편하시겠죠? 개인정보를 로봇들이 퍼나르는 시대라니까요.ㅎㅎ
1)"성함, 주소, 전화번호" 등 기본적인 정보와, 2) 왜 이 책을 받고 싶으신지, 이 책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말씀을
남겨주시면 제가 빠른 등기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 앞에 뭐라뭐라 살짝 낙서처럼
끄적여 보내드려도...괜찮죠?
뭐, 그런 식으로 온라인의 존재감을 오프라인으로 연장해 보려는 가냘픈 손짓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17일부터 19일까지 약 삼일정도 신청하신 분 중에서 제 맘대로  선정하도록 할께요, First come, first get의 룰은 참고만 하지요.


제일 중요한 점!!

1. 받으시게 될 분은 다 읽으신 후에 리뷰를 포스팅하고 제게 트랙백걸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2. 책을 또다시 다른 분께 날개달아
주실지 말지는 받으시는 분 마음입니다. 본인이 소장하시려면 소장하셔도
무방하다는 이야기지요. 다만 가능하다면 본인이 소장한 다른 책 중 한권을
이런 방식으로 나누시면 더욱
기분이 좋아지시지 않을까 싶네요^-^* 아, 어디까지나 이는 제 희망사항일 뿐 강제는 아닙니다.
나눔이니까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 입사 직후 독후감 숙제를 받았던 책 중의 한 권, 그 때 냈던 '숙제'를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배려 - 6점
한상복 지음/위즈덤하우스

 


어느 사이엔가 수많은 자기계발서, 혹은 인생지침서들이 범람하고 있는 세상이다. “몇 억 만들기”같은 재테크를 위한 실용서들보다는 무언가 나름의 깨달음에 기반한 책들이겠지만, 대부분 무게감 느껴지는 근본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얄팍한 스킬이나 임기응변적 처방에 치우쳐 있거나 다소 독단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강변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외국에서는 크게 반향이 없었던 『머시멜로우 이야기』같은 류의 책이 유독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도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인사팀에서 선물받은 도서 『배려』를 처음 받았을 때에도 역시, 그런 류의 책이겠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책을 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내리면서 약간 놀라기 시작했다. 보통 잠언이나 짧은 이야기를 빙자해서 얄팍하고 설득력 떨어지는 상황을 제시하는 책들과는 달리, 가족의 문제, 팀에서의 문제, 회사에서의 문제 나아가 인생에서의 문제를 골고루 짚어줄 만큼 탄탄한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위는 정말 주위에 있을 법한 그런 사람으로 현실감있게 다가왔고, 무언가 그럴듯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꾸며진 앙상한 스토리가 아니라 차근차근 잘 다져진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에 몰입한 채 마지막 장까지 달려가다 보니, 중간에 몇 번이고 잠시 멈칫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에 더해서, 지금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고 새롭게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초심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만,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처럼 문제는 자신의 마음인 거다. 하루하루 새롭고 청신한 눈으로 스스로를 확인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저러한 삶의 목표가 있고 비전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닐까. 비록 다소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막막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행복은 삶의 과정에서 언제든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인도자의 말은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나와 더불어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사람에게 다가서는 첫번째 예의이기도 하고, 함께 즐겁게 살기 위한 필요 조건이기도 하다. 상대의 마음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눈높이를 유지한 채 상대를 대하는 것은,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독선자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밥퍼운동본부의 최일도 목사님은 그러한 식의 독선적인 태도나 말만 앞선 소란스러움 때문에 전체 종교인들이 비판받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하나님을 앞세우지 않은 실제적인 활동으로 지금은 전세계에 걸친 구빈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직접, 솔직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타인에게 말을 거는 최일도 목사님의 배려하는 태도는 그의 공동체가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배격하지 않는 낮은 자세로 섬기기 위한 기초가 되었고, 모두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하루하루의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끊임없이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단 봉사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 숱한 대화와 행동들이 모두 상대방의 관점을 배려하는 것이라면 삶이 훨씬 즐거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배려심이 모두에게 더욱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배려」라는 책이 묘사하는 시각적인 이미지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11층에서 바라본 차도 위의 차량 행렬이 구급차의 신호에 따라 정연하게 길을 내어주는 모습이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할 때 구급차에게 차선을 양보해 주는 개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저러한 장관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었다. 트레이드센타 51층의 창밖으로 내다보는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귀엽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생각해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잡아낼 수 있는 통찰력. 그게 어디든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나 자신의 학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전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소통의 기반에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성공이라면, 보다 풍요로운 내용을 갖기 위한 지혜가 바로 통찰력일 것이다.


굳이 어떻게 성공할지,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지 캐어묻는 책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삶의 기본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이 책의 말대로, 받기 전에 먼저 주는 배려는 나와 상대방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존의 원칙이며 사회의 기반이 된다.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한 배려에 예민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배려를 해야 할 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지냈던 게 사실이다. 밥퍼운동본부에서 몇시간에 불과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천명에 가까운 어르신들의 점심을 전쟁치르듯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걸 뿌듯하게 느꼈다.




먹히면 죽는다. 내 군생활을 시작하면서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학부에 남아있기 쪽팔리다 싶어 사회에 쭈뼛대며 나섰을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먹히면 죽는다. 이전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점은, 이제는 그 다소 부담스런 비장감을 덜어낼만큼의

여유로움도 챙기고 싶었다는 정도.


그도 그랬나 보다. 허지웅.

허지웅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가 프리미어 기자라는 것도, 종종 시사지에서 마주쳤던 좋은 글들에 달린

바이라인에 그의 이름 석자가 들어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나와 거의 비슷한 동년배라는 것은

더더욱.


그는 여전히 자신이 어리다며, 생리적 나이와 관계없이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그는 자신이 '울었다'는 고백을 겁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먹히면 죽는다'는 결기에 더해 가오를

좇는 센스까지 갖추어 삶을 살아내고 있다. 꼰대와 야메 마초가 되길 거부하며, 한걸음한걸음 자신의

힘으로 살고 있다. 분노하고, 사랑하고, 의욕하며, 울기도 잘 울고, 난잡하다는 평에 안도한다.

'대한민국표류기'에 활자화된 그는 아직, 여전히 말랑말랑한 사람인 것 같다.


사람들은 조금씩 딱딱해진다. 대학에 들어와 기고만장해지면서, 이삼년 대학다니고는 '캠퍼스의 낭만'을

실컷 즐겼다며 취직 준비를 하면서, 군대를 다녀와선 세상의 부조리함에 만성화되면서, 대학을 졸업할

때쯤엔-특히 요새 이른바 88만원 세대들은 더더욱 어쩔 수 없이-옹이구멍만한 눈으로 밥벌이구하기에

매달리면서, 사회에 나와선 나름의 방식으로 익힌 처세술과 가면 뒤에 숨어서. 언제 딱딱해지기로

결정했느냐, 시간의 문제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앞서거니 뒷서거니 어른을 자처하며

에스컬레이터 위의 삶을 취한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참 쉽지 않아졌다고 생각했다.

회사원을 만나 연애하는 것이 학교 때와는 또 다르다는 이야기야 익히 들었지만 비단 연애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 역시도 그런 면이 없잖겠지만,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딱딱해진다. 이미 타인에 대한 신뢰나

기대감에 적잖이 상처입어서일 수도 있고,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생각해서일 수도 있겠다. 얄포름해지고, 둔감해지고, 물기가

말라버린 느낌.


그런데 그런 생각은 기실, 대학 들어왔을 때도 생각했던 거다. 대학 들어왔을 때는 대학 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을 비교하며, 그 이전에는 고딩/중딩 친구들과 불알 친구들을 비교하며. 사회

친구들과 대학 친구들을 비교한 후에는 또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게 될까. 그러고 보면, 딱딱해졌다고

생각했던 그들 중에도 술 한잔 하며, 커피 한잔 하며 수다를 떨다보면 의외로 여전히 말랑말랑한 구석이

온존함에 놀랍고도 반가웠던 적이 있다. 말랑말랑한 사람들과, 딱딱해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속은

여전히 말랑대는 사람들과, 정말로 딱딱해져 버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와중이다.

아직 말랑말랑하다고, 적어도 말캉말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의 (영화평론을 포함한)

에세이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내 속의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 했다. 그런 말랑말랑함이

필연적으로 동반할 (꼰대 세계의 눈으로 본, 가치평가가 담긴) '불완전함'과 '불안정함', 그런

'질풍노도'의 표류기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계속 말랑대며 살고 싶은

내가 그랬듯.


ps. 개인적으로 정말 한번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첨엔 비슷한 나이의 그가 이런 책을 냈다는

사실에 살짝 질투도 느끼고 괜히 치기어린 구석은 없나, 꼬투리 잡을 거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조금씩 그의 글들을 읽으며 99% 싱크로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만난다면 특히나, 흡사 하나의

세계였던 그녀가 허물어지면서 그가 느꼈던 결락감을 지금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도 묻고 싶고.


대한민국 표류기 - 10점
허지웅 지음/수다




지난 [나눔] 책에 날개를 달아봅니다. 이벤트에 열화와 같은(응?) 성원을 해주신 여러 이웃 블로거님들 덕분에

용기를 얻고, 두번째 나눔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첫번째로 시도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눈의 여왕"은 어제 빠른 등기로 부쳐드렸구요, 이번주 중으로 댁에

무사도착하지 않을까 싶네요. 거두절미, 어두육미, 어쨌거나 두번째 날개달 책들 소개드립니다.ㅎㅎ


#1. "메이저리그 경영학"

[메이저리그경영학] 야구를 경영에 빗대보려는 아이디어는 반짝였지만.

#2. "엄마를 부탁해" : 어버이날 맞이 특별 방출!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창비)] 책의 여운이 남아있는 동안이라도.


#3. "화폐전쟁"

[화폐전쟁(쑹훙빙, 랜덤하우스)] 한국에선 무슨 의미가 있는 책일까.

#기타. 이녀석 꽤나 재미있답니다. 연애란 게, 사랑이란 게 '통과의례'라니..?

[이니시에이션 러브]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라지만.




신청방법!!

비밀댓글로 남기시는 게 편하시겠죠? 개인정보를 로봇들이 퍼나르는 시대라니까요.ㅎㅎ

"성함, 주소,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제가 빠른 등기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 앞에 뭐라뭐라 살짝 낙서처럼

끄적여 보내드려도...괜찮죠?^^; 뭐, 그런 식으로 온라인의 존재감을 오프라인으로 연장해 보려는 가냘픈 손짓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ㅎ

기본적으로 하루정도 신청하신 분 중에서 제 맘대로  선정하도록 할께요, First come, first get의 룰은 참고만 하지요.


제일 중요한 점!!

받으시게 될 분은 다 읽으신 후에 리뷰를 포스팅해 주시구, 또 그 책을 다른분께 날려주세요.

그렇게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앞으로앞으로 나가면 그 끝엔 뭔가 희망찬 미래가...(엉?)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책 나누기에 동참하기 앞서.

저는 책을 잘 사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몇시간이고 교보문고에서 책읽는 걸 좋아했고, 대학 들어와서는 도서관

장서를 애용했지요. 굳이 돈을 주고 산 책들은 나름 꼭 사보고 싶은 이유가 뚜렷한 책이었고, 두고두고 볼 만하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래서겠지만, 일종의 책에 대한 집착이 심해요. 중1때 우리집에 놀러왔던 박충재[각주:1]가 빌려갔던

'펠리컨 브리프'와 '잃어버린 세계 1,2', 그리고 뭔가 또 한권의 책을 끝내 못 받은 걸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죠.


요새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요새 알라딘문고나 위드블로그에 리뷰어로 선정되는 등 책들이 적어도 한달에 세네권은

배달되어 오니까요. 그 이외에도 그간 모인 책들이 책꽂이를 넘쳐 흐르는 상황에 처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군요.

여전히 책 한권 한권이 사랑스럽기만 하지만, 우선은 그런 갓 '입양된' 아이들부터 눈물을 머금고 내보내려 합니다.


책 나눔이란 '글'의 나눔입니다.

책을 나눈다는 건 단순히 온라인 바자회를 연다거나, 혹은 제게 필요없는 골칫덩이들을 떠민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뭔가 자의로던 타의로던 그 책에 대한 소감을 기록함으로써 스스로의 언어로 소화한 책만을 나누어 드릴

생각이에요. 우선은 리뷰어로 선정되어 이미 리뷰가 남은 책들을 나누도록 하겠지만, 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둔

책들-그렇지만 짧막한 이미지와 경구 이외엔 별로 내 것으로 남아있지 않은 책들-은 리뷰를 가능한 남기고 나누도록

하려구요.


딱 그만큼만을 바래봅니다. 누군가 필요한 분의 손에 제 책이 가 닿는다면, 그분도 스스로의 언어로 책을 소화해서,

다시금 저에게 말을 걸어주셨으면 해요. 트랙백을 걸어 소감을 제게 남겨주시고 다른 분에게 또 그 책을 내보내는 거죠.

그 책에는 거쳐간 사람들의 간략한 메시지가 앞면쯤에 적혀 있을 테고, 다음분은 저와 두번째 분에게 말을 걸어주시고..

그런 그림을 그리며 시작합니다.


날개다는 책들.

[이니시에이션 러브]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라지만.

하나의 사랑을 마치고, 아직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엔 너무 허약하고 외롭기만 한 그런 때..읽기 좋답니다.

어떤 의미로던.
 

[눈의 여왕(안데르센, 인디고)] 나의 진심만큼이나 소중한 너의 진심.
안데르센이란 이름엔 익숙하지만 사실 그의 동화 중 '성냥팔이 소녀'말고 아는 게 없다면? 우린, 우린,

그런 틈새를 메꿉시다. 스텝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너무 일찍 깨어난 사람

청소년용 인문/사회 도서에요. 자신이 청소년이 지녀야할 만큼의 교양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과감히 스킵,

그렇지 않다면..(※ 청소년소녀 우대)


일단은, 꾸준히 나누어볼 생각입니다.

대략 한달에 두 차례씩, 한 차례에 세권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있던 없던, 블로고스피어에 이 글이

떠돌고 있는 한 연이 닿은 귀인으로부터 요청이 오지 않을까요? 느긋이 생각하고 꾸준히 나누어볼 생각이니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참고로 다음번 나눔에는 '메이저리그 경영학', '화폐전쟁', '부의 미래' 아니면 '여기

사람이 있다' 같은 책도 생각 중입니다.

뭔가 주제를 좁혀 보거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독서모임을 만든다거나, 혹은 다른 재미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죠.ㅡㅡㆀ


신청은 댓글로 남겨 주시면 좋겠어요. 성함, 주소,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제가 등기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착순..으로 해야 할까요? 그건...참고만 하도록 하구요, 기본적으로 하룻동안 신청하신 분 중에서 선정하도록

할께요^-^* 받으시게 될 분은 다 읽으신 후에 자신의 언어로 소감을 남겨 주시구, 또 그 책을 다시 날려

보내주셔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날개달고 책을 날려보내는 저의 목적은, 좋은 책이던 나쁜 책이던,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니까요.

말하자면, 책을 핑계삼아 사람들과 말할 거리를 찾고자 함인지도 모릅니다.


  1. 쟌진~* '무한도전'의 그 쟌진이지 누구겠습니까.ㅋ 왠지 '신화'의 전진이라기보다 '무도'의 쟌진이라고 하는게 자연스럽다는..ㅎㅎ 제 자랑스런 X랄친구에요, believe or not~* [본문으로]

참 요란스런 껍데기다. 중국에서 판매속도가 가장 빠르다느니, 수백만 매체가 어떻고 몇십주동안 1위가 어떻고.

빌게이츠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규모의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로스차일드가문이 세계 금융을 쥐고 흔든지

어언 이백여년이 되었다거나, 링컨과 케네디의 암살, 미국의 남북전쟁, 심지어는 유럽의 전쟁들과 1, 2차

세계대전까지도 그들 일부 '배후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이런 식의

허무맹랑한 음모론은 이런 식의 의문을 낳는다.




그런 음모론에 경도된 책의 앞머리 절반쯤을 읽으며 한 댓번은 "그래서 어쩌라규~"를 외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불태환화폐가 고작 몇십년의 역사밖에 지니지 못한, 아주 특이한 경우임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듯 하다. 태초부터 그랬던 듯 단단하고 완전무결해 보이던 지금의

시스템이 실은 역사적인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인식, 그리고 변경가능하다는 상상력의 자극. 그게 지금 시스템의

문제점을 바꾸는 단초일 테니까.


지은이가 말하는 대로, 금본위제가 폐지되고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제도에 기댄 불태환화폐제도가 그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돈'을 출현시켰다. 금이나 은과 같은 진정한 부(wealth)를 증거하는 화폐가 아니라, 은행으로부터

액면가만큼을 빌렸음을 의미하는 차용증서로서의 화폐. 그리고 그러한 화폐의 발행이 점차 팽창하면서 이른바

'인플레이션 택스(Inflation Tax)' [각주:1]효과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며, 그에 더해 전지전능한 '그들'의 입맛에

맞는 타이밍과 성과를 기한 세계적 차원의 경기변동이 유도되어 특정국의 자산과 부를 고스란히 가로챈다고 한다.

그게 지은이가 말하는 '양털깍기'의 의미이다. 경제가 호황을 이루고 급속한 성장을 이루다가, 어느 순간 거품이

잔뜩 끼었다 싶을 때 훌떡 경제를 말아버리고는 싼값에 주요 기간산업과 기업들을 차지하는 것.


결국 이 책의 요지는, 제9장 달러의 급소와 금의 일양지 무공, 그리고 제10장 긴 안목을 가진 자, 요 두 챕터에 전부
 
담겨 있는 듯하다.(제목도 참...중국스럽다.)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기 전에, 황금에 기반한 화폐제도로 조금씩

위안화를 바꾸어나가며 미국의 국채나 달러 대신 금을 중국내에 쌓아두라고. 그렇게 서서히 세계의 기축통화로

등극해서 중국이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워낸 패권국으로 등장하라는 민족주의적 메시지다.


근데, 한국의 경제위기 당시에도 나왔던 이야기지만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은이는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중국 내의 금융자본도 역시 자기증식을 통한 이윤 추구라는 논리에 충실할 뿐 아닐까.

지금이야 세계 금융시장에서 수세를 점하고 있기에 방어에 급급할 뿐이지만 그들 역시 언제든 '로스차일드가문'이

그랬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바꾸고 국가를 변형시킬 집단인 거다.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국내자본' 대

'해외자본'의 구도 혹은 '중국' 대 '외부의 적'의 구도라기보다는, '공공영역의 수호자인(여야 하는) 정부' 대

'자본'의 구도가 더 설득력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금태환화폐 시스템으로 변환시키기 위해서라도, 중국 내

자본과 협력하는 것보다는 타국 정부들과의 협조가 더욱 중요하고 효과적일 것 같다.


하나 더, 중국은 패권국을 추구한다고 치고, 한국에는 어떠한 함의가 있는 걸까. 이책. 중국 정도 되는 나라니까

외부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던, 로스차일드가문이 전세계를 집어삼키겠다고 음모를 꾸미던 말던 그에 대항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 거지, 우리 나라는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야 이 책이 뭔가 대국인으로서의 역사적

책무라거나 괜히 어깨 으쓱하는 사명감을 느끼게 했을지 몰라도,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도,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태환화폐 시스템의 역사적 형성과정이나 그 문제점들이란 건, 사실

이 책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을 텐데...? 한국의 CEO들이 추천하는 책이라는데 왜 그럴까.

왠지 Snob effect란 단어가 오랜만에 떠오르는 듯.ㅋ


화폐전쟁 - 6점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랜덤하우스코리아







  1. 인플레이션 택스(Inflation Tax)란 내가 기억하는 한도내에서 설명해 보자면 이런 거다. 화폐공급량이 늘어나 물가가 상승하게 되면 보유하고 있던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데, 그 자산의 하락한 가치분만큼을 화폐발행의 책임이 있는 정부에 세금으로 낸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부가 초래한 인플레이션에 따라 사람들의 부가 스물스물 정부로 이전되는 효과랄까. [본문으로]
휴대폰도 되고 카메라도 된다는 '컨버전스', 혹은 엠피쓰리도 되고 USB도 된다는 '양수겸장'의 아이디어 상품은

종종 성공적이지 못하다. 어느 한 쪽의 기능이나마 제대로 살아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 다른 한 쪽의 기능이

물귀신처럼 우월한 쪽의 기능을 물고 늘어져 두 가지 기능 모두 어정쩡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읽기에 따라 연애소설이 될 수도, 미스터리소설이 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강조하는 건,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는

쉽게 와닿기는 힘들 듯 하다. 우선 미스터리를 구성하기 위해 치밀히 고안된 복선들과 상징들이 일본 '내수용'의

것들이어서 내 눈에는 별로 걸리지 않았다. 다만 A면, B면이라 이름붙은 두 챕터가 알고 보면 동시간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기록이라는 흐릿한 의심은 뒤로 가면서 더욱 짙어졌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하는 과거의 기억들은

나름 성공적으로 그간의 긴장을 날려버렸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참신하고 재치있는 구성의 묘미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연애소설의 측면에서는. 글쎄. 얼핏 생각하면 그 소설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아포리즘은 이건가 싶다.

인간에겐, 이 세상에는 절대란 건 없다고. 그걸 알게 되면 비로소 어른이라고 해도 좋다고.

이 사람이라면 평생 사랑할 수 있겠다는 느낌, 헤어진 뒤에도 그 이상으로 좋아하게 될 상대는 앞으로 평생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런 건 모두 어린 시절의 무지한 신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절대'란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연애가 바로 일종의 통과의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러브라고.


그런 거구나, 하면서 제길, 하면서 끄덕끄덕 하려다가 왠지 반감이 인다. 내가 품은, 그녀가 품은 애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당사자들도 알지 못하고 확신도 없는 게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믿을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얄팍하고 찰나같은 진실이란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고작 그정도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절대'라느니, '(성숙한) 어른의 사랑'이라느니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아이의 사랑'이라느니.

자존심을 다칠까 마음을 다 못주는 연약함, 상대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걸 견딜 수 없는 두려움, 그런 걸 왠지 다

컸다는 느낌을 강변하는 '어른의 사랑'이란 단어로 뭉개버리려는 건 아니고?


섹스 파트너를 감수하면서까지 그의 마음을 얻으려 했던 그녀,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라는 그녀의 한 마디.

그녀는 마치 열혈 기독교도처럼, 자신이 이미 알아버렸다고 생각한 그 황량하고 불가역한 '진실'이 남자에게도

유효할 것이라 이야기했지만..막상 그녀로 인해 황량해져버린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상처나 공허함을 타인에게도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얼마나 기다려야 다시 예전처럼 신선하고

건강한 핑크빛 하트로 회복되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어차피 살아간다는 게 계속해서 상처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면...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처투성이 마음으로 사랑을 다시 해야 한다면, 그게 '어른의 사랑'이란
 
단어의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이니시에이션 러브 - 6점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북스피어

애초 위드블로그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리뷰어를 신청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차례로

그의 미술작품들, 그의 수기노트들, 그리고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그의 삶 어느 순간순간에 포진해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꼬리를 물고 일어난 이미지들이 바로 내가 지금껏 다 빈치 그에 대해

그나마 갖고 있던 조각조각 분절된 정보들이었던 게다.


사람들은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 혹은 이해하기 꺼려지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앞에 두고 쉽게

멈추어 버리곤 한다. 그렇게 자신의 동서남북 사방으로 멈추어선 경계 그 내부를 세계의 전부인양 살아가지만,

때론 그 경계를 거침없이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오늘날 현대과학이

검증해낸 과학적 사실들을 일찍이 깨우쳐버린 다 빈치나 갈릴레이 같은 사람들. 이해하기 꺼려지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배경과 당대의 상식에 반함에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고 실험을

극한까지 밀고 나갔던 프로이드나 니체 같은 사람들.


그 중 운 좋은 사람은 후대인들을 자신의 어깨 위에 태워 좀더 넓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나중에야 재평가되고, 아 이러저러한 것들은 이미 그가 얘기했던 것들을 '재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는 식으로 그치곤 한다. 다 빈치가 그렇다. 그의 아이디어와 과학적 시도, 방법론들은 너무

일렀다. 그야말로 그는 '너무 일찍 깨어난 사람'이었다.

                                                                                      ⓒ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책에서는 특히 그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할 만큼 엄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현상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작동 원리를 탐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난잡한 수기 노트에 적힌 글과 그림을 봐도

그가 얼마나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싶어 했는지 열의가 느껴진다.

물론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생을 재구성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책이다.

그가 자신의 사고를 기록해둔 수기노트들조차 제대로 재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니 그의 삶을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사실 욕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 빈치 앞에 붙는 온갖 수사들, 천재니 편집증

환자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생아였다느니 등등 손쉽게 레테르를 붙이고 멈추는 게 아니라 조금은

더 그의 삶이 어떤 궤적을 그렸는지 따라가며 인간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풍성하고 탐스러워 보이는 하얀 수염이 뒤덮인 늙은 현자로서 멈춰있는 다 빈치가 아니라, 그의 어릴 적 모습과

커나가는 모습, 그리고 인간적인 여러 고민과 어려움들 앞에서는 지금의 나와 별다를 바 없는 그의 반응을 보면서

왠지 친밀한 느낌이 한층 커져 버렸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하자면 청소년용 인문/사회 도서다. 몰랐다. 처음에는 책을 받고 나서 이런 책을 보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나 다소 망연했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 또 무엇보다 책 마지막 쯤에 있는 다 빈치의

수기노트를 웹상에서 일부 열람 가능토록 한 웹사이트 주소를 여기저기 쑤시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현재 그의 수기 중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빌 게이츠가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레스터 사본은 물이 가진

모든 성질과 움직임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한다. http://www.amnh.org/exhibitions/codex/index.html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으니 한번 죽 읽어보며 수기노트에 담긴 그림 일부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또 영국국립도서관의 사이트에서는 마치 책장을 넘기듯 그의 수기노트를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데,

왜 그런지 난 계속 못 보고 있다. http://www.bl.uk/collections/treasures/digitisation.html#leo 


레오나르도 다 빈치 - 10점
캐슬린 크럴 지음, 장석봉 옮김, 보리스 쿨리코프 그림/오유아이
#0. 들어가기 전.

이 책은 형식상 두 파트로 나뉜다. '대중의 흐름', 그리고 '지식의 운명'. '운동의 선언'이란 파트가 덧붙어 있기는
 
하고,
특히 마지막의 '코뮨주의 선언'은 앞선 '대중의 흐름' 파트의 행간을 더욱 풍요롭게 읽을 수 있는 힌트들이

가득
담겨 있지만, 일단은 선언들을 제하고 앞의 두 커다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에 담긴 것들이 너무 많다. 1부에서는 아감벤이 말했던 '배제함으로써 포섭하는 생명정치'에 대한 이야기

(이미 나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 대해 포스팅한 바 있다.[리뷰] 호모 사케르(조르조 아감벤, 새물결))부터

시작해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가속화된 국민의 추방, 촛불시위의 전말에 대해 내가 본 중 가장 깊이있고

냉정하게 내려진 해석, 폭력의 문제와 혁명의 문제 등이 줄줄이 다루어진다. 물론 그것들은 연속해 있지만, 동시에

하나하나 녹록치 않은 어려운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만큼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갈 여지도 풍부한 소재들이란

뜻이다. 거기에 더해 2부에서는 지식인의 현재적 의미, 대중지성과 그에 대척하는 테크노크라트의 문제, 그리고

현장인문학이란 문제의식의 제기, 앎과 삶의 관계가 말해진다. 고병권 그가 생각하는 선언이란 "말한대로 살아야

하고, 살아온 대로 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충실한 살아있는 무엇인가이며, 그의 이 책 역시 그 자체로 "이명박

정부, 정부로부터의 탈주"를 선언하는 선언문 같아 문득 이 책을 읽는 자세를 가다듬기도 했다.


어떻게 리뷰(혹은 이 책의 얼개를 뜯어 내 사고와 뭉쳐내어선 다시 풀어낸 글)를 쓸까 고심하다가, 나름 중요하다

생각하는 세 가지 지점을 잡기로 했다. 우선 국민들을 추방시키고 있는 정부(특히 벌써 망각되고 있는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두번째로는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사제들의 개입과 승리선언의 평가, 마지막으로는 '선언'이라는 단어로

고병권 그가 담고자 하는 실천적 의미가 무엇일지. 한없이 길어지겠다 싶어서 두번으로 나누어 올릴까 생각중이다.



#1. 국민을 추방하는 (이명박) 정부.


정확히 말하자면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 그리고 그 앞선 시대의 정부들에 대한 환상을 던져버리라 한다.

사실 이미 사람들은 모두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환상이 부질없음을 알고 있으며, 질릴 대로 질려서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누가 되건 똑같은데 왜 괜히 핏대 세우나." "지들끼리 해먹지."

              ▲ ⓒ연합뉴스

이명박이 지금 벌어지는 만악의 근원일까. 이명박 등장 이후 부쩍 늘어난 노무현에 대한 향수,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 무엇보다 마치 이명박 정부 혹은 이명박 개인이 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인 양 치부되는 경향이 없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본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급기야 경찰국가,

민주주의독재국가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 자신이 자초한 면이 매우 크지만, 또한 노무현의 말만 앞섰던 번지르르한

립서비스가 남긴 잔상들 탓도 있을 게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의 재개발 정책, FTA 추진을 비롯한 시장개방 정책, 감세 정책, 무한경쟁식 교육 정책,

부동산 정책, 비정규직 처우와 관련한 노동 정책 등등. 하나하나 논의의 여지가 큰 이슈들이지만,그런 것들은 사실

노무현 정부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고, 말마따나 '설거지만 하는 수준'으로 이어받았다 자인하기조차

하는 게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난 십여 년간의 한국 사회를 꿰뚫는 연속적인 흐름은 잡아내는데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은 고병권 그가 말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의 연속성을 실증적으로 책 안에서 보여주지는

않고 있지만, 중요한 건 정권 교체 따위로 역전되지 않는 하나의 도도한 흐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라 한다. IMF가 잠시 거세게 몰아치는 삭풍이라 여기며 잠시 후면 다시 잔잔한 일상이 도래할 것이라

여겼던 사람들이 직면했던 것은, 그칠 줄 모르고 불어제끼는 삭풍이 곧 일상으로 화해 버린 현실이었다. 구조조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구조가 되어 위기를 일년 365일 안고 살아야 하게 되었다는 인식. 그런 상시적 위기는 마치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 빼곡히 올라앉은 사람들을 가장자리에서부터 조금씩 바닷속으로 밀어내듯, '국민'이란

이름으로 지켜지는 사람들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이주 노동자,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민, 농민, 빈민,
 
노점상인, 장애인, 공고 졸업생, '지잡대' 졸업생, 4년제 대학 졸업생, 20대 청년...계속해서 밀려나고 있는 거다.

취업시장은 얼어붙었고, 채 세워지지도 않은 사회적 안전망은 허물어졌고, '금모으기운동'은 씁쓸하고 부끄러운

기억이 되었다. 

         [손문상의 그림세상]<172>"세입자도 국민이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130165117&section=03)

그들은 이제 '국민'이 아닌 국가 내부의 난민이 된다. 더이상 이들은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국민','시민'이란

단어로 불리워지지 않으며, 다만 점점 줄어가는 그 정체모를 '국민'의 이해를 위해 계속해서 양보를 강요당하게

된다. 용산참사에 대한 반응도 그렇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그들은 대한민국 내부의

테러리스트"라는 등, 철거민(세입자)는 더이상 우리와 같은 국민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병권의 지적처럼,

이러한 경계로 몰린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날것의 국가권력을 두고 합법과 불법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통제받지 않는 합법적 폭력을 휘두르며 게다가 일부 언론과 검찰의 사후 추인을 동원하는 

국가권력에 비해,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되고 말아 법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는 "추방된 국민"들이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그렇지만 얼마나 빠른 속도로 그들이 불어나고 있는 것인지.

               ▲ ⓒ프레시안

경찰국가, 혹은 민주주의 독재국가가 도래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추방당한 사람들에 대해 더이상 세련되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데서 기인한다는 게 고병권의 지적이다. 국민된 권리로부터

추방당한 채 방치된 '2등 국민, 3등 국민'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정부의 위협 요인이며 불안 요소일 수 밖에 없다.

연인원 수백만명이 거리로 나섰던 지난 촛불정국에서, 명박산성으로 상징되는 이명박정부의 앙상한 대응태세는

권위와 시스템의 외피가 지워진 국가권력의 추하고 무능력한 쌩얼을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때 잠시나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노래부르던 사람들에게 힘이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로, 정부의

절대적이고 늘 신성해야 할 외관은 심히 손상되고 헐벗어 있었다.


용산참사를 두고 찧고 까부는 사람들 역시 분칠된 국가권력의 추악성, 비인간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인간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 생존권을 절박하게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사회의 법질서를 우선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만큼이나 추악하고 본말이 전도된 장면이 또 있을까.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채 덕지덕지 존엄함과 지고함을

두르고 있는 정부 시스템이 요란스레 작동해서 '국민 모두가 살 길', '재발 방지와 선진화의 길'의 찌라시를 뱉는

동안, 그 '국민이 주인된다는' 권력의 원천인 여섯 생명이 한줌 재로 화했던 충격적인 사건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장면. 비극적인 것은, 국민들이 계속해서 추방당해 '한발 재겨딛을 곳조차 없는' 백척간두의 위기속으로

몰리게 될수록, 이러한 추악한 권력의 맨얼굴을 대면할 일이 점점 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추방과 탈주 - 10점
고병권 지음/그린비


강준만 교수의 글은 대학 다닐 때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읽었던 그의 말마따나 그의 글은

시간의 힘을 오랫동안 이겨낼만큼 깊이있고 섬세하게 다듬어졌다기보다는, 시사적인 이슈에 맞춰져 다작으로

승부하겠다는 느낌이 짙었던 탓이다. 아마도 그런 탓인지 다소 까칠하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말글같은 그의

줄글에 담긴 내용이란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제기, 혹은 약간 더 치고 나간 정도의 이야기정도라고

생각했었다. 조선일보에 대해서나 학벌문제에 대해서나 지역갈등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이 책은 제목을 어디선가 들었을 때부터 꼭 한번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 지방 사이의

간극이란 문제에 대해서 좀 관심이 뻗어있을 때기도 했고, 외교학과(라고 쓰고 국제정치학과 혹은 국제관계학과라

읽어야 할 거다)를 나온 탓에 어디서 줏어듣기는 한 '종속이론'이나 '세계체제론'의 개념을 빌어 한 나라의 중앙과

지방 사이의 문제를 논하려 하는 듯한 아이디어 자체가 참신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필명을 얻었을

때 쓰던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풍모가 그대로 묻어나는 제목, "지방은 식민지다." 그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다.


'내부식민지론'은 한 국가 내부에서 발생한 중앙과 지방 간의 극심한 총체적 격차가 구조화되어 급기야 지방이

중앙의 발전 및 유지를 위한 착취의 대상, 즉 식민지로 기능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최장집교수 등이 이러한

내부식민지론을 한국에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환원론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하는 데 대해, 강준만교수는

풍부한 사례를 들어 강력히 반박하고자 한다. 교육, 경제, 사회, 문화, 정치..그 어느 면에 있어서나 한국 사회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주요한 사회 모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책의 자잘한 칼럼들이 한목소리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지방의 신문방송학과 교수라는 점에서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지방 언론이

가져야 할 마땅한 책무와 역할에 대해 유독 강조하고 있다. 물론 지방언론이 실제로 지방 자치제도와 경제성장의

도모, 기타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마침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설날을 맞이해 '지방'이 모처럼 방송 앞머리를 장식했다. 휴식과 여가의 공간이자

도시인들(서울사람들)의 향수와 감정적 치유의 원천으로 남겨진 공간,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원형적 전통과

문화, 그리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환경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고 믿어지는 그곳. 그곳으로 도시인들은 꾸역꾸역

밀려내려갔고, 또 다시 '출세를 위한 공간', '한국의 중심' 서울로 되밀려 꾸역꾸역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잠복했던 한국의 지방은, 강호순이 지방의 야산과 한적한 국도를 휘저으며 연쇄살인을 저지를 때에야 또 방송에

출현하고 있는 거다.


그의 짧은 칼럼들을 교육, 정치, 언론 등 큰 주제에 따라 모아놓은 이 책에는 반짝거리는 아이디어와 당장 실천

가능할 법한 방책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 소재대학들이 경쟁우위를 갖는 것은 바로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고 일갈하면서 그것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쓰자는 이야기나, 지방에 난립해 있는

토호친화형 언론들을 솎아내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소수의 언론을 밀어주자는 이야기, 그리고  연고주의를

강고하게 재생산하는 비공식적 집단들인 동창회, 향우회 등이 차라리 공익적인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조금은 쇄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등.


그 모든 이야기들은 언제나 원칙주의자들이나 근본주의자들의 회의적이고 시니컬한 반응을 유발할지 모른다.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거나 임기응변에 불과하다는 식의 참 쉽고도 힘빠지는 비판말이다. 그걸 의식하고 있는
 
강준만 교수는 매 칼럼마다 꼭 지레 항변하곤 한다. 이것 말고 실제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말해달라. 무릎꿇고 경청하겠다, 하고.


안타까운 건, 그렇게 현실적인 제약을 십분 고려하고 원칙을 어느 정도 양보하며 제시하고 있는 그의 대안들조차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다. 그는 지방자치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기제를 이야기했지만 외려

지방자치제도 자체를 폐기하거나 유명무실화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설득력을 얻으며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는 지방문화와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매끈한 '서울공화국'에 약간의 균열을 희망하며 그 모루와

망치로써 지방 언론을 주목했으나, 오히려 지방 언론들은 전부 말라죽어버리거나 더욱 지방 토호와 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그가 말한 내부식민지로서의 지방이 중앙에 상납해야 할 몫은 점점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강준만 교수는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원칙을 좀더 양보하고 보다 유연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다시

궁리해 낼 것인가, 혹은 다시 원칙을 내세우고 다소 선동적이고 비타협적인 이야기-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소간 선정적일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떤 경우든 그는 그가 제시한 '내부식민지론'이 강고해진다는 점에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그의 목소리가 등장 초기에 비해 조금씩 힘이 빠지고 퇴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식의 진동을 그가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건 대안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부딪히게 될 한국의 완고하고도 답답한 현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방은 식민지다! - 8점
강준만 지음/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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